6화
라스티카: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클라우스를 데려왔습니다.
미틸: 따뜻한 코코아도 사왔어요! ……어라?
클라우스: 아무도 없어 ……. 모두는 대체 어디로?
스노우: 저건…….
미틸: 아, 붉은 리본의 상자! 열어버렸군요.
클로에: 진짜다. 열린 채로 있어…….
스노우: 만지지 말게나.
클로에: 스노우 님?
스노우: 그 상자 안에 가려져 있는 기척이 숨어져있네. 무심코 만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클로에 / 미틸 / 클라우스: 에!?
라스티카: 이것은……. 상자 안에서 희미하게 현자님들의 기척이 있습니다.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과 무언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모두 무사하실지…….
스노우: 브래들리와 샤일록이 함께일세. 괜찮다고는 생각하지만……. '노스콤니아'
스노우: 만일을 위해 결계를 쳤다. 우선은 상자 안을 확인하지. 어디보자…….
미틸: 어, 어떤가요?
스노우: 상자 바닥이 보이지 않네. 하얀 바닥이 없는 공간이 이어져 있는 것 같군. 하지만 틀림없이 다섯 명의 기척이 느껴진다. 모두 이 안에 빨려들어간 건가……?
저기…….
브래들리: 왜 그래, 현자.
왠지,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니 이번에는 분명하게 울렸다.
미틸: '……님. 여러분, 거기에 있는 건가요?'
미틸……!
샤일록: 이 목소리……. 아무래도 회장에 계신 분들의 목소리군요.
브래들리: 헤에. 저쪽과 이야기할 수 있다면 편한 일이지. 어이, 스노우. 들리냐!
미틸, 저희는 여기있어요! 시노도 히스도, 브래들리와 샤일록도 모두 함께……!
목소리를 높이자 안도의 목소리가 들린다.
클로에: '현자님의 목소리야! 다행이다……!'
라스티카: '우선은 무사하신 것을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브래들리: 큰 목소리라면 이쪽의 목소리도 닿는 것 같네.
스노우: '우리는 지금 붉은 리본 상자의 안을 향해 말을 걸고 있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모두 무사하나?'
히스클리프: 아…….
히스클리프가 자신에게 얽혀있는 리본을 보고 눈꺼풀을 숙인다.
샤일록: ……실은, 붉은 리본을 만졌더니 혼자서 상자가 열려 안으로 끌려가버린 것 같습니다. 좀 더 상황을 보고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기다려 주세요.
스노우: '그대와 브래들리가 있어도 나오는 것이 어렵나?'
샤일록: 네. 무리하게 나오려고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스노우: '알았네. 이쪽에서도 이변이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조사해보겠다. 무리는 하지 말게나.'
샤일록: 감사합니다.
시노: ……히스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샤일록: 지금은 아직. 분명 본인도 그걸 원하지 않을까 하고.
샤일록이 시선을 돌리자 히스클리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스클리프: ……고마워, 샤일록. 내가 이렇게 됐다는 것을 들으면 클로에들까지 걱정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 하지만…… 시노도, 현자님도, 블들리도, 저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히스가 사과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브래들리: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그 리본의 기색으로 보아 동쪽의 도련님은 이 공간과 연결되어 버렸어. 무리하게 나가려고 하면 도련님의 몸이 어떻게 될지 몰라.
시노: ……어이, 히스. 다시 한 번 건드릴게.
히스클리프: 에, 잠깐…….
시노가 손끝을 가까이 대자 곧 히스클리프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진다.
히스클리프: ……기어오르지 마라. 나는 너의 주인이다. 종자로서의 주제를 알도록.
자신에게서 나온 말에 히스클리프는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히스클리프: 아……. 이런 거 ……. 이런 건 생각하지 않았는데 ……. 왜 …….
시노: 신경 쓰지 마. 사실이니까. 나는 상처받지 않았어.
히스클리프: ……윽. 너는 ……!
내가 봐도 시노보다 히스클리프 쪽이 더 상처받은 것 같았다. 심하게 충격을 받은 모습에 시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히스클리프의 눈가를 손바닥으로 가린다. 그것을 본 샤일록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샤일록: 시노.
히스클리프: ……아…….
흔들린 히스클리프의 몸을 시노가 살며시 끌어안는다. 그리고 상냥한 손놀림으로 붉은 천 위에 눕혔다.
시노: 잠들게 했어.
샤일록: 불쌍하게도 ……. 안되죠. 허가도 받지 않고 이런 일을 하면.
