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파우스트: 레노!
레녹스: 미틸. 내 뒤로!
네로: 리케도 이쪽으로 와!
미틸 / 리케: ……네!
브래들리: 움직임이 징그럽군.
라스티카: 우리를 무척이나 경계하는 것 같아.
카인: 이쪽의 방향을 찾고 있는 건가.
도처의 식물들이 위협하듯 우글우글 움직인다. 아서가 오즈에게 옷깃을 잡힌 채 냉정하게 고한다.
아서: 미안해……. 아마 아까 나의 마법의 영향도 있겠지. 이 세계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마력을 조절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
오즈: 이곳은 여린 공간이다. 강한 간섭은 세계의 윤곽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마침내 붕괴로 이끌겠지.
스노우: 음. 사소한 것이라면 몰라도 이 세계에 간섭하는 강한 마법은 삼가하는 것이 좋겠군.
화이트: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서라서 다행이지. 그대나 미스라였다면 이 공간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시노: 귀찮네. 덩굴을 써는 건 괜찮지? 이러면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클로에: 저기, 경치도 왠지 어두워졌어!
리케: 하늘이 점점 거무스름해지고 있어요. 검은 물감을 물에 빠뜨린 것처럼…….
무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라스티카: 바람도 강해졌어……. 아, 식물이 움직일 때마다 경치가 무너져 가네.
피가로: 아무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오웬: 불안정한 세계는 나쁘지 않아. 이대로 부서지면 좋을 텐데.
미틸: 하지만 그렇다면 루카 씨도 저희도 삼켜져버릴 거예요!
샤일록: 빨리 그 기억의 조각이라고 하는 것을 찾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모두가 이 자리를 떠날 수도 없죠.
루틸: 제가 남을게요! 루카를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요……!
바람이 부는 가운에 히스클리프에 기대고 있는 아슬란 씨를 곁눈질 한다. 루카를 아끼는 마음이 차분히 전해지는 그의 온화한 말투가 떠올라 말을 이었다.
아슬란 씨와 함께 루카 씨를 돕고 싶어요. 저도 이곳에 남을게요!
아서: 그렇다면 저도! 방금 전의 감촉으로 마법의 정도는 파악했습니다. 현자님들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미스라: 어쩔 수 없네……. 루틸이 남는다면 저도 남을게요. 미틸도.
미틸: 아뇨……. 저도 제 나름대로 루카 씨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싶어요. 기억의 조각을 찾으러 갈게요.
미스라: 하아?
미틸: 혼자 가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미스라가 섬뜩한 눈빛으로 본 미틸의 시선의 끝은 피가로와 레녹스를 포착한다.
피가로: 무서운 얼굴 하지 마. 걱정하지 않아도 위험한 일은 당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
레녹스: 아아, 절대로.
피가로: 게다가 조심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지만, 이 세계는 그녀가 그린 거지. 설령 원래는 흉악한 성질의 씨앗을 그렸다 하더라도 그녀의 손으로 이 세계의 생을 받은 것이라면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아. 너도 왠지 모르게 눈치챘잖아. 왜냐하면 여기가 제일 이상한 기색이 강하니까.
미스라: 뭐…… 그런 것 같지만요. 미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무르: 그럼 나도 여기 남을게! 이 세계의 변용은 아마 그녀를 기점으로 시작되었을 거야. 앞으로 더 이상한 일이 생긴다면 분명 여기서부터!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세계의 이상한 이변! 놓치고 싶지 않아!
샤일록: 그렇네요……. 이 세계는 당신에게 있어서 유혹이 많을 것 같고, 데려가는 쪽이 더 힘들 것 같네요.
화이트: 좋은 판단이네. 이 세상에 있는 건 신기한 생물들 뿐이다.
스노우: 흥미를 느끼는 사이에 세계가 붕괴하면 안되니까 말일세.
화이트: 나머지는 만약을 위해 또 한 사람, 전투에 익숙한 마법사가…….
시노: 내가 남는다. 그럼 안심이지.
히스클리프: 시노……. 나도 남을게.
시노: 이 정도는 여유다. 나를 믿어.
히스클리프: 걱정하는 거야. 맨날 무턱대고 나가니까.
시노: 그럼 더더욱 그렇지.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네가 옆에 있는 쪽이 내가 엉망이 돼.
히스클리프: 너……. 나를 협박할 생각인가?
시노: 그럴 리가 없잖아. 공을 보여주고 싶은 것 뿐이야.
히스클리프: ……시노가 유능하다는 건 내가 잘 알아. 너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시노: ……주군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너의 믿음을 져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게. 그러니 현자는 맡겨둬.
히스클리프: ……알겠어. 믿을게.
스노우: 우리도 믿고 있다만, 적당히.
화이트: 그러면 현자여, 이것을.
수정구슬…… 인가요?
화이트: 그렇네. 이걸로 우리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 최소한의 연락은 할 수 있겠지, 파우스트.
파우스트: 아아. 현자, 손을 내밀어줘.
손을 내밀자 파우스트는 내 손에 마법진을 그렸다. 동시에 쌍둥이, 오즈, 샤일록, 피가로, 그리고 파우스트의 손에도 같은 마법진이 떠오른다.
이건……?
파우스트: 기억의 조각을 발견하면 현자에게 모이게 한다. 그러면 한시라도 빨리 그녀에게 돌려줄 수 있겠지. 너와 루틸은 그녀와 교류가 있는 것 같으니까. 마음에 간섭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 적임일 거야.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게요.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그러자 록시가 살짝 선회하며 내 손에 멈추었다. 푹신푹신한 그 몸이 떨더니 방울 같은 높은 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러자 분홍색 진주에서 다섯 개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리케: 빛을 따라가라는 건가요?
파우스트: 그렇다면 제휴를 취하기 쉬운 나라 마다 헤어져서…….
아슬란: 저기…….
히스클리프에게 안긴 아슬란 씨가 쥐어짜듯 소리를 냈다. 머리를 부딪혀서 아직도 몽롱한 것 같다.
아슬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말려들어 버려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그녀가 그린 세계를 즐겨주세요.
아슬란 씨…….
브래들리: 무슨 뜻이야. 네 녀석이 그 아가씨를 아끼는 건 보면 알아. 그 녀석이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떄에 태평스러운 말을 꺼내다니, 무슨 이유가 있겠지.
