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魔法使いの約束/2021 이벤트 스토리

[잠 못드는 밤의 캄페지오] 6화~10화

6화 

 

히스클리프: 와아, 달다……!

 

와, 엄청 달아요! 뒷맛도 깔끔하고, 식후 디저트로 제격이네요.

 

히스클리프: 쥬스로 해도 맛있다고 도감에 써져 있었으니까 선물로 하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요,

 

좋아요! 모두들 기뻐할 거예요. 히스는 잘 알고 있네요.

 

히스클리프: 우연히 책에서 읽은 적이 있을 뿐이에요. 무르라면 좀 더 다양한 식물을 알고 있겠지만, 저는 그다지 지식도 없고…….

 

그렇지 않아요. 저 혼자였다면 이 과일도 찾지 못했을 거예요. 히스와 같이 있어서 다행이다.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현자님께 도움이 되었다면 기뻐요.

 

히스클리프는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심상치 않게 입을 열었다.

 

히스클리프: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저희들 때문에 신경을 쓰게 해버려서…….

 

아니에요, 그런…….

 

아까 두 사람의 싸움을 떠올리며 나도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단정한 옆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히스클리프: 시노는 항상 저렇게 사소한 거라도 싫은 거나 위험한 것으로부터 저를 멀리하려고 해요. 저를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지만, 솔직히 그렇게 하는 게 상처받아요. 마치 선을 그어 놓는 것 같아서…….

 

히스…….

 

시노는 히스를 지키고 싶어하니까요. 히스를 아끼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히스클리프: 저도 지지 않을 정도로 시노가 중요해요.

 

히스클리프는 씁쓸하게 웃었다. 시노도 히스클리프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아까처럼 방법이 잘 맞지 않는다. 두 사람의 결합을 어려움을, 나는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히스클리프: 안되겠네요. 이런 생각에 잠겨서 걸음을 멈추다니. 자신의 약점을 마주하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죠. 저도 네로나 파우스트 선생님처럼 더 강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는 과일을 양손에 안을 정도로 잔뜩 모았다. 히스클리프가 마법으로 따준 덕분에 과일들은 어느 것도 흠집 하나 없고, 반들반들하고 맛있어 보인다.

 

잔뜩 땄네요……!

 

히스클리프: 내일 것도 모았으니까요. 시노에게 보여주고 놀래킬까요.

 

아하하. 시노, 분명 깜짝 놀랄 거예요.

 

그때, 앞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나무를 헤치고 불쑥 나타난 것은 거대한 멧돼지.

 

꺄악!?

 

히스클리프: 와!

 

……어라?

 

시노: 뭐야, 너희들인가.

 

자세히 보면 거대한 멧돼지…… 가 아니라, 그것을 들고 있는 시노였다. 그 뒤로 멧돼지 그림자에 숨어 있던 네로도 나타난다.

 

시노: 거물을 사냥했어. 오늘은 얘로 스테이크를 해준대. 그렇지, 네로?

 

네로: 어.

 

현자 / 히스클리프: …….

 

반대로 놀라버렸네요…….

 

히스클리프: 네…….

 

(좀 아쉽다……)

 

 

 

 

 

 

 

 

그날 밤, 모두가 모아온 식재료를 네로가 손질해 조리해줬다. 메뉴는 호쾌하게 맷돼지 스테이크와 통생선구이.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잘 먹는다. 다음 순간, 모두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미틸: 맛있어!

 

엄청 맛있어요!

 

루틸: 이렇게 두꺼운 고기인데,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시노: 고마워 하라고. 내가 잡은 멧돼지다.

 

시노: 사냥감이 없었다면 레녹스의 양이 저녁 식사가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레녹스: 아아. 고마워, 시노.

 

(양을 숨겼다……)

 

피가로: 소재를 살린 와일드함이 좋네. 

 

네로: 싱싱한 식재료는 간단하게 먹는 게 제일 맛있으니까.

