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팟에 대한 이야기 (1)
비오는 거리라는 이름, 뭔가 유래가 있는걸까요? 역시 비가 많이 오는건가?
네로: 유래는 있어.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네로: 옛날에 이 일대가 심한 물 부족을 당했을 때 국왕의 의뢰로 몇몇 마법사들이 마력을 합쳐서 비를 부른 거야. 그 당시에도 마법사들은 대우가 좋지 않았지만 마법은 성공하고 거리는 원래대로 돌아갔지.
……그 말이 정말이라면 이 거리는 더욱 마법사에게 호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네로: 그 말대로. 국왕으로부터 사례금이 나왔기 때문에 물 부족은 마법사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거야. 재판이 진행되면서 비를 불러들인 마법사들은 다수결로 거리에서 추방되었어. 인간들도 다음에는 마법의 힘에 의지하지 않도록 물을 확보할 방법을 연구했고.
네로: 비로 물을 아끼자는 교훈을 얻은 거리. 그것이 이 비오는 거리야.
……왠지 납득할 수 가 없어요. 마법사들은 그것으로 괜찮았던건가요? 추방이라니, 너무 심해요.
네로: 글쎄. 화는 나지만 물길이 생긴 건 우리 마법사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얼굴은 마법으로 바꿀 수도 있어. 돌아오려면 돌아올 수 있는 처벌이지. 그런 건 넘어가면서 살아가는 마법사가 많은 땅이야. 이 동쪽의 나라는.
▶ 스팟에 대한 이야기 (2)
네로: 아아, 현자씨. 그 쪽 길은 안돼. 좀 돌아가겠지만 우회전 해서 가자.
에? 그래도 왔을 때에는 이 길을 지나갔는데요…….
네로: 밤에는 이 거리를 걸으면 안된다는 규칙이야. 위험하니까.
그런가요……. 법률 지키는 사람이 많은 거리인데 치안이 안 좋은 곳도 역시 있군요.
네로: 치안이 안 좋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기는 룰이 있으니 아무도 안 지나가고.
……?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소리인가요? 이상한 이야기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다면 반대로 안전한 길 아닌가요……?
네로: 맞아. 하지만 가지 못하는 길을 지나가는 놈은 범죄자로 신고당해. 원래는 호객꾼 같은 걸 내쫓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인데, 아직도 남아있어.
네로: 그런 이유로, 저쪽으로 가자. 하지만 저쪽은 쫓겨난 호객꾼이 있으니까, 좀 치안이 안 좋아. 조심해. 너무 나랑 떨어져서 걷지 마.
(뭔가 엄청 복잡한 거리네…….)
▶ 스팟의 추억 (1)
이 거리는 표식이 많네요.... 저 간판은 무슨 뜻이에요?
네로: 아아…… 미안하지만 가르쳐줄 수가 없어. 관공서에 가야 해.
……? 네로도 모르는건가요?
네로: 아니 당연히 알지. 그런데 일반인들이 여행자들에게 표지판의 의미를 알려주는 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설명을 잘못하면 문제가 되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면 관공서로 안내해야한다는 규칙이야.
으음…… 이 동네, 관공서에 엄청 줄 서있었죠. 그래도 몰라서 법을 어기는건 무섭고…….
네로: 아하하. 표지판의 뜻을 잘못 알았을 때 좋은 핑계를 알려줄게. "내가 봤을 때와는 표시가 달라졌다. 마법사의 소행임에 틀림없어."
그런……! 전부 마법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건가요?
네로: 이렇게 말하면 대개 봐주고, 범인 색출을 할 정도도 아닌 장난이야. 아무도 시시껄렁한 일로 잡히지 않고. 합리적이잖아.
왠지 납득할 수가 없어요…….
네로: 작은 트러블은 모두 그것으로 정리돼. 마법사라도 들키지 않으면 쾌적한 거리인데 말이야…….