시노: 히스는 동요하고 있었어. 이대로 두는 편이 불쌍해.
샤일록: 그것은 그 자신이 결정하는 겁니다.
시노: 잔소리는 그만해. 그럴 때가 아니잖아. 그렇지, 브래들리.
브래들리: 흥, 건방진 녀석. 하지만 빨리 이 리본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아야지.
시노: 아아.
샤일록: …….
시노: (……이걸로 괜찮아. 아까처럼 내가 신경쓰지 말라고 해도 그 녀석은 신경을 쓰니까. 나는 그 녀석의 종자로 있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을 텐데. 좋을 텐데…… 하지만…….)
시노: (아까의 히스는, 왠지 싫었어.)
미틸: 현자님들, 정말 괜찮을까요…….
클로에: 하지만 상자 안에 끌려갔다니, 도대체 왜…….
스노우: 클라우스여.
클라우스: 네, 네.
스노우: 그대는 붉은 리본 상자를 발견하면 자신을 부르라고 했었지. 혹시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있었나.
클라우스: 그, 그런……!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는 어떤 화가의 그림을 그 상자에 넣었을 뿐……!
클로에: 그림을?
클라우스: 네, 네. 상자는 리본을 바꿨을 뿐, 다른 것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림도 제가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미틸: 그렇다면 왜 이 상자만 자신을 불러달라고 말씀하셨나요?
클라우스: 아……. 그 그림은…… 이 전시회를 여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그저 순수하게 그것을 보고 여러분이 어떤 감상을 품었는지, 옆에서 듣고 싶었습니다…….
라스티카: ……클라우스. 괜찮다면 그 그림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겠니? 어쩌면 이번 이변의 해결의 힌트가 될지도 몰라.
클라우스: 아, 알겠습니다.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스노우: '상자 안의 사람들도 그걸로 괜찮겠나.'
네! 잘 부탁드려요.
내 목소리가 공간에 울리고 몇 초 후, 클라우스 씨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붉은 리본에 묶고 상자에 넣어버린 한 장의 그림을.
클라우스: 저는 어떤 화가를 사랑하는 열성적인 팬 중 한 명입니다. 상자에 넣은 그림도, 그 화가의 작품이었죠. 그 화가는 그의 친구를 모델로, 인물화를 몇 장이나 그리고 있었습니다.
클라우스: 30년 전의 어느 날, 그 재능이 유명한 화상들의 눈에 띄었고 그의 그림은 미술관에 장식될 정도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당시에는 화가의 재능 뿐만이 아니라 그가 그리는 모델의 아름다움조차 주목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기적' 을 그리는 화가'.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나타날 정도로.
미틸: 사람의 모습을 한 기적…….
라스티카: 화가의 재능와 모델의 매력, 두 가지가 합쳐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구나.
클라우스: 그건……! ……아닙니다.
클로에: 클라우스……?
클라우스: 그 모델에는……. 화가의 재능에 걸맞는 매력도, 인품도 없습니다. 모델 자신도 항상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화가: ……좋아, 됐어. 또 하나 걸작이 생겼네. 자, 너도 봐봐.
모델: ……응. 엄청 예쁘네.
화가: 무슨 일이야.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건가?
모델: 아니야. 왜냐하면 이런 건…… 내가 아닌 걸.
화가: 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모델: 왜냐하면……. 이 그림 속의 나는 네가 만들어낸 '기적' 이니까. 너의 손이, 재능이, 어디에나 있는 시시한 남자를 '기적' 으로 바꾼 것 뿐. 나는 그저 어색하게 서있었을 뿐이야. 그런데 항상 천사처럼 미소 지은 남자가 생겨. 너의 재능에 걸리면, 나말고 다른 사람이라도 '기적' 이 될 수 있어.
화가: ……한 가지 말할게. 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너니까 그리고 있는 거야. 너의 아름다움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모델: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화가: 그렇다면 이 그림은 너에게 줄게. 내가 말하는 의미를 생각해줘.
모델: …….
클라우스 씨의 목소리에는 슬픈 실의가 담겨져 있었다. 그의 눈에는 마치 당시의 풍경이 비치고 있는 것 같았다.
7화
스노우: 음. 지금의 이야기로 보니 그 화가는 모델에게 그림을 선물한 것 같군. 클라우스. 그대는 모델에게서 이 그림을 빌려 상자에 넣었다는 건가?
