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히스클리프: 저희 패밀리에 당신의 옛 지인이 있어서 말이죠. 하지만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제가 보고받은 것은, 당신이 어렸을 때 쌍둥이 형제를 잃었다는 것 뿐.
스노우: ……오즈인가…….
히스클리프: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야기를 파고들어서. 거래를 검토하는 이상, 너무 숨기는 것도 불안해서요.
스노우: 됐네, 됐어. 이 정도 기어오르는 것은 우리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지. 게다가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네. 젊은이를 그렇게까지 불안하게 하다니, 미안한 짓을 했군. ……내가 키르슈 페르슈를 원하는 이유는, 그 정체에 흥미가 있기 때일세. 미지의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이상한 짓이 아니지 않은가.
히스클리프: ……그렇죠.
스노우: 그러면 슬슬 끝내도록 하지. 마음이 정해지면 우리 아지트로 오는 것이 좋네. ……단, 결정은 가능한 빨리 해주길 바라지. 너무 늦으면 허브가 말라버리니까.
카인: 보스. 늦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스노우: 카인? 무슨 일인가, 그런 곳에서.
카인: ……아. 어서 오세요, 보스. 마중 나온 거예요. 밤인데 당신이 늦게 오니까.
스노우: 화이트는…….
카인: 오늘은 수면제가 잘 들어가서 귀여운 얼굴로 자고 있어.
스노우: 그렇군……. 하지만 다음부터는 마중 같은 건 필요 없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카인: 폴먼트 타운 최고의 벤티스카 패밀리의 돈 스노우잖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 날 알게 되었어. 당신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여린 구석이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그런가, 당신을 뭔가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스노우: 정말이지. 애송이 주제에 건방지게…….
카인: 하하. 그랬나?
스노우: 물론이지. 경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카인: 겍, 죄송합니다…….
스노우: 뭐, 됐네. 그런 그대이기에 내가 없어도 안심하고 화이트를 맡길 수 있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카인이여.
카인: 네, 보스. 당신에게는 글로리아 자경단을 구해준 은혜가 있습니다. 화이트의 비밀을 공유해주신 그날부터, 저의 각오는 정해져 있어요.
스노우: 호호, 믿음직스럽군. 그대는 지옥까지 데리고 다니게 될 것 같네.
스노우: …….
스노우: ……화이트.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키르슈 페르슈를 손에 넣고 말겠네.
스노우: 그대를 구하기 위해.
봉배의 의식 다음 날. 샤일록과 아지트에 묵었던 내가 눈을 뜬 것은 놀랍게도 이른 오후였다.
죄송해요, 샤일록! 늦잠을 자버려서…….
샤일록: 후후, 상관없어요. 저도 방금 일어났으니까요. 자, 브런치 간편식입니다.
샤일록은 웃으며 품위있는 플레이트를 내줬다. 그리고 선반이나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옆에 걸터앉았다. 그가 테이블에 늘어놓은 것은 김을 내뿜는 와인병과 여러 가지 모양의 잎사귀와 작은 나무 열매였다.
샤일록은 뭘 하고 있나요?
샤일록: 허브 와인을 만들려고요. 제 취미거든요.
샤일록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잎과 나무 열매, 장미 꽃봉오리를 잘라 와인병에 넣었다. 주변에 풍기는 매끄럽고 화려한 향기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왠지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샤일록: ……무슨 일인가요?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시고.
왠지 그리운 느낌이 들어서요.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랄까…….
내가 우물거리며 말하자 샤일록은 갑자기 손을 멈췄다. 그 역시 무언가를 떠올리듯 중얼거린다.
샤일록: 그리운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 제 모습을 보고요?
아하하……. 기억이 없으면서 그립다니, 이상하죠.
샤일록: 이상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에 ……?
샤일록: 정확히는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옛날에 다쳤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계시나요?
네. 다친 전후의 기억이 없다는 이야기였죠.
샤일록: 맞아요……. 아키라와는 달리, 저의 사라진 기억은 일부. 하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내 기억은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나는 진짜 샤일록인가하고 아직 발밑이 흔들려 버려요.
하지만…… 샤일록에게는 동료가 있잖아요. 샤일록을 아는, 이 동네 사람이나 가족이.
샤일록: 네. 그들 대부분은 이전과 다름없이 대해줍니다. ……하지만, 보스인 무르는 바뀌었죠.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어딘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곤 해요.
그렇게 말하는 샤일록의 옆모습은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눈동자는 텅 빈 유리구슬처럼, 와인 위에서 흔들리는 장미를 비추고 있다.
아쉬운 듯한 표정이라니, 왜…….
샤일록: 뭐, 그렇다고는 해도 교제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정도의 희미한 반응이었지만요. 하지만, 그렇네요 ……. 머리가 손상되어 인격이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고. 저도 뭔가 바뀌어 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저는 저고, 보스 빼고는 신경 쓰는 기척도 없으니까요.
샤일록: 하지만 우연한 순간에 기억의 누락을 떠올리고 맙니다. 그건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죠. 그래서 당신이 웃는 얼굴로 기억이 없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하하……. 제가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걸까요.
