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카인: 도적?
오즈: 살아있는 놈의 짓이란 말인가.
네로: 아아. 으슥한 곳에 여러 명의 발자국을 지운 흔적이 있었어. 나무 밑둥에도 밟힌 것 같은 자국이 있었고.
카인: 과연……. 잘도 알아챘구나.
네로: 약삭빠르게 숨기려고 했던 흔적은 있었지만, 완벽하게는 숨기지 못했네. 그러니까 그것이 도적의 짓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지.
아서: 숲에 도적의 모습은 없었나?
시노: 우리가 갔을 때는 기척도 인기척도 없었다.
네로: 대부분은 장물을 팔러 다니거나 정적의 숲에는 밤에만 오잖아. 얘기를 들어보니 포학의 기사는 밤에만 나타나는 것 같고.
카인: 네로. 다음에 놈들이 움직인다면 언제야.
네로: 빠르면 오늘 밤이겠네. 근데…….
네로는 고민하듯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댄다.
네로: 지금까지 피해가 계속 나오고 있어. 웬만한 도적이라면 오래 전에 정체가 드러나야 했을텐데. 그런데도 지금까지 안 들켰다는 것은 도적들 중에 증거 인멸을 잘하는 마법사가 있는 걸지도 몰라.
(도적 중에 마법사가……)
네로의 말에 긴장이 풀린다.
리케: 그렇다고 해도, 저희가 꼭 잡고 말겠습니다.
시노: 리케의 말대로다. 도적이든 마법사든 전원 토벌해 주겠어.
파우스트: 토벌은 하지 마. 우선은 어떻게 도적을 잡느냐다. 섣불리 여럿이 숲을 돌아다니면 눈치채고 도망갈 수도 있어.
카인: 마법으로 기척을 숨기고, 숲속에 숨어서 매복하는 건 어때.
아서: 아니. 도적 중에 마법사가 있다면 눈치채일 수도 있어.
시노: 그럼 간단하네. 도적을 유인하면 돼. 내가…….
리케: 미끼 역은 제가 하게 해주세요!
리케가 늠름한 얼굴로 나섰다.
시노: 네가? 그렇게 약하면서?
리케: 야, 약하지 않아요! 오즈의 훈련으로 쓸 수 있는 마법도 많아졌으니까요.
시노: 뭐, 약한 놈 쪽이 미끼에 적합하긴 하지만. 상대방도 방심할 수 있고.
히스클리프: 시노! 더 이상 리케에게 무례한 말 하지 마.
시노: 사실이잖아. 그렇지, 오즈.
오즈: ……적은 너의 목숨을 노리러 올 것이다. 그래도 그 역할을 맡을 것인가.
리케: 네. 저도 현자님의 마법사니까요. 다소의 위험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카인: …….
(약한 쪽이 미끼에 적합하다……. 그렇다면……)
저기! 저도 리케와 함께 가게 해주시지 않겠나요?
리케: 현자님…….
저는 평범한 인간이라 도적들의 표적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조금이라도 빨리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저도 뭔가 힘이 되고 싶어요. 부탁드립니다……!
당황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제일 먼저 허락해 준 것은 카인이었다.
카인: 나는 맡기자고 생각해. 두 사람의 말도 각오도 믿음직스러워. 필시 작전도 이루어 줄 거야.
리케: 물론이에요! 현자님과 함께 도적들을 멋지게 유인해 보이겠습니다.
파우스트: ……알았어. 하지만 둘 다 무리는 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우리를 불러라.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즈: '복스노크'
우왓……!?
그러자 나와 리케의 옷이 순간적으로 강한 빛을 발하며 감싸지는 듯한 은은한 포근함을 띠었다.
리케: 오즈, 무슨 마법을 걸어준 건가요?
오즈: 클로에가 옷에 건 수호마법의 강화다. 결계와 마찬가지로 밤에도 효과가 지속될 수 있어.
그런 것도 가능하군요……!
리케: 오즈, 고마워요. 하지만 오즈도 조금만 있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오즈: …….
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리케. 오즈 님은 내가 지킬테니까.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제 검을 들고 있어 주세요.
아서가 공중에 손을 대자 단검이 나타난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걸 오즈에게 건넸다.
시노: 어이, 당신. 검 쓸 줄 아나?
오즈: 다소 물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정도다. 아직 완전히 다루지는 못해.