클라우스: 아뇨, 제가 이 그림을 발견한 것은 라스티카 님과 클로에 님을 만난 앤티크 숍에서입니다. 왜냐하면, 모델은 어느 날 그 그림을 자기 방에 두고 갑자기 자취를 감췄으니까요.
시노: ……하?
샤일록: 자취를 감추다뇨?
브래들리: 화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왜 그런…….
클라우스: '그건……. 어째서, 일까요…….'
클라우스 씨가 말을 꼬았다. 하얀 공간의 상공을 올려다봐도 그의 목소리는 내려오지 않는다.
샤일록: 기적…….
내 옆에서 샤일록은 리본으로 손가락을 가지고 놀고 생각에 잠기듯 눈꺼풀을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모양 좋은 입술을 열었다.
샤일록: 모델이 자취를 감춘 것은, '있는 그대로를 봐줬으면 한다' 는 메세지가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를……?
샤일록: 네. 화가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캔버스에는 천사처럼 미소 짓는 아름다운 인물이 그려진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외쳐도, 그것은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그 눈에 비치고 있는 것 같고……. 자신이 화가 앞에 계속 서있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노: ……. 그런 건…… 제멋대로잖아.
샤일록: 제멋대로죠.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샤일록: 상대방에게 전하면 뭔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리본을 묶고, 상대방에게 주고 싶은 말을 껴안은 채로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이 있을 것입니다.
브래들리: ……그래서, 모델이 사라진 후 화가는 어떻게 되었지?
순간 클라우스 씨는 대답에 얽매였다. 분개한 침묵을 끼운 후 한숨 섞인 그는 말했다.
클라우스: '……붓을 부러뜨렸다고 합니다.'
에…….
클라우스: '그리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그 다음부터는 마치 모델을 찾는 것처럼 전세계를 여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나요?
클라우스: '아뇨. 화가는 수십 년에 걸쳐 모델을 계속 찾고 있었다고 하지만……. 지난 번 재앙의 날…… 화가가 머물렀던 거리의 피해는 특히 커서, 그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대신 그의 사체가 안고 있던 한 장의 그림만이 무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그림은 아마도 화가의 손에 의해 새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그저 하얀 캔버스로서, 마지막에는 앤티크 샵에 도착해서 클라우스 씨가 찾게 되었다고 한다.
클라우스: '모서리에 남아있던 그의 작은 사인만이 힌트로……. 찾은 것은 운이 좋았죠.'
브래들리: 그런가……. 여러가지 연결되어있군.
턱을 비비며 브래들리는 잠자는 히스클리프를 보았다. 그리고 밖에서 들릴 만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말한다.
브래들리: 이쪽은 맡겨둬.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스노우: '무슨? 그건 진심인가.'
브래들리: 아아. 그쪽은 착한 아이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을 끝낸 동시에 브래들리는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브래들리: 계속 신경쓰였어.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부터 희미하게 느껴졌던 기척……. 도련님에게 감긴 리본에서는 동쪽의 작은 녀석의 기척이 나.
시노: ……하?
그, 그런가요?
샤일록: 네. 저와 브래들리가 알아차릴 정도의, 아주 미미한 것입니다만.
시노: 무슨 소리야. 나는 이런 곳에 와본 적도 없어. 화가도, 그림도, 붉은 리본 상자도 몰랐다고.
브래들리: 알아. 나도 어째서일까하고 생각했는데……. 그 클라우스라는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결점을 찾았어. 아무래도 상자 안의 그림에 스며들었던 사념이 액재로 인해 힘을 얻었겠지. 그 사념은 찾은 거야. 자신과 같은 집착을 가진 동쪽의 작은 녀석을. 그래서 자신의 미련을 풀듯이, 너의 소망을 이루려고 하는 거다.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시노의 붉은 눈동자가 떴다.
시노: 내…… 소망을? 웃기지 마. 나는 이런 히스, 바라지 않아.
브래들리: 그래? 하지만 네가 말한대로 되어있잖아. 아까의 모습이라면 도련님은 이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 앞으로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너에게 명령하겠지. 그런 도련님의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나?
시노: ……그렇긴 하지만……. ……이게 아니야……. …….
브래들리: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고 있는거지?
시노: ……그건……. ……잘 말할 수 없지만…….
시노…….
시노: ……. 나, 때문에……. 히스는 지금, 이렇게 되어있다는 건가?
