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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法使いの約束/메인 스토리

2부 16장 [길드 흔적 탐색]

 

 

목차

    1화 각자의 역할

     

    동쪽 마법사가 된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동쪽의 마법사는 첩보 활동에 적합하다. 주의 깊고, 신중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적절하게 공포심을 품고 너무 겁먹지도 않고 너무 무모해지지도 않는다.

     

    평소 큰소리치는 시노도 공명심이 강하고 야망이 넘치지만 결코 무모하지는 않다. 강한 적을 앞에 두면 남달리 경계하고 신중한 전술로 전환한다. 시험은 싫어하는 아이지만 머릿속으로 항상 승산을 따지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온 탓이겠지. 시노는 고아이고, 히스를 만날 때까지 혼자 살아왔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희생을 치르고, 어떤 승산을 얻을 것인가의 계산이 능하다. 큰 낫을 휘두르며 어지러운 상태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똑똑한 아이다.

     

    첩보 활동은 적의 품속으로 숨어들어가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싸우기 전에 승산이 있다. 시노는 성질적으로는 조심스럽지만, 히스클리프와 자신의 야심을 위해 희생하기 쉽다. 첩보 활동의 중요성을 알면 부상을 입을 확률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파우스트: 시노. 마법관에서 회의했던 대로 너는 나와 간다.

     

    시노: 알았어.

     

    네로: 히스는 나랑 같이.

     

    히스클리프: 응. 잘 부탁해, 네로.

     

    네로와 히스에게 눈짓을 하고 우린 헤어졌다. 오늘 행동의 협의가 끝났다. 일단 네로와 히스클리프가 길드 터의 여관을 시찰한다. 아까 네로와 함께 표를 확인했는데 호텔 임브리움이라고 간판이 있었다. 네로가 비오는 거리에 가게를 내고 있을 무렵부터 경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객실도 많고 번창하고 있는 듯하다.

     

    나와 시노는 호텔을 감시할 수 있는 장소에서 유사시 대기한다. 엄격한 법전에 지켜진 비오는 걱리는 치안이 좋고 한적한 고장인 만큼 이단자는 눈에 띈다. 사담이 허용되는 가게도, 사담이 금지된 가게도, 독서가 허용된 가게도, 글쓰기가 금지된 곳도 정해져 있다. 우리는 호텔이 보이는 식당의 테라스석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이대로 몇 시간이라도 지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음료가 나온 후, 시노가 입을 열었다.

     

    시노: 왜 히스를 보낸 거야.

     

    나는 시선으로 시노를 나무랐다. 시노는 그가 잘 보여주는 반항적이고 건방진 얼굴이 되었다.

     

    시노: 다른 녀석들도 가끔 작게 얘기해. 빗소리 떄문에 안 들릴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나는 시노의 건방진 얼굴을 좋아한다. 젊은이들이 젊은이다운 반발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시대라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입가에 웃음이 날 것 같아서 일부러 미간의 주름을 깊게 했다. 단호히 고개를 흔든다.

     

    파우스트: 조용히 해. 비오는 거리에서는 규칙을 지켜라.

     

    시노: 네로와 나를 정찰하러 보내고 히스는 대기시켜야 했어. 네가 경험이 많고 나름대로 강하다는 것은 인정해.

     

    파우스트: 그거 고맙군.

     

    시노: 하지만, 너는 인선을 자주 틀려.

     

    몸을 내미는 시노에게 나는 눈썹을 치켜들었다. 책 표지를 천천히 들이대고 시노의 얼굴을 밀친다.

     

    파우스트: 말 걸지 마. 독서를 이어가고 싶으니까. 이 가게는 사담 금지야. 허용되는 것은 독서고.

     

    시노: …….

     

    시노는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고 책에 눈을 떨어뜨렸다. 독서하는 척하면서 시선을 들고 호텔을 관찰한다. 어떤 인물이 드나들고 있나? 마법의 기척은 없나? 옆에 있으면 시노의 초조함이 전해져 왔다. 시노는 히스클리프가 걱정되는 것이겠지. 게다가 시노는 종자로서 히스를 위해 공적을 세우고 그에게 칭찬받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히스만이 공을 세우고 본인이 빈손이었을 때를 상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시노는 히스를 위해 자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히스가 공을 세웠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공헌하지 못한다면 존재 의의가 흔들려져 버린다. 그런 위태로움이 있었다.

     

    파우스트: (……하지만, 이렇게 알기 쉽다니.)

     

    시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조함과 불안, 야심과 걱정을 느낄 때마다 나는 나의 옛날을 떠올렸다. 스승인 피가로나 심복 부하로 따라준 레녹스 앞에서 자신이 어땠는지. 사인으로서의 자신을 죽이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아마 배어났을 것이다. 

     

    특히 피가로에게는 충고받은 적이 있다. 그의 수행을 죽을만큼 엄격했지만 그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는 온화하고 상냥했다. 무심코 숨을 삼키는 잔혹한 가르침도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런 그에게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수업을 마치고 알렉들과 합류한 뒤다.

     

     

     

     

     

     

     

     

    피가로: 파우스트, 서두르면 안돼. 군 인간들의 장이 알렉이라면 마법사의 장은 너야. 너를 잃으면 마법사들은 동요하겠지.

     

    파우스트: 피가로 님이 계시잖아요. 당신의 인도가 있다면 모두는 저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피가로: 파우스트, 타인을 너무 믿지 마. 나도 포함해서.

     

    파우스트: …….

     

    피가로: 알렉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아. 너는 알렉의 방패가 되어 그보다 먼저 죽고 싶은 거겠지. 지켜야 할 것을 잃고 죽을 뻔한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너에게는 역할이 있어. 알렉을 걱정한 나머지 초조함에 사로잡혀 서두르면 안돼.

     

    파우스트: 조급해서 서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혁명군의 중심은 알렉이고, 알렉은 인간입니다. 인간인 그를 마법사인 제가 지키는 것은 이상한 건가요?

     

    피가로: 너희들끼리 완결되는 관계라면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희들은 많은 운명을 끌여들었어.

     

    파우스트: 알고 있습니다.

     

    피가로: 아니, 몰라.

     

    피가로의 강한 어조를 처음 들었다.

     

    피가로: 너는 모르고 있어.

     

    나는 놀라고 당황스럽고 부끄러워했다.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하니 아니야, 라며 중얼거리면서 그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 광경이 요즘 자꾸 떠오른다. 피가로는 평소에 초연했따.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탄식도 화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그에게는 수면에 떠 있는 달빛처럼 덧없는, 슬픔과 미움의 광채가 있었다.

     

     

     

     

     

     

    파우스트: (틀림없이 지금의 시노처럼 나에게 배어있었던 거겠지……. 초조함이나 시야의 좁음이.)

     

    역할을 맡은 교사 역이었다. 하지만 시노나 히스, 네로도. 학생들은 솔직히 귀엽다. 그들의 성장은 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부디 마법사로서 성장해 행복한 삶을 가졌으면 좋겠다. 피가로도 나를 똑같이 생각했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나라면 학생을 두고 어디론가 가지 않을 텐데,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내가 두고 간 레녹스를 떠올린다. 그는 나를 찾으러 400년이나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그건 나의 죄다. 상처받고 절망하고 혼란스러웠지만 그토록 나에게 힘써준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레녹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알렉을 보고, 감옥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그저…… 알렉을 믿었다. 화형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면 알렉도 나를 믿어줄 것이라고. 어린애 같은, 상상화 같은 꿈이다. 그리고 꿈이 깨졌다. 나는 알렉에게 죽을 뻔했고 생명의 은인인 레녹스를 떠나보내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충성심을 알면서도 얼마나 무책임한 짓을 했는지. 적어도 여기서 끝이야. 안녕. 이라고 말했다면 그의 시간을 그렇게 뺏지 않아도 됐을것이다. 피가로가 나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나는 레녹스에게 등을 돌렸다. 새삼스럽게, 어째서, 그에게 의지하는 것일까.

     

    시노: 어이.

     

    갑자기 시노가 불렀다. 길드 호텔에 이변은 없다. 조용히 해, 라는 뜻으로 말없이 검지를 입에 댔다.

     

    시노: 네 얼굴이 시끄러워. 계속 바뀌고 있다고.

     

    나는 모자를 깊이 썼다. 시노의 지적에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시노: ……무슨 일 있었나?

     

    시노가 작은 소리로 근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부분에서 시노는 상냥하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네쪽이겠지. 피가로의 마법 기운이 느껴져. 라는 말을 삼켰다. 시노는 치료를 받았다고 했지만 아마도 마음이나 기억에 관한 마법일 것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무의미하게 이런 마법을 거는 사람이 아니야. 알기 때문에 복잡했다.

     

    소중한 학생이 무언가를 당했다. 원인을 당장이라도 해명하고 싶다는 경계나 의심이나 불안도 있지만…… 내가 간과한 무언가를 그림자로 보완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감사와 미안함도 있다. 피가로가 시노에게 묘한 짓을 할 리가 없다.

     

    400년이 지나고 아직도 믿는다는 선택지 밖에 없는 자신이 바보같기는 하지만.


    2화 비의 막 너머로

     

    시노: 얼굴 좀 그만 바꿔.

     

    파우스트: 알고 있어. 보지 마.

     

    빗발이 거세졌다. 광음에 휩싸여 테라스석 손님들이 처마 밑으로 이동한다. 나와 시노도 나란히 섰다. 돌아갈 시간을 상의하고 있는 건지 귓속말을 하는 손님도 들었다. 시노가 내 팔을 끌었다.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고개를 기울이면 아니나 다를까 그도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시노: 전전이 뭐야.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의 수중을 보면 마법을 이용한 전술의 사서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직 너무 이른 책이다. 기초지식 없이 전술을 배우면 오용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

     

    파우스트: 철수전이다. 하지만 네가 전술을 배우는 것은 아직 이르…….

