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재앙의 자국
오즈: …….
스노우: 오즈.
화이트: 오즈여.
오즈: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파우스트의 상태는 어떤가.
화이트: 살 수 있는건가.
스노우: 우리들 중에서는 그대가 가장 강력한 마법사이다.
화이트: 그대가 무리라면 아무도 구하지 못해.
오즈: 마력이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은 약초로 그의 아픔을 억누르고 있다. 작별의 말이 있다면 고하고 와.
스노우: 매정하구먼…….
화이트: 슬프구먼…….
오즈: ……현자가 늦지 않는다면, 혹시…….
스노우: 오, 북쪽의 마법사들이군.
화이트: 이봐, 그대들. 어디에 가는건가.
미스라: 역할은 끝났어요.
스노우: 미스라. 동료가 죽어가고 있다.
미스라: 하아…… 그런가요.
스노우: 영혼 없는 대답이군.
화이트: 오즈보다 차가운 남자일세.
미스라: 역할을 마치면 자유에요. 어딜 가든 제 마음이잖아요.
화이트: 오웬, 그대도인가?
오웬: 후후…… 세계가 망한다면서? 모두들 두려움과 상실에 울고 있을 거야. 얼른 보고 와야지. 분명 즐거울거야.
화이트: 여전히 나쁜 아이구먼.
오웬: 하하…… 벌 줄래? 무서워, 무서워. 북쪽 마법사의 쌍둥이 선생.
스노우: 엉덩이를 때려도 그대의 성품은 변하지 않겠지.
화이트: 변하지 않겠지.
오웬: 잘 알고 있잖아. 그럼.
화이트: 가버렸다……. 응? 무슨 일인가, 미스라.
미스라: 아니, 오웬에게 뒤쳐져서…….
스노우: 뻔뻔하지만 애교가 많은 놈이로군.
미스라: 하아, 고맙네요.
브래들리: ……지금 사이에…….
스노우: 이봐, 브래들리!
브래들리: 발견됐다! ……쿠억!
화이트: 그대는 자유 방면. 나갈 수 없네.
스노우: 그대는 죄인이니까. 힘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화이트: 죄수의 감옥으로 돌려보내야 하네.
브래들리: 젠장! 이거 놔, 영감!
스노우: 영감 아니거든.
화이트: 영감 아니거든.
브래들리: 어린 척 하지마, 빌어먹을 영감!
스노우 / 화이트: 꺅꺅!
미스라: 오즈.
오즈: …….
미스라: 세계 최강의 마법사를 자처하면서, 이번 '거대한 재앙' 앞에서는 당신도 아기나 다름 없었네요.
오즈: ……내가 자칭한 것이 아니다.
미스라: 언젠가 제가 당신을 죽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를 자칭하겠어요. 각오하세요.
오즈: 네가 직책에 뽑힌 자가 아니었다면 지금 바로 죽였을거다.
미스라: …….
오즈: 비켜.
미스라: 언젠가, 다시.
오즈: …….
화이트: 미스라도 가버렸나……. 멍때리고 있으니 퇴장 역할로 맡아진걸세.
오즈: ……다물어라.
스노우: 어디에 가는 겐가.
오즈: 파우스트가 있는 곳으로.
스노우: 그랬었지. 슬프구먼…….
화이트: 슬프구먼…….
브래들리: ……파우스트……. 그 동쪽의 저주꾼, 못 살리는거냐.
스노우: 현자가 없으니…….
화이트: 현자가 없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으니 말일세…….
2화 생명의 등불
파우스트: ……우, 윽…….
화이트: 파우스트여.
스노우: 원하는 것은 없는가.
파우스트: ……윽……. 하……. 원하는 거……? 아무것도 없어…….
브래들리: 사양하지 말라고, 동쪽의 저주꾼. 마지막 순간까지 욕심내도 돼.
파우스트: …….
