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이유를 알려줘
미스라: 들어오세요.
미틸: 실례합니다.
루틸: 실례합니다. 미스라 씨의 방, 언제 와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설레네요. 이 촛불, 전에도 있었나요?
미스라: 아, 잠깐. 위험한 것도 있으니 만지지 마세요.
루틸: 네. 미틸, 얌전히 있자. 긴장하고 있니?
미틸: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루틸: 하지만?
미틸: 미스라 씨, 어쨰서 저희를 방으로 부른 건가요?
미스라: 그 전에 왜 저를 째려보나요? 죽일 겁니다.
미틸: …….
루틸: 미스라 씨, 미틸을 위협하지 마세요.
미틸: 저…… 저희는 형님을 사이에 두고 있는 라이벌 관계니까요.
미스라: 라이벌 관계?
루틸: 그런 거야?
미틸: 맞아요. 형님은 태평한 점이 있으니까 형님이 미스라 씨에게 말려서 봉변을 당하거나……. 미스라 씨에게 이끌려서 악의 길로 뛰거나 하지 않도록 제가 정신을 차려야 해요. 그러니까 라이벌 관계예요.
미스라: 헤에.
루틸: 믿음직스럽네, 미틸! 들었나요? 미스라 씨. 미스라 씨의 라이벌이래요. 미틸은 분명 아주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야.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미스라: 당신 때문에 싸움을 걸고 있는데, 감격하지 마세요.
루틸: 아…….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동생의 성장에 가슴이 뭉클해져서…….
미스라: 또 그런가요? 당신, 해가 진 것만으로도 똑같은 말 했잖아요.
루틸: 가슴이 찡해지는게 즐겁잖아요.
미틸: 저기…….
루틸: 미틸, 괜찮아. 미스라 씨는 나를 악의 길로 끌어들이거나 하지 않아. 게다가 형은 나니까. 어떤 때라도 내가 미틸을 지켜줄게.
미틸: 하지만, 형님…….
미스라: 제가 할게요. 당신들을 지키는 것이 저의 몫이에요. 치렛타에게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미틸: 그러면 오늘은……. 안 되는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건가요?
미스라: 안 되는 일?
미틸: 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형님이랑 방에 들어오라고 하니까……. 뭔가 안 되는 걸 배우는 건가 싶었거든요. 형을 악의 길로 물들이면 안돼요.
미스라: 안 되는 일이 아니에요. 좋은 걸 알려드리죠. 이걸 보세요.
미틸: ……이건, 마나석……?
미스라: 네.
미틸: ……이렇게 크고 광채가 강한 마나석을 본 건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미스라: 그렇겠죠. 마나석은 마법사의 돌입니다. 남쪽에 이렇게 강한 마법사는 없을 거예요. 마법사가 돌을 먹으면 마력이 늘어납니다.
미틸: 마력이 늘어난다……. 즉, 강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미스라: 네.
미틸: 대단해……!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형님, 알고 계셨나요?
루틸: ……조금은…….
미틸: 빨리 말해주시지! 미스라 씨, 저도 강해질 수 있나요? 남쪽의 마법사인 저도…….
미스라: 아마도. 저는 남쪽 마법사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괜찮을 거예요. 질이 나쁘거나 궁합이 안 좋으면 별 변화가 없을 때도 있지만, 이 녀석은 상당한 마나석입니다. 오웬이나 브래들리도 탐낼 만한 거물.
미틸: 그렇게 대단한 것을 어째서……?
미스라: 당신들이 죽으면 곤란하니까요. 더 강해지셔야죠.
미틸: 미스라 씨……. 저를 강하게 해주시나요?
미스라: 네.
미틸: ……다행이다……. …….
미스라: ……왜 우나요.
미틸: ……저, 계속……. 강해지고 싶어서…….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미스라: …….
미틸: 미스라 씨 같은 강한 마법사로, 강해질 수 있다고……. 강해지게 해준다고 하셔서 너무 기버요……. 감사합니다.
미스라: 하하……. 별거 아니에요.
미틸: 미스라 씨…….
미스라: 뭐야……. 당신은 단지 강해지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군요. 알면 저랑 잘 맞겠네요. 여러 가지 가르쳐 줄게요. 당신은 치렛타의 아들이니까요.
미틸: 감사합니다! 저, 열심히 할게요!
루틸: …….
미틸: 미스라 씨, 마나석은 어떻게 먹으면 되나요? 말린 나무토막처럼 산산조각 내서? 아니면 그냥 물에 넣고 끓이는 건가요? 저, 약초 만들기는 해봤지만 광물은 먹어본 적 없어서…….
미스라: 입에 넣으면 돼요. 먹는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일단 입안에 넣어봐요. 자, 루틸. 당신도…….
루틸: ……윽…….
미스라: …….
미틸: 왜, 왜 그러시나요 형님. 미스라 씨의 손을 쳐내고…….
루틸: ……죄송합니다. 미스라 씨, 죄송해요……. 저는 할 수 없어요…….
미스라: ……하?
루틸: 미틸에게도 시킬 수 없어요. ……미틸, 안 돼. 입에 넣지 마…….
미틸: ……어째서…….
미스라: 무슨 소리인가요? 이만큼 고급 마나석은 거의 구할 수 없어요. 질 좋은 고급 마법사는 모두 오즈가 돌로 만들어 먹어 치웠다고요. 이만한 돌은 거의 없어요. 그걸 당신들에게 주겠다는 거예요. 감사했으면 좋겠는데요.
루틸: 죄송해요…….
미스라: ……그렇게 말만 하고. 이유를 말해주세요.
미틸: 저도 알고 싶어요. 어째서 안되나요? 형님. 형님이 싫으면 저만이라도…….
루틸: 안 돼!
미틸: …….
루틸: 마나석은 마법사의 돌. 미틸도 피가로 선생님께 배웠지? 화석 같은 거라고.
미틸: ……배웠죠…….
루틸: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신기한 힘이 깃들어 있는 비싸고 훌륭한 것이지만…… 사람의 뼈와 똑같아.
2화 우리의 방식
미틸: …….
미스라: 하? 달라요. 완전 달라. 뭐가 다른지는 잘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루틸: ……미스라 씨……. 마나석을 먹는 문화가 있었다는 건 저도 들어봤어요. 미스라 씨의 사고 방식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미스라 씨에게 말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알아주세요. 저에게는 무리예요. 미스라 씨의 마음은 굉장히 기쁘지만, 저희는 그걸 먹을 수 없어요.
미스라: ……의미를 모르겠어요……. 약한 남쪽 마법사 주제에……. 이걸 먹지 않고 당신들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더 있나요? 살해당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루틸: 열심히 훈련할게요! 미스라 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미스라: 당신들이 약한 것부터가 저에게 이미 민폐라고요!