경악하며 히스클리프의 팔에 감긴 리본을 시노가 바라보았다. 말을 잃고 서있는 시노에게 내쪽까지 발끝부터 마음이 차가워진다. 할 말을 잃고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뺨에 부드러운 따뜻함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자 샤일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시선을 재촉하듯 오른쪽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이쪽을 돌아본 시노가 있었다. 붉은 눈동자의, 타오르는 불꽃을 품고 있다.
시노: 이것이 내 소망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증명해. 가르쳐줘. 브래들리, 샤일록. 어떻게 해야 히스를 도울 수 있지?
브래들리: ……간단해. '박리의 마법' 을 걸어주면 돼.
브래들리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마치 시노의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시노: 박리의 마법……. 파우스트의 수업에서 배운 적이 있어. 분명, 저주를 푸는 마법 중 하나였지.
샤일록: 그말대로입니다. 마법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죠.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샤일록: 리본은 히스클리프의 정신에 관여할 정도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주를 풀려면 섬세한 힘의 조절이 필요하죠. 그리고 이 마법은 영혼에 빙의한 불필요한 것을 조금씩 벗겨가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상대를 되찾고 싶다' 라는 마음이 효력의 원천이 되지만 …….
브래들리: 반대로, 조금이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고 생각하면 저주의 힘이 늘어나지. 그렇게 되면 리본이 풀린다고 해도, 마음의 속박은 도련님의 영혼에 새겨질 거야.
그런…….
(즉, 실패하면 히스는 아까 그 상태 그대로……?)
브래들리: 그런 리스크를 생각한다면 이 중에서 저주를 푸는 것은 파이프 녀석이 가장 적임자겠지.
샤일록: 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은 제가 잘하는 것이니까요.
샤일록 / 브래들리: 하지만…….
힐끗 시선을 돌리는 두 사람에게 시노는 갉아먹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시노: 내가 할게.
브래들리: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샤일록: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브래들리: ……하지만, 그런가. 그게 네가 고른 대답이군.
8화
시노: 뭐야, 그 반응은. 내가 '히스는 이대로라도 좋아' 라고 말할 줄 알았나.
미간을 찌푸리는 시노에게 브래들리는 크게 어깨를 얹었다.
브래들리: 말했잖아. 주인에게 당당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종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딱히 네가 틀린 건 아니야.
샤일록: ……이런. 브래들리, 혹시 당신은 ……. 히스클리프가 이대로라도 좋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가 이대로 마법관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다면, 그 수단을 취하는 것도 위험을 감안해야 한다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브래들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런……. 아니죠? 브래들리.
브래들리: 버릴 정도의 선택지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어.
어, 어째서죠?
브래들리: 도련님의 기질은 사람이 너무 좋아. 싸움에는 부적합해. 가뜩이나 지난 번 액재전에서 그 녀석을 죽을 뻔한 녀석들을 봐왔잖아.
아…….
시노: …….
브래들리: 다음 싸움도 고통이 수반될 가능성이 있지. 그렇다면 이번 일도 다소는 대담해질 기회 중 하나야.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을 아무 생각없이 때리는 것은 삼류다. 공격을 받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보고 따라하며 자신의 전법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야 돼. 그러면 이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야. 네 무기가 늘어나기도 하지.
품에 초대하듯 크게 손을 벌리고 브래들리는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었다. 거창하고 당당한 몸짓은 힘이 넘치고 있다. 그 강함의 근원은 분명 도적단을 이끌었던 400년의 역사에서 길러낸 자신감과 전략이다.
브래들리: 불편함을 자유로 바꿔봐라.
브래들리: 강한 마나석도 이쪽이 삼키면 약한 녀석으로 남지만, 몸에 담으면 힘을 얻지. 그것과 같아.
그의 말을 무심코 듣고 있는데 샤일록의 손가락이 내 어깨에 닿았다.
샤일록: 확실히, 변화는 성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향해 시계바늘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변화는…… 어떨까요?
요염한 몸짓으로 샤일록은 파이프를 꺼냈다. 천천히 파이프를 물고 입술 사이로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달콤한 향기와 함께 감도는 흰 연기는 점차 시계 모양을 그려간다.
샤일록: 본인의 형태를 다른 사람이 왜곡한다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시계바늘을 외부에서 무례한 손으로 잡아 억지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 진행되고 있는 것을 되돌린다는 건, 어떤 마법사라도 할 수 없죠. 히스클리프의 모양을 바꾼다고 해도, 최악의 경우…… 이제 지금까지의 히스클리프는 다시는 만날 수 없어요.
