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피가로의 서
피가로: 현자의 서인가…….
아키라가 준 현자의 서 표지를 살짝 쓰다듬었다. 나는 남쪽 나라에서 진료소를 열고 있었다. 그래서 간단한 진찰 기록은 적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기나 일지류를 쓰는 것은 오랜만이다. 남쪽 나라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는 사람이 이동하는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기록한 적이 있다.
기록은 중요하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로 보일지라도 나중에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이웃 마을까지는 사흘. 호숫가까지는 일주일. 말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2배 빨라진다, 라던가. 그 환자의 복통은 특정 음식을 먹었을 때만 일어난다, 라던가.
아키라의 요구는 추상적이었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무엇을 조사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 숫자를 축적하고 싶은지. 다만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서 그것을 해소하고 싶을 것이다.
언젠가 제가, 그 역할을 짊어질 때가 왔을 때 틀리지 않기를……. 어떤 일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 지휘를 하고 정리해 갔는지 저에게 보고해 주셨으면 해요.
사람이 좋아보이는 아키라의 얼굴이 생각나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피가로: (내 눈을 통해서 본 것을 가르쳐 달라라니.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보면 미쳐버릴 거야, 현자님.)
나는 현자의 서를 들지 않고 방에서 나왔다. 결정이 낙담하지 않을 정도의 간이 보고로 괜찮을 것이다.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써도 괜찮겠지.
아키라가 좋다. 느낌이 좋고 열심히 하고 우리 편이 되어주려고 해. 할 수 있는 한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키라와 오래 함께 있지는 않아. 천천히 술을 따르듯 넘칠 정도로 사실대로 말하고 아키라가 겁에 질려 낙담했다고 해도……. 술잔은 쓰러진다. 현자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 엄청 편리하지. 편리하게 생각하는 길이를 이야기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손이 끊어진다. 그런 관계가 좋다.
피가로: (하지만 말이야……. 그런 부담없는 걸 너무 많이 골라서 지금 별로 남지 않았거든. 둘도 없는 나만의 것이.)
기록은 중요하다. 내가 일기를 못 쓰게 된 건 반복적인 내용이 지겨워서다. 사람을 만나고 상처받고 어이없어하고 실망하고 실망을 감추고 웃고…… 살짝 밀어내듯이 작별. 같은 것을 반복한다. 이 세계는 지긋지긋해. 하지만 그런 나는 더 지긋지긋해.
레녹스: 안녕하세요, 피가로 님.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마법관의 탑 주변을 걷다가 레녹스를 만났다. 레녹스는 전 중앙의 마법사다. 마법보다도 힘쓰는 일을 잘하고, 지금은 양치기를 하고 있다. 이 남자는 일찍이 행방불명된 주군을 400년 동안 찾아다녔다. 근거도 없이 신념과 의지만으로.
피가로: (보통, 가능한 일인가?)
생각을 멈췄다. 어리석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하지만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반면 레노 같은 남자가 있으니까 이 세계에는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신기한 남자다.
피가로: 안녕. 빨리 왔네.
레녹스: ……왠지 미지근한 얼굴을 하고 계시네요. 무슨 일 있나요?
피가로: 미지근하다니 뭐야. 실례네.
레녹스: 이렇게, 마음에 안 들지만 칭찬해 줄까? 같은 거.
피가로: 그럴 리가. 오해야. 자학은 그만둬.
레녹스: 하아. ……응? 자학?
피가로: 뭐 하고 있었어.
레녹스: 파우스트 님을 배웅하러.
피가로: ……아아…….
레녹스의 시선을 쫓아 나는 마법관 탑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한 쪽에 그의 모습이 보였다. 파우스트는 내 제자였다. 파우스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잃은 고향을 생각할 때처럼. 멸종한 씨앗을 추모하듯.
2화 놓아준 과거와 달콤한 미련
피가로: (여러 사람들에게 질려왔지만 파우스트에게는 한 번도 낙담하지 않았네. 그 아이는 이상대로였어. 쌍둥이 선생이 나를 놀리려고 보낸 심부름꾼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높은 뜻고, 공평한 결함도, 약한 것에 대한 자비로움도, 존사로서 나를 존중하고 경애하는 마음도…….)
예를 들면 까마득히 옛날부터 대지를 흐르는 대하가 있었다고 해서 거기서 물을 길어 오물을 씻고 배를 띄워도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강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도 한 번 범람이 일어나면 전율하여 사신의 이름을 댄다.
파우스트는 달랐다. 그는 이기심 없이 나에게 감사하면서도 나에게 살해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켜왔기 때문인지 나에게도 군에도 극기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대하의 한 방울에도 감사하고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는 아이였다.
파우스트: 피가로 님. 위대한 스승이시여. 부디 당신의 지혜를 부족한 이 몸에 주십시오. 오랜 시간을 살아 당신이 얻은 훈계,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고뇌도 모른 채…… 가르침을 청하는 얕음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피가로: 상관 없어, 파우스트. 아아, 너처럼 우리를 생각하는 자가 또 있었다면…….
파우스트: 피가로 님…….
피가로: 누구나 우리에게 물으면 답을 들려주는 메아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대답하지 않으면 심술 궂다고 하거나 꼬이게 만든 염세 때문일 거라고. 모두들 우리 가르침에 우리에게 혈육이나 이야기가 있음을 잊어버린 거야.
피가로: 그러니까 아가미처럼 이 살을 찌르고 반복하는 거지. 자, 알고 있다면 알려줘.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빨리 가르쳐줘. 않는다면…… 우리가 어리석은 행동으로 죽어가는 것은 너 때문이라고.
