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네로: 무르!? 어느 사이에……!?
무르: 쉿, 조용히. 들키지 않으려고 잠수함으로 몰래 왔으니까.
네로: 잠수함……?
무르: 물속을 돌아다니는 배야! 은밀한 행동에 딱 맞는, 재밌는 놀이기구지. 반짝이는 벚꽃 눈보라 속을 휘몰아칠 수 있어.
네로: 빛나는 벚꽃 눈보라……. 벚꽃광충을 말하는 건가.
무르: 역시, 꽤 바깥 세계를 알아버렸구나. 이 세계는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해. 너도 조금 더 세계를 즐기면 좋을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게 되었어.
네로: ……내 차례가 왔다, 라는 것이군.
무르: 눈치가 빨라서 기쁘고 슬프네. 맞아. 선대의 보주의 자식의 죽음이 가까워.
네로: …….
무르: 너는 똑똑하고 눈치도 빨라. 능력 없는 스쿠아마가 아니었다면, 여러 일을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현실은 이래. 네 목에 새겨진 푸른 문장도, 운명도 바꿀 수 없어.
네로: ……알려줘. 나는 진짜로 갈 수 밖에 없는 거야? 내 목숨으로 지켜지는 '세계의 평화', 라는 거야……? 내가 운명에 등을 돌리면 어떤 재앙이 일어난다고?
무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네가 가지 않으면 전 세계 스쿠아마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 물론, 브래들리의 목숨도 말이지.
네로: 캡틴의……?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렇게 돼……!
무르: 슬프지. 놀랍지. 좋아, 알려줄게. 너는 알 권리가 있어. 이 세계의 진실을…….
네로: ……그, 런…….
무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어.
네로: ……그런가. 나는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야.
무르: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이해심이 좋아서 살았어.
네로: ……저기, 무르. 가기 전에 조금 시간을 갖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어떻게든 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해적: 찾았어!?
해적: 어디에도 없어!
다음 날 아침, 배에는 초조함이 가득 찼다. 선실에도 갑판에도 배 어디에도 네로의 모습이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네로를 찾으러 뛰어다니고, 배 안은 짜릿한 분위기였다.
브래들리: 다른 데 찾아볼 곳은 없냐! 빠짐없이 찾아!
루틸: 브래들리 씨! 이거 보세요. 주방에서 찾았어요.
냄비랑 칼?
루틸: 네. 냄비 안에는 음식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이 예쁜 칼은…….
브래들리: 내가 네로에게 사준 칼이다.
주방에 냄비에 든 요리와 네로의 칼이 있었지만, 네로는 없었다……?
루틸: 네. 아무도 없었어요.
브래들리: 설마, 끌려간 건 아니겠지. 저 녀석을 데려간다면 폴먼트 네이비밖에 없어. 루틸, 주방은 거칠었나? 억지로 끌려갔다면 흔적이 남았을 텐데.
루틸: 아뇨, 오히려 정리가 되어 있을 정도였어요.
스노우: 그렇다는 것은……. 네로는 스스로 자취를 감춘 것일지도 모르겠구먼.
브래들리: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녀석은 여기에 남고 싶다고 했어. 너도 그 귀로 들었잖아!?
스노우: 그렇게는 말했지만, 다시 생각한 것이 아닌가? 그 녀석도 책임감을 느꼈으니.
브래들리: 책임이라고? 웃기지 마……. 자기가 한 말도 못 지키면서 무슨 책임을 지겠다고!
해적: ……그 녀석, 이제 만날 수 없는 건가.
해적: 해적을 계속한다면 더 여러가지로 즐거운 일이 있었을 텐데.
해적: 네로의 요리……. 계속 먹고 싶었어.
(네로……. 어째서……? 여기에 있고 싶다고 했으면서…….)
모두가 몸을 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돌아보니 라스티카가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있다.
스노우: 뭔가, 당돌하게.
브래들리: 잘도 하네. 이쪽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데.
모두는 어려운 표정을 짓지만 라스티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마음에 서서히 스며드는 듯한 부드러운 선율이 갑판에 울려퍼진다.
(듬을 쓰다듬어주는 듯한 곡…….)
…….
(어라……? 뭐지? 갑자기 머리와 오른쪽 손목이 아파……. 오른쪽 손목에 멍이 들었나?)
루틸: ……정말 예쁜 음악이네요. 이런 상황인데 어째서인지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스노우: 그렇구먼. 모두 조용히 듣고 있네.
브래들리: …….
라스티카: ……어떠신가요? 조금 전까지 여러분의 마음은 폭풍의 바다처럼 거칠어졌습니다. 마음이 거칠어지면 진실도 두터운 구름에 가려지죠. 우선은 그 마음을 달래고 따뜻한 빛을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래들리: 정말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이나 하고. ……하지만 뭐, 머리는 진정됐어. 어이, 네로가 남긴 음식을 가져와!
루틸: 네, 네! 여기 있어요.
루틸이 요리를 그릇에 부어 브래들리에게 건넨다. 고기도 야채도 듬뿍 들어간 스튜인 것 같다. 브래들리는 바로 먹기 시작했다.
브래들리: ……여전히 맛있어.
다 먹은 브래들리의 얼굴은 아까보다 차분해 보인다. 그는 피식 웃으며 입을 닦더니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브래들리: 이런 맛있는 밥으로 입맛을 바꿀 정도로 살을 찌우고선 사라지다니. 다음에 찾으면 주방에 묶어놔야겠어.
