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돌이 된 후에도
은빛 구름이 태양을 가린다. 눈앞에서 냉소하는 오웬의 얼굴에 그림자가 비쳤다. 그의 등 뒤에서는 털을 곤두세운 짐승처럼 수목의 가지 잎이 사르르 흔들린다. 소용돌이치며 꽃잎이 흩날렸다. 설탕과자 같은 목소리로 오웬이 속삭인다.
오웬: 자, 기사님. 골라봐. 나를 위해 침묵을 지키거나, 동료를 위해 내 약점을 퍼뜨리거나. 헤맬 필요는 없잖아. 답은 정해져 있을 거야. 착한 척은 그만두고…… 싫어하는 녀석까지는 구할 수 없다고 인정해버려.
오웬: 아무도 기사님을 탓하지 않아. 누구라도 너처럼 할 거야. 저기, 기사님…….
몸을 내밀며 오웬이 속삭였다. 한숨이 귓볼을 간지럽힌다. 거울로 보는 자신의 눈동자와 같은 색을 한 오웬의 눈동자가 일그러진다. 헤맬 필요 없어. 오웬의 말이 맞아. 나는 동료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카인: ……나는 선택하지 않아.
오웬: ……하?
카인: 너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 않아.
오웬: 어째서.
카인: 너를 기쁘게 할 것 같으니까.
오웬은 얼굴을 찡그리며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오해를 낳은 것 같아 나는 말을 덧붙였다.
카인: 착각하지 말아줘. 너를 기쁘게 하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야. 내가 너를 쳐내버리면 네가 엄청 좋아할 것 같았어. 그런 의미로 기쁘게 하고 싶지 않아.
오웬: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최악이야. 내가 너에게 허락을 해주겠다고 해도? 너 같은 약한 녀석이 내 의지를 마음대로 바꿔서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카인: 성심성의껏 말하자면…….
오웬: 시시해. 성의 같은 건 내 개 앞에서는 먹이도 안 된다고.
오웬은 벌떡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뾰족한 구두 끝이 내 코끝에 있다.
오웬: 즉, 기사님은 성실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동료들의 목숨을 버리는 거구나? 나를 설득하는 동안 '거대한 재앙' 의 상처의 내가 리케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씁쓸하다. 술렁이는 방황이 퍼져 자신을 몰아세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오웬을 배신하고 그의 상처를 퍼뜨려도 분명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뭐라고 할까, 성가시다. 어느 쪽이든 나는 실패하고 후회하고,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그것이 심술궂은 오웬이 노리는 것인가. 이대로는 안 돼.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웬의 발목을 잡았다.
카인: 저기, 오웬.
오웬: 하? 뭐하는 거야?
카인: 뭐하냐니, 뭐가?
오웬: 발목을 잡고 있잖아. 죽고 싶어?
카인: 항상 갑자기 사라지니까 그렇지.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오웬: 발목을 잡혀도 사라질 수 있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어. 너 같은 건 벌레랑 동급이야.
카인: 알았어 알았어. 손을 놓을테니 사라지지 말아줘!
일일이 시끄럽네,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두 손을 들어 오웬에게 말했다.
카인: 아까 안다고 했잖아? 내가 너를 배신하면 너는 기뻐할 거라고. 그걸 하기 싫다고.
오웬: 그래서?
카인: 어째서 배신을 당하면 기뻐하는 거야?
오웬은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 좋게 손을 흔들며 나를 깔보고 있다.
오웬: 못생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기사님이 이 세계에 실망할 테니까.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머리를 싸매고 초조해하면서 너를 정의로운 심부름꾼으로 만들어주지 않은 세계를 원망할 테니까. 그런 기사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화가가 그리게 해서 성당에 장식해도 돼. 영웅회화보다 구경꾼이 더 많이 올 걸.
카인: (취미 나쁘네…….)
오웬: 어때? 최고 아니야? 네가 돌이 된 후에도 카인 나이트레이의 이름은 비겁자기 대명사로 구전되는 거야.
킬킬 웃는 오웬은 섬뜩하고 음침하고 흉악해보이면서 정말 즐거워 보였다. 굉장히 음흉한 발상이다……. 만약 오웬이 내 부하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2화 처음부터 이렇게
저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자고. 어두운 생각은 그만해. 북쪽 마법사 상대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여러 번 실패해 왔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칼집을 바꾸기로 했다.
카인: 너는 북쪽의 마법사야. 북쪽 마법사에게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아.
오웬: 물론.
카인: 그런데 왜 내가 약점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거지? 나를 비겁자로 만드는 것이 너에게 지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가? 그건 북쪽 마법사답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오웬: …….
