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파우스트…….
파우스트: 조금 마을 구경을 하고 올게.
그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파우스트는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레녹스가 브래들리를 돌아보았다.
레녹스: 브래들리. 저 분은 자기 눈앞에서 죽어간 것들을 잊지 않아. 모든 것을 업고 지금을 살고 있어.
레녹스: 지난 번 액재 뿐만이 아니야. 전란의 세상을 살다 보면 동료들이 죽는 일도 드물지 않았어.
레녹스: 그러니까 예전의 동료가 만일…… 파우스트 님을 책망하는 일이 있었다면 정면으로 받아들이려 했을 뿐이야.
브래들리: 하, 그냥 자학이잖아. 없는 불평을 하라고 해도 죽은 녀석들이 더 곤란하지. 지난 번의 액재는 오즈한테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 어설픈 힘으로는 당해내지 않는 것은 명백해. 그래도 마음대로 항거하고 돌이 된 녀석들이 저주꾼에게 불평할 일이 뭐가 있어.
레녹스: 동감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난 번에는 희생자가 너무 많았어. 돌고 도는 것 하나로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브래들리: 죽어가는 녀석을 본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 세상은 단 한 사람의 손바닥에 올라가 있지 않아.
브래들리: 제멋대로 살아서 제멋대로 돌이 된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있는 거야.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그 녀석들과 다시 만났을 때는 선물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들려주면 돼.
브래들리도 파우스트도 레녹스도 각각의 사생관이 있고 죽은 자를 애도하는 마음이 있어. 하지만 기질이 다른 것이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방식이 각국에서 다르듯이 누구나 각자의 마법으로 사망자를 애도하고 있다.
(나는 아직 동료를 잃어버린 경험이 없어. 그러니까 간단하게 공감 같은 건 하면 안되겠지만…….)
가령 그렇게까지 교류가 깊지 않았더라도 해도 매년 얼굴을 맞대고 계속 싸운 동료를 떠올리며 자책하고 싶은 마음도, 그것을 분명 동료는 원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도 둘 다 그들이 살아온 수백 년의 시간을 두고 느낀 거짓 없는 마음일 것이다. 그 일부분을 내가 지금 만지고 있다.
카인: 나는 파우스트의 마음을 알아.
거기에 젊은 목소리가 끼어든다. 광장으로 돌아온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물을 받으러 간 카인이었다.
카인……. 이야기를 들으셨군요.
카인: 미안. 조금 더 기다리려고 했는데 모처럼 끓여준 수프가 식을 것 같아서.
제단으로 다가간 카인의 손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카인: ……지난 번의 액재는 피해가 컸어. 마법관에 신세를 진 마법사들이 잔뜩 희생되었지.
카인: 그 녀석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지킬 걸. 어떻게 하면 헤어지지 않고 끝났을까. 아무래도 생각하게 돼.
입술에서 흘러내린 말은 카인의 마음까지 콱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통절하게 울렸다. 동료를 생각하는 그가 지난 번 액재로 잃은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남 몰래 각국에 나갔던 일을 떠올린다. 손에 꽃을 바친 그 손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선물을 가지고 돌아오는 상냥한 미소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카인은 문득 표정을 풀었다. 그리워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음 말을 돌린다.
카인: 중앙 나라의 마법사에게 연상의 자매가 있었어. 조금 이상하지만 친절하고 마법사의 이야기와 마법의 규칙을 들려주었지. 나를 잘 돌봐주어서 마법관에 있는 동안에도 얼굴을 보여줬고 몇 번인가 셋이서 나간 적도 있었고.
카인: 게다가 남쪽 마법사들도. 기억 나, 브래들리? 할머니들이 만들어주는 로리토데포로, 소박하고 맛있었잖아.
브래들리: ……뭐.
카인: 현자님도 리케들도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재현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아서.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다음에 도와드릴게요. 저도 요리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맛을 보면서 같이 만들어요. 꼭 추억담도 듣고 싶어요.
나의 답을 카인이 잔잔한 미소로 받아준다. 조금은 포근해진 공기 속에서 따뜻한 김이 흔들리고 있다.
(모두들의 안에 제대로 남아 있어. 이제 없는 사람에게 배운 것도, 요리의 맛도, 여러가지 추억으로…….)
나는 카인, 브래들리, 레녹스, 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닿기를 빌며 말했다.
제가 지금 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아요. 당장 액재를 쓰러뜨리거나 전 세계의 이변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눈 앞에 있어주는 모두들과 무사히 이 의뢰를 해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레녹스와 카인은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브래들리도 눈을 내리깔고 다시 등을 벽에 맡긴다. 말은 없어도 모두의 미소가 그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그럼…… 파우스트와 합류해서 진혼의 야회를 시작하죠.
리케: 이쪽으로 오세요, 여러분. 곧 야회가 시작될 거예요.
갈색 머리의 사나이: 오, 많이 화려해졌네. 모두가 준비한 제물도 예쁘게 줄 서 있어.
리케: 후후, 이 꽃도 아주 예쁘게 꾸며져 있죠? 모두가 데려다준 변두리의 숲, 자연의 꽃밭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곱슬머리 할머니: 어머 어머. 칭찬을 들으니 기쁘네. 장갑들이 방황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아이들도 숲에서 꽃을 많이 땄으니까.
주근깨 소녀: 밥도 맛있을 것 같아……! 엄마들도 도와줬지?
점이 있는 여성: 맞아. 힘 좀 썼지.
레녹스: 맛있어 보이는 냄세네. 의식에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꽤 호화로운 식사가 갖추어졌는 걸.
브래들리: 채소 뿐만이 아니라 고기도 든든하게 있으면 좋을 텐데. 삶은 거나 구운 것도…….
리케: 편식은 몸에 나쁘다고 네로가 그랬어요. 모두가 자리에 앉으면 브래들리의 접시에 골고루 담아드릴게요.
브래들리: 어른들은 싫어하는 거 안 먹어도 돼. 네 녀석이야 말로 이것저것 먹고 빨리 커라, 꼬마.
리케: 정말이지, 저는 작지 않아요!
와글와글 모두가 자리에 앉는다. 제단 앞에는 향긋한 접시와 장식을 갖춘 파우스트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아름다운 금발의 부인이 예쁜 장갑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 장갑도 제물인가요?
금발의 노부인: 어머나……. 현자님. 맞아. 모처럼이니까 제단에 바치려고.
