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리고 오늘,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의장은 라스티카가 맡게 되었다.
라스티카: 그러면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클로에: ……현자님, 괜찮을까……. 라스티카는 탈선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의장이 되어 주어 준다고 하셔서, 우아하고 간단하게 정리해주셨으면 하고…….
클로에: 과, 과연……. 라스티카가 의장으로 뽑혀서 기쁘지만, 걱정이네……. 라스티카, 힘내……. 부디, 잘 되길……!
의장석에 앉은 라스티카는 온화하게 모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코 위압하는 것도 아니고,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았다. 여러 악기의 주자의 안색을 상태는 어떤가요? 하는 느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서 그는 입을 열었다.
라스티카: 저희에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건 결코 비관적인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진지하게 임하지 말고 잠결에 하다가 실패하면 굉장히 후회하는 것들이죠.
라스티카: 우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재앙' 이 닥쳐서 마법사가 되물리지 못하면 이 세상은 멸망한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건 혹시나 하는 얘기죠. 만약의 이야기는 진짜가 되기 어렵습니다. 홍차가 식기 때문에 홍차가 식지 않도록 포트커버를 준비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만약 홍차가 도망치기 시작한다면? 그때를 위한 대책은 세우지 않습니다.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도망가면 새 홍차를 끓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세상의 멸망이란 다르죠.
라스티카: 저희들은 이 별마다 흩날리게 되거나, 불타오르거나, 무엇인가에 서로 붙거나 하여 은하를 떠도는 별들의 부스러기가 됩니다. 참고로 이것은 위대한 과학자 무르 하트 씨가 저서에서 말한 설입니다. 저희 몸을 만들고 있는 것과 별을 만들고 있는 것은 거의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마법사의 몸이, 말인가요……?
라스티카: 마법사도 인간도 광석도 식물도요. 모든 것이 같은 곳에서, 같은 걸로 태어났다는 설입니다. 재밌죠. 아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버렸네요.
오웬: 서론이 길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재미없다는 듯이 오웬이 다리를 꼬았다. 오웬은 처음부터 지루해 보였다. 소파에 누울 정도로 깊숙이 기대어 생크림이 가득 담긴 사발을 안고 있었다. 저 걸쭉한 크림이 없었다면 오웬은 진작 여기서 사라졌을 것이다. 오웬의 말을 들으며 라스티카는 기뻐했다.
라스티카: 살고 싶다는 얘기야.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오웬은 신기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라스티카가 주문을 외우자 테이블 위에 무수한 컵케이크가 나타났다.
라스티카: 이 컵케이크는 네로에게 부탁해서 구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후회되는 문제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여러 개 있으면 피곤해져. 재미있는 애물단지는 환영이지만 피곤한 애물단지는 다가가고 싶지 않아요.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그러니, 장난 좀 섞어보죠.
라스티카: 이 컵케이크 안에는 한 개당 한 장의 카드가 들어있습니다. 그 카드에는 지금까지 회의에 나온 문제들이 적혀져 있습니다. 오웬이 생크림을 듬뿍 묻혀서 먹은 컵케이크 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보죠. 저희 다 같이. 일단 하나부터.
오웬은 이상한 표정으로 라스티카를 바라보았다. 밝은 목소리를 낸 것은 루틸이었다.
루틸: 멋져! 재밌을 것 같아!
작은 새소리가 밤을 아침으로 바꾸듯 그 한마디로 자리가 밝아졌다. 카인도 마음에 든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카인: 괜찮잖아. 보통 문제 해결이라는게 의견을 내고 그중에 우선 순서를 정하는건데, 우린 지금까지 그걸로 잘 못 했으니까. 우리들의 방법이 있을거야.
히스클리프: 하지만 장난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고 했어.
시노: 이 다음에는 진심으로 임하면 돼. 갈 곳이 정해지면 달려갈 수 있어. 이제 회의는 질렸다고.
파우스트: 뭐, 괜찮지 않나. 나도 엣날에 잘 안 될 때는 제비뽑기로 정하고 그랬었지.
네로: 구울 때는 몰랐는데, 그 카드에는 그런 게 적혀 있었구나.
미스라와 브래들리조차 얼굴을 마주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다.
브래들리: 바보 같아. 빨리 골라, 오웬.
미스라: 컵케이크, 잔뜩 먹을 수 있게 돼서 잘 됐네요.
오웬은 눈썹을 더 많이 찌푸리고 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장난기 있는 얼굴은 아니다. 경계하거나 비웃거나 당황하거나 말주변이 좋은 그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무시당하는 건지 존중받고 있는 건지 헷갈려 하고 있는 걸지도.
(이런 훈훈한 공기로 주목받는 일은 경험이 없는 걸지도…….)
소파 위에서 볼과 한쪽 무릎을 껴안고 오웬은 날카롭게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그는 냉소를 선택한 것 같았다.
오웬: 나를 어릿광대 취급할 셈?
라스티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라스티카: 아니야. 마침 네가 생크림을 안고 있길래.
오웬: 그럼 이런 거 필요 없어.
오웬은 난폭하게 볼을 옆으로 밀어붙였다. 그릇이 뒤집혀 크림이 주변인의 배에 흩뿌려진다.
브래들리: ……윽, 너 이 자식……! 옷이 크림으로 더러워 졌잖아!
카인: 오웬, 왜 그래. 크림도 컵케이크도 좋아하잖아.
카인이 몸을 내밀며 오웬의 얼굴을 살폈다. 색이 다른 오웬의 눈빛이 점점 살기를 내뿜는다.
오웬: 시끄러워. 죽여 버린다.
카인: 어째서 화내는 거야. 그냥 물어보고 있는 것 뿐이야. 크림도 좋아하고 컵케이크도 좋아하면서 뭐가 마음에 안 들어? 뭔가를 고르는 것도 싫어하지는 않잖아?
오웬은 연신 눈을 깜빡이며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두리번거렸다. 피도 흘리지 않았는데 그는 상처를 입은 채 몰린 것 같았다. 카인이 뭐라고 말을 꺼낸다. 그 전에 브래들리가 한숨을 내쉬며 사발을 한 손으로 다시 안았다.
브래들리: 내가 골라줄게. 어차피 크림으로 더러워졌고.
다음 순간, 연기처럼 오웬은 사라졌다. 라스티카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다운 솔직한 슬픔을 떠올린다. 컵케이크 하나를 집으며 브래들리가 말했다.
브래들리: 그런 얼굴 하지마. 네 게임은 나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어울려 주지.
라스티카: 하지만, 오웬이…….
브래들리: 너 따위에게 상처받지 않았어. 상처 입혔다고 생각되면, 그 얼굴 좀 그만두라고.
눈을 깜빡이는 라스티카를 보며 브래들리는 한짝 뺨을 느슨하게 했다. 그것은 비꼬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희미하게 우정이나 경애가 보였다.
