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레녹스: 그만 항복해.
시노: ……윽, 시끄러워!
어라? 레녹스랑 시노……. 설마 싸우는 건가?
잠깐만요! 그만 싸워주세요!
레녹스: 현자님.
시노: 싸움이 아니야. 레노가 연습에 어울려줬어.
연습? 체술의?
시노: 아아. 카인을 이기기 위해서. 레노는 팔씨름에 세잖아. 사이비 양치기니까.
레녹스: 사이비라고 하지마……. 시노, 오늘은 여기까지다.
시노: 강해졌어?
레녹스: 아아, 많이 늘었어. 너는 이해하는 게 빨라.
시노: 뭐 그렇지.
(레녹스는 말이 없지만 잘 돌봐주고 믿을 만한 사람이야. 하지만 마법사인데 어째서 체술이 강한거지?)
미틸: 레노 씨, 레노 씨!
레녹스: 미틸, 왜 그래?
미틸: 어제 따온 마법의 풀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어요. 같이 찾아주실 수 있나요?
레녹스: 아아, 좋아.
미틸: 감사합니다!
루틸: 레노 씨! 나중에 그림 연습할 건데 모델이 되어 주실래요?
레녹스: 루틸의 모델인가…….
루틸: 모두들 가만히 있어 주지를 않거든요. 부탁드릴게요!
레녹스: 좋아. 이상한 포즈가 아니라면야.
루틸: 아싸! 감사합니다! 답례로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레녹스는 부탁을 많이 받네. 언제나 싫은 내색 없이 맡아주고 있어……. 그래서 몸집도 크고 강인하지만, 겁먹지 않고 모두가 좋아하는 걸까. 까다로운 파우스트도 레녹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주고……)
2화
파우스트: 시끄러워. 내버려 둬.
레녹스: 파우스트 님. 방금 것은 파우스트 님이 잘못하셨습니다.
파우스트: 하?
레녹스: 어설픈 점도 있지만 피가로 님은 파우스트 님을 챙겨주셨으니까요.
파우스트: 흥, 부탁한 적 없어.
레녹스: 그런 미틸 같은 짓을…….
파우스트: 그런 아이랑 같은 취급 하지 마! …………. 그…… 그렇게 어른답지 못했나……?
레녹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죠. 아쉽습니다. 당신은 현명하신 분인데.
파우스트: ……알았어.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지.
레녹스: 네, 부디. 감사합니다.
레노, 잠깐 괜찮나요?
레녹스: 현자님, 뭔가 도울 일인가요?
그게 아니라 레노에 대해 듣고 싶어서요.
레녹스: 저에 대해?
제가 갑자기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 다음 현자님과 모두가 잘 되도록 여러분들에 대해 적어놓으려고요. 그러기 위해서 레노가 잘하는 것이나 못하는 것을 물어보고 싶어서. 또, 지난 며칠 동안 레녹스를 보면서 여러 가지 관심이 생겼어요.
레녹스는……
▶ 상냥하죠.
레녹스: 그럴까요…….
상냥해요.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레녹스: 딱히 다를 것은 없지만, 현자님께서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기쁩니다.
▶ 신기하죠.
레녹스: 신기…… 한가요……?
전혀 화내지 않고, 제멋대로인 것도 전혀 없고. 반대로 잘 못하는 것도 없을 것 같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레녹스: 본 그대로입니다만……. 저의 이야기라도 괜찮다면.
레녹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방으로 가볼까요.
네, 잘 부탁드려요.
3화
여기가 레녹스의 방……. 우왓…… 작은 양이…….
레녹스: 가만히 있어. 죄송합니다, 현자님.
아뇨, 귀여워요! 방도 멋지네요.
▶ 저 나무 막대기는 뭔가요?
레녹스: 아아…… 차분해져서 그냥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양이 왠지 좋아서.
모양이 왠지 좋아…….
레녹스: 네, 아름다워서.
▶ 양 쿠션 귀여워요.
레녹스: 아……. 하하, 부끄럽네요.
직접 산 건가요?
레녹스: 아뇨, 마법서에 살기 위해 사러 갔을 때 루틸과 미틸에게 권유 받았습니다. 사지 않을 거라면 선물한다고 해서. 직접 사버렸네요.
