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아……!
땅울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천장이 무너졌다. 눈앞이 순식간에 돌무더기가 된다.
카인: 오웬, 거기에 있는 건가!
카인!
머리 위에서 희미한 빛이 쏟아져 들어와 고개를 들면, 바람을 안은 망토가 훌쩍 날린다. 눈 앞의 쌓인 잔해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건 카인이다. 날개를 쉬러 온 물새 같은 우아한 착지였다.
카인: 그 목소리는 현자님인가. 일부러 와줬구나.
네, 만나서 다행이에요!
이어서 시노와 레녹스, 아서도 우리 앞으로 뛰어내린다.
아서: 오즈 님! 와주셨군요!
오즈: ……아아.
샤일록: 모두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카인과 손뼉을 치며 나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노우: 하지만 화려한 등장이구먼. 역기의 지름길이었군.
시노: 지면을 박살낸 것은 카인이다. 뜬금없이 뭔가 했더니 너희들이 있었구나.
카인: 아아, 미안해. 눈이 반응해버려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카인은 왼쪽 눈을 누른다. 그리고 시큰둥하게 팔짱을 끼는 오웬을 곁눈질로 힐끗 보았다.
카인: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이 녀석의 낌새를 알아차릴 때가 있거든. 이번엔 다행이네. 마중 나와줘서 다행이야. 이 성, 의외로 넓어서 밖으로 잘 못 나가겠더라고.
만나서 다행이에요.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역시 걱정돼서…….
오즈: 다친 데는 없는 것 같군.
아서: 네. 하지만 죄송합니다. 오즈 님께도 걱정을 끼쳐드려서.
오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몇 초만에 달려왔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네)
오웬: 그래서? 보물이라도 발견했어? 돌아다니는 시간만큼은 쓸데없이 넉넉했잖아.
시노: 보물은 없었어. 오즈의 성이라고 하기엔 가난한 성 같네.
아서: 이건 오즈 님의 성이 아니야. 오즈 님의 성은 더 고귀하고 훌륭하며 멋있는 성이다.
시노: 흥, 블랑셰 성이 더 훌륭해. 값비싼 세간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바닥도 광이 나.
오즈: …….
샤일록: 어느 성이 훌륭한지를 떠나서, 당신들도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주신 것 같군요.
(……응?)
샤일록의 시선을 따라 어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레녹스가 누군가를 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레녹스, 그 사람은…….
레녹스: 아마도 오즈의 둥지 관리인입니다. 윗층에 쓰러져 있는 걸 보호했어요.
그랬군요! 찾아서 다행이에요.
레녹스는 관리인을 땅에 내려 눕혔다. 호박색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성실한 분위기의 청년이었다. 아서의 또래일까. 호리호리한 긴 팔다리는 탈진했고, 엷게 뜬 눈동자가 힘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상당히 쇠약해진 것 같은데…….
스노우: 오랫동안 혼자서 성 안을 헤매고 있었던 거겠지. 자, 내가 치유의 마법을 걸어주겠네. '노스콤니아'
스노우가 주문을 외우자 그의 볼에 약간의 혈색이 돌아왔다. 눈의 초점이 맞아 빛이 깃든다.
???: 우우……. 당신들은……?
스노우: 우리들은 현자의 마법사일세. 행방불명됐다는 오즈의 둥지 관리인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지.
엘마: ……폐를 끼쳐서 미안해. 나는 엘마. 오즈의 둥지 관리인이다.
카인: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왜 이 안에 들어온거지? 누가봐도 위험한 곳이잖아.
엘마: 마법으로 이 성을 없애려고 했어. 하지만 내 마력으로는 미치지 못하고, 출구도 놓쳐서…….
시노: 네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 딱 봐도 별 힘 없는 마법사다. 죽음을 재촉할 뿐이야.
엘마: 하지만…… 이 성이 생긴 건 전부 내 탓이니까…….
'내 탓'? 무슨 뜻인가요?
역시 그는 불가항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성 안으로 들어간 듯하다.
엘마: 나는…… 책임을 지려고 했어. 이 성을 만든 건 나 자신이니까.
시노: 뭐라고?
레녹스: 네가, 이 성을……?
엘마의 뜻밖의 고백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는 눈빛에 안타까운 후회를 머금었다.
