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샤일록이 꺼내준 만화경에 조심조심 미틸이 성로의 젬을 넣는다.
샤일록: '임비벨'
한숨 같은 주문이 쏟아진 다음, 만화경이 떨리고 바의 모습이 일변했다.
미틸: 에?
시노: 뭐야……?
천장, 바닥, 벽……. 모든 것이 별빛으로 뒤덮여 반짝이고 있다. 그 경치는 눈에 익었다.
(에, 이건……)
파우스트: …….
미틸: 대단해…….
화이트: 이건 훌륭하군…….
아름다운 전망에 모두가 압도당하고 있으면 만화경이 폭발음을 냈다. 직후에 별이 사라진다. 바는 원래의 차분한 내부로 돌아가며 만화경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화이트: ……망가진 것 같구먼.
미틸: 혹시 이 돌을 넣었기 때문에 망가진 것인 걸까요?
푸른 얼굴의 미틸에게 샤일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샤일록: 대충 고친 탓이겠죠. 꽤 거친 짓도 했으니까요. 그러니 부디 신경 쓰지 마세요. 무르라면 금방 고칠 수 있을 겁니다.
시노: 영상이 보인 건 순간뿐이었네.
스노우: 아름다운 경치였는데 말일세.
화이트: 아마도 그 돌이 과거에 봤었던 별의 하늘이겠지.
오웬: 어이없어……. 결국 알게 된 건 아무것도 없잖아.
부루퉁한 듯 말을 남기고 오웬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미틸: 돌이 있는 곳의 힌트가 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네요…….
시노: 아쉽네. 단서가 잡힐 줄 알았는데.
네로: 자자, 기운 내라고. 레몬 파이 먹을거지? 오늘은 특별히 큰걸 줄테니까.
어깨너머로 흥분의 여운이 바에 감돌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아까 만화경이 보여줬던 영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밤하늘……)
미틸: 현자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 죄송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샤일록: 그건 그렇고 아쉽네요. 수수께끼 같은 돌이 말을 꺼내려던 참이었는데.
라스티카: 매혹적이고 설레는 시간이었지. 모처럼이니 조금 더 다 같이 즐기고 싶었어.
그날 밤, 나는 파우스트의 방을 찾아갔다.
파우스트: 무슨 일이야. ……설마 또 꿈이 새어나고 있었나? 새로운 매개체는 문제없이 기능한다고 생각했는데…….
아, 매개 문제는 해결 됐군요. 다행이다.
파우스트: ……뭐 그렇지.
(왜 그런 복잡한 얼굴을……)
결계도 궁금했지만, 방문한 이유는 결계 때문이 아니에요. 오늘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낮에 샤일록 바에서 봤던 돌의 기억에 대해서에요.
파우스트: ……그건 그냥 그 돌이 봤던 과거의 밤하늘이었겠지.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제 제가 봤던 파우스트의 꿈의 풍경과도 많이 비슷한 것 같아서요.
파우스트: …….
그렇게 말하자 파우스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약간 당황하면서 나는 솔직한 마음을 그에게 전한다.
내리는 듯한 빛의 수도, 별이 총총히 둘러싸이는 감각도…… 마치 파우스트의 꿈을 재현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혹시…… 파우스트는 성로의 젬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지 제 착각일지도 모릅니다만…… 예를 들어 과거의 오래된 기억들이 꿈에 나타났다던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파우스트: ……그렇네. 어제의, 꿈…….
파우스트가 생각에 잠기더니, 노크 소리가 났다.
파우스트: 누구지.
미틸: 아, 안녕하세요 파우스트 씨. 이 시간에 죄송해요. 그,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파우스트: ……문은 열려있다.
미틸: 네, 네. 실례하겠습니다. ……어라, 현자님?
미틸은 내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젯밤과 똑같은 상황에 뭔가 이상해져, 파우스트도 엷은 미소를 머금고 미틸을 맞아들였다.
파우스트: 오늘은 무슨 일이야. 약이라면 잘 들었어.
미틸: 아뇨, 오늘은 피가로 선생님의 심부름이 아니라 제 볼일로 온거에요. 파우스트 씨, 낮에 오웬 씨로부터 감싸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우스트는 한순간 당황하며 검연쩍은 듯이 모자를 내렸다.