 

히스클리프: 루틸들이 잡아온 고기도 엄청 맛있어.

 

루틸: 다행이다! 물이 깨끗해서 그런지 물고기들이 많았어. 그런데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놓쳐서.

 

레녹스: 아아, 그거인가. 미틸의 키 정도 됐었지. 

 

미틸: 에에……!?

 

만천의 별 아래, 서로 웃는 저녁 식사는 남달랐다. 지붕도 없고 불빛조차 모닥불에 의지하는 듯한 불편함도 오늘 밤은 특별한 향신료다. 맛있는 음식이 더 맛있고 즐거워진다.

 

히스클리프: 과일도 많이 땄으니까 식사 후에 다 같이 먹자.

 

피가로: 반가운 이야기네. 디저트까지 있다니.

 

미틸 / 무르: 아싸! 

 

미틸: ……에?

 

무르!? 어느새에……!

 

레녹스: 어서 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다행이네.

 

무르: 다녀왔습니다! 있잖아, 소재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어.

 

루틸: 와아, 정말인가요?

 

미틸: 당장 내일 찾으러 가죠!

 

시노: 그러고 보니 무르, 슬슬 알려줘. 꿈속의 고리를 만드는 소재는 어떤 식물이지?

 

무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르: 식물?

 

히스클리프: 어라? 아니야? 분명히 식물의 섬유를 가공해서 쓰는 건가 싶었는데.

 

무르: 부부. 빗나갔어! 

 

네로: 식물이 아니면 뭐로 만드는건데?

 

무르: 둥지야. 꿈의 고리는 이 섬에서만 서식하는 특별한 거미줄을 가공해서 만들어.

 

벌레를 싫어하는 히스클리프는 그 말에 겁을 먹었다.

 

히스클리프: 거, 거미……. 아냐, 파우스트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열심히 해야……!

 

그의 갈등을 무릅쓰고 무르는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무르: 옛날에는 이 섬에도 사람이 살았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 어째서일까?

 

에? 어째서라니…….


7화

 

무르: 아주 옛날에 이 섬 사람들은 어떤 큰 거미를 신으로 모셨거든. 하지만 그 거미는 탐욕스러워서 아무리 공물을 줘도 만족하지 못해서 마지막에는 이 섬 주민을 전부 먹어버렸대!

 

미틸 / 히스클리프: …….

 

크게 숨을 삼킨다. 상상도 못했던 처참한 일화에 미틸도 히스클리프도 창백해졌다.

 

시노: 그런 거미, 정말로 있나? 어차피 그냥 고리타분한 전설이잖아.

 

무르: 어떨까! 하지만 거미가 살 만한 곳은 찾았어. 숲 속에 오래된 신전이 있었거든. 뭔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기척도 느껴져.

 

히스클리프: 그 기척이라니, 설마…….

 

무르: 거미일 수도 있고, 이 근처의 짐승일지도 몰라. 어느 쪽일까?

 

…….

 

밤의 어두움도 거늘어 아까 발을 들여놓았던 숲이 무서운 괴물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잡아먹은 거미가 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시노: 괜찮아, 현자.

 

시노가 식사하던 손을 멈춘다. 불안도 겁도 기대지 않는 붉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시노: 내가 지켜줄게.

 

시노는 침착하게 그렇게 말했다.

 

시노: 미틸도, 루틸도, 레녹스도, 물론 히스도.

 

모두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히스클리프: 시노…….

 

피가로: 믿음직스럽네, 시노. 모처럼의 모험의 기회인걸. 모두가 1인분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 경험을 쌓으면 좋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있어. 세계 제일의 명의와 천재학자다. 안심해도 돼.

 

무르: 안심! 안심!

 

시노: 맡겨줘. 거미든 괴물이든 큰 낫의 먹이로 만들어주지. 그 멧돼지처럼 저녁 메뉴로 해도 되겠다.

