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카인: 아서? 아키라……?
카인의 표정이 점점 불온해진다. 불러서 대답을 해야 할지 나도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대답하면, 아서를 설명하지 않는게 이상해……. 하지만……)
망설이고 있는 나보다 카인의 결단이 더 빨랐다.
카인: ……피 냄새…….
카인은 왼팔을 뻗어 아서의 어깨를 잡았다. 그대로 아서를 끌어당겨 오른손을 검자루에 건다.
아서: …………윽.
카인: 아키라! 무사해!?
카인의 너무 빠른 움직임에 놀라서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직후, 그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아든다.
…………!
눈앞에서 검이 일섬하여 나도 모르게 기겁할 뻔했다.
여…… 여기에요! 움직이지 마세요. 등을 만질게요.
아서: 미안해, 카인! 내가 답이 늦어서, 걱정시켜서……. 현자님도 죄송합니다.
내가 등에 닿자 아서를 팔 사이에 낀 채 카인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색이 다른 눈동자가 부드럽게 가늘어진다.
카인: 아아, 아키라. 다행이다……. 뒤숭숭한 아침인사라 미안해. 아서가 다친게 아닐까 해서…….
카인은 검을 치우며 아서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곧 흠칫 놀라 들여다보고, 위태롭게 눈썹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인: ……그 얼굴은 어떻게 된거야? 왕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아서: 아니, 마법서에서……. 현자님께 지금부터 상담해 보려던 참이야.
기억을 더듬듯이 뺨을 만지며 아서는 말을 시작했다.
아서: 사실은, 어젯밤………….
미스라가 오즈에게 선전포고…………!?
아서: 그렇습니다.
카인: 미스라들이 오즈에게 싸움을 거는 건, 지금까지도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아서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어.
카인은 아서의 볼을 바라보며 씁쓸한 듯 입을 가렸다.
카인: 오즈라면 화낼거야, 이거……. 지금까지는 미스라들을 적당히 대했었는데 진심으로 응전할걸. 나도 화가 나. 북쪽 마법사의 긍지에 참견할 생각은 없지만, 아서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을 거야.
아서: 미스라는 오즈 님을 화나게 하려고 그런 걸까……. 본인을 얕보지 말라고 했었어.
카인: 어째서……. 무시할만한 소리, 너는 안하잖아?
아서: 그 반대야. 미스라를 동경한다고 했었거든. 도중까지는 기분 좋게 이야기해준 것 같았는데…… 도대체 뭐가 계기였을까.
루틸: 미틸, 이거 가져갈 거야?
미틸: 가져갈거에요! 그리고 이것도…… ……왓!
미스라: 잠깐, 남의 발 건들지 말아주세요.
미틸: 방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으면 민폐예요. 미스라 씨, 준비는 끝냈나요?
미스라: 준비 같은 거 필요 없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현지에서 조달할거라.
미틸: 돈 가져가세요! 마음대로 뺏으면 안 돼요!
미스라: 그건 최근의 규칙이죠?
미틸: 최근은 아니에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랬어요!
미스라: 저에게는 최근이에요. 루틸, 당신은 모두와 사이가 좋죠?
루틸: 마법서의 모두 말인가요?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미스라: 아서에게서 들은 소식 있나요? 오즈와 뭔가 약속을 했다던가.
루틸: 글쎄요……. 오즈 님과 아서 님도 약속을 하셨나요? 저희처럼?
미스라: 그게 아니라면 그 오즈가 신경을 쓸 리가 없잖아요. 저도 치렛타와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당신들 따위에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테니까요.
루틸 / 미틸: …….
루틸: 헤에, 그런가요.
미틸: 미스라 씨의 간식도 같이 넣으려고 했는데, 역시 안 넣을래요.
미스라: 넣으면 되잖아요. 안 넣을 거면 지금 먹을게요. 주세요.
미틸: 안 돼요!
미스라: 당신들은 오즈에게 미스라의 약점이라고 불린 적이 있나요?
루틸: 저희는 미스라 씨의 약점인가요?
미스라: 맞아요. 절 죽이고 싶으면 당신들 형제를 죽이면 돼. 저는 마법을 쓸 수 없게 돼요.
미틸: 그럼…… 미스라 씨가 어머님께 저희를 지키겠다고 약속한게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미스라 씨를 쓰러뜨리려는 강한 마법사들이 저희를 죽이러 온다는 건가요?
미스라: 네.
미틸: …………. 그런…… 절대로 들키지 않아야만…….
미스라: 아, 동생분이 이제서야 심각성을 눈치챘나봐요. 그럼요, 조심하셔야죠.
루틸: 하지만 그건 북쪽 나라에 있는 강한 마법사들 이야기죠? 오즈 님은 상관없지 않나요?
미스라: 형은 태평한 그대로구나……. 그럴 리가 없죠. 오즈는 저를 죽이고 싶은 게 틀림 없어요. 밤 동안은 제가 더 강해서 오즈를 언제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싫어서 싫어서 견딜 수가 없겠죠. 제가 오즈라면 약속에 대해 아는 순간 루틸과 미틸에게 손을 댔을 거에요.
미틸: 형님, 무서워…….
루틸: 괜찮아, 미틸. 정말이지 미스라 씨, 미틸을 무섭게 하지 마세요.
미스라: 플로레스 형제의 태평하신 분, 좀 더 진지해질 수 없나요?
루틸: 하지만 오즈 님은 저희에게도 리케에게도 다정하고, 미스라 씨도 오즈 님을 덮치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미스라: …….
루틸: 어째서 그런 짓궂은 이야기만 하죠?
미스라: 짓궂음 그런 게 아니에요. 당연한 거잖아요. 모르겠네, 이제……. 밤 사이에 오즈를 덮치지 않는 건 마법을 쓰지 않는 오즈를 쓰러뜨려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루틸: 의미가 없다는 건? 모처럼 오즈 님을 쓰러뜨렸는데 가슴을 펴지 못하기 대문이죠?
미스라: 뭐, 그렇…….
루틸: 그럼 오즈 님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죠. 저희를 쓰러뜨리고 나서 미스라 씨를 쓰러뜨리면 자랑스럽지도 않고,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미스라: ………….