파우스트: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니야.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으니까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미틸: 네. 하지만 저는 너무 기뻤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미틸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조금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미틸: ……실은, 성로의 젬의 소원 이야기를 했을 때 몰래 파우스트 씨와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쩌면 지금 이렇게 파우스트 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하는 게 그 젬의 힘인 것 같아요. 에헤헤, 그 돌은 제대로 제 소원도 들어줬다고, 내일 시노 씨에게 가르쳐 주려고 해요!
쑥쓰러워하면서도 미틸은 용기를 실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전했다. 따뜻한 것을 보듯 파우스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부드럽게 미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파우스트: ……그렇네.
미틸: 하지만 성로의 젬의 장소를 모르는 건 아쉽네요. 오웬 씨도 굉장히 갖고 싶어했던 것 같고…….
파우스트: 너는…… 그 돌을 원하는 건가? 이미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도…….
미틸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미틸: 가능하다면 다시 갖고 싶어요. 그때야말로 '모두가 곤란해 하고 있는 거대한 재앙의 상처가 치유된다' 라는 소원을 빌고 싶어요. 파우스트 씨의 상처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파우스트: .…….
미틸: 그리고 역시 진짜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예쁜 돌멩이가 있었어요, 라고만 얘기해도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특히 리케와 함께 보고 같이 그때의 기분을 나누고 싶어요. 소중한 친구니까 같이 보면 시간이 지나도 그때 예뻤다고 나중에 둘이서 생각나겠죠?
파우스트: ……후후. 자신의 소원이 아닌, 남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돌이 갖고 싶다니. 너는 욕심이 없는 건지 있는 건지 모르겠네.
미틸: 어, 어떨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파우스트: 현자, 너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뭐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군. 너의 소원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지.
그렇네요…….
파우스트: 현자, 미틸. 그 돌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 그래도 상관 없다면…… 소원을 이루고 싶은 게 아니라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걸 보고 싶다고 한다면. 성로의 젬을 찾으러 가지. 내가 안내한다.
7화
미틸: 에?
파우스트. 역시 짐작 가는 것이 있나요?
파우스트는 씁쓸한 얼굴로 살짝 웃었다.
파우스트: ……아아, 내가 태어난 고향 근처야.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그 장소가 어딘지 알 것 같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모두에게 말을 걸고 큰방에 모였다.
시노: 그 돌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
오웬: 확실해? 이 이상 나를 실망시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에 대해 후회하게 만들 텐데?
스노우: 음. 파우스트가 생각낸걸세. 옛날에 인연이 있던 곳 같구먼.
화이트: 그렇다면 다 같이 가자는 얘기가 됐지.
스노우와 화이트는 인솔 선생님처럼 파우스트 옆에 서 있다. 조심스러운 파우스트는 연장자인 두 사람에게 상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틸: 샤일록 씨들도 같이 와주시는군요!
샤일록: 네. 유혹과 자극에는 탐욕스럽거든요, 저희들.
라스티카: 그 아름다운 돌의 고향이 어떤 곳인지, 꼭 이 눈으로 보고 싶었어.
어제의 멤버가 모이기 시작했고, 왁자지껄한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그 뒤에서 네로가 조심스럽게 나타났다.
네로: ……역시, 이렇게 되는건가.
아, 네로도 오는군요?
파우스트: 내가 불렀어. 시중을 드는 건 많으면 좋잖아.
네로: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애 돌보기냐.
시노: 네로도 갈 거면 딱 좋아. 나의 활약을 히스에게 전하는 역을 두번째로 해줘.
네로: 첫번째는 누군데.
시노: 나다.
네로: 그 역할, 필요해?
근데 파우스트. 돌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파우스트: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겠지.
종이와 깃털펜을 꺼낸 파우스트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허공에 뜬 깃털펜이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새하얀 종이에 술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아, 지도!
아무래도 파우스트는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지도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윽고 움직이던 깃털펜이 멈춘다.
파우스트: 목적지는…… 여기다.
세심한 필치로 지도가 그려져 있다. 파우스트는 그 가운데를 가리켰다. 흥미 있는 듯 시선이 집중된다.
네로: 헤에, 이 장소는…….
샤일록: 중앙 나라의 근처군요.
파우스트: 아아. 성로의 젬의 원석은 이 동굴 안에 있어.
오웬: 흐응…….
라스티카: 성로의 젬은 거기서 온거구나.
미틸: 지도를 단서로 나아가다니, 왠지 보물찾기 같아요!
