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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法使いの約束/2024 이벤트 스토리

[아르테레고의 규칙] 11화~15화

11화

 

협의 결과, 무르의 거처로 향하는 안내인은 샤일록. 각 패밀리의 대표로 히스클리프와 스노우. ……그리고 루나피에나의 대표로는 내가 가게 되었다.

 

샤일록: …….

 

저기, 샤일록.

 

샤일록: 무슨 일인가요?

 

정말로 리케가 아니라 제가 가도 되는 건가요? 저는 패밀리의 일원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

 

샤일록: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요. 저희 모두가 키르슈 페르슈를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보스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처음 뵙는 인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쪽으로 모신 겁니다.

 

히죽히죽 웃어주는 샤일록에게 나도 미소를 돌려준다.

 

샤일록: …….

 

어쩐지 아까부터 샤일록의 표정이 굳은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딘가 위화감이 있는 것 같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미소는 여느 때와 같은 사람이었다.

 

(기분탓인가……?)

 

샤일록: …….

 

무르의 거처는 폴몬트 타운의 중심가에 있었다. 길고 긴 계단을 내려가 지하 미궁 같은 낡은 지하도를 지나다, 느닷없이 정비된 일각이 나타난다.

 

샤일록: ……이 문의 끝이, 무르의 거처입니다.

 

모두가 얼굴을 마주보고 문에 손을 댄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오웬: 드디어 왔네. 너무 늦어서 평생 안 오는 줄 알았어.

 

샤일록 / 아키라: 오웬……?

 

문 앞,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오웬이었다. 바닥 위에 설치된 금속제와 비슷한 침대 크기의 캡슐. 그는 그 중 하나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샤일록: 당신……. 손에 들고 있는 열쇠는…….

 

오웬: 여기의 열쇠야. 너희들은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들.

 

오웬은 손가락 끝으로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지루하다는 듯 캡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캡슐의 내용물이 엿보인다.

 

(캡슐 안에 뭔가…….)

 

끌리듯이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캡슐에 채워져 있는 액체는 노란색과 분홍색의 그라데이션. 키르슈 페르슈와 같은 색. 그리고 그 안에는 오웬을 쏙 빼닮은 청년이 있었다. 수술복 같은 옷을 입은 그는 눈꺼풀을 감고 캡슐에 누워 있다.

 

히스클리프: 이건…….

 

스노우: 오웬이라는 자와 같은 얼굴의…….

 

오웬: 이건 나야. 두 눈이 빨갛던 시절의 나. 샤일록. 넌 알고 있지? 나는 원래부터 오드아이가 아니었다는 걸.

 

샤일록: …….

 

오웬: 붉은 눈의 나는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대신 계속 여기서 자고 있어. 옛날에 크게 다쳐서 죽을 뻔한 이후로, 계속.

 

붉은 눈동자의 그와 오드아이인 그. 눈앞에서 고독하게 미소짓고 있는 그. 그리고 키르슈 페르슈와 같은 색의 액체. 모든 사실은 하나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조금 다른 똑같이 생긴 두 사람. 이 거리에서 그걸 의미하는 것은, 어느 쪽은…….)

 

샤일록: ……당신도 카가미 에이코라는 것이군요.

 

오웬: 후후, 정답.

 

쿵, 하고 심장이 역겨운 소리를 냈다.

 

(오웬이 카가미 에이코…….)

 

……나는 알고 있다. 그 밖에도 예전에도 크게 다쳤다고 했던 샤일록을.

 

오웬: 너도 다시 만나고 오는 건 어때? 또 다른 자신에게.

 

오웬의 손가락이 캡슐 중 하나를 가리킨다. 그중에는…….

 

샤일록: …….

 

매끈한 흑발을 늘어뜨리고 긴 속눈썹을 감은 샤일록이 있었다.

 

……그, 런…….

 

무언가를 참듯 샤일록이 얇은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하얗게 질린 입술은 금새 핏빛을 되찾았다. 그는 살아있다. ……하지만 캡슐 안의 그는 숨을 쉬지 않고 있다. 무심코 눈을 돌리려고 옆 캡슐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잠들어 있는 것은 금발의 소년…… 리케였다.

 

스노우: 이건……. 그대들도 카가미 에이코였다는 건가?

 

화이트의 일이 있어서인지 스노우의 이해력은 빨랐다. 히스클리프는 새파랗게 질려 캡슐 속 샤일록을 바라보고 있다.

 

히스클리프: 그렇다면 샤일록 씨는……. 역시 그때 …….

 

샤일록: ……네 ……. 그런 것 같군요.

 

잔혹한 진실을 앞에 두고도 샤일록은 꿋꿋하게 히스클리프의 물음에 답했다.

 

오웬: 뭐야. 다들 별로 반응이 없네. 샤일록, 너도. 너는 자신이 두 명 있다는 것을 알고도 상처받지 않는 거야?

