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뛰어난 지휘자
이 세계에 와서 다양한 기질, 다양한 가치관의 마법사들을 만났다.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그들을 순식간에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거대한 재앙' 을 이기기 위해,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협력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개성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자유로운, 그들의 영혼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건 싫어. 모두의 자유를 허락하고 싶다. 멋대로인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협력' 하지 않으면 '거대한 재앙' 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세상은 망하고, 사랑했던 그들의 개성을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모라. 그렇다면 '개성' 은 뒤로 하고, '협력' 이라는 녀석을 입에 찔러 넣고, 억지로 먹게 하는 편이 좋을지도…….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니까.
(정말로? 목숨보다 마음을 아끼는 사람들인데?)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라스티카의 말은 구원의 빛처럼 반짝였다. 교향곡에서는 여러 악기가 개성을 죽이지 않고 각각의 소리를 연주한다. 뛰어난 지휘자가 있으면 서로 다른 소리들도 빛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아름다운 선율이 된다.
나는 다섯 권의 현자의 서를 준비해서 라스티카가 추천한 지휘자에게 적합한 사람들을 모았다. 중앙 나라는 카인, 북쪽 나라는 브래들리, 동쪽 나라는 파우스트, 남쪽 나라는 피가로, 그리고 서쪽 나라는 라스티카. 나는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모두는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난 기묘한 이변에 대응해 주었어요. 거기에 마법사 노바의 단서를 쫒기 위해 나라마다 행동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노바의 목적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거대한 재앙' 을 소환하려던 니콜라스와 연관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요. 니콜라스가 한 의식과 같은 것이 각국 각지에 남아 있다는 조사 보고서도 올라와 있습니다. 마법사 노바는 전 세계를 돌면서 본인의 편을 만들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카인: 누가 노바의 동료인지 모르는 이상, 노바의 수수께끼를 쫓는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건가.
맞아요. 니콜라스는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노바에게 협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법사가 되고 싶은 사람……. 아니면 다른 거짓말로 속은 사람이 노바의 편을 들고 있을지도 몰라요.
라스티카: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겠군요. '거대한 재앙' 은 이 세계에 소환된 적이 없으니까요. '거대한 재앙' 과 이 세상이 맞닿았을 때, 모든 생명은 마법사가 될 지도 모르죠.
2화 지휘자 역할
브래들리: 시험 삼아 해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네. '거대한 재앙' 이 부딪히면 이 세계는 박살날지도 모르지.
피가로: 금단의 문을 여는 권유 문구는 전 세계로 몇 개나 굴러가고 있어.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다. 신세계로 초대한다……. 니콜라스처럼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세계 멸망에 협력해 버린 사람들은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현자님 말씀대로 누가 노바 편인지 모르니 어느 땅을 가더라도 주의하자.
잘 부탁드려요. 또 하나, 주위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노바가 강한 마법사라는 것이에요. 미스라에게 들은 바로는, 미스라 정도의 마법사도 노바에게는 이기…….
이길 수 없었다고 말하려고 하던 것을 바꾸고, 나는 그의 명예를 위해 다시 말했다. 그도 이기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안핬으니까.
에, 그, 매우 어려웠다고. 오즈 만큼 강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브래들리에게 물어보고 싶은데요. 브래들리도 노바를 만났었죠?
브래들리: 아아.
마법관에 있는 모두가 노바와 싸우게 될 때를 대비해서…… 브래들리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브래들리는 조금 생각하더니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과 피가로를 가리켰다.
브래들리: 여기 있는 녀석들 중이라면 나와 피가로가 아슬아슬하겠지. 아슬아슬하게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루틸이 잡혀 돌로 잡히지 않은 것은 우롱당해서겠지. 네로는 혼자였으면 죽었을 거야.
파우스트: 그렇게나…….
피가로: 그렇게나 강한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알고 있었을텐데. 나이는? 젊어?
브래들리: 몰라.
카인: 오즈라도 못 쓰러뜨릴 것 같나?
브래들리: …….