오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턱을 깊게 당기고 나를 노려본다. 그 눈동자는 마을을 붙태운 소년 같은 피해자적 증오로 갇그 차있었다.
오웬: ……싫은 녀석.
카인: 왜 싫은 녀석인지 모르겠어. 내가 생각하는 싫은 것과는 달라. 그래도 그냥 서로 이해하자.
오웬: 내 기분에 따라 너는…….
카인: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몇 번이나 들었어. 가끔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
오웬: 그…….
카인: 너도 슬슬 질리지? 나도 그래. 죽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몇 번이나 말했으니 서로 알고 있을 거야. 이 대화는 이제 그만 하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으로 하자. 그리고 절약한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해서 대화를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래?
카인: 자, 내려와.
손짓 발짓으로 설득하면서 마지막으로 오웬의 구두 끝을 살짝 아래로 밀었다. 한 치의 내기였지만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오웬은 이윽고 얌전히 아래로 내려왔다. 마도구 가방을 내밀고 거기에 걸터앉는다.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오웬: ……말해두지만, 너를 따른게 아니니까.
카인: 알아 알아.
오웬: 대화를 앞으로 진행한다고?
오웬은 힐끗 이쪽을 살펴봤다. 지긋지긋한 분위기 속에서 유달리 흥미의 빛을 느낀다. 아이의 인격이 아니더라도 이 녀석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말을 이어갔다.
카인: 오웬.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망설어져. 리케나 미틸이 어린 너와 싸우다가 케르베로스에게 잡아먹히는 건 곤란해. 하지만 너의 약점이 알려져서 만약 미스라나 브래들리에게 심하게 당한다면…… 그것도 곤란해. 곤란하다고나 할까, 답답해. 무슨 좋은 방법이 없는지 같이 찾고 싶어.
오웬: 어째서.
카인: 에?
오웬: 어째서 싫은 거야. 너는 나를 죽이고 눈알을 되찾아야 하잖아. 내가 당해서 약해지면 편해지잖아.
카인: 그건 아니야. 나는 내 힘으로 되찾고 싶어.
오웬: 흐응……?
카인: 모르려나……. 뭐라고 해야 할까. 너는 위험하고 무섭지만 그러다고 손해를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그런 건 마법사가 기사가 될 수 없다는 규칙과 똑같잖아?
오웬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의 나는 오웬에 대해 일방적이고 무례했다. 리케의 몸을 걱정한 나머지 '거대한 재앙' 의 상처를 모두에게 말하자고 말해버렸다. 그런 건 오웬만 손해야. 그가 불쾌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 했었더라면…… 오웬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들어줬을 수도 있다.
고요한 바람이 오웬의 앞머리를 흔든다. 잠시 침묵한 뒤 오웬은 말했다.
오웬: 저기, 기억이 없는 동안의 나는 왜 너를 죽일 뻔한 거야?
카인: 에?
오웬: 전에 시노가 말했잖아. 나에게 안약을 줬다고. 그런 거 가만히 하게 냅둘 리가 없어. 그래서 기억이 없는 동안의 나는 꽤 얌전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죽일 뻔했다고 했잖아. 어째서?
카인: ……그건…….
3화 주문을 읽어서
오웬: 말 해.
카인: 내가 작은 너를 화나게 했어. 두고 가려고 했더니, 죽으라면서.
오웬: ……기사님은 기억이 없는 동안의 나를 작은 오웬이라고 하지.
카인: 어린아이 같으니까.
오웬: 어린 아이를, 너는 두고 가는 거야? 기사단장이었던 남자가?
카인: 그건…….
오웬은 얼굴을 찡그리며 마음껏 나에게 모멸을 보냈다. 나는 이상하게 초조해져서 변명했다. 평소에는 히죽히죽 비웃고 경멸하려고 했던 주제에……. 진심으로 낙담했을 때는 실망을 나타내다니.
카인: 변명하게 해 줘. 나에게 있어서 너는 북쪽의 마법사 오웬이었어.
오웬: 누구에게나 그렇지.
카인: 앳된 언행을 한다고 해도 엄청난 힘의 소유자라는 걸 알아. 그래서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지금은 아니야. 인식을 고쳤어. 너를 두고 아무데도 가지 않아.
오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숨을 내쉬듯 쓴웃음을 짓는다. 그 표정은 너무 좋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뺏기고 숨도 못 쉴 정도로. 마치 친구 같은 얼굴이었다.
오웬: 과연. 그래서 두고 가지 않겠다고 한 거구나. 그러면 리케나 미틸이나 클로에한테는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내가 어린애 같을 때는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미스라들은 모를 거야.
오웬: 듣고 있어? 기사님.
카인: 에? 아, 뭐였지?
오웬: 너 말이야…….
카인: 미안 미안. 듣고 있었어.
