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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法使いの約束/메인 스토리

2부 17장 [자그마한 기색]

 

 

목차

    1화 마법사의 죽음

     

    이전에 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마법사의 죽음에 대해서.

     

    파우스트: 네로. 자연사로 목숨을 다한 마법사를 알고 있나?

     

    네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란?

     

    파우스트: 뜻밖의 사고나 전사 등이다. 즉, 노쇠한 마법사를 본 적이 있는지 알고 싶어. 나는 폭풍의 계곡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마법사를 잘 몰라. 마법사는 일정한 시기부터 늙지 않지. 하지만 늙지 않은 마법사는 어떻게 돌이 되는 거야? 너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달이 밝은 밤이었다. 큰 나무의 푸른 그림자 속으로 도망치듯 내 목소리는 의도치 않게 작아졌다. 흔들리는 잎사귀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남몰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죄의식을 느꼈다. 내가 노쇠한 마법사에 대해 알고 싶은 이유는 피가로의 미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피가로의 끝을 찾는 것이 나쁜 짓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피가로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즈나 쌍둥이, 남쪽 마법사들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겠지. 단념했던 예전 제자에게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도.

     

    파우스트: (이 생각도 틀린 건가, 피가로. 너에 대해 잘 모르겠어.)

     

    네로: 아아, 과연. 있지. 몇 번 돌이 되는 걸 봤어.

     

    네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의 탑 벽에 등을 대고 한쪽 다리를 꼬고 있다. 밤바람이 불어오는 기분 만큼이나 마법사의 죽음에 대해서 그의 대답에는 부담이 없었다. 위에 좋은 식사처럼 네로는 입맛이 가벼운 남자였다. 호박색 눈동자에는 좀처럼 격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그의 단순함이나 무난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절차를 밟아 정중하게 체에 걸러지고 뒤집힌 고급 과자처럼……. 그의 감정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우리 앞에 제공된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지 않고, 우리에게 발을 들여놓지 않고.

     

    그런 사이라도 왠지 모르게 그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온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돌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일단이겠지. 네로는 삐진 어린아이처럼 심하게 감상적일 때도 있꼬, 놀라울 정도로 경박하고 거칠 때도 있었다.

     

    네로: 그렇구나. 너, 죽은 마법사를 모르나. 진짜 폭풍의 계곡에서 나오질 않았구나.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거라면 히스 도련님이나 시노랑 별반 다르지 않네.

     

    파우스트: 그렇지 않아. 우리 집은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했어.

     

    네로: ……아아, 그래?

     

    파우스트: 그런 의미에서 히스클리프나 시노보다는 세상을 더 잘 알지. 아마도.

     

    네로: 하지만 자연사한 마법사를 모르잖아.

     

    파우스트: 맞아. 노쇠해 가는 마법사는…….

     

    노쇠해 가는 마법사, 라고 말할 때마다 피가로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럴 때마다 가슴 속이 무거워졌다.

     

    파우스트: ……어떤 식으로 늙어가지? 육체가 늙기 시작하는 건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돌로…….

     

    네로: 글쎄……. 내가 아는 사람의 말로는 이런 느낌이야.

     

    네로는 양손을 벌리고 몸짓 손짓을 입에 물고 설명해 주었다. 

     

    네로: 왠지 마력을 잘 쓰지 못해. 어째서지…… 하는 날이 갑자기 찾아오는 거야. 하지만 금방 고쳐져. 하지만 또 오게 돼.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날이. 그날이 조금씩 늘어가. 처음에는 반 년에 한 번이거나 3개월에 한 번씩이었던게…… 어느 새 점점 늘어나고 이윽고 열흘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이 되는 거야.

     

    파우스트: …….

     

    결국에는 낼 수 있는 마력도 줄어들고, 점점 마법을 쓸 수 있는 날이 더 적어져. 그렇게 조용히 쇠약해져 가. 천천히 쇠약해지는 녀석도 있고 순식간에 끝나가는 녀석도 있었어.

     

    파우스트: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눈썹을 가져다댔다. 마법을 쓰지 못해 당황하는 피가로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해 버린다. 하지만 금방 긁어서 껐다. 내가 그런 공상을 하는 걸 피가로는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도한 사람이니까.

     

    파우스트: ……마력이 쇠퇴할 뿐, 육체는 건강한 상태로 남아있는 건가? 돌아다니거나 식사는 할 수 있어?

     

    네로: 아니, 마지막에는 누워만 있었네. 겉보기에는 젊은 그대로였지만 호흡이 천천히 적어져서……. 아, 하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돌이 되어 버렸어.

     

    파우스트: …….

     

    비극적인 장면에 나는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하지만 네로는 미소 짓고 있었다. 애틋함이 묻어나는 동경을 눈동자에 비춘 채.

     

    네로: 처음 봤을 때는 감동이었어……. 뭔가 예쁘다고 생각했거든. 슬펐지만 말이야. 이런 나라도 마지막에는 반짝반짝 빛나고 굴러서…… 특별한 보석으로 소중하게 손에 넣어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살 희망이 생겼어.

     

    나는 웃지 못했다. 올려다본 달은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고요한 푸른 어둠의 세계에서 숨을 푹 쉬면서 나는 눈썹을 숙이고 입을 구부렸다.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 네로의 소감은 나의 소감과 완전히 달랐다.

     

    파우스트: (나는 처음 돌이 되는 걸 봤을 때 슬펐어. 아름다운 채로 붕괴되어가는 마나석은 대지에 튀겨지는 비 같아서. 우리는 죽어도 외딴 대지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전장 속 튀는 진흙 위에 흩어진 아름다운 돌을 기억하고 있따. 화살에 맞고 돌이 된 마법사. 그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보지 못했다. 부서져 있었기 떄문이다. 마법사는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죽은 얼굴을 보일 수도 없다.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채 갑자기 흙투성이가 되는 꽃 같다.

     

    파우스트: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네로: 에?


    2화 어비스의 의식

     

    파우스트: ……즉, 그……. 어떤 수단으로도 노쇠를 멈출 수는 없는 건가? 멈추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수명을 연장시킨다던가…….

     

    네로: 선생, 오래 살고 싶어?

     

    파우스트: 아니, 어떠려나. 나는……. 내가 아니라, 그…….

     

    횡설수설하다가 자리를 잡고 거짓말을 했다.

     

    파우스트: 그렇네. 나는 오래 살고 싶어.

     

    네로: 정말로? 당신, 그런 느낌이었나?

     

    파우스트: 그런 느낌이다. 장수의 비결은 있나?

     

    네로: 글쎄……. 스노우나 화이트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

     

    네로는 어깨를 움츠리고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네로: 하지만, 정말 2000년 씩이나 살고 싶어? 나는 사양인데. 자살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오래 살았다면 뭔가…… 영문을 모를 것 같아.

     

    네로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굶주린 짐승이라면 목덜미에 물어뜯기 쉬운 자세다. 갑자기 네로의 목이 흔들린다. 어깨도 머리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소리도 없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터무니없이 네로다운 행동으로 생각되어 나는 감탄했다.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데 고개를 뒤로 젖히려고 했지만 목이 푹 아플 것 같아서 말렸다.

     

    네로: 하하……. 아아, 생각났어. 장수 비결.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지만.

     

    파우스트: 뭐야?

     

    네로: 움막에 갇히는 것.

     

    격언과 같은 울림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로는 비아냥거리며 웃고 있었다.

     

    네로: 내가 태어난 땅은 치안이 나빠서 남들은 위험 그 자체였어. 변변치 못한 나의 아버지가…… 뭐, 우리 가족은 나도 포함해서 전부 변변치 않았지만. 위험한 곳에 가고 싶지 않다면 움막에 틀어박혀 있으라고 했어. 소심한 녀석은 그렇게 욕을 먹었지. 우리 집 이외에도 말이야……. 아하하, 움막에 틀어박혀 있으라고.

     

    파우스트: ……이상한가?

     

    네로: 뭐라고나 할까. 이건 요컨대 모순이라는 거야. 움막에 틀어박혀 있으면 먹을 것이 없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굶어죽느냐야. 그런데 어렸을 때 생각했어. 위험한 것을 만나지 않는 움막. 만약 거기에 틀어박혀도 자동으로 계속 밥이 나온다면…… 그곳은 천국이지.

     

    폭풍의 계곡에 틀어박혀 있던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움막을 천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가 시험 삼아 물어봤다. 악의 없이, 그냥 생각나서.

     

    파우스트: 감옥이라고 해도 말인가?

     

    감옥에 갇힌 적은 있지만 인생에서도 손꼽히는 최악의 경험이었다. 어깨를 흔들며 웃을 줄 알았다.

     

    네로: …….

     

    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만 움직여 잠자코 나를 쳐다보았다. 금색 눈동자는 짐승 같았다.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분다. 검은 구름이 달을 가리고, 휘날린 머리칼이 네로의 입가를 가렸다. 목 뒤를 긁으며 웃지도 않고 네로는 중얼거렸다. 침을 뱉듯이.

     

    네로: 쓰러져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파우스트: …….

     

    어둠 속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 물소리가 반향을 일으키며 여기저기서 공기가 흔들린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낌새를 살핀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네로 정도의 실력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무언가가 있는데. 불온한 기색이 다가온다. 왠지 정령들의 반응이 둔하다. 그들의 성질이 변한 것 같다.