브래들리: 네놈은 싫어하지 않아. 누구나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싶어하지 않는 보물도 애정도 네놈은 쉽게 하지. 그 녀석은 재주가 많고 배짱도 좋아. 하지만 북쪽의 긍지와는 궁합이 안 맞아. 우리는 뭘 구할 때는 뺏은 거지 주운 것이 아니야. 정신을 차릴 정도로 갖고 싶었던 것도, 베풀어지는 순간에 평생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라스티카: ……그건, 어째서? 뭔가 정해진 것이라도 있니?
브래들리: 어째서? 하하……. 서쪽의 남자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 건가.
브래들리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안타까운 쓴웃음을 지었다.
브래들리: 어째서일까. 전하기가 어렵네. 피가 끓을 정도의 굴욕과 절망인데.
브래들리는 가벼운 몸짓으로 달래듯 라스티카의 팔을 뿌리쳤다.
네로: …….
그런 브래들리를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네로는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있다. 브래들리는 컵케이크를 뜯어 먹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웬: '쿠아레 모리트'
브래들리: 우왓……!?
브래들리는 갑자기 나타난 세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큰 개……. 케르베로스에게 밀려 넘어갔다. 그의 손을 떠난 컵케이크가 허공으로 날라간다. 그걸 캐치한 건 아까 사라졌어야 할 오웬이었다. 오웬은 신이 난 채 웃고 있었다.
오웬: 후후……. 뺏어줬다. 도적의 수령이라면서, 불쌍한 브래들리. 내 거에 손을 대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브래들리: 너, 이 자식…….
케르베로스에게 짓눌린 브래들리에게서 생크림 볼을 집어든다. 거기에는 약간의 크림이 남아 있었다. 컵케이크에 남은 크림을 듬뿍 바르며 오웬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오웬: 아——앙.
라스티카: 후……. 먹어줘서 다행이다.
카인: 어떻게 된 일이야……? 브래들리로부터 빼앗은 거니까 괜찮다는 건가……?
설마 북쪽의 마법사들……. 빼앗다고 하는 체면을 취하지 않는 이상, 한 평생 이런 일을 반복하는 건가요……?
무르: 어떤 사람의 상식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몰상식! 어떤 사람의 어리석음은 어떤 사람의 고결함! 재미있네!
무르는 달관한 철학자 같은 말을 했다. 거대한 개의 짖는 소리가 울리는 실내에서 전전긍긍한 채 컵케이크를 입에 문 오웬을 쳐다본다.
오웬: 우물우물…….
컵을 베어 문 오웬은 카드를 깨문 것 같다. 이빨로 낀 채 카인 쪽을 향한다.
오웬: 이.
카인은 얼른 카드를 꺼내 손에서 펼쳤다.
카인: 너, 조금 물어뜯었잖아…….
오웬: 어쩔 수 없잖아. 뭐라고 써져 있어?
카인: 혀…… 현자…… 한다. 현자님의 힘을, 확인한다……. 현자님의 힘을 확인한다, 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스무!'
오웬: 어이. 내 개를 뚫을 셈?
브래들리: 네 녀석의 배때기를 열어줄까!?
미스라: 하…….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요……. 뭔가요? 시끄러운데…….
스노우 / 화이트: 이봐——! 싸우지 마——!
북쪽의 마법사들이 조율을 시작할 것 같다. 북쪽 마법사들의 싸움은 매번 장렬했다. 마법사는 몇 번이나 반 쯤은 파괴되었다. 언제 말려들어서 다칠지 몰라. 하지만 익숙함이란 대단한 것으로……. 총성이나 포효나 눈보라나 천둥소리를 들으며 대화는 예사롭게 계속되고 있었다.
루틸: 축하합니다! 회의 주제는 '현자님의 힘을 확인한다' 로 정해졌군요!
시노: 남은 컵케이크 먹어도 되나?
히스클리프: 잠깐, 회의 끝나고 나서.
시노: 나능 힝냉어.
히스클리프: 벌써 먹고 있잖아……!
리케: 현자님의 힘……. 현자님의 힘이라면 밤에는 마법을 쓸 수 없는 오즈가…… 현자님이 계시면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그런 힘 말씀이시군요!
미틸: 미스라 씨도 현자님이 있으면 잘 수 있다고 들었어요. 잠들지 못할 때도 있는 것 같지만…….
피가로: 즉, 그 조건을 알아보겠다는 거지. 뭐, 한 개 정도 결론에 도달한 의제가 슬슬 있었으면 좋겠고.
레녹스: 이쯤에서 제대로 추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무르: 그러면 현자님의 연구다! 나, 연구 정말 좋아해——!
에…… 저에 대한 연구……?
무르: 잔뜩 실험하게 해 줘!
실험……!?
샤일록: 걱정 마세요. 현자님. 이래보여도 무르는 천재 과학자니까요.
샤일록의 가끔씩 보여주는 우리 애 자랑 같은 건 대체 뭔가요……?
아서: 네로, 이 컵케이크를 받아도 될까.
네로: 물론, 왕자 씨. 당신, 어디로 가는 거야?
아서: 미안하지만 공무가 있어서……. 현자님의 힘에 관한 회의니까 참석하고 싶었는데…….
스노우: 아서는 전의 현자랑도 가까웠었지. 꼭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화이트: 그러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지.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일세.
오즈: ……현자의 힘에 대해 빨리 알고 싶다.
화이트: 오즈, 드디어 말했구먼.
아서: 오즈 님, 죄송합니다…….
오즈: 너를 탓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다 모일 수 있는 날은 언제지?
다음은 아마……. 취임식에 초대받은 보르다 섬일까요?
오즈는 머리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오즈: 거기서 얘기하지.
시노: 제정신인가? 바캉스랑 파티를 회의와 섞는다고……!?
네로: 이봐! 그만 둬, 시노! 상대가!
파우스트: 파티라고 해도 뭐 할 것도 없고, 난 상관 없는데.
라스티카: 멋져! 아름다운 경치에 둘러싸여 있다면,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겠죠!
클로에: 의상도 새로울거야! 난 파티를 위한 모두의 의상, 열심히 만들게!
루틸: 와——! 기대된다!
브래들리: 정말이지, 오웬 때문에 이런 꼴이 됐네. 아—— 아——. 셔츠까지 더러워졌고. 어쩔 수 없지, 갈아입어야겠다.
레녹스: 브래…….
브래들리: 어이, 남쪽의 양치기.
레녹스: …….
브래들리: 사람의 옷,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거 아냐? 돈 뜯어버린다.
레녹스: 아……. 미안해.
브래들리: 흥. 좋아, 완벽해.
레녹스: ……몸에 상처가 많네.
브래들리: 뭐 그렇지.
레녹스: 왜 고치지 않는 거야. 너라면 고칠 수 있을 텐데.
브래들리: 그런 거 당연하잖아. 잊고 싶지 않으니까다.
레녹스: …….
7화
파우스트: 또 회의가 길어져서 수업시간이 줄어버렸다……. 다음 임무에 갈 때까지 이것만큼은 알려주고 싶으니까 머리에 집어넣어.
시노: 다른 나라 애들은 수업 같은거 안하던데.
