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시찰의 끝에
대충 시찰을 마친 빈센트 씨는 휴식도 없이 성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드러몬드 씨와 콕로빈 씨도 병사들과 함께 빈센트 씨를 보낼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의 낌새를 느낀다. 멀리서 흥미있는 것을 바라보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기색……. 한밤중 주차장의 고양이들처럼 찾아온 무언가가 떠나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몸 조심하세요.
빈센트 씨는 나를 돌아보았다.
빈센트: 한가지 떠올랐다. 질문하게 해줬으면 하는군.
네, 어떤 건가요?
빈센트 씨의 어떤 질문이라도 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할 생각이었다. 그와 친해지고 싶었으니까. 이날 일이 인간과 마법사의 교류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빈센트 씨의 눈길에도 심술궂음이나 혐오감은 없었다. 신사적이고 사무적인 분위기로, 입을 연다.
빈센트: 오즈의 이야기다. 예전, 내 눈앞에서 오즈가 마법을 쓰려할 때 잠에 빠진 적이 있었지. 마법을 쓰려 할 때마다 그는 잠이 들었다. 그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례적인 일인가? 항상 그런 것인가? 즉…… 특정 조건에서 오즈는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인가. 대답해주길 바란다.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웃는 얼굴을 한 채 동요하고 얼어붙고 있었다. 그것은 오즈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었다. 오즈는 '거대한 재앙' 의 기묘한 상처로 밤에 마법을 쓰려고 하면 잠에 빠진다.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밤이 되면 인간이 막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 사실을 빈센트 씨에게 전달해도 좋을지 순간 판단이 서지 않았다.
…….
그 순간의 기묘한 사이를 빈센트 씨는 놓치지 않았다. 신사적이고 담백했던 빈센트 씨의 눈에 불쾌한 기색이 떠오른다.
빈센트: ……무슨 일이지. 대답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게…….
빈센트: 그러면 한 가지 더, 질문하도록 하지!
빈센트 씨의 목소리가 커져서 나는 뺨을 얻어맞은 듯 몸을 떨었다.
빈센트: 카인 나이트레이에 대한 것이다. 성의 병사가 카인에 대한 소문을 내고 있었다. 요즘 눈이 안 좋은 것이 아니냐고.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무슨 일인지 알고 있나, 현자 공.
카인의 기묘한 상처 때문이다. 카인은 직접 만지기 전에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카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심지어 그는 아서의 호위를 맡고 있다. 아서에게 접근하려는 암살자가 들으면 망설이지 않고 카인을 공격해 아서에게 접근할 것이다. 나는 두 번이나 침묵하고 말았다. 드디어 빈센트 씨의 미심쩍음이 짙어진다.
빈센트: 현자 공!
……윽.
빈센트: ……그런가. 잘 알았다. 마법사의 비밀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인가.
빈센트 씨는 마른 웃음 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에는 또렷하게 실의와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빈센트: 우리들에게 마법사를 신용하라고 요구해 놓고, 그것이 너희들의 답이군.
드러몬드: 빈센트 전하…….
빈센트: 이상한 힘으로 하늘을 날고 창문을 통해 침입해 손가락 하나 사용하지 않고 우리를 죽일 수 있는 마법사. 마법사들 앞에서는 굴강한 병사들조차 아기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공평한 일인가? 우리를 불신하는 것은 너희들이다! 그러면서 이해하고 다가가라고? 이런 일방적인 요구가 있을까보냐!
……!
2화 따뜻한 유대감을
빈센트 씨의 고함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빈센트 씨의 말을 옳았다. 모처럼 친하게 지내려고 해준 그를 화나게 해버렸다. 슬픔과 한심함으로 마음이 어지럽다.
(차라리, 말해버릴까……. 어쩌면 그게 더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몇 번인가 머리에 떠올랐다. 따뜻한 유대를 그와 맺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마음을 허락해준 마법사들의 생명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그들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전할 수 없는 것일까? 인간과 마법사가 사이좋게 사는 세계로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당황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나는…… 나는 아직 빈센트 씨를 신용하고 있지 않아.)
신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완전히 신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예쁜 말을 들어놓아도 그것이 사실이었다. 씁쓸한 얼굴로 나를 드러내고 있는 빈센트 씨도 분명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오즈나 카인의 정보를 주어도 우리를 진심으로 믿어주지 않는다. 그 몇 초 만에 신뢰를 맺는 계기는 사라져 버렸다.