     

    팔 안의 네로는 축 늘어지지 않았다. 재빨리 등을 더듬자 출혈이 계속되고 있다. 천천히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어. 바로 판단하는 거야.

     

    시노: ……내가 갈게! 너는 여기에 있어줘!

     

    파우스트: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어.

     

    시노: 뭐가 덮쳐와도 공격하지 마! 내가 재울게!

     

    전투에 익숙한 시노가 무언가에 겁을 먹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기절한 소녀도 있다. 전율에 항거하듯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우선 순위를 매긴다. 안전 확보, 응급처치, 응전 준비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주문을 외우고 결계를 폈다. 마법을 쓸 때마다 역시 위화감이 들었다.

     

    파우스트: (……마법이 잘 안 걸려……. 정령들의 상태가 이상해.)

     

    시노: 파우스트. 미안하지만 히스를 찾으러 갈게. 네로를 부탁해.

     

    어두워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시노의 목소리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 책임이다. 시에게 심리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손을 쓰지 못했다. 네로의 등을 더듬으며 바로 시노에게 설명하려고 순서를 머리로 조립한다.

     

    파우스트: 시노. 도와줘.

     

    시노: 히스가 먼저다! 너를 죽여서라도 갈 거야!

     

    큰 낫을 들고 시노가 외친다. 하지만 큰 낫에 희미한 빛이 모이는 순간, 그는 의아한 듯이 손을 쳐다보았다. 그도 마법의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정령들에게 오염된 기색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파우스트: (땅이 달라. 여기는 동쪽 나라가 아니야.)

     

    미지근한 피로 젖은 네로의 등에 흉터를 발견했다. 키의 중심 쯤에 새끼 손가락 정도의 구멍이 뚫려져 있따.

     

    파우스트: (총상인가?)

     

    따뜻한 피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서둘러 막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파우스트: 시노. 네로가 죽어가고 있어. 응급 처치를 하는 동안 결계 밖을 내다보고 있어줘.

     

    시노: ……죽어가고 있어?

     

    파우스트: 아아. 출혈이 심해. 시노, 빗자루를 꺼내서 저 여자 아이를 태워. 그리고 여기는 아마 서쪽 나라일 거야.

     

    시노: 서쪽 나라!?

     

    파우스트: 맞아. 어비스의 의식을 거행해. 마법진은 생략해도 돼.

     

    시노: 어비스 의식?

     

    파우스트: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수업시간에 했고 시험에도…….

     

    시노: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하지. 다시 설명해줘. 부탁해. 빨리.

     

    기특한 대사였지만 시노의 목소리는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이런 상황에 설교를 할 생각은 없다. 네로의 치료를 하면서 간결하게 정했다.

     

    파우스트: 셔우드 숲의 흙이나 마른 잎을 가지고 았었지. 그걸 네 주위에 뿌려.

     

    시노는 놀라면서 품속을 더듬었다.

     

    시노: 생각 났어. 강화 마법이지. 낯선 땅에서 마법을 쓸 때 나에게 도움이 되는.

     

    파우스트: 맞아. 셔우드 숲의 정령이 너를 구하는 거야.

     

    시노: 하지만 긴 효과는 없어. 땅의 정령 자체의 기질이 강하다면 더욱…….

     

    파우스트: 바로 그거다. 만점을 주지. 셔우드 숲의 정령들은 곧 이 땅의 정령에게 먹힐 거야. 자만하면 안돼.

     

    네로: ……으, 으윽……!

     

    등의 흉터에 약초를 바르면 네로가 비명을 질렀다. 혀를 깨물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네로는 고통에 일그러진 눈동자를 어렴풋이 열고 있었다. 안심하면서 흉터에 손바닥을 댔다. 시노는 어비스 의식을 치르면서 자신의 빗자루 위에 소녀를 올려놓고 있었다.


    3화 비통한 간청

     

    파우스트: 미안해. 괜찮아. 조금만 참아줘.

     

    네로의 의식은 몽롱했다. 그리고 내 목덜미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시노의 형식대로 입은 화해가 검은 멍이 들어 나타난 것일 것이다.

     

    네로: ……너…….

     

    뭔가 말하려고 했을 때 시노가 소리쳤다.

     

    시노: 파우스트……!

     

    파우스트: ……!?

     

    시노의 목소리가 들린 직후 어둠 속에 섬뜩한 푸른 빛이 부풀어 올랐다. 직후, 공기를 가르며 푸른 빛의 화살이 날라온다.

     

    파우스트: ……윽!

     

    간신힌 결계로 막을 수 있었지만 엄청난 마력과 관통력이었다. 저 공격을 두 번 더 받으면 결계를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곧 기척을 찾았다. 공격해온 방향은 알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시노다. 공격해 오기 전에 낌새를 잘 알아챘다. 나는 시노의 주의 깊음에 혀를 내둘렀따. 역시 광대하고 어두운 숲의 파수꾼을 맡았던 대로였다. 정작 시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시노: 저건 뭐지……?

     

    파우스트: 모르겠어. 낌새가 안 읽혀져. 다음 공격을 막는 게 고작이야. 그 전에 치료를 마치고 이동한다.

     

    시노: 네로의 상처는?

     

    파우스트: 지금 치료…….

     

    시노: 그게 아니야. 네로의 상처는 어땠어? 긁힌 상처인가? 물린 상처인가?

     

    천공상의 상처다. 화살이나 총상과 비슷하지만 달라. 날카롭고 가는 물건으로 꿰뚫려 있어.

     

    네로: ……갈비…….

     

    괴로운 듯이 가슴을 헐떡이며 쉰 목소리로 네로가 중얼거렸다. 갈비. 갈비뼈?

     

    네로: 갈비뼈가 열리는 순간에……. 빛이…… 온다……. ……조심해. …….

     

    마지막 말을 축축했다. 피를 토하고 네로는 선혈로 얼룩졌다. 그는 상상 이상의 깊은 수를 지고 있. 공포로 심장이 조여들었다. 호흡이 빨라진다. 네로가 눈꺼풀을 감아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입가에는 느슨한 미소가 떠있었다.

     

    네로: ……내 돌은……. ……에게…….

     

    파우스트: 그런 말은 하지마!

     

    네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겨우 작게 숨쉬고 있다. 질식하지 않도록 피를 토하게 하고 슈가를 잇몸과 뺨 사이에 집어넣었다. 볼이 너무 차가웠다. 피를 멈추고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치유 마법을 걸었지만 응급처치에 불과하다.

     

    파우스트: (피가로에게 진찰을 받아야해. 갈비뼈가 열리는 순간에 빛이 온다고? 네로는 무엇에 습격당한 거지? 히스는 어디에?)

     

    시노: 네로는!?

     

    파우스트: 의식을 잃었어. 갈비뼈가 열리는 순간 빛이 온다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시노: 갈비뼈? 검은 짐승의 이야기는!?

     

    파우스트: 안 했어. 시노, 네로를 데리고 이 공간을 탈출한다. 뒤틀림을 찾아야해. 협조해줘.

     

    시노: 히스는!?

     

    파우스트: 물론 찾아서 같이 데리고 갈 거야! 그걸 위해 협력해줘. 부탁할게. 그녀와 함께 빗자루에 올라 결계를 풀고 달려나가는 거다. 내가 주의를 끌게.

     

    시노에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빗자루를 꺼냈다. 의식이 없는 네로의 몸을 거기에 눕힌다.

     

    시노: 아니, 아니야.

     

    시노는 고개를 흔들고 내게로 달려갔다. 그의 눈빛에는 반발이 없었다. 간곡히 부탁하고 비통에 호소하는 것처럼 내 팔을 잡았다.

     

    시노: 검은 짐승은 히스야. 그 녀석은 검은 표범이 돼. 그 녀석의 기묘한 상처야.

     

    시노의 얼굴은 약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가느다란 어깨 너머 푸른 빛이 부풀어 간다.

     

    시노: 알고 있었는데 말하지 않았어! 그 녀석을 잃고 싶지 않아서……!

     

    파우스트: 시노, 위험해!

     

    가늘게 뻗은 눈부신 섬광이 지하 수로를 관통했다. 나는 시노의 어깨를 껴안고 엎드렸다. 결계에는 균열이 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어둠 속으로 섬뜩한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다.

     

    파우스트: 빗자루에 타! 내가 신호하면 날아가!

     

    시노: 너는!?

     

    파우스트: 바로 갈게! 저것과 거리를 두고 다시 한 번 결계를 펼 거야! 그 때까지 히스를 찾아!

     

    시노: 알았어!

     

    파우스트: 잘 말해줬다.

     

    시노는 무언가를 참는 표정을 지었다. 뿌리치듯이 뛰쳐나가서 빗자루에 뛰어오른다. 나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구르고 있었다. 히스가 검은 짐승. 그것이 그의 기묘한 상처. 물론 충격이지만 목숨만 붙어있다면.

     

    파우스트: (검은 짐승이든 뭐든 내가 지켜줄게. 히스클리프는 나의 첫 학생이야. 400년이나 살았는데 시노와 히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의미가 없어.)

     

    파우스트: 가, 시노!

     

    시노: 죽지 마. 파우스트! 네로!

     

    결계를 푸는 순간 시노가 뛰어나간다. 나는 주의를 끌기 위해 마도구 거울을 반짝였다. 어두컴컴한 지하수로가 대낮처럼 빛난다. 그 순간, 그 녀석의 모습을 봤다. 빗자루로 달려가는 시노도 그걸 목격하고 소리를 냈다.

