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지배인 대리: 작가랑 연기자를 겸임했었지. 그 녀석은 지배인도 꽤 마음에 들어했었어. 그럭저럭 얼굴도 반듯했고 사용하기 좋은 녀석이었다. 마치 인형처럼. 하하. 너희들도 마음에 들려면 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말대꾸도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파우스트: …….
네로: 손가락으로 얼굴을 찰싹찰싹 두드리다니……. 얕보고 있군.
파우스트: 거지 같은 녀석. 그 연기가 저주를 받고 있다면, 저 녀석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닌가?
네로: 지배인의 방에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네. 하지만 어떻게 하지? 그렇게 오래 있을 수는 없고. 차라리 숨어들어 버릴까?
파우스트: 그렇네…….
네로: ……여기가 지배인의 방인가. 확실히 다른 것들과 비교하면 훌륭하네.
파우스트: 그러면 네로, 내가 눈을 가리는 마법을 쓰는 사이에 자물쇠를…….
네로: 좋아, 열었어.
파우스트: 너무 빠르지 않나!?
네로: 이 열쇠가 너무 간단할 뿐이야. 자, 들어가자고.
네로: ……뭐야 이거? 아무것도 없잖아.
파우스트: 가구에 먼지가 쌓여 있어. 어쩌다 집을 비웠다는 느낌도 아니네.
네로: 선생, 이쪽 선반에 진열된 책자는 경영 자료인가?
파우스트: 정말이다.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어.
파우스트: ……? 이건…….
아…….
오웬: …….
아이리스 씨에게 이끌려 어둑어둑한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답답한 방이네. 선반에 늘어선 면이나 소품, 바닥에 흩어진 융단…….)
꿈에서 본 장소다…….
클로에: 에?
라스티카: 그런가요?
아이리스: 너, 이곳을 알아?
네……. 어젯밤 이 창고의 풍경이 꿈에 나왔어요.
나는 그녀에게 어제 꾼 꿈과 인형에 깃들어 있는 누군가의 사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리스 씨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입가를 가려 시선을 방황한다.
아이리스: 아마 현자님이 본 것은 나와 리베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우리 대화를 이 인형이 알고 있지? 그의 소유물도 아닌데…….
라스티카: 이 장소는 둘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구나. 그렇다면 인형에 깃들어 있는 사념은 리베의 것일까?
라스티카의 물음에 아이리스 씨는 품에 안은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리워하듯 문득 작게 웃었다.
아이리스: ……그렇다면 내 마음도 조금은 보답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거짓말쟁이 어릿광대도, 리베도, 나를 두고 사라져 버렸으니까.
클로에: 사라졌다니, 리베도……?
아이리스: 응. 광대는 불행한 사고였지만 그 소동에 섞여 극단원들이 몇 명 도망갔어. 그의 모습도 이후 보지 못했고. 어쩌면 극단에 싫증이 난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져 버리다니,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꼭두각시 인형을 품에 안은 아이리스 씨는 무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가날퍼 보였다. 그러자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던 오웬이 스르르 그녀에게 다가간다.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차갑게 웃으면서.
오웬: 그렇겠지. 그야, 너는 그들에게 뭘 해준 적이 있어? 벌레처럼 그냥 붙어 다녔잖아. 자신의 욕망 만을 강요하고, 녀석들의 소망을 들어준 적은 있어?
아이리스: …….
그때까지 꿋꿋하게 대꾸하던 아이리스 씨가 대답하지 못했다. 문득, 내 안에 어떤 의문이 떠오른다.
(오웬의 심술은 하루이틀이 아니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유독 아이리스 씨에게만 덤벼드는 느낌이…….)
오웬……. 혹시 리베 씨나 거짓말쟁이 광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오웬: 어떠려나? 알아도 너희들한테는 안 알려줘. 나는 재미있는 걸 좋아하니까.
아이리스 씨는 먼 풍경을 바라보듯 창고 한쪽 구석을 응시했따.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먼지투성이의 허술한 책상이 구석으로 내몰려 있었다.
아이리스: ……그로부터 벌써 10년. 그래도 겨우 10년이야. 생각해보면 역시 쓸쓸하네.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지배인 대리에게 대들었을 때와 같은 사람인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리베 씨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아이리스 씨에게 이별을 말하지 못한 이유가…….
라스티카: 응. 친구가 아니라니,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나는 리베도 어릿광대인 그도 자신을 그리워해주는 밝고 솔직한 너를 분명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해.
클로에: 나도……. 왜냐하면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우리는 아이리스를 정말 좋아하거든.
아이리스: ……고마워, 현자님. 둘도.
오웬: …….
일이나 탐문을 일단 끝내고 네로와 파우스트 이외의 사람들은 정보교환을 위해 합류했다.
레녹스: 그렇다 치더라도……. 현자님이 꿈에서 본 장소가 이 극단의 창고였군요.
네. 거기서 지내는 아이리스 씨와 극작가 리베 씨라는 분의 기억을 본 게 아닌가 하고…….
미틸: 꿈 속에서 현자님께 말을 걸어온 것도 리베 씨인 건가요?
클로에: 아이리스는 신기해했었지. 어째서일까, 하고.
시노: 오웬. 너, 제대로 일했어? 그 손에 가득 찬 과자는 훔쳐온 건 아니겠지.
오웬: 나는 일한다고 한마디도 안 했어. 이런 곳은 형편이 좋아. 자취를 감추고 극단 사람들을 바라만봐도 재밌고, 가끔 마음이 내키면 괴롭혀서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고.
레녹스: …….
미틸: 레노 씨, 왜 그러나요?
레녹스: 어쩌면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짓말쟁이 어릿광대와 극작가는…….
네로: 아아, 있다 있다.
파우스트: 늦어서 미안해. 시간이 조금 걸렸어.
라스티카: 둘 다 어서 와.
지배인을 만나러 간 거죠.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파우스트: 아니, 방을 찾아봤는데 아무도 없었어. 사람이 있던 기색조차도 없었지.
네로: 하지만 대신 이걸 찾아왔어. 허풍의 정원 극단원 명단이야. 이 리베라는 남자 부분을 봐 줘.
클로에 / 라스티카: 작가 겸 연기자……?
리베 씨는 연기도 해본 적이 있는 건가요?
아이리스: 아뇨…….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파우스트: 이 자료에 따르면 마법사 고아로서 극단에 온 지 30년 정도. 연기자와 작가를 겸임하고 있었다고 하더군. 그 재능을 사서 다른 극단에 비싸게 팔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날짜는…… 1년에 한 번 있는 발푸르기스의 밤에.
아이리스: ……! 그거, 거짓말쟁이 어릿광대가 죽은 날이야!
네로: 역시. 리베라는 남자의 자료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어. 희곡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죠' 를 마지막 공연으로 한다고.
아이리스 씨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번진다. 우리 역시 혼란스러웠다. 숨어 있던 사실들이 백일에 노출되어 하나의 대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마…….)
오웬: 하하…….
당황한 공기를 비웃으며 오웬은 아이리스 씨에게 눈을 돌렸다.
오웬: 너도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잖아. 창고에 틀어박혀 있던 그 극작가가 거짓말쟁이 광대라는 걸.
아이리스: 그건…….
클로에 / 미틸: 에……?