스노우: 착각이 아닌건가. 그대에게 이런 성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까 시노의 말대로 대단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오웬: 제물을 준비한 거 아니야? 아니면 강한 매개체라던가. 그만큼 오즈에게 강한 원한이 있었다는 거지.
엘마: 아냐, 원한이라니……! 나는 오즈를…….
엘마라는 마법사는 몸을 일으키자 다시 한 번 성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엘마: ……옛날 이 주변은 둥지에 사는 오즈의 힘으로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지였다고 해. 오즈가 둥지를 떠나면서 지금은 평화를 되찾고 있지만…… 다시 오즈가 되돌아오지 않도록 누군가가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그게 우리 일족이야. 오즈의 둥지 관리인으로서 이 땅의 주민들을 대대로 지켜보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
어딘가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그는 신상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곧 그의 눈꺼풀이 덮여진다.
엘마: ……오즈는 무서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설을 듣고 자랐어. 모두 소름끼치는 악몽 같은 이야기 뿐이야.
오웬: 그래서 일족이 총출동해 오랫동안 원망하고 있었던 거잖아. 마왕 오즈의 존재를 말이야.
엘마: 다른 자들은 그래. 하지만 나는…… 난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오즈에게…… 그 막강한 마력을 계속 동경해왔어…….
(동경……?)
그는 눈동자에 희미한 빛을 밝히며 타는 듯 오즈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오즈: …….
한편 오즈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엘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는다.
(어쩐지 알 것 같기도 해…….)
오즈는 이 세계에서 공포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강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와 같이 동경을 품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공할 오즈의 이름과 공존하는 일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오즈의 존재 자체가 긍지가 되는 것은 무리도 아닌 것 같았다.
엘마: ……그리고 그 날, '거대한 재앙' 이 찾아왔다.
7화
엘마: 이 주변도 온갖 피해를 입었어. 건물이 무너지면서 땅이 갈라지고, 오즈의 둥지의 일부가 무너졌지.
당시의 참상을 떠올렸는지 그의 목소리가 고통을 호소하듯 잠겼다. 나까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엘마: 물론 나는 사람들을 위해 힘썼어. 부상자를 구하고, 산사태를 막고, 건물도 고쳤지만…… ……나는 오즈가 아니야. 내 약한 마력으로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었어. 나는 무력했어…….
아서: ……자신을 책망하지 마. 너는 너대로 본분을 다했겠지. 그것은 힘을 가진 자의 용기 있는 행동이야. 결코 무력하지 않아.
아서가 인자하게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듯 말을 건넨다. 하지만 엘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엘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했다고. 도망가지 않은 것만 해도 잘한거라고……. ……하지만 그때, 나는 발견했어. 오즈의 송곳를.
카인: 오즈의 송곳니?
엘마: 아아, 많이 있어. 그건 아마도 오즈가 남긴 송곳니일거야. 무너진 오즈의 둥지 밑에서 찾은거니까.
시노: 송곳니 같은 건 숲에도 떨어져 있어. 그냥 짐승의 송곳니일지도 모르잖아.
엘마: 짐승의 송곳니일리가! 그건 강한 마력을 품고 있었고 마나석처럼 빛나고 있었어. 마력이 약한 나에게 그 송곳니는 거부할 수 없었지. 이걸 내 자신에게 집어넣으면 오즈처럼 강해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버렸어.
(하지만 분명, 그건 오즈의 송곳니가 아니야. 그야 그가 애태우고 있는 오즈는…… 여기에 있으니까.)
오즈: …….
말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힘에 부치던 그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아름답게 빛나는 정체 모를 송곳니가 오즈의 것이라고.
아서: 그 송곳니는 어떻게 한거지. ……삼킨 건가?
엘마: ……아니,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막강한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지. 하지만 그 대가로 오즈같은 도깨비가 되어 버리는 것이 무서웠어. 그 대신에, 나는…….
카인: 뭘 했어?
엘마: ……달빛을 비췄어. 오즈에게 그나마 경의를 담아, 마법으로 예쁘게 닦아서 말이야. 달빛을 받은 송곳니는 정말 아름다웠어. 나는 그 송곳니에 어울리는 훌륭한 상자를 준비해서 다시 땅 속에 묻었찌. 그랬더니…… 다음 날, 이 성이 완성되어 있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갑자기 믿기지 않아 말문이 막힌다.