루틸: 미스라 씨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 마음을 믿을 수만 있다면……. 약속 같은 거 안 해도, 누구를 묶거나 안 묶어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미스라: ……제가 불안해한다고 해도?
루틸: 약점인지 아닌지 신경 쓰고 계시는거죠? 아……. 아하하, 봐 미틸. 양말에 구멍이 났어.
미틸: 양말 구멍따위는 아무래도 좋아요! 미스라 씨,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를 지켜줄 거죠? 강하고 무서운 마법사가 저를 덮치면, 미스라 씨가 혼내주실 거죠?
미스라: …………. 당연하죠. 맡겨 주세요.
미틸: ……다행이다…….
미스라: 흐흥.
루틸: 잘 됐네, 미틸.
미스라: ……잘 됐네가 아니에요. 당신도 이런 얼굴이 되면 될텐데. 맨날 트집만 잡고.
루틸: 이런 얼굴이란?
미스라: …………. 뭐일까……. 뭐일까요. 잘 말은 못하겠지만. 당신, 조금 차갑네요.
루틸: ………….
뺨의 상처를 어루어만지며 아서는 깊은 눈동자를 지었다.
아서: ……미스라는 상처를 지우지 말라고 했어. 자기한테 당했다고 오즈 님께 전해달라고.
카인: 아아……. 역시 오즈를 화나게 할 생각이네.
아서: 나에게 고의로 상처를 입힌 자에게, 오즈 님이 화를 낼 것 같아?
카인: 그거야 뭐, 너를 귀여워하고 있으니까. 아끼고 있어.
아서는 겸연쩍은 웃음도 짓지 않고 자신을 책망하듯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아서: ……나는, 오즈 님의 약점으로 취급되고 있는 걸까.
나는 카인과 눈을 마주보았다. 미스라가 오즈와 아서의 끈끈한 유대를 얼마나 눈치채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서로서는, 그렇게 인식되어 버리는 것은 싫겠지. 오즈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카인: 미스라는 오즈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정말로 아서를 인질로 잡을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라. 원래 오즈는 미스라를 경계했었어. 최악의 경우 보르다 섬이 미스라의 무덤이 될 수도 있어.
아서: 오즈 님은 온후하신 분이야. 방위를 위해 싸우긴 하시겠지만, 미스라를 손으로 끝장내지는 않을거야.
아서는 딱 잘라 말했다. 주군처럼 생각하던 기사 카인은 그렇구나, 하고 웃는 얼굴로 머리를 숙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카인은 신중한 눈빛으로 살피듯이 아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12화
카인: 당신에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지만…….
아서: 뭐야.
카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즈는 네가 생각하는 만큼 온건한 남자가 아니야. 경우에 따라서는 미스라를 돌로 만들거다.
카인의 말에 내 등이 팽팽해졌다. 무의식 중에 쿵쾅쿵쾅 심장의 소리가 빨라진다. 과거에 맞닥뜨렸던 무서운 체험을 머리보다 몸이 빨리 떠올리고 있었다. 숨쉬기조차 두려울 정도의 긴장 속에서, 격분한 오즈가 동료 마법사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아서: ………….
그에게 주워지고 자란 아서는 오즈의 선량함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카인의 말에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지만, 참는 듯이 입술을 다물고 똑바로 카인을 바라보았다.
아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네 의견을 듣자.
카인: 오즈가 현자의 마법사를 돌로 만들 뻔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말리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였을 거야.
아서: ……오즈 님이 그런 짓을……. 무슨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닌가? 아무 일도 없는데 공격하려고 하셨나?
카인: ……. 원인이 있었다고 하면, 있지만…….
말끝을 흐리는 카인에게 아서는 안심한 듯 뺨을 느슨하게 했다.
아서: 봐, 누구라도 자신이 위협받을 것 같으면 반격할 거야. 그런 거지.
카인: 기다려. 아직 얘기의 마무리를 짓지 마.
아이에게 기다리라고 타이르듯 카인은 두 손을 가볍게 들었다. 아서는 새침한 태도를 보인다.
아서: 기다리고 있어.
카인: 너의 양부모를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고, 나도 오즈는 겉보기만 무섭고 마음씨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조심해줘. 부탁이니까.
아서: 알았어. 하지만 조심이라고 한다면 나도 카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카인: 뭐야.
아서: 오웬에 대해서.
이번에는 아서가 표정을 다잡았고 카인이 선뜻 눈썹을 치켜올렸다.
카인: 그 녀석이 왜?
아서: 오웬은 카인의 눈알을 빼앗은 상대야. 하지만, 현자의 마법사 중 한 명이기도 하고 수많은 공을 세워주었어. 빼앗긴 눈알도 본인의 힘으로 오웬에게서 되찾고 싶다는 카인의 뜻을 존중하고 싶어. 너라면 반드시 할 수 있어. 그래서 말은 하지 않았어.
카인: 하하, 고마워.
헤죽 웃는 카인에게 못을 박듯 아서는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아서: 하지만 오비시우스 사건 같은 일이 있다면, 카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어. 오웬이 조종하는 케르베로스에게 습격을 받고, 하마터면 카인은 죽을 뻔헀어.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대책을 세워야…….
아서의 심각성과 달리 카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인: 괜찮아. 그 녀석은 뭐랄까…… 조금 알 것 같아.
아서: 어떤 식으로?
카인: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근데 괜찮아. 걱정은 안 끼칠게.
아서 / 카인: …….
아서: ……알았어, 믿을게.
카인: 이쪽의 대사야. ……조심해 줘, 제발.
아서: 아아.
카인: 믿을테니까.
서로 못을 박으면서 아서와 카인은 얼른 시선을 떼었다. 그들은 친구처럼 사이가 좋다. 하지만 서로의 자립심을 존중해 의외로 깊게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개입했다고는 해도 상대방의 의지나 신념에 맡기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보르다 섬으로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아서: ……상처는 지워두는 편이 좋을까?
카인: 아니, 화난 미스라가 오즈의 눈앞에서 다시 할 가능성이 있어. 그러면 위험해져. 아서도 두 번씩이나 아프고 싶지 않잖아.