     

    시노: ……뭐야, 이건!?

     

    그건 본 적도 없는 징그러운 것. 사람도 마법사도 망령도 아닌, 이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 그래…… 착하지. 들르는 길도 멋지지만 가끔은 목적지로 곧장 가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이 거리 야경은 멋져.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와 비슷해. 석조 건물이 아니라 산호였지만. 자, 그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멋대로 시제품을 들고 나오다니, 나쁜 아이네. 

     

    ???: 후후, 너는 착하냐고? 당연하지. 너는 나를 운반하는 밤바람……. 나의 손발. 미워할 수 없는 짝이야. 사랑해.

     

    ???: 저 아름다운 달 다음으로 말이지.


    4화 사랑에 대해서

     

    사랑은 상냥함이라고 믿었다.

     

    망한 마을의 주민: 피가로 님.

     

    망한 마을의 주민: 피가로 님. 이렇게나 많이 나았습니다.

     

    망한 마을의 주민: 피가로 님의 가호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저희를 지켜봐 주세요.

     

    내가 사랑했던 나의 백성들. 내 백성들도 나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경애하며 그들이 손에 넣은 훌륭한 것은 모두 나에게 바쳐졌다. 아름다운 꽃. 큰 뿔의 사슴. 기적처럼 달콤한 과실. 튼튼하고 따뜻한 모피. 그들의 아이가 달콤한 꿀의 맛을 몰라도, 그들의 아버지가 병에 누워 있어도, 그들은 모든 것을 바치고 나의 기적을 빌었다. 아니, 빌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나를 사랑함으로써 평화를 빌고 마음이 뿌듯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이 약속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얼마나 안심되었을까. 내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가올 날에는 나도 모든 것을 바치고 그들을 구할 것이라고. 무구하게 믿고 모든 것을 받아 들였다.  아름다운 꽃. 큰 뿔의 사슴. 기적처럼 달콤한 과실. 튼튼하고 따뜻한 모피.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보물을 나에게 계속 바친 보람도 없이…… 나에게 구원 받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신용은 성립되지 않으며 행복은 사라졌다. 나는 나의 백성을 수호하는 신으로부터 뿌리 없는 악신이 되었다. 때로는 기적을 가져오는 나그네로. 때로는 용사를 이끄는 현자로. 때로는 세상을 불태우는 재앙으로. 나에게는 기적의 힘만이 있고…… 자비와 헌신과 재결과 자존감에 맞게 여러 얼굴을 가졌다. 

     

    그건 나의 병 같은 것이다. 진심으로 경애받고 존경 받으면 백성을 지키지 못한 실격자인 자신의 얼굴이 꺼림칙해서……. 얕보고 싶다고 바라고는 우아하게 모든 것을 바쳐진 신으로서의 자신이 무례를 불쾌해했다. 즐거움이나 편안함.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절없이 나는 내가 더 천하고 내가 더 귀한 줄 아는 것이다. 비하도 과신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사실로서.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나를 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손에 쥐고 있다. 우아하게 숭배받는 것도, 친근하게 애착을 받고 얕보이는 것도 사랑이라고 불리는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을 구해야 할까. 무엇을 줘야……. 사랑스러운 자들이지만 사랑은 아닌 것 같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고독. 어디 멀리서 와서 지나가는 이름 없는 바람의 고독. 고독은 언제나 아름답고 아늑하고 별 수 없이 무서웠다. 나에게 고독이란 오즈였다. 그토록 강대하고 불쌍한 생물을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은 있어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첨하기에는 괴롭다. 이용하려는 자는 있어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계를 손에 넣을 힘을 가지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서를 만나고 오즈는 달라졌다. 예전에 오즈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피가로: 나는 말이지, 오즈. 사랑이란 상냥함이나 자비로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오즈: …….

     

    오즈는 잠자코 나를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은 대개 그렇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의 말을 듣는다. 눈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니까필시 신묘한 마음으로 공감해 주고 있는 것일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낙담한다. 기본적으로 오즈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만히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듯 내 움직이는 눈이나 입을 보고 있을 뿐.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인 것이다. 오즈는 세계를 통솔하는 마법사. 그런 것이 다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이어갔다. 혼잣말처럼.

     

    피가로: 누군가를 신경쓰거나 누군가의 생각을 상상하고 기대거나……. 무언가의희생을 견디면서 자신 이외의 것에게 행복을 준다. 그런 게 사랑인 줄 알았어. 예를 들면, 내일 세상이 망한다고 치자…….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인물을 죽일 수 있어.

     

    어렴풋이 오즈가 눈동자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그는 천성이 약하기 때문에 생사의 이야기에는 민감하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피가로: 잃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야. 자기가 죽는 편이 나을 정도로 힘들고 슬프겠지. 하지만 그 아픔을 참고 나는 세상을 지키는 쪽을 택할 거야. 그쪽이 왠지 모르게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에 가까운 것 같기 때문에.

     

    오즈: …….

     

    나는 일부러 애매모호하고 어설프게 말했다. 오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분명히 말로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도 두려움과 당혹감이 있었다. 모든 것을 바치다가 죽어버린 나의 백성들. 자식보다도, 부모보다도 나를 우선시했다. 자아를 죽이고 인내심을 갖고 이익을 얻는 것이 곧 사랑이다.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살고 무엇을 위해 죽어갔는가. 달콤한 열매도 따뜻한 모피를 몸에 걸치지 않고 믿었던 신에게 지켜지지도 않고.

     

    피가로: ……하지만, 너를 보고 있으면 아닌 것 같아.

     

    오즈: ……나를?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오즈를 보았다. 오즈의 검은 머리에 붉은 불꽃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다. 나는 아마 웃었던 것 같다.

     

    피가로: 너는 세상이 멸망해도 아서를 고르겠지.

     

    오즈: …….

     

    피가로: 이기적이고 포학하고 앞뒤를 생각하지 않아. 배려가 부족한 선택이야. 목숨을 잃겠지. 하지만, 그게 사랑으로 보여.

     

    난로의 불이 튀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어 잔을 부추겼다. 오즈는 당황해 시선을 방황시키고 있었다. 오즈가 곤란해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조금 기분이 좋았다.

     

    피가로: 어떻게 생각해?

     

    오즈: 어떻게, 라니.

     

    피가로: 이 이야기 말이야. 알기 쉽게 설명했잖아? 의견이 다른 점은 있어?

     

    오즈는 미간에 주름을 새겼다.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내놓았을 때도 그는 대개 이런 표정이었다. 아니, 그때보다 훨씬 사람답다. 그는 이제 고독한 마왕이 아닌 것이다.

     

    오즈: ……사랑하지는 않는다.

     

    피가로: 아서를? 아직도 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오즈: 물론이다.

     

    말과 반대로 오즈는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새하얀 기분이 들었다.

     

    피가로: 거짓말이네.

     

    오즈: 거짓말이 아니야. ……모르겠다. 그 일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피가로: 아서가 돌이 되는 것을? 그건 이제 사랑이야. 사랑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

     

    오즈: 너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피가로: 에?

     

    오즈: 세계와 맞바꿔 손에 넣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피가로: 그런 말을 들으니……. 사랑하지 않는 걸까. 나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정이 없는 것 같아. 내 사랑은 틀렸을지도 몰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허무함을 느꼈다. 몸 속에서 힘이 빠져 울음을 터뜨린 듯한 느낌이었다. 사랑했던 자들. 행복하길 바라고 있어. 거짓말이 아니지만 이 세계를 희생해서라도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색해졌는지, 조용한 내가 드물었던 건지. 오즈는 내 잔에 술을 따랐다. 열매가 기적적으로 썩어서 태어난 시럽처럼 단 술을.

     

    오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깨를 흔들며 잔을 기울었다.

     

    피가로: 맞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잖아?

     

    오즈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오즈: 사랑은 몰라. 하지만 너는 자비롭다. 나보다 아서를 구했다. 예전에는 나를 구한 적 있었지.

     

    피가로: 그렇네…….

     

    오즈: 나도 아서도 살아있다. 너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피가로: …….

     

    오즈: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5화 확인을 위한 보고

     

    피가로:  다녀왔습니다.

     

    미틸: 방금 귀가했습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미틸.

     

    미틸과 함께 마법관으로 돌아오면 레녹스는 짐을 싸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나가려는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나.

     

    오늘 밤 마법관은 조용했다. 차가워지기 시작한 바람이 담화실의 창문을 희미하게 흔들고 있다. 남쪽의 마법사들 말고는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남쪽의 마법사도 한 명 없어.

     

    미틸:  ……어라? 형님은요?

     

    레녹스:  루틸을 못 만났어?

     

    피가로:  못 만났어. 우릴 데리러 나온 거야? 무슨 급한 연락이라도?

     

    레녹스:  네……. 파우스트 님께 연락이 와서요.

     

    피가로:  파우스트한테?

     

    짐을 내려놓다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레녹스:  네. 사실은…….

     

    레녹스는 드물게 답을 빠르게 했다. 하지만 중반에 불안해하는 미틸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닫았다. 여기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내 팔을 잡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저쪽으로.

     

    피가로:  아아…….

     

    고개를 끄덕일때 미틸이 말을 내뱉었다.

     

    미틸:  괜찮아요. 제 앞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형님도 알고 있는 거죠? 파우스트 씨와 관계가 있다면 시노 씨도 분명…….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충격 받아서 울거나 하지 않으니까.