엘마: 내 마음이 약해서 그래! 적어도 내가 그때 얌전히 송곳니를 삼켰다면, 이런 일은……!
레녹스: 그건 심약이 아니야. 올바른 방어 본능이다. 이런 성이 생기다니 보통 송곳니가 아니었겠지. 만약에 네가 삼켰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현명한 판단이야.
엘마: …….
레녹스의 똑바른 말에 엘마는 희미하게 속눈썹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스노우: 레녹스의 말대로일세. 이런 일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대량의 송곳니가 묻혀 있었다는 것은…… 여기서 과거에 그 송곳니를 가진 생물이 대량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게다. 예를 들면, 오즈처럼 강인한 마력을 가진 자의 소행이겠지.
오즈: …….
스노우: 오즈여, 정말로 이 자리에 짐작 가는 곳은 없는건가?
엘마: ……오즈?
스노우의 시선을 따라간 엘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오즈를 올려다 보았다.
엘마: 그러고보니 오즈는 딱 당신들이 입고 있는 것 같은 새하얀 옷을 입었다고 들었어.
그러자 오웬이 장난치듯 히죽 웃는다.
오웬: 맞아. 흰 옷에 싸인 몸은 표범 같아서 입에 다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송곳니를 가진 거야.
엘마: 아아…… 그리고 뱀같이 생긴 10개의 꼬리를 가진 괴물……. 그게 마왕 오즈라고…….
시노: 아니, 틀려. 네 눈앞에 있는 게 진짜 오즈다.
엘마: ……!? 그런, 설마…….
갑자기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당황한 시선을 방황했다. 반면 오즈는 천천히 입을 연다.
오즈: 그러고 보니…… 옛날, 그런 모습을 한 마법생물이 있었다. 눈처럼 하얀 체모와 날카로운 송곳니, 뱀을 닮은 꼬리를 가진 이름 없는 생물이었지.
스노우: 뭐라고?
오즈: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오랫동안 불모지였던 땅에서 무리를 지었으며 마법사든 사람이든 가까이 다가서는 자들은 모두 잡아먹고 있었다. 나도 그 땅을 방문했을 때 습격 당했었는데, 마법으로 전멸시킨 기억이 나는군.
오즈는 주위를 살폈다. 기억의 실마리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내도록.
오즈: ……확실히 마법생물은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둘러쳐진 둥지를.
카인: 나무 뿌리? 이 성이랑 똑같잖아!
스노우: 오즈여, 그런 중요한 일을 왜 이제서야 생각해 내는거냐!
오즈: 아무래도 좋은 기억이다. 기억해 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려.
시노: 대담하네.
샤일록: 아뇨, 장수의 비결은 적당히 잊어버리는 것이죠.
스노우: 하지만 흰 체모의 마법생물……. 그러고 보니 확실히 있었군. 털끝만한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모습은 맹맹했다.
그런가요?
스노우: 음. 그렇다면 역시 무대는 이 성이겠지. 이 땅에서 오즈와 마법생물은 선추격을 했다. 그리고 아마 오즈 자신의 소행과 마법 생물의 소행이 인편에 섞여 전해졌을 것이다.
샤일록: 말이 되는군요. 오랜 세월을 거쳐 이름 없는 마법 생물의 풍모가 어느덧 마왕 오즈로서의 이야기가 되었다. 어차피 공포의 상징에 어울리는 조형이니까요. 사람들이 상상하는 오즈의 모습과 맞아떨어진 거겠죠.
엘마: 정말로, 당신이 오즈인건가……? 그럼 내가 묻은 그 송곳니는……?
스노우: 그 마법생물의 송곳니겠지. 떼지어 이곳에 둥지를 틀고,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멸망했다면 무더기로 발견된 것도 당연하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오즈의 마력이 아니라 '거대한 재앙' 의 영향이다. 송곳니에는 오즈에 대한 사념이 남아있었겠지. 실제로 오즈와 함께 이 성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움직이는 벽에 공격을 당했었다.
카인: !
아서: 오즈 님!
바로 그때, 오즈의 등 뒤 벽이 움직였다.
8화
마치 겨냥하듯 양쪽 벽이 융기하여 오즈를 짓누르려 한다. 그러나 그는 시원한 얼굴로 손을 들어 마법으로 벽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복도 전체가 주춤거리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아서: 괜찮으신가요, 오즈 님!