오웬은 어깨를 움츠리고 트렁크 위에서 책상다리를 했다.
오웬: 기사님이 얼른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어린 나에게서 작은 녀석들 정도는 지켜줘.
카인: 알고 있어. 날마다 단련을 쌓고 있지만…….
자신의 앞머리를 잡으면서 오웬은 재미없다는 듯 다리를 흔들었다.
오웬: 주문이 안 좋아.
카인: 주문? 내 마법 주문을 말하는 거야?
오웬: 맞아. 나쁜 건 아니지만 말이 너무 커.
말이 너무 커?
오웬: 그러니까, 아직 너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없어. 뭐, 기사님답고 좋긴 하지만.
카인: 잠깐……. 잠깐 기다려줘, 오웬. 좀 더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래?
나는 황급히 부탁했다. 어쩌면 내 성장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 오웬은 불쾌하다는 듯이 입을 구부렸다. 한 말을 후회하듯 불쑥 외면한다.
오웬: 싫어. 오즈한테 물어봐.
카인: 당연히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오즈는 하고 싶은 말을 가끔 못하는 경우가 있어. 오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모르겠다는 표정이 돼. 아서와는 만난지 오래돼서 서로는 통한 것 같은데…… 나와 리케는 가끔 놓쳐버려.
오웬: 너희들은 우리를 몰라. 왕자님은 우리를 조금 알긴 하겠지만. 기질이 가깝겠지.
카인: 기질?
오웬은 빙그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웬: 기사님이 오즈의 말을 모르듯이 나도 가끔 기사님의 말을 몰라. 그러니까 오즈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돼. 말은 잘 써야 전달이 되고 영향을 줄 수 있어. 정령들도 마찬가지.
카인: 정령?
오웬: 뭘 향해 주문을 외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말로 움직이는 건 정령이야.
희미하게 부는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큰 잎을 타고 가는 투명한 이슬, 물을 머금고 부드러워 보이는 흙 냄새, 거목의 줄기를 비추는 햇빛……. 정령들의 시선을 느낀 듯 무의식적으로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오웬: 너의 주문은 너의 마력과 나이치고는 말이 세. 기사님답고 좋긴 하지만.
카인: 말이 강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
오웬: 사람이랑 똑같아. 웃겨.
카인: 우, 웃겨? 정령들이 나를 웃고있다는 거야?
오웬: 나쁜 뜻은 아니야. 흐뭇하다고 생각되는 느낌?
카인: 기다려줘. 잠깐……. 나는 한껏 폼을 잡고 있었어.
오웬: 멋없다고는 안 했잖아.
카인: 그런데 웃음을 받고 있는 거지?
오웬: 아기가 젖꼭지를 쥐면서 세상은 나의 것이라고 해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잖아?
4화 어울리는 마법사로
카인: 확실히…….
오웬: 그거랑 똑같아. 재미있는 거야. 좋아하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고.
카인: 에에…….
오웬: 피가로가 지배한다고 하면 정령들은 숨을 삼키고 등골을 바로잡아. 그리고 무심코 사명을 다하게 돼. 주문의 말은 그런 게 좋은 거야.
카인: ……그런 건가…….
나는 가볍게 쇼크 받았다. 마법의 주문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중앙 나라의 자매 마법사다. 좋아하는 말이나 힘을 발휘할 만한 말을 고르라고 해서 골랐따. 나도 마음에 들었다. 멋있었고. 내가 풀이 죽어 있자 오웬은 곤궁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오웬: 뭐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알려준 거잖아.
카인: 맞는 말이지……. 고마워, 오웬.
오웬: 뭐야, 그 숨이 끊어지기 전 같은 숨소리……. 울적한데.
카인: 멋있을 줄 알아서 폼 잡고 있었거든. 아, 새 주문으로 하는 게 좋을까.
오웬: 이대로라도 됐어. 네가 주문에 걸맞게 되면 돼.
카인: 주문에 걸맞게?
오웬: 아기가 아니라 기사왕 같은 마법사 말이야.
기사왕 같은 마법사. 그 말은 침울해져 가던 나의 마음에 불을 켰다.
오웬: 뭐, 어차피 기사님에게는 무리겠지만.
카인: 그렇지 않아. 단련을 거듭하여 주문에 걸맞은 마법사가 되고 말겠어.
오웬: 아 그래. 해보는게 어때. 그때까지 힘을 내기 힘들겠지만.
오웬은 비웃음 섞인 얼굴로 뺨을 풀었다. 바보 취급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격려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묘하게 상쾌한 기분이다.
카인: 충고 고마워. 덕분에 마법사 노바를 만나도 현자님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
오웬: ……노바?
카인: 아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바의 단서를 찾으러 갈 거야.