파우스트: 처녀의 무덤 앞에 올리는 장갑은 매년 그녀가 만들고 있다고 해. 올해는 이변이 일어나서 당황해서 아직 바치지 않았다고 하니까 서둘러서 마무리를 했어.
그렇구나. 매년 공양하고 있다고 했죠. 예쁜 비단과 레이스 장갑……. 어제 봤던 거와 많이 닮았어요.
금발의 노부인: ……그렇네. 분명 지금도 그녀는 이 장갑을 찾고 있으려나.
파우스트: 글쎄. 이곳은 그녀가 잠든 장소는 아니지만 이제 잔치를 하고 영혼을 불러들이자. 제단의 눈에 띄는 곳에 올려놓지.
파우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제단 중앙에 아름답게 만들어진 하얀 장갑을 올렸다. 이윽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고 의식의 준비도 갖추어지자 파우스트가 엄숙히 선언한다.
파우스트: 그러면 이제부터 진혼의 연회를 연다. 방황하는 영혼을 불러오고 그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제단에 기도를.
마법사들: 제단에 기도를.
그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마법사들이 손을 잡고 눈을 감으면 마을 사람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파우스트가 방울을 울린다. 맑은 소리가 어딘가 그립고 구슬프게 울렸다.
파우스트: ……자. 여기서부터 침묵은 필요없어. 다같이 죽은 사람의 추억담을 이야기 해줘. 추억담도 죽은 자에게 제물이 돼.
파우스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당혹감을 머금은 침묵. 그 후에 띄엄띄엄 말이 늘어갔다.
점이 있는 여성: 추억담인가……. 나는 실제로 처녀와 만난 적은 없지만 마을에서는 유명한 아이지.
백발의 할머니: 그렇네. 그 아이는 바느질도 뜨개질도 눈 깜짝할 사이에 외웠어. 화관 만드는 법을 알려줬더니 금방 익숙해져서 여러 개 만들어줬었어.
앞치마 차림의 할머니: 상냥했어. 며느리도 어머니도 되지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마을 사람들의 추억담은 무심코 고요한 분위기가 되어간다. 루틸은 그런 그녀들 옆에 앉아 살며시 말을 걸었다.
루틸: 괜찮다면 이걸……. 제단에 전부 장식하지 못한 꽃이에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화관을 만들지 않겠나요?
앞치마 차림의 할머니: 어머, 좋아.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만들까. 이렇게 하는 거였지.
앞치마 차림의 할머니: 화관. 다 같이 둥글게 만들자. 꽃따기, 가지런히, 흠칫하고, 빙글빙글.
루틸: 어머, 귀여운 노래! 그리고 노래하면서 만들면 외우기 쉽고 즐겁네요.
백발의 할머니: 그렇지. 아이들에게 화관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노래인데 이 노래로 춤을 출 수도 있어. 그렇지?
7화
갈색 머리의 아이: 응! 이렇게 하나칸코, 화관. 다 같이 둥글게 만듭시다. 꽃 따기, 가지런히, 움찔하고, 빙글!
옆에 있던 남자아이는 루틸의 손을 잡자 노래에 맞춰서 빙글빙글 돌고 아기자기한 스텝을 밟았다.
루틸: 후후, 잘하네! 형도 불러볼게.
루틸: 하나칸코, 화관. 다 같이 둥글게 만듭시다. 꽃따기, 가지런히, 흠칫하고, 빙글!
라스티카: 이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노래인지. 나도 같이 해도 될까?
그렇게 말하며 라스티카는 마법으로 만돌린을 꺼냈다.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현을 만지고 곧 잔잔한 음색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멋지네요……. 포근하고 따뜻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색이에요.
라스티카: 이 선율은 죽은 처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까 저쪽 부인에게서 악보를 빌려 저도 마음을 뺏겼어요.
라스티카가 시선을 흘린 끝에 있었던 것은 조금 전 아름다운 금발의 부인이었다. 어쩌면 처녀와 친한 사람이었을까. 웃음 주름이 사랑스러운 그녀는 활짝 웃었다.
금발의 노부인: 당신이 연주하면 그리운데 마치 새로운 곡처럼 들려. 분명 그 아이도 기뻐하고 있을 거야…….
라스티카: 후후, 감사합니다. 그러면 음색에 맞춰서 모두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따뜻한 음색은 자연스럽게 모두의 노래에 다가갔다. 루틸들이 부르는 화관 노래가 덩달아 점점 커져간다. 라스티카는 악기를 든 채 일어섰고, 모두에게 맞추어 연주하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한 노랫소리가 푸른 하늘 아래에서 드높이 울린다.
금발의 노부인: 이 얼마나 평온한 기분인지…….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백발의 할머니: 아아, 정말로. 화관이 만들어지면 그 아이는 머리에 쓰고 이렇게 춤을 추기 시작했지.
앞치마 차림의 할머니: 맞아 맞아. 공주 같지? 언젠가 멋진 왕자님이 함께 춤을 출 수 있을까? 하고 웃었네.
카인: 밥 가져왔어. 이거, 다 같이 먹어도 된대.
금발의 노부인: 어머, 고마워. 이 요리, 그 아이가 좋아했던 거야. 너도 먹어봐.
카인: 아아, 잘 먹을게! 그 전에 그 화관 좀 빌려도 될까? '그라디아스 프로세라'
카인의 주문과 함께 화관이 둥둥 떴다. ……그의 눈 앞으로.
카인: 나는 왕자가 아니지만 에스코트나 춤은 잘 해. 어때. 한 곡 추지 않을래?
카인은 화관의 조금 아래를 바라보며 세련된 절을 했다. 마치 눈 앞에 화관의 소녀가 있는 것처럼.
라스티카가 만돌린의 현을 연주하고 곡조는 일전하여 로맨틱하게 된다. 우아하고 춤을 추고 싶어지는 리듬이다. 카인은 화관을 띄운 채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선명한 움직임에 이끌려 흔들리는 화관 아래에는 정말 처녀의 환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대단해. 마치 무도회 같아…….
아서: 역시 카인이네요. 하지만 사교 댄스라면 저도 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화관의 공주님, 손을.
이어서 아서도 마을 사람들로부터 화관을 받아 그걸 마법으로 띄우고 부드럽게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그 소작은 마치 번쩍이는 왕자님의 망토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근깨 소녀: 좋겠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손을 잡아준다면 처녀도 좋아하겠지?