 

미틸: 그, 그건 좀…….

 

루틸: 거미는 먹을 수 있을까……? 어떤 맛이지?

 

어느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다. 네로가 웃으면서 스테이크를 한 판 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네로: 뭐,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되잖아. 서쪽 마법사만의 자극이니까. 여정을 복돋우기 위해 선보인 현지의 무서운 이야기 같은게 아닌가?

 

아, 수학여행의 여관에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괴담같은…….

 

네로: 뭐야 그게.

 

아뇨, 제 세계에도 비슷한 습관이 있었구나 해서요.

 

웃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리자 모닥불 너머에서 남쪽 마법사들이 사이좋게 과일을 먹고 있다.

 

루틸: 현자님, 같이 드시지 않겠나요?

 

말을 걸어준 루틸의 손에는 반으로 쪼개진 먹음직스러운 나무 열매가 들려 있었다.

 

미틸: 레노 씨가 칼을 안 쓰고 손으로 깨줬어요!

 

에, 이 나무 열매를 손으로? 어떻게요?

 

레녹스: 이런 식으로요.

 

레녹스는 나무 열매를 하나 집어들더니, 가볍게 손목을 비틀어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 열매를 깨뜨렸다.

 

와! 정말로 두 동강……!

 

루틸: 놀랍죠?

 

미틸: 분명 놀랄거라 생각해서 현자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놀랐어요. 이렇게 예쁘게 깨지다니……! 대단해요, 레녹스. 역시 힘이 세서 그런가요?

 

레녹스: 아뇨, 약간의 요령이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루틸: 와아, 궁금해요. 어떻게 하나요?

 

피가로: 레노, 그 상태로 내 몫도 잘 부탁해.

 

미틸: 정말이지, 레노 씨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어요. 선생님도 같이 배워요!

 

남쪽 마법사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공기는 먼 고도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족의 단란함에 섞여 있는 것처럼 안심이 되고 편안했다.

 

(정말 위험한 곳이라면 피가로가 알아차릴 테고……)

 

시선을 눈치챘는지 피가로가 이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피가로: 아무튼 내일은 그 신전으로 가볼까? 고리의 소재를 넣는 것이 원래 목적이기도 하고.

 

그렇네요. 가보죠.

 

미틸: 저기, 히스클리프 씨. 시노 씨에게 들었는데요……. 두 분이 꿈의 고리를 만들러 온 것은 파우스트 씨에게 주기 위해서인가요?

 

히스클리프: 응. 선생님, 가끔 잠이 안 오시는 것 같아서 선물하려고.

 

미틸: 저, 예전에 파우스트 씨에게 신세를 많이 졌어요. 그래서 저도 파우스트 씨를 위해서 뭔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히스클리프: 그렇구나. 그러면 미틸도 선생님을 위해 같이 거미줄을 모으자. 섬의 전설은 조금 무섭지만, 나도 열심히 할게.

 

미틸: 네……! 힘내요!

 

무르: 내일은 다같이 탐험이다!

 

 

 

 

 

 

 

밤도 깊어 내일을 대비해 쉬려고 마법사들은 각자 텐트에서 잠이 들었다. 나도 누워서 눈을 감았지만 졸음이 찾아오지 않는다.

 

(……잠이 안 와……)

 

몇 번 몸을 뒤척인 뒤, 체념하고 텐트에서 나왔다. 파도 소리에 빨려들어가듯 해변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다.

 

네로: ……뭐야. 현자 씨구나.

 

네로는 나를 보자마자 약해진 듯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도 나오 마찬가지로 졸음에 버려졌을 것이다.

 

눈이 맑아져서……. 너무 조용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네로: 그럴지도. 조금만 잡음이 있는 정도가 딱 좋기도 하거든.

 

네로는 모닥불로 데운 물로 차를 끓여줬다.

 

네로: 자. 잠이 잘 오는 허브티야.

 

고마워요.