루틸: …….
미틸: …….
미스라: 됐어……. 강제로라도 먹일 거니까요!
루틸: ……윽.
미틸: 형님!
미스라: 이쪽을 봐요! 얼른 입을 벌려요!
미틸: 미스라 씨, 멈추세요! 제가, 제가 먹을게요!
루틸: 안 돼!
미틸: 저는 그걸 원해요! 강해지고 싶어요!
루틸: 안 돼. 하지 마! 어머니가 돌이 되는 걸 봤어. 어머니의 돌은 관에 넣어 매장했고! 그거랑 똑같은 거야, 미틸! 누군가의 목숨이었던 거라고.
미스라: 관에 넣어서 묻었어? 안 먹었다고요? 치렛타의 돌을? 그녀는 당신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을 텐데……. ……무슨 짓을…….
루틸: 저는 아버님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저희 방식대로 매장했어요! 마음을 담은 다정한 이별이었어요.
미스라: 북쪽 마법사에게 있어서 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가치가 없어요. 제 돌은 결코 길가에 굴러가지 않아요. 북쪽 미스라의 돌이라면 누구나 손에 넣고 싶어하지. 치렛타의 돌도…….
루틸: 미스라 씨. 당신의 생각이나 당신의 방식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저희의 방식을 부정하지 마세요. 특히, 소중한 추억은…….
미스라: 부정하는 건 당신이잖아요! 모처럼 당신들을 위해서 제가 준비한 건데…….
루틸: 미스라 씨의 마음은 기뻐요! 그건 정말이에요! 하지만……. 으윽…….
미틸: 형님……!
미스라: 쳇……. 큰소리를 있는 틈에 넣으려고 했는데. 자, 입을 벌려주세요. 억지로 비틀 거예요.
루틸: ……! ……!
미틸: 미스라 씨, 멈춰주세요! 형님에게 난폭하게 굴지 마세요!
브래들리: 시끄러워. 임무 전에 떠들지 말라고.
미스라: 브래들리…….
미틸: 브래들리 씨!
브래들리: 너희들…….
미스라: 브래들리. 여기는 제 방이에요. 제 영역으로 들어오다니, 그냥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브래들리: 그 세력권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잘난 척 하지 마라. 얼빠진 녀석.
미스라: 하?
브래들리: 북쪽의 미스라라고 불리는 남자가 정신없이 아이를 울리고 날뛰다니. 지금이라면 막을 수 있을 것 같네.
미스라: 재미있네……. 당신을 돌로 만들어서 그들에게 먹이도록 하죠.
미틸: 미스라 씨! 브래들리 씨!
브래들리: 네 녀석은 들어가 있어! 자, 빨리 가. 남쪽의 형이랑 꼬마.
루틸: 하지만…….
브래들리: 방해하지 말라는 거야. 남쪽 마법사가 나올 차례가 아니라고.
루틸: ……알겠습니다. 가자, 미틸!
미틸: 네, 네!
미스라: 기다리세요! 루틸, 미틸……!
브래들리: 네 녀석의 상대는 나다. '아도노포텐슴!'
미스라: ……후회하게 해드리죠. '아르시무'
루틸: …….
미틸: 루키노 씨, 좋은 사람 같았어요. 앞으로 더 친해지면 좋겠다.
루틸: 그렇네.
미틸: 브래들리 씨, 괜찮을까……. 아침의 그건 저희를 감싸준 걸까요? 아니면 북쪽 마법사의 싸움인 걸까…….
미틸: ……형님, 듣고 있나요?
루틸: 아…… 미안. 생각 좀 하느라…….
미틸: ……미스라 씨가 먹이려고 했던 마나석에 대해서인가요?
루틸: 응…….
미틸: …….
루틸: ……미안해, 미틸. 우리는 먹지 않는다고 말해버려서……. 미틸의 말을 듣기 전에 단정 지을 만한 말을 해버렸네. 미틸은 어떻게 하고 싶어?
미틸: 저는……. 저, 저도 형님과 똑같아요. 다시 생각해 보니 잘못된 것 같아서…….
루틸: 정말로? 나랑 의견이 다르다고 자기 부정은 하지 않아도 돼.
미틸: ……하지만…….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루틸: 사과하지 마, 미틸…….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미안해. 내가 동요하는 바람에 불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버렸네.
미틸: 형님…….
루틸: 미스라 씨나 미틸을 부정한 게 아니었어. 말을 잘 못해서 미안해.
미틸: 어쩔 수 없죠! 미스라 씨가 난폭했어요. 그건 미스라 씨의 나쁜 점이에요.
루틸: 하지만 미스라 씨도 우리를 위해서 중요한 걸 양보해 주려고 하셨어.
미틸: ……형님은 어째서 마나석을 먹는 걸 그렇게 싫어하셨나요? 모처럼 강해질 수 있는 기회였는데. 형님은 강해지고 싶지 않나요? 강해지면 미스라 씨에게 무시받지 않아도 되고 난폭하게 굴지도 않을 거예요. 게다가 저를 지켜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루틸: …….
미틸: 죄…… 죄송해요. 형님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거대한 재앙' 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고, 저희는 강해지는 게 좋고. 금방 쉽게 강해지는 방법이 있으니까…….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형님은 약한 상태로 있어도 괜찮나요?
루틸: ……그렇지…….
미틸: 그…… 그래요! 이대로라면 남쪽 나라도, 형님의 학생들도 지킬 수 없어요. 저희도 조금 정도는 참아야 해요.
미틸: 미스라 씨의 마나석, 같이 먹어요.
3화 어떤 답을 고르더라도
루틸: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이 떠올라…….
미틸: …….
루틸: 장례식에 참가하는 건 어머니 때가 처음이 아니었어. 베스 아주머니, 알고 있지?
미틸: 네…….
루틸: 베스 아주머니, 셰인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참석했어. 죽은 사람은 관에서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꽃을 가져가서 한 송이씩 관 속에 넣었지. 모두들, 예쁜 꽃에 파묻히면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어……. 조용한 낙원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이별했어.
미틸: 아버님 때처럼?
루틸: 맞아……. 매우 슬프지만, 감사와 사랑이 가득한 시간이었어. 어머니 때는 시체가 없었기에 어머님의 마나석을 관에 놓았어. 관에 늘어선 마나석을 어루어만지며 아버지가 울던 게 기억나. 인간이었다면 지금도 아직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텐데.
미틸: …….
루틸: 미스라 씨가 마나석을 내밀었을 때 그날의 광경이 똑똑히 떠올랐어. 그러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
미틸: 하지만……. 드러몬드 씨들이 주신 엘리베이터용 마나석은 사용하잖아요……?