브래들리: 동쪽의 마법사는 음침하고, 특히 너는 저주꾼 같은 걸 했었으니까 어둡게 보여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동료를 감싸다가 죽을 뻔하다니 바보다. 바보 같은 놈은 싫어하지 않아.
화이트: 브래들리…….
스노우: 착한 아이구먼, 브래들리.
브래들리: 시끄러워. 착하다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우는 아이도 입을 다물게 하는 북쪽의 마법사로, 사상 최강의 흉악한 대도적단의 보스다.
스노우: 파우스트여, 뭔가 없는가.
화이트: 브래들리도 이렇게 말하고 있고, 사양하지 말게나.
파우스트: ……없어…….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경박한 인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을 망치겠지……. 큭큭큭…… 아하하하하하…….
브래들리: ……역시 음침해…….
스노우: 쉿, 다물게나.
화이트: 파우스트의 인생을 생각하면, 사람을 저주해도 어쩔 수 없네…….
파우스트: ……드디어, 길었던 시간이 끝난다…….
오즈: ……파우스트…….
파우스트: ……겨우, 해방 될 수 있어……. 하느님. 빨리, 저를 자유롭게…….
오즈: …….?
브래들리: 왜 그래, 오즈.
오즈: ……현자의 기척이…….
무르: 도착!
……우우우…….
무르: 어라? 현자님?
샤일록: 이런, 현자님. 괜찮으신가요? 눈이 돌고 있어요.
괘…… 괜찮아요…….
카인: 무르가 난폭하게 날아서 그래. 현자님, 손을. 저쪽으로!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
문을 열자 침대에 누운 청년을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파우스트 선생님이라고 불린 사람은 끝자락처럼 새하얗고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감겨진 붕대 밑에서 습하고 독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때때로 불꽃이 튀고 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에 나는 숨을 삼켰다.
스노우: 현자인가!
화이트: 현자가 왔네!
브래들리: 이 녀석이 현자? 진짜로?
오즈: …….
여러 사람들에게 주목받아서 떨렸다. 특히 그들 중심에 있는 청년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얼려버릴 것 같은 두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마치 가차없는 눈보라처럼, 온도가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차갑고 무서운 눈동자가 이쪽을 보는 순간, 휴우 하고 안도로 이완되어 갔다. 나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처럼.
오즈: ……늦지 않았군…….
샤일록: 파우스트의 상태는? 아직 살아있나요?
파우스트: ……살아있…….
샤일록: 다행이다.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에서 희생된 마법사는 10명. 11명은 끝도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에요, 파우스트.
히스클리프: 선생님! 파우스트 선생님……!
히스클리프가 침대에 매달려 다친 사람을 들여다보았다. 파우스트라고 불린, 다친 청년이 희미하게 눈동자를 연다.
파우스트: ……히스클리프…….
3화 현자의 힘
히스클리프: 이제 괜찮아요! 현자님이 와주셨습니다! 현자님이 도와주실 거에요!
파우스트: ……너에게, 상처는……?
히스클리프: ……윽……. 없습니다…….
파우스트: ……그래…….
희미하게 파우스트가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파우스트: ……다행이…….
하지만 미소의 모양이 되기 전에 파우스트의 움직임이 멈춘다. 히스클리프의 손을 잡으려던 파우스트의 손끝이 침대에 뚝 떨어졌다. 눈꺼풀을 뜬 채 파우스트는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히스클리프: 선생님……! 싫어. 죽지 말아주세요!
스노우: 안되네! 숨이 끊어지려고 하고 있어!
화이트: 현자여, 서두르는게야!
오즈: 현자여.
무서운 눈빛의 청년이 밤보다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내뱉는다.
오즈: 손을.
청년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즈: 나의 이름은 오즈. 중앙의 마법사다. 너의 힘을 빌리지.
…….
망설이면서 오즈의 손바닥에 손을 포갠다. 오즈의 차가운 손가락 끝에 움켜잡히는 순간, 작은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스노우: 성공일세!
