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미틸 / 리케: 에.
파우스트는 갑자기 그렇게 말하고선 우리에게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간다.
레녹스: 어째서 가시는거죠? 혹시 용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가 되려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가요.
파우스트……!?
파우스트가 얼굴만 돌아본다. 마움을 굳힌, 완강한 표정이었다.
파우스트: 그런 주정뱅이가 할 만한 짓을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이대로 계속 도망쳐도 결말이 나지 않겠지. 용들이 아키라를 부른 거라면, 뭔가 큰 목적이 있을 거야. 잘 찾아낸다면 협상의 재료가 될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닌지……. 저 때문에 파우스트가…….
파우스트: 이건 내가 일으킨 문제이기도 해. 너만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어. 여기서 잠시 숨어있어.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고.
그렇게 말을 남기고 파우스트는 날아갔다. 나를 메고 날아갈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은 속도로. 속수무책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레녹스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레녹스: 저 분은 옛날부터 변하지 않으시니까…….
남겨두는 것 같은 복잡한 목소리였다.
옛날부터……?
질문을 담은 시선에 레녹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녹스: 제가 예전에 요괴에게 습격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죠. 그때 도움을 주신 것이 파우스트 님입니다.
에. 그랬나요……!?
레녹스: 네.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은 그분 덕분입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저는 이미 오래전에 쓰러져 죽었겠죠.
그 후, 죽을 뻔했던 레녹스를 구해 제 몫을 할 수 있는 텐구가 될 때까지 돌본 것도 파우스트였다고 그는 말했다.
레녹스: 그때의 저는 어리고 미숙했으니까, 허약해서 요술도 여의치 않고……. 그분이 보기에는 위험해서 그냥 놔둘 수 없었던 거죠.
지금의 믿음직한 레녹스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그 시절의 그를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이 어린 그를 돕고 보살피는 파우스트의 모습은 상상할 수 있었다.
레녹스: 본인은 부정하지만, 파우스트 님은 정이 많고 상냥한 분이십니다. 산속에 틀어박혀 있는 생활을 선택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최대한 피하고 계시지만…… 곤경에 처한 누군가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버릴 수 없고, 마지막에는 그 손을 내밀고 만다. 비록 자신에게 불똥이 튀긴다고 해도. 상냥하지 않다고 하시지만, 누군가를 도와주고 은혜를 팔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분이십니다.
그의 옆모습에는 스승에 대한 경애가 있었다. 그리고 깊은 애틋함도.
…….
성실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다. 레녹스의 말을 들으며 나는 파우스트가 자신을 그렇게 말하던 것을 가슴 속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매달렸을 때의, 키울 생각이 없는 유기 고양이를 주워버린 것 같은 그의 나약한 눈빛도.
……파우스트는 무엇을 할 생각인 건가요?
레녹스: 아마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결말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먼저 치러 갈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미틸: 에……!?
리케: 용을 말하는 거죠 !?
용은 굉장히 강할 텐데……. 파우스트는 괜찮은 건가요……!?
레녹스: 파우스트 님은 텐구 중에서도 유수한 힘이지만, 용이 상대라면 역시 나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용의 일족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과 잘 교섭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런…….
희망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평온하지 않다. 파우스트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니, 분명 나 뿐만이 아니다. 레녹스나 리케, 미틸이나 다른 요괴들…….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몸 하나로 용에게 간 것이다.
미틸: 저희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리케: 파우스트에게 위험한 역할을 시켜서 여기서 숨어있는 것 뿐이라니, 답답해요!
레녹스: 그건 나도 같은 마음이야. 하지만 부주의하게 움직이면…….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다. 산에 피는 벚꽃잎이 일제히 흩날린다. 꽃잎들은 모여들면서 내 주위를 빙글빙글 춤을 추고 산속으로 날아갔다.
꽃잎이……. 이쪽으로 오라는 건가……?
리케: 거대한 벚나무가 아무래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네요. 이대로 벚꽃이 가리키는 쪽으로 향하면 길이 열릴지도 몰라요.
미틸: 가죠! 벚꽃의 안내라면 분명 괜찮을 거예요.
레녹스: 하지만, 저 분들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꽃잎을 따라 좁은 산길을 걸어간다.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호전될 것 같은 예감에 처음에 고양됐던 우리도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특히 옆을 걷는 리케의 표정이 딱딱하다.
미틸: ……꽤 조용한 곳이네요.
레녹스: 산속까지 오면 거의 요괴도 들르지 않으니까.
리케: 그렇군요……. 저는 앵운가에서 별로 나와본 적이 없어서요.