아슬란 씨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슬란: ……이 세계는 그녀가 보고 있던 세계입니다. 여기 있는 건 루카의 친구들. 분명 누군가를 덮치거나 하는 것은 본의가 아닐 거예요. 루카는…… 조금 괴짜지만 상냥한 아이니까요. 게다가, 이 세계는…….
아슬란 씨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그 끝에는 거무스름한 경치 사이로 노을색을 닮은 구름이 둥둥 떠 있었다. 약간 밝은 초록색이 섞인, 바깥 세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신기한 색채. 하지만, 그 색감은 어딘가 그립고…….
아슬란: 얼마나 아름다고 상냥한가요.
쉰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추억을 더듬듯 떨리는 손가락이 하늘을 어루어 만진다.
아슬란: 그 아이가 알려줬습니다. 노을 앞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저렇게 부드러운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이 세계에 있는 하나하나는 그녀가 마음을 움직여 붓에 올려놓기를 바랐던 아름다운 세상의 조각들. 신기한 것도 많지만 무심코 지내다 보면 놓치는 작은 행복으로 넘쳐나죠.
아슬란: 그런 루카의 그림책 속에서 미워하거나 싸우고 싶지 않아요. 제멋대로인 의견이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힘없이 내려오는 아슬란 씨의 손을 잡은 것은 루틸이었다. 봄의 어린 풀 같은 부드렁누 눈동자로 똑바로 아슬란 씨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건넸다.
루틸: 루카가 그리는 세계는 루카의 마음 그 자체군요. 하늘도, 숲도……. 여기에 있는 것들 전부.
아슬란: 루틸 씨…….
아슬란 씨의 손에 힘이 실리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광경에 왠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저도 이 세계를 지키고 싶어요. 그리고 아슬란 씨의 말대로 할 수 있다면 이 세계를…….
무르: 즐길 수 있어! 지금 당장! 왜냐하면 우리는 마법사. 미지의 것이나 위협도 즐길 수 있어!
무르는 순진하게 웃더니 아슬란 씨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얹었다. 그 순간, 세계의 채도가 더해진 것 같다. 무르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무르의 말과 미소가 그렇게 생각하게 해준 것이다.
무르: 여기는 어느 때보다 마법사답게, 지?
익살맞게 무르가 뾰족모자를 쑥 든다. 그것을 보던 마법사들은 똑같이 모자를 올리거나 잔소리를 한다거나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모두 함께 무거운 허리를 들었다.
(……뭘까. 역시 당할 수가 없네.)
그들을 보며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아슬란: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슬란 씨는 그렇게 말하자 안심한 듯 뺨을 풀고 의식을 놓았다.
히스클리프: 아……. 잠들어 버린 것 같아요.
피가로: 가벼운 뇌진탕이네. 상처에는 치유 마법을 걸어놓을 테니까 조금 쉬면 괜찮아.
스노우: 그렇다면 조각을 찾으러 가기 전, 충고 하나 하겠네. 앞서 언급했지만 이곳은 미지의 세계. 게다가 이 세계를 만들어낸 아이는 마음이 피폐해진 마력이 약한 마법사다.
화이트: 아이의 마력 이상으로 강하게, 이 세계에 간섭하는 마법은 삼가도록. 최악의 경우 이 그림책의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르네. 그렇다면 우리는 몰라도 젊은 마법사들에게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 갈라져 행동하게 되면, 만일의 경우에 우리라고 해도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네. 조심하게나.
브래들리 / 오웬 / 미스라: …….
그리하여 마법사들은 다섯 빛을 의지하여 그림책의 세계 속으로 나아간다. 쌍둥이에게 맡긴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마법사들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손에 든 분홍색 진주를 꽉 움켜쥐었다.
(부디……. 무사히 기억의 조각들이 모이기를…….)
17화
샤일록과 클로에, 라스티카가 향한 곳은 숲의 화원이었다.
클로에: 빛은 이 근처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은데…….
라스티카: 봐봐, 클로에. 이 식물들, 악기처럼 생겼어.
클로에: 정말이다! 이건 바이올린인가? 저건 분명 트럼펫일 거야!
샤일록: 유쾌환 화원이네요. 즉흥 연주라도 시작할까요.
그때, 바람이 불었다. 식물들은 쾌활하게 흔들리며 음악을 연주한다. 마치 춤추는 행진 밴드 같다.
라스티카: 너희들은 춤도 잘 추는구나. 음악도 잘 어울려서 댄스파티 같아!
'같이 춤추자' 며 손을 뻗듯 춤추는 식물들로부터 담쟁이 덩굴이 뻗어나온다.
클로에: 어라? 담쟁이 덩굴이 뻗어나오고 있어!? 잠깐…….
라스티카: 괜찮아 클로에. 스텝을 멈추지 마. 봐, 우아한 선율의 귀여운 왈츠야.
샤일록: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로부터 춤을 추자고 권유받을 수 있다니, 드문 체험이군요.
클로에: 아……. 저기 좀 봐! 신기한 생물이 있어.
클로에가 가리키는 초목 그늘에서 채찍같은 꼬리를 가진 신기한 생물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다. 숨어 있는 것 같지만 반대쪽에서 특징적인 꼬리가 툭 튀어나와 훤히 보인다.
라스티카: 이런, 멋진 꼬리네. 안녕. 작고 귀여운 너.
샤일록: 그 밖의 생물은 보이지 않는군요……. 저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환수인 걸까요?
클로에: 으음, 어떨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말이 통할까?
라스티카: 시도해볼까. 일단은 자기소개부터.
라스티카는 환수에게 다가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라스티카: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라스티카. 네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억의 조각에 이끌려 왔어. 어떤 식으로 이끌려 왔냐고? 꽃피는 시기를 가르쳐주는 봄볕 같은 부드러운 빛이 이끌어줘서…….
클로에: 어라……? 저 아이, 꼬리를 뻗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라스티카: 아아, 정말이다. 너의 기분을 들려줬으면 좋겠어. 춤 추는 기분? 아니면 다과회의 기분?
그러자 환수는 갑자기 이상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샤일록: 기묘한 자세를 반복하고 있군요. 뭔가를 전하려는 걸까요?
클로에: 저기, 혹시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으음, 적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위협하는 거라면?
클로에: 그렇다면……. 에잇!
뭔가를 생각해 낸 클로에가 환수와 같은 포즈를 취한다.
라스티카: 클로에. 어째서 움직임을 따라하는 거니?
클로에: 같은 포즈를 취하면 우리는 적이 아니라고 알아주지 않을까 하고…….
