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그들의 양보
동쪽의 마법사는 사람을 싫어하고, 낯을 가리며 폐쇄적이다. 그래서 높은 사람의 시찰 같은 행사는 정말 싫어한다. 애초에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엿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동쪽 마법사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맡아줬지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들여다보면서 평소대로 하라니, 불가능 해. 발안자의 제정신을 의심한다.'
'평소의 동쪽의 마법사를 보려면 뛰어난 마법으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몸을 숨길 필요가 있어.'
'빈센트는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는 이상 이 시찰은 다반사야. 평소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거기를…… '뭐, 현자 씨가 하고 싶다면 해도 되지만…….' 이라는 느낌으로 어울려주고 있다. 그래서 문을 열었을 때 동쪽 마법사가 이곳에 없어도 불평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쪽의 마법사는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각자 책을 읽고 있다. 실내는 정적으로 가득 찼다.
드러몬드: 현자님……. 동쪽의 마법사는 무슨 훈련 중인가요……?
파우스트: 자습이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파우스트가 대답했다. 다른 세 사람도 묵묵히 독서에 빠져 있다. 독서하는 것 정도면 견학시켜도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괴팍한 동쪽 나라의 기질을 알고 있는 나는, 그들의 양보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교적인 중앙의 나라와 남쪽의 나라와 그럭저럭 우호적인 교류를 해 온 빈센트 씨는 불만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있는 것은 양보가 아니라 넉살 좋은 반항으로 보였을 것이다.
빈센트: 시작해라. 신속하게.
시노: …….
파우스트: …….
네로: …….
히스클리프: …….
동쪽 마법사들은 발끈했다. 무시할 줄 알았는데, 이윽고 히스클리프가 빈센트 씨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는 동쪽 나라의 대귀족의 아들이라 국가와 가명도 등에 업고 있다. 빈센트 씨의 불흥을 살 수는 없다. 히스클리프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파우스트가 신경 쓰인다는 눈빛을 보낸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숨을 내쉬고 탁 하고 책을 덮었다.
파우스트: 손님에게 구경거리가 될 만한 내놓을 것은 없다. 그래도 상관 없다면.
빈센트: 상관 없다. 너희들의 평소 훈련을 보여봐라.
네로 / 시노 / 히스클리프: …….
'보이고 있는데 평소대로라니,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우스트: 그러면 어제 수업을 이어서 하지.
시노: 실기가 아닌건가. 실기로 하자고.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
히스클리프: 네 실력은 내가 알고 있으면 돼. 아니면 중앙 나라에서의 출세를 바라는 건가.
정치적 사정에 어두운 시노에게 히스클리프는 목소리를 낮춰 질책한다. 분명 빈센트 씨가 시노를 마음에 들어하면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시노는 잘 모를 것 같지만, 히스클리프의 발언이 마음에 든 듯 했다. 득의양양하게 빙글빙글 돌아간다.
시노: 호오, 말하게 되었잖아. 그런 거라면 삼가하지. 파우스트, 시작해라. 신속하게.
파우스트: 또 말하면 저주한다. 그러면 네로, 어제의 복습이다. 문트의 법칙의 설명을.
2화 문트의 법칙
네로: 그런 이름, 어제 나왔었나……? 남자? 여자?
파우스트: 문트는 여성이다. 하지만 법칙의 내용에 성별은 관계 없어. 너는 알고 있겠지.
네로: 나, 그 녀석 알고 있어?
파우스트: 항상 쓰고 있어. 쓴다고나 할까, 법칙이니까 원리다.
네로: 에에…….
파우스트: 알겠다, 네로. 고마워. 시노, 대답할 수 있나?
시노: 문트의 법칙? 나도 사용하는 법칙인가?
파우스트: 사용하고 있어. 마력의 기초다. 동쪽의 마법사 기질에도 크게 관여하고 있지.
시노: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에 붙어 있는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지?
파우스트: 알았다. 고마워, 아기 고양이.
시노: 아기 고양이?
파우스트: 오늘부터 너의 이름이다. 붙어 있는 이름에는 의미가 없지. 다음, 히스클리프…….
시노: 기다려! 아기 고양이라고!? 좀 더 내 실력에 걸맞는…….
파우스트: 쉬잇. 조용히, 아기 고양이.
시노: 네로! 저 선생, 모욕하고 있다고!
네로: 네가 먼저 모욕했잖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건 잘 기억해둬.
시노: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건가?
네로: 그런 말을 들으면…….
파우스트: 너희들, 조용히 해. 히스클리프, 대답할 수 있나?
시노를 달래려던 히스클리프는 파우스트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스클리프: 네. 문트의 법칙은 마법 심리 작용의 법칙 중 하나입니다. 집중할수록 마법 작용은 강해지는 대신, 다른 감각을 잃고 시야가 좁아집니다.