▶ 스팟의 추억 (2)
네로: 비오는 거리는 거주자들과 어느 정도 친해져야 인정이 많은 좋은 동네지. 서로 신고하지 않겠다는 신뢰관계가 쌓이면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고. 가게를 옮기고 싶다고 했을 때 상담에 응해줬던 손님들이나 가게 개점 기념일을 물어봐서 대답했더니 선물을 준 손님도 있었어.
단골 손님인가요? 그런 거리감은 좋네요.
네로: 그렇지? 거짓말은 하지 말걸 그랬어. 마음씨 좋은 신사분이었는데.
거짓말? 가게 연 날에 대해 거짓말을 했나요?
네로: 이 날이었지, 라는 느낌. 일부러 정정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랬었죠, 라고 애매하게 대답했었지. 나중에는 날짜가 달못됐다는 걸 들켰는데 그 얘기는 서로 잘 넘어갔어. 추궁하거나 하지도 않고. 좋은 사람들이지?
(네로도 손님분도 대화가 서툰 것 같은 에피소드다……)
▶ 스팟의 추억 (3) < 미해금
▶ 브레이크 타임 (1)
동쪽의 나라는 어딜 가나 자연이 풍요롭네요.
네로: 시골 풍경이라고 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공공시설이나 귀족집 같은 곳에는 땅의 몇 할, 정원에 나무를 심으라는 법이 있어.
그런 것까지 룰이 있나요?
네로: 귀찮지만 덕분에 경치는 어느 나라보다 아름답지.
확실히 치유되네요……. 네로의 가게에도 정원이 있었나요?
네로: 있었어. 작은 정원이었지만 약간의 야채와 과일과 허브를 키우고 있었지.
▶ 집에서 기른 야채, 좋네요!
네로: 매년 만들다 보면 특별하게 잘 되는 해가 있기도 하고. 은근히 꽂혀버려서.
부지런한 작업 잘할 것 같죠. 네로가 직접 키운 야채도 먹어보고 싶어요.
▶ 과일은 가게에서 팔았었나요?
네로: 뭐, 그랬었지. 모양이 별로 안 예쁜건 잼으로 해서 디저트로 쓰기도 했었고.
네로의 딸기잼,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다음에 꼭 먹어보고 싶어요.
마법서에서는 하지 않을건가요?
네로: 아하하. 마법서 안뜰에 아무거나 심어도 되는걸까나. 모두 아무렇게 쓰니까. 괜찮은거야? 뭐. 언젠가 실현되면 한턱 낼게.
아싸. 기대하고 있을게요!
▶ 브레이크 타임 (2)
브래들리: 하아…… 보이는 놈들은 다 침묵하고 있고 비는 계속 오고... 기분 나쁜 동네네.. 감옥 안 보다 더 괴로워.
브래들리는 감옥에 간 적이 있었죠? 인간의 감옥과는 다른건가요?
브래들리: 글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간수가 오면 발소리가 안 들릴 때 까지 욕할 수 있었으니 여기보단 낫겠지.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여자라던가, 생기조차 없는 아저씨들만 있고……. 야유라도 날려버리고 싶은 기분이야…….
브래들리: 걔는 이런 거리가 마음에 들어서 정착한건가……. 그 녀석도 그런대로 좀 찜찜한 데도 있고 말이야.
브래들리…….
브래들리: 어이, 누구라고 말 안했어. 방금 건 욕하는 거 아니니까, 고자질 하지 말라고. 하아…… 좀 기분전환하러 걸어다녀볼까. 따라와, 현자.
아, 기다려주세요! 우산을 쓰지 않으면 젖는다구요!
▶ 네로에 대한 인상 (1)
파우스트가 봤을 때 네로는 어떤 인상인가요?
파우스트: 네로인가……. 나도 걔도 동쪽의 마법사다워. 서로가 서로 개입하지 않으니 마법서에서 같이 있어도 지내기 좋아.
확실히 네로는 간섭하는 느낌이 전혀 없네요. 하지만 마음이 섬세하니까…….