서로 믿는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일까?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마치 간단한 일인 것처럼 순진하게 웃고 있었다니…….
……죄송해요, 빈센트 씨. 아무리 해도 말을 못하겠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빈센트: 흥……. 자기의 부실을 인정했나. 마법사들에게 치켜세워지고 흥분한 위선자 녀석.
…….
드러몬드: 빈센트 전하……. 아무래도 말씀이 심하…….
빈센트: 다물어라, 드러몬드. 현자여, 네 태도는 잘 알겠다. 이건 돌려주겠다.
빈센트 씨는 내 눈앞에 뭔가를 들이댔다. 클로에의 크래뱃이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클로에를 떠올리며 나는 눈앞이 어두워졌다.
빈센트 씨……. 그건 클로에의 선물이잖아요. 저는 신용하지 못해도, 클로에는…….
빈센트: 나를 저주할 가능성이 있다. 네가 우리를 믿지 않는 이상 나도 네 마법사를 믿을 수 없다. 받아라, 현자. 받지 않을 거라면 땅에 내던지겠다. 그렇게까지 당하기 싫다면 빨리 받아!
내 눈앞에서 크래뱃이 흔들린다. 클로에를 향한 미안함과 무력감에, 나는 약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안해요, 클로에……)
떨리는 오른손을 뻗는다. 그때…… 옆에서 뻗은 누군가의 손이 나보다 먼저 클로에의 크래뱃을 손바닥에 감쌌다. 그리고 빈센트 씨에게 되돌려준다.
그 손의 주인은 아서였다.
아서: …….
아서…….
아서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나를 향해 웃었다. 하지만 약하게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고, 아픈 듯이 눈빛이 흔들린다. 슬픔과 망설임을 실은 푸른 눈동자가 빈센트 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서: 숙부님. 클로에는 선물에 저주를 담을 자가 아닙니다. 뜻깊은 훌륭한 재봉사예요. 이 크래뱃은 저주받지 않았습니다.
아서의 말에 새소리가 겹친다. 어느새 마법사들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 창가, 지붕 위, 기둥 뒤에서 모습을 살피고 있다. 미간을 찌푸리며 빈센트 씨가 크래뱃째 손을 털어내려고 한다.
빈센트: 마법사가 하는 말 따위 믿을까보냐!
크래뱃을 밀치려는 순간, 누군가가 숨을 삼켰다.
클로에다.
3화 신뢰를 잇기 위해서
라스티카와 함께 창문으로 걱정스러운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모습은 아서에게도 비쳤을 것이다. 아서는 희미한 초조감을 드러냈다. 그의 눈앞에서 크래뱃을 내팽겨치고 싶지 않다고. 그것과 상관 없이 빈센트 씨는 다그치기 시작했다.
빈센트: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너희들의 행동에는 애당초 보증이 없다. 네가 아서라는 증거도 없어. 오늘의 나는 마법사에 의해 환영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주춧돌로 마법사를 신용하라는 것이지!?
빈센트 씨가 아서의 손을 뿌리치려고 한다. 크래뱃이 흔들려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아서가 눈을 크게 떴다. 외치듯이 입을 연다. 그가 무슨 말을 새겼는지, 나는 늦게 이해했다.
아서: 약속합니다.
마법사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약속을 어기면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니까.
나도 모르게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무거운 바람이 불어 구름이 그늘지기 시작했다. 한결같은 푸른 눈망울로 아서는 빈센트 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서: 숙부님도 알고 계시죠. 마법사는 약속을 어기면 마력을 잃습니다. 제가 약속합니다. 클로에는 숙부님께 저주 따위 걸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은 숙부님에 대한 우호의 표시입니다. 부디 믿어주세요.
빈센트: …….
카인: ……! 아서가 약속을…….
리케: ……윽……!
카인: 어디 가, 리케!
리케: 아서 님의 곁으로…….
카인: 멈춰. 우리가 무턱대고 나가면 아서의 행동이 헛수고가 돼! 아서는 우리를 위해 빈센트 님과 신뢰를 이어가려고 하고 있어.
클로에: ……아서……! 어쩌지!? 나 때문에 저런……. 어쩌지!?
라스티카: 클로에……. 자신을 탓하지마. 너 때문만이 아니야. 우리를 위한 거야.
샤일록: 저희들 마법사와 중앙 나라의 정부와의 신뢰를 위해 용기를 보여주신 것이죠.
무르: 자, 어떻게 될까? 여러가지의 생각, 긴박한 상태. 이 카드 게임은 잘못하면 천국과 지옥이 바뀌어버려.