파우스트: 그 말대로다.
감각을 잃다……. 히스클리프의 답변에 나는 불안해졌다. 마법의 구조를 모른 채, 항상 부담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기, 파우스트……. 저도 물어봐도 되나요?
파우스트: 뭐지?
마법에 집중하면 무언가에 신경을 쓰게 된다는 말인가요……?
파우스트: 아니. 자각할 수 없게 될 뿐이다.
자각할 수 없다…….
파우스트: 그래. 인간에게도 같은 일이 있지. 뭔가에 집중하다가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간과한 적은?
아아, 있어요. 이름을 불러도 눈치채지 못한다거나…….
파우스트: 그거랑 똑같은 것이다. 마법은 마음으로 사용하지. 마음이 집중될 때일수록 강한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지각 능력이 둔해진다. 너희들에게도 경험이 있겠지. 특히 시노는.
시노: 강한 마물을 쓰러뜨릴 때 주문을 외우면 무음이 돼. 곧 돌아오지만…….
파우스트: 그런가……. 그만큼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마법의 기술이 숙달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기쁘긴 하지만, 너에게는 좀 더 빨리 여러가지 가르쳐줘야 할텐데…….
파우스트는 웃지도 않고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씁쓸한 얼굴로 시노는 고개를 흔든다.
시노: 이 이상 숙제를 내는 건 그만둬. 어째서 특히 나, 라고 한 거지.
파우스트: 비교적 동쪽의 마법사답지 않기 때문이다.
시노: 동쪽의 마법사 다움이란?
파우스트: 나도 오랫동안 폭풍의 계곡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쪽의 마법사 다움은 조심성이다. 우리는 위험하거나 안락함을 조심하지. 즉, 문트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집중 마법은 동쪽의 마법사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강한 사람은 주변의 기운에 민감하여 집중이 서투르지. 안심할 수 있는 환경 이외에서 몰입하는 것을 싫어해.
시노: 그러면 동쪽의 마법사는 강해질 수 없다는 건가? 집중하는 쪽이 강한 마법을 쓸 수 있잖아?
파우스트: 일률적으로 그렇다고도 할 수는 없어. 집중이 서투른 대신 동쪽의 마법사는 평행 마법을 잘하니까.
평행 마법……?
턱을 괴며 네로가 웃었다.
네로: 요리 같은 거야. 여러 마법을 한꺼번에 동시에 진행시키는 거지. 재료를 썰면서 냄비에 불을 올리거나, 그릴에 굽거나, 접시를 씻거나…….
멀티태스킹이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동쪽의 마법사는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것 같았다.
파우스트: 평행 마법은 복수 마법으로도 불린다. 복수 마법에는 집중과 부감이 동시에 필요해.
3화 뜻밖의 특기
시노: 부감이라니?
파우스트: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자신을 냉정하게 보는 것이다.
히스클리프: 시노에게는 어려울지도…….
시노: 이미 되어 있어.
히스클리프: 안 됐어.
쓴소리를 하는 히스클리프의 옆에서 네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로: 중앙의 마법사보다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노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 중앙 애들은 멧돼지니까.
동의를 구하듯 네로는 파우스트를 향해 웃었다. 하지만 그는 성실하게 이마만 내밀었다. 사실 그는 중앙의 마법사 출신이다.
파우스트: 복수 마법의 계속된 이야기를 하지. 복수 마법에 익숙해지면 어떤 고도의 마법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시노: 하고 싶어.
파우스트: 익숙해지면, 이라고 했잖아.
히스클리프: 선생님은 할 수 있나요?
파우스트: 대충은. 하지만 네로가 더 잘하는 것 같아.
네로: 오, 뭐야. 어떤 마법?
네로를 바라보며 파우스트가 말했다.
파우스트: 봉인 마법이다.
네로: …….
턱을 괴며 네로가 웃었다.
네로: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야.
파우스트: 고도의 봉인 마법은 여러 매개나 마법진을 이용하는 기계의 설계처럼 치밀하고 복잡한 것이다. 수천 개의 톱니바퀴를 동시에 조립해 그것을 한순간에 연결하는 집중력과, 전체 파악 능력이 필요해.
네로: 히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네. 히스는 시계라던지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하고.
봉인인가……. 마물이 봉인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지만……. 자신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상대도 봉인할 수 있을까요?
파우스트: 할 수 있어. 마력의 차이를 기술로 능가하는 것이 봉인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는 정신없이 듣고 있었다. 문득 생각나서 질문한다.
