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북쪽 나라로 온 우리는 얼음의 숲 더 앞 쪽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이 있는 듯한 설산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화이트의 빗자루에 탄 채로 그저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미틸: 우왓, 엄청난 눈보라……! 새하얘서 아무것도 안 보여…….
피가로: 어지간히 거칠어진 것 같네. 미틸, 여기서부터는 내 빗자루 뒤에 타면 돼.
???: 구오오오오오…….
히스클리프: ! 뭐, 뭐지, 지금 그 소리…….
마치 사나운 짐승 같은 울음소리였어요…….
아서: 아마 눈곰일 겁니다. 옛날에 설산에서 조우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소리와 많이 닮아있어요.
브래들리: 그 녀석들에게 습격 당하면 보통 사람은 잠시도 버티지 못해. 한입에 먹히니까. 젊은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다. 방심하다간 돌 맞을 거야.
미틸 / 히스클리프: 히익…….
라스티카: 모든 걸 거절하는 눈보라와 무서운 마물들…….
아서: 혹시 탑의 마법사가 연적을 물리치려고 방해행위를 하고 있는 걸까요?
스노우: 아니, 마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날씨는 어설픈 마력으로는 조종할 수 없다. 그 녀석에게는 어렵겠지.
화이트: 이것도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일 것이다. 원래 이 땅이 이렇게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지역은 아니었는데.
???: 캬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
와앗!?
조금 전보다도 더 요란하게 몰아치는 눈보라와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져 공포에 몸이 경직된다. 그러자 스노우와 화이트가 우리를 돌아보며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스노우: 걱정할 것 없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들은 우리가 지킬테니.
화이트: 여기서부터는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방호벽을 치면서 가겠네. 모두들, 우리의 뒤에 서있게나.
스노우: 특히 젊은 마법사들은 떨어지지 않게 우리 근처를 날도록. 브래들리, 그대에게는 뒤쪽을 맡기겠네.
그리고 쌍둥이가 동시에 주문을 외우자 금빛으로 빛나는 빛의 벽이 우리 주위를 에워싼다. 다시 빗자루에 올라 쌍둥이가 선두를 가른다. 빛의 벽 덕분에 우리는 눈 한 톨도 맞지 않았다.
화이트: 현자여, 이 앞은 난기류로 약간 흔들릴거다. 나를 꽉 잡게나.
알겠어요……!
화이트의 말에 고개를 숙여 평소보다 더 크고 믿음직스러운 등에 바짝 매달린다.
……이 새하얀 숲 어딘가에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이 있는거죠.
화이트: 그렇네. 이제 곧장 날아가면 비티스가 친 결계가 보일게다. 우리들을 비롯한 북쪽의 마법사를 상대로는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저 탑을 지키기 위해 붙인 것이지. 우리에게는 탑으로 가는 이정표 같은 걸세.
(거의 다 왔구나.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과 비티스 씨를 만날 수 있어……)
조금 더 긴장을 하면서 나는 문득 어젯밤 피가로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탑을 주는 대신 약속을 받은 거야. '언젠가 비티스가 죽을 때, 그의 마나석을 자기들에게 물려주라고, 말이지.'
(스노우와 화이트는 그 마법사가 마음에 든다고 했었지만……)
화이트: ……현자여, 꽤나 조용하구나. 무서우면 내가 손을 잡아주지.
빗자루 옆으로 돌아앉아 있던 화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고, 고마워요……. 조금 멍 때리고 있었어요.
화이트: 신경 쓰지 말게나. 이 정도는 쉬운 일이니.
……저기,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화이트: 물론. 나는 그대의 마법사다.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보는게 좋아.
스노우는 처음에 비티스 씨에게 탑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는데…… 화이트는 어째서 스노우를 설득하면서까지 비티스 씨에게 탑을 양보하려고 했나요?
화이트: ……그건.