파우스트: 그렇지. 뭐라 말하긴 해도 친절하게 애들도 봐주고 있어. 지식도 풍부하고 지시사항도 강요하는 것 같지도 않고. 언행이나 마력의 느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느낌도 들고, 네로가 선생님을 맡아도 상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파우스트가 선생님이라 잘 되고 있고, 네로가 그럴 의사가 있을지…….
파우스트: ……내가 먼저 현자의 마법사가 된 것 뿐이니 언젠가 역할을 바꾸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네로는 뭐라고 말했나요?
파우스트: "나는 책임감이 없어서 무리야" 라고.
과연…….
파우스트: 나도 딱히 없지만.
▶ 네로에 대한 인상 (2)
시노는 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시노: 밥이 맛있어. 그리고 네 몫은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아.
식사에 신경 써주는 부분을 좋아하는거군요.
시노: 밥은 중요하잖아. 네 몫은 이제 없다고 다른 곳에서 자주 들었지만 네로는 말하지 않으니까. 나도 요즘은 리필해달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어. 왜 그런가 했더니 내 접시의 식사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더라고. 내 밥, 많이 넣어주는거야? 라고 물어봤더니 "너가 매번 모자라다고 해서 맞추고 있어" 라고 말해서……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섬세하네요, 네로…… 요리사의 신념도 느껴져요.
시노: 그렇네. 신용하고 있어.
▶ 네로에 대한 인상 (3)
히스클리프는 시노와 파우스트와는 원래부터 안면이 있었으니 네로만 알고 지낸 지 얼마 안된 느낌이죠.
히스클리프: 그렇네요……. 그래도 정이 많이 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무서웠나요? 네로가?
히스클리프: 네……. 뭐라고 할까, 저 자신조차 말을 못 걸면서 말을 걸어지는 것이 싫어하는 사람의 분위기도 서투르다고나 할까…….
아아……. 그건 그럭저럭 알 것 같아요. 민폐려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히스클리프: 맞아요. 하지만 네로는 저보다 섬세한 사람이라는 걸 요즘 점점 알게 되더라고요. 서임식 후 잠자리에서 들었어요. 서로 신경 쓰는 성격인 걸 아니까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지 말자고. 넌 날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나도 널 귀찮게 하지 않을거니 편하게 대해달라면서.
……상냥하네요, 네로…….
히스클리프: 그러게요. 제가 이것저것 걱정하기 전에 말해줘서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저는 말이죠.
▶ 네로에 대한 인상 (4)
네로는 비밀주의적인 면이 있죠. 브래들리는 네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브래들리: 아? 왜 나한테 물어봐? 나랑 걔랑 뭔가 인연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지나? 역시 뭔가 이렇게, 정감 있는게 느껴진건가.
에…….
브래들리: ……위험하네, 너무 말했어. 혼나겠다. 뭐, 걔랑은 여기 와서 만난 지 얼마 안됐으니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데.
▶ 그렇게 하기로 한건가요?
브래들리: 바보야. 들키면 큰일나니까 그만두라구. 잘 모르겠지만 그 녀석한테는 말하지 마.
▶ 비밀로 하는 건 싫어하는거 아니었나요?
브래들리: 싫어. 싫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난 죄수고 걘 적이고. 꼬맹이도 아니고, 친구라고 했었잖아! 라며 따질 사이도 아니야. 하지만 짜증나긴 해.
▶ 친구로는 안 보이던데요.
브래들리: ……흐응, 그러냐. 그런데 은근히 그런 스타일의 놈은 나같은 놈이랑 잘 맞아. 의외로 나 같은 놈이랑 마음이 맞고 의외로 나 같은 애 말 듣는 것이 편하다던가 생각한다고.
……그럼 한마디로 네로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나요?
브래들리: 그 녀석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뭐, 마음 편한 녀석이지.
▶ 네로에 대한 인상 (5)
리케가 보기에는 네로는 어떤 느낌인가요?
