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정 전 스토리입니다
6화
미틸: 미스라 씨! 발목에 휘감긴 이 담쟁이 덩굴 좀 떼주세요!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미스라: 하아……. 아무데도 못 가게 한거예요. 낮잠 잘거니까 얌전히 있으세요.
루틸: 미스라 씨, 잠을 못 자잖아요.
미스라: 시끄럽네.
루틸: 미스라 씨, 저희를 걱정해주시는 건 기쁘지만 이런 건…….
미틸: 어차피 걱정 따위 안 하고 있는거죠! 미스라 씨는 본인의 마력이 중요할 뿐이잖아요!
미스라: 맞아요.
미틸: ……이것 봐, 역시! 어머니의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은 북쪽의 마법사에요. 우리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아무래도 상관없어. 형님, 이런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면 안 돼요!
루틸: …….
미스라: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저와 치렛타가 약속한 것은 저에게 있어서 불행이지만, 당신들에게는 행운이에요.
미틸: 하!?
미스라: 어디서 쓰러져 죽을지도 모르는 약한 마법사인데, 제가 지켜줄 수 있어요. 손에 들어올 리가 없었던 힘이 손에 들어온건데 좋아하면 되잖아요.
미틸: 그런 거, 원한 적 없고…….
루틸: ……미스라 씨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약속한 것은 불행인가요?
미스라: ……그래요.
루틸: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건 그만두죠. 자, 미스라 씨. 담쟁이 덩굴 풀어주세요.
미스라: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한 것처럼…….
루틸: 저도 몇 번이나 말했어요. 약해져도 본인답게 살고 싶고, 자유가 없으면 힘들어요. 미스라 씨의 불행이 되면서까지 살고 싶은 게 아니에요. 빨리 담쟁이덩굴을 풀지 않으면……
미스라: ……풀지 않으면 뭐요?
루틸: 혀를 깨물어서 죽을거에요.
미스라: 잠……!?
루틸: ……윽.
미스라: 하…… 바보바보바보……!! 뭘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미틸: 형님이 혀를 깨물었어……! 형님이 죽어버려……! 미스라 씨, 빨리 담쟁이덩굴을 풀어요……!
미스라: ……윽, '아르시무!'
미틸: 형님……!
미스라: 빨리 입을 열어……! 이…… 이걸로 죽으면 제가 지키지 못한 게 되는 건가요?
미틸: 그런 거 몰라요! 미스라 씨 바보!! 바보!! 최악……!!
미스라: 루티……
루틸: 아싸! 자유다!
미스라: …….
미틸: 형님! 다행이다……! 우와아아앙…….
미스라: ……속였군요……. 혀 안 깨물었잖아요…….
루틸: 다음에는 진짜로 물거예요. 미스라 씨가 저희를 물건처럼 대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스라: 의미를 모르겠어요……. 자유로워지고 싶은거죠? 돌이 되면 자유는 없잖아요.
루틸: 돌이 될 자유가 있어요. 당신에게 얽매이고 관리되고 자유를 잃는 건, 돌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미스라: ……전혀 의미를 모르겠어…….
루틸: 아실 거예요. 미스라 씨가 저희를 관리하고 싶어하는 건, 미스라 씨도 불편함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 본인의 힘이 없어지는 일이 생기면 무섭고 싫으니까. 알 거예요.
미스라: …….
루틸: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불행하지 않고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모처럼 어머니를 통해서 만나 이어진 인연이 있으니까요. 불편하고 무서워도, 당신의 행복이 되고 싶어요.
미스라: ……아니, 당신들이 가만히 있어준다면 행복할텐데…….
루틸: 정말, 서로 양보하죠? 아까처럼 한다면 혀를 깨물거에요. 그래도. 미스라 씨가 안심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행선지를 보고하거나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유의할 수는 있어요. 우리 서로 신뢰하지 않겠나요?
미스라: ……생각해 볼게요……. ……하아…… 깜짝 놀랐다…….
미틸: 저도 깜짝 놀랐어요…….
루틸: 놀래켜서 미안해, 미틸. ……어라?
미틸: 왜 그러나요?
