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카인: 루틸들은 아직 없나 보네…….
오웬: …….
카인: 오웬.
오웬: 칫…….
카인: 어디 가. 도망가지 않아도 되잖아.
오웬: 하? 나는 북쪽의 마법사야.
카인: 알고 있어.
오웬: 너에게서 도망칠 리가 없잖아.
카인: 그러니까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건데…….
오웬: …….
카인: 화내지 마……. 그렇지, 조개 볼래?
오웬: 왜 볼 거라고 생각해?
카인: 아서랑 리케는 기뻐했으니까…….
오웬: 같은 취급 하지 마. 그러면, 충분히 어울려줬잖아. 갈 거야. 도망가는 게 아니니까.
카인: 어째서 피하는 거야.
오웬: 너 말이야…….
카인: 아니, 전에는 좀 더 히죽히죽 웃으면서 놀렸잖아. 요즘에는 안 하지. ……그렇지도 않은가?
오웬: 너한테 싫증난거야.
카인: …….
오웬: 장난삼아 내 강아지 장난감으로 만들어 줬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
카인: 거짓말.
오웬: 하!?
카인: 아…… 아니. 으음……. 오늘 밤 바비큐, 어떻게 할래? 너도 오지 않을래?
오웬: 뭐라는 거야?
카인: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있어.
오웬: 있잖아, 아기 기사님…….
카인: 아기?
오웬: 나에게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어. 넌 네가 얼만 승월을 하는지 모르고 있구나. 여기가 북쪽 나라였다면 넌 나한테 말도 못 걸어. 파랗게 질려서 덜고, 기도만 해. 저녁 식사에 누가 초대를 할 수 있겠어. 분수를 알아.
카인: ……조개를 싫어하나?
오웬: 조개 얘기 안 하고 있잖아. 죽인다.
카인: …….
오웬: 둔해도 정도가 있지. 뭐야, 그 바보 같은 얼굴. 좀 더 겁 먹어. 다시 눈알을 파줄까?
카인: 스스로도 놀라고 있어.
오웬: 뭐가?
카인: 네가 무섭지 않다는게.
오웬: 하하……. 기사님한테 부추김 당하지 않아. 날 도발하려는 거잖아. ……내가 무섭지 않다고? 자만 좀 작작해.
카인: 오웨……
오웬: '쿠레 메미니'
카인: ……윽!
하인: 꺄아아아악……!
하인: 은발의 청년이 적발의 청년을 마법의 힘으로 날려버렸어……!
카인: ……윽, 괜찮아? 내 주위에 말려든 사람은……. ……큭……!
오웬: 한눈 팔지 마. 이대로 찔러줄까. 나는 너의 가족도 너의 왕자님도 언제든 쉽게 부숴버릴 수 있다고?
카인: ……알았어. 알겠으니까 비켜줘. 너무 눈에 띄……
오웬: …….
카인: 하…….
오웬: 다음은 케르베로스에게 먹일 거야.
카인: ……너는 안 해.
오웬: 뭐라는 거야.
카인: 내가 잡아먹혔을 때,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
오웬: ……환청이야.
카인: 환청이 아니야. 클로에한테 들었어. 성을부수면서 피가로에게 나를 데려다 줬지?
오웬: ……잊었어.
카인: ……처음 만났을 때는, 네 말대로의 너라고 생각헀어. 잔인하고 변덕스럽고, 무서운 북쪽의 마법사. 그 녀석에게 습격당하고, 한쪽 눈을 빼앗기고, 부하도 상처를 입었다. 마법사라는 것도 들키고 기사단장도 박탈당했지. 아아…… 정말 호되게 당했구나.
오웬: 흥…… 꼴불견이야.
카인: 하지만, '거대한 재앙' 의 싸움 뒤로부터 잘 모르게 됐어. 내가 본 너는 이래. 나에게서 한쪽 눈을 빼앗고, 만날 때마다 비웃고, 있는 그대로의 귀찮은 짓을 해서……. 그런데도 어린 너는 나를 따르고, 그런가 하면 케르베로스를 부추기고…… 작지 않은 네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오웬: ……북쪽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카인: 에……?
오웬: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아. 마법관을 눈보라로 얼릴 걸. 왜 안했지.
카인: 어이…….
오웬: 어째서, 기도 같은 걸 했지…….
카인: ……오웬.
오웬: ……뭐.
카인: ……가지 마. 이야기를 하자.
오웬: ……어떤?
카인: 그렇네……. 음, 유성군의 추억은?
오웬: 너는?
카인: 나? 그러게……. 어렸을 때 유성군을 봤을 때, 떨어진 별을 어디선가 주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오웬: ……별을 주워 담아서 어쩔건데?
카인: 먹으려……고 헀어. 왠지 달달한 맛이 날 것 같았거든.
오웬: 슈가 모양이라서?
카인: 에?
오웬: 마법사의 슈가 말이야. 반짝이는 별을 닮았어.
카인: 하하…… 그럴 지도.
오웬: 별은 주웠어?
카인: …….
오웬: 달았어?
카인: 못 주웠어. 아마 달지도 않을 거야.
오웬: 그래.
카인: 너는?
오웬: 뭐가?
카인: 유성군의 추억.
오웬: 몰라. 기억 안 나.
카인: 오래 살고 있으니까 유성군 같은 건 많이 보잖아. 하나 쯤은 있지 않을까?
오웬: ……글쎄, 잊었어.
카인: 어쨰서 잊어버리기만 해?
오웬: 그쪽이야말로, 왜?
카인: 에?
오웬: 어째서 기억하는 거야?
카인: …….
오웬: ……최악.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 너는 진짜 너무해.
카인: 오웬…….
오웬: 잊어.
카인: 오웬……! ……가버렸다.
카인: ……. 잊어버리라니……. 어느 쪽의 너를?
카인: ……하늘이 어두워졌다…….
네로: 선생, 큰일이야……!
네로: 어라…… 아직 안 돌아왔나. 바다의 상태가 이상해서 상태를 보러 간다고 했었는데……. ……라고 할까, 선생 말대로 이 하늘…….
브래들리: 뭐가 큰일이라고?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뭐야, 그 접시에 담겨져 있는 거. 그거랑 저주꾼이 무슨 상관인데?
네로: 아아…… 아니…… 샤일록이나 무르, 라스티카도 괜찮은데.
브래들리: 나는?
네로: ……. 아니…… 비웃을지도 모르니까 됐어…….
브래들리: 안 웃어. 뭔가 큰일이지? 난리법석을 떨었었잖아.
네로: ……아니, 사실은 별로 그다지 큰일은 아니고…….
브래들리: ……. 아 그래…….
네로: ……엄청 잘 만들어진 바자르의 보르다 오리를 사용한 파테 앙쿠르트가.
브래들리: 그 접시에 올라와 있는 건가.
네로: 맞아. 먹어 볼래?
브래들리: 손이 많이 가겠네. 서서 먹으면 실례인가. 앉아서 먹을게.
네로: 하하…… 보기 드물게 예절 바르잖아. 여기 와서 앉아.
브래들리: 갓 구운 건가?
네로: 뭐 그렇지. 식으면 식은대로 맛있겠지만.
브래들리: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네로: …….
브래들리: ……아아, 이거 옛날에 먹었던 거구나. 파이 고기쌈.
네로: 좋은 보르다 오리를 구했으니까. 오리와 소의 고기와 내장을 담아서 만든 거야. 넌 좀 더 확실한 맛을 좋아하겠지만.
브래들리: 뭔가 부족한데. 옛날게 더 맛있었던 것 같아.
네로: 아? 불만 있으면 먹지 마, 바보야.
브래들리: 화내지 마. 무섭네……. 뭔가 잊지 않았어? 소스……. 소스가 아닌데. 뭐라고 할까, 이렇게…… 후왓하고 깊은 맛의…….
네로: ……아아, 그건가. 너, 의외로 알고 있구나. 단순한 꼬맹이 혀인 줄 알았는데.
브래들리: 꼬맹이 혀라고?
네로: 아하하, 맞잖아. 향신료 좋은 닭들만 파먹으니까. 부족한 건…….
샤일록: 와인이죠.
브래들리: 서쪽의 파이프맨.
네로: 남편 씨도.
라스티카: 이런, 좋은 냄새네. 파테 앙쿠르트니?
네로: 맞아.
라스티카: 단면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네. 묵직하고 관능적이고, 마치 그림 같은 한 접시야.
네로: 서쪽의 마법사는 먹이기 전부터 먹인 것 같네…….
샤일록: 정말로 맛있어 보여……. 네로, 이 접시에는 맛있는 와인이 필요해요. 사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뜯죠. 분명 잘 맞을 겁니다.
네로: 괜찮아? 고급 포도주잖아.
샤일록: 상관없어요. 이런 밤에는 다 같이 같은 병을 나눠야죠. 네로도 저희에게 나눠줄 거죠?
네로: 물론이지. 그러면 잘라서 가져올게.
라스티카: 나는 성의 찬장에서 잔을 걷어올게. '아모레스트 비엣셰'
브래들리: 흥, 가끔은 나이프와 포크로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샤일록: 당신에게 고귀한 행동은 불필요해 보이지만요. 당신은 충분히 고귀하니까.
브래들리: 말 잘하네. 접시에 올려서 먹어치우자.
네로: 접시에 담아왔어. 자, 드세요.
라스티카: 잔도 갖추었어. 자, 받으세요.
샤일록: 그러면 마개를 엽시다. 잠자는 공주를 안아 일으키듯이.