     

    시노: 철수는 도망가는 거지? 그런데도 이 책에 실린 지휘관은 극찬을 받고 있어. 어째서?

     

    승리나 공적을 중시하기 쉬운 시노다운 질문이었다. 그의 그런 면을 바로잡고 싶다. 라는 교육심에 자극을 받아 빗소리와 사람을 신경쓰면서 시노에게 속삭였다. 

     

    파우스트: 대승리나 정면돌파만이 공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노: 어째서지.

     

    파우스트: 철수전은 많은 희생이 생겨. 아군의 희생을 극한까지 억제하고 철수하는 것은 때로는 승리보다 어렵다.

     

    시노: 이기는 것보다?

     

    파우스트: 그래. 패배할시 아군의 시기는 낮아지고 지휘 계통은 흐트러지기 쉽다. 반대로 적은 기세가 등등해져. 착실하고 냉정하게 응대하지 않으면 자군이 전멸할 거다.

     

    시노: 그렇군. 최후를 지키는 전 부대의 활약으로 대군의 운명이 바뀌는 셈인가. 그래서 이 녀석은 명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구나.

     

    파우스트: 누구지?

     

    나도 아는 역사상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책을 들이받았다.

     

    시노: 파우스트 라비니아. 중앙 나라의 조상, 알렉 그랑벨의 맹우이자 건국의 영웅. 격전을 벌였던 전쟁에서 마법사 부대가 혁명군을 전멸로부터 구하고 그 무공은 중앙의 온 나라에 알려졌다.

     

    파우스트: …….

     

    잿빛의 비오는 경치 속에서 시노는 불만과 불신의 빛을 감추지 않았다.

     

    시노: 너와 똑같은 이름이야.

     

    파우스트: ……시노. 그 책은…….

     

    시노: 너도 숨기는게 있잖아. 그건 별로 상관없어. 어차피 지금까지의 교제가 있으니까.

     

    빛바랜 거리가 더욱 더 그림자를 깊게 한다. 지금까지의 교제라는 말이 어딘가 쓸쓸하게 울려졌다.

     

    시노: 하지만 정체불명의 남자의 명령을 언제까지나 들어줄 의리는 없어. 다음에는 히스를 먼저 보내지 마. 나는 따르지 않을 거니까, 선생님.

     

    시노의 불복은 당연했다. 신원을 털어놓지 않는 남자에게 목숨을 맡길 리가 없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시노의 태도에 나는 드디어 확신했다. 평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시노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역시 이건 나도 안다. 존경이 아니라 빈정거림. 시노는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코웃음을 쳤다.

     

    시노: 흥……. 영웅의 자리를 쉽게 버릴 수 있는 녀석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녀석의 마음따윈 모르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갑자기 시노가 고개를 들었다. 길드 호텔로 들어가는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다. 시노가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은 여성이었다. 나도 낯이 익은 사람이다.

     

    시노: 타냐다.

     

    예전에 동쪽 나라의 임무에서 만났던 쥬라 숲의 사냥꾼 타냐였다. 비가 약해지고 공기가 미지근해져서 하늘이 밝아진다. 사냥꾼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 삶의 터전인 숲을 멀리 떠나는 일은 드물다. 시노는 일어나자마자 고했다.

     

    시노: 말 걸고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파우스트: 아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갈 생각이었지만, 시노는 재빨리 그녀를 붙잡고 대화를 하고 돌아왔다.

     

    파우스트: 어땠어?

     

    시노: 쥬라 숲에서 알게 된 상대에게 의뢰를 받고 이 거리에 왔대. 책임감 때문에 맡은 거고.

     

    파우스트: 책임감?

     

    시노: 눈앞에서 상대방의 딸이 사라졌다.

     

    불온한 사건에 나는 눈썹을 갖다댔다.

     

    시노: 첫 번째 계기는 기묘한 소문인 것 같아. 쥬라 숲에 발을 들여놓은 나그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오는 거리의 호텔에 와있었다고 해.

     

    파우스트: 쥬라 숲에 있어야 할 나그네가 비오는 거리의 호텔에? 이 호텔인가?

     

    시노: 아아. 오래된 삼각 지붕의 호텔. 저 호텔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호텔로 시선을 돌렸다.

     

    시노: 타냐도 처음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그네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하지만 얼마 전 쥬라 숲에 빠져든 상대에게 타냐는 도움을 요청받았어. 딸이 무언가에 발을 잡혀 끌려갔다고. 타냐가 달려오자 소녀는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이었다. 무엇이 소녀를 끌고 있는지는 날아다니는 가랑잎이나 흙먼지는 보이지 않았대.

     

    시노: 하지만 갑자기 숲 속에 방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순간 소녀는 사라졌다. 환상처럼 방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

     

    눈살을 찌푸리며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깊은 쥬라 숲. 그 어둑어둑한 경치에 떠오르는 작은 방…….

     

    파우스트: (공간 마법인가? 미스라의 공간을 연결하는 문 같은…….)

     

    시노: 타냐는 전의 그 소문이 생각나서 그 수색 의뢰를 받은 모양이야.

     

    파우스트: 그래서 일부러 비오는 거리까지……. 인간인 그녀가 여기까지 오는 건 힘들었을 텐데.

     

    시노: 별 거 아니야. 터프하고 다리가 튼튼한 여자니까. 뭐, 의뢰료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좋지.

     

    파우스트: 그렇군. 또 다른 건?

     

    시노: 못 들었어. 저 녀석도 급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공간 마법은 어려운 마법이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 호텔 주변에 상당한 마력의 소유자가 드나들고 있다. 지금은 오즈나 미스라같은 경이로운 마력의 기척이나 위압감을 가까이에 둔 정령들의 웅성거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묘한 감각은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자신의 긴장 때문인지,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

     

    호텔을 응시했다. 네로와 히스의 기척을 살펴봤지만 그들의 기척은 끊기지 않았다.

     

    파우스트: 그녀는 호텔에?

     

    시노: 아아. 히스들이랑 만날 수도 있겠군.

     

    점주: 손님…….

     

    가게 주인의 부름을 받고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게 주인은 몹시 어색한 듯이 천천히 입가에 검지를 댔다. 물론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대신에 나도 시노도 입가에 검지를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됐어, 라는 느낌으로 점주가 눈을 돌렸다. 우리는 동시에 읽지 않는 책을 폈다.

     

     

     

     

     

     

     

    히스클리프: …….

     

    네로: …….

     

    히스클리프: 호텔 지원에게 부탁해서 일단 들어왔지만, 길드의 흔적은 거의 없네…….

     

    네로: 그렇네……. 길드도 옛날 이야기고. 만약에 뭐가 남았더라도 이 건물을 개축하거나 개수했을 때 처분했겠지.

     

    히스클리프: 마법사 길드의 책……. '공영의 룰북' 이……. 그 책의 작자가 노바라는 마법사 노인일 수도 있어.

     

    네로: 노인? 뭐, 노인이겠지. 그렇게 말하자면 나도 젊다고는 할 수 없지만…….

     

    히스클리프: 고풍스러운 의상을 입은 백발 신사라고 하지 않았나?

     

    네로: 맞아. 그런데 겉모습은 젊었어.

     

    히스클리프: ……강했어?

     

    네로: 강했어……. 미스라들, 북쪽의 마법사가 셋이나 있었는데 못 막았고.

     

    히스클리프: 그렇구나……. 시노는 자신의 손으로 노바를 쓰러뜨리고 싶어하지만…….

     

    네로: 그만두는 게 좋아. 노바와 직접 싸우는 것은 오즈나 북쪽 녀석들에게 맡겨놔. 노바는 봐주지 않아. 섣불리 향한다면 시노는 돌이 될 거야.

     

    히스클리프: …….


    3화 거듭되는 갈등

     

    네로: 걱정하지 마. 피비린내나는 무대는 남에게 양보하자. 우리는 단서를 모으면 돼.

     

    히스클리프: 그렇네……. 오즈 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이번만큼은 의지하자.

     

    네로: 어.

     

    히스클리프: 네로…….

     

    네로: 왜?

     

    히스클리프: 시노에게, 뭔가…… 내 이야기, 들은 적 있어?

     

    네로: 매일 듣고 있지. 그 녀석은 나에게 밥 이야기나 네 이야기밖에 안 해.

     

    히스클리프: 아……. 하하…… 그렇지.

     

    네로: ……무슨 일 있었어?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내가 아는 것으로 괜찮다면 대답할게. 아무한테도 말 안 해. 시노에게도, 파우스트에게도.

     

    히스클리프: 응…….

     

    네로: 뭐……. 그, 뭐야. 얘기 안 해도 되고. 네가 편한 대로 해.

     

    히스클리프: 미안. 신경쓰게 해서…….

     

    네로: 됐어 됐어. 너야말로 고생이 많구나.

     

    히스클리프: ……네로는 내 '거대한 재앙' 의 상처, 뭔지 알아……?

     

    네로: ……아니…….

     

    히스클리프: 진짜?

     

    네로: 진짜로. 혹시 알게 됐어?

     

    히스클리프: ……아니, 나는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시노는 아는 것 같아. ……그냥 감이지만…….

     

    네로: ……알아챘다면 너에게 말하지 않을까? 비밀로 하는 의미가 없어.

     

    히스클리프: 만약에…….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것이라면?

     

    네로: …….

     

    히스클리프: 내가 알아서 충격을 받을 일이라면 시노는 말하지 않을 거야…….

     

    네로: ……부끄러운 것이란?

     

    히스클리프: 모르겠어……. 하지만…… 무르가 예전에 서쪽 나라 제일 천재였던 이야기는 들어봤지?

     

    네로: 아아, 알지. 머리가 꽤 잘리는 놈이라면서.