시노 / 히스클리프: 아……!
파우스트: ……저 바보…….
네로: 어떡할래? 갈 건가, 선생.
파우스트: ……오즈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린이나 현자를 겨냥해 둘 수는 없어.
네로: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협박은 역효과잖아!? 선생은 중개나 흥정은 못하는건가……?
파우스트: …….
오즈: ……!
스노우: 오즈!
화이트: 오즈여, 버티게나! 지금 그대가 나간다면 빈센트에게 무엇을 할 지 몰라!
스노우: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결코 무의식중에 벼락에 태워 죽이거나 하지 않도록!
오즈: …….
미스라: 뭐 하는 건가요, 저 사람…….
브래들리: 아하하! 말도 안 되고 바보 같은 놈이로군. 하지만 싫지는 않아.
오웬: …….
루틸: 아서 님…….
미틸: 지금 건, 약속인가요? 벌써 약속이 이루어진건가요?
레녹스: ……아아…….
미틸: 그런…….
피가로: 괜찮아, 미틸. 레노, 모두를 부탁할게.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비가 올 거야. 젖지 않는 곳에 있어.
4화 울리는 결의의 말
아서: …….
흐르는 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빈센트 씨와 아서의 옆얼굴로 그림자가 지나간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빗소리가 울렸다. 푸석푸석 강한 바람이 삼촌과 조카의 같은 색 머리를 흔든다.
아서: 제가 약속을 한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차행적이기는 했지만, 무모하고 무간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숙부님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내어 마법사에 대해 생각해 주셨습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해주셨어.
아서: 그 시도를 소홀히 했다고 느낀다면 숙부님은 다시는 마법사에게 마음과 시간을 할애해 주시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빈센트: …….
아서: 사람과 마법사의 미래를 위해, 저는 마력을 잃을 위험과 교환을 약속합니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위험한 것은 아니에요. 저는 클로에를 믿으면 될 뿐이니까요.
빈센트: 어째서 신용할 수 있지? 같은 마법사끼리라서 그런가? 서쪽 나라에서 태어난 침자다.
아서는 굴탁없이 웃었다.
아서: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표정들을 보면서 클로에가 만들어준 옷들을 잔뜩 입었습니다. 그러니 약속할 수 있어요.
빈센트: …….
조용한 결의가 담긴 눈빛이 빈센트 씨를 올려다본다. 올려다본 창문에서는 라스티카의 어깨를 감싸고 클로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 광경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빈센트 씨는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항복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천천히 손을 내려 정중하게 크래뱃을 품에 넣는다.
빈센트: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받아두지.
아서: ……감사합니다, 숙부님…….
낙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는 더 강해졌다. 순식간에 정원은 회색 공기로 뒤덮였다. 우산을 펴고 달려오는 병사를 아서가 붙잡는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자, 살며시 희미한 빛이 나와 빈센트 씨, 병사들을 감쌌다. 보이지 않는 외투로 지켜지듯 내 옷은 젖지 않고 비가 튕겨 나간다. 마치 빛나는 고치에게 지켜지는 것 같다.
아서: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숙부님.
빈센트 씨는 눈을 내리깔고 몇 번 고개를 들었다.
빈센트: ……아서. 세계의 이변에 대응하기 위한 제안서를 읽었다.
아서: 조사단 설립의……. 흝어봐 주셨군요. 어떠셨나요?
빈센트: 현자의 마법사들을, '거대한 재앙' 과의 전쟁 준비에 전념시키고 싶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중앙 국가의 공인 조직에 마법사를 참여시킬 수는 없어. 조사단은 인간만으로 결성한다.
아서: 하지만, 인간들만으로는 위험한 상황에…….
빈센트: 마법사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자들을 공경이라고는 할 수 없지. 이것도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노바라고 불리는 마법사처럼, 국가나 세계의 파멸을 바라는 마법사는 있어.
아서: 노바는 북쪽 마법사 미스라와조차 막상막하의 싸움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자가 아닙니다.
빈센트: 마법 과학 병단을 강화하겠다. 서쪽 나라의 마법 과학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머지않아 한 나라의 왕이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겠지.
아서: 머지않아, 라는 것은 늦습니다. 지금 당장 신원이 확실한 마법사들을 모아서 조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빈센트: 한 번 더 말하지. 마법사의 조사단은 인정하지 않는다. 마법사에게 조직 활동은 할 수 없다. 마법사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존해 서로 돕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피가로: 알고 있습니다.