네로: 좋은 향이네.
브래들리: 하하…… 생각났어. 이 접시에는 그게 필요해.
라스티카: 못 기다리겠네. 자, 같은 음식과 같은 와인을 나누자.
샤일록: 네. 칵테일을 만드는 것도, 마시는 것도 물론 싫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각각 좋아하는 다른 맛을 즐기는 밤과 달리 다같이 하나의 병을 연 밤은…… 이 미주의 맛이 저희가 공유하는 추억의 하나가 됩니다. 이 와인을 다시 만났을 때, 오늘 저녁의 면면이나 요리의 맛, 이 경치가 생각나겠죠.
브래들리: 멋있는 얘기네. 추억을 마시는 거지.
샤일록: 잊을 수 없는 맛과 함께, 저희들의 피로 만드는 거예요.
네로: 너도 생각날 거야. 그…… 옛날에 먹어봤잖아. 그때의 맛을.
브래들리: 함께 있던 누군가를.
라스티카: 나도 누군가와 이런 식으로 와인을 땄었던 것 같아.
샤일록: …….
라스티카: 잊어버렸지만.
네로: 어쩔 수 없어. 우리의 인생은 기니까.
샤일록: 그러면 건배하죠.
브래들리: 아아, 건배…….
라스티카: 이런, 하늘이 흐려졌어……. 곤란하네. 오늘 밤 유성우를 클로에가 기대하고 있었는데.
네로: 이 기색은…… 오즈랑 미스라인가.
샤일록: 그런 것 같네요.
브래들리: 오랜만에 진심으로 붙겠네. 재밌어…….
네로: 브래드, 어디 가?
브래들리: 이런 낌새를 맡고 피가 튀기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놈들을 단속하는 건 싫지만, 참전하는 건 나쁘지 않아. 한바탕 날뛰어볼까.
네로: 오즈랑 미스라라고!? 너덜너덜해질거야.
브래들리: 상처 없이 있는 것보다는 나아.
네로: ……건배도 끝내지 않았는데.
브래들리: 이따가 먹을게. 미안하네, 동쪽 요리상.
라스티카: 아…… 가버렸다.
네로: ……멋대로 해. 이러니까……. ………….
샤일록: 그런 표정 짓지 말아주세요. 건배하죠, 네로. 모든 걸 잊기 위해서.
라스티카: 추억을 나누기 위해.
네로: ……깊게 알기 위해. 같은 시간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샤일록 / 라스티카 / 네로: 건배.
클로에: 아…… 흐려졌어. 바람도 강해졌네.
무르: 태풍인 것 같네!
클로에: ……맑았으면 좋겠다……. 무르, 고마워. 쇼핑에 어울려줘서.
무르: 클로에의 쇼핑 좋아——! 반짝반짝한 게 잔뜩!
클로에: 에헤헤! 무르에게도 뭔가 새로운 소품 만들어 줄게!
무르: 와——이!
클로에: 뭐가 좋을까? 이왕이면 유성의 모티브가 좋아? 무르는 유성 좋아해?
무르: 좋아해! 마법사의 연결고리 같으니까!
클로에: 마법사의 연결고리……?
무르: 맞아! 잃었다고 생각해서 돌아보면, 없어져있어! '에아뉴 랑블!'
클로에: 어, 어디 가. 무르!? 하늘을 날면 눈에 띌거야!
무르: 띄자! 하늘을 날자, 클로에! 우리는 유성도 될 수 있어!
클로에: ……'스위스피시보 보이팅고크!'
클로에: 아름다운 노을……!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지만……. 아……! 저기서 뭔가 빛났어!
무르: 족보의 유성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더 올 거야. 파칭 파칭 파칭 소리를 울리면서 하늘이 파랗게 타올라. 꼬리를 끌고 낙하해. 별들의 죽음이야.
클로에: ……밤에는 더 예쁘겠지.
무르: 암간은 빛을 깨닫게 해주니까!
클로에: 유성이 마법사의 연결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무르: 방황하는 별들은 우리! 아득한 별바다에 저어서도 쳇바퀴 돌기를 반복해!
클로에: …….
무르: 마법사는 오래 살아!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해도 삶이 끝나지 않는 거야. 인간이었다면 손을 잡은 채 끝마칠 수 있었어! 그런데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같이 살고 살아가. 그 바람에…… 이어졌던 인연이 풀려.
클로에: ……인연이 풀려…….
무르: 시간은 변하게 하니까! 사람이나 마음이나 풍경을!
클로에: …….
무르: 그 반대도 있어. 어느 연령, 어느 시대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인간이었다면 서로 맞지 않고 사멸했을 영혼이, 긴 시간에 걸쳐 돌고 돌아…… 어느 시대에서 불현듯 서로 묶인다. 기묘하고 신기한 마법사의 이야기! 오늘의 친구는 미래에 있어서 가장 얄미운 적이 될 수도 있고…… 과거에 경멸했던 누군가가 오늘의 버팀목이 될 지도 몰라. 사멸하는 별. 그 빛! 우리는 만남과 이별, 밀월과 파국을 파도처럼 반복해. 달처럼 채워지고 달처럼 갉아먹어 가!
무르: 클로에, 너는 어때?
클로에: 에……?
무르: 신부조차 잊어버린 라스티카가, 제자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잊지 않겠다고, 언제까지나? 잊어버렸다고 하면, 언제까지?
클로에: ……언제까지라니…….
무르: 너는 너를 잊어가는 사람과 살아갈 수 있어? 사랑할 수 있어? 아니면 사랑은 다른 것으로 변해? 예를 들어 미움으로.
클로에: 라…… 라스티카를 미워하거나 하지 않아! 라스티카는 나의 은인이야. 나의 은인이자 스승님이니까, 절대 미워하지 않아.
무르: 그래? 모르지 않아? 앞으로 갈 길이 먼 미래인데! 가설과 검증을 하자! 미워한다면?
클로에: ……그런 마음이 만약, 솟아버린다면. 절대로 숨길거야. 왜냐하면 라스티카는 상처 받을테니까. 나, 라스티카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
무르: 재밌네, 클로에! 넌 자신의 안에 숨겨진 방의 너를 만드는구나.
클로에: …………윽.
무르: 어째서 우는 거야? 배고파졌어?
클로에: ……아니야…….
무르: 그러면 뭐가 슬픈거야?
클로에: ……잊지 않아줬으면 해……. 나를……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잊은 라스티카를 상상하면 슬퍼져서…….
무르: 클로에, 불쌍해……. 불꽃놀이 볼래?
클로에: ……필요 없어.
무르: '에아뉴 랑블!'
클로에: ……윽, 필요없다고 했는데…….
무르: 클로에가 좋아. 웃어줘, 클로에.
클로에: ……나, 유성 같은 거 싫어. 한 순간 만이라니 싫어. 변하는 건 싫어……. 계속, 옆에 있고 싶어…….
22화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나를 빗자루에 태운 스노우가 어깨 너머로 설명한다.
스노우: 알겠나, 현자여. 그대의 말대로 미스라와 오즈의 싸움은 이 세상 누구도 막을 수 없네!
화이트: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쐐기를 박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스노우: 우리와 함께 그 녀석들의 전투를 지근에서 지켜보고…….
화이트: 딱 적당한 타이밍에 잽싸게 끌어올린다!
그런 고수의 튀김처럼 잘 되는 일인가요!?
스노우: 타이밍이 중요하네! 놈들도 돌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화이트: 녀석들이 고집을 부리지 않고 마도구를 집어넣기 쉬워진 타이밍에 끼어드는 게야!
둘은 그 타이밍을 알 수 있나요!?
스노우 / 화이트: 모르네!
모르는구나…….
스노우: 라고 해도, 오즈가 미스라를 죽이기 직전까지 갈까…….
화이트: 밤이 된 후, 미스라가 오즈를 죽이기 직전까지 갈까…….
스노우: 그쯤이면 속이 후련해져서 말을 듣겠지!
화이트: 들어주면 좋겠네!
아, 알겠어요……!
사실은 좀 더 빨리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재빨리 그만둬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세상을, 살아 있는 세상은 몰라. 모른 채 무조건 부인한다고 누가 내 말을 들어줄까? 기적을 일으키고, 신기함을 부리고, 신 같은 사람들이.
…………그 둘은 어디에……!?
스노우 / 화이트: 저 쪽일세!
스노우와 화이트가 가리키는 끝을 쳐다봤다. 우리는 비스듬히 높은 곳에서 빗자루에 올라타지 않은 채. 제자리로 돌아온 오즈와 미스라가 대치하고 있다. 미스라는 어깻죽지를 누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왼팔을 한 손으로 잡고 왼쪽 어깨에 누르고 있다. 오즈에게 물어뜯긴 촉수 부분인 걸지도 몰라. 젖은 붉은 머리카락 아래 처절한 분노를 머금은 미스라의 초록색 눈동자가 불타고 있다. 애틋한 석양에 피부를 적신 채, 선명한 눈동자 만이 촉촉하고 요염한 빛을 발하고 있다. 평소의 나른했던 미스라와는 또 다른 거칠고 위태로운 색기가 있었다. 미스라는 오즈를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미스라: ……꼬리는 꼬리죠!
오즈: …….
미스라: 머리가 여기 있고, 머리의 반대편에 꼬리가 있으니 멋있잖아요!?
오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법을 부린건지 긴 검은 머리와 옷이 살짝 바람에 부풀어 오른 것처럼 펄럭인다. 다음 순간에는 물방울이 튀고 있었다. 미스라에게 지팡이를 받친다.