아서: 그렇네……. 서투른 공작은 그만두자.
카인: 나로서는 빨리 나았으면 좋겠는데. 볼 때마다 엄청 쓴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서: 어째서.
카인: 어째서라니? 정말이지, 심한 말을 하네. 나는 당신이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당신에게 꾸지람을 듣고 싶을 정도인데.
팔짱을 끼며 카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서의 뺨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쓴웃음을 짓는다.
카인: 네 몸에 난 상처는 내가 일을 다하지 못한 징표야. 그래서 볼 때마다 얻어맞아.
아서: 카인의 책임이 아니야.
카인: 나는 내 책임을 지고 싶어. 네가 더 마력이 세다고 해도, 내가 기사단장의 훈장을 박탈당했다고 해도.
아서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나를 바라보며 자랑하듯 말한다.
아서: 현자님, 들으셨나요. 카인은 바로 기사 중의 기사에요. 반하겠는걸. 멋있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카인을 돌아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보며 카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 팔로 가슴을 누르고,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과장되게 큰절을 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기사의 절을 하는 카인을 그림처럼 비추고 있었다.
카인: 이 분수에 쏟아지는 찬사에, 이 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나의 주군이여.
아서는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카인이 그 손을 움켜쥐고 자기 이마에 댄다. 소꿉놀이처럼 시작된 그것은 어느새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충의가 두터운 기사를 내려다보는 소년은 어딘지 초연한 왕자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아서: 너와 함께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같이 나아가자.
카인: 분부대로. 달의 건너편까지라고 해도.
클로에: ……좋아! 그럼 최종 리허설 가보자!
히스클리프: 알았어.
시노: 언제라도 돼.
라스티카: 나도 좋아.
클로에: 시작합니다! 하나——둘……. 그러면 길거리에 있는 블랑셰 님께 연결해보죠! 블랑셰 님!
히스클리프: 네! 길거리의 블랑셰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보겠습니다. 그쪽 분, 잠깐 괜찮으신가요?
시노: 네.
히스클리프: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시노: 잘 지냅니다.
히스클리프: 그쪽 분은 어떠신가요?
라스티카: 잘 지내요.
히스클리프: 이상입니다! 스튜디오의 콜린스 씨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클로에: 네——! 블랑셰 씨, 감사합니다!
히스클리프: 천만에요.
클로에: 길거리 분들도 고마워요!
시노 / 라스티카: 천만에요.
클로에: 고양이는 꽃가루 조심해 주세요! 오늘 하루는 긴팔을 추천해요~! 그러면, 내일 다시! 열사병! 좋았어——! 한 번에 됐다!
시노: 현자도 분명 기뻐할거야. 걔가 보고 싶어 했던 예능을 따라했거든.
라스티카: 보르다 섬 파티의 여흥으로 현자님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네.
클로에: 응! 그때까지, 모두에게 비밀…….
오즈: …….
클로에: ……! 오즈 님……!
시노: 지금거 봤나?
오즈: ……지금 본 것이라고는…….
히스클리프: 그, 촌극이라고나 할까…….
오즈: ……. 열사병…….
히스클리프: 네, 네. 그거요.
클로에: 현자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오즈: ……알았다. 말하지 않도록 하지.
클로에 /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오즈: 연극을 하는 건가.
클로에: 아뇨, 예능이에요.
오즈: 예능…….
라스티카: 맞다, 오즈 님도 예능에 출연하시는 게 어떨까?
히스클리프: 에!? 지금부터!?
클로에: 오즈 님, 예능에 나와주려나.
시노: 일단 해보자. 오즈, 나랑 라스티카를 따라해줘. 클로에, 처음부터 다시.
클로에: 알았어!
오즈: …………. 뭘……?
클로에: 그러면, 길거리의 블랑셰 씨와 연결하겠습니다! 블랑셰 씨!
히스클리프: 네! 길거리의 블랑셰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보겠습니다. 그쪽 분, 잠깐 괜찮을까요?
시노: 네.
히스클리프: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시노: 잘 지냅니다.
히스클리프: 그쪽 분은 어떤가요?
라스티카: 잘 지내요.
히스클리프: 그쪽 분은 어떤가요?
오즈: ……. 잘 지냅니다.
히스클리프: 이상입니다! 스튜디오의 콜린스 씨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클로에: 네——! 블랑셰 씨, 감사합니다!
히스클리프: 천만에요.
클로에: 길거리 분들도 고마워요!
오즈 / 시노/ 라스티카: 천만에요.
13화
미스라: 오즈!
오즈: …….
시노: 미스라다.
클로에: 어쩌지, 미스라에게도 보여졌어.
라스티카: 미스라도 참가하면 어떨까?
히스클리프: 미스라에게 그런 말 못 해! 화나게 하면 큰일이고…….
오즈: ……걱정하지 마라.
히스클리프: 오즈 님…….
오즈: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여.
미스라: 흥……. 번거로운 일은 그만두죠. 오즈, 제 선전포고는 받으셨겠죠. 오늘이야말로 결착을…….
오즈: 예능에 나와라.
미스라: 하?
오즈: 예능.
미스라: 예능?
오즈: 아아.
미스라: 예능이 뭔데요?
오즈: 현자가 기뻐하는 것이다. 너는 평소에 현자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
미스라: 제가 돌봐주고 있는 거죠. 현자님이 기뻐하다뇨?
클로에: 그, 그게 현자님이 원래 세계에 있을 때 봤던 재밌는 거래.
히스클리프: 정확히는 정보 버라이어티라고……. 맛집 리포트 같은 것도 있다고 하는데.
미스라: 맛집 리포트?
시노: 맛있는걸 먹고 맛있다고 하는거야.
미스라: ……당연한거 아닌가?
시노: 이쪽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 저쪽에서는 드물었겠지. 맛있는걸 먹고 맛있다고 한 기록을 일부러 감상하고 있었대.
미스라: 헤에…….
오즈: 해봐라.
미스라: 뭐를?
오즈: 예능을.