5화 미소로 감싸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은빛 빛속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피가로가 조용히 다가왔다. 피가로가 이쪽을 본 순간 나와 아서는 동시에 안도했다. 긴장하고 굳어있던 등줄기를 조금만 편하게 하고, 피가로의 옆얼굴을 눈으로 뒤쫓는다.
피가로: 오늘은 신세를 졌군요. 다시 한 번, 남쪽 마법사의 피가로입니다.
피가로는 손을 뻗어 빈센트 씨와 악수를 했다.
빈센트: ……기억하고 있다.
피가로: 영광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만, 남쪽의 마법사와 유지의 마법사로 왕도의 부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빈센트: ……사실인가?
드러몬드: 네. 기왓장의 철거나, 외벽의 재건 등을…….
피가로: 무상으로.
드러몬드: 네, 무상으로.
빈센트: …………보수를…….
피가로: 아뇨아뇨, 신경 쓰지 마시길. 어려울 때는 피차일반이니까요. 남쪽 나라에서는 모두가 서로 돕고 있습니다. 왕도의 부흥 작업을 하는 동안, 왕도의 주민 분들께서도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상업 길드 분들이나 경찰 분들, 부흥을 위한 기부를 해주신 귀족 분, 마법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신문기자 청년……. 도움의 감사라며 빈집을 양보해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왕도에 올 때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고.
피가로: 중앙의 나라 분들은 밝고 정직하며, 부지런하고 상냥한 사람들 뿐이군요.
빈센트: 그랬었군……. 아니, 이쪽이야말로 협력해줘서 고맙다.
국민의 칭찬과 애교 있는 미소를 받고 빈센트 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피가로는 다소 황송한 듯 고개를 숙이고 눈썹을 숙여 웃었다.
피가로: 마법사는 단독행동을 좋아합니다. 빈센트 전하께서 오해하시는 것도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서로 돕는 것을 좋아하는 마법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기 위해…… 양도받은 빈 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마법사와 사람과의 교류의 장으로 삼고 싶습니다만, 어떠신가요?
빈센트: ……마법사와의 교류의 장…….
피가로: 네. 방금 전하께서도 말씀하셨죠. 복지활동이라면 활약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고. 부디 저희들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빈센트 씨는 피가로의 속내를 살피듯 그를 쳐다봤다. 피가로의 미소는 완벽헀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나를 농락하겠다고 한 그의 말. 그리고 미스라가 했던,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는 말.
빈센트: ……좋다. 사소한 일은 드러몬드에게 물어보도록.
피가로: 아아, 전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줍게 웃던 찰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게 피가로는 냉담하고 지배적인 눈동자를 나타낸다. 피가로는 분한 듯이 아서를 향했다.
피가로: 아서 전하, 왕도의 마법사의 집에서 약간의 성과가 보인다면…… 전하께서 제안하신 조사단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하실 수 있겠죠.
아서는 피가로를 바라보았다. 피가로의 의도를 헤아린 듯, 깊이 이마를 찌른다. 처음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작은 성과를 쌓아갈 수 밖에 없다. 피가로가 제안하는 왕도의 마법사의 집이 성공하면, 마법조사단 설립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서: 그렇네요, 피가로 님……. 숙부님, 다시 한 번 제안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빈센트: ……알겠다.
빈센트 씨는 멋대로 말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고 마지못해 허락했다. 공평하고 관대한 인물로 처신하기에는 피가로의 말은 반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왕도 사람들과 마법사가 굳건한 신뢰를 쌓은 이상, 조사단의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피가로의 시원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은근히 감탄하고 있었다. 정략적 화술이나 그 염매는 과연 연공이다.
빈센트: 전의 그것을.
6화 결의가 가져온 것
빈센트 씨가 부르자, 측근 중 한 명이 봉서를 들고 왔다. 그걸 받고 아서에게 내민다.
아서: 이건…….
빈센트: 너에게 부탁받은 것이다. 오늘 시찰에 따라서 건네지 않고 이쪽에서 대처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월식의 관에 남겨져 있던 마법진과, 노바라는 마법사에 대한 조사 보고서다.
아서가 고개를 들었다. 피가로도 가볍게 눈을 번쩍 뜬다.빈센트 씨는 말을 멈추고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빈센트: 네가 예측한 대로 유사한 마법진이 국내 외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불분명한 보고 뿐이다.
아서: 불분명한 보고…….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나요?
