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시노! 시노……!
섬뜩한 거대 물고기에 물려 어디론가 끌려갈 것 같은 시노를 나는 필사적으로 뒤쫓았다.
시노: ……윽. 도망쳐, 현자…….
싫어요……! 시노. 마법을 사용해서…….
시노: 맛차 스……. 으, 큭…….
물보라와 돌멩이를 흩뿌리며 시노를 문 거대 물고기가 교회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조금만 더, 거의 다 왔어, 시노에게.
(분명 시노를 도울 수 있을거야. 지금까지 마법사를 만지면 불가사의한 힘을 줄 수 있었어. 나는 시노를 도울 수 있을거야! 그게 아니면 싫어……!)
손가락 끝을 시노에게로 쭉 뻗는다. 그런데 맞닿을 뻔한 순간 등에 충격을 받아 나는 넘어졌다.
……윽, 히스…….
나를 깔고 있는 히스클리프가 차가운 두 눈으로 입맛을 다신다. 금빛 머리가, 검게 변해간다.
시노: ……현자……! ……히스…….
고통스러운 시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이젠 틀렸어, 라고 생각했던 그 때……. 개 짖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
머리 셋을 가진 크고 느린 개가 달려 거대 물고기의 목구멍을 물어 뜯었다.
(뭐야?! 저 개……?!)
거대 물고기는 고통에 격렬하게 나가떨어졌다. 드디어 큰 입을 떡 벌린다. 피범벅이 된 시노가 거기서 굴러 떨어졌다.
시노: ……우, 우윽…….
시노……!
시노에게 달려가려 해도, 히스클리프에게 짓눌려 꼼짝도 할 수 없다. 그 때 쿵 소리를 내며 내 머리 옆으로 검은 구두가 보였다. 그 다음에 쿵 하고 트렁크가 놓여진다. 그 트렁크는 난 알고 있다. 오웬의 마도구이다.
……오웬……!
오웬은 기분 좋게 웃으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웬: 여, 현자님. 도와줄까?
나는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웬은 시큰둥한 듯 눈썹을 치켜든다.
오웬: 그렇게 간단히 부탁하면 재미없어.
순간 으르렁 소리를 내는 히스가 오웬에게 달려들었다. 오웬은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더니 히스의 손목을 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을 확인하고 즐겁게 웃는다.
오웬: 또 짐승이 될 뻔했네. 동쪽의 귀공자는. 하지만 또 나랑 놀기에는 아직 이른걸까나. 다음에 또 보자.
오웬: "쿠레 메미니"
주문을 듣자마자 히스클리프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 털썩 하고 마루 위에 내려앉았다.
히스……!
쓰러진 히스클리프 건너편에서는 세 마리의 개가 우적우적 거대 물고기의 얼굴을 먹고 있었다. 세 얼굴 중 하나가 오웬을 돌아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다른 두 얼굴도 엄니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어……. 어째서 오웬을 위협하는거죠?
오웬: 나를 싫어하는거야. 항상 트렁크에 가둬두고 있으니까. 물려 죽기 전에 빨리 해버리자.
무서운 표효를 지르며 오웬에게 달려든다. 오웬은 트렁크 뚜껑을 열며 다시 주문을 외운다.
오웬: "쿠아레 모리토"
세 마리의 개는 환상처럼 트렁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민: 꺄아아아아악!!
네로: 빨리 도망쳐! 지반이 단단한 곳으로! "아도노디스 오므니스!"
주민: 우와아아앗……! 이 쪽에도……!
네로: ……이런! 한 마리 더…….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스무!" 흥! 간단하네!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오.
네로: ……그 쪽을 부탁해! 나는 마을 사람들을 안내한다!
브래들리: 아아, 맡겨둬!
미스라: 이런이런. 대체 몇 마리 더 있는건가요? 나갔다가 들어갔다 하니 귀찮네요. ……응?
촌장: 그만둬! "거대한 재앙"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이대로는 세계가 멸망…….
주민: 촌장님! 촌장님의 바로 뒤에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촌장: ……!
주민: 촌장님을 노리고 있어요! 움직이면 안돼요……!
촌장: ……윽…….
미스라: 어떻게 해요? 죽일까요? 죽이지 않아도 되나요? 당신은 잡아먹힐 것 같지만.
촌장: ……도, 도와줘…….
미스라: "아르시무"
촌장: 하…… 하아……. 거…… "거대한 재앙"이…….