귀여운 에피소드네요!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은 엄청 웃으셨습니다.
▶ 멋진 러그네요.
레녹스: 감사합니다. 양모로 만들어진 러그입니다. 양의 털은 습기를 마시고 토하기 때문에 습도가 쾌적하게 유지돼서요.
헤에, 좋은 걸 들었네요!
레녹스: 양의 털은 좋아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오염에도 강하기 때문에 추천드립니다.
레노는 남쪽 나라에서 양치기를 하고 있었죠. 어떤 생활이었나요?
레녹스: 어떤 생활……. 남쪽 나라에서는 방목하고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저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었네요.
방목이 아니면 어떻게 되나요?
레녹스: 아…… 에, 오두막에 들어가거나 풀을 찾아 땅을 이동하는 것은 유목입니다. 남쪽 나라에서는 여름에는 산지에 있다가 겨울에 산기슭으로 내려오죠.
울타리가 없으면 어디론가 가버리거나 하지 않나요?
레녹스: 그래서 목양견이 있습니다. 저도 기르고 있었습니다만, 몇 년 전에 늙어 죽고 말았어요. 지금은 마법으로 감시하면서 돌보고 있죠. 좋은 개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 아이가 잊혀지지가 않아서.
……정이 깊군요……. 레녹스 다워요.
레녹스: 그런가요.
4화
레녹스의 이름이나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레녹스: 레녹스 램. 나이는 400살 정도인가. 파우스트 님보다 연상입니다.
그렇군요!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은?
레녹스: 좋아하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건가. 자연을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낚시라던가 목수 일 같은 걸.
▶ 낚시, 재밌을 것 같아요.
레녹스: 재밌습니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낚싯대를 내리고 있으면 느긋해지고 기분이 가벼워져요. 살았던 곳에서는 떨어져 있습니다만, 좋은 낚시터가 있습니다. 큰 계류로 물이 매우 맑아서…….
혼자서 외출하나요?
레녹스: 가끔은요. 루틸과 미틸과 함께 갔을 때에는 저녁 캠프를 했었습니다. 낚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먹으면, 신선하고 살이 꽉 차 있어서 아주 맛있어요.
▶ 목수 일, 재밌을 것 같아요.
레녹스: 재미있네요. 도면을 쓰기도 해서…….
거기부터 하는 건가요!?
레녹스: 간단한 것은 필요 없지만 복잡한 것은 치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신혼부부의 부탁을 받고 찬장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네요. 그건 서랍장이나 찬장이 많으니까.
레녹스: 그밖에 좋아하는 것은…… 집안일도 싫어하지는 않네요. 요리나 빨래, 청소 같은 것도.
그렇군요. 저는 자주 빼먹어 버려서.
레녹스: 하하, 현자님은 바쁘시니까요. 저라도 괜찮다면 다음에 도와드리겠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싫어하지 않아요. 하루가 조용히 시작되고 무사히 끝나는 느낌이. 날이 밝아 아침 햇살에 눈을 떠서…… 양들이나 날씨에 맞추어 일을 시작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자신을 돌볼 차례.
레녹스: 내일의 준비를 하고 잠들기 전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한숨을 돌린다. 그 시간을 좋아하네요.
나는 그의 하루를 상상했다. 하늘의 빛과 풀, 흙먼지와 동물 냄새가 나는 조용하고 느리고 푸르스름한 일상. 그런 시간도, 그런 시간을 사랑하는 그도 너무 멋져 보였다.
5화
레노는 온화한 사람인데, 싫어하는 것이나 못하는 것이 있나요?
레녹스는 생각하듯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은 매우 크고, 아무렇게나 하는 짓에 남자의 느낌이 난다.
레녹스: ……말하는 것이려나.
아…… 죄송해요…….
레녹스: 아, 아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지금의 시간이 싫은 것은 아닙니다. 뭐랄까, 그……. 뭔가 말해 달라던가, 뭔가 말해주세요 라고 들을 때 곤란하네요. 뭔가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때는 말하고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때에는 정말 딱히 구애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뭐라고 말씀해 주세요 라고 자주 듣나요?
레녹스: 네. 루틸이나 미틸이 싸웠을 때라던가.
