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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法使いの約束/2020 이벤트 스토리

[애수의 해바라기 에튀드 ~동쪽&남쪽~] 6화~10화

6화

 

동쪽 마법사와 남쪽 마법사는 함께 동쪽 나라의 란즈베르크 령으로 가게 되었다. 식인 마녀라고 불린 비앙카와 그녀의 저주 ……. 출정은 답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럼에도 클로에가 준비해놓은 늠름한 의상은 마법사들을 기쁘게 했다.

 

히스클리프: 클로에는 대단하네 ……. 정신 바짝 차리고 가야지.

 

루틸: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더니 군인들의 옷 같은 의상을 만들어줬어.

 

시노: 고르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위압하기 쉬울 테니까. 잘 어울려, 히스.

 

히스클리프: 그만둬……. 기쁘지만 놀러가는 게 아니니까.

 

파우스트: 그 말대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도착한 후에는 내 말을 따르도록.

 

나는 파우스트를 몰래 쳐다보았다. 전날까지의 우울한 표정과는 다르게 또렷한 눈빛을 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태도에 당황한 뒤 시노가 히죽 웃었다.

 

시노: 지금까지 교육을 빼놓았으면서 무슨 소리야. 나는 예의범절에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라고.

 

파우스트: 뭘 뽐내는 거야…….

 

히스클리프: 기쁜거지, 시노. 파우스트 선생님의 수업을 계속 듣고 싶어 했잖아.

 

이제 파우스트가 눈을 동그랗게 뜰 차례였다. 조금 쑥스러운 듯 시노가 코를 킁킁거렸다.

 

시노: 히스가 당신을 엄청 칭찬하니까. 솜씨 좀 보려고.

 

네로: 좋잖아. 선생님도 학생도 서로 칭찬 받으면 돼.

 

네로가 웃으며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동쪽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듯 그들의 공기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을 느낀다. 싹트기 시작한 유대감이 녹아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면서 우리는 출발했다.

 

 

 

 

 

 

 

이곳이 처형장이 된 해바라기 밭…….

 

빠지는 듯한 푸른 하늘 아래 해바라기가 만발했다. 평화 자체를 풍경으로 만든 듯 선명하고 명량한 색채다. 하지만 어딘가 기묘하고 무섭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해바라기 꽃이 사람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말없이 흔들리고 있다.

 

미틸: 해바라기가 잔뜩 피었네요. 눈에 선명하고 깨끗한 곳이에요,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그렇네. 하지만 함부로 행동하면 안 돼. 너희들은 저주에 면역이 없으니까.

 

시노: 과보호다. 나랑 별로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아.

 

피가로: 역전의 너와는 달라. 남쪽 마법사는 원래 저주에 약하고.

 

시노: 흥.

 

미틸: ……역전……. ……좋겠다…….

 

루틸: 왜 그래, 미틸.

 

미틸: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녹스: 저기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네요.

 

피가로: 정말이다.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마을 사람: 영주님의 명령이라고 해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다가는 땅 전체가 저주 받고 말 거야!

 

마을 사람: 너희들은 못 봤잖아! 으스스하게 흔들거리는 처형대의 밧줄을……!

 

영주의 관리: 진정해! 불을 붙이면 더욱 섬뜩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어! 곧 영주님이 부르신 현자의 마법사님들이 오신다! 그때까지…….

 

마을 사람: 마법사 따위 믿을 수 있을까 보냐! 식인 마녀가 부활할 거라고!

 

마법사라는 호통에 루틸과 미틸이 숨을 삼킨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 것은 시노였다. 금방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듯한 이들을 향해 고성을 지른다.

 

시노: 멈춰라! 블랑셰 가문의 히스클리프 님이다. 영주의 의뢰로 시찰하러 왔다.

 

마을 사람: 블랑셰 가문의……. 하하.

 

시노에 기압된 듯 마을 사람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는다. 히스클리프는 부드럽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다. 이변을 조사하고 필요하면 현자님과 함께 대처하지. 불안은 있겠지만 맡겨줬으면 해. 여기서 일어난 이변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줄 수 있겠나?

 

잔잔한 히스클리프의 목소리에 침착함을 되찾아 마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현상을 알렸다.