미스라: 쉬운 일이네요. 뭐라도 먹고 맛있다고 하면 되나요?
오즈: 잘 지내요. 라고 말하면 돼.
미스라: ……그건 음식에 대해서? 현자님에 대해서?
오즈: ……?
미스라: ……?
오즈: …………. 건강…….
미스라: 누가?
오즈: ……나?
미스라: 나?
시노: 칫, 뭐 하는 거야 저 놈들. 아마추어인가?
클로에: 아아아, 대충 설명해버렸으니까 잘 전달되지 않은걸지도…….
라스티카: 오즈 님! 스튜디오를 향해 잘 지낸다고 말하는 거예요.
오즈: 과연. 스튜디오를 향해 말하면 된다고 한다.
미스라: 스튜디오는 뭔가요? 스튜디오는 산인가요?
오즈: ……아마도.
미스라: 맛있는거 먹으면서 스튜디오라는 산을 향해 잘 지내요 라고 외치면 현자님이 기뻐한다……. 그 사람, 조금 특이하네요.
오즈: 다른 세계의 거주자니까. ……하지만…….
미스라: 뭔가요, 빤히 쳐다보고.
오즈: 너 같은 짐승이 순순히 응하다니.
미스라: ………….
오즈: 현자의 힘을 의지하다 보니 현자에게 마음을 쓰게 되었나. 현자의 공로로군.
미스라: ……웃었나요, 지금.
오즈: 비웃은게 아니다. 어리석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
미스라: 그럼 뭔가요?
오즈: …….
히스클리프: 아, 현자님이다!
시노: 아서랑 카인과 함께인가.
오즈……. 미스라…….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오즈와 미스라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긴장했다. 하지만 다른 마법사와 같이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어쩐지 훈훈한 분위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서도 당황했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카인이 우리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한다.
카인: ……왜 그래? 오즈와 미스라가 저기에 있어?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히스클리프의 목소리가 났다.
히스클리프: 아, 현자님이다!
시노: 아서랑 카인과 함께인가.
히스클리프들의 목소리에 오즈가 천천히 이쪽을 돌아본다.
아서: …….
순간적으로 아서는 상처를 손으로 가렸다. 오즈와 미스라가 화해했다면 싸움의 불씨가 되는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즈는 순식간에 얼굴을 찡그렸다. 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강한 마법사는 마법이 사용된 기척을 느낄 수 있다고.
오즈: …….
오즈가 미스라를 쳐다본다. 그 눈빛은 얼음의 칼날처럼 날카롭고 무섭다. 네 짓이냐? 묻지도 않고 오즈는 마도구인 지팡이를 출현시켜 바로 옆의 미스라를 향했다. 미스라가 입을 연다. 그 입이 소리를 내기도 전에…… 아침 풍경에 천둥소리가 작렬했다.
미스라: ……윽.
뇌격의 기세는 무섭게 미스라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기세 넘친 천둥빛이 뱀처럼 안뜰을 가로질러 나무 줄기를 가르고 돌을 깨뜨려 간다. 클로에들 곁에도 땅을 기어다니는 뱀 같은 번개가 향했다.
아서: 위험해……!
시노: 히스! 내 뒤로!
히스클리프를 뒤로 감싼 시노가 큰 낫을 일섬시킨다. 그것은 거대한 방패와 같은, 희미하게 빛을 띤 마법진의 원을 만들어 번개의 뱀의 기세를 받아냈다.
시노: ……윽.
하지만 완전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천둥의 뱀은 눈에도 띄지 않는 속도로 큰 낫에 휘감겨 간다.
시노……!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라스티카의 주문이 울려퍼진다. 그러자 시노가 만들어낸 마법진에 새의 깃털 같은 빛이 날아올랐다. 방어하는 힘이 보강됐는지 천둥의 뱀은 눈부신 빛을 내며 사라진다.
다행이다…….
마음을 놓을 틈도 없이 나는 긴장으로 소름이 돋았다. 미스라에 대한 공격이 기세가 지나쳐 흘러내린 것조차 이 정도의 위력이라는 뜻이다.
(미스라는……!?)
오즈의 번개에 맞은 미스라는 마법서의 벽을 파괴하고 잔해에 파묻혀 있었다. 날아오른 먼지에 사레가 들리면서 장신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그의 뺨부터 목덜미에 번갯불 자국 같은 애처로운 새빨간 선이 뻗어 있었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미스라: ……콜록……. 하하…… 이제야 당신답게 됐네요.
오즈: '복스노크'
오즈는 무시하고 다시 뇌격을 미스라에게 퍼부었다. 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뱃속이 찌르르 떨린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아서가 날아오는 불타는 나뭇가지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카인을 향해 고한다.
아서: 카인, 현자님을 부탁할 수 있을까!?
카인: 당신은!?
아서: 오즈 님을 막겠어.
카인: 무리야! 접근하지 마! 말려들고 말거야……!
아서: 괜찮아! 현자님, 여기서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카인의 보좌를 부탁드립니다!
말하자마자 아서는 미스라의 곁으로 갔다. 내 어깨를 세게 끌어안으며 카인이 검을 고쳐잡는다.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카인: 아키라, 미안해! 날아오는 초목은 보이는데 사람의 움직임은 안 보여. 보좌를 부탁하고 싶어. 질문에 대답해 줄래?
네, 네………….
카인: 나 말고 널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어…… 없어요! 시노나 라스티카들이 있지만, 거리가 멀어서…….
카인: 알았어. 미스라는 잔해 앞. 오즈는 천둥의 중심, 아서가 향해 가고 있는 앞. 틀림 없나?
네……!
카인: 알았어! 미스라는 오즈의 공격을 받아들이고 있는거야……!?
맞아요! 미스라는…….
미스라: ……윽…….
미스라는 오즈의 벼락을 맞으며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가 버린 일로 화를 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오기의 대가로 그의 두 팔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붉게 물들어 있었다.
미스라가 양팔을 심하게 다쳤어요……! 오즈! 오즈, 이제 그만해 주세요……!
아서: 오즈 님……!
오즈: 오지 마라.
미스라: ……으, 크윽……. '아르시무!'