오즈: 문제 없다.
레녹스: 정말이네요. 지금 이 성은 오즈 님을…….
(그런거였구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뀐다. 우리가 이 성에 들어온 이후의 공격은, 원래부터 오즈만을 노린 것이었다.
오웬: 헤에, 그럼 역시 이건 전부 오즈를 향한 괴롭힘이었던거네.
오즈: …….
오웬: 아주 옛날에 전멸당했으면서 아직도 앙갚음을 하고 싶어하다니, 그놈들은 얼마나 혼난걸까. 얼마나 오즈를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죽은걸까. 이곳은 불쌍하고 어리석은 짐승들의 미움이 만들어낸 복수의 성이야. 때를 초월한 희롱이라니 좋네. 이거 만든 짐승, 나랑은 마음이 맞을 것 같아.
카인: 거기서 감탄하지마…….
레녹스: 하지만 오웬의 말대로 이곳에 있으면 오즈 님을 노리고 다시 공격 당할거야.
아서: 그러면 오래 있으면 위험하겠네. 오즈 님, 당장 여기서 나가죠.
오즈: 먼저 가라. 난 나중에 간다.
오즈……?
오즈는 어둠의 안쪽을 응시했다. 습기가 차츰차츰 차오른다.
오즈: 지금은 아직, 이 성 자체가 알과 같은 상태다. 큰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 때문이겠지.
오즈: 하지만 알은 머지않아 부화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마력이 강해지고, 이름 없는 마법 생물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조속히 정화하고 성채를 없애야 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되기 전에.
엘마: ……이 성을 없애버릴 건가?
엘마는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흔들었다. 당황한 듯한 반응이었다.
엘마: 이 성은 정말로, 그렇게 나쁜 것인가? 당신을 해치기 위해 태어난거야……?
오즈: ……무슨 의미지.
엘마: 나는 계속 오즈가 되고 싶었어. 당신같이 강한 마력을 원했어. 땅에서 파낸 송곳니를 닦으며 나는 당신에 대해 이야기했어. 보물을 축적한 성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당신의 이야기를.
엘마는 연약하게 떨리는 손을 오즈에게로 뻗었다.
엘마: 화끈하고 견고하며 구름까지 꿰뚫을 듯한 큰 성……. 결코 내 손에 넣을 수 없는, 끝없는 꿈을 계속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 송곳니는 겁이 많은 내 꿈을, 이 성을 쌓음으로써 대신 이루어준 것일지도 몰라…….
눈에 선한 것은 동경과 경외를 가지고 정중하고 정성껏 이를 갈고 닦는 엘마의 모습이다. 그 얼굴에는 미소도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 송곳니는 그에게 꿈의 조각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오즈: 성 따위로 부르면 듣기에는 좋겠지만, 그건 속임수다. 이곳은 마법생물의 사념이 자리를 잡고있는 장소일 뿐이야.
엘마: 그렇다고 해도 내게는 꿈에 그리던 성이야. 자장가 대신 구전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전설의 마왕 오즈의 거처라고!
오즈: …….
그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호소했다. 마치 눈보라 속에 커지는 작은 불꽃의 생명을 지키려는 듯한 절실함이 있었다.
(처음에 관리인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이 성을 지우려고 했지만…… 이 성에 들어온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오즈를 향한 동경. 그런 생각이 그를 입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디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노우: ……그래서, 이대로 내버려두라고?
스노우: 이곳은 꿈의 성이 아니라 옛날에 멸망한 괴물의 사념이 만연한 둥지일 뿐이다. 만약 마법 생물이 부활한다면 불모의 땅으로 되돌아가겠지. 놈들은 사람도 마법사도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다. 그럴 때, 그대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겠나?
엘마: 그건…….
스노우: 이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성에 매료된 것이다. 힘이 없으면 어떤 바램도 무의미하지 않아. 오즈처럼 되살아난 마법생물을 멸망시킬 수 있는 힘 따위는, 그대에게 없다.
순진한 아이의 목소리에 실린 스노우의 말에 엘마는 입을 다문다.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샤일록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왔다.
샤일록: 스노우 님, 그는 아직 젊은 마법사입니다. 그쯤에서 용서해 주시는 건 어떤가요?
스노우: 나를 깡패 취급 하지마라. 늙은이로부터의 고마운 조언이라고.