녹색 눈동자는 침착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든 땅에서 멀리 떨어진 경치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낯선 풍경은 불안하다. 다시 한 번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마음에 조그맣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
미틸: 리케, 괜찮아요. 저희가 함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모험은 저도 처음이에요. 형님께 이야기하면 분명 굉장히 놀라서 대단하네! 라고 칭찬해 줄 거예요.
미틸은 리케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손을 잡고 피크닉처럼 가볍게 걷는다.
미틸: 맞아. 오늘의 모험에 대해 형님에게 취재를 받는 것은 어떨까요?
리케: 취재……? 그건, 우리의 활약히 기와판의 기사가 된다는 건가요?
미틸: 네. 저와 리케의 일이 함께 형님의 기와판에 실리는 거예요.
리케: 미틸과 함께 ……!? 그건 너무 멋져요!
미틸: 형님, 분명 흥미진진해 하면서 많이 질문할 거예요. 지금부터 생각해 둬야지. 엄청 바빠질 거예요. 벚꽃나무에 물도 줘야하고, 리케와 공부도 해야하고……. 그러니까, 아키라 씨를 지키고 모두 함께 돌아가죠. 무사히 돌아오면 앵운가를 안내해 드릴게요!
이번에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불안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일텐데, 나쁜 일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처럼 목소리는 밝았다. 최대한의 격려에 따뜻해져 불안함이 사라져 간다.
고마워요, 미틸. 기대하고 있을게요.
리케: 그때는 저도 함께 거리를 안내할게요. 아키라 님. 저희가 돌보고 있는 벚꽃을 보여드릴게요!
리케는 미틸과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나와 손을 잡았다.
미틸: 레노 씨도 같이 가요.
레녹스: 그렇네. 나도 같이 가게 해 줘.
미틸과 레녹스도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우리 넷은 손을 잡고 친한 친구처럼 나란히 걸었다. 그러다 보면, 잡은 손을 통해 마음이 가까워진 것 같아 즐거운 목소리를 내고 싶어졌다.
가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틸에게는 형이 있군요.
미틸: 네. 털털한 점도 있지만, 매우 상냥하고 자랑스러운 형님이에요. 하지만, 소행이 나쁜 용과 함께 있는 일이 있어서 그 용에게 속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에요.
7화
소행이 나쁜 용이요……?
미틸: 네. 조금 난폭하다고나 할까……. 거리에 올 때마다 싸움으로 저택의 벽에 구멍을 뚫거나, 가게의 물건을 마음대로 먹어치우고 상가의 요괴들을 곤란하게 한다던가.
그, 그건 확실히 조금 걱정일지도 모르겠네요…….
미틸: 사실은 상냥한 용이야, 라고 형님은 말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기와판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아까 리케와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형님은 기와판 기자거든요. 항상 취재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레녹스: 루틸의 기와판은 인기가 많습니다. 아이들 말고도 독자들이 있어서 저도 항상 읽는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리케: 그림이 독특하고 신기한 매력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에게 가끔 글씨를 가르쳐줘요.
헤에……. 멋진 형님이네요!
미틸: 에헤헤…….
(귀엽다……. 기쁜 듯이 귀가 움직이고 있어…….)
리케: 맞다. 루틸의 기와판이라고 하니 궁금했던 기사가 있었어요. 가끔 상점가에 나타나는 너구리의 대도예! 저, 그거 보고 싶었거든요.
너구리의 대도예?
레녹스: 아. 클로에와 라스티카 2인조를 말하는 건가?
미틸: 레노 씨. 본 적이 있나요?
레녹스: 우연히 지나가다가 한 번. 노래도 재주도 잘 부리고 일이 없었다면 좀 더 보고 싶을 정도였어. 하지만 그다지 장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건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동전이 든 바구니를 회수하지 않고 돌아갔나봐.
미틸: 에……!?
엄청난 걸 깜빡했네요……!?
레녹스: 손님의 열기에 만족하여 계산을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또 그 재주를 더 보고 싶습니다.
미틸: 리케. 다음에 오면 꼭 같이 보러 가요.
리케: 네!
흐려졌던 리케의 표정은 어느새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그와의 통통 튀는 대화로 나도 힘을 얻은 것 같았다.
벚꽃에 이끌린 채 산길을 따라 한참 지났을 무렵, 갑자기 레녹스가 걸음을 멈췄다.
레녹스: …….
왜 그러나요?
시선을 돌리는 레녹스의 표정은 험악하다.
레녹스: 기묘한 빛이 보입니다.