파우스트: 너의 입에서 물리 공격이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신선하군…….
네로: 하지만 최강의 마법사가 검을 들면 심상치 않은 박력이 있네…….
시노: 흥. 절대로 내 낫이 더 멋있잖아.
히스클리프: 너는 어떻게 오즈 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한거야…….
그리하여 우리는 도적 유인을 위해 몇 가지 작전을 세우고 밤이 오기를 마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리케: 현자님, 길이 울퉁불퉁하니까 조심해 주세요.
고마워요, 리케.
밤이 깊어지고 포학의 기사가 나온다는 시간. 나와 리케는 도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울창한 정적의 숲 속을 조용히 걷고 있었다.
(리케의 랜턴이 없었다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지도 몰라. 조금 무섭네……)
리케: 현자님, 놓치지 않도록 제가 손을 잡아드릴게요.
꼬옥 내 손을 잡는 그 힘은 평소보다 약간 더 센 것 같았다. 리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런 리케의 버팀목이 되고 싶어서 손을 되집었다.
같이 힘내요, 리케…….
리케: ……네.
리케: 저기, 현자님. 저는 어떻게든 이 이변을 해결하고 싶어요.
그건 카인을 위해서인가요?
리케: 에…… 어떻게 아셨나요?
이 의뢰를 받고 난 이후로 리케가 카인을 자주 쳐다본 것 같아서. 그리고 저도 같은 마음이니까요.
리케: 로오란이 모함 당해 카인이 속상해하는 게 싫었어요. 그리고 기사를 욕할 때마다 뭔가 카인이 욕을 먹는 것 같은이 기분이 들어서.
리케는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숙이며 시선을 돌렸다.
7화
리케: 교단에 가르침에 따르면 폭력을 생업으로 삼는 자는 하는 일도 모두 사악하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래도 마법서에 와서, 기사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모두를 보호하려고 하는 카인의 모습을 보고…… 기사가 제가 생각헀던 것만큼 나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리케: 카인은 가끔 제 간식도 먹어버리고, 방도 그다지 깨끗하지 않고, 덜렁이지만…….
(거긴 꽤 말하는구나……)
리케: 저도 카인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고 사람들에게 의지받는 자신이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말에는 부러움과 동경이 들어 있었고, 눈동자에는 의지의 강함이 깃들어 있었다.
리케라면 분명 될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도 저희를 많이 받쳐주고, 지켜주고 있잖아요.
리케: 네! 저는 말이나 기도나, 제 나름의 방법으로 여러분들을 돕고 이끌어갔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이 마주보고 웃었을 때——
……!
리케: 지금 건……!
수풀에서 들린 수상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에…….
눈을 응시하면, 낡은 갑위를 입은 덩치 큰 그림자가 위압감을 발하며 가만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캄캄한 숲 속에 떠오르는 확실하게 이상한 존재. 그것은 무서운 망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오오, 오오오…….
(이, 이게 포학의 기사……!)
리케: ……윽, 현자님……!
잡고 있던 손에 리케가 힘을 꽉 준다. 눈치채면 서로의 손바닥에 흥건히 땀이 배어 있었다.
리케 / 현자: …….
팽팽한 상황 속에서 잠깐 리케와 아이컨택을 한다. 도적을 발견했을 때 동료에게 알리는 신호를 우리는 이미 모두와 정해 놓았다.
???: 나의 이름은, 포학의 기사 로오란…….
포학의 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검을 던졌다. 손에 들고 있던 날카로운 검을 이쪽으로 돌렸을 때———
리케 / 현자: 우와아아아앗!
나와 리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힘껏 신호를 보냈다.
카인: '그라디아스 프로세라!'
카인의 주문이 들리는 순간 우리의 방패가 되듯이 거센 모래 폭풍이 일었다.
???: 뭐야……!? 뭐가 일어나고 있지!
카인: 아키, 리케! 괜찮아?!
리케 / 현자: 네!
시노: 나왔구나 도적놈들. 당장 모두 토벌해 주겠어!
도적: 우, 우와아……!
시노의 낫을 억지로 피하려 했던 탓인지 포학의 기사가 자세를 무너뜨릴 것 처럼 된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히스클리프가 주문을 외웠다.
히스클리프: '레프스바이브러프 스노스!'