루틸: ……그렇지……. 평소에는 마법 생물의 화석, 신기한 마법의 돌이라고 생각했어. 죽은 마법사의 돌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해 본 적 없었어……. ……치사하지. 마법사도 마법 생물도 예전에 생물이었던 건 똑같은데……. 하지만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듯이 마나석을 쓰다듬은 아버지의 손을 잊을 수가 없어…….
미틸: ……저는……. 형님을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형님다워요. ……하지만, 저는…….
루틸: 미틸.
미틸: ……네…….
루틸: 미틸은 솔직하게 자기 스스로 답을 골라. 나랑 똑같지 않아도 돼. 미틸다운 대답이면 되니까.
미틸: ……형님…….
루틸: 괜찮아.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미틸과 나의 관계는 변하지 않아. 스스로 먹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지만 마나석을 먹고 살아가는 미스라 씨도, 나는 아주 좋아하는 걸. 미틸이 어떤 답을 고른다고 해도, 미틸을 정말 좋아해.
미틸: ……형님, 죄송해요……. 저와 같은 생각이 되었으면 해서 형님의 말을 듣기 전에 형님을 억지로 설득하려고 했어요.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나요? 라며 몰아붙여서…….
루틸: 으응, 미틸의 말이 맞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을 바꿀 각오를 해야지.
미틸: 형님은 강한 사람이에요. 저를 살리기 위해 마력을 잃고, 약해져 버렸지만…….
루틸: 미틸, 그런 거…….
미틸: 마력이 약해져 버렸다고 해도 마음씨 착하고 용감한 사람이에요.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형님의 말은 분명, 마법사의 마음을 강하게 할 거예요. 어떤 답을 고르더라도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기뻤어요.
루틸: 미틸…….
미틸: 자유롭게 선택해도 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저의 형이 형님이라 다행이야…….
루틸: 나도……. 미틸이 내 동생이라서 다행이야. 기뻐. 미틸과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기뻐.
미틸: ……저도예요!
루틸: 맞다, 미틸. 답을 찾을 수 없다면 피가로 선생님과 상의하는 건 어떨까.
미틸: 피가로 선생님께……?
루틸: 미틸이 강한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것을, 피가로 선생님은 알고 계시잖아? 그런데도 마나석을 먹는 것을 지금까지 추천하지 않았어.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미틸: 그렇네요……. 마나석은 비싸고, 피가로 선생님은 살 수 없는 물건이라서 그런가……?
루틸: 그 뿐만은 아닌 것 같아. 엘리베이터용 마나석은 중앙 나라 사람들에게 받고 있고. 미스라 씨에게 받기 전에 피가로 선생님과 상의하는 건 어때?
미틸: 피가로 선생님은 바쁘시고, 그다지 진지하게 상의해 주시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루틸: 그렇지 않아. 바쁘신 분이지만 어떤 때에도 도움이 되어 주실 거야.
미틸: ……하지만…….
미틸: (피가로 선생님은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시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아……. 가르쳐 달라고 조를 때마다 어딘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어……. 피가로 선생님은 박식하시지만, 남쪽의 마법사고……. 마력의 세기에 관한 것은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 씨에게는 당할 수 없잖아. 그렇다면, 나는…….)
미틸: (나를 강하게 한다고 말해주는, 미스라 씨가 선생님인게 좋아. 피가로 선생님과 상의하고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니, 이제 와서 듣고 싶지 않아.)
루틸: 미틸?
미틸: ……그렇네요. 생각해 둘게요.
루틸: ……저기, 미틸.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잖아? 물건을 가르칠 때도 순서나 타이밍이 중요하기도 하거든. 경험보다 지식이 너무 많아지거나 마음이 자라지 않았는데 겪게 하는 것은 안 좋은 결과가 있기도 해. 피가로 선생님도 분명…….
미틸: 형님, 말하셨잖아요. 저와 형님의 대답이 똑같지 않아도 된다고.
루틸: 으, 응…….
미틸: 그러면 이 일에 대해서도 저와 형님의 생각은 달라요. 피가로 선생님께는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잠깐 밖을 둘러보고 올게요.
루틸: 미틸!
레녹스: 이런. 미틸, 어디 가? 간식을 가져왔는데.
미틸: 필요 없어요! 어린애가 아니니까요!
레녹스: ……무슨 일이야? 미틸?
루틸: 싸우지 않아도 됐었는데 싸움이 되어버렸어…….
레녹스: 간식은 어른도 먹는데……. 피가로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나?
루틸: 맞아요……. 피가로 선생님은 돌아오셨나요?
레녹스: 아니, 아직. 옛날의 지인이라고 하셨으니까 쌓인 이야기가 있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끝내자. 루틸, 부탁해도 될까?
루틸: 뭔가요?
레녹스: 간판 만들기.
루틸: 마법사의 집 간판이군요! 모두의 눈에 띄는 멋진 간판으로 만들죠!
4화 선한 마법사가 겨냥하는 것은
루틸: 미틸, 간판을 만들 거야! 어떤 간판이 좋을 것 같아?
미틸: 별로……. 형님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 않나요?
레녹스: 어디 쯤에 둘까?
미틸: 어……. 그 근처라던가…….
레녹스: 잘 모르겠네. 이리 와 줘.
루틸: 이리 와, 미틸!
미틸: 여기! 여기는 어때요?
레녹스: 좋네. 거리에서도 눈에 띌 거야. 자, 루틸. 부탁해.
루틸: 네!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미틸: 와아……. 멋진 간판이에요!
레녹스: 아아. 거리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아.
루틸: 감사합니다!
루틸: 부디, 이 장소가 마법사와 인간이 친구가 되기 위한 계기가 되기를.
피가로: 오랜만이네요. 스노우 님, 화이트 님.
스노우: 오오, 피가로인가.
화이트: 피가로여, 오랜만이군. 오즈는 만나고 있나?
피가로: 아뇨. 저도 남쪽 나라에서 바쁘게 살고 있고, 그런 음침한 남자에게 얽혀 있을 수는 없죠.
스노우: 야박한 말 하지 말게나.
피가로: 박정한 건 저쪽이잖아요. 저는 손이 뿌리쳐 졌다고요. 뭐, 그 녀석은 손을 잡고 있는 것도 몰랐겠지만. 이제 와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다만, 그 정도의 힘이 있는데도 고독하게 살고 있는 것은 측은하다고 생각해요. 오즈도 뭔가 바뀌는 계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건 참견할 수가 없으니.
스노우 / 화이트: …….
피가로: ……라니, 그런 건 이제 됐어요. 이대로라면 마법사는 망합니다.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마법 과학까지 탄생해 버렸어요. 슬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화이트: 흥. 그 서쪽 마법사 짓이로군.
스노우: 무르 하트일세.
화이트: 알고 있네!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으니까 내지 않은 거다!
스노우: 미안! 미안하네! 피가로 쨩, 무슨 차 마실래?