미틸 / 리케: …….
리케와 미틸도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빛……?)
주위를 둘러보려 할 때 산길 옆에 난 나무들 사이로 이상한 불덩어리가 튀어나왔다.
???: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으스스한 웃음소리를 내며 불덩어리는 세 갈래로 갈라져 우리를 에워쌌다.
미틸 / 리케: ……!?
당황하는 사이 불덩어리는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세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레녹스보다 키가 큰 남자, 얼굴에 큰 상처가 있는 어두운 눈빛의 남자, 작고 마른 체형의 옅은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모두 관상이 나쁘고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있다.
……!
레녹스: 도깨비…….
(도깨비라니, 확실히…….)
예전에 레녹스가 습격당했다는 요괴다. 같은 요괴라고 할지라도 강한 힘의 위험하 종족. 3명은 서서히 다가오더니 품평하듯 나를 위에서 아래까지 바라보았다. 하오리를 입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바람에 샤일록의 가게에 두고 온 것이다.
키가 큰 귀신: 봐봐. 정말로 꼬리도 날개도, 게다가 요력도 없어. 이런 요괴는 본 적도 없다고.
상처가 있는 귀신: 아아. 그 분이 소환하신 것은 이 녀석이 틀림없어.
마른 체형의 귀신: 너구나? 너지? 히히, 드디어 찾았다.
레녹스: 찾았다……?
그동안 내 모습을 본 요괴들은 하나같이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 도깨비들은 달랐다. 요괴와 다른 인간이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말투다.
(나를 소환했다고……? 그 분……?)
말의 진의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너무 싫은 느낌이 들었다.
상처가 있는 귀신: 텐구와 요호의 아이들이여. 그 묘한 녀석을 두고 사라져라.
마른 체형의 귀신: 아니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레녹스: 도망가세요. 제가 틈을 내겠습니다.
앞으로 걸어나온 레녹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전사처럼 자세를 취했다.
파우스트: (그 아이들. 부탁이니까 발견되지 말아라…….)
파우스트: ……응? 저건…….
오즈: …….
파우스트: 기다려!
오즈: 너는…….
파우스트: 설마 너까지 나올 줄이야. 마침 잘됐다. 묻고 싶은 것이…….
오즈: 그 요호에게서도 느꼈지만, 너에게 이질적인 기색이 남아있다. 질문에 따라서 생명은 보장하지 못한다.
파우스트: …….
상처가 있는 귀신: 응할 생각은 없나 보군.
레녹스: 이분을 넘길 생각은 없어.
키가 큰 귀신: 그럼 죽어라!
쇠막대기를 든 도깨비들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미틸과 리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미틸: 아키라 씨. 저희들의 뒤로……!
리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미틸, 리케……!
키가 큰 귀신: 받아라!
상처가 있는 귀신: 죽어라!
레녹스는 우리의 벽이 되어 도깨비를 상대하고 있었다. 내리쳐딘 쇠막대기를 피하고 받아넘긴다. 하지만 3대 1은 상황적으로 어렵다. 한 사람의 공격을 피하면 다른 도깨비가 덤벼든다.
레녹스: ……윽.
레녹스가 요술로 반격하려 해도 도깨비의 공격이 끊이지 않아 틈을 주지 않는다.
리케: 한 명을 상대로……. 비겁해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키가 큰 귀신: 이 자식이!
미틸 / 리케: ……!
도깨비의 살기가 리케와 미틸을 향한다. 레녹스를 넘어 도깨비 중 한 명이 리케들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그 순간, 도깨비들의 공세에 틈이 생겼다. 지체없이 레녹스가 높이 뛰어올라 그대로 급강하해 도깨비들의 머리에 강렬한 발차기를 날렸다.
마른 체형의 귀신: 큭…….
신음소리가 새어나와 도깨비가 혼절한다. 다른 도깨비가 겁먹은 틈을 타 바로 거리를 좁혀 또 한 명의 도깨비에게 주먹을 날렸다.
상처가 있는 귀신: 크엑…….
레녹스: 너로 마지막이다.
키가 큰 귀신: 이, 이 녀석……. 요술을 사용하지 않는 주제에 강하다니…….
남은 도깨비의 안면에 발차기가 들어가 세 사람이 모두 쓰러졌다.
리케: 됐다!
레녹스, 괜찮나요? 부상은……!
레녹스: 문제 없습니다. 이 틈에…….
안심한 것도 잠시 나무들이 갑자기 흔들렸다. 숲에서 다시 도깨비들이 나타난다.
……!
아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가 많다. 레녹스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묻어났다.