피가로: 니콜라스 전과 같지 않을까요? 정치의 중추와 관련된 인물들이 곳곳에 있엇 은폐할 수밖에 없었다.
빈센트 씨가 깜짝 놀라 피가로를 쳐다보았다. 검지를 세우고 피가로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피가로: 괜찮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요.
빈센트: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아서: 마법사 노바에 대한 단서는…….
빈센트: 아무것도 없었다.
아서와 피가로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눈을 마주보았다.
빈센트: 아서, 너에게 충고하지. 제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다른 나라에게 간섭할 때는 보고를 하도록. 특히, 서쪽의 나라를 적대 행위로 오해하게 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라.
아서는 커다란 눈동자로 빈센트 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겁을 먹은 듯 빈센트 씨가 눈을 돌린다.
아서: 감사합니다, 숙부님. '거대한 재앙' 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효과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빈센트: 성으로 돌아가지. 부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아서는 웃었다. 장난스러운 눈짓으로 빈센트 씨를 올려다본다.
아서: 약속을 하는 마법사에게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네요.
빈센트: 아서.
아서: 선처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러몬드 씨들은 떠나갔다.
아서: 현자님, 피가로 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라고 피가로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서의 어깨를 잡고 축 고개를 끄덕이며 긴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피가로: 깜짝 놀랐어, 정말로……. 정말이지, 이 폭풍우를 봐. '거대한 재앙' 이 오기 전에 세상이 멸망할 뻔했어.
피가로는 눈썹을 숙이고 정면에서 아서를 들여다보았다.
피가로: 약속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서는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턱을 홱 당겼다. 곧바로 피가로를 쳐다본다.
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피가로: 그런 정치에 얽힌 일은 늙은 마법사에게 맡기면 돼. 너는 인생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으니까.
아서: 벌써 17살이에요.
피가로: 무슨 소리야. 아직 17살 밖에 안 된거야.
아서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가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시선의 높이를 맞춰 위로하듯 미소를 지어줬다.
피가로: 현자님도 미안해. 화살을 들이대 마음 고생을 시켜 버렸어.
아뇨…… 저야말로 죄송해요. 좋은 말을 하지 못하고, 빈센트 씨를 화나게 해버려서…….
피가로: 저건 어쩔 수 없지. 마음을 서로 용서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해. 나는 반대로 현자님을 믿었어.
……정말인가요?
피가로: 맞아. 쉽게 우리의 정보를 주는 아이와고는 안심하고 어울릴 수 없으니까. 우리를 위해 비밀을 지켜줘서 고마워. 소리를 질러서 무서웠지.
피가로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내 뺨을 어루어만진다. 손가락 끝의 온기를 느끼며 쑥스러움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절로 눈물이 글썽거린다.
내 행동이 틀리지 않았을까 걱정돼서 어쩔 수 없었으니까.
7화 쌓는 신뢰
……조금 무서웠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피가로: 다행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사랑하는 듯한 피가로의 부드러운 눈빛에 나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깨달았다. 반대의 행동을 취했다면 나는 그의 신용을 잃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정도로 마법사들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오즈나 카인의 비밀을 이야기 했었더라면…… 나는 피가로의 신용을 잃고 경멸을 받았었겠지. 피가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상상만 해도 등골이 얼어붙는다.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그러면, 신뢰라는 것은 결과가 전부일까? 배신이나 결별, 거짓말이나 불의. 내가 아무리 사랑하고 지켜도 판단을 잘못하면 모든 걸 잃어버려? 믿음의 쌓은 나무를 높은 탑처럼 쌓아올려도, 하나 틀리면 그저 잔해 더미가 될 뿐?
클로에: 아서……!
클로에의 목소리에 나는 벌떡 고개를 들었다. 라스티카와 나란히 클로에가 울면서 달려온다. 다른 마법사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클로에: 아서,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에요, 클로에. 제가…….
아서: 클로에나 현자님이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두 분 덕분에 살았어요.
앞다퉈 사과하는 우리에게 아서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오즈: 아서.
오즈의 목소리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오즈는 굉장히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그가 이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평소 오즈를 상냥한 스승으로 흠모하고 있는 아서마저도 겁에 질려 있었다.
아서: 오, 오즈 님…….
스노우: 오즈여, 진정하게나.
화이트: 성질이 급하네.
오즈: 다물어라.
땅바닥을 기어오르는 듯한 목소리에, 쌍둥이는 부둥켜안고 펄쩍 뛰었다.