 

마을 사람: '거대한 재앙' 이 다가온 날부터 이 해바라기 밭 위에 교수형 밧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마을 사람: 이 땅에는 식인 마녀 비앙카의 전설이 있습니다. 왕가 군대가 와서 퇴치할 때까지 마녀 비앙카는 백 명의 아기를 잡아먹었다고 하죠. 그 무서운 마녀가 되살아난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마을 사람: 마녀의 저주가 스며든 해바라기 밭이라니, 성스러운 불에 태워버려야 해요!

 

영주의 관리: 그런 거,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살면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잖아. 환상을 본게…….

 

마을 사람: 환상 따위가 아니야! 정말로 교수형 줄이 흔들렸다고요. 믿어주세요, 히스클리프 님!

 

히스클리프: 의심은 하지 않아. 그 밖에 목격한 것은…….

 

시노: ……! 히스. 저거…….

 

히스클리프: ……에?

 

루틸: ……교수형의 밧줄……!

 

그 광경의 번잡함에 숨 쉬는 것을 잊었다. 선명한 풍경화 같은 해바라기 밭 위에 교수형 밧줄이 매달려 있다. 침을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교수형 밧줄은 어디서 내려온 건지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묶인 밧줄이 이리 와, 하고 유혹하는 것 같아 무섭다.

 

마을 사람: 봐……! 식인 마녀의 저주다! 처형당한 비앙카가 되살아난 거야!

 

시노: 떠들지 마. 이런 거, 내 낫으로 잘라주겠어.

 

파우스트: 그만둬.

 

마도구인 큰 낫을 출현시켜 앞으로 나아가려던 시노를 파우스트가 한쪽 팔을 뻗어 제압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묵직한 앞머리 아래 파우스트의 두 눈은 신기할 정도로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우울한 눈을 내리깔고 있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파우스트: 함부로 다가가지 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저주가 강해.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폭주하고 있어.

 

마을 사람: ……역시……! 지금 당장 해바라기 밭을 태워야해!

 

파우스트: 당황하지 마. 올바른 절차로 정화하지 않으면 땅이 저주에 오염된다. 저주는 달라붙어. 너희들도 이 땅에는 접근하지 마. 이제 곧 해질녘이니 밤이 되면 저주의 힘은 커질 것이다. 내일 아침 정화를 하지.

 

마을 사람: 다 …… 당신이 정화해 주시는 건가요? 당신은 도대체…….

 

파우스트: ……내가 누구냐면…….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나의 마법 선생님이시다. 뛰어난 마법사야.

 

파우스트: ……히스…….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파우스트가 히스클리프를 돌아본다. 그를 돌아보는 히스클리프의 눈동자는 꾸지람을 듣는 것에 겁을 먹으면서도 간절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히스클리프: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저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큰 낫을 한쪽 팔에 안으며 시노도 입꼬리를 올린다.

 

시노: 그렇다면 나의 은인이기도 하지. 슬슬 마무리해, 파우스트. 우리 동쪽 마법사를 챙기는 것이 너의 몫이잖아. 네가 안 하면 누가 해.

 

네로: …….


7화

 

시노의 말에 파우스트는 각오를 다진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빛에 떠있는 것은 우울한 탄식도, 짜증도 나이다. 엄격함과 상냥함을 간직한 강한 빛이다.

 

나는 레녹스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의 파우스트 님에게는 무언가 역할이 있는 것이 좋아요. 무거운 역할은 자신을 짓눌러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할을 맡아야 자신답게 일어설 수 있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눈앞의 파우스트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 마법사의 말 따위 믿을 수 있을 것 같냐! 비앙카도 같은 마녀라고!

 

마을 사람: 해바라기 밭을 태워버려! 식인 마녀의 저주를 근절하는 거야!

 

파우스트: 불꽃으로 태워 재로 만들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왜곡도 원망도 부식도 계속되어 가지.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이 마을을 지키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눈에 비치는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던 건가.

 

마을 사람: 아…… 아니야……. 우리는 정말로 이 마을을…….

 

파우스트: 그렇다면 믿어라. 너희들은 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그 도움을 줄 거야.

 

마을 사람: 어…… 어떻게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고함을 지르던 마을 사람과는 다른 마을 사람이 불안하게 묻는다.

 

파우스트: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해 줘. 슬픈 일이 그녀의 저주를 낳았으니까.