그러자 마법을 건 나뭇가지가 움직이기 시작해 그의 투구를 빼앗는 것과 동시에 몸을 묶는다.
도적: 젠장……! 이거 놔!
아니나 다를까, 갑옷을 입고 있던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네로의 추리가 맞았던거겠지.
(역시 로오란의 망령의 짓이 아니었어……)
시노: 흥. 나쁜 사람처럼 굴고 있네. 이놈이 도적이란게 틀림없어.
네로: 시노 군, 나쁜 사람인 건 동의하지만 편견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도적: 입만 살아서는! 얕보기나 하고……. 너희들, 적이다! 전부 죽여버려!
도적: 우오오오오오오!
그 목소리에 호응하듯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덤불에서 수십 명의 도적들이 나타난다.
이, 이렇게나 숨어있었다니…….
리케: 현자님, 저에게서 떠나지 말아주세요!
몸집이 큰 도적이 아서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적: 너희들 마법사인가? 재밌네. 이 은발은 내가 상대해주지.
아서: 너도 같은 마법사 같군……. 하지만 약한 사람들을 상처 입히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야. 과보를 받도록 하지.
도적: 하, 과보라고? 그런 거 알까보냐!
도적이 주문 같은 말을 외우자 아서 근처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도적: 크아아아아악!
아서의 천둥과 비슷한 공격 마법은 아주 쉽게 상대편 마법사에 적중했다. 조금 전까지의 위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제어력을 잃은 바위는 아무도 없는 곳에 큰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도적: 젠장, 저 녀석, 마법사 주제에 간단히 당하기나 하고…….
오즈: '복스노……'
도적: !
오즈: …….
도적: 크아악!
히스클리프: 거, 거침없이 칼자루로 때리고 있어……. 아프겠다…….
시노: 별난 검 사용법이군.
이후에도 현자의 마법사들은 압도적인 위세로 도적들을 쓰러뜨렸다. 도적들이 모두 쓰러지고, 승패가 결정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노: 이걸로 전원인가.
히스클리프: 응. 적지 않은 인원이야……. 마법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잘도 지금까지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네.
밧줄로 칭칭 감겨져 욕설을 퍼붓는 도적들 앞에서 아서가 매서운 시선을 던진다.
아서: 너희들이 이 숲에서 했던 일에 대해 자세하게 듣도록 하지.
도적: …….
시노: 싫으면 억지로 말 안해도 돼. 강제로 말하게 하면 되니까.
시노는 어이없게 웃더니 그들의 눈앞에서 아슬아슬하게 큰 낫을 내리쳤다.
도적: 히익……!?
8화
네로: 어이, 이 녀석은 진심이야. 아직 할 말이 있을 때 솔직해지는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마법사가 동료로 있었다고 해도 알지? 저행해봤자 소용없어. 이쪽은 마법으로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도 되는 부분을 일부러 물어보고 있는 거야.
말투는 부드러우면서도 네로의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색이 느껴진다. 이쪽의 진심이 충분히 전해졌을 터. 도적들은 마지못하다는 말투로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도적: ……'거대한 재앙' 때문에 원래 있던 아지트가 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에 거점을 이 숲으로 바꿨어. 처음에는 그저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 녀석들, 웃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해주니까……!
도적이 말하길, 갑옷을 입은 도적들에게 습격당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기사 로오란의 망령으로 여기고 포학의 기사라 부르게 되었다. 그것이 도적으로서도 편리하고, 그대로 로오란을 사칭하며 금품을 빼앗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즐겼다고 한다.
히스클리프: 너무해…….
파우스트: 상상 이상의 외도군.
도적: 이걸로 만족했냐. 그럼 이제 집에 가야지.
시노: 하? 뭐라는거…….
도적: 너희들, 지금이야! 금발의 꼬마랑 옆에 있는 놈을 인질로 잡아!
그 말과 동시에, 덤불의 그늘에서 두 명의 도적이 뛰어나와 곧장 나를 향해 달려온다.
에……!?
리케: 혀, 현자님! 제 뒤로……! '산레티아……'
그러나 그 순간, 빛의 막 같은 것이 우리를 에워싸듯 눈앞에 펼쳐졌다.
도적: 뭐야 이건!?
결계처럼 번진 빛에 도적들이 닿는 순간, 탁탁하며 전격적인 소리가 터지면서 그들은 뒤로 날아가 버렸다.