파우스트: ……당신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는데?
피가로: 맞아. 그러니까 어느샌가 지키려던 백성들을 미워하기도 했어. ……그래도, 사실 나도 오랫동안 구해주고 싶었어. 너라면 나는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들에게 해줄 수 있을 거야.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줄게, 파우스트.
피가로: …….
햇빛이 새는 날의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뜨고 폭풍이 있었던 일의 광경을 떠올린다. 정중하게 신중하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마법사가 되도록 키우려고 했는데……. 내 쪽에서 놔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달콤한 미련이 있다. 마법관의 탑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 레녹스가 물었다.
레녹스: 미련이 있는 얼굴이네요.
피가로: …….
나는 언짢게 입을 다물었다. 이 녀석, 이런 점 말이지. 하지만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선뜻 친분의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화난 표정을 짓자 그가 사죄했다.
레녹스: 죄송합니다.
피가로: 됐어.
뭐, 그렇겠지요 라는 느낌으로 레녹스는 아연실색했다. 이 녀석, 이런 점 말이지.
레녹스: 파우스트 님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텐데.
피가로: 어떻게? 피해버리는데.
레녹스: 파우스트 님은 지금은 저주상 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만, 뿌리는 정직하십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당신이 정직하게 말한다면 대화는 할 수 있을 거예요.
피가로: 그럴지도 모르지. 고마워. 참고할게.
무심한 사례로 레녹스는 어깨를 움츠리고 걷기 시작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은 복잡하니까…….
피가로: 네가 단순한 거야. 말해 두지만, 파우스트가 피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니까. 요즘은 왠지 너의 불굴함에 파우스트가 져서 가시 돋침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레녹스: 허물어지셨다면 저의 방식이 정공법이었던 게 아닌지.
피가로: 이 녀석……. 관여하지 말라고 해서 될 수 있는 대로 관여하지 않았던 내가 바보 같잖아. 파우스트의 요청에 부응하지 않고 관련되어간 네 쪽이 잘하고 있다니. 하지만 뭐, 세상이 그런 건가.
레녹스: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자제해야 해요. 그때처럼 몰아붙이고 말아.
혼잣말처럼 레녹스는 중얼거렸다.
3화 천명을 발견했을 때
400년 전 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만신창이가 된 파우스트는 간병하는 레녹스의 앞을 떠났다. 자기 탓이라고 레녹스는 생각했다. 나도 약간 조금은. 레녹스의 솔직함이 기분 좋을 때도 있지만 그 무구함에 시달릴 때도 있다. 등뼈가 부러질 정도로 절망할 때는 특히 그럴 것이다. 그의 우직함은 구원이요, 무거운 짐이다.
뭐, 이건 내 편견일 수도 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레녹스를 해치우고 있을 뿐이야. 몸을 끄는 상냥함보다 매달리는 힘에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함께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오즈에게 이렇다 할 평가도 받지 못했고……. 파우스트에게 요구되었을 때는 구원받았다. 나도 레녹스도 파우스트에 미련이 있다. 우리가 정신없이 달려가던 시절을 준 건 그니까.
피가로: (정확하게는 그들인가.)
건국의 영웅 알렉 그랑벨. 파우스트의 친구이자 시대를 움직인 역사의 총아.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로 이끌었던 파우스트와 알렉. 땅의 끝을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높은 탑을 쌓는 기적의 힘이 있다 하더라도 뜻이 없다면 허무할 뿐. 왕좌에 앉을 인물을 교체했다고 해서, 온 세상의 절반을 다 태워버렸다고 해서, 아는 얼굴의 유상무상에게 사랑받았다고 해서……. 질질 끌고 게으르게 살면서 생기는 인생의 심심풀이의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피가로: (그러니까 이 아이를 키우자. 그것이야말로 나의 천명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기뻤어. 내 인생에 의미가…… 즐거움이 생겼다고.)
분명 레녹스도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련이 있어.
피가로: 루틸이랑 미틸은? 오늘은 중앙 나라의 시장에 간다고 했었지.
레녹스: 어제 이야기했을 때 같이 간다고 했었죠.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해서 물려받은 빈집 말씀하시는 거죠.
피가로: 맞아 맞아. 오늘은 집 주인 이외의 지원자들과 이야기를 할 거야. 루틸같이 착해 보이는 아이나 미틸같이 영리해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다들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레녹스: 그렇네요.
피가로: 방으로 데리러 가볼까. 오후부터 가도 되긴 하지만…….
이야기 하는 동안 루틸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면 미틸의 손을 끌고 루틸이 달려온다. 죄송합니다. 늦어버려서. 그러면서 숨을 헐떡이는 루틸이 웃음을 터뜨릴 줄 알았다. 고개를 든 루틸은 울고 있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꺼풀이 붉게 물들고 평소보다 더 이기적으로 빛나 보인다.
루틸: ……윽.
치렛타의 모습을 보았다.
피가로: 루틸……? 무슨 일이야?
그는 입을 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흔든다.
루틸: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틸은 미틸의 어깨를 바짝 끌어안았다.
미틸: …….
미틸은 뭔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루틸을 올려다봤다.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형을 생각하는 미틸이 루틸이 울고 있을 때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이상하다. 들어보세요, 피가로 선생님! 형님이 혼났어요! 아니면 이렇게. 형님. 무슨 일인가요!? 무슨 일 있었나요!? 지금의 미틸은 울고 있는 루틸에게 놀라지도 않고 동조도 하지 않는다. 나는 미틸의 눈을 보고 물었다.
피가로: 미틸, 무슨 일이야? 루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미틸: 그게……. 미스라 씨가…….
피가로: 미스라?