미스라의 마도구가 섬뜩하고 창백한 빛을 발한다. 수정이 불룩하게 부풀어올라 화끈한 빛을 안에 내뿜고 있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무수한 사람들의 신음소리같은 저음이 끙끙 울리기 시작한다. 무수한 빛 알갱이가 모여 해골 수정구의 안구에서 꿈틀하고 움직였다. 순식간에 본능적인 공포가 몸에 튄다. 발밑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다음에 미스라가 무언가를 했을 때…… 마법서가 통째로 소멸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거대한 벌체 속의 빛의 알갱이로 그려진 듯한 안구가 힐끗 이쪽을 본다.
……와아아아아앗!
무슨 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카인이 내 머리를 껴안고 고개를 숙인다.
카인: 보지 마, 아키라!
아래를 보는데도 눈이 부셨다. 해가 안 드는 지하실처럼 시야가 어둡다. 어둠 속에서 긴박한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다.
라스티카: 위험해! 엎드려……!
클로에: 라스티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히스클리프: ……시노!? 어째서 내 눈을 가리는 거야!?
시노: 오즈, 빨리 막아! 할 수 없다면, 죽여버린다……! 여기에는 히스가 있다고!
오즈: 움직이지 마라.
순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서: 오…………. 윽……!
아서를 마법으로 끌어당겨 오즈가 지팡이를 높이 든다. 미스라가 무슨 짓을 하든 막아낼 자신이 있는 몸짓이었다. 수정해골의 광기어린 하얀 빛을 받으며 미스라가 얄밉게 오즈를 노려본다.
미스라: ……오늘이야말로, 돌로 만들어 주겠어요. 아르시…….
스노우 / 화이트: 싸움은 거기까지……!
그때, 하늘에서 쌍둥이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빗자리에서 뛰어내려 오즈와 미스라의 사이로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없다. 죽음을 각오한 것 같은 긴박감이다. 생잠을 삼키면서 스노우가 조심스럽게 오즈에게 말을 건다.
스노우: 오즈여……. 진정하는게다. 알겠지.
오즈: 비켜라. 미스라를 봉인한다. '거대한 재앙' 이 닥치기 전에 풀면 돼.
화이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작전이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미스라여.
미스라: 당신은 제 온정으로 사는 거예요, 오즈. 지금까지 밤 동안 살아온걸 감사하게 여기세요. 그것도 오늘까지입니다.
미스라가 수정해골을 들고, 오즈가 지팡이를 짚는다. 스노우가 바로 제지한다.
스노우: ……진정해! 진정하라고 말했는데! 오웬, 오웬은 어디인가!? 이놈들이 진심으로 싸우면 우리는 못 말려!
화이트: 브래들리나 피가로의 잔재주가 통할 여가도 없을 것 같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미스라가……! 미스라가 아서를 다치게 했어요……. 오즈에 대한 선전포고라면서…….
쌍둥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스노우: 그런가…… 잘 알겠다. 오즈여, 내 낯을 보아 미스라를 풀어주지 않겠나.
오즈: 비켜.
스노우: 따르라고 말하고 있다. 응징이 필요한건가, 오즈.
스노우는 거만하게 오즈를 노려보았다. 천진난만한 소년의 생김새에 박력이 감돈다. 오즈는 사정없이 싸늘한 시선으로 스노우를 일별했다.
오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
화이트: 스노우, 성급하게 굴지 마! 오즈에게 필적할 수 없네!
스노우: 흥……. 중앙의 마법사 주제에 북쪽의 마법사를 이길 리가 없지.
오즈가 미간을 찌푸린다. 스노우는 냉소를 머금고 마도구인 인형을 공중으로 띄웠다.
스노우: 배은망덕한 자식, 중앙의 땅에 묻어 주마.
오즈: 해 봐라.
아서: 오즈 님, 그만해 주세요!
화이트: 스노우,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냐!
미스라: '아르시무'
스노우와 화이트의 등 뒤에서 미스라가 주문을 외웠다.
14화
힘차게 두 사람이 뒤돌아보기도 전에, 크게 입을 벌린 수정해골이 커진다. 오오오오…… 소리를 높여 그 입에 기분나쁜 빛이 모여 넘쳐흘러간다. 그때…….
피가로: 미스라, 멈춰.
피가로의 목소리가 났다. 미지근하고 냉담한 시선을 돌린 미스라는 표정을 싹 바꾼다. 마도구인 오브를 출현시킨 피가로가 미틸의 옷깃을 난폭하게 잡아 올리고 있었다. 마치 인질처럼.
미틸: 피…………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미스라, 그만해.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지?
호전적인 맹수처럼 미스라는 녹색 눈동자를 번뜩였다. 하지만 갑자기 흥이 깨졌다는듯 숨을 내쉰다. 실소를 머금으며 피가로를 깔봤다.
미스라: 시시해……. 위협해봤자 소용없어요. 남쪽 땅에서 얼빠진 당신이 미틸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개를 움직이며 피가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피가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미틸: ……죽여? 선생님…………?
브래들리: 아하하! 이거 재밌네.
마법사 지붕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장총을 든 브래들리가 안뜰을 내려다보고 있다.
브래들리: 언제, 누구한테 가세해 줄까? 최고의 시간이다.
브래들리의 대사에 장의 긴장이 일제히 고조됐다. 쌍둥이와 피가로가 동시에 낭랑을 띄운다. 브래들리는 강화마법이 특기이다. 도적의 졸개들을 강화했듯이, 이 자리의 누군가를 강화할 수 있다.
피가로: ……네가 나오면 전황이 엉망이 돼.
화이트: 브래들리, 착한 아이로 있어다오! 모범수에게는 사면이 주어진다. 그대는 우리 편이잖아!
브래들리: 글쎄, 어떠려나? 어이, 남쪽의 작은 놈!
미틸: …………윽.
브래들리: 도와줄까?
미틸: ……에…………?
미틸이 눈을 깜빡이고 피가로가 작게 혀를 찬다. 또한 미스라의 옆 경치가 연기처럼 흔들렸다. 눈을 집중시키면 천천히 아지랑이같은 연기는, 사람의 형태가 되어간다. 오웬이다.