 

컵을 받으면 부드럽고 안심이 되는 향기의 김이 뺨에 닿는다.

 

……향기 좋다.

 

네로: 파우스트한테 받은 거야. 시노랑 히스가 무리하지 않도록 감시해달라면서.

 

에, 파우스트가……?

 

꿈의 고리를 만들러 온 것은 서프라이즈하고 싶다는 시노와 히스클리프의 뜻도 있어,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 파우스트는 눈치 채고…….


8화

 

네로: 쉿.

 

한쪽 눈을 감은 네로는 입술에 손가락을 세웠다. 암묵적인 양해란 뜻인가. 아이의 계획은 어른에게 이미 간파되었을지도 모른다. 둘이서 후후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허브티를 훌쩍거렸다. 몸이 좀 따뜻해졌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향기네요……. 왠지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네로: 역시 선생이네.

 

이 차와 꿈의 고리가 갖추어지면 숙면의 효과가 증가할 것 같아요.

 

네로: 하하, 확실히. 악몽을 없애주는 부적인가. 그런 거라면 나한테도 맞을 수도 있겠네.

 

네로도 악몽을 꾸고 있나요?

 

네로: ……아아. 뭐, 최근이긴 하지만.

 

띄엄띄엄하게 네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최근인가……)

 

차 향기를 들이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되새겼다.

 

(나도 잠을 별로 못 잤지……. 브래들리는 지금쯤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

 

이제서야 깨달았다. 브래들리에 대해 말했을 때, 네로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괜찮다고 밝게 웃어주었다. 하지만 모닥불을 바라보는 지금의 네로는 긴 밤과의 교제를 몰라 막막해 보였다.

 

(사실은 네로도 계속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동료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면 무리도 아니에요.

 

네로: ……동료?

 

무심코 택한 말이었지만 네로는 조금 놀란 듯 되물었다.

 

아, 그게…… 두 사람은 북쪽의 마법사와 동쪽의 마법사로, 별로 관계가 없었다고 해도……. 브래들리는 맛있는 밥을 좋아하고 네로는 맛있는 밥을 잘 하잖아요. 지금은 현자의 마법사로서 같이 마법관에서 같이 네로의 밥을 먹고 있고요. 그래서 동료나 친구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했나요?

 

네로: ……아니,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되는 거겠지.

 

네로는 복잡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 눈빛에는 쓸쓸함과 그리움 같은 것이 있었다. 네로와 브래들리 또한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관계로 보인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실마리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지만……)

 

앞으로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관계도, 이름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는 것일까.

 

빨리 브래들리가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네로는 뭔가 말을 건네려다가 목에 뭔가가 걸린 듯 입을 다물었다. 앞머리가 그림자에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일어선 네로는 침묵을 깨듯 웃었다.

 

네로: ……미안해. 졸려지기 시작했어.

 

네로: 당신도 이제 슬슬 돌아가는 편이 좋을 거야. 불은 꺼놓을게. 내일 봐, 현자 씨.

 

 

 

 

 

 

 

다음 날 아침,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텐트 밖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좋은 아침이에요. 무슨 일인가요?

 

히스클리프: 현자님! 시노가 어디에도 없어요……!

 

에!?

 

네로: 일단 모든 텐트를 확인해봤는데, 잠자리를 착각한 것도 아닌 것 같아.

 

레녹스: 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시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루틸: 식재료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아침 식사를 조달하러 갔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요…….

 

그럴 수가. 도대체 어디에…….

 

미틸: 시노 씨, 혹시 혼자서 신전에 간 것은 아닌지…….

 

전원: !

 

어젯밤 시노의 모습을 떠올리며 깜짝 놀란다.

 

설마, 거미를 퇴치하러……!

 

네로: 그 녀석이라면 말이 되네. 일단 보러갈까. 무르, 길 안내 부탁해. 피가로는 혹시 모르니까 동행해줘.

