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루틸. 루카 씨가 걱정되나요?
루틸: 그렇네요. 조금…… 마음에 걸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개최 기간은 일주일이니 분명 기회가 올 거예요. 몇 번 더 방문해봐도 좋을 것 같고…….
그때 발밑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보니까 어느새 티컵이 놓여있다.
어라?
미틸: 왜 이런 곳에 티컵이……?
미틸이 손을 뻗으려고 하자 컵은 빙글빙글 돌고 떠올랐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마치 절이라도 하듯 기울자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에!?
리케: 컵이 춤을 추고 있는 이유는 뭔가요?
시노: 음악도 없네요.
클로에: 그게 문제야!?
어느새 찻주전자와 실버세트도 더해져 쾌활한 달그락 소리가 울려 퍼진다.
히스클리프: 마법이 걸린 전시물도 있다고 했는데, 그거인가……?
카인: 식기들의 파티 같네. 엄청 멋진 춤이야.
찻주전자가 카인의 눈앞에서 뚜껑을 탁탁 흔들었다.
카인: 오, 우리를 꼬시는 건가?
아서: 그런 것 같아. '같이 춤추지 않을래?'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야.
카인과 아서가 금방이라도 춤에 가담할 것 같았던 바로 그때, 당황한 모습으로 노신사가 찾아왔다.
노신사: 아아, 죄송합니다! 또 전시장에서 도망쳐버려서…….
아서: 기운 넘치는 식기들이네. 마법이 걸려있는 건가?
노신사: 네. 이전에는 변덕스럽게 차를 따르거나 식사를 분리할 뿐이었습니다만……. 어느 때부터 갑자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때부터……?
아슬린: 아버지! 저 갑옷이 또 움직이기 시작했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니 한 층 위에서 아슬란 씨가 걸어다니는 갑옷과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노신사: 제자리로 돌려놔줘!
그렇게 대답하자 노신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신사: 저것도 예전에는 얌전했는데. 만약을 위해 전시를 취소하는 편이 좋을지도…….
히스클리프: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노신사: 네, 물론이죠. 무엇이죠?
히스클리프: 식기가 춤을 추기 시작하거나 갑옷이 걷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짐작이 가나요?
노신사: 그렇네요……. 분명히 '거대한 재앙' 이 찾아올 때 쯤이었나.
마법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카인: ……혹시, '거대한 재앙' 이 전시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가?
아서: 오래된 것도 많이 전시되어 있으니까…….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이 회장으로부터 위험한 기색은 없어.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딱히 위협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괜찮아도 조금 걱정이 되네요. 액재의 영향으로 여러 가지가 변용되거나 해서 영향이 생겨버리는 것을 임무로 많이 봐왔으니까요.
루틸: 그러면 만약을 위해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저희가 둘러보는 거예요.
카인: 나는 찬성이야. 사소한 이변이라도 염려는 적은 편이 좋을 테니까.
노신사: 저, 저기, 전시물에 문제가 있나요? 가능한 한 즉시 대처를…….
카인: 아아,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해서 미안해. 아까 찻잔이나 갑옷처럼 마법이 걸린 전시물이 평소보다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었다고 했지? 가능성의 이야기지만,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몰라.
노신사: '거대한 재앙' 이……!?
괜찮아요! 분명 지금은 당장 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변도 극히 작은 것으로, 전람회에 직접 영향을 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카인: 현자님의 말씀대로야. 하지만 우리가 이 행사장을 경비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주지 않을래?
노신사: 그런……! 초대를 받아주신 분들께 그런 걸 부탁드릴 수는…….
아서: 문제 없어. 다소나마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면 우리 현자의 마법사들이 나설 차례야. 게다가…… 모처럼 숙부님이 마법의 전시물의 취급을 허가해 주셨으니까. 나로서도 불상사 없이 행사가 진행되어 방문객도 전시를 즐기고, 마법이나 마법사를 멋지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해. 그러면 인간과 마법사가 신뢰를 맺는 새로운 걸음이 될 수도 있어.
노신사: 아서 님…….
아서와 카인의 제의에 리케와 미틸들도 의욕에 찬 모습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리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미틸: 제대로 경비할게요!
클로에: 응.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가 해결해 버릴 거야!
히스클리프: 그리고 이렇게 많이 전시품이 있으면 하루만에 못 돌고.
시노: 히스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직접 망보는 거다. 고마워 하라고.
마침 기간 중에 몇 번 더 오자고 이야기하던 참이었거든요.
카인: 그런 거야. 이것도 무슨 인연이니 맡겨주지 않을래?
노신사: 아아…… 정말로 상냥하신 분들. 저희들만으로는 좀처럼 대응이 어려워 곤란했던 참입니다. 게다가 이런 만남이 있게 되다니……. 당신들이 협력해 주시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라도 관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노신사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아서나 카인이 그 등에 손을 얹고 달랬다. 이윽고 다시 한 번 깊은 절을 한 그가 찻잔들을 들고 떠나는 것을 배웅하며 아서가 이쪽으로 돌아섰다.
아서: ……좋아. 마법관으로 돌아가서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께 상담하자.
그리고 다음 날.
스노우: 모두들, 모여있어? 점호라도 해볼까?
화이트: 일단 중앙부터 시작~!
응? 이 느낌은…….
회장에 총출동한 중앙, 동쪽, 서쪽, 남쪽의 마법사들이 점호에 답한다.
스노우: 그리고 북쪽 말인데…….
미스라 / 오웬 / 브래들리: …….
레녹스: ……뭔가 익숙하네요.
(……역시, 데자뷰다.)
몸 곳곳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언짢아 보이는 세 사람의 시선은 서늘한 얼굴을 한 오즈에게 쏠려있었다.
세 분 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너무 기뻐요.
화이트: 고생 많았구먼, 오즈.