     

    미틸의 눈빛은 진지했다.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 이런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직 어린애니까 괜찮다고 선을 그을 때마다 아이들은 그 선을 넘으려고 한다. 천 년 전부터 흔하면서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따돌리고 싶은 게 아니야. 아직 상냥하고 예쁜 것만 보고 있어줬으면 좋겠어. 노려보는 듯한 필사적인 눈빛은 평소의 나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레녹스에게 타진했다. 미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으니까.

     

    피가로:  ……어때? 미틸에게도 이야기해도 괜찮아?

     

    레녹스:  ……지금은 조금…….

     

    미묘하게 불안한 대답에 나는 입을 구부렸다. 하지만 레녹스의 표정에 그렇게까지 심각한 초조함은 떠오르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고지식한 성격이다. 임무에 나섰을 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종종 보고를 보내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게다가 파우스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레녹스는 이미 여기에 없었겠지. 그 일에 나도 안심하고 있었다. 미틸에게도 들려줘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미틸의 어깨를 껴안고 근처 의자에 앉혔다.

     

    피가로:  알았어. 미틸도 같이 듣자.

     

    미틸:  네…….

     

    미틸의 눈동자에 빛이 깃든다.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진지하게 등을 폈다.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동료들에게 인정받았다고 환희하는 그가 애처로웠다. 오랜 시간을 들여 키워온 그와의 유대를 끊고 싶지 않다. 그렇게 바라면 레녹스에게 말을 걸었다.

     

    피가로:  레녹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

     

    레녹스:  네. 마법관에 돌아왔을 때 파우스트 님의 사역마가 나타났습니다. 임무지인 동쪽 나라의 비오는 거리에서 전언을 가지고 온 것 같았어요.

     

    피가로:  파우스트가 뭐라고 했지?

     

    레녹스:  길드 터의 호텔 임브리움에 네로와 히스클리프가 먼저 잠입. 시노와 함께 외부에서 감시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두 사람의 기척이 사라졌다. 원인은 불명. 두 사람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이제부터 호텔에 잠입할 예정. 경계하는 마법의 기미는 없다. 쥬라 숲의 타냐를 만났다. 혹시 모르니까 마법관에 보고한다고.

     

    피가로:  과연…….

     

    미틸:  ……네로 씨와 히스클리프 씨가 사라져 버린 건가요……?

     

    레녹스:  아아.

     

    미틸:  그런……. ……괜찮을까……. 괜찮겠죠? 피가로 선생님.

     

    걱정스러운 듯 미틸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피가로:  무조건 그렇다고는 단언할 수 없네. 파우스트라면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본 마법사의 기척을 찾을 수 있어. 그런 그가 사라졌다고 보고한 거야. 자기들도 실종됐을 때 단서를 남기기 위해서겠지.

     

    미틸:  …….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사실이야. 진실이 미틸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우리들은 금방 숨기려고 하지만…… 그게 반대로 상처를 줄 수도 있어. 그런 이야기를 오늘 했잖아.

     

    미틸:  ……네…….

     

    미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를 강요시켜 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미틸은 내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웃고 그의 등을 건드렸다.

     

    피가로:  그래. 그러면 이야기를 이어가자. 하지만 힘들어서 견딜 수 없게 된다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미틸:  네…….

     

    미틸은 불안해 보였다. 나는 당황해서 레녹스에게 물었다.

     

    피가로:  ……역시 거짓말이라도 괜찮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생각해?

     

    레노는 경멸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 녀석은 가끔 이런 표정을 짓는다. 정말이지 언젠가 상기시키고 싶어.

     

    레녹스:  미틸 앞에서 묻지 마세요.

     

    내가 변명하기 전에 미틸이 말을 내뱉었다. 부드러운 초록색 큰 눈동자를 천천히 깜빡이면서.

     

    미틸:  ……피가로 선생님이라도 모르는 것이 있군요…….

     

    피가로:  많아. 특히 너희들 앞에서 말이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웃고 있었다. 무지를 지적받는 것은 싫지 않았다. 아키라나 예전의 파우스트도 그런 식으로 놀란 적이 있었다. 이 순간이 나는 좋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인간다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미틸은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몸을 기댄다. 믿음의 몸짓이라고 느꼈다. 기뻤다.

     

    피가로:  그래서…… 루틸이 밖으로 나온 건 내 판단을 받고 싶어서인 거겠지.

     

    레녹스:  네. 동쪽의 비오는 거리로 지금 가는게 좋을까 하면서.

     

    피가로:  그렇네. 파우스트는 원군을 원한다면 분명하게 전달할 거야. 

     

    나는 파우스트의 인품을 상기했다. 그는 허영심이나 겁쟁이와 동떨어진 인물로, 항상 정보는 정확했다.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하지 않는다. 동료의 안전을 제일로 하기 때문에 원군의 요청을 주저하지도 않는다. 만약을 위한 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피가로:  이미 파우스트가 호텔에 잠입해서 둘을 발견했을 수도 있어. 우리가 난리를 치고 달려오면 오히려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거 아니야?

     

    레녹스:  하……?

     

    피가로:  하?


    6화 강한 바람과 무언가의 힘

     

    레녹스: 아, 아뇨. 파우스트 님은 별로……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피가로: 너한테는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그의 입장은 복잡해.

     

    레녹스: 파우스트 님의 입장이 아니라 파우스트 님에게 있어서의 피가로 님의 입장에서는…….

     

    피가로: 레녹스.

     

    레녹스: 네. 죄송합니다.

     

    레녹스와 의견이 부딪혔다. 예전 같았으면 부딪히지 않았을 것이다. 400년 전 우리가 아는 파우스트라면 내가 조력자로 나타났을 때 분명히 이렇게 대답한다. '심려를 끼치게 죄송합니다. 피가로 님이 와주신 덕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파우스트는 이럴 수도 있다. '왜 왔어. 혹시 모르니까 보낸 보고라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 한심한가?'

     

    피가로: 잘 생각해 봐. 임무에 나갔다가 자고 돌아오는 일은 흔하잖아.

     

    레녹스: 확실히…….

     

    피가로: 우리가 너무 떠들면 파우스트가 학생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을 거야. 특히 시노는 건방진 면도 있고.

     

    레녹스: 시노는 시노대로 파우스트 님을 존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가로: 알고 있어. 아침까지 기다려 보자.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동쪽 나라로 가는 것으로. 그걸로 어때?

     

    레녹스는 엄격한 얼굴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레녹스: 알겠습니다.

     

    피가로: 그래. 미틸, 어쩌면 내일 아침 일찍 나갈지도 몰라. 같이 가지 않을래? 여기에 있어도 되지만.

     

    미틸: 갈래요! 시노 씨나 히스클리프 씨가 걱정이고…….

     

    피가로: 알겠어. 그러면 그렇게 하자…….

     

    강한 바람이 불어 갑자기 문이 닫혔다. 그저 그뿐이었는데, 묘하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잘못 판단한 것일까. 빨리 달려가야 하나? 하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을 해서 파우스트에게 털갈이를 당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아이는 강한 마법사다. 다소 어려워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어. 보호자 행세는 그만두는 편이 좋다. 오즈와 아서처럼은 될 수 없었으니까.

     

    동쪽의 마법사 분들이나 다른 분들이 돌아왔을 때를 위해 식당을 청소하고 있을게요.

     

    레녹스: 응, 그게 좋겠네. 루틸도 슬슬 돌아오려나.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루틸: 미틸, 피가로 선생님, 어디에 있지……. 중앙의 왕도를 하늘에서 한 바퀴 돌아도 눈에 보이지 않네……. 잘못 찾아왔나.

     

    루틸: 레노 씨, 걱정스러워 보였지……. 파우스트 씨와는 옛 친구라고 했고……. 동쪽의 마법사 모두가 무사했으면 하는데…….

     

    루틸: ……어라? 저 사람,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아……. 나를 향해 흔들고 있는 걸까? 가주고 싶지만, 지금은……. ……! 우왓……!? 갑자기 컨트롤이……!? 무슨 힘으로 지상으로 끌려가고 있어!?

     

    루틸: 떨어진다……!

     

     

     

     

     

    루틸: ……! 아야야……!

     

    아이작: …….

     

    루틸: 아! 죄, 죄송합니다! 받아주시다니. 다친 곳은…….

     

    거리의 사람: 큰일이야! 사람이 떨어졌어!

     

    거리의 사람: 마법사다! 빗자루에서 떨어딘 거야!

     

    거리의 아이: 루틸 씨! 루틸 씨다!

     

    루틸: 아, 저어, 안녕하세요.

     

    거리의 사람: 아아! 루틸 씨잖아! 전에 이 아이의 부상을 치료해준 남쪽의 마법사님!

     

    거리의 사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루틸 씨. 씩씩한 형도 대단해! 힘이 세구나! 

     

    루틸: 대단한 힘센 사람! 나도 들어줘!

     

    아이작: …….

     

    거리의 사람: 이런, 너무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해. 이건 좋은 걸 보여준 답례야. 자, 간직해줘.

     

    아이작: ……술?

     

    거리의 사람: 맞아. 오늘 밤은 즐겨!

     

    거리의 아이: 멋진 사람, 대단했어!

     

    거리의 사람: 굉장하네! 너도 많이 먹어서 커지는 거야.