오즈: 무리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오즈의 지팡이가 엷은 빛을 내뿜는다. 순식간에 낮이 밤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쨍하고 하늘이 윙윙거린다. 미스라는 비웃음을 머금고 어깨에서 손을 뗐다. 피투성이의 팔은 문제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 손바닥이 희미한 빛을 내뿜고 다시 마도구인 수정 해골이 나타났다. 그것을 높이 내던진다.
미스라: 지금의 당신에게 질 것 같지는 않네요.
미스라가 높게 쏘아 올린 마도구에 바다가 끌어올려진 것처럼 출렁 출렁 파도가 높아진다. 창백한 백골의 병사들이 달그락달그락 뼈를 떨며 서로 부딪혀 줄줄그락 떠오른다. 그들은 서로의 뼈를 앗아가면서 칼이나 창, 활 등의 무기로 삼았다. 백골들의 군대가 완성되어 오즈가 언짢은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겁없이 미스라가 웃는다.
미스라: '아르시무'
미스라가 주문을 외운다. 해골들은 일제히 오즈에게 덤벼들었다. 먹구름 사이로 물든 하늘이 이번에는 희끄무레하게 보일 정도로 해저에서 출현한 백골 병사들의 수는 많다.
오즈: '복스노크'
오즈가 천둥으로 백골 병사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시체에 쌓이는 벌레처럼, 없애도 없애도 백골의 병사들은 수를 더해간다. 부동하던 오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팡이를 휘둘러 뼈 떼를 피하듯 허공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 뒤로 공간의 문이 나타난다. 문틈으로 난 팔이 오즈의 머리채를 잡았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즈: '복스노크'
거대한 수정 해골이 얼움 눈보라를 뿜어낸다. 오즈의 지팡이가 푸른 번개를 친다. 둘 사람의 마법을 앞에 두고 내가 감격했던 아름다운 경치는 사라져간다.
피가로: 이 구름, 최악이네…….
파우스트: 피가로.
피가로: 파우스트…….
파우스트: 오즈와 미스라다. 현자와 쌍둥이의 기척도 있어. 지금부터 말리러 갈 생각이다.
피가로: 그만둬.
파우스트: 어째서.
피가로: 너는 아무것도 못 해.
파우스트: …….
피가로: 아아, 아니. 나도 아무것도 못하지만. 뭐라고 할까…… 마법관을 망가뜨리는 것보다, 넓은 장소에서 운동시켜 주는 것이 울분의 발산이 된다고나 할까…….
파우스트: 그런 건가…….
피가로: 레노, 안 만났어?
파우스트: 아니…….
피가로: 그렇구나. 급한 용무는 아니지만, 너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어. 가끔은 천천히 얘기 들어줘.
파우스트: ……알았어. 저번에도 상태가 이상했으니까.
피가로: 미틸이랑 리케는?
파우스트: 아아, 아까 봤어.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만나러 갔다.
피가로: 그럼 괜찮은가.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볼게. 오즈와 미스라는 신경쓰지 말자.
파우스트: 기다려줘.
피가로: …….
피가로: 지금…… 나를 불러세웠어?
파우스트: …….
피가로: 불러세웠지? 네가? 나를? 아닌가? 내가 맞지?
파우스트: ……용무가 있다면…….
피가로: 아니야. 없어 없어. 무슨 얘기라도 있다는 거야? 어디 가게라도 들어갈까? 아, 기다리는게 낫겠다. 기다려달라고 했을 뿐이니까. 좋아, 기다릴게.
파우스트: ……할 이야기가 있어…….
피가로: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파우스트: 왜 장난치는 거야!?
피가로: 장난치지 않았어! 너는 뭔가 고민이 있을 때, 나에게 상담하고 싶어 하지? 나에게는 좋은 점을 보여줄 기회야. 신뢰와 존경을 되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빨리 상담해줘. 어느 정도의 의문에는 나의 경험과 교양으로 대답할 수 있으니까. 네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중이야.
피가로: 그래서 뭐야? 이야기를 들을까?
파우스트: …….
피가로: 미안…… 단숨에 말해버려서……. 정신이 없어서…….
파우스트: ……전에, 한 번 수행으로 바다에 간 적이 있었지.
피가로: 아아. 나도 딱 같은 생각을 했었어.
파우스트: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야?
피가로: ……너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파우스트: 옛날부터 그랬던 건가? 옛날에는 더 위엄과 관록이 있고, 성실하고 엄격했을 텐데.
피가로: 위엄이나 관록이나 성실함이 있다고 고양이가 더 예뻐해 주는 건 아니잖아.
파우스트: 고양이처럼 예뻐해주길 바란 건가?
피가로: 죽기 전에 한 번 쯤은.
파우스트: …….
피가로: 딱히 네 앞에서 무리를 한 건 아니야. 이건 새로운 놀이거든. 너와 있었을 때는 너에게 폼을 잡는 게 즐거웠어. 너에게 존경받아서 기뻤으니까.
피가로: 아아, 미안. 또 방해해버렸네. 그래서 바다 이야기는?
파우스트: 그때는 서쪽 바다가 아니라 북쪽 바다였지. 혹독한 수행으로 나는 몇 번이나 죽을 뻔했었다. 그걸 본 너는, 중간에 너무 많이 했다고. 아직 수행 과정 중반이지만, 다시 오자고 했었지.
피가로: 아아, 그랬어. 기억해. 그때 네 얼굴. 엄청 억울하고 속상해보였지. 진지하다고나 할까, 패배심이 강하다고 생각했어.
파우스트: ……400년 전, 네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 수업을 마치고 있었지?
피가로: ……간단하게 죽지 않을 정도는 가르쳐 줬다고 생각하는데…….
파우스트: 어느 정도?
피가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파우스트: ……나는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나?
피가로: …….
파우스트: 솔직하게 말해줘. 사양할 필요는 없어.
피가로: 어째서, 갑자기…….
파우스트: 학생들을 지키고 싶어. 오비시우스 건 때 내 학생들은 피투성이였다. ……나는 다치지 않았는데…….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을 더이상 잃고 싶지 않아.
피가로: …….
파우스트: ……저주든, 금기의 의식이든, 그런 일을 해도 좋아……. 강해지고 싶어.
피가로: 너……. 그런 질문, 아직도 나한테 하는구나.
파우스트: 당신이 가장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폐가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피가로: 민폐 같은 건 아니야. ……기뻤어. 네가 나를 다시 한 번 의지해줘서, 기뻐.
파우스트: ……기뻐? 그러면 왜, 그때 나를 두고 간거야.
피가로: …….
파우스트: 책망 같은게 아니야. 너에 대해 알고 싶어. ……가르쳐줘. 나는 왜 단념당했지?
피가로: …….
파우스트: ……미안해. 우스운 소리를 해버렸어.
피가로: 파우스트!
파우스트: 시노들을 찾아 성으로 돌아간다. ……분수를 모르고 어리광을 부려서 미안했군.
피가로: ……그렇네. 내가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피가로: 저 아이한테 있어서는, 나한테 갑자기 파문당한 거였어.
카인: …….
레녹스: 카인, 만질게.
카인: 레노.
레녹스: 보여?
카인: 아아. 남쪽 나라 녀석들은? 미틸은 리케랑 노는 것 같던데.
레녹스: 장을 보고 있어. 파우스트 님을 못 봤나? 바자르를 둘러봤는데 안 계셔서.
카인: 파우스트는 못 봤네. 동쪽 사람들은 붐비는 것을 싫어하니까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지 않을까?
레녹스: 그럴 수도 있겠네. 찾으러 가볼게. 고마워.
카인: 하늘을 날아서 찾으면 돼. 내 눈으로는 무리지만, 넌 찾을 수 있잖아.
레녹스: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지만.
카인: 확실히, 눈에 띄면 싫어할 수도 있겠다. 나랑은 완전 다른 느낌이니까 재밌단 말이지. 동쪽 애들도, 다른 애들도.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하거나…….
레녹스: ……아서 전하의 얼굴에 상처가 있었어.
카인: 아아, 정말 속상해. 용기를 내봐도 마법에 관해서는 나보다 아서 님이 더 강하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레녹스: ……우울한가.
카인: 우울해.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레녹스: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아서 님은 치료하지 않으셨어. 너는 추천하지 않았나?
카인: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아서 님이 고치지 않기로 결정하셨어. 그 이상, 입을 연다면 외람되겠지.
레녹스: ……외람인가?
카인: 외람이야. 싫긴 싫지만. 자기가 지키지 못한 증거 자체가 눈에 띄는 곳에 있으니까. 쓸모없는 나의 무력함을 동감하고 몸부림치며 기절하고 싶어져.
레녹스: …….
카인: 그렇다고 고치라고 할 수는 없어. 거기에 아서 님의 생각이나 긍지, 신념이 있다면……. 잠자코 따르는 것이 신하의 몫이다. 틀린가?
레녹스: ……스토익하네. 친구 사이처럼 스스럼 없는 관계로 보였는데.
카인: 충성심이란 그런 거야. 주군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다하지. 우리 동네는 강병의 거리니까. 기사로서의 훈사는 어릴 때부터 배워 왔어.
레녹스: ……그것이 쓸데없는 것이라도? 고칠 수 없는 상처를 고치지 않는 것은 불건전하지 않나?
카인: 긍지일 수도 있잖아. 아서 님의 얼굴에 브래들리 같은 큰 상처가 생긴다고 해도…… 아서 님이 남기고 싶다고 하면 나는 따를 거야. 보고만 있어도 힘들 것 같지만.