아이리스: ……확신은 없었어. 하지만 리베가 가끔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광대와 비슷했거든.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그때, 테이블에 놓여 있던 양철 인형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씪 떨면서 아이가 어어, 하면서 가리키는 것과 비슷한 동작으로 짧은 한 손을 들어올린다.
레녹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네요…….
인형이 지시하는 앞으로 나아가자 이윽고 한 방에 다다랐다.
클로에: ……아까 그 창고네.
라스티카: 여기에 뭐가 있는 걸까?
파우스트: 일단 여기저기 찾아볼까.
우리는 분담해서 창고 수색을 시작했다. 잡다한 선반에 손을 뻗어 모든 상자를 다 열어보고…….
미틸: 정말이지, 오웬 씨! 도와주지 않을 거면 비켜주세요. 거기 나무 상자가 안 열리잖아요.
오웬: 여기서 다리를 꼬고 너희들을 보는게 딱 좋아. 먼지를 쓰는 녀석들이 잘 보이니까. 그때처럼.
시노: 하?
오웬: 됐으니까 빨리 해. 거기 모퉁이 같은 거, 아직 못 봤잖아.
네로: 잘난 척…….
오웬: 뭐라고?
네로: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조사해볼게요.
오웬이 턱으로 가리킨 선반 모서리로 손을 집어놓자 밀가루를 때린 듯 먼지가 치솟았다.
……윽, 콜록콜록……!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파우스트: ……기다려.
뭔가 깨달은 것 같은 파우스트가 같은 장소에 손을 뻗는다. 파우스트의 손 안에는 낡은 종이를 묶어놓은 듯한 허술한 책자가 들려 있었다.
파우스트: 일부러 숨기고 있었던 건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법의 기척이 남아있어. 인간은 찾을 수 없겠지.
레녹스: 이건 각본일까요? 소설 같은 문구로 점철되어 있네요…….
파우스트의 옆에 있던 레녹스가 책자를 들여다보며 글자를 쫓아간다.
레녹스: '웃으라고 해서 웃었더니 뭐가 웃기냐며 지배인에게 뺨을 맞았따. 무대의 나는 거짓말쟁이 어릿광대라고 불리고 있는 것 같아. 좋잖아. 최고야. 거름더미 같은 현실보다는 웃기는 거짓말이나 허상, 그림 같은 것이 낫다.'
레녹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낡아빠진 페이지를 넘긴다.
레녹스: '거짓말쟁이 어릿광대가 노래하는 동안 거짓말은 진짜가 된다. 이 거짓말 안에서만 나는 살 수 있어. 맞아. 다음에 거짓말을 계속한 나머지 사실대로 말해도 믿어주지 않아 어이없게 죽는 이야기를 써야지. 이 비아냥거림을, 지배인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클로에: 이거, 각본이 아니야…….
라스티카: 리베가 여기서 보낸 기록이네. 각본의 메모도 겸하고 잇는 것 같지만…….
누런 페이지에 꽂혀 있던 것은 수십 년이나 되는 극단에서의 그의 나날이었다. 호된 처사를 반복하는 극단 간부들에 대한 원망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꼼꼼하게 적혀져 있다. 잡일을 틈틈히 하다가 지배인의 눈에 띄어 작가가 된 것, 배우로서 무대에 서게 된 것. 모두가 복잡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나무 상자 위에 앉은 오웬이 어깨를 들썩이며 다리를 다시 꼰다.
오웬: 하하, 좋네. 비참함이 조여드는 명문이야. 빨리 다음을 읽어봐.
레녹스: ……'매일같이 새로운 녀석이 오고 누군가가 팔려간다. 정말이지 얼마나 교활한가. 오래 머물수록 이 극단 모두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래 있는 녀석들은 모두 철창과 공포로 몸과 마음을 꽁꽁 묶고 이빨 가는 칼날을 빼앗긴다. 나도 그렇다. 나는 더럽다.'
그는 지배인들에게 차이고 얻어맞아 혹사당했고, 끝은 레녹스가 말하기 힘든 사항도 적혀 있었다. 무대에 서는 동안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창고에 혼자. 누구와도 터놓고 지내지 않고, 친구는 고사하고 친한 동료조차 생기는 일이 없었다.
7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레녹스: '멋진 꿈 같았다고 그녀가 오늘도 광대의 무대를 칭찬했다. 나는 그저 시큰둥한 대답만 할 뿐이다. 미안해, 아이리스. 광대가 아닌 나는 웃을 수 없어. 하지만 네 말처럼 네가 나 같은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는 시간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꿈이야.'
아이리스: …….
글에 쓰인 리베 씨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동경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듯 아이리스 씨의 노래를 칭찬하고 그녀가 찾아올 때마다 가슴을 뛰었으며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지배인에게 분노했다. 그런 것들이 페이지 구석에서부터 구석까지 재주 있는 극작가의 필치를 다해 쓰여져 있었다.
……계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이 녀석에게 있어서 이 극단은 보이지 않는 우리 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몰라. 도망갈 곳이 없고, 그 밖에 갈 곳도 없어. 그러면 여기에 묶여 있는 게 더 편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아이리스는 둘도 없는 존재였구나…….
리베 씨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생각을 떨치고 마법사들이 말을 내뱉는다. 이를 관극하듯 내려다보던 오웬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오웬: 전에 여기 왔을 때, 그 광대의 시시한 미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괴롭혀주려고 뒤를 쫓았는데 창고에서 노래가 들렸어.
리베: ……라라라~♪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요. 마법사가 떠드는 밤에. 분명히 아무도 이 비극을 눈치채지 못할 거야.'
오웬: 흐응, 꽤 좋은 노래잖아.
리베: ……!? 다, 당신은…….
오웬: 누구라도 상관없지? 그것보다 너, 아까 무대에 섰던 그 광대잖아. 저기, 이 각본은 뭐야? 아까 공연에서는 이런 노래 없었어.
리베: 그, 그게…….
오웬: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너, 가면을 벗으면 못 웃어?
리베: ……아, 그건……. ……그 다음 가사야. 그 노래에는 공표하지 않은 후반부 가사가 있어. 그 희곡…….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요' 는 희극이 아니야. 혐오스러운 거짓말쟁이 광대가 자신을 조롱해온 녀석들에게 보복하는 비극이지.
오웬: 거짓말쟁이 광대는 너를 말하는 거야? 즉, 너는 이 극단에 복수할 생각이구나.
리베: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이제 나에 대한 건 아무래도 좋아. 홀대받는 건 익숙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아이가 있어. 그녀는…… 아이리스는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돼. 더 빛날 수 있는 장소가 있을 텐데 ….
오웬: '쿠레 메미니'
리베: ……뜨거워……. ……!? 각본이 불타고 있어 ! 아아, 눈 깜짝할 새에 재로…….
오웬: 아하하! 그 얼굴……. 재미없는 억지 웃음보다 훨씬 나아. 지금 너, 최고로 살아있어.
리베: ……하하…….
오웬: 하……? 왜 웃는 거야.
리베: 고마워. 태워줘서……. 이 가사는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야. 다 쓴 뒤에도 계속 이렇게 숨겨왔어. 그 아이도, 거짓말쟁이 광대가 추한 생각을 안고 무대에 서있었다는 것을 알면 분명 실망할 테니까…….
오웬: 내가 친절하게 대해준 것처럼 말하지 마. 재미없네…….
오웬: 선보여주면 되잖아. 자유나 욕망은 서쪽 마법사의 가예니까.
리베: 에……?