오즈: 딱히 고생은 하지 않았다.
브래들리: 헤에…….
미스라: 흐응…….
오웬: 그래…….
세 사람의 살기에 등골이 뻗쳤다. 찌릿찌릿 소리를 내는 듯한 이 공기도 기억이 난다.
네로: ……그래서, 전람회장의 경비 말이지. 구체적으로 뭘 하면 돼?
스노우: 마법이 걸린 전시품에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을 때의 대처일세. 그렇지, 아서. 현자.
아서: 네. 어제 회장에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해 버리는 식기와 갑옷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아직 눈에 보인 이변이나 위험은 없는 것 같지만……. 전시품 중에는 오래된 것도 많기 때문에 어쩌면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개최 기간 동안 전시회장 경비를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하지만 저희는 초대받은 몸이기도 하니 전시회를 즐겨줬으면 해요.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브래들리: 귀찮은 일을 떠맡기기나 하고. 게다가 이렇게 줄줄이 올 필요가 있냐? 그냥 하고 싶은 녀석이 성 안을 빙빙 돌고 있으면 되는데.
스노우: 차가운 소리 하지 말게나. 게다가 이 전시회의 주최자는 우리에게 엄청나게 감사를 하고 그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하더군.
화이트: 받을 수 있는 건 받아놔야지.
오웬: 나는 호의를 받는 것보다 짓밟는게 좋아. 나쁜 마법사니까. 그 녀석이 다시는 북쪽의 마법사에게 얼빠진 짓을 못하게 내가 훈육 해줄까.
스노우: 순순히 말을 안 듣는다는 건 뻔히 알고 있지만, 그런 짓을 하면 혹독한 처사를 받게 되는 건 그대들일세.
화이트: 오웬 뿐만이 아니다. 미스라도 요란하게 날뛰지 않는가.
미스라: 저는 루틸이랑 미틸이 오고 싶다고 해서 망보러 온 것 뿐이에요. 그 이상의 일은 하고 싶지 않네요.
미틸: 어라, 전시품을 둘러보지 않을 건가요? 모처럼 왔는데.
미스라: 돌면서 뭘 할 건가요?
루틸: 함께 행동하는 사람과 전시되어 있는 작품에 대해 감상을 서로 이야기하거나, 다음에는 무엇을 보고 싶어? 라며 상담하거나…….
미스라: 그러면 누군가랑 그거 하세요. 저는 이 근처에서 누워 있을게요.
루틸: 미스라 씨와 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미스라: ? 같이 돌아다니면서 뭘 할 건가요?
피가로: 하하하, 대화가 처음부터 돌아갔네.
스노우: 호호호, 모처럼 지난 번 대청소에서 다 같이 협력하는 법을 배웠지 않은가.
화이트: 이번 의뢰는 현자의 마법사의 이미지로도 이어진다.
스노우: 미스라, 오웬, 브래들리. 그동안의 그들의 만행은 닦아도 씻을 수 없지. 조금은 도와주지 않겠나.
브래들리: 옛날에는 네녀석들도 실컷 날뛰었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하네. 너무 멍청해서 내가 어느 나라 마법사인지 잊어버린 건가?
브래들리의 악태도 그렇지만 쌍둥이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화이트: 이 전시회의 주최자는 상당한 권력자인 것 같더군.
스노우: 단숨에 오명을 벗고 명예 회복을 노린다!
스노우 / 화이트: 오오!
7화
피가로: 좋네요. 두 분의 그런 점, 싫지 않아요.
스노우: 그러면 피가로 쨩도 같이.
화이트: 은혜를 팔아버리자~!
스노우 / 화이트: 오오~!
피가로: 그렇네요. 우리는 착한 마법사니까.
꺅꺅거리는 소리가 회장 안쪽으로 사라져 간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무르와 샤일록이었다.
무르: 저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은혜를 팔기 쉬워진다고 생각해?
샤일록: 그런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런 것을 바라다니…….
무르: 안 되는 거야?
샤일록: 아뇨, 원하는 것은 자유니까요. 결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어딘가에서 그것을 기대하게 되는 배덕감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추기게 됩니다.
무르: 좋은 얼굴이네! 상상하니 흥분돼!
샤일록: 후후, 하지만 그건 이번에 저희 몫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신기한 전시품을 바라보는 것에 열중하다 보면 기대하는 것을 잊어버릴 것 같으니까요.
무르: 그건 그래! 눈앞에 있는 즐거운 일은 놓치기 전에 즐기지 않으면 손해고!
샤일록: 네, 그럼 가죠. 이번 초대를 진심으로 즐기기 위해.
다음 발을 내디딘 것은 파우스트였다. 그 조금 뒤로 레녹스의 커다란 그림자가 이어진다.
파우스트: 별로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맡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무슨 일이 생겨서 대처하지 못한 우리 탓을 해도 반박할 수 없으니까.
레녹스: 또 오해를 사버릴 말씀을. 급한 일이 있을 때 어린 마법사들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죠.
파우스트: 아니야.
레녹스: 회장 측 경비 배치는 대체로 파악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허술하지는 않아요.
파우스트: 아아……. 꽤 넓은 회장이지만, 마법이 걸린 전시품의 전시 장소는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 일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한 바퀴 돌고 오지.
레녹스: 모시고 가겠습니다.
파우스트: 부탁해. 이변이 보일 만한 것은 일단 내가 상황을 보러 가지. 너는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주위로부터 방문객을 멀리하고, 만약의 경우는 유도를…….
파우스트: 아니, 아니야. 왜 네가 나를 따라와. 다른 곳으로 가.
레녹스: 하지만 제가 움직인다면 지금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요.
파우스트: …….
레녹스: 안되나요?
파우스트: ……알았어. 마음대로 해.
