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소리를 지르는 미틸의 등 뒤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
그건 사악한 아우라를 내뿜는 해골이었다. 덤벼들려고 그 하얀 두 팔을 치켜든다.
미스라: '아르시무'
미틸의 등에서 파란 불꽃이 튄다. 해골이 소리도 없이 불길에 휩싸여 다 타들어갔다.
미틸: ……뭐, 뭔가요 방금 거!?
해골이 덮쳐왔죠……!?
미스라: ……뭔가 옛날에 똑같은 짓을 한 것 같은…….
해골이었던 것은 타들어 간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우리는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해골, 그냥 위협적인 느낌이 아니었어…….)
여관에서 볼 수 있었던 섬뜩하기만 한 기구와는 다르다. 분명히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하고 있었다.
미스라: 피가로, 당신 이 방에 귀신을 데려왔나요?
피가로: 취미가 나쁘네. 싫은 예감이 들어서 급하게 현자님들의 안전을 확인하려 왔을 뿐이야.
미틸: 두 분 다 그 침대에서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피가로 선생님이 걱정해서 문을 박살내 주셨어요.
피가로: 미스라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까 여관의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지. 침대에 걸려 있던 마법도 갑자기 무리해서 버릇이 없어졌고,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직접 덮쳐올 줄은. 우리들은 불청객이었던 것 같아.
'이 여관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라는 쌍둥이의 경고를 떠올리며 섬뜩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제 더 이상 시험할 일이 아니다. 적의를 가진 무언가가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스노우와 화이트의 말대로, 이 여관에서 무언가가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네요…….
미틸: 레노 씨는 괜찮을까요. 다른 분들도…….
미스라: 괜찮지 않나요? 저만큼 조잡한 것도 없고.
피가로: 그렇다고 해도 상황 정도는 확인해야지. 일단 다 같이 합류하자.
우리는 다른 마법사들을 찾기 위해 함께 방을 나왔다.
……! 해골이……!
복도로 나오자마자 방금 쓰러뜨린 것과 똑같은 해골이 나타났다. 망설임 없이 이쪽으로 온다. 여러 명의 뼈를 톱밥에 조합했는지, 해골을 구성하는 뼈는 크고 작았다. 그것이 움직이는 모습은 심하게 일그러지고 섬뜩하게 느껴진다.
미틸: 현자님, 저희들의 뒤로……!
미틸이 내 손을 잡아당겨 겁을 먹고 있는데도 감싸줬다.
미틸: 현자님에게 다가가지 마!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아체!'
루틸: ……! 이쪽에서도 오고 있어요……!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미틸과 루틸의 마법을 정면으로 맞고 해골은 살짝 물러났다. 그러나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미스라: 귀찮네요. '아르시무'
그 두 몸을 미스라가 호쾌하게 날려버렸다.
피가로: 둘러싸이는 건 위험하네. 현자님, 우리에게서 떠나지 말아줘.
네, 네……!
가는 곳마다 해골들은 나타났고, 그때마다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격퇴했다. 그러나 어디서 생성되는지 복도에서, 방에서 발소리를 내며 나타난다.
루틸: 뭘까요. 아까부터 미스라 씨가 집중적으로 노려지고 있는 것 같은…….
미스라: 기분 탓 아닌가요.
루틸의 말대로 미스라가 특히 노려지고 있는 것 같다. 몇 번이나 날려도 해골은 미스라에게 몰려가고 있었다.
(어째서지. 쓰러뜨리는 방법이 화려해서 다가온다던가……?)
미스라: …….
아무렇게나 해골을 쓰러뜨리던 미스라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복도 전방에 손을 얹고, 그대로 마법을 쏜다.
미스라: '아르시무'
그러자 저쪽도 마법을 쏘았는지 커다란 빛이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미스라의 마법과 격렬하게 부딪쳐 관 전체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오웬: 미스라…….
낯익은 모습에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미스라의 눈빛은 초조하고 날카로웠다.
미스라: 잠깐, 뭔가요. 조잡한 흉내내지 말아주세요.
오웬: 하? 먼저 걸어온 건 그쪽이잖아. 공격하는 상대 정도는 확인하라고.
미스라: 하아…… 잘 수도 없고 해골은 끈질기고 화난다고요. 가만히 있어주지 않겠나요? 아아, 입 다물게 하면 되나.
그 한마디로 오웬의 한쪽 눈, 붉은 색이 순간 빛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박한 미소와 함께 낮은 톤의 웃음 소리가 하얀 목구멍에서 흘러나온다.
오웬: 해 봐. 이 악취미스러운 여관을 네 무덤으로 만들어줄게.
와인잔을 기울이는 듯한 우아한 몸짓으로, 오웬은 트렁크를 허공에 띄웠다.
미스라: …….