오웬: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 그림을 현실로 만드는 거야. 네가가슴에 품고 있던 것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처참한 복수극이라고……. 자기가 못난 마법사인 걸 인정하고 모두에게 알려주는 거야. 분명 기분 좋을 걸.
리베: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지배인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그 아이에게도…….
오웬: 한심한 녀석. 숨기고 있을 뿐이지, 너의 정체는 너야. 누군가가 좋아할 리가 없어. 어차피 미움받을 거라면 너의 생각대로 무대도 관객도 극단마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전부 죽여버리는 건 어때?
리베: …….
오웬: 그 편이 더 재밌잖아.
(한동안 지배인의 모습이 안 보였다는 건, 설마…….)
……어라……?
문득 보니 마법사들의 모습이 없다. 옆의 나무 상자 위에 양철 인형만 덩그러니 앉아있따. 덜컥하고 인형이 약간 소리를 냈을 때, 찢어진 막이 드리워진 안쪽의 어둠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누구……?
거기에 있던 것은 오웬의 의상과 비슷한 차림을 한 광대였다. 기둥의 그늘진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가면 아래에서 얇은 입술이 초승달처럼 호를 그린다.
???: '아이리스는 꽤 나쁘지 않아! 기량도 좋고 노래도 늘었어. 미래에는 더 좋은 여자가 되겠지. 기 센 것이 흠이지만, 그 편이 예의를 가르치는 것에 보람이 있을 거다.'
노래하듯 억양을 붙여 말하는 목소리는 매우 발랄했다. 몸을 크게 사용한 몸짓이 합쳐지면 먼지 묻은 광 속에서도 환결 화사해 보인다.
???: '가면을 쓰면 울지도 웃지도 않는 광대 따위 질렸다. 드디어 볼일은 없어. 사용성이 좋았던 만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 ……라고, 지배인이 기분 좋게 이야기하고 있었어. 술에 취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을 정도로. 아이리스. 너를 나처럼 만들 수는 없어.
……당신은 거짓말쟁이 광대……. 아니, 리베 씨?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꾼 꿈처럼 연무가 깔린 풍경 속에서 그는 낭랑하게 말하고 계속 행동한다. 나라는 관객을 앞에 두고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거짓말쟁이 광대: 드디어 나를 팔 곳을 찾은 것 같아. 날짜는 때마침 발푸르기스의 밤이라고 해. 안성맞춤이잖아. 거짓말쟁이 광대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날은 없어.
거짓말쟁이 광대: 머릿속에 비극의 각본은 남아있다. 나와 극단의 절명을 축하해주마. 진짜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요' 에서.
그는 마지막 공연을 위해 짜놓은 계획을 선보인다. 그 중에는 무대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결행일까지 지배인을 죽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짓말쟁이 광대: 지배인의 처치는 의외로 간단했어. 여느 때처럼 얌전히 침대에 초대받는 시늉을 하고, 칼로 목구멍을 한 번 찔렀지. 상상도 못했을 거야. 마법사는 시체 처리가 편해서 좋아.
거짓말쟁이 광대: 이제는…… 공연을 성공시킬 뿐이다. 내가 모든 걸 끝낼 거야. 저 아이를, 이 마당에서 놓아주는 거야.
마지막 목소리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간절했다. 고개를 떨군 그가 얼굴을 감쌌을 때 눈가를 물들이던 가면이 바닥에 떨어진다.
거짓말쟁이 광대: 부탁이야. 제발…….
어둠 속에서 광대가 고개를 든다. 어둑어둑하게 흔들리는 등불을 받아 그 윤곽이 떠오르려고 할 때…….
???: ……님. 현자님!
오웬: 현자님.
아파!?
어깨 부근에 온 충격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인다. 문득 보니 마법사들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를 팔에 안은 레녹스가 한숨을 쉰다.
레녹스: 다행이다……. 갑자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버리셔서…….
에!? 죄, 죄송해요……. 오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새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오웬: 내 이야기가 지루했다고?
그게 아니라……! 아마 꿈 속에서 거짓말쟁이 광대…… 리베 씨를 만났어요.
아이리스: 그를……?
네.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그 책자에 쓰여져 있는 것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
파우스트: 어쩐지……. 오웬이 말하는 동안 그 인형의 기척이 강해졌어. 마력을 가지지 않고 저항력이 없는 것에는 특히 강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타이밍이었겠지.
네로: 그 증거로 잠자는 동안의 당신이 이 책자의 내용을 유창하게 읽어줬어.
제가……? 그러면…….
라스티카: 여기에 써진 이야기는 당신이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조금 더 남아있는 것 같지만…….
레녹스: ……아아. '나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설령 그 자리에서 도망쳐도 평생 그늘에서 겁먹고 살게 되겠지. 적어도 달빛이 비치는 숲까지 너를 데리고 나갈 수 있다면…….'
레녹스: '내 손은 더럽다. 깨끗한 너와 함께 사는 것은 할 수 없지만, 너의 자유를 바라는 것만은 용서해줘.'
레녹스: ……이것이, 리베가 쓴 내용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시노: ……이 녀석, 극단과 동반자살할 생각이었나.
네로: 아무리 찾아도 만날 수 없던 이유는, 지배인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었어.
파우스트: 자취를 감춘 극작가도 광대를 연기한 채 돌이 되었다…….
오웬: 모든 것이 속임수야. 이 극단을 통째로 무로 돌린다는.
고요한 가운데 빈 냄비 바닥을 두드린 듯 오웬의 웃음소리만 울려퍼진다.
오웬: 설마 내가 부추긴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정말로 누군가를 죽이다니. 게다가 사고로 죽어버려 최후까지 우스운 꼴이었어. 역시 죽어도 광대야.
미틸: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클로에: 그게 복수의 노래였다니…….
라스티카: 증오, 슬픔, 분노……. 그는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는 모든 것을 각본에 담아 가면을 쓰고 웃고 있었어. 그를 아프게 한 날들이 그의 재능의 톱니바퀴를 미치게 만들었구나.
파우스트: 눈이 멀었던 거겠지. 마지막 공연에서 선보이기로 했던 그의 유작은 한 번도 연기하지 못하고 끝났어. 노래와 이 극단에 담긴 강한 억울함이나 집착이 액재의 힘을 얻어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거라면 납득이 돼.
아이리스: ……어째서…….
잠시 멍하니 서있던 아이리스 씨는 숨보다 가쁘게 중얼거렸다.
오웬: 그 광대는 이 극단을 원망했어. 그것을 윗사람들에게 말해주면 반드시 흐트러질 거라고 생각해 이번에야말로 웃는 얼굴의 가면을 벗겨주려고 여기에 와봤는데…….
오웬은 아이리스 씨를 보고 새 장난감을 손에 넣은 듯 히죽 웃었다.
오웬: 재밌는게 또 있었네.
그때, 개연을 알리는 벨이 비명처럼 메아리친다. 파랗게 질린 채 아이리스 씨는 멀리서 들리는 환호성에 눈길을 돌렸다.
아이리스: 안 돼……. 밤 공연 시간이야.
그 구두 끝이 무대 쪽으로 향하는 것을 붙잡듯 오웬은 그녀가 팔에 안은 양철 인형에 손을 뻗어 부드럽게 속삭인다.
오웬: 알고 싶어? 그가 그린 비극의 결말을. 저 광대 대신 내가 무대에 서줄까?
……오웬이?