레녹스: ……나는 보기 전부터 힘들어.
카인: 그건 너의 이기심 아닌가? 실수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것 뿐의.
레녹스: ……. 너…… 너 같은 애송이가 뭘 알아.
카인: ……화, 났어……?
레녹스: 화……. 화가 난 건가, 나는…….
카인: 평소보다 목소리가 컸어.
레녹스: 미안해…….
카인: 사과하지 않아도 돼. 화내도 괜찮아. 너랑은 무슨 싸움이라도 하고 싶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레녹스: 나는 화내고 싶지 않았어.
카인: …….
레녹스: 너를 좋게 생각하고, 친구로서 아끼고 싶었으니까.
카인: 레노…….
레녹스: ……나는 탄광에서 자랐다. 기사의 훈사 따위는 몰라. 그래도…… 목숨을 버리더라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내가 죽을 뻔한 밤에 생긴 상처가 따라다니고 있어. 새벽산 구름처럼 겹겹이 이어져 뒤를 따라오는 거야. 몇 개의 후회가, 지금까지…….
카인: ……레녹스, 미안해. 네 삶의 방식을 부정할 셈은 아니었어.
레녹스: ……알아……. 나야말로…….
카인: 네가 좋아.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많겠지만, 너의 경험과 아픔을 존경해.
레녹스: 알아. 너는 좋은 녀석이야. 나도 궁금했어.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실수를 외면하고 싶을 뿐인 이기심인가. ……그렇군.
카인: 레노…….
레녹스: 하지만 카인. 주군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것이 충신이라고 했지만……. 나는 주군을 따른 결과, 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구하지 못하고 죄인으로서 처형대에 세워놓고 말았다.
카인: …….
레녹스: 그런 장면과 마주했을 때, 그분의 후예와 네가 어떤 길을 택할지 볼만하겠군.
카인: 그분의 후예……?
레녹스: ……파우스트 님을 찾으러 갈게.
카인: 아아…….
레녹스: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미안해.
카인: 미안하다니…….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의 마음을 다소 알 수 있었어. 수백 년 연하의 젊은이에게 의견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 되는구나…….
카인: 뭐라고?
레녹스: 기도하고 있어줘. 파우스트 님과 잘 대화할 수 있도록. 너의 말은 상냥하니까.
아서: ……오즈 님……. 역시 미스라와…….
아서: ……내가 나가도 오즈 님의 발목만 잡을 뿐이야. ……억울하지만…….
아서: ……! 저 하늘을 나는 그림자는 오웬과 브래들리……!? 아무리 오즈 님이라도 미스라에 더해, 저 둘도 함께 상대하시는 건…….
아서: ……윽, 고민할 바엔 가자! 나라도 방패 정도는 될 거야!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미틸: 왠지 이상한 날씨네요…….
시노: 이게 날씨인가? 오즈와 미스라의 짓 아니야?
미틸: 에!?
시노: 아닐 수도 있지만. 뭐, 히스가 무사하면 됐어. 자, 봐. 리케와 성을 만들고 있지. 히스는 손재주가 좋아.
미틸: 그러네요. 리케도 기뻐 보여. 웃어줘서 다행이다…….
미틸: ……시노 씨.
시노: 응?
미틸: 시노 씨는 히스클리프 씨의 종자죠. ……종자란 어떤 느낌인가요? 친구와는 다른가요?
시노: 달라.
미틸: …….
시노: 나는 내 방식으로만 블랑셰를 섬겨. 이것이 충의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건 있어.
미틸: 어떤 건가요……?
시노: 내가 죽고 나서, 죽음의 나라의 신이나 악마를 만났을 때…… 이 세상에 있는 최소한의 최악의 일을 대충 해왔지만, 히스클리프만은 소중히 여겼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미틸: ……그것이 충의?
시노: 나한테는 말이지만. 내가 자랑할 만한 건 이것 이외에 더 없으니까.
미틸: 그런……. 시노 씨는 강하잖아요.
시노: 나보다 강한 놈은 많아.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 그때 마음을 돌려 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해.
미틸: 어째서죠?
시노: 혼자 죽는 건 무섭잖아.
미틸: …….
시노: 그래서 내 안의 마음의 뒷받침이 필요해. 지금 혼자 가도 무섭지 않아. 자랑스러운 것이 있으니까. 그렇지, 미틸. 나는 히스를 소중히 여기고 있지?
미틸: ……네. 엄청요.
시노: 흐흥. 나으리에게도 부인에게도 내가 죽인 놈들에게도 분명히 말할 수 있어. 히스를 아끼는 내가 있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어.
미틸: …….
히스클리프: 시노, 미틸! 빨리 걷지 않으면 해가 질 거야.
리케: 보세요! 그림자가 엄청 길게 뻗어있어요!
시노: 하하, 진짜네. 키가 커진 기분이야.
미틸: 그렇네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어떤 어른이 되려나.
23화
오즈와 미스라가 싸우는 바다 위는 도저히 이 세상의 광경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눈보라와 폭풍, 번개와 토네이도가 물감을 터뜨린 유화처럼 혼돈과 뒤섞인다. 나는 눈도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눈을 감은 순간 전황이 확 달라진다.
미스라가 오즈의 등뒤를 잡고 공간의 문을 연다. 거기서부터 날카롭게 돋아난 투명하고 무수한 얼음 기둥이 오즈의 등을 관통한다. 그렇게 보인 것은 착각인지 하면 얼음 알갱이의 안개 소게서 다음 순간엔 다른 자세로 변해 있었다. 괴물 같은 거대한 갈고리 발톱의 한쪽 팔로 오즈가 미스라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미스라는 거꾸로 매달리면서 양손으로 수정해골을 겨누었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즈: '복스노크'
섬뜩하고 창백한 빛을 뿜어낸 수정해골을 부술 기세로 오즈가 지팡이를 내려친다.
태양보다 눈부신 빛이 난다. 두 사람은 빛의 화살 같은 속도로 그 자리를 떠났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바다에서 올라온 수천 명의 백골 병사들이 오즈를 쫓아간다. 이들은 오즈의 벼락을 맞아 부서지다가 거센 파도의 너울거림에 시달리며 여러 차례 재생해 갔다.
오즈: …….
오즈의 등뒤의 하늘 구름 사이로 청자색의 작은 빛이 튀었다. 퍽, 하고 소리를 내며 바다로 떨어진다. 밤이 되기도 전에 계보의 유성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라색과 주황색 하늘에 희고 가는 곡선이 그려졌다가 사라진다. 오즈는 유성우를 눈치채지 못하고 미스라를 쳐다보았다. 미스라가 눈을 부릅뜬다.
미스라: 하하…….
눈을 부릅뜬 미스라는 웃었다. 마치 여름 방학에 불꽃을 올려다보는 소년처럼. 오즈의 등 너머로 흐르는 별빛의 자국을 보면서 웃는다.
미스라: 아하하!
미스라의 웃음소리는 너무나도 순진했다. 그들이 비밀 기지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보인다. 비좁은 세상을 뛰쳐나와 별조각이 쏟아지는 청자색 폭풍 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부술 수 있을 만큼, 높이 날개짓을 하면서.
순진하고 강한 괴수들. 웃는 미스라들을 내려다보며 오즈는 의아한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폭풍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오즈도 웃고 있다. 호전적인 웃음소리는 미스라나 아서 못지않게 장난스러웠다. 이것이 그들이 살아온 모습이다.
오즈가 지팡이를 든다. 먹구름을 달리는 푸른 번개의 빛을, 미스라가 피해간다. 춤을 추듯 번개를 피하는 그는 무서울 게 없는 댄서였다. 피를 흘리든, 깊은 상처를 입든 즐겁게 웃고 수정해골을 올린다.
미스라: '아르시무'
백골 병사들의 무리가 순식간에 거대한 해골로 변해간다. 거대한 해골의 커다란 입에 삼켜지기 전에 오즈는 자취를 감췄다가 해골 옆에 출현한다.
갑자기 오즈가 등을 돌린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굉음을 찢는 총성이 울려퍼진다. 유성보다 빨리 날아온 총알이 오즈의 얼굴 쪽을 가로질렀다. 불적하게 웃는 남자가 빗자루 위에 두 발로 선 채 장총을 메고 있다.
여, 미스라. 네 녀석의 사냥감을 훔치러 왔다고.
미스라: 손대지 마세요. 오즈의 돌은 제가 받겠습니다.
오즈: …….
오즈가 브래들리를 돌아본다. 직후, 오즈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케르베로스가 낙하한다. 사나운 신음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짖고 있다. 오즈는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오즈: '복스노크'
번개에 뚫린 케르베로스가 비통한 목소리를 낸다. 떨어지는 케르베로스에 휘말릴 것 같았던 오즈는 간헐적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하지만…….
오웬: '쿠아레 모리토'
케르베로스의 그림자에서 오웬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면서 한 손으로 붉은 빛이 도는 빛나는 검을 겨누고 있다. 오즈의 눈가를 노려 오웬은 검을 치켜올렸다.
오즈: …….
상체를 젖혀 오즈가 참격을 피한다. 오웬은 색이 다른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황홀한 냉소를 띠었다. 모두에게 둘러싸여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컵케이크를 먹던 그와는 다르다. 그때처럼 침착함이 없고, 대담하고 생기가 넘친다.
