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좋은 날씨네…….
클로에: 아하하!
아…… 서쪽의 마법사들이 안뜰에서 다과회를 하고 있네. 재밌어 보이니 들여다보고 올까.
안녕하세요. 다과회 중인가요?
클로에: 현자님! 괜찮다면 현자님도 같이 어때?
라스티카: 사양하지 마시고 한 잔 드세요. 지금 클로에의 데생노트를 다 같이 보고 있던 참입니다.
클로에: 라, 라스티카! 현자님 앞에서 부끄러워…….
샤일록: 동물을 주제로 한 옷이라고 합니다.
와아, 멋있네요!
무르: 봐봐! 라스티카는 산양이고 샤일록이 공작! 나는 고양이래!
우와……! 개성있고 멋있네요! 클로에의 옷 디자인은 없나요?
클로에: 내 건 없어! 이런 화려한 건 어울리지 않는걸!
샤일록: 그렇지 않아요.
클로에: 정말로?
라스티카: 아아, 물론이지. 무슨 동물이 좋을까? 강아지는 어때?
무르: 쥐는? 나한테 먹혀버려!
클로에: 아하하! 하지 마!
클로에는 밝은 소년이다. 수다를 좋아하고 만드는 것을 잘하며, 재봉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샤일록이 말헀듯이 클로에의 표정은 매력적이다. 항상 빙글빙글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다. 두근두근 긴장하거나, 머뭇거리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싱글벙글 웃거나, 축 늘어진다.
2화
클로에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을 지켜보는 듯한 마음에, 나는 클로에에게 감정 이입을 했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속 전부터 친구였던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줘……. 클로에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클로에. 괜찮으시다면 다과회가 끝난 후에 클로에의 이야기를 들어도 될까요?
클로에: 내 이야기?
지금 마법사 여러분들에 대해 현자의 서에 쓰고 있거든요. 제가 원래 세계로 돌아간 후에도 여러분들이 편하도록 클로에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잘하는 거나 못하는 거, 하기 싫은 거나 뭐든지!
클로에: 알았어! 그러면 이따가 내 방으로 와줄래? 방 정리하고 기다릴게.
네, 고마워요.
여기가 클로에의 방…….
▶ 재단실 같아요!
클로에: 에헤헤, 모처럼 내 방이 생겼으니까 취미로 달아버렸어! 많이 여러가지 것들을 만들 수 있어서 즐거워!
▶ 멋진 재봉틀이네요!
클로에: 이거 좋지! 서쪽 나라 여행하다가 발견한 거야! 너무 갖고 싶었는데 여행 중이었으니까. 만약에 또 올 때 놓여져 있으면 사려고 했었거든. 하지만 찾으러 갔더니 직전에 구매자가 생겨버린 것 같아서, 없어져서…….
에!? 무슨 일인가요?
클로에: 에헤헤…… 사간 건 라스티카였어. 나한테 선물해 준 거야!
▶ 멋진 셔츠네요!
클로에: 정말!? 이거 지금 만들고 있거든! 내 거라고 생각했는데, 디자인 맞춰서 서쪽 마법사 모두와 입어도 되겠다!
클로에: 이 방 너무 좋아! 멋진 방을 마련해줘서 고마워, 현자님! 라스티카와 만나고 나서는 여행을 잔뜩 했으니까, 내 방이 생겨서 기뻐!
3화
맞다. 클로에는 계속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죠.
클로에: 맞아맞아! 여기저기 갔었어. 서쪽 나라의 끝에 있는 섬도 갔었지. 폭풍우를 만나 무인도에 떠내려가서 힘들었었는데.
경험이 굉장히 많네요! 라스티카와 여행을 하면서 클로에가……
▶ 가장 즐거웠던 일은?
클로에: 서쪽 변방 거리의 축제에 갔던 걸까? 캔디를 동네 나뭇가지에 장식하는 거야. 과자의 숲처럼 되거든! 그래서 다들 마법사 분장을 해. 우리도 마법사인걸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참여했어. 모두들 동료 같아서 즐거웠지!
▶ 가장 기뻤던 일은?
클로에: 글쎄, 잔뜩 있지만…… 상인 따님을 위해 사교계 데뷔용 드레스를 만든 건가?
클로에가 만들었나요? 대단해요!
클로에: 에헤헤…… 폭풍우가 치는 날에 하룻밤 묵게 해준 답례로 만들었어. 입고 갈 드레스가 더러워졌다고 해서. 마음에 들어해줘서 기뻤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계속 여행을 했었다면 마법관의 삶은 지루하지 않나요?
클로에: 전혀 그렇지 않아! 가족들을 빼면 다같이 사는 건 처음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재밌고!
