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벤자민 씨를 따라 우리는 스르르 도시를 걸었다.
남자: 지체하지 말고 빨리 옮겨.
남자: 그러지 마. 엄청 덜컹거린다고.
남자들이 무겁게 대차를 밀면서 지나간다. 쌓여 있던 것은 대량의 마나석이다.
와, 엄청난 양……. 북쪽의 마법사들이 보면 좋아하겠네요.
오즈: 여기 있는 건 질이 안 좋은 마나석이다. 그들만큼의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겠지.
그렇군요. 저는 구별이 안 가는데, 고급 마나석은 어떤 거예요?
오즈: 내가 돌이 되면 고급 마나석이 되겠지.
과, 과연…….
(단순히 위협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도 북쪽의 마법사들은 오즈를 쓰러뜨리고 하고 싶어하는 거구나……)
오즈: 마법사는 단순해. 어느 쪽의 힘이 위쪽인지 아래쪽인지, 그것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들의 싸움은 복잡해. 힘이 아니라 수의 싸움이 된다. 내가 아서나 카인이었다면 이 도시를 불태우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공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웃음소리를 내고 있다. 호통소리, 발소리, 기계소리. 이 도시에는 일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건조소는 섬 끝에 있었다. 연습생 의상 덕분에 우리는 의심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클로에: 라스티카, 위험하지 않아? 그런 곳에 앉거나 하면…….
라스티카: 괜찮아. 약간 흔들거리는 의자지만.
벤자민: 그건 의자가 아니라 공구함이다!
무르: 으음?
자신이 그린 설계도와 대면한 무르는 매달리듯 계속 응시하고 있다.
어떤가요, 무르. 뭔가 눈치챘나요?
무르: 응…… 아, 여기!
클로에: 뭘 알아냈어?
무르: 엄청 낡았어! 효율도 안 좋고, 지금 쯤이면 망했겠네! 이 부분도 너무 뻔하고 재미없어! 다듬어도 안 돼. 왜 이렇게 했을까?
카인: 설계도를 그린 본인이 그런 말을 해도.
무르: …………어라? 나, 여긴 설계 안 했어. 뭐에 쓰는 거야?
무르가 설계도의 일부를 가리킨다. 순간 벤자민 씨의 얼굴이 확 굳어진다.
벤자민: 거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헛간이다.
무르: 헛간? 아하하! 웃긴 소리를 하네! 배를 만드는데 중요한 부분이야. 이만한 공간을 쪼개면 배 전체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져. 꽤 고생했지?
벤자민: …….
아서: 무르, 무슨 뜻이야?
무르: 웬만하면 이런 곳에 헛간은 안 만들어. 제정신이 아닌 이상!
샤일록: 역시 이상한 당신이 말하니 설득력이 있네요. 무르는 둘째 치고, 벤자민 씨는 굉장히 제정신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그는 대체 무엇을 만들었을까요?
리케: 벤자민 씨, 그들의 말이 사실인가요?
카인: 솔직하게 대답해 줘. 설계도의 그 장소는 뭐지?
벤자민: …………병기다. 신형 거대의 무기를 쌓아놨어.
공기가 얼어붙어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아서: 중앙의 변경의 땅을 불태운 것인가……?
클로에: 그런……! 어째서.
벤자민: 좋아서 태운 게 아니야! 그걸 끼워 넣어야 군으로부터 허가가 나와. 난 어떻게 해서라도 이 배를 만들고 싶었어!
벤자민 씨가 외친 직후, 문득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굉음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아서: 뭐지, 이 소리는…….
무르: 저기, 위를 봐!
리케: 배가 날고 있어?
벤자민: 저거다! 저게 내가 만든 비행 군함이야!
클로에: 어째서 이 섬에……!?
라스티카: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비행선도 이 섬이 그리워 돌아온 걸지도 모르겠네.
무르: 틀려. 함재포가 움직이고 있어. 배가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는 증거야.
리케: 그런……. 섬을 공격하러 왔다는 건가요?
샤일록: 섬의 중심부로 가고 있군요.
벤자민: 거짓말이지! 이럴 수가……. 이러다간 섬이 불바다가 되겠어!
카인: 탄식은 나중에다! 바로 배를 멈추러 가야겠어!