샤일록의 간절한 시선이 잠든 히스클리프의 옆모습에 쏠린다. 그의 뒤에는 흰 연기의 시계가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샤일록: 저는 아직 섬세하고, 사려깊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친구인 그에게 작별인사를 할 생각은 없네요.
그 말에 시노의 어깨가 움찔하며 살짝 튀었다.
시노: (히스에게, 작별인사를…….)
파이프를 손에 든 채 우아한 미소를 지은 샤일록에게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기개가 있었다. 그 기백을 앞에 두고 브래들리의 입술이 천천히 호를 그린다.
브래들리: 하, 드문 일이잖아. 네가 나한테 반론을 하다니.
샤일록: ……죄송합니다. 다소 사심이 들어간 것 같군요.
눈꺼풀을 숙인 샤일록이 순간 파이프를 잡는 손가락에 힘을 쏟았다. 그건 마치…… 소중한 것을 다시는 떨어뜨리지 않도록 꽉 쥔 것 같았다. 맹세의 키스처럼 파이프에게 입맞춤을 하고 샤일록은 고개를 들었다.
샤일록: 브래들리가 말한 대로 당신의 주장도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시노와 히스클리프의 문제네요.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일변시키고 두 사람은 평소의 자세로 시노를 보았다.
브래들리: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동쪽의 작은 녀석.
샤일록: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색의 붉은 눈동자에게 질문을 받자 시노는 주먹을 쥐었다. 북쪽의 눈보라에도, 서쪽의 잔설에도 지지 않는 강함으로 말한다.
시노: 내 의지는 변하지 않아. 반드시 이 손으로 히스를 되찾겟어.
시노는 바로 잠자는 히스클리프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팔에 얽힌 리본을 잡았다.
시노: '맛차…….' ……윽.
(시노?)
샤일록 / 브래들리: …….
(아…….)
자세히 보면 시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주문을 외우려고 했을 때 깨달은 것일까. 조금씩 흔들리는 리본을 비춘 눈동자도 흔들렸다. 마치 시노의 마음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시노: (……진정해. 이런 형태로 히스의 내면이 변하다니, 용서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절대로 되찾을 거야.)
시노: (하지만…… 만약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히스는…….)
시노.
리본을 잡는 시노의 손에 나는 자신의 손바닥을 얹었다.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시노가 나를 쳐다봤다. 이기적인 눈동자를 남기고 시노의 얼굴은 약하게 일그러졌다.
시노: 현자. 나는…… 히스를 되찾을 수 있겠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두 사람을, 계속 가까이서 봐왔으니까.
물론이에요. 데리러 가죠, 평소의 히스를. 시노가 좋아하는 히스를.
시노: 내가…… 좋아하는…….
시노: 생각났어.
시노: 사랑받고 축복받으며 자란 블랑셰 도련님 같은 건 만나기 전부터 정말 싫었어. 히스의…… 히스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거야. 나를, 나의 마음 속을 멋대로 단정짓지 않고 처음으로 신경써줬어…….
시노: 그래서, 히스를 좋아해.
정신을 차리자 시노의 떨림은 멈춰있었다. 다시 정리하듯 한숨을 내쉬고, 그는 힘차게 주문을 외친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은은하게 시노의 손바닥에 빛이 깃든다. 뜨거운 태양처럼, 몸도 타는 듯한 눈부신 강함. 밤하늘을 비추는 별의 빛처럼 덧없고 부드러운 온도. 그 둘 다 가진 빛이, 히스클리프를 감쌌다.
샤일록: 잘하고 계십니다. 그대로 조금씩 마력을 흘려주세요.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만지는 것처럼.
시노: 이렇게?
샤일록: 네. 본래의 히스클리프를 의식하세요. 절대로 그 생각을 멈추지 말고.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다해서.
샤일록의 조언에 시노는 정확하게 응하는 것 같았다. 시노가 잘하는 것은 화려하게 힘을 쓰는 공격 마법이다. 머리를 쓰거나 섬세한 것은 서툴러서, 항상 좌학보다 실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파우스트의 수업을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다.
(그것도 분명, 전부 히스를 위해서……. 서로를 지키겠다고 다시 약속한 그날부터…….)
브래들리: 리본이 풀렸네. 이제 조금 남았어.
시노: ……. ……히스……. 돌아와.
얽혀있던 붉은 리본이 히스클리프의 팔에서 훌쩍 풀린다. 히스클리프의 긴 속눈썹이 풀리고 천천히 눈꺼풀이 올라갔다.