루틸: 저기 뭔가 글씨가 적힌 판이 있어. 간판일까? 문패……?
미틸: 뭘까……. 가서 알아봐요!
루틸: 응!
미스라: 잠깐……! 신중한 행동은 어디 간건데요!? ……정말이지, 이런 거…….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아요…….
미스라: 금방 비에 휩쓸려가 버리는 모래그림 같은 것에 자신의 생명선을 그을리고 있다니……. 대체 뭘 남기고 간건가요, 치렛타…….
루틸: 뭘까, 이거. 낡아서 글씨가 옅어졌는데…… 귀여운 색을 하고 있네.
미틸: 간판인가……? 아…… 먼지를 문지르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차…… 콜록콜록…….
루틸: 콜록……. 어디 보자? 유…… ……클로로…….
미틸: '용감하고 아름다운 내 친구 클로로스의 집'……?
7화
스노우 / 화이트: 꺅꺅, 비가 오는구먼!
스노우: 첨벙첨벙! 우리들, 비오는 날 정말 좋아!
화이트: 첨벙첨벙! 피가로도 같이 물놀이 하자!
피가로: 사양할게요. 두 분은 순진해서 좋네요.
스노우: 호호호. 우리들, 아이니까.
화이트: 피가로는 너무 똑똑하네. 요령 있게, 조심성 있게, 형편 좋게, 마음에 드는 무언가에 달라붙어 있다.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현명하게 오랫동안 하염없이 계속 살았더니, 단념이 너무 빨리 되어 버렸네. 달콤한 과육만 입에 넣고 재빨리 과일 씨를 뱉듯이 손을 베어 떠나 옮기고 있다.
피가로: 너무하네, 화이트 님. 그런 거 아니에요.
스노우: 그렇지 않다. 빨리 분별하는 것은 옛날부터였지 . 오즈도 만나자마자 돌로 만들자고 하지 않았는가.
피가로: 했다, 말했어요…….
화이트: 미틸의 예언을 알려줬을 때도 치렛타에게 낳지 말라고 했었다.
피가로: 했다, 말했어요…….
스노우: 오즈가 아서에게 집착했을 때도 오즈의 약점이 되지 않도록 빨리 돌로 만들어 놓자고 했었다.
피가로: 했다, 말했어요…….
화이트: 그러면서 막상 정이 들어도 자기 마음은 좀처럼 믿지 않네. 사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상냥한 아이인데 말이지.
스노우: 그저 사치에 익숙한 미련한 놈일세.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사랑받고 의지받고, 사랑의 가치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피가로: ……. 아하하…… 그건 스노우 님이죠.
스노우: 뭐가 말이지?
피가로: 사랑의 가치를 알 수 없게 되어서 가장 좋아하는 짝까지 그 손으로 돌로 만들어 버렸잖아요.
피가로: 스스로도 어리석다고 생각하시죠? 저로서는 뭐, 이쪽으로 어서오세요 라는 느낌이지만.
피가로: 그래서, 고독의 맛은 어떤가요? 즐기고 있나요? 올바른 맛을 가르쳐 드릴까요?
스노우: ……피가로여.
화이트: 그만두게, 스노우! 피가로도 부추기지 마라. 게다가 스노우는 고독하지 않아.
피가로: 고독해요. 당신은 죽었으니까.
화이트: …….
스노우: 피가로여, 슬슬 벌을 줘야겠구나. 그대는 벌을 정말 좋아하니까 말이지.
피가로: …….
피가로: 해보는 게 좋아. 한 쪽을 잃은 늙은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화이트: 아아, 아아, 마음대로 하게나. 어느 쪽이 돌이 되어도 내 길동무일세. ……응?
피가로: ……윽, 우왓……! 뭐야, 이거!?
스노우: 우붑……! 벌레……!?
화이트: 켁…… 켁……! 벌레의 대군일세! 저 작은 상자에서…….
피가로: ……뭔가 글자가 써져있어……. 이건…… '클로로스의 소중한 진수성찬'……?
루틸: 현자님! 레노 씨, 브래들리 씨!
루틸, 미틸! 미스라도 무사했군요.