그러자 화이트의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등 뒤에서 매마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브래들리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여유롭게 빗자루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브래들리: 탑을 주는 대신 그 마법사가 죽을 때 그놈의 마나석이나 보물을 물려주라고 약속시킨거겠지.
브래들리: 쌍둥이의 소지품에 손을 댔는데 공짜로 끝날 리가 없잖아. 심지가 더러운 이놈들이나 할 법한 일이야.
피가로가 말하던 것과 똑같은 말을 브래들리가 한다. 화이트와 스노우는 웃었다.
스노우: 호호호, 확실히. 브래들리의 말도 틀리지는 않네.
화이트: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그놈을 돌로 만들려고 했었다.
에……?
화이트: 도와준 우리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잘 모르는 말을 하며 우리들의 탑을 무단으로 건드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탑의 찬사를 얼마나 받든, 여행하는 마법사의 말은 우리에게 티끌만큼의 가치도 없지.
스노우: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우리 둘만의 시간을 방해했잖아. 당연한 보답이라는 걸세.
화이트: 마법으로 혼내서 단번에 돌로 만들어 버린다……. 그 순간, 그 녀석은 탑 앞에 손을 벌리고 서서 기대에 찬 눈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스노우: '돌로 만드는 건가? 그렇다면 적어도, 그 돌을 이 탑의 일부로 만들어 줘!'
화이트: '그렇게 하면 사랑스러운 사람을 누구보다도 옆에서 아름답게 빛나게 할 수 있어! 죽어도 계속 함께야!'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반쯤 난처한 듯 미소를 지었다. 금방이라도 돌이 될 것 같은 마법사가 드높은 사랑을 외치는 모습은 분명 상상 이상으로 이상했겠지.
(사,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피가로: 하하, 대단한걸! 역시 서쪽의 마법사다.
스노우: 웃을 일이 아니다. 죽여버리려 했던 상대에게 희희낙락한 희망을 듣는다. 솔직히 우리는 엉망진창 물러났었네.
화이트: 그러나 관통한 광기야말로 불순물 없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거기에 나는 모종의 감동을 느꼈지.
스노우: …….
화이트: 그리고, 무엇보다…….
화이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반대로, 스노우는 그저 곧게 가는 길만 바라보고 있다.
화이트: 죽어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그 녀석의 마음은,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이트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나를 보고 작게 미소지었다.
화이트…….
항상 까먹을 것 같다. 말을 걸면 웃어주고, 손을 내밀면 잡아주니까. 하지만 햇빛 아래에 서면 화이트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고 잡은 손의 온도는 차갑다. 장벽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눈보라의 소리는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화이트와 겹친 손에 힘을 주었다.
7화
……그러면 비티스 씨는 굉장히 놀랐었겠죠? 두 사람으로부터 탑을 물려받아서.
화이트: 아아, 어제도 말했지만 그때 그 녀석의 반응은 그림 같은 광희였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성을 지르고, 뒤집고,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그것은 역사에 남을 놀라운 일이야.
화이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어린아이의 모습 때와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화이트: 생각해면 우리는 그때부터 서프라이즈 선물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 같군. 그렇지, 스노우여.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스노우에게 말을 거는 화이트에, 스노우도 언제나처럼 웃었다.
스노우: 음. 완전히 버릇이 되었군. 이것도 비티스가 뽑아낸 사랑 이야기의 성과겠지.
브래들리: 헤에, 그건 또 고마운 일이군.
라스티카: 엄청난 사랑의 파급 효과다. 나도 점점 더 비티스가 보고 싶어지는걸. 탑에 도착하면 그와 뜨거운 홍차를 마시면서 그의 미학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네.
화이트: 호호호, 그 녀석도 그걸 바라고 있을걸세. 라스티카와는 마음이 맞을 것 같으니까.
변함없는 눈보라 속에 방호벽에 지켜진 공간에서, 잠시 온화한 공기가 흐른다.
미틸: ……스노우 님, 화이트 님. 저희들, 탑에 도착하면 비티스 씨에게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스노우: 호오, 뭔가?