미스라도 아무 말 없이 수정해골을 들었다. 냉기가 감돌고 공기가 바짝 붙는다. 두 사람이 다음으로 반복하는 일격은, 분명 아까와 비교도 안 될 것이다. 마법서에서의 싸움의 재연이다.
미틸: 미스라 씨, 진정해 주세요……!
루틸: 싸울 때가 아니에요! 이러는 사이에도 해골이……!
두 사람을 거느리고 복도 너머로 수많은 해골이 다가온다. 그때, 총성이 한 방 요란했다. 순식간에 해골들이 무산된다.
브래들리: 시끄럽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그런건가. 찾을 필요도 없었네.
총을 겨눈 브래들리와 함께 쌍둥이의 그림을 안은 레녹스가 찾아왔다.
오웬: ……칫.
방해가 들어와 흥이 깨진 것인지 오웬이 살기를 잃는다.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오오, 모두 같이 있었군!
레녹스: 다행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군요.
피가로: 조금 무슨 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드디어 전원이 모인 곳에서 서로의 상황을 확인한다.
루틸: 그런가요. 역시 그쪽에도 해골이…….
거의 동시에 습격 당했다는 말이 되네요.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그때 우린 이미 그림 속이었으니까. 레녹스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네.
네 사람의 상황도 이쪽과 대체로 같았다. 방에 있다가 해골에게 공격당했다고 한다.
피가로: 아무래도 북쪽의 마법사들이 말했던 대로, 두 분에게 원한을 품은 여관의 주인이 목숨을 노리러 온 것 같네요.
브래들리: 봐 맞잖아.
오웬: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고.
북쪽 마법사들의 싸늘한 시선에 그림에서 얼굴을 내민 쌍둥이는 맹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아니 틀려. 저건 여관의 주인이 아니다.
미틸: 주인이 아니야……?
루틸: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다르다고 하셨죠.
오웬: 얼토당토 없는 소리.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도 소용 없어.
미스라: 좀 더 나은 변명을 하는 건 어떤가요.
그림 속의 스노우: 변명을 할 리가 없지.
그림 속의 화이트: 우리가 원인이라면 당당하게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브래들리: 이 썩을 영감.
그림 속의 스노우: 얌전히 이야기를 듣거라. 우리가 그대들의 마음에 말을 걸었을 때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고 얘기했었지.
그림 속의 화이트: 아무래도 그 예감은 맞았던 것 같네. 여관에서 주인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아. 이 여관은 지금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있다. 그 자의 손에 걸려 원래 주인은 이미 돌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군.
루틸: 에, 그런…….
그렇다는 건, 처음에 로비에서 들은 목소리는 여관의 주인이 아니라…….
그림 속의 스노우: 가짜일세. 목적은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여관을 조종하여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루틸 / 미틸: …….
목덜미를 쓰다듬는 듯한 불안에 콜록 숨을 삼켰다. 원래 무서웠던 여관의 드디어 정체을 알 수 없는 징그러운 것이 되어 간다.
레녹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해골이 튀어 나올 거야. 우선은 원흉인 그 마법사를……
미스라: 죽이죠.
오웬: 죽이자.
브래들리: 쳐죽이자고.
레녹스: ……찾아보자, 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7화
피가로: 죽이거나 혼내려고 해도 적이 있는 곳을 찾아야지. 조금 뒤져봤는데, 금방 찾을 것 같지는 않아. 아무래도 이 여관 전체에 마력을 사용해서 몸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게다가…….
피가로는 시선을 움직여 벽에 걸린 괴상한 두개골들을 바라보았다.
피가로: 여관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수상한 주구에도 마법을 걸기 시작한 것 같아. 곳곳에서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고 있어. 시간을 들이면 거처를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해골이 덮치니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해골은 서서히 우리 주위에 모여든다. 마법사들이 계속 그것을 물리치고 쫓고 있었다.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군.
그림 속에서 바라보던 스노우와 화이트는 미간에 주름을 새긴다.
그림 속의 스노우: 이쪽의 목숨을 노린다 해도, 왜 이런 수단을 쓰는 거지.
그림 속의 화이트: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면 더 할 방법이 있을 텐데.
오웬: 성격이 나쁜거 아니야?
브래들리: 그거 자기소개냐? ……우왓!
오웬의 공격이 브래들리의 얼굴 바로 옆을 스쳤다. 유난히 큰 소리가 나면서 등 뒤의 해골이 요란하게 날아간다. 브래들리의 고충을 무시하고 오웬은 계속해서 말했다.
오웬: 뭐든 좋아, 이유 따위는.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고. 여관째 부수고 끝. 그거면 되잖아.
미스라: 하지만 아깝지 않나요? 저는 이 여관의 분위기라던지 비교적 마음에 드는데.
모두들 약간 의외라는 듯 미스라를 쳐다봤다. 그의 말에 이끌리듯 쌍둥이도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인다.