파우스트: 선생이 학생을 지켜낼 자신이 있는 거지. 나한텐 없어.
네로: 그렇게 겸손 떨지 말고.
파우스트: ……진짜야. 나는 학생들에게 상처만 입히고 있어. 감싸지 않아도 돼. 선생님 역할을 자처하는 이상 책임은 나에게 있다.
히스클리프: 선생님은 나쁘지 않아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여러 번 위기를 넘기고 있습니다. 아서 님이랑 클로에랑 루틸에게도 동쪽 나라는 많이 배워서 좋겠다고 들었어요.
시노: 우리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이제 필기 시험은 그만 둬.
파우스트: 너의 지시는 받지 않겠다.
시노: 이쪽의 대사야. 저번에도 이것만큼은 머리에 집어넣으라고 했었잖아. 이것만큼이 너무 많아.
파우스트: 그런 건 무한히 있어. 내가 아는 지식을 전부 다 알려주고 싶을 정도야. 너희들도 무모한 짓을 하니까……. 치유 마법에 대해서도, 봉인이나 방위에 대해서도 가르치겠다. 너희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수업을 짤 때고 있고, 아닐 때도 있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는지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르면서 확인해야 돼. 그러니까 우리는 시험을 치른다.
시노: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파우스트: 다른 나라의 선생님은 학생들을 지킬 수 있어.
시노: …….
파우스트: 오즈나 쌍둥이, 피가로만큼 압도적인 마력도 역전 경험도 없어. 샤일록처럼 재주도 없고. 훗……. 너희들은 운도 없구나. 가장 다칠 가능성이 있는 자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니.
시노 / 히스클리프 / 네로: …….
파우스트: ……너희들의 부상을 너희들이 운이 나쁜 탓으로 돌려버렸어. 미안해…….
히스클리프: 선생님……. 저기……. …….
네로: 아니아니, 그런 거……. 그야……. 봐……. 그치……?
시노: 너희들, 위로하는 거 서툴어.
히스클리프: 서, 선생님은 약하지 않아요.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남쪽 나라 선생님보다는 분명…….
시노: 아니, 피가로는 강해. 본인은 자신이 없는건지 약하다 약하다 거리지만.
히스클리프: 그런거야?
시노: 아아, 꽤 힘이 있구나 하고 격려했더니 기뻐했었어.
파우스트: 기분 나쁜 사내다…….
시노: 그것보다 파우스트가 샤일록 이하일 수는 없잖아. 나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파우스트: ……나도 순수하게 서로 죽이기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서쪽의 마법사와는 싸우고 싶지 않아.
네로: 알 것 같네.
시노: 어째서.
네로: 너희들, 서쪽의 마법사와 싸워 본 적 없어? 싸우기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야. 서로 죽이고 있었을텐데, 어느새 연애가 되어 있다고.
시노: 뭐야 그게.
히스클리프: 무서워…….
네로: 서쪽의 마법사와 싸워서 자기의 본래 힘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좋아도 7할, 최악의 경우 3할 밖에 실력이 안 나와.
시노: 그러면 우리 파우스트가 최약체라는 건가?
히스클리프: 시노……!!
파우스트: ………….너희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네로: 괜찮아! 괜찮다니까!
히스클리프: 선생님은 강해요! 제 안에서는 파우스트 선생님이 세계 최강의 마법사에요!
네로: 과해 과해. 숟가락 정도.
시노: 어이, 파우스트. 기 죽지 마. 난 선생님이 너라서 좋아.
파우스트: …….
시노: 오즈랑 같은 나라에 있으면 눈에 띄는 활약을 못하니까 공훈 세우기가 좋지. 동쪽은 최고야.
파우스트: …….
히스클리프: 전혀 위로가 안 돼, 시노!!
네로: 선생, 천성이 착하니까 몰아 붙이지 못해!!
파우스트: 시끄럽네. 그럼 너희가 위로해봐.
네로: ……알았다. 파우스트, 앞으로 성실하게 수업을 들을게.
파우스트: 네로……. 지금까지는 진지하게 받지 않았다는 건가.
네로: 그럭저럭 성실하게 하고 있었어! 그래도 그거야, 시험……? 100점 맞아줄게. 맡겨둬.
파우스트: 정말로?
네로: 아아. 그런데, 시험지는 완성되면 어디엔가 보관해두는 거지?
파우스트: ……보관이 뭐?
네로: 아니, 그……. 보관해 두는 편이 훔쳐보거나 하지 않으니까 안심 되지 않을까 싶어서.
파우스트: 누구한테?
네로: ……나쁜 학생?
파우스트: 우리한테 나쁜 학생은 없다만.
네로: 네…….
히스클리프: 선생님!
파우스트: 네,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앞으로 절대 안 다치도록 조심할게요. 시노에게도, 네로에게도 조심하도록 시키겠습니다.
파우스트: 히스…….
시노: 하지만 강한 적에게 습격 당하면 상처 없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히스클리프: 그런 때에는 선생님에게 안 보이게 숨겨서…….
파우스트: 히스.
히스클리프: ……네.
파우스트: 틀려. 그게 아니야.
히스클리프: 네…….
파우스트: ……하아……. 고마워, 너희들……. 신경 써줘서.
레녹스: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레녹스……. 무슨 일이야, 수업 중인데…….
레녹스: 다리를 봐도 괜찮을까요.
파우스트: …….
시노: 오미아시가 뭐야?
히스클리프: 다리를 말하는 거야. 어른을 향해서 공손하게 말할 때 써.
시노: 멋있네. 따라해야지. 레녹스는 멋있는 말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도움이 될 거야.
히스클리프: 너, 레녹스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파우스트: ……될 리가 없잖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레녹스: ……파우스트 님…….
파우스트: 아무튼, 나중에 해.
레녹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방해해서.
파우스트: 됐어.
레녹스: 실례하겠습니다.
네로: ……무슨 일이 생겼다면, 수업은 다음에…….
파우스트: 괜찮아.
네로: 땡땡이 치고 싶은 건 아니고.
파우스트: 알고 있어. 자, 시작한다. 가득 채울 수 있는 데까지 담아.
시노 / 히스클리프 / 네로: 네…….
피가로: 미네이타 유성군인가. 식상하긴 하지만 이렇게 여럿이서 구경하면 재밌을 것 같네.
오즈: …….
피가로: 너는 기억 안 나지. 그것도 분명 미네이타 유성군의 밤이었어.
오즈: ……그것이란?
피가로: 네가 아서를 죽일 뻔한 날 말이야.
오즈: …….여러 번이다.
피가로: 그랬었지. 넌 정말 심했어. 아서가 고열이 나서 가위에 눌리는데 얼음물에 담궈버리고.
오즈: 너는…….
피가로: 뭐?
오즈: 너는 아서를 갖고 싶어했다.
피가로: 갖고 싶어했어? 내가?
오즈: 그래. 아서를 돌로 만들 때랑 똑같은 질과 양의 마나석을 줄테니 아서를 달라고 했었다.
피가로: 아아……. 그건 네가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였었으니까.