시노: 너무 떠들지 마. 보물찾기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보물을 지키는 도깨비가 나올지도.
미틸: 에……!
시노: 걱정하지 마. 내가 쓰려뜨려 줄테니까. 성로의 젬에 도깨비의 목을 곁들이면 히스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지.
시노와 미틸은 사이좋게 모험의 예감에 흥분해 있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레는 고양이 방 전체를 휘감고 있던 그때——
!?
격렬한 폭발음이 울렸다.
……지, 지금 건.
미틸: 윗층에서 들린 듯한……?
오웬: 혹시 그건가.
샤일록: 짐작이 가는 것이라도 있나요?
오웬: 아까 지나갔을 때 복도에서 미스라와 오즈가 욱신각신하고 있었어. 둘 다 사이좋게 마도구까지 꺼내면서.
파우스트: 그거군.
네로: 오히려 그거밖에 없잖아.
스노우와 화이트는 얼굴을 마주보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화이트: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놈들이군.
스노우: 그냥 두면 마법서가 구멍투성이가 되어버릴걸세. 나는 남아서 말썽꾸러기들을 돌보지. 화이트, 잠깐 동안의 이별일세.
화이트: 알겠네.
스노우는 화이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폭발음이 나는 쪽으로 떠났다.
시노: 빨리 가자. 또 방해받을 수도 있어.
그렇네요. 스노우가 없는 건 아쉽지만 가죠.
화이트: 이런, 그 전에 사전 준비를 해야겠군.
미틸: 사전 준비?
화이트: '노스콤니아'
화이트의 주문과 함께 모두의 옷차림이 바뀐다.
미틸 / 시노 / 네로: 우왓?
라스티카 / 샤일록: 이런.
중앙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밤하늘을 의상에 머금은 것 같은 의상이었다.
오웬: 뭐야 이거.
화이트: 앞으로 갈 곳에 어울리는 의상일세.
특별한 의상을 입어야 하는 곳인가요?
파우스트: 오웬, 어제도 말했지만 그 돌에는 소원을 들어줄 힘은 없어. 그래도 올건가?
오웬: 안 속아. 소원을 들어주는 효력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떠날 리가 없잖아.
미틸: 예, 예쁜 돌을 가지고 싶어하는 게 이상할까요?
라스티카: 조금도 그렇지 않아. 나도 정말 좋아해. 모두 같이 떠나는 것 자체가 재밌기도 하고.
오웬: ……자신이 없어졌어. 그래도 어쨌든 따라갈래.
파우스트: 알았다. 그렇다면 출발하지.
파우스트가 그린 지도를 발판으로 목적지인 중앙 국가의 변경을 노렸다.
화이트: 도착한 것 같군. 보게나, 저게 입구일세.
화이트는 앞쪽을 가리키며 빗자루 뒤에 타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것이…….
동굴의 입구는 나무에 숨어있듯이 적막했다. 지도가 없으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거야.
파우스트: 내려간다. 안은 어두우니까 들어갈 때 발 밑을 조심하도록.
어둠 속에 발을 들여놓는다. 동굴 안은 돌이 나란히 서는 것이 딱 좋을 정도의 폭이어서 작은 터널 같았다.
미틸: 깜깜하네요…….
시노: 랜턴이 없으면 제대로 못 걷겠어.
어둠 속에서 발걸음마다 차갑고 습한 냄새가 풍겨온다.
오웬: …….
라스티카: 울려퍼지는 소리가 홀 같아서 멋지네. 맞다, 내가 연주하고 오웬이 노래를 부르는 게 어떨까?
오웬: 싫어.
(……당연한거지만 진짜 어둡다. 길의 끝은 어떻게 되어있으려나……)
랜턴은 서로의 얼굴 정도밖에 비추지 않는다. 벽을 따라 걸어가는데 화이트가 옆에 와서 내 손을 잡는다.
화이트: 현자 쨩은 나와 함께 갈까. 미아가 되면 곤란하지?
고마워요, 화이트.
긴 동굴 속을 줄지어 걸어간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건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 그 은밀한 소리에 섞이듯 화이트가 나에게 말했다.
8화
화이트: 파우스트는 말이지, 조금 알기 힘들지만 본성은 성실하고 곧은 남자다. 그러나 자신의 기질과 상반되는 것처럼,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타인과의 관계를 계속 피하고 있었네. ……아마 과거에 인간에게 심한 배신을 당한 탓이겠지.
…….