샤일록: 그게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저와 많이 닮으신 분. 그리고 전혀 닮지 않은 분. 당신은 신기하고, 어딘가 기분이 좋아요.
샤일록이 나를 보고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가슴 속에 있는 잔이 가득 차버린다. 잔에서 넘친 것은 미소가 되어 흘러넘친다.
기분이 좋다니…… 고마워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웃고 있을 수 있는 건, 샤일록 덕분이에요.
샤일록: 제가요? 제가 당신을 도왔으니까?
네. 게다가 기억이 없는 저를 받아들여 알고 싶다고 말해주셨잖아요.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의 과거를 몰라도……. 당신이 지금의 저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기억이 없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샤일록: 아키라…….
아……. 조금 그랬으려나요……? 죄송해요. 샤일록이 상대라면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샤일록: 천만에요. 영광입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그때, 문 저편에서 발소리가 울려퍼진다.
리케: 안녕하세요, 샤일록. 아키라도.
안녕하세요 리케.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샤일록: 당신이 연일 얼굴을 내미는 것은 드문 일이네요. 무슨 일이죠?
리케: 오늘은 보스의 특별 지령을 건네러 왔어요.
샤일록: 무르에게서?
리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와 샤일록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리케: '키르슈 페르슈를 노리는 자가 있다. 뺏기지 않도록.'
샤일록 / 아키라: …….
그건, 역시 벤티스카 패밀리를 말하는 걸까요……?
리케: 네. 아마도요.
샤일록: 방임주의자 무르가 직접 참견을 하다니…….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태가 더 심각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샤일록은 얇은 눈꺼풀을 감고 잠시 생각한 뒤, 척척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샤일록: 일단 키르슈 페르슈는 이대로 아지트에 보관하죠. 제가 계속 지키겠습니다. 아키라는 죄송하지만 이 건이 진정될 때까지 어딘가에 대피해 주세요. 리케. 아키라를 당신의 거처에 맡겨도 될까요?
리케: 물론이에요.
고마워요, 리케……! 신세 지겠습니다.
샤일록: 그러면 바로 움직이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지시를 내리는 샤일록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 사람을 따르고 있으면 괜찮아. 그런 안정감과 함께 마음의 끝이 불안에 갉아져 간다.
저기, 샤일록.
샤일록: 왜 그러나요, 아키라.
제가 할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부디 조심하기를.
그동안 나를 지켜주던 그의 모습이 되살아나 그만 그런 말을 건네고 말았다. 샤일록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샤일록: 감사합니다. 당신도 부디 조심하세요.
아지트를 나온 나와 리케는 주위를 경계하며 리케의 거처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불필요한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도록 인적이 드문 뒷길로 나아간다.
……! 깜짝이야. 그냥 새구나…….
리케: 죄송해요. 이 길은 조금 관리가 잘 안 돼서.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너무 흠칫거려서 죄송해요.
리케는 아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멋있네요…….
7화
리케: 후후, 저는 날마다 샤일록에게 훈련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 덕분에 항상 비상사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죠. 만일의 경우가 생겨도, 제가 당신을 지킬게요. 아키라는 안심하고 저를 따라와주세요.
가슴을 펴는 리케는 왠지 빛나 보였다. 나이 따위는 문제가 아니야. 그는 당당하게 이 거리에 서있다.
리케는 대단하네요. 저는 이 거리에 온 후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리케: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요. 저도 옛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걸요. 창밖을 보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 위에서 매일 꿈만 꾸고.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만큼 지금이 매우 즐거워요. 무술 연습도, 암호 공부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지금이.
암호 공부?
리케는 자랑스럽게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 펼쳐 보았다.
리케: 아까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보스로부터의 특별 지령은 보통 사람은 읽을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와아, 정말이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리케: 보스가 저에게만 알려준 특별한 글자예요. 그런 암호에 의해서 쓰여진 편지가, 전서구로 저의 거처에 실려 오죠. 정말 꿈만 같아요. 보통 글씨도 거의 보지 못하던 제가, 이런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되다니.
리케는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편지를 끌어안았다.
리케: 그러니까 아키라도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미래에는 분명, 많은 '할 수 있다' 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리케…….
리케: ……아, 여기서부터는 조금 큰 길로 나오네요. 아키라, 저에게서 떠나지 마시…….
스노우: 이런.
리케: ……!
리케의 안색이 빠르게 변했다. 모퉁이에서 부딪힐 뻔한 청년은 다름 아닌…….
(돈 스노우……!)
샤일록: (둘 다, 무사히 도착했을까요. ……리케가 있으니 불필요한 걱정이겠지만.)
샤일록: 저는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죠.
샤일록: ……!
???: ……죄송합니다. 열려 있나요?
샤일록: ……클로즈의 간판이 걸려 있을 텐데요. 보시다시피 여기는 술집입니다. 태양이 땅에 내리쬐려고 할 무렵, 황혼 때 여는 것이 멋이죠.
???: 이거 실례했군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가게의 구조였기 때문에 그만 묻고 말았습니다. 당신 같은 멋진 사람에게 멋이 없다고 생각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한 잔만이라고 해도 어려울까요?