샤일록: 과연……. 일리가 있군요. 저도 해보겠습니다.
앞발을 높이 든 환수를 보며 샤일록이 오른손을 번쩍 든다.
샤일록: 이렇게인가요?
클로에: 응! 좋은 느낌…… 이지만, 뭘까? 조금 두근두근거리는 것 같은……?
샤일록: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샤일록은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든다. 쭉 뻗은 손가락 끝까지 아름답고 화려한 움직임이었다.
클로에: 맞긴 하지만, 왠지 너무 어른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라스티카: 저기, 클로에. 이건 어때?
클로에: 에!? 라스티카, 제대로 보고 있어? 손도 발도 제각각이야.
라스티카: 당연하지. 봐, 똑같지?
클로에: 에에……. 아, 포즈가 달라졌어! 둘 다 힘내!
클로에: 이얏! 욧! 어라? 그거 손이랑 발 모양이 어떻게 된 거야!?
샤일록: …….
클로에: 아……. 샤일록, 괜찮아? 피곤해?
샤일록: 아쉽게도 이 포즈는 힘들겠군요. 조금 쑥스러워서…….
클로에: 몸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네. 노래나 연주가 있으면 더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텐데. 자, 이런 식으로…….
라스티카가 우아하게 콧노래를 부르자 환수는 그것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라스티카: 이런. 혹시 너도 노래나 음악을 좋아하는 거니?
라스티카가 노래를 입술에 올린다. 그러자 그에 호응하듯 환수의 포즈가 점점 변해간다.
클로에: 와앗!? 그렇게 신나서는 따라갈 수 없어……!
샤일록: 이런……. 클로에, 위를 보세요.
클로에: 에? 와앗!? 우와와와와!
부글부글 거대해진 환수의 긴 꼬리가 클로에의 로브를 잡아당겨 들어올리려 학 ㅗ있었다. 꼬리를 화려하게 피한 라스티카가 클로에의 손을 잡아 끌어안는다.
라스티카: 클로에, 다친 데는 없어?
클로에: 괘, 괜찮아. 고마워!
샤일록: 그건 그렇고 갑자기 몸이 커지다니 놀랍군요. 이 세계를 유지하는 마력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탓일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바닥 사이즈라 사랑스러웠습니다만…….
클로에: 크니까 씩씩해 졌지. 꼬리 백작! 같은 느낌이야.
클로에는 긴 꼬리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고 있는 환수를 올려다보았다. 경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클로에: 포즈를 따라가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우리는 너의 적이 아니야.
샤일록: 네. 그 증거로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보답하도록 하죠.
샤일록은 요염한 몸짓으로 파이프를 물고 후…… 하며 연기를 내뿜었다.
샤일록: 제가 부는 달콤한 바람으로 라스티카의 노래에 멋진 반주가 곁들여졌으면 좋겠는데요.'임비벨'
장미 향기를 실은 바람이 완만하게 화원을 돌아다닌다. 악기 모양의 화초들이 그것에 흔들리며 차례차례 음색을 내기 시작했다.
라스티카: 훌륭해……. 마치 오케스트라의 서주 같아. 멋진 바람 고마워, 샤일록.
샤일록: 저야말로 멋진 노랫소리를 들었으니까요. 자, 꼬리 백작의 움직임도 완만해졌습니다.
클로에: 진짜다.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즐기는 것 같아……!
라스티카: 그렇다면 나도 다시 한 번 같이 즐겁게 해볼까.
라스티카는 화원 중앙으로 나아가자 손을 하늘로 쭉 뻗었다.
라스티카: 자, 내가 지휘자야. 지금 여기서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자. 샤일록, 달콤하고 자극적인 바람을 한 번 더 불어주겠니?
샤일록: 네. 기꺼이.
연한 붉은색을 두른 바람이 바이올린 같은 꽃줄을 어루어만지면 트럼펫 모양의 꽃봉오리가 호응한다. 윈드챠임처럼 이어진 덩굴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고, 옆으로 가늘고 길게 피는 꽃에서는 시원한 피리 소리가 들린다. 마치 오케스트라 같은 대연주 속 신나게 춤추는 환수가 원래 크기로 돌아간다. 훌쩍 뛰어올라 환수가 한 바퀴 돌더니 클로에를 향해 붉은 진주가 던져졌다.
클로에: 이거……!
클로에의 손 안에서 붉은 진주가 얕게 빛났다. 그리고 빛이 튀었다.
숲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것은 어린 소녀. 그녀의 가슴에는 너덜너덜한 종이 뭉치와 낡은 나무 펜이 보물처럼 안겨져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이 보는 신기한 세계를 그리는 것만이 그녀에게 있어서 편안한 시간이었다. 마법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맡겨진 수도원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밤마다 빠져나와 혼자 울고 있었다. 거기에 나타나는 채찍 같은 꼬리를 가진 환수.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위협하지만, 그녀는 그 포즈가 이상해서 웃고 만다.
루카: ……이렇게 웃어본 적, 처음일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나에게 다가와주는 것도, 분명 처음…….
연보라의 커다란 눈동자가 환수를 빤히 쳐다본다. 환수는 자랑스러운 꼬리를 치켜들면 마치 택트를 흔드는 것처럼 리듬을 새긴다. 그러자 신기한 꽃들이 찾아왔고, 금세 대연주가 시작되었다. 혹시…… 라며 그녀가 묻는다.
루카: 울고 있던 나를…… 위로해주는 거야?
부드러운 연주가 그녀를 감싸 안는다. 그 음악에 맞춰 루카는 몸을 흔들었다. 마음이 천천히 풀려간다.
루카: 저기…….
루카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과감하게 그 말을 꺼냈다.
루카: 나의…… 친구가 되어줘.
오즈와 카인, 리케가 향한 곳은 깊고 우거진 숲속. 큰 나무들이 즐비하고 습한 바람이 조용히 부는 가운데, 행선지를 가리키는 빛이 여기저기를 비추듯 아랑곳없이 흔들리고 있다.
오즈: 빛의 위치가 안정되지 않는군…….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리케: 성급한 환수인 걸까요.
카인: 삐약삐약 소리가 나네. 하늘을 나는 거라면, 새의 환수일지도……. 응? 뭐야 너희들.
덤불에서 나타난 것은 개 같은 생물이었다. 전신의 털이 푸석푸석하고 사람을 등에 없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크다.
리케: 개…… 치고는 크네요.