오웬: 사양하지 않아도 돼. 갑작스럽게 쓰러진 불쌍한 광대의 의지를 이어 연기해주려는 것 뿐이야. 자, 대본은?
아이리스: 아……. 여기에…….
네로: 어이, 제정신이야? 배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주제에.
파우스트: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당황하면서도 품에서 종이 뭉치를 내미는 아이리스 씨에게서 오웬이 그걸 낚아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주듯 양철 인형의 옆문을 열고 작은 병을 꺼냈다.
오웬: 내가 잿더미로 만든 가사는 이 안에 있어. 어제와 오늘 실컷 듣는 바람에 멜로디도 외워버렸고. 그 녀석이 꿈꿨던 무대를 완성해줄게.
아, 오웬……!
8화
오웬은 인형과 대본을 들고 무대로 향한다. 가슴 팍의 가면을 쓴 그는 마치 광대다. 회장의 흥분을 받아들며 막이 오른다.
오웬: 호기심 많은 신사 숙녀 여러분, 기묘하고 기괴한 무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갈색 머리의 관객: 뭐야? 배우가 다른데. 원래 나오던 그 여자는 어디갔어?
팔을 걷어붙인 관객: 대역인가? 꽤 좋은 남자잖아.
오웬: '쿠레 메미니'
오웬은 마법으로 각본을 허공에 날렸다. 이어서 작은 병의 재를 뿌리면,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순식간에 낡은 종이로 되돌아간다.
대단하다. 각이 잡혀 있네요…….
클로에: 응……. 당당하고 분위기가 있어서 마치 진짜 연기자같아.
라스티카: 설마 무대에 서는 오웬을 보는 날이 올 줄이야…….
네로: 진짜 시작한다고!? 말리지 않아도 돼?
레녹스: 하지만…… 오웬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우리도 회장도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야. 섣불리 손댈 수는 없어. 온화하게 끝났으면 좋겠는데…….
파우스트: 미틸, 시노! 무대 뒤의 극단원들에게 전해줘. 만약의 경우 우리끼리 관객을 여기서 대피시킨다. 밖에 있는 극단 단원을 모아 관객 유도를 부탁해줘.
시노: 알았어. 미틸, 가자!
미틸: 네……!
아이리스: 이제 시작인가? 진짜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요' 가.
극단과 같이 죽는 공연이라니, 도대체…….
무대 구석의 우리가 침을 꼴깍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오웬이 가면 속에서 웃는다.
오웬: 하하……. 이 녀석도 웃고 싶어서 온 거겠지. 바라던 대로, 오늘 저녁은 즐겁게 해줄게. 공포와 비명이 소용돌이치는, 비극의 희곡에서.
평소의 희곡과 오늘 밤 되살아난 리베 씨의 유작. 두 대본이 지휘자의 악보에 잘 기울어지며 허공에 떴고, 오웬은 그것을 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웬: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요. 마법사가 떠드는 밤. 분명 아무도 이 희극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달콤한 목소리. 발랄한 아이리스 씨와는 다른 분위기다. 은밀한 방으로 유인되는 듯한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노랫소리가.
오웬: '거짓말쟁이 어릿광대는 인기가 많아. 언제든지 모두를 웃게 하지. 후후후. 하하하하.'
오웬은 연극을 하지 않는 대신 주위에 구르는 여러 소품을 움직이며 무대를 활기차게 연출했다. 앙증맞은 인형의 손발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목마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불안한 꿈 속 같다.
갈색 머리의 관객: 하하하! 잘하잖아!
후드를 쓴 관객: 더 불러!
공연이 시작되니 낮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열기가 공연장을 지배했다. 관객들도 웃기 시작했고, 섬뜩한 흥분이 소용돌이친다.
오웬: '춤춰봐. 노래해봐. 어차피 이 세상은 통쨰로 엉터리야. 너와 꿈꿨던 이 백일몽.'
어릿광대처럼 행동하는 오웬을, 모두가 웃으며 주목했다. 그러다가 춤을 추듯 무대를 활보하는 그가 발밑에 굴러다니던 작은 공을 발끝으로 만지작거린다. 그것을 객석으로 걷어찼다.
……!?
공은 목재에 맞아 텅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다. 일순간 잠잠해진 극장에 오웬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내렸다.
오웬: '거짓말쟁이 어릿광대는 웃는 것 밖에 할 수 없게 되었어. 후후후. 아하하하.'
아이리스: 이거……. 각본과 달라. 나, 이런 가사 몰라…….
아이리스 씨가 건넨 대본은 이미 무대 위에 버려져 있었다. 오웬이 눈으로 쫓고 있는 것은 낡은 대본이었다.
(지금 부르고 있는 것이, 오웬이 불태웠다는 후반부의 가사……?)
오웬: '부서져버려. 부서져버려. 이 모형정원에서.'
불온한 가사였다. 감미로웠던 노랫소리도 칼을 가는 듯 서서히 날카로움을 나타낸다.
오웬: '광대는 녀석들에게 돌을 던졌어. 광대는 녀석들에게 침을 뱉었어. 상대해 드리죠. 어릿광대인 저를 마음대로 드세요.'
오웬은 마법으로 띄운 칼을 객석으로 겨눈다.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치 도발하듯이.
갈색 머리의 관객: 하하, 하하! 좋아! 이 녀석은 잘 움직이는 과녁이야!
검은 머리의 관객: 광대 주제에! 히히!
관객들은 오웬에게 반격을 하듯 닥치는 대로 물건을 무대에 던지기 시작했다. 휴지에 먹다 만 사과, 돌멩이, 술병, 꽃병이나 글라스, 의자에 테이블…….
오웬: 하하……. 과녁은 너희겠지.
오웬이 마법으로 튕겨낸 그것들이 극장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술병은 벽에 부딪혀 화려하게 깨지고 천장의 천막에 구멍이 뚫렸다. 웃음과 비명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 어안이 벙벙한 내 옆에서 비통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이리스: 윽, 그만둬……. 제발, 그만해줘!
레녹스: 아이리스!
레녹스가 뻗은 손을 피해 아이리스 씨가 무대로 뛰쳐나갔다. 매달리듯 팔을 끄는 그녀를 오웬은 차갑게 웃은 채 내려다본다.
오웬: 왜? 이건 네가 정말 좋아하는 피에로가 원했던 거야.
아이리스: 하지만……. 그가 빛나던 무대인데……. 정말로, 그 사람은 이런 광경을 꿈꾸고 있어?
오웬: 맞아. 이 희곡은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시노: 돌아왔어!
미틸: 극단원 분들이 밖에 대기하고 있어요! 오웬 씨는…….
시노와 미틸이 무대로 뛰어가는 가운데 오웬은 의상 자락을 펄럭인다. 손바닥에 만들어낸 파란 불꽃을 마치 쓰레기를 던지는 것처럼 쏘아붙였다.
시노 / 미틸: 아……!
객석에 불이……!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지체하지 않고 레녹스가 주문을 외웠다. 불의 기운과 회전이 약간 느려졌다.
(그렇지……. 레녹스는 힘이나 기력을 약하게 하거나, 불이나 물의 기세를 억제하는 것이 특기라고 했었어……!)
파우스트: 잘했어, 레노! 나도 도와주지.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오웬: '쿠레 메미니'
두 사람의 마법을 다루듯 오웬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한 번 잦아든 불의 기운이 확 불어나 나무 부스러기와 늘어진 천을 타고 서서히 번져간다.