그림 속의 스노우: 으음, 확실히……. 잘 좋은 주구가 갖추어져 있고, 우리도 한때 꽤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고…….
그림 속의 화이트: 은신처 같은 스팟을 놓기에는 조금 아쉽지.
의견이 한 번 모아졌을 때, 루틸이 걱정하듯 주위를 둘러본다.
루틸: 게다가…… 여기에 있는 것은 저희들 뿐만이 아니에요. 여관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남겨져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피가로: 그렇네……. 이곳을 찾은 손님이 어디에 갇혀 있을 수도 있어.
레녹스: 일단 로비에 내려가서 차례로 여관 안을 살펴보죠.
다가오는 해골을 물리치며 우리는 로비까지 왔다. 납치당했다고 들어서일까. 풍경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처음 왔을 때보다 현격히 싫은 느낌이 들었다.
레녹스: ……이상하네.
미틸: 레노 씨, 무슨 일인가요?
레녹스: 입구 문을 열려고 했는데 꼼짝도 안 해.
자물쇠가 걸려 있나요?
레녹스: 아뇨, 잠겨 있는 정도라면 힘으로 억지로 열 수 있습니다만…….
브래들리: 억지로 열 수 있는거냐.
레녹스로부터 그림을 맡았던 피가로가 쌍둥이와 함께 입구를 조사한다.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문에 결계를 설치했군.
피가로: 세월에 걸쳐 준비했다는 느낌의 집념이 스며든 복잡한 술식이다. 아무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네.
그러면 혹시, 저희들은 갇힌 건가요……?
오웬: 그럴 리가 없잖아. 미스라가 있으니까.
루틸: 아, 그런가. 미스라 씨의 공간의 문이라면 나갈 수 있죠.
미스라: 당연하죠. 나에게 감사해 주세요.
그림 속의 스노우: 다행이다 다행이다. 일단 마법관으로 돌아갈까.
그림 속의 화이트: 미스라 쨩, 아르시무 해 줘!
미틸: 저기, 기다려 주세요. 저희들, 이대로 돌아가 버려도 괜찮을까요……? 아직 여관 안을 조사하지 못했는데. 게다가 이런 장소를 방치하면 굉장히 위험해 지는게…….
확실히…….
이제 이 관은 완전히 귀신의 집이다. 우리를 노리는 해골이 이윽고 여관 밖에도 쏟아져 나와 사람을 덮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사이에도 해골은 덮쳐온다. 그 불길한 소리는 우리를 에워싸듯 점점 커져갔다.
루틸: ……!
미틸: 해골의 수가……!?
떠난다는 얘기를 해서일까,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해골이 로비에 와르르 몰려들었다. 마법사들은 일제히 마도구를 꺼낸다.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대접을 해줄 것 같지는 않구먼.
브래들리: 아아. 리필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오라고.
밀려오는 해골들을 마법사들이 맞이한다. 총성과 빛, 불꽃의 열, 바람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그들이 마법을 부릴 때마다 거친 음악처럼 요란했다. 앞으로 가는 몇 구가 쓰러져도 해골들의 행진이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대열을 짜고 몇 번이나 찾아온다. 무리에서 쏟아진 해골들이 틈을 타 덤벼들었다.
……우왓!
레녹스: 현자님!
레녹스에게 끌려간다. 덮친 해골은 안면을 맞고 크게 뒤로 넘어졌다.
레녹스: 괜찮으신가요?
네, 네. 고마워요. 지금 레녹스, 맨손으로…….
레녹스: 이쪽이 싸움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만.
그렇게 말하며 레녹스는 다가온 해골을 하나 더 걷어찼다.
미틸: '오르토니크 세르' ……와아!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루틸: 미틸, 괜찮니?
미틸: 네, 네……! 왠지 해골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덮쳐드는 해골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도대체 넘어뜨릴 때마다 다른 해골의 강도가 높아지는 듯한 기색마저 있었다. 처음에는 루틸이나 미틸의 마법으로도 물리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발을 묶기도 어렵다. 젊은 남쪽 마법사들은 마력이 깎이고 조금씩 피폐해져 간다.
(위험해……. 이대로라면 미틸들이……)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현자, 잠깐 괜찮겠나.
오웬: '쿠레 메미니'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오웬: 하아, 짜증나.
브래들리: 구더기처럼 꿇어 나오고 있어.
해골의 습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싸움에 익숙해진 북쪽 마법사들에게 피곤함은 없더라도, 초조함은 가중되고 있었다.
미스라: '아르시무'
브래들리: ……! 미스라 너 이자식, 날 말려들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미스라: 하아, 적당히 피해주세요. 조절하는 것도 귀찮아서.
미스라: …………?
분실물이라도 잃어버린 듯 불쑥 미스라가 주위를 둘러본다.
미스라?