브래들리를 따라 다른 해적들도 네로의 요리를 나눠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표정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해적: 역시 맛있단 말이지.
해적: 몇 번이라도 먹고 싶어. 앞으로도…….
루틸: 자, 아키라 씨도 드세요.
루틸.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
루틸에게서 받은 접시 안에는 이 한 그릇으로 배가 행복으로 가득 찰 정도로 건더기가 잔뜩 떠 있다.
(네로……. 잘 먹을게요.)
숟가락을 집어 입으로 옮긴다. 스튜에는 아직 은은하지만 따스함이 남아있었다. 정성스럽게 들어간 건더기의 맛은 울고 싶을 정도로 상냥하다.
엄청 따뜻한 맛이 나.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서, 또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스노우: 음. 힘이 솟는 맛일세.
라스티카: 좋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네요. 그러면 다시 연주하도록 할까요. 이번에는 구름이 걷히고, 진실이 떠오르기를.
라스티카는 잔잔하게 미소짓더니 오카리나를 입술에 갖다댔다. 부드러운 선율의 연속이 흐르기 시작한다.
……!? 우으……. 아, 아파……. 아파……!
루틸: 아키라 씨! 무슨 일인가요? 몸이 안 좋은 게…….
죄송해요……. 라스티카의 연주를 들으면 왠지 머리와 손목이 아파서…….
스노우: 음악으로 몸이 아프다고……? 라스티카. 그대, 아키라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라스티카: 이런 일은 저도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괜찮으신가요, 아키라. 부디 사과를 하게 해주세요.
으응…… 괜찮아요. 저기…… 계속해 주실 수 있나요?
스노우: 무슨 소리인가. 그대, 아픈 것을 좋아하는 건가?
아뇨, 뭔가 생각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기억해야 하는 무언가를…….
라스티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연주를 이어가죠. 당신이 떠올리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라스티카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오카리나를 더욱 우아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자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거기서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다.
'보름달이 뜬다……. 저 봉우리를…… 우러러보는 것은 벚꽃……. 나에게는 소원이 있네. 혜성의 천사여. 부디 그 목소리로 노래해다오 …….'
더듬더듬한 노래의 시작이었지만 노래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나는 이 노래를 알고 있다.
'흘러가는 벚꽃의 빛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바다는, 꽃의 부교. 그 밑에서 나는 잠든다…….'
거기까지 부르자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분홍빛 바다가 빛나고 있는 것이다. 빛나는 바다는 노래하듯 웅성거리고 소용돌이친다.
루틸: 이건…… 소용돌이에요! 거기에 구멍이 생겼어요!
브래들리: 게다가 달빛에 빛나야할 벚꽃광충이 빛나고 있어. 보통 상황은 아니네. ……이 소용돌이 밑이 수상한데. 아마 여기 밑에 뭐가 있을 거야. 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지만.
브래들리의 말에 모두 얼굴을 마주본다. 얼마 전 바다 밑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떠오르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이 소용돌이 아래에 있는 것은…… 전설의 비보!?
12화
브래들리: 충분히 생각할 수 있어. 그렇다면 '보주의 자식' 이라고 하는 네로도 이 밑에 있을지도 모르겠네. ……목숨을 걸기에는 충분한 이유다. 모 아니면 도. 나는 소용돌이 안으로 뛰어들겠어.
해적: 캡틴 ……!
해적: ……보물과 신입을 부탁드립니다! 배는 저희들에게 맡겨주세요!
브래들리: 잘 알잖아. ……나머지는 부탁한다고. 따라오고 싶은 녀석은 멋대로 따라와라!
루틸: ……! 저도 가겠습니다! 어머니의 꿈의 너머도, 네로 씨도 뒤쫓고 싶어요 !
라스티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저의 연주가 계기가 되어 생겨난 구멍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루틸: 그러면 같이 가죠. 에잇……!
저도 가겠습니다……! 네로를 찾아야해요……!
나는 배 가장자리에서 소용돌이를 내려다보았다. 빛나는 소용돌이는 아름다워도 바닥은 알 수 없다. 그 박력과 굉음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움츠러들었다.
(겁먹으면 안 돼. 저 밑에 네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스노우: 아키라. 무서우면 나의 손을 잡겠나?
……스노우…….
스노우: 사양하지 않아도 되네. 나는 그대에게 응석을 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자, 손을 주게나.
감사합니다. 부탁드려요……!
나는 스노우와 손을 잡고 배의 가장자리를 기어오른다. 그리고…… 뛰었다!
충격을 견디듯 눈을 감는다. 바다에 뛰어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 들렸던 물소리가 작아져, 의식도 희미해지고…….
……콜록! 콜록콜록…….
루틸: 다행이다. 아키라 씨도 눈을 떴어 !
루틸……. 모두는 무사하나요……?
루틸: 뛰어든 전원 무사합니다. 자, 다들 여기에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신기한 장소였다. 줄줄이 원기둥이 늘어선 석조의 훌륭한 건물이다. 밖에는 아름다운 파란색가ㅗ 분홍색 꽃이 흔들리고 있다.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는 도대체……?
라스티카: 바다의 밑바닥인 것 같습니다. 밖에 많은 바다의 벚꽃이 보이니까요.