미틸: 여기 오기 전에 히스클리프 님과 아서 님 셋이서 안뜰에서 딴 꽃이에요. 지금은 마법으로 작게 하고 있지만…….
피가로의 빗자루의 뒤에 타고 있던 미틸은 마도구인 병을 어디선가 꺼내 보였다. 그 안에는 작아진 꽃이 들어있다.
미틸: 소중한 탑이 부서질 것 같아서 슬퍼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셨면 해서……. 이따가 전해드려도 될까요?
화이트: 물론일세! 그 녀석도 분명히 기뻐하겠지.
스노우: 사랑스러운 서프라이즈구먼! 비티스가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되는군.
아서: 아…….
왜 그러나요? 아서.
아서: 방금 전방에 빛나는 게 보이는 것 같아서.
정말인가?
아서: 네. 아주 조금이었지만. 저것이 탑인가요?
히스클리프: 어라, 그런데 탑 주변에는 결계가 쳐져 있잖아요. 벌써 통과한건가요……?
브래들리: 아니, 그런거에 부딪히지도 않았어. 약삭빠르게 마법사가 친 문이라도 통과한거라면 눈치챘겠지.
미틸: 혹시…… 저희가 오는 걸 알고 비티스 씨가 결계를 풀어주신 걸까요.
스노우 / 화이트 / 피가로: …….
얼마 안 있어 목적지에 당도했다. 하지만 지상에 내린 우리들은 할 말을 잃었다.
미틸 / 히스클리프: 그런……!
아서 / 라스티카: 이것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탑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틀은 녹슬어 벗겨졌고, 과거에 끼워져 있었을 터인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게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
쌍둥이가 준 캔들 스탠드와도 전혀 닮지 않은 모습이었다. 얼핏 보면 마치 폐재를 조립한 듯한 철탑이다. 애처롭고 끔찍한 모습으로 눈보라를 맞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여기까지 무너지고 있었다니…….
스노우 / 화이트: …….
쏟아지는 눈 속에서 쌍둥이는 말없이 탑을 올려다보고 있다. 피가로나 브래들리, 라스티카도 할 말을 잃은 것 같다.
스노우: 탑을 물려줄 때 수호의 마법을 걸어놨다. 물려준다고 해도 우리의 소중한 탑. 간단하게 부서질 수는 없네.
화이트: 그런데도 이 꼴이라니…….
탑의 상태도 걱정입니다만, 비티스 씨는 괜찮을까요…….
히스클리프: 어디까지는 아니지만, 현재 이 탑은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이런 날씨니까.
아서: ……비티스를 보호한 뒤 모두 협력해서 탑의 수리에 임하자. 두 분의 소중한 탑이 부서지기 전에. 스노우 님, 화이트 님. 괜찮으실까요?
화이트: ……아아, 그렇군.
스노우: 스노우도 화이트도 탑에 도착한 이후로, 기분 탓인지 말이 없다.
(탑이 이 모양인데, 둘은 상상했던 것보다 쇼크인걸지도 몰라……)
아서: ……안 돼. 안 열려.
아서가 갈라진 문을 밀고 당기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미틸: 잠겨져 있는 걸까요?
아서: 아니, 강한 마력이 느껴져. 입구에 봉인이 걸려 있는 걸지도 몰라.
히스클리프: 혹시 비티스 씨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피가로: 아니, 아마 이 탑에서 뭔가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네. 안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피가로가 입구 문을 살짝 건드린다. 그러자 브래들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브래들리: 어쨌든 여기서 멍하니 기다려봤자 소용없어. 이런 문, 쉽게 박살내주지.
히스클리프: 에……!?
아서: 기다려, 브래들리. 섣불리 자극을 주면 탑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어.
브래들리: 이 탑이 무너지던 말던 나와는 상관없어. 냉큼 안으로 들어가면 되잖아.
스노우 / 화이트: …….