클로에: 특히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뻐. 아서나 히스클리프는 훌륭한 집안이라 처음에 긴장했는데 말하기 편하고. 시노도 퉁명스럽고 무서웠지만 얘기해보니 동생 같고 좋은 사람이고, 미틸이랑 리케도 좋은 아이들이고…….
클로에: 아, 미안! 혼자 얘기해 버렸네! 내 이야기는 어떤 것부터 얘기해야 할까?
4화
그러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클로에: 알았어! 이름은 클로에 콜린즈. 나이는 20살. 서쪽 나라 거품의 거리 출신이야.
20살이라면……
▶ 루틸이랑 동갑이네요!
클로에: 맞아맞아! 그래서 루틸이랑은 얘기가 잘 맞아. 루틸은 밝고 재미있지! 예쁜 얼굴이라 덧없는 느낌일까 생각했었는데, 빗자루를 타고 매와 경쟁하고! 다음에 같이 초목 염색하자는 이야기를 했었어.
▶ 히스클리프보다 연상이네요!
클로에: 그렇지! 히스클리프는 탄탄하니까,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는데…… 내성적인 점이나 절제된 점이 지켜주고 싶어지는 동생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해. 게다가 엄청 미형이니까 이것저것 꾸민 보람이 있지! 설렌다!
▶ 카인보다 연하네요!
클로에: 맞아맞아! 카인은 형 같은 느낌이라 멋있어! 라스티카는 연상이지만 조금 천연이라, 카인 같은 사람은 처음이야! 그 나이에 전직 기사단장이라니 멋있지…….
5화
클로에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은요?
클로에: 좋아하는 것은 바느질과 멋. 그라탕도 좋아해. 수다도 좋아하고. 향수병이나 네일도 좋아해.
클로에: 싫어하는 것은…… 큰 호통소리라든가……. 그리고……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옛날에는 여자가 무서웠나?
클로에: 서투른 것은 혼자 있는 거. 아무렇지도 않고 익숙하지만, 그게…… 역시 익숙하지 않나. 아하하,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이래도 괜찮아?
눈썹을 숙이면서 클로에는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왠지 내 상처를 쓰다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클로에처럼 웃고 넘어가 버리고 싶은 아픔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저기…… 여자가 무섭다는 건……? 대답하기 싫으면 안해도 괜찮아요.
클로에: 그런 걱정스러운 표정 짓지 말아줘! 지금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얘기가 아니야. 뭐랄까, 그…….
클로에는 두 손가락을 쥐거나 벌리면서 난처한 듯 웃었다.
클로에: 나…… 집에서 누나들에게 괴롭힘 당했거든.
6화
나는 눈을 부릅 떴다.
클로에: 나, 마법사라서 바느질 방에 숨겨져서 자랐어……. 아, 부모님이 재봉사를 하셨거든. 마법을 써서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는데,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해서 말이야.
클로에: 말썽꾸러기라서 누나들도 싫어했어. 맨날 그러더라. 못생겼어. 바보. 비겁해. 게으름뱅이라고. 계속 그런 말을 들어서, 나는 못생기고 바보고 비겁하고 게으름뱅이야. 미안해……. 라고 생각했어.
……너무해. 그런…….
어릴 적의 클로에를 상상하면서 나는 가슴이 찡했다. 클로에는 아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클로에: 괜찮아, 괜찮아! 옛날 일이라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은 자유롭게 예쁜 옷도 만들 수 있고. 나는 허드렛일 밖에 안했지만, 아버지와 누나들이 짜고 있는 예쁜 옷들을 보고 너무 부러웠어. 나도 저런 옷을 만들고 싶다고. 저런 옷을 입으면 나도 변할 수 있을까. ……나는 못생긴채 그대로라도…….
클로에: 저런 멋진 옷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나 같은 것도 어딘가에 있는 멋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쉰 듯한 클로에의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강한 어조로 호소하고 있었다.
7화
클로에는 멋있어요. 멋있고, 귀엽고, 친절하고, 저도 모두도 클로에를 정말 좋아해요!
클로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수줍은 듯 볼을 붉히며 웃는다.
클로에: 고마워, 현자님……. 에헤헤…… 엄청 기뻐.
클로에: 라스티카도 그렇게 말해줬었지……. 라스티카는 우리 손님이었어. 훌쩍하고 우리 집을 들여다보러 왔었거든.
라스티카가? 그게 두 사람의 만남이었나요?
▶ 라스티카의 첫인상은?
클로에: 굉장히 멋있는 신사라는 느낌이었어! 그런 고급 옷을 입은 사람, 처음 봤었어. 잠버릇이 신경 쓰였지만 잘생겼고. 뭐랄까, 손이나 팔의 움직임이 보통 손님과 전혀 달라서…… 상류층의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 몇 살 때였나요?
클로에: 13살이 되었을 정도인가. 갸름하고 작아서 더 연하로 보였던 것 같은데. 가족 정도밖에 말을 안 하고, 가족과도 말을 잘 안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게 서툴렀거든. 지금은 이렇게 수다스러운데. 믿기지 않지?