 

표정을 바꾸지 않으면서 파우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해바라기 밭 위에서 흔들리는 교수형 밧줄은 망령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영주가 마련해 준 빈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남쪽 형제들은 마법사를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런 그들을 배려해서인지 네로는 식사 준비를 하면서 평소보다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네로: 미안하네. 도움을 받아버려서. 저녁도 준비해 준다고 했는데 내가 알아서 한다고 거절했거든.

 

루틸: 네로 씨의 요리는 맛있으니까 여행지에서도 먹을 수 있어서 기뻐요. 이거, 이제 접시에 올려도 될까요?

 

네로: 아아, 잠깐만. 이걸 위로 흩뜨리고…….

 

루틸: 이건 소금에 볶은 해바라기 씨군요. 샐러드와 같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네로: 영주의 관리들이 준비해준 거야. 자, 미틸도 먹어봐.

 

미틸: 아…… 감사합니다.

 

미틸: 맛있다……. 남쪽 나라 해바라기 씨앗보다 큰 것 같아요.

 

네로: 동쪽 나라는 토양이 좋으니까. 같은 씨앗을 뿌려도 땅이 다르면 땅의 성질에 맞게 모양을 바꿔. 우리 같지.

 

미틸: 그렇네요…….

 

루틸: 해바라기는 기름도 빠지고 염색도 돼. 분명 이 지역의 명산품일 거야. 그런 소중한 것을 주셨어. 잘 대해주셔서 기쁘네, 미틸.

 

미틸: 네. 네로 씨, 이거 더 먹고 싶어요. 바삭바삭하고 기름은 달아서 너무 맛있어요.

 

네로: 오, 많이 먹어. 자, 현자 씨도. 손 내밀어 봐.

 

미틸: 아…… 감사합니다.

 

손바닥을 내밀자 아직 따뜻한 해바라기 씨 한 줌을 받았다. 손바닥에 입가를 대고 바싹 입에 넣는다.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씹는 나를 보며 네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로: 아하하, 다람쥐 같아.

 

동쪽 마법사와 남쪽 마법사들은 선생님 두 분을 제외하고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내일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배가 채워지자 자리의 공기도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미틸은 어딘지 모르게 시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시노: 뭐야.

 

미틸: ……아, 아뇨. 딱히…….

 

시노: 흥. 이건 내 몫이니까 안 줄 거야.

 

네로: 뺏을 리가 없잖아.

 

루틸: 미틸, 배고파? 형의 몫 줄까?

 

레녹스: 내 것도 괜찮다면…….

 

제 것도…….

 

미틸: 아, 아니에요! 그……. 시노 씨는 언제부터 숲의 안내인 일을 하고 계셨나요?

 

시노: 글쎄. 까먹었어.

 

히스클리프: 제대로 대답해……. 미틸, 시노는 어렸을 때부터 블랑셰에서 일하고 있었어. 숲을 안내해 주기 전까지는 정원 가꾸기를 하고 있었고.

 

미틸: 어렸을 때부터……. 어른은 화내지 않았나요?

 

시노: 왜 화를 내지?

 

미틸: 아이들은 따라하지 말라던가. 어른이 되고 나서 하라던가…….

 

시노: 그런 말을 들어? 히스, 들어봤어?

 

히스클리프: 나는 별로…….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시노: 나는 듣지 못했어. 그런 말을 지키면 밥벌이는 누가 해.

 

레녹스: 미틸. 시노는 부모님이 없어. 훌륭하게 자신을 부양하고 있는 거지.

 

미틸: ……저도 없어요. 저희도, 다른 아이들보다 고생했지만 훌륭하게…….

 

시노: 고생 자랑은 하지 마. 히스가 어색해지니까.

 

히스클리프: 나는 복이 있으니까…….

 

시노: 후후.

 

루틸: 다들 각자의 고생과 각자의 행복이 있는 거야. 그렇죠, 네로 씨.

 

네로: 뭐…….

 

시노: 무난한 대답이네, 어이.

 

네로: 시끄러워. 무난하게 살아왔으니까.

 

레녹스: 나도 그래.

 

네로: 너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레녹스: 하하……. 피차일반이야.

 

미틸: …….


8화

 

담소하는 소리에 섞여 미틸이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미틸은 시노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시노도 그걸 느낀 듯 겁먹지 않고 그는 솔직하게 미틸에게 물었다.

 

시노: 미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미틸: …….