오웬: 기사님에게는 무리야. 노바에게 돌이 될 걸.
거리낌 없는 말에 나는 표정을 지웠다. 노바를 만난 오웬의 말에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카인: 정신 바짝 차리고 있을게. 현자님이나 아서 님을 지키기 위해.
오웬: 바보야?
카인: 괜찮아. 오즈나 샤일록도 함께 있어.
오웬: …….
오웬은 무언가 말을 건네려다가 초조한 듯 혀를 찼다. 그러고 나서 등을 돌려 오웬은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서쪽 나라로 떠나는 날. 나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아서: 아……. 깨워버렸구나.
눈앞에 있던 것은 아서였다. 내 왼쪽 손목을 만지면서 들여다보고 있어. 은빛 머리를 흔들며 아서는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다. 그 표정에 나는 떠올렸다. 이건 우리가 여러 번 해왔던 시도 중 하나였다. 자다가 누군가를 만졌을 경우 눈을 뜨는 순간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는가? 무의식 중에 마주치고 있어도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면 액재의 상처 구조는 상당히 정확하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마주쳤을 때에는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채라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는 것은 나의 자의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서로 만지고 있는데, 내가 만진 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면…… 무언가 대책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몇 번인가 자고 있는 동안에 만져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만지고 있는데 접촉되는 순간 잠이 깨진다. 직업의 습성이다. 상대방이 아서가 아니었다면 문을 연 소리로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서: 미안해. 또 실패야.
카인: 괜찮아. 좋은 아침, 아서.
침대를 삐걱거리며 몸을 움츠린다. 아서를 올려다보며 나는 볼을 풀었다. 덩달아 그도 입가를 벌린다.
아서: 실패했는데 기분 좋아 보이네.
카인: 아침에 눈뜨고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건 기분이 좋아. 그게 아서라면 더욱 최고지.
5화 어디에도 가지말아줘
아서: 큰일이네, 카인도. 매일 아침 깨워주고 싶어.
카인: 평소에는 내가 더 일찍 일어나잖아. 내가 널 깨워줄게. 오늘은 늦잠을 자버렸지만…….
아서: 아침 연습이 없어서 그래. 조금 전까지 소나기가 내렸으니까. 짐 먼저 챙길까?
카인: 괜찮아. 갈아입고 바로 갈게.
아서: 알았어.
아서는 마법으로 창문을 열고 나갔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분명 저기서 들어온 거겠지. 나를 깨우지 않도록 몰래.
카인: 하하…….
나는 혼자서 웃었다. 왔을 때와 같은 장소에서 나가는 것이 아서다웠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니 아서의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리케와 오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케: 서쪽 나라에 가면 클로에가 추천해 준 과자를 찾고 싶어요. 귀부인의 키스를 뜻하는 과자라고 해서……. 듣고 있나요, 오즈?
오즈: 듣고 있다.
리케: 그러니까 과자가 있을 것 같은 시장에는 꼭 들러서……. 아, 카인.
카인: 여, 리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울리며 오른손을 꽉 쥐었다. 그 순간, 나를 올려다보는 리케의 모습이 보였다. 리케는 그대로 내 손을 끌고 오즈의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데려갔다.
리케: 카인은 먹어봤나요? 귀부인의 키스를 뜻하는 과자. 어디에 있을까요?
카인: 서쪽 나라로 수도로 가는 거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리케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손가락 끝에 살짝 무언가가 스쳐졌다. 오즈의 손가락이었다. 시선을 들면 오즈가 있다.
카인: 안녕, 오즈.
오즈: …….
오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즈는 아서를 양육한 부모이자 세계 최강의 마법사다.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같은 팀에 있는 것은 매우 든든했다. 하지만 그가 곁에 있는 것은 다소 불안한 부분도 있었다. 오즈는 아서나 리케 앞에서는 과묵하고 느긋한 인물로 보이지만 칼을 겨누는 인물에게는 용서가 없다. 그리고 세계 최강인 그는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카인: (이 녀석을 지휘하다니……. 거대한 드래곤을 길들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아. 나에게 따라줄지 아닐지……. 아니, 아키라나 아서를 위해서라도 약한 소리를 하고 있을 수는 없어.)
카인: 오즈. 이번 임무에서 어쩌면 노바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 노바에게는 미스라도 당할 수 없다고 들었어. 너만이 의지할 상대야. 잘 부탁해.
노바의 위협을 전한 셈이지만 오즈는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오즈: 미스라는, 이지.
나는 아니다. 나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운치였다.
카인: (우와. 멋있어…….)
순수를 동경했다. 정령들에게 갓난 아기 취급을 받는 것과는 딴판이다. 아서도 안심이 되는 미소로 오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즈만 있으면 괜찮다는 듯이. 솔직히 부러웠다.