카인: 두 마리나 있네. 자, 착하지 착하지.
익숙한 손눌림으로 재잘거리는 카인을 리케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오즈: 쓰다듬고 싶나?
리케: 물거나 하지 않나요?
오즈: 가능성은 있지만…….
리케: 에.
카인: 의미없이 물지는 않지. 예를 들면 마음에 안 든다거나. 복수라던가. 하지만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애정표현이기도 하지.
리케: 좋아하는데 무는 건가요? 조금 어려워요.
카인은 그 손바닥을 리케의 머리에 툭 올린다.
리케: 무슨 일인가요……? 악수라면 오늘 아침에 했을 텐데.
머리에 손을 얹은 채 리케는 카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18화
카인: 아니, 그립구나 싶어서. 처음 이렇게 닿았을 때 리케는 나를 물었었어.
리케: 에!? 저는 그런 거 안 했어요.
카인: 말투 말이야. 그때는 내가 만지는 걸 싫어했잖아?
리케: 그건, 뭐…….
카인: 그럼 지금은 왜 안 물어?
리케: ……카인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
카인: 아아, 안심해. 나는 네가 불쾌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아. 자, 쓰다듬어봐.
리케: ……와아……! 푹신푹신해서 기분이 좋아.
카인: 하하, 이 녀석도 기분이 좋은 얼굴이네.
리케: 후후…… 간지러워요. 오즈도 쓰다듬어 볼래요?
오즈: 나는 됐다. 그보다 훨씬 빛에 가까워졌어.
그러자 오즈는 바로 위를 쳐다보았다. 기억의 조가이 보여주는 빛이 상공에서 차분하게 흔들리고 있다.
리케: 꽤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네요. 마법도 잘 못쓰는데, 어떻게 불러들일까요?
카인: ……그렇지. 삐약! 삐약!
오즈: 갑자기 뭐야.
카인: 만약에 진짜 새의 환수라면 울부짖다 보면 들릴 수도 있잖아. 오즈, 너도 풀피리를 잘하니까 따라해봐…….
그때, 삐약삐약!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동그란 새가 곤두박질쳤다.
리케: 와아…… 새다! 정말 왔어! 카인, 대단해요.
동그란 새는 손이 닿을 듯한 가지에 멈추었다. 보면 두 마리의 개가 둥실둥실 꼬리를 흔들며 등을 기댄다.
카인: 혹시 등에 타라는 건가?
리케: 이 숲은 뒤엉켜 있으니 안내해 주는 걸지도 몰라요!
카인: 확실히! 오즈, 잠깐 다녀올게. 금방 돌아올테니 기다려줘!
오즈: 잠깐…….
카인이 홀가분한 몸짓으로 그 생물의 등에 뛰어올랐다. 리케도 그 뒤를 이어 큰 체구에 발을 올렸따. 그리고 두 사람과 두 마리는 순식간에 숲 속으로 달려갔다.
오즈: …….
두 마리의 생물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며 질주한다. 그 등에 매달리는 리케가 초조한 듯 숨을 헐떡였다.
리케: 빠, 빨라……!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튕겨나갈 것 같아…….
카인: 리케, 자세를 낮춰! 가급적 바람의 저항을 받지 않도록 이 녀석에게 몸을 기대고 적당히 힘을 빼.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집중하고!
리케: 네, 네. 자세를 낮추고 힘을 빼고…….
카인: 그래, 잘한다! 그거야!
앞서가는 카인이 어깨너머로 돌아보며 리케를 보조한다. 리케는 자랑스럽게 뺨을 풀었지만 이내 눈동자에 집중력을 되찾았다. 승마 기수처럼 몸을 굽힌 두 사람이 바람과 일체화하듯 깊은 숲을 달려간다. 이윽고 한참을 달리다가 뒤엉킨 길을 빠져나와 탁 트인 곳으로 나왔다.
카인: 어디 갔지……?
울음 소리를 내는 개들. 한층 높은 나무 꼭대기에 새의 모습이 있었다. 가지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된 것 같다.
리케: 제가 갈게요! 이 아이의 다리가 있으면 나무 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아.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개들은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카인: 확실히 리케는 가벼우니까. 그런데 상당한 높이야. 괜찮겠어?
리케: ……용기를 내볼게요.
카인: 리케.
카인은 이름을 부르면서 격려하듯 리케의 등을 토닥였다.
카인: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받아줄게. 부탁한다!
커다란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카인의 곧은 믿음이 리케의 등을 밀었다. 리케는 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리케: 네. 맡겨주세요!
리케가 허리를 숙이고 몸을 굽히자 그를 태운 개가 벌떡 땅을 밟으며 높이 뛰어오른다. 가지에서 가지로 대담하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쭉쭉 높은 나무를 올라간다.
카인: 밑은 안 보는 게 좋아! 그 녀석과 나만 믿고 위로 가는 거야.
리케: 네!
카인은 소리를 높여 눈을 기울이면서 리케의 모습을 확인한다. 떨어질 것 같은 장소를 지켜보며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발판은 적고 가지는 가늘어진다. 손에 땀을 쥐는 듯한 광경을 앞에 두고 리케는 용감하게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거의 다 도달한 리케가 움직일 수 없게 된 새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리케: 이제 괜찮아요. 저는 당신에게 상처를 줄 만한 짓은 하지 않아요. 안심하고 저에게 몸을 맡기세요. 지금 도와드릴게요……!
바짝 매달리던 큰 등에서 몸을 일으켜 줄기에 손을 얹고 리케는 힘차게 뛰어올랐다. 그의 몸이 둥둥 공중에 떴다. 편손바닥에 동그란 새가 몸을 기댄다. 리케는 활짝 웃는 얼굴을 보이며 새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리케: 됐다!
카인: 좋았어……!
하지만 리케가 뛰어오른 끝에는 발판이 없다. 순간의 안도도 잠시, 그대로 낙하해 간다.
리케: 와…… 앗!
그 몸을 받아들이려고 뛰어간 것은 카인이었다. 도움닫기를 달고 개의 등에서 뛰어오른다.
카인: 잘했어, 리케! 나머지는 나에게 맡겨…….
그때, 문득 두 사람의 몸이 떠올랐다.
카인 / 리케: ……!
오즈: 너희들…….
목덜미를 잡힌 듯 허공에 매달리는 두 사람의 곁에 나타난 것은 빗자루를 탄 오즈였다.