오즈: 아서. 약속은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아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숙부님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그것 이외의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가가려던 참에 미심 쩍은 것을 보고 거절을 받으면, 누구든 상처 받습니다.
오즈: 약속을 어기면 마력을 잃는다. 이런 경솔한 행동을…….
아서: 오즈 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반성하고 있습다만, 경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법사와 인간의 밝은 미래를 생각해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결코 경쾌한 마음에서가 아닙니다.
아서는 가슴을 펴고 말했다. 오즈는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곤란해했다. 오즈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아서의 건투를 칭찬하고 싶지만,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즈는 오랫동안 침묵하고 지팡이를 들었다.
오즈: '복스노크'
아서: ……!
다음 순간, 오즈도 아서도 사라졌다. 아서가 있던 자리에 빈센트 씨에게서 받은 보고서만 떨어져 있었다.
아서, 오즈…….
피가로: 방에서 설교할 뿐이야.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깨닫고 이동했겠지.
스노우: 오즈의 경우, 말을 찾는 시간이 더 길 것 같지만…….
샤일록: 부디 너무 혼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만.
후우, 하고 파이프 연기를 내뿜으며 샤일록도 무르와 함께 왔다. 유연하고 염한 눈빛에는 호의와 애정이 숨어 있다.
샤일록: 아서 님은 다리를 놓아 주셨으니까요. 엇갈려 무너져 가고 있던 클로에와 빈센트 님의 길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8화 기록되어 있는 것은
클로에: 아서는 나를 감싸줬어……. 나를 신용한다고 말해줬어. 오즈 님께 꾸중을 듣게 된다면 미안해서 어쩌지…….
무르: 오즈의 천둥, 엄청 크니까! 바삭바삭!
라스티카: 오즈 님은 아서 전하를 소중히 여기고 계셔. 호되게 꾸짖지는 않으실 거야. 아마도.
큰 천둥 소리에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등을 구부리고 떠나려는 파우스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파우스트. 파우스트도 걱정해서 상태를 보러 와준건가요?
파우스트는 걸음을 멈췄다. 모자를 깊게 쓰고 고개를 흔든다.
파우스트: 아니.
하지만…….
파우스트: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이다.
피가로: 조금 전까지 중앙 나라 병사들이 가득 늘어서 있던 곳을?
파우스트: 내 산책 코스다.
짜증내는 파우스트를 웃으며 피가로가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브래들리다. 피가로 옆에 나란히 서 그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얹는다. 피가로도 파우스트도 그런 모습에 놀랐지만, 브래들리는 개의치 않았다.
브래들리: 읽어봐. 단서가 적혀져 있지?
피가로: 아서 앞으로 온 건데.
브래들리: 줄어드는 것도 아니잖아.
피가로: 뭐, 그런가…….
파우스트: 어이, 기다려. 정말로 마음대로 읽을 건가?
가벼운 문답을 하며 이들은 피가로가 개봉한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나도 함께 들여다봤다. 봉투에는 수십 장의 편지와 지도가 동봉된 모습이었다.
피가로: 월식의 관과 같은 마법진이 발견된 장소…….
브래들리: 대륙 곳곳에서 발견됐네. 얼마 전에 간 곳도 있어.
파우스트: ……어디지?
피가로: 너도 들여다보고 있네.
파우스트: 시끄러워.
다투는 그들 옆에서 라스티카가 불쑥 들여다보았다.
라스티카: 보르다 섬이구나.
파우스트: 보르다 섬……. 정말이군…….
라스티카: 보르다 섬에 있는 동굴에서 월식의 관과 같은 마법진, 그리고 여러 개의 제물이 발견되었다. 여기에 이렇게 써져있습니다.
보르다 섬……. 그런 멋진 장소에…….
피가로: '거대한 재앙' 이 초래한 이변으로 동굴의 붕괴가 있어서 발견이 늦어진 것 같아.
라스티카: 실례. 대화에 갑자기 들어가버려서요. 낯익은 이름이 보이기에.
브래들리: 상관 없어. 노바에 대한 정보는?
피가로: 빈센트는 없다고 했어.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 뿐이지 않을까? 마법사의 정보는 쫓기 어려워. 요령을 알면 쉽겠지만.
파우스트: 어떤?
피가로는 파우스트를 한 번 쳐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가로: 불굴의 신념?
브래들리: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마법의 경향이지. 마도구는 특징적이라 알기 쉬워.
라스티카: 너의 장총처럼?