놀라서 루틸을 돌아보았다. 레녹스의 얼굴에도 경계가 떠오른다. 루틸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입가를 가리고 어깨를 떨고 있다. 미틸은 그런 형을 아연실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루틸: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피가로 선생님. 제발 잊어주세요.
피가로: 알았어. 말로 하기 힘들다면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둘 다 다친 곳은 없어? 이상한 걸 보거나 먹거나 하지는 않았지?
4화 외롭고 우스꽝스럽고 기묘한 밤
미틸: …….
미틸의 얼굴에 긴장이 간다. 루틸은 더욱 강하게 미틸을 끌어안았다.
루틸: 네. 괜찮아요.
두 사람의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동요가 큰 것 같아서 나중에 듣자.
피가로: (미스라 녀석, 뭘 한 거야?)
루틸이랑 미틸, 플로레스 형제의 어머니는 치렛타라는 대마녀였다. 흉악하고 대담하고 변덕스러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니까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가 미스라를 만나기 전에. 나는 얼굴도 좋고 오즈 만큼은 아니지만 강했다. 주변 마법사에 비하면 상냥했다. 나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연인 사이는 될 수 없었다.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틈을 보이면 목숨을 빼앗기는 것을.
아무리 마음에 들다 한더라도 믿을 수 없어. 치렛타는 인간과 결혼했고 남쪽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 나를 믿지 않았다. 내가 미틸을 죽일까봐.
피가로: 알았어. 이제 안 물을게. 루틸, 조금 쉬었다 갈래?
루틸: 아뇨, 갈 수 있어요.
손등으로 벅벅 눈물을 닦고 루틸은 웃었다. 이젠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였다.
피가로: 무리는 하지 마. 그럼 갈까.
우리는 빗자루를 꺼내서 마법의 힘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레녹스: 아……. 미스라네요.
마법관의 상공으로 날아오르자 레녹스가 중얼거렸다. 미스라가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스라의 시선을 느끼면 나 같은 경우는 반사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다음 순간 눈앞에 나타나서 어떤 공격을 가할 지 모른다. 하지만 플로레스 형제는 달랐다. 루틸은 미안한 표정을, 미틸은 눈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피가로: (미스라 녀석……. 루틸이랑 미틸에게 마나석을 먹이려고 했군.)
마법사는 죽으면 마나석이 된다. 마나석을 먹으면 마력이 증가한다. 마법사가 마나석을 먹는 것은 옛날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마법사들에게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뼈와 마찬가지로 마나석도 땅 밑에 묻고 싶어 한다. 치렛타의 남편이었던 모리스 플로레스도 치렛타의 돌을 묘석 밑에 묻었다. 일부는 빼고.
플로레스 선생님과 대화했던 외롭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기묘한 밤을 기억하고 있다.
모리스: ……아직 믿을 수가 없어요……. 치렛타가 죽었다니…….
피가로: 마음은 알아……. 아쉬워. 치렛타와는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모리스: ……저 혼자서 루틸과 아기를 키울 수 있을지…….
피가로: 동네 사람들이 협조해 줄 거야. 나도 최대한 힘이 될게.
피가로: 플로레스 선생님……. 아니, 모리스. 이럴 때 미안해. 재빠르게 정리하고 싶은 게 있어.
모리스: 아아, 그렇죠……. 상주로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피가로: 그것도 있지만 치렛타의 마나석에 대한 거야. 어떻게 하고 싶어?
모리스: 어떻게…… 라니……?
피가로: 무덤에 묻고 싶어? 요즘은 돌이 된 마법사도 무덤에 묻는 게 유행이지?
모리스: 그…… 그렇네요…….
피가로: 좋아. 알았어. 하지만 반드시 파헤져질 거야. 그녀는 강한 마녀였으니까.
모리스: 성묘가 온다는 건가요? 마나석은 보석이라서 비싸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피가로: 아니, 그녀의 돌을 먹으러 오는 거야. 미스라라던가 북쪽의 쌍둥이가.
모리스: …….
피가로: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그건 조의 같은 거야. 물론 다른 마법사에게 질 좋은 마나석을 주고 싶지 않는다는 마음도 있겠지. 그러니까 일부는 파헤쳐지기 전에 미리 확보해도 될까? 무덤을 털리고 싶지는 않지?
모리스: 네…… 네…….
피가로: 고마워. 그리고 또 하나. 그녀의 집안 말고도 무덤을 털러 더 올 거야.
모리스: 마법사가……?
피가로: 아아. 이번에는 조의가 아니야. 질 좋은 마나석을 순수하게 갖고 싶은 무리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파헤치겠지. 그걸 막고 싶잖아?
모리스: 네…….
피가로: 알았어. 그러면 내가 결계를 쳐도 될까?
모리스: 결계?
피가로: 파헤쳐지지 않도록 저주 같은 걸 걸어놓는 거야.
5화 마나석을 둘러싸고
모리스: 저주…….
피가로: 아……. 아니면 아내의 무덤에 다른 남자가 결계를 치는 건 싫으려나? 만약 그랬다면 미안해. 솔직하게 말해줘도 돼. 지금 사람의 감각, 조금 몰라서.
모리스: ……죄송해요. 기분이…….
피가로: 아아, 미안! 안색이 안 좋아, 플로레스 선생님. 안 잔지 오래됐겠지. 갑자기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치렛타의 돌을 지켜야할 것 같아서.
모리스: 아뇨, 저야말로 동요해서 죄송합니다. 마법사와 결혼했을 때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피가로: 어쩔 수 없지. 인간끼리 마법사끼리도 사고방식에는 차이가 있고.