그러나 브래들리가 마도구인 장총을 겨누는 순간, 쌍둥이가 말없이 문에 손을 갖다댔다. 그러자 문이 삐걱하고 녹슨 소리를 내고 쌍둥이의 기척에 호응하듯이 천천히 열려간다.
브래들리: 하……?
바, 바로 열렸다…….
스노우: ……흠. 아무튼, 무사히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군.
탑의 안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깨져 있어야 할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오기는 커녕, 보여야 할 바깥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아서: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
모두가 의아해하자 피가로가 주문을 외웠다. 그의 수중에 작은 랜턴이 나타난다.
피가로: 다들 발밑 조심해. 떨어지지 않게 내 근처로 와.
화이트: 이쪽일세. 나선계단을 올라간다.
스노우들도 작은 등을 꺼낸다. 그러나 그것은 피가로와 마찬가지로 발밑만 비출 뿐, 건물 전체를 볼 수는 없었다.
(스노우들은 망설이지 말고 계단을 오르라고 했지만……. 비티스 씨는 위에 있는걸까.)
조용한 탑에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만 울린다. 그런데도 비티스 씨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은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잔해 밑에 파묻혀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건…….)
초조한 고동을 억제하면서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는다. 그리고 회색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8화
미틸: ……이곳이 최상층…….
겨우 탑을 볼 수 있었던 우리지만, 그 광경에 눈을 의심했다. 머리 위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대부분 깨지고 바닥에는 눈과 유리 조각이 여러 개 흩어져 있다. 천장에 매달린 여러 개의 장식은 모두 너덜너덜해져서, 건드리면 다칠 것 같다.
스노우 / 화이트: …….
아무도 없네요…….
미틸: 비티스 씨, 도우러 왔어요. 있다면 대답해 주세요……!
미틸의 목소리에 대답은 없었다. 차가운 공기만이 이 자리에 조용히 흘렀다.
화이트: 아니…… 저기에 있다.
에?
화이트는 한 곳을 바라본 채 그렇게 말했다. 스노우 또한 화이트와 같은 장소의 중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방에 있지만 거기에 사람의 모습은 없다. 유리 파편만이 말없이 흩어져 있다.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숨을 삼켰다.
(……아냐, 이건……)
브래들리: 마나석이군.
브래들리는 살짝 목소리를 내려놓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틸: 에……!
마법사들: …….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확히는 나와 미틸이. 왜 여기에 마나석이 있는지, 왜 비티스 씨의 모습이 없는지. 그 사실이 이끌어내는 답은 간단했다. 얼어붙은 정적이 따가울 정도로 살을 찌른다.
스노우: 비티스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당도했네.
화이트: 인사도 없다니, 정말이지 실례되는 놈이로군.
둘은 조용히 마나석에게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작은 반짝임을 발하는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가……. 계속 말이 없었던 것도, 가장 먼저 탑의 꼭대기 층에 온 것도…….)
분명 이 탑을 본 시점에서 그들은 상황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미 그 마법사의 목숨은 없구나.
피가로: 미틸, 현자님. 같이 바깥 공기를 마시러 가지 않을래?
그것은 분명 우리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미틸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요, 피가로. 하지만 괜찮아요.
피가로: ……그래.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 기분이 안 좋아지면 바로 말해줘.
네…….
라스티카: 그는 마지막의 힘을 다해 두 분께 소식을 날린거겠죠. 약해져 가는 자신은 탑을 지킬 수 없게 되어서…… 얼마 남지 않은 목숨과 맞바꾸어 말을 작은 새로 바꾸어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릅니다.
스노우 / 화이트: …….
히스클리프: ……말을 형상으로 바꾸는 마법은 나름대로 강한 마력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히스클리프는 애처롭게 눈을 내리깔았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짓누르듯,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짓누른다.