리케: 네로인가요? 글쎄요……. 처음에는 의욕이 없고 불성실해 보여서 교단에 있었을 때 들었던 부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과연……. 지금은요?
리케: 별로 의욕이 없다는 느낌은 변함이 없지만 그 안에서도 뭔가 네로 나름의 상냥함 같은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뭐랄까, 네로는 네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깊은 관계를 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성적인 느낌도 아닌데 좀 특이한 사람이네요.
……네로의 그런 점, 역시 신경 쓰이나요?
리케: 고쳐주세요 라고 말할 정도로 싫은 건 아니지만…… 저는 사도로서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요구받았습니다. 그래서 섣부른 태도에 당황할 때가 있어요. 지금은 네로에게 배우는 것이 많지만, 언젠가는 제가 네로를 이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더 저를 필요로 하고 제게 개입해 주셨으면 합니다.
……리케의 곧은 마음과 자신감은 언젠가 네로의 마음을 움직일지도 모르겠네요.
리케: 네. 아직 안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네로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요.
▶ 스팟에 대한 인상 (1)
비오는 거리라고 하니까 좀 더 흐릿한가 싶었는데 이 거리의 비는 어쩐지 상쾌하네요.
파우스트: 산맥에서 오는 비는 맑고 비구름이 얇아서 내려도 그렇게 어둡지는 않아. 그것 때문이 아닐까.
이 거리에 대한 파우스트의 인상은 어떤가요? 네로는 살기 좋다고 하던데.
파우스트: 비는 둘째치고 모든 게 인간을 위한 거리라는 느낌이 마음에 안 들어. 규칙이 있으면 편리하고 쾌적할 수 있지만, 상냥함이 의무가 되는 것은 찌그러진 것이다.
상냥함이 의무가 된다고요?
파우스트: 이 나라의 법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만들어져. 편안하게 살기 좋도록,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파우스트: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수고를 규칙에 맡기고 있는 탓에, 남을 생각하는 것이 규칙이 되어있어. 그런 걸 배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친절조차 내 마음을 따를 수 없다면 누구랑도 얽히지 않고 살면 돼. 사람을 사귀는 것은 귀찮은데, 누구랑 붙어있고 싶다니 동쪽 나라의 인간다운 어중간한 거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싫어해서 틀어박혀 있었던 파우스트가 얘기하니 설득력 있네……)
▶ 스팟에 대한 인상 (2)
히스클리프는 비오는 거리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었죠.
히스클리프: 네. 영주인 아버지와 함께 국왕폐하께 인사드리러 오거나 큰 재판이나 회의에 불려갈 일이 있어서요. 저는 마법사사니까 그런 용무로 거리에 들어갈 때에는 심사도 까다로웠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비오는 거리는 조금 마법사에게 차가운 인상이 있어요. 법 때문인 걸 알고 있긴 하지만.
히스클리프의 동네는 규칙이 느슨한가요?
히스클리프: 물론 같은 법전이지만 부모님이 대범하셔서……. 단속이나 처벌은 느슨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블랑셰에서는 숲이나 광장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나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거리에서는 그런 경치를 아예 볼 수 없으니 조금 무섭네…….
▶ 스팟에 대한 인상 (3)
비오는 거리에 와보니 어떤가요, 리케?
리케: 조용하고 좋은 거리입니다. 어디든 청결하고 깨끗하고요.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랑 눈이 마주쳐도 아무도 인사를 해주지 않아 놀랐어요. 그런데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친절하게 알려주고…… 신기한 사람들의 거리네요.
동쪽의 나라에는 여러 가지 법이 있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위반이 되는 것 같네요…….
리케: 나라마다 이렇게 규칙이 다르다는 것은 처음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살던 교단과 중앙 나라에서의 규칙과도 다르고요. 어떤게 맞는건지 정했으면 좋겠어요.
뭐가 맞느냐니, 어려운 문제네요.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질이나 시대에 따른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아 사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요?