봉인 마법은 조심스러운 동쪽 마법사가 특기라고 했지만…… 북쪽 마법사는 어떤가요? 그들은 자주 오즈를 봉인하려고 한다던가, 누군가를 봉인한다고 하는데…….
파우스트가 입을 벌리며 네로에게 시선을 돌린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네로의 모습에 웃으며 손가락 끝을 향했다.
파우스트: 자.
네로: 아아, 아니. 그럴 생각은…….
파우스트: 네 방에서 마셨을 때 이야기한 느낌이라면 봉인은 네가 더 자세히 알고 있어.
시노: 그런 건가. 의외의 특기가 있었구나.
히스클리프: 요리는 병행 작업의 기본 같은 것이네.
네로: 아…… 그렇지.
네로는 자신의 뺨을 어루어만지며 나를 몸뚱이째 마주했다.
네로: 이렇게 생각하면 돼. 일반적인 봉인이라는 것은 봉랍과 같아.
봉랍? 중요한 편지에 납을 드리우고, 스탬프해서 봉투를 하는 그거 말인가요?
네로: 맞아. 여는 것은 쉽지만, 열린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어. 열지 않은 척하고 되돌릴 수는 없어.
확실히 그렇다. 나는 머리를 맞대고 앞을 재촉했다.
네로: 북쪽 마법사의 봉인은 이래. 튼튼한 바위에 깊은 구멍을 뚫어 소중한 것을 채우고 무거운 뚜껑을 덮는다. 물리적으로 아무도 무거운 뚜껑을 닫지 않아. 하지만, 비켜주는 놈이 있다면…….
히스클리프: 한 번도 안 뜯은 척을 하고 다시 닫을 수 있어?
네로: 그래. 그러면 봉인의 의미가 없지.
고도의 봉인이면 그게 안되나요?
네로는 어째서인지 꺼림칙한 듯 눈썹을 찡그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로: 맞아. 봉인을 풀려는 순간 마법을 건 당사자를 금방 알게 돼. 잘못하면 본인 이외에도 알릴 수 있는 구조가 걸려 있어. 숲속에 둘러친 실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빠져나가라고 하는 격이야. 아주 조금만 걸리면 숲 전체가 불탄 들판이 되고, 봉인한 마법사가 달려와.
네로의 이야기는 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스로 체험한 것 같은 긴박감과 짜릿함이 전해진다. 하지만 신기한 점도 있었다. 그것을 파우스트가 입에 올린다.
파우스트: 마치 봉인을 푸는 쪽 시점이군.
4화 성스러운 마법사
네로는 말없이 파우스트를 돌아보았다.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네로: 아하하!
파우스트: ……뭐가 웃기지?
네로: 아니, 역시 내가 설명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정말이지 선생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구나.
파우스트: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아첨이라니.
네로: 아니아니, 진심이야.
시노: 네로, 너. 지금 웃고 얼버무리지 않았나?
네로: 다물고 있어, 아기 고양이.
시노: 아기 고양이는 그만둬!
히스클리프: 하지만 엄청 재밌는 이야기였어. 나도 언젠가 봉인 마법을 쓰고 풀어보고 싶다.
네로: 어. 히스에게는 적합할 것 같아.
네로는 히스클리프에게 미소를 지었다. 유능한 제자를 지켜보는 상냥한 눈빛이었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파우스트도 미소짓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음침하고 괴팍한 분위기를 가진 인물이지만, 웃으면 다른 사람처럼 된다. 가끔 보이는 부드러운 표정은 고결하고 착한 도사 같았다.
갑자기 빈센트 씨가 눈썹을 움직인다.
빈센트: 너, 안경을 벗어봐라.
파우스트의 미소가 사라졌다. 벗지도 않은 채 빈센트 씨를 쳐다본다.
파우스트: 거절하지.
빈센트 씨는 미간에 주름을 새겼다. 초조함을 감추지 않고 드라몬드 씨에게 묻는다.
빈센트: 어디서 본 얼굴이다. 저 마법사의 이름은?
드러몬드: 파우스트입니다.
빈센트: 파우스트?
빈센트 씨는 놀라 물끄러미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중앙의 나라에 있어서 파우스트라는 이름은 특별한 것이었다. 초대 국왕 알렉의 친구이자 그랑벨 왕조 건국에 협력한 마법사의 이름이 파우스트이기 때문이다. 빈센트 씨의 눈빛에 희미한 당혹감과 경의가 떠올랐다.
빈센트: 파우스트……. 신성한 마법사라고 불린 파우스트 님과 같은 이름이다. 전설과 같은 보라색 눈동자……. 혹시 그분의 관계자인가?
파우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빈센트 씨는 위축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돌린다.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관계자는 커녕, 파우스트는 전설의 파우스트 본인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실과는 다르다. 친구 알렉과는 치명적인 이별을 맞고 말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친구 알렉……. 그 후손인 빈센트 씨의 얼굴을 파우스트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랜 정적 뒤에 시선을 돌린다.
