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샤일록에게 빌렸던 잔, 돌려줘야하는데. 이 시간이면 바에 있으려나?
바의 분위기는 긴장되네……. 안녕하세요, 샤일록.
샤일록: 안녕하세요, 현자님.
잔을 돌려주려……. 어라? 파우스트도 있었군요.
파우스트: 이제 돌아가는 길이야. ……그럼.
샤일록: 네, 다시 언제든 들러주세요.
파우스트도 마시러 오는군요.
샤일록: 사람이 별로 없을 때 오시죠. 네로나 오즈도 혼자 마시러 와요.
계속 아무 말도 안하고요?
샤일록: 대화도 즐기고 가십니다. 파우스트나 네로는 상담을 할 때가 많네요.
▶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샤일록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샤일록: 현자님의 마법사로서의 동지라고 해도, 그들은 손님들이니까요. 손님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죠. 죄송해요.
샤일록: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현자님도 부담없이 수다를 즐기고 가주세요. 간교한 것이든, 사랑 이야기든, 과거의 잘못이든.
▶ 또 누가 오나요?
샤일록: 모두들 자주 오시죠. 브래들리나 오웬도 오고, 카인도 자주 오네요. 스노우님이나 화이트님... 루틸이랑 레녹스도 와주십니다. 얼마 전에는 클로에가 어린 마법사들을 데리고 견학 겸으로 찾아왔었어요. 시노도 히스클리프도 떨고 있었는데, 귀여웠었죠.
그러고 보니, 샤일록은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는 일이 많네요. 카인이나 클로에도 자주 샤일록에게 상담을 받고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파우스트들도 그렇지만……. 왠지 그 기분 알 것 같기도 하네요.
2화
샤일록: 그런가요?
샤일록은 미소를 지었다. 요염하고 차분한 눈빛은 달밤의 물결의 모래처럼 부드럽고 적당하며, 품위있게 심장을 간지럽힌다. 격렬한 것이나 선열한 것은 매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녹초가 될 때까지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샤일록은 선명한 매력을 내포하면서 촉촉하게 달라붙어주는, 특별한 것을 털어놓기 쉬운 기색이 보였다.
샤일록: 잔을 반납하러 와주셨군요. 모처럼이니 한 잔 어떠신가요?
강요하는 것 같지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나 말투도 좋아한다. 나는 웃으면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술이 아닌 것도 있나요?
샤일록: 만들어 드릴게요.
바의 주인이니까 술을 좋아할 텐데.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맡아 주는 몸짓도 좋아한다. 그가 상냥하고 공손하고 품위있을수록, 나도 상냥하고 공손하고 품위있고 싶어지면서 자세가 바르게 된다. 그런 점을, 마법서의 모두도 좋아하는 것이겠지.
샤일록: 여기 있습니다.
와아, 예쁜 색. 과일의 좋은 향기가 나서 남쪽 섬의 밤하늘 같아. 어떤 이름의 칵테일인가요?
샤일록: 즉석이라 이름은 없지만, 만들자면 '잔을 돌려주러 온 손님들을 붙잡는 한 잔.'
맛있다! 또 마시러 오고 싶네요. '잔을 돌려주러 온 손님들을 붙잡는 한 잔.'
우리들은 농담을 하며 웃었다.
3화
샤일록: 이쪽 세계에서의 생활은 익숙해 지셨나요?
네. 모두들 덕분에 많이 안정되어서 지금 현자의 서에 마법사에 대한 것을 쓰고 있어요. 여기 있는 모두에 대한 것도.
샤일록: 재밌을 것 같네요.
제가 갑자기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도 현자의 서에 자료가 남아 있으면 새로운 현자님도 모두도 곤란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괜찮다면 샤일록도 여러 가지 들려주시겠나요?
샤일록: 상관 없어요. 현자의 서에 적을 수 있을 만한 내용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듣고 싶어요!
샤일록: 그렇다면 현자님께서 다 마시면 오늘 밤은 문을 닫을까요. 제 방에서 단둘이서 얘기를 나누죠.
예쁜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놀리듯 샤일록이 미소 짓는다. 샤일록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쑥스러워진다. 그도 일부러 하는 것 같아. 샤일록이 만들어준 무알콜 칵테일을 들이키는 동안, 바는 조용했다. 기묘한 시간 속에서 나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이상한 고양을 느꼈다. 밤의 축제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낯설었던 내가, 익숙하고 윤기있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잘 마셨습니다.