히스클리프: 그는 자신의 목숨과 탑을 저울질할 때 탑을 선택한 것이군요.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쓸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살며시 근처의 유리를 건드렸다. 그의 긴 속눈썹 끝이 약간 흔들린다. 고개를 숙이는 미틸도 몸을 조그맣게 떨고 있다. 마법사의 죽음과 그 과정의 이야기는, 아직 젊고 어린 그에게는 가혹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라스티카: ……무너지는 탑과 함께 하기에는 무척 힘들었겠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스티카도 상처받은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모두들 탑을 보는 것은 물론, 비티스 씨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 여행을 하고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을 사랑했던 마법사.
(나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을, 그리고 그 자신을…….)
그리고 아름다운 탑을 올려다보며 말하고 싶었다. '이 탑이랑 비슷한 캔들 스탠드가 있어요' 라고.
피가로: 현자님.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피가로가 아이를 달래듯 천천히 내 등을 쓰다듬어준다. 그의 목소리와 손의 따뜻함이 부드럽게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브래들리: ……야, 그 비티스라는 녀석은 진작에 죽은거잖아. 그런데 왜 입구의 문은 봉인되어 있었던거지? 결계는 사라졌는데 봉인에만 마력이 남아 있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여기 말고는 탑 안이 어둡다는 것도 이해가 안 돼.
히스클리프: 확실히…….
브래들리: 아니면 다른 놈이 봉인한건가? 별다른 마력은 느끼지 못했지만, 상당히 튼튼하게 닫혀 있었어.
브래들리의 물음에 라스티카가 완만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라스티카: 문을 봉인한 건 비티스도, 다른 마법사도 아닌 것 같네.
브래들리: 뭐라고?
라스티카: 분명 이 탑 자신이 마법을 건 걸거야. 비티스 씨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히스클리프: 이 탑이……?
라스티카는 언제나 다과회에서 보여주는 듯한 따뜻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라스티카: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이 닿았을 때 문이 열린 건 분명 두 분을 맞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두 분은 비티스가 마지막 힘을 다해 부른 분들이니까요.
스노우 / 화이트: …….
피가로: 즉, 비티스가 탑을 사랑했듯이 탑 또한 비티스를 사랑했다는 거구나. 확실히, 오랫동안 자신을 아껴준 상대에게 사랑이 싹트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사람이나 탑이라고 해도.
아서: ……그렇다면 이 탑은, 비티스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겠군요.
아서의 말에 쌍둥이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서로의 눈동자에 자애의 빛을 띄우면서.
화이트: 아아, 그렇군. 그래서 그 녀석은 사랑을 관철했다는 것일세.
스노우: 우리에 대한 맹세에 거짓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지.
화이트: 다들 슬퍼하지 말게나. 이는 기뻐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두 사람의 사랑의 결말을 지켜볼 테니.
두 사람의 말에 피가로가 작게 웃었다. 망토를 털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다.
피가로: 그렇네요. 지켜봅시다. 저희들이서.
스노우: 음. 현자여, 가도록 하지.
화이트: 그의 마지막 소망을 들어주는 걸세.
와앗……!
두 사람은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빗자루도 타지 않은 채 탑 밖으로 뛰어나갔다.
9화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휩쓴다. 높이 몸이 날아올라 정신을 차려보니 탑 바로 위에 있었다. 눈 장식을 한 얼음의 숲. 저 멀리 산들까지 시야에 또렷이 들어온다. 어느새 눈보라는 그치고, 먹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하늘에서는 붉은 석양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화이트: 현자여, 우리와 함께 지켜봐주게나.
스노우: 이 탑과.
화이트: 이 탑을 사랑했던, 마법사의 모습을.
둘은 마도구를 꺼내더니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탑을 바라보았다.
스노우: 비티스여, 받는게 좋다.
화이트: 이것은 우리들의 선물일세.
스노우 / 화이트: '노스콤니아'
두 사람이 목소리를 맞춰 주문을 외운다. 그 때……
아서: 아…….
히스클리프: 무너진 탑이 빛에…….