레녹스: 위험한데…….
리케: 우으……. 조금만 더, 내 힘이 돌아온다면…….
갑자기 시야가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지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다가온다. 키가 큰 나무들 너머로 불쑥 얼굴이 튀어나왔다.
거대한 도깨비: 어이. 아직도 못 잡았나?
……!?
미틸: 무슨…….
땅울림과 함께 나타난 것은,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도깨비였다.
8화
피부는 검붉고 바위처럼 울퉁불퉁한 세 개의 뿔이 머리에 자라나있으며 얼굴 한가운데 큰 눈이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여우로 보이는 모피나 꼬리, 텐구의 검은 날개의 여러가지를 밧줄에 연결해 그 굵은 목에 장식으로 매달고 있었다. ……괴물이다. 머리가 하얘지고 나서 뒤늦게 공포가 찾아온다.
리케: 이런 큰 도깨비……. 본 적도 없어요!
키가 큰 귀신: 두령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들이 의외로 만만치 않아서…….
거대한 도깨비: 흐응…….
레녹스: ! 물러서세요!
거대한 도깨비가 아무렇게나 큰 나무를 뽑아 이쪽으로 내던졌다.
미틸: 아키라 님!
쿵, 하고 뒤로 치여 미틸과 함께 쓰러진다. 직후, 진동과 풍압이 몸을 덮쳤다.
……!
오싹하게 창백해졌다. 큰 나무가 던져진 곳은 바로 코앞. 미틸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깔려 있었을 것이다.
거대한 도깨비: 쳇. 피했나.
도깨비: 두령. 죽이면 안되지 않습니까?
거대한 도깨비: 뭐, 생사여부는 상관 없어. 손에 넣어버리면 이쪽 거니까.
거대한 도깨비는 웃은 뒤 더 큰 나무를 뽑으려고 했다.
리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예요!
귀와 꼬리털을 곤두세우면서 리케는 두 손을 모아 삼각형을 만들어 눈을 감고 혼신의 힘을 다해 큰 불꽃을 뿜었다. 그것은 거대한 도깨비에게 똑바로 향해 갔다.
거대한 도깨비: !
거대한 도깨비는 바로 큰 나무를 버렸다. 하지만…….
거대한 도깨비: 짜증나네.
큰 몸을 피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다음 순간, 거대한 도깨비는 입을 벌리고 리케보다 몇 배나 큰 불을 뿜었다. 리케의 여우불은 서서히 꺼져갔다.
리케: ……!
도깨비의 큰 눈이 움찔움찔 움직여 나를 쳐다보았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도 그 거대함 때문에 눈알의 움직임이 생생할 정도로 잘 보인다. 벌레를 짓밟는 듯한, 차갑고 탁한 색이다.
거대한 도깨비: 너인가. 내가 불러들인 것이……. 수고해줬군. 여기서 죽여주지. 너희들, 해치워라!
구령과 함께 무기를 든 도깨비들이 들이닥친다.
레녹스: 핫……!
레녹스가 도깨비 떼를 향해 요술을 부리며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도깨비: !?
도깨비: 뭐야……!?
도깨비의 발은 잠깐 멈췄지만, 수가 너무 많아 날려버릴 기세는 없다.
레녹스: 리케, 미틸! 아키라 님을 데리고 도망쳐!
미틸: 네, 네……!
리케: ……윽.
달려나가려는 순간, 리케가 휘청거리며 땅에 쓰러질 뻔했다.
미틸: 리케!
리케: 죄송합니다. 아까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저를 붙잡아주세요!
나와 미틸이 리케를 안아 일으켰다. 그를 부축하면서 둘 다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덜컹덜컹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다가오는 도깨비의 고함소리가 초조함과 공포를 부추긴다.
레녹스: 윽. 이 이상 가게 두지 않아……!
간신히 진격을 막았던 바람의 기세가 서서히 약해졌다. 조금씩 도깨비들이 고리를 좁혀온다. 바람이 그치면 단번에 달려올 것이다. 전력 차가 심하다.
거대한 도깨비: 귀찮군. 너희들, 비켜라.
땅이 흔들리며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내린다. 거대한 얼굴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도깨비: 내가 전부 불태워주지.
도깨비는 다시 불을 뿜으려고 숨을 들이마셨다.
(죽는다……!)
???: 엎드려!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벚꽃 향기가 났다. 반짝이는 꽃잎이 우리를 감싸며 불꽃을 튕겨낸다.
……!
레녹스: 이건…….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벚나무 위에 파우스트가 서있었다.