     

    히스클리프: 하지만 영혼이 부서져서…… 샤일록이 시간을 들여 말과 상식을 다시 가르쳤어. 그때까지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옷도 안 입고……. ……말도 하지 않았다고…….

     

    네로: …….

     

    히스클리프: 오해하지 말아줘. 나는 무르를 좋아하고,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고, 존경하고 있어. 가끔 놀라기도 하지만 재밌고 박식하고 귀여워. 흐뭇할 때도 있어. 하지만…… 나는…… 나는, 견딜 수 없어.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있거나 소리를 지르는 건……. ……분명히,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

     

    네로: …….

     

    히스클리프: ……무엇보다, 부모님께 어떤 얼굴을 해야……. 마법사인 내가 태어나서 상냥하고 훌류한 두 분이 놀림감이 됐어. ……이 이상, 부모님께 폐를 끼치는 건…….

     

    네로: ……히스……. 너희 부모님……. 블랑셰의 성주님? 나으리?

     

    히스클리프: 호칭은 뭐든지 좋아.

     

    네로: 으음, 그러면 블랑셰 씨로 가자. 그 사람들은 그거야. 그…… 제대로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히스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아.

     

    히스클리프: 응……. ……알고 있어……. 내가 꺼림칙할 뿐……. 

     

    네로: ……뭐, 히스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도 무리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가……. 시노가 히스의 '거대한 재앙' 의 상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건가.

     

    히스클리프: …….

     

    네로: ……만약에, 그러면 어떡할 건데?

     

    히스클리프: 에……?

     

    네로: 너는 주군으로서 너에게 비밀을 만든 부하를 용서할 거야?

     

    히스클리프: …….

     

    네로: 숨긴 것이 아무리 너를 위해서였어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믿을 수 있어? 나라면 너에게 다시는 신용을 받지 못하더라도 모른 척하고 비밀을 계속 간직하고 있을 거야. 소중한 주인이 죽고 싶어지는 것보다는 나아.

     

    히스클리프: 네로…….

     

    네로: …….

     

    히스클리프: ……가끔 생각하는 건데.

     

    네로: 아아.

     

    히스클리프: 네로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어?

     

    네로: …….

     

    히스클리프: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네로: 있었어. 하지만, 배신했어.

     

    히스클리프: …….

     

    네로: 그러니까 나를 너무 믿지 마. 나는 경박한 남자야. 너희들이 신용할 가치가 없어. 뭐…… 오늘 바로 버리지는 않지만 말이야.

     

    히스클리프: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거지?

     

    네로: 없어. 있었다고 해도 배신은 배신이야.

     

    히스클리프: 하지만…….

     

    히스클리프: ……아…….

     

    ???: ……여어, 히스. 

     

    히스클리프: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이곳에 묵으셨군요.

     

    네로: ……아…….

     

    히스클리프: 네로. 아까 거리에서 만난 사람이야. 이름을 못 들었네요.

     

    네로: 도망쳐, 히스……!

     

    히스클리프: 에?

     

    네로: 저 녀석이 노바야!

     

    히스클리프: ……!?

     

    노바: 하하…… 그래.

     

    노바: 내가 노바다.

     

     

     

     

     

     

     

     

    파우스트: …….!

     

    시노: 왜 그래?

     

    갑자기 네로와 히스의 기척이 사라졌다. 최악의 예감에 등골이 언다. 그 순간, 몹시 냉정해졌다. 동요할 것 같은 때일수록 감정의 고양이 자연히 억제된다. 꺼림칙하지만 사인을 버리고 공인으로 살아온 버릇이다.

     

    파우스트: (히스는 둘째치고 네로가 그냥 돌이 되지는 않을 거야. 만약, 만일의 일이 생긴다면 네로의 기척이 사라지기 전에 그의 마법 기운이 강해졌겠지. 갑자기 낌새가 사라진 건 그들이 고의로 기척을 감추고 있거나 공간 마법이다.)

     

    시노: ……히스의 기척이 사라졌어…….

     

    시노도 늦게 눈치챘다.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뛰려고 한다. 순간적으로 목덜미를 잡고 힘껏 되돌아갔다.

     

    시노: ……콜록……! 이거 놔……!

     

    파우스트: 진정해. 내 말을 들어.

     

    시노: 누가 따를까보냐! 너의 판단 미스 때문에 히스가……!

     

    파우스트: 입 다물어!

     

    거센 빗소리 속에서 일갈했다. 할말을 잃은 시노가 망연히 눈을 깜빡인다. 그 속눈썹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할 수 있는 한 잔잔하고 조용한 목소리를 만들어 시노를 흥분시키지 않도록 전했다.

     

    파우스트: 당황하지 마. 앞으로 사소한 행동 중 하나로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어. 적과 조우해서 낌새를 가추고 공격하려는 걸지도 몰라. 그런 경우 우리가 난입하면 쓸데없는 경계를 초래하게 된다. 알겠나?

     

    시노: ……하지만…….

     

    시노의 눈빛은 아직 정신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그의 턱을 잡고 억지로 눈을 마주쳤다.

     

    파우스트: 나를 봐. 지금부터 호텔에 잠입한다. 지시에 따를 수 없다면 두고 갈 거야.

     

    시노: 그…….

     

    파우스트: 너를 데리고 잠입하고 싶어. 너는 히스의 기척을 잘 알고 있지. 용감하고 강한 마법사다.

     

    시노가 내 눈동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초조함과 불안감을 내비치던 시선이 천처히 안정을 되찾아 간다.

     

    파우스트: 시노, 너를 의지하고 있어. 하지만 마음이 거칠어지고 불안정한 상태로는 너의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 히스들에게도 위험이 미칠 거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겠나?

     

    시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 손을 뿌리쳤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침착해진 평소의 시노가 거기에 있었다.

     

    시노: 누구에게 말하는 거야.

     

    나는 웃었다. 계산하고 웃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입가에 웃음이 터져 있었다.

     

    파우스트: 좋아. 따라와.

     

    자리에서 일어나 시노도 씩씩하게 로브를 뒤집었다. 떨어져 나간 빗방울이 노면으로 날아간다.

     

    점주: 손님…….

     

    가게 주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 돈을 놓았다. 귀찮은 손님이 떠난다는 것을 알고 그는 안도했다.

     

     

     

     

     

     

     

     

     

     

     

    길드 호텔로 향한다. 나는 로브로 손을 가리면서 작은 마법진을 그려 작고 검은 도마뱀을 낳았다.도마뱀은 재빨리 손목을 기어 발밑에서 젖은 노면으로 나타났다. 스르르 기어다니던 도마뱀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작은 새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행서지는 마법관이다. 우리가 전멸해도 정보는 마법관에 전달될 것이다.

     

    시노: 어떻게 한 거야? 마법의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았어.

     

    파우스트: 다음 수업에서 가르쳐 주지. 시노, 저번 수업에서 가르쳐줬던 신호를 기억하고 있나.

     

    시노: 아아. 추가시험까지 봤으니까.

     

    마법으로 마음 속에 말을 걸 수도 있지만 마법의 기척을 간파당할 것이다. 마력이 강한 마법사라면 전하고자 하는 내용도 읽어버린다. 그 때문에 약한 마력으로 발신할 수 있는 동료에게만 알 수 있는 신호를 사용하는 일은 많이 있었다.

     

    파우스트: 히스나 네로를 발견해도 바로 달려가지 마. 노바는 미스라로 둔갑하고 있었어.

     

    시노: 알았어.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문을 열고 실내에 발을 들여놓는다.

     

    시노: ……이상한 기척은 없네. 너는 어때. 

     

    파우스트: ……나도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방심하지 마.

     

    호텔 프런트를 관찰한다. 여관 주인다운 인물과 종업원이 나란히 일하고 있었다. 범죄에 연루된 분위기나 정체를 숨긴 마법사 같은 분위기도 없었다. 허리가 낮고 마음이 지쳐있어. 하지만 최소한의 붙임성이 있는 인물이다. 음모에 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시 건축물을 둘러보았다. 전 길드의 본부였던 적이 있는, 석조로 지은 오래된 건물이다.


    4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짐을 푼 나그네들이 프론트 카운터 너머로 건초를 받고 있다. 뒤쪽에 있는 마굿간에서 여행을 함께한 말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겠지. 원래대로라면 호텔 내부를 탐색해야 하지만, 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흐린 거울, 시커먼 거울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프런트 앞을 지나친다. 옳은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미지다. 마법이라기보다는 그냥 주눅 들지 않는 정도의 것이지만, 동쪽 나라의 정령들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호텔 안쪽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1층부터 차례로 호텔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히스들의 기척은 없다. 의도적으로 낌새를 감추고 있다면 우리가 호텔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어떤 액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잡혀갔거나 공간의 틈새를 헤매고 있거나……. 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만한 마법사가 돌이 되면 어떤 흔적이 남을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시노의 눈동자에 차차 초조함이 떠올랐다.

     

    시노: 여관 주인에게 물어보자. 다른 투숙객에게도 탐문하고. 아직 늦지 않았어. 

     

    파우스트: 조급해 하지 마. 눈에 띄어.

     

    시노는 격앙되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시노: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히스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르……! 으극……!

     

    호통을 칠 뻔한 그의 입을 막았다.

     

    파우스트: 침착해. 만약 그들이 납치되었다 하더라도 소란이 커지면 범인들은 흔적을 지우려 그들을 죽일 수도 있어. 예전에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

     

    시노: 그러니까, 왜…….

     

    파우스트: 살해당한 것은 나의 전 부하다. 다른 부대가 소란을 너무 키워버려 범인들을 자극해 몰살당했다. 범인들은 우리 군과 협상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모두 농민 출신 젊은이들 뿐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동료들이 몰살당해 보복으로 남김없이 범인들을 죽였다.