미스라: 루틸이랑 미틸은 어디있죠? 지금 미아가 되면 그런 약한 사람들, 한순간에 해골의 파도에 잠기게 될 거예요.
말하자마자 해골을 밀어내며 로비에서 나가려고 했다.
브래들리: 어이!
미스라, 아니에요! 둘은 지금 피가로랑…….
루틸: 실례되는 말 하지 말아주세요!
해골을 피하면서 루틸이 계단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 뒤로 쌍둥이의 그림을 안은 피가로와 미틸도 찾아온다.
미스라: 하? 당신들 어디 있었나요?
미틸: 정말이지, 가기 전에 설명 했잖아요.
피가로: 로비의 해골은 미스라들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따로 행동하고 있었어. 여관을 조사하기 위해서.
방금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조언을 받았거든요.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전원이 여기서 해골을 상대하고 있어도 끝이 없다. 우리가 잠시 여관을 조사하고 오지. 신경 쓰이는 것도 있고.
미스라들이 해골을 끌어들이고 있는 틈을 타, 피가로는 남쪽 형제를 데리고 빠져나와 쌍둥이의 지시 아래 마법으로 관 안의 기척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라: 그런 거였나요? 금시초문인데.
오웬: 전원 알고 있었어. 너 빼고.
그래서 뭔가를 알아냈나요?
루틸: 저희 말고 갇혀 있던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루틸은 품속에서 소녀의 인형을 꺼냈다. 꽤 오래된 것인지 여기저기 상처받고 긴 곱슬머리와 옷은 더러워졌다.
레녹스: 인형……?
이 인형에 뭐가 있나요?
8화
그림 속의 화이트: 얘기하기엔 해골들이 방해되는구먼. 일시적으로 결계를 치도록 하지.
그림 속의 스노우: 별로 듣지는 않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피가로, 도와주게나.
쌍둥이와 피가로가 우리 주위에 좁은 결계를 설치했다. 해골들은 결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림 속의 스노우: 이걸로 조금은 차분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
그림 속의 화이트: 그래서 이 인형 말인데……. 이 여관의 주인이구먼.
여관의 주인: 아, 안녕하세요…….
!?
귀여운 인형에서 주름진 목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비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는 인상이 달라.
레녹스: 이것이 여관의 주인……?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히 살해당했다고…….
미틸: 그게, 인형으로 둔갑되어 있던 것 같아서……. 여관 지하 깊숙이 숨어 있었어요.
그림 속의 화이트: 그래서 우리가 여관에 와도 나오지 않았던 거군.
인형의 목소리가 크게 뒤집혔다.
여관의 주인: 죄죄죄죄죄죄송합니다……! 모처럼 와주셨는데 두 분의 마중도 못나가다니……!
브래들리: 엄청 떨고 있네.
오웬: 아하하, 인형인데 벌벌 떨고 있어.
그림 속의 스노우: 여전히 잘 떠는구먼. 이 녀석은 옛날부터 이 모양일세. 사과는 이제 됐어. 그보다 물어볼 것이 있다. 저 마법사는 누구지?
여관의 주인: 모, 모르겠습니다. 이름도 신상도 모릅니다. 그것은 99년 전, 녀석은 여관의 지붕을 뚫고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지붕을……? 여관을 습격한 건가요?
여관의 주인: 아뇨, 그냥 추락 사고 입니다. 힘이 다해서. 맨 아래에 떨어졌을 때, 우연히 바로 아래에 이 여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쳤는지, 그 마법사의 모습은 끔찍했었죠. 온몸이 너덜너덜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기어다니면서 원망스럽게 내뱉던 기억이 납니다. 미스라에게 살해당할 뻔했다고…….
루틸 / 미틸: 에?
오웬 / 브래들리 / 레녹스: 미스라에게……?
전원 미스라를 쳐다본다.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미스라여, 그대의 아는 사람인가?
미스라: 그러고 보니 옛날에 왠지 화가 나는 사령사와 싸운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잘 안나요.
나른한 듯 미스라는 뒷목을 긁었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피가로: 사령사인가……. 본인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버릇없는 상대지.
레녹스: 이만한 해골을 조종하는 것도 액수군요.
저기…… 주인 분은 그 마법사로부터 숨기 위해 인형이 되었다는 건가요?
여관의 주인: 그런 것입니다. 돌이 될 뻔했던 것을 어떻게든 도망쳤죠.
브래들리: 한심하네. 상대방은 죽을 뻔한 놈이잖아. 그런 놈에게 거처를 빼앗긴거냐?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브래들리 쨩 너무해!
그림 속의 스노우: 어쩔 수 없잖아. 이 아이의 장점은 마력보다 못된 꾀와 음습한 수법이니까.
그림 속의 화이트: 비겁한 전법으로 살아남아 왔으니 갑자기 정면으로 싸우면 방심해서 너덜너덜해지니까!