오웬: 기사님!
문득 오웬의 목소리가 났다. 층 입구에서 오웬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아서와 리케는 놀라움을 표했고, 오즈는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가렸다. 울음을 터뜨릴 듯한 눈동자로 똑바로 나를 바라보는 오웬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오웬은 나에게 꽉 매달렸다.
오웬: 기사님, 기다려줘. 어디 가는 거야? 어디에도 가지 말아줘…….
카인: 오웬…….
오웬: 미스라에게 물어봤어. 기사님은 먼 나라로 나간다며.
불안하다는 듯이 오웬은 말했따. 매달린 채 나를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리케: 오웬……?
아서: 오웬. 대체 무슨 일이야? 평소와는 모습이…….
6화 갈라지는 의견, 찾는 말
당황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움찔했다. 오웬은 액재의 상처를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한다. 어떻게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카인: 으음……. 어제 샤일록의 바에서 꽤 마신 모양이야.
리케: 술을 마셔서 술에 취해 있는 건가요?
카인: 맞아 맞아!
오웬: 아니야, 기사님. 나 제대로 착하게 있었어.
아서: 놀랐어……. 여기 있는 건 분명 오웬인데, 마치 어린아이 같아.
오즈: 누가 변신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군.
아서: 그러고 보니 오웬의 액재의 상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 어쩌면…….
너무 예리한 아서에게 나는 더 움찔했다.
카인: 아니! 그, 억측으로 얘기하지는 말자.
아서는 어리둥절 했다.
아서: 무슨 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도 있는 거야?
카인: 아니, 그건…….
리케: 어제도 뭔가 속이는 모습이었어요. 혹시 무언가를 숨기고 있나요?
나는 식은 땀을 흘렸다. 그런 내 팔을 잡아당겨 오웬이 슬프게 호소했따.
오웬: 저기, 기사님. 어디 가? 나도 데려가.
카인: 데려가다니…….
오웬: 부탁이야. 기사님과 함께 가고 싶어. 나를 두고 가지 마.
카인: (……나왔다.)
뭉특한 눈동자 때문에 나는 최대급으로 움찔했다. 이건 위험해. 신중하게 말을 찾고 행동해야 해. 예전에 두고 가지 말라고 했던 오웬에게 무리라고 말하는 순간 케르베로스가 덮쳤다.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능숙한 설득의 말을 찾고 있다고 오즈가 먼저 말했다.
오즈: 너는 데려가지 않는다. 카인에게서 떨어져.
오웬을 노려보며 마도구인 지팡이를 꺼낸다.
오즈: 그렇지 않으면 천둥의 거름으로 만들어 주지.
오즈는 북쪽 마법사 오웬에게 여러 번 목숨이 노려졌다. 그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오웬은 오즈의 분노에 휩싸여 숨을 삼키고 창백해지고 있다. 내 그림자에 가려 덜덜 떨기 시작했다.
오웬: ……화내지 마…….
무리도 아니다. 화가 난 오즈는 무서워. 아이에게는 더더욱 그렇지. 리케도 똑같은 걸 생각한 것 같다.
리케: 오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오즈: 오웬은 의태를 잘한다. 상대를 방심하게 하고 틈을 노려…….
리케: 과자가 먹고 싶은 걸지도 몰라요. 오웬은 과자를 좋아하니까요. 그렇죠, 오웬. 귀부인의 키스가 먹고 싶은 거죠?
오웬은 리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으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리케: 봐요, 역시. 과자가 먹고 싶을 뿐이라면 같이 가요.
리케가 오즈의 소매를 잡아당겨 조른다. 오즈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즈: 싫다.
리케: 제멋대로 굴지 마세요. 2000살이나 먹었잖아요.
오즈: 오웬은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오즈는 어른답지 않게 날카로운 안광으로 리케를 노려보았다. 리케가 아니었다면 울었겠지.
리케: 현자님은 저희에게 사이좋게 지내달라고 하셨어요. 현자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나요? 오즈.
오즈: 오웬은 북쪽 마법사다.
리케: 그건 이미 말했어요.
오즈: 방심할 수 없다.
리케: 그건 이미 말했어요!
아서: 자자, 둘 다. 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서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단순한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총명한 푸른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내 태도의 미심쩍음도, 오웬의 색다른 행동도 모두 감안한 후에…….
7화 마음을 배반하지 않아
나를 믿고 의견을 구하고 있다. 그 사실이 전해져 와서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오웬은 불안한 듯이 나를 올려다복 있다. 그 등을 안고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고 가지 않기로 정했어. 내 마음을 배반하지 않기로 정했어. 각오를 다지고 입을 열었다.