     

    거리의 아이: 아하하하!

     

    아이작: …….

     

    루틸: 핫……! 죄송해요, 받아주신 채 멍하니 있어서! 지금 바로 내릴게요! ……에잇!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루틸: 어라……? 혹시, 낮에 뵌 피가로 선생님의 지인…….

     

    아이작: 아아. 아이작이다.

     

    루틸: 아이작 씨…….

     

    아이작: 루틸?

     

    루틸: 네. 루틸 플로레스라고 해요.

     

    아이작: 다행이다. 멈춰 세워서. 밤에는 심심하니까. 미스라도 안 되는 것 같아. 나의 말동무로. 술도 받았고.

     

    루틸: 미스라 씨……? 미스라 씨도 아시나요?

     

    아이작: 미스라는 모두가 알아. 마법사라면.

     

    루틸: 당신도 마법사……? 혹시 지상으로 끌어당긴 사람이 당신인가요?

     

    아이작: 아아.

     

    루틸: 그랬던 건가요? 깜짝 놀랐어요. 미스라 씨도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방금 건 위험했어요. 떨어질 뻔했거든요.

     

    아이작: …….

     

    루틸: 그래도 도와준 것도 당신이죠. 감사합니다, 아이작 씨. 피가로 선생님과 미스라 씨의 지인을 만나뵙게 되어 기뻐요.

     

    아이작: 나도 그래. 맞다…… 이 술을 주지. 얼른 마시자.

     

    루틸: 에…….

     

    아이작: 이 거리의 무리들은 싫은 녀석도 있지만 좋은 녀석도 많아. 좋은 놈이 더 많지. 하하…… 뭔가 살까. 배가 고파졌어.

     

    루틸: 아……. 모처럼 초대해 주셨지만, 오늘 밤은 급한 일이 있어서…….

     

    아이작: …….

     

    루틸: 다음에 또 같이 술을 즐겨요. 미스라 씨나 피가로 선생님도 함께.

     

    아이작: 급한 용무?

     

    루틸: 네.

     

    아이작: 그건?

     

    루틸: 피가로 선생님과 제 동생이 아직 마법관에 돌아오지 않아서……. 찾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아이작: 피가로가……. 그 피가로가 없다고.

     

    루틸: 맞아요…….

     

    아이작: ……큰일이네. 그러면 같이 찾아줄게.

     

    루틸: 아뇨, 괜찮아요. 말투가 나빴네요.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아이작: 루틸.

     

    루틸: 네.

     

    아이작: 나를 따르는 게 나아.

     

    루틸: …….

     

    아이작: ……이상한 말투를 썼나? 힘이 되고 싶어서…….

     

    루틸: 아뇨, 뭐랄까 ……. 미스라 씨를 조금 닮은 것 같아서요. 악의가 없어 보이는 점도.

     

    아이작: 피가로의 거처에 짚이는 구석이 있어. 저쪽이야. 같이 가자.

     

    루틸: 저쪽? 변두리까지 가신 건가…….

     

    아이작: 루틸, 얼굴을 보여 봐.

     

    루틸: 얼굴? 와앗…….  

     

    아이작: …….

     

    루틸: 그 …… 그렇게 얼굴을 잡아당기시면 목이 늘어나 버릴 것 같아요…….

     

    아이작: 생업은?

     

    루틸: 생업? 일 말인가요? 남쪽 나라에서는 교사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작: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친 건가?

     

    루틸: 네…….  

     

    아이작: 행복했겠네.

     

    루틸: 그렇…… 네요……. 행복했어요.

     

    아이작: …….

     

    루틸: 아이작 씨는 아니었나요?

     

    아이작: 응?

     

    루틸: 슬픈 듯한 눈동자를 하시니까…….

     

    아이작: 이건 틀려. 기쁨이야.

     

    루틸: …….

     

    아이작: 가자.

     

    루틸: 네…… 네.


    7화 달밤에 방문할 곳은

     

    아서: ……오즈 님의 진짜 과거인가……. 그걸 알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했다는 전설이 진실이라면, 나는…….

     

    아서: ……! 갑자기 창문이……. 바람인가……?

     

    오웬: 나야.

     

    아서: 오웬!

     

    오웬: 흥. 태평한 왕자님. 내가 자객이었다면 지금쯤 심장을 찔러 너를 죽였을 거야.

     

    아서: 걱정해줘서 고마워. 카인에게도 자주 들어.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

     

    오웬: 그 녀석의 이름을 꺼내지 마!

     

    아서: ……카인 말인가? 카인이랑 무슨 일 있었어?

     

    오웬: 꺼내지 말라니까. 아니, 카인의 이야기를 하자. 실망 시켜줄게. 왕자님.

     

    아서: 실망? 내가?

     

    오웬: 그래. 듣고 싶어?

     

    아서: 음……. 실망스러운 이야기라면 듣고 싶지 않아.

     

    오웬: 하? 들어.

     

    아서: 실망스러운 이야기라면 듣고 싶지 않지만, 카인에게 실망을 한다고 한다면 나는 하지 않을 것 같아.

     

    오웬: 하게 될 거야. 비명을 지르고 실신할지도 모르지. 화가 나서 검을 뽑을지도 몰라.

     

    아서: 믿기 어려워. 하지만 수다를 떨려면 차를 내올게. 뭐가 좋아?

     

    오웬: 진지하게 들어. 너의 기사가 기사의 체면을 잃으려고 하고 있다고.

     

    아서: 그의 명예가 위험에 처해 있는 건가?

     

    오웬: 위험하다고 하면 위험한데. 요컨대 타락이야. 카인이 선택한.

     

    아서: 카인이 타락을 택했나?

     

    오웬: 맞아. 의심이 간다면 보러 오면 돼. 그 녀석은 서쪽 나라의 욕망에 빠져 나라와 너를 팔아치우려고 하고 있어. 그 모습을 보여줄게.

     

    아서: ……필요 없어.

     

    오웬: 어째서?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운 거지.

     

    아서: 카인을 믿어. 카인에게는 무슨 생각이 있는 걸 거야. 그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거라면 나는 보지 않을 거야. 그를 믿고 기다릴 뿐.

     

    오웬: 잘난 척이나 하고……. 넌 구역질나는 위선자이자 진실을 외면하는 겁쟁이야.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남자가 너를 위해 뻔뻔스럽게 굴다가 타락하려고 하고 있다고. 영혼보다도 소중한 것을 팔려고 하는 거야. 가슴은 아프지 않아?

     

    아서: 하? 아플 게 뻔하잖아. 나를 위해서?

     

    오웬: 그렇게 말했어.

     

    아서: 말 안 했어. 카인은 또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오웬: 맞아! 화나지!

     

    아서: 화가 나기보다는 슬퍼. 마음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사실이라면 사정이 달라지지.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을까?

     

    오웬: 글쎄. 왕자님이 말리고 싶다면 도와줄 수는 있는데.

     

    아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카인을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거지? 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달려가 말리고 싶지만 속셈이 있다면 그의 뜻을 존중하고 싶어.

     

    오웬: 안 해도 돼. 너는 주군이잖아. 명령하고 따르게 하면 돼.

     

    아서: 카인은 친구야. 유무를 말하지 않고 따르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야.

     

    오웬: 있잖아……. 왜 착한 아이인 척 하고 있는 거야. 그 녀석이 타락하면 싫잖아?

     

    아서: 어째서 카인이 타락을.

     

    오웬: 내가 부추겼어. 여자를 꼬시고 도박을 즐기고 술에 빠지는 천한 놈이 되라고.

     

    아서: 그렇게 됐나?

     

    오웬: 됐어.

     

    아서: 정말인가……? 마법을 건 것도 아니고?

     

    오웬: 그래. 카인의 본성일지도 몰라.

     

    아서: 그건 아니야, 오웬.

     

    오웬: …….

     

    아서: 아까 너는 나를 진실에서 외면하는 겁쟁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해. 카인이든 오즈 님이든, 내가 아는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고.

     

    오웬: 오즈가 왜 나와. 듣기 싫어, 그런 이름.

     

    아서: …….

     

    오웬: 뭐야?

     

    아서: 아니……. 그렇구나.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오웬: 하?

     

    아서: 후후……. 나, 질투를 해버렸어. 그렇게 다정한 얼굴, 오랜만에 봤으니까.

     

    오웬: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서: 그건 피차일반이야. 카인의 사정을 모르지만 내가 가면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오웬은 어떻게 생각해?

     

    오웬: 몰라. 나는 괴롭히고 싶을 뿐이야.

     

    아서: ……알았어. 데려다 줘. 네가 더 빨리 서쪽에 도착할 수 있겠지.

     

    오웬: 뭐, 그렇지. 어떻게 해서라도 가고 싶은 거라면 데려다줄 수도 있어.

     

    아서: 어떻게 해서라도 가고 싶어. 나의 기사의 중요한 일이니까.

     

    오웬: 흥…….

     

    아서: 알려줘서 고마워.

     

    오웬: ……너무 화내지 마.

     

    아서: 에? 너를?

     

    오웬: 카인 말이야. 너에게 혼나면 기가 죽어.

     

    아서: 기죽지 않을 거야. 나에게 혼난다 해도 카인은 하고 싶은 것을 하겠지.

     

    오웬: 흐응……. 그러면 화내지 않을 거야?

     

    아서: 화낼 거야. 나도 하고 싶은 것을 할 거니까. 오웬은?