아서: 현자님, 제 빗자루에 올라타 주세요. 만약의 일이 없도록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부탁드릴게요.
오즈: 아서. 이 도시가 불태워지면 너희 나라를 위협하는 것이 하나 사라진다. 그래도 구한다는 것인가.
아서: 이 도시에서도 저희들처럼 매일매일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생명에, 나라의 차이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키고 싶습니다.
오즈: …….
벤자민: (빗자루 위에 걸터앉아 마법사들이 날아간다. 내가 사는 섬을 구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배를 멈추기 위해서.)
벤자민: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다. 그걸 이룰 수 있는 것은 새와 마법사 뿐. 마법도 날개도 없는 인간은 하늘을 꿈꾸며 쳐다볼 뿐. 우리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뻗으면 꿈에 손이 닿을 거야. 날개가 없어도, 마법이 없어도.)
벤자민: ……나는…….
벤자민: (……나는, 그 배에 무슨 꿈을 꾸고 있었지?)
7화
카인: 언제 공격이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군.
클로에: 배에서 나온 무기…… 포라고 하는 거야? 저게 계속 움직여서 기분이 나빠.
무르: 겨냥하고 있는 거야. 선장이 없으니까 배 마음대로.
샤일록: 언제 물지 모른다고 하는 건가요? 예의가 부족하네요. 목걸이를 채우지 않으면.
아서: 현자님, 괜찮으신가요?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엄청 큰 배…….
가까이서 보는 배는 기압감이었다. 돛은 바람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육중한 선체가 모든 것을 위압하며 밀어낸다. 하늘을 난다기보다 유유한 그 모습은 고래가 대해를 헤엄치는 것 같다. 무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리케: 어떻게 배를 세울 건가요?
카인: 여기엔 마법사가 7명이나 있어. 모두의 마법으로 멈출 수 없는지 해보자.
무르: 소용없어. 사용되는 마나석의 양이 엄청나고,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어설픈 마법사는 배를 못 멈춰.
아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세울 수 있지?
샤일록: 무르, 이 섬은 말하자면 당신의 유산입니다. 제 구실을 하세요.
무르: 배 자체를 상대하니까 멈추지 않는 거야. 그렇다면 배의 심장을 노리자. 배에 장착된 마나석을 마법 과학력으로 변환하는 중추장치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면 돼!
에…… 그러니까, 즉?
라스티카: 승선해서 중추장치를 빼면 되는거지?
무르: 정답!
리케: 그러면 바로 배로…… ……!
그때, 갑판에서 여러 개 튀어나온 함재포 하나가 갑자기 공격으로 돌아섰다. 리케를 노리고 화염이 뿜어진다.
카인: '그라디아스 프로세라!' 큭……!
아서: 리케! 카인! 둘 다 무사해!?
리케: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카인이……! 카인, 괜찮나요?
카인: 아아, 가벼운 화상이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카인: ……지키고 싶다면, 네가 지켜라인가…….
리케: 에?
카인: 아니, 혼잣말이야. 네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리케: 카인……. 미안해요. 저를 감싸는 바람에.
카인: 리케의 탓이 아니야. 이건 기사의 역할이고 내가 정한 거야. 내 힘으로 어디까지 맞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자신의 힘을 다해 지키고 말겠어.
포격은 배가 깨어난 신호였다. 섬뜩하게 꿈틀거리기만 하던 함재포가 하나 둘 다시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샤일록: '임비벨'
라스티카: 곤란하네. 무기를 거두고 잠에 들어주지 않으려나.
샤일록: 지금은 한 발 두 발로 단조로운 공격이라 상대해드릴 수 있지만, 일제히 맞으면 아무래도 손을 쓸 수 없겠네요.
아서: 도시가 피해를 보고 나서는 늦어.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으면……! 카인, 리케. 부탁해도 될까?
카인: 알겠습니다. 섬 쪽은 맡겨주세요. 리케, 가자.
리케: 네!
클로에: 저기, 뭘까. 이 빛…….
불규칙한 포격 속에서 야릇한 빛이 몇 개나 배를 휘감고 있다. 빛은 천천히 움직이며 배의 바닥 쪽으로 모여든다. 모인 자리에는, 아주 큰 주포가 있었다.