미틸: 현자님. 저희들, 이상한 간판을 찾았어요. '용감하고 아름다운 내 친구의 클로로스의 집' 이라고.
클로로스…….
스노우: 그쪽도인가. 우리도 묘한 작은 상자를 찾았네.
화이트: '클로로스의 소중한 진수성찬' 이라고 써져 있었다. 안에 들어있던 것은 작은 벌레였지만.
피가로: 작은 상자 바닥에서 달콤한 꿀이 나와 벌레를 모으는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것 같아.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미틸: 여기, 학교에서 배운 개구리 사육함과 비슷해요. 깨끗한 물이 있고, 비가 내리고 있고…….
브래들리: 개구리? 개구리 같은 건 한 마리도 못 봤어.
레녹스: 클로로스가 개구리야. 여기는 클로로스를 찾기 위한 물의 정원이다.
미스라: 뭔가 알고 있나요?
레녹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한 비의 정원을 둘러보았다.
레녹스: 이 정원을 만든 건 콜린이라는 이름의 마법사입니다. 콜린은 사람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을 때 만났어요. 그도 찾고 있는게 있었습니다. 그게……
루틸: ……개구리 클로로스?
레녹스: 아아.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으며 레녹스는 반갑다는 눈빛으로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다.
8화
레녹스: ……고마워. 물을 나눠줘서 살았어.
콜린: 천만에. 나도 혼자 여행해서 외로웠거든. 느긋하게 있어, 레녹스. 나는 콜린, 서쪽의 마법사야. 여긴 내 친구를 위한 정원이고.
레녹스: 친구……?
콜린: 클로로스라고 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보라색 개구리지. 이름도 내가 지어줬어. 비 갠 뒤 무지개가 뜬 날, 웅덩이 위에서 딱 마주쳤거든. 거울처럼 하늘을 비춘 웅덩이 위에서 클로로스는 하늘을 나는 보라색 꽃 같았어. 호리호리한 손발과 신비한 피부에 반했지. 젖은 듯한 눈동자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온몸이 저리는 충격을 받았어. 어떻게 해서든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거야.
콜린: 그는 품위 있고 사랑스럽고 재빠르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윽고 마음은 서로 통해 갔어. 우리는 달밤에 춤추고 물가를 산책하고 벌레를 잡으며 놀았다. 그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그의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같이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야. 이런 기분…… 너에게도 잘 전해졌으면 좋겠는데. 너에게도 그런 소중한 사람이 있어?
레녹스: ……아아.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있어.
콜린: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옆에 있는 것이 좋아. 나와 클로로스처럼 되기 전에.
레녹스: ……무슨 뜻이야?
콜린: 클로로스는 철새에게 유린당해 버렸어. 그때부터 계속 그를 찾고 있지. 그래서 클로로스가 좋아할 것 같은 정원을 마도구로 꾸며서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레녹스: ……계속……. 언제부터?
콜린: 백년 전 쯤인가.
레녹스: ……클로로스는 마법 생물……. 마법의 개구리인건가?
콜린: 평범한 개구리야. 나에겐 무엇보다도 특별한 개구리지만.
레녹스: …….
레녹스: 웃는 얼굴로 말하는 콜린을 앞에 두고 차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백년도 더 전에 철새에게 잡힌 개구리……. 벌써 죽었겠지, 라고는. ……나도 절대로, 결코 듣고 싶지 않았었으니까요. 슬픈 이별은 한 그분이 이제는…… 살아 있지 않겠지, 라니…….
……레녹스…….
레녹스: 하지만…… 얼굴에 나와버렸겠죠. 콜린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콜린: 그런 표정 짓지 마, 레녹스. 클로로스는 무사해. 나는 확신하고 있어.
레녹스: ……어째서…….
콜린: 그야, 난 마법사로 태어났지만 나를 위해 원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런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거야. 제발 무사해달라고. 신이시여,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생애 단 하나뿐인 소원이야! 그러니까, 반드시 실현될 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실현되지 않으면…….
콜린: 이제 두 번 다시 클로로스를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레녹스: …….
콜린: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 걸까……. 그야…… 그야…….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 이런 이별은 싫어……. ……윽, 클로로스. 만나고 싶어…….