점이 있는 여성: 그럴 테고 말고. 분명 좋아할 거야.
(모두들, 어느새 밝은 얼굴이 되어가고 있어. 게다가 춤에 이끌리듯이 몸이 흔들리고 있어. 나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일 것 같아…….)
내가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으면 카인이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카인: 몸이 근질근질해지지는 않았나? 오늘은 야회야. 다같이 추억과 춤을 추자!
밝은 목소리에 이끌려 마을 사람들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갈색 머리의 사나이: ……어때. 우리도.
백발의 할머니: 좋네. 그 아이와 춤추는 시간이 나도 너무 좋았어. 춤출까.
금세 곳곳에서 춤이 시작됐고 노랫소리도 점점 드높여져 간다. 햇빛에 싸여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니 교회 구석에서 벽에 기대어 있는 파우스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파우스트. 진혼의 야회를 제안해줘서 고마워요. 이변이나 괴로운 추억으로 흐려져 있던 모두의 얼굴이 지금은 아주 잔잔해져 보여요.
파우스트: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한 일도 아니야. 나는 저주꾼으로서 오즈에게 의뢰를 받은 몸. 이 정도는 해.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의식이 계기가 되어 돌아가신 분의 추억 이야기를 하거나 그 사람이 좋아했던 것을 하고, 그러다가 너무 좋아하던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분명 마을 사람들도 편안할 거예요.
파우스트: ……그래. 그렇다면 일부러 준비한 보람이 있네.
그렇게 말한 파우스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느슨하게 들렸다.
카인: 파우스트, 현자님. 너희들도 춤추는 건 어때?
카인. 아까 춤, 너무 멋있었어요!
파우스트: 아아. 화관 밑의 처녀의 모습도 그렇지만, 다른 모습도 보였던 것 같은데. 중앙 나라의 자매 마법사인…….
카인: 하하. 역시 너도 그 날이 생각났구나.
중앙의 나라의 자매……. 혹시, 지난 번 액재로 돌아가셨다는…….
파우스트: 아아. 너도 알고 있었나?
카인: 내가 이야기했어. 현자님, 사실 중앙의 자매와도 오늘처럼 춤춘 날이 있었거든.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가늘게 뜬 카인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무척 잔잔하다.
카인: 내가 현자의 마법사가 된 해에 말이야. 평소처럼 무사히 액재를 만회한 후에 담화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했어. 만약 '거대한 재앙' 이 닥치지 않게 된다면 뭘 하고 싶냐고. 그러면 그 녀석들, 처녀의 시간을 되찾고 싶다면서. '카인을 사교계에 데려가 공주처럼 춤춰보고 싶어.' 라면서 꽃병의 꽃으로 화관을 만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지.
파우스트: 그래서 복도까지 뛰쳐나와 떠날 채비를 하던 나와 부딪혔었다. 사과하러 왔따고 생각했는데, 사과로 춤은 어떤가요? 라고 했었고.
카인: 너, 바로 거절했었잖아.
파우스트: 당연하지.
카인: 하하. 그때는 지금처럼 마법사들끼리 할 이야기는 적었고. 그 주고받기,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가벼운 말처럼 말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매우 잔잔해 보였다. 바쁘지 않은 나날 속에 있는 소소한 추억담에 나도 흐뭇해진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밝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네. 저도 같이 춰보고 싶었어요.
카인: 아아. 그 녀석들, 남을 대하는 걸 좋아하니까 분명 현자님을 예뻐했을 거야.
카인: ……이런. 안 돼. 이 의식은 마을 처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인데 그 녀석들 이야기만 해버렸어.
파우스트: 그녀들도 이 마을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미래가 넘치는 두 사람이었다. 나는 조밀하게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녀들은 너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어. 생각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흥겨운 대화도 잔치에는 필요해.
카인: 그렇구나…….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 마을 처녀도 그 둘처럼 미워할 수 없는 느낌이었겠지. 마을 사람들의 얼굴 보면 느껴져.
네. 추억담에도 꽃이 피어있는 것 같아서 노래도 식사도 춤도 즐거워 보여요.
파우스트: 아아, 의식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어. 이제 이대로 밤을 기다리면…….
그때, 조금 강한 바람이 광장을 빠져나갔다. 나뭇잎과 꽃잎이 휘감겨 오르는 가운데 달콤하고 향긋한 향내음 속에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콧 속을 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파우스트: 향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나……. 새 것으로 바꿔야겠어.
제단을 곁눈질한 파우스트가 금속 케이스를 꺼내면서 향의 접시에 손을 뻗는다.
카인: 산바람인가? 다른 공물이 날아가지 않도록 밤이 되기 전에 마법을 걸어둘까.
그렇네요. 다른 분들에게도 이따가 부탁드려야겠어요.
(……교체한 향, 아까와 같은 달콤한 냄새야. 기분 탓인가?)
눈앞에서 계속되는 노래와 춤과 웃는 얼굴로 가득 찬 시간. 그것은 밝고 시끌벅적하게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야회를 마치고 우리는 마을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야회의 화사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고, 모두의 얼굴은 환하다.
좋은 야회였네요. 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진수성찬을 둘러싸고……. 굉장히 잔잔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장갑을 든 아가씨도 이걸로 편히 잠들었으면 좋겠는데.
파우스트: 아직 야회는 끝나지 않았어.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지. 오늘 밤은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
물론이에요. 오늘 밤은 절대로 숙소에서 나오지 않을게요.
파우스트: 착한 아이네. 그럼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파우스트.
8화
본인 방으로 들어온 뒤에도 야회의 여운이 남은 것 같았다. 화려하면서도 조금 안타깝다. 왠지 모르게 기분도 안절부절 못하고 당장은 졸음이 오지 않았다. 책상에 대고 오늘 있었던 일을 현자의 서에 쓴다.
……이것으로 쓰고 싶은 건 다 썼나. 역시 밤도 깊어졌고, 슬슬 자야지…….
어라? 이런 시간에……. 누구세요?
아서: 주무시는 동안 죄송합니다, 현자님.
아서. 무슨 일 있나요?
아서: 그게……. 파우스트와 레녹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요.
에……?
문 너머의 목소리는 긴박한 공기를 뿌리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고 살갖이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파우스트와 레녹스, 브래들리를 제외한 마법사들이 있었다.