피가로: 어이어이, 거기까지는 아니지?
브래들리: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어. 나는 오즈의 진짜 힘을 모르니까. 말하게 하지 마라.
피가로: 아아…….
브래들리는 핏대를 세웠고, 피가로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우스트: ……네로도 도망칠 수 없을 정도의 상대인가. 그렇다면 노바라는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을 때는 단독 행동은 피해야겠군.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을 파우스트가 먼저 말로 해줬다.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의 위험이 적도록, 가능한 한 혼자 있지 말고…… 보고도 하고 의논도 하고 다 같이 협력해서 힘을 모아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인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고, 라스티카는 고개를 꾸벅거렸다.
카인: 알았어.
라스티카: 터득했습니다.
고마워요. 혼자 있는 시간이 적어지면 그만큼 안전한 시간이 되겠지만…… 집단행동을 잘하지 못하는 마법사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여기 있는 모두가 지휘자가 되어 각 나라의 마법사들을 이끌었으면 좋겠어요.
라스티카에게 배웠어요. 악단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각각의 악기가 그 악기다운 음색을 울리면서 하나의 곡이 되도록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여기 있는 분들이라면 분명 그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도 잃지 않도록, 모두가 본인답게 있을 수 있도록 조화를…… 지휘를 부탁드려요.
그리고 언젠가 제가 그 역할을 맡을 때가 왔을 때, 틀리지 않기를 바라며……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지휘하고 정리해 나갔는지 저에게 보고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현자의 서를 준비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려요.
3화 각자의 대답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나의 부탁은 꽤 어렵고 상당히 마음이 무거운 것이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리더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개인주의적이고 제멋대로인 마법사들은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것을 싫어한다. 리더는 가장 힘든 역할이겠지. 선생님의 역할은 알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지식을 주는 것이라서 심리적인 부담이 적다.
하지만 리더는 아무 곳도 가기 싫은 사람들을 어디론가 데려가야 해. 반발을 받거나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마법사와 인간들 사이에 서서 다리를 놓아주는 아서조차도 앞장서서 리더를 하고 싶지 않아한다. 도대체 누가 하고 싶어 할까? 모두가 만족하는 룰 따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세계에서……. 모든 사람들의 불평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을 앞장서서 맡다니.
망할 세계의 지휘관 같은 건, 잘못 걸으면 세상을 망치는 리더 같은 건 누구도 하고 싶지 않아. 나도 누군가에게 맡기고 내 일을 하면서 세상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미래에 소중한 사람이 삼켜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내 힘만으로는 어려워서 여기에 모인 다섯 사람에게 의지하고 말았어. ……미안하네…….)
내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싫은 역할임을 알면서도 우수한 동료들에게 떠넘기고 있으니. 부탁드립다라고 한 내 대사에 대해 분명 무겁고 불편한 침묵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내 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인: 아키라, 딱딱한 짓은 그만둬. 당신의 부탁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힘이 될게. 힘이 될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
카인…….
거짓 없는 미소를 짓는 카인에게 나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받아줄 수 있을지 어떨지, 계속 긴장하고 있던 만큼 쾌활한 대답에 구원받는다.
고마워요, 카인.
카인: 나야말로 우리를 진지하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카인은 앞으로 나와 내가 준비한 새로운 현자의 서롤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인사한다. 라스티카와 피가로도 뒤를 이었다.
라스티카: 소중한 역할을 부여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현자님. 현자님을 대리하여 현자의 서를 보관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라스티카.
피가로: 기꺼이 협력할게. 하지만 너는 이 세계의 문자를 읽을 수 없지?
네. 그래서 시간 날 때 직접 보고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피가로: 괜찮아. 대화 시간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거든.
고마워요, 피가로.
세 사람 모두 웃는 얼굴로 현자의 서롤 받아갔다. 그 중, 미동도 하지 않고 씁쓸하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4화 불변의 기도와 가변의 희망
파우스트였다.
파우스트: ……나는…….