콜린: ……만나고 싶어…….
레녹스: ……그가 운 것을 본 것은 그것 뿐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웃는 얼굴로 저를 배웅해줬어요. 다음에 만날 때는 클로로스를 소개한다면서.
루틸: ……콜린 씨…….
브래들리: ……이 정원에서 다른 마법사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아. 아마 콜린이란 놈은 돌이 되었겠지. 정원을 가꾸는 마도구만 남긴 채.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되살아난 걸지도…….
레녹스: …….
미스라: 그러면 마도구를 치우고 여기를 부수고 돌아가죠. 이걸로 한 건 마무리 된거죠.
레녹스: ……그렇네.
씁쓸한 침묵에 외로움이 감돌았다. 남쪽의 형제도, 쌍둥이도, 피가로도 모두 조용했다. 정원에 쏟아지는 빗소리도 누군가의 떨어뜨린 눈물처럼 슬픈 기색이 역력하다. 보라색 개구리도, 그의 친구였던 서쪽의 마법사도 여기에 없다. 그때, 마도구인 장총을 어디론가 치우면서 브래들리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브래들리: 귀가를 서두를 필요는 없잖아. 걔네들은 달밤에 춤을 췄었지. 밤을 기다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그녀석들에게 조의를 표하자고.
9화
그것은 멋진 제안이었다. 하지만 다들 그런 제안이 브래들리한테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미틸: 브래들리 씨가 그런 말을 하다니…….
브래들리: 뭐야, 나쁘냐.
브래들리는 검연쩍은 듯 얼굴을 찌푸린 뒤 조용한 눈빛으로 미틸에게 미소를 건넸다.
브래들리: 죽은 자는 존경을 받아야 해. 이런 엉터리 세계에서 돌이 되는 것까지 적당히 한다면…… 사는 것마저 적당히 해버려.
피가로: …….
브래들리: 멍청한 바보가 있어서 멍청한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걔네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주눅든 바보가 되어 춤을 추자고.
히죽 웃는 브래들리에게 루틸이 손을 번쩍 들었다. 쭉 뻗은 손끝이 빗방울을 튀기며 반짝반짝 빛난다.
루틸: 찬성합니다!
미틸: 저도 찬성이에요!
화이트: 나도 찬성일세!
스노우: 클로로스처럼 웅덩이에서 뛰고 달빛 연못에서 춤추는 게야!
피가로: 아하하, 괜찮은데. 이왕이면 좀 더 이 정원을 즐기자. 즐거운 이별로 할 수 있도록.
미스라는 말없이 귀를 긁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고 항복한 것처럼 한숨을 내쉰다.
미스라: 알겠어요. 좋아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클로로스의 정원에서 밤을 기다리게 되었다.
미스라: …….
미틸: 미스라 씨……. 잠깐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미스라: ……하아, 뭔가요?
미틸: 저기……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의 친구셨죠? 저는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어서……. 괜찮다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
미스라: ……어떠냐니……. 치렛타는 강한 마녀였어요. 웃을 때가 많았나.
미틸: 그런가요? 잘 웃는 사람이었다는 건, 행복하게 살았다는 건가요?
미스라: 글쎄……. 인간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돌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면 행복하게 살았던 거겠죠.
미틸: ……저를 싫어하나요?
미스라: 어째서.
미틸: ……저를 낳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미스라: 이상한 말을 하네요. 그 여자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을 뿐이에요. 몇 개의 작별과 저울질을 해 당신을 낳는 것을 선택했다. 저는 뭐, 선택받지 못했던 것 뿐이에요.
미틸: …….
미스라: 뭐라고 할까……. 당신은 그녀의 선택지죠.
미틸: ……에헤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기뻐요. 어머니가 안 계셔서 쓸쓸하지만…… 이렇게 어머니의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형님도 있고…….
미틸: 미스라 씨가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피가로 선생님이나 레노 씨가 있어주니 외롭지 않아요.
미스라: 그런가요.
미틸: 네. 항상 지켜봐주세요. 저희를 지켜주신 거예요.
미스라: …….
미틸: 미스라 씨…… 어디로 가나요?