샤일록: 다행이네요. 자, 가볼까요.
샤일록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바가 어두워지면서 클로즈 간판이 내려진다.
나와 샤일록은 함께 그의 방으로 향했다.
4화
샤일록의 방으로 가던 도중, 무르와 만났다.
무르: 현자님! 샤일록! 어디 가?
샤일록: 제 방에서 현자님과 얘기 하려고요.
무르: 좋다! 내 이야기? 달의 이야기?
샤일록: 당신 이야기도 달의 이야기도 하겠죠.
무르: 나도 가도 돼?
샤일록: 안돼요.
고양이처럼 무르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샤일록은 웃었다.
샤일록: 오늘 밤은 현자님과 보내겠습니다. 질투해주세요.
샤일록은 걷기 시작했고, 무르도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등뒤를 돌아보면서 나는 묻는다.
괜찮은건가요? 저는 무르와 같이 해도 상관 없는데.
샤일록: 이런, 저를 독점하고 싶다고는 말씀 안 해주시는 건가요?
농담인 척 하는 그에게 또 부끄러워졌다.
도……. 독점하고 싶습니다…….
샤일록: 후후, 솔직한 사람이네요.
샤일록: 도착했습니다. 자, 들어오세요.
여기가 샤일록의 방…….
▶ 어른스러운 방이네요.
샤일록: 이런, 어른스러운 방이란?
에? 그, 이렇게……. 어른들이 어른스러운 일을, 하기 쉬울 것 같다고나 할까…….
샤일록: 어른스러운 일…….
…….
수, 술을 마신다던가!
샤일록: 아아, 과연.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샤일록은 쿡쿡 웃기 시작했다.
샤일록: 그렇다면 매일 하고 있겠네요.
(우우……. 웃고 있어……. 아마 놀리고 있는 거겠지…….)
▶ 큰 캐비닛이네요.
샤일록: 묵직하고 윤기도 좋아서 분위기가 좋아요. 블랑셰산 목재는 고급이니까요.
블랑셰라고 하면…….
샤일록: 네. 히스클리프의 연줄로 싸게 구했습니다.
▶ 멋진 테이블이네요.
샤일록: 감사합니다. 가게는 카운터 또는 하이 테이블이어서 로우 테이블을 원했었거든요.
샤일록: 아아……. 벌써 흠집이 났어. 무르에게 물린 것 같네요.
(왜 테이블을…….)
5화
샤일록: 저는 가볍게 마실 생각입니다만, 현자님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벌써 배부르신가요?
아, 지금은 괜찮아요.
샤일록: 알겠습니다.
샤일록은 잔에 와인을 따라 의자에 걸터앉더니 파이프를 물었다. 내쉬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감돈다. 샤일록의 파이프에서는 장미와 사과와 계피 향이 났다.
항상 생각했었지만, 그거 담뱃잎이 아니네요. 좋은 냄새가 나요.
샤일록: 옛날에는 담배를 피웠었지만 수백년 전에 혐연 붐이 일어나서……. 그때 바꿨습니다.
(혐연 붐……. 역시 일어나는군.)
샤일록: 유행하던 시절에는 다른 마법사들도 파이프를 많이 사용 했었어요. 마녀 치렛타도 좋아했었죠.
치렛타……. 남쪽 형제의 어머니를 알고 있나요?
샤일록: 저는 오랫동안 문을 열었었거든요. 피가로님이나 스노우님, 화이트님도 오셨습니다. 레녹스는 딱 한 번.
레녹스가? 의외예요.
샤일록: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겠죠. 누구를 찾고 있었는지는 말 안하겠지만.
샤일록은 그렇게 말하며 목구멍으로 웃었다.
샤일록: 그 분도 레녹스에게는 약하시네요. 성품이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을 소비해서 자신을 찾아 준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거겠죠.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의 경우는……. 아, 순서대로 얘기해야겠네요. 뭐 부터 얘기할까요, 현자님.
아.... 그러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샤일록: 샤일록 베넷. 서쪽 나라 태생입니다. 신주 환락가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현자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오래 살았습니다. 오즈님들 만큼은 아니지만, 무르 또래에 오웬보다 위네요.
6화
계속 술집을 운영하셨던 건가요?