파우스트: 앞으로는 복잡한 내용이 될 것이다. 수업에 방해가 되니 나가주기를.
드러몬드: 파우스트…… 빈센트 전하께 실례가 되지 않는가.
빈센트: 아니, 됐다. 그럼 실례하지.
놀랄 만큼 솔직한 대답을 하고 빈센트 씨는 솔선수범하게 방을 나갔다. 당황하며 동쪽 마법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도 방을 나간다.
복도를 걸으면서 빈센트 씨는 독백을 흘리고 있었다. 흥분을 띠며 침착하게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빈센트: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드러몬드: 비, 빈센트 전하?
빈센트: 파우스트 님이다. 알렉 폐하가 그졌다는 파우스트 님을 본뜬 것이다.
드러몬드: 그 파우스트가?
5화 파우스트의 진실
빈센트: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리 나라의 초대 국왕의 맹우이신 분일지도 모른다.
드러몬드: 아니아니, 빈센트 님.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그건 다릅니다. 현자님을 통해 여러 마법사들을 알게 되었고 상냥한 면도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분명 음흉하고 심술궂은 마법사이니 안심해 주시길.
안심해 주시길이라니…… 그렇지 않아요. 파우스트는 상냥해요.
드러몬드: 또 그런…….
콕로빈: 정말이에요. 카나리아와 함께 세상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드러몬드: 저주꾼과 세상 이야기라니……. 저주를 받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뜨린다면 살해당할거야!
콕로빈: 봐요, 그런 태도 말이에요!
드러몬드: 저주상이라고!? 저주 받을거라고!?
빈센트: 그건 임시의 모습일지도 몰라. 여러 전승으로 들은 적이 있다. 고결한 성인이나 현자가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둔갑해 위정자의 진가를 가려내는 것을.
가난한 노파인 줄 알고 매섭게 굴었더니 사실은 아름다운 여신님이었다. 나도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다. 빈센트 씨는 진지하게 내뱉었다.
빈센트: 성인 파우스트 님은 우리 나라를 알렉 님께 맡기시고 자취를 감추신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나라의 위기…… 세계의 위기를 맞아 다시 속세로 모습을 드러내 주신걸지도 모르지.
드러몬드: 파우스트는 오래 전부터 현자의 마법사였습니다.
빈센트: 함부로 부르지 마라. 만일의 일이 있지 않는가. 그분 앞에서 경의를 잊지 마라.
드러몬드 씨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빈센트 씨가 워낙 진지해서 움찔한 것 같았다.
드러몬드: 아, 알겠습니다.
콕로빈: 후후, 그 파우스트 씨가 전설의 파우스트 님과 동일인물이라니…….
드러몬드: 뭘 웃고 있느냐, 바보 녀석! 너도 가만히 있어!
콕로빈: 네, 네!
황송해 하는 두 사람을 곁눈질하고 빈센트 씨는 진지하게 머리를 숙였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전설의 파우스트…… 님은 신용하시는 건가요? 같은 마법사인데?
빈센트: 당연하다. 중앙의 나라 건국을 위해 힘을 실어주신 분이니.
지금의 현자의 마법사도 마찬가지에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도움을 주고 있어요.
빈센트: …….
조상이었던 알렉 씨는 마법사들을 친구로 대해줬었다. 그래서 전설의 파우스트 님도 협력적이지 않았나요?
친구로서 대하는 것을 멈춰버렸기 때문에 파국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빈센트 씨는 입을 다물었다. 못마땅한 침묵이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다시 보는 듯한 사려 깊음이 전해진다. 내가 마법사들을 지키는 것처럼 그도 인간을 지키려고 한다. 자신들을 도와준 마법사가 된다면 솔직한 존경도 받을 수 있다.
(성스러운 마법사, 건국의 영웅 파우스트인가……. 과거의 파우스트를 사모하는 중앙의 나라 사람들은 잔뜩 있어. 파우스트의 정체를 알리면 인간들은 마법사들을 믿게 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파우스트는 절대로 싫어하겠지……)
파우스트는 알렉에게 배신당했다. 인간과 마법사가 겨렬되었을 때 화형당했다. 그후로 계속 파우스트는 인간들도 중앙의 나라도 원망하고 있다.
파우스트: 어이.
그 순간, 파우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6화 빈센트의 진의
빈센트 씨들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돌아본다.
빈센트: 무슨 일이지.
적극적으로 남에게 말을 건 것을 이미 후회하는 듯한 얼굴로, 파우스트는 천천히 안경을 밀어 올렸다.