오즈: …….
피가로: 그때도 호되게 꾸짖었겠지. 변덕스럽게 아이를 주워 사육하고 돌로 만들다니 너무 잔인하잖아. 나는 비교적 작은 목숨을 좋아하니까,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아서가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볼 수가 없었어. 고아를 키운 경험도 여러 번 있었고 말이야. 네가 돌을 쓰기 위해서였다면 돌을 주고 아서를 구하려고 했었어.
오즈: ……그런가.
피가로: 그야, 너무했었잖아. 아서에게 원망을 듣지 않은게 신기하네. 방에 가둬놓고 밥도 안 주고…….
오즈: 쌍둥이가 그런 식으로 말을 키우고 있었다. 마나석은 놓여 있었어.
피가로: 그걸로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쁜 애네…….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더 힘들어. 나 같은 착한 마법사가 그 아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오즈: …….
피가로: 부정하지 않는건가.
오즈: 부정?
피가로: 상냥한 마법사 말이야. 위선자 행세 하지 말라면서 뭐라 안 하네.
오즈: 아니……. 너는 옛날부터 자비로웠지.
피가로: …………뭐 그렇지. 잔인한 마왕이 더 이상 죄를 쌓기 전에 아서를 데려와 키우려 했어. 루틸도 가까이 있었고. 하지만 넌 놓지 않았다.
오즈: …….
피가로: 결과적으로는 잘 됐지. 아서는 많은 아픔을 알았지만 순수함은 손상되지 않았어. 하지만 13살이 되었을 때 넌 아서를 놓아줬지. 어째서.
오즈: ……너는?
피가로: 뭐가?
오즈: 파우스트는 너의 제자잖아. 어째서 파문한거지.
피가로: …………너는 인생에 있어서 관계를 가진 사람의 수가 적어. 그러니까 모를 테지만…….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야. 맺었다고 믿었던 끈은 어느새 풀려져 있어. 드문 만남, 특별한 연결고리로 보이던 것도 몽환의 우월함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야.
오즈: 흔히 있는 일인건가.
피가로: 맞아.
오즈: 네가 제자를 만들어서 나중에 혼자가 되어도, 흔히 있는 일인건가.
피가로: 오즈.
오즈: …….
피가로: 정서가 싹트기 시작한지 고작 십수 년 주제에 나한테 물어보는 건 그만둬. 어차피 넌 아무것도 몰라.
오즈: ………….
오즈: 그런가.
스노우: 호호호, 다 같이 보낼 보르다 섬이 기대되는구먼.
화이트: 호호호, 기대되는구먼. 기대 돼.
무르: 나도 기대 돼!
샤일록: 그런데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은 왜 그런 모습으로……?
스노우: 훗……. 보르다 섬 모래 사장에서 귀여운 우리를 만끽할 예정이니까일세.
화이트: 오늘 밤은 그만큼 어른을 즐길 예정이지. 샤일록, 늘 먹던 걸로.
샤일록: 늘 먹던 칵테일 말씀이시죠.
무르: 어른의 맛이야?
샤일록: 논알코올입니다.
스노우 / 화이트: 하지만, 술은 쓴 걸.
샤일록: 후후, 여전히 신기한 매력이 넘치시는 분들이네요. 사랑스러운 듯한, 무서운 듯한…….
무르: 제대로 된 것 같고,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은!
샤일록: 앉으세요, 무르.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무슨 뜻이었죠? 생명이란 무질서한 것이지. 무질서라는 세계의 질서에 질서를 유지하려고 해.
스노우: 흥미롭군!
화이트: 어려운 얘기구먼.
무르: 세계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어.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컵에 들어간 물은 돌아오지 않아! 부셔진 별도, 부셔진 얼음도 돌아오지 않아. 조각들이 부딪혀서 서로 붙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흩어진 쪽을 향해 무질서하게 행동하려고 하지.
스노우: 호오.
화이트: 흐응.
무르: 세계의 규칙에 반대해 형태나 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목숨 뿐. 화이트도 그래! 사라져갈 영혼이었을텐데 스노우랑 이어졌어! 이건 엄청 재밌어! 화이트는 어때? 재밌어?
샤일록: 무르, 그만둬요.
화이트: 호호호. 괜찮네, 샤일록. 재미있냐 재미없냐 하고 묻는다면 재밌다고 대답하는 것이 맞겠지. 살아 있을 때부터 나는 변해 버렸다. 나는 스노우가 붙잡아 두지 않으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지. 그래서 스노우를 찾게 됐다. 스노우도 마찬가지일세. 내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 버리지 않을까 하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호호호…… 타인이란 생지옥이구먼! 예쩐에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나 흐트러지다니!
스노우: ……그렇지 않네. 우린 하나이지 않은가. 우리들, 육체는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일세.
무르: 마음이 하나!? 두 사람은 서로를 죽였는데?
샤일록: 무르.
무르: 마음을 잘못 먹어서 서로 죽인 거 아니야? 틀려?
스노우: 지혜자 무르여, 그대가 말한대로일세. 하지만 우리의 이 감정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화이트: 이봐, 스노우.
무르: 무서——워!
샤일록: 무르! 죄송합니다…… 스노우 님, 화이트 님. 무르는 나중에 잘 타이를테니, 부디…….
화이트: 호호호, 말해서 들을 만한 자도 아니지 않은가. 스노우도 스노우일세. 정곡을 찔린다고 해서, 무르에게 화내지 말게나.
스노우: …….
화이트: 됐네. 난 살아 있지 않으니. 살아 있는 것보다 초췌하지 않아.
무르: 그렇구나! 다행이네!
스노우: 먼지로 만들어주마.
샤일록: 무르!
화이트: 그만두게나, 스노우! 하지만 무르도 귀찮은 남자일세……. 이 성격으로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남았구먼. 혼나본 적은 없나?
샤일록: 있죠. 몇 번이나…….
무르: 있어——? 나, 불쌍해——!
샤일록: 후후……. 그날 밤의 무르는 특히 잊을 수가 없죠, 그날 밤…… 미네이타 유성군의…….
화이트: 무르는 어떻게 당한거지?
스노우: 너덜너덜해졌나? 어느 정도였지? 부족하면 내가 힘을 빌려주마.
무르: 나도 도와줄게~!
샤일록: 후후…… 비밀입니다.
화이트: 샤일록은 상냥하구먼.
스노우: 그대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편이 좋을걸세.
무르: 소중히 할게——!
샤일록: 이런, 기대해보도록 하죠.
8화
클로에: 고마워, 현자님. 늦게까지 의상 만들기에 어울려주고.
아뇨, 재밌었어요. 항상 고마워요. 예쁜 의상이고 유성군의 밤이니까 좋은 날씨였으면 좋겠네요.
클로에: 정말로! 미네이타 유성군에는 여러 가지 추억이 있으니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추억……. 마법사 사제의 계보의 유성우라서요?
클로에: 현자님, 알고 있구나.
저번에 아서에게 들었거든요. 클로에와 라스티카도 사제잖아요.