바, 바다의 밑바닥!?
나는 황급히 창밖을 본다. 확실히 밖은 분홍색 꽃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그 꽃잎은 확실하게 빛나고 있고…….
(이것이…… 바다의 벚꽃…….)
자세히 보면 벚꽃나무의 가지에는 무수한 거품이 얽혀 있어 하나 둘 둥둥 떠오른다. 이곳은 틀림없이 물속이다.
확실히 바닷속 같네요……. 하지만…… 호흡을 할 수 있어요. 옷도 머리도 마른 채로 있고요. 이 건물 안에도 해초 하나 보이지 않고…….
루틸: 이상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네요. 이건 혹시…….
브래들리: 여기는 운디네 유적일지도 모르겠네. 운디네에게는 우리 스쿠아마와는 차원이 다른 이상한 힘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키라의 노래가 열쇠가 되어 유적으로의 문이 열린 건가?
제 노래에 그런 힘이…….
루틸: 분명 여기가 환상의 보주의 흔적일 거예요……! 네로 씨도 근처에 있지 않을까요?
스노우: 노래에 이끌린 곳은 수수께끼의 바닷속 신전……. 이렇게 신기한 일이 겹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군.
라스티카: 그렇다면 제 고향에 전해지던 노래도 유적지의 문을 열기 위해 남겨진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브래들리: 좋아. 앞으로 가자고! 환상의 보주와 네로를 찾아낸다!
히스클리프: ……기다리세요.
갑자기 신전에 험악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돌아보니 등 뒤에는 폴먼트 네이비 병사들이 즐비했다. 순식간에 포위되어 앞길이 막혔다. 그 중에는 스노우와 똑같이 생긴 군인…… 화이트도 있었다.
스노우: 화이트……!
화이트: …….
스노우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화이트는 폴먼트 네이비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화이트는 뭔가 말하고 싶다는 듯이 입을 열었지만, 바로 입을 다물었다.
브래들리: 여어, 폴먼트 네이비의 얼빠진 녀석들. 우리는 급해. 목숨이 아깝다면 아예 물러가던지, 네로가 있는 곳을 자백해라.
히스클리프: ……어느 쪽도 할 수 없습니다.
화이트: 우리도 그대들을 통과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없어서 말일세.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력으로 막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
그런…….
스노우: 브래들리. 다른 사람을 데리고 먼저 가게나. 우리는 잔뜩 쌓여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일세.
브래들리: 하? 뭘 잠꼬대를 하고 있어. 이 사람 수는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터무니 없다고.
라스티카: 그러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루틸: 저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노우: 그대들이? 벌레도 못 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루틸: 이래보여도 전설의 여해적의 아들입니다. 격투술은 심어져 있어요.
라스티카: 그리고 저희는 스쿠아마. 타고난 기프트가 있죠. 앞으로 연주할 선율은, 폴먼트 네이비 여러분께 바칩니다.
라스티카는 인사를 하고 오카리나를 꺼냈다. 들려온 것은 그 노래와는 또 다른 선율이다. 오카리나가 연주하는 선율은 아름다웠지만, 곧 병사들의 모습이 이상해졌다.
해군: 뭐, 뭐야!? 몸이 멋대로……!?
폴먼트 네이비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혹시 이것이 라스티카의 기프트……?
브래들리: 대단한 걸. 음색에 의한 매료인가.
스노우: 틈이 생겼네! 브래들리, 아키라. 지금이다! 가게나!
스노우의 목소리에 들뜬 듯 나와 브래들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춤추는 병사들 사이를 차례차례 빠져나간다.
히스클리프: ……! 기다려. 하트 대장을 방해하게 두지는 않아!
뒤덜아보니 금발의 군인이 총을 겨누고 있다. 라스티카의 선율을 간신히 뿌리친 것이다.
브래들리! 총에 겨눠지고 있어요!
브래들리: 돌아보지 마! 한 번 동료에게 맡기면 믿고 등을 맡겨라!
네, 네……!
브래들리의 말에 나는 두려움을 삼켰다. 나머지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달렸다.
(여러분. 부디 조심하시길……!)
히스클리프: 멈춰! 멈추지 않으면 너희를 쏘겠다!
루틸: 안 돼!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 (뭐, 뭐야!? 닿은 곳에서 힘이 빠져서…….)
히스클리프: ……윽.
루틸: 좋았어. 후우, 먹혀서 다행이다…….
히스클리프: 몸이 저려서 움직이질 않아……. 이건, 기프트……?
루틸: 네. 이 힘이라면 이렇게 상처주지 않고 싸움을 멈출 수 있어요……. 그래서 꽤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여기서 잠깐 누워 계세요.
화이트: ……히스클리프! 무사한가?
스노우: 오오, 역시 화이트일세. 훌륭하게 라스티카의 매료를 뿌리치다니.
화이트: ……스노우…….
스노우: 잡어는 녀석들에게 맡겨도 문제 없을 것 같군. 자…… 그러면 다음은 그대인가. 그렇지, 화이트.
화이트: …….
모처럼 이렇게 재회했으니 가끔은 형제 싸움도 나쁘지 않겠네. 주먹으로 공백의 시간을 채울 수 있는지, 시험해보지 않겠나.