오즈: 강한 마법을 쓰지 못한다지만 빗자루가 있으니 쉽게 뛰쳐나가지 마라.
카인: ……확실히!
리케: 그랬었죠!
리케의 팔 안에서 얌전히 웅크리고 있는 새의 부리에서 카인이 노란색 구슬을 받는다. 그것은 옅게 빛나고 있었다.
수도원 정원 일을 하던 중 루카는 특이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와글와글 숲 쪽에서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짐승 소리도. 그녀는 한눈 팔지 마, 손을 움직여 라며 더러운 천을 내던진다. 그녀는 기뻤던 것이다. 그건 친구가 떠드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밤늦게 숲으로 들어선 그녀는 낮에 들은 목소리를 쫓아간다. 이윽고 삐약! 별난 울음소리가 들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뭇가지에 동그란 새가 걸려 있었다. 다음에 사뿐히 덤불에서 나타난 것은 큰 개 같은 두 마리의 생물. 낮에 들린 와글와글한 목소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루카: 저 아이, 너희들의 친구야?
루카를 따르는 그들은 그녀의 손을 핥고 무언가를 호소하듯이 운다.
루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지만……. 그렇지. 나를 저 나무 꼭대기까지 올려줄래?
누구에게도 마법을 배워본 적이 없는 루카는 빗자루로 날아간다는 것을 아직 몰랐다. 작은 몸은 개와 함께 용기를 다해 높은 나무를 뛰어오른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숨을 헐떡이며 공포와 흥분 사이에 마음을 뛰며 루카는 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사히 구해내고 손바닥에 들어가느 동그란 새를 품에 안고 그녀는 크게 숨을 쉰다.
루카: 이렇게 두근두근거리는 건 처음…….
루카: 저기, 몇 번이나 높은 벽에 걸려도 괜찮아. 그때마다 내가 도와줄게. 몇 번이라도 두근두근하고 싶으니까…….
빛을 따라 파우스트와 히스클리프, 네로는 아름다운 호수에 다다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깨끗한 호수네요. 왠지 차분해지네.
네로: 물도 맑네. 보아하니 생물이 헤엄치고 있어.
세 사람이 호수를 들여다보니 작은 돌고래 같은 생물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히스클리프: 와아…….
살며시 다가가 보니 휘익 하고 높은 소리로 울었다.
히스클리프: 귀여워!
파우스트: ……귀엽군.
네로: ……아아, 귀엽네.
히스클리프: 동글동글한 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아요. 울음소리도 치유되고…… 푹신푹신해.
히스클리프: 어라, 이상하네. 왠지 졸음이…….
파우스트: 괜찮아? 기분이 좋지 않다면 조금 쉬어…….
히스클리프: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네로: 나도 약간 눈이 침침할지도. 선생은 괜찮아?
파우스트: 나는 문제 없어. 그러나…… 어딘가의 옛 문헌에서 본 기억이 있어. 맑은 호수에 사는 작은 물의 짐승 중에는 드물게 울음소리 특수한 효과를 갖는 것이 있다고.
히스클리프: 맑은 호수의 작은 물의 짐승……. 혹시 이 아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파우스트: 확증은 없지만 그럴 경우 울음소리의 작용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지 않아. 혹시 모르니 조심해두는 게 좋겠어.
네로: 잠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히스는 감각이 예민하니까 이런 거에 당하기 쉽지 않나?
히스클리프: 후아암. 그럴지도…….
네로: 아하하, 말하자마자 옆에서. 어이, 괜찮…… 후아암. 젠장, 나도 졸려서 미치겠어.
파우스트: 둘 다 정신 차려. 이 세계나 여기 있는 생물들은 다 그 소녀가 그려서 모양을 낸 것이다. 큰 위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네로: 어라…… 선생. 지금 하품 참았어?
파우스트: 우연이다. 그런데 빛은 호수의 바닥을 가리키는 것 같군. 더 이상 졸음이 심해지기 전에 기억의 조각을 찾는다.
네로: 졸리잖아.
19화
히스클리프: 있잖아, 너. 기억의 조각이라는 걸 알고 있니?
히스클리프가 묻자 휙 소리를 낸 뒤 꼬리 지느러미로 수면을 두드리고 호수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네로: 손짓을 받은 것 같지 않았나? 잠수해 볼까?
히스클리프: 에? 잠……?
네로: 아…… 그렇지. 너는 별로 수영을 안해봤으니까.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건 거부감이 있나?
히스클리프: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별로 안해봤을지도.
파우스트: 그러고 보니 물 속에서 숨쉬는 마법은 아직 가르치지 않았군. 하지만…… 괜찮을 것 같아. 물의 감각은 있지만 만져도 손은 젖지 않았어. 이곳은 그림책의 세계니까. 현실의 물과는 다른 것 같아.
네로: 오오, 정말이네. 뭔가 이상한 느낌…….
히스클리프: 이상한 감각이네……. 그래도 이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파우스트: 아아.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줄게. 가자.
세 사람은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의 감각은 있지만 답답해 보이지도 않고 대화도 가능한 것 같다. 돌고래 같은 생물은 세 사람의 주위를 유유히 돌며 꼬리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쳐 나간다. 권유를 받는 대로 따라가니 많은 소품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나왔다.
파우스트: 작은 병에 유리잔에 비즈……. 반짝반짝한 소품들 뿐이군.
그러자 작은 돌고래가 무언가를 날라왔다. 히스클리프를 향해 삑삑 운다.
히스클리프: 무슨 일이야? 빛나는 조개껍질 조각……?
네로: 보물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 봐봐, 차례차례로 여러 가지를 가져오고 있고.
파우스트: 빛을 모으는 습성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기억의 조각도 이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네로: 그러면 나눠 찾을까. 뭔가 보물 좀 찾아봐. 귀여운 잡동사니들 뿐이야.
히스클리프: 그래도 분명 저 아이한테는 보물일 거야.
네로: 알고 있어. 하나하나 소중한 보물이란 것은 있는 법이니까.
히스클리프: 응……. 그렇지. 나도 중요한 걸 담고 있는 작은 상자가 있어. 처음 만든 기계장치 인형이라던가, 엉성하게 가공한 꽃이라던가…….
네로: 꽃?
히스클리프: 시노가 준 거야. 처음 싸우고 처음 화해했을 때.
네로: 하하……. 귀여운 추억이네.
파우스트: 흐뭇하군.