도적: 크악……!?
지금, 뭐가 일어난거죠……?
리케: 아....! 분명 클로에와 오즈의 수호 마법 덕분일 거예요. 그런거죠, 오즈! 감사합니다!
오즈: ……아아.
도적: 젠장……!
그들은 도망치듯 덤불 속으로 달려간다.
시노: 로오란의 무덤 쪽으로 갔어! 쫓아간다!
네로: 잠, 기다리라고……. 이 잡은 놈들은 어떻게 하지? 방치해도 돼?
파우스트: 될 리가 없잖아. 눈을 떼는 것도 위험해. 전부 데리고 와.
네로: 에…… 어떻게?
파우스트: 너, 마법사잖아. 마법을 써라, 귀찮아 하지 말고.
히스클리프: 네로, 나도 도울테니까!
도적: 젠장, 이쪽으로 오지 마!
수풀을 벗어나면 도적들이 검이 있는 무언가에 서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적: 너희들 전부, 이걸로 죽여버리겠어!
시노: 흥. 그런 걸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심지어 둘이서.
아서: 관념해. 너희들에게 승산은 없어.
도적들은 두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강제로 검을 빼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 칼은 큰 바위에 꽃힌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도적: 젠장……! 까불지 말라고!
화풀이하듯이 검에 침을 뱉는다. 그 순간…….
에……!?
갑자기 중력이 늘어난 듯 숲이 삐걱거리더니, 주위에서 단말마 같은 섬뜩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뭐야…….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지다니……!?)
아서: 이건…….
이변을 눈치챈 아서가 나를 감싸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 녹슨 검이 꽃혀 있는 바위에서 거무튀튀한 연기 같은 게 힘차게 퍼지고 도적들은 황급히 칼에서 손을 뗀다.
도적: 히익……!
이윽고 연기가 무덤 전체를 덮자, 안에서 잠깐 은빛 빛이 날카롭게 빛난 것처럼 보였다.
오즈: 검에 대한 이삭은 계기에 불과해. 놈들은 오랫동안 죽은 자의 존엄성을 모독했다. 저것은 지금 강한 분노에 사로잡혀있어. 바로 포학의 기사다.
그건…….
카인: 저게…… 진짜 로오란이라고……?
전원이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검은 연기가 맑아진다. 그러자 거기에는 불길한 기색을 뿜고 있는 갑옷의 기사가 서있었다.
도적: 이, 이쪽으로 오지 마! 괴물 놈!
도적들은 필사적으로 로오란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갑옷의 무게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그는 도적의 바로 앞에 서있었다. 로오란은 짐승 같은 우렁찬 외침을 내질렀고, 주저없이 검을 내리친다. 도적의 목숨이 금방이라도 무너지려고 할 때.
카인: 그만 둬!
카인은 갑옷의 기사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들였다.
로오란: 오오오오, 우오오오……!
도적: 우, 우와아아아악! 죽을거야……! 도, 도와줘!
아서: 이건…….
히스클리프: 검은 그림자가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어……!
오즈: 로오란의 기척에 이끌린 죽은 자의 영혼인가.
아서: 큭…… '파르녹턴 닉스지오!'
주문을 외우자 아서가 손에 쥔 단검이 눈부신 빛을 내뿜는다. 그리고 그는 도적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민첩한 동작으로 망령을 내리쳤다.
로오란: 우오오, 아아아…….
가냘픈 신음을 토해낸 망령은 아서에게 칼부림 당한 부분에서 희미한 빛을 띠고 있다. 그것은 서서히 망령들의 몸을 좀먹고, 이윽고 그것은 조용히 사라져갔다.
리케: '산레티아 에디프!'
검에 빛을 입힌 리케는 아서를 흉내내어 검을 겨눈다. 그의 움직임은 다소 어색했고, 그의 눈동자에는 겁을 먹은 빛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열심히 검을 휘두른다. 그 모습에 카인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9화
네로: 계속 재생하고 있어……. 끝이 없네.
히스클리프: '레프스바이브러프 스노스!'
히스클리프가 마도구를 들고 주문을 외우자 시간이 멈춘듯 망령들이 정지했다.
히스클리프: 시노, 지금이야!
시노: 맡겨둬!
홀가분하게 큰 낫을 무기로 둔 시노는 한꺼번에 수많은 망령들을 없애며 히스클리프와 호흡이 맞는 연계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쓰러뜨려도 망령들은 계속 쏟아져 나온다.