샤일록: (키르슈 페르슈를 노리는 자객인지, 평범한 손님인지……. 어쨌든, 너무 완고해져도 의심스럽겠죠.)
샤일록: ……어쩔 수 없군요. 딱 한 잔이라면.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멋진 가게다.
히스클리프: ……!
샤일록: 무슨 일인가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히스클리프: ……당신은……. 아니야. 그런, 설마…….
샤일록: ……? 아무튼 안으로 들어오시길. 한 잔하고 가시는 거죠?
히스클리프: 아, 아아……. 그랬었죠. 계속해서 멋없는 짓을…….
샤일록: (이상한 태도군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샤일록: 주문은?
히스클리프: ……그러면, 키르슈 페르슈로.
샤일록: ……후후. 그 주문에는 응할 수 없네요!
히스클리프: 큭……. 그 밧줄……. 나를 지켜줬을 때와 같아……. ……역시, 당신은…….
샤일록: 스틱으로 내칠 줄이야. 꽤나 손이 많이 갈 것 같군요. 하지만, 저도 물러설 수는…….
히스클리프: 윽, 무기를 내려주세요!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야!
샤일록: ……무슨 말씀이시죠?
히스클리프: 저는 벤티스카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판테라 패밀리의 히스클리프 블랑셰.
샤일록: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안 되는 사람이다. 혼자서 벤티스카에 항거하다니, 무리하는 짓이나 하고……. 자, 손을. 나머지는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샤일록: …….
히스클리프: 과거, 아이였던 저에게 당신이 말해줬던 것입니다.
리케 / 아키라: …….
스노우: 딱 좋군. 여기서 부딪힌 것도 무슨 인연이니. 그대들, 키르슈 페르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나?
(……!)
리케: 뭔가요 그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
스노우: 아쉬울 정도로 즉답이구먼. 그대들 같은 사랑스러운 자에게 차갑게 대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스노우는 금빛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시장에서 식재료를 음미하듯 우리를 바라본다.
…….
(뭐, 뭐지? 지금 나와 눈이 마주쳐서…….)
스노우: 호호호. 그대, 긴장하고 있구나. 동공이 약간 열려있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윽.
스노우가 내게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리케: 아키라에게 손대지 마!
리케의 소매에서 빛의 속도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샤일록이 애용하던 무기와 같은, 밧줄이었다.
스노우: …….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노우를 향해 크게 휘두른다. 그런가 하면 오금과 떨림이 달릴 정도의 요염하고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스노우: 이런. 남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예의가 부족한 아이에게는 훈육이 필요하겠군.
(스노우. 칼자루에 손을 걸고 있어……? 설마, 검을 뽑을 생각인가!?)
리케: ……제가 상대를 하겠습니다. 그 틈에 아키라는 도망가세요.
리케가 내 주머니에 종이 조각을 집어넣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으로 쓴 지도 같다.
리케: 거기서 기다려 주세요. 꼭 쫓아갈 테니까요.
하지만…….
'리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라는 말은 끝내 삼켰다. 아까 순간적으로 알았다. 여기에 내가 있으면 발목만 잡을 것이라는 걸.
리케. 부디 무사하세요……!
리케: 하앗……!
대답 대신 리케는 밧줄을 움직였다.
스노우: 쳇…….
스노우가 검을 뽑아 밧줄을 튕긴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등에 업고 내가 원래 왔던 길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카인: 이런, 도망치면 곤란한데. 아직 저승에는 가고 싶지 않잖아? 얌전히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게 몸을 위한 거야.
흐르는 듯한 붉은 장발을 한데 묶은 청년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이런 식이면 되돌아갈 수밖에 없어 …….)
그러나 돌아봐도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미스라: …….
등 뒤에는 또 한 사람, 불타는 듯한 불은 머리의 남자가 버티고 서있었으니까.
그런…….
카인: ……너무 창백한데. 무기는? 이 세상 사람이라면, 피를 흘릴 각오로 저항해야지.
죄, 죄송해요. 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카인: ! 너, 혹시 일반인인가……?
(어떡하지. 일단 루나피에나의 일원이긴 하지만, 리케나 샤일록처럼 싸울 수도 없고…….)
망설이면서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온도가 없던 청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카인: 아아…… 그런가. 그런 거였구나. 미안해. 일반인을 상대로 굉장한 짓을 해버려서.
카인이라 불린 청년은 조금 전까지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다정한 표정이 됐다. 긴 앞머리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들여다보인다. 다른 한쪽은 빛을 받으면 금빛으로도 보이는 노란색 눈동자다.
(이 사람. 오웬과 같은…… 오드아이다.)
카인: 처음부터 설명하게 해 줘. 나는 카인. 너는?
아 …… 처음 뵙겠습니다. 아키라예요.
어쩐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나는 내 이름을 댔다.
……이거, 저도 이름을 대야 하는 흐름인가요? 음……. 미스라입니다. 네.
카인: 우리는 벤티스카 패밀리. 저쪽이 우리의 보스, 돈 스노우다.
손가락에 걸린 것은 리케와 싸우는 스노우였다.
스노우: 그대, 나를 이렇게 상대하다니. 평범한 어린애가 아니군?