우리는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이상하게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한 감각에 따라서, 그냥 달렸다. 가는 곳에서 희미하게 푸른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봐, 봐주세요. 저기……!
탁 트인 공간에 푸른 보주가 장식되어 있다. 잠시나마 있을 법한 보주의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하늘색 머리……. 보주에 손을 뻗으려고 하는 네로와 또 한 사람. 훌륭한 군복을 입은 청년이다.
브래들리: 네로!
네로: ……! 캡틴. 아키라. 왜 여기에!?
무르: 헤에! 너희들, 무슨 수라도 쓴 거야? 여기까지 잘도 도착했네.
청년이 돌아보며 편안한 어조로 말한다. 고개를 갸우뚱한 모습은 자못 제멋대로인 것 같고, 고양이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빈틈이 없다. 망설임을 보이면 순식간에 처리될 것 같은 긴장감. 보통내기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브래들리는 그의 말을 시원하게 받아쳤다.
브래들리: 너는 입 다물고 있어.
13화
브래들리: 어이, 네로! 왜 인사도 없이 배에서 내리는 거냐! 거기 단발머리 군인이 뭐라고 했어?
무르: 단발머리 군인이라니 싫다. 나에게는 무르 하트라는 이름이 있어.
네로: …….
네로. 저, 아직 당신이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것이 많이 있어요. 말도 없이 작별이라니, 외로워요. 만약 뭔가 사정이 있다면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무르: 너희들. 너무 네로를 괴롭히지 마. 그가 여기에 있는 것은, 세계를……. 브래들리를 지키기 위해서니까.
에……?
브래들리: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무슨 잠이 덜 깬 소리를 하고 있어. 너 같은 햇병아리에게 지켜질 것 같냐? 나는 죽음의 해적단의 캡틴 브래들리 님이라고.
무르: 그 전에, 한 명의 스쿠아마잖아? 자자, 들어봐. 이건 세계의 이야기야. 그리고 너와 네로의 이야기.
무르라고 자칭한 청년은 주머니에서 책을 꺼냈다. 얇은 페이지를 술술 넘기며 그는 경쾌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무르: 너희도 알다시피 한때 이 세계에는 운디네, 인간, 스쿠아마가 함께 살고 있었지. 운디네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고 스쿠아마가 태어난다. 세 종족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이야. 그것이 격변한 것은 수백 년 전 폭풍우 때. 큰 폭풍으로 많은 육지가 바다에 가라앉고 그것을 경계로 운디네는 멸종. 세계에는 인간과 스쿠아마 만이 남겨졌다……. 라고, 이 역사책에 쓰여져 있지.
그렇게 말하고 무르는 책을 덮었다.
무르: 여기까지는 표면적인 이야기. 이제부터 하는 것이 진짜 이야기야. 수백 년 전의 폭풍으로, 이 세계는 멸망했었어야 했어.
브래들리: 뭐라고…….?
무르: 적어도 모든 육지는 바다에 가라앉을 운명이었어. 그걸 막은 것이 운디네. 운디네는 물의 정령이지만 인간과 그들이 사는 육지 세계를 사랑했지. 물론 자기 자손인 스쿠아마도. 그래서 육지 세계를 돕기 위해 특수한 보주를 만들고 안에 폭풍을 봉하기로 한 거야.
무르: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의 큰 폭풍이다. 그런 거, 아무리 물의 정령이라도 다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대가로 스스로가 가진 힘 전부를…… 생명을 희생시켰다.
그, 그런……!
브래들리: 그때 만들어진 것이 환상의 보주라는 건가.
무르: 정답. 덕분에 세계에는 육지가 남았지만 폭풍을 계속 막기 위해서는 운디네의 힘이 필요했어.
(그렇지만, 운디네는 이미 멸종한 게 아니었나 ……?)
브래들리: ……알았어. 운디네는 멸종해도 스쿠아마는 존재한다. ……그거지?
무르: 야생 짐승처럼 날카롭네! 그래. 이 보주는 운디네의 피를 이은 자. 정확하게는 스쿠아마의 목숨을 구하는 거야.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주가 마치 온 세상에 보이지 않는 촉수를 펴듯, 각지의 스쿠아마가 생명을 흡수당해 폭삭폭삭 쓰러져 갔어. 옛날에는 매년 셀 수 없을 정도의 희생자가 나왔었지. 희생이 너무 커서 다시 정부도 골머리를 앓았었다나.
네로: 정부는 대안을 찾았어. 찾고 찾고, 또 찾았지. '능력 없음' 이라고 불리던 스쿠아마가 사실은 기프를 가지고 있다라는 것. 그것이 보주의 힘을 유지하는 것…… 이라고.
브래들리: 설마……. 어이. 그건……?
네로: ……나 같은 '능력 없는' 한 사람을 바치면 다른 스쿠아마의 생명은 빨려 들어가지 않아. 캡틴, 당신의 목숨도.
브래들리: …….
무르: 다수의 희생보다는 한 사람의 희생을. 푸른 문장의 스쿠아마의 희생에 의해서 세계는 평화를 유지해온 것이야. 정부는 이 진실을 숨겨왔어. 거기에 한 몫하는 것이 우리 폴먼트 네이비. 우리들의 역할은 푸른 문장의 스쿠아마……. 보주의 아이를 발견하고 역할을 할 때까지 지키는 것. 그리고 이 비밀에 접근하는 사람을 없애는 것.