모리스: ……피가로 선생님.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피가로: 괜찮아. 몇 개든 물어봐.
모리스: 당신도 치렛타를 먹나요?
피가로: 그럴 생각인데. 싫어?
모리스: …….
피가로: 할 수 있다면 루틸에게도 먹이고 싶지만…….
모리스: 루…… 루틸은 치렛타의 아들이라고요!?
피가로: 아들이니까야! 시…… 싫으면 그만둘까? 치렛타는 그랬으면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리스: ……우…… 으……. ……너무해. 너무해…….
피가로: 울지마, 선생님……. 내가 결계를 치는 건 어때? 그쪽도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서 싫으려나……?
모리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파헤쳐지죠……?
피가로: 송두리째 뽑힐 것 같아. 그녀는 강한 마법사였고…….
모리스: ……우, ……우윽……. 우…….
피가로: 우…… 울지 말아줘…….
결국 루틸에게 마나석은 먹이지 않았다. 물론 젖먹이였던 미틸에게도.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는 치렛타에게 그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나석을 먹여 강하게 만들고 싶었겠지. 미스라는 플로레스 형제에게서 손을 떼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도 미스라를 죽이고 싶을 때는 우선 플로레스 형제를 처치하고 미스라의 마력을 빼앗겠지. 물론 정서적인 이야기는 별개다. 루틸도 미틸고 귀엽고, 어른이 될 때까지는 지켜봐 주고 싶다.
피가로: (미스라의 일이니까, 꽤 좋은 돌을 먹이려고 했겠지. 루틸이나 미틸 정도의 마력을 가진 사람에게 너무 강한 마나석을 먹이면 마음이 부서져 버려. 미스라나 두 사람에게 제대로 말해놔야지. 특히…… 미틸에게는 확실히 전달해 놓는 것이 좋겠어.)
미틸의 얼굴을 보는 한 그 아니는 루틸만큼 돌 먹는 것에 저항하지 않는 것 같다. 미틸은 강한 마법사를 동경하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훈련 태도도 언제나 성실하다. 하지만 미틸에게는 불길한 예언이 있다. 남쪽의 마법사를 전멸시킨다. 예언한 것은 북쪽 쌍둥이. 그들의 예언은 어긋나지 않는다. 그래도 슬픈 미래가 오는 날을 조금이라도 멀리하고 싶었다. 미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피가로: (착한데 말이지, 미틸은…….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남에게 맡기지 말고 내가 처리해 주자. 이런 생각 전에도 했었던가. 아, 맞다……. 오즈였다.)
루틸: 오늘은 사람이 많네요. 점점 거리 사람들에게 활기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중앙의 거리에 다다를 무렵에는 루틸은 밝음을 되찾고 있었다.
레녹스: 잔해투성이였던 거리도 원래대로 돌아갔고.
미틸: 중앙 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긍정적이죠! 저, 도와드리면서 느꼈어요.
피가로: 그렇지. 빈집을 빌려주겠다고 한 것도 그런 긍정적인 점 때문일 거야.
미틸: 피가로 선생님. 빈집이 전에 저희가 청소했던 집인가요?
피가로: 맞아 맞아.
나는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미소지었다. 미틸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어떤 일을 이야기한다.
피가로: 미틸이 레노와 함께 남은 폐재를 사용하여 테이블을 만들어줬지?
미틸: 네. 손질했더니 정원이 깨끗해서 잠깐 쉴 곳으로 만들자하고.
피가로: 집을 물려준 사람은 그걸 보고 무척이나 감동했나봐. 남쪽 나라 사람들은 저런 젊은 아이도 목수 일을 잘하는구나 라고. 중앙 나라의 수도는 인구의 변화가 컸던 만큼 재난으로 집을 버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 그중에서 폐재를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이용해줘서 기쁘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 집을 고쳐준 너희 마음대로 쓰라고 준 거야.
미틸의 눈동자가 뜨겁게 빛난다. 그의 환희가 전해져 와서 나는 기뻤다.
6화 행복을 바라고 있어
하나하나 정중하게 전달하고 미틸이 알아갔으면 좋겠다. 결코 마력의 힘만이 마법사의 영예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충분히 위대하다는 것을.
미틸: 그렇군요……. 구름의 거리에서는 물건이 적어서 여러가지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피가로: 알지. 구멍 뚫린 통을 화분으로 만든 것은 아주 좋은 발명이었어. 고마워, 미틸. 너의 정중한 일이 우리에게 집을 준 거야.
미틸: 에헤헤…….
미틸은 기쁜 듯이 웃었다. 울고 있는 것 가틱도 했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조금 평소의 태도를 반성했다. 미래에 미틸을 불행한 마법사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 마음이 너무 앞서서 미틸을 너무 제한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피가로: (큰 마력을 얻는 것이 장래의 불행에 다가오는 것이라고 해도 미틸에게는 미틸의 자유가 있어. 그렇다면 성장을 바라는 것도 미틸의 자유. 그의 성장을 관리하거나 향상심을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파멸이라고 해도…….)
문득 미틸의 옆모습이 어른이 되기 전의 오즈와 겹쳐 보였다. 오즈에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즈에게 손을 떼고 않았다. 저것이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미틸은 어떨까. 언젠가 나에게 위협이 될까. 이 아이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오즈의 행복도 바라고 있었다. 파우스트의 행복도. 스노우 님이나 화이트 님, 레녹스, 치렛타, 루틸, 아서, 사랑했던 모든 자들. 그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미틸: 와아……. 너무 예뻐졌네요!
레녹스: 이웃이 색이 바래는 곳을 다시 칠해줬구나. 예뻐졌네.
