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네로: ……?! 뭐야?! 갑자기 방향전환을……?!
시안: 에…….
네로: 시안, 위험해! 너를 노리고 있어! 도망가……! 이 녀석, 멈추라고……! ……윽, 떨어진다……!
무르: '에아뉴 랑블!'
샤일록: '임비벨'
네로: ……타이밍 좋네! 무르, 샤일록!
시안: ……이리 와.
네로: ……시안?! 왜 도망치지 않는거야?!
시안: ……이 아이가 나를 덮칠 리가 없어.
네로: 시안!
시안: 괜찮아. 나에게는 행운의 우산이 있으니까…….
히스클리프: ……내가 미노타우로스의 미끼가 될게! 리케는 랜턴의 준비를!
리케: 네!
시노: 웃기지마! 내가…….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브러프 스노스!'
시노: '맛차 스디파스!' 됐나……?!
리케: ……! 미틸 쪽으로 향하고 있어!
시노: 미틸! 조심해!
미틸: 네, 네! ……!
비리지안: 한 눈 팔지 마. 이제 끝이야. '볼로 하베…….'
미틸: ……! 내가 아니라, 그녀를 덮치려고 하고 있어?! 너, 위험해……!
비리지안: ……?! 꺄아아아악……!
미틸: 미노타우로스가 작은 마녀를 덮쳤다……?!
히스클리프: 마녀…… 가 아니야?! 몸이 나무 인형처럼…….
비리지안: ……어째서, 아버지…….
오레올린: 그만둬! 이거 놔!
아서: 오레올린!
오즈: 어디로 가는거냐, 아서!
파우스트: 가시덤불이 그녀를 벽 쪽으로 끌고 가고 있어…….
레녹스: 벽속에 삼켜져 가고 있다……?!
오레올린: 어째서, 아버지……!
아서: 오레올린, 손을……!
오즈: 아서, 손을 놔! 너도 성에 삼켜지고 말거다!
아서: 놓지 않을거예요……!
오즈: 그저 인형일 뿐이다!
아서: 인형이라고 해도! 겁을 먹고, 파랗게 질려있잖아요! 그런 자의 손을 놔도 좋을 리가 없습니다!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오레올린: ……하.
아서: 오레올린으로부터 힘이 빠져 나가고 있어……. 파우스트, 그녀에게 무슨 짓을…….
파우스트: …….
아서: 파우스트?!
레녹스: ……진통과 현혹의 마법입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사들에게 편안한 시간을 주기 위한 마법이죠.
아서: …….
오레올린: ……하아……. 윽……. 나는 인형이었던건가……? 나는……. 어떻게……?
파우스트: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 조용히 눈을 감으면 돼.
오레올린: 조용히…… 눈을…….
파우스트: 그래. 너가 만나고 싶어헀던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오레올린, 네가 편안하길. 하느님도, 우리도 지켜보고 있을거다.
오레올린: ……언니……. 언니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와 같은 머리와 눈의 색을 한…….
파우스트: 곧 만날 수 있을거야.
아서: ……그녀의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오즈: 아서, 손을 놔라.
레녹스: 아서 전하. 이쪽으로.
아서: ……미안해…….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오레올린: 손을 내밀어줘서……. 고마워…….
바이올렛: ……윽……. 우윽…….
미스라: 리바이어던이 그녀를 물었다……?
루틸: 어떻게 된거죠? 패싸움……?
스노우: 오비시우스는 인형으로 마물을 매료시켜 조종하는데에 뛰어난 마법사일세.
화이트: 그녀들은 처음부터 마수의 제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피가로: 아아……. 그녀의 손발이 나무로 변해가고 있네.
루틸: ……도와줄 수는 없는건가요?
스노우: 도와줘? 흙은 흙으로. 쓰레기는 쓰레기로 돌아갈 뿐일세.
화이트: 저 아가씨를 잡아먹은 리바이어던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성가시게 됐구먼.
피가로: 쌍둥이 선생님은 매정하네.
스노우: 허나, 이 만남도 운명이 아니겠나. 바이올렛에게 무슨 남길 말이 있는지 물어보고 오지.
바이올렛: ……떠올렸다……. 나는 북쪽 나라의 마녀였어…….
스노우: 애처롭구먼. 오비시우스에게 살해당해 마나석을 이용당한 것이지. 그대의 원수는 갚아주마.
바이올렛: ……북쪽 나라의 마녀는, 누군가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지 않아.
스노우: 실례했군. 자랑스러운 마녀여, 혼자 가도 좋네.
바이올렛: ……후후…….
피가로: 아~ 아. 불쌍해라. 미스라, 공간의 문을 열어줘. 카인과 미틸은 나에게 맡겨.
미스라: 제가 가는게 더 빠를텐데요.
피가로: 미틸이 중증일 때, 너는 미틸을 치유할 수 없잖아.
미스라: …….
피가로: 반박하지마, 미스라. 바다의 악마 리바이어던은 오즈나 너가 쓰러뜨릴 수 있어. 의지하고 있을게.
미스라: 네.
피가로: 저 쪽에서 리바이어던을 봉인할 도구를 준비해주고 있을거야. 준비하는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몰라. 문을 열면 도구들을 미스라에게 맡기고 나와 루틸은 성으로 이동한다.
미스라: 루틸을 데리고 가게요?
피가로: 몇 명이 중증인지 몰라. 조수가 필요해.
루틸: 괜찮아요, 미스라씨! 저도, 미틸도 무사히 있을게요. 미스라씨를 혼자 두지 않겠습니다.
미스라: 하? 딱히 그런 걱정은 하고 있지 않는데요. 저는 저의 마력을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루틸: 아, 알고 있습니다만…….
미스라: ……루틸, 무사히 있어주세요.
루틸: 네!
스노우: 피가로 쨩도 무사히…….
화이트: 무사히 있어줘.
피가로: 정말이지…….
스칼렛: 라라라~ 라라~……. 아아……. 아…….
라스티카: 아름다운 노랫소리입니다. 그대로, 계속.
스칼렛: …….
라스티카: 잘 자요, 멋진 사람. 좋은 꿈을…….
클로에: ……라스티카! 괜찮아?! 아까 그 여자는?
라스티카: 성에 끌려가고 말았어.
클로에: 성에……?
라스티카: 통증을 느끼지 않게 마지막에 부드러운 꿈을 꿀 수 있는 마법을 걸어줬어.
클로에: ……그렇구나……. 성에 끌려가다니…….
라스티카: 카인은 괜찮니?
클로에: ……괜찮다고는 말할 수 없어. 당장 피가로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지금은 오웬이 돌봐주고 있어.
라스티카: 그래.
클로에: 저기, 라스티카. 오웬은 케르베로스가 카인을 물었다고 했는데 거짓말인 것 같아. 뭐라고 해야 할까, 일부러 그런게 아니었을지도…….
라스티카: 어째서?
클로에: ……카인을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주었던 것 같아.
오웬: 저기.
클로에: 우왓, 깜짝아.
오웬: 라스티카가 돌아왔으면 빨리 알려달라고. 그 여자 뒷처리는 했어?