씁쓸한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는 눌러 죽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파우스트: ……나는 맡을 수 없어.
순간 화나게 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파우스트는 당황하고 곤궁해했다. 미안함마저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우스트: 현자의 소원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기도 해. 할 수 있다면 힘이 되고 싶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 내가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내가 아니었겠지.
묵직한 목소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파우스트에게는 절친한 친구였던 인물과 결렬되어 처형당할 뻔한 과거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파우스트는 언외에 전하고 있었다. 그에게 그런 말을 나오게 해서 나는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복잡한 마음이 복받친다.
파우스트는 어둡고 외톨이이며 퉁명스러운 인물이지만, 어린 마법사들이나 나에게는 친절했다.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배신당한 일은 파우스트로부터 인간 관계에 관한 자신감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 같았다.
……저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파우스트에게 격려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고요.
파우스트: 나보다 네로가 더 알아. 그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라스티카: 네로는 안 맞을 것 같아. 샤일록과 같은 이유로.
미간의 주름을 깊게 하는 파우스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라스티카가 말했다.
라스티카: 그들은 사람의 형태를 바꾸고 싶어하지 않아.
파우스트: 나도 누군가를 바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아무도 바꾸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바꿔지고 싶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엮이지 않고 살았어.
라스티카: 오해하지 말아줘. 사람이 변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야. 변하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새싹도 큰 나무가 될 수 없지. 작은 새가 하늘을 날지 못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없어.
라스티카: 하지만 너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남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자신감을 잃고, 희망을 잃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너에게 훌륭하다고 인정 받는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라스티카: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영웅이 될 수 있어. 이상적인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이 내일 변하기 위한 용기를 가질 수 있어. 불변의 기도도 가변의 희망도, 모두 멋진 것이야.
라스티카의 말은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나의 마음을 어루어만졌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생생한 꿈에서 꾼 이상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분명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어느 쪽도 필요할 것이다. 변하고 싶지 않을 때는 변하지 않고, 변하고 싶을 때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게 해준다. 자신의 타이밍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바꿔나갈 수 있다.
이 마법관에는 그걸 이룰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5화 갈등의 끝에
파우스트: ……사람을 영웅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해서, 그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의미가 없어…….
파우스트는 이마를 가리고 탄식하고 있었다. 라스티카가 온화한 미소를 보낸다.
라스티카: 모든 일에 의미는 있어. 어떤 사소한 음색도 악곡에 영향을 미치니까.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바람을 흔들어 이윽고 큰 폭풍을 일으키듯이.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이윽고 큰 폭풍을 일으킨다……. 라스티카의 말에 나는 마법사들이 해준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득한 옛날, 누군가가 일으킨 행동이 파문처럼 번져…… 누군가의 인생에 닿았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간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가 변하지 않은 것도, 누군가가 변한 것도.
영웅이 되지 못한 보답받지 못한 지도자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부탁드려요, 파우스트. 당신의 힘을 빌려주세요.
파우스트: …….
내가 내민 현자의 서를 바라보며 파우스트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지금 나와 그 사이에는 근소한 거리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400년의 세월이 넘을 정도로 갈등이 존재했던 것 같다. 많은 부하를 잃은 그는 마찬가지로 동쪽 마법사들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표정에 복잡한 색이 떠오른다. 주저하면서 그는 눈꺼풀을 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파우스트: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렇다면…….
파우스트: 그래도 기대는 하지 말아줘. 나는 실패했던 남자다. 성심성의껏 나를 의심해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맡기는 것에 불안은 없다. 하지만 그의 근심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실례다. 나는 파우스트에게 현자의 서를 건넸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파우스트.
가볍게 목례하고 파우스트는 물러갔다. 내 수중에 남은 현자의 서는 이제 한 권 뿐이다. 브래들리에게 시선을 돌린다.
브래들리: …….
그의 강한 눈빛과 부딪혀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슬렁거렸다. 꾸지람을 들을 것 같아 시선을 방황한다. 아래를 향하고 있는 사이, 브래들리의 기척이 눈앞에 다가왔다. 조급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의 무언의 박력에 져서 무심코 나약하게 묻고 있었다.