리케: 뛰어난 밧줄 사용자가 선생님이니까요. 만만하게 본다면 후회하게 될 거예요!
스노우: 호호호! 재미있네. 후회하게 해보는게 좋다.
스노우는 번쩍 눈동자를 빛내며 밧줄 사이로 뛰어들었다. 고속으로 덤벼드는 리케의 밧줄. 그걸 피해서 튕기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칼의 사정거리에 리케를 잡는다.
리케: ……!
뒤로 튕겨 나가듯 아슬아슬하게 참격을 피한다. 다음 순간, 그를 대신해 그 칼날에 베인 금빛 머리카락이 돌담에 날아 떨어졌다. 나는 조마조마하게 그들의 싸움을 시선으로 따라가며 말한다.
저,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들의 보스를 막을 수는 없을까요? 이대로라면 리케가…….
카인: 보스도 필사적이니까. 멈추고 싶다면 키르슈 페르슈가 필요해. 너, 뭔가 알고 있지? 저 아이를 돕고 싶다면 알려줘. 어떤 사소한 정보라도 좋아. 아키라, 너를 나쁘게 대하지 않을게.
내게 묻는 카인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진지하고 상냥했다. …….하지만, 장소를 말한다면 아지트에 남아 있는 샤일록은 분명히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 꽤 즐거워 보이네. 나도 끼워줘.
8화
오웬……!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루나피에나 패밀리의 오웬이었다. 그는 긴 자루 끝에 날이 달린 무기를 한 손에 들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카인: 뭐야? 저 은발의 남자……. 큰 칼잡이?
미스라: 아, 카인. 이 사람이에요. 여기저기서 악평을 뿌리고 있는 당신과 같은 오드아이.
카인: 에?
카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웬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 얼굴은 금세 놀라는 빛으로 물들었다.
카인: 너, 살아있었구나!
오웬: …….
미스라: 어라? 아는 사람이었나요?
아는 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옛날에 만난 적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큰 부상을 입고 있었으니까 암의사에게 데리고 갈까 했더니 거절당했거든. 하지만 너, 분명히 그때는 두 눈이 다 붉었는데…….
오웬: ……나는 너 따위 몰라.
그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오웬은 무기…… 큰 칼을 들고 카인에게 칼을 겨누었다.
카인: 이런.
오웬: 왜 막았어? 놀이는 길게 하는 편이 좋아서?
카인: 죽기 싫어서야. 너도 그렇지?
(대단하다……. 싸우면서 대화하고 있어.)
오웬은 자신의 키만한 큰 칼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 마치 참격과 춤을 추는 것처럼. 카인은 차례차례로 반복되는 그것을 애도로 자유자재로 반격하고 있다. 마치 그 칼날이 자신의 손발인 것처럼.
미스라: …….
둘의 싸움에 자극을 받았는지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근질근질한 모습으로 미스라가 칼에 손을 댄다.
오웬: 재빠르네. 아픈 죽음이 될 텐데.
카인: ……나는 서로 죽이고 싶은게 아니야. 키르슈 페르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오웬: 하하……. 그렇게 갖고 싶어?
카인: 알고 있나?
오웬: 알지. 숨길 것도 아니니까 알려줄게.
오웬: 그건 리큐어야. 우리 루나피에나가 한 달에 한 번, 의식에 쓰는 술의 이름이라고.
카인: 술……!? 키르슈 페르슈가!?
미스라: 약 아니었나요?
스노우: …….
카인과 미스라가 놀란 목소리와 함께 오웬을 본다. 리케와 싸우던 스노우의 움직임도 잠시 멈춘 듯했다.
(오, 오웬. 사실대로 말해버렸어……!)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발쪽에서 뭔가 툭하고 닿았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를 내뿜었다.
우왓! 뭐, 뭐야……!?
카인과 미스라가 등을 맞대고 주위를 경계한다. 스노우가 꺼림칙하게 내뱉었다.
스노우: 연옥인가……. 꺼림칙하군.
모두가 경계하는 가운데, 연기 속에서 누군가에게 손을 잡힌다.
리케: 아키라!
리케……!
가까스로 보여썬 새잎빛 눈동자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리케: 시야가 가려진 지금이에요. 철수하죠!
알겠어요. 하지만 오웬은?
리케: 그라면 괜찮아요. 억울하지만 저보다 훨씬 강하고요. 게다가 그는 조력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자, 이쪽으로 …….
그리고 연기 속으로 눈을 비비며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 리케. 아키라.
리케: ……!
낯선 목소리에 이름이 불린 직후 누군가에게 팔이 잡혀 끌려간다.
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에서 연기는 사라지고 나와 리케는 골목에 있었다. 눈앞에는 낯선 금발의 남자가 서있었다.
히스클리프: 갑자기 미안해. 나는 판테라 패밀리의 히스클리프. 너희들의 편이야.
히스클리프라고 자칭하는 그의 안내를 받은 것은, 화려하고 호화로운 구조의 건물이었다.
샤일록: 리케! 아키라!
리케: 샤일록!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샤일록: 당신들이야말로요.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다…….