사는 세상이 다르다. 자꾸 그런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강적인 오즈와 싸우면서 오웬은 계속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고 있었다. 새 모자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그것은 어울릴 리 없는 세계가 어울렸기 때문에 태어난 몸짓이 아닐까.
오웬: '쿠레 메미니'
오웬은 시선을 오즈에게서 떼지 않은 채 트렁크를 바다로 던졌다. 물에 잠기기 전에 케르베로스가 트렁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웬의 트렁크는 뚜껑을 닫고 착수했다.
지팡이를 움켜쥐며 오즈가 북쪽 마법사들을 바라본다. 궁지에 몰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오만한 눈빛에는 불패의 자신감과 위엄이 있었다. 하지만…….
아서: 오즈 님……!
오즈: …………아서…….
미스라: 아서…….
(아서……!)
빗자루를 탄 아서를 시야 끝에서 인정하는 순간 오즈는 동요했다. 순식간에 아서의 곁까지 이동하여 힘차게 지팡이를 주위로 휘두른다.
오즈: '복스노크'
그 천둥소리의 무시무시함은 마법관 안뜰에서 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미스라: ……!
브래들리: ……큭……!
오웬: ……아아아악……!
푸른 빛을 휘감으며 미스라들이 신음한다. 그 틈에 오즈는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올렸다. 바다 밑바닥에서 땅울림이 울리기 시작한다. 굉음을 내며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것은 여러 개의 흰 소금 기둥이었다. 긴 손톱처럼 길고 가는 꽃잎처럼 생긴 소금 기둥이다.
그것들이 순식간에 오즈와 아서의 주위를 에워싸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그리며 우뚝 선다. 미스라들이 풀려날 무렵에는 그들의 눈앞에는 닫힌 탑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 옆에서 스노우가 아연실색하며 중얼거린다.
스노우: ……이런 터무니없는 사적 공간을 만드는 방법, 있어?
나는 침을 삼키면서 그들의 상태를 바라보았다.
이제 중재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까요?
화이트: 아니, 아직일세. 아직 너무 이르다. 지금 멈추면 울분이 남겠지.
하지만 아서가…….
화이트: 오즈가 있으니 괜찮다. 견고한 결계를 치고 있네. 반드시 지키…….
새로운 굉음이 화이트의 목소리를 가로챘다. 미스라들이 삼면에서 소금 기둥 탑을 에워싸고 마도구를 겨누고 있었다.
미스라: '아르시무'
미스라의 마도구가 푸르게 빛나는 섬뜩한 불길을 뿜어낸다. 그러자 소금 기둥에 조금씩 균열이 갔다. 오웬과 브래들리도 이어 소금 기둥을 공격한다.
오웬: '쿠레 메미니'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기둥이 기울기 시작한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오즈: 아서, 어째서 이런 곳에 왔지!?
아서: 가세하러 왔습니다. 아뇨, 오즈 님에게 가세 따윈 불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죠.
아서: 오즈 님, 저는 실수로 미스라에게 오즈 님의 약점 같은 대우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오즈 님의 집안이나 약점처럼 정해져 오즈 님의 발목을 잡고 말 것입니다. 제가 미스라들에게 공격당해도, 그대로 버려주세요.
아서: 그렇다면 앞으로 질질 끌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즈 님을 귀찮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즈: 무슨…….
아서: 이래 보여도 북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격에 돌이 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돌이 된다고 해도, 오즈 님의 양식이 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오즈: …….
아서: 자, 가죠.
오즈: 기다려!
아서: …….
오즈: 기다려라…….
아서: 네.
오즈: 기다려.
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즈: …….
아서: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오즈 님은 저와 관계가 없다고. 그렇다면 저를 내버려 두세요. 아니라면 대답해 주세요. 오즈 님의 제자도 아니고 중앙의 왕자라고만 불린다면, 저는 당신의 무엇인가요?
오즈: 아서…….
오즈: 미스라들이다. 곧 결계는 깨질 것이다. 너는 안전한 곳까지 도망가라.
아서: 승낙하기 어렵습니다.
오즈: 아서…….
아서: 발버둥치는 인질 취급 따위, 저에게 있어서도 치욕의 극치! 그렇다면 오즈 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무관한 타인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북쪽 마법사의 공격을 받아 보이겠습니다! 무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면 , 여기에 유대감이 있다면, 부디…….
아서: 부디, 그 유대감에 이름을 주세요.
오즈: …….
오즈: ……모르겠다. 너 같은 사람은, 내 생에에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아서: ……오즈 님…….
아서: ……오즈 님! 명실상부한 아서를 오즈 님의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오즈: ……할 수 없다.
아서: 어째서…….
오즈: 네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니까.
아서: …….
오즈: 무너진다. 잔해를 틈타 탈출할 거다. ……따라와 주겠나?
아서: ……네!
미스라: '아르시무'
오웬: '쿠레 메미니'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미스라들의 공격으로 거대한 소금 기둥이 와해되어 간다. 큰 소리를 내며 부서진 소금 덩어리가 대해원에 낙화했다. 하늘은 잔조를 내뿜고 있다.
스노우: 안 돼. 슬슬 결판을 내야 하네.
화이트: 역전 당할 거다, 오즈여.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드높은 아서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참았다.
빗자루를 탄 아서가 마도서를 한 손에 들고 정면에서 브래들리를 향해 간다. 아서는 희미하게 빛나는 마도서에 한 손을 얹고, 이어 그 손을 허공에 올렸다.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에 출현한다. 마법진은 브래들리를 포착하는 그물처럼 그에게 다가갔다. 장총을 겨누면서 브래들리가 웃는다.
브래들리: 나부터 시작한 건 현명한 판단이다. 와라. 쏴줄게.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아서의 마법진을 브래들리가 정면에서 쏜다. 마법진은 방패처럼 브래들리의 총알을 막았지만, 점점 밀렸다.
아서: ……윽.
눈부신 빛을 받아 손바닥을 앞으로 치켜올린 채 아서의 뺨이 굳어간다. 브래들리가 장총을 다시 겨누고 다음 총알을 쏘려고 했다. 직후, 브래들리의 뒤에 오즈가 나타난다.
브래들리: ……!
오즈: '복스노크'
오즈는 마도구인 지팡이를 브래들리의 옆구리에 가져다댔다. 창백한 번개가 브래들리의 옆구리를 관통한다.
브래들리: ……아아아아악!
통증에 절규하면서 브래들리는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아서를 잘못 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즈는 브래들리를 돌아보게 하고 손바닥으로 눈가를 눌렀다. 브래들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브래들리: ……상당히 초조해 보이는데. 사격수의 시력을 뺏으려고 하다니.
오즈: '복스노크'
오즈의 손바닥에서 요란하고 붉은 빛이 넘친다. 브래들리는 등을 젖히고, 축 늘어뜨린 팔다리를 매달았다.
아서: 브래들리……!
오즈: 한 눈 팔지 마라!
오즈는 브래들리의 몸을 바다로 내던지며 아서에게 소리쳤다. 아서는 억지로 시선을 떼듯 브래들리를 외면한다.
아서: 네!
오즈: 오른쪽!
아서: ……!
우측 전방에서 날아온 바람의 칼날을 아서가 마법의 방패를 만들어 회피했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오즈: 위!
아서: 네……!
아서가 주문을 외우는 것보다 빨리 바람의 칼날로 칼집을 내민 마법사가 그를 재빨리 덮쳤다. 트렁크를 열면서 오웬이 웃는다.
오웬: '쿠레 메미니'
아서: 와앗……!
트렁크에서 나타난 케르베로스가 아서에게 달려가 아서는 빗자루에서 낙하한다.
오즈: ……!
아서를 돌아본 오즈의 눈앞에 공간의 문이 나타났다.
미스라: '아르시무'
해골이 뿜어내는 눈보라를 가까이서 맞아 오즈의 팔이 얼어붙는다.
오즈: …….
미스라: 한 눈 팔 틈이 있나요, 오…….
오즈는 지팡이를 놓았다. 제정신을 의심하느 듯한 얼굴을 한 미스라의 뒷머리를 움켜쥐고, 자신의 어깨로 끌어당긴다. 오즈는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내더니 마법으로 미스라의 목에 휘감았다. 창백해진 미스라가 주문을 외운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즈의 반신이 얼어붙는다. 동시에 미스라의 목에 붉은 선이 달렸다. 그러자 오즈의 머리칼이 파고들어 선혈이 넘쳐난다.
미스라: ……윽, '아르시무!'
오즈는 갑자기 아이의 모습이 되었다. 미스라의 절반 정도의 키가 되었다. 오웬이 미스라를 향해 외친다.
오웬: 뒤……!
미스라: ……!
미스라가 뒤돌아보는 것보다 빨리 오즈의 지팡이가 미스라의 복부를 내려쳤다. 어른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오즈도 함께 꼬챙이가 되었을 것이다. 오즈는 다시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지팡이를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미스라에게서 빼낸다.
미스라: ……큭, 하……!
선혈이 튀어서 나는 무심코 외면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미스라가 혈기를 잃어간다.
오웬: '쿠레 메미니'
오웬이 주문을 외운다. 트렁크에서 뛰쳐나가던 케르베로스가 공중으로 되돌아왔다. 가운데 한 마리가 정신을 잃은 아서의 팔을 물고 오즈를 노려보고 있다.
오웬: 왕자님을 강아지의 먹이로 삼기 싫다면 지팡이를 바다에 버려. 그대로 일몰까지 움직이지 말고.
오즈: …….
오웬: 이건 처사야, 오즈. 저녁이 찾아오면 거기서부터는 나의 시간…….