 

샤일록: ……카가미 에이코의 존재를 알고 나서 희미하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뭐, 눈치채긴 했어도 막상 현실을 보는 것은 역시 조금 힘들군요. ……하지만, 사실은 오래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

 

샤일록은 중얼거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웬: 흐응, 알고 있었구나. 그러면 이건 어때? 낙월화는 우주에서 온 식물일지도 모른대. 그래서 무르는 낙월화에 미지의 힘이 있지 않을까하고 연구를 시작했어. 그 과정에서 아무리 해도 융해되지 않았던 낙월화 수액 결정이 특수한 알코올에 녹아내리는 것을 발견한 거야. 그 술이, 키르슈 페르슈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오웬은 캡슐을 쓰다듬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도 아마도 키르슈 페르슈일 것이다.

 

샤일록: 오웬. 당신은 보스의 사정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군요.

 

오웬: 뭐, 무르에게 여러 가지 말하게 했으니까.

 

샤일록: 말하게 해? 그 무르가 당신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하는 건가요?

 

오웬: 내가 위협하기 전에 죽을 뻔했으니까. 너에게 습격당해서.

 

샤일록: ……에……?

 

눈이 휘둥그레진 그에게 오웬이 천천히 다가갔다.

 

오웬: 너도 폭주한 거야. 지금 폴먼트 타운을 떠들썩하게 하는 녀석들처럼 말이야. 눈을 새빨갛게 빛내며 무르에게 달려들었고, 이 흰 피부에 무르의 피가 흩어졌어.

 

샤일록: ……내가, 무르를…….

 

샤일록…….

 

나는 순간적으로 샤일록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차갑고 작게 떨리고 있었다. 바라보면 그의 얼굴은 잔인할 정도로 창백하다. 내가 손을 잡아봤자 분명 그 색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까지도 꽃잎처럼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샤일록의 입술이 떨리고 숨을 들이쉰다. 내 손이 싱겁게 되쥐어진 느낌이 들었다.

 

샤일록: 그건……. 언제 일어났던 일이죠?

 

오웬: 헤에, 알고싶구나.

 

오웬은 유쾌하게 입을 떼더니 벽가의 책장으로 다가갔다. 연구 자료같은 파일이 죽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샤일록에게 던진다.

 

샤일록: 이건…….

 

오웬: 그 때의 일도, 카가미 에이코의 진실도, 이 노트에 자세히 적혀있어. 궁금하다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봐.

 

샤일록은 받은 노트를 내려다봤다.

 

스노우 / 히스클리프: …….

 

저기……. 만약 샤일록이 힘들다면, 제가 중요한 부분만 읽어볼까요……?

 

샤일록: 아키라…….


12화

 

샤일록: 감사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고 해도, 저는 이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요.

 

어째서…….

 

샤일록: 제 마음의 목소리가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두렵다고 해도, 진실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이 마음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 불확실한 '나' 가 정말로 '나' 가 아니게 되어버려. 그리고…….

 

샤일록은 나의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 차가웠던 그것은 온기를 띠고 있어서. 

 

샤일록: ……당신과 함께라면, 이 공포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기억이라는 버팀목을 잃어도, '당신' 답게 확실히 서있었던…… 저와 많이 닮으면서도 하나도 닮지 않은, 아키라와 함께라면.

 

샤일록…….

 

샤일록: 함께 이 페이지를 넘겨주지 않겠나요? 진실을 잡기 위해서.

 

……네. 물론이에요.

 

눈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노트에 손을 댔다. 그곳에는 이지적인 필적이 빽빽하게 흩어져 있었다.

 

이건…… 수식? 화학식 같은 것도 있네요.

 

샤일록: 확실합니다. 이건 보스의 필적이에요.

 

샤일록: ……아…….

 

넘긴 다음 페이지에는 이 노트의 주인에 의한 수기 같은 것이 쓰여져 있었다.

 

샤일록: '샤일록이 빈사했다. 어떤 아이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손상이 심하다. 치료의 끝에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은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자신감 넘치는 샤일록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것도 실험이다. 라고 스스로 타일렀다.'

 

'키르슈 페르슈의 안에서라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생명만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낙월화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연구를 계속해야지.'

 

'오늘도 샤일록은 깨어나지 않는다. 당연해. 그의 손상의 심각성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샤일록 / 아키라: …….

 

거기에는 우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수식어나 화학식, 전문 용어가 쓰여진 페이지가 잠시 계속되어…….

 

'드디어 해냈다. 이뤄냈다. 필요한 것은 그의 혈액과, 낙월화 수액의 결정이었어. 이 생명은 거울을 비추는 생명……. 카가미 에이코라는 이름을 붙이자.'

 

……그, 그러니까.

 

샤일록: 카가미 에이코를 만들어낸 것이, 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샤일록이 페이지를 넘겼다. 오웬의 카가미 에이코가 태어난 날. 리케의 카가미 에이코가 태어난 날. 다양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그 후, 공백의 페이지가 계속 되고 수기는 끝인가 생각하던 그때 …….