아서: 아까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가 숙소에서 나간 그림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밤 외출은 삼가 달라고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낯익은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카인: 아서에게 이야기를 듣고 파우스트들의 방을 찾아갔는데 부재중이었어. 아마 그 둘이 틀림없겠지.
그런. 어째서…….
루틸: 혹시 야회에서 무언가를 깜빡했다던가? 의식에 대해서는 파우스트 씨가 가장 잘 알고 있죠.
리케: 하지만 그러면 저희에게 한 마디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각각의 방으로 나누어졌을 때는 평소와 다른 기색은 없었는데…….
(……어째서 파우스트는 두 번이나 금기에 어기는 짓을. 심지어 레녹스까지……. 파우스트가 금기를 범한 것에 대해 그도 당황스러워 했는데.)
파우스트는 말했다. 진혼의 야회의 금기를 범하면 죽은 사람의 세계로 끌려갈 수 있다고.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했다. 현자의 도움을 받은 생명을 내던지거나 하지 않는다고.
저는…… 파우스트와 레녹스를 믿어요. 분명 밖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라스티카: ……설마.
그 중에서 라스티카가 깜짝 놀란 듯이 목소리를 냈다. 조금 초조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라스티카……? 뭔가 짚이는 게 있나요?
라스티카: 네, 조금……. 어제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저도 파우스트와 레녹스와 함께 괴이한 피해를 조사하고 있었지요? 가축이 습격당한 자리에 남아 있던 기색은 그날 밤 저희와 장난친 장갑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열기는 식지 않았어. 지금 의식을 치르면 그녀의 영혼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라스티카는 거기서 말을 끊고 창밖을 곁눈질로 보았다. 무언가를 판별하듯이 곱게 다듬어진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라스티카: 파우스트는 그렇게 되지 않은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었는 걸지도 모릅니다. 아까부터 정령들이 웅성거리고 불온한 기색이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아서: ……나도 느끼고 있었어. 이것이 선량한 처녀의 영혼의 기척이라면, 약간 이질적인 분위기야.
카인: 불러들인 그녀의 영혼이 변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리케: 변용……. 어째서죠? 파우스트가 말했던 미련이나 원한 같은 것들이 그녀에게도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말인가요?
루틸: 하지만……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사랑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요. 비록 죽음의 계기가 갑작스럽더라도 자애롭게 조문받은 영혼이 나쁜 것이 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은…….
라스티카: ……그렇, 지.
(라스티카……?)
평소 같으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라스티카의 옆얼굴에 약간 그림자가 비쳤다. 그 속에서 카인이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카인: 아키라, 우리는 파우스트들의 뒤를 따를 거야. 비록 전언을 어기고 금기를 범하게 되더라도……. 만약에 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쫓지 않았던 자신을 분명 후회하게 될 테니까.
카인은 자신의 주먹에 눈을 떨어뜨렸다. 낮에 예전에 돌이 된 동료들을 떠올릴 때처럼.
카인: 브래들리는 좋을 대로 하라고 말해버렸지만…… 현자님께는 한 마디 보고해두고 싶었어.
저도 같이 갈게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저는 기다리고 있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친구가 위험한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현자의 힘이 뭔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카인: ……너라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지켜줄게. 서둘러 저 둘을 따라잡자!
숙소 밖을 나가면 귀에 닿은 것은 낮의 의식 때도 들은 방울 소리였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이 선두에 선 카인과 루틸의 뒤에서 라스티카의 빗자루에 실려 어두운 숲을 달려간다. 점점 방울소리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무언가' 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살갗이 약간 오그라들었다.
카인: 방울 소리가 커지고 있어……. 가깝네.
아서: 다들 몸 상태에 변화는 없나?
리케: 네. 지금으로서는 딱히.
루틸: 금기를 어기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듣지 못했네요.
그러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게 최고이지만…….
???: 이…… 야…….
그때 문득, 귓가에 무언가가 들렸다.
???: 이……. 쪽이야……. 춤…….
……?
(뭐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라스티카: 현자님.
그걸 가로막듯이 라스티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졌다. 그의 손이 살짝 내 손을 막듯이 닿는다. 문득 보니 주위에 있는 마법사들도 의아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루틸: 젊은 여자의 목소리……?
리케: 저도 들렸어요. 즐거워 보이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목소리가…….
라스티카: ……아마도 죽은 사람의 소리네. 금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
카인: 죽은 사람의 소리…….
아서: 그런가……. 이렇게 해서 사망자가 금기를 범한 산 자를 부르는 건가.
등에 식은 땀이 맺힌다. 바로 지금 자기들이 의식이 관례에 위배됨을 재확인하고 작게 숨을 삼켰다.
라스티카: 괜찮아. 저희가 옆에 있습니다. 부디 끌려가지 말아주세요.
네, 네……!
잔잔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꼬시는 소리를 뿌리치듯 고개를 흔들었다. 젊은 마법사들도 한층 정신을 바짝 차린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이윽고 시야가 트였다. 그곳은 숲 한가운데 꽃이 만발하여 중간중간 비석이 즐비한 곳.
묘지다…….
그 중심에는 낯익은 등이 두개 있었다.
파우스트: 윽, 너희들……!
달빛 밖에 없는 어스름 속……. 뒤돌아본 파우스트와 레녹스의 앞에 하얗고 거대한 '무언가' 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요, 저거……!
루틸: 크다……. 나무 높이를 훨씬 넘었어요!
카인: 현자님, 내 뒤로! 저건 나도 보여. 분명히 이질적인 기색이야.
어두운 숲 속에서 망령처럼 새하얀 '무언가' 가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다. 달빛에 비쳐 밤바람을 맞으면서 춤추듯 흔들리는 그 모습은 마치 하얀 거인이다.
레녹스: 벌써 쫓아와 버린 건가……. 생각보다 빨랐네요.
파우스트: 아아……. 너희들, 왜 따라 왔어.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때 숲의 나무들과 일대의 화초들이 술렁거렸다. 바람을 휘감듯이 하얀 거인이 긴 팔을 쳐든다.
파우스트, 레녹스……!
바람의 저항을 받아 카인의 품에 안겨 몸을 낮추면서 나는 외치듯 두 사람을 불렀다. 순간 밤의 어둠에 마법진이 떠오른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레녹스의 주문으로 거인의 움직이 둔해진다. 그 틈에 붉은 섬광이 거인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거인의 어깨가 튕겨나가자 가루눈 같은 무언가가 밤하늘에 진다.