파우스트: 젠장……!
레녹스: 오래는 못 갈 것 같군요…….
오웬: '거짓말쟁이 광대는 웃었다. 웃음쟁이 광대는 텐트에 불을 질렀다.' ……봐. 나는 그냥 가사대로 연기하고 있을 뿐이야.
코웃음을 친 오웬은 관객 쪽이 아니라 매달리는 아이리스 씨를 향해 이어 부른다.
오웬: '달빛이 비치는 숲에서 당신은 처음 알게 되겠죠. 거짓말쟁이 피에로의 정체를.'
아이리스: 아아……. 그만해…….
오웬: 눈을 돌리지 마. 네가 받기로 한 절망에 혀를 떨으라고. 그러면 이 녀석을 묻어줄게.
파랗게 질려 입을 가리는 아이리스 씨에게 오웬은 양철 인형을 갖다 댄다. 그리고는 톡톡 치듯 또 하나의 불덩이를 쏜다. 그것이 텐트의 천에 인화해, 단번에 퍼졌다.
파우스트: 안돼……. 우리끼리 오웬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데리고 돌아와서…….
라스티카: 아니면 전부 그림을 다시 그려버리는 것은 어떨까?
식탁보의 무늬라도 바꾸자라고 말하는 듯한 가벼운 어조로 라스티카가 말했다.
그림으로……?
클로에: 라스티카,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라스티카: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쇼로 만들어버리면 돼. 관객들이 오늘 만의 특별한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야.
그리고 라스티카는 무대로 나섰다. 손가락을 울리며 아이리스 씨를 마법으로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아이리스: ……응?
당황한 그녀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며 씩씩하게 둘이서 객석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무대 배우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라스티카: 안녕. ごきげんよう 나는 피에로의 친구, 유쾌한 음악가.
라스티카: 아아, 타는 듯이 아름다운 노을이네. 매혹적인 어릿광대의 노랫소리에 어울려.
그렇게 말함 힐끗 아이리스 씨를 곁눈질한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미소를 지으며 밝은 목소리를 냈다.
아이리스: 그, 그렇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전망인지! 혹시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이야?
라스티카: 맞아. 오늘은 마법사가 떠드는 밤. 우리도 그의 노래를, 흥을 돋우자.
라스티카도 오웬과 마찬가지로 가슴 부위의 가면을 착용했다. 팔을 걷어붙이자 그 안에 바이올린이 나타난다. 신나게 연주된 멜로디가 차례차례 무지개색 음표의 형태가 되어 비눗방울처럼 날아간다.
클로에: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
곧바로 객석으로 내려간 클로에는 의자 위에 벌떡 일어나 힘차게 트럼프를 허공에 뿌렸다.
클로에: 아, 안녕! 나는 피에로의 친구, 유쾌한 마술사. 정말이네. 대단한 노을이야.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스위스피시보 보이팅고크!'
주문과 함께 떠있던 트럼프에 반짝반짝 빛나는 날개가 돋아 나비처럼 날갯짓을 한다.
레녹스: ……그렇군요. 저렇게 화재나 오웬의 무대로부터 정신을 놓아…….
미틸: 연극처럼 하면서 출구까지 관객을 유도하면……!
시노: 좋아. 우리도 간다, 파우스트.
파우스트: 저주꾼에게 광대 흉내를 내라고?
시노: 탬버린이라도 치고 있으면 되잖아. 빨리 가자고!
미틸: 네로 씨, 저희도 가요!
네로: 어울리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네……!
레녹스: 현자님, 출구 근처가 가장 불길이 희박합니다. 밖에서는 극단 단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저희는 출구 근처에서 관객을 유도하죠.
네……!
라스티카의 의도를 포착한 마법사들이 각자 객석으로 흩어진다. 사이를 두지 않고 통 위에서, 우리 위에서, 차례차례로 연기자로 분장한 마법사가 나타났다.
미틸: 안녕하세요. 나는 피에로의 친구, 유쾌한…… 무, 무희. 다 같이 잔치를 버리죠. 특별한 노래와 특별한 날을 더 즐기기 위해서!
시노: 안녕. 나는 피에로의 친구…… 는 아니지만, 유쾌한 맹수. 모처럼의 발푸르기스의 밤이야. 오늘 밤은 시끌벅적하게 가자고.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체!'
시노: '맛차 스디파스!'
미틸은 바닥에서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고 시노는 커다란 개 인형을 조종해 관객 사이를 날아다니게 한다.
파우스트: 안녕, 유쾌한 저주꾼이다. 아주 쾌활한 기분이야. 이렇게 탬버린도 칠 수 있어. 쟝쟈쟈쟝.
네로: 안녕. 나는 유쾌한 요리사. 음…… 이하 동문. 쟝쟈쟈쟝쟝.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불쑥 객석 뒤에서 나타난 두 사람도 탬버린을 치며 공중에 별들을 뿌려 눈부시게 빛낸다. 마법사들이 보여주는 환상은 화려하고 어지러워 관객의 흥미를 한 곳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9화
오웬: 후후……. 눈에 거슬리는 녀석들.
오웬은 의외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객석에 던져졌던 불타는 휴지 조각과 소품 조각들을 마법사들에게도 툭툭 내던진다.
시노: 오, 불덩이잖아. 네로, 패스.
네로: 패스가 아니야. 던지지 말라고.
라스티카: 기쁘다. 동료들이 모여들었어. 오늘 저녁 잔치를 다같이 즐기자. 당신도 부디 함께 하기를.
낡은 셔츠의 관객: 오. 나 말인가?
라스티카: 네. 연주는 옆 텐트에서 계속하도록 하죠. 제가 연주하는 음색으로 이끌어 드리겠습니다.
시노: 자, 너도. 이 개 인형을 따라가면 밖에서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어.
클로에: 응, 그쪽의 사람도! 같이 어울려줄 수 있을까?
파우스트: 저쪽에 있는 키 큰 사람이 안내인이다. 다음 쇼로 이끌어 줄 거야.
마법사들은 관객들을 극장 밖으로 유도한다. 공연장의 야유와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지만 즉흥극 덕분이지 관객들은 다소 진정됐다.
여러분, 이쪽이에요! 사실 이거, 진짜 불이 아니니까 당황하지 않아도 돼요. 마법으로 이렇게 보이는 것 뿐이니…… 앗 뜨거.
팔찌를 찬 관객: 후후, 거짓말! 당신도 뜨겁잖아.
후드를 뒤집어 쓴 관객: 아하하, 이렇게 번지다니 금방이라도 천장이 떨어질 것 같아 ……!
레녹스: ……쉿, 조용히. 이제 괜찮아.
후드를 뒤집어 쓴 관객: 에? 뭐, 뭐야.
레녹스: 아아, 불쌍하게도. 몸이 굳었네. 불이 아니라 나를 봐 줘. 그대로 가만히 내 눈을 보고……. '포세타오 메유바'
후드를 뒤집어 쓴 관객: 와, 와와…….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간다…….
레녹스: 진정되었나? 좋아, 착하지. 이 앞에 비밀 통로가 있어. 이 아이들을 따라가줘.
레녹스의 양: 메에~!
팔찌를 찬 관객: 작은 양……! 후후, 귀엽네…….
후드를 뒤집어 쓴 관객: 기다려~…….
굉장한 유도……. 레녹스, 어째서인지 익숙하네요.