 

히스클리프: 너, 너 ……. 조금, 말투라던가 신경 써.

 

시노: 맡투를 바꾼다고 해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미틸: ……남쪽 마법사는 발목을 잡는다고.

 

시노: 하? 누가 그랬어. 때려도 돼. 도와줄게.

 

히스클리프: ……아마도 네가 말한 거야…….

 

시노: 나?

 

미틸: ……말했어요. 하지만 까먹은 것 같으니까 저도 잊어버린 걸로 할게요.

 

시노: …….

 

답답한 듯 시노를 훔쳐보던 미틸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정면으로 시노를 바라본다. 도망치지 않는 소년의 눈빛은 남쪽 나라의 대지와 같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담고 있었다.

 

미틸: 시노 씨에게 심한 말을 들어서 싫어지고 싶었는데…… 싫어질 수가 없었어요. 강하고, 혼자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어서. 시노 씨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으니까…….

 

미틸의 말에 시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내 입꼬리를 치켜들고 웃었다. 기쁘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느새 미틸과 시노가 서로 미소를 주고받고 있다.

 

미틸: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같이 마법사 수행, 힘내고 싶어요.

 

루틸: 훌륭하네. 잘 말했어, 미틸.

 

시노: 흐흥……. 좋아.

 

히스클리프: 좋아가 아니잖아. 자, 너도.

 

시노: ……발목을 잡는다는 말을 해서 미안해, 미틸.

 

미틸: 에헤헤……. 아니에요.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레녹스: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른들도 대화를 잘 했으면 좋겠는데.

 

히스클리프: 분명히 지금 선생님들끼리 작전 회의를 하고 있는 거죠. 어떻게 될까, 내일…….

 

네로: …….

 

 

 

 

 

 

피가로: 그거면 되지 않을까? 빠르고 확실하게 끝낼 거라면 너랑 내가 하는 게 좋은데.

 

파우스트: 아니. 위험은 따르지만 젊은 마법사들에게는 저주에 대해 배울 기회가 되겠지.

 

피가로: 선생님다운 의견이네.

 

파우스트: …….

 

피가로: 마실래? 내일의 성공을 빌면서.

 

파우스트: 조심성 없어.

 

피가로: 레노들도 분명 마실 거야. 루틸은 술을 잘 마시고. 네로는?

 

파우스트: ……몰라.

 

피가로: 같이 마셔본 적 없어?

 

파우스트: 다음에 마시자고 이야기 했어.

 

피가로: 그런가. 다행이다. 자, 잔을 들어.

 

파우스트: ……내가 따르지.

 

피가로: 피가로 님에게 반주를 시키면 나쁘니까? 이상한 점에서는 그대로 성실하네. 너 답지만.

 

파우스트: ……지난 번에는 말이 심했어.

 

피가로: 괜찮아. 나는 항상 심하게 하거든.

 

파우스트: 심하지 않을 때도 있어. 너를 잘 모르겠어, 피가로. 진심인지 장난치는 것인지…….

 

피가로: 언제나 진심이야. 하지만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장난친 걸로 하고 있어.

 

파우스트: 무엇 때문에?

 

피가로: 상처 받기 싫으니까. 네 곁을 떠난 이유도 마찬가지야. 너나 비앙카는 서투르지. 정면으로 상처받아 세계를 저주해. 그런데 그런 아이를 좋아하거든.

 

파우스트: ……나의 무엇이 당신에게 상처를 줬다는 거야. 진심으로 존경하고 공경하고 있었다.

 

피가로: 네가 보기엔 그렇겠지. 뭐, 뭐랄까. 가치관 차이라는 거야.

 

파우스트: 피가로.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대답해.

 

피가로: ……내가 보기에는 이래. 오랫동안 살고 이것저것 하고 이것저것 잃고 떠돌듯이 살았어. 여러 가지를 주고 여러 가지를 빼앗아 왔어. 약하게 한 적도 있고 심하게 한 적도 있어. 하지만, 설익지 않은 채로…… 어느 순간 세상을 바꾸려는 뜻을 가진 젊은 마법사를 만나게 돼.

 

피가로: 기뻤어. 이걸 위해 살아온 줄 알았꺼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에게 남기려고 했지. 그리고 함께 세상을 바꾸고…… 함께 세상을 지켜보기로. 사람과 마법사과 함께 사는 세계……. 잘 모르겠지만 뭔가 나쁜 울림도 아니었고.