(너. 너무해……)
여관의 주인: 네, 네. 완전히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그 마법사는 사령사면서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기에 저 따위로는 도저히 …….관을 지키지 못해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쉰 목소리가 안쓰럽다. 인형인데도 눈을 헤엄치며 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이 선하다. 쌍둥이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
피가로: 관의 주구에 묘한 기술이 걸린 것 같은데, 그것도 그 마법사?
여관의 주인: 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숨어 있는 동안 그 마법사가 여관의 주구를 이용해 악행을 거듭하고…….
쌍둥이가 여관의 주인을 성패한 것은 수백 년 넘게 옛말이 된다. 이후 주인은 겁에 질려 얌전해졌고, 그의 비호를 받으며 사는 마을 사람들은 과거의 위협이 사라졌다며 경계심을 늦추고 있었다. 여관을 빼앗은 마법사는 그런 그들을 차례대로 납치해 의식의 제물로 삼거나, 죽여서 뼈를 모으거나 자신의 마력을 높이는 양식으로 삼았다고 한다.
여관의 주인: 이 여관을 근성으로 삼아 자신을 아프게 했던 미스라라는 마법사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레녹스: 그러던 차에, 예기치 않게 미스라가 이 여관에 나타났다…… 라는 건가.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와, 최악의 타이밍.
미스라: 당신들 때문이잖아요.
브래들리: 네 탓도 있어.
오웬: 바보 같아. 잔뜩 벼르고 결국 한 짓은 뼈 장난감을 미스라에게 덮치게 하는 것 뿐이잖아. 장난감도 안돼.
쌍둥이는 무겁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림 속의 스노우: 아니, 그것은 단지 시간벌이에 불과하다.
그림 속의 화이트: 지하실을 조사하면서 봉인 의식을 발동시킨 흔적이 남아 있었어.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아마도, 놈의 진정한 목적은…….
갑자기 해골들이 제자리 걸음을 멈추고 뚝 멈췄다. 뼈의 무리가 일제히 딱딱 이를 울리며 입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 너 희 들 은 이 제 끝 이 다.
땅을 기어다니는 듯한 목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미틸: ……! 이 목소리…….
레녹스: 그 마법사인가.
처음 로비에서 들었던 목소리다. 하지만 그때보다도 훨씬 냉혹하고 악의에 차있다.
마법사: 바보 같은 녀석들. 지금까지는 그저 놀이에 불과하다. 봉인 의식을 완성하기 위한 시간 벌이였지. 너희들이 해골과 노는 동안 99년에 걸쳐 모은 생물의 뼈와 돌과 나의 마력……. 모두 쏟아 부어 차분히 손을 가다듬고 있었다. 미스라도 너희도 이 여관에 영원히 봉인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갑자기 바닥과 벽에서 푸르스름한 보라색 가루가 쏟아져 나온다.
루틸: !?
이건……!?
피가로: 이 기척……. 봉인 의식이 시작된 것 같네.
기쁨과 미움이 뒤섞인 고양된 목소리가 노래하듯 말을 건넸다.
마법사: 아아, 미스라. 기뻐.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너와 재회할 수 있다니.
미스라: …….
마법사: 여전히 불손하고 허망하고 꺼림칙한 남자다. 용케도 이 나를 벌레라고 불러줬겠다. 이제 곧 의식은 완성 돼. 이 세상에서 확실하게 지워주마.
큰 웃음이 울리고 멀어진다. 보랏빛 가루는 답답할 정도로 로비에 가득차 시야의 자유를 빼앗아 간다. 동시에 우리르 ㄹ지키던 결계가 무너져 소멸했다.
결계가……!
그림 속의 화이트: 역시 깨지고 말았나.
그림 속의 스노우: 이제 효과는 없을 걸세. 해골의 마력이 늘었다.
찰칵하고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되살아난 해골의 떼가 동료를 불러 수를 늘려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 소리다. 술사의 마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인지, 하얗던 해골의 색은 거무스름하게 물들었다. 그것이 지금 큰 무리가 되어 우리들에게 덤벼들려고 하고 있었다.
미틸: ……형님……!
파랗게 질린 미틸의 무릎은 떨리고 있다. 루틸은 동생을 자신의 몸으로 숨기듯 꼭 껴안았다.
미스라: '아르시무'
기침하는 듯한 주문이 들리고 섬광이 번진다. 찰나 주위의 해골 모두가 티끌로 변했다. 짐승의 하품처럼 완만한 동작으로 미스라는 남쪽 형제를 돌아본다.
미스라: 뭘 겁 먹고 있는 거예요. 당신들, 누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오웬의 비웃음도 겹쳤다.
오웬: 정말이지. 99년동안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종이조각처럼 얄팍하고 미지근한 세월로 얼굴 들이대지 말라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쉽게 이 녀석을 죽일 수 있다면 아무도 고생 안 해.