레녹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로: 리케, 마지막 날 파티는 뷔페래.
리케: 뷔페란 뭔가요?
네로가 리케에게 보이려던 행사장 안내를 빼앗아 브래들리가 휘파람을 불었다.
브래들리: 먹고 싶은 걸 원하는 만큼 퍼서 접시에 담는 거다. 고르고 싶은 대로 무한 리필이지. 어디 보자……. 꽤 괜찮네. 맛있는 걸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파티에 참석해도 되겠어.
리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타락해 버릴 것 같아요.
브래들리: 좋잖아, 타락. 하고 싶은 대로 해. 너, 이런 데서 밥 먹어본 적 없잖아.
리케: 안 돼요. 게다가 선택지가 가득하면 망설여져서…….
네로: 망설여도 돼. 사치스럽고 즐거운 선택지는 아무리 있어도 좋으니까. 헤맬 시간까지 포함해서 네 디너가 되는 거야.
리케: ……정말로?
네로: 네가 좋아하는 펌핑도 있을 거야. 분명.
리케: 네로가 만들어 주는 건가요?
네로: 내가 만드는게 아닌데.
리케: ……그렇군요.
네로: 여기는 나보다 훌륭하고 능숙한 셰프가 있어.
리케: 하지만 저는 네로의 요리가 좋아요.
네로: 하하, 그거 영광이네. 마음에 드는 음식이 있다면 알려줘. 마법관에서라도 만들어 줄게.
브래들리: 오, 좋네. 작은 녀석, 마음껏 요청해라.
리케: 네!
미스라: 뷔페란 그거죠. 진열된 요리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미틸: 아, 안 죽어요! 원하는 만큼만 퍼서 먹으면 돼요.
미스라: 원하는 만큼이라니 어느 정도예요? 저 혼자 다 먹어치워도 되는 건가요?
미틸: 규칙적으로는 그것도 틀리지 않지만 독식은 좋지 않아요. 다 같이 나눠야죠.
미스라: 글쎄, 제 기분 나름이네요. 그 뷔페 같은 건 어디에 전시되어 있나요?
미틸: 뷔페는 전시품이 아닌데요…….
오웬: 아무래도 좋지만 그런 작은 보상, 나는 관심 없어. 돌아가도 돼?
라스티카: 관심이 없는지는 조금 더 둘러봐야 결정할 수 있어. 파티나 호화로운 식사보다 네가 좋아할 만한 보상이 굴러올지도 몰라.
클로에: 맞아맞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을 놓치다니, 아깝잖아.
오웬: 내가 좋아하는 상이 이런 곳에 굴러다닐 리가 없잖아.
클로에: 그럼 어디에 있어?
오웬: ……어딘가에?
라스티카: 세상 어딘가에는 있구나. 그러면 여기에 있을 수도 있어. 오늘 찾을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지. 백 년 뒤일지도 몰라.
오웬: 시끄럽네. 그 입, 막아도 돼?
라스티카: 막힐 거면 귀가 좋은 걸. 귀를 막으면 내 안의 소리가 메아리쳐 들리겠지? 마음의 소리까지 들릴 생각을 하니 두근거려. 자, 어서 막아줘.
오웬: 너는 정말 말이 안 통하네.
클로에: 저기, 다들 먼저 가버린 것 같아! 봐, 카인이 손을 흔들고 있어.
카인: 어이, 미아가 되면 안 된다고!
오웬: 하? 누가 미아야.
라스티카: 어떻게 돼? 미아가 되어버릴까?
오웬: 노리는 게 아니잖아.
클로에: 라스티카는 자주 미아가 되지.
라스티카: 후후, 그렇지. 하지만 나는 어쩌면……. 미아가 되고 싶어서 된 걸지도 몰라. 고마워, 클로에.
클로에: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 거야?
라스티카: 그야……. 찾아주는 사람이 있기에 길을 잃을 수 있는 거니까.
아서: 뭐지, 이 상은…….
카인: 아서, 무슨 일이야?
아서: 이거 봐.
카인: 기묘한 상이네. 모통에 꼬리가 여러 가닥 나 있어. 제목은……. '오즈'?
오즈: ……무슨 일이지.
아서: 오즈 님!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즈: 조각을 보고 있었나.
아서: 아!
카인: 섬뜩한 마수처럼 보이지만, 아무래도 전승대로의 오즈의 모습을 조각으로 한 전갈 같네. 너, 정말 다양한 전승이 있구나.
오즈: 타인이 말하는 내 모습에는 관심 없어. 마음대로 하게 둬라.
아서: 그러나…… 무릇 인간답지 않은 마수 같은 풍모의 상을 오즈 님의 이름으로 전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주최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진실을 전하고 이 상의 철거를…….
카인: 응? 이 상 제목이 넘버링 되어 있어. 이거는 9네.
아서: 뭐라고?
카인: 이쪽부터 1, 2, 3……. 이쪽의 상들, 다 오즈의 조각이야.
오즈: 전부……. 대충 20은 되는군.
아서: 전설의 오즈 님의 모습을 샅샅이 뒤져 만든 것인가. 그 노력이나 기술은 훌륭하지만…….
오즈: 이것은 리바이어던과 비슷하군. 꼬리가 머리로 되어 있어.
카인: 모양이야 어떻든 간에 모두 위엄이 있는 것은 분명해. 이만큼 오즈 상이 줄지어 있으면 장관이지. 저기, 오즈. 거기에 잠깐 서봐 줄래?
오즈: ……이렇게 말인가.
카인: 맞아 맞아. 좋은 느낌. 다양한 오즈 상 중에 진짜 오즈가……. 왠지 하나의 작품 같네.
아서: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이런 이형의 모습, 오즈 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어. 진짜 오즈 님이 제일 멋있어.
카인: 아아, 그건 그래. 제일이야!