화이트: 그 꼴은 몹시 애처로워서 말일세. 우리에게는 깊은 고독 속에서 자기를 상처입히기 위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첨벙첨벙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물소리가 귀에 들린다.
화이트: ……하지만, 그대가 오고 모두가 마법관에 모이게 되고 나서는, 그 녀석도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네.
화이트는 줄의 맨 앞을 걸어가는 파우스트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쫓아갔다. 미틸들에게 둘러싸인 그의 모습이 랜턴 불빛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시노: 그러고 보니 미틸이랑 파우스트는 언제 친해졌지?
미틸: 에?
샤일록: 그런건가요?
네로: 예민할 것 같은 걸 척척 묻네, 너……. 그래서, 어때? 선생.
파우스트: 결국 묻는건가.
네로: 그거야 뭐, 관심 있으니까.
파우스트: ……언제라고 할 것도 없어. 그는 어설픈 선생님을 닮지 않은 참된 아이다. 친해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미틸: ……에헤헤.
시노 / 네로: 헤에.
샤일록: 후후.
파우스트: 뭐야 그 미지근한 미소는…….
파우스트의 옆모습에는 쓴웃음이 떠 있다. 가시도 갑옷도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보였다.
오솔길을 걸으며 한참이 지났을 무렵에야 조금 트인 곳으로 나왔다. 이 앞에 길은 없고, 아무래도 막다른 길인 것 같다.
라스티카: 가장 안쪽에 도달한 것 같네.
네로: 그러면 여기가 거기야?
모두들 랜턴을 들고 둘러보았지만 출렁출렁 파도치는 암벽만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떨어져 있는 돌도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시노: ……그 돌은, 없는 것 같은데.
미틸: 빛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확실히 평범한 동굴로밖에 안 보이는데……. 혹시 이 장소가 아닌걸까)
오웬: 웃기지 마. 이런 축축한 구멍 속을 걷게 해놓고 아무것도 없다고?
파우스트: …….
오웬: 파우스트는 우리를 속인 거야. 너희들의 선생님은 최악의 거짓말쟁이네.
악의 시럽을 듬뿍 뿌린 듯한 짓궃은 목소리가 파우스트들을 비난한다.
오웬: 인간들을 너무 저주의 불길에 쬐는 바람에, 네 근성도 같이 까맣게 타버린 거 아니야.
시노: 어이! 그 이상 말한다면 내가 상대가 되어주지.
오웬: 해 봐. 약하고 비굴한 동쪽의 마법사 주제에.
화이트: 오웬, 그렇게 털을 곤두세우지 말게나. 시노도 진정하게.
오웬들을 말린 화이트는 다짐하듯 동굴 벽을 건드렸다.
화이트: 이 동굴이 성로의 젬의 원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지금은 모두 잠들어 있는 것 같지만.
미틸: 잠……?
파우스트: 아아. 빛을 잃고 있는 것은 돌이 잠들어 있는 탓이다.
시노: 두들겨 깨우면 되겠네.
네로: 그렇게 말해도 돌을 깨우는 방법 따윈 몰라.
라스티카: 클로에가 있다면 좋았을텐데.
샤일록: 그 아이는 당신을 깨우는 걸 잘하니까요.
오웬: 귀찮네. 화려한 마법이라도 해보면 깨어나는거 아니야?
그, 그럼 동굴에서 생매장 당하는 저희들이 잠들게 되어버려요……
파우스트: 뒤숭숭한 짓을 하지 않아도 깨우는 방법이라면 있어.
오웬: …….
파우스트의 한마디에 동굴에 울려 퍼지던 수다의 반항이 가라앉는다.
화이트: 성스러운 축제를 기억하는가? 그때와 비슷한 의식을 치르면 되네.
성스러운 축제…….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해냈다.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혼란스러워진 땅을 가라앉히기 위해 각지로 나가 정령을 소환했을 때의 일을.
예전에 저희가 다섯 나라에서 했었던 의식이죠.
화이트: 음. 이 동굴에 살았던 정령들을 소환해 축복을 내리고 땅이 가진 본래의 힘을 되찾는 걸세. 그러면 잠들어 있던 돌들도 깨어나겠지. 여기에 중앙의 마법사는 없지만 상대는 원시의 정령들만큼 만만치 않아. 마음대로 해버리면…….
네로: 과연. 우리가 이 복장을 입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인가.