카인: 오웬……!
오웬: 그럼 난 피가로에 가세해야지. 그 아이를 돌로 만들고 싶지? 저기,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고마워, 오웬.
미틸: 거짓말이죠, 선생님…………? 거짓말이죠, 피가로 선생님!?
미스라: 거짓말인가요?
오웬: 어떠려나.
피가로: …………생각할 겨를은 없잖아, 미스…….
미틸: …………이거 놔……! 넌 피가로 선생님의 가짜야! 어디론가 가버려…………!
미틸: 도와줘, 브래들리 씨!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스무'
브래들리의 장총이 불을 뿜으며 피가로를 향해 총탄이 발사된다. 피가로가 씁쓸한 얼굴로 미틸을 내리치더니 오브를 높이 치켜들었다. 주문을 외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보다 빠르게 다른 마법사의 주문이 울려퍼졌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드'
시노: 파우스트……!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눈부시고 하얀 빛이 파우스트의 마도구인 거울에서 쏟아진다. 그 빛을 받은 총알은 기세를 잃었다. 이윽고 총알은 빛을 관통해 갔지만 그 사이 피가로가 대피한다. 나는 파우스트를 돌아보았다. 거기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라 샤일록이나 무르…… 네로와 리케, 루틸과 레녹스가 있었다.
리케: 미틸……!
넘어진 미틸을 부축해 일으키려고 리케가 달려간다. 그때 떨어뜨린 물건들이 땅 위로 흩어졌다. 뭐가 떨어졌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다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화사한 장미 향기가 물씬 풍겨온 것이다. 샤일록의 파이프 연기였다.
샤일록: ………….
샤일록은 파우스트와 등을 맞대고 서서 어깨 너머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북쪽의 마법사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등을 돌리고 있는 탓에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샤일록의 손길을 신경 쓰고 있다. 그건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궁금하지만 마법을 써서 억지로 돌아보게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다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어. 그런데 조금 궁금하다.
샤일록: 이런이런…….
샤일록은 우아하고 달콤한 음성으로 속삭이며 요염하게 미소지었다.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요염한 흘림도, 미소를 짓는 입술도,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도, 파이프에 곁들인 손가락도 모두 아름다운 백성 같은 몸짓.
샤일록: 바람이 차가워서 기분이 좋네요. 어젯밤에 손톱을 깎았거든요. 정성스럽게 갈고…… 오늘 밤은 여행이니까, 가게 문을 닫을 거예요. 향기 나는 걸로 골라 정성스럽게…… 반짝반짝하게 했거든요. 후후…….
샤일록은 파이프의 흡입구를 물었다. 천천히 연기를 들이마시고 후 하고 내뿜는다. 아침 이슬처럼 파이프 연기가 떠다닌다. 낄낄 웃으며 그는 귀 뒤쪽을 살며시 어루어만졌다.
샤일록: ……그것 뿐인 이야기.
얘기는 끝났다. 그 시점에서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왠지 전의상실해 있었다. 그렇게 살의에 차 있던 자리가 얼빠진 듯 맥이 빠져 있다.
(뭐…… 뭐야 이거……?)
나는 깜짝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당황한 채로 오즈와 미스라의 상태를 살핀다. 그토록 무서웠던 그들이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맴돌고 있다. 다그치듯 샤일록은 클로에의 이름을 부른다.
샤일록: 클로에.
클로에: 네, 네!
샤일록: 파티용 옷을 모두에게 선보이는 건 어떨까요?
클로에: ……아……! 그…… 그렇네……! '스위스피시보 보이팅고크!'
클로에가 주문을 외우자 마법사들은 순식간에 파티용 의상으로 변했다. 나라마다 디자인 된 그들다움이 남는, 품위있는 옷차림이다. 부서져 버린 안뜰이 팍, 하고 밝은 분위기가 된다. 클로에의 마법을 북쪽 마법사들이라면 무난히 거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샤일록의 뜬금없는 잡담에 전의가 빠져서 당황한 것이다. 나도 살벌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엄청 멋있어요! 모두들, 너무 잘 어울려요! 전부 멋있어……! 클로에, 멋진 의상 너무 고마워요!!
클로에: 천만에!
오즈: …….
미스라: …….
오즈와 미스라도 입을 다물었다. 마도구를 집어넣지는 않았지만, 지금부터 다시 하는 것도 좀…… 하는 분위기였다. 나와 똑같이 밝은 목소리로 피가로가 아서를 불렀다.
피가로: 이리 와, 아서. 여전히 개구쟁이네. 치료해줄게.
아서: 피가로 님…….
피가로: 자, 보여봐. 오즈, 이럴 때는 소독을 먼저 해주는거야. 루틸, 레노. 미틸의 진찰을 부탁해도 될까? 냅다 밀어버려서 미안해.
미틸: ………….
아서가 피가로의 앞으로 이동한다. 피가로가 아서의 뺨을 만지며 치유의 마법을 걸었다. 루틸과 레녹스도 똑같이 미틸에게 달려갔다.
루틸: 미틸, 괜찮아?
미틸: ……괜찮아요…….
레녹스: 중간부터 보고 있었어. 힘냈구나. 피가로 선생님의 연기에 맞춰서.
미틸: 연기……?
레녹스: 미스라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교언이야. 군대에서도 쓰이지. 좋은 연기였어.
미틸: 네, 네! 피가로 선생님이랑 같이 힘냈어요!
루틸: 잘했어. 리케……. 리케, 왜 그래? 리케도 다쳤니?
루틸은 미틸의 옆에 주저앉으며 리케에게 말한다. 리케는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주워들면서 슬픈 듯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리케: 파이를 떨어뜨렸어요……. 모처럼 아침부터 구운건데…….
네로: ……괜찮아.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한 것은 네로였다. 파이를 줍는 것을 도와주면서 리케에게 미소를 짓는다. 파랗게 질려 주저앉는 미틸과 너덜너덜해진 안뜰을 바라보며 네로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나른하고, 부드럽고, 애매한 푸른빛 호박색 눈동자가 검댕이쳐져 있다. 분노를 머금은 눈빛이 선명한 빛과 열기를 머금고 북쪽의 마법사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뜻밖의 박력에 숨쉬는 것도 잊어버린다.