파우스트: 마법사를 꺼려하던 네가, 어째서 시찰할 필요가 있지? 한 번이라면 변덕스럽다고 해도 이번이 세 번째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
빈센트: …….
빈센트 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망설임이 떠올랐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법사를 시찰할 필요……?)
빈센트 씨의 침묵에 파우스트는 아이러니한 듯 냉소를 지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비정함을 모멸할 때 그가 보이는 표정이었다.
파우스트: 빈센트. 너는 아서의 집안이고, 카인의 옛 주군이다. 오늘은 잠자코 돌아가주지. 하지만 누군가에게 우리들은 파는 행동이라도 한다면, 그 피는 끊길 것이다. 후세까지 저주할테니.
파우스트의 인품을 아는 나조차 가만히 있게 하는 저주꾼의 웃음거리였다. 빈센트 씨가 가물가물 숨을 삼킨다. 그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법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존경하는 조상에게 버려지는 것 같은 불안한 공포……. 의외였다. 이 사람도 누군가에게 지켜지고 싶은 것이었다.
빈센트: ……잘 알겠다.
파우스트: 흥…….
파우스트는 그림자를 질질 끌며 도서실로 사라졌다.
브로치를 단 귀족: 후후…… 근사한 음식이군요. 서쪽 나라는 유행이 빠르죠.
모자를 쓴 귀족: 그 말대로. 앞으로는 중앙의 나라가 아닌 서쪽 나라의 시대입니다. 마법 과학의 혜택으로 대륙 제일을 발전을 이룬 지금, 서쪽 나라는 가장 부유하고 강한 강대국이다.
브로치를 단 귀족: 하지만…… 무서운 소문을 들었습니다.
모자를 쓴 귀족: 무서운 소문?
브로치를 단 귀족: 오즈나 미스라…… 날씨를 조종하고 대지를 흔드는 악명 높은 대마법사들. 그들이 중앙의 나라와 손을 잡았다고…….
모자를 쓴 귀족: 뭐라고!? 그 오즈와 미스라가 어째서 중앙의 나라에……!? 설마, 우리의 보물이나 기술을 빼앗을 생각은…….
???: 무슨 일이신지.
모자를 쓴 귀족: 당신은…… 버넷 장군……!
브로치를 단 귀족: 질 버넷 님…… 서쪽 나라에서 가장 평판이 높은 분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질: 저야말로 만나서 영광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들, 도대체 무슨 일이신가요?
브로치를 단 귀족: 버넷 장군. 오즈나 미스라가 중앙 나라에 있는 것이 사실인가요……?
질: ……네. 사실입니다.
브로치를 단 귀족: 어머! 어떻게 이런 일이……!
모자를 쓴 귀족: 중앙의 나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질: 모두들 진정하세요. 걱정하지 마시길. 그들이 중앙의 나라에 있는 것은 그들이 현자의 마법사이기 때문입니다.
모자를 쓴 귀족: 현자의 마법사…….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브로치를 단 귀족: 분명히 이계에서 온 현자와 함께 '거대한 재앙' 을 쫓는 마법사가 아닌지……?
질: 네, 맞습니다. 다음에 올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오즈나 미스라들은 중앙의 나라의 마법관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법관에 현자가 있기 때문이죠. 마법사는 현자의 말에만 따른다고 했던가.
브로치를 단 귀족: 그렇다면 현자님이 있는 한 오즈나 미스라도 얌전히 있는 것이군요. 다행이다……. 하지만 현자님을 자기 나라에만 두다니, 중앙의 나라는 치사하네.
질: 아뇨, 중앙의 왕가가 멋대로 마법관을 설치해 그들을 환대하고 있을 뿐. 마법사는 중앙의 나라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모자를 쓴 귀족: 오오! 그렇다면……!
질: 국왕 폐하께서는 현자도, 현자의 마법사도 우리 나라의 관할 하에 두기를 원하십니다. 조만간 오즈도 미스라도 이 천공리궁으로 모시도록 하죠.
7화 장군의 책략
모자를 쓴 귀족: 오오! 역시 버넷 장군!
브로치를 단 귀족: 진짜 오즈라니 무서워…….
모자를 쓴 귀족: 현자의 말이라면 듣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꼭 보고 싶어! 장군, 기대하고 있겠네!
질: 그렇다면 실례.
브로치를 단 귀족: 기다려 주세요, 장군.
질: …….
브로치를 단 귀족: 버넷 장군은 소설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질: 그래서 뭔가요?
브로치를 단 귀족: 메그루모스의 신장, '애수와 만조의 미트파이는' 보셨나요? 저, 매우 감동…….
질: 다물어 주세요. 내용은 밝히지 말아주시길. 아직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원정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서.