오즈: 해 봐라.
오즈는 미스라에게서 손을 뗐다. 축 늘어진 미스라의 몸이 바다로 낙하해 간다. 유난히 눈부신 빛을 지팡이에 두르고, 오즈는 날카롭게 오웬을 노려보았다.
오즈: 전에 너를 돌로 만들어 주지.
오웬: 아아.
팽팽한 살의를 띠며 색이 다른 오웬이 눈동자가 빛난다.
오웬: 충고해 줬는데.
오웬: 잘 가, 왕자님.
24화
눈동자에 차가운 빛을 띄우며 오웬이 미소를 지운다. 주문을 외우려던 오웬의 입술이 한순간 굳어쪘다. 석양이 사라지는 하늘에 유성이 흐른다. 금평당처럼 빛나고 별의 조각이 바다에 가라앉는다. 아주 작은 오웬의 망설임을, 오즈는 놓치지 않았다.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며 번개가 지팡이에 모여든다. 내 옆에서 스노우가 필사적인 소리를 질렀다.
스노우: 멈춰라, 오즈! 죽이지 마……!
주문을 외우려고 오즈가 입술을 벌렸다. 동시에 아서가 눈을 떴다.
아서: ……윽! '파르녹턴 닉스지오!'
아서의 마도서가 열려 섬광이 비추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오웬: ……!
아서의 공격은 북쪽 마법사인 오웬에게 뺨을 쓰다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북쪽 마법사다운 민첩한 판단으로 몸을 떼고 케르베로스를 트렁크에 앉힌다. 북쪽 마법사의 본능이 오웬을 구했다. 하늘에서 날아온 무수한 빛의 차이 오웬이 있던 자리에 차례대로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빛의 창은 관통하고, 서로 겹쳐지고, 오브제처럼 팽창하고……. 이윽고 멈췄다.
……!
마지막으로 본 것은 풍압에 날아간 아서와 오웬이었다. 너무나 큰 굉음과 빛의 세기에 나의 시력과 청력도 빼앗긴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들려요……!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화이트, 있나요……!?
바람을 느끼고 물방울을 느꼈다. 어린아이의 손끝이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작아졌다. 나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시간을 두고 시력과 청력이 천천히 돌아왔다.
스노우: ……현자……. 지금일세, 현자여……!
화이트: 거기까지, 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다! 이 승부의 결판, 그대가 맡아야하네!
와앗…….
긴장으로 목 안쪽이 팽팽해져서 숨이 막혔다. 계속 기합을 주고 버틴 탓인지 복부와 허벅지 근육이 팽팽해진다.
……콜록콜록……. 아, 알겠어요……!
스노우: 잠깐! 기다리게나, 현자!
흐릿한 시야 속에서 스노우가 미소지었다. 달래듯 내 등을 쓰다듬는다.
스노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된다. 우선은 거기부터일세.
화이트: 미안하군. 불량한 아이들이 그대를 귀찮게 해서.
불량한 아이라는 말투가 상냥하다. 웃으려다가 갑자기 눈꺼풀이 뜨거워졌다. 안심한 순간 눈물샘이 느슨해진다. 공포아 긴장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이런 식으로 풀릴 수 있는 건가.
……. 괜찮아요……. 할게요.
나는 폐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 몸을 앞으로 접으며 온몸으로 외친다. 목소리를 전해야해. 바람 소리에도, 파도 소리에도, 천둥 소리에도, 총 소리에도, 괴물 소리에도 지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거기까지……! 거기까지예요……!
이 승부……! 제가……! 끝내겠습니다……!
오즈: …….
오웬: …….
끝이에요……! 끝내주세요……!
먼 하늘에서 오즈가 나를 돌아본다. 목소리는 전달된 것 같아. 하지만 지팡이를 드는 오즈의 모습에 나는 실의를 느꼈다. 목소리가 닿았다고 해도 들어준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오즈: '복스노크'
오즈가 주문을 외우자 바닷속에 가라앉은 브래들리와 미스라가 끌어올려진다. 의식이 없는 아서와 의식이 있는 오웬도 억지로 모래사장 쪽으로 끌려간다.
오웬: ……윽, 그만둬!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오즈는 가볍게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들은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다.
스노우: 모래사장이군. 가자.
화이트: 우리도 곧 그림에 갇히고 말 걸세.
모래사장에는 너덜너덜해진 북쪽 마법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만큼 다치지 않은 아서도 의식을 잃은 채다. 나는 순수하게 슬퍼졌다. 상처투성이인 이들이 애처롭게 무의식적으로 눈물이 흐른다. 오즈는 어색한 듯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오즈: 스노우, 화이트. 그들을 맡기겠다.
스노우: 그대는.
오즈: 밤이 되기 전에 아서를 치료한다.
화이트: 현자에게 할 말이 있지 않은가.
오즈: …….
오즈는 씁쓸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시선을 거듭하는 동한 천천히 그의 눈빛이 평온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오즈도 무서웠던 거겠지.
오즈: 현자여. 북쪽 마법사는 긍지 높다. 그들을 패자로 취급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오즈는 뭔가 말하고 쓰러져 있는 아서의 몸에 지팡이를 겨눴다. 아서의 주머니에서 바닷물이 흠뻑 젖은 비단 손수건이 훌쩍 떠서 둥둥 떠내려온다. 손수건은 순식간에 바닷물을 튀겨 갓 씻은 듯이 팽팽해졌다가 오즈의 손에 떨어졌다. 오즈는 그것을 나에게 건네주고 아서와 함께 사라졌다.
……이건……?
스노우: 그대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화이트: 오즈 나름대로 신경쓰는 걸세.
스노우: 현자의 눈물을 본 미스라들이 또 화내는게 귀찮은 거겠지.
우는 나를 보고 미스라들이 화를 내거나 할까?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 상상은 조금 즐거웠다.
(지금은 뭐랄까……. 그냥 빨리 상처를 치료받고 건강해졌으면…….)
스노우: 그러면 이 녀석들은 우리가 옮기자.
화이트: 옮겨주자.
스노우 / 화이트: '노스콤니아'
모처럼이니 손수건을 썼다. 비단 손수건은 초감이 좋고 약간 끈적거려서 바닷바람 냄새가 났다. 이렇게 해서 보르다 섬에서의 소란은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레녹스: …….
파우스트: 레노.
레녹스: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너는 크니까 눈에 띄어. 찾고 있었던 거지, 나를.
레녹스: ……네.
파우스트: ……바다에서의 소동도 가라앉은 것 같아. 밤이 오기 전에 정리되어서 다행이군.
레녹스: …….
파우스트: ……할 얘기가 있다고 들었어. 장소를 옮길까?
레녹스: 아뇨, 지금은……. 시끌벅적한 정도가 좋아요.
파우스트: ……우울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부끄러운건가?
레녹스: 부끄러워?
파우스트: 잡음에 섞여서 좋다는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닌가?
레녹스: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는 계속 내가 부끄러웠던 걸지도.
파우스트: ……네가 부끄러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너는 불운했을 뿐이야.
레녹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파우스트: 아아.
레녹스: 화형에 처했을 떄의 흉터가, 만약 남아있다면. 언젠가……. 언젠가 지워주세요.
파우스트: …….
레녹스: 언젠가야말로……. 파우스트 님께 도움이 되겠습니다. 파우스트 님이 행복한 인생을 걷게 되어 업보를……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지워주세요.
파우스트: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보여달라고는 안 하는구나.
레녹스: ……저번에는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흉터가 있어도 당신은 마법으로 감출 수 있어. 저는 마법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몸에서 뿐만이 아닌, 진심으로 흉터를 지우고 싶어.
파우스트: ……거절한다.
레녹스: …….
파우스트: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너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어.
레녹스: 있습니다.
파우스트: 없어. 내가 어리석었을 뿐이야. ……친구를 잘못 골랐어.
레녹스: 아닙니다. 당신이 알렉 님보다 제 전언을 믿어주셨다면. 내가 그럴 만한 인물이었다면, 당신은 그 감옥에서 도망쳐 주셨겠죠.
파우스트: …….
레녹스: 제 힘이 부족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같은 비극이 일어났을 때, 이번에야말로……. 파우스트 님을 구하겠습니다. 그때는 상처를 지워주실 수 있을까요?
파우스트: ……거절한다. 나는 행복해질 생각이 없어.
레녹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파우스트: ……완고하구나, 너도…….
레녹스: 파우스트 님이야말로. 그렇게 고집을 부리셔도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파우스트: 아무도 구하거나 하지 않아. 저주상이니까. 너는…… 이제 잊어버리는 편이 좋아.
레녹스: …….
파우스트: 그 감옥에 갇혀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너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유성이 돌아왔다고 생각하지?
레녹스: ……이쪽의 대사입니다, 파우스트 님. 그 후로 몇 번이나 별이 돌고 몇 대나 옥좌에 앉는 사람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제 괜찮잖아요. 자신을 용서하셔도.
파우스트: ……너야말로 이제 됐잖아. 자신을 위해서 살아도. 줄 수 있는 것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이제 아무것도 없어…….
레녹스: 처음부터 필요 없습니다. 파우스트 님, 계보의 유성우를 아십니까?
파우스트: 아아. 오늘 밤에 내리는 거 말이지.
레녹스: 길고 유구한 시간에 이어져 내려오는 마음과 기술과 가르침의 이야기입니다. 피가로 님은 잊을 수 없는 유성의 밤이 있다고 하셨죠. 저는 오랜 시간 여행을 해왔습니다만,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계승하고 싶은 것도, 계승시키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앞도 없이, 이 세상에 사는 나밖에 없어. 그런데 피가로 님이 말씀하셔서 생각났습니다. 알렉 님의 말씀이…….