파우스트: 아아. 이렇게 될 가능성도 생각해서 이 땅의 정령이 좋아할 만한 옷을 입었어.
샤일록: 역시 용의주도 하시군요. 모든 것을 내다보시다니.
파우스트: 확신은 없고 혹시나 했을 뿐이다. 빛이 사라진 그 돌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힘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잠이 들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고. 여기의 돌들과 똑같이.
화이트: 자, 파우스트.
파우스트: 아아.
파우스트는 살며시 뱉어내듯 주문을 외웠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드'
그러더니 주위에서 뚝뚝 마치 돌에 금이 간 것 같은 작은 소리가 여러 개 울리기 시작한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드'
파우스트가 다시 주문을 입에 올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그걸 따르는 것처럼 마법사들도 주문을 외워 간다.
화이트: 우리들도 이어가지. '노스콤니아'
오웬: '쿠레 메미니'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샤일록: '임비벨'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시노: '맛차 스디파스'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쳬'
마법사들이 주문이 겹침과 동시에 주위가 한순간 눈부신 빛에 휩싸인다. 너무 눈부셔서 나도 모르게 나는 눈을 감았다.
9화
……!
화이트: ……호오.
샤일록: 이건…….
라스티카: 근사해…….
세계의 별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순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넘칠 정도의 빛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동굴의 일면이 만천의 별로 바뀌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디를 향해도 빛이 끊기지 않는다. 그것은 그날 밤. 파우스트의 방에서 보았던 그의 꿈과 같은 경치였다.
시노 / 미틸: ……대단해…….
네로: 이거, 전부 돌이 빛나고 있는 거야……?
오웬: …….
천장에서 끊임없이 선명한 빛이 쏟아져 온다. 소리도 없고, 차갑지도 않고, 부드러운 빗방울처럼 우리는 잠시 동안 시간도 장소도 목적도 모든 것을 다 잊고 동굴에 펼쳐진 별이 빛나느 환상적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우스트: …….
파우스트는 반짝임 속에 손을 뻗어 돌 하나를 집어들었다. 찬찬히 검사하고 나서 확신을 담는 말을 한다.
파우스트: 역시…… 이 돌은 가지고 있으면 약소하지만 운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어. 하지만 그것 뿐이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야.
오웬: 하……?
파우스트: 말했듯이 이 돌에 기적 같은 힘은 없다는 것이다.
정색을 하고 돌을 응시하는 오웬 옆에서 미틸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미틸: 소원이 이루어지는 돌이 아닌 게 아쉽네요. 하지만 시노 씨는 대체 뭐였을까요?
오웬: 맞아. 그 레몬파이는 대체 뭐였는데?
파우스트: 단순한 우연이었겠지.
오웬: 에.
화이트: 그때 네로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안 좋았구먼. 아니, 이 경우에는 좋았다고 해야하나?
네로: 진심이냐…….
라스티카: 아주 조금, 이 돌이 행운을 모아준 걸지도 모르지. 이 돌이 가져온 행운이라도, 그냥 우연이었어도, 멋진 체험을 할 수 있었네.
시노: 레몬파이도 맛있었고 말이지.
시노의 말에 미소를 머금고 나는 동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성로의 젬에 얽힌 전갈은…….
파우스트: 사실 행운을 부르는 거긴 하니까 아무 근거도 없는 꾸며낸 이야기란 법도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되다 보면 운이 좋아진다는 효과가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로 점점 과장되어 간거겠지.
화이트: 옛날 이야기엔 흔한 일일세.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꼬리는 길어지는 법이니까.
화이트의 웃음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잠시 사이를 두고 다음에 들린 것은 오웬의 큰 한숨이었다.
오웬: 기대했다가 손해 봤어.
샤일록: 후후, 배신 당하고 말았네요. 대가를 치르지 않고 대가를 받을 수 있다니, 그렇게 쉬운 얘기는 아닐 거라고 의심하기는 했었지만.
에, 그랬었나요? 그랬는데도 따라와주셨군요…….
샤일록: 네. 꿈이나 기대를 부풀리는 건, 미지의 재산을 가진 저희의 특권이니까요.
화이트: 작은 가능성에 걸거나, 희망에 의지하려는 것은 마법사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일세. 나도 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화이트는 동굴의 돌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화이트: 그대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았을텐데…….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네.
(아……)
화이트는 내 소원을 파우스트에게 들은 걸지도 모른다. 그 애달픈 눈빛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화이트: 응?