피가로: 자신들의 멸망의 화제에 맞는 차가 있다면 그걸로.
화이트: 그건 그렇고, 그렇게 가볍게 마법사의 멸망에 대해 말하지 말아줘.
피가로: 화이트 님. 아주 옛날에 당신이 가르쳐 준 거예요. 차를 마시면서요. 인간이 마법사를 모시는 건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인간의 수가 늘어나서 힘을 가지게 되면 마법사는 이단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고.
화이트: 호호호. 예언은 아니지만 멋지게 적중할 것 같군.
피가로: 천천히 가치관이 바뀌고 있어요. 저희가 만났을 때, 마법사는 신 같은 존재였다. 차차 인간들의 취락이 늘어나면서 약한 마법사들은 살기 힘들어졌죠. 짜증을 낸 오즈가 세계를 유린한 이후부터는 더욱 마법사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피가로: ……아주 한 때, 마법사와 인간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국가도 출현한 것 같던데요. 어이없게 내부 분열되었지만요. 지금은 겉모습의 공존을 노래하면서 마법사를 배척하려고 하죠. 마법사들도 그렇고 인간 사회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을 속이고 덮치고, 때로는 살육까지.
스노우: 그런 것 같더군. 동쪽 나라의 거리에서 마법사가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다던가.
화이트: 제2의 오즈가 나타난 셈인가.
피가로: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 것 같던데요. 범인들은 어디론가 도망간 것 같고. 그렇지만 참극에 휩싸인 비오는 거리의 주민들을 비롯해 인간들은 마법사를 미워합니다. 이대로라면 약한 마법사들에게 미움이 쏟아지겠죠.
스노우: 그대 안에서 지금 유행하는 남쪽 마법사들 말인가?
화이트: 북쪽에 중앙에 남쪽으로, 바쁘군. 어차피 변덕스럽게 손을 대다가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피가로: 지독한 말투네. 변덕스러운 건 피차일반이잖아요.
스노우: 우리들, 북쪽 땅을 버리지 않네.
화이트: 야박한 녀석. 땅을 버리고 방황하는 정령들의 삶의 끝을 알고 있지 않은가.
피가로: 북쪽 나라의 땅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당신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요.
스노우: 귀엽지 않아.
화이트: 귀엽지 않구먼.
피가로: 아무튼 마법사는 인간과 잘 지내지 않는다면 망할 거예요. 오즈 같은 특수한 녀석들은 살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이단아로 기피되어버려.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정의의 편을 들어보죠. 당신들, 좋은 사람 행세는 잘하잖아요.
스노우: 호호. 인간의 편인 척을 하라는 건가.
화이트: 약한 마법사가 인간의 손에 사냥당하기 전에 우리가 사람 편을 든단 말인가.
피가로: 네. 무섭고 나쁜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야. 선하고 신성한 마법사도 존재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
스노우: 하지만, 어떻게 할까. 우리가 선한 마법사를 연기하려면 사악한 마법사가 필요하지. 인류의 적이라면 오즈가 틀림없지만, 다시 한 번 오즈에게 세상을 태우라고 할 수도 없네.
화이트: 그 이전에 우리끼리 오즈를 사냥할 수 있나? 지금 마력으로는 조금 어려운데.
피가로: 알고 있어요. 오즈는 마나석을 많이 먹어 점점 강해지고 있죠. 저희는 당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유명인을 사냥하죠.
스노우: 브래들리인가.
화이트: 브래들리 베인이지.
피가로: 네. 악명 높은 죽음의 도적단 두령, 브래들리 베인. 그를 포박하죠. 원래 북쪽 나라에서는 유명하지만 중앙 나라나 북쪽 나라에서 현상품을 빼앗아 더욱 이름을 날렸다. 음유시인들이 저마다 이야기로 만든 탓도 있잖아요. 왕가에 거품을 터뜨리는 악당의 이야기는 무섭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해. 이제 브래들리는 때의 사람이다.
피가로: 비오는 거리의 참극을 계기로 부푼 마법사에 대한 경각심, 공포, 증오가 최악의 형태로 칠 수 없도록……. 브래들리를 악역으로 해서 우리가 정의의 편이 된다. 인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브래들리를 생포해 감옥에 넣는 거예요.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은 브래들리의 돌을 장식해도 감이 오지 않을 테니까요.
5화 한패가 깨질 조짐
피가로: 본인을 우리 안에 넣어두면 우리 사회는 나쁜 마법사를 관리할 수 있다고 인간들은 안심할 수 있죠.
스노우 / 화이트: 명안일세!
피가로: 그렇죠.
스노우 / 화이트: (……하지만, 이 녀석 한 번도 오즈에게 정이 있어서 죽이지 않을 거라고는 말하지 않는군…….)
피가로: (이 사람들, 한 번도 오즈에게 정이 있으니 죽이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네…….)
스노우 / 화이트 / 피가로: (당연히 따르지 않겠지만…….)
스노우: 브래들리의 생포인가……. 숨통을 멈추어도 된다면 몰라도 꽤 힘든 일이지 않은가.
화이트: 잘 될지 모르겠네. 녀석은 졸개를 잘 쓰니까.
피가로: 두 분 다 성질이 급하네요. 죽이지 마세요.
스노우: 생포하기 위한 작전이 있는가?
피가로: 네. 옛날 같으면 어려웠겠지만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화이트: 호오?
피가로: 돈독한 인연으로 유명한 도적단이지만 최근에는 두령 브래들리의 위신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부단장 같은 존재가 단에서 빠지려고 한다던가.
스노우: 패거리 싸움인가. 노림수가 아닌지.
화이트: 그래서, 그자의 이름은?
피가로: 뭐였더라……. 레오……. 네오……. 네모……?
스노우: ……확실하지도 않네…….
마법으로 몸을 맑게 하면 아이작은 대담하고 믿음직한 분위기가 됐다. 몸의 통증도 가라앉은 것 같고 아까보다도 안색이 좋아졌다. 그를 바라보는 군중의 눈빛 속에 경외감이나 혐오가 아니라 동경과 감탄, 호기심이 섞이기도 시작했다. 아이작과 나란히 시장을 거닐며 나는 물었다.
피가로: 너, 어디서 자고 있어?
아이작: 거리 변두리에 있는 폐옥입니다. 아까 큰 집으로 가도 될까요?
피가로: 안 된다고 했잖아. 저 집에는 가까이 가지 마. 미스라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아이작: 그 약한 마법사들은 뭔가요? 미스라의 노예인가요? 차를 마시자고 했어요. 눈치가 있어서 착해 보였는데. 저도 그런 노예를 갖고 싶어요.
피가로: 노예가 아니야. 내 소중한 친구의 아들들이지. 미스라에게도 소중한 상대야.