샤일록이 팔을 벌리고 나와 리케를 끌어안는다. 우리를 감싸는 샤일록의 온기는 어디까지나 다정했다.
히스클리프: …….
안심하던 차에 우리를 지켜보는 청년의 존재를 떠올렸다.
리케: 당신은…….
히스클리프: 그렇게 경계하지 말고…… 라고 해도, 어렵겠지. 샤일록 씨도 너희들도 갑자기 데리고 나와서 미안해. 샤일록 씨는 신사적인 대화의 결과로 여기에 오게 되었어.
샤일록: 판테라 패밀리는 무리하게 키르슈 페르슈를 빼앗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키는 데에도 협조해 주겠다고. 이야기를 삼키고 키르슈 페르슈와 함께 이곳으로 피난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리케: 키르슈 페르슈를…….
샤일록: 즉, 밀고 당기기죠. 리케. 벤티스카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상당히 격렬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희만으로는 이기지 못해요. 그렇다면 협력자를 구하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히스클리프: 그런 거야. 알아주지 않을래?
과연……. 확실히, 히스클리프는 신사적이고 그다지 난폭한 인상도 없을지도…….
리케: 그렇네요……. 샤일록이 신용하고 있는 분이고, 협조해 주는 것은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거죠? 판테라와 우리 루나피에나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히스클리프: ……그렇지. 하지만, 나에게 있어 샤일록 씨는 소중한 사람이야. 그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니까.
샤일록이, 당신의……?
샤일록: …….
리케: ……그런 건가요?
리케의 물음에 샤일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푸른 눈동자를 내리깐 히스클리프가 소중한 보물을 보여주듯 천천히, 잔잔하게 입을 열었다.
히스클리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나는 이 도시 태생이며, 어릴 적 큰 항쟁에 휩쓸렸지. 피와 초연의 냄새. 서로 호통치는 남자들의 목소리. 도망가야해, 라고 생각한 그때……. 그늘에서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 도와주려고 했었어.
히스클리프: 정말 바보였지. 싸울 힘도 없는데 막무가내로. 아기 고양이에게 손을 뻗는 순간 총소리가 들렸어.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었고……. 떨면서 눈을 뜬 그곳에…… 깊은 와인색의 눈동자가 있었어.
그건…….
나는 샤일록을 보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는 눈을 감고 있다. 하얀 이마에 희미한 고뇌를 배이며 히스클리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따뜻한 눈동자였지. 우연히 함께한 샤일록 씨의 부축을 받고, 나는 살아남은 거야.
히스클리프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감사와 사모가 들어있었다. 샤일록은 아직 눈을 감고 있다. 어째서일까. 내가 생각한 직후 히스클리프가 말을 이어간다.
히스클리프: 하지만…… 그때 나를 감싸는 바람에 샤일록 씨는 크게 다쳤어.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는 빈사의 중상으로 보였지만,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그를 앞에 두고 아이인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부짖을 뿐이었어.
…….
리케: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샤일록은 이렇게 살아있으니, 누군가 도우러 와준거죠?
리케는 이야기에 열중했다. 나도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히스클리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스클리프: 샤일록 씨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남자가 나타난 거야. 그는 샤일록 씨에게 달려가 말했지. '그는 머지않아 죽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라고. 나는 울면서 매달리며 필사적으로 소원을 늘어놓았어.
히스클리프: ……지금 생각하면 엉망진창이었네. 마치 죽은 사람을 살려내라는 듯이. 그 사람은 샤일록 씨를 데리고 떠나버렸지만.
히스클리프가 샤일록을 바라본다. 그 얼굴에는 소년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히스클리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다니.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준 것이군요.
그것은 흘러넘칠 정도로 진심이 담긴 목소리.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람과 재회할 수 있었던, 그의기쁨이 뼈저리게 전해진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빛에서 도망치듯 샤일록은 미안한 듯 눈길을 돌렸다.
샤일록: 죄송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 때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아서요.
(그러고보니……. 샤일록은 큰 부상으로 기억이 애매한 시기가 있다고 했었지. 그건 혹시 히스클리프를 도왔을 때의 일인가?)
히스클리프: 괜찮습니다. 제가 멋대로 감사할 뿐이니까요.
히스클리프: ……샤일록 씨. 제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어른의 표정으로 돌아와 웃자,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샤일록은 히스클리프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돌려 인사한다.
샤일록: ……아무래도 과거의 저는 훌륭한 행동을 한 것 같군요. 당신이 구원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9화
샤일록과 재회할 수 있어 안심했기 때문일까. 밤이 된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리케: 히스클리프. 이 테이블은 룰렛 테이블이죠?
히스클리프: 맞아. 카지노 게임의 경험은?
리케: 없어요. 하지만 관심은 있어요.
아서: 그러면 나와 내기 한 판 해볼까?
리케: 아싸!
샤일록 / 아키라: …….
나와 샤일록은 안쪽 소파에서 쉬면서 눈을 빛내는 리케를 지켜보고 있었다.
리케, 즐거워 보이네요. 히스클리프의 부하…… 아서도 상냥해 보이는 사람이고요.