루틸: 마치 새 집 같아! 이곳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나요?
피가로: 아아. 지금은 아직 없지만 조만간 간판을 내걸 예정이야. 뭐가 좋을까.
레녹스: 역시 마법사의 집으로 좋지 않을까요?
루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법사가 있는 집. 말썽꾸러기 상담에 응하겠습니다. 라고 써있는 집을 남쪽 나라에서 본 적이 있어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피가로: 그게 나을 것 같아. 처음에는 놀랄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익숙해지겠지. 그러면 여기는 마법사의 집으로.
미틸: 형님, 보세요! 이게 제가 만든 테이블이에요.
루틸: 와아, 잘 만들었네! 레노 씨와 미틸은 정말 예쁜 가구를 잘 만드는구나.
미틸: 하지만 여기 조금 못이 휘어져 있어요.
루틸: 그런 건 신경 안 써. 형은 테이블 다리째 휘어지거든.
미틸: 후후, 그러면 앉지 못하잖아요!
루틸: 그렇지! 뒤집혀져 버려!
플로레스 형제의 웃음소리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다 보니 안쪽에서 몇 명 나타났다. 부흥할 때 서로 협력한 중앙 나라 ㅜ도의 시장 거주자들이다.
중앙 나라 사람: 이야, 피가로 선생님! 마법사 여러분.
피가로: 안녕, 오랜만이야. 멋진 집 고마워.
중앙 나라 사람: 저야말로 항상 여러 가지 감사드립니다. 살아주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집회소……? 로 한다고 하셔서…….
피가로: 아아. 마법의 힘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가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 마법사의 무엇이든 가게, 같은 건가요?
문득 옆에서 참겨해 온 인물이 있었다. 처음 얼굴을 보는 젊은이였다. 소년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몰라. 옷차림이 좋고, 지적이며 품위가 있다. 처음 가는 곳을 탐험하는 미틸처럼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루키노: 갑자기 죄송합니다. 저는 루키노 아딘슨이라고 합니다. 신문 기자의 햇병아리죠.
루틸: 처음 뵙겠습니다, 루키노. 저는 루틸 플로레스예요. 신문 기자?
루키노: 최첨단의 정보를 적어 정보에 민감한 고객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정보에는 가치가 있으니까요. 머지않아 신문이 세계를 움직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문 기자는 훌륭한 일이에요!
루키노에게서는 일에 대한 천진난만한 동경과 긍지가 감돌고 있었다. 쑥스러운 듯이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루키노: 아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그만 열이 서려서……. 인사를 이어가 주세요.
7화 전율의 재회
레녹스: 그럼 나부터. 레녹스다. 잘 부탁해.
미틸: 미틸입니다. 루틸의 남동생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피가로: 피가로야. 안부 전해줘.
미틸은 아직 조금 경계한 듯 루키노를 바라보고 있다. 루키노는 감격을 감추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마법사를 만나고 싶었던 타입이군.
루키노: 사실 마법사를 만나고 싶었어요. 마법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시. 게다가 옷차람이 좋기 때문에 어딘가 귀족의 자제일지도 모른다.
루키노: 마법사가 집회소를 만든다고 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거든요. 아서 전하나 전직 기사 카인을 비롯해 현자의 마법사는 세계의 구세주입니다! 우리를 지켜줘서 고마워.
루키노: 저는 아직 좀처럼 기사를 싣지 못하는 입장입니다만, 언젠가 여러분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 도와드릴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루키노 씨는 곧게 인사했다. 솔직해 보여서 느낌이 좋은 아이다. 아직도 경계하고 있는 미틸의 등을 만지고 나는 루키노에게 웃었다.
피가로: 고마워, 루키노. 기사 이야기는 접어두고 일단 미틸과 친구가 되어줘.
루키노: 그럼요! 잘 부탁해, 미틸. 남쪽 나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들려줘.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미틸: 그런가요……? 저라도 괜찮다면 어떤 거라도! 구름의 거리 이야기는 어떤가요?
루키노: 구름의 거리! 들어봤어! 남쪽 나라에서 제일 번창하는 곳이지! 듣고 싶어!
말솜씨가 좋아서 차츰 미틸도 경계심을 풀어나갔다. 루틸도 웃으며 두 사람을 보고 있다.
레녹스: 신문이라……. 괜찮나요?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이것저것 거짓말을 쓰느니 차라리 편들어주는 게 낫지. 저 아이는 마음이 좋은 것 같고. 나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써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 상냥한 남쪽 나라의 의사 피가로 선생님…….
???: 피가로 님.
갑자기 등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전율이 감돈다. 직전까지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피가로: …….
뒤돌아보기 전에 어깨를 붙잡혔다. 레녹스보다도 한 단계 크고 마른 하얀 손. 여자나 아이의 가는 목은 한 움큼으로 부러질 거다.
굵은 팔에는 본 적이 있는 가죽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숨을 삼키고 고개를 든다. 장신인 나조차도 턱을 치켜들고 올려다볼 만한 씩씩한 거구. 얼음 칼날 같은 감정이 없는 연푸른 눈동자. 잔잔한 나무가 새는 햇빛 아래, 내 뒤에 서있던 것은 몸집이 크고 장신인 북쪽의 마법사였다.
온몸이 팽팽해진다. 미소 지었지만.
피가로: 여어! 아이작이잖아.
아이작: 오랜만입니다, 피가로 님.
그의 말대로 만난 것은 100년 만이었다. 더 오래 지날 수도 있고. 아이작은 북쪽의 마법사다. 브래들리에는 못 미치겠지만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강하다. 아이작이 마음만 먹으면 이 거리의 일각에서 순식간에 생명의 기척이 사라질 것이다.