히스클리프: 그……. 시노는 모르니까 비밀로 해주세…… 후아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조금 졸려지기 시작한 것 같아.
파우스트: 여긴 환수가 사는 곳이니까. 수면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조심해. 나에게서 떨어지지 말고.
네로: 야……. 그 환수, 아까부터 계속 저 근처를 빙빙 돌고 있어.
히스클리프: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네……. 군데군데 바닥이 파낸 것처럼 부드럽게 변용되어 있어.
네로: 우선은 그 근처를 찾아서……. 꼬르르르르륵.
히스클리프: 네로!?
파우스트: 왜 갑자기 빠져드는 거야……!? 어이 잠깐만, 뜨지 마!
네로: 하……. 미안. 뭔가 이렇게 불쑥 의식이 사라져 버려서…….
히스클리프: ……혹시 그림책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여기가 물속이라서?
파우스트: 이 자리에서 졸음에 굴복해 버리면 평범하게 빠져버린다는 건가……?
네로: 위험하……. 어라, 자면 안된다고 생각하면 또 졸려…….
히스클리프: 네, 네로! 아아 기다려, 떠다니지 말아줘……!
파우스트: 어이, 정신 차려!
네로: 아, 아슬아슬하게 깨어있다니까!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아도…….
히스클리프: 하지만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갑자기 의식을 가져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파우스트: ……이 세계의 질서가 불안정해지고 있는 것이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몰라. 어쩔 수 없지.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눈을 감은 파우스트가 속삭이듯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획 시선을 돌리던 히스클리프와 네로가 잠에서 깬 듯 번쩍 눈을 깜빡였다.
네로 /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마법의 간섭은 삼가라고 했지만 일시적인 졸음을 깨웠어. 이 세계를 위협할 정도의 마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기분은 어때?
히스클리프: 깔끔해요!
네로: 아아, 개운해! 지금 안에 조각을 찾아버리자.
기운을 되찾은 동쪽의 마법사들이 호수 바닥을 열심히 파내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주변의 여러 가지 일을 마법으로 꾸려가는 이들이 모여 땅을 파고 있는 것은 왠지 신선했다.
파우스트: 바닥의 흙이 꽤 부드럽네……. 세계의 변용은 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가.
히스클리프: 이러면 스스로 숨긴 것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네로: 히스는 흙장난 같은 건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교적 익숙한 솜씨네.
히스클리프: 흙놀이 경험은 별로 없지만 화단을 관리하는 건 좋아하니까. 게다가 시노는 흙으로 공을 만드는 걸 잘해.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쁜 걸 만들어준 적이 있어.
파우스트: 그것도 작은 상자에 보관되어 있나?
히스클리프: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로: 하하. 의욕적인 건 좋은데 손 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진흙투성이가 되었어.
파우스트: 장난꾸러기처럼 생겼군. 시노가 보면 화낼 것 같네. 히스에게 그런 짓 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시간은 별로 없어. 일시적인 마법밖에 걸지 않았으니까. 서둘러서 파헤치자.
평소 잘 더러워지지 않는 손이나 얼굴에 진흙을 묻히고 세 사람은 흙을 파헤쳤따. 그러다가 마법이 약해지는 가운데 꾸벅꾸벅 졸면서 푸른 진주를 찾아낸 것은 히스클리프였다.
히스클리프: 아, 있다……. 후아암…….
네로: 이런. 아직 자면 안돼! 수고했어.
파우스트: 잘 해냈구나.
조각을 발견해 기쁜지 작은 돌고래가 삐익거리며 세 사람 주위를 헤엄치고 있따. 히스클리프의 손 안에서 푸른 진주가 옅게 빛나고 빛이 튀었다.
또 묘한 말을 해서 징그러워. 쟤는 맨날 거짓말만 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분명히 화가 났을 거야. 같은 수도원에 맡겨진 아이들 사이에서 슬며시 들은 이야기. 귀를 막든 눈을 막든 그것들은 하염없이 루카의 몸에 쏟아졌다. 징그러운 소리만 하는 너와 함께 있으면 나쁜 꿈을 꿔. 마법사에게 줄 잠자리는 없어.
그리고 루카에게 주어진 것은 헛간 구석의 단단한 바닥과 닳아빠진 얇은 담요. 매일이 외롭고 추워서 잠 못자는 밤. 루카는 매일 밤 수도원을 빠져나와 근처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숲의 초지는 원바닥보다 부드럽고 마감된 헛간보다 너무 밝을 정도의 달빛 아래에 있는 것이 안심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카는 한밤 중에 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자장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 그녀는 그 목소리를 찾아 호숫가를 헤매었다.
루카: 있잖아, 누군가가……. 나를 잘 수 있는 그곳으로 데려다 줘.
그러자 호수면에서 작은 돌고래를 닮은 신기한 생물이 나타나 꾸욱 고개를 들이민다.
루카: 하지만 사실은 조금 무서워. 잠이 든다는게 뭐야? 잠자는 그곳은 깊어?
신기한 생물의 권유로 어린 루카는 호수의 바닥으로 헤엄쳐 간다.
루카: 정말 멋지다. 좋아하는 것에 감싸여 잠든다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는구나. 여기는 밤에도 밝고 반짝반짝해서 옷이 없어도 왠지 따뜻해. 여기라면 안심하고 잘 수 있을까?
루카: 저기, 불러줘. 부드러운 외톨이의 노래를…….
연보라빛 섬광이 몇 번 깜빡였다. 경치마다 찢어지는 듯한 번개가 치고 나가는 하늘 아래 날카로운 빛의 창이 쏟아진다.
브래들리: 쳇!
오웬: 짜증나네.
그 와중에 북쪽 마법사들은 빗자루를 타고 숲을 나아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넘실대는 뇌광을 피하면서 여러 번 찾아오는 그것들에 짜증을 낸다.
브래들리: 아아 귀찮아! 한 대 때려도 되냐?
오웬: 나도 이제 한계인데.
스노우: 안돼안돼, 마법 금지!
화이트: 그대들은 조절을 못 하니까.
브래들리: 그렇다고 계속 피해도 끝은 안 난다고.
오웬: 잘 제어하면 문제 없잖아.
스노우: 그러면 묻겠다, 오웬.
화이트: 그대, 마력을 제어하면서 마법을 쓸 수 있나?
오웬: 하?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스노우 / 화이트: 몇 초 전의 본인의 대사, 벌써 잊어버렸어!?