오즈: …….
아서: 맞다……. 오즈 님, 다음에는 이쪽에 서주시겠나요?
오즈: 이렇게인가.
아서: 어때, 카인. 이 위치라면 오즈 님이 거대한 마수를 토벌한 것처럼 보이고.
카인: 아아, 확실히. 훨씬 강해 보이는 인상이네! 오즈의 정점이라는 느낌이 들어.
아서: 오즈 님이 아니야.
카인: 박력의 방향성은 똑같잖아. 아…… 그런데 저쪽의 위치도 버리기 힘들 것 같아. 오즈, 이번에는 저쪽으로 가줄래?
오즈: …….
파우스트: 각국의 희귀 보석을 이렇게나 모아두다니……. 나도 그렇게까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전부 고급이군. 주최자는 상당한 인물인 것 같네.
레녹스: 경비도 잘 되어 있는 것 같고, 스노우 님이나 화이트 님의 말씀대로 상당한 권력자인 것 같군요.
네로: 역시 시장이나 노섬에 늘어선 보석과는 다르구나. 이거, 상당한 값어치야.
파우스트: 레노, 봐봐. 이 아름다운 광석은 남쪽 나라에서 채취된대.
레녹스: 남쪽 나라는 미개척 땅도 많으니까요. 별로 사람이 가까이 오지 않는 곳에 많은 광물이 잠들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브래들리: 헤에, 보물 더미가 손도 대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건가. 개척하면 한 밑천 잡겠네.
네로: 브래드……. 너, 있었냐. 진작에 돌아간 줄 알았어.
브래들리: 멋대로 돌아가면 영감들이 짜증나게 구니까. 강제로 남는 거야. 그보다 값이 뛸 것 같은 광석이네. 남쪽에는 이런 것들이 많나?
8화
레녹스: 그렇네. 조금씩 개척은 진행하고 있지만 그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야.
브래들리: 아깝네. 남쪽 놈들은 돈벌이에 관심도 없냐?
파우스트: ……여기에 살아있는 새가 있다. 식용으로는 최고급 새지.
브래들리: 하?
네로: 뭐야, 갑자기.
파우스트: 네로, 너라면 어떡할 거지?
네로: 우선 계획을…….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끓여서 육수라도 낼까. 그런데 왜?
파우스트: 나는 너만큼 국물을 잘 끓이지 못해. 그래서 그냥 새가 날갯짓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거다. 식용으로 최고급 새인 줄 알면서도 말이지. 나는 새를 바라보는 게 싫지 않으니까 그 시간을 결코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로 / 브래들리: …….
파우스트: 참고로 국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도 하지.
네로: 하하……. 설교인지 철학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국물 요리의 기분이 들었어.
파우스트: 그렇군. 그거 기대되네.
브래들리: 정말이지, 동쪽다운 눅눅한 대화군. 그건 그렇고 이렇게나 있으면 하나쯤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네. 경비도 삼엄하긴 하지만 현자의 마법사가 모두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짜증나. 어이, 이런 보물투성이인 곳에 도적을 집어넣다니 배짱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파우스트: 글쎄. 감옥에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브래들리: 실례네. 뭐, 손버릇이 나쁜 건 나 뿐만이 아니지.
네로: 뭐야……. 히죽히죽거리면서 이쪽 보지 마.
브래들리: 부끄러워하기는. 야, 이것 좀 봐봐.
네로: 오, 역시 눈이 높네! 이건 상당한…….
파우스트: 어이.
레녹스: 너희 둘.
네로: 헤?
브래들리: 아?
레녹스: 그 보석을 어떻게 하려고? 라고 할까, 어느 사이에 꺼냈…….
네로: ! 아, 아니. 이건 그…….
브래들리: 하하…… 촌스러운 거 물어보지 말라고. 보석을 손에 들고 하는 일이라면 주머니에 넣는 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
파우스트: 진심으로 감옥에 돌아가고 싶은 건가? 봉사활동 중에 그런 걸 해 봐라. 이 행사장에는 쌍둥이나 오즈도 있어. 게다가 네로. 브래들리는 그렇다 쳐도 너까지 이런 도적같은 짓을…….
네로: 서, 선생. 아니야. 이건…… 그게. 훈련이야!
파우스트 / 레녹스: 훈련?
네로: 맞아맞아. 우리 임무는 회장 경비잖아? 마법이 걸린 전시품의 감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귀중한 물건에 손대는 무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레녹스: 그렇군……. 그래서 실천형식의 연습에 어울려 준 건가?
네로: 그런 거야. 그렇지, 브래드……. 리 군.
브래들리: ……귀찮아…….
네로: 브래들리 군!
브래들리: 네네, 맞아. 너희들을 위해서 훈련에 함께 해 준 거라고. 진짜 도적이 시범을 보여줬으니 고마워해.
파우스트: 하아……. 확실히, 도둑이 들어왔을 때의 대처 연습이 되긴 되었군.
레녹스: 네. 브래들리의 현장감이 좋았습니다. 네로도 꽤 도적 흉내를 잘 냈고.
네로: 하하, 그거 고맙네.
파우스트: 그런데 레노, 실전에서는 지금처럼 말을 걸지 말고 문답무용으로 무력화하는 것이 좋을 거야.
레녹스: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다음은 한 층 아래 층이다. 가지.
레녹스: 네.
브래들리: ……너, 귀찮은 교제를 하고 있네. 손버릇이 나쁘다는 건 빨리 빠지는 게 아니야.
네로: 글쎄……, 나는 보잘 것 없는 요리사라서. 그 보석이나 제대로 돌려놔.
미틸: 세련된 양이죠?
리케: 무지개색의 구름이에요.
클로에: 나한테는 무르가 쏘아올린 불꽃으로 보여!