샤일록: 네. 하지만 그의 사고방식도 멋지지 않습니까? 어떤 젊은 마법사의 꿈을 사람도 마법사도 아닌 자가 이루었다니. 이건 모종의 이야기같은 기적입니다.
기적……?
샤일록: 네. 오즈의 성 같은 건물을 짓거나, 성에 들어간 자의 복장을 바꾸거나. 전부 그의 이상을 이루려고 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샤일록은 동화책을 흥얼거리듯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샤일록: 이 성은 머지 않아 괴물을 낳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이 시점에서는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순간만큼은 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요? 젊은 마법사의 꿈과, 과거의 마법생물이 신기한 인연을 맺었다고.
(샤일록……)
예쁘게 보는 사람도, 말장난처럼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해석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진실을 모르는 지금만큼은, 이야기를 그릴 자유가 있다. 비록 우상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만큼은.
오즈: ……서쪽의 마법사가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유다. 마음대로 해라.
아서: ……강한 오즈 님을 동경하는 것은 이해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엘마, 부디 네가 진짜 오즈 님을 알았으면 좋겠어. 오즈 님은 전설같은 마왕도 괴물도 아니야. 10개의 꼬리와 송곳니, 표범의 몸도 갖고 있지 않아. 그보다 더 많은 상냥함을 지니신, 한 명의 마법사이다.
엘마: …….
아서의 똑바른 말에 엘마는 말없이 귀를 기울인다. 분명 지금까지 이렇게 한결같은 말로 오즈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겠지. 그의 당혹감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9화
시노: 벽이 움직였군.
레녹스: 아아, 땅울림도 들려.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샤일록: 장의 마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마법생물이 깨어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스노우: 그런 것 같네. 빨리 이 성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어. 오즈여, 뒷일은 맡기겠네.
잠시만요! 오즈에게 위험이 미칠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오즈만 남겨두고 가다니…….
오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건가.
조용히 소매를 털어버리는 오즈의 수중에 소리 없이 지팡이가 나타났다. 손에 쥔 그것을 살짝 들자, 바람도 없는 가운데 묵직한 망토가 너풀거린다.
오즈: 너희들은 성이 무너지기 전에 탈출해라.
스노우: 오즈는 성미가 급하구먼.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우리도 성과 함께 사라져버릴걸세!
시노: 현자, 내 빗자루에 타!
시노는 훌쩍 빗자루에 올라타더니, 나에게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적으로 그 손을 잡으면 놀랄 만큼 강한 힘으로 쭉 잡아당겨진다.
시노: 꽉 잡고 있어. 그리고, 고개 들지 마. 천장에 부딪힐거야.
네……!
레녹스: 엘마, 날 수 있어? 어려울 것 같으면 내 빗자루에.
엘마: 아, 아아.
샤일록: '임비벨'
샤일록이 주문을 외우자 연광을 두른 나비가 날아올랐다. 금가루가 반짝반짝 흩날리며 길 앞을 내다보는 아름다운 옆모습이 비춰진다. 가볍게 쏘아붙인 눈가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샤일록: 모두들, 제 나비가 출구로 안내할테니 뒤쫓아주세요.
카인: 알았어. 난다!
오즈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우리를 태운 빗자루는 맹렬한 스피드로 출구를 향해 간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듯이 넘실넘실 벽이 움직인다. 마치 생물의 내장 속에 있는 것 같다.
카인: 왼쪽으로 움직여!
시노: !
와앗!
카인이 지시한 직후 오른쪽 벽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시노가 빗자루를 가볍게 회전시켜 격돌을 피한다.
카인: 다음은 오른쪽!
안심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왼쪽 벽이 무너진다. 절임당할 뻔했지만 샤일록의 나비를 놓치고 말았다.
시노: 젠장, 어디로 갔지?
레녹스: 왼쪽 길이다. 금가루가 남아있어.
이런 상황에서도 레녹스는 냉정했다. 주위를 관찰하고 상황에 맞게 안정된 빗자루 조종에 임하고 있다.
(시노도 나를 태우고 있는데,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막나가지도 않는다. 원심력으로 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경로를 먼저 읽는 예리한 감이 엿보였다.
시노: 현자, 아직 목은 남아있는 것 같네.
네, 덕분에요. ……우와앗!
카인: 아키라!