     

    나는 품 속을 더듬어 동그랗고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마법 약초를 배합한 연향의 일종이다. 유무를 말하지 않고 시노의 이마와 목구멍에 댔다. 그의 눈동자는 조금 전부터 붉게 충혈되었다. 히스는 시노의 전부다. 호흡이 얕아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알렉의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의 나도 정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피가로에게 시달렸다. 침착하라고.

     

    시노: ……윽, 뭐야!?

     

    항상 뒤를 따르던 레녹스에게도 들었다. 파우스트 님, 괜찮습니다. 알렉 님은 분명 무사하실 거예요. 그분은 이 세계와 시대에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파우스트: 침착해. 연향이야. 정신이 안정되도록.

     

    시노: 나는 개가 아니야! 냄새 따위로…….

     

    파우스트: 다음에는 아기처럼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시노. 괜찮아. 히스클리프는 너를 두고 죽지 않을 테니까.

     

    시노의 눈동자가 약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괴로운 듯이 숨을 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시노의 영혼이 히스클리프와 유착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파우스트: 네로도 옆에 있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 진정되면 마도구를 내놓고.

     

    시노: 마도구를?

     

    파우스트: 맞아. 꼭대기 층까지 가서 단서가 없으면 공간의 왜곡을 찾을 거다. 보좌를 부탁할게.

     

    시노: 공간의 왜곡……. 내가 할 수 있을까?

     

    시노답지 않은 나약한 대사였다. 또 하나 작은 봉지를 꺼내서나는 봉인했던 끈을 물어뜯었다. 간단한 수호와 결계의 효과가 있는 돌가루다. 시노의 머리부터 뿌린다. 파란색과 초록색 가루는 예쁜 나선을 그리고 시노의 몸을 감쌌다. 

     

    파우스트: 해주지 않으면 곤란해. 마도구를.

     

    시노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꺼풀을 감아 주문을 외운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그 사이에 나는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시노의 등을 돌리고 목덜미 쯤에 내 피를 묻힌다.

     

    시노: 뭐 해.

     

    파우스트: 마킹.

     

    시노: 마……?

     

    파우스트: 너는 내 것이다. 아무에게도 손대게 하지 않아.

     

    시노는 나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감동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시노: 네가 아니야. 나는 히스의 것이다.

     

    파우스트: 아 그래.

     

    입담이 끊이지 않는 학생을 데리고 나는 맨 윗층으로 올라갔다.

     

     

     

     

     

     

    최상층에 도착했다. 희미한 위화감이 있었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주위를 살펴본다. 정말 사소한 부자연스러움이었따. 어느 땅의 모래알에 다른 땅의 모래알이 섞여 있는 느낌…….

     

    파우스트: (……무언가가 숨어있나?)

     

    나그네: 안녕하세…… ……!

     

    방을 막 나온 나그네가 큰 낫을 든 시노를 보고 황급히 방으로 돌아갔다.

     

    시노: 손님을 대피시킬까?

     

    파우스트: 공간의 왜곡을 찾을뿐이야.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을 걸어두지.

     

    시노: 알았어. 

     

    시노는 재빠르게 문을 노크하고 고했다.

     

    시노: 지금부터 나의 부모의 원수가 올 거다. 말려들고 싶지 않다면 잠시 아래층에 있어줘.

     

    잘 만들어진 즉흥 이야기다. 시노는 솜씨 좋게 손님을 대피시켰다. 대피해 가는 손님 가운데 수상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레녹스를 떠올렸다. 레녹스는 이런 것을 잘 하지 못했다. 나도 잘 못해서 거짓말이 필요할 때는 대개 우물쭈물해했다. 피가로나 알렉은 잘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미리 아는 것 같았다.

     

    시노: 대피시켰어. 다음에는 뭘 할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노에게 지시했다.

     

    파우스트: 내가 공간의 왜곡을 찾겠다.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야. 너는 장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내가 만든 결계를 매개로 유지해줘.

     

    시노: 매개?

     

    파우스트: 내 피다. 네 목 뒤에 있는.

     

    시노는 큰 낫을 다시 메고 입꼬리를 올렸다.

     

    시노: 어느새 깊은 관계가 된 셈이군.

     

    파우스트: 가벼운 입이 돌아온 건가. 그렇게 부탁하지.

     

    나는 안경을 밀어올리고 마도구 거울을 출현시켜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희미한 빛이 거울에서 흘러넘쳐 바닥 전체에 물처럼 번졌다. 거울을 시노에게 돌린다. 시노의 경상을 비춘 거울은 그의 마도구와 그 자신에게 빛을 퍼부었다. 시노의 목덜미에 빛이 번진다. 시노에게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피의 매개체에는 수호의 역할도 있었다. 이 결계 속이라면 시노가 데미지를 입어도 내가 대신 입는다.

     

    파우스트: 왜곡을 살핀다. 말 걸지 말아줘.

     

    시노: 알았어. ……부탁할게.

     

    파우스트: 맡겨둬.

     

    나는 눈꺼풀을 감고 눈앞의 자리를 살폈다. 이 장소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정령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이 시대의 낌새만이 아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듯이 몸과 마음을 자리에 맡기고 조금 전에 느꼈던 이질적인 낌새를 찾아간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기억이 넘쳤났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장소의 기척을 살피면 더듬을수록 예전에 봤던 광경이 쏟아져 나온다.

     

    레녹스에게 지시는 필요 없었다. 그는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나에게 뭐가 필요한 건지 항상 앞질러서 생각해줬다. 레녹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알기 쉬운 사람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남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루틸도, 미틸도. 필시 피가로도. 나는 이제 그와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있어서 레녹스는 상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져 버린다.

     

    나는 행복을 버렸다. 저주상으로 거듭나 축복을 신발 밑창으로 밟고 걸어가기로 정했다. 다시는 살 길이 겹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럴 때 생각나 버린다. 레녹스라면 분명 이 근처에 서서 저쪽을 보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해줄 것이다. 시노가 미숙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경험이 적으니 당연하다.

     

    다만, 편했다. 너무 숨쉬기가 편안했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 이쪽입니다!

     

    파우스트: 아아!

     

    동료에게 등을 맡기고 앞만 보고 계속 달릴 수 있었다. 그 시절에 그 장소를 그리워한다. 뒤를 돌아보면 피가로 님께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고…….

     

    피가로: 조심해.

     

    누구보다도 선두를, 보검 칼레토보로흐를 높이 쳐든 알렉이 달려간다.

     

    알렉: 지금이다! 지금이야말로, 시대는 변한다!

     

    그 등을 바라본 나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파우스트: (아아…….)

     

    갑자기 외로워졌다. 그 날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돌아오지 않아.


    5화 그 사람과 닮은 기척

     

    뇌가 타버릴까 싶을 정도로 미워했는데 아직도 외롭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바보같지만. 그 황금 시대를 사랑했다. 사랑했던 시간을 내 손으로 흘려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시노나 히스들은……. 그들의 청춘은 지켜주고 싶다.

     

    파우스트: ……!

     

    문득, 본 적 없는 어두운 방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공간의 왜곡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파우스트: (이 건물 어딘가에 저 방을 숨기고 있는 건가……?)

     

    다시 눈꺼풀을 감고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다시 방이 들여다보였다. 환상 같은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다음 순간…… 우리는 낯선 방에 있었다.

     

     

     

     

     

     

     

    시노: ……!? 여기는…….

     

    파우스트: 숨겨진 공간이다. 시노, 내 곁에서 떠나지 마.

     

    시노: ……히스의 기척이 느껴져……. 그 녀석들도 이곳에 왔던 거야.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나는 주문을 외워 방의 불을 켰다.

     

    파우스트: 여기는…….

     

    불이 켜지자 실내가 보였다. 거미줄이 친 곰팡이 같은 방이었다. 책장에 놓인 소품에는 무언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파우스트: ……마법사 길드의 문장……?

     

    시노: 파우스트!

     

    날카로운 목소리로 시노가 나를 불렀다. 그는 방구석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안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아까 만났던 사냥꾼 타냐다.

     

    타냐: ……으, 윽…….

     

    시노: 괜찮나? 정신 차려. 

     

    큰 상처를 입은 기색은 없다. 안색도 나쁘지 않았다.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녀가 눈꺼풀을 떴다. 훅 하고 숨을 삼키고 그녀는 시노의 팔을 잡았다.

     

    타냐: 히스클리프 님과 네로는?

     

    시노: 여기에는 없어. 우리도 찾고 중이다. 만났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타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잘 안 나. 여러 경치를 봤어. 어디론가 끌려갈 뻔했는데 네로가 감싸준 거야. 나만 이 경치에 남고 둘은 변하는 경치 너머로 사라졌어.

     

    시노: 두 사람에게 부상은!?

     

    타냐: 모르겠어. 흰 머리의 남자와 싸우고 있었어.

     

    파우스트: 흰 머리의 남자…….

     

    호흡이 멈췄다. 달을 소환한 마법사 노바와 같은 특징이다. 속이 바짝 조인다. 나는 단서를 찾으려고 책상을 닥치는 대로 뒤졌다.

     

    파우스트: (공간 마법이야. 여러 공간을 연결하고 있어. 네로와 히스는 어딘가에 있을 거야. 네로에게는 타냐를 감싸줄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거야. 죽을지도 모르는 때에 사람을 감싸는 짓은…… ……그는 할 지도 모르지만.)

     

    시노가 타냐의 몸을 흔들었다.

     

    시노: 다른 건!? 다른 단서는 없어!?

     

    타냐: ……다른 단서……. 아……. 이걸…….

     

    타냐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나는 그들을 곁눈질하면서 일지 같은 것을 발견했다. 먼지투성이의 표지를 연다. 동쪽 마법사 길드의 기록이라고 희미한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파우스트: (집회와 내방자 기록……. 이 호텔이 길드 본부였던 시절의 일인가……. 공간 마법을 쓴 사람은 누구지? 노바인가? 아니면 길드 시대의 다른 누군가가…….)