아이작: 그런가요. 좋겠다.
나는 그의 팔을 만지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똑바로 눈을 바라보며 타이른다.
피가로: 아이작, 여기서 작별이다. 마지막으로 충고를 할게. 잘 들어.
아이작: 음……. 네.
피가로: 네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기쁘듯이 네가 아닌 인간들도 남에게 친절했으면 좋겠어. 사람의 고리 안에 있고 싶다면 남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거야. 네가 사랑받고 상냥하게 받기 위해서.
아이작: 제가 먼저 해야 하나요? 뭘 주거나 잘해주면 친절하게 대해주는데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녀석에게 제가 먼저 친절하게 대해 줘야 하나요?
피가로: 안 될 건 없지. 단지, 대부분의 인간이 너와 마찬가지로 그냥 사랑을 기다리는 쪽이야. 사랑을 주는 자가 사랑받는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물론 많지만 나는 네가 사랑받고 있다면 기쁠 거야.
아이작: 저도요.
피가로: 안녕, 아이작. 너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
아이작: 저도입니다, 피가로 님.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피가로: 안녕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그렇네……. 필요할 때는 내가 만나러 갈게.
아이작이 모르게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마법을 걸었다. 그가 무슨 사건을 일으키면 반응이 올 것이다. 제1의 희생자는 막을 수 없어도 계속되는 희생자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작: 꼭 만나러 와주세요. 오늘은 즐거웠어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피가로: 그거 다행이네.
아이작: 얼굴을 만져봐도 될까요?
피가로: 선 넘지 마.
아이작: 죄송합니다.
피가로: 아아, 맞다. 아이작. 이 목걸이는?
아이작: 에?
피가로: 팔찌에 얽혀있는 쇠사슬 말이야. 여자의 목걸이잖아?
멋진 만남이라도 있었나 하고 나는 미소 지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마녀가 그의 팔찌에 자기 목걸이를 작별의 표시로 감은 게 아니냐고. 아이작은 허둥지둥 팔찌를 가리면서 마른 입술에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난폭하게 쇠사슬을 뜯어서 푸른 돌을 품 속에 집어넣는다.
아이작: 하하……. 어, 어떨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어쩌면 난동을 부려서 뺏은 걸지도 몰라. 따지려다가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말렸다. 이 장소에서 그를 화나게 하면 귀찮다.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이 흘러간다. 행인은 모두 아이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웃는 아이가 그를 가리킨다.
아이: 크다!
아이: 저기, 봤어? 오똑한 사람!
떠들면서 아이들이 달려간다. 밝고 호의적인 함성이었지만 아이작은 불쾌해 보였다. 그가 아이를 좋아해서 아이를 안아올려 싱글벙글 웃었다면 곧 인기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잘 되지 않는 법. 아이들은 아이작을 좋아하지만 아이작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것이 전부. 서로 좋아하는 거라면 좋았을 텐데. 군더더기가 없네.
아이작: 정말이지……. 아이들은 바보라서 싫어요.
피가로: 너도 어린애였어. 네가 똑똑하다고 부르는 나랑 무르도 어린애였었고.
아이작: 피가로 님이나 무르는 어릴 때부터 똑똑하셨잖아요?
피가로: 어떠려나. 나는 그랬지만 무르는 특이한 점이 있으니까…….
아이작: 브래들리의 오른팔도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다고 하더라고요.
피가로: 브래들리의 오른팔?
6화 예상치 못한 이름
아이작: 네.
피가로: 브래들리라니, 죽음의 도적단 브래들리? 인연이 있었어?
아이작: 네.
놀랐지만 뜻밖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브래들리도 아이작도 북쪽 출신으로 서로 장명하니까.
피가로: 어떤 사이였어?
아이작: 딱히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요. 오래 전에 도적단에 들어가고 싶어서 다가갔었거든요.
피가로: 헤에. 그래서?
아이작: 나는 거절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나네.
피가로: 왜 거절당했지?
아이작: 자기 생각 밖에 안 하니까.
피가로: (확실히 아이작은 자기 중심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시야에 빠져있으니까. 아무리 그가 강해도 집단행동에 있어서는 유능한 일은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면 그 남자는 처음부터 조직에 적합한 마법사들을 모으고 있었던 건가……. 일찍 브래들리의 목더미를 잡아놓기를 잘해어. 잘못하면 나라를 만들었겠네. 마법사의 나라를…….)
피가로: (……그런 게 가능한가? 마법사의 출생은 불안정한데. 됐다고 해서, 마법사만이 행복해지는 그 나라는 멋진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하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 질렸다.
피가로: (마법사만 행복해지고 좋잖아. 어렸을 때부터 공헌을 요구받아 왔어. 그것 때문에 묘한 나쁜 버릇이 몸에 배어 있지……. 자신만의 행복에는 죄책감이 따라.)
아이작: 피가로 님?
피가로: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아이작: 브래들리의 오른팔이요. 아, 진짜 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렇게, 오른팔이 될 정도로 믿고 있는 거죠. 파트너처럼.
피가로: 응. 그래서?
아이작: 똑똑한 아이였대요.
피가로: 헤에. 브래들리의 오른팔인가…….
아이작이 그런 말을 해서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브래들리의 도적단을 빠져나가려던 부단장이 있었지.
피가로: (브래들리를 잡았을 때는 그 친궁는 이탈한 후였던 것 같고, 결국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아직 살아있으려나. 브래들리랑 접촉하면 귀찮을지도 모르겠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이제와서 탈옥을 돕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거처만이라도 알아둘까.)
피가로: 이름은 기억나?
아이작: 네.
피가로: 알려줘.
아이작: 네로예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피가로: 네로?
잡담 속에서 색이 옅은 아이작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관의 주방……. 브래들리 옆에 다정하게 등을 대던 남자. 요리를 잘하는 동쪽의 마법사. 석양을 받은 밀 이삭처럼 게으른 듯이 버티던 금빛 눈동자. 꽤 친해보네. 그렇게 말하면 브래들리는 어깨를 움츠리고 비웃고 있었다.
브래들리: 흥. 오랜만의 자유라고. 좋아하는 걸 먹어야지. 동쪽 요리사가 내 말에 따르게 예의를 차려 주는 거야.
브래들리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네로에게는 사람의 기를 느슨하게 하는 부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편협한 태도를 취하던 파우스트도 터놓고 있었고. 아이들도 그를 따르는 것이 빨랐다. 미움받을 말을 해도, 그 브래들리가 쓴웃음을 지고 있었을 정도로 느낌이 좋아 보였고…….
피가로: (네로가 브래들리의 도적단의 부단장……?)
피가로: 아이작. 그건 확실해?
아이작: 네. 네로입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요. 갖고 싶었거든요.
피가로: 갖고 싶었어?