싸우는군요!?
큰 키를 흔들며 레녹스가 웃었다.
레녹스: 합니다. 루틸은 멍하니 있어서 자주 미틸을 화나게 해요. 하지만 루틸도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에 우는 것은 미틸입니다. 그쯤에서 뭔가 말해 주세요 라는 말을 듣네요.
아하하, 그건 곤란하겠네요.
레녹스: 귀엽습니다, 둘 다.
레녹스: 싫어하는 것은 모욕일까요. 당하는 것도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당하고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건 좀 알 것 같아요.
맞다, 물어보고 싶었는데 레노는 어째서 체술이 특기인 건가요?
레녹스: 스승에게 배운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익숙해져서…….
익숙해져?
레녹스: 저는 전쟁 중에 태어났거든요.
아…….
6화
레녹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던 오즈라는 마법사……. 뭐, 그 오즈 님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그가 갑자기 사라져 지배자를 잃은 세계는 전대미문의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나라끼리 싸우고, 내란도 있고, 중앙의 나라는 그랑벨 왕조 앞의 국가가 망헀고, 어디나 엉망이라서.
그랬었군요……. 레노는 어디에서 태어났나요?
레녹스: 저는 탄광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의 중앙의 나라로 말하자면 남쪽 국경 근처에 있는 탄광 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죠. 현지 지배자에게 어릴 때부터 아버지, 형제와 함께 탄광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법사라는 것은 숨기고 있었네요. 하지만 탄광의 동료는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거기는 위험이 많으니까요. 낙반 사고나 가스, 먼지로 폐를 당하거나…….
레녹스: 그래서 몰래 마법으로 사람을 돕고 있었습니다. 다들 보탬이 되어 주어 윗사람 모르게 입을 다물고 있어줬습니다. 그래도 가혹한 환경에서 혹사 당하고 있었기에 사람은 죽었죠. 누구나 겁을 먹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럴 때…… 알렉 님과 파우스트 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람과 마법사가 손을 잡아 지배자를 쓰러뜨린다고. 그들이 동료를 모으고 있다고.
파우스트는, 그 파우스트죠?
레녹스: 네, 그렇습니다. 아…… 너무 많이 얘기하면 혼나려나.
비, 비밀로 할게요.
레녹스: 부탁드립니다.
레녹스: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그래서 탄광에서 큰 폭동이 일어났고, 그때 저희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 폭동…….
레녹스: 위험한 장소에서 불만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시간 문제였겠지만요. 불만이 가득 찬 팥에 알렉 님과 파우스트 님의 소문을 듣고, 모두 자신들도 일어서려고. 일어서서 혼난 사람도, 죽은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죽은 물고기처럼 진흙 같은 눈을 하고 일하던 그들의 눈은,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가…….
레녹스: 돌아가신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요. 폭동이 가라앉고 탄광주들의 병사를 쫓아낸 뒤 시체를 발견했죠. 정면으로 이마에 상처가 있었어서……. 아아, 훨씬 앞을 향해 싸웠구나 하는 감회가 새삼스러웠습니다.
용감한 사람이었군요…….
레녹스: 그렇네요…… 저에게 자부심을 가르쳐준 사람이었습니다.
레녹스: 그 이후로…… 동료들은 지배자들에게 저항을 계속하며 큰 희생을 당했지만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7화
레녹스: 그리고 살아남은 동료들과 함께 알렉 님의 군에 합류했습니다. 알렉 님이 인간들을, 파우스트 님이 마법사들을 이끌고 계셔서 저는 파우스트 님의 종자가 되었죠. 그 다음은……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승리의 눈앞에서 마법사들은 추방 당했고, 알렉 님은 중앙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말하기 지친 듯 레녹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방금 들었던 평온한 생활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삶을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는 온화하고 상냥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망하나요? 알렉이라는 사람이나, 오즈를…….
쓴웃음을 지으며 레녹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레녹스: 저도 신기하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즈 님은 역사의 인물 같은 분이시고, 알렉 님은 용감하시고 밝으며 동료들을 생각하시는 분이셨죠. 마법사에게도 친절하고 파우스트 님을 진심으로 신뢰하셨다. 그와 함께 싸울 수 있는 것이 저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레녹스: ……원망할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알렉 님과 파우스트 님이 그렇게 되어 버린건지…….