     

    파우스트: (……응? 무르 하트 공…….)

     

    알고 있는 이름이 눈에 들어와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추었다.

     

    파우스트: (무르 하트 공 내방……. 어떤 고귀한 분의 의뢰로 진행되고 있던 회전 기밀 계획에 대해 교섭……. 당일 계획 중지를 요구하나, 두 나라를 편에 둔 무르 하트 공을 우리가 막을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다…….)

     

    파우스트: (……회전 기밀 계획……?)

     

    시노: 이건……. 이건 히스의 회중시계야!

     

    그때, 시노의 비통한 외침이 울렸다. 나는 시노를 돌아보았다. 불이 흔들려서 다시 어둠에 빠진다. 어둑어둑한 어둠 속에서 시노는 양손에 회중시계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둠 속이지만 잘못 봤을 리가 없다. 히스클리프의 마도구다. 지금 히스는 마도구를 들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핏기가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타냐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주웠는지 물어보려다가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타냐는 미소 짓고 있었다. 회중 시계를 움켜쥔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시노를 보면서. 부자연스러운 미소에 섬뜩했다. 직후, 타냐가 시노에게 팔을 뻗는다. 꼭 껴안듯이. 나는 순간적으로 시노의 로브를 잡고 힘차게 뒤로 당겼다.

     

    시노: ……!?

     

    동시에 타냐의 안면을 뚫는다.

     

    시노: 파우스트!?

     

    반응이 없었다. 타냐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시노를 등 뒤에 감싸고 실내를 둘러본다. 갑자기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노바: 난폭하네.

     

    파우스트: ……!?

     

    결계를 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섬뜩한 흰 머리 마법사가 거기에 서있었다. 도자기 인형의 눈동자에 박혀 있는 듯한 유리구슬 같은 자줏빛 눈. 상처가 난 왼쪽 눈, 의안의 오른쪽 눈. 어딘가, 남의 일과 같은 잔잔한 미소.

     

    시노: 이 녀석이 노바……!?

     

    파우스트: 타냐를 어떻게 했지!?

     

    흰 머리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었다.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하고 미소 짓는 자는 여러 번 만났다. 하지만 무언가 기묘했다. 예를 들어 오웬은 의도대로 나쁜 일이 결실을 맺으면 환희하며 웃는다. 선악의 판단을 떠나 거기에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하지만 흰 머리 마법사는 어딘가 서먹서먹했다. 견학 온 외부인처럼 조용히 서있었다.

     

    파우스트: (마법사……. 마법사로 되는 건가? 정령들의 반응이 이상해. 인간은 아닐 테지만, 이 기척은 마치…… 현자 같아.)

     

    시노: 네가 히스를 납치한 건가!?

     

    시노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뺨은 공포에 질려 큰 낫을 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시소는 감정으로 앞서나가지 않는다. 적의 역량을 재어 틀리지도 않는다. 역전의 전사이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과 현명함이다. 노바는 남의 일처럼 웃었다. 그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강한 증오나 어슴푸레한 야심이나 지배욕을 부딪히지 않았다.

     

    노바: 본인의 눈으로 확인하도록.

     

    흰 머리 마법사는 스르르 손바닥을 위로 돌렸다. 마법을 쓰는 것이다. 그 판단이 늦어진 것은 정령들의 움직임이 둔했기 때문이다. 강한 마력의 마법사에게 정령들은 영향을 받는다. 영웅의 퍼레이드를 올려다보며 열광하는 군중처럼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령들은 영향도 받지 않고 열광하지도 않고 그냥 바람에 흩날리는 마른 잎 같다. 도구처럼 사역되고 있다.

     

    벌린 손을 그가 움켜쥐었다. 세상은 어둠에 빠지고, 진흙처럼 무너졌다.

     

    시노: 파우스트……!

     

    나는 순간적으로 시노를 두둔했다. 그를 보호하면서 마도구 거울에 눈부신 빛을 모은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시야 너머, 흰 머리 마법사가 보였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한 번 갚아주려고 칼날 같은 빛의 다발로 노바의 목구멍을 노린다. 하지만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바: 히스는 기뻐할 거다.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어둠은 홍수처럼 우리를 밀어냈다.

     

    시노: 좋아해? ……윽!?

     

    시노의 몸이 떠나간다. 무너지는 공간에서 어둠을 헤치고 가는 팔을 잡고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파우스트: 내 손을 놓지 마! 괜찮아! 절대로 너를 히스와 만나게 해줄게……!

     

    시노: 파우스트……. ……!

     

    순간적인 당혹감 끝에 시노가 내 팔에 매달렸다. 가까이 닿은 체온이 뜨거웠다. 항상 손바닥이 따뜻했던 알렉이 생각난다. 반사적으로 되살아난 기억에 혀를 찬다. 알렉을 생각하면서 돌이 되다니 사양이다.

     

    파우스트: (시노를 살려야해……. 네로, 히스. 살아있어줘!)

     

    암흑의 탁류가 우리를 집어삼켰다.


    6화 벽을 허물기 위해

     

    카인: 자, 그럼 한 번 더 다녀올게.

     

    리케: 저도 갈게요.

     

    오즈: 나도 가지.

     

    카인: 아니, 나만 갈게. 뭐랄까, 저쪽에는 벽이 느껴지거든. 일단 털어놓으려고.

     

    리케: 저는 털어놓는 걸 잘해요.

     

    오즈: 나는…… 털어놓지는 않지만.

     

    카인: 둘 다 고마워. 마음은 기쁘지만 여기는 나에게 맡겨줘.

     

    오즈 / 리케: 어째서.

     

    카인: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잘하잖아?

     

    오즈 / 리케: 정치…….

     

    카인: 뭐, 어깨동무하고 한 잔 하면 서쪽 군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어. 그 녀석에게 여러 가지 물어볼게.

     

    리케: 알겠습니다. 친구 분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카인: 아아. 아직 안 됐지만.

     

    오즈: 나머지는 부탁하지.

     

    카인: 맡겨줘. 둘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 있어줘.

     

    리케: 알겠습니다. 오즈, 당신은 한 번 중앙의 나라로 돌아가는 건 어떤가요?

     

    오즈: 어째서지.

     

    리케: 일몰 전이라면 옆방을 찾듯이 중앙 나라의 왕궁에 갈 수 있잖아요. 아서 님을 만나뵙고 오늘은 자고 간다는 것을 전하면 어떤가요?

     

    오즈: 필요 없다.

     

    리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옆방이면 가잖아요.

     

    오즈: 다음에 만날 때는 노바의 돌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만나지 않겠다.

     

    리케: 왜죠?

     

    오즈: 왜……?

     

    리케: 제가 봤을 때는 그 계획이 즐거운 건 오즈 뿐이에요.

     

    오즈: ……?

     

    리케: 노바라든가 하는 돌이 있든 없든 아서 님은 오즈와 만나고 싶어하실 거예요. 여행이나 모험을 좋아하시는 아서 님이 오늘은 어떤 사정으로 참고 왕궁으로 돌아가셨으니까요. 저에게는 먼 곳이지만 오즈에게는 옆방이죠. 가는 건 어떤가요?

     

    오즈: ……아니.

     

    리케: 귀찮은 건가요?

     

    오즈: 귀찮아서가 아니다. 아무것도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얼굴을 보는 것은…….

     

    리케: 얼굴을 보는 게 왜요?

     

    오즈: ……너한테 말해도 모른다. 너는 아직 어려.

     

    리케: 알아요. 멋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이해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당신이 멋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오즈: …….

     

    리케: 얼굴을 보는 게 어때서요?

     

    오즈: ……모르겠다. 말로 표현을 잘 하지 못하겠어.

     

    리케: 솔직하네요. 훌륭해요.

     

    오즈: 다만, 이슬비 같은 기색이 든다.

     

    리케: 만나고 오면 좋을 거예요. 비가 온다고 해도 옆방이에요. 금방 오갈 수 있죠?

     

    오즈: 너를 혼자 둘 수는 없어.

     

    리케: 괜찮아요. 숙소에서 얌전히 있을게요.

     

    오즈: ……알았다. 너를 숙소에 데려다 주고 해가 지지 않는다면.

     

    리케: 알겠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가죠.

     

     

     

     

     

     

     

     

     

     

    서쪽 나라 병사: 이쪽에서 기다려주세요.

     

    카인: 고마워. 아, 저기…… 잠깐 괜찮을까?

     

    서쪽 나라 병사: 무슨 일이죠?

     

    카인: 모처럼 서쪽 나라에 왔으니 이 근처를 관광하려고 해. 서쪽 나라는 아름다운 곳이지!

     

    서쪽 나라 병사: 영광입니다! 꼭 관광해 주세요! 서쪽 왕궁은 보셨나요?

     

    카인: 아직이야. 막 도착해서. 괜찮다면 안내해주지 않을래? 중앙 나라의 선물도 있고, 한 잔 쏠게!

     

    서쪽 나라 병사: 정말인가요!? 이 사람, 인심이 좋네! 저라도 괜찮다면 물론…….

     

    서쪽 나라 장교: 엣헴.

     

    서쪽 나라 병사: 아…… 아뇨……. 일이 있어서…….

     

    카인: 그, 그렇구나. 아쉽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서쪽 나라 병사: 내일도 모레도 일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카인: …….

     

    카인: (서쪽 나라에 사는 사람은 사교적인 사람이 많을 텐데, 묘하게 딱딱하네……. 우리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명령이 내려온 걸수도 있어. 그렇다면 간단하게 니콜라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어…….)

     

    오웬: 후후……. 재미있네.

     

    카인: ……!? 오웬!? 어디서 들어온 거야!? 언제부터 있었어!?

     

    오웬: 아무래도 좋잖아? 나는 마법사야. 어디서나 쉽게 침입할 수 있어.

     

    카인: 잠깐……. 미안한데.