레녹스: 양을 인도하는 것보다는 쉽습니다. 말도 통하고요.
(혼란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양떼로 보이기 시작했어…….)
레녹스: 아……. 가면을 쓰는 것을 잊었네요. 극중인데.
네로: 안쪽 사람들은 전부 보냈어.
저희도 곧 마지막이에요!
직후, 불에 삼켜진 샹들리에와 천장이 텅 빈 객석 한가운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레녹스: 현자님……!
……!
튼튼한 팔에 몸을 빼앗겨 어떻게든 불똥으로부터는 피했다. 하지만 눈앞을 큰 불길이 감싸면서 극장은 또 다른 불바다가 된다.
오웬: 라라라라…….
세상의 종말 같은 광경 속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불길에 둘러싸인 무대에는 아무도 없다. 대신 무대 위 간판에 걸터앉은 오웬이 지옥의 파수꾼처럼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웬: '마법사가 떠드는 밤. 분명 아무도 이 비극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레녹스: 현자님, 이쪽으로…….
…….
레녹스가 손을 잡아주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나 뿐만이 아니다. 아이리스 씨나 젊은 마법사들도.
오웬: '내 조각을 먹어.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바에야, 누추한 너에게 바치도록 하지.'
오웬은 혼자서 그곳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모두들 도망쳐 지금은 환성도 야유도 없다. 활활 치솟는 불길이 그의 관객이다. 철썩철썩 불길이 극장을 때리는 소리가 그를 향한 갈채다. 그의 손 안에서 흔들리는 양철 인형 옷에 쏟아지는 불똥이 달라붙는다.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인형 옷이 떨어진다. 마치 역할을 마친 것처럼. 오웬도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막이 내리기 전의 연기자처럼 작게 인사한다.
오웬: '함께, 비극의 막을…….'
마지막 노랫소리는 우아하고, 이상하고, 애처롭게, 무서울 정도로 상냥하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있음에도 한기가 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레녹스: 어떻게든 불은 진정되었군요…….
파우스트: 아아. 모두들 무사하나?
시노: 문제 없어. 텐트 밖도 보고 왔고.
미틸: 손님들도 극단원 사람들도 다친 곳은 없다고 해요!
다행이다. 다들 무사했군요. 극장은 많이 타버렸지만.
극장에서 대피를 마친 후 마법사들이 힘을 다해 겨우 전소는 면했다.
파우스트: 이 정도로 피해로 끝났다면 최상이지. 모두들, 잘해줬다.
네로: 아아, 정말로……. 역시 북쪽 녀석들과는 못 어울리겠어. 항상 그 녀석들이 만족할 때까지 내버려두는 쌍둥이들도 고생이네.
클로에: 아이리스도 다친 곳은 없어?
아이리스: 네…….
아이리스 씨는 어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타버린 무대를 바라보는 그녀의 어깨를 건드리며 라스티카가 부드럽게 웃는다.
라스티카: 멋진 무대였어, 오웬. 다친 곳은 없니?
오웬: 저 정도로 다칠 리가 없잖아. 너희들, 무대를 방해하다니 멋없어.
시노: 네가 멋대로 날뛰니까 그렇잖아. 관객들을 내보내는 거, 힘들었다고.
오웬: 흐응, 그래. 나는 재밌었는데. 비명도 잔뜩 듣고.
오웬은 마지막까지 불 속에 있었을 텐데도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서늘한 얼굴로 아이리스 씨를 향해 휴지라도 버리듯 종이 뭉치와 인형을 던진다.
아이리스: 이건…….
오웬: 내가 불태운 대본이야. 내 노래로는 믿을 수 없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어때?
아이리스 씨는 굳어진 듯 양손으로 대본을 열어 띄엄띄엄 읽어낸다. ……다시 들어보니, 그것은 이런 희곡이었다. 주위의 조롱을 받던 광대가 한 소녀를 내보내기 위해 복수의 노래를 부르며 극장에 불을 지핀다. 불은 이윽고 그 자신을 집어삼키고, 인생의 막이 내리는 가운데 광대는 노래하고, 웃고, 몰래 소원을 빈다. 소녀가 행복하기를. 불탄 자리에 남은 나의 돌 조각을, 그녀가 받아주기를.
아이리스: …….
페이지를 넘기고 문자를 쫓을 때마다 아이리스 씨의 눈동자가 촉촉해져 간다. 이윽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하자 희곡의 끝에 기록된 작자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따라했다.
아이리스: 거짓말쟁이 피에로……. 리베.
달그락 달그락. 부름에 대답하듯 양철 인형이 움직였다.
양철 인형: 아이리스……. 네가…… 좋아. 너무…… 너무. 네가, 너무 소중해. 그러니까, 피에로가 아……닌. 이런 나도…… 사랑 …… 해줄래?
클로에 / 미틸: 인형이 말했다 ……?
이 목소리……. 분명 리베 씨예요. 꿈에서 들은 것과 같아…….
파우스트: 아아. 인형이 말하고 있어.
파우스트: 이건 사념이다. 이 인형에 깃든, 리베 본인의. 아마 이것은 노래 만큼이나 그가 몇 번이나 인형을 상대로 말하고 있던 말……. 이 인형은 평생 함께한 주인의 말을 지금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겠지.
인형은 다시 한 번 덜덜 떨다가 그 박자에 측면의 문이 열린다. 거기서 파랗게 빛나는 작은 돌이 굴러 나왔다.
클로에: 이건…… 마나석?
오웬: 그 녀석의 돌이야. 몸이 대부분 부서졌을 때 인형 안으로 파고든 거겠지. 비상금인 줄 알았는데, 그것치고는 허술한 돌이었어. 그 녀석 자신이 두고 간 선물이야.
과묵하게 빛나는 마나석은 약간 예리한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작은 보석처럼 생겼다. 그것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아이리스 씨는 문득 무엇인가 깨달은듯 작게 중얼거린다.
아이리스: '내 조각을 먹어'…….
그녀의 말에서 오웬이 무대에서 부르던 가사가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바에야, 누추한 너에게 바치도록 하지'…….
레녹스: 가사에도 있었네요. 아이리스가 돌을 먹기를 원했다는 거였죠.
아이리스: 에……? 이 보석, 먹을 수 있어?
레녹스: 마법사는 돌을 먹는 것으로 애도를 하는 경우가 있어. 그는 친애하는 네가 먹어주기를 바랐을 거야.
아이리스: 애도…….
마법사가 마나석을 먹으면 돌에 깃든 주인의 마력의 일부를 넣을 수 있다. 그 크기라면 너라도 삼킬 수는 있겠지만…… 인간에게는 그냥 길에 있는 돌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야.
아이리스: ……상관없어. 그것이 리베의 바람이라면.
아이리스 씨는 일절 망설이지 않았다. 보물을 줍듯 마나석을 두 손으로 건져 올린다. 반짝이는 그것을 바라보고 나서, 살며시 입에 머금었다.
아이리스: ……달아. 마치 설탕 과자 같아……. 마나석은 이런 맛이야?
오웬: 그럴 리가 없잖아.
오웬이 슬며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조각만한 작은 마나석이 나뒹굴고 있었다.
오웬: 네가 먹은 건 내가 만든 슈가. 진짜는 이쪽이야.
아이리스: ……에……?
네로: 어이. 설마…….
히죽히죽 웃은 오웬은 현자의 문장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혀를 내밀고, 마나석을 날름 입에 넣었다.