라스티카: 작별 인사를 했어. 아까 클로에랑 같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어. 피가로님은 성안에 계실지도 몰라. 카인을 옮기고 피가로님에게 진찰을 받자. 오웬, 도와줄 수 있니?
오웬: 어쩔 수 없네. 좋아.
네로: 시안……!
무르: 바질리스크에게 먹혔다!
샤일록: 그녀의 손발이…… 인형 같은 나무로 변해가고 있어…….
브래들리: 말했잖아, 살아있는게 아니라고. 고것 참 잘 만든 인형이네. 이 마나석…… 동쪽 나라 마녀의 마나석인가. 그리고 오즈의 피 냄새가 나. 전부 저 새의 뱃속에 들어가버렸는데. 대단한 마력이다.
샤일록: ……그녀를 먹고, 바질리스크가 더 강해졌다……?
무르: 더 커진 것 같아!
네로: ……까불고 있어……. 브래드! 저 새는 내가 잡을거야! 나를 쏴!
브래들리: 좋아, 죽이고 와! '아도노포텐스무!'
샤일록: ……브래들리의 장총이 단총으로 바뀌었어…….
무르: 브래들리의 특기인 강화마법이야!
샤일록: 정면에서 가슴을 쏘다니, 상당한 신뢰 관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브래들리: 간다, 네로!
네로: 와!
브래들리:'아도노포텐스무!'
(네로……!)
차례차례로 인형으로 돌아가 부서져가는 마녀들... 그런 슬픈 광경 속에서 분노를 드러내는 네로를 보았다. 브래들리의 총탄을 맞은 후 네로는 짐승보다, 새보다 빨랐다. 밤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한층 커진 바질리스크를 따라간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네로가 주문을 외우자 마도구 커트러리들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무수한 포크의 비가 바질리스크에게 쏟아진다. 몸집이 불어난 바질리스크는 늠름한 날개를 펴고 크게 날개를 쳤다.
네로: ……윽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포크의 비는 날아가고, 네로도 공중에서 균형을 잃는다. 하지만 자세를 고쳐 수직으로 하강하면서 도망가는 바질리스크를 뒤쫓았다. 그런 그의 양 옆으로 빗자루를 탄 마법사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샤일록과 무르다. 이런 밤인데도 하늘로 떠오르면서 미소 짓는 것은 그들이 서쪽의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슬픔, 상실마저도 즐길 수 있다. 내일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샤일록: 저 날개는 귀찮네요. 접근하지 못하겠어요. 제가 평형감각을 빼앗겠습니다.
무르: 내가 어지럽힐게!
네로: 내가 접근해서 쏴볼게. 맡겨줘. 새라면 아주 익숙하니까.
샤일록은 미소를 지으며 네로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하늘색 우산이었다.
샤일록: 그 소녀가 나무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의 손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낯익은 것 같아서.
네로: …….
샤일록: 억울함을 풉시다. 네로.
네로는 조용히 샤일록으로부터 하늘색 우산을 받았다. 샤일록과 네로의 팔을 이은 한 개의 하늘색 우산은 마치 밤하늘에 놓인 다리 같다. 하늘색 아치를 힘차게 구르며 유성처럼 무르는 하늘을 날아간다.
무르: 간다! '에아뉴 랑블!'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형형색색의 불꽃이 피어 오른다. 쿵! 쿵! 소리를 내면서. 그것은 가시밭에 갇힌 성의 고동 같았다. 아직 살아 있어.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라고.
22화
파우스트: ……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어. 레녹스! 피가로의 재료를 보았나?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의 재료라면 이쪽으로……. 윽. 조심해주세요. 가시덤불의 개체 수가 늘고 있습니다.
오즈: 인형을 먹어서 더 강해진건가.
레녹스: 아마도요. 피가로 선생님의 짐은 여기에 있습니다.
파우스트: 고마워. 리바이어던을 봉인하는 의식에 필요한 물건이다. 부족한 재료도 있다고 했는데…….
아서: 부족한 재료……. 우선 피가로 님의 짐을 나열해보자. 이상한 냄새의 향유에 푸른색의 진주, 거무스름한 뼈…….
오즈: 아서. 부주의하게 건드리지 마라.
아서: 아…… 죄송합니다.
파우스트: 내가 건드리지. 코망딩오일과 성해주, 월광복의 송곳니……. 이 근처는 만지지 않는 것이 좋아.
아서: 알았어. 부족한 재료는 있나?
파우스트: 요점이 되는 매개체다. 별의 조각인가. 영웅의 유물....
아서: 보검 칼레토보르흐라면 성의 보물고에 잠들어 있어. 건국의 영웅 초대 국왕 알렉 님의 유품이다.
파우스트: ……보검 칼레토보르흐라면 충분할 것이다.
아서: 당장 가지러 가자.
오즈: 그전에 현자를. 파우스트 너, 현자를 찾았군.
레녹스: 현자님을 찾았다?
파우스트: 눈치채고 있었던건가. 명확한 장소를 알아낸 것은 아니지만……. 현자의 목소리가 끊어지기 전 공간이 연결된 듯 했다.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서: 정말인가! 그렇다면 파우스트, 부탁해도 될까? 현자님의 가까이에 주범이 있다고 했다. 빨리 구해드리고 싶어.
파우스트: 해보지. 보검 칼레토보르흐는 너에게 부탁해도 될까?
아서: 맡겨줘. '파르녹턴 닉스지오!'
파우스트: 정말 괜찮은가, 아서.
아서: 아아.
오즈: ……나도 함께 가지. 레녹스, 탐색의 마법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파우스트를 지켜줘.
레녹스: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서: 그러면!
파우스트: ……기다려, 아서! 오즈는 마법을 쓰면 안 돼. 무리는 하지 마!
아서: 알았어!
파우스트: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아서: 나는 마법사다. 약속은 하지 않아. 하지만, 반드시 돌아올게. 걱정하지 마!
아서: 갑시다, 오즈 님.
오즈: 아아.
파우스트: ……레녹스. 현자를 찾기 위해 탐색을 시작한다. 뒤는 맡기지.
레녹스: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
레녹스: 왜 그러시나요?
파우스트: 내 발언을 돌이켜 보고 있었어. 너와의 관계는 과거의 일이라고 했었으면서…….
파우스트: (무의식적으로, 옛날처럼 의지해버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언제까지나 미래가 없는 내 인생으로부터 레녹스를 놓아줄 수가 없어……)
레녹스: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뭐야.
레녹스: 저는 기쁩니다.
파우스트: …….
레녹스: 부디 집중해주세요. 당신은 반드시 제가 지킬테니.
네로: 죽어……!
네로는 커틀러리를 다루면서 바질리스크를 공격했다. 그를 날려 보내려고 바질리스크가 날개를 부풀린다. 순간 샤일록이 파이프 연기를 바질리스크에 내뿜었다.