 

샤일록: …….

 

목마른 피 같은 얼룩이 묻은 페이지에 도착했다.

 

'……카가미 에이코가 태어난지 3년. 샤일록의 상태가 이상하다. 밤이 밝음과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는 붉은 빛이 비춰지고……. 나에게 덤벼들었다.'

 

샤일록: …….

 

'그의 예상 외의 습격에 의해 입은 손상으로 나도 살아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적어두자. 키르슈 페르슈를 섭취하였더니 증상이 진정되었다. 아마도 이 폭주는 그의 체내에 있는 낙월화의 결정……. 거기에 포함되는 특수한 성분이 소진된 것이 원인이다. 만약 내가 죽었을 때는 누군가, 그에게, 그들에게, 결정이 녹아내린 키르슈 페르슈를…….'

 

샤일록: ……무르…….

 

그것은 그의 옛 친구로서의 진심인가. 그를 낳은 연구자로서의 진심인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가운데 이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스노우: ……그렇군. 화이트의 폭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태어난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그 시간의 차이가 혈액이 아니라 유골에서 카가미 에이코를 만들어낸 대가였다는 것이었다는 건가.

 

히스클리프: 아뇨, 대가라고 한다면 카가미 에이코 모두가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여,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

 

샤일록: ……정말로, 제가 무르를 죽일 뻔했군요……. 확실히 이전에 갑자기 무르가 크게 다쳐서 암의사의 신세를 지고 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취미의 연구로 무리를 했다며 웃기만 하고 …….

 

……샤일록.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의 옆모습에는 그런 자책감이 배어 있었다. 뭐라고 하면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이 와달라고, 말해줬는데.)

 

아무것도 꺼낼 수 없는 이 입이 몹시 답답하다.

 

오웬: 화가 나지. 우리는 키르슈 페르슈를 먹지 않으면 3년 만에 짐승처럼 되는 몸이 되어버린 거야.

 

샤일록: …….

 

오웬은 샤일록을 등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손끝으로 또 다른 자신이 잠자는 캡슐의 윤곽을 빗대듯 어루어만졌다.

 

오웬: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을 용서하기로 했어. 왜냐하면 만약 이 몸이 죽더라도 그 녀석에게 새로 카가미 에이코를 만들게 하면 '오웬' 은 다시 태어나. 키르슈 페르슈만 있으면 몇 번이고 죽을 수 있는 몸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잖아?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을 몇 번이고 즐길 수 있는 거야.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의 미소에 키르슈 페르슈의 색이 비친다.

 

샤일록: ……하지만, 그렇게 새롭게 태어나는 당신은 정말로 '당신' 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히스클리프: ……샤일록 씨…….

 

오웬: 하하. 그거,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인데 괜찮아?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지금 여기 있는 너도 샤일록이 아니게 되는 거야.

 

샤일록: 그건…….

 

……샤, 샤일록은 샤일록이에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입에서 말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답이 막히는 샤일록을 보니 아까까지 망설였던 것이 거짓말처럼 전하고 싶은 말이 마음 속에서 흘러넘친다.

 

거기서 잠자고 있는 샤일록과 다르든 같은 저에게는 상관 없어요. 곤란해하던 나를 도와주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나에게 거처를 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안아줬다…….

 

생각날 때마다, 말할 때마다 나의 마음에 확신이 생긴다. 나는 샤일록을 봤고, 샤일록도 나를 보았다.

 

저에게 있어서는, 당신이 샤일록이에요.

 

나의 말을 쫓아가듯이 히스클리프도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히스클리프: 제가 알고 있던 것은 옛날의 당신입니다. 그런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이것만은 전하고 싶어요. ……당신이, 아키라와 리케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두 사람을 껴안았을 때의 미소……. 그 표정은 예전에 저를 품에 안고 미소를 지어주던 그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히스클리프: 당신은 틀림없이, 저를 도와준 '샤일록' 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러자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노우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스노우: ……나는 카가미 에이코로 살아난 화이트를 화이트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네. 생전에 좋아하던 시나몬 츄러스가 아니라, 슈가 츄러스를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해도…… 그런 화이트도 나의 소중한 화이트이다. 옛날과 달라도 좋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남겨진 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니까.

 

샤일록: ……여러분…….

 

꽃봉오리가 터지듯 천천히 미소를 지은 샤일록이 천천히 나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봄 햇살처럼 따뜻했다.

 

샤일록: 감사합니다. 지금의 말은, 다시 태어나도 잊혀질 것 같지가 않군요.

 

손을 뗀 샤일록은 다시 한 번 오웬을 마주보았다.

 

샤일록: 오웬. 제가 실언을 했군요. 당신이 믿는 한, 당신은 오웬. 그리고 저는 샤일록입니다.

 

오웬: 흥……. 하찮은 대답이네.