네로: 이걸로 알았지. 내가 이 구슬 속에서 잠을 자면 너희들은 아무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어. 내가 자유를 선택하면 이 세계의 스쿠아마는 점점 목숨을 빼앗겨 죽을 거야……. 올바른 선택이 눈 앞에 있어.
네로는 고개를 들어 브래들리와 나를 보았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예쁘게 웃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다 벗겨져버린, 모든 것을 포기한 미소.
네로: 캡틴. 아키라. ……나 따위는 잊고, 건강하게 살아.
브래들리: 네…….
무르: ……자. 마지막 이별은 끝난 것 같네.
무르는 조용히 웃고 손가락을 올린다. 이내 숨어 있던 부하가 뛰어나와 브래들리와 나를 눌렀다.
우왓! 뭐, 뭐하시는 거예요!?
브래들리: ……윽. 네 녀석들, 나와 아키라에게 이상한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무르: 안심해. 주사기로 기억을 지우는 약을 맞을 뿐이야. 보주의 아이에 얽힌 일은 모두 잊혀진다. 단지 그것 뿐.
브래들리: 하……?
(그것 뿐이라니……. 모처럼 네로가 여러가지를 가르쳐 줬는데…….)
공복 때 먹는 밥의 맛도, 달밤에 빛나는 벚꽃의 바다도, 아침 식사를 위해 물고기를 낚는 법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 여행의 일도, 네로도 ……!)
그렇게 바라는 순간, 손목의 멍이 강한 빛을 발했다.
브래들리: ……!? 뭐야? 아키라의 손목과 보주가 빛나고 있어…….
무르: ……! 그 날개……. 혹시, 너는 진짜……?
라스티카: …….
해군: 으윽……. 추, 춤이 멈추지 않아……!
루틸: 에잇!
해군: 안 돼……. 이쪽은 몸이 움직이지 않아……!
히스클리프: (이제 내 부하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내 몸도 움직이지 않아 ……. 미안해, 모두들. 상관인 내 책임이야.)
히스클리프: (남아있는 것은…… 화이트 소령 뿐인가.)
스노우: 이야, 강하구먼. 이 힘, 역시 나의 반쪽인 화이트일세.
화이트: 그건 이쪽이 할 대사네. 그 모습……. 그 싸움 법. 그대…… 진짜 스노우군……. 죽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어…….
스노우: 뭐라고!? 내가 죽었다고!? 누군가. 그런 거짓말을 한 건.
화이트: 아버님……. 아니, 당신과 생이별한 후 나를 키운 남자일세. 이미 죽었지만. 그 녀석은 폴먼트 네이비의 간부. 그때는 나도 어린아이여서 의심할 줄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스노우를 찾으러 도망치지 못하게 하도록 거짓말을 한 것이겠지.
스노우: 화이트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아직 살아 있으면 내가 직접 숨통을 끊을 뻔했네.
스노우: ……화이트. 사랑스러운 반쪽과 진심으로 싸우고 싶지 않네. 형제 싸움으로 가라앉는 사이에, 슬슬 화해하지 않겠나?
화이트: 나도 가능하다면 그대와 싸우고 싶지 않지만…….
히스클리프: (화이트 소령도 싸우고 싶어하지 않아. 원래 세계를 위해 억지로 끌어낸 전의다. 이 이상 버텨도 이쪽에 이롭지 않아.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은 하트 대장을 위한 시간 끌기. 대장이 대안을 찾아낼 가능성에 걸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다면 차라리…… 저들도 끌어들이자.)
히스클리프: 스노우 씨. 그리고 다른 분들도. 저의 말을 들어주시겠나요?
스노우: 어째서지? 다시 우리를 갈라놓을 셈인가?
히스클리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조금만, 저희를……. 무르 하트 대장을 믿어 주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구할 대안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 만약 여러분들도 그것을 믿어주신다면 보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해군: 뭐야, 이 빛……!? 누, 눈부셔……!
브래들리: 빈틈이다!
해군: 으악!
브래들리는 힘으로 구속을 뿌리치고 선명한 몸놀림으로 주사기를 튕겨냈다. 나를 붙잡고 있던 병사도 날려버리고 브래들리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네로를 바라본다.
브래들리: 돌아와, 네로!
네로: ……하? 당신, 지금까지 한 얘기 못 들었어? 나는 너희, 너를 위해서…….
브래들리: 너야말로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냐? 나는 내 목숨을 위해 부하를 버리는 머리가 된 기억은 없어!
네로: ……!
브래들리: 나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라고 해서 속이지 마라. 중요한 것은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가다.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었지?
네로: 캡틴…….
브래들리: 정해진 운명 따위는 걷어 차버리면 돼. 너에게는 그것을 위한 다리가 붙어있잖아.
네로: 하지만……. 무르가 말했었어.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브래들리: 뭐야 그게. 너는 아직 차보지도 않았잖아. 그 발로 시험해 보고, 그래도 차버릴 수 없다면 내 발이든 지혜든 빌려줄게.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너의 말로 들려줘, 네로.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사소한 거짓말로 속이지 마!
네로: …….
네로: 나…… ……나…… 는…….