 

파우스트: 너……. 사람이 목숨을 걸고 하고 있던 일을 울림이 좋아서라니…….

 

피가로: 그래도 알았어. 알렉이 죽어도 너는 죽을 때까지 알렉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결국 외톨이야. 그런 거, 안 해봤어.

 

파우스트: ……하? 친구를 애도하지 말라는 건가……?

 

피가로: 질렸어! 아직도 친구라고 하는 거야? 너를 그런 꼴을 당하게 했는데…….

 

파우스트: 지금은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친구를 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

 

피가로: 너는 몰라. 인생의 깊이를 아무것도 모르니까.

 

파우스트: 사백 년이나 살았다고!?

 

피가로: 뭐가 사백 년이야. 영웅을 하고 직각으로 돌아서 저주꾼을 하고 있는 것 뿐이잖아. 나만큼 우여곡절을 겪어봐. 내 인생을 선으로 쓰면, 칠한 것처럼 시커멓게 돼. 구겨진 검은 선이 곧게 뻗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게 너였어. 잘 되었다면 나와 네가 중앙의 나라와 아서를 지켜보는 행복한 세계가 되어있었을 텐데…….

 

파우스트: 내가 나쁜 것처럼 말하지 마……. …….의미를 모르겠어…….

 

피가로: 한마디로 미련이야. 저주도 안되는. 웃기지?

 

파우스트: …….

 

피가로: 하하……. 너는 웃지 않지. 그러니까 내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거야. 분명 비앙카도 구원받을 테지.

 

피가로: 힘내, 파우스트 선생님.


9화

 

파우스트: …….

 

네로: 끝났구나, 선생.

 

파우스트: 너희들 …….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시노: 딱히. 마도구를 손질했을 뿐이야.

 

히스클리프: 맞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남쪽의 모두도 아까 다 같이 침실로 이동했거든요.

 

파우스트: ……의식 설명은 내일 하지. 걱정 말고 빨리 자.

 

시노: 임무나 의식 걱정은 안 해. 저주를 내린 것도 네가 아는 사람이잖아. 그렇다면 걱정은 없어.

 

파우스트: ……그러면 왜 일어나있지?

 

네로: ……하하…….

 

파우스트: 뭐가 웃겨.

 

네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배고프지, 시노도. 히스클리프도. 그래서 잠을 못 잤어. 채워지지 않는 게 있으면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아. 빠진 게 있으면 마음도 조급해져. 예를 들어, 모아둔 체면이라도 말이야.

 

파우스트: 흥……. 일리 있군. 교제를 잘 못하는 주제에.

 

시노: 같이 있지 못하는 걸 알게 된다고 했어.

 

히스클리프: 에?

 

시노: 네로가. 서른 번 죽을 뻔하면 같이 있지 못하는 녀석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네로: ……아아. 뭐.

 

시노: 나는 백 번 죽을 때까지 히스의 곁에 있을 거야. 히스에게도 우는 소리는 못하게 해. 피투성이인 나의 모습도 익숙해질 거야. 우리의 미래와 자유를 위해서.

 

히스클리프: …….

 

네로: 귀축…….

 

파우스트: 너희들은 어느 쪽이 주군인지 모르겠군…….

 

시노: 파우스트. 네로.

 

파우스트 / 네로: …….

 

시노: 그 달을 무릎 꿇게 하고, 내 신발 밑창으로 짓밟는 날까지 당신들이 필요해. 함께 할 수 없는 녀석들이라 할 지라도, 함께 나아가자.

 

네로: ……하하.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문장이 있는 한…….

 

히스클리프: 시노의 의견 전부는 찬성할 수는 없지만…… 함께 힘내요. 저희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세요, 파우스트 선생님.

 

파우스트: ……날이 밝으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정성스러운 회의와 사전 준비를 하고 우리는 해바라기 밭으로 향했다. 사전 준비는 신기한 것이었다. 향유를 머리 위에 뿌리거나 잎사귀를 잎에 넣거나. 모든 것을 끝내고 해바라기 밭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두려움에 파랗게 질리면서 기도하듯, 또는 의심에 잠겨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파우스트: 그러면 알려준 대로.

 

시노: 알았어.