무르: 저건 내가 설계하지 않은 녀석!
전원: !
클로에: 그러면 저게 신형 거대 병기……!?
아서: 다른 포격과는 차원이 달라. 쏘게 할 수는 없어!
말려야 해……. 중추장치를 멈추러 가요!
샤일록: 저희가 엄호할테니 무르와 아서 왕자는 현자님과 함께 먼저 배로.
무르: 알았어!
샤일록: 현자님, 무서울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고마워요, 샤일록. 하지만 저도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릴 생각이에요!
샤일록: 후후, 용감하신 분.
클로에: …….
라스티카: 클로에, 우리도 가자. 포격을 막아야 해.
클로에: 라스티카……. 응!
아서: 무르, 중추장치는 어디지?
무르: 갑판 한가운데! 밖을 보면서 조작할 수 있게 설계했어!
무르: 아, 이거이거.
검은 지구본처럼 생긴 것이 갑판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열이 나는지 표면에서 김이 살짝 올라오고 있다. 폭주를 말해주듯 설치되어 있는 여러 개의 비늘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아서: 좋아. 한시라도 빨리…… ……?
몸이 순간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직후, 엄청난 진동이 온몸을 감싼다.
……윽!
해가 터지듯 엄청난 빛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눈꺼풀이 떠있는 건지 감겨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시야가 하얘진다. 병기에서 무정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 깨달았다. 시간에 늦었다.
섬이, 도시가, 불태워진다.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오즈: '복스노크'
쏟아졌을 빛이 금세 소멸했다. 배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경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지되고 있다.
아서: ……믿을 수가 없어……. 섬은 무사해.
다, 다행이다……. 하지만, 어째서?
무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어!
아서: 오즈 님……. 섬을 지켜주셨어.
오즈: (……약간 지팡이가 떨렸다.)
오즈: 인간이, 이 정도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8화
무르: 왜지? 이렇게 움직이면 메인 부분으로 지시가 갈텐데.
아서: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중추장치 자체에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가……?
무르: ………….
아서: 무르?
무르: ………….
무르는 집중하면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무르: ……중추장치에 손상은 없어. 그런데 확실하게 이상해.
에?
무르: 폭주한 채로 오래 내버려둔 탓에 제멋대로의 횡포를 안거겠지. 이렇게 되면 어떤 조작도 지시도 안 받을거야.
그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르: 일단 생각나는 대로 모든 방법을 시도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아서! 마법으로 뱃길을 돌려!
아서: 뱃길?
무르: 배의 궤도를 바꾸면 섬을 벗어나 바다 위로 나오기 마련. 일단 섬이 불에 타는 일은 없어져!
아서, 키를 돌려본 적이 있나요?
아서: 아뇨,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죠! 배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지 해보겠습니다. 무르, 현자님을 부탁할게.
무르: 맡겨줘! 현자님, 나를 꽉 잡고 있어줘.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아서가 그 자리에서 주문을 외우자 배 전체가 번쩍 빛난다. 직후, 크게 선회하여 거친 고기잡이 어선처럼 출령거렸다. 무르느 이미 중추장치를 떼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건지 배가 흔들려도 요지부동이다. 배는 계속해서 크고 작게 날뛰었다. 지시받는 걸 싫어해서 저항하는 것 같아. 키를 잡는 아서의 손에 힘이 실려있다.
아서, 힘내요……!
아서: 큭…… '파르녹턴 닉스지오!'
아서의 필사적인 조종에 의해 드디어 배는 섬을 빠져나갔다.
됐다, 바다가 보여!
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 또 위기가 닥칠지 모릅니다. 서둘러 배를 세우지 않으면……!
그 직후, 무시무시한 소리가 배 전체에 울렸다. 저 무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긴장이 흘렀다.
다시 저걸 쏠 셈……!?
아서: 무르! 주포를 멈추는 방법은!?
무르: 지금은 없어! 중추장치가 폭주하고 있는 이상 어떤 명령도 듣지 않아! 마음대로 놔두면 돼. 어차피 맞아도 바다밖에 없으니까!
클로에: 샤일록!