클로에: 그렇네. 그래서 뭔가 좀 특별해. 미네이타 유성군…… 내가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어렸을 때였어. 미네이타 유성군을 감상하는 밤을 위한 스톨을 손님들이 주문을 했었지. 아빠가 만들라고 했었는데, 유성군 같은 건 본 적이 없어서 엄청 당황했었어.
눈썹을 숙이며 클로에는 웃었다. 클로에는 옷 장수 부모님께 숨겨진 방에 갇혀 자란 마법사다. 본 적도 없는 걸 이미지해서 만들라고 하다니, 클로에는 힘들었겠지.
어떻게 만들었나요?
클로에: 으음, 창틈으로 별은 봤으니까 나머지는 상상에 맡겨서. 별이 많이 보인다고 들었으니까 별 몇 개를 박았어. 라스티카와 여행을 가서 처음 유성군을 봤을 때는 이게 유성군이구나! 라는 느낌으로 깜짝 놀랐어. 별이 가득 흐르고, 밤하늘이 부셔져서 쏟아질 것 같았어. 그 광경을 봤다면 더 예쁜 스톨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네.
불합리한 주문을 받은 것보다 만족스러운 디자인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런 점이 굉장히 클로에다웠다.
클로에가 만든 유성군 스톨, 보고 싶어요.
클로에: 정말로? 다음에 보여줄게. 라스티카에도 만들어 줬었어. 그 얘기를 라스티카에게 했더니 지금의 현자님처럼 반응해줬었지. 보고 싶다면서. 그때 족보의 이야기도 들은거야.
반가운 듯 클로에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별들을 띄우는 은하처럼 보라색 눈동자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져서 그에게 질문했다.
저기, 클로에. 제자라는건 어떤 기분인가요?
클로에는 놀란 듯 깜빡거렸다.
저도 원래의 세계에서 선생님께 공부를 배운 적은 있어요. 하지만 스승 같은 사람은 가까이 없었으니까…… 어떤 느낌이 들까 하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과는 다른가요?
클로에: 에, 그러니까…….
클로에는 할 말을 찾고 있는듯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기쁨을 띄우는 듯한, 외로움에 고개를 숙이는 듯한, 이상한 표정이었다.
클로에: 이건 내 감상이니까, 남들과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네.
클로에: 천이 물들어가는 느낌.
천이 물들어…….
클로에: 아, 잠깐만. 아닌가……. 이렇게, 매일 조금씩 잔에 넣은 홍차처럼……. 라스티카의 인생을 마시는 느낌.
클로에는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자랑스럽게, 어딘가는 미안하다는 듯이. 나는 클로에의 말을 10%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말이 떠올랐다. 족보의 유성우. 흘러내리듯 이어지는 것.
클로에: 라스티카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느긋한 면도 있지만, 여러 가지의 지식이나 사고방식, 살아가는 방법을 느낄 때가 있어. 마법을 가르쳐 주는 말 속에 있는 것은 물론…… 평범한 말이나 아무렇지도 않은 인사에도. 웃는 법이나 시선의 움직이는 법, 손가락의 움직임……. 어떨 때 기뻐하고 어떨 때 슬퍼하는지. 부드러운 아침 노을에 있는 그에게도, 어두운 비가 내리는 날의 큰 나무 아래 있는 그에게도 라스티카의 인생이 깃들어 있어. 뭔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워왔던 것 같아.
부드러운 클로에 목소리에 나는 상상했다. 맑은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함께 해 온 두 사람을.
클로에: 옛날에 여행을 다녔을 때, 무서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마법사는 마법사의 제자에게 자신이 인생을 걸고 찾아낸 것을 시간을 들여 가르쳐준다. 자기 분신을 낳는 것이지만, 제일 무서운 자기 적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드는 제자는 방해가 되기 전에 돌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대.
클로에: ……나, 그렇게 되는 게 무서웠어. 라스티카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착하다고 생각되도록 노력했어.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동안에 라스티카의 인생의 조각이 조금씩 비쳐져서……. 갑자기 알 것 같더라고. 아, 라스티카는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는구나 하고. 내가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은 나를 돌로 만들 사람이 아니야. 물론, 말로 해서 약속받은 건 아니야! 보증도 아무것도 없지만…… 갑자기 알게 됐어. 말은 못하겠지만 결코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뭐라고 해야 할까…… 보이지 않았지만 거기에 있던 가늘고 부드러운 실이 보이는 느낌. 가족도 아니고 선생님이랑도 아닌 것 같은…… 라스티카라는 스승님이랑 나만의 유대감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클로에의 행복한 미소가 천천히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그 체험에 대해서 나도 말은 잘 못 한다. 말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하지만 굳이 말로 하자면, 아찔한 긴 시간 속에서 마법사들이 드디어 찾아낸…… 삶이라는 실을 이어받아, 서로 엮고 이어가는 기억과 믿음의 궤적일까. 유성우처럼 부드러운 선으로 유구한 시간을 이어간다. 비워주고 물려줄 거야. 그것은 마음의 연결 그 자체다. 유성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계속 어딘가 불안해 했다.
클로에: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말로 하면 불안해져. 나, 어렸을 때 같이 미네이타 유성군을 봤을 때 라스티카한테 부탁했었어. 라스티카는 잊기 쉽지만, 오늘 밤은 기억해달라고. 라스티카는 잊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해줬는데, 나…… 한 번도 확인해보지 못했어. 저기, 기억해? 라고. 그러기는 커녕 후회하고 있어. 괜히 그런 말을 했네. 왜냐하면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라스티카를 정말 좋아하는데. 만약 라스티카가 잊어버린다면…… 다 거짓말 같아 보여. 찾았을 텐데, 보이지 않는 실도 기분 탓으로 생각할 것 같아서…….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래서 견딜 수가 없어. ……아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클로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에: ……좀 더 같이 있다면 또 말로 하지 않아도 알게 될까……. 아니면 말이 있는 동안은 죽을 때까지 계속 불안해 할까. 계보의 유성우……. 내 몸 안에 있는 라스티카의 삶의 기색을 믿고 싶은데…….
클로에의 불안의 정체를 살짝 알 것 같았다.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받아온 소중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행복감과 환상을 알아버릴 것 같은 불안감. 글도 아니고 말도 아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계승되어 가는 마법사들의 가르침. 별똥별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놓쳐 버리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미스라: 하아…… 오늘 밤도 잠을 못 잤네……. 현자님과 함께라도 잠자는 날과 잠 못자는 날이 있는 건 대체 뭔가요……. ……현자 주제에 건방진 점이 있죠. 좀 더 단련 시키지 않으면……. 내일부터 시체를 조종해서 현자님 방에 넣어놓자……. ……응?
미스라: 저건, 아서…….
아서: 후아암…… 늦어버렸다. 왕궁에서 쉬어도 좋았지만, 모두와 보르다 섬의 여행 얘기도 하고 싶고. 누가 일어나 있을까? ……아, 미스라다!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네.
아서: 미스라!
미스라: 안녕하세요.