 

무르: 좋아!

 

피가로: 으음, 젊은이의 행동력을 만만하게 봤네.

 

히스클리프: 네로, 나도!

 

네로: 아니, 히스는 여기서 기다려줘. 일단 우리끼리 상태를 보고 올게. 그냥 산책 갔을 뿐일지도 모르니까.

 

히스클리프: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얌전한 그에게는 드문, 감정적인 목소리였다.

 

히스클리프: 견딜 수가 없어. 시노가 나 때문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 나는 미숙해서 마법사로서도 미덥지 않아. 그런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나는 시노를 돕고 싶어. 계속 같이 있고 싶은 소중한 친구를, 내 손으로 지키고 싶어.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는 마지막 한숨처럼 작게 시들었다.

 

히스클리프: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 뿐이야…….

 

……히스…….

 

그런 히스클리프의 머리를 네로가 쓰다듬는다.

 

네로: 정말이지, 무턱대고 목숨도 모르는 친구가 있는 건 큰일이지.

 

마치 누군가를 거듭하는 듯한 말투였다. 히스클리프는 눈을 깜빡였다.

 

히스클리프: 으, 응…….

 

네로: 좋아, 그러면 같이 갈까! 그리고 나서 시노에게 화내자고.

 

미틸: 저, 저도 갈게요……! 히스클리프 씨와 내일은 같이 열심히 하자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히스클리프: 미틸…….

 

루틸: 그러면 모두 같이 가지 않겠나요? 원래 다 같이 신전에 갈 예정이었고요.

 

레녹스: 그게 안전할 수도 있겠네. 현자님,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에요. 다같이 가요!

 

무르: 히스클리프대, 출동!

 

루틸 / 네로 / 레녹스: 히스클리프대……?

 

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무르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갈수록 울창하게 나무가 우거지고 땅도 나빠진다. 짐승의 발자국마저 끊길 무렵, 갑자기 신전이 나타났다.

 

미틸: 우와앗…….

 

석조로 된 큰 건물이다. 언제쯤 지어진 것이 이끼 낀 모습은 고대 유적과도 비슷한 장엄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 숲에 이런 것이…….

 

히스클리프: ……시노는 보이지 않네요.

 

피가로: 하지만 묘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아.

 

레녹스: 안으로 들어가보자.

 

신전 내부는 바깥보다 더 거칠었다. 초목이 번식하고 벽을 덮듯이 담쟁이덩굴이 얽혀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9화 

 

네로: 이거 전부 거미줄인가……?

 

온갖 곳에 거미줄 같은 것이 둘러져 있다. 그냥 거미줄치고는 이상하게 크다. 어젯밤 무르에게서 들은 거미 일화가 싫어도 뇌리에 되살아난다.

 

미틸 / 히스클리프: …….

 

(그건 그렇고, 너덜너덜한데……)

 

천장은 겨우 남아 있지만 벽과 바닥에는 구멍이 뚫리고, 계단은 박살나고, 깨진 석상이 흩어져 있다.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기보다는 무언가가 날뛰며 아프게 한 것 같은 생생함이 있었다.

 

피가로: 이건 최근에 망가진거네.

 

신전 안은 고요하다. 오직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이 섬뜩하게 울리고 있었다.

 

네로: 뭔가 있는 건 확실하군. ……현자 씨, 우리한테서 멀어지지 마. 

 

바로 탁 트인 곳으로 나왔다. 굵은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문들이 무수히 뻥 뚫려 있다. 아무래도 여기가 신전의 중심인 것 같다.

 

히스클리프: 시노! 있다면 대답해!

 

그러나 부름에 답하는 목소리는 없다.

 

미틸: 없나…….

 

낙답하기 직전, 신전을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기둥 하나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현자 / 미틸: ……!

 

루틸 / 히스클리프: 현자님!