아이작에게는 색다른 점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색이 옅고 담백한 눈빛이 아이작이 내 손을 잡았다. 꼭 양손으로 움켜쥐면서 가만히 바로 앞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작: 변함없이 영리해 보이는 분이시다……. 저는…… 저는 안돼요. 변함없이 저는 안됩니다.
내 손을 잡은 채로 우물쭈물 아이작은 무릎을 꿇었다. 털썩 엉덩이를 떨구고 앉아 바로 허리를 띄우고 무릎을 꿇는다. 내 손을 쭉 당겨서 내 코끝에 갖다대려고 했다. 아마 기도라던가 경복의 자세를 취하고 싶었겠지.
아이작: 피가로 님, 피가로 님. 저는 또 바보 같은 짓을 했습니다. 아…… 알았어요. 저는 곧 죽을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있으면 되니까 똑똑해지고 싶어요. 이 세계를 알고 싶어서…….
아이작: 여기에 왔더니, 당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작은 미소지었다. 살인마 같은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8화 굶주린 곰과 거리를 걸으며
나는 속으로 곤궁했다. 아이작은 위험한 마법사다. 그는 성질이 급하고 폭력적이다. 그를 놀린 상대를 안색을 바꾸지 않고 다시는 웃을 수 없는 모습으로 만든 것을 본 적이 있다. 격앙되어 짜증이 났을 때는 머리가 좋은 마법사를 돌로 만들어 그 돌을 먹은 적도 있다. 그러면 똑똑해질 것 같았다고 했다.
피가로: (큰일이네……. 아이작은 이런 인간이 많은 거리에서 살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야…….)
아이작도 적극적으로 잔인한 것은 아니다. 어느 북쪽의 마법사보다 온후할 정도이다. 그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북쪽의 마법사로 태어났으면서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자들은 시원하고 편안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었다. 세상을 알면, 지혜만 있으면 심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아이작의 그런 점은 좋아했다. 진지하고 불쌍하고 어리석어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남쪽 마법사들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의 손에서 내 손바닥을 빼내었다.
피가로: 이리 와, 아이작. 저쪽에서 이야기를 하자.
아이작: 피가로 님…….
피가로: 피가로 선생님이라고 불러.
아이작의 귓가에 속삭이고 그의 팔을 잡아당겨 일어서라고 재촉했다. 꿈쩍도 하지 않아서 등을 두드렸다.
피가로: 일어나. 눈에 띄잖아.
아이작: 네.
피가로: 레노, 잠깐 미안! 옛날의 지인을 만났거든. 여기는 맡기고 이야기하고 와도 될까?
레녹스: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미틸: 친구 분, 크네요……. 이렇게 큰 사람 처음 봤어요.
루틸: 잘 다녀오세요. 차를 끓여 놓을게요. 괜찮으시다면 친구 분도 와주세요.
아이작: …….
루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아이작은 그를 응시했다. 총명한 것 같고 온화해 보이는 루틸은 아이작의 취향일 것이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흔들었다.
피가로: 안돼, 아이작. 그들은 미스라의 것이야.
정확히는 아니지만. 하지만 북쪽의 마법사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게 제일 빨라.
아이작: ……미스라? 북쪽 마법사 미스라 말인가요?
피가로: 맞아.
아이작: 하지만…… 차에 초대받았어요.
피가로: 아이작. 네가 좋아서 하는 말이야. 차를 마시면 미스라는 너를 죽일 걸.
아이작: 차로…….
피가로: 이 집에는 다시는 다가오지 마. 자, 가자.
아이작: 알겠습니다.
아이작을 데리고 인파를 헤치며 걸어간다.
아이작: 피가로 님은 여기에 오래 사셨나요?
피가로: 피가로 선생님.
아이작: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그렇지. 살고 있던 곳은 남쪽 나라지만, 요즘 자주 방문해.
아이작: 후후……. 몇 명이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꽃을 주기도 하고 물도 주고…….
피가로: 좋았겠네. 중앙 나라는 대륙의 중심이기 때문에 다들 사교적이니까.
아이작: 후후……. 또 말을 걸어줄지도…….
피가로: 그렇겠지.
거인처럼 두꺼운 아이작의 몸은 눈길을 끌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흔들며 으쓱거리며 걷는 아이작은 사냥감을 찾는다. 굶주린 곰 같다. 긍정적이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거리를 부흥시킨 선량한 사람들은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겁을 먹는다. 아이를 안은 엄마가 짐수레를 당긴 젊은 남자가 파랗게 질려 길을 ㅐ낸다. 그때마다 성질이 급한 아이작은 초조해했다.
아이작: 전에는 뭔가를 줬었는데…….
피가로: 낮 시간이니까 다들 바쁜 거야. 게다가 다른 사람의 선의를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돼.
아이작: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받게 된다면 피가로 님께 조금 드릴게요.
몇 번 정정해도 아이작은 나를 피가로 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다시 말하게 하는 걸 포기했다.
피가로: 고마워. 하지만 나는 필요없어.
아이작: ……죄송합니다…….
아이작은 물건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에게는 어떤 것이든 빼앗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이작은 아마 이 거리가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 사람들에게 환영 받고 싶다. 타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피해간다. 어느 쪽의 마음도 안다. 무서운 것이나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을.
9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이럴 때 썰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혹한의 바다의 파도에 갈라져 들어가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더라도 고독은 고독일 뿐이다. 약속된 낙원은 없어도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 한다면 영혼은 얼어간다.