     

    오웬: 뭐야?

     

    카인: 나가주지 않을래?

     

    오웬: …….

     

    카인: 이제부터 중요한 대화를 할 거야. 미움 받을 일이 생긴다면 곤란해.

     

    오웬: 헤에, 좋은 소리를 들었네.

     

    카인: 오웬…….

     

    오웬: 뭐가 급한 거야.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한 주제에.

     

    카인: 언제부터 들었어?

     

    오웬: 흥. 기사님은 정치 같은 건 못해. 맑고 건전하고 욕심없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아.

     

    카인: 어째서야. 그런 사람일수록 신뢰하잖아?

     

    오웬: 후후…… 기사님은 몰라. 신용받는 것은 교활하고 거짓말쟁이인 비겁자야. 치사하고 거짓말쟁이인 비겁자는 거짓말도 욕도 하지 않는 성인보다 훨씬 더 믿을 만 해. 그야, 다들 게으르고 치사하고 거짓말쟁이인 걸. 그런 녀석들이 기분 좋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의의 기사 따위는 장애물이지.

     

    카인: …….

     

    오웬: 저기, 기사님……. 기사님도 사실은 생각한 거지? 자신보다 나은 걸 보고 불공평한다던가. 그 흠을 메우기 위해서 자신이 열심히 하거나 참는 건 불평등하다던가. 뛰어난 사람은 교활하고 상냥한 얼굴을 가진 녀석은 거짓말쟁이야. 착한 척하고 칭찬받고 싶을 뿐. 용감한 척하면서 사실은 너도 겁쟁이에 비겁쟁이. 틀려?

     

    카인: ……잔뜩 이야기해줬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어.

     

    오웬: ……쳇……. 이 녀석, 천연에 너무 둔해…….

     

    카인: 기다려줘. 조금은 알아. 나도 어렸을 때 나보다 발이 빠른 녀석이 부러웠거든. 하지만 단련을 하다 보니 그 녀석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어.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맺는 법이야.

     

    오웬: 맺지 않는 열매도 있어.

     

    카인: 있나?

     

    오웬: 있어! 너, 나를 못 이기잖아?

     

    카인: 지금은 말이지. 언젠가는 이기고야 말겠어.

     

    오웬: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네 눈알은 평생 내 거야. 어때? 절망했어?


    7화 서쪽 나라의 밤

     

    카인: 너는 어때? 오즈를 평생 못 이기는 거야?

     

    오웬: 하아? 나와 오즈는 상관 없잖아?

     

    카인: 됐으니까 대답해. 오즈를 평생 못 이기는 거야?

     

    오웬: 그럴 리가 없잖아. 오즈의 돌로 내 의자를 만들어서 끈적끈적한 케이크를 먹어줄 거야.

     

    카인: 봐봐. 마음은 나와 똑같잖아. 서로 힘내자.

     

    오웬: 하?

     

    카인: 확 해버릴까? 주먹 이렇게 붙이는 거…….

     

    오웬: 하지 마.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으니까.

     

    카인: 진정해.

     

    오웬: 서로 힘내자고? 아아, 그렇구나……. 기사님은 오즈가 죽어도 되는 거구나.

     

    카인: 그런 게 아니라…….

     

    오웬: 흥……. 동료인 척하면서 꽤 매정하잖아. 그거야 그런가. 오즈만 없다면 왕자님은 너에게 의지할 테니까. 쓸모없는 기사님. 오즈가 있으면 너 따위는 필요없지 않아?

     

    카인: …….

     

    오웬: 아싸! 드디어 화났다!

     

    카인: 잠…….

     

    오웬: 아하하! 자, 봐! 너도 질투하잖아.

     

    카인: ……아, 안 했어! 아니, 조금은 했을 수도 있지만 질투라고나 할까…….

     

    오웬: 후후, 변명이나 하고. 아기 기사님에게도 질퍽거리는 질투의 감정이 있었구나. ……아아, 최고의 기분…….

     

    카인: 즐거워 보이네, 너……. 일단 나가줘. 나는 서쪽 나라 군인들과 잘해봐야 해.

     

    오웬: 될 리가 없잖아. 서쪽 나라 사람들은 쾌락을 좋아해. 뇌물도 좋아하지. 중앙 나라에서 온 딱딱한 정의의 기사라니, 너무 지루해서 토해버려.

     

    카인: ……뇌물?

     

    오웬: 맞아. 말했잖아? 나쁜 짓을 하는 녀석은 성실한 사람을 믿지 않아. 나쁜 짓을 하는 녀석을 신용하지. 하지만 성실하기만 한 너는 치사하고 비겁한 짓도 요만큼은 할 수 없어.

     

    카인: ……아니……. 할 수 있어.

     

    오웬: 못 해.

     

    카인: 할 수 있어.

     

    오웬: 못 해. 타고난 기사 주제에. 부정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잖아.

     

    카인: 그래도 오즈나 리케가 못하는 건 내가 할 수 밖에 없어. 예를 들어 나의 신조를 져버린다고 해도, 아서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거면 돼.

     

    오웬: ……흥……. 해 봐. 어차피 안 될 테니까.

     

    카인: 할 수 있어.

     

    오웬: 못 해.

     

    서쪽 나라 장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카인: 아뇨, 저야말로. 오웬, 이제 가 줘.

     

    오웬: 나도 현자의 마법사야. 여기에 있어도 되잖아.

     

    카인: ……저는 중앙의 마법사, 전 기사단장 카인입니다. 이쪽은 북쪽의 마법사 오웬.

     

    서쪽 나라 장교: ……북쪽의 마법사…….

     

    카인: 오늘은 이곳에 시찰하러 왔었던 저희 나라의 전 마법 과학 병단 단장 니콜라스에 대해…….

     

    오웬: 뇌물이 필요하대.

     

    카인: 오웬!

     

    오웬: 거짓말을 해도 진전이 업잖아. 이 기사님은 뇌물을 원해. 소매 밑에서 금화를 받고 싶대.

     

    서쪽 나라 장교: …….

     

    오웬: 그렇지? 기사님. 정정한다면 마지막 기회야.

     

    카인: ……이 녀석의 말이 맞아. 솔직히 돈이 궁해서. 너희들에게 뇌물이 필요해.

     

    오웬: ……하?

     

    카인: 오늘은 생전의 니콜라스에 대해 조사하러 왔어. 하지만 뭐, 본심을 말하자면…… 죽은 녀석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좋아.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 너도 이국의 마법사에게 이것저것 조사 받고 아프지도 않은 배를 찾고 싶지는 않지? 그쪽에서 접대해 줘. 서쪽 나라 잔치는 사치라고 알고 있어. 너도 나쁘게 만들지 않을게.

     

    서쪽 나라 장교: ……뇌물이라는 것은, 주연을 원한다는?

     

    카인: 대충 그런 거야.

     

    서쪽 나라 장교: 여자인가요? 도박?

     

    오웬: 하?

     

    서쪽 나라 장교: 그러면 장교 클럽에 초대하죠. 그 후에는 흐름에 따라 원하시는 주연에…….

     

    카인: 아아, 말이 빨라서 살았어. 너도 함께 즐겨줘.

     

    서쪽 나라 장교: 영광입니다.

     

    카인: 그리고 모양만이라도 보고서를 내야 하니까. 니콜라스와 친했던 녀석도 불러주지 않을래?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게.

     

    서쪽 나라 장교: 알겠습니다. 그러면 장교 클럽까지 부하에게 안내를 받으시죠.

     

    카인: 부탁할게.

     

    오웬: 잠깐…….

     

    서쪽 나라 장교: 카인 님, 오웬 님. 이쪽으로.

     

    카인: 바로인가? 기대되는 걸!

     

    오웬: 잠깐, 기사님…….

     

    서쪽 나라 장교: 자, 여기 있습니다. 서쪽 나라의 밤을 듬뿍 즐겨주세요.

     

    서쪽 나라 장교: ……흥……. 저게 전 중앙의 기사단장 카인이라니……. 고결한 기사 따위 소문 뿐이군. 젊은 나이에 출세한 녀석은 금방 치켜 올라가지. 아아, 한심해. 하하……. 나로서는 편하고 좋지만.

     

     

     

     

     

     

     

     

    급사: 잘 오셨습니다, 카인 님. 이쪽이 서쪽 나라 장교 클럽입니다. 부디 편안한 휴식을 즐겨주세요.

     

    카인: 고마워.

     

    급사: 지금 막 서쪽 나라 미녀들과 도박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카인: 빨리 해 줘. 군 간분들이 드나드는 장교 클럽에서는 뺄 수 없으니까.

     

    급사: 잘 알았습니다.

     

    오웬: 너, 바보야?

     

    카인: 뭐야, 오웬. 아직 있었구나.

     

    오웬: 저 녀석 얼굴 못 봤어? 저 경멸스러운 얼굴. 너는 기사인데…….

     

    카인: 기사 아니야.

     

    오웬: 기사잖아.

     

    카인: 칭호는 박탈되었어.

     

    오웬: 그래서?

     

    카인: 나는 북쪽의 마법사에게 져서 거짓말을 들킨 비겁한 마법사야. 너 때문에 그렇게 됐어!

     

    오웬: 그…….

     

    카인: 어디론가 가버려! 방해하지 마!

     

    오웬: …….

     

    오웬: 죽어.

     

    카인: ……겨우 사라졌다.

     

    급사: 무슨 일 있으신가요?

     

    카인: 아무것도 아니야. 즐겁게 해 줘.

     

    카인: 오늘 밤은 최고인 걸.


    8화 니콜라스의 소망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술을 심하게 취한 것처럼 머리가 흔들렸다. 입맛을 다셔 나쁘게 웃었다. 취한 척한 덕분에 바로 상대방에게 끈적끈적 건드렸다. 니콜라스와 친했다는 남자는 서쪽 나라 주민치고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낮은 남자였다. 내가 니콜라스의 욕을 늘어놓으면 그는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아, 좋은 놈이구나 싶었다. 그는 니콜라스를 이국으로 무인으로 좋아해준 거구나. 기뻤어.