오웬!?
아이리스: ……거짓말이지……. 어째서.
아이리스 씨에게 보여주듯 오웬은 꿀꺽 삼켰다.
오웬: 아아, 불쌍해라. 이것으로 정말 최고의 비극이야.
아이리스: ……! 돌려줘! 그를 돌려달라고!
네로: 어, 어이……! 그 녀석에게 덤벼들면 무사하지 못해!
마구 뛰쳐나가는 아이리스 씨를 네로가 순간적으로 끌어당긴다. 그때, 거친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지배인 대리: 이 미친 광대 녀석이! 극장에 불을 붙이다니! 도대체 뭐하는 녀…….
지배인 대리였다. 몸 전체에 화를 잔뜩 내고 후려치듯이 호통을 친다. 그러나 돌아본 오웬이 식은 눈동자를 돌리자 분노한 얼굴이 파래진다.
지배인 대리: 거짓말쟁이 피에로……!? 이제와서 괴물이 둔갑해 나온 건가!? 모처럼 사고로 죽여버렸는데, 죽은 이후에도 기분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미틸: ……네……?
클로에: 처리라니, 무슨…….
레녹스: 광대는 공연 중 사고로 죽은게 아니었나?
지배인 대리: 사고다. 떨어질 리가 없는 샹들리에가 딱 맞아서 그 녀석의 머리에 직격했을 뿐이야.
아이리스: ……! 설마, 일부러 세공을…….
지배인 대리: 당연한 보답이지. 저 녀석은 살인자다. 나는 저 녀석이 지배인을 죽이는 걸 이 눈으로 봤으니까. 게다가 공연에 무언가를 장치하려고 묘한 꾀까지 부리고……. 외상값은 냈고, 적당히 얼버무려서 그 녀석에게는 작별 인사를 했어. 모아 팔아버린 돌도 좋은 돈이 되었고, 마지막까지 도움이 되었지.
아이리스: 당신이……. 당신 때문에…….
아이리스 씨의 얼굴은 창백했다. 분노에 빠진 그녀의 어깨를 레녹스와 라스티카가 받친다.
지배인 대리: 아이리스, 너도 말썽을 부리는 거냐. 횡포한 마법사의 지배인을 대신하여 인간인 내가 머리에 서게 되면 언젠가 맞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제 됐어. 이런 더러운 극단, 다시 세울 만한 가치도 없다.
그렇게 내뱉고 지배인 대리는 금고를 안아 마차에 올라탔다.
지배인 대리: 멋대로 죽어버리라고. 그럼 잘가라, 멍청한 광대 녀석들!
……너무해…….
파우스트: 저 남자, 어디까지 최악일 셈이냐…….
레녹스: 쫓아갈까요?
시노: 빗자루로 쫓으면 마차의 속도만큼 추월할 수 있어.
레녹스와 시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10화
미틸: 저도 쫓아갈게요! 레노 씨, 시노 씨, 함께…….
네로: 그만둬. 흉측한 쓰레기 같은 녀석이지만, 상대는 인간이야. 저런 놈을 위해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지.
미틸: 하지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리베 씨도, 아이리스 씨도 상처 입히고…….
네로: 그 녀석의 악행의 증거도 거의 타버렸어. 적당한 곳에 내밀어도 증거가 없으면 감옥에 집어넣는 것도 쉽지 않아. 무엇보다 우리들 마법사의 말이 통할지도 잘 모르니까. 우리가 오히려 나쁜 놈이 될 수도 있어.
파우스트: 일리 있군. 뼈저리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네로: 무엇보다 너희들이 저런 녀석 때문에 가슴 아파할 필요도 없어. 아이리스, 당신도……. 여러 가지 믿기 힘들겠지만 말이야. 저런 패거리는 어디선가 원한의 청산이 있을 거야. 가만히 놔둬도 변변한 죽음은 없겠지.
아이리스: ……응. 그러길 바라.
시노 / 미틸: …….
레녹스: ……알았어. 아이리스가 그렇게 말한다면.
오웬: 아하하. 너, 버리기도 전에 버려졌네. 어떻게 할래? 이 불똥 속에서 계속 노래할 거야?
부들부들 웃고 얼굴을 들여다보는 오웬을 아이리스 씨가 강하게 노려본다.
아이리스: 그렇다고 해도 너는 다시는 오지 마.
오웬: 싫어.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건 그렇고, 거짓말쟁이 피에로는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었지. 자신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저런 노래 따위에 집착하고.
라스티카: 그건 분명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야.
오웬이 던진 말을 라스티카가 소중한 분실물처럼 주워담는다. 흐린 것 하나 없이 맑은 검푸른 눈동자가 오웬에게 웃음을 주었다.
라스티카: 오웬이 대본을 태웠을 때 고맙다고 말한 것도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아이리스를 해치지 않아도 되니까.
아이리스: 나를……?
라스티카: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리 몸에서는 마나석을 녹이지 않아. 그리고 삼킬 때 목이 상처받을 수 있어. 만약 그것으로 네가 노래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그런 위험함을 리베도 알고 있었을 거야. 자신의 돌을, 적어도 증거로서 먹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다급하게 굴었어도, 사실은 그도 후자의 마음을 취하는 자신으로 있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해.
양철 인형은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리스 씨가 말이 없는 그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리베 씨 또한 대답이 없는 인형을 향해 계속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리스, 아이리스. 너무나도, 네가 너무나도 소중해.
아이리스: 나도, 당신이 소중했는데 …….
아이리스 씨는 갈 곳 없는 미아처럼 고개를 떨궜다. 검은 곱슬머리가 힘없이 흔들린다. 잃어버린 친구도, 그가 그녀에게 맡긴 조각도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시노: 뭐, 그. 뭐냐. 힘내…… 라고 말해도 어려우려나.
클로에: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 슬픈 일도, 속상한 일도 잔뜩 있어서……. 하지만 아이리스의 마음이 리베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좁은 장소에서 심한 말을 받고 지내는 사이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꿈 속에서 본 두 사람의 기억은 매우 잔잔하고 따뜻했거든요. 아이리스 씨의 말이나 목소리로부터 리베 씨를 매우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져와서……. 그런 당신이기 때문에, 구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미틸: 그렇네요……. 조금 더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레녹스: ……라라라.
문득, 낮은 노랫소리가 울렸다.
레녹스: '거짓말쟁이 피에로는 인기가 많아. 언제든지 모두를 웃게 만들어. 춤춰봐, 노래해봐. 어차피 이 세상은 전부 엉터리니까. 너와 꿈꿨던, 이 백일몽.'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고 싶어지는 익살스러운 가사. 발푸르기스의 밤에 만나요의 전반부 가사였다. 같은 곡인데도 레녹스가 부르면 등을 어루어만지듯 부드럽게 울린다.
레녹스: ……리베는 너의 마음을 듣지 않은 채 너를 위해 극단을 부수려고 했어. 그것은 그의 이기심이기도 해. 하지만 뚜껑을 덮은 생각은 이렇게 사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뿌리 깊었지. 그는 포기한게 아니야. 너의 행복과 자유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어.
시든 대지에 스며드는 빗방울처럼 타버린 극장에 레녹스의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텅 빈 쓸쓸한 풍경 속에서 듣는 그의 말은 조금 애틋하고 따뜻했다.