샤일록: '임비벨'
연기에 휩싸여 바질리스크의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밤바람을 쐬며 샤일록은 바질리스크에게 다가갔다. 마도구의 파이프를 조금씩 뒷머리에 넣으면서 바람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손가락을 뻗는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크게 벌어진 바질리스크의 부리와 샤일록이 정면으로 부딪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험해……!)
순간, 샤일록은 공중제비를 했다. 서커스의 플랑코 타기처럼 대담하고 예술적이고 매혹적인 아름다운 대회전을. 푸른 밤이 멈춘 듯 했다. 황금빛 달도, 날개를 펼친 바질리스크도 그가 그리는 아름다운 고리를 넋을 잃은 채 보고 있었다. 거꾸로 된 샤일록은 매료시키듯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부리를 벌려 놓지 않는 바질리스크를 달래듯이 입술을 열어 혀끝을 튕긴다.
샤일록: 치치치.
바질리스크는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부리 속에 손가락 끝에 머금고 있던 이상한 빛의 구슬을 스르르 쏘아넣었다. 샤일록을 보고만 있었던 바질리스크는 덜컥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리면서 취객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위에서 보고 있던 샤일록은 뒷머리에서 파이프를 뽑아 입에 물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뜬다.
샤일록: 귀여우신 분.
술을 깨려는 듯 바질리스크는 몸을 비틀어 날개를 활짝 폈다. 바질리스크를 기다리고 있던 네로가 오른손을 치켜든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것은 어느새 흉악한 크기로 변한 칼이다. 네로는 망설이지 않고 바질리스크의 날개를 거대한 칼로 찔렀다. 선혈이 네로에게 퍼붓는다. 바질리스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몸부림을 치며 꼬리의 뱀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네로에게 독을 뿜으려 했다. 그때…….
네로: ……너나 먹어라!
네로는 사정없이 돌려차기를 했다. 발길질을 당해 뱀이 입을 다문다. 네로는 머리부터 턱까지 포크로 찔러 넣었다. 피보라를 일으키며 세 개의 커트러리가 예의 바르게 네로의 곁으로 돌아온다. 빗자루 위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바질리스크를 내려다보며 네로는 두 손을 내려놓았다. 이제 승부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바질리스크가 절명의 고함을 질렀다. 무수한 날개를 흩날리면서.
샤일록: 훌륭합니다. 이제 브래들리의 저격이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네요.
네로: ……아아. 브래드, 준비는?
브래들리: 언제든지 갈 수 있어.
네로: ……리케, 시노. 기다려. 지금 금방 구해줄테니까.
미틸: ……우, 우윽……. 훌쩍…….
눈앞에서 어린 소녀가 나무로 돌아가는 것을 본 미틸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하지만, 울고 있는 것 만이 아니다. 강한 눈빛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쳐다보며 리케의 랜턴에 뭔가를 담그고 있다. 그의 옆에서 리케는 깍지를 낀 채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리케: ……그녀의 작은 영혼이 편안한 신의 낙원으로 인도되기를. 그리고 나와 미틸, 내친김에 브래들리가 하늘의 신을 대신해서…… 저 무서운 괴물에게 천벌을 내릴 수 있기를.
미틸: ……됐습니다. 제 별의 령을 리케의 랜턴에 담아 놓았어요.
리케: 고마워요, 미틸.
랜턴의 불빛은 아름답고 방사선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미궁의 숲에 부드럽게 핀 꽃잎 같았다. 부드러운 온기 꽃잎의 중심에서 리케와 미틸은 마주본다. 두 사람은 서로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손을 맞잡았다. 이들의 등 뒤에서는 무시무시한 거구로 날뛰는 마물과 두 소년의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리케: 부탁이 있어요. 이대로 손을 잡고 있어주세요.
미틸: ……랜턴을 미노타우로스의 머리 위에 올리는 동안?
리케: 네. 성공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어서……. 카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현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노나 히스클리프도 크게 다쳐서……. 제가 실패하면 누군가를 잃어버릴지도 몰라요……. 그게 너무 무서워서…….
리케의 얼굴이 약하게 일그러질 것 같다. 손을 잡은 채 손가락 끝으로 리케는 살며시 눈가를 문질렀다. 눈물을 건드렸는지 미틸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리케: ……네로나 오즈가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럴 때 없네요. 제발, 손을 잡고 있어 주세요. ……미틸, 이런 저의 나약함을 비웃을건가요?
미틸은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힘차게 손을 잡는다.
미틸: 웃지 않을거에요. 형님이 그랬어요. 마법은 마음으로 쓰는거라고. 제가 리케의 마음을 지탱하고 있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강하게 할거에요. 괜찮아요……. 반드시 성공할거예요! 리케는 훈련을 많이 해왔으니까요. 지금은 여기에 없어도…… 오즈 님이나 네로 씨에게 배운 것, 기억하고 있죠?
리케: ……네…….
눈물을 흘리면서 리케가 운다. 스스로를 타일르듯 울면서 미틸은 말을 계속 이어간다.
미틸: 저도 기억해요. 형님이나, 피가로 선생님이나, 레노씨가 가르쳐준 것……. 그러니까, 힘내죠! 분명 성공할거예요!
리케: 네……!
손을 맞잡으며 둘은 강한 눈망울로 일어섰다. 일어선 순간 리케의 랜턴이 빙글빙글 돈다. 조금 전까지 어두운 미궁이 축복의 회전목마로 변해 어린 두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 두 사람은 뛰어가 미노타우로스 앞에 섰다.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던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휘청거렸다. 진흙과 어둠과 피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시노는 미틸을 쳐다보며 웃었다.
시노: ……미틸의 약초, 잘 썼어.
미틸도 희미하게 웃었다. 히스클리프는 뺨의 피를 닦으며 지휘관처럼 두 사람에게 지시한다.
히스클리프: 나와 시노가 할 수 있는 한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을 막을게. 그동안 브래들리가 저격하기 쉽도록 랜턴을 강하게 빛내줘.
미틸: 알겠어요.
히스클리프: 브래들리가 명수라고 해도, 오발에 조심하고.
리케: 네.
히스클리프: ……좋아, 시작하자. 시노, 괜찮아?
시노: 당연하지. ……맡겨줘.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는 걱정스러운 듯 시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호흡을 한다.
히스클리프: 작전 개시.
시노: '맛차 스디파스!'
아직도 그런 힘이 남아 있는지 시노는 땅을 박차고 뛰어나깠다. 큰 낫을 쳐들며 높이 도약한다. 날카로운 낫의 은빛 빛은 달마저도 밤하늘에서 거둬들일 것 같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브러프 스노스!'
도약하는 시노의 그림자 아래 히스클리프는 두 손으로 마도구의 회중시계를 움켜쥐고 있었다. 상냥하고 섬세하며 겁이 많은 히스클리프에게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새기는 시계바늘처럼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여 수행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그 밖에 없으니까. 시노의 큰 낫에 베여 비틀거린 미노타우로스에 정원의 나무의 가지가 휘감겨 간다. 그리고 시노는 미노타우로스의 발을 베었다. 깊게 찢겨져 미노타우로스는 우렁차게 외치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뒤돌아서서 시노는 외쳤다.
시노: 지금이다……! 리케! 미틸!