리케: 자신에게 맞는 장소…… 저에게 맞는 장소도 있을까요?
분명 있을거에요.
리케: 현자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결정은 보류하고 여러 나라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비오는 거리는 상냥하지만, 조금 남달라서 네로같은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랑은 맞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 동쪽 나라에 대해서
네로: 룰은 많지만 나 같은 사람한테 있어서 동쪽 나라는 살기 좋아. 물론 귀찮거나 싫은 점도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뭐. 필요 이상으로 남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성실히 하고 있고, 뿌리도 다 착하고. 남들이랑 잘 못 어울리는 사람들은 룰이 있으면 실수 안 해도 되니까 안심이겠지.
네로도 그런가요? 이야기 하기 쉽고, 교제가 서투르다고는 별로 느껴본 적이 없는데...
네로: 아하하, 그거 영광이네. 현자씨 정도라면 괜찮지만, 주위에서 계속 쭉쭉 오는 건 좀 어려울지도 몰라.
그런가요…… 조심할게요.
네로: 너는 괜찮다니까! ……하지만, 그렇네. 예를 들면 너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드물게 흥미가 생겨서 말을 걸고 싶어도 이 나라에서는 법 위반이 될 수 있어서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할 뿐이야. 그건 조금 아쉽네.
▶ '거대한 재앙' 에 대해서
'거대한 재앙' 이 오는 밤, 비오는 거리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가요?
네로: 다른 곳에 비해서 이 거리의 사람들은 다들 겁먹은 느낌이야. 그렇다고 멘탈이 터지는 애는 없지만. 불안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대비를 단단히 한 상태로 집에 틀어박혀 있는 느낌이라 재앙이 오기 며칠 전부터 아무도 나다니지 않게 돼.
네로: 솔직히 장사 끝장이라고. 어쩔 수는 없지만. '거대한 재앙' 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미신이 돌 정도로 두려워지는거야.
정말로 미신인건가요?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세계에 이변이 일어날 정도인데.
네로: 확실히 '거대한 재앙' 이 오는 시기에는 강한 마력을 느껴. 동물도 식물도 공기도 왠지 시끄러워지고. 인간들도 약간 느끼는게 있는 것 같아.
네로는요? 아프거나 하지 않아요?
네로: 나는 뭐…… 조금 흥분해. 화를 잘 내거나, 감상적이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이야. 개인차는 있지만 마법사들은 다 그런 느낌이야. 그러니까 너도 '거대한 재앙' 이 올 때에는 조심해. 우리들에게 말이야.
▶ 스팟의 사람들
룰이 많은 거리인데…… 좋았다는 점은 없나요?
네로: 아니아니, 취향은 갈릴 수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아. 예를 들어 나 같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도 함부로 캐낼 수 없고 말이야. 서쪽 나라에 갔었을 때는 지옥이었지. 눈을 마주치면 막 말을 걸어대고, 숙이고 있어도 말을 걸고. 동쪽 나라는 다 수줍어 하지만 딱 좋은 거리감이라 대하기 좋아. 고지식한 애들이 많으니까.
그건 알 것 같아요. 동쪽 나라 사람들은…….
▶ 성실하다고 생각해.
네로: 하하. 뭐, 그렇지. 나는 빼고 말이야.
▶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생각해.
네로: 맞아맞아. 너무 파고드는 애도 그렇게 없고. 좋은 나라야.
네로: 그리고 부탁해요 하면서 의지하면 대부분이 도와주지. 가게를 열고 싶다던가,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더던가 하는 사적인 일에도 꽤 기부를 해준다고.
그렇군요! 그건 조금 의외네요. 타인에게 흥미가 적은 인상이 있어서…….
네로: 아하하. 그 이미지는 맞다고 생각해. 하지만 평소에 관계가 적은 만큼 다들 남을 도와주고 싶나봐.