여러 개의 작은 빛이 별똥별처럼 궤적을 그리며 탑을 나선형으로 감싸고 간다. 이 세계에 온 후로 몇 개의 기적을 봐왔다. 땅을 바꾸는 힘, 날씨를 바꾸는 힘, 사물이 허공을 나는 힘, 하늘을 나는 힘. 그것들은 모두 무언가를 빼앗을 수도 있고, 지금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처럼 무언가를 구할 수 있는 힘들.
…….
지금 탑에 마법을 걸고 있는 건 북쪽의 마법사 스노우와 화이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면 '우리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라며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바라지 않을 수가 없다.
(부디, 탑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쌍둥이의 손을 세게 움켜쥐자 그들 역시 똑같이 잡아주었다.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듯이. 이윽고 금빛 빛은 탑을 감싸더니 눈부신 빛을 발하면서 일곱 빛깔로 변해간다. 그리고 훨씬 더 강한 빛을 발하자 튕겨져 나갔다. 반짝반짝 빛의 저녁 햇살이 지는 가운데, 거기에 나타난 것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 비티스 씨가 사랑했던 탑…….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나 바다, 눈이나 꽃이나 별의 색으로 수놓은건가 싶을 정도의 빛이었다. 석양에 비친 그 탑은, 마치 기적 그 자체같아. 말을 뺏긴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눈물로 시야가 번지는 것조차 아깝게 느껴진다.
스노우: 어떤가, 현자여. 그대에게 보낸 캔들 스탠드와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쌍둥이는 서프라이즈가 성공했을 때처럼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는다.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벅찼다. 마음을 빼앗기면 사람을 이렇게 무력해진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주기조차 힘들다. 분명 비티스 씨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미틸: 피가로 선생님, 봐 주세요. 창문도 바닥도 벽도 깨끗해 졌어요……!
피가로: 정말이다. 실내도 완전히 복구되었네.
피가로: ……그때와 같은 빛……. 아니, 조금 다른가…….
아서: 아름다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히스클리프: 네, 정말로……. 이만한 걸 두분이 만드셨다니.
라스티카: 마치 무지개에 안겨져 있는 것 같아. 비티스가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 것 같네.
히스클리프: ……어라, 그러고 보니 비티스 씨의 마나석은?
미틸: 없어졌네요……. 도대체 어디로?
브래들리: 없어지지는 않았어. 걔네치고는 나쁘지 않은 배려를 했을 뿐이다.
미틸 / 히스클리프: 에……?
브래들리: 쌍둥이가 탑을 고쳤을 때, 그 녀석의 돌도 스테인드 글라스의 일부로 만들었어. 이렇게 유리 투성이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알 수 없겠지만, 거기에 굴러다니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서: 그러면 이 탑 어딘가에 비티스가……?
히스클리프: 정말로 탑과 함께 할 수 있게 되다니…….
브래들리: 결국은 정신 나간 서쪽의 마법사다. 상식 따위는 안 통한다고. 지금쯤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웃으면서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히스클리프: ……후후, 그러면 좋겠네.
미틸: 피가로 선생님, 비티스 씨들은 행복해 졌다는 거죠.
피가로: ……응. 이 탑이 맹세를 기억하고 있는 한,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거야. 앞으로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 이 탑이 풍화하여 언젠가 우리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고 해도…….
피가로: 탑을 사랑한 마법사와, 마법사를 사랑한 탑. 그들이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라자. 그리고 바치자. 그들의 사랑에 수많은 축복을.
피가로: '폿시데오'
갑자기 탑 안에서 구슬이 부딪치는 듯한 맑은 소리와 함께, 거룩한 빛이 넘쳤다. 반짝이는 빛은 다닥다닥 붙어잇는 것처럼 따뜻하고, 음색은 부드럽게 세상을 안아주고 있는 것 같아.
스노우: 호호호, 피가로의 축복의 마법이군.
화이트: 호호호, 젊은 아이들도 뒤따르기 시작했구나.
연신 부드러운 빛이 밝혀지는 그 모습은, 마치 탑이 고동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도 약간 비티스 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아름다운 걸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고.