     

    그와 니콜라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욕에 이끌려서 그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니콜라스의 지인: 니콜라스 공은 울굴하고 음침했어. 마치 동쪽 나라 사람처럼. 그의 인생은 그의 영광과 함께 끝났겠지. 예전의 어전 시합 때문에.

     

    카인: 어전 시합?

     

    니콜라스의 지인: 당신, 모르나? 지방 출신 젊은 기사와 갑자기 시합을 하게 된 거야.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그 젊은 기사는 나일 것이다.

     

    니콜라스의 지인: 솜씨 좋은 젊은이가 있다고 해서 왕궁의 누군가가 갑자기 젊은 기사를 경기에 참가시켰어. 약간의 화제 만들기의, 구경거리 생각이었겠지. 아무도 니콜라스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니콜라스는 졌다. 상대는 아직 십대였어. 그날부터 니콜라스의 인생은 바뀐건지.

     

    니콜라스의 지인: 소년에게 진 기사단장이라니, 외문이 나빠. 중앙 국가의 권위에도 관여하게 되어버려. 니콜라스는 기사단장 자리를 박탈당하고 갑자기 마법 과학을 배우라는 명령을 받아 서쪽 나라에 온 거야. 더러워진 부품을 교체하듯, 멀리서 쫓겨났어. 마법 과학을 배우는 자세는 열심이었지만 니콜라스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카인: 헤에…….

     

    무관심한 듯이 중얼거리며 나는 마음 속으로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내가 니콜라스에게 굴욕을 줬나? 존경하던 그에게서 영광과 명예를 빼앗은 건가? 그러니까, 니코라스는 달을 소환할 정도로 낙심해버렸다는 건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지? 일부러 졌어야 했나?

     

    카인: (니콜라스라면……. 니콜라스라면 그랬을 수도 있어. 그 녀석은 배려심이 있고 상냥했지. 누군가의 명예를 빼앗는 것을 싫어했어. 나는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것에 열중해버려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어서 …….누군가의 명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카인: (애초에 졌다고 해서 명예를 잃거나 하진 않잖아? 단련해서 다음에 이기면 될 뿐이야. 나는 나의 승리를 기뻐했지만, 너를 깔보거나 하지는 않았어. 니콜라스……. 너를 동경했었어. 아직 어린애인 나의 검 끝에서, 고개를 숙이고 대등하게 답례를 해준 당신을…….)

     

    카인: (그 날의 일을, 나도 잊은 적은 없는데.)

     

    니콜라스의 지인: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카인: 아아……. 아니, 물 좀 받을까. 조금…….

     

    니콜라스의 지인: 그렇네. 서빙을 부르자.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카인: ……그, 서쪽 나라로 와서…….

     

    니콜라스의 지인: 맞다. 서쪽 나라로 오고 나서 약혼을 해지당했어.

     

    카인: 약혼?

     

    니콜라스의 지인: 아아. 귀족의 딸과의 결혼이 정해져 있었다고 했나. 자신에게서 물러났다고 했어. 전직 기사단장이 마법 과학 공부를 위해서 유학이라면 사실상 좌천이니까.

     

    머리가 흔들렸다. 물이 운반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잔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억지로 끼워진 오웬의 한쪽 눈이 욱신욱신 거렸다.

     

    니콜라스의 지인: 그래서 니콜라스가 새 애인과 함께 걷는 것을 봤을 때는 안심했었지.

     

    카인: 애인……?

     

    니콜라스의 지인: 아아. 대단한 미인이었어. 흰 머리에 하얀 피부의…….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카인: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나?

     

    니콜라스의 지인: 아니, 몰라.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은 그녀와 보르다 섬으로 여행을 간 것 정도인가.

     

    카인: 보르다 섬……. 서쪽 나라의 관광 명소 말이지.

     

    니콜라스의 지인: 관광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녀는 학자였고, 아덤스 섬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던 것 같거든. 아담스 섬은 수백 년 전에 마법사 때문에 가라앉았다고 하는 섬이야. 니콜라스는 아담스 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어. 하지만…… 잘 되면 소원을 들어주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니콜라스의 소원……. 오웬에게 들었다. 그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고. 기사단장 자리에서 쫓겨나 그 계기가 된 기사의 정체가 마법사로……. 니콜라스는 무슨 생각으로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 어두운 마음이 가슴 속 깊이 퍼진다. 갑자기 상대가 거리를 좁혀 귓전에 속삭인다.

     

    니콜라스의 지인: 야……. 너도 지긋지긋하지 않아? 중앙 나라의 방법 따위는. 나라를 위해 일한 기사의 명예를 풀을 뜯듯이 박탈하다니 너무하지.

     

    맞는 말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마음이 복받쳤다. 그는 의분을 가린 눈빛으로 나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니콜라스의 지인: 나도 군인이야. 너희들의 억울함은 잘 알아. 제2의 니콜라스가 생겨서는 안 돼. 그렇지?

     

    카인: 맞아.

     

    니콜라스의 지인: 그렇다면 바꿔나가야 해. 중앙 나라 영웅의 명예를 위해서. 나라의 제도를 안에서부터 바꾸기는 어려워. 하지만 밖에서라면 변화의 계기가 주어지지. 특히 중앙 나라의 빈센트 님은 서쪽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에 깊은 공감을 표시해주고 계셔. 똑같이 공감을 표시해주는 동료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야. 괜찮다면 너도 참가하지 않을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중간부터 분명히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카인: (나를 설득해서 스파이로 할 셈인가?

     

    장난하나. 조금 전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웬의 말을 떠올린다. 정의에게는 아무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실제로 뇌물을 요구했더니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카인: (매국노로 전략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는 오명을 벗지 않을지도 몰라. 아니…… 나의 명예 따위는 이미 사라졌어. ……게다가…… 오즈보다 도움이 되는 일은 이 정도 밖에 없겠지. 지금의 내가 중앙의 나라와 아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카인: 그렇네…….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래?


    9화 이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루틸: 오늘은 많은 분들이 인사하러 와주셨네요.

     

    레녹스: 생각보다 마법사의 집은 꺼려지지 않았네. 고마운 일이야.

     

    피가로: 너희들이 부흥을 도와준 것과 중앙 나라의 왕자인 아서의 활약 덕분이려나. 마법사에 대해 친근하게 느껴주겠지.

     

    루틸: 그렇네요. 니콜라스 씨가 발코니에서 떨어졌을 때는 마법사를 무서워 했는데……. 중앙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상냥한 사람들 뿐이에요. 그렇지, 미틸.

     

    미틸: 그렇네요…….

     

    피가로: 미틸, 무슨 일이야?

     

    레녹스: 루틸이랑 싸운 것 같아서.

     

    미틸: 안 했어요! 조금 의견이 달랐을 뿐…….

     

    피가로: 미틸. 오늘은 힘냈네. 피가로 선생님과 어디 좀 들렀다 갈까?

     

    미틸: 에……?

     

    루틸: 잘 됐네, 미틸! 저는 레노 씨와 먼저 가있을 테니까 피가로 선생님과 쇼핑하고 오는게 어때?

     

    미틸: 괜찮나요? 선생님…….

     

    피가로: 물론. 저녁 시장은 아침과는 다르니까 분명 즐거울 거야.

     

    미틸: 그러면 같이 갈래요.

     

    피가로: 응.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미틸은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살살 해주세요.

     

    피가로: 알고 있어. 나는 상냥하니까.

     

    루틸: 상냥해요. 미틸에게 말을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피가로: 네네.

     

     

     

     

     

     

     

     

     

     

    미틸: …….

     

    피가로: 벌써 문 닫은 가게가 많네. 낮에 안 열렸던 술집이 문을 열기 시작했어.

     

    미틸: 그렇네요……. 아까 그 사람, 아는 사이인가요? 그, 키가 매우 컸던…….

     

    피가로: 아아.

     

    미틸: 그 사람도 마법사인가요?

     

    피가로: 맞아.

     

    미틸: 좋겠다……. 씩씩하고 강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레노 씨나 그 사람 같았으면 마법이 강하지 않아도 행복했을 텐데.

     

    피가로: 아이작……. 그 아이는 다른 말을 했어. 똑똑했다면 행복했을 거라고. 미틸은 학교 안에서도 똑똑한 아이였지. 어때? 행복해?

     

    미틸: ……모르겠어요.

     

    피가로: 모르겠지.

     

    미틸: 피가로 선생님은 계속 남쪽의 마법사죠?

     

    피가로: 그렇네.

     

    미틸: 고민해 본 적은 없나요? 강한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피가로: 음……. 저 녀석보다 강하면 편할텐데, 라는 생각은 해본 적은 있네. 알고 있는 강한 마법사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미틸: ……미스라 씨나 어머니도요?

     

    피가로: 맞아. 행복하지 않다고 단언하면 어폐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치렛타는 미틸의 아버지와 결혼하고 미스라도 약속을 한 게 아닐까?

     

    미틸: 무슨 뜻인가요?

     

    피가로: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봤을 때 미틸은 매우 행복해 보여. 미틸에게는 미틸만의 고민이나 괴로운 일이 있겠지. 피가로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지혜로움과 함께야. 모처럼 살아있는데 불행해지다니 어리석어. 미틸은 행복해 보여. 너는 영리하고 사랑받고 있고 잘 살고 있어. 마법이 강하다는 건 아무래도 좋아질 정도야.

     

    미틸: …….

     

    피가로: 별로 찬성할 수 없니? 잘 전달되지 않았나?

     

    미틸: 피가로 선생님은 똑똑한 어른인가요?

     

    피가로: 어떻게 보여?