샤일록: 아니요, 원래는 귀족 태생이었습니다. 서쪽 나라의 인구와 도시의 수가 지금의 10분의 1 정도였을 때의 얘기지만요. 사람 수가 적을 때는 마법사가 존경 받았었거든요. 부족의 우두머리일 때도 많았지요. 제가 태어났을 때는, 그런 시대와 인간의 수가 늘고 마법사가 기피되는 시대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살기 힘든 일은 없었나요?
샤일록: 그렇네요. 처음에는 별 어려움 없이 베넷의 가문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베넷 가문이 책모나 권력 다툼에 져서 지방 귀족들로부터 몰락할 때까지. 정든 고향에서 살고 있더군요. 전의 현자님께는 확실히……. 다다미방 쓰레기통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네요. 다다미방, 알고 계시나요?
알고 있지만, 제 다다미 방의 이미지와 샤일록의 이미지는 많이 다르려나……?
샤일록: 이런, 그렇군요.
샤일록은 피식 웃으며, 그리운 듯 눈을 흘겼다.
샤일록: 저는 베넷의 땅을 좋아했었어요. 언덕 위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검푸른 해안이 빛나고 있었죠. 그건 엄청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유흥가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쾌활하고 번화한 밝은 거리도 있었어요. 베넷의 가문이 세월에 따라 흩어졌는데도 저만 땅 한구석에 남아 술집을 시작했죠. 한 700년 정도 됐으려나요.
700년……. 700년이 된 술집이라니 대단하네요.
샤일록: 현자님의 나라에도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목수나 여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퀴즈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
7화
샤일록: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저를 동생으로 아는 손님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점점 마법사 손님들만 오기 시작했어요. 인간과 동석하면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도 요즘은 마법사 가게로 만들고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다 시대에 뒤쳐져서 갈 곳이 없겠죠. 변하지 않는 장소를 찾게 되는 겁니다.
차분한 말투에 감회가 새로워졌다. 마법사는 오래 산다고 들었는데, 시대가 변하는 것은 어떻게 보일까.
포도밭이 있는 언덕과 깨끗한 해변이 있는 유흥가……. 샤일록의 가게는 예쁜 곳에 있네요.
▶ 저도 가보고 싶어요.
샤일록은 쓸쓸하게 웃었다.
샤일록: 지금은 아마 많이 바뀌었습니다. 호안을 위해 해안은 정비되고, 파도 소리도 바뀌어 바닷새 소리도 안 나게 되어버렸어요. 아주 유감이네요.
그런가요…….
▶ 700년동안 유지 될거에요.
샤일록: 감사합니다. 시대도, 경치도 바뀌어 저의 가게도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변화 속에도 변함없는 것이 있끼에 토지의 사랑을 받아온거겠지요.
(변화 속에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경치나 가게의 분위기도 있지만 샤일록을 말하는 게 아니려나. 샤일록의 고급스러움과 아늑함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얘기를 바꾸겠지만……. 무르와는 오랜 친구라고 들었는데 어디서 알게 된건가요? 샤일록의 가게에서?
샤일록: 네, 맞습니다. 무르가 처음 제 가게에 왔을 때, 저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어요. 무르는 유명인이었으니까요. 그는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고, 약간 거드름 피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샤일록은 불쑥 웃으며, 장난스럽게 입에 검지를 치켜세웠다.
샤일록: 여기에서만의 이야기지만, 술집 주인은 거드름을 피우는 손님을 싫어하는 법입니다. 저도 미소를 지었지만 경계하고 있었죠. 이 훌륭한 학자 선생님은 자신의 똑똑함을 다른 손님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까다로운 연설을 하지 않을까 하고.
8화
샤일록: 하지만 무르는 달랐어요. 그는 진짜 천재여서 주목이나 칭찬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가 처음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 하고 있어요.
샤일록: '너의 고독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어. 없다고는 말 하게 하지 않아. 이 언덕에 붙어서 시대의 흐름을 방관한 너는.... 고독에 대해 모종의 페티즘이 있을 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샤일록은 어떻게 했나요?
샤일록: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샤일록은 눈꺼풀을 감고 파이프를 들이마시더니 연기를 내뿜었다.
샤일록: 무르와 둘이서 얘기하기 위해.
그래서……?
샤일록은 입을 열다가, 문득 생각난 듯 웃음을 짓는다.
샤일록: 아침까지 열띤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중간에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서 마지막에는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오지 말라고 했고, 그는 다시 오라고 할 때까지 올거라고.