브로치를 단 귀족: 아아! 꼭 구해주세요! 정말로 재밌었…….
질: 다무시길. 감사합니다. 그럼.
질: 나라는 인간이 깜빡하고 있었다니……. 메그루모스의 신작이 나왔다니, 당장 입수하도록.
서쪽 나라의 장교: 네.
질: 미트파이가 제목에 있다는 것은 전작의 조연이었던 메이드, 마가렛이 주인공일지도 몰라……. 마가렛의 특기는 미트파이였어. 짝사랑하던 여주인의 약혼녀에게 파이를 가르는 대목은 명장면이었지.
서쪽 나라의 장교: 각하.
질: 뭐지.
서쪽 나라의 장교: 마음속 깊이 충고를 드립니다.
질: 알고 있어. 마가렛의 사랑은 이번에도 보답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서쪽 나라의 장교: 아닙니다! 조금 전의 말씀 말입니다. 마법관을 유치하신다고……. 만약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면…….
질: 흥. 호언장담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건가.
서쪽 나라의 장교: 각하의 명예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태생 뿐인 대귀족들과는 달리 각하는 그 재주로 여기까지 올라오신 분. 분명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탕한 아들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질: 타고난 대귀족과 방탕한 아들인가. 문제의 발언은 네 쪽이구나.
서쪽 나라의 장교: 죄송합니다…….
질: 용서해 주지. 호언장담은 일부러 한 것이다. 술주정뱅이에게 독한 술을 따르는 것과 같지. 우리 나라의 대귀족들도, 중앙의 나라의 정부도 한가롭지만 새로운 나라가 태어난 것과 같다. 일찌감치 손을 쓰지 않으면 '거대한 재앙' 에 멸망하기 전에 다시 마왕에게 지배당할 것이야.
서쪽 나라의 장교: 마왕? 새로운 나라? 무엇이……?
질: 마법관이다.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 오즈나 미스라를 따르게 하다니…… 소문이 사실이라면 현자는 한 나라의 왕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빨리 손을 써야지.
서쪽 나라의 장교: ……이계에서 소환된 현자님은 저희를 위해 세계를 지켜주시지 않습니까?
질: 그래서 뭐지.
서쪽 나라의 장교: 나쁜 분처럼 말씀하셔서…….
질: 현자가 벌레도 죽이지 않는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뒤에 오즈와 미스라를 거느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악한 악당이다.
서쪽 나라의 장교: 그런가……?
질: 불투명하고 위태로운 마법관은 통째로 이곳에 받아서 우리가 관리하는 것이 좋겠어. 이를 위해 이미 물밑에서 협상은 제의하고 있다.
서쪽 나라의 장교: 누구에게?
질: 너에게 술술 얘기할 리가 없잖아. 한 번 있으면 죽을 때까지 비밀 엄수다. 아무튼 국가기밀이니.
서쪽 나라의 장교: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질문은…….
질: 중앙 나라의 국왕 폐하의 동생 군, 빈센트 전하다.
서쪽 나라의 장교: 뭐라고요……!?
질: 후후, 네 인생에 긴장감을 주고 싶어서. 맛봤다면 메그루모스의 신작을 구해다오. 가능한 빨리.
서쪽 나라의 장교: 아, 알겠습니다!
질: ……지금쯤 빈센트 전하꼐서는 마법관에 시찰을 가서 헤매고 있을 때겠지. 마법관이라는 강력하지만 고위험 카드를 수중에 두는 것인가, 버릴 것인가. 흥…… 아마도 버리겠지. 귀찮은 왕자님을 떼어낼 기회다. 마법관은 서쪽 나라에 맡겼다. 당신은 세계 구제에 전념해 달라고 하고 정무에서 떼어놓고……. 만일 왕자님께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스스로 왕관을 쓰면 되니까.
질: 왕족이란 무섭군. 그것이 좋은 거지만.
8화 서쪽 나라의 대접
빈센트: …….
동쪽 마법사들과 헤어진 후 빈센트 씨는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파우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 시찰에는 뭔가 목적이 있을지도 몰라.
콕로빈: 현자님. 서쪽 마법사들은 바에 있는 거죠.
아, 네. 맞아요.
콕로빈 씨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은 눈앞의 시찰에 집중해야지.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중앙, 남, 동으로 순조롭게 왔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서쪽 마법사는 장난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고 해도, 시찰도 이것으로 세 번째고. 어제 이야기 했을 때도 침착했었어. 그러니까 분명 괜찮아……)
아…… 이 방이에요. 잠깐 상태를 살펴볼게요.
그곳에는 4명의 빈센트 씨가 있었다.
빈센트: 뭐야.
빈센트: 뭐지.
빈센트: 뭐야 뭐야.