파우스트……!
날갯짓을 하며 우리쪽으로 내려온다.
지금의 벚꽃은 파우스트가……?
파우스트: 아아. 근처에 있던 벚꽃잎의 가호를 받아 힘을 높여 결계를 만들었어.
레녹스: 파우스트 님, 감사합니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파우스트: 그건 내 대사다. 숨어있으라고 했는데…….
미틸: 파우스트 씨. 저 큰 도깨비가 아키라 님을 노리고 있어요!
파우스트: 저 녀석은 술탄동자다.
리케: 술탄동자?
파우스트: 도깨비들을 통솔하는 강한 귀족의 우두머리지.
술탄동자는 파우스트를 노려보며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술탄동자: 아아, 시시한 방해를 하다니. 이제 와서 잡종이 한 마리 더 많아봤자 똑같다. 네 녀석들에게 승산은 없어.
고압적으로 웃으며 다시 불을 뿜을 태세를 취했다.
파우스트: 아니, 우리가 이긴다.
그때, 구름이 끼듯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올려다보니 한 남자가 하늘을 날고 있다.
저건…….
파우스트: 오즈다. 성에 사는 용이야.
오즈: …….
오즈라 불리는 용이 가볍게 손을 올린다. 그것만으로도 우르르 많은 양의 물이 모여 순식간에 큰 파도가 되어서 수하의 도깨비들을 밀어냈다.
도깨비: 우와아악……!
오즈: 역시 너희들이었나.
오즈는 하늘에서 술탄동자를 내려다보았다. 낮은 목소리는 담담하고, 표정은 평탄하다. 긴 머리만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인데 큰 별 하나가 내려온 것 같은 존재감이 있었다. 술탄동자는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위세를 되찾았다.
술탄동자: 눈에 거슬려. 용의 통구이로 만들어주마! 먹어라!
술탄동자는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깊이 숨을 들이쉬고, 오즈를 향해 불을 뿜었다. 지금까지 가장 큰 불덩어리다.
미틸: 위험해……!
오즈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다시 불을 소환해 불덩어리를 향해 발사했다. 거대한 불과 불덩어리가 부딪히면서 충격으로 산이 흔들렸다.
오즈: 소용없어.
오즈는 더욱 넘쳐흐를 정도의 물을 불러들여 하늘에 바다를 만들었다. 그것을 술탄동자의 머리에 단숨에 퍼부었다.
오즈: 얼어라.
오즈가 중얼거리자 많은 패 같은 것들이 나타나 물에 잠긴 술탄동자의 거구를 나선 모양으로 에워싼다. 그대로 패는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고, 급속히 물이 얼기 시작했다. 냉기를 내뿜으며 발 밑에서 순식간에 얼어붙어간다.
술탄동자: 젠장. 가만히 둘까 보냐……!
술탄동자는 순간적으로 불꽃을 불어 얼음을 녹이려고 했지만 늦었다. 에워싼 패의 회전은 점점 빨라지고 계속 빙빙 돌면서 열을 전부 빨아들였다. 얼음이 물로 돌아오는 속도를, 물이 얼음이 되는 속도를 웃돈다. 술탄동자의 자유를 빼앗고 얼음 우리가 닫혀간다.
술탄동자: 네 녀석……!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술탄동자는 분노한 표정 그대로 얼음장에 빠졌다.
도깨비: 두, 두령이 당했다……!
도깨비: 도망쳐……!
얼마 남지 않은 수하들은 거미 새끼를 흩뜨리듯 도망갔다.
미틸: …….
리케: …….
(이게 무슨…….)
산도 숲도 우리도 고요했다. 지나간 폭풍의 여운에서 금방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윽고 폭풍의 중심에 있던 오즈가 하늘에서 내려와 내쪽을 향해왔다. 압도적인 힘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오즈가 손을 내밀었다.
오즈: 너를 데리러 왔다.
9화
커다란 용의 모습이 된 오즈의 등에 실려 우리는 한꺼번에 성으로 초대받았다.
레녹스: 역시 벚꽃의 인도는 옳았던 것 같군요. 그때 꽃잎이 보여준 것은 용의 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주저했습니다만…….
그랬군요…….
용의 날아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느리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풍경이 쌩쌩 지나갔다. 레녹스의 품에 안겨 날아갈 때는 미틸과 리케도 역시 긴장하고 흥분해있었다.
리케: 한 번에 잔뜩 옮길 수 있다니 용은 편리하네요. 게다가 이렇게 천천히 경치를 볼 수 있다니……!