찢어지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전원의 시선이 한 점에 집중되나. 무기가 발사되는 궤도상에는 바다밖에 없을………… 터인데, 거기에는 샤일록의 모습이 있었다.
샤일록: …………이런 때에.
빗자루 위에 걸터앉은 채 고통스럽게 가슴을 누르고 있다. 심장이 타는 '거대한 재앙' 의 상처가 최악의 타이밍에 그의 발을 붙들고 있었다.
무르!?
앗 하고 생각했을 때 이미 무르는 없었다. 총알처럼 배를 달려나가 곧장 샤일록을 향해 갔다.
아서: 위험해! 포격이 온다!
무르! 샤일록!
격렬한 진동과 빛이 번쩍인다. 순간 세계가 침묵했다. 쏘아진 포격은 푸른 바다를 깎았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무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세찬 불빛에 휩싸인 무르와 샤일록의 모습을, 나는 확인할 수 없었다.
샤일록: …………?
무르: 하——! 나, 안 죽었어! 안 죽었다는 건 살아있어!
샤일록: ……무르? ……윽……. 설마, 저를 구하러 온건가요?
무르: 그런 것 같네!
샤일록: 그런, 어째서……. ……흉한 상처. 나를 죽일 뻔한 후 잦아들다니…….
무르: 가슴의 상처, 아프지는 않았어? 더 울거나 해도 되는데?
샤일록: …………제가 죽을 뻔했다고 하더라도, 옛날의 당신이었다면 도와주지 않았을 거야.
무르: 샤일록?
샤일록: 위기에 처한 나를 기껏해야 별의 관측처럼 바라볼 뿐. 제가 아는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감쌌다.
샤일록: 어째서죠, 무르. 제가 당신을 바꿔버렸나요? 저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 교육을, 당신에게 했다고 하는 건가요……?
무르: 글쎄, 몰라! 내 멋대로 그렇게 된 것 뿐!
샤일록: …….
클로에: 아서! 현자님! 괜찮아?
아서: 클로에, 라스티카! 무르와 샤일록은 어떻게 됐어!?
라스티카: 안심해 주세요. 아슬아슬하게 피한 모양입니다.
정말인가요!? 다행이다……!
라스티카: 네, 정말로. 아서 왕자와 현자님, 두 분에게 다치신 곳은 없나요?
저희들은 괜찮아요. 그래도 배가 폭주한 채로…….
아서: 무르가 없는 지금 우리끼리 어떻게 하는 수 밖에 없어. 중추 장치의 폭주를 마법으로 멈출 수 없나 해보자. 클로에, 도와줘.
클로에: 응!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클로에: '스위스피시보 보이팅고크!'
라스티카: 현자님은 위험하니까 제 뒤로.
아서: 부탁해, 멈춰줘……!
중추 장치의 폭주를 마법으로 달래려는 두 사람의 필사적인 모습을,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멈춰주세요. 제발, 부탁이니까……)
수십 초 후, 맹렬한 기세로 흔들리던 기계 바늘이 정지했다.
클로에: ……멈췄나?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음 순간, 마치 성난 얼굴로 격렬하게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서: 큭, 안됐나!
(두 사람의 마법으로도 멈출 수 없다니, 어떻게 해야……!)
오즈: 현자를 데리고 탈출해라.
머리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본다. 배 위에서 날고 있는 오즈가 보였다.
9화
아서: 오즈 님! 하지만, 중추 장치가 아직…….
오즈: 무리다. 더 이상 화를 부르기 전에 비행 군함째 파괴할거다.
클로에: 잠깐만! 아직 시간은 있어! 중추 장치만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지? 벤자민 씨가 목숨을 걸고 만든 배를 부수다니…… 벤자민 씨는 말했어. 자기 인생을 걸었다고. 그 사람의 전부가 이 배에 실려 있는 거야.
클로에의 속눈썹은 떨리고 있다. 상냥하고 약간 겁이 많은 그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며 호소했다.
클로에: 나, 다시 한 번 마법으로 막아볼래. 그게 안 되더라도,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서쪽의 마법사는 사랑한 자에게 일편단심이 된다. 아무리 어리석고 아파도, 사랑을 그만둘 수가 없다. 그래서 일편단심 사랑했던 그 마음을 그들은 결코 비웃지 않는다.