그때 다시 큰 천둥이 쳐든다. 천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조각을 찾다가 만난 커다란 도마뱀 같은 생물이었다.
브래들리: 그건 그렇고 마음에 안 드는 공격이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얼굴이 싫어도 떠올라.
오웬: 진짜다. 그 녀석에 비하면 얼빠진 천둥이지만.
스노우: 희한하게 의견이 맞았군.
화이트: 천둥 공격에 익숙해진 사람들끼리 마음이 맞은 것 같네.
브래들리: 아?
말을 하자마자 브래들리는 쌍둥이의 뒤로 훌쩍 돌아갔고, 큰 도마뱀을 향해 두 사람의 빗자루를 걷어찼다.
스노우 / 화이트: 꺄악!
오웬: 헤에. 쌍둥이 선생님도 벼락을 맞아서 까맣게 타보고 싶다고?
브래들리: 자, 도마뱀 자식아. 사양 하지 말고 큰 놈을 쏴!
스노우 / 화이트: 그대들……. 나중에 기억하게나!
그러자 초음파 같은 기성을 지르며 큰 도마뱀이 거대해져 간다.
브래들리: 큰 놈을 부탁한다고는 했지만 덩치까지 커진다는 건 못 들었다고.
오웬: 상대를 너무 안해줘서 삐진 거 아니야?
찌릿찌릿 전기를 휘감는가 하면 위력을 더한 천둥이 쏟아졌다.
스노우: 이럴 수가!
화이트: 위력도 더해진다는 것은 듣지 못했네!
쌍둥이가 불쑥 피한 곳에서 키 큰 나무들이 벼락에 타 떨어져 쓰러졌다.
오웬: 아하하. 이러다가 우리가 뭘 안 해도 얘 때문에 이 세상이 무너질지도.
스노우: 흐음……. 확실히 이상하게 마력이 부푼 것 같군. 자력으로 제어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이네.
브래들리: 언젠가 힘이 떨어질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력이 폭주하면 귀찮아진다고.
20화
오웬: 차라리 이 세상을 통쨰로 잔해로 만들자. 전부 부서지면 환수나 인간이나 마법사나 그림책이나 뭐든지 똑같잖아.
그렇게 말하며 오웬은 빗자루 위에서 다리를 다시 꼬았다. 손바닥을 아래로 대고 트렁크를 꺼낸다.
스노우: 오웬.
화이트: 멋대로 굴지 마라.
오웬: 무서운 얼굴 해도 소용없어. 너희들이 날 말릴 수 있어?
브래들리: 젠장. 오즈나 미스라가 이 자리에 없다고 기세등등 해지기는.
오웬: 뭐야 브래들리. 널 먼저 날려줄까.
브래들리: 바보 취급한 게 아니야. 나도 비교적 인내심의 한계가 왔으니까. 한번에 같이 해버릴까.
오웬: 거절이네.
브래들리: 하하, 그거 유감이군.
화이트: 농담을 주고받을 때인가. 아까도 말했었네.
스노우: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자나 다른 마법사의 안전은 확보할 수 없네.
오웬: 미스라의 공간의 문이 있잖아. 게다가 오즈도 있어. 미스라는 멍하니 있지만 오즈는 눈치채면 뭐라도 할 거야.
스노우: 그런가? 멍하니 있기 승부인 것 같네만.
오웬: 세계의 이변이 가속화되면 누군가가 뭘 하기라도 할 거야.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녀석이 있다면 그것만 수거하는 건?
스노우: 이기적인 녀석. 지금 당장 이 자리로 오즈를 불러서 저 도마뱀에 비할 바 없는 특대의 천둥을 쳐도 되지 않을까.
화이트: 아니 아니 스노우. 그거, 결국 세계가 망하게 되니까.
브래들리: 아무래도 시간 문제잖아. 오웬, 저 녀석은 무슨 소리를 지르는 거야?
오웬: 몰라. 계속 의미도 없는 비명뿐이고, 이야기 따위는 들을 수도 없고…….
그때 오웬의 주위에 무지개빛 비늘가루가 반짜깅고 록시가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말을 알아듣는 오웬을 따라간 록시가 무언가를 호소하듯 그 어깨에 멈춘다.
오웬: …….
순간 웅성거림 같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큰 도마뱀이 찌르르 전기를 띠면서 그에 호응하듯 몸이 부풀어 오른다.
브래들리: 아아……. 이제 한계다.
그렇게 말하며 브래들리가 총을 겨눈다.
스노우 / 화이트: 브래들리!
브래들리: 원망하지 말라고!
적에게 미소를 지으며 브래들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총이 불을 뿜는다. 총알이 발사된 끝에서 무언가가 삐걱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브래들리가 노린 것은 큰 도마뱀 위에 우뚝 솟은 큰 나무줄기. 천둥 못지 않은 땅 울림을 내며 커다란 그림자가 무너져내리듯 큰 도마뱀으로 뒤덮인다. 큰 나무에 움직임이 봉쇄된 큰 도마뱀은 키이이……! 하는 소리를 질렀다.
브래들리: 하하! 내가 진심으로 하면 이렇다고.
화이트: 세상에. 마력을 조종한 건가?
스노우: 공격 마법에 있어서는 전부가 기본인 북쪽 마법사가…….
브래들리: 흥.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컨트롤은 다른 놈들이 못하는거지.
스노우 / 화이트: 꺄악! 브래들리 쨩~!
오웬: 어쩌다 잘됐을 뿐이잖아.
브래들리: 아? 삐지지 말라고.
쓰러진 큰 나무에서 꼼짝없이 해조하고 있는 큰 도마뱀 옆에 내린 오웬이 차갑게 속삭였다.
오웬: 네가 기억의 조각을 숨기고 있는 건 다 알아. 자, 빨리 입을 열어. 나는 쟤처럼 어리숙하지 않으니까, 다음에는 목을 통째로 날려버릴 거야.
그리고 오웬은 허리를 굽혀 큰 도마뱀에게 살며시 속삭였다.
오웬: 계속 숨겨도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킬 수 없어. 왜냐하면 그걸 주지 않으면 내가 이 세계를 통째로 없애버릴 거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지?
그러자 관념한 듯 큰 도마뱀은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혀 위에 올라가 있던 그것을 오웬이 불쑥 집어든다.
오웬: 있다. 보라색 진주.
화이트: 오웬도 잘 했네!
스노우: 그런데 갑자기 얌전해졌구먼. 뭘 한 건가?