 

샤일록: 이런, 엄하시긴.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은 다른 것인가요?

 

오웬: 별로.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야. 옛날의 나와 어딘가가 달라졌다고 해도 상관없어. 지금을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나야. 뭐, 눈 색이 바뀐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오웬은 작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방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3화

 

오웬: ……이제는 재미없을 것 같고, 끊을 거야.

 

스노우: 끊다니? 뭘 말인가.

 

히스클리프: 아, 저기. 전화기가 있어요.

 

히스클리프가 가리킨 끝에 방 구석에 작은 책상이 놓여져 있었다.

 

샤일록: 도대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오웬: 글쎄. 누구려나. 나는 그저 나의 몸을 멋대로 만진 보복으로 흐트러진 친구의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했을 뿐이야.

 

질린 장난감을 내팽개치듯 말을 남기고 오웬은 시원하게 방을 떠났다.

 

샤일록: ……설마…….

 

얼굴색을 싹 바꾼 샤일록이 책상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든다.

 

샤일록: 무르. 당신인가요?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여어, 샤일록. 마술의 씨앗을 밝힌다고 해도, 절차라는 것이 있는데. 전부 들켜버렸구나.

 

샤일록: ……지금 어디에 있나요?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그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어. 쫓고 쫓기는 중이거든. 내가 크게 다친 사이에 카가미 에이코의 생성 기술을 훔쳐 이 거리에 퍼뜨린 범인을 찾고 있어. 3년의 타임 리미트를 키르슈 페르슈로 해결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불완전한 기술을 유포당하는 것은 본의가 아니었으니까.

 

샤일록: 그런가요. ……조심하라고 말해도 듣지 않겠죠.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잘 알고 있네. 역시 샤일록이야.

 

샤일록: …….

 

잠잠해진 조용한 방에, 수화기에서 살짝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샤일록의 눈동자는 복잡한 색을 띠며 흔들리고 있었다.

 

샤일록: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무르 하트라는 사람은 위기에 처한 저를 기껏해야 별의 관측처럼 바라볼 뿐이었죠. 그런 당신이, 왜 저를 만들었나요?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부탁 받았거든. 히스클리프라는 아이에게.

 

샤일록: …….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하지만, 그렇네……. 그때까지, 어떤 위기에 처해 있어도 살아돌아온 네가 속절없이 차가워져 가는 그 광경을 앞에 두고…… 막상 다시는 말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

 

샤일록: ……그리고 저를 만들고 막상 말을 나눠보니…… 당신이 원하는 샤일록과는 달라서 실망했나요?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그래. 실망했어. 나 자신에게.

 

샤일록: 당신 자신에게……?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너는 나의 눈치를 보고 말을 고르는 틈이 있었어. 그건 내가 아는 샤일록도 아니고, 샤일록도 그런 자신을 원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실망했어. 내가, 있는 그대로의 너의 형태를 바꾸어 버린 것이라고.

 

샤일록: ……그렇군요…….

 

그렇게 말을 끊고 심호흡을 한 샤일록은,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게 미소지었다.

 

샤일록: 저는 카가미 에이코인 샤일록. 당신이 바라던 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저를 사랑해요. 당신이 원하지 않아서, 과거의 나와 달라서……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니까요.

 

샤일록: ……당신도 그런 저를 사랑해 주실 거죠. 아버지?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 ……하하하! 네가 아버지라고 부르다니. 하지만 답은 말하지 않을게. 너도 그런 내가 좋은 거잖아?

 

샤일록은 깔끔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제 괜찮아 보이네요.

 

샤일록: 네. 여러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인사한 그는 무르에게서 들은 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정리해 주었다.

 

스노우가 화이트를 만들어 주게 했다는 검은 실크 모자의 남자가, 아마 무르에게서 카가미 에이코의 기술을 훔쳐 이 거리에 퍼뜨린 범인일 거라는 것. 무르는 지금 그 남자를 쫓고 있고, 결판을 낼 생각인 것. 카가미 에이코는 키르슈 페르슈를 섭취하지 않으면 태어나고 나서 3년 후에는 밤에 폭주를 시작해…… 그대로 아무런 손도 쓰지 않으면 이윽고 낙월화의 꽃잎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

 

샤일록: ……그리고, 카가미 에이코인 저희를 폭주시키지 않기 위해 무르는 붕배의 의식은 만든 것이겠지요.

 

……그 의식에 그런 의미가…….

 

얽혀 있던 수수께끼는 풀렸고, 모든 것이 납득이 갔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히스클리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키르슈 페르슈가 없으면 모든 카가미 에이코에게 폭주의 가능성이 계속 있다…… 라는 것이죠.

 

샤일록: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는군요. 이 거리에 얼마나 많은 카가미 에이코가 존재하고, 언제 3년의 타임 리미트를 맞이할지 모르는 카가미 에이코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본인들은 자각도 없는 사이에 그 몸에 시한 폭탄이 채워져 있는 것과 같아요.