아서: 저녁 산책 중?
미스라: 잠이 안 와서요.
아서: 불쌍하게도……. 그런 거라면 혼자 조용히 산책하는 편이 나으려나?
미스라: 아뇨, 심심해서 마침 잘 됐어요. 당신도 잠이 안 오나요?
아서: 공무가 처리가 안 되어서.
미스라: 당신은 루틸이랑 미틸과 비슷한 나이잖아요. 그들은 공무 같은 거 안 해요.
아서: 나도 안 하고 잘 수는 있어. 준비된 일만 하다 보면 순조롭게 나날을 마무리 할 수 있지.
미스라: 그러면 잠이 안 오는 이유는?
아서: 놓칠 수 없는 것들이나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서. 아무래도 밤이 늦어져.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미스라: 별로 걱정하지는 않아요. 놓칠 수 없는 것이란?
아서: 미스라나 오즈 님이나 현자님.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엉뚱한 오해를 받아 살기 힘든 생활을 해야 하는 것 말이야.
미스라: 저는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거나 하지는 않는데요.
아서: 그렇다면 기뻐. 내가 중앙 나라의 왕자이긴 하지만, 북쪽 나라에서 자란 탓인지 너의 힘에 동경을 품고 있어.
미스라: 저에게?
아서: 아아, 너처럼 오즈 님에게 눈에 띄고 싶어.
미스라: 흐흥. 쉽지는 않겠네요. 저처럼 되려면.
아서: 힘껏 수행해서 강해질게! 다음에 오즈 님 몰래 시합해줘. 네 힘의 비결을 알고 싶어.
미스라: 상관 없어요.
아서: 아싸!
아서: 오늘은 별이 아름답네……. 미네이타 유성군의 밤도 오늘 밤처럼 하늘이 밝았으면 좋겠는데.
미스라: 오즈가 구름을 치워버리면 되잖아요.
아서: 지금의 오즈 님은 밤에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미스라는 할 수 있어?
미스라: 어떠려나. 해볼게요.
아서: 잘 부탁해. 저기, 며칠 동안 별이 많이 내리는 해와 잘 보이지 해가 있지? 미스라는 미네이타 유성군을 본 적 있어? 추억 같은 건 있어?
미스라: 저는…… 글쎄요…….
미스라: ……윽, 하……. 하아…….
오즈: '복스노크'
미스라: 아아아아아악……. ……윽…… 크윽…….
오즈: …….
미스라: (이제, 마력도 안 남았어……. 도망칠 힘도 없어……. 여기서 돌이 되는 건가……. ……치렛타…….)
오즈: ………….
미스라: (뭐야……? 오즈가 한 눈을 팔다니……. ……별똥별……? 오늘 밤은 유독 별이 많네……. 이게 바로 치렛타가 말한 유성군……? ……예쁘네……. ……아니, 그렇다고 해도 한 눈 팔아요!? 저랑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요!? 웃기지 말라고요. 너무 얕보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미스라: ……아, 아……. 아르시…….
오즈: …….
미스라: 아으으으으윽…….
미스라: (한 눈 판 상태로, 지팡이를 쥐고 있어……!)
오즈: ……오늘 밤은 여기까지다.
미스라: ……우, 웃기지 마세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기다……. ……윽……. 우윽……. ……거짓말이죠……. 한 눈 팔고, 사라지다니……. 북쪽의 미스라가 여기 있는데…… 돌로 만들지도 않고……. ……죽여버릴거야……. 절대로 죽여버릴거야……!
미스라: ……………….
아서: ……미스라? 왜 그래?
미스라: ……친한 척 제 이름 부르지 말아주세요.
아서: 에?
미스라: 당신도 그 남자도, 저를 너무 얕보고 있다고요.
아서: ……? 무슨 말을 하는거야. 조금 전까지 사이좋게 산책…….
미스라: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아서: ……미스라는 미스라야. 너를 동경한다고 말했었어.
아서: 왓……!? 뭐야……? 갑자기 얼굴을 만지고…….
미스라: '아르시무'
아서: 아…… ……피가……. 뭘 한거야……?
미스라: 볼을 잘랐어요. 이대로 치료하지 말고, 오즈한테 보여주세요. 제가 했다고 말하세요.
아서: 미스라…….
미스라: 당신이 오즈와 약속을 한건지,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당신은 오즈의 뭔가요?
아서: …………모르겠어.
미스라: ……뭐 됐어요. 당신에게 손을 댄 건 알면 오즈는 화를 내겠죠. 이건 선전포고입니다.
미스라: 미네이타 유성군의 밤에, 오즈를 죽이겠어요.
9화
리케: 견과류는 여기에?
네로: 아아, 거기에 토핑을 해서.
리케: 알겠습니다. 해볼게요.
브래들리: 후아암……. 아침 일찍부터 뭐 하는 거야.
리케: 아, 브래들리! 아직 먹으면 안돼요!
브래들리: 안 먹어. 아직 오븐에 넣기 전이잖아. 이건 파이인가?
네로: 맞아. 아침은? 빵이랑 계란?
브래들리: 아아.
리케: 이쪽은 벌써 먹을 수 있어요. 저는 맛을 봤거든요. 먹고 싶나요?
브래들리: 그건?
리케: 캐러멜리제라는 걸 한 견과류에요. 이걸 파이에 올려서 구울 거에요.
브래들리: 아침부터 그런 단 건 못 먹어.
리케: 저는 먹을 수 있었어요.
브래들리: 보르다 섬에 가져가는 건가?
리케: 네.
네로: 성에 파티가 있다고 하니까, 저쪽에서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리케가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리케: 네로의 과자가 분명 더 맛있어요. 하지만 맛있는 과자가 있다면 네로가 똑같은 걸 만들어 주세요.
네로: 아하하, 만족할 수 있으려나. 브래드, 가져가서 먹어.
브래들리: 어.
리케: 브래들리는 항상 계란 두 개, 태울 정도로 익은 걸 먹네요.
브래들리: 잘 보고 있네. 먹을래?
리케: 필요 없어요. 얼마 전에 똑같은 걸 네로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었거든요. 당신이 매일 아침마다 먹으니까.
브래들리: 흰자가 바삭바삭해서 맛있지.
리케: 오믈렛이 더 맛있어요.
브래들리: 그러냐.
리케: 파이는 바삭바삭하고 맛있어요. 브래들리는 파이를 좋아하나요?
네로: 당신, 과자는 잘 안 먹지.
브래들리: 그렇네. 그건 맛있었어. 고깃조각이 있는 파이.
네로: 미트파이?
브래들리: 아니, 틀려. 뭐였더라. 최고의 안주였었는데.
네로: 그런 거, 먹였을 때 말하라고…….
브래들리: 너는 과자를 만드는 걸 좋아했었던건가. 여기 와서 잘 만들고 있네.
네로: 그런 건 아니지만…….
브래들리: 숨기지 않아도 돼. 쪼그마한 마법사들은 좋아하잖아.
네로: 그렇다면 좋겠네.