리케: ……네! '산레티아 에디프!'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쳬!'
미틸과 손을 잡으며 리케가 랜턴을 공중으로 던진다. 랜턴이 위로 올라가면서 미노타우로스의 주위가 낮처럼 환해졌다. 미노타우로스의 머리 위까지 천천히 오르더니 랜턴은 더욱 눈부신 빛을 발한다. 어떤 어둠도 관통하는, 강한 금빛이 넘쳐흐른다.
미틸: 이것이 별의 령의 힘……?
리케: 대단해…….
무르: 보였다!
네로: 리케의 랜턴이다! 브래드!
브래들리: 좋아! 맡겨두라고! 바람도 없어……. 기다리게 했군. 중앙과 동서남북의 꼬맹이들. 내가 그 소 놈을 처리하지.
무르: 북쪽의 마법사는 없지 않아?
샤일록: 서쪽도 없는 것 같습니다만……. 잘 부탁드려요, 브래들리.
네로: 부탁해, 브래드. 아이들의 생사는 너에게 달렸어.
브래들리: 안심해. 맡겨두라고. 그럼, 간다. '아도노포테……' ……하…….
전원: ……!
브래들리: 엣취!
전원: ……!!
23화
무르: 사라졌다!
네로: 진심이냐?!
무르: 재채기 때문에 날아갔어!
샤일록: 왜, 왜 이런 때에…….
무르: 브래들리의 '거대한 재앙' 의 상처! 재채기를 하면 어디론가 날라가버려!
네로: 왜 하필 지금이야?! 어이, 어떡해?!
샤일록: 어떡하죠…….
무르: 대혼란! 대혼란!
네로: 어디 간거야, 브래드?!
리케: (……랜턴을 빛냈어요! 자, 언제든지 좋으니까요! 브래들리!)
미틸: (……적이 금방이라도 날뛸 것 같아! 어서 쏴주세요, 브래들리 씨……!)
리케: ……안 와…….
미틸: 브래들리 씨?!
히스클리프: ……이젠 안돼…….
시노: ……도망쳐! 둘 다!
미틸: 시노 씨!
시노: 내가 상대하고 있는 동안에 달려……! 너도다! 히스!
히스클리프: 싫어……!
시노: 제멋대로 굴지마! 겁쟁이인 주제에……!
히스클리프: 맞아, 겁쟁이야! 네가 죽는게 무섭다고!
히스클리프: ……구속이 풀렸다!
시노: 온다! 달려……!
리케 / 미틸: 네……!
아서와 오즈는 보검을 찾기 위해 보물 창고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달려드느 가시덤불에 가로막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윽, 하…….
오즈: 마력을 많이 소비했어. 점점 오감이 둔해질거다.
아서: ……괜찮습니다……. 보물고에 도착하지 않으면…….
오즈: ……한심하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내가, 이 정도로 무력하다니…….
아서: 그렇지 않아요! 검의 기술이 능숙해지셨습니다. 조금 전에도 도움을 받았고요.
오즈: 처음으로 물리 공격을 했다.
아서: 보물고까지 가는 길은 반드시 제가 돌파하고 말겠습니다. 가죠.
오즈: 기다려. 성에 가득 찬 적의는 아까보다 거세지고 있다.
아서: 보검을 손에 들고 돌아오겠다고 파우스트에게 말했습니다. 피가로 님도 어딘가에서 싸우고 계세요. 카인도…… 리케도…… 시노들도…….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즈: …….
진지한 표정의 아서를 오즈는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때, 다시 가시덩굴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앗……?!
피로로 마력을 잃기 시작했는지 쓰러질 뻔 했다. 아서의 팔을 가시나무가 휘감는다. 그를 구하려던 오즈도 검을 든 손목째 얽히고 말았다.
오즈: ……이런……!
아서: ……?! 오즈 님! 저걸 봐주세요!
오즈: ……?
아서: 오즈 님의 피를 건드렸어요! 그것 때문에 크게 부풀어 올라 다른 것들보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흉악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시덤불을 올려다보고 오즈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분한 듯이 고개를 숙인다.
오즈: ……좀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파우스트나 레녹스에게도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을…….
아서: 오즈님……?
오즈: 미안하다, 아서. 지금까지 이런 일을 시도하려고 한 적이 없었기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손을 뻗을 수 있겠나?
아서: ……네! 닿을 수 있을까요?
오즈: 충분하다.
오즈는 아서의 손목을 잡았다. 백합 문장이 새겨진 손등을 뒤집어서 손바닥에 손가락을 기며 손목에서 떨어지는 피로 마법진을 그린다.
아서: ……이건…….
오즈: 내 피를 매개로 너에게 마력을 줄 것이다.
아서: 오즈 님의 마력을…….
아주 조금의 공포와 호기심이 섞인 소년의 얼굴로 아서는 피의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마법진의 이상한 문양이 희미하게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오즈: 알겠나, 아서. 주문을 외우면 나는 잠에 빠질거야. 우리는 보물고까지 갈 필요가 없다. 보검을 네 손 안에 소환해라.
아서: 보검을 소환…….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미소 지으며, 오즈는 말했다.
오즈: 너라면 반드시 할 수 있다. 자신을 믿어라, 아서.
오즈: 영웅의 피를 잇는 아이여, 너는 운명에 맞서 북쪽의 눈보라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너의 길을 막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아서의 푸른 눈망울에 강한 의지가 솟아오른다.
아서: 알겠습니다.
오즈: '복스노크'
오즈가 주문을 외운다. 엄습하는 졸음을 물리치려고 가시덤불을 움켜쥐었지만, 이윽고 머리를 푹 떨어뜨리고 말았다. 대신 아서의 손바닥이 불길하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운 붉은 빛에 휩싸였다. 두둥실 바람이 일며 아서의 앞머리를 휘날린다. 그것은 금방폭풍우의 무시무시함이 되었다. 손바닥에 폭풍을 머금고, 아서는 주위를 조용히 둘러보았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을, 손끝을 두려워하듯 가시나무는 스스로 물러간다. 아서는 심호흡을 하며 소리쳤다.
아서: 보검 칼레트보로흐여! 와라! '파르녹턴 닉스지오!'
요란하게 바람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눈부신 빛이 아서의 몸을 감쌌다. 어디선가 드러난 순백의 빛이 사람의 그림자처럼 아서의 눈앞에 다가온다. 이윽고 순백의 빛은 한 자루의 칼이 되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빛의 검에 오즈의 마법진이 붉게 빛나는 손바닥을 내민다. 건국의 영웅, 초대 국왕 알렉 그랑벨이 대도하고 있던 전설의 보검.... 칼레트보로흐다.
아서: 성공이다! 가자, 보검 칼레트보로흐!
전우처럼 이름을 부르고, 아서는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잠든 오즈와 얽힌 가시덩굴을 절단하기 위해 보검을 내리친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일섬은 질풍처럼 성의 긴 복도를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갔다. 거룩하고, 강렬한 천둥처럼.