     

    미틸: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굉장히 박식하지만 안해도 될 것 같은 걸 하기도 하니까.

     

    피가로: 아하하, 확실히.

     

    미틸: 불행한 일을 불행한 채로 두려고 할 때가 있으니까……. 그게 피가로 선생님이 말하는 어리석음인가요?

     

    피가로: 아마도.

     

    미틸: ……그렇다면…… 저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서: …….

     

    빈센트: 아서.

     

    아서: 숙부님. 무슨 일이신가요?

     

    빈센트: 수행원은 달고 있지 않다. 너와 둘 뿐이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지.

     

    아서: 그러면 의자를…….

     

    빈센트: 이대로 좋아. 솔직하게 묻도록 하지. 너는 이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나?

     

    아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결점이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멋진 장소라고 생각해요.

     

    빈센트: 맞다. 하지만 너에게는 애국심이 없어.

     

    아서: 있습니다.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어요.

     

    빈센트: 아니, 아니야. 네가 사랑하는 것은 세상이다. 이 나라만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야.

     

    아서: ……그것은 안되는 일인가요?

     

    빈센트: 선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서: 어째서 나라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가요?

     

    빈센트: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태고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지. 아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너는 총명하고 용감한 소년이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명군이 되겠지. 이 나라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 애국심만 있다면.

     

    빈센트: 너는 중앙의 나라보다도 오즈를 그리워하며 마법사를 흠모하고 있다.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해다오. 너는 진심으로 왕위를 원하는 것인가?

     

    아서: …….

     

    빈센트: 너는 엄격한 북쪽 나라에서 오즈에게 자란 아이다. 나는 유탈자가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왕자의 이름이나 왕좌가 거북하다면 내가 맡도록 하지.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야. 내 야심 때문도 아니다. 정말로 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은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시련의 시기다. 파우스트 님도 지켜보고 계셔.

     

    아서: 그런가요?

     

    빈센트: 맞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무딘 것을 넘어 불경이다.

     

    아서: 혹시 파우스트 님이란 마법관의 파우스트인가요?

     

    빈센트: 거룩한 마법사 파우스트 님이시다. 우리 나라의 건국의 영웅이자 전란의 세상을 진정시킨 구세주이기도 하지.

     

    아서: 역시?

     

    빈센트: 역시가 아니야. 알렉 그랑벨의 후손으로서 중히 행동을 삼가도록. 

     

    빈센트: 말을 되돌리지. 그런 경위로 마음을 고쳐 먹고 나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머지않아 국왕이 된다. 하지만 너는 이 나라에 경모가 없어.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나라나 백성은 불쌍하다. 왕자의 역할이 무겁다면 무거운 짐은 버리고 북쪽 나라에 돌아가면 돼. 너와 나라를 둘로 갈라놓을 수 있는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아서: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운 장소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숙부님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빈센트: 어째서지.

     

    아서: 마법사들이 걱정되어서 입니다. 분명 마법사들은 숙부님이나 이 나라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시간이 걸리겠죠. 저는 그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빈센트: 마법사는 믿을 수 없다. 그것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자유롭게 모습을 바꿔 어디든 숨어들어가 독도 쓰지않고 사람을 암살할 수 있다.

     

    아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번도 숙부님의 비밀을 훔쳐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동료가 되고 싶기 때문에.

     

    빈센트: …….

     

    아서: 이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저는 중앙의 나라를 떠나지 않습니다.

     

    빈센트: ……알았다. 지금의 이야기는 잊어다오.

     

    아서: 잊지 않아도 되는데.

     

    빈센트: 탈이나 내분을 선언한 것과 같다. 내 목이 날아갈 거야.

     

    아서: 날아가지 않아요. 숙부님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모두 믿고 있으니까요.

     

    빈센트: 흥…….

     

    빈센트: 맞다, 아서.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아서: 무엇인가요?

     

    빈센트: 라스티카 페르치는 그 페르치 가문과 관련된 인물인가?

     

    아서: 페르치 가문……. 일찍이 서쪽 나라에서 부귀영화를 자랑한 사파이어 성의 페르치 가문 말씀이신가요?

     

    빈센트: 그렇다.

     

    아서: 어떨까요……. 직접 물어본 적은 있지만 피의 연결고리는 있을 수도 있겠군요. 페르치 가문은 대귀족이니까요. 자손도 많지 않았을까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빈센트: 오력국 평화회의 후에 서쪽 나라의 사자로부터 국왕 폐하의 직서를 받았다. 몇 가지 요구와 함께 라스티카 페르치의 신병을 인수하고 싶다고.


     10화 본 적이 없는 무언가

     

    아서: ……신병을 인수? 라스티카의?

     

    빈센트: 아아.

     

    아서: 숙부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빈센트: 애둘러 부드럽게 거절했다. 너와 현자가 반대할 것 같아서.

     

    아서: 숙부님…….

     

    빈센트: 낯익은 얼굴은 그만둬. 너 때문에 거절한 게 아니다.

     

    아서: 어째서 서쪽 나라의 국왕 폐하는 그런 요구를 하신 건지 라스티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라스티카는 잘 잊어버리니까 옛날 일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요. 페르치 가문에 관한 문헌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빈센트: 오즈에 의한 분서로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아서: 분서……? 오즈 님이 책을 태웠다는 말씀이신가요?

     

    빈센트: 그렇다. 오즈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을 무렵의 서쪽 나라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서: 오즈 님은 책을 태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에게 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시고 마도서를 주신 것도 오즈 님…….

     

    빈센트: 역사상 그렇게 말해지고 있다! 너와 오즈의 이야기를 하면 늘 평행선이야.

     

    아서: ……하지만 책을 태우면 서쪽 나라 사람들은 곤란해 했겠죠…….

     

    빈센트: 서쪽에는 세계의 지자 무르 하트가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기록이자 사전이지. 서쪽 나라가 자랑스러워하는. 오래 산 마법사는 전부 그렇다. 현자의 마법사들에게는 물어봤나?

     

    아서: 무엇을?

     

    빈센트: 오즈가 세계의 절반을 불태운 것이 사실이냐고.

     

    아서: …….

     

    빈센트: 아서. 맹목적으로 감싸지 않고 진실을 확인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오즈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이 좋아.

     

    아서: ……알겠습니다. ……오즈 님이나 오래 산 마법사들에게 듣고 확인해 보겠습니다……. 진실을…….

     

    오즈: …….

     

     

     

     

     

     

     

    루틸: 완전히 날도 저물어 버렸네요. 미스라 씨, 마법관에 있으려나…….

     

    레녹스: 미스라는 어디로 갔든 간에 금방 돌아올 수 있으니까. 나가는 것도 나가지 않는 것도 기분 나름이겠지.

     

    루틸: 그렇네요…….

     

    레녹스: ……아…….

     

    루틸: 왜 그러나요? 레노 씨?

     

    레녹스: 파우스트 님의 심부름꾼이다. 파우스트 님께 무언가가…….

     

     

     

     

     

     

     

    파우스트: ……윽……. 여기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둠 속에 있었다. 하체가 심지부터 시리다. 찬물 속에 있는 건가. 물소리가 반향한다.

     

    파우스트: (……야외가 아니야……. 강이나 호수가 아니야. 여기는…… 지저 호수……? 하지만 거친 바위가 없어…….)

     

    파우스트: (……지하 수로인가……?)

     

    시노: 파우스트…….

     

    파우스트: 시노인가.

     

    희미하게 들린 시노의 목소리에 나는 그의 기척을 살폈다.

     

    시노: ……윽, 어디에…….

     

    파우스트: 움직이지 마. 내가…….

     

    어둠에 불안해서 그런지 시노가 주문을 외운다. 마법으로 불을 켜려고 했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파우스트: 그만둬……!

     

    나는 제지했다. 어둠 속에 적이 숨어 있을 때 불을 켜면 표적이 된다. 그때, 공기가 떨리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시노: ……!

     

    파우스트: 시노!

     

    무언가가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시노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내가 건 수호가 시노를 지켰다. 시노 대신으로 됭 ㅓ있던 내 목덜미에 극심한 통증이 온다.

     

    파우스트: ……!

     

    시노: 파우스트……!

     

    파우스트: 움직이지 마! 몸을 숨기고 있어!

     

    숨을 죽이고 마도구 거울을 출현시켰다.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물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다가왔다. 다가오는 기색에 전율한다. 하지만 도중에 눈치채고 눈을 부릅떴다.

     

    네로의 기색이다. 나는 탈진할 정도로 안심했다. 네로는 솜씨 좋은 마법사다. 그가 있으면 분명 함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로와 함께 섬뜩한 것의 기색도 다가오고 있었다.

     

    네로: ……! ……윽, 파우스트!

     

    쉰 목소리로 네로가 외쳤다. 그의 기척이 다가와 나는 팔을 뻗었다. 힘차게 내 팔 안에 무겁고 따뜻한 것이 들린다. 사람이다. 히스인 줄 알았지만 여자였다. 타냐 치고는 몸집이 작다. 반사적으로 갑자기 사라진 그 딸인가 싶었다. 네로의 무사함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힘차게 네로도 넘어질 뻔했다. 받아 들이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서 물에 빠진다.

     

    얼 것 같은 물 속의 네로의 등은 미지근한 물 같은 따뜻함으로 젖어 있었다. 엄청난 출혈이다. 네로는 죽어가고 있었다.

     

    파우스트: 네…….

     

    네로: ……검은…… 짐승…….

     

    시노: 검은 짐승…….

     

    시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공포라기보다는 슬픔에.

     

    네로: ……공격하지 마……. ……윽, 히스가…….

     

    파우스트: 네로! 어이, 네로……!

     

    네로는 힘을 잃었다. 소녀의 몸 위에 허탈하게 쓰러진다. 귀를 기울이니 어둠 저편에서 짐승의 신음소리가 났다.

     

    그리고…… 본 적이 없는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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