화이트: 성공이구먼!
히스클리프: 선생님의 몸에서 연기가 사라져 가고 있어!
카인: 이름을 부르자! 파우스트, 파우스트……!
샤일록: 파우스트, 정신 차리세요.
무르: 일어나, 파우스트! 아직 잘 시간 아니야!
브래들리: 눈을 떠! 동쪽의 저주꾼!
오즈: …….
파우스트: ……윽…… 우…….
눈을 뜬 채 움직이지 않던 파우스트의 눈꺼풀이 꽉 감긴다. 시간이 되돌아온 듯 그는 고통으로 몸을 움츠렸다.
파우스트: ……너무해……. 모처럼 죽을 수 있었던 것을…….
아무래도 살은 것 같다. 내가 휴우 하고 숨을 내쉬는 동시에 함성이 터졌다.
카인: 의식이 돌아왔다! 다행이야……!
무르: 축하해!
샤일록: 이런이런. 한시름 놓았군요.
브래들리: 하하, 고집 센 놈이네.
히스클리프: 선생님……윽, 다행이다……. 우, 우우…….
스노우: 아아, 위험할 뻔했네.
화이트: 다행이구먼. 오싹오싹했어.
오즈: …….
어느새 오즈의 손이 멀어져 있었다. 탈진해 있는 내 앞에 쌍둥이가 온다.
스노우: 고생했네, 현자여.
화이트: 파우스트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대 덕분일세.
나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아무것도……. 서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히스클리프: 그렇지 않아요.
히스클리프가 나를 돌아보았다. 희미하게 눈물을 글썽이면서 똑바로 나를 바라본다.
히스클리프: 현자님은…… 중앙 나라의 대신이 아니라 저희의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여기에 와주셨어요. 그래서 파우스트 선생님은 살 수 있었던 거예요. 감사합니다…….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히스클리프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색하지만 따뜻한, 그의 고마움이 전해져 온다. 나도 휴우 하고 숨쉬며 웃었다.
4화 믿기 어려운 현실
파우스트가 다시 의식을 잃고, 이번에는 조용한 잠에 들었다. 단락하는 순간 하나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오즈가 말없이 방을 나가려고 한다.
스노우: 오즈여.
화이트: 어디에 가는 겐가.
오즈: 내 역할은 끝이다.
카인: 기다려 줘. 내년의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을 위해 우리들끼리 얘기하지 않을래? 이런 피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거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내년의 '거대한 재앙' 에 대비하고 싶어. 당신의 힘이 필요해, 오즈.
오즈: 거절한다.
카인: 무정한 말은 하지 말아 줘……. 우리는 같은 중앙의 마법사잖아. 적응이 안 되는 건 알아. 하지만, 같은 적에게 두 번이나 지지 않도록 서로의 힘을 알고 작전을 세워야 해.
오즈: 젊은 마법사들은 무리를 짓고 싶어 하지. 무리는 의미가 없다. 살아남는 자가 살아남을 뿐. 도태되기 싫으면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러라.
카인: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힘을 합치면 잃지 않고 산 동료가 몇 명이나 있었을 거다.
오즈: 환상이다.
카인: …….
오즈: 운명은 바꿀 수 없어.
카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어딘가 두려워하며 오즈의 등을 말없이 배웅한다. 오즈가 사라진 뒤, 불쑥 쌍둥이가 나타났다.
스노우: 이런이런, 잘도 말하는 군……. 자기는 역기로 운명을 바꿔놨으면서.
카인: 에?
화이트: 아니, 이쪽 얘기일세. 나는 카인이 하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네.
스노우: 나도일세. 역시 중앙의 나라에서 기사단을 묶고 있던 사람이군.
카인: 고마워. 하지만 오즈를 설득해야 하는데. 우리를 묶는 것은 그가 가장 적합하겠지.
브래들리: ……나는 반대다.
카인: 어째서.