리케: 저건…… 장갑……?
리케에 이어서 나도 눈을 집중했다. 듣고 보니 밤하늘에 흩어진 하얀 것은 어젯밤에 본 그 장갑이었다.
카인: 정말이다……. 그럼 이 하얀 거인은, 역시 처녀의……?
아서: 하지만 이 불온한 기색……. 뭔가 다른 나쁜 것이 장갑에 빙의해 버린 것은…….
라스티카: ……아닙니다. 그녀는 어젯밤에 우리와 손을 잡고 춤추려고 해준 장갑의 아가씨입니다. 이런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틀림없이.
거인을 올려다보는 라스티카의 눈동자가 애틋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 옆모습이 아까 숙소에서 무언가를 말하려던 모습과 겹쳤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 어떻게 하시겠나요? 돌아가라고 해도 들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파우스트: 와버린 것은 어쩔 수 없어. 되도록 빨리 없애…….
카인: 파우스트! 뒤에서 장갑의 팔이……!
순간 목소리를 지른 카인이 한 발 내디뎠다. 그러나 그 찰나, 파우스트의 마도구인 거울이 강한 빛을 발하며 뻗은 팔을 견제한다.
레녹스: 핫……!
순간 겁에 질린 듯이 움직임을 멈춘 그것을 날려버린 것은 땅을 박차고 높이 뛰어오른 레녹스다. 그러면서 카인을 따라 뛰쳐나가던 젊은 마법사들을 향해 파우스트는 어깨 너머로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파우스트: 오지 마! 라스티카를 필두로 모두 결계를 세우고 자신들을 지켜. 너희 손으로 정화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절대 손대지 마.
루틸: 하지만…… 저희는 낮에 그녀를 생각해서 야회를 열었어요. 그 영혼에 정화가 필요한다고 하면, 함께 조문하게 해주세요!
루틸의 목소리를 듣고 파우스트는 한 번 말을 삼킨 것처럼 보였다. 구름 사이로 비친 달빛에 비친 옆얼굴이 씁쓸하게 일그러진다.
파우스트: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수상한 일이 많았을 거야. 마을 안팎을 조사하는 김에 이야기를 듣고 다녔는데, 그녀를 처음 본 지주라던가에 대해서도 당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도…… 공손히 의식을 치르면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고개를 풀듯이 몸을 구부리는 하얀 거인을 앞에 두고 파우스트는 단정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절부절 못하게 장갑의 피부가 흔들린다.
파우스트: 하지만 밤이 찾아왔고, 불러일으킨 그녀의 영혼의 기운을 피부로 느끼고 확신했어. 이건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자의 기척이다.
에……?
라스티카: …….
쿵쿵 가슴이 뛴다. 파우스트가 고한 진실에 옆에 있는 젊은 마법사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던 도중 거인은 발밑을 털어내듯 다시 팔을 내민다. 그걸 재빨리 피하면서 레녹스가 말을 이었다.
레녹스: ……저도 방금 들었습니다. 벼랑 근처를 조사했을 때부터 약간 저주의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수십 년 전 사념의 잔재일 뿐. 성불하지 못하고 이 세계를 방황하는 영혼은 절망에 사로잡혀 서서히 변용하고 미워하는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까지 이르렀을 거라고…….
파우스트: 아아. 그러니까 저 장갑의 손가락 하나도 만지지 마. 나쁜 것이 된 처녀로부터 저주를 받을 거다.
루틸: 그런……. 그렇게 따뜻한 조의를 받던 그녀가 어째서…….
리케: 그녀가 미워하는 상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자신이 저주가 되면서까지 죽이고 싶은 상대가 있었다니…….
젊은 마법사들이 동요에 눈동자를 흔든다. 그 속에서 파우스트는 냉정하게 지시를 이어갔다.
파우스트: 라스티카.
라스티카: ……응.
파우스트: 현자들을 부탁해. 이건 금기다. 우리가 끌어당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자나 어린 마법사가 정신을 못 차릴 수도 있어.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너희들을 부르려고 할 거야.
???: 이쪽이야. 이리 와. 이리와…….
???: 이…… 쪽이야……. 함께 춤을 춰…….
윽, 또 그 목소리가……!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가로막듯이 라스티카가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우리 주변에 희미한 빛이 마치 수첩처럼 쏟아졌다.
라스티카: ……하나 여러분에게 전하지 않은 것이 있었어요. 이 슬픈 진실은 모두에게 전하지 말라는 파우스트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게 행복할 수 있다고.
라스티카……. 역시 뭔가 알고 있군요.
라스티카: 네……. 그렇습니다만 모두의 용감한 마음을 함부로 끊을 수는 없어서. 그러니까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파우스트의 말대로 다 같이 결계를. 금기의 권유를 차단하자.
카인: ……알았어. '그라디아스 프로세라'
카인에 이어서 다른 마법사들도 주문을 외운다. 겹겹이 쌓인 빛의 몸 속에서 라스티카가 어둠을 올려다보았다. 다같이 시선의 앞을 따라가면 흰 장갑을 낀 거인이 벌벌 떨고 있었다. 굉풍이 윙윙거리고 나무들의 웅성거림이 고막을 흔든다. 내 몸도 발끝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의 하얀 거인은 유난히 크게 떨렸다고 생각하니 더욱 크기를 키우고 모양을 바꾸어 간다. 흰 천을 여러 겹 겹쳐 만든 모습……. 달빛 아래 창배갛게 물들어 보이는 그것은 마치 무도회에서 번뜩이는 푸른 드레스다.
장갑이랑, 파란 드레스…….
파우스트: 드디어 그녀의 사념이 형체를 이룬 건가.
레녹스: 네. 가혹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입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이 마을에서 더 이상 피해를 확대하지 않는 것.
파우스트: 아아.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파우스트와 레녹스의 마법진이 거대한 드레스를 포착했다. 드레스는 벌벌 떨리고 한쪽 소매가 확 갈라진다. 밤하늘을 춤춘 몇 개의 장갑은 어둠에 녹듯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다시 원래의 드레스로 돌아간다.
아서: 저 드레스는 설마…….
리케: 죽은 처녀가 약혼 파티에 입고 가기 위해 만든 것인가요……?
입어야할 소녀가 없는 거대한 드레스. 주위에서는 장갑이 더 모여든다. 장갑을 삼키고 드레스는 더욱 더 거대해졌다. 일그러진 드레스를 바라보는 라스티카의 눈동자에 희미한 시름이 번져 간다.