샤일록: 그에게는 처음 접하는 세계일 테니까요. 당신도 카지노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었죠. 같이 놀다오는게 어떤가요? 원하시면 제가 상대해드려도 좋은데.
정말인가요? 모처럼이니까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전원: ……!
창 너머에서 성대하게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비명이 울려퍼진다. 실내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밖을 보았다. 달빛으로 희미하게 비춰진 거리에, 칼날의 반짝임이 흘끗 보였다.
리케: 항쟁인가요?
샤일록: 그 정도 인원으로는 보이지 않네요. 저건 대체…….
히스클리프: 벤티스카가 키르슈 페르슈의 거처를 알아낸 건가. 아니면, 그 폭한인가…….
아서: 상황을 보고 오겠습니다.
샤일록: 저도 가죠.
리케: 저도!
저도 갈게요……!
아서를 선두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깊은 밤 거리에 바람이 불고 꽃잎이 흩날린다. 어렴풋이 피의 냄새가 났다.
붉은 눈의 사나이: 아아아아아악!!
붉은 눈의 아이: 아아아아아 ……!
남자가 내리친 칼을,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단도로 받는다. 싸우고 있는 것은 두 사람 뿐이었다.
나, 남자와 아이가 싸움을……?
샤일록: 둘 다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군요…….
히스클리프: ……! 저건, 그 남자와 같은……!
붉은 눈의 아이: ……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아이는 검은 머리를 흩날리고 단도를 고쳐 맨다.
붉은 눈의 사나이: 아아아아아! 죽어라아아아아아아아!!
칼이 번쩍이고, 남자가 아이에게 달려든다. 샤일록과 히스클리프, 리케, 아서가 순간적으로 무기를 손에 쥔다. 하지만 시간에 맞출 수 없다.
(안돼……!)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을 가렸다. 그때…….
???: ……화이트!
어두운 시야 속에서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와 날카롭게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조심조심 고개를 들자 칼날에서 감싸듯 아이를 끌어안는 남성의 모습이 있었다.
돈 스노우……!
스노우 대신 칼날을 받아든 것은 카인과 미스라다. 그들은 경비견처럼 남자 앞을 가로막는다.
스노우: 카인. 미스라.
눈보라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스노우는 그 이름을 불렀다. 다른 말은 필요 없이, 그것은 명령이었다.
카인: 네……!
미스라: ……흥.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카인은 검을 휘두른다. 남자의 검은 하늘 높이 튀었다. 그것을 신호로 움직인 것은 미스라다. 그는 사냥감을 잡는 짐승처럼 한순간에 남자를 베어 쓰러뜨렸다.
붉은 눈의 아이: 아아아아아!! 이거 놔, 이거 놔아아아아아!!
스노우: ……괜찮네. 이제 괜찮아, 화이트. 그대는 살아 있네. 절대로, 더 이상 죽게 하지 않아…….
아이를 끌어안는 스노우의 표정은 마피아의 보스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매달리는 듯, 기도하는 듯, 인자한 표정으로……. 그런 그의 말을 거절하듯 아이는 거세게 몸을 뒤틀며 소리친다.
붉은 눈의 아이: 싫어……. 싫, 어……. ……죽고, 싶, 지 않아……! 으…… 아…… 아아아아아아!
리케: 아……!
스노우. 피가……!
깜짝 눈을 부릅뜻 내 앞에서 스노우의 어깨에 서서히 붉은 얼룩이 번져 간다. 거기에는 화이트라고 불린 아이가 꽂은 단도가 우뚝 서있었다.
붉은 눈의 아이: ……아…….
새빨갛게 빛난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며 칼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절규할 정도의 아픔이 엄습했을 텐데 스노우는 성모 같은 미소를 지으며 화이트의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스노우: ……괴로웠지. 이런 것 쯤, 그대의 괴로움에 비하면…….
카인: 보스……!
카인이 핏빛을 바꾸고 스노우에게 달려간다. 뒤따르던 미스라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돌아섰다.
미스라: 어라……?
덩달아 미스라의 시선을 쫓자, 거기에는 조금 전의 남자가 쓰러져 있었…… 을 터인데. 그의 윤곽은 아슬아슬하게 무너지기 시작해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리케: 사람이, 꽃잎으로 사라지고 있어……?
스르륵 바람이 불고 꽃잎이 눈앞을 흩날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남은 것은 연분홍 꽃잎 더미와 주인 잃은 옷 뿐.
샤일록: 꽃잎과 옷을 남기고 사람이 사라진다…….
아서: 이건, 마치…….
히스클리프: 폴먼트 타운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종 사건과 같아……. 수수께끼의 폭한의 말로가, 이것인가……?
그, 그러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눈의 아이: ……으, 아…….
스노우: ……착한 아이지. 화이트…….
스노우는 필사적으로 화이트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도 그곳에 온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도록.
(……이 아이도, 언젠가 저런 식으로…….)
침묵 속에서 시간이 지나간다. 1초. 1분. 낙월화의 꽃잎이 밤바람에 덧없이 흩날렸을 때, 샤일록이 입을 열었다.
샤일록: ……키르슈 페르슈.
에?
샤일록: 마시게 해볼까요. 그 화이트라는 소년에게.
……괜찮나요?