그렇게 말하며 레녹스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슬픔이나 무거운 침묵을 떨쳐버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나를 눈치챈 것인지, 레녹스가 고개를 든다.
8화
내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줄 때처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그는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레녹스: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자님 덕분에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레녹스: 시간이 늦어버렸네요. 현자님의 방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렇네요……. 모처럼이니까 잠깐 산책하지 않겠나요? 조금만 더 얘기해요!
레녹스: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늘은 별이 예쁘네요…….
레녹스: 그렇네요…….
맞다, 레녹스. 마지막으로 레녹스의 마도구를 보여줄 수 있나요?
레녹스: 네, 여기요.
이건 열쇠…… 죠. 어디의 열쇠인가요?
레녹스: …….
대답하기 어렵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레녹스: 파우스트 님이 갇혀 계셨던 감옥의 열쇠입니다. 처형 전에 구해낼 생각이었거든요.
처형이라는 건……. 그…… 화형의…….
레녹스: 맞습니다. 하지만 파우스트 님은 도망칠 필요는 없어. 도망치면 알렉 님의 신용을 더 잃게 된다면서. 하지만 결국…… 알렉 님은 처형을 멈추지 않았다. 파우스트 님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버리지 못한 채 생각만 배어 점점 마력이 깃들어 가져서……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9화
……후회하고 계신가요?
레녹스: 후회는 하고 있네요. 하지만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파우스트 님을 구하지 못한 것인지, 알렉 님을 믿으려 한 것인지, 둘 사이를 주선하지 못한 것인지…….
낡은 열쇠를 커다란 손바닥 안에서 움켜쥐고, 레녹스는 나를 바라보았다.
레녹스: 현자님, 저는 현자님을 보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알렉 님을 떠올립니다.
저를……? 아서가 아니라……?
레녹스: 생김새는 아서 님이 더 비슷하지만, 마법사들이 따르는 인간이라는 점은 현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녹스: 알렉 님은 마법사를 좋아하셨어요. 우리도 알렉 님을 좋아했어. 그 사람을 위해 돌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 여기 있는 마법사들도 분명 적지 않게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과 함께 싸우고, 당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돼.
우리의 머리 위에서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레녹스는 내 손을 잡고 기도하듯 두 손으로 움켜쥐며 말했다. 간절한 목소리로.
레녹스: 저희를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현자님. 당신을 위하는 루틸이나 미틸의 마음을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무엇인가 불안해 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저에게 물어봐 주세요.
레녹스: 당신을 두렵게 하거나 당신이 의심을 품게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레녹스…….
약속이라는 말에, 나는 긴장했다.
10화
약속은 마법사들에게 무거운 의미를 가질 것이다. 레녹스는 흔들림 엇는 눈동자로 똑바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레녹스: 그런 비극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첫 번째는 버틸 수 있었어. 하지만 두 번은 못 버틸 것 같아. 또 가은 일이 생긴다면 저는 인간을 원망하게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현자님이나 인간들을 좋아하고 싶어요. 파우스트 님이나 루틸, 미틸, 아서 님이나 아이들이 슬퍼하는 얼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레녹스: 우리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하지만 그것 뿐입니다. 당신들과 계속 친구처럼 있고 싶어요. 그러니, 부디…… 알렉 님처럼 되지 말아주세요.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애틋할 정도로 한결 같아서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레녹스는 큰 덩치와 강한 힘이 있는데도 늘 욕심이 없었고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레녹스는 항상 나를 안심시키려고 해줬다. 우리의 신뢰가 오래 지속되기를, 그가 바랐기 때문이다.
약속할게요, 레녹스……. 저는 겁이 많고 아무것도 몰라서 금방 불안해지지만…… 모두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된다면 제대로 말하겠다고, 약속할게요.
레녹스의 손에 내 손을 얹으며 나는 다시 한 번 힘차게 말했다.
약속할게요, 레녹스.
레녹스는 약하게 눈써을 숙였다. 희미하게 숨을 떨며 살며시 미소 짓는다. 쉰 목소리로 그는 내뱉었다.
레녹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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