공기를 가르고 가시덤불이 회초리처럼 덮친다. 삐걱삐걱 벽에 균열이 생기고 바닥의 자갈이 흩어진다. 레녹스는 땅을 걷어찼다. 땀과 피가 뺨을 타고 흐르며 채찍처럼 휘어지는 가시나무를 찬다.
레녹스: ……윽
곧바로 달리기 시작해 다른 장소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검으로 난도질한다. 또, 금방 홱 물러난다. 평소에는 온화한 양치기인 그가 장신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움직임과 체술을 펼친다. 지금의 레녹스는 냉정한 투지를 품은 전사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피부가 찢겨도 비명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그의 뒤에는 마법에 집중한 파우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성의 벽 쪽을 향해, 레녹스를 등지는 형태로 파우스트는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었다. 새하얀 파우스트의 정장은 피 한 방울에도 더러워지지 않았다. 선혈과 땀에 찌든 레녹스의 거친 숨결이 닿은 거리에서도 파우스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게 두 사람의 신뢰의 형식이다. 서로의 역할을 알고 있다.
레녹스는 상체를 위로 젖히고 가시나무를 회피했다. 그의 손바닥에는 마도구인 낡은 열쇠가 있다. 설령 그의 등 뒤에 있는 자가 돌언덕이고, 덮쳐오는 가시덤불이 죄인을 태우는 불길이었다 하더라도, 레녹스는 지켜냈을 것이다. 몇천 년이 걸리더라도.
레녹스: 하아……. 하아…….
눈동자의 빛은 여전한 채 시간이 흐를스록 레녹스의 피로가 쌓여간다. 그제서야 파우스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파우스트: ……찾았다!
뒤돌아본 파우스트는 만신창이의 레녹스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달려가 몸을 지탱하려고 한다. 레녹스는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섰지만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고 동시에 가시덤불이 들이닥쳤다. 파우스트는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튕겨진 듯 가시나무가 뒷걸음질한다. 파우스트는 마법으로 안경을 집어들더니 레녹스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레녹스: ……하아, 윽……. 면목 없습…….
파우스트: 됐어. 가만히 있어.
레녹스: 현자님은…….
파우스트: 무사해. 구하러 갈거다. 그전에 너에게 치유마법을 걸지.
레녹스: ……윽……. 다른 부상자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우스트: 너도 부상자야.
레녹스: ……!? 이 소리는?!
파우스트: 적은 아니다. 오즈……? 아서……?
아서: 파우스트, 레녹스! 손에 넣었다!
파우스트: 아서, 오즈.
미스라: '아르시무'
레녹스: 공간의 문……?
오즈: 미스라……!
미스라: 시간이 없으니 어서! 재료를 준비해주세요!
파우스트: ……알았다!
피가로: 부상자는?
레녹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루틸: 레노씨! 괜찮아요?!
파우스트: 아서! 보검 칼레트보로흐를!
아서: 피가로님이 이쪽으로 오신다면 그쪽 전력이 줄어들 것이다. 나도 바다에 가지!
오즈: 아서?!
아서: 오즈님이 주신 힘이 있으니 괜찮아요! 피가로님, 카인을 부탁드립니다!
피가로: 아서, 기다려! 아아, 얼굴 좀 보여줘. 이쪽으로. 너도 부디 무사하기를.
아서: ……네! 피가로 님도, 부디 무사하시길!
미스라: 서로 껴안고 있을 시간 없는데요?!
피가로: 오즈가 잘 못하는걸 해준 것 뿐이야! 좋아, 루틸. 가자!
루틸: 네!
미스라: 그럼, 갑니다!
아서: 아아, 다녀오겠습니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즈: …….
레녹스: 공간의 문이 닫혔다……. 오즈 님, 아서 님이라면 틀림없이 괜찮을겁니다.
오즈: 너는 만신창이군…….
파우스트: 피가로, 기다려!
피가로: 뭐야? 너도 포옹이 필요해?
파우스트: 죽인다. 현자가 있는 곳을 찾았어. 지금부터 갈거야.
피가로: 과연 대단해. 같이 가고 싶지만, 급한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싸우는 법은 알아?
파우스트: 너한테 많이 배웠으니까.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너에게 부탁하고 싶어. 안뜰에 있을거야.
피가로: 알았어. 카인 다음에 반드시 구하러 갈게. 너도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힘내. 레노, 입 좀 벌려봐.
레녹스: 아…….
피가로: 피가로 선생님의 슈가야. 오즈와 파우스트를 부탁해.
레녹스: 알겠습니다. 조심하시길.
리케와 미틸은 무서운 미노타우로스의 표효에 쫓기고 있었다.
리케 / 미틸: 우와아아아아앗…….
시노: 네 상대는 나야! ……윽……. 컥…….
히스클리프: 시노……!
리케와 미틸을 감싸고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미노타우로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 모습에 리케는 망설이며 발을 디뎠다.
리케: ……도망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싸우지 않으면……!
미틸: ……저, 저도……!
리케: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처럼 하나 둘 셋으로 호흡을 맞춰 공격하죠!
미틸: 네! 하나, 둘…….
리케: '산레티아 에디프!'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체!'
두 사람이 동시에 주문을 외운다. 작은 회오리바람과 탁탁 튀는 정전기가 미노타우로스의 어깨에 부딪혔다. 감정이 없는 무서운 눈으로 미노타우로스는 천천히 두 사람을 돌아본다. 그리고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도끼를 휘두르며 소년들에게로 맹렬히 달려간다.
미틸: ……! 이쪽으로 온다……!
리케: ……도망가죠! 아……!
미틸: 리케, 괜찮아요?!
리케: 괜찮아요! 넘어졌을 뿐……. 아얏……!
미틸: 발목이 부었어…….
24화
리케: 미틸! 미틸만이라도 도망쳐……!
미틸: 리케를 두고 갈 수는 없어요! ……오, 온다…….
도끼를 휘두른 미노타우로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겁에 질린 미틸과 리케의 몸을 덮는다. 미틸은 순간 리케를 덮었다. 부릅뜬 리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쥐어짜듯 미틸이 외쳤다.
미틸: 어머니, 도와줘요……!
미틸의 목소리에 응한 것은 천국에 있는 그의 다정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북쪽의 마법사 브래들리였다.
브래들리:'아도노포텐스무!'
미틸: ……!
미궁의 정원 안쪽에서 장총을 겨누고 브래들리는 미노타우로스를 저격했다. 머리를 관총당한 미노타우로스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미틸: 브래들리 씨!
리케: 브래들리!
안도와 환희를 떠올리는 소년들에게 브래들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브래들리: 미안미안! 늦었네! 재채기로 날라가버려서 재채기를 다시 연발해 여기까지 왔다고. 우연히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경쾌하게 계속 떠들다가 브래들리는 정신이 든 듯했다. 소년들의 젖은 눈동자나 부은 발목이나 벗겨진 빨간 팔꿈치에 잔잔하게 눈을 가늘게 뜬다.
브래들리: 너희들, 남자다운 얼굴이잖아. 열심히 했네.
브래들리의 칭찬에 리케와 미틸은 동시에 울상을 지었다.