 

시노가 짐 속에서 붉은 흙의 네모난 덩어리를 꺼냈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그가 주문을 외우자 적토덩어리는 붉은 모래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간다. 날아오른 붉은 가루는 새파란 하늘에 빙글빙글 선을 그리며 소용돌이 모양이 되어 간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브러프 스노스'

 

히스클리프도 붉은 흙 덩어리를 꺼내 주문을 외웠다. 그의 손아귀에서 날아오른 붉은 가루도 노란 해바라기 꽃잎 위에서 시노의 붉은 가루와 함께 어우러진다. 이윽고 붉은 가루는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둘러싼 거대한 붉은 원이 되었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주문을 외우면서 네로가 말린 향초를 내던진다. 그것들을 청량한 냄새를 풍기고 빨려 들어가듯 붉은 가루 선 위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순간 작은 불똥을 튀기며 타들어간다. 마을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교수형의 밧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리 와, 이리 와 하고 손짓하듯 흔들리고 있다. 혹은 어째서, 어째서 라며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것처럼.

 

(식인 마녀 비앙카……. 그렇게 불리다니. 성실하고 상냥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마녀……. 그녀가 어째서…….)

 

레녹스: 아키라 님.

 

레녹스에게 이름이 불려 나는 벌떡 고개를 들었다. 내 마음을 꿰뚫어본 듯 조용히 속삭인다.

 

레녹스: 저주받은 것에 정을 들이지 마세요. 저주를 인정하면 저주에 오염됩니다.

 

레녹스는 앞으로 나아가 마도구 열쇠를 꺼냈다. 교수형의 밧줄을 향해 열쇠를 치켜올린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피가로도 오브를 치켜올렸다.

 

피가로: '폿시데오'

 

루틸도 깃털 펜을. 미틸은 마법 병을 들고 똑같이 주문을 외운다.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체'

 

걸쭉하게 공기가 고인 것 같았다. 해바라기 밭 밖에 뿌려진 붉은 가루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여자 웃음소리가 났다. 파우스트가 마도구 거울을 치켜올린다. 사악한 공기를 가르듯 거울이 빛났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여자 웃음소리가 났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붉은 가루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여자 웃음소리가 났다. 어느새 마을의 사람들도 기도하고 있었다. 그 웃음 소리가 너무나도 슬펐으니까.

 

교수형의 밧줄이 조용히 사라져 간다. 그 대신, 기묘한 것이 나타났다.

 


10화

 

한 송이만 까맣게 그을린 해바라기다. 마치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망연히 서있는 사람 모습 같다. 왜 이런 모습으로 있냐고.

 

레녹스: ……비앙카…….

 

레녹스가 희미하게 숨을 삼켰다. 큰 바람이 불어서 해바라기가 흔들렸다. 파우스트가 검은 가루의 선을 넘는다.

 

네로: 파우스트!

 

네로가 제지하는 가운데 파우스트는 검은 해바라기를 껴안았다. 오랜 시간을 두고 가버린 동지를 힘차게 끌어안듯이.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옅은 빛에 싸여 검은 해바라기는 사라져 간다. 뒤에는 선명한 노란 해바라기와 어디까지나 눈부신 푸른 하늘이 남았다.

 

 

 

 

 

 

 

 

 

비앙카의 저주는 정화되고 아름다운 해바라기 밭에는 평화가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감사를 표하며 우리에게 해바라기 씨와 해바라기 색 스톨을 주었다. 모두 짧은 인사를 하고 란즈베르크 령 해바라기 밭을 나선다. 

 

어딘가 쓸쓸하게 끝날 무렵. 마법관의 탑에서 나와 마법관으로 돌아가려는 우리를 파우스트가 만류했다.

 

파우스트: 기다려.

 

……무슨 일인가요?

 

파우스트: 근소하지만 저주를 건드렸다. 저주를 거주 공간으로 들여오지 않도록 정화 의식을 가르쳐주지.

 

히스클리프: 정화의 의식…….

 

파우스트: 맞아. 각자 방에서 하도록. 현자, 너도.

 

알겠습니다…….

 

긴장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웃으면서 네로가 쭈그리고 앉았다.

 

네로: 파우스트 선생의 첫 수업이구나.

 

파우스트: 칠칠치 못하게 앉지 마.

 

시노: 강한 공격 마법은?

 

파우스트: 그건 다음이다. 그 전에 시노에게는 인내심을 가르쳐 주지.