 

레녹스: 미틸!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브러프 스노스!'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루틸이 주위에 마법으로 결계를 쳤고, 히스클리프는 내가 맞지 않도록 기둥의 움직임을 빠르게 바꿨다. 레녹스는 순식간에 팔을 뻗어 미틸을 끌어당긴다. 기둥은 그대로 땅울림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모래 먼지가 날아올라 시야가 가려진다.

 

루틸: 콜록……. 현자님, 괜찮으신가요?

 

콜록…… 콜록……. 미안해요. 고마워요.

 

무르: …….

 

우리가 기침하는 가운데, 무르는 고양이처럼 유심히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무르: 기척이 나.

 

미틸: 에?

 

무르: 역시, 근처에 뭐가 있어.

 

뭐가……? 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모래 먼지 너머로 갑자기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히스클리프: ……! 현자님, 뒤로!

 

시노: ……히스?

 

히스클리프: ……!?

 

전원: 에?

 

그림자의 정체는 시노였다. 머리에 거미줄을 치고, 우리를 조금 의외라는 듯 쳐다보고 있다.

 

시노……!

 

피가로: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시노: 아아, 어젯밤에 너희를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괴물이 있는지 사전답사하러 왔어. 괴물이든 짐승이든 먼저 쓰러뜨려 놓으면 너희는 안전하게 신전에 들어갈 수 있잖아?

 

네로: 그렇다면 말을 해. 모두 걱정해서…….

 

시노: 상태를 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신전 안쪽에 거미줄이 잔뜩 있는 걸 발견했어. 내친 김에 모으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려서.

 

거기서 시노는 쓰러진 기둥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시노: 큰 소리가 나서 서둘러 상황을 보러 왔는데 기둥이 쓰러질줄은. 히스, 다친 데는 없어?

 

히스클리프: ……하. 바보! 이쪽의 대사야!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지…….

 

시노: 그렇게 화내지 마. 봐, 소재를 산더미처럼 따왔어. 이걸로 고리를 만들 수 있잖아.

 

시노는 포대를 들고 득의양양하게 가슴을 젖혔다. 여전한 모습에 어깨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히스클리프: 하아…….

 

네로: 정말이지 너는…….

 

미틸: 그래도 다행이에요. 시노 씨가 무사해서.

 

루틸: 응, 진짜로. 조금 무서운 느낌의 신전이었고 만일의 일이 생긴다면 어쩌나 싶어서…….

 

무르: 거미에게 잡아먹힌다던가!

 

시노: 이 신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이왕이면 거미의 목도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레녹스: 그렇다면 거미는 역시 그냥 전설이었나.

 

……하지만, 그럼 아까 무르가 느꼈던 기척은……?

 

갑자기 네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네로: ……! 엎드려! '아도노디스 오므니스!'

 

!?

 

동동 구르며 땅에 엎드린 내 머리 위를 네로의 마도구가 거칠게 날아간다. 느슨해진 공기가 단숨에 긴박해진다.

 

(여, 역시 괴물이……!)

 

그러나 격렬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백지 같은 침묵이 흐른다. 조심조심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의 광경이었다.

 

네로 / 브래들리: …….

 

브래들리의 총구가 네로의 머리에. 네로의 커트러리들이 브래들리의 목에. 각자 정면으로 들이대고 있었다.

 

브래들리: ……아?

 

네로: ……헤?

 

서로의 목소리로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당황하며 동시에 마도구를 내려놓았다. 

 

루틸: 브래들리 씨, 어째서 여기에……?

 

브래들리: 그건 이쪽의 대사다. 너희들도 이곳에 와서 무인도 생활이냐?

 

레녹스 / 시노: 너희들도?

 

무르: 혹시 브래들리, 계속 여기에 있었어?

 

브래들리: 계속? 며칠 밖에 안 지났어. 그것보다 먹을 것 좀 내놔. 여기 오고 나서 변변한 거 먹지 못했으니까 배고프다고.

 

네로: ……너, 웃기지 마!