피가로: (아이작을 이 거리에 머물게 하고 싶지만…… 머지않아 피가 흐를 거야. 아이작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리 생활에는 익숙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 전에 강제로 북쪽 나라로 귀환시키거나, 아니면…….)
아이작: 피가로 님, 봐주세요.
피가로: 뭐야?
아이작이 뭔가를 내밀었다. 큰 두 손바닥에 있던 것은 너덜너덜한 책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고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피가로: 읽을 수 있게 된 거야?
아이작은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어색하게 수줍어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아이작: 네.
나는 웃고 그의 등을 끌어당겼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다.
세계에는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귀족 이외에 교육이 주어지게 된 것도 문화적 지역조차 지난 백 년 정도다. 농민은 농업 뿐, 사냥꾼은 사냥 뿐, 장인은 공반에 관한 것만 알고 있으면 살아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쪽 나라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마법사라면 읽고 쓸 줄 몰라도 곤란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작은 학습을 좋아했다. 그런 점을 나도 마음에 들어했다.
피가로: 어디, 보여줘 봐. ……아아, 대단하네. 이런 내용을 읽을 수 있다니.
아이작: 어려운 책인가요?
피가로: 아니, 글자를 외우면 어린아이도 읽을 수 있어. 하지만 너는 내 이름도 못 썼잖아. 잘했어. 책 읽는 거, 즐거웠지.
내가 미소를 지으면 아이작은 감명받은 듯 숨을 삼켰다. 그것은 조금 전 미틸의 얼굴과 비슷했다. 분명 아이작은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칭찬을 받고 행복을 느끼고 있다. 얄밉다.
아이작: ……감사합니다, 피가로 님. 너무, 너무 기뻐요…….
피가로: 나도 그래. 어디서 공부하고 있었어?
아이작: ……북쪽 나라에서……. 그리고 중앙의 나라에서……. 짜증이 났습니다만 참았어요.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피가로: 누가 알려줬니?
아이작: 나그네에게 졸랐어요. 그 녀석들은 집이 없으니까……. 그…….
피가로: 아아. 돈을 주면서 글자를 배운 거구나.
아이작: 뭐, 네, 맞아요. 그리고…… 중앙의 나라에 왔더니 사람이 몇 권의 책을 보내줬어요. 책을 읽고 싶다면 책을 주겠다면서. 가끔 만나서 이야기해요. 읽는 법을 묻거나…….
피가로: 그랬구나. 그럴 수 있는 북쪽의 마법사는 좀처럼 없어.
아이작: 하하…….
아이작은 웃었다. 웃으면 감정이 없어 보이는 눈동자도 밝은 빙저호 같았다. 다만 조금 머리와 옷의 냄새가 났다. 몇 번이나 그에게 가르쳤지만 몸이나 옷을 씻는 습관은 몸에 띄지 않았다.
피가로: 아이작, 몸을 맑게 해. 마법으로 하는 법을 가르쳐줬잖아.
아이작: 하지만……. 저는 목욕물을 싫어해요. 목욕도 하지 않아도 곤란하지 않고요.
피가로: 너는 곤란하지 않지만 주변은 곤란해. 너에게서 사람이 떠나갈 거야.
아이작: 어째서죠?
피가로: 냄새도 나고 보기 흉한 건 기분 나쁘게 하니까. 비위생적이면 병에 걸릴 숟 ㅗ있고.
아이작: 저는 큰 소리로 웃는 아이를 보면 불쾌해져요. 갑자기 깜짝 놀라게 하니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자세를 취하게 되어요. 그거랑 뭐가 다르죠?
피가로: 인간은 수명이 짧아. 어렸을 때 기억이 나고 아이가 가까이 있어.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이작: 저는 안 돼요. 저 같은게 가까이 있으면 저의 주변에서 사람이 떠나가나요? 짜증나네. 안 맞아요. 그렇다면 저는 괜히 몸을 맑게하고 싶지 않앙. 싫은 얼굴을 하고 싶은 놈은 싫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돼. 그쪽이 나아요.
피가로: 어째서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반기지 않는 짓을 하는 거니.
아이작은 울컥했다. 반감과 미움을 담아 나를 노려본다.
아이작: 그렇다면 납득이 가는 답을 주세요. 피가로 님은 똑똑하신 분. 맞는 답을 알고 계시죠? 갑자기 웃는 아이는 용서받고 저는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요? 말해주세요. 아시잖아요?
아이작은 얼른 대답을 조르고 있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타일렀다.
피가로: 아이작.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어. 그리고 그것이 옳은 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 시대와 땅에 따라 답은 달라. 그렇기 대문에 너는 네가 배워야 해.
아이작: 거드름 피우다니 너무해요. 피가로 님이 가르쳐 주신다면 저도 잘 따르는데.
불쾌해하는 아이작에게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어이없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했다. 진지한 눈동자로 되짚어보고 새하얀 마음과 게으르지 않은 머리로 말을 들어주는 상대는 의외로 적다. 피가로 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아이작: 피가로 님. 자, 빨리 알려주세요. 저는 박식해지고 싶어요.
피가로: 답만 알면 소용이 없어. 아이작, 너는 네가 미움받지 않는 이유만 알고 싶어해.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기질이나 사람의 역사를 전부 배우려고 하는 것과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작: 알았어. 당신이 싫은 거죠. 그렇게 말해주면 됐잖아요.
피가로: 아니야.
아이작: 거짓말만 해. 그래도 따르겠습니다. 당신의 말은 거스르지 않아요. 저는 피가로 님의 가르침을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요. 당신과 공부하는 것은 좋아해요.
피가로: 거짓말만 하네. 너는 너를 긍정해주는 이치를 나에게서 빼내려고 하는 거야.