미틸: 아, 리케! 우리 집이 보여요. 저기!
미틸: 대, 대단해……. 저, 용을 타는 건 처음이에요.
레녹스: 나도 처음이야.
파우스트는 어떤가요?
파우스트: ……글쎄.
성에 들어서자 두 용이 마중을 나왔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의 용과 상냥한 청년의 용이다.
화이트: 그대들, 잘 왔구나. 나는 화이트라고 하네.
피가로: 나는 피가로. 이곳에 온 걸 환영해.
화이트: 오즈여. 술탄동자의 퇴치는 무사히 끝난 것 같군. 고생했구먼. 그대가 두령을 두드리고 있는 동안에 나와 피가로, 스노우가 수하의 도깨비들을 혼내주었네.
피가로: 몰래 각지에서 패거리를 짜고 있었던 것 같아서. 이걸 계기로 일소할 수 있었어. 당분간은 얌전히 있을거야.
화이트: 자…….
화이트의 눈이 이쪽을 보았다.
화이트: 그대가 인간인가.
네, 네.
천진난만한 모습인데도 화이트의 눈동자에는 노령의 침착함이 서려있었다. 파우스트가 말하기를, 이래보여도 최고령인 쌍둥이 용의 반쪽이라고 한다. 용의 일족의 우두머리로서 성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그들이라고 들었다.
화이트: 흐음……. 확실히 우리 요괴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군. 벚꽃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 도깨비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끝난 것은 다행이었구나.
파우스트: 그런 것보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게 설명해줘.
저희가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요…….
용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도깨비 퇴치였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대화에서 왠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애초에 왜 저는 도깨비의 표적이 되었던 거죠……?
그러자 화이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즈 쪽을 바라보았다.
화이트: 그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이곳으로 데려온겐가?
오즈: …….
화이트: 귀찮아지면 입을 닫아버리니……. 그대. 아서에게도 그런 식인가? 그러다가 정나미 떨어지고 말 걸세.
오즈: ……필요없는 참견이다.
(미간에 엄청나게 주름이 잡혀져 있어…….)
화이트: 어쩔 수 없는 녀석. 조금만 설명해주지.
화이트와 피가로는 오즈를 대신해 일의 전말을 들려주었다.
화이트: 이 거리는 대체로 벚꽃의 힘에 지켜지고 있네.
피가로: 우리들 용 일족은, 벚꽃으로부터 힘을 부여받은 종족이야. 그 힘으로 큰 벚나무를 도와 예전부터 앵운가를 지키는 데에 힘써왔어. 벚꽃과 용은 서로 인정하고,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지.
벚나무가 용을 일방적으로 거느리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상하관계라기보다는 공동체 같은 것일까.
벚꽃의 뿌리 위에 거리가 만들어진거죠? 그 벚꽃의 본체가 성에 있다고 들었는데…….
피가로: 저걸 말하는 거야.
피가로가 정원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큰 벚꽃이었다.
피가로: 이번 일은 술탄동자를 우두머리로 한 도깨비 일족이 용으로부터 거대한 벚나무를 빼앗으려고 한 것이 발단이었어.
거대한 벚나무를 빼앗으려……?
피가로: 응. 용의 일족은 거대한 벚나무에게 신뢰를 받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벚꽃의 수족이 되어 거리를 지켜보는 역할을 맡고 있는 거야. 그 입장을 노리고 있던 술탄동자는 어리석게도 용 이상으로 거대한 벚나무의 마음에 들면 우리를 대신해 거리를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고.
피가로: 그것을 위해 지혜를 짜낸 대답이, '희귀한 것을 소환한다.' ……즉, 너야.
에……?
피가로: 이 세상에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런 거라면 유일무이하고 확실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화이트: 그대들, 술탄동자를 봤겠지. 이상한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녀석도 오래 살고 힘을 자랑하는 요괴 중 하나일세. 일족을 묶고 야심도 강하다. 병아리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재주라고 해도, 술탄동자라면 못할 것도 없네.
술탄동자는 벚꽃과 거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전부터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드디어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요술로 힘껏 세상의 이치를 비틀어 다른 세계로부터의 소환을 실시했다고 한다.
화이트: 그러나 어차피 도깨비의 잔꾀. 어설프고 허술한 소환에 그쳤다.
피가로: 어쨌든, 자신들이 무엇을 소환했는지도 모르는 데다가 소환된 당사자는 기억을 잃은 상황이니까. 쉽게 말하면 엉성한 제비뽑기네. 걸린 것이 우연히 인간이었고, 우연히 너였을 뿐이야.