미틸: 다들 보이는 것이 다른데 어디에도 제목이 안 적혀있네요.
리케: 네. 못 찾겠어요.
클로에: 으음, 무슨 그림일까?
리케: 그럼 모두의 의견을 합쳐서 무르가 쏘아올린 불꽃으로 인해 무지개색이 되어버린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미틸: 제 세련된 양이 안 들어갔어요!
리케: 그렇네요. 그럼…… 무르가 쏘아올린 불꽃으로 무지개색으로 물든 구름을 본 양이 멋을 내고 싶다고 마법사에게 부탁해…….
클로에: 푹신푹신한 털을 마법으로 무지개색으로 물들였다는 것으로…… 전부 들어갔어!
리케: 어떤가요!
미틸: 좋을 것 같아요!
라스티카: 이런, 멋진 그림이네. 모두 즐거워 보이는 걸.
클로에: 라스티카! 저기, 라스티카. 이 그림 뭐로 보여?
라스티카: 으음, 그렇네……. 오늘 아침에 먹은 신선한 샐러드인가?
클로에: 참신한 게 왔다!
미틸: 하지만 왠지 알 것 같기도……?
리케: 이게 분명 토마토고, 여기가…….
클로에 / 미틸 / 리케: 아스파라거스!
라스티카: 어라, 이상하네. 아스파라거스는 안 들어갔던 것 같은데. 행복하지만 씁쓸한 맛이 나는 샐러드였던 것 같아.
클로에: 그건 어떤 샐러드야?
라스티카: 처음이지만 그리운 느낌이 드는 신기한 새러드. 이 그림처럼 여러가지가 섞여서 너무 맛있었어. ……응?
미틸: 우와!? 이것 좀 보세요……!
리케: 그림이 움직이고 있어요!
클로에: 뭘까……. 글자가 됐어? '변화' 래.
라스티카: 분명 그게 이 그림의 이름일 거야. 우리가 대화를 하니 알려준 걸지도 모르겠네. 후후, 고마워.
리케: 마법의 작품이었던 걸까요?
미틸: 분명 그렇겠죠.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어 다행이에요.
리케: 하지만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을 받은 가능성은…….
클로에: 만약 그렇다면 제대로 원래 그림으로 안 돌아가지 않았을까? 이거, 우리가 그림을 바꿔버린 거야……?
미틸: 어라, 그런…… 걸까요!?
리케: 아, 또 물컹거리기 시작했어요!
미틸 / 리케: 도, 돌아가! 돌아가!
클로에: 아…… 돌아왔다! 다행이다……. 휴우…….
라스티카: 응. 역시 그 모습의 네가 가장 매력적이야.
시노: 미스라, 오웬. 어디 가.
미스라: 마법관으로 돌아갈 건데요. 왜요?
오웬: 너랑은 상관없잖아. 미스라, 빨리 문 열어.
시노: 흥. 너희들, 역시 도망갈 줄 알았어. 어차피 미술품에 관심이 없을 테니까.
오웬: 도망가지 않았어.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시노: 적어도 너희보다는 가치를 알지. 나는 명문가 블랑셰를 섬기는 몸이니까.
미스라: 하지만 관심은 없잖아요? 우리르 돌아다니면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오웬: 네가 좋아하는 주인님은 어디 가고. 불쌍하게 두고 온 거야?
시노: 뭐라고?
루틸: 아, 미스라 씨!
히스클리프: 시노도. 여기 있었구나.
오웬: 아아, 다행이네. 마중 나와서.
시노: 어이.
히스클리프: 왜, 왜 그래? 무서운 얼굴이나 하고…….
오웬: 당황해서 으르렁거리는 거야. 주인님이 상대를 해주지 않아서 한가하다고 울고 있더라고.
시노: 안 울었어. 멋대로 말하지 마.
미스라: 상대를 안 했다고는 부정하지 않네요.
시노: 시끄러워.
히스클리프: 미안해…… 시노. 궁금한 전시가 어딘지 찾다보니 어느새 잃어버린 것 같아서…….
오웬: 이쪽도 상대하지 않았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구나.
시노: 입 다물어. 멋대로 참견하지 마. 히스, 신경쓰지 않아도 돼. 주인이 오락에 흥미를 느끼는 도안은 삼가는 것이 종자의 일이니까.
히스클리프: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너를 찾고 있었어. 드디어 궁금한 전시 장소를 찾았거든.
시노: 기계라던가 그런 거지?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히스클리프: 응, 구색이 대단하더라고. 태엽식 완구인데 보통과는 반대 방향으로 돌리게 되어 있어서……. 그러니까 같이 보러 가자. 너, 심심하잖아.
시노: 나는 그 근처에서 기다릴게. 혼자서 느긋하게 둘러보고 있어. 잘 모르는 나랑 보는 것보다 그게 더 즐겁잖아.
히스클리프: 시노…….
시노: 난 네가 좋아하는 것과 마주하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
히스클리프: ……그래. 미안, 억지 부려서.
시노: 뭐야, 삐지지 말라고. 왜 네가 서운한 표정을 짓는 거야.
시노: ……알았어. 어쩔 수 없네. 같이 돌아줄게. 이기적인 도련님이구나.
히스클리프: 누구 때문인데……. 그래도 고마워.
오웬: 쳇, 분위기가 가라앉았어.
미스라: 왜일까요. ……갑자기 졸려졌어요.
루틸: 두 분도 같이 전시 보러 가요. 저쪽에 진짜로 밖에 보이지 않는 조화나 정교한 까마귀 인형이 장식되어 있어요.
오웬: 그거, 액재의 영향으로 만지면 죽거나 해?
미스라: 다가가면 걸리는 저주 같은 거 있나요?
루틸: 그런 이변은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웬: 뭐야, 재미없어. 역시 돌아갈래.