9화
라스티카: ……의식 준비를 위해 다같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공물을 모으고 있었죠. 그때 저는 생전에 처녀를 좋아했다는, 아름다운 음악을 흥얼거리는 부인과 파우스트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단에 바칠 장갑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파우스트는 상담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
의식 직전에 제단에 올려진 장갑과 아름다운 금발 여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생전의 처녀와 친했는지, 라스티카가 연주하는 그리운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기억난다.
라스티카: 그녀는 장갑을 가슴에 안고 처녀에 얽힌 매우 슬프고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처녀가 꿈꿨던 멋진 사람과의 약혼 파티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파우스트: 처녀를 처음 본 지주는 악랄한 장사에 손을 대는 마법사였다고……?
금발의 노부인: 네……. 마법사라는 것은 숨기고 있었던 것 같지만. 도처에서 미녀들을 모아놓고는 입에 말하기도 꺼림칙한 일을 하고 마지막에는 사라져 버립니다. 언니도, 혼자서……. 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말렸는데…….
라스티카: 아아, 부인……. 부디 울지 말아주세요. 아름다운 얼굴이 엉망이에요. 당신은 돌아가신 처녀의 가족인가요?
금발의 노부인: 맞아요……. 저는 그녀의 여동생입니다. 언니의 이야기는 어딘가 이상할 정도로 잘 흘러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대방을 몰래 조사한 거예요. 그러더니 그 소문을 알게 되어…….
파우스트: ……말렸지만 그녀는 마차에 타버린 건가? 그날을 위해 만든 파란 드레스와 흰 장갑을 입고.
그 부인은…… 제단에 바치는 장갑을 만들어 라스티카에게 악보를 전달했다는, 그 사람이죠?
루틸: 차분한 분위기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라스티카: 맞아. 그녀는 처녀의 여동생입니다. 마차에 탄 처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여동생 분은 그렇게 말했어요. 마차에 마부는 없었고, 향하는 곳은 마을 쪽이었다고 합니다. 목숨을 건지려고 정신없이 마차에서 내리다가 벼랑에서 떨어졌을 거라고…….
참혹한 이야기에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동화 속 공주가 될 수 있었던 처녀가, 지금 눈앞에서 비뚤어진 형태로 날뛰고 있다.
파우스트: ……꿈이 부서지고 이 세상을 저주하고 싶어진다. 나도 그랬어. 뜻을 이룬 너는, 어설픈 나보다 훨씬 훌륭하군.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파우스트는 처녀를 바라보았다. 약간 자조적인 빛을 머금은 그 눈동자를 숙이고 마도구의 거울을 다시 바로 잡는다.
파우스트: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지금, 그것이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네.
레녹스: 파우스트 님!
드레스 밑단이 물결치고 무수한 장갑들이 채찍처럼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두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몸을 피하듯이 한발 물러선 파우스트 앞에 허리를 숙인 레녹스가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리고 잡아 뜯듯이 팔을 흔들고 장갑 채찍을 일소했다.
파우스트: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진실을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어딘가에서 그 마법사에게 알려질지도 몰라.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다고. 처녀의 여동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지주의 기척을 더듬어 관까지 빗자루를 날려봤는데…… 이미 돌이 되어 있었어. 아마 지난 번 액재 직후에 말이지.
루틸: 액재가 찾아온 뒤……. 장갑의 이변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죠.
설마 처녀의 영혼이 죽인 상대는…… 그 지주를, 그녀 자신이……?
파우스트: 아아. 복수를 한 거야.
레녹스의 발밑에 가지치기 장갑의 채찍이 기어간다. 그 위에서 추격을 걸듯이 큰 팔이 내려앉는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날카로운 주문 이후, 파우스트의 큰 거울이 발광하여 채찍이나 팔은 시간이 멈춘 듯 움직임을 멈춘다. 다음 순간 튕기듯 튀었다.
숨 돌릴 틈도 없는 공격인데, 대단해……. 하지만…….
루틸: 드레스가 두 사람을 덮칠 때마다 공기가 지르르 떨리는 것 같아……. 결계 너머로도 알 수 있어요. 슬픔과 원망, 어쩔 수 없는 후회…….
아서: 그런 것들에 소리없는 목소리로 외치는 처녀의 괴로움과 마음의 눈물이 쏟아지는 것 같아.
파우스트: ……알아. 저걸 정화하는 건 쉽지 않아. 아니, 정화라는 말 하나로 되는 게 아니야. 무고한 처녀의 영혼을 다시 손에 쥐는 것과 같다. 너희들의 손은 더럽히지 마.
카인: ……그렇다면 더더욱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
등을 돌리는 파우스트에 카인이 목소리를 높혔다.
카인: 너희들과 함께 싸우게 해 줘.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진정으로 호소하는 카인에 이어 젊은 마법사들이 말을 잇는다. 자신들을 위해서 몸으로 짊어지려고 한다. 연상의 친구들을 위해.
리케: 저는 신의 사도입니다. 방황하는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루틸: 저희를 걱정해주는 것은 기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파우스트 님들만 대신하는 것은 좋은 이유가 되지 않아요.
아서: 아아. 우리도 가세할게. 지금 그쪽으로……!
라스티카: 윽, 얘들아……!
모두가 결계를 빠져 달려가려고 했다. 그때, 낮게 스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
느닷없이 드레스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났다. 장갑들은 허둥지둥 흩어졌고, 몇 개는그대로 소멸되었다. 어느 새 찾아온 건지 파우스트들이 뒤돌아본 끝에 서 있는 것은 미소를 짓는 브래들리였다.
브래들리: 어이, 저주쟁이. 여전히 음침한 짓 하지 마.
파우스트: 브래들리……. 저 드레스 괴이가 처녀의 영혼인 걸 알고 공격한 건가!?
브래들리: 당연하지. 정령들이 웅성거려서 시끄러워서 어쩔 수가 없었으니까. 상황을 보러 왔더니 큰일이 되어 있잖아.
브래들리는 큰 구멍이 뚫인 드레스를 올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브래들리: 여어, 좋은 밤이네. 아가씨. 너는 원래 마을 제일의 미녀였다지? 게다가 마음씨고 좋고 손재주도 있어. 드레스를 입고 날뛰는 건 취미가 아니잖아. 모처럼 좋은 여자가 망쳐졌네.