네로: 선생, 이거 어떻게 안 돼? 이러다간 이쪽의 마력이 먼저 떨어질 것 같아.
파우스트: ……로오란이 이 자리에 있는 한 망령들은 계속해서 생겨날거다. 그러니 지금 내가 당장 꺼주겠어. 포학의 기사와 여기 있는 망령 전부를.
카인: 기다려줘!
로오란의 망령과 대치하던 카인은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막듯 외쳤다.
카인: 이 녀석은 분명 자신의 소중한 것이 짓밟혀 화내고 있는 것 뿐이야! 그러니 로오란을 없애는 건 조금만 더 기다려줘!
파우스트: 하지만…….
파우스트가 당황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대신 대답을 한 건, 오즈였다.
오즈: 하는 게 좋다.
오즈: 너의 본실력을 보도록 하지. 중앙의 기사 카인이여.
망령의 신음 소리와 도적들의 비명소리가 겹치는 긴박한 상황에서 결코 크지 않은 오즈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강하게 울린다. 그걸 듣는 순간, 어둠 속에서 카인의 눈이 번쩍하고 빛난 것처럼 보였다.
카인: ……아아!
파우스트: ……하지만, 기다리는 건 정말 조금 뿐이다. 이제 시간의 여유가 없어.
카인: 괜찮아. 금방 끝내고 말겠어.
무겁게 하늘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로오란의 공격은 가차없이 카인을 노린다. 그러나 몸을 민첩하게 움직여 피한 뒤, 카인도 로오란에게 검을 휘두른다. 그 참격은 달빛조차도 찢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움이다.
(대단해……)
끊임없이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들의 주위에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카인: ……로오란……!
카인은 몇 번이고 검을 휘두른다. 로오란의 마음에 강하게 호소하듯 카인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카인: 로오란! 당신은 기사잖아! 본인의 소원을, 긍지를 떠올려내!
로오란: ……!
카인의 말에 반응한건지 잠깐 로오란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 같았다. 카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크게 검을 내리쳤다.
카인: 하아아아아앗!
리케: 검이……!
로오란의 손에서 검이 튕겨져 나간다. 그 검은 달빛을 반사하며 허공에 날라가고, 아서 근처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파우스트: 아서, 검에 정화의 마법을 걸어 무덤으로 돌려보내!
아서: 알았어!
아서가 검을 재빨리 집어들자, 로오란은 고통에 영혼이 갈가리 찢긴 듯한 절규를 지른다. 그것에 호응하듯 대지가 너울거리기 시작했고, 수많은 거적과 망령이 아서를 향해 덤벼들었다.
아서, 위험해……!
아서: 윽……!
그때, 아서 앞으로 뛰어든 그림자가 있었다.
카인: 아서 님! 무사하신가요……!
아서: 고마워, 카인! 살았어!
아서는 카인에게서 등을 돌리고 눈 아래에 있는 묘석을 응시한다. 그리고 검을 꽂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서: 영웅, 기사 로오란이여. 지금 다시 이 땅으로 돌아가라! '파르녹턴 닉스지오!'
달빛 속에서 아서가 다시 주문을 외운다. 그 순간, 검이 대좌가 되어 있었다. 큰 바위에 깊이 박힌 것이 보였다. 순도 높은 금속을 친 듯한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진다.
……!
그리고 순식간에 주위는 새하얀 빛으로 뒤덮여졌고, 너무 눈부셔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병사: 로오란 님!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오란 님이 존재하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병사: 로오란 님은 제 우상이에요! 아들도 당신처럼 훌륭한 기사가 되고 싶대요.
주군: 로오란, 늘 고마워. 네가 옆에 있으니까 안심이 돼. 나는 너 같은 기사를 둘 수 있어서 정말 행운아야.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줘.
주군: 믿고 있을게, 나의 기사 로오란.
눈부신 빛이 천천히 사라지자 조금 전까지의 치열함이 거짓말인듯 정적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로오란의 망령은 사라졌다. 망령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건…….
파우스트: ……생전 로오란의 모습이겠지.
(방금 그것이, 로오란의 본모습……)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눈을 한 키가 큰 청년은 어딘가 카인과 비슷했다.
10화
……카인의 말대로 로오란은 멋있는 기사였네요.