카인: 모두들, 잘 들어줘. 오웬이 왜 이러는지 나는 알고 있어. 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어. 그것은 오웬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오즈: …….
카인: 이 녀석은 내 눈을 빼앗은 상대다. 언젠가 결판을 낼 거야.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지금 오웬을 배신하는 것은 내 마음을 배신하는 것이야. 그러니까……. 원래 오웬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서쪽 나라로 데려가고 싶어.
오웬의 등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색다른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여. 처음 과자를 받은 아이처럼.
리케: 카인…….
아서: 알았어. 나는 카인의 의견에 찬성이야.
오즈: 아서…….
아서: 마음을 배신할 수 없다고 카인이 말했습니다. 마법은 마음으로 쓰는 것. 저는 카인의 마음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서는 오웬에게 미소 지었다. 깜짝 놀라며 오웬이 다시 쳐다본다.
아서: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아요. 거짓말이나 연기라고 해도 이 정도로 무구한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분명 오웬은 무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겁니다. 그걸로 친구가 되고 싶어요.
오즈: …….
오즈는 쓴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리케에게 자꾸만 손이 끌리면서 마지못해 한숨을 쉰다.
오즈: ……밤이 올 때까지다. 그동안 불온한 태도를 보이면 땅끝에 내던지겠다.
오웬: ……땅끝이라니?
오즈: …….
오웬: 무서운 곳……?
천진난만하게 묻는 오웬을 오즈가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경계와 혐오가 부드럽게 누그러지고 온화한 그림움 같은 것으로 변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아서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카인: 괜찮아. 착한 아이로 있으면.
안심시키면서 웃는다. 오웬은 내 팔을 잡고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웬: 응! 나, 할 수 있어.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의 얼굴이다. 이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 녀석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서와 리케는 곧 오웬과 마음을 풀었다. 과자 이야기를 하며 들떠 있다. 나는 슬그머니 오즈에게 다각 잠깐 손끝으로 초빙하여 몸을 굽혔다. 순순히 구부려준 오즈의 귓가에 나는 속삭였다.
카인: 너에게만은 이야기해 두고 싶어. 오웬을 두고 가지 말아줘. 두고 가면 케르베로스를 꺼내서 공격할 거야.
오즈는 몸을 뗐다. 잠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가 툭툭 중얼거린다.
오즈: 늘 그렇다만.
카인: 그랬었지……. 너한테는. 매일 누군가에게 도전받다니 불쌍하게도.
나도 모르게 등을 두드려 위로했다. 강자에게는 강자의 고생이 있기 마련이지.
카인: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저 녀석은 착해. 착하게 있고 싶어해. 하지만 두고 가려고 하면 화가 나서 케로베로스로 덮쳐버려. 아서와 리케를 지키고 싶어. 지금의 오웬을 땅끝으로 날리지 않아줄 수 있나?
왜 일부러 그런 짓을 하지? 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도 모르겠어. 이건 위선일지도 몰라.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오웬은 위험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의 동료이고, 그리고 지금의 오웬은 지켜져야할 아이다. 까다로운 이야기다. 나도 혼란스러워. 기사로서 쓰러뜨려야 할 악인과 지켜야 할 무력한 아이가 같은 그릇에 들어있다니.
오즈: ……두고 떠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군.
카인: 아마도.
오즈: 알겠다.
카인: 다행이다……. 고마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오즈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다가 서쪽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키라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키라가 이쪽을 돌아보며 숨을 삼킨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오웬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카인.
아키라의 발소리가 다가와서 나는 손을 내밀었다. 아키라의 손이 탁 소리를 울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키라의 눈이 괜찮나요? 라고 묻고 있다.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키라는 안도하는 기색을 보이며 오웬에게 말을 걸러 갔다. 액재의 상처를 알리고 싶지 않은 오웬의 사연도 챙겨주며 그의 말동무가 되려고 해주고 있다. 아주 믿을 만한 녀석이다. 모르는 세상에서 혼자 왔는데도.
가끔 생각한다. 아키라가 돌아가야할 세상과 아키라가 돌아가 버리는 날을. 전의 현자님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린 나 자신을.
8화 현자와 사크리피키움
덜컹 소리르 내면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있다. 서쪽과 중앙의 마법사와 나와 오웬이 한꺼번에 타면 꽉 찰 것 같았기 때문에……. 나와 서쪽 마법사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사쿠 어쩌구 쨩은 내 어깨 위에 있었다.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가끔 내 어깨를 만지거나 기대기도 한다. 사쿠 어쩌구 쨩을 보고 클로에가 웃었다.
클로에: 현자님, 이 아이 귀엽네~! 뭐야?