허둥지둥 아이작은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 아아, 아니요……. 부러웠다는 걸 잘못 말했어요. 좋아 보여서.
피가로: 네로에 대해서 또 기억나는 것은? 외형이나 마도구, 주문. 뭐든지 좋아.
아이작: 으음, 그렇네요……. 하늘색 머리를 하고 있었던가……. 마도구는 자주 보는 거였어요. 그리고, 북쪽 마법사답지 않았어요.
피가로: 어떤 식으로?
아이작: 글쎄요……. 제가 아니라 브래들리가 그렇게 말했어요. 네로는 북쪽 마법사답지 않아. 공훈에도 명예에도 관심이 없어. 예민해서 자신감도 없고. 하지만 그런 부분이 도적단을 계속해 나가기에는 좋다고. 그랬었지……. 거절 당해서 화가 나서 날뛰었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생각하니 화가 나네……. 브래들리 베인…….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하늘색 머리를 하고 자주 보는 도구를 마도구로 삼고 있는 네로라는 이름의 남자. 네로의 마도구는 분명히 커틀러리였다. 나는 조그맣게 어깨를 흔들었다. 무심코 웃음을 터뜨린다.
피가로: (그렇구나, 브래들리. 너도 우연한 재회에 농락당한 마법사 중 하나인가.)
피가로: 하하……. ……아하하하!
아이작: 피가로 님……?
피가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네로에게 강세를 보일 수 없는 브래들리의 모습이 생각나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계속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관대한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랑스러운 그 남자가…… 꽤 네로에게는 멋대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니까.
피가로: (불쌍한 브래들리. 너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눈치를 지금도 살피고 있는 거니.)
피가로: (전 파트너인가……. 그런가. 네로가 현자의 마법사로 소환된 것은 우연. 하지만 그들의 유대가 돌아오면 나나 스노우 님들에 대한 복수를 계획할 수도 있어.)
(혹시 모르니 경계해 둘까.)
7화 브래들리의 서
브래들리: ……에…… 에…… 에츄…….
스노우: 꺄악! 브래들리 쨩!
화이트: 재채기 나올 뻔했네! 위험해!
브래들리: ……윽. 후우……. 멈췄다.
스노우: 호호호, 다행이군!
화이트: 호호호, 수당을 계속 주마.
브래들리: 쳇……. 필요 없어!
스노우: 정말이지, 미스라에게 도전하는 등 그대는 목숨을 모르는군.
화이트: 덕분에 미스라는 어디론가 가버렸네. 오웬도 안 보이고…….
브래들리: 별로 상관 없잖아. 우리끼리 충분해. 어떻게든 될 것 같은 임무다.
새하얀 평원에서 바람이 몰아친다. 살갖을 찢는 듯한 야만적이고 호전적이며 얼어붙은 공기가 최고였다.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느껴져. 어떤 깊은 손을 짊어지고 있어도 북쪽 땅의 기질은 내 기분을 좋게 해줘.
스노우: 브래들리.
이름이 불려져 스노우를 돌아보았다. 스노우 옆에는 화이트가 있는데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녀석은 망령이다. 아니면 잘 만들어진 환영. 경계하는 것은 스노우만 하면 된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영혼이 너무 가까워서 낌새가 비슷하다. 기묘하고 이질적인 북쪽 쌍둥이. 스노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고양이를 달래듯이 어루어 만진다.
스노우: 믿고 있겠네. 우리들, 밤에는 그림이 되어버리니까. 그대가 착하게 굴면 형기는 다시 재검토된다. 자유가 빨라지지.
나는 코웃음 쳤다. 스노우도 약해졌구나.
브래들리: 굳이 그림 속에 갇힌 너희들을 부수거나 하지 않는다고.
스노우: 다행이다~!
화이트: 그게 걱정이었어!
스노우 / 화이트: 브래들리 쨩, 너무 좋아!
브래들리: 그만둬. 기분 나빠.
어이없는 얼굴로 쌍둥이를 곁눈질하며 속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브래들리: (흥……. 언젠가는 죽여버리겠지만. 스노우, 화이트, 그리고 피가로……. 주인 기분을 즐기고 있어라. 네 녀석이 잡고 있는 사슬은 내 목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
돌이 된 부하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 속에 은은한 어두운 불길이 켜진다. 복수심이냐고 물으면 달라. 원수 갚는 것도 문제가 아니야. 죽은 녀석들도 녀석들이 원하는 대로 살다가 죽었다. 비린내 나는 감상이라면 사족이다. 살벌한 이 북쪽 나라의 바람이 내 기분을 좋게 해 줘. 그냥 그거와 같은 이치다.
이만큼 죽이는 이유가 있고 이만큼 손이 닿는 거리에 있어. 그런데 침 흘리고 기다리라고? 나한테는 무리야. 사냥감을 노리고 있을 때가 제일 신난다.
브래들리: (그 작은 머리를 쳐줄게, 스노우. 화이트도 데려가라고.)
며칠 전에 현자의 서를 맡겨졌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싶다. 거기서부터 배우고 싶다고 그 녀석은 말했따. 대단해. 스스로 새각하고 부족한 것을 깨닫고 극복하려고 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남에게 배우려고 한다. 아키라가 내 부아였다면.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는 그 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귀엽게 생각하는 거지. 뿔뿔이 흩어진 녀석들을 모아서 그 녀석은 잘하고 있다.
이 세계에 다가오는 '거대한 재앙'. 달을 요격하기 위한 마법사들. 마법사를 이끄는, 타계에서 온 현자. 북쪽 나라에서 살았을 때는 '거대한 재앙'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천천히 다가와서 그 시기는 심신에 영향을 미치지만 간단한 의식으로 떠나는 '거대한 재앙'. 불온하게도 뽑힌 녀석들이 역할을 다해도 세계는 내일도 모레도 내년도 계속된다.
'거대한 재앙' 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된 건 감옥에 들어가고 나서. 문장이 떠오르고 현자의 마법사가 되면서부터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이 세계만 알아. 세계란 그런 거라고 믿고 있어. 달이 접근하고 마력이 가득 차 타계에서 온 현자에게 이끌린 마법사들이 되받아친다. 그걸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왠지 수컷과 암컷이 있고, 짝짓기를 하지 않으면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시스템이나……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먹히고 강한 사람의 시체를 약한 것이 먹어 순환하는 시스템. 그걸 똑같이 받아들이고 있다.
8화 현자의 마음
하지만 수컷도 암컷도 없이 자손을 남기고 싶은 녀석이 있고, 식사를 안하고 남기는 방법이 있어도 좋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정에 의문을 내놓으면 이것 또한 재미있다. 감옥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서 심심풀이로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재앙' 을 요격하는 시스템, 타계에서 오는 현자의 존재…….