그때, 벽을 기어가던 나무뿌리가 갑자기 내게 덤벼들었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하지만 촉수처럼 팔이 휘감기는 순간, 시노의 큰 낫이 일섬하며 뿌리가 후두둑 잘라진다.
고, 고마워요. 하마터면 끌려갈 뻔했어요…….
카인: 정말이지, 갑자기 올 줄은.
오웬: 아하하, 방범 대책도 빈틈없네. 나, 여기서 살까.
레녹스: 아니, 오즈 님이 성채로 없앤다고 하셨으니 어렵지 않을까.
시노: 귀찮아. 전부 없애겠어.
에? 와아아아!
스노우: 이봐 시노! 이렇게 좁은 통로에서 큰 낫을 휘드르면 우리들의 목도 같이 날아가지 않는가!
아서: 스노우 님, 뒤에서 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스노우: 정말 골치아픈 성이군. 도대체 누구를 닮은 것인지…….
스노우는 빗자루로 빙글 돌더니 그대로 우리들의 선두로 뛰어올랐다.
스노우: 어쩔 수 없네. 내가 초최단거리의 길을 뚫어주마. '노스콤니아!'
아……!
스노우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폭음과 함께 시야가 확 트였다. 빛이 들어와 그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뜬다. 우리는 빨려들어가듯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갔다.
오즈: ……밖으로 나간 것 같군. 뿌리와 돌로 갑옷을 다져봤자 결국은 사상누각. 실체 없는 사념이다. 멸망한 마법 생물이여, 잠들어라. ……두 번 다시 깨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오즈: '복스노크'
샤일록: ……역시 스노우 님. 설마 벽째 파괴하고 출구로 가는 길을 개척해 버릴 줄이야.
스노우: 그쪽이 더 빠르지 않는가. 무사히 탈출해서 다행이네.
아하하…….
(오즈가 성질이 급한 건 스노우한테 물림받은게 아닌지……)
스노우의 마법 덕분에 간신힌 탈출한 우리는, 성을 올려다보며 오즈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인: 오즈, 괜찮을까……?
아서: 오즈 님이라면 괜찮아. 분명 무사히 돌아와 주실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즈라면 분명…….
샤일록: 이런, 이것은…….
이변을 눈치챈 것은 그때였다. 고대의 유적지였던 성이 빛을 뿜어내고, 외벽이 눈처럼 하얗게 감싸진다.
시노: 뭐야?
레녹스: 모르겠지만, 마치 눈이 내려 쌓여진 것 같네. 성 전체가 결정체처럼 빛나고…….
이윽고 빛이 튀었다.
아……. 성이…….
설탕과자가 와르르 무너지듯 성이 조용히 무너져 간다. 무너진 잔해가 터지고 분진이 흩날린다. 마치 영화의 자취를 나누듯이, 천천히 새벽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과 비슷한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울컥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엘마: 성이…….
엘마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바닥에 하얀 알갱이가 내려앉는다.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은 설경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눈이 모든 것을 흰색으로 바꿔놓는다.
10화
아서: 아! 오즈 님!
오즈……!
이윽고 오즈가 무너져가는 성에서 나타났다. 순백을 짊어진 그는, 도도하고 신성함마저 느껴진 채로 우리 곁으로 걸어온다. 그에게로 달려가려던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섣불리 다가가는 것이 막힐 만큼 황공하고 신성한 존재로 비쳤기 때문이다.
아서: 무사하셨군요, 오즈 님!
오즈: 성은 정화했다. 임무는 종료다.
레녹스: 이 눈은…… 어떻게 된 건가요?
오즈: 다시는 마법 생물이 부활하지 않도록 얼려 산산조각 내서 눈알을 만들었다.
스노우: 호호호. 역시 오즈구먼.
엘마: …….
엘마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잔잔하고 아까보다 차분하다. 그는 잠시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하늘과 조용히 대화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오즈: ……언젠가, 성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이 땅도 원상태로 돌아가겠지.
엘마를 향해 오즈가 말했다.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한게 아닌걸지도 몰라. 하지만 나에겐 엘마에게 말한 것처럼 들렸다.
엘마: ……관리인으로서 예를 표한다. 이것으로 주민들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지. 되찾아준 것은 여기에 와준 모두들…… 그리고 오즈, 당신이야.
오즈: …….