……현자의 서를 받아주실 수 없는 건가요?
브래들리: 왜?
……언짢아보이는 얼굴이니까…….
브래들리는 익살맞은 듯 입을 구부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취한다. 선혈 같은 격렬한 붉은 눈동자인데도 마음을 꿰뚫어보이는 냉정한 눈빛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브래들리: 기분이 언짢은 건 아니지만 재미는 없네. 네 녀석의 그 태도가.
6화 가치를 주어
나의…….
브래들리: 어. 혼자서 바위를 짊어지고 있는 얼굴로 찌푸리고 있고 말이야. 네 녀석이 생각해서 네 녀석이 우리에게 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얘기잖아. 우울해하지 말라고.
카인: 브래들리, 아키라는 우리를 진지하게 생각해 주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 책임의 무게에 고민을…….
브래들리: 그게 잘못됐다는 거다. 우리가 둥지 안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로 보이나? 이쪽을 똑바로 봐.
……윽.
한 손으로 턱을 잡힌다. 브래들리는 고함도 지르지 않고 꾸짖지도 않는 온화한 목소리로 한마디 내게 전했다. 과거 그를 흠모하며 따라갔던 부하들을 지켜보는 듯한 눈빛으로.
브래들리: 들어, 현자. 우리는 마법사다. 너보다 더 오래 살고 너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네가 결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실수한다고 해서 네 녀석을 탓하지는 않아.
그 말을 듣는 순간 팽팽하던 마음이 풀리면서 눈물이 터질 뻔했다. 그의 말대로 불안해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최선의 아이디어를 모두가 좋아한다는 법은 아니니까. 미움을 받거나 혼날 각오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약함을 간파당하여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런 나를 브래들리는 웃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봤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똑바로 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척박한 북쪽 땅에서 도적단을 이끌었던 브래들리. 그가 많은 부하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브래들리: 알겠지, 아키라. 우리는 우리의 책임으로 우리가 사는 방식을 정한다. 내 마음으로 네 녀석을 믿고 있어. 네 녀석이라면 틀림 없어. 그런 건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 네 녀석이라면 실수해도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여기에 있는 거다. 알겠지?
……네…….
브래들리: 좋아. 그러면 움찔하면서 우리 눈치 보지 말라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불평하는 왜소한 무리들처럼 우리들을 취급하지 마. 우리는 자랑스러워. 천한 놈들처럼 취급받으면 화가 난다고. 우리에게 자부심을 줘라. 네 녀석이 우리를 상등하게 대하면 우리도 큰 일을 해주지.
브래들리: 상등하게 다루라는 건 상을 달라는 게 아니야. 가치를 갖고 싶어. 믿음이란 가치다. 네 녀석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지. 씁쓸한 표정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일을 주지 마라. 일자리를 줄 거면 최고의 보석처럼 줘. 네 녀석의 부하에게 가슴을 펴게 해 줘.
브래들리: 누구나 가치 있는 역할은 하고 싶어하지. 우두머리의 일은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알겠나?
……네, 네…….
브래들리: 좋아, 착하지. 울지 말고 고개를 들어.
7화 지휘권의 소재
브래들리는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난폭하게 젖은 눈꺼풀을 박박 닦는다. 그의 손끝 너머로는 기분 좋게 그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브래들리: 나라마다 지휘자를 세우고 그들에게 보고하게 하고, 그걸로 학습하자는 거지?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잖아. 문제를 깨닫고 대책을 세웠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으니 자신감을 가져.
……네…….
브래들리: 실수해도 별거 아니야.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돼. 우리들이 있잖아. 그 밖의 녀석들도 있고.
피가로: 그 밖에란 뭐야?
라스티카: 그 밖에란 뭐지?
브래들리: 귀찮은 놈들이네. 들었냐, 아키라. 이놈이나 저놈이나 주제넘는다고.