브래들리: 하, 맞는 말이지. 음침한 관에 틀어박혀 있는 사이에 북쪽 나라의 맛을 잊어버린거냐. 조금 생각나게 해줄까.
9화
수백 년 동안 서로 죽이려다가 돌이 되지 않고 살아남은 북쪽의 마법사. 그들에게 겁을 먹은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맞선 상대를 어떻게 물어뜯어줄까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미스라: ……그렇지. 좋은 생각이 났어요.
빵을 뜯듯이 수정 해골로부터 아무렇게나 두개골을 뽑는다. 미스라는 그것을 긴 발로 밟는다.
미스라: 봉인되는 것도 싫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면 여관 채로 없애면 되지 않아요?
루틸 / 미틸 / 피가로: 에…….
브래들리: 하아?
오웬: 여기를 남기고 싶다고 한 건 너잖아.
미스라: 그렇게 말했었던가.
레녹스: 했었어.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했었지 했었지.
미스라: 헤에. 이상한 말을 하네요. 여관 채로 숯으로 만들면 편할텐데.
아니 그런 남의 일처럼…….
오웬: 정말로 기억력 나쁜 녀석……. 그렇지만 뭐, 나쁘지 않아.
브래들리: 그걸로 가자고. 화려하게 인도해주지.
기세가 오르는 세 사람에게 스노우와 화이트도 동의했다.
그림 속의 스노우: 주술이 완성되면 늦는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여지는 없겠지.
그림 속의 화이트: 조금 아쉽지만, 여기는 미스라의 제안을 채택하도록 하지. 이래저래 말해도 그게 제일 손쉽지 않은가.
여관의 주인: 그, 그런…….
그림 속의 스노우: 주인이여, 용서하게나. 형체가 있는 것은 언젠가 깨진다.
그림 속의 화이트: 무엇보다 우리를 붙잡고 즐거운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괘씸한 녀석에게는 보답을 해야지.
천진난만한 얼굴에 냉혹한 미소가 서려있다. 최근 들어 처음으로 북쪽의 마법사의 의견이 일치했다.
피가로: 예정과는 상당히 노선이 다른 합숙이 되었지만, 사이좋게 한다는 목적은 달성한 것 같네.
미틸: 정말이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에요!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들, 부탁하겠네!
오웬: '쿠레 메미니'
자장가를 부르듯 오웬이 주문을 외운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달렸다. 그가 손가락을 탁 치자, 샹들리에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칼날이 되어 주위의 해골을 꼬챙이로 삼으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주위를 일소하는 선열하고 흉포한 한 수는 아까의 미스라 못지않다. 그것에 조금 만족한 듯 오웬이 옅게 웃는다.
오웬: 인형 놀이는 이제 질렸어.
그것이 시작 신호가 된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브래들리: 해골 녀석들, 덤비라고.
무한정 솟아오르는 해골들을 무시하고 전원 한꺼번에 도망칠 수는 없다. 그것들을 끌어당기고 치우는 것은 오웬, 브래들리, 레녹스의 몫이다. 세 사람은 몰려드는 해골들을 요란하게 걷어찼다.
오웬: '쿠레 메미니'
오웬이 더욱 거세게 얼음칼을 날린 직후, 해골의 습격에 순간 공백이 생겼다.
오웬: 미스라.
미스라: '아르시무'
지체없이 미스라가 공간의 문을 열고, 마법사들이 안으로 줄줄이 뛰어들어간다. 피가로의 빗자루에 내가 타고, 미틸은 스노우와 화이트의 그림을 안고, 주인의 인형은 루틸이 쥐고 있다.
피가로: 현자님, 꽉 잡고 있어줘.
부탁드려요!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미틸 쨩, 떨어뜨리지 말아줘!
미틸: 네!
루틸: 죄송해요, 주인 씨. 조금 흔들려요!
여관의 주인: 히익……!
문으로 뛰어나오자 밖은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다. 새하얀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
강렬한 추위를 각오하고 한순가 숨을 삼켰지만, 피가로가 마법을 걸어준 것인지 차가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북쪽 날에 부는 바람은 단순에 열을 빼앗아 목숨을 앗아간다. 마법사들에게 지켜지지 않으면 분명 위험했겠지.
미스라: 이제 닫을게요.
브래들리: 바보 녀석, 아직 닫지 마!
뒤늦게 브래들리, 오웬, 레녹스도 관에서 탈출하고 미스라가 공간의 문을 닫는다. 그때, 작은 주황색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뭐가.)
눈보라 속에 눈을 흘기면 그것은 작은 등불이었다. 조금씩 몇 개나 어깨를 맞대듯이 굳어 있다.