스노우와 화이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부드럽게 웃었다.
화이트: 이 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해질녘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을 우리들은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 석양에 물든 모습이 신비롭지.
스노우: 주황빛을 반사하는 설원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이 수놓는 그림자는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다. 마치 환상 같지 않은가.
마치 내 아이를 자랑하는 것 같은 두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대답을 하려 할 때 였다.
에……?
두 사람의 목소리에 이어 부드러운 바람이 날아오른다. 동시에 신기한 소리가 귀를 스친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말처럼 들려서 우리 옆에서 누군가가 탑을 내려다보며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어때, 내 사랑스러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 라고.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대답 대신 웃어보였다.
스노우, 화이트. 오늘 이 자리에 데려와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봄 경치도 들은 이야기도 이 탑도, 제 보물로 삼을게요.
잡은 손은 둘 다 확실하게 따뜻했다.
10화
스테인드 글라스 탑을 수복한 지 며칠 후, 나는 식당에 왔다.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불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의 모습은 없었고 테이블 위에는 형형색색의 과자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스노우 / 화이트: 쨔쟌!
와앗!?
갑자기 테이블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쌍둥이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노우: 꺅꺅! 서프라이즈 답례 성공일세!
화이트: 역시 현자쨩.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군! 좋은 반응이다.
서, 서프라이즈 답례……?
피가로: 이런이런, 미안해 현자님. 두 분이 어떻게 해서든 지난번 설탕과자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러면 이 과자는, 스노우와 화이트로부터의…….
스노우: 음. 피가로에게 부탁해서 메리토로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네.
화이트: 우리끼리 가도 좋았는데, 모처럼의 기회가 아닌가. 애제자와 서프라이즈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
피가로: 두 분이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 없이 어울린 거예요.
스노우: 그런 말이나 하고~ 사실은 조금 우울했던 화이트를 신경써준거지?
화이트: 상냥한 아이구먼, 피가로 쨩은. 덕분에 완전 건강해졌네. 유령에게 있어서는 안 될 안색이지.
(이건 웃어도 되는 소재인가……)
하지만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아도 되나요? 저는 이미 충분히 두 사람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스노우: 사양하지 말게나. 그 자리에 있던 그대들은 '사랑의 증인' 이기도 하니까.
화이트: 음. 비티스를 대신해 우리가 감사인사를 전하는 걸세.
미틸: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미틸, 기다리고 있었어. 게다가 아서랑 히스클리프도.
모두도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불렸군요.
아서: 네. 두 분이 다과회에 초대해 주셨거든요.
히스클리프: 현자님께 서프라이즈를 드릴 테니까 그게 끝나면 다 같이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노우: 아직 전원이 모이지 않았지만…… 모두엑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지.
화이트: 그대들이 축복의 마법을 걸어준 덕분에 당분간은 저 탑도 쉽게 깨지지 않을걸세.
스노우: 그렇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기에.
화이트: 무엇보다 관리자가 없어진 북쪽의 땅은 무법천지라고 불리지.
스노우: 이제부터는 정기적으로 탑의 모습을 보려고 하네.
화이트: 현자도, 모두도. 다시 어울려주겠나?
물론이에요. 저라도 괜찮다면 꼭 함께하게 해주세요.
아서: 네. 그 아름다운 탑이 앞으로도 무사할 수 있도록, 저희도 돕게 해주세요.
히스클리프: 저도 그 탑을 보러 가는 건 기뻐요. 정말 기적같이 아름다워서…… 눈을 감기만 하면 그때 생각이 나요.
미틸: 맞다! 그때는 또 꽃을 가져가도 되나요? 비티스 씨와 스테인드 글라스 탑을 위해서.
화이트: 호호호, 그거 좋군.
스노우: 기쁘구먼. 그때는 부탁하겠네, 미틸. 그렇지, 언젠가 탑을 바라보면서 다과회를 하는 건 어떤가?