오웬: 별로. 이 녀석에게 분수를 알려줬을 뿐이야.
브래들리: 정말이지, 멋대로 날뛰는 만큼 귀찮은 놈이었네.
미스라: 전혀요. 그냥 날뛰기만 하던데.
수정 구슬 너머로 미스라가 말한다.
미스라: 무언가를 지키는 건 쉽지 않으니까.
브래들리: 네가 말하지 마.
스노우 / 화이트: 그대가 말하지 말게나.
오웬: 수정 너머가 아니었으면 그 머리를 으깼을 거야.
오웬의 손 안에서 보라색 진주는 옅게 빛나고 빛이 튀었다.
밤의 숲을 헐떡이며 달리는 것은 어린 루카. 그녀를 쫓고 있는 것은…… 인간이었다. 어느 날 아침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끔찍한 짓을 당했다. 아무래도 밀린 일이 누락된 것 같다. 숨쉬기 힘든 처사를 받고 헛간에 내동댕이 쳐진 그녀에게 다가선 것은 그녀에게만 보이는 신기한 친구들. 그들의 힘을 빌려 그녀는 마침내 수도원에서 도망쳤다. 며칠 비우는 것이 아니다. 허드렛일을 하러 돌아가는 일도 없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아서.
길 내내 인기척이 없는 숲 속에서 정령들에게 말을 건네다가 우연히 인간들에게 들키고 만다. 그들은 혈세를 바꾸어 덤벼들었따. 섬뜩한 마법사가 숲 일대에 괴이하고 불길한 저주를 내리려고 한다고.
루카: ……아니야. 나는 단지…….
어린 그녀의 겁먹은 목소리가 닿을 리도 없이 인간들은 루카를 몰아붙였다. 그때…… 하늘을 가르는 듯한 천둥번개가 치고 큰 도마뱀이 모습을 드러내자 인간들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떠났다.
루카: 고마워……. 도와줘서.
루카: ……에? 너 말이야? 몸은 좀 크지만…… 무섭지 않아.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도와줬잖아. 게다가 저렇게 몰려오거나 나에게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무서워…….
루카: ……하지만 계속 혼자였던 나에게 친구가 잔뜩 생겼어. 그러니까 분명 앞으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루카: 모두가 함께 있어 준다면, 분명 계속…… 무섭지 않아.
빛을 쫓던 중 피가로와 레녹스, 미틸은 땅에 떨어져 있는 동전과 보석을 발견했다.
미틸: 왠지 이 근처에 물건이 잔뜩 떨어져있네요. 메달이라던가 오래된 동전이라던가……. 이건 보석인가요?
레녹스: 누군가의……. 아니, 이 그림책 속에 있는 무언가의 분실물인가.
피가로: 이건……. 아마 헤르바 정령의 짓인가.
미틸: 헤르바?
피가로: 마력이 깃든 식물의 이름이야. 풍부한 자연과 깨끗한 물이 있는 곳에서만 살 수 있는 희귀종. 요점은 잎의 정령이지. 동화 같은 걸로 전해지는 것 같아. 그들은 뭐든지 귀하게 생각하고 주워서 분실물이 많아.
미틸: 잔뜩 줍고 잔뜩 떨어뜨리는 건가요?
피가로: 맞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줍는데 어느새 떨어뜨려서 다시 줍는 거야.
미틸: 너무 많이 가져가서 떨어뜨리는 걸까요?
레녹스: 소중한 물건이 많으면 저것도 이것도 안고 마는 법이야. 나도 욕심이 많은 데가 있으니까 알 것 같아.
미틸: 레노 씨가 욕심이 많아……?
피가로: 헤에. 자각 있었구나.
레녹스: 네, 뭐. ……. 작은 동이 열려있는 나무가 있네요.
미틸: 진짜다. 주변이 분실물 투성이에요.
레녹스: 황급히 대청소를 했나보네. 동 안에 넣었던 걸 다 빼낸건가?
미틸: 어째서 그런 짓을?
피가로: 아마도지만…… 소중한 것을 넣기 위해서. 뭐든지 허용량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걸 넘을 것 같으면 어쩔 수 없이 버려야해.
레녹스: ……기억의 조각은 저 동 안이군요.
피가로: 아아. 다른 보물보다 그녀의 기억의 조각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거야.
미틸: 하지만 입구가 좁아서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피가로: 약간의 마법은 괜찮겠지. '폿시데오'
피가로가 손가락을 올리자 세 사람의 몸이 옅은 빛을 띠었다.
미틸: 와앗……!
순간, 순식간에 모두의 몸이 작아진다. 각각이 양손바닥에 오를 정도의 사이즈가 되고 빛이 가라앉는다.
피가로: 이 정도 크기면 되려나. 어때. 컨디션에 변화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어?
레녹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올려다보는 경치는 꽤 신선하네요. 난쟁이가 된 기분이네.
미틸: 저도 괜찮아요! 여기, 아까까지 무릎을 꿇지 않으면 들여다볼 수 없었는데. 큰 터널 같아…….
피가로: 하하, 그거 다행이다. 루틸도 있었으면 난리였껬지.
미틸: 네. 좋겠다, 재미있겠다라며 부러워할 것 같아요. 나중에 말해줘야지!
얼굴을 마주보며 웃으며 작아진 세 사람이 목동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있던 것은 머리와 꼬리에 꼬리 잎을 들고 축 늘어지는 모습의 정령이었다.
미틸: 아……!
피가로: ……? 너…….
소리를 지른 미틸들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비틀거리며 도망치려고 한다.
미틸: 아, 기다려 주세요……!
레녹스: 멋대로 들어가서 미안해. 우리는 수상한 자들이 아니야.
피가로: ……조금 약해진 것 같네. 너무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아.
그런데도 잎의 정령은 우물쭈물거리다가 푹 쓰러지고 만다. 그것을 레녹스가 받쳤다.
미틸: 저, 몇 가지 약을 가지고 있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아니면 근처에서 약초를 찾아서……. 아, 여기는 그림책 속이지.
걱정스럽게 정령을 들여다보는 미틸을 보며 피가로와 레녹스가 눈을 맞춘다. 고개를 끄덕이던 두 사람이 미틸에게 말을 걸었다.
피가로: 괜찮아. 이 아이는 조금 피곤할 뿐이야. 내가 치료해도 좋지만……. 미틸, 치유마법을 써볼래?
미틸: 에, 그래도 되나요? 피가로 선생님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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