     

    오웬: 내가 뭘?

     

    아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어?

     

    오웬: 당연하잖아. 나는 북쪽의 마법사야.

     

    아서: 그러면 다행이다.

     

    오웬: ……탑까지 내 빗자루로 데려다줄게. 이리 와.

     

    아서: 알았어. 고마워.

     

    오웬: 떨어지지 마. 곤두박질 쳐져서 부서질 거야.

     

    아서: 어릴 때부터 오즈 님의 빗자루를 타고 다녔으니까 떨어질 리가 없어.

     

    오웬: 건방져.

     

    아서: 두근거리네. 같이 카인을 구하러 가자.

     

    오웬: 같이가 아니야. 네가 혼자서 알아서 하는 거지.

     

    아서: 오웬은?

     

    오웬: 그 방해를 할 거고.

     

    아서: 뭔가 복잡하지만 서로 최선을 다하자.

     

    오웬: 입 다물어. 혀 깨문다.

     

     

     

     

     

    리케: ……도대체 여기가 어디일까요……. 오즈의 귀가가 늦어져서 신경이 쓰여 찾으러 나왔더니, 이상하게 아름다운 장소로……. 아주 넓은 화단이네요. 누가 만들었을까? 미틸이나 루틸을 불러서 보여주고 싶어요. 꽃을 좋아하니까. 

     

    리케: ……? 지금 뭔가 소리가……. 누구죠?

     

    ???: 그건 이쪽의 대사야.

     

    리케: 당신은……. 낯선 노인이네요.

     

    ???: 그대도 낯선 소년이군. 어디서 헤맨 거지? 위병들에게 들키면 목이 잘릴 걸세. 찾은 게 나라서 다행이지.

     

    리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하하……. 이상한 아이. 뭐, 좋아. 내 머리가 보여주는 환상일지도 모르고…….

     

    리케: 환상이 아니에요.

     

    ???: 뭐든 상관없네. 하아……. ……아름다운 화원이야…….

     

    리케: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에요.

     

    ???: 마음이 치유돼……. 가능하다면 태양 아래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 세상에서 보는 마지막 경치에 어울리는 …….

     

    리케: 이 세상에서 마지막……?

     

    ???: ……아니……. 잊어주게나…….

     

    리케: ……? 저기……. 달을 올려다 봐주시지 않겠나요?

     

    ???: 어째서.

     

    리케: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요. 당신을 닮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 하하……. 그렇겠지. 지폐나 동전으로…….

     

    리케: 아니, 그게 아니라 ……. 아, 생각났어요. 서쪽 나라의 천공리궁이라는 곳에 살고 계신 안토니오 님이에요. 초상화가 온 것을 무르에게 보여줬거든요.

     

    ???: 안토니오인가……. 안토니오에게는 흉도가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군……. 모두에게 매달림ㄴ서 나는 내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어. ……살 수가 없었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줄이야…….

     

    리케: 괜찮나요? 달빛 때문이 아니라,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 괜찮네……. 모든 것이 이미 늦었어…….

     

    리케: 고민이 있다면 털어놓아 주세요. 저는 신의 사도이자 현자의 마법사, 리케 오르티스라고 합니다.

     

    ???: ……현자의 마법사…….

     

    리케: 맞아요. 지금까지도 각지에서 일어난 온갖 이변을 해결해 왔습니다. 부디 상담해 주세요.

     

    ???: ……현자님께 부디 전해다오……. 나를……. 이 나라를 도와…….

     

    ???: ……!

     

    리케: 무슨 일인가요!? 머리가 아픈 건가요!?

     

    ???: ……으, 우윽…….

     

    ???: ……나는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리케: 괜찮으신가요?

     

    ???: 너, 못 본 얼굴이구나. 위병에게 들키면 목이 잘릴 걸세. 빨리 가거라.

     

    리케: 하지만…….

     

    ???: 나도 돌아가도록 하지. 아아, 추워 추워…….

     

    리케: ……똑같은 대사를 두 번 말했다.

     

    오즈: 리케.

     

    리케: 오즈.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오즈: 여관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기척에 도달하기까지 몇 번이나 잠에 든 건지…….

     

    리케: 옷에 흙이 많이 묻어있네요. 털어드릴게요.

     

    오즈: 아마 이곳은 귀족이나 왕족의 땅일 것이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져 있고 건너편에 성이 있지.

     

    리케: 그렇군요. 노인을 만나어요. 현자님께 드릴 전언을 받았습니다만…….

     

    오즈: 뭐라고 하던가.

     

    리케: 도중부터 상태가 이상해졌어요. 그래서 못 들었어요.

     

    오즈: ……내일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하지.

     

    리케: 그렇네요. 카인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고요. 아서 님과는 이야기할 수 있었나요?

     

    오즈: …….

     

    리케: 아서 님을 만나신 거죠?

     

    오즈: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리케: 있어요.

     

    오즈: ……공무로 바빴다. 말은 걸지 않았어.

     

    리케: 그랬나요? 말을 걸면 기뻐하셨겠지만, 사양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오즈: 그렇군.

     

    위병의 소리: 침입자다! 찾아라!

     

    위병의 소리: 아마도 마법사다! 조심해!

     

    리케: ……? 저쪽이 시끄럽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즈: 숙소로 돌아간다. 말려들면 귀찮아.

     

    리케: 알겠습니다.


    8화 눈을 뜬 무언가

     

    에바: ……소피. 어째서 …….

     

    미스라: '아르시무'

     

    에바: ……!

     

    스노우: 오오!

     

    화이트: 에바일세! 훌륭하군, 미스라여.

     

    미스라: 말했잖아요. 제 탐색이 틀릴 리가 없다고.

     

    브래들리: 잘했다, 미스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미스라: 하?

     

    브래들리: 에바!

     

    에바: 가까이 오지 마! 미스라까지 데려오다니…….

     

    브래들리: 미안. 용서해줘. 너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에바: 꼬마. 더 이상 응석은 받아주지 않아. 그 녀석들을 데리고 가라.

     

    미스라: 에바, 오랜만이네요. 치렛타는…….

     

    에바: 가까이 오지 마!

     

    스노우: 미스라, 미스라. 에바의 말을 듣자.

     

    화이트: 움직이면 안 되네. 

     

    미스라: 전에 치렛타와 같이 에바가 사는 곳에 방문한 적이 있어서.

     

    에바: 그 이상 이야기하면 죽이겠다.

     

    미스라: 집을 옮길 필요는 없었는데.

     

    에바: 유언을 말해.

     

    미스라: 화를 너무 많이 내네요, 에바. 치렛타는 죽었어요.

     

    에바: 알고 있어.

     

    미스라: 그런가요.

     

    에바: 치렛타의 마도구는 네가 이어받은 건가?

     

    미스라: 네.

     

    에바: 한심한 남자. 대마녀의 촉박을 손에 쥐고도 쌍둥이의 목을 치지 못하다니.

     

    미스라: …….

     

    에바: 그녀의 예상은 틀렸어.

     

    미스라: ……하?

     

    스노우: 이쪽을 보지 말게나, 미스라여.

     

    화이트: 도발에 타지 마, 미스라 쨩.

     

    미스라: 원한다면 언제든지 해드릴 수 있는데요?

     

    스노우: 이미 늦었어~.

     

    화이트: 괜찮아~. 친하게 지내자~.

     

    브래들리: 미스라를 도발하지 마, 에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 모두 너를 탄복하고 있어.

     

    에바: 잘도 말하는군……. 괜찮겠지. 조금의 시간을 주마. 하고 싶은 말은?

     

    브래들리: 서쪽 나라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잖아. 무언가가 눈을 떴다고. 너도 알겠지만 지난 번 '거대한 재앙' 이 닥친 이래 세계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어. 멸망했을 터인 것들이 되살아나거나 사념이 강대하고 기묘한 힘을 가지거나. 그런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타계에서 온 현자와 뛰어다녔다.

     

    에바: 수고스러운 일이다.

     

    브래들리: 그렇지도 않아. 감옥에 있는 것보다 현자와 나가는 것이 재밌거든.

     

    에바: 어떤 아이지?

     

    브래들리: 현자 말인가?

     

    에바: 아아.

     

    브래들리: 혼자서는 만족스럽게 날 수 없는 새다. 하지만 큰 나무로 자랄 가능성은 있어. 비바람에도 도망치지 않아. 도망치지 못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속도로 뿌리를 내리는 힘이 있어. 너와도 만나게 해주고 싶네.

     

    에바: 기회가 된다면.

     

    브래들리: 꼭.

     

    브래들리: 그래서 말을 되돌리지만, 위험한 것이 깨어났다면 먼저 알아두고 싶어. 현자에게 알려주고 싶으니까, 라는 것은 구실로. 미스라도 나도 시름을 풀고 있거든. 너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하면 가까워지고 싶어져.

     

    에바: …….

     

    스노우: 에바는 어이가 없을 수도 있구먼. 충고를 소홀히 한 점은 어쩔 수가 없네.

     

    화이트: 호호호, 그렇지도 않아. 에바는 재빠르게 뛰는 꼬마를 좋아한다. 심쿵 에피소드잖아.

     

    에바: 죽고 싶나?

     

    스노우 / 화이트: 무서워!

     

    브래들리: 에바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 부탁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래. 도대체 뭐가 깨어났지?

     

    에바: 관여하면 불쾌할 뿐이다. 걱정이 될 만한 건 아니야.