14화
네로: 나는…… ……살고 싶어……. ……당연하잖아!? 나도 사실은 캡틴과, 단의 모두와 여행을 계속하고 싶고 밥도 더 만들고 싶어! 그래서 열심히 했어. 힘내서, 힘내서, 겨우 포기했는데. 두 번이나 이런 말을 하게 하다니……!
네로……!
스노우: 네로, 아키라! 브래들리도 무사했군.
스노우의 목소리에 뒤돌아보면 거기에는 모두가 있었다. 스노우와 라스티카, 화이트, 루틸, 그리고 지탱받고 있는 또 다른 군인도.
히스클리프: 죄송합니다, 무르 하트 대장. 저 …….
무르: 히스클리프 블랑셰 중위. 마침 좋은 때에 모두를 안내해줬네. ……너에게 부탁받은 대안, 제시간에 도착한 것 같아.
히스클리프라고 불린 청년은 푸른 눈동자를 번뜩인다.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은 후 무르는 다시 우리를 돌아보았다.
무르: 딱 하나, 네로와 세계 둘 다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네로 / 아키라: 에……!?
무르: 다만 거기에는 혜성의 천사, 아키라. 너의 협력이 필요해.
혜성의 천사. 저, 저요……?
무르: 여기에 모두를 이끈 것이 그 증거야. 그걸로 부족하다면 너의 손목을 봐. 날개 모양의 멍이 있지 않아?
확실히…… 있긴 하지만. 혹시 라스티카의 연주를 들었을 때 이 멍이 아팠던 이유는…….
무르: 네 안에 잠들어 있던 힘이 깨어난 거야. '운디네의 노래' 에 의해서.
무르는 천사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처럼 두 손을 우아하게 벌렸다.
무르: 혜성의 천사는 사람도 운디네도 스쿠아마도 아니야. 운디네가 말했다고 하는 환상의 존재지. 정령들에게 있어서는 길잡이……. 유난히 빛나는 별과 함께 나타나는 혜성의 천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크기는 스쿠아마의 목숨을 아무리 모아도 미치지 못할 정도야.
……라는 것은, 즉…….
무르: '혜성의 천사' 의……. 너의 힘을 이 보주에 쏟으면 세계는 유지된다는 것. 스쿠아마의 생명을 빨아들이지 않고 말이지.
네로: 그건…… 아키라도 무사할 수 있는 건가? 아키라가 내 몸을 대신하면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아!
무르: 그 답은 운디네의 노래 안에 있어.
무르는 눈을 감고 귀에 익은 선율을 흥얼거린다.
무르: '혜성의 천사여. 부디 그 날개로 만져다오. 사랑스러운 그대에게 하늘로 가는 다리를, 사랑스러운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별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할을 끝낸 혜성의 천사는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간다……. 그렇게 남겨져 있어.
네로: 있어야 할 장소라니 뭐야……. 결국 아키라는 사라지는 거잖아!
네로…… 고마워요. 하지만 아마 괜찮을 거예요.
네로: 괜찮다니……. 나를 대신하겠다고……?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돌아갈 장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꿈에서 들린 몇 개의 목소리. 따뜻하고, 그리운, 나를 부르는 목소리.
소중한 누군가가 분명 어딘가에서 저를 기다려 주고 있어. 그러니까 분명 괜찮아요. 모두와 헤어지는 것은 쓸쓸하지만 …… 제가 돌아가는 곳은 외로운 바다의 밑바닥이 아닐 테니까요.
네로: 아키라…….
나는 네로에게 웃어보이고 나서 무르를 마주본다.
당신은 혜성의 천사에 대해 알고 있었죠. 그렇다면 혜성의 천사의 힘을 보주에 쏟는 법도 알고 있나요?
무르: 알지. 계속 계속 찾아다녔으니까. 아까 노래했던 대로 그 날개가 새겨진 오른손으로 보주를 만지고 운디네의 노래를 부르는 거야.
무르: 하지만…… 정말로 괜찮겠어? 이 방법을 실제로 시도한 사람은 없어. 너의 생명 보장은 파도 사이의 거품만큼 희미할지도 몰라. 다시 선택한다면 지금이야.
네. 마음을 정했어요.
걱정스럽게 이쪽을 바라보는 모두와 하나하나 시선을 맞춘 후, 나는 몸을 돌려 보주에게 다가갔다.
(모두들, 고마워요. ……모두에게 받은 상냥한 만큼, 나도 모두에게 힘이 되고 싶어.)
지금까지 스쿠아마의 목숨을 빨아들인 보주. 나는 심호흡을 하고 오른손을 뻗는다.
보주 씨. 제 힘을 드릴게요. 그러니까 네로와 모두를 도와주세요.
'……보름달 뜨는 그 봉우리를 올려다보는 것은 벚꽃. 그 중에서 나는 소원을 비네. 혜성의 천사여, 부디 그 목소리로 노래해다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나의 긴장은 풀려갔다. 나는 이 노래를 잘 알고 있다. 이 노래는 여기서 불려져야 한다.
'흘러가는 벚꽃의 빛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바다는 꽃의 부교. 그 밑에 나는 잠든다. 혜성의 천사여, 부디 그 날개로 만져다오.'
노래가 진행될수록 손목 자국과 보주가 빛난다. 빛은 순식간에 강해져 이윽고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당신에게 하늘로 가는 다리를, 사랑하는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빛 속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는 것 같다. 세계를 위해 잠이 든 운디네들, 스쿠아마들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 ……혜성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무수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부신 빛을 견디다 보면, 이윽고 빛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끝났나……?)