미스라: 저도 그렇게 할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 새의 피리를 불어주세요. 금방 달려갈 테니까요.
루틸: 그렇다면 지금 불어도 될까요?
미스라: 이야기 들었나요? 볼일도 없는데 불지 마세요.
루틸: 미스라 씨와 전시회를 둘러보고 싶어요. 즐거운 일은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잖아요? 미스라 씨의 취향이나 느낌을 알고 싶어요. 저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겠나요?
미스라: 하아…….
루틸: 자자, 가요!
9화
오웬: 잠깐, 문 꺼낸다며.
미스라: 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일정이 바뀐 것 같아요. 이 사람, 말을 꺼내면 듣지를 않아서……. 당신도 누군가와 돌아보는 건 어떤가요? 카인이라면 위에 있었어요.
오웬: 왜 기사님? 그리고 그 녀석, 오즈랑 있었잖아. 죽어도 싫어.
미스라: 그러면 죽일래요?
오웬: 하?
미스라: 정말 죽어도 싫은지 시도해 볼래요?
오웬: ……너도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란 말이지…….
피가로: 헤에, 훌륭한 고블렛이네. 상당한 연령대의 물건이네요.
스노우: 음. 오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군.
화이트: 낡은 것은 오래된 것의 장점이 있고, 관록이 있지.
스노우: 어느 시대 어딘가의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걸세.
화이트: 이 고블렛을 통해 제작자의 삶을 접할 수 있는 느낌이 드는군.
피가로: 인간의 생애는 우리에 비하면 훨씬 짧은데도 잘 만들었네요. 그들은 일생이 짧은 만큼 서둘러 자신의 가치를 남겨야 하고요. 바쁘지 않은 생애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내 삶의 모습이 형체로 남는 건 나쁘지 않네요.
스노우: 싫네, 피가로 쨩.
화이트: 감성적인 느낌이 들어버렸어?
피가로: 아하하, 그렇지 않아요. 봐요, 이 오래된 고블렛이 역사의 무게를 말해오니까…….
무르: 저기! 아까부터 낡았다고 하는데 이 고블렛 아직 젊어! 셋이 훨씬 낡았는 걸. 물론 나도!
스노우 / 화이트 / 피가로: …….
피가로: 싫네. 나 같은 애송이가 낡았다니, 의외야.
스노우: 그럼 그럼!
화이트: 이런 프리티한 쌍둥이의 어디가 오래됐을까.
무르: 전부!
스노우 / 화이트: 무르 쨩! 입 다물어!
샤일록: 죄송합니다. 저희 고양이가 또 무슨 실례되는 짓을?
피가로: 아니, 평소랑 똑같아. 그건 그렇고 저희 고양이는 다시 들어도 대단한 표현이네.
무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의외로 나쁘지 않아. 피가로도 고양이 취급 받아볼래?
샤일록: 이런. 당신 정도 되는 분을 제가 기르는 건가요?
피가로: 무르랑 같이는 조금 그런데. 덧붙여서, 집고양이가 되면 뭐 좋은 거 있어?
샤일록: 그렇네요……. 자극적인 새벽과 관능적인 한낮, 열정적인 해질녘과 선정적인 밤을 보낼 수 있죠.
스노우: 좀 과격한 라인업이네.
화이트: 아이에게는 들려줄 수 없겠어.
피가로: 음, 그게 사실이라면 흥미롭겠지만.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샤일록: 어째서죠?
피가로: 너는 네가 원하지 않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니까. 서쪽 마법사 중에서는 나은 편이지만 너도 대체로 변덕스럽지.
샤일록: 후후…… 꽤 날카로우시군요. 하지만 그건 당신에게 달렸답니다.
피가로: 오, 꽤 말하잖아.
무르: 그러면 나도 말할까 봐. 샤일록, 너도 이 고블렛이 낡았다고 느껴져?
샤일록: 그렇네요. 상당한 연령대를 거듭된 일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무르: 응! 근데 이 고블렛보다 샤일록이 훨씬 오래됐지!
샤일록: …….
피가로: ……아, 맞다. 나는 위쪽을 보러 가려고 했었지.
스노우: 우연이군! 우리도 가려고 했었다네!
화이트: 그런 이유로, 렛츠 고!
무르: 다 가버리는 거야? 재밌는 건 이제부터인데!
샤일록: 후후. 저기, 무르.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철썩철썩…… 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걷고 있던 갑옷을 발견한 것은 나와 카인이었다.
카인: 첫날에도 움직이던 거잖아. 또 멋대로 걷기 시작한 건가?
갑옷은 걸음을 멈추자 나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에……. ……안녕하세요.
카인: 꽤 신사적인 갑옷이네.
철썩철썩……. 방향을 바꾼 갑옷은 카인에게 경례를 한다.
카인: 오.
이에 카인도 경례로 화답했다. 씩씩한 옆모습에 기사인 그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멋있어! 역시 모양이 잡히네요.
오웬: 경례만 한 것 가지고 칭찬하다니. 현자님, 그 녀석의 어리광을 너무 받아주는 거 아니야?
오웬.
카인: 돌아간 게 아니었나?
오웬: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았어. 말도 안 되는 횡설수설이야.
그러자 덜커덕…… 소리를 내며 갑옷이 불평하는 오웬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오웬: ……? 뭐야 이거.
오웬을 사모하나 봐요.
카인: 이 갑옷, 상대방에 따라 태도가 다른 것 같네. 기준이 뭐지……?
카인: 아아, 맞다. 이 갑옷을 전시장으로 되돌리고 싶어. 도와줘.
오웬: 싫어. 난 그냥 지나갔을 뿐이야.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고.
카인: 근데 봐봐, 가만히 너를 들여다보고 있어. 지시 대기를 하는 것 같아. 뭐라고 말해주는 게 어때?