브래들리: 어째서? 누가 오즈의 명령을 거역하겠어? 저 녀석에게 대들면 순식간에 망한 토마토처럼 되어버릴걸?
카인: 그러니 향하고 있는 거야. 너 같은 죄수나 미스라나 오웬도 오즈를 따를 테니까.
히스클리프: 미스라……. 오웬……. .……그 두 사람, 무서우니까…….
샤일록: 그들을 거느릴 수 잇는 것은 마력의 강도로 보아도 오즈 정도겠죠.
브래들리: 너희들은 어떻게 할거야, 영감들.
스노우: 호호호. 우리는 은거하는 몸일세.
화이트: 노인은 거친 일에서는 은퇴하지 않는다.
브래들리: 형편이 좋을 때만 잘난 척 하고…….
(아까 오즈라는 사람이 모두에게 힘을 빌려주었으면 하는 걸까. 그건 그렇고……)
나는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진정되는 순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불안감이 되살아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더 이상 촬영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어…….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야……)
혹시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힘껏 내 뺨을 때렸다.
아파…….
히스클리프: 현자님!?
브래들리: 왜 너가 너 자신의 뺨을 때리는데!?
……역시 꿈이 아니야…….
스노우: 전의 현자는 볼을 꼬집었었지.
전의 현자……?
화이트: 그렇네. 그대가 오기 전에 있었던 현자일세.
스노우: 좋은 걸 보여주마.
화이트: 우리를 따라오게나.
……하지만…….
스노우: 겁먹지 않아도 되네. 자, 그대의 손을 잡아주마.
화이트: 불안할테니까 말이지.
가…… 감사합니다.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이끌려, 나는 방에서 끌려 나왔다.
5화 일말의 불안
저기, 스노우 씨. 화이트 씨…….
스노우: 우리들에게 경칭은 쓰지 않아도 되네. 현자란 그런 거니까.
그러면…… 스노우, 화이트. 안내라니, 어디로 가고 있나요?
화이트: 현자의 서가 있는 곳일세.
스노우와 화이트가 나를 안내한 곳에는 무수한 책들이 장서되어 있었다. 역사와 지식의 양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압도당한다.
……이건…….
스노우: 전부 현자의 서지.
이게 전부……?
화이트: 그렇네. 이계에서 온 현자들이 남긴 책들일세.
스노우: 이것이 바로 전의 현자가 쓴 현자의 서이다.
화이트: 우리들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씌어져 있지만, 그대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묵직하고 무거운 훌륭한 책을 건네받아 나는 긴장했다. 고동을 앞당기면서 표지를 연다. 거기에 적힌 것은 일본어였다.
10월 30일. 할로윈의 꿈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않아. 즐거운 꿈이고, 뭐 됐나.
11월 3일. 마녀가 귀엽다. 퍼레이드를 했어. 모두의 인기쟁이가 된 것 같아서 기분 좋네.
11월 10일. 아무리 그래도 꿈이 너무 길어. 설마 꿈이 아닌건가?
어떻게 하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지?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 라멘과 오뎅토레이가 먹고싶어…….
(……이건……. 역시, 꿈이 아니야……?)
심한 동요를 느끼며 나는 서둘러 페이지를 넘겼다. 일기와 같은 것들이 계속되고 나서, 나약한 글씨로 덩그러니 쓰여진 글자에 심장이 움켜잡힌다.
무리다. 돌아갈 수 없어. 나는 평생 여기서 사는 거야. 마법사들에게 속았어.
(속았어?)
나는 파랗게 질려 쌍둥이들을 돌아보았다.
스노우: 응?
화이트: 으응?
스노우: 무슨 일이지?
화이트: 역시 읽을 수 없던 건가?
미소를 띄고 다가오는 두 사람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평생 못 돌아간다니. 마법사에게 속았다니…… 나도?)
쌍둥이는 얼굴을 마주보고는 나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스노우: 왜 그러는 겐가.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선.