브래들리: 뭐 그렇지. 신랑 씨, 너는 전 세계를 여행하고 다녔잖아.
라스티카: 그렇지.
브래들리: 노바에 대해서 들은 건 없나?
라스티카: 글쎄, 너는 만났었지? 어떤 사람이었니?
브래들리: 심문은 지겨워. 쌍둥이나 이 녀석에게 잔뜩 들었다고.
피가로: 희고 긴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왼쪽 눈에 상처가 있고, 오른쪽 눈은 아마도 의안.
라스티카: 상처에 의안……. 다친걸까? 불쌍하게도…….
브래들리: 저만한 마력의 소유자야. 상처를 치료하지 않는 건 본인의 의지겠지.
피가로: 너처럼?
브래들리: 오. 거기 저주상처럼 말이야.
파우스트: 내버려둬. 미스라로 변했다면 미스라가 아는 인물이 아닌가.
브래들리: 미스라는 건망증이 심한 남자지만 자기보다 강한 마법사를 만나면 잊지 않아.
9화 새로운 단서
라스티카: 노바라는 마법사에 대해서는 또 없니?
브래들리: 심문은 질렸다고 했잖아.
라스티카: 특징이 아니어도 좋아. 네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어.
브래들리: …….
브래들리는 턱을 누르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툭 털어놓는다.
브래들리: ……기묘했어. 어느 나라 정령의 기척도 보였어.
파우스트: 정령의 낌새로 땅을 찾는 것도 어려운가……. 공들여서 기색을 감추고 있군.
브래들리: 그렇지. 혹은…….
브래들리가 나를 쳐다봤다. 무슨 말을 건네는 순간, 마법관 쪽에서 카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씩씩하게 다가온다.
카인: 니콜라스의 정보는? 니콜라스에게 다가가 마법진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 인물이 노바야. 그래서 세계 각지의 마법진의 흔적과 함께 니콜라스의 신변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어. 어딘가에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
피가로: 니콜라스…… 니콜라스 …….있다. 보충자료로 정리되어 있어.
브래들리: 이전 시합에서 지방 도시 출신의 소년 검사에게 패배. 책임을 지고 퇴진. 이거 너냐?
카인: ……맞아. 기사단장이 평민에게 졌다고 알려지면 다른 나라에게 야단 맞는다고.
브래들리: 헤에.
카인: 뭐야.
브래들리: 아무것도 아니야. 그 후 마법 과학을 배우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서쪽 나라를 시찰…….
파우스트: 중앙의 나라로 돌아온 건 언제지?
피가로: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 바로 전 쯤이네.
라스티카: 아…….
피가로: 왜?
라스티카: 니콜라스 공이 흰 머리의 부인과 몇 번 밀회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서쪽 나라의…… 마법 과학 병단 본부 근처에서.
피가로: 아, 정말이다……. 노바가 변한 모습인가? 그냥 아는 사람? 카인, 니콜라스에게 흰 머리 여자의 지인이 있었어? 여동생이라던가, 애인이라던가.
카인: 글쎄……. 니콜라스는 인기가 많았으니까. 기사단장이었던 남자고.
브래들리: 네가 말하니까 설득력 있네. 색남.
라스티카: 저는 기사단장은 아니지만 흔히 색남이라고 불립니다.
피가로: 나도 이래 보여도 옛날에는 꽤…….
파우스트: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정보는?
피가로: 아담스……. 아담스 섬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고 해.
아담스 섬?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질문에 대답해 준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무르가 하늘을 거꾸로 날고 있다. 어느새 비도 약해지고 있었다. 둔한 하늘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무르: 보르다 섬 근처에 있는 섬이야!
그렇군요. 아담스 섬에 갈 수 있나요?
무르: 이제 없어! 가라앉았거든!
가라앉았다고요? 어째서…….
무르는 고양이 같은 눈동자로 활짝 웃었다. 소개하듯이 한쪽 팔을 뻗는다. 무르의 손끝 너머에 있던 것은 샤일록이었다.
무르: 나쁜 남자에게 푹 빠졌으니까!
샤일록은 어깨를 조금 흔들었다. 은밀한 한숨으로 킥킥 웃는다.
샤일록: 이런. 듣기 거북하군요.
누구의 것도 아닌 붉은 눈동자는, 심해에 잠든 특별한 산호처럼 염증이 나있었다.