     

    브래들리: 그건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지. 부탁해, 에바.

     

    미스라: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으로 분풀이를…… 으으읍!

     

    브래들리: 미스라도 부탁한대.

     

    에바: ……알았어. 알려주지.

     

    에바: 2개월 정도 전……. 제자 소피의 견문을 깊게 하기 위해 대륙을 돌고 있었다. 어느 날 서쪽 나라에서 거센 땅울림이 울려 바다가 거칠어졌지. 죽은 사람도 아니고 산 사람도 아닌 사람이, 해저에 가라앉은 섬에 숨쉬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노우: 가라앉은 섬……?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구먼.

     

    화이트: 샤일록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히……. 오오, 아담스 섬이었군. 과거 보르다 섬 근해에 있던.

     

    브래들리: ……보르다 섬. 거기서도 달 소환술 흔적이 발견됐어.

     

    에바: 달 소환술?

     

    스노우: 그렇네. 그대도 알고 있나?

     

    에바: …….

     

    브래들리: 에바?

     

    에바: ……소피가 의식의 흔적을 찾았다고 했다.

     

    브래들리: 네 제자가?

     

    에바: 이 마을 북동쪽 숲을 넘은 평원. 지금은 접근할 수 없어. 혼돈이 질서를 어지럽히고 정령들이 광란하고 있다. 소피에게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어. 그 아가씨는 흥미를 보이는 눈치였지만…….

     

    미스라: 제자가 생겼군요, 에바.

     

    에바: 너랑은 상관 없어.

     

    미스라: 상관 있어요. 치렛타가 당신에게 제자가 생긴다면 저와 싸우게 한다고.

     

    에바: 웃긴 말이군. 내 제자가 너 같은 악동에게 질까. ……아니.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야……. 그건 나를 배신했어.

     

    브래들리: 그렇게 정해졌다는 말투로 말하지 마. 어쩌면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르잖아. 달 소환술에 관심이 많았던 거지? 질서가 미친 자리에 다가가서 광란한 정령들에게 삼켜져 버린 건 아닌가?

     

    에바: 그건 아니야. 정령들에게 갉아먹힌다 해도 그 아이의 낌새는 알 수 있어. 그 자리에 소피는 없었다.

     

    미스라: 누군가에게 돌로 되어 먹힌 게 아닌가요?

     

    에바: 말도 안 돼.

     

    미스라: 말도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계집애 하나 정도는 저는 쉽게 돌로 만들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의 마력의 소유자였나요?

     

    에바: ……머지않아 오즈를 능가할 만큼.

     

    미스라: 하?


    9화 마녀가 남긴 말

     

    스노우: 호호호! 치렛타도 그런 말을 했구먼.

     

    화이트: 미스라가 오즈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돌이 되어버렸다. 뭐, 당연한 일일세!

     

    스노우 / 화이트: 오즈는 우리가 키운 아이니까!

     

    에바: 조만간 소피가 죽일 거다.

     

    미스라: 못 알아듣겠네요. 저는 지금 언제든지 오즈를 쓰러뜨릴 수 있어요. 봐주는 중인 거죠.

     

    에바: 어째서지?

     

    미스라: 오즈는 지금, 밤…….

     

    브래들리: 거기까지다, 미스라. 에바와 쌍둥이도 입싸움은 나중에 해 줘. 에바. 소피의 행선지에 짐작이 가는 건? 네 제가가 너를 배신한 건 아닐지도 몰라.

     

    에바: 그건 네가 바라는 것이지.

     

    브래들리: 고집이 세네. 배신한 확증이라도 있나?

     

    에바: ……나는 소피에게 명령했다. 내가 다른 땅에서 볼일을 보고 올 때까지 이 마을에서 기다리라고.

     

    브래들리: 여기였구나. 그래서?

     

    에바: 돌아왔을 때 그 아이는 없었어.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돌의 기운도 없었어.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지. 소피를 못 봤냐며.

     

    브래들리: 그리고?

     

    에바: ……키가 큰 남자와 마을을 나갔다고.

     

    스노우: 아아.

     

    화이트: 아아, 그런 거구나.

     

    미스라: 응? 무슨 말인가요?

     

    스노우: 그거잖아. 반했다던가.

     

    화이트: 사랑이 아니더라도 힘든 수행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있지.

     

    에바: ……죽인다.

     

    브래들리: 진정하라고! 소피라는 녀석은 혹시 다른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에바: 다른 재능?

     

    브래들리: 요리라던가 대장간이라던가 바느질이라던가. 가게를 낼 만한 거.

     

    미스라: 훌쩍 여행을 떠나 호수에서 시를 낭독하는 타입의 인간에게 반했다던가.

     

    에바: 네 녀석들, 까불지 마라. 요리니 시니 허튼 소리를.

     

    브래들리: 허튼 소리인 것도 아닌데?

     

    미스라: 허튼 소리가 아닌데요.

     

    에바: 더 이상 너희들에게 신경 쓸 수는 없어. 이야기는 그것 뿐인가.

     

    브래들리: 마지막으로 하나. 노바라는 마법사를 알고 있나?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긴 흰 머리에 한쪽 눈에 상처가 있는 다른 한쪽 눈이 의안인 마법사다. 엄청나게 강해. 미스라도 붙잡을 수 없었을 정도로.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모를 이상한 기척이 나. 키가 크다고 하면 크고, 달 소환술에 관여하고 있는 것 같아. 짐작가는 건?

     

    에바: ……모르겠어. 하지만 그 녀석이 소피를 두둔했다면 내가 그 녀석을 죽이겠다.

     

    브래들리: 수고를 덜어줘서 도움이 돼. 하지만 조심하라고. 나와 미스라, 오웬, 또 한 명의 마법사가 함께 싸워도 돌로 만들 수 없었어. 노바는 주문조차 외우지 않았다. 아직 여유가 있었던 거겠지.

     

    에바: ……기억해두지.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뭔가.

     

    화이트: 말해보게나.

     

    에바: 북쪽 마법사는 잊지 않는다. 너와 피가로가 인간의 앞잡이가 되어 저기 있는 꼬마를 사냥했던 것을.

     

    브래들리: …….

     

    에바: 염치없는 놈.

     

    스노우: 호호호, 에바여. 멧돼지 같은 마녀 같으니라고. 모든 건 마법사 때문일세.

     

    화이트: 그대 같은 자는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치가 있는 거지.

     

    에바: 미스라.

     

    미스라: 네.

     

    에바: 자랑스러운 치렛타의 제자여. 기억해 둬라. 너는 치렛타와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마법사. 네 눈으로 보고 네가 생각하도록. 이 세계에 무지하게 있지 마라. 이용당하고 말 거야. 오즈에게도 전해.

     

    미스라: 아, 잠깐……. 사라져 버렸네요.

     

    브래들리: 에바…….

     

    미스라: 무슨 뜻인가요? 이용당하다니.

     

    스노우: 나는 몰라~. 마음은 젊으니까.

     

    화이트: 나도 귀신이지만 마음은 청춘이고.

     

    미스라: 하아. 그런가요. 어떻게 할래요? 브래들리. 당신이 여기까지 데려오게 했잖아요.

     

    브래들리: 그렇네……. 에바가 말한 보르다 섬에라도 가볼까.

     

    스노우: 이 경치에서 보르다 섬으로?

     

    화이트: 날아가면 감기에 걸릴 것 같네. 귀신이라 다행이지만.

     

    스노우: 하지만 곧 밤이 된다.

     

    화이트: 우리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리네. 이제 마법관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브래들리: 확실히.

     

    미스라: 보르다 섬이 어디였죠?

     

    브래들리: 여러 변 현자와 함께 방문한 섬이잖아. 얼마 전에도 보르다 섬의 신성주에게 초대받았어. 결국 새로운 성주는 돌아오지 않고 너와 오즈가 왠지 엉망진창이었지만…….

     

    미스라: 어디서나 그러니까……. 뭐, 좋아요. 어딘지 모르겠지만 대략적인 감으로 가죠.

     

    스노우: 보르다 섬으로 가는 거야? 대략적인 감으로……?

     

    화이트: 대충 공간의 문을 여는 거야……?

     

    브래들리: 그거, 괜찮냐……?

     

    미스라: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스노우 / 화이트: 불안한데…….

     

    브래들리: 위험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를 위해 후추를 꺼내 놓을까…….

     

    미스라: 자, 갑니다. '아르시무'

     

     

     

     

     

     

    스노우 / 화이트 / 브래들리: ……!?

     

    미스라: 보르다 섬에 도착했어요.

     

    그림 속의 스노우: 보르다 섬!? 바다는?

     

    그림 속의 화이트: 여기 보르다 섬 아니지 않아!?

     

    브래들리: 아, 너희들 그림으로 되어 있어! 벌써 해가 떨어졌나…….

     

    미스라: 보르다 섬이잖아요. 자, 파도 소리도 들리고.

     

    그림 속의 스노우: 파도 소리? 들려……?

     

    미스라: 들려요. 귀를 기울이면…….

     

    ???: 꺄아아아아아악!

     

    미스라: 어라?

     

    그림 속의 스노우: 비명소리일세!

     

    그림 속의 화이트: 브래들리!

     

    브래들리: 뭐야. 도와달라고?

     

    그림 속의 화이트: 봉사활동을 하면 사면이네!

     

    브래들리: 어쩔 수 없지. 간다 미스라!