리케 / 미틸: ……열심히 했어요!
브래들리: 안심하는건 아직 일러.
그 말을 듣고 미틸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저격당한 미노타우로스가 천천히 큰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불사신을 연상시키는 강인함에 미틸은 파랗게 질렸다.
미틸: ……총알이 머리에 맞았는데……!
브래들리: ……끈질긴 놈 같으니라고. 뒷일은 내게 맡겨.
그 때 수풀 저쪽에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시노와 히스클리프다. 둘 다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흠뻑 피에 젖어 있었다.
시노: ……브, 브래들리…….
브래들리: 동쪽의 꼬마. 네놈이 제일 심한 꼴이야. 물러서있어.
시노: 하아……. 윽…….
시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 피로와 원통함이 서려있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상대로 사투를 벌인 것은 시노다. 시노의 손으로 끝내고 싶었을 것이고 평소의 시노였다면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시노는 지쳐 있다. 그런 시노를 히스클리프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브래들리, 잠깐.
브래들리: 뭐야, 도련님.
히스클리프: 잠깐 그 녀석을 처리하는 것을 미뤄줘.
브래들리: 어려운 주문이구만.
히스클리프: ……1분만……. 30초만이라도.
브래들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히스클리프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시노의 눈앞에 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노는 히스클리프는 말없이 올려다본다.
히스클리프: 시노. 파우스트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시노: ……파우스트?
히스클리프: 내가 어중간해서, 제대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건 아닌지…….
시노: …….
브래들리: 5초 전! 이쪽으로 오고 있다!
히스클리프: 시노, 히스클리프 블랑셰의 이름으로 명한다.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가져와.
시노: …….
그 순간, 시노의 눈동자가 빛났다. 강한 바람이 불고, 잿빛 구름이 걷히고, 푸른 밤하늘이 들여다보인다. 달빛 아래에서 시노는 웃었다.
시노: ……분부대로!
히스클리프도 어색하게 웃었다. 시노는 아픔을 잊은 것 처럼 달려나갔다.
시노: 브래들리! 비켜! 저 놈은 내가 처리한다!
브래들리: 눈에 생기가 돌았군. 저 녀석은 북쪽의 마법사들도 애먹는 마수라고. 너가 할 수 있겠냐?
시노: 할거야……. 해보이겠어!
브래들리: 아하하! 좋아. 공을 세우고 와. 엄호해주지.
시노: 도망가지 말라고.
브래들리: 너야말로 실수하지 마. 내가 처리해버리기 전에. '아도노포텐슴!'
리케: 미노타우로스의 발에 맞았다……!
미틸: 무릎을 꿇고 있어……!
브래들리: 낫이 닿기 쉬워졌지, 동쪽의 꼬마.
시노: 꼬마 취급하지 마……!
큰 낫을 쳐들고, 시노가 뛴다. 그 등을 미는듯이 히스클리프가 소리쳤다.
히스클리프: 가라! 달려, 시노!
미틸: 시노 씨, 힘내……!
리케: 힘내세요!
시노: ……이걸로 끝이다! 소 자식……!
시노: '맛차 스디파스!'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에 시노의 큰 낫이 크게 일섬한다. 굵은 소의 목이 몸통에서 떨어져나와 높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히스클리프: ……해치웠다……!
리케 / 미틸: 해냈어……!
브래들리: 하하하! 기세좋게 목을 날려버렸네!
히스클리프: 해냈어! 시노……! 대단해!
시노: ……윽, 하……. 좀 더 칭찬해!
히스클리프: 대단해, 대단해!
시노: 흐흥!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루틸: ……가시덤불이 계속해서 덮쳐오네요.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무사할까요……?
피가로: 잠들어 있나 보네. 그랑벨 성을 가시너무의 저주에서 풀게 하면 깨어날거야.
루틸: 저주가 풀리지 않는다면……?
피가로: 저주받은 유령성의 제물이 되어,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한 채 차원을 헤매게 돼. 하지만 걱정 하지 마. 마물들을 쓰러뜨리고 의식을 치른 주범을 찾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눈을 뜨게 될거야.
피가로: ……!
루틸: 왜 그러세요,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루틸, 물러서. 이 벽 너머로 강한 마력과 살기가 느껴져.
루틸: 새로운 마물인가요?!
피가로: 아니…… 뭔가 익숙한…… 것 같은……. 잠깐, 잠깐! 오웬!
오웬: '쿠레 메미니'
피가로: '폿시데오!'
오웬: ……피가로…….
피가로: 위험하네. 하마터면 우리끼리 싸울 뻔 했어.
루틸: 클로에! 라스티카 씨!
클로에: 루틸! 무사해서 다행이다!
루틸: 카인 씨는……!
라스티카: 여기있어.
카인: ……윽.
피가로: 의식은?
클로에: 있었다가 없었다가 해. 라스티카가 말한대로 계속 말을 걸고 있지만…….
피가로: 고마워, 중요한 일을 해줬네. 카인, 카인. 들려?
카인: …….
오웬: 야! 죽어가고 있는데 억지로 말하게 하지 마. 하하…… 알겠네. 환자를 보며 즐기고 있는거지. 죽어가는 벌레를 쿡쿡 찌르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의사라니,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너야말로 무서운 북쪽의…….
피가로: 오웬, 조용히 해. 한쪽 눈만 남겨두고 멀리 던져버릴거야. 아, 이건 심하네. 큰 짐승에게 물린 것 같은데 어떤 마물에게 당했어?
카인: ……케……. 케르베로스…….
피가로: …….
오웬: 이쪽 보지 마.
카인: ……오웬은 나쁘지 않아. 내가…….
오웬: 하……?
카인: …….
오웬: 내가 나쁜게 당연하잖아!
카인: …….
피가로: 카인, 카인. 의식을 잃으면 안돼. 모두들, 카인의 이름을 불러줘.
클로에: 카인!
루틸: 카인 씨, 정신 차리세요!
라스티카: 카인, 괜찮아.
오웬: …….
피가로: 괜찮아. 넌 꼭 내가 살릴게. '폿시데오'
바닷바람은 거세지고 있었다. 앞머리를 휘날리며 아서는 입을 쩍 벌렸다.
아서: ……! 저게 리바이어던……. 엄청 크다……!
미스라: 루틸이랑 똑같은 반응 하지 말아주세요.
스노우: 아서여, 우리가 지도하지. 보인의 마법진을 보검으로 바다에 그리는게야.
화이트: 미스라는 마법진이 그려질 때까지 바닷속으로 향하면 된다.
스노우: 아서가 마법진으로 리바이어던을 바다에 묶어 놓으면 미스라가 죽인다.
화이트: 둘 다, 괜찮은가?
아서: 알겠습니다!
미스라: 해보죠 뭐.
스노우 / 화이트: 호호호! 작전개시일세!
아서: 미스라, 잘 부탁해!
미스라: 뭐에요, 그 손. 아까부터 오즈의 냄새가 나는데.
아서: 오즈님에게 마력을 받았어. 이건 하이파이브야.