……미틸이 말했어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 같은 것을 보고 그때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이 경치를 모두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화이트는 미소를 머금고, 작게 내뱉었다.
화이트: 그런가. 그렇게 말해 준다면 우리의 소원은 하나 이루어진 셈이 되겠군.
라스티카: 소원이 이루어질 힘은 없어도, 꿈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었네요. 성로의 젬이 저희에게 준 근사한 시간이에요.
오웬: 뭐가 근사하다는 건지. 결국 상처는 낫지도 않고……. 네로. 책임지고 마법관에 돌아가면 완전 달콤하고 입안이 걸쭉해질 거 같은 거 많이 만들어 줘.
네로: 에, 내가 나쁜거야……?
네로에게 다그치고 있었지만, 오웬은 많이 언짢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도 실망은 했지만 진심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이 세계에도 아름다운 광경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있는거겠지. 마법사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가. 분명……. 파우스트도, 화이트도, 우리에게 예쁜 것을 보여주려고 한거야……)
아름다운 돌을 소중한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했어. 미틸처럼.
미틸: 저.... 성로의 젬은 행운을 불러주는거죠? 원석을 가지고 가서 부적을 만들지 않겠나요? 엄청 예쁘고, 모두 좋아할 것 같아요.
파우스트: 부적인가.
멋지네요……!
화이트: 명안이군. 이거라면 소재로서 더할 나위 없네.
시노: 좋아. 많이 가져가서 잔뜩 만들자고!
미틸: 네! 마법서에 있는 모두의 부적을 만들어요.
네로: 이왕이면 파우스트 선생에게 부적 만드는 법 좀 배워볼까. 본직에게 기초를 배워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젊은 아이들에게는 좋은 훈련이 될거야.
파우스트: 본직이라니, 나는 저주꾼이니까 설마라고 생각하면......
네로: 하하. 뭐, 세세한 것은 넘어가자고.
라스티카: 모두 함께 부적을 만드는 거니? 그거 재밌을 것 같네.
샤일록: 다음 수업 내용은 정해졌군요.
화이트: 오웬 쨩도 수업 들을거지?
오웬: 왜 들을거라고 생각하는건데?
시노: 휴식으로 레몬파이를 먹을지도 몰라.
오웬: ……기분이 내키면.
10화
마법사들은 동굴로 흩어져 성로의 젬 원석을 부지런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파우스트는 모두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동굴을 둘러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말을 거는 것보다 파우스트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파우스트: ……현자인가.
이쪽을 향한 그의 시선은 내게서 빗나갔고, 빛으로 가득 찬 동굴을 다시 쳐다본다.
파우스트: 먼 옛날에, 여기 온 적이 있었어.
……혼자서요?
파우스트: ……처음에는. 반쯤 망설인 형태에 가까웠지만, 두 번째에 왔을 때는 친구와 함께. 그 녀석에게도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싶어서……. 저 아이와 똑같았군.
파우스트는 곁눈질로 미틸을 쳐다보았다.
파우스트: 무모한 놈이었으니까, 괜히 머리를 들이밀다가 멋대로 다치기만 했지. 그래서 이 돌로 부적을 만들어서 넘겨주려고 했었어.
얼굴보다 높은 위치에서 빛나는 돌을 올려다보며, 파우스트는 그것을 붙잡았다.
파우스트: ……그런 거, 벌써 잊을 뻔했는데. 네가 내 방에 찾아온 날, 그 꿈을 꾸지 않았다면 이 곳이 생각나는 일도 영원히 없었을 거야.
파우스트의 손 안에서 작은 돌이 빛나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면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별빛처럼, 그 빛은 그에게 사랑스러운 발자국이었을까. 아니면 잊어버리고 싶은 흉터였을까.
혹시 쓸데없는 짓을 해버린걸까요……?
파우스트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파우스트: 너의 부적은 내가 만들지. 이번에야말로 무사히 지켜낼 수 있도록. 축복을 담아서 어떤 재난에서도, 너의 육체와 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성로의 젬의 원석을 양손에 든 우리가 마법서로 돌아온 것은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안뜰에 돌들을 수북이 쌓아놓는다. 모두들 만족스러운 듯 그 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로: 장관이네.
샤일록: 조금 욕심을 부려버린걸까요.
이 돌에 소원을 들어줄 만한 힘은 없다고 파우스트는 말했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있으면……)
화이트: 이만큼이나 있으면, 한 가지 정도는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구먼.