그건, 즉……. 운이 나빴다는 건가요……?
화이트: 뭐 그렇지.
미틸 / 리케: 에!?
(그, 그런……!)
걱정 마! 정도의 가벼운 응대에 깜짝 놀랐다. 주변의 요괴들도 모두 안쓰러운 시선을 보낸다.
리케: 그러면 아키라 님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흐흥, 하고 화이트가 가슴을 쳤다.
화이트: 얕보지 말게나. 우리는 용이다. 술탄동자가 한 일을 우리가 못할 리가 없네.
피가로: 원래 우리는 너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생각으로 찾고 있었어. 하지만 이 세계의 누가 소환을 실시했는지 확인할 때까지 너를 방황하게 한 거고. 우리들로부터 벚꽃을 빼앗으려고 틈을 노리고 있는 요괴는 많아서 말이야……. 무섭게 해서 미안해.
파우스트: 웃기지 마! 그래서 아키라가 죽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피가로: 결과적으로는 무사했고, 술탄동자도 퇴치할 수 있었으니 좋잖아. 대단원이야. 너야말로 이유도 묻지 않고 내 부하를 날려버렸다면서? 보고를 듣고 웃어버렸어.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원래대로라면 극형이지만, 이번에는 스승 서비스로 특별히 봐줄게.
파우스트: ……이래서 용은 싫다고…….
(파우스트는 텐구인데, 용이 스승……?)
이상하게 여겨 파우스트를 봐도 씁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들어서 안 될 눈치를 살피며 호기심과 의문을 슬며시 마음에 담았다. 아마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
앵운가를 위협하는 사건은 해결되었고, 용들이 나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의식의 장소는 거대한 벚나무. 거리에서 가장 강한 용인 오즈가 의식을 맡아주는 것 같다. 밤이 찾아온 하늘에는 크고 둥근 달이 떠있다. 눈부시게 달빛에 비친 만개한 벚꽃은 우아하고 환상적이었다. 벚꽃은 달빛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자신의 모습이 가장 빛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
리케: 정말로 벌써 돌아가는 건가요?
미틸: 모처럼 만나게 되었는데 벌써 헤어지게 되다니 섭섭해요.
보름달이 뜨는 밤이 가장 의식에 적합하다고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잠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결행은 오늘 밤이 되었다.
둘 다 정말 신세 많이 졌어요. 잠시나마 앵운가를 안내받을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진심을 다해 나를 격려해준 그들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움켜쥔 내 손에 무언가를 건넸다.
10화
미틸: 이거, 저희들이 드리는 건데…… 벚꽃잎이 들어간 부적이에요.
리케: 여행길이 빛으로 가득 차기를 기도했습니다. 분명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리케, 미틸……. 감사합니다. 소중히 할게요.
레녹스: 아키라 님, 부디 건강하세요.
레녹스도…… 부디 건강하세요. 당신이 있어서 든든했어요. 여러 번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레녹스: 아뇨,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
고개를 느슨하게 흔들며 레녹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레녹스: 분명 원래 세계에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그 누군가와 재회해서, 소중한 일상이 무사히돌아오기를.
샤일록: 텐구는 진지하군요.
샤일록! 와줬군요?
샤일록: 당신이 돌아간다고 소식이 들어와서요. 인사와 감사의 말을 하러 왔습니다.
감사의 말?
샤일록: 네. 당신이 주신 자극적인 순간은, 잠시 잊혀질 것 같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의미심장하게 윙크를 건네는 샤일록에 당황하고 있자 어이없는 한숨이 들렸다.
파우스트: 정말이지, 놀리지 말라니까.
샤일록: 후후. 배웅할 때는 서로 웃는 얼굴이 좋잖아요?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도움을 준 요괴들. 악수하고 머리를 숙여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파우스트의 앞에 섰다. 작별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둘 다 격식을 차린 듯한 근질근질한 미소가 된다. 그에게는 할 말이 많았다. 많이 있기 때문에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파우스트,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든 일에 말려들게 해서 다시 한 번 죄송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파우스트가 놓아주지 않고 있어 주었기 때문에 저는 이 세계에서 저는 이렇게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계속……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어째서 저를 도와준 건가요?
그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고,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귀찮은 일을 마다할 수 있는 이유와 어디든 갈 수 있는 날개가 있다. 나를 내버려두고 사라지는 일은, 아마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파우스트: ……말했잖아. 그냥 한 일이라고.