히스클리프: ……아서 님, 대단했지……. 클로에의 명예를 위해서 망설이지 않고 약속을 하고……. ……나는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시노: 그런 용기 필요 없어. 누군가와 약속을 할 생각은 하지 마.
히스클리프: 하지만…….
시노: 아서는 바보야. 너는 그 이상의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다.
히스클리프: 뭐…….
10화 그날의 목격자
시노: 믿을 수 없는 녀석들은 모래의 수만큼 많아. 우리에게 약속을 했던 스승, 잭도 그랬잖아.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마님과 나으리의 정성을 빌미로 대마법사인 척 했어. 덕분에 너는 나와 약속하게 되었다.
시노: 거짓말이 들통난다고 해도 우리 중 하나를 돌로 만들면 다른 한쪾은 마력을 잃어. 잭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셈이야. ……결국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에서 돌이 되었지만.
히스클리프: ……알고 있어. 시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시노: 폐?
히스클리프: 내가 누군가와 약속을 한다면……. 나한테 불리한 조건이 늘어나면, 너에게 폐가 되잖아.
시노: 뭐 그렇지. 알았으면 경솔한 행동은 그만둬.
히스클리프: …….
시노: ……화났어?
히스클리프: ……안 났어.
시노: 히스의 자유를 빼앗고 싶은 건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 돼. 하지만 약속은 하지 마. ……아니면…… 고의로 약속을 어기고 마력을 잃고 싶어?
히스클리프: ……나를 모욕하지 마, 시노.
시노: …….
히스클리프: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에는 파우스트 선생님과 네로의 목숨이 걸려 있어. 친구가 된 클로에나 루틸도. 연하인 미틸이나 리케도 아무도 도망치려고 하지 않아. 아서 님의 용맹함에는 부족하지만, 나 혼자 마력을 잃고 전선에서 도망치거나 하지 않아.
시노: ……잘못했습니다. 부디 자비를.
히스클리프: 뭘 웃고 있는 거야!
시노: 후후. 그런 점이 좋아서…….
히스클리프: ……!
시노: 히스, 물러서. 안뜰에 누군가가 있다.
시노: 너! 죽기 싫으면 나와!
병사: ……미, 미안해! 수상한 자는 아니야!
시노: 중앙의 병사……. 이런 데서 뭐하는 거야. 일행은 막 이동했다고.
병사: 하늘을 나는 고양이 같은 마법사를 올려봤다가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 라는 말을 하더니 나무 위로 끌려가서…….
시노: 그거 재난이었군. 나뭇잎 털어줄게.
병사: 고마워. ……아…….
시노: 뭐야?
병사: 너는 토비카게리 사건의 날에, 카인 단장과 함께 성의 다리 위에 있었던…….
시노: 잘 아네.
병사: 성 안에서 보고 있었어. 도와주러 가고 싶었지만 시민들의 대피 때문에…….
시노: 너는 네 몫을 다 했잖아. 나의 활약은 위에 잘 전달해 둬.
병사: 알았어. 그 검은 짐승은? 지금 키우고 있어?
시노: …….
히스클리프: 검은 짐승?
병사: 네. 멋진 흑표범입니다.
시노: 무슨 소리야. 키울 리가 없잖아.
병사: 그래? 그때도 지금도 같은 이름을 부르고 있었잖아. 히스라고…….
히스클리프: …….
시노: …….
히스클리프: 그건 아마…… 제 이름입니다. 히스클리프 블랑셰. 시노는 항상 히스라고 부르죠.
시노: …….
병사: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블랑셰 님! 몰랐다고는 하나,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고귀한 분의 이름을 짐승의 이름과 같이…….
히스클리프: 아뇨,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병사: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결례를 사과드립니다! 그러면 이만…….
히스클리프: 조심히 가세요.
시노: 이제 길 잃지 마.
히스클리프: ……시노. 검은 짐승이라니?
시노: 글쎄.
히스클리프: 글쎄가 아니잖아.
시노: 쟤가 나를 짐승으로 잘못 본거겠지. 나는 검은 머리고.
히스클리프: …….
시노: 검은 짐승은 나를 말하는 거야. 가자, 히스.
히스클리프: 거짓말 하고 있어?
시노: 안 해. 하고 있다면?
히스클리프: 시노를 신용할 수 없게 돼.
시노: …….
히스클리프: ……항상 중요한 건 나한테 말하지 않잖아. 그런 건 친구가 아니야.
시노: 얘기하고 있어. 괜찮아.
히스클리프: 정말로?
시노: 아아. 나를 의심하지 마.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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