 

스노우: 하지만 폭주만 하지 않는다면 카가미 에이코와 우리의 공존은 가능할 걸세. 정기적으로 키르슈 페르슈를 먹일 수만 있다면…….

 

이 거리에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카가미 에이코들.

 

(그들 모두에게 키르슈 페르슈를 정기적으로 마시게 하는 방법이란, 즉…….)

 

……아.

 

샤일록: 무슨 일인가요, 아키라.

 

딱 한 가지 생각이 났어요. 카가미 에이코들에게 키르슈 페르슈를 마시게 할 방법이.

 

스노우 / 히스클리프: !

 

샤일록: 그건 대체…….

 

키르슈 페르슈를 메뉴로 내주는 술집을 여는 것은 어떨까요? 이쪽에서 카가미 에이코를 찾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술집의 소문을 퍼뜨려서 카가미 에이코 분들에게 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히스클리프: 과연……. 확실히 일리가 있을지도 몰라요.

 

스노우: 문제는, 누가 그 술집을 경영하는 가인데…….

 

……그건……. 샤일록. 당신이면 어떨까요……?

 

샤일록: 제가?

 

샤일록은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나에게는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제멋대로 말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술집 주인은 샤일록에게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따뜻한 허브티나 키르슈 페르슈를 준비해 주거나, 허브 와인을 만들거나……. 당신에게는, 카운터와 술이 잘 어울렸으니까요.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샤일록이 미소짓고 있고…….)

 

그건…… 저라도 퍼뜨려 버릴지도 몰라요. 이렇게 몸도 마음도 힐링되는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저, 샤일록이 술집 주인이었다면…… 라고 상상한 적도 있어요. 그저 상상이었는데도 확신할 수 있었어요. 분명 그 술집은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멋진 장소가 될 거라고.

 

샤일록: 아키라…….

 

히스클리프: 샤일록 씨. 만약 맡아주신다면 저희도 전력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가게에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준비하고, 물론 술집 소문의 유포도요.

 

스노우: 우리 벤티스카도 총출동하지. 환상의 미주 키르슈 페르슈를 마실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술집이라는 평판을 말일세. 그리고 심한 건망증이나 기억 상실에 짚이는 것이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라고도 해둘까.

 

고마운 제안이 줄을 잇는다. 나는 두근거리며 샤일록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부글부글 끓는 포도주와 같은 열을 보이고 있었다.

 

샤일록: ……하죠. 카가미 에이코의 시작인 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카가미 에이코와 인간이 함께 사는 이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제가, 저로 있기 위해서.

 

샤일록: 소중한 한 잔을 만들어 드리도록 하죠.


14화

 

술집의 개점이 결정되는 것은 빨랐다. 뭐니뭐니해도 판테라와 벤티스카, 거리의 양대 세력인 패밀리가 협력해 주었으니.

 

히스클리프: 후우. 무사히 프리 오픈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네! 여러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완전히 술집처럼 되어서……. 아니, 돌아왔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스노우: 사람들이 모여 각자 즐기고 있는 것 같군. 저기는 묘한 조합이지만.

 

묘한 조합? ……아.

 

시선 끝에는 카운터에 턱을 괴는 오웬과 그에게 말을 거는 카인의 모습이 있었다.

 

카인: 너, 오웬이라고 하는구나. 한 잔하자고.

 

오웬: 잠깐……. 멋대로 옆에 앉지 마.

 

카인: 아아, 미안해. 안 되나……?

 

오웬: ……지금 얼굴, 보기 흉하고 재밌었으니까 특별히 용서해줄게.

 

카인: 에에……. 뭐, 됐어. 그건 그렇고 지금의 너는 정말 나와 같은 오드아이구나. 설마 눈이 똑같아진 상태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어.

 

오웬: 진짜, 카가미 에이코가 된 탓에 최악이야. 눈동자 색이 변하다니.

 

카인: 아아, 그 부작용이라는 녀석인가. 인격이나 육체가 조금 변화한다는 거. 

 

카인: ……저기, 오웬.

 

오웬: 뭐.

 

카인: 카가미 에이코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혹시 너. 나의 오드아이를 동경하고 있었다던가……?

 

카인: 아파! 왜 차는 거야!

 

오웬: 네가 어이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내가 너를 동경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카인: 그렇게 화내지 마. 하지만 너, 그때 가만히 내 눈을 보고 있었으니까…….

 

발을 동동 구르며 쏟아지는 카인의 변명에 오웬은 불복하는 표정으로 침묵한다.

 

오웬: ……젠장. 왜 이 기억은 남아있냐고.

 

카인: 어? 뭐라고?

 

오웬: 아무것도 아니야. 죽기 직전 마지막에 신기한 걸 봤네, 이런 생각만 했을 뿐이야.

 

(저 둘,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다고나 할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을 비롯하여 그곳에는 조직을 초월한 교류가 펼쳐져 있었다.