미스라: 애 보는 것에 질렸어요. 그래서 양보하려고요.
미스라: 레녹스.
레녹스: ……미스라……. 미틸은? 너를 만나러 갔는데.
미스라: 얘기를 했어요. 다음은 당신과 피가로에게 맡길게요.
레녹스: …….
미스라: 죽게 하지 마세요. 루틸도, 미틸도.
레녹스: ……물론이야.
루틸: 예쁜 정원이네요. 없어지는게 아깝네.
그러게요…….
나는 루틸, 브래들리와 함께 연못가를 걸었다. 빗소리가 그치지 않는 정원. 하지만 오늘 밤, 드디어 긴 비가 끝난다.
외로움을 느꼈지만 정원을 바라보면 흔한 미소가 기적처럼 넘치고 있었다. 레녹스의 옆에서 미스라가 웃고 있다. 그의 안경을 벗고 끼우면서 즐거워 보인다. 웅덩이를 튀기며 미틸이 피가로에게 달려간다. 뭔가 찾아서 자랑하는 것 같아. 자랑하는 미틸보다 기쁜 듯 피가로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부드러운 빗소리에 휩싸이면서 쌍둥이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호흡과 마음을 모아서.
브래들리: 좋은 경치네.
루틸: 정말이네요……. 너무 아름다워요.
깨물 듯 미소를 지으며 루틸이 슬며시 눈물을 글썽인다. 브래들리는 그 눈물을 발견하고는 놀리면서 웃었다. 루틸도 울면서 때리는 시늉을 한다.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비에 떠내려가듯 잃어가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릴 줄 알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줄 알면서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피가로: 현자님!
피가로에게 불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바로 위를 가리키며 피가로가 웃는다.
피가로: 이제 곧이야. 밤이 와.
그 소리를 신호로 한 듯 브래들리가 나와 루틸을 양쪽 겨드랑이에 껴안았다.
브래들리: 좋아! 기운 넘치게 가자고!
에?
루틸: 우왓……!
브래들리는 힘차게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10화
……아하하……! 흠뻑 젖었다……!
루틸: 아하하! 깜짝이야!
드높게 물보라가 튀고 웃음소리가 터진다. 가느다란 실 같은 비도, 연못의 수면도 달빛에 빛났다.
미틸: 정말이지, 뭐하시는 건가요!
스노우: 물놀이일세!
화이트: 즐거워 보이는구먼!
기묘한 상처 때문에 그림 속에 갇힌 쌍둥이들이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그림에서 뛰쳐나간다. 출항하는 배에 던져진 종이 테이프처럼 그림에서 길게 뻗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끌고, 여행하는 물의 정원에서 스텝을 밟았다. 수면을 걷어차고 물보라를 뿌리며 루틸과 브래들리도 춤을 춘다. 거기에 레녹스가 출현시킨 그의 양들이 섞였다. 즐거운 듯이 물가를 달려간다. 피가로가 우아하게 절을 하고 스노우를 춤으로 초대한다. 화이트는 미틸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미스라는 혼자서 달을 보고 있다.
아하하! 간지러워!
레녹스의 양이 달려들어 나는 웃음소리를 냈다.
레녹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레녹스가 내 옆에 있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손을 잡았다.
흠뻑 젖은 채로 스텝을 밟는다.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레녹스: 좋은 밤이네요.
좋은 밤이에요!
마법사 콜린과 개구리 클로로스를 떠올리며 우리는 달밤에 계속 춤을 췄다.
맞다, 레녹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레녹스: 물론. 뭐든 말씀하세요, 현자님.
피가로와 화해해 주세요. 싸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걱정이 돼서.
레녹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곧 피가로를 찾아 손짓했다. 피가로도 금방 물소리를 내며 왔다. 진짜 싸움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밝은 눈동자로 피가로가 웃고 있다.
피가로: 왜?
레녹스: 현자님이 저희가 화해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셔서.
피가로: 아하하! 뭐야 그거. 싸운 적 없어. 혹시 아까 그거? 그 정도 '아~ 아' 는 매일 있는 거야. 이런 거 신경쓰면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어떤 나라에서도 못 살아.