현자란 무엇인가? 뭔가 의미가 있을 거야. 그 오즈가 얌전하게 현자의 말을 따르는 것은 비슷한 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자의 존재에는 무언가 의미가 있다. 현자는 힘이 없다. '거대한 재앙' 의 상처를 복구할 힘은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처 복구, 새로운 마법사 소환, 그 외의 힘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렇다면 마법사를 이끄는 현자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신기한 힘이 아니야. 현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북쪽의 쌍둥이나 오즈, 피가로도 현자의 뜻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별이 운명을 정하듯이 현자의 마음이 올바른 미래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운명도,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것도 딱 질색이다. 아키라가 양치기처럼 우리를 길들이려고 했었다면 목덜미를 물었겠지. 하지만 아키라는 그러지 않았다. 낯선 세계에서 낯선 인종들과 열심히 손을 잡으려고 한다. 예언이나 운명이나 현자의 역할은 아무래도 좋지만, 그 녀석을 지켜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해주려고 한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스노우 / 화이트: '노스콤니아'
상상했던 대로 임무는 대단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럴 거면 수수께끼의 마법사 노바를 찾으러 가고 싶었다. 해가 기울어 설원이 붉게 물들어 간다. 빗자루로 바람을 가르며 날면서 밤이 다가올 낌새를 느꼈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직 먼 곳에 있지만 마법사다. 아는 기척이다. 마찬가지로 저쪽도 하늘을 날고 있다. 이쪽을 눈치챘는지 바람이 윙윙거리며 적의와 위협을 전해왔다. 그 성질이 급해서 나도 모르게 웃는다.
스노우: 마법사군.
화이트: 북쪽 마녀인가.
브래들리: 에바다.
쌍둥이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비슷한 타이밍에 하늘 끝을 바라본다.
스노우: 호오. 에바라니.
화이트: 그리운 이름이군. 그 녀석은 우리를 싫어하니까.
브래들리: 무릎 꿇는 걸 싫어하는 여자니까. 너희들은 상하 관계를 강요하잖아.
스노우: 그게, 알게 해줘야지.
화이트: 알게 해줘야지.
나는 빗자루 위에 섰다. 한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하늘에 호를 그린다.
스노우: 어디로 가는 겐가!?
브래들리: 에바를 만나러!
화이트: 만나서 어쩌려는 겐가!
브래들리: 하나하나 묻지 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스노우 / 화이트: 브래들리 쨩!
쌍둥이들을 두고 나는 그리운 기색으로 다가갔다. 의미있는 말을 했지만 에바와는 깊은 교제는 없다. 에바는 불손하고 오만하고 냉혈한 마녀였다. 아까는 성질이 급하다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성급한 것은 아니다. 그 자랑스러움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듯한, 답답한 시간을 참을 수가 없다.
직후, 얼어붙은 공기가 밀려왔다.
브래들리: ……! 아하하, 무섭네.
브래들리: 에바! 나다! 이대로 서로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얼굴 좀 보여줘. 오랜만이잖아.
다음 순간, 바로 위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빗자루 위에 걸터앉으면서 검은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검은 물결처럼 넘실대는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발레타가 햇빛을 튕겨서 창백하게 빛났다. 촉촉히 젖은 연보라빛 눈동자는 포식당한 작은 동물처럼 공순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물에 갈린 수정처럼 예리했다.
에바: 쌍둥이에게 영혼을 팔았군.
브래들리: 무슨 이야기지?
에바: 쌍둥이와 피가로의 감옥에 갇힌 브래들리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쌍둥이의 하인으로 전락한 거지. 이 염치없는 녀석.
경멸을 숨기지도 않는 에바에게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북쪽 마법사는 이래야지.
9화 집착인가, 긍지인가
브래들리: 욕하지 마. 휘파람 불고 싶어지네.
에바: 변명은 그것 뿐?
에바가 다리를 다시 꼰다. 발끝으로 차질 뻔해서 나는 상체를 젖혔다. 발목을 잡으려고 하면 곡예 같은 속도로 내 발밑으로 뛰어간다. 나는 아래쪽을 보고 말을 걸었다.
브래들리: 못 들었냐? 감옥에 갇힌 후 현자의 마법사로 뽑힌 거야.
내려다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에바는 이내 눈높이까지 날아왔다.
에바: 현자의 마법사로?
브래들리: 아아.
에바는 턱을 당기고 졸이듯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검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에바: 어째서 달을 잘못 요격했지? 이 세계의 이변은 네가 짠 건가?
브래들리: 내가 짜다니?
에바: 탈옥하려고 꾀낸 거냐고. 너는 잔꾀를 부리는 아이였지.
에바의 모습을 살피면서 나는 웃고 그녀의 빗자루에 손을 뻗었다. 빗자루를 잡고 끌어당긴다. 이 정도 장난은 용서받는 사이다.
브래들리: 세상을 망칠 배짱이 있다고 생각해 준다면 영광이지. 하지만 당신이 있는 세상을 부수거나 하지는 않아. 아쉽네, 대마녀 에바.
구설수처럼 속삭이자 에바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드디어 친근한 쓴웃음을 짓는다.
에바: 바보 같은 아이.
친숙한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었다. 우정도 경계도 연민도 존경도. 적응이 안 돼. 따끔따끔한 이 느낌이 좋아. 나는 에바를 껴안았다.
브래들리: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너는 뭐하고 있었어?
에바: 사람을 찾고 있었어.
브래들리: 사람?
에바는 귀찮은 듯이 나를 밀어냈다.
에바: 북쪽 마녀다. 이름은 소피. 내 제자였던 여자아이.
의외의 대사였다. 에바는 오랫동안 고독한 마녀였다.
브래들리: 제자가 생겼나. ……제자였다 라는 것은?
에바: 나를 배신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를 공격할 뻔했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연보라빛 눈동자가 격한 분노에 불타고 있었다.
에바: 내 밑에서 배우고 내 마법을 이어받자 그 아이가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어디론가 자취를 감취었다. 용서하지 않겠어. 찾아내서 제재를 가해야지.
브래들리: 제재란?
에바: 돌로 만들어 먹겠다. 이 배에 넣어주는 거야.
얄밉다는 듯이 에바는 복부를 눌렀다. 희미한 의문이 지나쳤다. 과연 그것은 제재일까. 감정적으로 흔들린 눈동자 때문인지 마치 포옹 같기도 했다. 조금 전 에바가 귀찮다는 듯이 밀어낸 포옹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맡기면 자기다움을 잃는다. 집착이나 긍지, 보이지 않는 저울이 흔들리고 있다.
브래들리: 그런가. 뭐, 네 마음대로 해.
에바: 당연하지. 너는 어떻지? 브래들리.
브래들리: 내가 뭐.
에바: 배신자에게 제재를 주었나?