 

리케: ……맛있다! 이건 뭐죠?

 

미스라: 어린 양의 소테요. 다른 패밀리의 술집에 초대받았다면 간단한 선물 하나라도 가져가라고 네로가 말했거든요. 뭐, 메뉴를 고른 건 저니까요. 제 공이에요.

 

리케: 그렇군요……? 네로라는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요리를 잘하시네요. 먹는 손이 멈추질 않아요!

 

아서: 아아, 리케. 입에 소스가 묻었어. 자, 가만히 있어줘.

 

리케: 와아…… 고마워요, 아서……! 

 

리케: …….

 

미스라: 뭔가요. 나랑 아서를 빤히 쳐다보고.

 

리케: 둘 다 나이프와 포크를 잘 쓰시네요. 저는 그렇게 깨끗하게 못 써서요. 입 주위에 소스도 묻히…….

 

아서 / 미스라: …….

 

미스라: 흐응, 그러면 제가 알려줄 수도 있어요. 나이프와 포크의 사용법.

 

아서: 나도. 리케가 알고 싶다면.

 

리케: ……! 정말인가요? 꼭 부탁드려요!

 

……앞으로 폴먼트 타운은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까지 서로 대립하며 다투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렇게 같은 카운터에서 웃는 얼굴로 수다를 떨고 있으니까요. 이건 대단한 일이에요.

 

히스클리프: 네. 정말로……. 저도 설마 그 돈 스노우와 잔을 나눌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스노우: 호호, 그건 이쪽의 대사구먼. 이 내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흥정을 시도한 희귀한 젊은이여. 너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영광으로 생각하네.

 

두 사람은 멋쩍은 듯 서로 웃었고, 동시에 손에 쥔 잔을 부딪혔다.

 

샤일록: 아키라. 잔이 비어있군요. 이쪽으로 오셔서 주문해 주세요.

 

샤일록! 고마워요. 지금 갈게요.

 

샤일록은 완전히 술집 주인다운 모습으로, 형형색색의 술병을 등에 업고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샤일록: 자, 주문은?

 

그렇네요……. 모처럼이니, 가게 주인님의 추천으로!

 

샤일록: 후후, 알겠습니다. 실력을 발휘한 한 잔을 만들어 드리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카운터 위에서 샤일록의 손에 셰이커와 술병이 나란히 섰다. 은색 셰이커에 던져지는 것은 오렌지, 레몬, 파인 주스, 마지막으로 얼음이 소리를 냈다. 샤일록은 가볍게 셰이커를 흔들고 카운터 위 유리잔에 칵테일을 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게 주인이 추천해 주는 한 잔의 완성이다.

 

(마치 마법 같아. 신기하고, 안심되는 일이 일어나는, 기적 같은…….)

 

샤일록: 자, 오래 기다리셨죠.

 

맛있을 것 같아 …….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잔을 채우는 부드러운 옐로우. 적당한 산미와 프루티 향. 최고의 한 잔을 맛보고 있는데, 카운터 너머 샤일록이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샤일록: 아키라. 무르의 거처에서 잠들어 있던 저를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에요. 캡슐 안에 있던 또 다른 샤일록을 말씀하시는 거죠?

 

샤일록: 네. 이건 어젯밤, 훌쩍 제 앞에 나타난 무르에게서 들은 것이지만…… ……연구의 결과, 원래의 제가 의식을 죄찾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지만 나왔다고 합니다.

 

에!? 그건, 괜찮은 건가요? 그…… 여러 가지로…….

 

샤일록: 후후, 걱정을 끼쳐버렸군요. 당신과 만나기 전의 저라면 당황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 세상에 샤일록이 몇 명이 있다고 해도, 저는 저니까.

 

그런, 가요. ……그렇죠.

 

(맞아. 샤일록은 이제 괜찮아.)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샤일록은 가볍게 몸을 내밀며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샤일록: 게다가, 당신에게 있어서 샤일록은 저잖아요?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밀려난 윙크. 내 심장은 재미있을 정도로 뛰어올렸다.

 

네, 네……! 물론이죠……!

 

리케: 아키라! 샤일록!

 

등 뒤에서 날아온 활기찬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다.

 

리케, 무슨 일인가요?

 

리케: 들어보세요. 이제 여기로 미틸도 와준대요!

 

미틸?

 

리케: 네! 제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창 밖에서 항상 말을 걸어주었던 친구요.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고 나서 계속 재회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실은 판테라 패밀리의 일원이었대요!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했더니 아서가 알아차리고 방금 전 연락해 줬어요.

 

리케는 쏟아지는 미소로 말하고 샤일록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본다. 리케는 아직 자신이 카가미 에이코라는 것을 모른다. 아직 어린 리케에게 업어주기엔 너무 가혹하다며 샤일록이 덮어씌운 것이다. 언젠가 리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그때까지.