미스라: 이거, 먹을 수 있을까요. 흙내가 나네. ……? 살아남은 레모라들이 교회 쪽으로 모여들고 있어…….
12화
시노! 시노, 정신차리세요……!
시노: ……윽, 히스는……?
무사해요. 오웬, 시노를 구해주세요!
오웬: 헤에, 이 마나석, 대단한 마력이네. 왜 안 으스러졌지? 죽기전에 마법으로 형체를 이어나간건가? 외톨이로 돌이 되는 것은 쓸쓸하니까,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랐던걸지도. 후후, 나, 여기서 죽어볼까.
오웬……! 시노가……!
자샤: ……저, 상처부위를 누르고 있을게요. 시노…… 시노, 힘내.
자샤…… 감사합…… ……! ……물고기의 얼굴이 3개나 더 나타났어……!
자샤: …….윽……. 이제 끝장이야…….
오웬: 여러 마리의 레모라……. 마력이 약해져서 마나석을 노리고 왔군. 안 줄거야. 이건 내거니까.
어디 가는거에요, 오웬!
오웬: 이 돌을 숨길거야. 미스라에게 들키면 가로채이는걸. 그런건 절대 싫으니까.
부탁드릴게요! 도와주세요! 지금 그런 짓을 할 상황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돌이 된 마법사랑 오웬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나는 망연자실한다.
……거, 짓말이지…….
자샤: ……! 이 쪽을 향하고 있어……!
나는 순간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노의 큰 낫을 집어들었다.
자샤, 물러나있으세요! 여기는 제가……!
자샤: 다, 당신도 마법을 쓸 수 있는건가요?!
못 써요! 하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에요! 이건 영웅이 사용하는 낫이니까……!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런 말을 들은 시노의 생각이 나서, 기도하듯이 큰 낫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랬더니…….
시노: ……그 말대로다…….
비틀거리며 시노가 일어섰다. 피로 뺨을 더럽히면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괴어를 노려본다.
시노: 그거 이리 내……. 너는 내가 지킨다. 내 역할이야.
히스클리프: ……현자님……. 위험해요, 도망치세요…….
시노에 이어 히스클리프도 몸을 일으킨다. 너덜너덜 상처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우리를 지키려고 하고 있다. 가슴이 꽉 미어온다. 하지만 고마워도, 도망쳐도 말할 틈도 없이 세 개의 거대 물고기의 머리가 다가왔다.
그 순간, 한밤중에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듯 늠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눈을 뜨자 마도구의 거울을 하늘로 치켜든 파우스트가 우리를 감싸듯 서 있었다. 거대 물고기들은 거울에서 쏟아지는 불빛을 받으며 뭔가의 힘에 짓눌린 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있다.
파우스트……!
파우스트: 늦어서 미안하다.
파우스트는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보고 자신을 탓하듯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파우스트: 시노……. 히스……. 내가 있었는데도 이런 꼴을 당하게 하다니……. ……마무리를 지어주지! 괴어 녀석!
네로: 파우스트!
네로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빗자루로 하늘을 날며 네로는 파우스트 옆에 내려선다.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지키듯 등을 맞대고있는 파우스트와 네로를 보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상처받은 동료가 있을 때에는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하나로 모여든다. 혼자 도망칠 수도 있고 혼자 숨을 수도 있는데도. 그들의 그런 점을 정말 좋아한다.
시노: ……파우스트, 네로…….
네로: 잘 해줬구나. 이제 괜찮아. 돌아가면 레몬파이 구워줄게.
시노: ……아싸…….
파우스트: 이걸로 끝이다.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솟구치는 눈부신 빛 속에서 무시무시한 거대 물고기의 머리가 순식간에 검은 재가 되어 사라져간다. 시노의 상처를 누르면서 자샤는 숨을 삼키며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세 마리의 거대 물고기의 머리가 소멸될 무렵 나머지 북쪽 마법사들도 교회로 달려왔다.
스노우: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 현자여, 무사한가?!
미스라: 다른 물고기들도 다 죽여놨어요.
화이트: 시노! 히스클리프! 아아, 이렇게 크게 다치다니……. 가여워라……. 지금 바로 고쳐주마.
시노: ……꼴사나웠어…….
쌍둥이의 치유 마법을 받으며 시노가 작은 목소리로 눈을 깜빡인다. 시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축 늘어져있었다. 나는 시노의 손을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멋있었어요. 계속 지켜줘서 고마워요, 시노…….