샤일록: 네. 제 판단에 따라 나눠드리는 겁니다. 빼앗긴 것은 아니니, 보스의 지령을 어긴 것은 아니겠죠.
카인 / 미스라: …….
스노우: 그러나 키르슈 페르슈는 약이 아니겠지. 그저 술이라고 그대의 동료에게 들었네.
샤일록: 그렇네요. 저희는 그런 생각으로 보관을 했지만요. 당신들도 어떤 근거가 있어서 화이트를 위해 키르슈 페르슈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스노우: …….
샤일록: 당신도 알고 있겠죠. 이대로라면 그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샤일록: 어차피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우선은 한 잔. 어떤가요?
스노우의 눈동자가 옅은 빛을 머금고 흔들린다. 돈 스노우로서 다른 사람에게 빚을 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냥 스노우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화이트를 돕고 싶다. 어금니를 깨물고 고개를 숙이는 그의 안에서 두 가지 생각이 서로 마주치는 것처럼 보였다.
붉은 눈의 아이: 아, 아, 아아아아아아!!
……!
스노우: ……화이트…….
다시 스노우의 팔 안에서 날뛰기 시작한 화이트의 부드러운 머리에 스노우가 얼굴을 파묻는다.
스노우: …….
천천히 고개를 들은 돈 스노우의 눈동자에, 이제 망설임은 없었다.
스노우: ……샤일록이라 칭한 자여. 부탁하네. 화이트에게 키르슈 페르슈를 마시게 해주게나…….
샤일록: 주문, 잘 받았습니다. 서둘러서 준비해 드리죠.
우리는 판테라 패밀리의 주방을 빌려 서둘러 키르슈 페르슈를 준비했다. 알코올을 날린 그것을 손에 들고 안방으로 향하자, 우리를 기다리는 스노우의 커다란 등이 보인다. 화이트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그의 팔에 이빨을 내밀고 있었다.
10화
괘, 괜찮나요……? 어깨에 이어 팔까지…….
스노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네. ……키르슈 페르슈는?
샤일록: 여기 있습니다. 화이트의 입을 열어줄 수 있겠나요?
스노우: 맡겨 두게. ……미안해, 화이트.
스노우는 자신의 팔에서 화이트를 벗겨내더니, 그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억지로 열었다.
붉은 눈의 아이: 컥……. 아…….
샤일록: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샤일록이 키르슈 페르슈가 담긴 잔을 화이트의 입에 갖다 댔다. 연한 색의 액체가 쏟아진다. 스노우가 화이트의 작은 코를 살짝 만졌다.
스노우: 화이트. 키르슈 페르슈일세……!
붉은 눈의 아이: ……꿀꺽…….
리케: 마셨다……!
붉은 눈의 아이: ……아…….
스르륵 붉은 빛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노우와 같은 금색 눈동자.
붉은 눈의 아이: ……스노, 우……?
그 이름을 부른 것을 마지막으로 안도한 듯 얇은 눈꺼풀이 떨어진다. 이윽고 화이트는 잔잔한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키르슈 페르슈가…….
카인: 효과가 있었나……!?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보석처럼 반짝이면서, 잠든 화이트의 뺨에 떨어져 갔다.
(다행이다. 정말로…….)
사정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렇게 필사적인 그의 모습을 보고 말았으니까. 검은 머리에 금색 눈동자. 같은 색조를 가진 두 사람이, 이렇게 평온하게 곁에 있을 수 있는 광경에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샤일록 / 리케: …….
아서 / 히스클리프: …….
동시에 한 가지 의심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리케: ……스노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스노우: 뭔가. 밧줄을 사용하는 아이여.
리케: 그 소년……. 화이트는 누구인가요?
스노우: 호호호……. 역시 그 질문에 도달하는 건가.
체념을 배이며 스노우가 웃었다.
스노우: 이렇게 되면 이제 숨기지도 못하겠군.
카인: 보스……!
스노우: …….
카인: 정말 괜찮겠나요? 그 이야기는…….
스노우: ……카인. 그동안 그대에게는 수고를 끼쳤군. 하지만 이 자들은 나의 소중한 은인일세. 대답하지 않는 것은 나의 은의에 어긋난다.
자애, 그리움. 스노우는 화이트의 뺨을 품에 안고 부드럽게 만지며 스노우가 말했다.
스노우: 이 녀석의 정체는 '카가미 에이코' 일세.
쿄에이시……?
스노우: 인공생명체라고나 할까. 화이트의 유골과 낙월하의 수액 결정을 사용해 만들어진 생명이지.
카인: …….
미스라: 하아……?
리케: 유골이라니…….
아서: 즉, 화이트는…….
히스클리프: 이미, 죽은…….
샤일록 / 아키라: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그의 팔에서 잠자는 화이트는, 우리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스노우: ……어렸을 적 화이트를 잃고 나서 나는 공허한 인형처럼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아무리 위험한 항쟁으로 가게 되더라도, 화이트에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죽음마저도 구원인 것처럼 생각했지. 그리고, 싸움을 일삼고 있는 사이에 조직의 장이 되어…… 어느새 돈 스노우라고 불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사게 되었다.