보주는 어떻게 되었나요……?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보주를 확인한다. 눈앞의 보주는…… 맑고 깨끗한, 푸른 빛을 되찾고 있었다.
네로: 이건, 성공이라는 건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어라? 네로. 당신의 문장! 파랗던 문장이 검게 변했어요! 브래들리와 같은 색으로……!
네로: 에…….
무르: 해냈어, 아키라! 의식은 성공! 대성공이야!
해…… 냈다……!
브래들리: 대활약이잖아, 아키라!
히스클리프: 대단해……. 세계가 바뀌었어…….
네로: 아키라, 당신 정말 대단해.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아니, 그걸로는 너무 부족하지. 모든 스쿠아마와 세계의 은인이다!
너, 너무 치켜 세워주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네로는 붕붕 고개를 저으며 내 손을 잡는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를 보자 나는 괜히 마음이 놓였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이 사람이 자신의 소원을 포기하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브래들리에게 머리가 쓰다듬어지거나 스노우에게 안기는 동안에도 조용히 서있는 이들이 있었다. 폴먼트 네이비 사람들이다.
(무르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네로를 도울 수 없었어. ……그도 은인 중 한 사람이야.)
……저기.
내가 군인들에게 다가가자 무르가 군복 자락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신사적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르: 고마워, 아키라. 우리 세계를 위해 힘을 써줘서. 너는 정말로 천사야.
저야말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당신의 지식으로 네로를 도울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무르: 감사의 말은 필요 없어. 너 덕분에 나의 오랜 사랑이 보답 받았으니까.
에? 사랑?
무르: 맞아. 나는 운디네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거든. 그래서 사랑하는 운디네의 피를 이어받은 스쿠아마도 구하고 싶었어. 검은 문장을 가진 자는 물론, 푸른 문장을 가진 자도.
그러면 당신이 보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건…….
무르: 정부와 군이 숨겨뒀던 연구 내용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입수했으니까! 그 때문에 계속 상층부에게 불리거나 친구들이 어이없어 하기도 했지만 말이야! 그 정도로는 나를 말리지 못해. 나의 연정을 얕본 것이 상층부 최대의 오산이지.
사랑을 위해서 거기까지 목숨을 걸다니 ……. 엄청난 일편단심이라 멋있네요.
무르: 와아, 영광인 걸. 세계의 구세주에게 칭찬받아 버렸어!
무르: ……그래도, 지금까지 희생 되어버린 자들은 돌아오지 않아.
무르는 일어서서 보주 표면에 손바닥을 대고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무르: 늦어져서 미안해.
그렇게 속삭인 그의 표정은 조금도 가벼운 분위기가 없었다. 보고만 있어도 심장이 멎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15화
화이트: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정말로 대안을 맞추다니.
히스클리프: ……불가능해 보여도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하트 대장님은 저희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저도 정부와 군의 기술 독점에 대해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싶습니다.
스노우: ……그러나 설마 환상의 보주가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있었으리라고는.
브래들리: 뭐, 상대는 전설의 비보니까. 찾아낸 것만으로도 공이잖아. 게다가…….
브래들리는 네로 쪽을 보자 히죽히죿 웃으며 그와 어깨동무를 했다.
네로: 뭔가요? 갑자기.
브래들리: 어이. 거기 그, 무르 하트 대장이었나. 이 몸은 죽음의 해적단의 브래들리 베인. 환상의 보주를 노렸지만, 특별히 봐주지. 그 대신 이 녀석을 받아내겠어!
네로: 어, 이 녀석이라니……. 나!?
무르 아하하. 폴먼트 네이비를 상대로 그런 터무니없는 협상을 하다니, 엄청난 해적 근성이네! 좋아. 줄게! 단, 네로가 그러고 싶다면 말이지!
네로: 무르……. 정말 그래도 돼?
무르 당연하지. 너는 이제 자유야. 마음에 부는 바람에 돛을 달고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면 돼.
밀 이삭빛 눈동자는 망설이듯 흔들렸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네로는 천천히 브래들리를 바라본다.
네로: ……나, 정말로 '능력 없음' 이 되어버렸는데. 정말로 괜찮아?
브래들리: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너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고, 가르쳐준 것도 빨리 배우잖아. 기프드고 없다고 해도, 너에게는 산더미 같은 재능이 있어.
네로: 재능……? 나에게……?
브래들리: 아아. 일류 해적이 될 수 있는 재능이다.
브래들리는 주먹을 만들어 네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브래들리: 그 옷을 한 벌 앞에 걸칠 수 있게 되면, 나를 '브래드' 라고 부를 수 있게 해줄게. 그때까지 잘 다룰테니 각오하라고!
네로: ……아, 하하……. 살살 부탁드려요, 캡틴.
브래들리 옆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부드럽게 네로가 웃는다. 그 광경에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다. 두 사람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슬슬 헤어질 시간이구나.)
이별의 예감이 들었던 그 순간, 몸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빛나면서 조금씩 몸이 투명해져간다.
네로: 아키라…….
죄송해요. 벌써 헤어질 시간이 온 것 같아요.