퍼뜩 깨닫는다. 저것은 집이다. 관 주위에, 몇개의 집이 있다고 했었다. 눈보라 속에 그 불빛은 너무나도 연약하다. 그래도 확실하게 이 얼어붙은 바람을 견디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 몸도 얼어붙는 눈보라도 나는 전혀 춥지 않다. 여기서 관이 날아가는 폭발이 일어나도, 나는 분명 마법에 지켜지겠지.
(하지만, 저 사람들은……)
미스라: 그러면 치워볼까요.
잠…….
루틸: 기다려 주세요! 그 전에 결계를 쳐주세요!
미스라: 결계……? 뭘 위해서죠.
루틸: 관을 없앨 때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 주변에는 촌락이 몇 개 있죠? 그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어요.
루틸…….
오웬: 쓸데없지 않아? 게다가 작은 마을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잖아.
루틸은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오웬 / 브래들리: 남쪽의 마법사란…….
미스라: 하아, 귀찮아…….
눈썹을 찡그린 두 사람에 이어 미스라는 귀찮은 듯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꺼낸 무언가를 루틸을 향해 던진다.
루틸: 와앗……! 이거…… 목걸이?
미스라: 여관 장식에서 따냈어요. 결계나 장벽을 치는 매개로 사용할 수 있겠죠. 시간도 없고 오래 못 기다려요. 빨리 흩어져서 수비라던지 하세요.
루틸: ……! 네! 모두들!
미틸: 네!
레녹스: 아아.
피가로: 응.
순간, 네 사람의 시선이 겹친다.
피가로: 나와 미틸은 이쪽을 맡을게. 레노와 루틸은…….
루틸 / 레녹스: 저쪽이죠.
피가로: 그 말대로.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네 사람은 눈과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휙 흩어진다. 루틸이 결계를 치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그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모두가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북쪽의 마법사가 자기 발로 서서 한 사람의 힘을 닦는다면, 남쪽의 마법사는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혼자가 되지 않음으로써 함께 강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가로: 모두들, 자리 잡았지.
그림에서 조금 몸을 내민 스노우가 미틸의 손을 잡는다.
그림 속의 스노우: 미틸, 우리도 도와주겠네. 북쪽 땅의 정령은 사나우니 우리와 함께 주문을 맞추는게야.
미틸: 네……! 부탁드려요……!
남쪽의 마법사들과 스노우 화이트가 동시에 주문을 외운다.
피가로: '폿시데오'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쳬'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노스콤니아'
커다란 빛과 함께, 여관은 유리 같은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였다.
10화
루틸: 미스라 씨, 이제 괜찮아요!
루틸의 목소리에 미스라는 곁눈질로 대답했다. 그가 들고있던 마도구가 주렁주렁 흔들리며 예사롭지 않은 빛을 머금고 있다. 어둡고 거센 눈보라 속에서 유난히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풀어내듯이 미스라는 주문을 외웠다.
미스라: '아르시무'
산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푸른 불꽃이, 운석처럼 관에 쏟아진다. 하늘에서 푸른 별이 떨어졌다. 멀리서 본 사람은 분명 그렇게 속삭일 것이다. 그만큼 불꽃덩이는 무시무시하고, 아름답고, 두려움에 떨며 등골이 언다.
미스라: 모처럼 살아남았는데 아까운 짓을 했네요. 평생을 관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떨면서 숨어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스라: 신바람이 나서 제 눈앞을 날아다니니까 또 이런 짓을 당하는 거예요.
푸른 불꽃은 관 전체를 감싸고 통째로 삼켰다. 춤추듯 치솟으려고 불길이 치솟고 있다. 그 불꽃은 서서히 구불구불 구부러져 형태를 바꾸고, 증오로 일그러지는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 ……스라……. 미스라 녀석…… 잘도…….
???: 99년 전의 그 굴욕, 지금의 분노,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알겠나, 기억하고 있어라……! 나는 반드시 너에게 공포와 절망을…….
미스라: …….
원망스러운 원한을 미스라는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밑의 개미라도 쳐다보듯한 표정으로.
미스라: ……역시 기억이 안 나네. 당신, 결국 누구인가요?
???: ……! 네놈……!
오웬: 시끄러워.
오웬의 가방에서 튀어나온 케르베르소가 이글거리는 불길처럼 잡아먹는다. 눈 깜빡일 사이도 없이 관도 원망도 삼켜져 버렸다. 그 후에 남은 것은 눈이 쏟아지는 정적 뿐.
미스라: 끝난 것 같네요.
빗자루에 선 미스라는 그야말로 벌레 한 마리를 퇴치한 듯 태연하고 유유했다. 오래된 원한도 그에게 상처를 주지 못할 망정, 흔드는 것 조차도 어렵다. 오직 힘으로 압도하고 북쪽의 차가운 하늘에 군림한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절대 강자였다.
루틸 / 미틸: ……머, 멋있어…….