카인: 하하, 그렇지.
아서의 손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온 검은 원래의 녹슨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카인은 그 앞에 서서 검에게 말을 건다.
카인: 아득한 옛날에 이 땅에 살았었던 기사 로오란. 한때라도 동경하는 존재였던 당신과 검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당신은 앞으로도 내가 동경하는 기사야. 부디 고이 잠드소서.
카인의 말에 호응하듯 나무들이 흔들린다. 순간, 한층 더 세찬 바람이 스쳐 지나갔고, 카인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카인: ……지금 건…….
아서: 왜 그래, 카인?
카인: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목소리……?
카인: 자세하게 들린 건 아니지만, 언젠가 나에게 힘을 빌려준다고……. 어쩌면 그 녀석의…… 로오란의 목소리였는지도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지만……)
그래도 분명 카인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동경의 기사 로오란의 목소리가. 카인은 존경심을 전하듯 고개를 숙였다. 순간 검이 세고 날카롭게 반짝였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정이 맺어진 징표 같기도 했다.
즉시 도적을 마을로 연행하여 신병을 마을 관리에게 인도한 뒤....
모두들, 이번에도 수고하셨어요. 슬슬 마법관으로 돌아갈까요.
카인: 아아, 마을 주민들도 웃음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맞다, 리케.
리케: 네, 뭔가…… 우왓!? 카인!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지 마세요!
카인: 아키라한테 들었어. 이번에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많이 애써줬다면서.
리케: 혀, 현자님! 카인에게 알려주셨나요……?
아, 죄송해요……. 혹시 비밀이었나요....?
리케: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아서: 고마워, 리케. 도적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너희들 덕분이야.
리케: 에헤헤…… 현자님과 함께 힘냈어요!
루스타: 어이, 당신들!
카인: 루스타! 너, 달려도 괜찮은거야? 상처도 심하면서…….
루스타: 통증은 진정됐어. 네 동료가 걸어준 마법이 아직도 효과가 있나 봐. 저기, 정말로 고마워. 당신들이 포학의 기사를……. 도적을 물리쳐 준 덕분에 이제야 마음놓고 지낼 수 있어.
카인: 그거 다행이다. 물류도 조금씩 회복될거야. 빨리 마을이 원상태로 돌아갔으면 좋겠네. 하지만 루스타,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리고…….
카인은 한 번 말을 끊고, 루스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카인: 가능하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로오란의 무덤은 잘 간직해주지 않을래. 도적들에게 오명이 씌여지고, 이번 건은 그 녀석도 피해자 같으니까.
루스타: 아아, 알고 있어. 로오란은 앞으로도 전설의 기사로서 모셔갈 거야. 하지만…… 그것은 로오란이 결백했기 때문이 아니야. 우리들은 이제부터 이어갈 거야. 전설의 기사 로오란의 이야기 못지 않게, 현자의 마법사도 멋있다고. 고마워, 현자의 마법사님!
루스타 씨의 말에 이어 배웅 나온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그들의 감사에 카인은 눈을 깜빡거리고…….
카인: 천만의 말씀.
자신의 검에 손을 얹히고, 기사다운 늠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굉장히 의지할 수 잇는, 동료들의 멋있고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저기, 카인.
카인: 응, 왜 그래.
마법관에 돌아가면 로오란의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카인이 동경하는 전설의 기사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 싶어요.
리케: 확실히. 저번에는 얘기하다 말았잖아요.
카인: 아하하, 물론 괜찮지! 하지만 밤새도록 말하게 될 수도 있어.
시노: 상관없어. 그리고 난 그게 더 듣고 싶어. 카인이 어렸을 때 나무토막을 휘두르며 기사 놀이를 했던 이야기.
아서: 기사 놀이……? 그건 나도 자세히 듣고 싶네.
카인: 아니, 그건…… 아서 님께 들려드리는 건 역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참고로 나는 어렸을 때 자주 오즈 님 놀이를 했었어. 그립네요, 오즈님.
오즈: …….
히스클리프: 오즈 님 놀이…… 어떤 놀이일까…….
카인: 알았어, 알았다니까! 가서 잔뜩 얘기하자. 대신 너희 어렸을 때의 부끄러운 이야기도 들려줘. 아키라도 말이지.
카인은 검연쩍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사인 그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친구인 카인 나이트레이로서 웃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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