희미하게 시노가 웃는다. 시노가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끝에서 히스클리프도 파랗게 질린 얼굴로 웃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저, 폐를 끼친 건 아닌지……. 중간부터 기억이 사라져서…….
시노: 도끼에 찔려 의식을 잃었어.
히스클리프: ……그것 뿐? 뭔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시노: 그것 뿐이야.
시노는 아직 말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13화
자샤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교회에는 우리만 있게 되었다. 새벽이 될 즈음에는 시노와 히스클리프도 많이 회복되었다. 마을 주변에 마법진의 준비를 갖춘 파우스트와 잠자리도 돌아온다. 성스러운 축제를 열 준비는 되었다.
파우스트: 그러면 시작하지.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부탁한다.
미스라: 네.
파우스트는 눈을 감았다.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세계에서 빛이 사라지고 뱃속이 무거워졌다. 느껴보지 못한 엉망진창인 충격이 온다. 몸이 흩어지는 듯한 감각과 길게 뻗는 작은 폭발이 여럿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굉장히 무서워져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쓸데없이 쓸쓸해지고 고립되는 불안함과 고고의 강인함을 느꼈다. 혼자였을 때에만 알려진, 날카롭고 맑아진 자기 감각이 강해져간다.
……!
번쩍 눈을 떠보니 그 곳은 신전이었다. 별과 달빛밖에 없는 고독한 신전이다. 하지만 들어보지 못한 음색이 들려온다. 성스러운 축제의 노래이다. 동쪽의 마법사들이 높이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이 희미한 빛을 띄우기 시작했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브러프 스노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파우스트:'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어느새 나타난 북쪽의 마법사들도 동쪽의 마법사들을 지원하려는 주문을 외운다.
미스라:'아르시무'
오웬: '쿠레 메미니'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스무'
스노우 / 화이트: '노스콤니아'
그러자 별빛보다 더 눈부시게 태고의 신전이 빛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빛기둥이 신전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마법사들을 감싸는 옅은 빛이 반짝반짝 빛나며 별똥별처럼 큰 기둥으로 빨려 들어갔다. 반짝이는 눈부심에, 시야가 흐려져가고……. 그렇게, 동쪽의 성스러운 축제는 끝이 났다.
네로: 하아……. 드디어 마법서로 돌아갈 수 있어…….
파우스트: 시노, 히스. 다친 곳은 괜찮은가?
시노: 아아,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히스클리프: 자샤도 사과해줬고 이제 괜찮아요.
파우스트: ……상처를 입게 해서 미안하다. 너희들을 위험한 임무에 데리고 가는 것은 앞으로 삼가하도록 하지.
히스클리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더 열심히 할테니까…….
시노: 넌 선생님이잖아. 그럼 우리들을 훈련시켜줘. 우리를 강하게 만들면 되잖아.
파우스트: ……알았다. 다음 수업부터는 더 빡세게 가지.
네로: 나는 상냥한게 좋은데…….
스노우: 마을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왔네! 하지만 몇 번을 설명해도 우리들이 현자의 마법사라는 것은 믿어주지는 않을 걸세.
화이트: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 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구먼.
스노우: 지금도 저렇게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네.
네로: ……야, 너희들!
주민: ……뭐, 뭐냐…….
네로: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너희들 덕분에 살았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일이야. 이제 힘든 일은 안해도 돼. 너희들은 자유야. 이 마을을 개척할 수도 있고 이 마을을 나와 자유롭게 살 수도 있어.
주민: ……미……. 믿을 까 보냐……. 마법사의 말 따위…….
자샤: 믿을게요!
주민: 자샤…….
자샤: 저는 믿어요……. 현자의 마법사님들……. 마을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시노: 다음에 또 봐, 자샤. 중앙나라에 올 일이 있으면 마법서에 들러.
히스클리프: 블랑셰에도 놀러와도 돼.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자샤에게 손을 흔든다. 맑은 눈으로. 자샤도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브래들리: 그러면, 돌아가는거지.
미스라: 그것보다 오웬. 당신 트렁크에서 강한 마력의 기운이 나는데요. 강한 마나석이라도 들어있나요?
오웬: 몰라. 기분 탓 아냐? 너야말로 그 큰 물고기 시체는 어떻게 할건데?
미스라: 마법관에서 구워볼까 하는데.
네로: 어이어이. 주방은 쓰지 마라…….
힘든 임무를 마친 뒤인데도 부드러운 대화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올려다보니, 선명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남은 태고의 신전은 앞으로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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