아……. 쌍둥이가 준 거예요. 액막이나 몸을 대신한다던가…….
샤일록: 사크리피키움이군요.
무르: 쌍둥이 이야기를 하면 들리려나?
클로에: 사크리피키움이라는 생물이구나? 이름은?
이, 이름은……. 애완동물도 아니고, 붙일 예정은 없어요…….
클로에: 그렇구나? 하지만 사크리피키움은 길지. 사쿠 쨩이라고 불러도 돼?
클로에의 제안을 받고 가슴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거스러미를 벗겼을 때와 같은 아픔과 해방감이 후회와 안도를 느낀다.
……네.
클로에: 아싸! 사쿠 쨩! 사쿠 쨩, 잘 부탁해!
클로에는 두 손을 뻗어 사쿠 쨩의 볼을 만져 쓰다듬는다. 사쿠 쨩은 당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가늘어진 눈동자는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귀여웠다. 나도 같은 걸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귀엽다, 귀여워. 쓰다듬는 걸 좋아하나? 다행이네, 사쿠 쨩…….)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들자 에리베이터 벽면이 눈에 띄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처음으로 이 세계에 왔던 것이 생각난다.
(이상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무르: 왜? 현자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클로에: 오웬, 괜찮을까? 이상한 과자를 먹고 어린애처럼 되어버린 거지?
무르: 농담 같아! 과자를 먹고 미쳐버리다니!?
라스티카: 괜찮을 거야. 오즈 님도 있고.
샤일록: 그렇네요. 어른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라고 문제가 있다고도 할 수 없으니까요.
클로에: 으, 응? 으음…….
샤일록: 리케와 오웬이 기대하고 있었어요. 클로에가 추천해준 과자를.
클로에: 에헤헤, 내가 좋아하는 걸 모두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샤일록도 좋아해?
샤일록: 좋아합니다.
무르: 귀부인의 키스잖아!
라스티카: 나도 좋아해. 현자님은 어떠신가요?
아마 좋아할 거예요. 과자는 비교적 모두 좋아하거든요.
서쪽 마법사들은 별로 의문을 품지 않고 기묘한 오웬을 받아주었다. 기묘한 일에 익숙한 그들다웠다. 이야기에 섞이면서 나는 어떤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브래들리가 말했던 무르의 연구실을 찾아달라는 이야기, 어떻게 되었을까? 무르의 연구실……. 샤일록은 알고 있을까?)
샤일록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할 때 힘찬 목소리가 울렸다.
무르: 이제 곧 도착이야!
9화 컬러풀한 만남
무르: 서쪽 나라 도착~!
서쪽 나라의 탑에 도착했다.
라스티카: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네요. 이쪽도 맑아서 다행이다.
클로에: 저쪽은 하늘이 까맣네. 비가 올지도…….
클로에: 어라? 뭔가…….
어두운 하늘을 가리키며 클로에가 눈을 깜빡였다. 휘청휘청거리면서 무언가가 하늘을 날고 있다.
어딘가의 지붕의 파편…… 일까요……?
작은 점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급강하하기도 한다. 그건 빨간색으로도, 노란색으로도 보였다. 바람에 날려온 물건치고는 의사를 가진 움직임이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새일까요…….
무르: 아니, 사람이네!
클로에: 사람!?
샤일록: 마법으로 새로 변한 인간인 걸까요.
그래서 날림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깨 위의 사쿠 쨩을 쳐다봤다. 사쿠 쨩은 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쉬고 있다. 사쿠 쨩이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느 쪽인가 하면, 저 새가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조마조마하면서 보고 있자니 큰 바람에 펄럭이는 새는 하늘 높이 푹 날개를 접은 채 진심으로 떨어지려고 한다.
아…….
클로에: 도와줘야 해!
클로에가 빗자루를 꺼냈다. 그 옆에서 무르가 오른손을 높이 들어 마도구인 반지를 반짝였다.
무르: 맡겨줘! '에아뉴 랑블!'
무르가 마법 주문을 외우자 알록달록한 새가 부드러운 빛에 휩싸였다. 천천히 상승해서 우리 쪽으로 옮겨져 온다.
클로에: 다행이다~! 고마워, 무르!
무르: 천만에!
빛에 싸인 컬러풀한 새에게 살짝 양손을 내민다. 그러자 컬러풀한 새는 쿵하고 내 손에 떨어졌다.
???: …….
컬러풀한 새는 보기보다 무겁고 부드러우며 따뜻했따. 하지만 날개가 젖어서 등 쪽은 차가워져 있다.
클로에: 괜찮을까…….
라스티카: 아름다운 극채색의 깃털이네. 혹시 나의 신부…….
샤일록: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요.