거대한 드레스는 하늘하늘 옷자락을 흔들고 조금 부끄러워하듯이 뒷걸음질 쳤다. 브래들리의 말과 그에 부응하는 듯한 드레스의 움직임에 파우스트가 조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우스트: ……브래들리. 그대로 부탁하지. 그녀가 풋풋한 마음을 잃지 않은 채, 한시라도 빨리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레녹스: 가세하겠습니다.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파우스트와 레녹스의 마법이 거대한 드레스를 짓누른다. 드레스는 몸을 비틀고 부들부들 떨었다.
(마법진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고 있어. 이 모습을…… 잃고 싶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녀가 동경했던 행복한 모습이다. 꿈이 깨지고 달라진 모습이 되지 않는다면 이 드레스는 아름답다. 멋진 처녀가 걸치기로 되어 있었던 것. 그것이 지금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브래들리: 이쪽이야, 아가씨.
그녀의 힘에 겨운 저항인지 주위의 공기가 얼얼해져 간다. 브래들리는 어깨에 메고 있던 장총을 다시 겨누자 스코프 너머로 드레스를 응시했다.
브래들리: 길고 나쁜 꿈이었네. '아도노포텐슴!'
브래들리의 총알이 드레스를 관통했다. 심장 근처가 뛴다.
아……!
뿔뿔이 흩어진 무수한 장갑이 도망치듯 나약하게 날아올랐다. 몇 개는 집들 쪽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그것을 본 젊은 마법사들은 드디어 결계에서 뛰쳐나왔다.
카인: 미안하지만 놓칠 수는 없어. 제발, 이 묘지에서 잠들어줘!
아서: 기억해줘……. 너는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았을 거야.
라스티카: 파랑은 행복의 색. 아름답고 예쁜 그 드레스를 더럽히지 않도록…….
루틸: 나중에 당신이 좋아하는 화관을 드리게 해주세요. 그러니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가요.
리케: 이번에야말로 편안하게……. 당신의 영혼을 저희가 바른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이 총출동하여 주문을 외우고, 흩어진 장갑들을 부드러운 빛으로 감싼다. 하지만 각각의 마법의 막을 지금이라도뚫으려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부딪혀 간다. 왜, 왜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냐고 간절하게.
파우스트: '사트리크나도 무르크리도!'
장갑의 흰색조차 흐릿해지는 백광이 시야를 가로질렀다.
……!
눈부심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어떻게든 어렴풋이 열렸을 때는 장갑들이 빛 속으로 녹아가는 중이었다. 마지막에는 별빛같은 반짝임만 남고…… 그것도 이윽고 사라졌다.
레녹스: 이제 곧 새벽이군요…….
레녹스의 말에 어느새 하늘의 어둠의 빛이 누그러지고 아침 빛깔이 섞여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렇게도 무서웠던 금기의 시간이 끝을 알리려고 한다.
정말이다……. 왠지 긴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에요…….
브래들리: 아아. 아직 잔당이 있네.
에? 아, 정말이다……!
브래들리의 말을 듣고 보니 나무 그늘에 하나 장갑이 숨어 있다. 그늘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귀엽고 어딘가 애틋했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됐어. 괜찮아.
한발 내디딘 레녹스를 말리고 숨은 장갑에 다가선 것은 파우스트였다. 겁에 질린 아기 고양이에게 다가가듯이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달래듯이 부드럽게 손을 뻗는다.
파우스트: 난폭한 짓을 해서 미안했군. 이제 편하게 자도 돼.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주문을 외우면서 이끄는 것처럼 파우스트가 일어선다. 이어서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을 벌렸다. 그것에 이끌리듯이 장갑은 태양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하늘로 날아가고 사라져갔다.
파우스트: ……이것으로 전부 치웠군.
10화
파우스트는 모두를 돌아보자 가볍게 눈을 내리깔았다.
파우스트: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마지막에는 결국 너희들의 힘을 빌리게 되어버렸군.
아서: 그런 말투는 그만해줘……. 너희들이 신경 쓰였다지만 분부를 어긴 것은 우리 쪽이야.
루틸: 맞아요. 마지막의 마지막밖에 도와드리지 못했고…….
카인: 아아. 사과를 들을 정도의 도움이 된 건 아니야. 너희들이 없었다면 처녀의 이변의 진실도 깨닫지 못했겠지.
리케: 카인 말이 맞아요. 처녀의 괴로움도 모르고 야회도 진심으로 즐겨버려서…….
파우스트: 그거면 돼. 너희들은 처녀가 적의를 가지지 않았으면 했어. 적의가 있는 것에는 자연히 송곳니가 향하니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소녀의 의식을 돌림으로써 잘 됐어. 라스티카도 모두를 지켜줘서 고마워. 신세를 졌군.
라스티카: 으응, 나야말로. 처녀의 진상은 밝은 현실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조의를 표한 것 같아. 나도, 어린 마법사들도.
……저도예요. 두 분은 나쁜 것이 되어 버린 처녀의 저주로부터 저나 다른 마법사들을 멀리 해줬어요. 게다가 무고한 그녀의 영혼을 지우는 역할을 맡는 것은 자신만으로 좋다고…….
파우스트: 고평가야. 혼자서 처리를 하려고 하다가 결국 너희들을 끌어들이게 되어버렸어. 레녹스도 결국 도와주게 되었고.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게 해서 미안해.
그렇다 치더라도…… 파우스트와 레녹스가 금기를 범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너무 무서웠어요. 만약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가능하다면 저희에게도 말을 걸어주세요. 둘이 저희를 걱정해 준 것처럼 당신들도 저희에게 소중한 친구니까요.
파우스트: …….
레녹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자님. 이번에는 사전에 상담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파우스트 님을 설득하려고 쫓아가는데 필사적으로 되어버려서.
아뇨, 그런……. 레녹스가 파우스트를 쫓아가줘서 다행이에요.
파우스트: ……다음부터는 한 마디 말을 하도록 하지. 아이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니까.
브래들리: 하하. 저주상이 현자에게 꾸중을 듣네.
벼, 별로 꾸짖는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부탁이니까요.
브래들리: 어쨌든 오늘 이야기는 그 녀석들 선물에 딱이야. 남쪽 할머니도 허리를 뺄 걸.
브래들리가 어딘가 놀리듯 말하자 파우스트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파우스트: 흥. ……좋을대로 해.