브래들리는 농담처럼 나에게 눈짓을 했다. 무심코 표정이 풀렸다. 그는 안심한 듯 부드럽게 내 뺨을 살짝 건드렸다.
브래들리: 이제 괜찮네. 꾸중 듣는 것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현자나 '거대한 재앙' 이나, 휘두르는 것은 미안하지만 슬슬 마음을 놓을 때다. 죽고 싶지 않고 죽게 하고 싶지 않은 녀석들도 있어. 또 새로운 녀석들이 들어오면 얼굴 외우기도 힘들고.
웃어넘기듯 말하고 나서 턱을 당겨 브래들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브래들리: 손을 빌려줄게.
……잘 부탁드려요!
카인: 한 가지만 확인해도 될까? 지금까지의 임무에서는 선생님 역이었던 오즈가 중앙의 마법사를 정리해 왔어. 하지만 내가 지휘관이 된 이상, 지휘권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즉, 주군인 아서 님이나 선생님 역의 오즈를 뛰어넘어 내가 모든 일을 결정해도 되는 걸까.
확실히, 카인의 입장에서는 오즈나 아서에세 지시를 내리는 것은 힘들 것이다.
카인: 특히 오즈가 걱정돼. 나나 아서 님은 선생님…… 교관과 지휘관의 차이는 알 수 있어. 교관은 육성을 관장하는 역할. 지휘관은 조직을 지휘하는 역할이지. 비슷한 듯 달라.
카인: 예를 들어 파우스트가 어떤 조직의 지도자였고, 그 교관이 피가로였다고 하자. 평소 파우스트가 피가로의 지도를 받는 쪽이야. 하지만 조직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파우스트가 결정을 내리고 피가로는 따를 필요가 있어.
피가로: 아, 응…….
파우스트: 그, 그렇지…….
카인: 이해하기 어려웠나. 그럼 예를 들면 브래들리가 우두머리고, 그 부하가 네로로 해서…….
브래들리: 어, 어이. 잠깐.
카인: 아아.
브래들리: 뭐야 갑자기.
카인: 뭐가?
브래들리: 왜 갑자기 네로야. 지금 느낌으로 비유하자면 여기 있는 신랑 씨의 이름을 내야되는 거잖아.
카인: 라스티카는 별로 누군가의 부하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라스티카: 나는 별로 누구의 부하가 되지 않을지도?
카인: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오즈보다 더 강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권력을 잡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만일의 경우에 문제가 생겨.
라스티카: 카인의 경우 아서 님이 주군이고.
그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기사단이나 왕궁에서는…….
카인: 경호 임무라고 생각한다면 경비를 맡은 기사단이나 근위병에게 지휘권이 있어.
피가로: 아서는 자신이 경호받을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카인: 그 점이 걸리는 거야…….
8화 만약의 시뮬레이션
브래들리: 그 왕자라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지휘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카인: 물론이다. 하지만 솔선수범해서 위험에 몸담는 듯한 시늉을 해서는 곤란해. 아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지휘권을 잡는 것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오즈나 리케는 알아줄까?
브래들리: 중앙의 작은 녀석이면 몰라도, 오즈는 남 밑에 있는 적이 없을 테니까.
파우스트: 그렇게 말한다면 미스라나 오웬도 마찬가지 아닌가? 너, 괜찮겠나.
브래들리: 괜찮을 리가 없잖아. 교향곡이라고 서론하더라도 지휘관의 의미는 조직의 우두머리다. 즉, 집단의 정점이지. 나는 북쪽 나라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인 셈인 거라고.
라스티카: 그렇지.
브래들리: 그렇지 않아. 내가 북쪽 나라의 정점, 지휘관이라고 자칭해봐라. 미스라나 오웬, 스노우 화이트에게 들렸다가는 죽을 거다.
라스티카는 눈썹을 치켜들고 피가로가 그럴듯하게 눈을 감았다.
라스티카: 그런가?