빈센트: 뭘까.
나는 반사적으로 복도로 돌아왔다.
…….
빈센트: 뭐야. 들어가지 않는 건가?
진짜 빈센트 씨가 의아하다는 듯 물어봤다. 나는 돌아서서 정나미 있게 웃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저기,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뒤로.
빈센트: 뒤로?
맞아요, 맞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시 바를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서쪽 마법사들이 있었다.
무르: 아, 현자님!
클로에: 현자님이다!
샤일록: 안녕하세요, 현자님.
라스티카: 현자님, 어떠셨나요? 깜짝 놀라셨나요?
아니, 저기…….
라스티카: 중앙의 나라도 남쪽의 나라도 동쪽의 나라도 모두들 진지한 훈련을 받고 있을 것 같았기에, 저희들이 발 벗고 한때의 웃음과 놀라움을 여러분들에게 제공할까 하고.
고, 고마워요. 하지만 조금 아슬아슬했다고나 할까…….
라스티카: 이런, 성인이 너무 많았나요?
샤일록: 다소 과격한 후반의 소재는 아직 선보이지 않았습니다만…….
클로에: 역시 혼날 것 같지 않아!? 그렇지, 현자님.
무르: 드러몬드 대신으로 변신하는 게 더 재밌다는 뜻? 현자님, 웃음에 엄격해?
에, 그게……. 그렇네요. 일단은……. 모두들,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서쪽의 마법사들: 천만에!
하지만 지금 조금 빈센트 전하께서는 놀라움과 웃음은 원치 않으신 것 같아서…….
무르: 뭘 원하는 것 같아? 철학? 과학? 천문학?
샤일록: 속세의 고뇌를 잊는 미주를?
라스티카: 훌륭한 음악은 어떤가요?
클로에: 새로운 의상 같은 건 어때!?
에, 그게……. 그 근처 물건을, 마법을 써서 빈센트 전하께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서쪽의 마법사들: 물론!
그러면 부디 그런 방향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기다리게 했던 빈센트 씨들을 돌아봤다.
들어와 주세요!
무르: '에아뉴 랑블!'
와아…… 밤하늘의 별자리가 온 방안에 빛나고 있어!
샤일록: '임비벨'
이 무슨…… 하늘을 나는 과실이 짜여져서, 리큐어와 함께 유리잔 속으로…….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와아……! 너무 멋진 연주예요!
클로에: '스위스피시보 보이팅고크!'
빈센트: …….
클로에: 아…… 그게…….
서쪽의 마법사들의 마법에 일동 텐션이 올랐다. 빈센트 씨 제외하고.
9화 마법사의 선물
빈센트: ……뭐지, 이건.
클로에의 마법으로 하늘하늘 허공에 떠돌던 천을 빈센트 씨가 잡아당긴다. 마법이 풀렸는지 하늘에 떠있던 선명한 색의 천은 빈센트 씨의 손안에 뚝 떨어졌다.
클로에: ……그, 그게. 에, 크래뱃입니다…….
빈센트: 보면 안다.
빈센트 씨에게 슬며시 나타나자 클로에는 한순간에 움츠러들었다.
클로에: 죄, 죄송합니다…….
라스티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클로에. 봐, 빈센트 전하께서는 화를 내고 계시지 않으니까.
클로에: 저, 정말……?
라스티카의 말에 클로에가 살짝 시선을 올린다. 빈센트 씨가 심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어 주기를 빌었다. 클로에는 아주 착한 아이다. 바느질을 좋아하고 바느질을 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 그가 재봉의 마법을 보여 주고 꾸중을 듣는 것은 너무하다. 나는 언제라도 이야기를 나누어 넣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점잖게 집어 올린 천을 찬찬히 올려다보며 빈센트 씨가 눈썹을 찡그린다.
빈센트: 마법으로 만든 건가? 아니면 만든 걸 마법으로 꺼낸 건가?
클로에: 그, 그게. 저기. 천은 사두었던 거예요. 중앙의 시장에, 멋진 가게가…….
빈센트: 마법은 언제 사용했지?
클로에: 매…… 매듭을 지었을 때요!
빈센트: 본 적이 없는 매듭법이다.
클로에: 제가 생각한 매듭 방식이에요.
빈센트: 호오, 멋지군.
빈센트 씨는 장난처럼 자신의 목덜미에 갖다댔다. 나는 기뻤다. 그렇게 웃는 모습은 아서와 닮았다. 나는 기뻐하며 클로에를 돌아보았다. 클로에는 울고 있었다. 깜짝 놀랐는지 큰 눈에서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라스티카가 당황하고 있었다.
라스티카: 크, 클로에.