내 말에 해적단에서 만난 모두가 달려와준다. 폴먼트 네이비 사람들도 멀찍이 사라지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북받치는 마음을 꾹 참고 눈앞의 루틸, 스노우, 라스티카에게 시선을 옮긴다.
루틸: 세상을 구한 상냥하고 용감한 해적 아키라의 이야기……. 당신이 남겨준 보물을, 저는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라스티카: 모든 이별은 재회의 시작. 아키라, 언젠가 또 당신과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낼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스노우: 잘 가게나, 아키라. 그대가 원래 세계에서 영혼의 반쪽……. 소중한 사람들과 재회하기를 바라네.
세 사람의 말에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들이 물러난 후 나의 앞에 선 것은…… 네로와 브래들리다.
네로: 아키라. 너에게 받은 자유, 소중히 간직할게. 떨어져 있어도 아키라는 우리의 동료야. 빗자루를 볼 때마다 너에게 닿도록 손을 흔들게.
브래들리: 너는 또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래도 낙오자가 되었을 때는, 우리 배로 돌아와. 언제든지 환영회를 열어줄 테니.
아하하, 고마워요. 그러면, 만약에 떨어져 버린다면……. 이번에는 꽃이 들어간 술에 도전해볼까. 그때는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네로: 숙취가 생기지 않는 마시는 법을 공부해둘게. 나는 너의 교육 담당이니까.
부탁할게요, 네로. 정말 좋아하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네로는 웃었다. 모두가 웃고있다. 부드러운 풍경이 서서히 하얗게 질려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바다에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 ……아키라…….
으음…….
네로: 괜찮아. 아키라!?
네로……. 어라? 배는 어디에……?
브래들리: 배?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거냐. 뭐, 그렇게 잤으니 어쩔 수 없지.
에?……여긴 ……. ……내 방……?
황급히 일어나 보니 거기에는 네로와 브래들리 뿐만이 아니라 무르, 스노우와 화이트, 히스클리프. 그리고 루틸과 라스티카. 계속 만나고 있었던 모두가 익숙한 내 방에 모여있었다.
루틸: 다행이다……. 무사히 눈을 떠줘서. 걱정했어요, 현자님.
무르: 안녕, 현자님! 기분이 어때? 기뻐? 슬퍼?
으음……. 굳이 말한다면 그립다……? 제가 왜 자고 있었죠?
무르: 헛간에 뒀던 마법 도구가 오작동 한 것 같아! 하루종일 잠만 잤어!
스노우: 상냥한 그대는 무르의 숨바꼭질에 어울려 주고 있던 것이겠지.
화이트: 무르를 찾으러 현자가 헛간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꿈을 보여주는 마법 도구가 작동해버린 것 같네.
히스클리프: 쓰러져 있는 현자님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라스티카: 모처럼 꿈을 꾼다면 부드러운 침대에서 즐겨주셨으면 해 모두 현자님을 방까지 운반한 것입니다.
네로: 몸은 아프지 않아? 보기에는 괜찮다고 해도 넘저였을 때 이상한 곳에 부딪혔으면 큰일이야.
모두들……. 여러가지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침대에서 푹 자게 해준 덕분에 몸은 건강해요!
무르: 와이! 건강한 현자님, 너무 좋아!
고양이처럼 침대에 뛰어오른 무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무르: 저기, 그 마법 도구가 보여준 꿈은 어떤 꿈이었어? 재미있는 꿈? 재미없는 꿈? 세상의 상식이 전부 뒤집힌 꿈? 물구나무 설 테니까 알려줘!
아하하, 물구나무 서기는 안해도 돼요. 으음…… 그렇네요. 일단 무르는 군대의 높은 분이었어요.
무르: 내가 군의 높은 분인가. 그건 이미 엉망진창인 군대였네!
저는 네로와 브래들리와 함께 배를 타고 모험을 하고 있었어요.
브래들리 / 네로: 하?
네로: 너랑, 나랑, 이 녀석이 같은 배에……?
네. 브래들리가 캡틴이었고 네로가 해적……. 아, 바다의 도적같은 것으로 키워버리겠다! 라는 느낌이라 긴장했어요.
브래들리: ……하. 그건 확실히 꿈이 틀림없네. 말도 안되는 소리야.
아, 브래들리……!
브래들리는돌아서더니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스노우: 뭔가. 브래들리 녀석, 차갑구먼.
화이트: 현자에게 걱정 하나 없이가버리다니, 눈사람보다 더 차갑군.
화가 난…… 걸까요?
아, 아마…….
네로: ……어차피 배라도 고픈 거겠지. 주방에 뭐라도 두면 올 거야.
이쪽을 보는 네로의 표정은 밝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의 미소에 뜨겁게 타던 불길이 사라져, 새하얀 재만 되어 버렸을 때와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잘은 말할 수 업시만, 꿈의 마지막에 본 네로의 웃는 얼굴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 )
그때, 내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부, 부끄러워……. 계속 자서 그런지 배가 고파요…….
네로: 부끄러워할게 뭐가 있어. 살면서 배가 고픈 건 당연한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 일이 사라져 버리거든.
네로: 그럼, 자고 일어난 현자 씨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볼까.
네로는 나를, 그리고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아련하게 보며 웃었다. 창문으로 불어든 바람이 네로의 머리카락을 흔든다.
바람을 타고 침대 위로 내려앉은 꽃잎은 벚꽃의 그것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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