라스티카: 그거 근사하다. 그때는 부디 저도 불러주세요.
라스티카!? 게다가 브래들리도!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식당 의자에서 불쑥 나타난 두 사람. 놀라는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라스티카가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라스티카: 다과회는 지금부터였군요.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사실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브래들리에게 물어보러 가던 중이었거든요.
피가로: 대단한 인선이네.
스노우: 안심하게나. 딱 시간에 맞춰 왔네.
화이트: 게다가 브래들리 쨩도 잘 와준 것 같아서 우리는 기쁘구먼.
브래들리: 오고 싶어서 온 거 아니야. 재채기를 했는데 식당 앞으로 온거라고. 그때 바로 앞에 신랑이 있었고. 아무도 안내 같은 건 안했는데, 멋대로 해석하고 있고 말이야.
식당에는 금세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달콤한 과자와 홍차 향이 퍼져나간다. 묵묵히 과자를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홍차를 마시고 비교하는 사람, 수다 떠는 사람이 모두 제각각이다.
스노우: 현자여, 손이 멈춰있구나.
화이트: 우리들이 홍차를 우려주마.
고마워요, 둘 다.
피가로: 현자님, 이 과자 맛있으니까 먹어봐.
와, 정말이다! 딱 적당한 단맛이라 맛있어요.
두 사람이 선물로 준 과자를 먹고 한숨 돌린 후, 나는 계속 궁금했던 것을 작은 소리로 물어봤다.
……그런데, 피가로가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받은 창문은 어떻게 됐나요?
스노우 / 화이트: 창문?
네.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창문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커서 피가로의 집에는 못 들어갔다고…….
화이트: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스노우: 그것도 우리의 혼신의 결과였다. 탑만은 못하지만 웬만한 대작이지.
피가로: 네, 잘 기억하고 있어요. 벌써 몇백 년 전이지만 맑은 아침에 두 분이 갑자기 찾아와서 문을 여는 순간 선보였던 거. 세공도 색도 섬세하고…… 그림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한 성당에 장식하는 창문 같았으니까요.
옛 광경을 회상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피가로가 말한다. 부드러운 음색에는 친근함이 배어 있었다. 이전에는 농담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도 그 창에는 깊은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노우: 그렇지. 그대를 위해 그대가 좋아하는 경치를 디자인했으니까.
화이트: 검푸른 바다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는 경치를 말일세. 햇빛을 쬐면 보석처럼 빛나지.
피가로: 엄청 예뻤어요. 바라보고 있으면 햇빛 속에 있어도 눈보라와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결국에는 마법으로 작게 해서 창틀에 끼웠죠. 덕분에 거기만 꽤 호화로운 창문이 됐지만.
화이트: 그대는 마음에 드는 것은 잘 간직할 수 있는 아이구나.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요. 뭐, 받은 창문에 맞는 큰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괜찮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요.
스노우: 호호호, 스테인드 글라스의 탑에 축복을 걸어준 것도 그렇겠지. 그 탑을 처음 봤을 때 '예쁘네요' 하고 평소처럼 웃기만 했었는데, 의외로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으니까.
피가로: 그러게요. 저에게 가치 있는 건 아끼고 존중해요.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비록 형태가 없는 것일지라도.
스노우: 그러면 형체가 있는 아름다움과 형체가 없는 사랑을 앞에 두고, 다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화이트: 분명 비티스도 좋아할게다. 그렇지, 현자여.
……네!
많은 미소를 보며 나는 상상했다. 설경 속에서 언젠가 그 탑에서 열리는 다과회를. 무지개처럼 빛나는 탑 아래 사랑의 증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는 과연 무엇이 나란히 있을까?
(스노우와 화이트가 좋아하는 쿠키와, 맛있는 홍차……. 설탕과자도 빼놓을 수 없지.)
(맞다, 그리고……)
스노우와 화이트가 만들어준, 그의 사랑스러운 사람과 꼭 닮은 캔들 스탠드를 가져가는 것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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