네로: 이렇게 작은 아이들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주다니……. 그렇게 못 지키는 체면 따위는 시궁창에 버려버려!
오즈도 미스라도 오웬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로를 보고 있었다. 브래들리가 작은 소리로 내뱉는다.
브래들리: ……무섭네…….
네로는 묵묵히 파이를 집어들었다. 리케의 머리를 쓰다듬고 파이를 닫은 상자에 건네준다. 그리고 침울한 표정이 되어 파우스트의 그림자에 슬금슬금 숨었다.
네로: ……발끈해서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어……. ……나, 오늘 밤 죽을지도…….
파우스트: 숨지 마. 너는 훌륭했어. 떳떳하게 있어라.
네로: 무리무리……. 저쪽은 못 보겠는데. 오즈랑 미스라, 이쪽 보고 있어?
파우스트: 보고 있어.
네로: 아아, 안 돼. 이미 죽었다…….
파우스트: 훌륭했어.
파우스트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눈치였다. 시노와 히스클리프도 그렇다. 맹활약했던 팀 동료와 하이터치를 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네로를 바라보고 있다.
스노우: ……이런이런. 그러면 보르다 섬으로 가는 것으로 하지. 오즈여, 이번에는 얌전하게 우리의 명에 따라주겠지.
오즈: 너를 따른 적 따위는 없다.
화이트: 자꾸 자극하지 말게나! 오즈여, 보르다 섬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있겠나?
오즈는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오즈: 현자가 원한다면.
아……. 그러면 수고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미스라: 기다려 주세요. 오즈의 마법으로 이동하다니 말도 안 돼요. 제가 공간의 문을 열겠습니다. '아르시무'
아, 고마워요.
미스라: 현자님은 이쪽으로 이동하실거죠.
그렇네요. 그러면…….
오즈: 현자여. 이쪽으로.
에…………!?
미스라: 현자님, 당신은 이쪽이잖아요.
에, 그게…….
오즈: 현자여.
미스라: 현자님.
에에에………….
피가로: 여기 선택지, 중요해. 대난투가 재발하지 않도록 잘 챙겨서 두 사람의 눈치를 봐 줘.
브래들리: 잘못하면 죽을지도.
오웬: 나도 참전해볼까. 현자님, 내 빗자루에 타고 싶어?
무르: 현자님, 인기인이네!
(어쩌지…… 뭘 어떻게 골라도 너무 무서워. 인기인이라는 건 이렇게 심장에 안 좋은거였나…….)
최종적으로 가위바위보로 정해졌다.
15화
우리는 보르다 섬에 도착했다. 오즈와 미스라의 대립을 보고 불안하긴 했지만…… 온통 푸른 하늘과 드넓은 바다를 보는 순간, 확 밝은 기분이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수록 마음속까지 크게 퍼져나가서 몸이 떠오를 것 같아. 바닷새의 울음소리도, 파도 소리도, 눈부신 수면의 반짝임도, 우리를 부드럽게 달래준다. 자연이나 오감이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마법사들은 더더욱 그랬다.
미틸: 예쁘다…….
리케: 예쁘죠? 미틸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틸: 리케는 전에 온 적이 있었죠?
리케: 네!
미틸: 바다는 넓구나……! 저 바다를 보면서 파이도 먹어보고 싶어요.
리케: 맛있었나요?
미틸: 엄청 맛있었어요!
아서: 해변에서 노는 건 재밌을 것 같네. 하지만 그 전에 성주 디안공에게 인사를 드리자. 조금만 어울려 줄래?
미틸 / 리케: 네!
우리는 보르다 섬에 있는 작은 보르다 성으로 이동했다. 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디안 씨와 만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서: ……디안 님이 부재?
대신: 아서 전하, 대단히 죄송합니다. 엊그제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디안 님은 서쪽 왕궁으로 소환되셨습니다. 내일 낮에 돌아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아서: 그런가. 그러면 취임식도?
대신: 네, 연기되었습니다. 식전에 참석해주실 분들은 성에서 방을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서 전하, 그리고 현자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만, 있는 힘껏 모시겠습니다. 부디 편히 쉬어주십시오.
디안 씨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식을 치룰 수 없다. 그러니 그때까지 성에서 쉬고 있어달라는 뜻이었다.
아서: 현자님, 괜찮으신가요?
저는 전혀 괜찮아요. 아서야말로 괜찮나요? 내일 예정은…….
아서: 내일 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문제 없습니다. 마법사는 편리하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으니까.
클로에: 현자님! 방의 준비가 될 때까지 성 안뜰에서 기다려달래. 엄청 예뻐! 식전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던 곳 같아. 전망이 엄청 좋아!
바다가 보이나요?
클로에: 보여! 바다의 저쪽까지 보여! 빨리 와, 현자님!
와아! 멋지네요…….
집사: 원래대로라면 오늘 이곳에서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만…….
아서: 왕궁에서의 갑작스러운 호출은 어쩔 수 없지. 개의치 말게.
집사: 너그러운 말씀 감사드립니다……. 가벼운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이곳에서 편히 쉬어주십시오. 이 성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장소…… 보르다 섬의 절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입니다.
집사님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어떤 호화로운 가구도, 고급스러운 벽지도 이 경치에 손색은 없을 것이다. 하늘이나 바다, 흰 파도나 흰 구름, 새의 날개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이었어. 성의 안뜰로 나가는 마법사들의 옆모습도 평소보다 편온한 것 같다. 나는 웃으며 모두에게 제안을 했다.
회의…… 할까요.
카인: 일전에 도중에 끝났던 회의?
네. 조금 편히 쉬었다가 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런 것보다…… 조금 편하게 얘기했으면 좋겠어서.
마법관에서 싸운 지 얼마 안 됐어. 어쩌면 대화는 튀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왠지 지금이라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도 소리는 기분 좋고, 바다와 새 소리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예쁜 곳에, 예쁜 동료들과 함께 있다.