브래들리: 우리 집엔 핏기 많은 녀석들 뿐이었고…….
네로: 어이, 그만해. 리케가 있잖아.
브래들리: 평소에는 네 녀석이 흘리고 다니면서. 얘 앞에서는 괜찮아. 어차피 모를거고. 그렇지? 중앙의 작은 놈.
리케: 작지 않아요. 리케예요.
네로: 당신, 옛날부터 어린 애 놀리는 버릇 있었지.
브래들리: 그런가?
네로: 조심성이 많은 주제에 내가 어렸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놀리고 있었어. 괜히 들으니까 조마조마해진다고.
브래들리: 그건 믿었던 거지, 네놈을.
네로: 또…….
리케: 네로가 어렸을 때, 브래들리랑 만난 적이 있었나요?
네로 / 브래들리: …….
네로: 아니…… 없어.
브래들리: 비유적인 이야기야.
리케: 그렇군요.
네로: 리케, 몇 살이야?
리케: 에에……. 1, 2, 3……. 12살이요. 얼마 안 남았어요.
네로: 그럼 오븐 데워야겠다. 고마워, 도와줘서.
리케: 괜찮아요!
브래들리: 나쁜 남자네.
네로: 너 때문이다, 바보야.
리케: 네로, 바보는 좋지 않은 말이에요. 조심하는 편이 좋아요.
네로: 아…… 네. 죄송합니다.
브래들리: 아하하! 네로를 사과하게 하다니, 배짱이 두둑하네. 나중에 내 부하로 삼아주지.
리케: 브래들리는 도적이잖아요. 도적의 부하는 되지 않습니다.
브래들리: 아깝네. 키우는 보람이 있는데.
리케: 부하와 제자는 뭐가 다르죠? 같은 건가요?
브래들리: 똑같지 않네……. 적어도 이 양반에게는 달라.
네로: 왜 그런 걸?
리케: 잘 모르겠어서요. 아서 님은 오즈의 제자라고 합니다. 카인은 아서 님의 가신이라고……. 가신과 제자도 다른 건가요?
네로: 다른 거 아닌가, 아마도.
리케: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가리키고 있는 건 알겠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건지 모르겠어요. 시노는 히스클리프의 종자라고 했었죠. 아주 어마어마한 것 처럼 말하면서. 종자는 제자와 다른가요?
브래들리: 뭐, 다르겠지.
리케: 교단에 있던 신도들은 제자 같은 건가요?
브래들리: 어떠려나. 너는 그 녀석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데?
리케: 올바른 길로 이끌어 세상의 타락에서 구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브래들리: 네가 죽은 후에 걔네들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리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죽는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브래들리: 넌 아직 어리니까.
리케: 어리지 않아요.
브래들리: 내가 보기에는 부하와 제자는 전혀 달라. 부하들은 나를 따르던 놈들을 통제하고 살리고 지켜주는 것. 강한 무리가 되기 위해 뛰어난 손발이 되는 것을 가르치지. 하지만 제자에게는 머리가 되는 것도 가르쳐. 자신의 생애를 넘겨도 좋은 놈에게는 제자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리케: 자신의 생애를 넘겨……?
브래들리: 맞아.
네로: …….
브래들리: 나는 대가족이었어. 마법사였던 아버지가 마법사 자식을 갖고 싶어 해서……. 내가 태어날 때까지 닥치는 대로 여자를 임신시켜서 잔뜩 낳게 했지.
리케: ……?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상스러운 행동을 품위 있게 전해도 의미 없잖아.
네로: 리케는 과자를 과식하는 것도 부패와 타락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좀 봐주라고.
브래들리: 나의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부하였어. 강한 아이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마법사가 태어날 때까지 아이를 만들었다. 이거면 어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리케: ……아마도, 브래들리는 강한 아이였군요.
브래들리: 맞아. 형제들은 인간이었으니까. 북쪽 나라에서는 데굴데굴 죽었어. 형제들이 죽은 후 어렴풋한 쓸쓸함은 느꼈는데…… 금방 잊어버렸어. 북쪽 나라에서는 살기 바쁘잖아. 마법사였던 나도 아버지에게는 부려먹어졌어. 별로 원망하지는 않아. 뭐 그런 거지. 마법사는 오랜 시간을 산다. 애를 낳는다고 해도, 애가 먼저 죽을 때도 있다. 그러면 인간에게 집착할 수 없게 돼. 집착을 할 수 없게 되면, 세계와의 관계는 희미해져 버려. 그래서 이 세계에 오래 머물며 이 세상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것 같은 모순과 허탈함을 느끼는 거지.
네로: ………….
리케: ……혼자라는 의미인가요?
브래들리: 조금 틀리네. 혼자라도 목숨을 태우며 살 수 있어. 그렇게 불태운 목숨을…… 내줄 곳이 없는 불모함이다.
리케: 불모…….
브래들리: 가치가 없다는 거지. 아마 가치 따위는 없어도 돼. 살아있다는 건.
네로: ………….
브래들리: 하지만 때때로 아쉽게 돼. 모처럼 내가 익힌 기술도, 지혜도, 경험도, 텅텅 비어버리는 거냐면서. 차가운 돌이 되어버려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좋아. 그래도 상관 없지만…… 만약 자신의 생애를 내주고 삶을 이어나갈 상대가 있다면 뭔가 충족될 것 같아. 그런 이상한 꿈이야.
리케: 자신의 생애를 내놓는다……. 그럼 세계와 연결되는 건가요?
브래들리: 그런 보증은 없어. 그냥 꿈이야. 그래도 꿈이라는 게 재밌는 거잖아.
네로: ……즐거워?
브래들리: 즐거웠어. 내가 이렇게 실수했으니까, 이 녀석은 이렇게 가르쳐야지 라던가. 이 녀석이 자라면 같이 이런 싸움을 할 수 있다던가 이것저것 궁리해 보고.
네로: …….
브래들리: 그런 얼굴 하지 마. 알아, 그냥 꿈인 거. 이제 깼어.
네로: 브래드…….
리케: 브래들리는 제자가 있었나요?
브래들리: 아니, 없었어. 그러니까 지금 얘기도 그냥 착상이야.
리케: 그렇구나……. 근데 도움이 됐어요. 저도 인생의 끝에는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제자를 찾고 싶어요. 죽을 생각을 하니까 조금…… 아니, 너무 무서워서요. 이 세계에서 사라질 때, 조용한 암흑의 바닥으로 떨어질 때, 손을 뻗어서……. 내 조각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네로: …………. ……그런 거, 죽는 놈만 이득이잖아.
리케: 네로? 뭐라고 했나요?
네로: 아니…… 계란 좀 가져올게. 먹고 있어.
리케: 네로!
브래들리: 쫒지 마. 내버려 둬.
리케: ……하지만…….
브래들리: 저 손아귀는 쫓아다녀도 손에 안 잡혀. 유성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10화
피가로: 미안하네. 짐 싸는 거 도와달라고 해서.
레녹스: 아뇨…….