피가로: 그렇겠지. 중앙의 나라도 조심하는게 좋아. 오즈가 너에게 무른 것은 네가 어린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카인: 내가 어린애!?
파우스트: 뭐, 그렇지.
브래들리: 아직 50세 이하니까.
라스티카: 클로에랑 조금밖에 차이 나지 않고.
카인: 결혼도 할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는데?
브래들리: 오오, 기세등등한데.
라스티카: 술도 마실 수 있는데, 래.
파우스트: 귀엽군.
피가로: 너 정도 나이 때가 제일 어른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카인: 뭐야, 이 분위기!? 나는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 한 건데!
브래들리: 마법사는 평범하지 않아. 슬슬 적응하라고, 기사 씨.
피가로: 다시 말하지만 오즈는 너에게 본인을 따르게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절대 지휘관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거야.
카인: 그런가…….
피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거야.
브래들리: 양보로 끝나겠냐. 애송이에게 지시받는 오즈 같은 건 본 적이 없어.
피가로: 나도.
라스티카: 서쪽 나라는 걱정 없어. 나를 남편으로 가정한 일종의 놀이가 유행할 것 같네.
파우스트: 동쪽도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피가로: 남쪽 나라도 평화로울 거야. 그러면 북쪽과 중앙은 비밀로 하는 건?
브래들리 / 카인: 비밀?
피가로: 지휘관이라는 것을 가슴에 숨기고, 그림자에서 조종하는 느낌으로…….
브래들리: 나왔다. 피가로가 잘하는 거…….
피가로: 듣기 거북하네.
브래들리: 북쪽이랑 중앙만 비밀로 해봤자 어디서 새어나가겠지. 특히 남쪽 형제 쯤에서.
라스티카: 미스라 씨! 남쪽 나라의 지휘관은 피가로 선생님이거든요. 북쪽 나라의 지휘관은 누가 되었나요?
파우스트: 하? 지휘관이라니 뭔가요? 저는 못 들었는데요. ……가 될 것 같군.
라스티카: 되겠다.
피가로: 알기 쉬운 연극 고마워.
브래들리: 오싹해. 북쪽 나라에서 누가 정점이냐 하는 문제는 생사와 관련되어 있으니까. 명예에 관한 이야기도 해. 누가 누구를 위해서, 누가 아래냐 하는 서열에 북쪽은 예민하다고. 언젠가는 놈들과 끝장을 봐야겠지만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 전에 몸싸움을 벌이긴 싫어.
카인: 나도 오즈가 반대한다면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으니까…….
파우스트: 일단 반발을 받지 않도록 숨은 이름을 붙이는 것은?
9화 다섯 개의 일지
숨은 이름?
파우스트: 우리 편끼리 대화할 때도 어디서 누가 듣는지 모르니까, 그럴 때를 위한 이름이다. 예를 들어 농장수라고 부른다던가. 소극적인 방안이긴 하지만 지휘관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
라스티카: 그러면 일지 담당이라는 건 어떨까? 모처럼 현자님께서 우리를 위해 현자의 서를 주신 거고.
브래들리: 일지 담당인가. 뭐, 좋아. 보통 임무 때와느 별개로 노바에 접근하는 일을 할 때는 내가 뒤에서 칸막이를 하면 되는 거지?
맞아요. 칸막이라는 건…….
브래들리: 악단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듯이 손이 가는 무리들을 조율하는 거다. 해줄게.
카인: 나도 온 힘을 다할 테지만, 오즈가 저항한다면 어떡하지?
당황하는 카인의 어깨를 피가로가 안았다. 슬그머니 귓가에 속삭인다.
피가로: 아서를 위한 거니까 말을 들으라고 하면 돼. 아서한테는 오즈를 위해서라고 하고.
카인: 과연……?
브래들리: 오. 또 무슨 암약이냐? 편하게는 못 죽을 거다.
파우스트: 불길한 소리 하지 마. 현자, 나는 네로에게는 말하려고 해. 얘기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에게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알겠어요.