스노우: 흠…….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화이트: 의제는 '현자의 힘에 대하여' 였던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약간의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회의 전에 설렌 적은 없다. 떨리고 귀찮고 피곤해. 하지만 이 회의에서는 달랐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어. 미완성이지만 내 의견을 전달하고 싶어. 우리의 중요한 일이니까. 우리가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마법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내 의지로 알고 싶다.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현자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언제 쓸 수 있고, 언제 쓸 수 없는지……. 특히, '거대한 재앙' 의 상처에 곤란해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나는 샤일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샤일록의 '거대한 재앙' 의 상처의 얘기를 좀 해도 될까요?
샤일록: 네, 상관 없습니다.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샤일록의 '거대한 재앙' 의 상처는 본 사람도 있겠지만, 심장이 타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 보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어요. 현자의 힘으로 상처를 고칠 수 있다면 샤일록이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낫게 해주고 싶어요.
내 말을 들은 플로레스 형제 두 사람이 가슴을 짓누르며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샤일록의 아픔에 공감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레녹스가 고개를 숙인다.
그걸 위해 어떤 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고 싶은데…….
라스티카: 현자님, 신비의 수수께끼를 풀자면 저희가 사랑하는 천재, 무르가 나올 차례가 아닐까요?
그렇네요……. 무르, 알고 있는게 있나요? 뭔가 힌트가 될 만한 것이라도…….
라스티카의 제안에 무르를 시선으로 찾는다. 무르는 마도구인 반지를 들고 성 안뜰 끝에서 끝까지 큰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다. 그의 궤도를 따라 안뜰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펼쳐진다.
무르: 모르겠어!
공중제비를 하는 무르와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무지개 다리. 그 너머로 펼쳐진 온통 푸른 바다. 돌고래처럼 높이 뛰면서 무르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무르: 하지만 현자님, 수수께끼의 해명에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을 잘 분석하는 거야!
분석…….
무르: 맞아! 무지개의 기슭은 낯익은 내 집! 흔한 경치에 힌트가 있어!
가벼운 샌드위치를 물고 있던 브래들리가 입술을 닦으며 물었다.
브래들리: 일리가 있네. 어이, 현자. 여태까지 현자의 힘이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와 있었을 때지?
'거대한 재앙' 의 상처를 일시적으로 낫게 한다는 의미에서는, 오즈와 미스라였어요.
시노: 오즈와 미스라……. 마력의 강도가 관계 있는 건가?
시노는 눈썹을 찡그렸다. 의외일 정도로 진지하게 그는 나에게 물었다.
시노: 오즈나 미스라만큼 마력이 강하지 않아도, 액재의 상처를 무효화 시킬 수 있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의 상처가 아물 정도로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이 없어요. 오즈와 미스라 때도 성공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아서: 과연……. 그 밖에 뭔가 짚이는 것이 있나요?
그렇네요…….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 번 지나간 경치를 잘 떠올리고 관찰해보려고. 내 손바닥을 바라보며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손을 잡고 있으면 성공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미스라: 확실히, 항상 손을 잡고 있을 때 잠이 오죠. 오즈, 당신도 말했었잖아요. 현자님이랑 맞닿아 있었다고.
조금 전의 소동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미스라는 자연스럽게 오즈를 돌아보았다. 오즈는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적의를 돌리지 않고 조용히 머리를 숙인다.
오즈: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맞닿아도 마법을 쓸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미스라: 현자님은 변덕쟁이네.
미스라에게 듣고 싶지 않은데요…….
루틸: 손……. 힘을 주는 모양인가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루틸이 속삭였다. 눈부시게, 눈동자를 가늘게 뜨면서.
루틸: 미틸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말해서 어머니의 배에 닿았었어요. 제 마력을 쏟아부어서 미틸을 살려달라고. 어머니가 아닌 아기를 생각하라면서.
미틸: 형님이 저를 살려주셨을 때의 일이군요…….
루틸: 응.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눈을 내리뜨는 미틸의 어깨를, 루틸이 살며시 끌어안았다. 간지러운 듯 미틸도 웃는다.
일단 해보자고. 서쪽 학자도 말했잖아. 가설과 검증이다.
피가로: 그게 더 빠를지도 몰라. 실험하기 쉬운 상처의 소유자라고 하면 카인이려나?
카인: 그럴지도. 하지만 너희는 지금 보이고 있어.
히스클리프: 아침에 만지면 거의 하루 정도는 계속 보인다고 했었지.
카인: 아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나서 안 보일 때도 있는데, 대개 잠들기까지는 보여.
시노: 성에서 일했던 녀석들 모두의 모습은 아직 다 안보이잖아.
카인: 그렇네. 기색은 느껴지지만…….
클로에: 카인, 대단하지. 고양이나 개처럼 소리에 민감해.
카인: 사람의 모습이 안 보이니까, 낌새는 예전보다 더 많이 느끼게 됐어. 액재로 입힌 상처도 나에겐 나쁘지만은 않아. 아침은 역시 외롭지만 말이야.
활짝 웃고 있는 카인의 눈으로 본 세계를 상상해 본다. 여기저기 소리는 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중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카인: 오웬은 건드리지 않아도 보여. 저 녀석의 눈이라서 그런걸지도.
과자를 먹고 있던 오웬은 힐끗 카인을 바라보았다. 엶은 웃음을 머금고 다리를 꼰다.
오웬: 나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은 어떤 기분?
카인: ……너가 잘 보여. 너의 시선이나 표정으로 판단할 수 있어.
오웬: 하? 멋대로?
카인: 어쩔 수 없잖아. 너밖에 안 보이니까. 멍하니 있을 때는 안심이지만 능글능글할 때는 위험해 보이고…….
오웬: 멍 때리기 같은 거 안했어. 나는 북쪽의 마법사라고.
카인: 그러면 뭐라고 해야하지, 가만히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야.
카인이 본 세계의 모습에, 나는 새삼 그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인이 외톨이의 세계에 있는 것이 괴롭다. 그래서 오웬이 보이는 건 (둘 다 본의 아니게 보이는 거겠지만) 다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손을 잡아볼까요.
카인: 아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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