 

브래들리: 오와?

 

네로: 빌어먹을 태도나 보이기나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디선가 뻐기지 않을까 하고 잠도 못 자고! 살아 있다면 얼른 돌아오라고, 바보!

 

브래들리: 어, 어이……! 하지 말라고. 위험하잖아……!

 

한 번 집어 넣었을 커트러리가 브래들리를 쫓아다니고 있다. 네로의 처절한 검막에 그 자리에 있던 마법사들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네, 네로. 진정해요……!

 

미틸: 저, 저희들 상황을 잘 모르겠는데요…….

 

시노: 어떻게 된 거지? 브래들리는 혼자 임무하러 간 거 아니었나?

 

무르: 그건 비밀을 숨기기 위한 겉치레! 사실은 말이야, 브래들리는 미스라의 착오로 마수와 함께 용암에 처박혔대!

 

루틸 / 미틸: 에!?


10화

 

히스클리프: 그런 거였어!?

 

브래들리를 쫓아다니던 마도구를, 네로가 간신히 움켜쥐었다.

 

네로: 그렇게 된 거야……. 난리 피우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었는데.

 

미틸: 하지만 용암에 처박히면 보통 죽는게…….

 

시노: 그러니까 이 녀석은 죽은 브래들리인가.

 

레녹스: ……그런 건가?

 

브래들리: 멋대로 죽이지 마! 보면 알겠지만, 순순히 당할 브래들리 님이 아니라고. 마그마에 처박힐 뻔한 건 사실이지만, 공간의 문에 말려드는 순간 어느 곳에서 재채기를 하고 간신히 이 섬에 도착했다는 거다.

 

피가로: 그렇구나. '거대한 재앙' 의 상처가 구원이었네.

 

루틸: 그런데 어째서 바로 마법관으로 돌아가지 않았나요?

 

브래들리: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괴물이 들이닥쳤거든. 되받아쳤더니 이런 곳으로 도망쳐서 쫓아다니라 고생이었다고. 뭐, 때려 죽여줬지만. 나한테 시비를 걸다니.

 

무르: 저기, 괴물이란 어떤 거야? 큰 거미 아니었어?

 

브래들리: 아? 어떻게 알았냐?

 

전원: !

 

브래들리: 뭐야, 그 반응. 어쨌든 이미 늦었어. 마나석이 되어 벌써 내 배에 있거든.

 

시노 / 미틸 / 히스클리프: …….

 

과연 이 전해지는 거미의 전설은 사실이었을까……. 이제 와서 진상은 덤불 속이다.

 

아무튼 브래들리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브래들리: 어. 드디어 돌아갈 수 있겠네. 네로, 마법관으로 돌아가면 후라이드 치킨 만들어줘.

 

네로: 태평한 소리 하지 마. 현자 씨에게도 제대로 사과해. 엄청 걱정했으니까.

 

시노: 그건 그렇고, 아까의 네로는 박진감 있었지.

 

히스클리프: 맞아. 네로가 저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어. 북쪽의 마법사를 상대로…….

 

네로: 헤?

 

네로의 눈이 침착하게 빙글거린다.

 

네로: 에, 그게, 뭐……. 지금은 이 녀석도 마법관에서 너희랑 같이 밥 먹고 있고. 일단 아마도 동료…… 같은 거지. 그렇게 되면, 봐……. 참을 필요는 없다고나 할까……. 그렇지?

 

브래들리: 와, 폭신폭신한 말투……. 그런데 뭐, 그런 느낌이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브래들리는 왠지 조금 기뻐보였다. 얽힌 실수는 아직 한참 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까지 괜히 기뻐졌다.

 

히스클리프: 시노. 뭐든지 혼자 결정하고 혼자 뛰쳐나가지마. 다음에 또 같은 짓을 하면 화낼 거야.

 

시노: ……잘못했어. 앞으로는 최대한 제대로 말할게.