파우스트: …….
레녹스: 저와 함께 유성우를 올려다보며, 알렉 님은 좋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일생은 짧기 때문에 별에 운명을 거듭하는 마법사들의 마음은 알 수 없어. 단지 동경할 뿐이야. 그러니까 레녹스, 파우스트를 잘 부탁해. 내가 없어진 이후에도 파우스트를 잘 부탁해, 라고……. 그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습니다.
파우스트: 사람은 변하는 법이야. 어린 나이의 알렉은 무구했다. 청년이 되고 교활해진 거겠지.
레녹스: 결코 교활하지는…….
파우스트: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레녹스: ……. 제가 보고 싶은 경치는 알렉 님께서 보지 못한 경치입니다. 그걸 지금 보고 있습니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시죠?
파우스트: …….
레녹스: 언젠가, 알려주세요.
피가로: 헤에, 맛있어 보이네. 보르다 오리 고기와 내장 파티에인가.
스노우: 피가로여.
화이트: 피가로 쨩.
스노우 / 화이트: 잠깐 이 녀석들을 치료해줄 수 있을까.
스노우와 화이트는 일몰이 찾아오기 전에 서둘러 미스라들을 피가로 쪽으로 옮겼다. 와인잔을 한 손에 들고 신나있던 피가로는 피투성이 세 사람을 보며 가볍게 입을 다물었다.
피가로: 이제부터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식욕이 없어질 것 같은 것을 보여주지 마세요…….
미스라: ……윽…….
브래들리: 하아……. ……젠장!
오웬: 절대로 죽여버릴 거야…….
피가로: 아아, 심하네……. 이거 전부 오즈인가요?
스노우 / 화이트: 그렇다.
피가로의 손을 밀어내고 미스라는 상체를 일으켰다.
미스라: ……손대지 마세요. 제가 할 수 있어요.
피가로: 그렇겠지. 몸조리 잘 해.
미스라는 장신을 비틀거리며 훌쩍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쫓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참았다. 자존심이 강한 미스라느 지금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즈한테 건져지고 나서 한 번도 내 눈을 보지 않아서.
(멋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 않은데…….)
다른 북쪽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멀쩡히 치료받지 않았다.
오웬: 흥…….
오웬은 모자를 깊게 쓰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얼굴의 반쪽이 피로 물들어져있고, 눈알만 꿈틀거리고 있다.
피가로: 괜찮아?
스노우: 오웬도. 멀리가지 말게나.
화이트: 여기서 치료받으면 돼. 곧 디저트도 올 게다.
오웬: 시끄러워.
한 마디하고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걸을 수가 없어 바로 쭈그리고 앉았다. 오웬이 땅에 무릎을 꿇기 전에 순잔적으로 팔을 뻗어 누군가가 받쳐준다. 의외로 그것은 클로에였다. 클로에 자신도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클로에: ……저기, 괜찮아?
오웬은 물끄러미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를 노려본다.
오웬: 하? 신경쓰지 마.
클로에는 상심했다. 오웬은 눈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저녁과 밤의 푸른 어둠 사이에 망령 같은 홀가분함으로 오웬은 사라졌다.
브래들리: ……아파라, 젠장…….
옆구리를 누르며 브래들리도 혼자 일어섰다. 옆구리에 닿은 손바닥이 희미한 빛을 띠며 계속 흐르던 피가 멈췄다. 덜컹, 테이블이나 의자에 부딪히면서 브래들리는 어느 한 테이블에 당도했다. 샤일록과 라스티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이다. 테이블 위에는 한 병과 네 개의 와인잔, 접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쌍의 와인잔과 접시만 손대지 않았다.
브래들리: ……하……. 포크는?
라스티카: 대단한 걸. 그 상태에서 식욕이 있다니.
샤일록: 이런 깊은 상처를 입고 식욕 같은 게 생길리가 없어요. 주무시는 건 어떠신가요?
브래들리: 이런 상처, 핥으면 나아. ……괜찮으니까 먹는 거라고.
테이블에 매달리듯 브래들리는 상체를 숙였다. 그 손에 포크를 쥐어 주면서 샤일록이 미소짓는다.
샤일록: 받으세요.
눈썹을 숙이고 브래들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포크로 요리를 입에 옮기고 와인을 전부 마신다. 그 너머 네로의 등이 보였다. 허리에 손을 얹으면서 리케와 미틸에게 무언가를 구워주고 있다. 네로가 눈치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요리를 만든 건 네로일 테니까. 이렇게까지 해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네로가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 네로가 결코 돌아서려 하지 않았던 것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수중에서는 지금 파닥파닥 불이 붙고 있다.
리케: 와아!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이제 먹어도 되나요?
네로: 얼마 안 남았네.
미틸: 이렇게 큰 조개 먹어보는 건 처음이에요!
리케: 그럼 미틸에게 줄게요.
미틸: ?
리케: 네! 저는 이따가 큰 조개를 먹을 거예요. 오즈가 조개를 캐온다고 해서요.
25화
해가 지기 전에 피료가 됐는지 아서의 상처는 다 아물었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런데 나쁜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손을 흔들며 리케가 오즈에게 묻는다.
리케: 오즈! 조개는 캐왔나요?
오즈: ……조개?
리케: 조개를 캐온다고 했잖아요.
오즈: ……아아…….
오즈는 아서를 한 번 쳐다보며 리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오즈: 까먹었다.
리케: 에? 조개를 캐러 간 건데 조개를 캐러 간 것을 잊은 건가요?
네로: 하하……. 인생이란 게 그런 거야.
아서는 오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원하는 것 같은, 뭔가를 참고 있는 것 같은 푸른 눈동자로. 오즈도 아서를 돌아보았다. 그 어색함과 애정과 슬픔. 이름이 없는 무언가로. 아서가 웃자 오즈도 안심한 듯 웃었다. 눈을 내리깔며 아서의 손등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건너편에서는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파우스트에게 조개껍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노: 이건 내가 찾았어. 예쁜 조개껍데기지. 마님께 드릴 거야.
히스클리프: 이 상태로는 투박하니까 저에게 세공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뭐가 좋을까.
시노: 귀걸이는?
히스클리프: 너무 크잖아. 귓볼이 찢어질 거야.
시노: 소품함은 어때?
히스클리프: 괜찮을지도. 그런데 소품함 치고는 작으려나.
시노: 어느 쪽이야.
히스클리프: 고민 중이야.
시노: 아까부터 좋을 지도 몰라. 하지만……. 의 반복이잖아.
히스클리프: 그러니까 고민 중이라니까.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경쟁적으로 지껄이는 것을 파우스트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자작으로 포도주를 들이키며 소년들의 천진난만한 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파우스트: 너희들은 계속…… 그렇게 다투고 있으면 좋겠군.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눈을 마주보며 동시에 입을 연다.
시노: 말다툼을 권하지 마. 선생님이잖아.
히스클리프: 취하셨나요?
파우스트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스노우와 화이트들이 둥둥 하늘을 날며 내 곁으로 다가온다.
스노우: 현자.
화이트: 현자여.
스노우: 오늘은 힘든 하루였지.
화이트: 그대와는 동지일세. 오늘 밤은 그대 옆에서 자게 해주게나.
스노우 / 화이트: 우리는 곧 그림이 된다.
나는 웃으며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기꺼이. 둘을 잘 챙길게요.
스노우: 고맙군.
화이트: 미안하네, 현자여.
그리고 그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맛있는 거 잔뜩 먹고 가세요.
스노우: 그렇지, 그렇지.
화이트: 같이 과자를 먹도록 하지.
스노우: 접시는 하나, 포크는 두 개일세!
화이트: 아니, 세 개일세! 현자 아키라여. 그대도 같이 먹게나.
네!
스노우와 화이트와 함께 나는 당근 케이크를 먹었다. 당근의 씹히는 맛과 계피의 향. 달콤한 크림치즈 프로스팅. 지친 몸이 녹을 정도로 맛있다. 조용히 밤이 왔고, 두 옆에 있던 쌍둥이는 환상처럼 사라졌다. 대신 쌍둥이 그림이 나타났다. 나는 그들을 무릎에 안고 케이크를 먹는다.
내 시야를 가로질러 클로에가 라스티카 쪽으로 달려간다. 불안과 기대와 애틋한 소망을 떠올리며 클로에는 긴장하면서 라스티카에게 말했다.
클로에: 저기, 잠깐 괜찮아?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어.
라스티카는 기쁜 듯이 웃었다.
라스티카: 물론이야. 좋아.
쌀쌀한 날씨가 되어 바닷바람이 강해진다. 조금 전까지의 거친 날씨가 거짓말처럼 군청색 하늘은 맑았다.
무르: 봐, 현자님! 별이 내려와!
신나는 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공중제비를 하며 무르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내 손을 잡고 춤추듯 빙글빙글 돌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무르: 별이 내려온다……!
무르의 목소리에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마법사도, 오랜 시간을 산 마법사도. 무르는 함께 싸운 동지들의 긴 잠을 지켜보듯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무르: 어서 와. 그리고 잘 자. 이곳이 오랜 시간 방황하고 불탄 너의 종착점. 이 별의 돌이 되기 위해 끝없는 은하를 수천 년이나 여행했어. 어서 와. 그리고 잘 자.