미스라: 하아.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아서와 미스라는 빗자루를 타고 수평선과 평행하게 날았다.
미스라: '아르시무'
미스라에 공격에 도발당해 빌딩보다 더 거대한 리바이어던의 몸이 그의 뒤를 따라간다, 고속으로 달리는 거대선 같은 묵직한 박력이 있었다. 하지만 미스라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유유히 바다 위를 날아간다. 입을 크게 벌린 리바이어던이 물려는 순간 미스라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리바이어던에게 쫓기며 빠르게 바닷속을 헤엄쳐 나간다.
거리를 좁혀가는 리바이어던을 재주 좋게 따돌리면서 미스라는 마도구가 있는 허리를 내밀었다. 마도구를 만진 상태에서 공격을 반복하면서 리바이어던을 상처입히지 않도록 조절한다. 바다 밑에서 수면을 올려다본 미스라는 아서가 보검으로 그리는 마법진의 거품을 보고 있었다.
스노우: 빨간 명주실은 수면에서 태웠나?
아서: 네!
화이트: 코망딩오일을 보검 칼레토보르흐 위에 한 방울 떨어뜨렸나?
아서: 네!
스노우: 좋아. 그러면 봉인식을 시작하는걸세!
화이트: 그대가 그린 마법진에 미스라가 리바이어던을 유도할걸세.
아서: 알겠습니다. '파르녹턴 닉스지오!'
한 손에 마도서를, 한 손에는 보검을 들면서 아서는 주문을 외웠다. 수면을 베듯이 보검이 마법진을 그려나간다. 파도 위를 춤추듯 움직이며 아서는 마법진을 그려간다. 마지막 원을 묶자 바다에 그린 마법진에서 해저 화산이 폭발한 것 같은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아서를 중심으로 한 원기둥 모양으로, 높은 파도가 밤하늘로 치솟아 올라간다. 아직 소년다움을 남긴 아서의 맑고 푸른 눈동자가 왕자의 위엄을 머금고 빛낸다.
아서: 미스라, 부탁해!
달빛과 물보라를 맞으며 쌍둥이는 똑같은 얼굴로 가만히 해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씨익, 하면서 스노우와 화이트가 동시에 웃는다. 마법진을 향해 헤엄치는 미스라르 아무것도 모르고 맹렬히 뒤쫓는 리바이어던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노우 / 화이트: 걸려들었구먼!
미스라가 바다 위로 뛰어오른다. 뒤쫓아 리바이어던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서:'파르녹턴 닉스지오!'
마법진이 강하게 빛난다.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민 리바이어던의 거구는 빛의 마법진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밤하늘에 날아오른 미스라가 빗자루 위에 서서 날뛰는 리바이어던을 내려다본다.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미스라는 나른한 듯 몸을 내던졌다.
미스라: '아르시무'
그 순간, 얼어붙는 바람이 불어닥쳤다. 호탕하게 얼어붙은 폭풍은 해면도, 밤의 공기도, 파도도 사정없이 하얗게 얼려간다. 불사의 악마 같던 리바이어던도 금세 하얗게 얼어간다. 마법진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다른 물밭으로 옮겨 도망칠 수 있었겠지.
아서: 대단해…….
입김을 하얗게 흐리며 미스라의 압도적인 마력에 아서는 순수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가장 강한 마법사는 그다. 한밤중의 지배자라고 하기에는 졸린 듯한 눈으로 미스라는 눈을 깜빡였다.
미스라: 끝났어요.
파칭, 하고 미스라가 손가락을 울린다. 말할 사이도 없이 리바이어던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후드득 해면에 쏟아진다. 아서는 그림을 집어들어 피했다.
아서: 해냈구나, 미스라!
스노우: 아파, 아파!
화이트: 이봐, 아서! 우릴 우산으로 삼는거 아냐!
아서: 죄, 죄송합니다!
아서는 황급히 그림을 내린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미스라도 웃었다. 마치 소년처럼.
미스라: 아하하!
25화
파우스트: 이쪽이다, 레녹스. 현자가 있는 곳으로 향할거야.
레녹스: 현자님은 이 성의 어디에 계셨던건가요?
파우스트: 인형술사의 결계 속이다. 지금부터 억지로 공간을 연결해 침입한다.
레녹스: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현자가 있으면 오즈도 마법을 쓸 수 있어.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지만 오즈와 현자의 접촉을 우선시하지.
오즈: 알았다.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오비시우스: ……마물들이……. 어떻게 된 일이지……. 나의 오랜 비원이 엉망으로!
실크 햇을 집어던지고 오비시우스는 마구 머리를 쥐어뜯었다. 절망과 분노를 머금은 채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오비시우스는 혼잣말처럼 빠른 어조로 말했다.
오비시우스: 그러니까 말했잖아! 오즈나 북쪽의 쌍둥이를 적으로 돌리지 말았어야지! 나는 탈리아를 만나고 싶었던 것 뿐이야! 마물들을 모이게 하고 가시성을 소환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을텐데! 그분이 오력국 평화회의 기간중의 그랑벨성으로 하라고 하니까……!
(그 분……?)
그 때 이상한 공간에 본 적이 있는 거울이 떠올랐다. 파우스트의 마도구다.
오비시우스: ……! '볼로 하벨레!'
꼭두각시를 안은채 오비시우스가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맥없이 일그러지고 거울이 작아진다. 하지만 곧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뿌리내리기를 하듯이, 확대와 축소를 반복해가는 동안에 거울은 점점 크고, 점점 눈부시게 빛났다. 아주 세게, 거울이 빛났다. 그 때.... 내 눈 앞에 오즈, 파우스트, 그리고 레녹스의 모습이 있었다.
파우스트: ……현자……!
……!
파우스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비시우스의 마법으로 봉해진 탓이다.
파우스트: 마법으로 목소리를 뺏긴건가. ……네놈…….
나의 상태를 알아보고 파우스트가 오비시우스를 노려본다. 평소의 나른한 그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도자의 예민함과 박력이 있었다. 그 때, 오비시우스가 내 목덜미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대로 꼼짝 못하게 된다.
레녹스: 현자님!
오비시우스: 저리 비켜! 너희들의 현자를 죽이겠다!
오즈: 해보는게 좋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오즈가 지팡이를 든다. 오즈를 아는지 오비시우스의 온몸에 긴장이 감돈다. 허세를 부리는 듯 그는 웃음을 떠뜨렸다.
오비시우스: 오즈따위 무서워할 것 같냐! 새벽까지 마법을 쓰지 못하잖아!
파우스트: ……어디서 들은거냐. 마법사의 약점이 되는 정보는 극비사항일 터.
오비시우스: 내 계획의 지원자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어. 세 마물을 모아 차원을 방득하는 환상의 성을 소환해도 이 성의 저주는 풀리지 않은 채, 탈리아는 만나지도 못했다...
꾸물꾸물 목구멍 깊은 곳에서 웃으면서 오비시우스는 오른손에 검은 불꽃을 켰다. 내 얼굴 앞에서 섬뜩한 불꽃이 일렁거린다.