 

샤일록: ……리케. 당신은 미틸과 왜, 언제 헤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만약 자신의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동안의 일이 알고 싶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저에게 물어보세요. 그때는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 드릴 테니까요.

 

리케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샤일록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윽고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리케: 네, 알겠어요. ……그래도 미틸은 지금의 저를 만난 것을 기뻐해 주었어요. 그런 제가, 저는 좋아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샤일록: ……그렇군요. 그렇다면 안심이에요.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 웃었다. 샤일록의 배려에, 자신의 정체에, 어쩌면 리케도 눈치채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의 미소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샤일록: 검은 실크 모자의 남자는 루나 피에나를 비롯해 판테라와 벤티스카, 세 패밀리가 총력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 이 포위망은 상당합니다. 꼬리를 잡는 것도 시간 문제예요.

 

다행이다……. 그렇다면 수수께끼 투성이었던 이 거리의 소동도 무사히 종결될 것 같네요. 

 

샤일록: 네. 남겨진 수수께끼는…… 아키라는 누구인지, 만이 되는군요.

 

아하하…… 그렇네요. 그건 결국 알지 못했어요.


15화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건, 나도 카가미 에이코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한 모금을 다 마신다. 빈 칵테일 잔과 그 윤기 너머로 보이는 샤일록. 나는 희미한 위하감을 느꼈다.

 

(어라……? 나, 알고 있어. 이 경치를. 붕배의 의식 뙈 봤으니까 당연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전부터…….

 

나는 잔에 닿은 손가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 …….)

 

순간, 내 손 끝은 연분홍색 꽃잎으로 모습을 바꿔 스르르 무너져 간다.

 

아키라……!

 

샤일록: 설마…… 당신도 카가미 에이코……!? ……빨리 키르슈 페르슈를……!

 

두 사람의 비명소리에 모두가 황급히 달려온다.

 

스노우: 그대, 손가락이……! 빨리 멈추지 않으면!

 

카인: 안돼. 손으로 눌러도 무너져 버려……!

 

히스클리프: 그런. 아키라는, 아직 폭주 단계도 아니었는데…….

 

리케: 기다려 주세요! 사라져 버리는 건 싫어요. 모처럼 동료가 되었는데……!

 

카인과 리케가 나의 일부였을 꽃조각을 열심히 손바닥에 모아준다. 그 필사적인 마음에 내 가슴은 서서히 따뜻해진다. 동시에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모두와의 이별은 슬프고 외롭다. 그런데 이상하게 놀라거나 초조한 마음은 없었으니까.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여러분.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미스라: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이제 손바닥까지 없어졌는데요.

 

오웬: 너,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 허세 부리는거 아니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부드러운 미소를 돌려주었다.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나는 눈을 내리깔고 내 몸에서 쏟아지는 꽃잎을 본다.

 

(이 연분홍색 꽃잎은 낙월화가 아니야. 나는 이 꽃을 알고 있어. 이 꽃이 흘러내릴 때마다 기억이, 추억이 돌아와.)

 

샤일록: 아키라……! 키르슈 페르슈예요.

 

이름을 불려 고개를 들자 샤일록이 잔을 들고 달려온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잔을 받기 위한 손이 없었다. 샤일록은 아픈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내 턱에 손을 얹는다.

 

샤일록: 부탁이에요, 아키라. 제발 마셔주세요.

 

샤일록…….

 

그의 목소리에는 기도하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눈앞에는 아름다운 액체를 가득 채운 잔이 있다. 나는 애타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키르슈 페르슈라면 전에도 마셨어요. 괜찮아요. 저는 카가미 에이코가 아니에요.

 

샤일록: ……그렇다면 당신은…….

 

저는 아키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부서져가는 세계로 소환된 현자예요.

 

샤일록: 현자? 그건, 도대체…….

 

저를 나타내는 말이에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키라' 가, 세상을 구하는 현자 '아키라' 가 됐다는…….

 

샤일록: 아키라…….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물처럼 내 몸에서 연분홍빛 꽃송이가 뚝뚝 흘러내린다.

 

샤일록: ……이별은 유감이지만, 분명 어딘가에 현자로서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있겠지요. 그래서 말리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잠시 동안의 이별의 한 잔을.

 

샤일록이 내 입가에 다정하게 키르슈 페르슈를 내민다.

 

……고마워요, 샤일록.

 

나는 연분홍색의…… 벚꽃잎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 입술에 잔의 감촉이 닿았다.

 

(……맞아, 생각났어. 상큼한 맛과 부드러운 꽃의 향기. 이 한 잔을, 나는 알고 있어.)

 

(세상을 구하는, 현자인 나는…….)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술집의 경치는 흰 얇은 천을 씌운 것처럼 흐릿했다. 보이지않게 되어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에게 나는 속삭였다.

 

안녕. 낙월화 거리의 모두들…….

 

 

 

 

 

 

 

 

 

 

 

 

 

샤일록: ……님. 아키라 님.