천천히 컬러풀한 새가 눈을 떴다. 순간 펄쩍 뛰어올라 날개를 퍼덕이며 울기 시작한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인간으로 돌려주지 않겠나요?
무르: 좋아! '에아뉴 랑블!'
무르가 주문을 외운다. 하지만 옅은 빛이 컬러풀한 새를 감싸도 새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르: 어라……?
샤일록: 제가 해보도록 하죠. '인비벨'
파이프를 잡고 샤일록이 주문을 외운다. 파이프 연기가 컬러풀한 새를 감싼다. 그래도 새는 새의 모습 그대로였다.
샤일록: 이런…….
10화 들려온 것은
라스티카: 강하네. 변화의 마법을 상당히 잘하는 사람에게 마법이 걸려진 것 같아.
클로에: 라스티카도 무리야?
라스티카: 샤일록이 무리라면 나도 무리겠지. 오즈 님에게도 어려울 수 있겠는걸.
오즈도요?
샤일록: 변화나 변용의 마법류는 오즈나 북쪽 마법사들과 성질이 다릅니다. 오즈나 미스라보다 클로에가 변화를 더 잘하죠. 그런 겁니다.
과연……. 그렇다면 이 사람은 계속 새인 건가요?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컬러풀한 새는 충격을 받은 듯 팽팽하게 경직됐다.
???: ……!
직후, 내 손바닥 위에서 털썩 쓰러진다.
라스티카: 아, 서쪽 나라 사람이구나.
샤일록: 서쪽 나라 주민이겠죠.
무르: 한쪽 다리가 떨리는 거라든가, 표현이 세밀하지.
클로에: 나, 이 새 왠지 좋을지도……. 저기, 어떻게든 해줄 수 없을까?
무르: ……으음. 좋아! 그러면 다시 해보자!
부탁드려요!
무르: 간다~! '에아뉴 랑블!'
조금 전보다 눈부신 빛이 컬러풀한 새를 감싼다. 컬러풀한 새도 몸을 일으켜 간청하듯 몇 번이나 울고 있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비통한 새의 소리가 점점…… 사람의 목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 ……제…
클로에: 아……!
???: ……젠장……. 나를 이런 몸으로 만든 빌어먹을 마법사 녀석……!
서쪽의 마법사: …….
???: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나의 릴리아나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니까 왕궁 같은 데는 가지 말았어야 헀어! 아아, 릴리아나를 도와야해……! 여기 있는 마법사들은 아직 나은 것 같군……. 이 녀석들을 이용해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거야.
???: 어이, 뭘 멍하니 있어? 더 열심히 해! 가끔은 남에게 도움이……. ……어라!? 왠지 내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까까지 지저귀고 있었는데!? 혹시 너희들, 전부 듣고 있었던 건가!?
샤일록: 네.
???: ……삐…… 삐요…….
클로에: 아니 이미 늦었어. 미안해, 빌어먹을 마법사라서.
???: 아니야, 아니야……. 안 했어, 안 했어.
라스티카: 저희를 이용해서 인간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죠.
???: 이용이라니 그런! 저에게 협조를 해주면 기쁘다는 이야기입니다.
라스티카: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희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가 없어서.
???: 아아, 그렇게 짓궃게 굴지 마시고…….
무르: 진짜야! 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도 진짜!
???: 멈춰 멈춰. 잔인한 짓은 하지마. 아, 이쪽은 착해보이는 분이시군요!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컬러풀한 새가 나에게 부리를 가까이 대자 사쿠 쨩이 느슨하게 앞발로 밀어내려고 했다.
???: 어이, 고양이! 난동 부리지 마. 이름만 물어봤잖아. 신사적으로 가자고.
컬러풀한 새는 사쿠 쨩을 경계하면서 내 주위를 파닥파닥 한 바퀴 돈다.
???: 발톱 좀 그만 내밀어. 애완동물 자리를 뺏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실례합니다. 다시 한 번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에에, 아키라예요.
???: 멋진 이름이다. 상냥해 보이는 분위기가 있어서…….
클로에: 분위기 뿐만이 아니야. 현자님은 상냥한 사람이거든.
???: 현자님?
샤일록: 타계에서 소환된 현자님이십니다. 저희는 현자의 마법사.
???: 뭐라고!? 그거 제격이군!
컬러풀한 새는 뛰어올라 내 눈앞에서 좋은 몸짓을 했다.
???: 위대한 현자 아키라 님. 부디 무력한 저에게 자비를.
그레고리: 저는 그레고리 퍼치. 서쪽 나라의 대귀족 코르테제 가문을 섬기던 종자입니다. 저희 리리아나 공주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릴리아나 공주…….
그레고리: 아키라 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새가 되어버린 저와 함께 릴리아나 공주를 도와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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