논하는 듯한 말투의 피가로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원래의 세계에서는 신경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소중히 여기고 싶어요. 부탁드릴게요, 피가로. 이 정원에 내리는 비처럼 자기도 모르게 쌓여 홍수가 날 수도 있으니까.
피가로는 보기 드물게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딘가 쓸쓸한 듯이 정원에 미소를 짓는다.
피가로: ……그렇네. 무언가의 끝도, 무언가의 시작도, 그런 것일 수도 있어. 고마워, 현자님. 너의 충고에 따를게.
피가로: 레녹스, 사실대로 말하면 아까 약간 짜증났어.
레녹스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피가로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을 잡으며 레녹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레녹스: 죄송합니다. 눈치없이.
피가로: 아니, 네 탓이 아니야. 화풀이 같은 거지. 하지만…… 그런 태도는 취하지 말걸 그랬어.
레녹스: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저야말로 늘 모자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서툴러서…….
피가로: 아하하. 알아, 알아. 괜찮아.
장난기 어린 피가로의 대답에 레녹스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그는 여행 중에 만난 콜린 앞에서도 이렇게 미소 지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기도에, 혹은 누군가의 아픔에 바쳐진 꽃다발처럼, 바람을 맞으며 계속 불어다닌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이나 현자님, 루틸이나 미틸이 지금 여기에 있어서, 저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콜린이 남긴 정원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그의 기척이 보이는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소박한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썹을 숙이고 피가로가 쓴웃음을 짓는다. 기묘하고 상냥하고, 신기한 밤이었다. 마법을 이용해 물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분수를 만들기도 하면서 시간을 들여 이 정원을 사랑했다. 안타깝고 외로웠지만 꿈을 꾸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했다.
이윽고, 기적 같은 시간에도 끝이 온다.
스노우: 이 나무에만 가는 은빛 실이 드리워져 있다. 아마도 마도구의 스위치겠지.
화이트: 이걸 잡아당기면 이 정원도 사라질걸세.
쌍둥이의 설명을 듣고 레녹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큰 손바닥을 펴서 은빛 실을 잡는다. 모두 잠자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양들도, 마법사도, '거대한 재앙' 도.
레녹스: …….
레녹스: 안녕, 콜린.
살며시 고한 작별의 말을, 부드러운 비처럼 땅에 떨어뜨리고 레녹스가 은색 줄을 당긴다. 순식간에 나무도, 물방앗간도, 간판도, 작은 상자도 물로 바뀌어 땅으로 낙하한다. 첨벙, 하고 커다란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 해서 사랑스러운 환상이 사라지듯 정원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신기했던 정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레녹스의 발치에 낡은 보라색 개구리 모양의 장식물이 떨어져 있었다. 콜린의 마도구겠지. 보라색 개구리 장식물 옆에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처럼 마나석이 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을 소중하게 주워들고 레녹스가 나에게 건넨다.
레녹스: 현자님이 가지고 있어주세요.
하지만…….
레녹스: 이제 마력은 남아있지 않겠지만, 오늘 밤의 추억으로.
나는 망설이다가 레녹스에게 내 손바닥을 포갰다. 보라색 개구리 장식물을 거머쥔다.
……알겠습니다. 소중히 할게요.
안경 너머로 레녹스는 미소를 지었다. 맑은 밤하늘 아래에서.
(그립네…… 그 신기한 비의 정원……)
보라색 개구리 장식물을 살며시 손끝으로 덧그리면서 빗소리를 듣는다. 그러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레녹스: 현자님.
레녹스의 목소리다. 들어오세요, 라고 말하자 그가 방문을 열었다.
레녹스: 모두와 차를 마시려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어떠신가요.
부디! 오늘 비가 오니까 다들 마법관에 있나 보네요.
레녹스: 가끔은 이런 날도 좋죠. ……아.
책상 위에 놓은 보라색 개구리 장식물을 눈치챈듯 레녹스가 입을 연다.
레녹스: ……저도 마침, 그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비오는 날이니까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레녹스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레녹스: 좋은 비네요.
살며시 자애하는 듯한 조용한 속삭임이 빗소리에 섞여 녹아든다. 나도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좋은 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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