오비시우스: 이제 어떻게 되어도 좋아……. 이 세계는 언제나 그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사납다고. 이대로 저주받은 성과 함께 차원의 저편으로 끌려들어가 영원히 방황해버릴까…….
……!
오비시우스: 현자도, 마왕도, 잠자는 인간들도 전원 동행이다……! 철학자 무르의 조각이라던가, 왕자도, 국왕도, 아무래도 좋아! 탈리아도…… 그녀와 보낸 날들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특별하지도 않았고, 훌륭하지도 않아! 시시하고 쓸데없는 시간이었어! 그런 것에 난 인생을 소비해버린거야!
비명 같은 오비시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간 슬픈 듯한 기색이 전해져 왔다. 오비시우스로부터도, 오즈나 파우스트로부터도 아니다. 이 공간……. 으스스하고 무서운 가시덤불의 성에서.
(……탈리아?)
구두소리가 울려 퍼뜩 얼굴을 든다. 오즈가 한발 내디뎠다. 마도구의 지팡이를 짚고, 입을 다문 채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 다가온다. 털을 곤두세운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며 오비시우스는 위협했다.
오비시우스: 오즈! 마도구를 휘둘러도 소용없어! 마법을 쓸 수 없는 건 알고 있다!
오즈: 너가 말한 대로다. 난 밤에는 마법을 쓸 수 없어.
오즈: 하지만…… 물리 공격을 배웠다.
오비시우스: 뭐? ……악!
오즈는 지팡이로 오비시우스를 후려갈겼다.
파우스트 / 레녹스: 에?!
마왕으로 불리던 대마법사가 설마 저런 식으로 덤벼들 줄은 몰랐던거겠지. 피하지도 못하고 오비시우스는 비틀거렸다. 그 틈에 나는 오즈의 곁으로 달려간다. 이 세상에서 현자라고 불리는 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한가지만 알고 있는 것은…… '거대한 재앙'의 상처로, 밤에는 마법을 쓸 수 없는 오즈가 나를 건드리면 마법을 쓸 수 있는 것. 세계 최강의 힘을 풀 수 있다.
오즈: '복스노크'
그가 주문을 외우자 내 목구멍에서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오즈…….
오즈: 기다리게 했구나, 현자.
오비시우스: ……네놈! '볼로 하벨레!'
내 등에서 오비시우스의 주문이 울린다. 꼭두각시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불꽃이 나를 덮친다. 그 순간 불길 앞으로 파우스트와 레녹스가 튀어나왔다.
파우스트: 손대게 할까 보냐.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파우스트와 레녹스의 마법이 오비시우스의 검은 불꽃을 막아냈다. 두 사람의 눈앞에서 불꽃이 사라진다. 오즈는 나를 한 팔로 끌어당겨 다른 팔로는 지팡이를 잡았다. 오비시우스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는 무언가가 생각난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오즈: 마법사가 죽는 광경을 본 적이 있나?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알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정직하게 대답한다.
아니요…….
오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확하고 내 머리를 누르고, 아래를 향하게 한다.
오즈: '복스노크'
오즈가 주문을 외우자 사뿐하게 바람이 불어 머리가 휘날렸다. 직후 푸른 섬광이 번쩍이며 귀를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쏟아진다.
……!
이어서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쨍그랑, 규열이 생겨 쨍그랑, 하고 갈라지는 깨끗한 소리. 그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으로 알고 있었다. 마법사는 죽으면 돌이 된다. 마나석이라고 불리는, 값비싸고 아름다운 결정체로. 오즈의 손이 떨어져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비시우스는 이미 없었다. 대신 무수한 마나석이 널려있었고 나는 눈을 감았다.
레녹스: 현자님……!
긴장이 풀린 탓인지 레녹스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의식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짧은 꿈을 꾸었다. 꿈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이었는지도 몰라. 먼, 먼 옛날의…….
무르: 네 이야기를 들려줘, 탈리아.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몹시 흥미로워.
탈리아: ……난 너의 실험체가 아니야!
무르: 실례. 훌륭한 물건을 앞에 두고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어서요.
탈리아: 훌륭해? 내가? 거짓말이야!
무르: 거짓말이 아니야.
탈리아: ……무엇을 꾸미고 있는거야? 나를 동정하고 있는거야? 나중에 친구한테 이야기하면서 껄껄 웃게?
무르: 너는 특별하지 않아서 우스갯소리가 되지 않아. 친구도 껄껄 웃는 타입이 못 돼.
탈리아: 그럼 뭐야?! 유명한 천재학사 무르 님이 내 어디를 보고 훌륭하다고 하는건데?!
무르: 다가오는 자를 가시나무로 때리는 저주받은 마녀로, 버르장머리 없고 폭력적인 혐오자 같은 부분.
탈리아: ……우우……. 흑……. 훌쩍……! 으아아아아앙…….
무르: …….
탈리아: ……역시 놀리고 있어……! 너무해……! 으아앙…….
무르: ……감성적인 부분은 솔직히 귀찮아서 물러날게. 손수건 받으세요.
탈리아: 이쪽도 지긋지긋해! 오비시우스가 말했어. 이 세상은 시시하다고! 이 세상은 선택받은 사람의 것이라 혐오받고 있는 사람은 혐오받고 있는 사람끼리 있으면 된대! 인기쟁이 학자 선생님은 인기 있는 사람 중 누군가와 어디로 가면 되는 거라고!
무르: 너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도?
탈리아: 자꾸 거짓말 하지마. 오랜 친구인 오비시우스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걸. 나한테 질문 하나 안해. 내가 재미없는 마녀라서 그래.
무르: 네가 무서워할거라고 생각하고 있는거야. 혹시 관심 받아서 두려워하지 않을까 하고.
탈리아: ……확실히, 조금 무서워. 무엇을 물을지 불안하고, 이상한 대답으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무르: 봐. 아까 히스테리 부린 것도 똑같아.
탈리아: ……내가 무서워할 것을 알면서 무르는 왜 질문을 하는거야?
무르: 난 내 흥미가 더 중요하거든.
탈리아: …….
무르: 네 친구는 상냥하구나. 그런데 두 개 틀렸어. 이 세계는 아름답고 훌륭해. 그리고 너는 사랑받고 있어.
탈리아: ……누구에게?
무르: 이 세상에게.
탈리아: ……신사적으로 대해줄래? 그러면 질문에 대답할게.
무르: 물론. 내가 잘하는 일이야.
탈리아: 그러면…… 내 얘기를 할게.
무르: 기대되네.
탈리아: ……하지만, 지루할지도. 나, 별로 특별하지도 않아. 멋진 일도 별로 없었고.
무르: 탈리아. 네 이야기를 들려줘.
탈리아: ……저기, 무르. 나 말이야……. 달 위에 서는 고성이 되고 싶어. 가시나무가 어울리는 조용한 성이.
탈리아: 오비시우스는 마법사도 사람도 싫어하고 인형극에만 흥미가 있지만…… 보름달과 이 성과 장미꽃 향기를 좋아하니까. 영원히 그가 만나러 와 주는 가시나무 성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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