 

으음…… 한 입만 더.

 

샤일록: 이런, 무엇을 원하시나요? 제가 입까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스노우: 그럴 때는 아앙일세. 히스클리프, 그대의 차례다.

 

히스클리프: 제, 제가 하는 건가요? 으, 으음……. 아앙…….

 

에…… 에에!?

 

의외의 방향으로 굴러가는 대화에, 나의 의식은 눈을 떴다.

 

여긴…… 마법관의, 내 방?

 

스노우: 호호호, 몰래카메라 대성공이군.

 

어른스러운 모습의 스노우가 웃고 그 옆에서는 샤일록과 히스클리프가 조금은 안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주위를 보면 내 침대 주위에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샤일록과 스노우, 히스클리프 뿐만이 아니라 카인, 리케, 아서, 심지어 미스라와 오웬까지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샤일록: 어젯밤에 제 바에 오신 건 기억하시나요?

 

조금은…….

 

샤일록: 그때, 숙면에 효과가 있는 허브를 사용한 무알코올 칵테일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잠을 너무 자신 건지 다음 날 점심을 넘기고도 못 일어나신 것에 걱정이 되어서.

 

히스클리프: 마법관에 있던 모두가 병문안을 온 참이었어요.

 

스노우: 솔직하지 못한 미스라 쨩과 오웬 쨩은 질질 끌어서……. 엣헴. 꼬셔서 데리고 왔네.

 

새, 생각났다……! 걱정을 끼치게 해서 죄송해요.

 

미스라: 하아…… 쓸데없는 짓을. 역시 그냥 자고 있던 것 뿐이었잖아요.

 

카인: 만약의 일이라는게 생기면 곤란하잖아. 아무 일도 일어난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오웬: 죽은 것처럼 얼빠진 얼굴이었는데. 벌써 일어나 버리다니 재미없어.

 

하하……. 별로 재미있게 해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내가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리케가 흥미롭다는 듯이 물어왔다.

 

리케: 그건 그렇고, 정말 잘 듣는 칵테일이었네요. 맛은 어땠나요?

 

너무 맛있었어요. 살짝 달콤하고 상쾌한 맛으로 ……. 부드러운 꽃향기가 나고.

 

리케: 꽃향기 칵테일! 멋지네요. 나도 먹어보고 싶다.

 

아서: 칵테일이 효과가 있던 것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잠들어버린 것은 분명 피로가 쌓여 있던 것일 겁니다. 최근에 들어온 임무는 쉬시는 것이 어떤가요?

 

스노우: 아아, 나중에 준비를 해두겠네.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확실히 피곤했는지…… 아주 오랜 꿈을 꿨어요.

 

샤일록: 그런 것 같군요. '한입 더' 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꿈이었나요?

 

그건, 마침 샤일록의 술집에서 한 잔 받고 있던 참이었어요.

 

스노우: 호오. 샤일록은 꿈 속에서도 술집 주인을 하고 있었나.

 

아, 아뇨. 술집 주인은 부업이라고나 할까……. 본업은 좀 더 와일드한 느낌으로.

 

히스클리프: 샤일록이 와일드……?

 

사실 히스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스노우도, 다른 모두도…….

 

히스클리프: 네!? 저, 저도……?

 

스노우: 싫다, 현자 쨩! 귀엽고 상냥한 나를 사실은 그렇게 보고 있었어?

 

카인: 와일드한 샤일록들인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 의외로 멋있는데?

 

미스라: 관심 없어요. 꿈 속 이야기 따위.

 

샤일록은 모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리맡에서 잔을 준비하고 있다. 유릭 맞닿는 소리가 왠지 그리웠다.

 

샤일록: 후후. 현자님은 와일드한 저와 지금의 저, 어느 쪽을 좋아하시나요?

 

그건…… 고를 수 없어요. 와일드하던, 와일드하지 않던…… 샤일록은 샤일록. 제가 좋아하는 샤일록이에요.

 

진심 어린 말을 건네자 샤일록은 미소지었다.

 

샤일록: 이런이런. 기쁜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기분 좋게 깨어날 수 있는 이쪽을 드셔주세요.

 

우아한 예와 함께 은쟁반에 올려진 유리잔이 눈앞에 나타났다. 따뜻한 노란색이 바닥 쪽으로, 꽃피는 핑크색이 그 위로. 유리잔 안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그라데이션.

 

(그 음료와 많이 닮았어……. 꿈의 끝에 마신, 그 칵테일에.)

 

샤일록: 태양 아래에서 즐기는 용도로, 숙면 허브는 뺐습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잔을 받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갖다 댔더니, 손등에 분홍과 노랑 빛이 춤을 췄다. 마치 꽃잎 같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잔을 기울였다. 코를 간지럽히는 건 상큼하고 달콤한 향. 분명 저 음료와 비슷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벛꽃의 그것과, 아주 흡사한 그리운 꽃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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