화이트: 그대가 어린 아이라면, 우리가 어른이 되어 주마.
스노우 / 화이트: 하나, 둘…….
서로 손을 잡고 쌍둥이가 목소리를 맞춘다.
그러자 비오는 날의 죽순처럼 그들은 팟하고 자랐다. 늘씬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나를 내려다본다.
스노우: 자, 현자여.
화이트: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6화 외톨이
스노우와 화이트는 어쩌면 나를 위로하기 위해 어른의 모습이 되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조금 전까지 이상한 마법의 세계를 조금은 즐기고 있었을 터.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 순간, 갑자기 어른이 된 그들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스노우: 현자여!?
화이트: 왜 그러는 겐가!?
아…… 그야, 어린 아이…….
스노우: 모습을 바꾸는 건 식은 죽 먹기일세.
화이트: 너무 놀라게 해버렸나.
나는 눈썹을 숙이고 말하는 것을 꽤 망설이고 나서 물었다.
……속인 건가요……?
스노우와 화이트는 신기하는 듯 웃었다.
스노우: 속이지 않았네. 어린아이의 모습이 본래의 우리의 모습이지.
화이트: 마법사는 오래 사니까 말일세. 마력이 성숙해졌을 때의 모습으로 육체가 멈춰버리는게야.
스노우: 하지만 가끔 어른이 되는 것도 좋은 법이지.
화이트: 어떤가. 꽤 미청년이 아닌가.
스노우와 화이트는 내 상태를 살피고 있는지 양쪽에 앉아 말없이 손을 잡았다.
스노우: 미안하구먼, 현자여. 우린 쌍둥이일세. 고독을 몰라.
화이트: 불안하게나마 손을 잡아보았으나 그대의 고독을 잘 알지 못하였다.
스노우: 불쌍하게도……. 집에 가고 싶겠지.
화이트: 우리도 돌려보내는 방법은 모르겠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구먼.
위로하는 목소리도 눈빛도 따뜻하다.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이 생각나서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두 사람이 꼬옥 손을 잡는다.
스노우: 그대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이렇게 있지.
화이트: 우리는 쌍둥이일세. 고독을 잘 몰라. 하지만 서로를 잃었을 때 처음 알게 되었네.
…….서로를 잃어?
스노우: 화이트가 죽어버린 걸세. 화이트는 살아있지 않아. 귀신이지.
나는 놀라서 화이트를 바라보았다. 화이트는 변함없이 웃고 있었다. 쥐는 손에 감촉도 없다. 그런데…….
화이트: 그렇네. 나는 살아있지 않아. 스노우가 영혼을 붙잡고 잔상을 간직하고 있을 뿐.
스노우: 그 정도로 혼자는 견디기 힘들었네. 그대는 기특하구먼. 외톨이라도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아.
화이트: 외롭고 무서웠을 텐데, 파우스트를 구해 주었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하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잘못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을 펼친다. '마법사에게 속았다' 라고 쓰여진 페이지 다음을 넘기니 '착각이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헷갈리게……!
스노우: 왜, 왜 그러는 겐가?
화이트: 이상한 말이라도 씌어져 있었나?
'별로 속지 않았다. 비관적이게 되어서 의심을 하게 됐어요. 마법사 친구들 미안. 진심 미안!'
(예전의 현자님……. 뭔가 상당히 얼빵한 사람이네……)
저기…… 이 현자의 서를 쓴 예전의 현자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스노우: 요령있는 청년이었지. 검은 머리로, 수다를 자주 떨었었네.
화이트: 리먼이라고 했었구먼. 원래 세계에서는 잔업수당이라는 것을 찾고 있었다고 하던데.
7화 일본어 매뉴얼
스노우: 예전의 현자가 있던 길드에서는 구하기 힘든 보물인 것 같았군.
화이트: 우리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소속되어 있던 길드도 우리의 이름 같았으면 하고 불편했었지.