클로에: 그래서 바느질 방에서 몰래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했어. 바느질 방에서 바라보다가 라스티카는 갑자기 두리번거리더니 아버지한테 물어봤었지. 여기 마법사가 있지. 마법사를 숨기지 않았냐고.
바느질 방에 숨겨진 클로에의 기책을 눈치챈 거군요!
클로에: 아버지들은 황급히 속였지만 라스티카는 망설이지 않고 바느질 방까지 성큼성큼 들어왔어. 엄청 떨렸었어. 내가 가까이 본 사람은 가족 말고는 그가 처음이었으니까.
8화
클로에: 라스티카는 예쁘고 고급스럽고 멋있었어. 나를 보더니 상냥하게 웃어주더라고. 그리고…….
클로에는 갑자기 어깨를 흔들며 웃기 시작했다.
클로에: 이렇게 바느질을 잘하다니, 내 신부가 틀림없다며 갑자기 새가 되어 새장에 갇혔어.
(라스티카, 평소와 똑같아……. 중간까지는 엄청 멋있었는데……)
클로에: 그대로 휩쓸려버려서 나는 대혼란에 빠졌지. 분명 나쁜 마법사한테 먹힐 거라고 생각했어. 마법사는 그렇다고 들었거든. 하지만 거리를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라스티카가 나를 새장에서 꺼낸 뒤 이렇게 말했어.
(뭘까……. 너를 돕기 위해 납치한 거야, 라던가?)
클로에: 미안해. 사람을 잘못 봤어.
(라스티카……!)
씩씩한 신사인데도 늘 어딘가 덜렁거리는 그를 떠올리며 나는 얼굴을 가렸다.
클로에: 집에 데려다 준다고 했는데 나, 순간적으로 말해버렸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같이 데려가 달라고. 입에 올리고 나서야 깨달았어. 이제 한계였다고. 나는 저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거야.
클로에는 눈꺼풀을 감고 큰 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아니라 숨통을 틔우는 듯한, 약간 고통스러운 호흡이었다.
클로에: 라스티카는 좋다고 말해줬어. 그리고 나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된 거야.
9화
클로에: 그때의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겁이 많고, 만족스럽게 대화도 할 수 없었어. 그런 나에게도 라스티카는 상냥하게 대해줬어. 뭐랄까…… 그냥 친절해. 은혜를 입히거나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상냥한 거였어. 말을 잘 못 하겠지만,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르고 해가 지듯이 라스티카는 자연친화적이야.
왠지 알 것 같아요. 라스티카와 함께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죠.
클로에: 응…….
클로에는 행복을 깨물듯이 중얼거렸다. 애처로운 미소를 짓던 눈동자가, 이제는 생동감 넘치는 기쁨을 빛내고 있다.
클로에: 라스티카와 함께하고 나는 조금씩 내 자신이 좋아졌어. 왜냐하면 라스티카, 뭐 하기만 하면 칭찬해줬거든.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나비매듭을 하는 것만으로도, 클로에는 대단하다고……. 처음 옷을 만들었을 때도 멋져. 세계 최고야라며.
클로에: 듣다 보니까 안 되는 녀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못생기고 바보고 비겁하고 게으름쟁이가 아니라…… 나는 나고…… 나는 나를 좋아해도 괜찮을까 하고.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거나,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것도 내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해도 되는 걸까 하고.
클로에는 미소를 지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는 소심함과 아픔과 탄식, 그것을 극복한 상냥함이 있었다.
10화
클로에: 현자님. 내 마도구를 보여줘도 될까?
네, 물론이에요.
클로에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얹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바느질함이 나타난다.
클로에: 이거, 집에서 쓰던 거야. 라스티카에게 납치된 후 라스티카가 집으로 가지러 가줬어. 괴로운 추억도 있지만…… 이 바느질함과 함께 꿈을 꿨거든. 언젠가 나도 예쁜 옷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멋진 사람들을 위해서 멋진 의상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것을. ……그 소원이, 지금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어.
클로에: 현자님이 나에게 의상을 만들어도 된다고 해준 덕분이야. 정말로 고마워.
클로에…….
클로에: 여기 있는 사람들, 정말 좋아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옷을 만들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해! 가족과는 잘 안됐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과 가족처럼 살아서 도움이 되고 싶어. 나 같은 건, 아직 미숙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요. 클로에가 만들어준 의상 덕분에, 전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줬어요. 전세계 마법사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앞으로도 당신이 필요해요.
클로에, 아무쪼록 잘 부탁드릴게요.
클로에는 커다란 눈동자로 눈을 깜빡였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붉게 물든 눈꺼풀로 활짝 웃었다.
클로에: 기뻐……. 나야말로 잘 부탁해, 현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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