샤일록: 진 것은 제 쪽이었습니다. 그리고 뭐, 오래 사귄 친구죠. 친구라고 인정하는 건 조금 뭣하지만.
샤일록의 쓴 웃음에는 특별한 친구에 대한 친밀감이 배어 있었다. 샤일록도, 무르도 개성적이다. 그런 두 사람이 친구 사이인 게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
▶ 무르의 어떤 점이 좋나요?
샤일록: 자극적이고, 독창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점이네요. 그는 지식인이었으니까, 그와의 대화는 전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방심할 수 없는 여행이었죠. 어디서 창이 내려오고 불이 붙을지 몰라. 그는 심술궃고, 그도 자극을 좋아하니까.
샤일록: 하지만 모르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와 고양을 안겨줘.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 무르의 어떤 점이 싫나요?
샤일록: 잔뜩 있습니다. 거만하고, 호기심 앞에 있으면 냉혹하고, 탐욕스럽고, 귀찮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그런 그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요.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렇네요…….
샤일록은 문득 체념한 듯한 얼굴로 웃었다.
샤일록: 저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 부분입니다.
9화
과연……. 그럼 무르의 영혼이 부서져 지금의 무르가 되어버렸을 때는 충격이었겠네요.
샤일록: 예상 외의 사태이긴 했지만, 언젠가 무르가 호되게 당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만으로 윤리관이 없는 사람이니까. 원래대로 돌아갈까봐 걱정 반. 자, 봐라 하는 마음이 반이었죠.
원래의 무르로 되돌려 놓을 생각이 아니었나요?
샤일록: 그럴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 기른 무르도 귀엽고요. 되돌리면 저 무르가 되려나 했더니…….
샤일록은 지긋지긋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어깨를 으쓱하면서 한숨을 쉰다.
샤일록: 그래도 역시 그리워지겠죠. 최종적으로는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합니다만, 서두르지 않고 임해 나갈 생각입니다.
확실히, 지금의 무르를 볼 수 없게 되는 건 외로울 수도 있겠네요. 원래대로 돌아간 무르는 지금처럼 천진난만하게 굴지 않을 것 같나요?
샤일록: 아하하. ……상상만 해도 무서워요.
샤일록이 낯설게 정색을 해서 나는 기가 죽었다. 역시, 꽤 특별한 사람인가 봐. 툭, 하고 파이프 속의 잎을 버리고 샤일록이 파이프를 집어 넣으려고 한다. 그 전에 나는 말을 걸었다.
그거, 샤일록의 마도구죠. 마도구는 모두의 개성이 묻어나서 재밌어요.
샤일록: 네. 이건 엄청 진귀한 물건이었었죠. 바자르에서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구했는데, 팔던 분과는 더 이상 만나지 못했습니다.
파이프를 바라보며 샤일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샤일록: 사람도, 사물도, 만남은 운명이죠. 그때 그걸 못 찾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그런 생각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그냥 좋아하는 것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멋있네요.
샤일록: 어느 날 우연히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나 발밑에 굴러온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생각하는 것이 저의 특기입니다.
10화
샤일록: 꼭 가질 거라고 맹세하고, 아득히 먼 산꼭대기까지 향해 가는 것은 멋진 일이겠지만 저는 못하겠네요.
어째서인가요?
샤일록: 집착이나 집념을 낳을 것 같아서. 집착이나 집념이 생기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질 거에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싶은데 지배하고 싶어지면 제 손에 맞지 않죠. 제 속셈을 다루지 못하고 주체할 수 없게 되어버려.
그렇게 말하자 샤일록은 난처한 듯 미소를 지었다. 어른스러운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앳되고 애처러움이 엿보인다.
샤일록: 가끔 자문자답 하게 되어버려요. 지금의 무르를 돌보는 건 그런 걸 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지 않나. 내 생각대로 무르를 키우는 그런 멋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희미하게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샤일록의 파이프의 잔향이 살짝 풍겼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에요, 그래도 상관 없잖아요. 성격에 어려움이 있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친구가 애기가 되어버렸을 때, 나는 어떤 식으로 돌봐줄까. 나쁜 점은 고쳐야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친구였던 그 친구가 아니게 되지 않나? 그래도 잘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 무슨 말을 할까?
샤일록과 무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떤 형태든, 그 때를 지켜보고 싶다. 어쩐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샤일록: 밤이 깊어졌네요……. 슬슬 방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밤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샤일록: 저도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현자님.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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