     

    미스라: 저도 가나요?

     

    브래들리: 기다려도 어쩔 수 없잖아. 여기는 보르다 섬이 아니야……. 서쪽 나라 같은데, 풍요의 거리 근처인가. 멀리 보이는 저거……. 저게 서쪽 나라의 왕궁이다. 그렇다는 건 역시 여기는 풍요의 거리 근처군.

     

    그림 속의 스노우: 역시 사수. 눈이 좋구나.

     

    그림 속의 화이트: 풍요의 거리라고 한다면 서쪽과 중앙의 마법사들이 조사하고 있지 않은가?

     

    ???: 살려줘! 누가 좀……!

     

    브래들리: 이 안이다. 들어가자.

     

    미스라: 제가 갈게요.


    10화 귀공자의 눈동자

     

    우리가 왕립 식물원에서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완전히 날이 저물어져 있었다. 모르는 땅에서 밤을 맞이하면 아직도 조금은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믿음직한 마법사들과 함께라고 해도. 하늘에 달빛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르: 현자님, 어서 와!

     

    라스티카: 어서오세요, 현자님.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코르테제 성으로 돌아갔던 무르와 라스티카가 우리를 반겨줬다.

     

    방금 돌아왔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빗자루에 타고 있었을 뿐이니까요.

     

    라스티카: 그렇다면 다행이다. 자, 저택 안으로 들어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죠.

     

    라스티카의 신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밝은 라스티카의 미소를 보는 것은 착잡했다. 그에게 상처를 줄 만한 이야기를 클로에가 하지 못한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화창하고 품위 있고 행복해 보이는 라스티카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누구나 지키고 싶어질 테니까.

     

    (북쪽의 마법사조차도 라스티카에게는 죽인다는 말도 좀처럼 안하고……. 라스티카가 슬퍼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클로에는……. 라스티카 자신은…….)

     

    클로에: 다녀왔어, 라스티카.

     

    라스티카: 어서 와, 클로에. 식물원은 즐거웠니?

     

    클로에: 응……. 그, 나중에 또 가려고.

     

    라스티카: 다시 한 번 왕립 식물원에? 그렇게 즐거웠어?

     

    샤일록: 왕립 식물원에 무르의 영혼 조각이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한밤 중에 나타나는 망령이 무르와 같은 필적으로 일지를 쓰고 있어서.

     

    라스티카: 그건 멋진 발견이네! 역시 우리의 운명은 위대한 무르와 연결되어 있구나. 멋져, 샤일록. 소중한 친구를 몇 번이나 만날 수 있다니.

     

    라스티카의 말에 샤일록은 눈을 깜빡였다. 잠시 후 조용히 웃는다.

     

    샤일록: 귀찮은 사람이긴 합니다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때, 코르테제 성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사: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현자님. 방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레고리: 늦어……. 평소에 급한 손님을 대비해 준비해두라고 했는데.

     

    집사: 항상 준비해 주고 있는 젊은이가 요즘 계속 쉬고 있거든요. 무슨 일일까, 그레고리 씨.

     

    그레고리: 내가 그레고리다. 아까 다른 사람에게 설명했는데 인계가 안 됐나.

     

    집사: 그레고리 씨, 새가 됐나요?

     

    그레고리: 여러 가지가 있어서. 내가 새가 된 것과 손님이 왔을 때의 대응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인수 인계 사항에 적어놓지.

     

    집사: 감사합니다.

     

    그레고리: 괜찮아. 글쓰기는 잘하니까. 지금은 날개펜도 직접 만들 수 있고.

     

    집사: 아하하하!

     

    그레고리: 아하하가 아니야.

     

    코르테제 성의 사람들은 느긋하고 밝았다. 그들로부터 오늘 밤 일정을 들은 그레고리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레고리: 현자님. 잠시 후 릴리아나 님과 코르테제 성의 성주 부부가 버넷 각하와 야찬을 합니다. 왕궁에서 살게 될 릴리아나 님에게는 이 성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되죠.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버넷 각하는 아키라 님을 부를까 하고 말했지만, 만약 피곤하시다면…….

     

    말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레고리에게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엄숙한 만찬에 섞이기보다는 다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저희는 간단한 식사로 충분해요. 나중에 왕립 식물원에도 가고 싶어서…….

     

    그레고리: 그렇게 말해주셔서 다행이다. 주방장이 너무 팽팽해서 한 사람당 10접시씩 준비해서.

     

    10접시…….

     

    그레고리: 여러분들께 적당한 양으로 정리해서 한 번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현자님…….

     

    뭔가요, 그레고리.

     

    그레고리: 왕립 식물원에 나가실 때 저는 이 성에 남아도 될까요? 릴리아나 님과 이야기할 틈이 있다면,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레고리의 요구는 최고였다. 그는 릴리아나 공주의 이변의 수수께끼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양해를 구하려는데 무르가 입을 열었다.

     

    무르: 그만두는게 어때? 혼자 말을 걸다가 새가 됐어. 이번에는 뭐가 될지 몰라.

     

    샤일록: 저도 무르에 동의합니다. 당신이 식물원까지 동행하는 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저희가 없는 곳에서 위험한 일은 당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레고리: 아아……. 감사합니다. 너희들, 상냥하구나…….

     

    클로에: 당연하지. 친구니까! 하지만 빨리 수수께끼를 밝혀내고 싶어. 마음은 아니까……. 성에 남아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라스티카: 그렇네. 너무 위험한 건 하지 말고. 무르의 말대로 그녀는 작은 새에게…….

     

    라스티카: ……작은 새에게…….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라스티카는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고귀하고 밝은 푸른 눈동자는 그레고리를 바라보는 듯 허공을 헤매고 있다. 달빛이 새장처럼 우리를 가둬놓는다. 달빛에 창백하게 젖은 클로에의 뺨에 잔잔한 긴장이 흘렀다. 라스티카가 살짝 극채색 새의 날개에 손을 뻗는다.

     

    그레고리: ……왜 그러지? 라스티카?

     

    그레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리가 흔들리자 라스티카는 눈을 깜빡였다.

     

    라스티카: 아……. 미안해. 무슨 이야기였지.

     

    그레고리: 잊었나? 눈앞에서 지금까지 얘기했는데?

     

    클로에: 미, 미안해. 라스티카는 조금 잘 잊어버리거든. 그레고리와 릴리아나 님의 이야기야.

     

    라스티카: 그랬었지. 그레고리, 조심해.

     

    그레고리: 고마워. 너희들도 말이야.

     

    그때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왜 그레고리는 마법으로 새가 된 걸까. 왜 라스티카의 마법 도구는 새장일까. 왜 라스티카는 신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마법으로 새로 만들어 새장에 가두는 걸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왕립 식물원으로 향했다. 한밤 중에 나타나는 망령……. 영혼 조각의 무르를 찾기 위해서.

     

     

     

     

    켈빈: 라라라……. 라라라…….

     

    켈빈: 불쌍한 비극의 귀공자……. 지은 죄도 잊고…….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라스티카: 여기가 왕립 식물원이구나. 희미한 불빛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멋진 곳이네요. 여러 가지 꽃과 잎 냄새가 나네. 아…… 저건 뭘까?

     

    클로에: 잠깐만!

     

    라스티카: 와앗……!

     

    클로에: 미, 미아가 되면 안 되니까. 혼자 어디 가지 마.

     

    라스티카: 괜찮아, 클로에. 아무데도 가지 않아. 너와 함께야.

     

    클로에: 예…… 옛날처럼 어리지 않아. 지금은 내가 너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라스티카: 그랬지. 걱정해줘서 고마워.

     

    클로에: ……만약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라스티카: 뭘까. 동화?

     

    클로에: 앞으로의 이야기.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지 않으면 귀를 막아도 되니까.

     

    라스티카: 누가 말을 걸어주는데 귀를 막는다면 불친절하지 않을까?

     

    클로에: 그렇지만…….

     

    샤일록: 클로에.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마세요.

     

    클로에: ……응…….  

     

    클로에는 걱정스러운 듯 주위를 경계하며 라스티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날개 달린 마법사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겠지. 정확히는 그가 라스티카에게, 그의 신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나도 이상한 긴장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서운 마물에 휩쓸렸을 때나 남 앞에서 말할 때와는 다르다. 소중한 사람이 앞으로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 그런 줄 알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그런 두려움.

     

    라스티카에 대해 내가 결정지을 수는 없다. 신부 찾기를 하지 않아도 진실을 모르고 있으리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그에게 상처를 주는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지킬 수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나도 그런데 라스티카와 계속 같이 있었던 클로에는 더 힘들 것이다. 밤에 길을 잃는 것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라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놓치고 만 걸까? 그럴 리는 없어. 외길이었는데.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빨라진다. 어둠 속에 웅성거리는 잎과 굽이치는 가지가 무섭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큰 소리로 마법사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 순간, 팔목을 꽉 잡혔다. 귀 뒤에서 신사적인 목소리가 났다.

     

    영혼 조각의 무르: 여기입니다, 현자님.

     

    ……!

     

    뒤를 돌아본다. 내 뒤에 있던 것은 서쪽의 마법사 무르였다. 아니…… 무르의 영혼의 조각. 그것이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실체화 된 것. 고양이 같은 영리한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그는 미소지었다.

     

    영혼 조각의 무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을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영혼 조각의 무르: 사랑스러운 나의 현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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