마을로 돌아가면 우리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모여들었다.
갈색 머리의 사나이: 어이, 현자님들!
여러분! 안녕하세요. 꽤 일찍 일어나셨네요.
갈색 머리의 사나이: 아아. 어제 춤을 잔뜩 춰서 그런지 오랜만에 개운하게 눈을 떴어.
곱슬머리 할머니: 아까 보니까 공물이 다 떨어졌더라. 이건 처녀의 굶주림이 채워졌다는 걸까?
그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주민들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 돌아가신 처녀의 여동생……. 금발 부인의 모습이 있었다. 모두가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만은 가슴 앞에서 손을 잡고 어딘가 기도하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파우스트: ……아아. 이제 안심해도 돼.
갈색 머리의 사나이: 오오……! 역시 어제 의식이 효과가 있었군요.
곱슬머리 할머니: 다행이네. 어젯밤은 왠지 숲 속이 시끄러웠기 때문에 신경 쓰고 있었는데…….
파우스트: 괴이를 쫓고 있었어. 숲의 장난스러운 정령들이 장갑 속으로 파고들어가 액재의 영향을 받아 날뛰고 있었거든.
(에……?)
허리가 굽은 노인: 그렇다는 건 역시 마을의 나쁜 일들은 처녀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건가.
파우스트: 아아. 장갑이 움직이고 있던 것은 모두 숲의 정령들 때문이다. 마을 처녀의 영혼은 더럽혀지지 않았어.
허리가 굽은 노인: 세상에. 그거 참 다행이다……! 이걸로 전부 해결이라는 거군!
앞치마 차림의 부인: 감사합니다, 현자님! 마법사분들!
마을 사람들이 쏟아내는 따뜻한 말들이 마법사들을 감싼다. 아무도 파우스트의 거짓말을 파헤치거나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진의를 이번에야말로 알고 있으니까.
금발의 노부인: 저기…….
서로 기뻐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금발의 부인이 파우스트에게 말을 걸었다. 마법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심한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점잖게 허리를 꺾었다.
금발의 노부인: 감사합니다. 언니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마법관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묘지로 돌아왔다. 루틸의 발언으로 처녀의 무덤에 화관을 두기 위해서.
와아……. 밤의 경치와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형형색색의 꽃들이 잔뜩 피어있어!
리케: 예쁘죠? 어제도 이 근처에서 꽃을 땄어요. 무덤 옆에는 녹음이 가득한 숲이 있어 처녀도 거기서 화관의 꽃을 땄다고 해요.
아서: 으음, 화관은 어떻게 만들지? 여기를 이렇게 해서……?
카인: 이럴 때일수록 그 노래 아닌가? 하나칸무리, 화관. 다 같이 둥글게 만듭시다.
레녹스: 꽃 따기, 가지런히, 움찔하고, 빙글빙글.
루틸: 하나칸코, 화관. 다 같이 둥글게 만듭시다. 꽃 따기, 가지런히, 움찔하고, 빙글!
마법사들은 잔디밭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형형색색의 화관을 엮어 간다.
카인: 이거 꽤 신나네. 어이, 브래들리도 어때?
브래들리: 안 해 안 해. 이런 일 따위. 배에 보탬도 안 되고.
라스티카: 글쎄, 화관은 요정의 왕관이라고도 하지. 잘 만들면 요정이 꽃꿀 차를 가져다 줄지도 몰라.
리케: 브래들리는 아까 그 노래를 다 못 외운 건가요? 그러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하나칸코, 화관. 자요.
브래들리: 흥. 그 노래는 질리도록 들었어. 화관 따위, 마법을 써서 탁 하면…….
리케: 안 돼요. 손으로 해!
잔잔하게 웃는 사람들 속에서 파우스트는 조용히 서있었다. 멀리 바라보면서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파우스트: 아름다운 곳이네. 여기서 방황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
레녹스: ……그렇네요.
레녹스가 중얼거리며 아서들 옆에서 일어선다. 그 손에는 파란 화관이 들려 있었다. 그 드레스에 어울릴 것 같은 화관을 레녹스는 살짝 묘비 앞에 놓았다. 그 옆에서 브래들리가 큰 하품을 한다.
브래들리: 어이, 이제 충분하잖아. 배도 고픈데 돌아가자고.
……그래요. 슬슬 돌아갈까요.
모두가 저마자 빗자루를 내밀기 시작하자 갑자기 브래들리가 루틸과 레녹스에게 말을 걸었다.
브래들리: 어이, 동쪽 요리사에게 오늘 저녁은 롤리토데폴로라고 요청해놔. 내가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 녀석 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를 테니까.
레녹스: 그건 상관없지만…….
루틸: 남쪽 나라의 향토 음식을 브래들리 씨가 요청해 주시다니 기뻐요! 먹고 싶어졌나요?
브래들리: 뭐 그렇지. 오랜만에 남쪽 마법사 할머니의 맛이 먹고 싶어서.
카인: 좋네! 나도 같이 네로에게 부탁하러 갈게. 하지만 그 사람의 맛은 네로의 맛이랑은 조금 다르지. 이렇게, 잘 말할 수는 없지만…….
브래들리: 이것저것 시키면 느낌 있게 해줄 거야. 세세하게 요청하면 의욕 넘칠 걸, 그 녀석.
레녹스: ……파우스트 님.
모두가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한편, 레녹스가 파우스트를 부른다. 부드러운 저음이 말을 걸었다.
레녹스: 저녁식사가 기대되네요.
파우스트는 돌아갈 채비의 손을 멈추고 묘지의 꽃밭에서 푸른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순간 하얀 장갑이 하늘을 날린 것 같았다. 하지만 흰 새를 잘못 본 것 같다. 파우스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파우스트: 그렇지. 그건 확실히 맛있었어.
……죽은 자와 산 자는 결코 먼 존재가 아니다. 다시는 얼굴을 볼 수도, 말을 나누지는 모샇더라도 기억 속에 추억이 있는 한 퇴색하지 않는 나날들이 분명 살아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추억의 맛도, 추억의 춤도, 아직 모르지만…….)
하지만 분명 알고 있다. 방황하는 영혼에 손을 뻗고 동료의 위기에 열심히 목소리를 높인다. 나의 마법사들이 마음 속에 사는 추억들은……. 마른 몸에 스며드는 수프처럼 양지에서 손을 맞잡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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