9화
히스클리프: 으음…….
시노: 히스!
히스, 괜찮나요……!
막 뜬 푸른 눈동자가 멍하니 주위를 돌았다. 그러자 문득 그 시선이 시노를 붙잡았다. 시노의 몸이 긴장으로 딱딱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침을 삼키고 히스클리프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으면…….
히스클리프: 시노.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시노: ……히스…….
시노의 아침 햇살 같은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닫힌다.
샤일록: ……어서오세요, 히스클리프.
브래들리: 무사히 성공한 것 같네.
히스클리프: 아……. 리본이 풀려있어…….
시노가 풀어줬어요.
샤일록: 박리의 마법을 사용하여 마음의 속박을 풀어주었습니다. 이제 아까와 같은 변화는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히스클리프: 시노가……. 그랬구나. 고마워, 시노.
시노: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한 일은 아니야.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니까. 그것보다 기분은 어때. 이상한 점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히스클리프는 살며시 오른손을 뻗었따.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시노의 오른손을 감싼다.
히스클리프: 아, 역시……. 빨갛잖아. 아까는 미안해. 나한테 맞아서 아팠지.
그런 물음에 시노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히스클리프는 팽팽한 것을 조금씩 풀듯이 말을 이어갔다.
히스클리프: ……나, 엄청 무서웠어. 만약 내가 앞으로 계속 아까 같은 내가 된다면. 왜냐하면 저런 모습…… 가령 이곳을 나간다고 해도, 클로에나 미틸…… 루틸이나 리케들을 분명 상처주고 말 거야. 그래서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시노.
히스클리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모두 누군가를 염려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상냥한 배려는, 그의 것이다.
시노: ……이런 때에도 너는…….
시노는 다른 한 손으로 히스클리프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건 마치, 보석을 다루는 듯한 정중함이었다.
시노: 역시, 지금의 히스가…….
히스클리프: 에? 뭐야, 시노. 지금 뭐라고 말했어?
시노: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사쿠 쨩이 무언가를 알아차린듯 내 가슴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주위가 밝아졌따. 이곳에 왔을 때보다도, 더 부드러운 빛.
이건…….
브래들리: 아무래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네.
샤일록: 네. 스노우 님들의 기척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또 새하얀 세계에 휩싸였다고 생각하자…….
정신을 차려보니, 원래있던 전시회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스노우: 현자!
미틸: 현자님이다!
클로에: 모두도! 다행이다~!
라스티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죄송해요, 여러분. 걱정끼치게 해서.
클로에: 으응!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상자 안으로 끌려가는 쪽이 더 놀랐지?
미틸: 안은 무서운 곳은 아니었나요? 큰일을 당하거나…….
히스클리프: ……괜찮아. 시노가 해결해줬어.
샤일록: 네, 그렇습니다.
브래들리: 흥.
시노: 흐흥, 뭐.
라스티카: 역시 시노. 찬란한 활약이네.
스노우: 브래들리와 샤일록이 있어서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가. 시노인가. 공로를 세웠군.
브래들리: 어이, 쓸모없다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지 마.
샤일록: 후후, 미래가 있는 젊은이가 화려한 공적을 세우는 편이 기쁘겠죠.
문득 보니 붉은 리본 상자 안에는 새하얗게 칠해진 캔버스가 들어있었다. 클라우스 씨는 복잡한 얼굴로 그것을 들고 우리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클라우스: 이번에 고객님을 위험에 노출시켜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얼마나 사과를 드려야 할지…….
히스클리프: 그런……. 고개를 들어주세요.
스노우: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사소한 일일세. 특히 현자의 마법사니까.
시노: 그렇지. 이변은 일상적인 일이야.
미틸: 그런 일상, 싫지만 부정은 할 수 없네요…….
스노우: 그렇다고 해도, 그 그림을 그대로 둘 수는 없네.
모두의 시선이 클라우스 씨가 들고 있는 캔버스에게 쏟아진다.
클라우스: 아…….
스노우의 말에 그림을 들고있는는 클라우스 씨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스노우: 안심하게나. 태워버리거나 하지는 않으니. 또 누군가를 가두지 않도록 정화의 마법을 걸 뿐일세. '노스콤니아'
클라우스 씨의 손에서 그림이 떨어져 은은하게 캔버스가 공중에 떠올랐다. 맑은 빛이 새하얀 그림을 감싼다. 그러자…….
어라……? 왠지 하얀 물감이 없어지지 않았나요?