파우스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똑같이 통명스럽게 말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고, 안 지 얼마 안 됐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대답을 '그립다' 라고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가 요괴의 세계라고 해서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어요. 하지만 파우스트나 요괴의 모두들과 함께 지내거나 이야기를 하고, 격려를 받는 사이에 무서운 기분이 누그러졌어요.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체 모를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도 진정한 외톨이가 되는 일은 없었다. 분명 파우스트가 처음부터 꾸밈없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와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를 이 세계에서 발견해줘서,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훗, 천만에. 돌아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군.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학생을 보는 것처럼.
피가로: 작별 인사는 끝났어?
화이트: 이제 의식을 시작하겠네.
네……!
화이트: 오즈여, 부탁하네. 제대로 돌려보내게나.
오즈: 문제 없다.
하늘에서 나타나 술탄동자를 압도했을 때, 그를 신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벚꽃 앞에 선 모습도 하늘과 바람이 모습을 이룬 듯 태연하고 엄숙한 박력이 감돈다.
의식,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도깨비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즈: 답례는 필요 없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 뿐이니까. 본래 너는 여기의 사람이 아니지. 두 번 다시 이 세계에 섞이는 일이 없도록, 원래의 세계로 확실히 보내겠다.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댄다. 그러자 벚나무 꽃잎이 모여 내 주위를 두둥실 감쌌다. 파우스트가 도깨비로부터 지켜줄 때의 벚꽃의 결계와 많이 비슷했다.
오즈: ……밖의 세계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군. 너는 꽤 위험한 일을 많이 당했으니까.
그 말을 듣고 그가 나에게 수호의 요술을 걸어줬다는 것을 알았다. 말은 적고 미소도 없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말없이 옷을 입히는 듯한 걱정하는 기색이 있었다. 그 역시 서투르지만 상냥한 요괴일지도 모른다.
오즈: 그럼, 의식을 시작하지.
좋다고 눈으로 대답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감지 말자. 끝까지 눈을 뜨고 이 세계를 느껴보자.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이라고 해도, 만날 리 없는 상대였다고 해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으니까.
…….
오즈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밤을 밝히는 달빛이 그의 부름을 받아 손바닥에 모여든다. 크게 손을 흔들며 모여든 달빛을 벚꽃에 쏘았다. 벚꽃은 화답하듯 꽃잎을 흩뿌리고 반짝반짝 달빛을 뿌린다. 그 빛은, 밤을 갈아치우듯 격렬해진다. 눈부시게 빛나고 세계는 새하얗게 되었다.
끝까지 눈을 뜨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빛의 강렬함에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 ……키라 ……. 아키라 ……!
……!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다.
파우스트: ……! 일어났나…….
눈앞에 걱정스러운 얼굴의 파우스트가 있었다.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정신이 몽롱하다.
……? 파우스트……. ……날개는요?
파우스트: 하?
……어라……?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파우스트를 보고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날개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파우스트: 뭐, 농담할 기운이 있다면 다행이군. 모두 너를 걱정하고 있었어.
눈을 돌리면 마법사들이 침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리케: 현자님. 다행이다……! 계속 잠드셨어요.
미틸: 말을 걸어도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아서, 이대로 깨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 …….
그랬나요 ……?
오즈: 현자가 일어나지 않자 리케가 소란을 피워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
피가로: 어젯밤에 쌍둥이 선생님이 준 향을 썼지? 아무래도 그게 원인인 것 같아.
화이트: 이런이런, 미안하네. 숙면 효과가 있다고 해서 선물한건데 인간에게는 효과가 조금 셌나보군.
레녹스: 저주의 종류인게 아닐까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만, 기우였던 것 같군요. 일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샤일록: 후후, 늦잠꾸러기. 틀림없이 즐거운 꿈을 꾸셨겠지요.
꿈…….
(……어떤 꿈이었더라…….)
분명히 꿨을 텐데 이제 기억이 안 난다. 지나간 계절의 향기 같은 멀고 부드러운 감촉만이 은은하게 남아있다.
파우스트: ……현자. 괜찮나?
오즈: 아프면 말하도록. 의사라면 여기에 있다.
리케: 아, 배가 고프신 걸지도. 괜찮아요 현자님. 언제 일어나도 괜찮도록 네로가 아침 식사를 만들어주고 있으니까요!
여기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세계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잔뜩 있다. 그 사실이 따뜻하고 든든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적을 받은 것처럼.
……아하하, 고마워요. 그러면 힘내서 일어나볼까!
에워싼 미소에 이끌려 따뜻한 꿈의 자취로부터 몸을 미끄러져 나간다. 마법관에서 시작되는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자, 희미하게 벚꽃을 닮은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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