클로에…….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흉포한 소리와 함께 중추 장치가 무참히 부서진다.
!?
클로에: 라, 라스티카!?
다들 눈을 의심했다. 평상시의 라스티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꽤 난폭한 행동이다.
라스티카: 자, 피난을 갈까. 현자님, 꽉 잡아주세요.
주위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나를 빗자루의 앞에 태운 라스티카는, 아서와 클로에를 데리고 탈출했다. 클로에는 평소와 다른 라스티카를 당황하면서도 슬픈 듯이 배를 돌아본다. 중추 장치를 잃은 영향인지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배의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무르: 돌아왔다! 어——이!
리케: 현자님! 모두들!
샤일록: 어서오세요.
라스티카: 응, 다녀왔어.
다행이다. 모두 무사했군요……!
아서: 섬은 괜찮았나?
카인: 아아, 조금 난리가 났지만.
아서: 그런가……. 모두를 겁먹게 해서 미안하네.
카인: 아니, 역시 서쪽의 거주자들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비행 군함에 흥미진진해 보이더라고. 유도하는 것도 상당한 고생이었어.
벤자민: ……하나 물어봐도 되나. 배는 어떻게 됐지.
클로에: 아마도, 지금 쯤…….
먼 하늘에 천둥번개가 쳤다. 부서진 배의 잔해가 풀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부서지는 소리도, 물보라도 여기에는 닿지 않는다. 다만 조용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그걸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지막 조각이 바다에 삼켜질 때까지 벤자민 씨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옆모습을 나는 계속 잊지 않을 것이다.
해질녘 모든 것을 끝낸 우리는, 혼란을 틈타 빠른 걸음으로 섬을 떠나려 했다.
군인: 기다려! 너희들, 어디로 가고 있지?
군인: ……수상한 놈들이다. 섬사람치고는 분위기도 묘해. 너희들은 누구지. 솔직하게 말해라. 아니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
(이 사람들은 군의……!? 아까의 사건 때문에 그런지 엄청 예민해 보여. 군부에 들키면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벤자민 씨가 그랬는데……!)
벤자민: 우리 연습생이다. 일을 시키기 전에 견학을 데리고 왔어. 이놈 저놈 다 시골에 살아서 그래. 이 섬의 기계가 신기해서 견딜 수 없는 거야.
군인: 연습생……? 이 녀석도?
오즈: …….
(엄청나게 오즈의 얼굴 쳐다보고 있어……)
벤자민: 그 녀석은 얼굴 때문에 오해를 받지만, 보기보다 훨씬 젊어. 햇병아리를 너무 괴롭히지 마.
무르: 아하.
웃음을 터뜨릴 뻔한 무르의 입을 오즈를 제외한 중앙의 마법사가 총출동했다.
군인: 흥……. 뭐 됐어. 간다.
조마조마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벤자민: 내가 데려왔으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전원 연습생이라는 건 무리가 있었네.
리케: 괴롭히지 말라고 감싸줘서 다행이네요, 오즈.
오즈: …….
벤자민: 뭐, 어쨌든 빨리 섬을 떠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있으니까 거기서 마법을 쓰고 돌아가면 돼.
클로에: 저기, 벤자민 씨……. 당신의 배,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벤자민: …….
걸음을 멈춘 벤자민 씨는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착잡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라스티카: 오래된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도록 하죠.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어나온 것은 라스티카였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10화
라스티카: 오래 전에 곡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곡으로, 한 번 연주하면 누구나 취하고 모두가 행복해졌다. 제가 좋아하는 그 곡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셨어요. 제 연주를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저도 쳐보고 싶다고 악보를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연주해낼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는 마법사밖에 연주하지 못하는 곡을 만들어버렸으니까.
벤자민: 마법사밖에 연주하지 못하는……?
라스티카: 네. 팔이 3개가 아니면 도저히 연주할 수 없는 난곡이었거든요.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연주하는 걸 포기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는 순간, 한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못 연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곡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청난 노력을 거듭해 빠른 연주를 터득한 그는, 이윽고 제 앞에서 완벽한 연주를 선보여주었죠.
클로에: 대단해……!