히스클리프: 정말이네요. 이건…….
나타난 것은 이쪽을 향해 미소짓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금발에 상냥한 푸른 눈동자. 아주 조금 히스클리프를 닮은 것 같았다. 청년의 주위에는 붉은 리본이 흔들리듯 많이 그려져 있었다.
클라우스: 설마, 이런 일이……. 이 그림을…… 이렇게 깨끗한 상태로 다시 볼 수 있다니…….
떨리는 손가락으로 클라우스 씨는 캔버스를 손에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약간 주름진 눈꼬리에는, 눈물이 흘러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클로에: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네. 이런 사람이 자신의 모델이 되어주다니……. 화가가 수십 년이나 찾고 싶어지는 마음, 나도 알 것 같아.
라스티카: ……그렇네. 모델인 그가 미소 지은 눈 속 빛의 묘사도 훌륭해. 이것은 모델인 그의 마음의 힘을 나타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눈썹은 곤란한 듯 구부러져 있어……. '이제 슬슬 다 그려가? 잠깐 쉬자. 당신이 지쳐버릴 거야.' ……라고, 그림을 그리는 손을 배려하는 듯한 상냥함까지 느껴지는 것 같지 않니?
클라우스: ……! ……어째서 알고 계시는 건가요. 마치 이 그림이 그려진 날을 보고 계셨던 것처럼…….
라스티카: 알 수 있어. 왜냐하면 이 그림에서 들려오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나 아름다워라며. 눈에 비치지 않는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라, 눈에 비치지 않는 내면까지 전부.
클라우스: ……. ……그런가…….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 ……제가, 이 전시회를 연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틸: ……그러고보니 클라우스 씨, 이 그림이 전시회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죠.
시노: 그건 무슨 뜻이었지?
10화
클라우스: 저는…… 이 화가가 붓을 부러뜨린 것을 계속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나 재능 있는 화가가, 자신의 곁을 떠난 모델 한 명 때문에 붓을 접다니……. 벙말 바보 같은 짓을 했다며 분개했죠.
클라우스: 화가는 어째서 그렇게나 모델에 집착했는가. 어떻게 해야 두 사람은 함께 있을 수 있었는가. 그런 생각만 하고. 그런 때를 몇 년, 수십 년이나 보내며 저는 그 골동품 가게에서 이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손에 든 캔버스를 바라보며 클라우스 씨는 표면을 부드럽게 손끝으로 쓰다듬는다.
클라우스: 발견한 순간 새하얗게 칠해진 명화에 가슴이 짓눌릴 뻔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전시회의 아이디어가 쏟아졌죠. 전시회의 물건에 이 회화를 섞어서,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말하고, 고객으로부터 제3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면……. 제가 원하는 답이…… 나올 것 같아서.
스노우: 호호호. 고민하면서 전시회를 열려고 하는 것이 서쪽답군.
브래들리: 괴짜의 발상이다.
클라우스: 괴짜, 인가요……. 하하, 당신 말대로입니다. 마치 스스로도 무언가에 빙의된 것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전시회 날이 다가올 때마다…… 화가와 모델이, 사이좋게 아틀리에에 있는 꿈까지 꾸게 되었으니까요.
안타까울 정도로 사랑스럽게, 행복하게, 클라우스 씨는 말했다. 라스티카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상냥한 눈을 살며시 감는다.
라스티카: 어떻게 해야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씹는 것 같은 라스티카의 중얼거림. 천천히 눈꺼풀을 뜨고 라스티카는 클라우스 씨와 눈을 마주쳤다.
라스티카: 그 답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확인할 수는 없네. 당사자인 화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시간은 돌아가지 않아.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만 말을 나눌 수 있어. 아무리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클라우스: ……그, 렇죠. 정말로 …… 그렇습니다.
눈썹을 팔자로 구부리고 클라우스 씨는 애틋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이 문득 그가 손에 쥔 그림 속의 인물과 겹쳐보였따. 캔버스의 청년이 만약 나이가 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듯한…….
(……설마…….)
나는 튕겨진 것처럼 자신의 입가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샤일록은 살며시 그의 검지 손가락을 움직였따. 마치, 내가 깨달은 비밀에는 리본을 묶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샤일록: ……자, 여러분. 무사히 이변도 해결되었고 그림의 정화도 끝났습니다. 슬슬 저희는 돌아가도록 하죠.
밖으로 나가니 풍요의 거리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깜빡하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덧없고 부드러운 눈.