 

루틸: 정화의 의식……. 저희도 같이 들어도 될까요?

 

파우스트: 나는 상관없지만…….

 

파우스트가 눈빛 만으로 남쪽 나라 선생님인 피가로를 확인한다. 피가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로: 좋은 기회야. 루틸도 미틸도 배우면 좋아.

 

미틸: 아싸!

 

레녹스: 파우스트 님. 은 냄비가 필요할까요?

 

파우스트: 아니. 미리 안뜰에 준비해놨어. 각자 그걸로 물을 떠줘. 사실은 빗물이 좋지만…….

 

피가로: 오즈에게 시키자.

 

 

 

 

 

 

우리는 안뜰에 모여 은빛 냄비를 끌어안으며 검은 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번개가 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찬 비에 뺨을 씻으며 우리는 빗물이 고이기를 기다렸다. 그건 신기한 시간이었다. 조용하고, 말이 적고, 신성하고, 외롭고, 하지만 어딘가 일체감이 있다. 같은 비를 맞고 같은 의식을 치른다는.

 

파우스트: 자신의 방에 돌아가면 창문과 문을 닫고 양초에 불을 밝혀 은 냄비로 빗물을 끓이도록.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은 모두 벗고 냄비가 끓으면 증기를 뒤집어쓴다. 먼저 혀에. 그 다음에 눈꺼풀에. 그리고 손가락. 옷은 계속 입지 않은 채 얼굴에서 발로 온몸에 증기를 뒤집어 쓰는 거야.

 

파우스트: 빗물이 전부 없어질 때까지 말은 꺼내지 말도록. 끝나면 창문과 문을 열고 증기를 밖으로 내보내 바람을 통과시킨다. 이것 뿐이다. 외웠나?

 

……알겠어요. 저…… 실패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나요?

 

뻣뻣하게 묻는 나에게 빗속에서 파우스트는 웃었다.

 

파우스트: 나는 저주꾼이다. 그때는 내가 도와주지.

 

 

 

 

 

 

방으로 돌아온 나는 시키는 대로 양초용 작은 아궁이에 은 냄비를 놓고 불을 켜다. 냄비의 빗물 끓은 소리를 들으며 옷을 벗는다. 욕실 이외의 장소에서 벌거벗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모두도 똑같은 걸 자기 방에서 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기묘한 일체감이다. 닫힌 방에서 혼자만. 그런데 같이 옷을 벗고 역할을 마치고 내 시간으로 돌아간다.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하얀 증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렸다가 혀를 내밀었다. 눈꺼풀에 증기를 대는 순간 선명한 해바라기 밭이 뇌리에 되살아난다. 거기서 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울고 싶을 정도로 희망찬, 순진하고 밝은 미소로.

 

???: 파우스트 님! 레녹스! 다음은 어디로 진군하시나요? 저, 어디까지라고 해도 따라갈게요. 모두와 함께!

 

들었을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려 어디론가 떠나간다.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머리는 해바라기 색 스톨처럼 부드러운 담황색이었다.

 

 

 

 

 

 

 

 

……그립네…….

 

담황색 스톨을 바라보며 나는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물로 받았을 때 모양이 구겨질까봐 좀처럼 몸에 두르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몸에 걸쳐볼까. 거울 앞에서 맞춰보고 있으면 노크 소리가 울린다.

 

파우스트: 나다.

 

파우스트였다. 진귀한 손님에 놀라 급히 문을 연다.

 

네. 무슨 일인가요?

 

파우스트: 네로가……. …….

 

입을 열려던 파우스트가 내가 목에 두른 스톨을 보고 말을 멈춘다. 미소지었을 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목덜미에 손가락을 뻗어 스톨 모양을 잡아준다.

 

파우스트: 네로가 다과를 구웠다는군. 너도 괜찮다면 같이.

 

와아, 꼭 가게 해주세요! 파우스트가 초대하러 와주다니 드문 일이네요.

 

파우스트: 가위바위보에서 졌어. 네가 시노와 히스에게 가르쳐준 거.

 

가위바위보, 기억해주고 계셨나요? 저랑도 해주세요. 참참참도 알려드릴게요.

 

파우스트: 뭐야, 그거.

 

파우스트와 나란히 웃으며 마법관 식당을 향해 간다. 목덜미에 감은 부드러운 담황색 스톨은 매우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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