아이작: 너무하네. 그렇지 않아요.
피가로: 실제로 전에 전한 것을 잊고 있어. 불결하게 하고 있으면 병이 다가와 손발이 썩어버릴 거야.
아이작: ……아아, 그래서…….
아이작의 날카로운 두 눈이 순간 실의에 흐려졌다. 그러고 보니 죽을 것 같다고 했었지. 나와 똑같은 상태인가.
피가로: 몸이 안 좋은 거니?
아이작: 네. 잘 말할 수는 없지만…… 자기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가 있어요. 화가 나서 때리면 계속 배가 아파서…….
피가로: 바보 같은 소리를……. 어디를 때렸어. 보여줘 봐.
아이작: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피가로: 뭐, 지금은 의사니까.
아이작: 제가 바보인 것도 고쳐주세요.
그의 복부를 만지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결코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지 않다. 학습 의욕이 있고 향상심이 있다. 공부해서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나우며 기성이 거칠고 성질이 급하긴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려고 한다.
피가로: 너는 어리석지 않아. 본인을 아프게 하는 행위는 안 좋다고 한 거지.
아이작: 왠지 싫어져서…….
아이작은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슬픔보다는 구원이 없는, 희망이 없는 얼굴이다. 그의 인생은 끝나가고 있다.
아이작: 이제…… 저는 끝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뀌고 싶었어. 그러니까 저는…… 아아…….
피가로: 아이작?
10화 답이 보이지 않는 물음
문득 아이작의 가죽 팔찌가 눈에 띄었다. 팔찌에 휘감기듯이 가는 쇠사슬이 얽혀져 있다. 가는 쇠사슬에는 작은 파란 돌이 달려 있었다. 그가 좋아하기에는 가련한 세공이다. 마법사의 기척이 났다.
아이작: ……이유 모를 일을 하거나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빙글빙글 생각하거나……. 속거나 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
그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돌벽을 후려쳤다. 동시에 시장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남성: 뭐…… 뭐야!?
여성: 꺄아악, 옷이 찢어졌어…….
뒤돌아보면 노천 지붕의 천이나 과일 상자가 부서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칼날에 베인 것처럼. 아이작의 짓이다.
피가로: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도구를 내놓았다. 아이작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머리를 싸매고 그 자리에서 웅크렸다.
아이작: ……아, 아니에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버티고 있어요! 당신에게 배운대로 참아서…….
아이작: 지긋지긋해. 이젠 지지긋지긋해! 참고 버티고 견뎌왔는데 피가로 님에게까지 버림받고…….
아이작은 크게 입을 벌린 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약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애처로운 것 같다. 어리석고 기가 막히기도 한다. 없애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파우스트는 이상적인 제자였다. 고결하고 뜻이 높고, 문무 양도의 영웅. 파우스트에게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이 세상과 연결될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정말 나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은 아이작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이작은 땅에 엎드렸다. 바다에 빠진 남자처럼 필사적으로 내 다리에 매달렸다.
아이작: ……부디, 피가로 님. 저를 죽이실 거라면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세요…….
피가로: 무엇을?
아이작: 행복이란 무엇이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죠? 어째서 이 세계에 태어난 거죠? 어떻게 해야 좋은 일이 생기죠? 어떻게 하면 똑똑해질 수 있나요? 서쪽 마법사 무르의 돌을 먹으면 그 녀석처럼 칭찬을 받나요?
아이작: 저는…… 저는 계속 피가로 님처럼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돌이 되기 전에 한 번이면 돼. 전부 알고 있는 마음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싶어요. 아아, 그런 거였구나. 하고 안심하고 싶을 뿐이에요…….
나는 숨을 내쉬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맑고 푸른 하늘은 거짓말처럼 아름답다. 그 대답을 알고 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혼자 있지 않겠지. 하지만 그런 대답은 아이작을 실망시킬 뿐이다. 나는 살며시 그에게 웃어넘겼다.
피가로: 돌로 만들거나 하지 않아. 그 대답은 하나 하나 네가 배워가렴. 공부를 계속해. 모처럼 책도 읽기 시작했잖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어. 멋진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아이작은 큰 등을 떨었다. 그 등을 어루어만지며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구원의 말씀을 하는 것 같아 거짓말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분명 모든 것은 잘 될 거야.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대개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는 아마 잘 되고 싶은 것이 아니야.
아이작은 사랑스럽고 불쌍하다. 그리고 불쾌하고 초조하다. 무엇보다 이 거리에 귀찮은 존재였다. 언제 이 거리에서 흉행을 일으킬지 모른다. 마법사가 흉행을 일으키면 빈센트의 태도도 굳어진다. 아서의 입지는 위태로워지겠지. 마법사의 집에서 시민과 교류하려는 남쪽 마법사의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작이 위험하다고 하면 오즈나 미스라야말로 위험한 존재다. 나도…… 오웬도 브래들리도 마음만 먹으면 이 거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 우리랑 아이작의 차이는 뭐지? 현자의 마법사니까?
미틸의 이야기도 그래. 그는 머지 않아 남쪽의 마법사를 전멸시킬 거야. 그렇다고 해서 성장을 바라는 미틸의 성장의 기회를 뺏는 것이 옳은 건가? 미틸도 아이작도 마찬가지. 사물을 알고 성장하려고 한다. 남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들의 자유를 인정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 결과, 참극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천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대면해 온 문제 중 하나다. 대중의 안전 앞에 위험한 개인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생명에도 평등하게 자유를 주어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 나는 언제까지 이 세계의 관리자로 있는 거지? 사랑이나 행복의 의미도 사소하지만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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