 

히스클리프: 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안 돼. 제대로 보고해.

 

시노: 아아, 조심할게.

 

히스클리프: ……왠지 드물게 솔직하네.

 

시노는 네로 쪽을 바라보았다.

 

시노: 저런 식으로 히스에게 혼나고 싶지 않으니까.

 

 

 

 

 

 

 

 

 

 

꿈의 고리의 소재와 모두에게 줄 선물, 그리고 브래들리. 무인도에서 갖가지 놀라움과 마주친 우리는 설렘 가득한 바캉스에 작별을 고하고 마법관으로 돌아왔다.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이거, 저희의 선물이에요.

 

시노: 꿈의 고리라는 부적이야. 나쁜 꿈을 잡아주는 것 같으니 파우스트도 잡아달라고 해.

 

히스클리프: 사실 저희들, 이걸 만들기 위해 남쪽 나라 섬에 갔었거든요.

 

파우스트: 그렇군. 전혀 몰랐어.

 

시노: 놀랐나?

 

파우스트: 아아, 놀랐어. 정말로 놀랐어.

 

시노 / 히스클리프: 아싸.

 

무르: 파우스트, 엄청난 국어책 읽기!

 

피가로: 진지하고 어설픈건 옛날부터 변하지 않네.

 

레녹스: 혹시 파우스트 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건가요?

 

피가로: 뭐,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은 알게 된다는 건가. 저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모른 척 한 것 같아.

 

미틸: 그래도 다행이다. 파우스트 씨, 엄청 기뻐보여요.

 

루틸: 저건 분명, 시늉 같은 게 아닐 거야.

 

파우스트: 시노, 히스. 나 때문에 일부러 미안했네.

 

시노: 흐흥. 파우스트, 감격해서 울어도 된다고.

 

파우스트: 아니, 울지는 않지만…….

 

시노: 뭐야.

 

파우스트: 그래도 소중히 할게. 고마워, 둘 다.

 

히스클리프: 네!

 

시노: 아아.

 

 

 

 

 

 

 

 

브래들리가 사라지기 전, 네로와 나와 셋이서 술을 마시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미뤄져 버린 그 계획을 이번에야말로 실행하자는 이야기가 되어 나는 식당으로 왔다.

 

……어라?

 

식당에 네로의 모습은 있지만 정작 브래들리는 없다.

 

어떻게 된 걸까요……?

 

네로: 아……. 아마도…….

 

!? 지금 소리는……?

 

네로: 미스라한테 한 방 먹이러 간 거 아닐까?

 

천장이 날아갈 듯한 흉포한 소리가 두세 번 울린다.

 

브, 브래들리, 오늘 올 수 있을까요……?

 

네로: 그 녀석이 말을 꺼낸 거니까, 기어서라도 오겠지.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는 네로의 얼굴은 개운해 보인다.

 

네로, 오늘은 왠지 안색이 좋네요.

 

네로: 나도 꿈의 고리를 시노랑 히스에게 받았거든. 그 효과일지도 모르겠네. 

 

네로: 자, 그러면……. 식기 전에 후라이드 치킨이나 먹을까?

 

브래들리: 어이! 나를 제쳐두고 시작하지 마!

 

잔치의 주역은 치열한 전투를 보여주는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인도에서 만났을 때보다 약간 더 너덜너덜하다.

 

브래들리, 괜찮나요?

 

브래들리: 어. 두 대 맞았지만 이쪽도 한 대 얼굴에 넣어줬어. 오늘은 이걸로 끝.

 

브래들리: 자, 그러면 마실까!

 

네로: 매서운 놈이구나, 너도.

 

브래들리: 하,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우는 아이도 입을 다물게 하는 브래들리 님이라고.

 

히죽히죽한 브래들리에게 네로는 한마디 웃으며 대꾸했다.

 

네로: 알아.

 

마치 악우끼리의 신호처럼.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