브래들리: 흥……. 동쪽 패거리들은 연대가 촘촘하네. 그래도 잘하고 있는 것 같군.
파우스트: 북쪽 나라보다는.
피가로: 대화는 이상이려나?
네. 저는…….
브래들리: 기다려. 하나 더.
브래들리가 한 손을 들었다. 뒤돌아보는 순간 라스티카를 본다.
브래들리: 무르의 연구실에 대해서다.
라스티카: 무르의 연구실?
브래들리: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어. 서쪽 마법사 무르는 전 세계에 연구실을 숨겨놨다고. '거대한 재앙' 에 대해 가장 조사하고 있던 것은 그 녀석이야. 그 녀석의 연구실에 닥칠 '거대한 재앙' 의 상처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카인: 맞는 말이지만, 지금 무르의 연구실의 위치를 알 수 있나?
브래들리: 그 녀석은 몰라도 서쪽의 파이프라면 알지도 모르지.
라스티카: 물어볼게.
브래들리: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각 나라마다 지휘관이 한데 모아 움직이게 됐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상대에게도 겁먹지 않고 적극적으로 털어놓으려는, 성실하고 정의로운 카인. 마이페이스에 느긋하지만 어떤 때에도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주위에 부드러운 라스티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지도자 경험이 있고, 어린 마법사들에게 친근한 파우스트. 박식하고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하며 목적을 위해 관대하고 온후한 판단고, 교활하고 냉철한 책략도 취할 수 있는 피가로. 전직 도적단의 우두머리로 죄수라고는 하지만, 대담무쌍한 결단력과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어 세심한 배려를 가진 브래들리.
현자로서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해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많을 것이다. 소중한 동료들을 아무도 희생시키지 않도록. 마법사들이 잠시나마 상생할 수 있도록.
10화 쌍둥이가 현자에게
그날 밤…….
네, 들어오세요.
스노우: 현자여.
화이트: 현자여.
스노우, 화이트. 무슨 일인가요?
스노우: 그대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들던 것이 완성되었네.
저의 몸을 지키기 위해……?
화이트: 그렇네. 지금까지의 임무 중에도 여러 위기가 닥쳤지만.
스노우: 노바라고 하는 마법사에게 다가가면 그대에게 더 큰 위험이 닥치겠지.
화이트: 호호호. 귀여운 그대는 우리 손으로 지켜주고 싶지만…….
스노우: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를 위해 우리들 대신 그대를 지키는 심부름꾼일세.
스노우 / 화이트: 나와라. '노스콤니아'
두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옅은 빛이 부풀어 올라 푹신푹신 뛰었다. 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신기한 고양이 같은 생물이었다.
스노우: 사크리피키움일세.
화이트: 귀엽지 않은가. 그대의 취향대로 해보았다.
스노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지만…….
이게…… 심부름꾼……?
스노우: 그렇네.
화이트: 마음에 들었는가?
스노우: 그대에게 기대고, 만일의 경우에는 그대의 몸을 지킬걸세.
사랑스러운 외모에 시선을 빼앗긴다. 애완 고양이 같아서 볼이 풀어진다.
귀여워……! 고마워요,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호호호, 기뻐해줘서 다행이군.
화이트: 한시도 놓지 말고 곁에 두는게 좋을걸세.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사크리피키움을 받아 팔에 안았다. 고양이처럼 따뜻하진 않았지만 온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를 남겨두고 쌍둥이는 떠났다. 그 아이는 울지도 어슬렁거리거나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방안에 사랑스러운 형태의 생명 같은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위로되는 것 같았다.
(사크리피키움……. 밥은 안 먹나? 같이 침대에서 자거나 할까? 고양이 같아……. 귀여워…….)
이름을 지어볼까, 같은 두근거리는 생각을 한 나는 마음을 고쳤다. 아까 이 아이는 내 몸을 대신할 거라고 말했었다. 나를 감싸줘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겁이 나서 나는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따. 쉽게 없어지는 것에 애착을 품는 것은 무서웠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몇 번이나 고양이 같은 그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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