마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화이트는 그렇게 말했다. 이쪽을 올려다보며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화이트: 현자여. 만약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대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그 마음은 역시 정해져 있는겐가?
……하나, 원한다면.
나는 대답할 바를 몰라 생각에 잠겼다.
화이트: ……음? 안 돼, 슬슬 밤이 될 것 같구먼. 스노우에게 가야 하네!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화이트는 마법관 쪽으로 갔다.
리케: 현자님!
클로에: 모두, 어서 와!
우리가 돌아온 걸 눈치챈 마법사들이 안뜰로 나와주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성로의 젬을 둘러싸고 수다의 꽃이 핀다.
스노우: 화이트여, 밤이 오기 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네.
화이트: 정말이지, 하마터면 하늘을 날다가 그림 속으로 들어갈 뻔했네.
스노우: 그건 그렇고, 여행담도 기대해도 되겠지?
화이트: 물론. 잔뜩 들려주겠네. 스노우 쪽은 어땠나?
스노우: 그게 그 뒤에 또 사건이 일어나서 말이지.
화이트: 호오, 그거 얘기 듣는 것이 기대되는군.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볼까.
히스클리프: ……시노, 어서 와.
시노: 히스.
히스클리프: 저기, 그…….
시노: 이것 좀 봐.
히스클리프: 에? 와……. 대단해. 빛나고 있어.
시노: 내가 찾은 것 중에서 제일 큰 돌이야. 히스에게 줄게. 그리고 저번에는 미안했어. 말이 심했다.
히스클리프: ……응, 나도 미안해. 돌, 고마워. 엄청 예쁘네. 어디서 발견했어?
시노: 흐흥, 듣고 싶어? 아까 파우스트들이랑…….
오웬: 저기, 네로. 기억력 좋아? 잊어버린다면 기억나게 해줄까?
네로: 안 잊어버렸다니까. 달콤한거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잖아.
오웬: 전혀 틀려. 엄청 달콤하고 입안이 걸쭉하게 될 것 같은 거.
네로: 똑같잖아……?
오웬: 됐으니까 빨리. 돌 대신에 내 소원을 들어줘.
클로에: 뭐야 이거, 대단해……! 엄청 빛나고 있어……!
라스티카: 우리들의 선물이야.
샤일록: 행운을 부르는 돌이래요.
클로에: 그런가. 확실히 이렇게 예쁜 돌,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니까. 나, 지금 행복해졌어!
라스티카 / 샤일록: …….
라스티카: 응. 나도 지금, 행복해졌어.
샤일록: 네, 저도요.
클로에: 그래? 다행이다! 나중에 무르한테도 보여주자.
리케: 와아……! 너무 아름다워요. 떨어진 별이 빛나는 것 같아요.
미틸: 에헤헤, 다행이다. 저, 어떻게 해서라도 이 돌이 빛나는 걸 리케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리케: ……혹시, 저에게 제일 먼저 보여준건가요?
미틸: 네. 제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걸, 리케도 봤으면 해서.
리케: 미틸…….. 저도 예쁜 걸 찾는다면 미틸에게 제일 먼저 보여줄게요!
미틸: 네!
마법사들이 서로 웃기도 하고, 서로 다가가고, 안뜰에는 늘 보는 풍경이 가득하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풍경도 있었다.
(……아)
안뜰 구석에서 파우스트가 피가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게 보인다.
파우스트: ……전에는, 고마웠어.
피가로: 응? 무슨 일?
파우스트: 미틸이 전해준 매개체. 처음에는 네가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아 분했는데……. 이 건에 대해서는 감사해야할 일이었어. 고마워.
피가로: 성실하네. 나는 너의 그런 점을 좋아하지만. 그래서, 오늘 밤은 나와 술이 마시고 싶어졌어?
파우스트: 왜 자꾸 놀리는거야. 이제 됐어.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 없던 일로 해.
피가로: 에에? 농담이야, 파우스트. 자, 제대로 얘기 들어줄테니까.
빛나는 돌에 힘이 없다고 하더라도, 소원이 이루어질 날은 언젠가 올지도 몰라.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주머니 속에 넣은 성로의 젬을 움켜쥔다.
(……만약,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별에, 밤하늘에, 몇 번이고 생각하여 답은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건 딱 하나.
상처투성이의 세상을 사는 그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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