두 사람의 중얼거림에 흐흥, 하고 턱을 치켜들며 미스라는 득의양양하게 웃는다.
미스라: 당연하죠. 저는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니까요.
여관의 주인: 저,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루틸의 손안에서 주인은 막막한 목소리를 냈다.
미틸: 아, 그렇죠. 여관은 없어졌고…….
루틸: 주인 씨, 이제 숨을 필요도 없으니 인형에서 벗어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어떤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함께…….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그럴 필요 없다.
루틸: 에……?
그림 속의 스노우: 그대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그림 속의 스노우: 99년 전 그날, 이미 목숨을 잃었지. 지하실에 주인처럼 생각되는 돌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육체를 잃고 사념만이 인형에 남은 것이 아닌가. 공포심의 잔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관에서 우리를 계속 기다린걸세.
피가로: 인형을 발견한 시점에서 알았지만, 너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 조금 잠자코 있었어. 미안해.
피가로: '폿시데오'
피가로가 주문을 외우자 인형의 윤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빛의 알갱이 같은 것이 온몸에서 쏟아져 나와 위로 올라간다.
여관의 주인: 아…… 아아……. 그랬었어. 그날, 나는 마법사의 손에 걸려……. 관을 뺏겼다고, 두 분께 알려 드려야겠다고, 그것만 생각해서……. 스노우 님, 화이트 님. 저는 이미 죽었군요.
스노우와 화이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 속의 스노우: 그대가 지켜야할 관은 이제 없다. 자유로워질 때가 됐네.
그림 속의 화이트: 오랫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편히 쉬게나.
루틸: 아…….
스노우와 화이트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자마자, 멈춰있던 시간이 흘러내린 듯 인형은 산산조각 무너졌다. 모래가 되어 흔적도 없이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루틸: …….
눈을 내리깔은 루틸은, 인형을 안고 있던 손을 기도하듯이 포개었다.
미스라: 그럼 돌아갈까요.
침울한 분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스라는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림 속의 화이트: 여운 없는 놈일세.
그림 속의 스노우: 전환이 너무 빠른게 아닌가.
미스라: 저는 빨리 자고 싶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마법관으로 돌아가면 당신은 일을 완수해 주세요.
잠이 부족한 눈이 원망스럽게 나를 노려보며 책망하고 있다. 그 어린애 같은 태도가, 아까 관을 통째로 태우고 있던 사람과 같은 것 같지가 않아서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쉴 틈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미스라가 푹 잘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루틸: 그러면 저희도 어울릴게요! 미스라 씨가 잠들 때까지. 아까의 답례도 겸해서요.
미스라: 답례? 무슨 뜻이에요?
루틸: 장벽을 치는 것을 도와주셨잖아요. 저희의 자부심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주변에 사시는 분들은 무사해요.
루틸이 친애의 미소를 짓는다.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북쪽 나라에서 자비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스라에게 하찮은 제안이었던 것과, 그대로 들어주지 않고 미스라의 마법으로 일소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미스라: 하아. 당신들끼리 하는 것보다 그걸 쓰는게 빠르고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주위의 익나 따위, 죽어도 살아도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고요.
당연하다는 얼굴로 미스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판단도 변덕스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기뻐져서, 루틸과 얼굴을 마주보았다.
루틸: 후후, 그렇네요. 아…… 그렇지. 마시면 편안해지는 차가 있꺼든요. 미틸과 함께 만들어 봤는데, 햐이 너무 좋아요. 그렇지?
미틸: 네. 얼마 전 파우스트 씨가 수면 효과가 있는 허브를 가르쳐 주셨어요. 아, 별로 미스라 씨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네요. 그 차를 마시면서, 미스라가 잠에 들기를 다 같이 기다릴까요.
그림 속의 스노우 / 화이트: 그러면 우리들도~!
루틸: 레노 씨나 피가로 선생님도 어떠신가요?
레녹스: 그래도 돼?
피가로: 괜찮네. 이왕이면 그냥 마법관에서 파자마 파티를 해버릴까.
오웬: 싫어.
브래들리: 누가 하냐.
미스라: 남의 방을 마음대로 파티장으로 만들지 말아주실래요?
떠도는 가벼운 말은 평소와 다를 바 없다. 조금 전까지 몸도 얼어붙는 관에서 해골에게 쫓기고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번 일도 꽤 큰 사건이었지만…….)
북쪽의 마법사들에게는 빵에 잼을 바를지 버터를 바를지 고민하는 정도의 사소한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소한 일들은 당연하게 계속된다. 그런 그들의 긴 여정에 한순간이라도 내 길이 겹쳐진 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미스라: 뭘 멍하니 있나요. 빨리 가요.
네!
기적같은 짧은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알 수 없다. 미스라는 오늘의 일도 잊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나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고 당연한, 그들과의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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