레녹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생각에 잠겨 일생을 걸고 너를 구하려고 한 것을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정원에서 보내는 날들에 희망을 찾을 수 있었어. 너를 생각할 수 있어서 행복했을 거야. 그래서 그를 위해서라도 부디 앞을 보고 살아가줘. 너무 어두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파우스트: ……오웬이 마나석을 삼키면서 그의 집착도 사라졌다. 인형에 깃든 의지와 노래가 가져다주는 괴이도. 하지만 네가 증오에 사로잡혀 계속 노래한다면 이 노래는 정말로 저주의 힘을 가질지도 몰라. 네가 그와 이어준 인연은 그렇게 사악한 것이 아니잖아.
레녹스에 이어 입을 연 파우스트가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천천히 안경 속의 속눈썹이 반짝인다.
파우스트: ……추억까지 왜곡시킬 필요는 없어. 그와의 만남부터 오늘까지, 네가 따뜻하게 생각한대로 소중히 여기면 돼.
아이리스: ……그렇지. 내가 그 노래를…… 피에로와 리베와의 추억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리스 씨는 마음을 가다듬듯 인형을 안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씨익하고 호쾌하게 코를 훌쩍거리더니, 오웬을 향해 돌아선다.
아이리스: 아까는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해. 너도 짓궃은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도 감정에 실려 말을 심하게 했어. 그리고…… 고마워. 당신이 없었더라면 리베의 마음과 아픔을 나는 영원히 몰랐을 거야. 나에게는 그게 훨씬 더 잔인한 비극이었을 테니까.
오웬: 고맙다는 말 하지 마. 기분 나쁘니까. 너도 저 녀석도 역시 이상해. 중요한 것을 빼앗기고 감사의 말을 하다니.
노신사: 아아, 아아! 아직 계시나요? 거기 분들, 갑자기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약간 쉰 목소리가 우리에게 호소한다. 돌아보니 품위 있어 보이는 노신사가 서있었다.
클로에: 어라? 당신은 낮에…….
라스티카: 여어, 전에는 감사했습니다. 저희들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아까 스쳐 지나갔을 때 라스티카와 아이리스 씨의 노래에 대해 의기투합했던 노신사였다.
노신사: 아이리스라는 연기자를 찾고 있는데, 그녀는 어디에……. 오오! 이쪽에 계시군요!
아이리스: 에…….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노신사: 아까 극단에서 화재가 났다는 것을 듣고 황급히 왔습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처음이군요. 아아, 영광입니다. 항상 당신의 노래를 들으러 왔었어요. 정말 활기차고 멋진 노래입니다. 거짓말쟁이 피에로가 죽은 후 당신이 희곡을 이어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아이리스: 피에로를 알고 있어……?
노신사: 네. 물론이죠. 사실 저는 지방에 성을 두고 있어서.
들어보니 노신사는 지방 귀족으로, 극장을 여러 개 운영한다고 한다. 그는 근근이 경영하고 있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라스티카와 클로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이름난 극장 뿐이었다.
노신사: 극단은 해산했다고 조금 전 밖에 있던 아이들에게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거품의 도시 근처에 작은 극장을 세울 예정이거든요. 당신만 괜찮다면, 거기서 다시 노래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극단에 남은 아이들과 함께.
아이리스: ……!
미틸: 아이리스 씨, 다행이네요!
클로에: 앞으로도 계속 노래할 수 있어!
아이리스 씨는 놀란 모습이었지만 노신사가 공손히 손을 내민 것을 보고 마음을 먹은 듯 악수에 응했다. 노란 눈동자를 선명하게 빛내면서.
아이리스: 네, 물론……! 힘껏 노래할게!
오웬: 아아. 고장난 장난감 상자처럼 보기 좋은 장소였는데.
아이리스 씨가 노신사와 함께 밖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간 다음, 오웬은 재미없다는 듯 극단의 불탄 흔적을 바라보았다.
장소였는데, 라고 하기에는…….
네로: 네가 직접 태운 거잖아……. 이런 웰던 정도의 익힘으로 익히면서까지…….
시노: 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언제나의 일이잖아.
클로에: 아, 그러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왜 노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낮에 만났을 때도 평범한 상태였지.
확실히……. 이변이 일어나고 나서도 자주 무대를 보러 온 것 같았죠.
파우스트: 거짓말쟁이 피에로와 아이리스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 노래는 피에로가 자신을 우습게 여긴 것에 보복하고 아이리스를 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까.
레녹스: 중시해서 들으면 효과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피에로를 비웃은 것이 피에로가 된다, 같은.
클로에: 과연…….
이런 말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피에로 답다고나 할까…….
라스티카: 리베는 무대를 원망했을지도 모르지만, 기질이나 사고는 타고난 엔터테이너였다고 생각합니다. 재능있는 그의 생애에 진심 어린 축복을.
시노: 하지만…… 이야기는 들었지만 오웬은 정말 노래를 잘하네.
미틸: 저도 깜짝 놀랐어요! 오웬 씨가 이런 노래를 부를 줄은.
클로에: 정말로! 오웬의 노래는 매력적이야. 그런데 오늘은 특히 더 대단했어. 멋있고, 섹시하고, 섬뜩한 느낌……. 생각하면 두근거릴 정도로.
그 말을 하자면 모두의 즉흥극에도 두근거렸어요! 마치 대본이 있는 것처럼 화려해서 관객들이 섞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라스티카: 모두라면 분명 바로 어울려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유쾌한 동료들이 달려와주었죠.
레녹스: 도중에 끝나 버렸는데, 그 연극의 계속은 어떻게 되는 거지?
라스티카: 밤새도록 잔치가 계속될 거야. 그 후에 광대의 친구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되고. 클로에도 시노도 미틸도 레녹스도 네로도 파우스트도 현자님도 모두 함께 노래하는 거야. 각자의 솔로 파트도 있어.
네로: 솔로 파트도 있다고?
파우스트: 너희들처럼은 노래할 수 없어.
레녹스: 파우스트 님은 춤을 잘 추시니까 춤의 솔로 파트는 어떠실까요.
미틸: 파우스트 씨의 춤, 보고 싶어요!
시노: 나도 보고 싶어. 파우스트의 솔로는 춤으로 가자.
파우스트: 그러면 노래는 어떻게 할 건데.
라스티카: 그렇네. 오웬에게 부탁할까?
오웬: 멋대로 결정하지 마. 안 해.
클로에: 그러면 파우스트와 함께 춤추는 건? 오웬, 춤도 잘 췄고.
라스티카: 그거 좋네. 어쩌면 오웬의 강아지들이 함께 춤을 춰줄지도 몰라.
오웬: 안 해. 노래도 춤도. 아니, 이제 솔로도 아니잖아 그거.
(……방금 전까지 여기가 불바다였다니, 믿기지가 않네.)
한 점 없는 극단의 불탄 자리는 마치 하룻밤 꿈의 흔적.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따라 노래하고 춤추던 오웬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그 풍경을 거짓말쟁이 피에로는 계속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마음속에 그렸던 것일까. 비극의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며.
(그와 아이리스 씨가 만난 것처럼, 이 정원 안에도 행복은 분명 있었겠지만…….)
파멸의 노래가 탄생한 것도 이 장소다. 이 극단은 부서지기 위해 부서진 것일지도 모른다. 10년의 시간을 거쳐 변덕스러운 마법사가 완성시킨 사랑도 저주도 되는 희곡.
그건 분명, 허풍의 정원의 종언을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참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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