엘마: 내가 알던 오즈는 다른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고고하고 잔인한 존재다. 하지만 실제의 당신은 많은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여있어. 당신이 사람의 고리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놀랐어. 표범 같은 몸도 아니고, 송곳니도 없는 것 이상으로. 이런 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도저히 믿어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 여기서 느낀 것을 잊지 않을 거야. 가슴에 새기고 살 거야. 나는 이 눈에 진정한 오즈를 비추었으니까.
마음을 가다듬듯 엘마가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진실한 오즈의 모습을 보고,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가 아는 전설 전부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즈는 분명 고고하고 잔인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는 과거도 있다. 전설대로 거대한 성을 아주 쉽게 지워버리는 강인한 힘을 지녔지만, 전설과는 다른 마법사 오즈의 모습. 엘마가 그것을 보고 또 다른 두려움을 느꼈는지, 낙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엘마는 어딘가 상쾌한 표정으로 오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엘마: 나도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땅에서 살아갈 거야. 성이 없어져도 여기에는 전설의 오즈가 남긴 물건이 잔뜩 있어. 그걸 지키는 것이 우리 일족의 사명이니까.
오즈: …….
오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맞고 있었다. 머리, 어깨, 속눈썹에 눈이 쌓여져 간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지켜보았다. 전해 내려오는 흉악한 오즈와는 거리가 먼,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그 모습을.
스노우: 고생 많았네, 오즈여.
아서: 돌아가죠, 오즈 님!
오즈: ……아아.
샤일록: 그러면 젊은 관리인 씨, 뒷일은 부탁할게요.
엘마: ……고마워. 당신들의 사연은 주민들에게도 잘 전달할게. 오즈와 현자, 그 마법사들이 분명히 이 땅에 내려왔다는 걸.
시노: ……이 눈은 언제까지 내리지?
샤일록: 일시적인 것일 테니까, 곧 그칠 겁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덕분에 북쪽 나라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네.
오웬: 미지근한 공기에 질려서 딱 알맞아. 앞은 잘 안 보이지만.
확실히 맑은 날 보다는 날기 힘들 것 같지만, 경치는 너무 예뻐요!
오즈의 둥지에서의 임무가 끝난 후, 우리는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오즈의 빗자루에 태워지면서 조금 전까지 성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위에서 보면 성 부분만 뚫려있어. 정말로 없어져버렸구나…….)
엘마는 지금도 이 하늘 아래에서 성을 올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옛날의 꿈의 성을.
시노: 오즈의 성은 실물은 어떤 느낌이야? 저 유적지랑은 다른 느낌이지.
아서: 아아, 다른 느낌이네. 크고 훌륭하고 위엄이 느껴져. 마치 오즈 님 그 자체와도 같은 성이다.
시노: 크고 훌륭한건 좋네. 보물이 있으면 더 좋아.
아서: 하하, 오즈의 성이 많이 궁금하나보네. 그럼 다음에 다같이 가볼까?
스노우: 그건 좋구먼! 오즈의 성에서 홈파티일세.
레녹스: 홈파티인가요…….
샤일록: 후후후…… 상상만 해도 식은 땀이 나네요.
오웬: 진짜, 중앙의 마법사란…….
(반응이 확연히 엇갈리네……)
파티 플랜으로 달아오르는 면과 전전긍긍하는 면들. 정작 성주는 시큰둥한 얼굴로 모른 척한다.
오즈: 현자, 이것을.
……응? 스톨인가요?
오즈가 건네준 것은 둥실둥실 새하얀 스톨이었다. 마법으로 꺼내준 것 같아.
오즈: 춥지. 두르고 있어라.
감사합니다! 오즈도 춥죠? 같이 감지 않겠나요?
오즈: ……나는 마법사다. 추위 따위는 상관없어.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즈는 앞을 바라본다. 나는 스톨을 목에 감고 그 부드러운 온기를 소중하게 꺠물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무자비한 공포의 상징. 그건 오즈라는 마법사의 단 하나의 측면일 뿐이야.
(……오즈, 나도 좀 더 모두에게 전하고 싶어. 당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교훈 같은 무서운 전설이 아니라 착하고 돌봐주는 용감한 마법사 오즈의 이야기도.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북쪽의 마법사가 마법서에 있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있어서 당신은 마왕이 아니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 이 생각이나 기억이 퇴색되지 않도록. 현자의 서에 적어 전하자.
그것이 내 역할이자 소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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