하늘이 완벽한 밤하늘로 변해 저녁 때보다 선명하게 유성의 빛이 닿는다. 레녹스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 의자를 끌어당기면서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피가로의 옆에 앉는다.
레녹스: 시작됐군요.
피가로: 그렇네.
레녹스: 오늘 아침에 말씀하셨던 것은 뭔가요?
피가로: 뭐가?
레녹스: 잊을 수 없는 유성군…….
피가로: 그걸 네가 말해? 정말이지 너희들은 매정하다니까.
레녹스: 에?
피가로는 턱으로 레녹스의 표정을 살폈다. 무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레녹스가 아아!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어깨를 흔들며 웃기 시작했다.
레녹스: 잊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구나. 그 때도 유성우였지.
피가로: 그래.
레녹스: 이쪽은 유성군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기에……. 파우스트 님은 죽을 각오를 하셨습니다. 저도 그 분의 방패가 될 각오를.
피가로: 그 정도로 내 소문이 나빴구나.
그리운 듯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피가로는 볼을 풀었다. 과거를 바라보는 그 표정은 행복과 많이 닮아 있었다.
피가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야. 그 아이의 등 너머에 유성이 보였어.
레녹스: 저희들은 불안했습니다. 유성우는 불길한 것이라고 전해졌으니까……. 당신에게 불길한 재앙의 사자라고 생각되어 터무니없이 쫓겨나면 어쩌나 고민하시고.
피가로: 나는 다른 설을 밀고 있어. 날아오는 별은 나그네야. 나그네가 세상을 바꿔.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해. 그래서 세상이 바뀌는 예감이 들었어.
레녹스: ……눈은 그치고 하늘은 맑았지만, 나무에 쌓인 눈이 바람에 몰아치는군요. 춥지는 않으신가요,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괜찮아. ……레노, 봐. ……아마 저곳이다.
레녹스: …….
파우스트: 레녹스, 너는 여기에 있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본부대에 합류해 줘.
레녹스: 위험합니다. 저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파우스트: 내가 그분의 분노를 사서 이 자리에서 돌이 된다면 보고할 자가 없으면 곤란해. 파우스트가, 마법사가 배신했어. 그런 소문이 난다면 죽어도 동지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네가 나의 죽음을 알렉에게 전해줘.
레녹스: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최선을 다할게. 여기서 기도하고 있어줘. ……아아, 설마 별이 떨어지는 밤이라니.
레녹스: 날짜를 바꾸시겠나요?
파우스트: 시간이 없어. 내가 흉이 아니라고도 단언할 수 없다. 시간의 반역자니까.
레녹스: 파우스트 님야말로 진정한 혁명가십니다.
파우스트: 그랬으면 좋겠는데. 레노, 다녀 올게.
레녹스: 부디 무사하시길.
파우스트: ……하……. 바람이 세군……. 기다리고 있어, 알렉. 반드시 강해져서 너의 품으로 돌아갈게.
파우스트: 개문! 개문 소망! 나는 파우스트 라비니아! 약자들의 희생을 없애기 위해, 문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깃발을 든 알렉 그랑벨의 동포이다! 이곳에 인근 마을의 병을 고치고 하룻밤 사이에 무너진 계곡을 구한 기적의 대마법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파우스트: 피가로 가르시아 님! 부디, 저의 스승이 되어 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피가로: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들려.
피가로: ……유성우의 심부름꾼인가. 춥지, 들어와. 그쪽 큰 남자와 함께.
누구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면서. 돌아온 지금의 기적을 깨물면서.
네로: …….
도적: 보스, 기다려 주세요! 네로 씨의 마음도 알아주세요!
브래들리: 비켜.
도적: 도망간 게 아닙니다! 보스가 알아줬으면 했을 뿐이에요! 호된 벌을 준다면 정말로 도망가 버릴 겁니다……! 부디 온화하게…….
브래들리: 그때는 돌로 만들 뿐이다. 네 녀석이야말로 누구지? 멋대로 말하지 말라고!
도적: ……죄송합니다.
브래들리: …….저쪽으로 가 있어. 이쪽은 가까이 오지 마.
도적: ……네…….
브래들리: 여, 네로. 하룻밤을 보내니 머리는 식혀졌나?
네로: …….
브래들리: 뭐라고 하는게 어때. 아니면 하룻밤 더 갇혀있을래?
네로: 네 마음대로 해.
브래들리: 적당히 해. 뭘 삐지고 있어. 도적단을 빠져나가다니 농담이지. 여기 말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네로: 어디라도 좋아. 네 녀석이랑 있는 것 보다는 나아.
브래들리: …….
네로: 남의 이야기따윈 들으면 안돼……. 그러면 내가 있는 의미가 없잖아. 마음대로 살아서 들쓰러져 죽어. 나는 더 이상 못 어울리겠어.
브래들리: 하하……. 아아, 그런거군. 근성 없는 얼빠진 녀석. 하지만, 네 녀석은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산 채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네로: 그러면 죽여줘.
브래들리: …….
네로: 이젠 지긋지긋해……. 막 죽을 뻔한 얼굴을 볼 때마다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알고 있는 거야. 내가 있으니까 네 녀석은 엉망진창이야. 도적단도 다 나에게 맡기고. 치사하잖아, 그런 거! 그러면 사라지는게 나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브래들리: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는 네 녀석의 충고를 들을게. 무리도 안할게. 응?
네로: 거짓말이지……. 몇 번이나 했어? 이 대화…….
브래들리: 어이, 파트너……. 그만 기분 좀 풀어.
네로: …….
브래들리: 지금까지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어. 이제부터라도 괜찮잖아. 세세한 건 신경 쓰지 마! 우리들, 잘해왔잖아. 그렇지? 네로…….
네로: 이젠 싫어. 이젠 끝이야. 이번에야말로 다음은 없다고!
브래들리: 시끄러워! 네 녀석은 내 말만 들으면 돼……!
네로: …….
브래들리: ……하룻밤 더 머리를 식혀. 그러면 조금 휴가를 줄 테니까.
네로: 마음은 바뀌지 않아.
브래들리: 이쪽도 네 녀석을 자유롭게 할 생각은 없어.
네로: ……아…….
브래들리: ……뭐야.
네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유성우. 봐, 저쪽.
브래들리: 아아……. 옛날에 북쪽 끝 호수에서 봤었지. 하늘이 반짝반짝 빛나고…….
네로: 하하……. 너도 나도 취해서 큰일이었지.
브래들리: 아하하, 그랬었지. ……야, 네로…….
네로: …….
브래들리: 여기에 있어 줘. 다음에야말로 제대로 말 들을게. ……부탁이야, 파트너. 이런 이별은 쓸쓸하잖아.
네로: ……이걸로……. 이제 몇 번째지……. 지쳤어…… 이제…….
네로: 아아…… 브래드……. 나야말로…….
미스라: …….
루틸: 미스라 씨.
미스라: ……어떻게 여기 있는 걸 알았죠?
루틸: 어쩐지……. 굉장한 피의 양이네요……. 저기…… 괜찮나요?
미스라: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현자님 앞에서 또 오즈를 이기지 못했고…….
루틸: 치유 마법으로 상처를 고칠게요. 피가로 선생님 만큼 잘하지는 못하지만.
미스라: 당신의 치유 마법, 효과가 느슨해서 결국 가려워지는데요…….
루틸: ……어리광 부리는 건가요?
미스라: 나쁜가요? 남쪽 마법사는 그 정도밖에 쓸 데가 없잖아요.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미스라: ……
루틸: 어머니와 유성군을 보셨나요?
미스라: 수천 번이나.
루틸: 어머니는 미스라 씨가 오즈 님에게 져버렸을 때 뭐라고 하시던가요?
미스라: 글쎄……. 기억은 잘 안 나는데요. 웃었어요, 매번.
루틸: ……와하하!
미스라: 사람이 크게 다쳤는데 뭘 웃고 있나요……?
루틸: 기, 기뻐할 줄 알고…….
미스라: 그런 비뚤어진 버릇 없는데요…….
루틸: 미스라 씨. 저, 당신에 대해 조금도 몰라서…….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미스라 씨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미스라: ……별로…….
미스라: 죽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어요.
샤일록: …….
무르: 봐, 샤일록! 예쁘다!
샤일록: 네, 예쁘네요.
무르: 저기, 샤일록! 클로에가 울어버렸어!
샤일록: …….
무르: 그래서 불꽃놀이를 보여줬어! 근데 필요없대!
샤일록: 또 심한 말을 한 거겠죠. 안 되는 사람.
무르: 벌 줄래?
샤일록: 당신에게 대접할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당신을 혼내주고 싶지만, 당신은 분명 신경쓰지 않겠죠.
무르: 신경 쓰지 않아~!
샤일록: 정말로 안 되는 사람. 1000년이 넘도록 사랑이니 욕망이니 고독이니를 알고 싶어하고, 아직도 채워지지 않나요? 그 배고픈 괴물 같은 당신의 호기심은.
무르: 왜냐하면 알고 싶으니까! 마음은 마법보다 신기해! 고독은 웆보다 차갑고, 사랑은 혼돈 그 자체! 그 달의 사랑이나 고독을 알고 싶어.
샤일록: 불쌍한 무르. 손이 닿지 않는 상대를 계속 그리워하며 영혼까지 부셔지고 말았다. 하지만 무르, 달도 모르는 당신의 얼굴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유성도, 푸르스름한 별들도, '거대한 재앙' 도 모르는 무르.
샤일록: 왜냐하면, 제가 숨겨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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