라스티카는 소리를 지른 클로에를 보며 약간 슬픈 미소를 짓더니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라스티카: 그의 연주는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곡을 위해서, 소중한 손가락을 망가뜨리고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어버렸죠.
클로에: ……!
라스티카: 그래서 저는 그 곡의 악보를 불에 지피고 불태웠습니다. 그 악보는 역할을 넘어서버렸으니까.
……악보의 역할이라니, 뭔가요?
샤일록: 책임이죠.
샤일록: 모든 기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밑도 끝도 없이 취하게 만드는 칵테일을 만들더라도, 저는 무진장 제공하지 않습니다. 저의 역할은 술을 즐기게 하는 것이니까요. 취하는 것에 빠져서 즐기는 것을 잊어버리면 의미가 없는 것이죠.
벤자민: …….
벤자민 씨는 품에서 꺼낸 무르의 설계도를, 낡은 편지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벤자민: 그 비행 군함도 역할을 넘은거야. 불쌍한 짓을 했어. 더 좋은 바람을 타고 어디까지라도 날 수 있는 배였는데.
벤자민 씨는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설계도에 불을 붙였다. 불길은 삽시간에 번져서 이윽고 재가 되었다.
클로에: ……무르, 괜찮아?
무르: 괜찮아! 그거 아이디어가 낡아서 곰팡내 나. 지금이라면 더 좋은 설계도를 그릴 수 있을지도!
샤일록: 그렇게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책임질 생각은 없는 것 같군요.
무르: 왜냐하면, 하늘을 나는 배는 꿈이 있잖아?
벤자민: 자, 여기라면 군인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고 날아갈 수 있어. ……응? 아티, 왜 그래.
아서: 벤자민, 마지막으로 사과할 게 있어. 사실 나랑 이 3명은…… 서쪽의 마법사가 아닙니다.
벤자민: …….
벤자민: 후핫!
리케: 우, 웃었다!
카인: 화내지 않는 건가? 속인건데.
벤자민: 그런 세상의 끝 같은 얼굴을 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 사람이 있을까. 처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서쪽 마법사 치고는 너희 넷은 남의 말을 너무 진지하게 들어줬으니까.
아서: 그랬던건가……. 아직 나도 미숙하네. 더 정진하지 않으면.
(이미 이 대답이 절대 서쪽 마법사 같지는 않지만……)
아서: 우리들은 원래 중앙 나라의 마법사. 이름은 아서라고 합니다.
카인: 나는 카인이다.
리케: 리케입니다.
오즈: ……오즈다.
무르: 우리들은 진짜 서쪽의 마법사야!
벤자민: 그거야 충분할 정도로 알아. 당신들은 틀림없이 엉망진창인 서쪽의 마법사다.
라스티카: 이런, 칭찬받고 말았네.
클로에: 칭찬이야?
샤일록: 더할 나위 없는 칭찬입니다.
무르: 재밌었으니까 다음에는 우리가 중앙의 마법사가 되는 건 어때?
오즈: 거절한다.
와 하고 웃음소리가 났다. 나도 마법사들도 벤자민 씨도 모두 똑같이 웃었다.
벤자민: 너희에게는 신세를 많이 졌어. 고마워. ……그리고, 클로에. 내 배를 '도울 수 없었어' 라고 살아있는 것처럼 소중하게 대해줘서 고마워.
클로에: ……! 응.
벤자민 씨, 앞으로 서쪽 나라에서 살기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마법서를 찾아와 주세요.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벤자민: 아아,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부탁하지. 단, 핸드벨은 이제 그만해달라고?
벤자민: (그리고 현자와 8명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써서 마술처럼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다. 배가 날고 마법사가 제 발로 뛴 하늘은 이제 황혼이다. 지저분한 골목길에서 올려다보니 절로 얼굴이 웃고 있었다.)
벤자민: ……겉보기만 한 패거리들은 아니었네.
벤자민: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다. 새처럼, 마법사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날개도 마법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꿈을 꾸고, 포기하기 어렵게 지혜를 얻었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도 배는 한 번 하늘을 알았다. 마법사조차 배에는 꿈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분명히 몇 번이라도 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좀 더 가볍게 날 수 있을 거야.)
벤자민: (날개가 없어도, 마법이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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