자신의 말에 감격한 서민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데 익숙했는지 빈센트 씨는 태연했다. 무르와 샤일록이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빈센트: 알겠다. 이건 돌려주지.
클로에: 아, 저기……! 괜찮다면 받아주세요. 너무 잘 어울려서…….
빈센트 씨는 수상하게 클로에를 쳐다봤다. 클로에는 바로 파랗게 변했다. 그래도 눈물을 닦고 똑바로 빈센트 씨를 바라보았다.
클로에: 마법사가 만든 것이라 가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주를 내리지는 않았어요! 이상한 마법도, 이상한 장치도 물론 없습니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빈센트: …….
빈센트 씨는 시험하듯 클로에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크래뱃을 재빠르게 깨끗하게 접어서 가볍게 건넨다.
빈센트: 받도록 하지. 너를 신용한다.
파앗하고 클로에는 미소를 지었다.
클로에: 가…… 감사합니다!
라스티카: 잘됐네, 클로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잘 되어가고 있는 이야기에 아직도 진의를 의심하게 된다. 클로에가 좋은 아이니까. 매듭 방식이 멋졌으니까. 중앙의 나라의 가게를 칭찬 받았으니까. 빈센트 씨가 클로에의 호의를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그냥 변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기뻤다. 나도 빈센트 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했다. 그것을 가로막는 듯이 그는 라스티카에게 말을 걸었다.
빈센트: 라스티카 페르치?
라스티카: 네.
라스티카가 상냥하게 대답을 한다. 빈센트 씨는 무심하게 그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살펴봤다.
빈센트: '거대한 재앙' 와의 전쟁의 희생자 대신 소환된 음악가…….
라스티카: 말씀대로입니다, 빈센트 전하. 잘 알아주시길.
10화 라스티카의 과거
빈센트: 이쪽이야말로. 몇 가지 질문을 해도 괜찮겠나?
라스티카: 물론입니다.
빈센트: 페르치란, 그 멸망한 페르치 가문인가? 일찍이 서쪽에서 부귀영화를 자랑했던, 서쪽 나라의 왕가 이상의 대부호였던 대귀족의…….
빈센트 씨의 질문에 라스티카의 옆에서 클로에가 숨을 삼켰다. 파고들 듯 라스티카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라스티카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라스티카: 글쎄요, 공교롭게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빈센트: ……그런가.
라스티카: 당신의 이름은 빈센트 그랑벨?
빈센트: ……그렇다.
라스티카: 근사한 이름이군요.
빈센트 씨는 응하지 않고 뒤에서 손을 잡았다.
빈센트: 라스티카. 당신의 신변을 돌봐줄 자는?
라스티카: 클로에에게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아이랍니다.
빈센트: 손이 모자란가. 부족하다면 종자를 붙이지.
샤일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르가 휘파람을 불었다. 놀랄 정도의 높은 대우였다.
무르: 어째서 라스티카에게? 현자님도 종자가 없는데?
빈센트: 콕로빈이 있지 않은가.
콕로빈: 에!? 저는 그, 본업은 서기관인데요…….
샤일록: 이상한 일이군요. 서쪽의 마법사는 이상한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고압적이었던 당신의 태도가 최근 들어 연화된 이유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가만 있으라는 듯이 빈센트 씨는 샤일록을 들여다보았다. 샤일록은 파이프를 물고 가볍게 눈썹을 올린다. 빈센트 씨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문득 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샤일록의 미소에 홀린 듯했다. 민망한 듯이 눈을 돌려 말을 이어간다. 분명치 않은 태도였지만, 어쩌면 영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샤일록에게 끌리지 않고 그와 정면대결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샤일록: 이런, 유감.
무르: 샤일록에게는 지루하겠네!
한 사람을 들여다보면.
라스티카: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째서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거죠? 혹시…….
빈센트: …….
라스티카: 당신이 저의 신부…….
빈센트: 신부?
클로에: 아냐아냐아냐! 진정해, 라스티카!
마도구인 새장을 출현시킨 라스티카를 클로에가 황급히 밀었다. 라스티카는 신부를 찾고 있다. 그래서 신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새장에 가두는 버릇이 있었다. 아저씨부터 할머니까지.
빈센트: 잘 모르겠지만 이제 됐다. 물러가도록 하지.
빈센트 씨는 그렇게 말하며 라스티카를 향해 인사를 했다. 라스티카도 정중히 인사한다. 그가 공손한 인사를 하는 것은 언제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묘한 위화감이 남는다.
클로에는 불안한 듯 라스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행한 처지에 있던 클로에는, 라스티카의 도움을 받아 그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말하자면 라스티카는 클로에의 스승이다 하지만 클로에는 라스티카의 과거를 모른다. 그가 어째서 신부를 찾는지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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