▶ 스팟의 마법사
이 거리에서 다른 마법사들을 만난 적이 있나요? 알아볼 수 있는 삶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네로: 다들 트러블을 피하고 있으니까. 마법사끼리도 끼리끼리 치고 받고 그런 일은 거의 없겠지. 하지만 있을 수도 있어. 나처럼 장사하는 애들은 가끔.
어떤 직업인가요?
네로: 예를 들어서 법률가. 기억력이 좋은 애들이 몇 명 있는데, 마법사 같은 애들도 있단 말이지.
마법으로 기억할 수 있나요? 편리하네요……!
네로: 아니, 그냥 외우는 거 아닐까? 우리는 시간만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관공서에 근무하고 있지 않아도 거리의 안내 겸 법을 잘 아는 놈들이 있어. 여행사가 고용해서 같이 행동하는 거지.
과연. 저도 모르게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요.
네로: 그래그래. 하지만 마법사는 외관은 변하지 않으니까. 속이는걸 계속핸다고 해도 기껏해야 10년이나 20년 정도일걸. 둘이서 짜고 몇 십 년 마다 번갈아가면서 일하는 것도 봤지.
숨기면서까지 일하는 것은 큰일이네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은 큰 매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네로: 동쪽 나라의 남들 간의 거리감이라는 게 독특하니까. 한 번 오면 다른 곳에서는 못 살아.
▶ 네로의 자그마한 꿈
네로: 비오는 거리는 살기 좋아도, 마법사는 환영받지 못하는 땅이라 오래 머물지 못하는 건 큰일이네. 나이가 안 든다는 걸 알게 되면 주위에 은근히 얘기가 퍼져서 점점 손님이 안 들리게 될거야.
확실히, 마법사라는 걸 숨겨야 할 때 오래 산다는 건 불리할 수도 있겠네요.
네로: 모습을 바꾸거나 만난 인간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도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마력도 기력도 다 쓰니까. 나는 가게 장소를 몇십년에 한 번 바꾸고 있어.
힘들겠네요…….
네로: 이사 자체는 귀찮을 뿐이니까 괜찮지만 가게 리모델링 같은 건 무리야. 번창해도 큰 가게로 만들 수도 없고. 샤일록은 신경쓰지 않고 정착해 있으니까 가게 내부 장식을 원하는 만큼 꾸미니까 부럽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
네로의 가게도 언젠가 가보고 싶어요.
네로: 기쁜 말을 해주네, 현자씨. 마법서의 식당,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마법으로 확 바꿔버릴까?
▶ 위험한 장소
히스클리프: 동쪽 나라에는 폭동이나 큰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대신 사기가 많다고 해요.
그런가요? 동쪽 나라 사람들은 경계심이 강할 것 같은데 조금 의외네요.
히스클리프: 낯을 가리는 성향인 만큼 한 번 마음을 준 상대를 의심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규칙만 지키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오히려 당하기 쉬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희 집안도 일단 한 번 스승님께 속았었고요.
히스클리프와 시노의 스승님…… 두 분에게 마법을 가르쳤지만 사실은 마력이 약했었죠.
히스클리프: 네. 부모님이 수업료까지 내셨는데 마법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받을 때까지 다른 곳에서도 국왕의 보증인이라던가, 수도에서는 유명했다던가, 오즈의 제자라고 얘기했었나봐요.
오즈의 제자…….
히스클리프: 아하하. 진짜 오즈랑 진짜 오즈의 제자를 만난 지금이라면, 거짓말은 금방 간파당했을텐데 말이죠.
▶ 스팟에서의 발견
시노: 현자. 이것 좀 봐줘.
깃발……? 귀엽네요. 횡단보도 건널 때 쓰는 것 같아요.
시노: 재미있어.
시노는 그렇게 말하며 길가에 놓여져 있는 상자에서 작은 깃발을 뽑아 들고 펄럭펄럭 흔들어 보였다.
주민: …….
그랬더니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며 이쪽을 신경 쓰는듯이 바라본다. 이윽고 몇 명이 이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주민: 여행자분이신가요? 길을 잃었다면 안내해 드릴까요?