눈꼬치를 치켜올리는 에바에게 나는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에바: 네가 귀여워했던 아기. 그 아이가 너를 배신했지.
브래들리: 아기라고 하지 마. 너는 오래 사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에바: 입 다물어, 아가. 아아, 아니다. 아가가 아니라…….
에바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흰 팔에 곱슬머리가 휘감긴다.
에바: 그렇지……. 네로. 너를 배신한 애송이의 이름. 그것 때문에 네 동료가 잔뜩 죽었었지. 너도 제재를 줘야 해. 자신을 배신하면 조각날 거라고. 네가 북쪽 마법사라면.
에바는 훌륭한 여자다. 변함없이 아픈 데만 찌른다. 에바는 긴 손톱을 기른 검지를 나에게 들이댔다.
에바: 네가 왜 네로를 좋아했는지 알아.
브래들리: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지만. 뭐지?
에바: 너는 매도당하는 것 좋아하니까.
진지한 어조가 이상해서 역시 웃고 말았다.
브래들리: 그렇게 생각했나?
에바: 아이야. 진지하게 들어보렴. 네가 매도당하고 싶어하는 것은 베인 가와 착각하고 있기 떄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놀랐어. 너만큼 마력있는 아이가 인간 노인에게 욕 먹는 채로 웃고 있었지. 형이라고 했었나.
브래들리: 형제가 많았거든. 아버지는 마법사였는데 마법사가 태어날 때까지 여기저기 아이를 낳게 했어. 나는 막내 아들이다. 그러니까 뭐, 가시 돋친 소리 듣는 건 익숙해진 거지.
그리운 광경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입이 시끄럽고 나에게 불평하던 형이나 누나가 …….나이가 들고 늙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불평하고 있었다.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던가, 노인을 소중하게 여기라던가, 야채를 먹으라던가…….
브래들리: (네로도 그랬었지. 진심으로 동경하고 경외하고 있는 반면에 시퍼런 눈으로 나에게 질렸어. 그런 점이 어울리기 쉬웠을지도 모르지.)
에바: 그래. 네로도 그런 남자였다.
브래들리: 마음 읽지 마, 에바.
10화 영혼에 표시를
에바: 마법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너는 네로를 가족처럼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조직을 배신했다면 총재인 네가 제재를 줘야지.
에바의 말은 타당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배신자나 규율을 문란하게 한 자에게 너무 관대해지면 조직은 약해지기 때문이다. 득이나 이익이 있으면 관대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정에 이끌려 용서하는 방법은 없었다. 난폭한 사람들의 모임에는 엄격하고 강력한 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바: 브래들리. 너는 네 규율대로 살아왔어. 앞으로도 그러겠지. 북쪽의 삶을 버릴 수 없다면 너는 너의 영혼에 표시를 해야 해. 영혼에 나타내는 것이 없다면 어느덧 모순이 생긴다. 모순은 너의 영혼을 썩게 할 거야.
에바는 타이르듯이 내 뺨을 만졌다. 어렸을 때처럼 뺨을 꼬집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해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진지하게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에바: 아가. 너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았어.
브래들리: 아아.
에바: 나도 결코 소피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내 영혼을 주려고 했던 상대를 이 손으로 돌로 만드는 건.
에바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네로의 모습이 아른거려 가슴이 술렁거렸다. 영혼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주는 쪽의 멋대로다. 며칠 전 현자에게 말했다. 자기 부하에게는 자부심을 주라고. 가슴을 펴고 마주보게 해달라고. 내 파트너는…… 아마 도망간 거다. 내가 준 것은 저 녀석의 자랑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다.
나는 조직의 장으로서, 그리고 나 때문에 죽은 부하들의 명예를 위해서…… 배신자에게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방법은 아마 에바와 같다.
에바: 편안히 있어, 브래들리. 자신다움을 되찾으렴. 특별한 것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어. 소피를 돌로 해서 나는 자유로워진다. 그녀를 미워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끝이야. 이 손으로 끝내겠어.
브래들리: 네가 제자로 선택한 마녀,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에바: 특징을 말해주지. 혹시 소피를 보게 된다면 알려줘.
브래들리: 좋아. 어떤 녀석이지?
에바: 목덜미가 보일 정도로 짧은 갈색 머리카락, 총명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 작아. 눈동자 색을 닮은 돌 목걸이를 하고 있어. 내가 준 거.
브래들리: 눈동자와 같은 색의 돌……. 엄청 예뻐했군. 왜 도망간 거야.
에바: 모르지. 너는 어때.
브래들리: 내 이야기는 됐어.
에바: 죽음의 도적단 잔당이 소문을 내고 있었어. 네로만 있었다면 너는 잡히지 않았을 거라고. 너에 대한 충성이 진짜라면 너를 구출하기 위해 중앙 나라로 갔을 거라고. 네로는 너를 구하지 않았어. 네가 붙잡힌 채로 있는 것이 편했으니까. 틀리니? 아가.
지겨워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브래들리: 점착성 있는 말투는 그만둬. 제자가 도망가고 싶어지는 것도 알 것 같네, 에바.
에바: ……죽인다.
브래들리: 잠깐 잠깐 잠깐……!
에바는 진심이었다. 에바의 살의는 언제나 진심이다. 얼어붙은 바람이 더욱 얼어붙어 간다. 그때, 쌍둥이들의 목소리가 났다.
스노우: 브래들리 쨩! 정말이지, 바로 어디론가 가버린 다니까……!
화이트: 오오! 저것은 에바인가?
스노우: 오오, 에바여! 이거 오랜만이군!
에바: ……북쪽의 쌍둥이…….
스노우: 호호, 에바여. 잘 지냈나?
화이트: 쳇…….
쌍둥이의 모습을 보자 에바는 노골적으로 붙쾌해했다. 에바는 천 년 넘게 살고 있다. 세계를 정복하려던 오즈에게도 먹히지 않았다. 오래 살았던 만큼 쌍둥이와도 여러가지 있었겠지. 에바의 몸이 희미하게 빛나고 하얀 팔이나 검은 곱슬머리가 눈으로 변해 간다. 이 자리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거다.
스노우: 아, 잠깐! 에바 쨩!
화이트: 매정하네! 우리랑도 이야기하자!
쌍둥이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에바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에바: 브래들리. 하나 충고해 줄게. 서쪽 나라에는 가까이 가지 마.
나는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들었다.
브래들리: 서쪽 나라……?
눈보라가 덮이면서 에바는 연보라색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에바: 봉인되어 있던 것이 눈을 떴어. 이윽고 질서가 없어져 갈 거야. 혼돈과 광란에 휘말리지 마라.
브래들리: 뭐가 꺴다고? 어이, 에바…….
에바: 작별이다.
반짝이면서 순백을 빛나는 눈보라와 함께 에바의 기척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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