스노우: ……그때, 그 남자가 나타난 걸세.
그 남자……?
스노우: 검은 실크 모자의 남자였지. 꼭두각시를 데리고 다니면서 녀석은 말했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을 알고 싶지 않은가' 라고…….
히스클리프: …….
스노우: '나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지만 이 기술로 다시 만날 수 있었어.'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정말로 기뻐보였네. 나는 부디 그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그 녀석에게 매달렸다.
스노우: 죽은 자는 살아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세상의 도리. ……그러나, 만일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걸세. 비록 속아도, 화이트를 잃은 나에게 더 이상의 불행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카인: ……보스 …….
스노우: 녀석은 '카가미 에이코' 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자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네. 치사하지. 화이트는 아주 옛날에 뼈로 변했는데. 무리한 말을 해서 유골로 만들게 했지만…… 보다시피 훌륭한 마무리지 않은가. 이 아이는, 다름 아닌 화이트 그 자체일세.
샤일록: …….
듣고 있는 사이에 나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카가미 에이코는 죽은 사람의 일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생명. 이 아이는, 확실히 화이트야. 하지만 죽은 화이트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샤일록: ……확실히, 보통 인간과 분간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생전의 화이트를 모릅니다. 카가미 에이코인 그는, 그렇게도 생전의 그와 똑같나요?
스노우: 그렇네. 카가미 에이코는 원래의 개체의 기억과 인격, 세상을 떠났을 때의 용모를 거의 몰려받아 태어난다. 죽기 전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인격이나 육체 등의 근소한 차이는 피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화이트를 만난 기쁨과 비교하면 이 정도의 변화는 사소한 걸세. 우리들은 인간조차도, 살아있는 동안 몸도 마음도 변하지 않는 자는 없으니까.
샤일록: …….
스노우가 말을 끊자 주변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카가미 에이코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각자의 망설임을 안고 모두가 시선을 방황하고 있다.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 거리에는 인간과 카가미에이코. 두 가지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거리를 떠들썩하게 하는 수수께끼의 폭한도, 낙월화의 꽃잎을 남기고 실종된 자도, 카가미에이코라는 것.
미스라: 왜 여태까지 다물고 있었나요?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미스라였다. 어딘가 책망하는 듯한 색을, 그 목소리에 실어 스노우에게 따진다.
카인: 기다려, 미스라. 이런 건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우연히 상황이 맞아 알게 되었을 뿐, 벤티스카의 녀석들은 아무도…….
미스라: 목숨이 아깝다면 조용히 하세요.
미스라: 돈 스노우. 죽은 자를 되살릴 길이 있다면 그 사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당신은 숨기고 있었어.
스노우: 치렛타인가……. 그대는 그 녀석을 흠모하고 있었으니까 말일세. 그런데 그건 무리한 상담이네. 카가미 에이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죽은 사람의 혈액이니까. 치렛타는 아득한 옛날에 매장되었다. 피를 뽑을 수는 없지 않은가.
미스라: 화이트는 뼈로 만든 거죠? 그렇다면 그녀도 가능해요.
스노우: 화이트는 특례일세.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을 들은 뒤 밀고 나간 것이다. 운이 좋게도, 생전과의 차이는 음식의 취향이 바뀐 정도였지만…….
스노우는 한 번 말을 끊고 화이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타깝고 슬픈 미소와 함께.
스노우: 이윽고 화이트는 밤이 되자 무엇인가에 겁을 내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날뛰게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죽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괴로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네. 그대도 보았껬지. 눈동자에 붉은 빛을 머금으며 비통한 외침을 울리는 화이트의 모습을.
미스라: …….
카인: ……화이트의 폭주는, 무엇을 해도 억제할 수 없었어. 해가 떠있는 동안 엄청난 효과의 수면제를 먹여서 기적적으로 효과가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는…….
스노우: 미스라여. 그대도 치렛타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을 테지.
미스라: …….
미스라는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저 문득 우리에게 등을 돌린다.
스노우: 어디로 가나.
미스라: 돌아갈 거예요. 이제 카가미 에이코에게는 흥미 없으니까.
아서: 배웅은…… 하지 않는 편이 좋으려나.
스노우: 미안하네. 그대들까지 신경쓰게 해버려서.
눈썹을 내리고 아서에게 미소를 지은 스노우는 손에 들린 빈 잔에 눈을 떨어뜨렸다.
스노우: ……그러나 키르슈 페르슈의 효과는 훌륭하군.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억제할 수 없었던 증상을 쉽게 고치다니.
히스클리프: ……샤일록 씨. 당신이나 당신의 패밀리를 의심하고 싶은 것은아니지만……. 키르슈 페르슈는 정말 그냥 술인가요……?
리케 / 아키라: …….
샤일록: ……죄송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스라면…… 키르슈 페르슈를 만든 무르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스노우 /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 ……당신들의 보스는 어디에?
샤일록: 몰라요. 항상 훌쩍 자취를 감추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짐작가는 곳은 있습니다.
샤일록은 각오를 다지듯, 천천히 숨을 내쉬며 앞을 향했다.
샤일록: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무르의 서가. 그쪽으로 가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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