시노: 그치? 깃발을 흔들면 모두가 와.
주민: ……뭔가 곤란한 일은 없으신가요……?
시노: 아니. 너희가 말을 걸어오는게 재밌어서 깃발을 흔들어본거야.
주민: 그것은 위법행위에요……. 고의라면 신고를 하겠지만, 어린애가 한 짓이니 이번은 봐드릴게요.
시노: 어이, 누가 어린애…… 우구극
가,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일행이 호기심이 많아서…….
시노: 놔, 현자. 거기 너. 볼일이 있으면 되는거잖아. 블랑셰로 가는 길을 가르쳐줘.
주민: 블랑셰? 여기서는 꽤 먼데…… 둘이서 가는거야? 그런 가벼운 옷차림으로?
(이 마을 사람들도 말을 걸어주면 친절한데…… 왠지 네로같은 거리감이네……)
▶ 즐거운 장소
시노: 현자. 저기 광장, 공원이래.
정말이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뛰어다니네요.
시노: 이 거리에서 저런 웃음소리 처음 들어봐.
아이: 오빠! 게임 인원이 부족한데 같이 하지 않을래?
시노: 말을 걸었어……. 너, 모르는 놈한테 말이나 걸고. 안 혼나는건가.
아이: 여기서는 다 같이 놀아야한다구! 안 웃으면 법을 어기는거야.
시노: 강요당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좋아. 놀아주지.
아이: 아싸―! 이쪽이야! 룰을 가르쳐줄게!
(어른도 아이들도 모두 즐거워보인다. 이 거리에 이렇게 밝은 장소가 있다니 조금 안심이네……)
어라, 어디선가 종소리가…….
시노: 다녀왔어.
시노. 벌써 돌아온건가요?
시노: 놀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5분동안 여기서 안 떠나면 잡힌대.
경비원: 광장을 잠급니다. 신속히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왓, 광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버렸네요…….
시노: 역시 답답한 거리야.
▶ 스팟의 명물
비오는 거리에는 명물이나 특산품이 있을까요? 마법서의 모두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샤일록: 이 거리의 특산품이라면 물이겠죠. 여기는 산맥에서 비와 강물이 와 깨끗한 땅입니다. 저도 얼음에 사용할 물을 뜨러 몇 번인가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렇군요. 가게에서 파나요?
샤일록: 아뇨. 본인이 직접. 그래도, 선물로 가져가면 오즈나 피가로가 저녁 반주로 좋아하실 것 같아요.
과연.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물도 좋아야하나……?
샤일록: 물이 좋으면 야채도 맛있어지죠. 네로가 이 거리에 정착해 가게를 차리고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가네요. 서쪽의 도심부에서는 오염이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채소 같은 건 대부분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버려요.
그러면 신선한 야채도 사가요. 샤일록, 고르는 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샤일록: 물론입니다.
▶ 네로의 평가
브래들리. 무슨 일이에요? 왠지 기분이 좋아 보여요.
브래들리: 흐흥, 뭐. 이 근처에 있던 맛집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탄식하는 걸 들었거든. 그 기분 알지, 라고 말을 걸었더니 도망갔지만.
혹시 네로의 가게 말씀이신가요?
브래들리: 그렇겠지. 걔가 만드는 요리는 어느 나라에 가던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 매일 먹으면 고마움이 없어지지만, 막상 먹지 않으면 자꾸 먹고 싶어지는 맛이니까.
알아요 그거. 네로의 밥 진짜 맛있으니까요.
브래들리: 말은 잘 못하지만 매 끼니마다 감동이야. 만드는 놈의 성격이 잘 드러나있어. 맛있는 걸 먹었을 때밖에 안 움직이는 세포가 뇌에서 동시에 일하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는다고나 할까…….
알아요, 알아요……! 얘기하다 보니 왠지 배가 고파졌어요…….
브래들리: 그렇네. 오늘 일은 마무리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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