피가로: 이왕 보르다 섬에 간다면 바자르에서 매수를 하고 싶어서. 물물교환이 아니면 응해주지 않는 곳도 있으니까…… 아, 그건 놔두자. 레노…….
레녹스: …….
피가로: 멍 때리고 있네.
레녹스: 아, 죄송해요.
피가로: 괜찮아. 좀 의외인걸, 잊지 못할 것이라도 봤니?
레녹스: ……브래들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피가로: …………응? 브래들리의 벌거벗은? 모습?
레녹스: 발가벗다고 해도 전부 벗은 건 아니었지만, 그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어요. 상처는 마법으로 고칠 수 있을텐데. 피가로 선생님만큼 명의가 아니더라도 북쪽의 마법사라면.
피가로: 뭐, 득의양양함은 있겠지만 대개 그렇겠지. 브래들리는 동료의 몫도 해줬었으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레녹스: 그렇네요…… 그래서 신기해서 물어봤어요. 왜 안 고치냐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피가로: 아하하, 무섭네. 흉터를 낸 상대에게 복수라도 할 생각인걸까.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이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요. 복수당할 짓을 했나요?
피가로: 안 했다고는 할 수 없네. 뭐, 됐어. 얘기를 계속해.
레녹스: …………그때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파우스트 님은 화형에 처해졌을 때의 흉터를 치료하지 않으셨나 싶어서.
피가로: …….
레녹스: 피가로 님은 재회하신 후 파우스트 님의 다리를 보신 적이 있나요?
피가로: 있어.
레녹스: 그……. …………어땠나요……?
피가로: 거짓말이야. 본 적 없어.
레녹스: …….
피가로: 잠깐! 여행 가방 부수지 마! 이건 마음에 든 거니까!
레녹스: ……안 부셔요.
피가로: 지금, 살짝 힘 줬어.
레녹스: 진지하게 들어주시지 않겠나요?
피가로: 알았어. 미안해. 사실 나도 긴장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만 놀려버렸어.
레녹스: 어째서 긴장하면 놀리는 건가요?
피가로: 장수의 지혜, 아니면 버릇이려나. 계속해.
레녹스: ……저는 파우스트 님과 재회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지킬 수 없었던 그 분이 행복해하고 계신지 한 번 확인할 수만 있다면 충분했습니다. 어떤 생활을 하시든, 뒤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거든요. 영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옛 뜻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안 했어요. 하지만…….
피가로: 하지만?
레녹스: 처음으로 절대로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 다리에 그날의 흉터가 만약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리를 지를 것 같아요. 절대로 싫어요. 못 견디겠어요.
피가로: 기분은 알겠지만, 넌 외모로 차별을 할 놈이 아니잖아.
레녹스: ……그렇습니다. 다른 이유로 생긴 흉터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지만, 화상 자국만은 아무래도…….
피가로: …….
레녹스: 저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머리에 피가 쏠리는 거죠.
피가로: 나는 알겠어.
레녹스: ……제 마음을 읽으셨나요?
피가로: 실례인걸. 읽거나 하지 않아. 너의 분노의 이유를 알 수 있는 것도 장수의 지혜나 못된 버릇이야.
레녹스: 알려주세요.
피가로: 싫어. 넌 화내고 상처받을거잖아. 하지만 불쌍하니까 위로해줄게.
레녹스: ………….
피가로: 좋아좋아…… 착한 아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 거라면, 기억을 지워줄게.
레녹스: ……아뇨, 됐습니다.
피가로: 그래……. 뭐, 알아. 잊어버리면 되는 일인 만큼 잊어버리는 것도 무서운 법이야.
레녹스: …….
피가로: ……나도, 그 유성군의 밤은 잊을 수가 없어. 별이 내리는 밤마다 생각 나.
클로에: 라스티카……. 라스티카, 일어나.
라스티카: 으응……. ……흐아암……. 안녕, 클로에.
클로에: 좋은 아침. 오늘 보르다 섬에 가는 날이야. 짐 싸놨는데, 어제 시노랑 히스랑 얘기했던 거 기억나?
라스티카: 뭐였더라…… 에……. 현자님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물!
클로에: 맞아! 선물 연습을 하러 가야지. 분명 시노랑 히스는 벌써 모였을 거야.
라스티카: 그러면 눈을 떠야지. 안녕, 클로에. 좋은 아침.
클로에: 아까도 말했어. 안녕, 라스티카.
라스티카: 나에게 좋은 아침을 잔뜩 줄래? 밤 그대로의 눈꺼풀이, 아침의 시간이 되도록.
클로에: 아하하, 좋아! 안녕, 라스티카. 좋은 아침. 좋은 아침…….
라스티카: 클로에?
클로에: ……오늘 밤, 같이 유성군을 볼 수 있어?
라스티카: 클로에가 원한다면.
클로에: 그럼 같이 보자. 그래서, 그래서 말이야……. 난 그때 라스티카에게 어떤 질문을 할테니까, 대답해 줄래……?
라스티카: 좋아. 어떤 질문이란 뭐니?
클로에: …………그때, 얘기할게.
라스티카: 알겠어. 기대되네. 유성의 밤도, 클로에의 질문도.
클로에: 라스티카…….
라스티카: 뭐니?
클로에: 그 숨겨진 방으로부터 날 꺼내줘서 고마워.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
라스티카: …….
클로에: 에헤헤……. 왠지 모르게 전하고 싶어져서.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라스티카: 클로에…….
클로에: 에헤헤……. ……자! 빨리 준비해야지. 세수도 하고, 머리 빗고, 단추 잠그고…… 할 일이 많아! 서둘러, 서둘러!
보르다 섬, 기대되네. 성주 디아누 씨는 어떤 분일까? 서쪽 사람이니까 쾌활한 사람? 회의도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내 현자의 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분명 모두에게 도움이 될거야. 아…… 낮에는 출발이니까 빨리 준비해야지.
네——!
아서: 현자님……. 잠깐 괜찮으실까요. 상담할 일이 있어서…….
아서. 좋아요, 지금 열게요!
문을 열자, 거기에 있던 사람은 볼에 거즈를 대고 있는 아서였다.
무슨 일인가요!? 그 얼굴…….
아서: 그 일로 상담하고 싶습니다만…….
카인: 어라? 아서의 목소리? 아키라의 상태를 보러 왔는데.
시선을 헤매면서 카인도 왔다. 카인은 '거대한 재앙' 의 상처 때문에 만질 때까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아서는 언제나 다가가 스스로 직접 카인과 닿았다. 하지만 오늘은 곤란함을 띄우며 눈썹을 찡그린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카인에게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은건가. 카인에게 걱정을 끼쳐버리니까……. 아서는 간단한 치유마법이라면 할 수 있었을거야. 왜 고치지 않는거지……?)
아서: 카인, 안녕. 현자님은 내가 모시고 갈 테니까 괜찮아.
카인: 그래? 그러면 인사라도 시켜줘.
카인은 망설이지 않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서가 웃으며 그 손을 만지고 안녕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겠지.
아서: ………….
아서는 눈썹을 숙이고 카인의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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