시노: 역시 내리고 있네.
샤일록: 오늘은 서쪽 나라에서도 한층 더 추위를 느끼는 날이었으니까요.
라스티카: 이건 아까 사온 핫코코아가 나올 차례네.
클로에: 아. 여러 일이 있어서 마시지 못했지.
스노우: 마법으로 넣어둔 것을 다시 데워서 꺼내주겠네. '노스콤니아'
미틸: 와아, 따뜻하다!
스노우의 마법으로 모두의 수중에 핫코코아가 든 컵이 나타났다. 천천히 손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내리는 눈을 보았다.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아까까지 있었던 겨울의 숲이었다.
내일부터 전시회도 잘됐으면 좋겠다…….
퉁명스럽게 흘린 내 목소리를, 옆에 있던 그는 놓치지 않았다.
브래들리: 무슨 일이야.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나.
아……. 뭐랄까 …… 클라우스 씨가 걱정되어서. 클라우스 씨는 화가와 모델의 관계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었죠. 그야말로 꿈에 나올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회에서 여러 손님을 만나고, 작더라도 클라우스 씨의 고민이 누그러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브래들리: 하. 역시 너는 사람이 너무 좋아. 걱정하지 않아도, 그 녀석은 이제 이상한 꿈에서 해방될거다.
에, 무슨 뜻인가요?
브래들리: 아마도 클라우스가 꾼 꿈은 그림에 얽힌 화가의 사념이 원인이겠지. 원래라면 모델이 없어진 시점에서 화가의 꿈은 끝났을텐데 ……. 화가는 깨어난 꿈의 다음을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거야. 그 미련이 액재의 힘을 받아 클라우스에게 영향을 준 거고. 뭐, 드디어 만날 수 있었던거니 꿈 정도는 보여주고 싶잖아.
그건……. 역시 클라우스 씨는…….
브래들리: 그런 거야.
아까까지 있던 회장 쪽으로 브래들리는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돌렸다. 분명 같은 비밀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브래들리: ……뭐, 억지로 꿈의 연속을 보게 된 모델에게는 어마어마한 악몽일지도 모르지만.
한숨 섞인 어깨를 으쓱거리며 브래들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쪽 나라보다도 잔잔하게 흩날리는 눈을,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 살며시 코코아를 입으로 옮기자 우리의 선두를 걷는 시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갑자기 그런 일이 되어버렸지……. 원래는 히스가 원하는 것을 다같이 찾을 예정이었는데. ……시노는 괜찮을까.)
그에게 말을 걸까 생각했지만 나보다 한 걸음 먼저 히스클리프가 시노 옆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약간의 망설임을 얹은 채. 하지만 아무래도 물어보고 싶다는 표정을 한 채.
히스클리프: ……시노. 저기 말이야…….
시노: 뭐야.
히스클리프: ……. 왜…… 원래의 나로 돌려준 거야?
시노: ……. ……그건…….
시노: 네가 나였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꿈뻑꿈뻑거리는 눈꺼풀 위에서 히스클리프의 긴 속눈썹이 흔들린다.
히스클리프: 뭐야, 그게.
그는 웃었다. 하얀 한숨이 추운 하늘로 사라져간다.
시노: 나도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어.
히스클리프: 뭔데?
시노: ……히스클리프 블랑셰. 역시, 나는 당신에게 공로도 명예도 바치고 싶어. 가령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히스클리프: …….
시노: 하지만……. 히스 자신이 진심으로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도, 제대로 있어. 그러니까 알려줘. 만약 네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을 발견했을 때는, 나에게 숨기지 말아줘.
붉은 눈동자는 히스클리프를 정직하게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단단히 받아들이고 히스클리프가 푸른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히스클리프: 알았어. 하지만……. 시노는 이미 줬는걸.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북쪽의 바람이 시노가 두른 붉은색 망토를 흔들었다. 그 붉은색은 결코 피의 색이 아니다. 선명한 색은, 시노의 상처 하나 없는 몸을 감싸고 있다.
시노: ? 나……. 너한테 뭔가 줬었나?
신기하다는 듯 시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히스클리프: 아하하, 비밀.
이번에는 시노가 눈을 꿈뻑꿈뻑거릴 차례였다. 눈앞에서 웃는 히스클리프의 얼굴이 매우 행복해보였으니까. 그건 마치,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시노: 뭐야, 그게.
그래서 시노도 웃었다. 찾고 있던 보물을, 드디어 찾았다는 듯한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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