오웬: 몰라. 나는 이 녀석의 주인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오웬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 뒤로 갑옷의 발소리가 철커덕거렸다.
오웬: 시끄럽네! 적어도 조용히 걸어.
저쪽은……. 갑옷 전시장 방향이네요.
카인: 내가 잠깐 보고 올게. 갑자기 기분이 바뀌어서 갑옷을 박살내면 큰일이니까.
그러면 저는 이 근처 전시를 보고 있을게요.
카인: 알았어. 어이, 기다려.
떠나가는 카인을 배웅하고 벽 한 면에 늘어선 공예품으로 눈을 돌린다. 거기에 문득 상냥하게 호소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슬란: 현자님.
뒤돌아보니 곧은 호박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온화하게 미소를 지은 그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아슬란 씨.
아슬란: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요전날은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게다가 현자의 마법사 분들이 회장의 경비를 맡아 주셨다고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니에요, 그런! 둘러보면서 모두들 전시를 즐기고 있을 거예요. 물론 저도.
아슬란: 아아, 다행이다! 제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꽤 볼 만 하죠?
네, 너무요. 아직 다 돌지 못한 곳도 많아요. 오늘은 루카 씨와 함께가 아닌가요?
아슬란: 회장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멍한 곳이 있어서 변덕스럽거든요. 훌쩍 사라졌는가하면 갑자기 나탄기도 하고. 그래서 내버려둘 수 없다고나 할까…….
(왠지 마법관의 모두 같네. 역시 마법사는…….)
아슬란: 마치…… 고양이 같죠?
에.
아슬란: 아, 우스한 비유라 죄송합니다.
아뇨! 실은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아슬란: 그런가요?
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웃고 만다.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이지만,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에 친근감을 느꼈다.
마법사들은 자유롭죠. 그게 가끔 부럽기도 하고요.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니까…….
아슬란: 알아요, 그거! 저도 가끔 그런 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아…… 당신과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네요.
조금 흥분한 듯한 모습의 아슬란 씨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 후우…… 하고 작은 숨을 내쉬었다.
아슬란: 저기…… 마법사들과 함께라서 당신도 고생하는 일이 있기도 하나요?
……으음……. 없다고는 할 수 없네요. 가끔은…….
뺨을 긁으며 수줍게 말한다. 그러자 아슬란 씨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슬란: 동지네요.
호박색 눈이 가늘어지고 어린 인상을 준다. 다소 긴장했었지만 그 다정한 미소는 카인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젊은이로 보였다.
(마법사와 보내는 날들을 고유할 수 있는 사람과 이런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조금 기쁘네.)
하지만…… 루카 씨는 정말 대단하죠. 아직 어린데 그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그릴 수 있다니. 오래 산 마법사들도 놀라더라고요. 그림 기술은 물론이고 아주 희귀한 것들만 그려져 있다고. 그림책에 그려져 있는 정령이나 환수들은 문헌에서 조사한 건가요?
내가 묻자 아슬란 씨가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이내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슬란: 아뇨, 그것은…… 그녀가 보고 있는 세계입니다.
에……?
10화
문득 스노우나 화이트의 말이 생각났다. 그림책에 그려진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렇게 볼 수 없다고.
……그 이상한 세계는 강한 힘을 가진 마법사라도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들었어요. 그 세계를…… 루카 씨는 실제로 볼 수 있나요?
아슬란: 네. 저희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요. ……철이 들기 전부터 그 아이는 그런 것들을 눈에 비치는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볼 수 없지만, 확실히 그곳에 있는 신기한 세계가 그 아이에게는 보여. 청자색이 흐르는 구름도, 검빛으로 빛나는 호수도, 흔들리는 신기한 풀도, 꽃도, 향기로운 향기도…….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무지개빛 나비나 뛰어다니는 동물들도……?
아슬란: 네. 모두 루카의 눈이 실제로 비추고 있는 진짜 풍경이나 경치입니다.
어떻게 확신하는 건가요? 당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인데…….
아슬란: 하하, 그렇네요. 저는 처음에 마법사들이 전부 그런 줄 알았거든요. 우리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기한 것을 보는 존재라고. 제가 마법사를 만난 건 루카가 처음이라서. 그녀가 즐겁게 말을 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나, 내가 보고 있는 경치와는 다른 색채로 그려지는 경치…….
아슬란: 그녀가 그것들을 그림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붙여 보여주는 것에 항상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잔잔한 아슬란 씨의 목소리에는 성실한 울림이 있었다. 두근두근 말하는 모습은 마치 미지의 것을 동경하는 소년 같다.
아슬란: 얼마 후, 그것이 희귀한 재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아니…… 희미하게 눈치채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이 아이는 신기한 세계의 사랑을 받은 아이라고. 루카가 그리는 세계는 확실히 그것들이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니까요.
하지만 통통 튀는 듯 말하는 아슬란 씨의 눈동자에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진다.
아슬란: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태어날 때부터 보이는 것이라도 보통 사람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녀의 발언은 허언이나 망상이라고 생소하고, 징그럽게 여겨져 상당히 심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스치는 소리를 듣고 나는 상상했다. 확실히 내 눈에 비치고 손에 닿을 수 있는 것을 주위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 마음을 닫고 무언가에 겁먹은 듯 고개를 숙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저기…… 부모님은요? 루카 씨는 아직 어린아이고, 돌아갈 집 정도는…….
아슬란: 저도 자세히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녀에게는 부모님이 없는 것 같아서요. 미술품을 수집하러 동쪽 나라를 방문했을 때 거리에서 만나 제가 보호하고 데려왔습니다. 당시의 그녀는 여러가지로 그다지 좋은 상태로 보이지 않아서…….
아슬란: ……그 때의 제 선택은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만난 것이 행운이었던 것은 제 쪽이군요.
……에?
아슬란: 그녀의 재능에 반한 건 저니까요.
거짓도 망설임도 없는 곧은 눈동자는 따뜻한 햇살 같았다.
아슬란: 그녀의 소지품은 얇은 종이 뭉치와 너덜너덜한 나무 펜 한 자루 뿐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묶인 뭉치가 젖혀져 들여다본 순간, 저는 감동 받았죠. 정말 아름다웠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넘쳐나서.
아슬란: 처음에는 그것을 아무리 그녀에게 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아무도 믿지 못하고 혼자 견뎌온 그녀의 마음이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아슬란 씨는 그리운 듯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슬란: 그녀는 그녀가 그리는 세계처럼 상냥하고 섬세한 아이입니다. 저는 그런 그녀과 그녀가 그리는 세계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전해질 거예요, 분명. 그 그림책의 세계를 보면 금세 빠져들게 될 거예요. 저도 그 중 한 명이고, 게다가 저 뿐만이 아니야. 마법관의 모두도…… 어린 아이부터 오래 산 마법사까지 모두가 루카 씨가 그리는 세계에 감탄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슬란: 아아…… 감사합니다! 저는 전시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봐주고 그녀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 꺄아악……!!
그때, 큰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슬란: 루카의 목소리……!
아슬란 씨가 달려나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림책의 전시장에 도착하자, 중심에서 웅크리고 있는 작은 등이……. ……루카 씨가 보였다. 옆에는 허둥지둥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는 루틸과 히스클리프가 있었다.
루틸, 히스클리프!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보니까 루카 씨의 옆에는 큼직한 그림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열린 페이지에서 담쟁이덩굴 같은 것이 뻗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슬란: 루카, 설마 또…….
루카: 아……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시선을 현혹시키는 모습은 몹시 당황스러워 보였다.
히스클리프: 저기…… 그녀는 나쁘지 않아요. 저희가 조금 놀라게 해서.
루틸: 그림책을 안고 있던 그녀에게 말을 걸었더니 놀라서 책을 떨어뜨렸을 뿐이에요. 그렇지, 루카?
루카: …….
문득 착각처럼 시야가 반짝였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무지개빛 비늘 가루가 루카 씨의 주위를 둥실둥실 춤춘 것처럼 보인다.
루카: ……록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허공으로 바라본 루카 씨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록시?)
아슬란 씨는 루카 씨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어만지며 말했다.
아슬란: 루카, 화내는게 아니니까 조금 진정하자. 괜찮아, 네 전시는 잘 될 거야. 불안해할 것 없어. 내가 옆에 있으니까. 너의 세계는 모두가 기뻐할 거야. 내가 보증할게.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루카 씨의 가련한 입은 꼭 다물어진 채였다. 아슬란 씨는 그 커다란 손바닥을 루카 씨의 머리에 툭툭 얹자 눈썹을 숙였다.
아슬란: 신작의 완성이 임박해서 그녀도 조금 피곤해하고 있는 것 같네요. 전시회는 처음이라 요즘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슬란 씨는 바닥에 떨어진 그림책에서 뻗은 담쟁이덩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란 씨에게 다가서는 루카 씨의 가는 은발이 희미하게 흔들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히스클리프: ……저희들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에는 마력이 안정되지 않아 마법을 잘 쓰지 못해요.
아슬란: 마음으로 마법을……?
히스클리프: 네. 저도 가끔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법을 쓰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부드럽게 다가서는 산들바람처럼 살짝 미소를 지은 히스클리프가 말을 잇는다. 그 목소리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상냥함이 배어져 있었다.
……저도 긴장하면 굳어지는 기분은 잘 알아요.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인간인 저조차도 그러니, 마음으로 마법을 쓰는 여러분들은 더 힘들겠죠.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두근거렸을 때, 제 긴장을 풀어준 건, 저 금발의 분이에요.
히스클리프: 저…… 인가요?
네. 마법관에서 처음 아침을 맞이했을 때, 함께 아침을 만들고……. 그때 그가 슈가를 꺼내줘서 마음이 풀렸던 기억이 나요.
히스클리프: 아아…… 그랬었죠. 그립네. 조금 쑥스럽지만 현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기뻐요.
루카: ……슈가?
루카 씨의 연분홍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가루설탕 같은 달콤한 기대가 담긴 속삭임이었다. 아슬란 씨의 양복을 움켜쥔 채 커다란 눈동자가 이쪽을 보고 있다.
루틸: 루카, 손을 내밀어 봐.
루틸의 부드러운 미소에 이끌리듯 루카 씨가 살짝 단풍잎 같은 작은 손을 내민다. 루틸의 손끝이 그 손바닥을 살짝 쓰다듬자, 별 모양 슈가가 나타났다.
루카: ……!
아슬란: 대단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건…… 마법인가요?
루틸: 네. 마법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슈가만큼은 마력으로 만들 수 있거든요. 자, 루카. 이걸 먹으면 건강해지고 마음도 안정될 거야. 약간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분명 기분도 풀릴 거야.
루카: 이게 슈가…….
시노: 뭐야. 너, 마법사면서 그런 것도 모르는 건가.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돌리자 어느새 시노가 옆에 서 있었다. 소란을 듣고 온 건지 아서와 미스라, 무르의 모습도 있다.
루카: 작다. 별 같아. 이거, 먹는 거야?
루틸: 응. 먹어도 돼!
달아서 엄청 맛있어요.
루카: …….
슈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큰 눈에는 당혹감과 호기심이 공존하고 있다. 그때…… 쭉 뻗어나온 것은 긴 팔. 루카 씨의 손바닥에서 슈가를 뺏어간다.
현자 / 루틸 / 히스클리프: !?
미스라: 바리보리.
미, 미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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