(……블랙기업에 다녔던건가?)
'여러가지 돌아갈 방법을 찾아봤지만, 좀처럼 발견되지 않아서 다음 사람을 위해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있던 회사에서 전 담당자가 인계하지 않고 그만두었기 때문에 매뉴얼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어 밖에 쓸 수 없어서 그 점은 죄송합니다. 아마 일본어 현자의 서는 이것이 최초일 것 입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 중앙 나라의 아서 왕자가 찾는 데 협조해 주겠다고 했다. 아서 좋은 녀석. 동생 같아. 귀여워.'
……아서 왕자…….
스노우: 아서를 알고 있나?
아, 아뇨……. 이 책에 써져 있었어요. 두 사람은 알고 있나요?
화이트: 잘 알고 있지. 아서는 마음씨 좋은 애일세. 여러 가지로 전의 현자를 염려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면 아서 왕자를 만날 수 있나요?
스노우와 화이트는 눈을 마주보고 웃었다.
스노우: 아서는 중앙 나라의 왕자일세. 그대가 대신을 따라갔다면 바로 만날 수 있었겠지.
화이트: 대신의 상태는 어땠었나? 마법서에 간다고 하자 화내지는 않았나?
화냈어요…….
스노우 / 화이트: 그랬겠지.
그리고…… 무르가 쥐로 만들어버렸어요.
스노우: 호호호, 엄청 화냈겠군.
화이트: 인간이 화를 낸다고 해도 우리는 두렵지 않지만.
득의양양한 두 사람에 이끌려 나도 웃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옆에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조금 혼란스러워서…… 실례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스노우: 됐네 됐어. 그대의 마음이 가라앉았다면 무엇보다 다행일세.
화이트: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된 상태. 그대는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됐다. 불안한 건 당연한거지.
저기…… 저는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아서 왕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씁쓸하게 웃었다.
스노우: 그런가…… 그대가 남아 준다면 무엇보다도 좋을 텐데…….
화이트: 가족이나 친구가 그리울 수 밖에 없겠지. 아서를 만날 수 있도록 우리도 도와주겠네.
감사합니다…….
스노우: 카인에게 물어보면 좋을걸세. 카인은 아서와 같은 중앙 나라의 기사니까.
화이트: 과연 카인도 피로과다로 오늘 밤은 잠들어 버렸지만. 내일이라도.
카인에게……. 알겠습니다.
스노우: 그대도 쉬는 게 좋네. 현자의 방까지 안내하지.
감사합니다. 저, 이 책 빌려도 괜찮을까요?
화이트: 현자의 서? 당연히 그건 현자의 것일세.
스노우: 여긴 전의 현자가 쓰던 방일세.
화이트: 아직 어질러져 있지만, 적당히 치우고 느긋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네…… 고마워요.
스노우: 잘 자.
화이트: 잘 자게나.
안녕히 주무세요…….
혼자가 되어 방을 둘러본다. 생활감이 있는, 누군가가 있었던 기척이 남는 방이다.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침대 위에서 현자의 서를 펼친다.
8화 달빛에 그을려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의 글을 읽고 있자니 기분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전부 흝어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과 아서 왕자의 이름이 있는 곳을 찾아서 진지하게 읽었다.
'아서 왕자에게 부탁했더니 궁중 요리사가 라멘을 끓이게 해줬어. 너무 맛있어. 조금 울었다.'
'아서 왕자가 희소식을 가져왔다. 아주 옛날에는 이세계에서 몇 번이나 찾아오고 돌아오는 놈이 있었던 것 같다.'
'아서 왕자와는 이야기가 잘 통한다. 그 녀석이 마법사였다면 여기 삶은 더 편했을 텐데. 오즈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서가 올 때마다 없어져서 절대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다.'
……오즈와 아서 왕자는 사이가 안 좋은걸까…….
읽는 동안 졸음이 밀려와 나는 책을 덮었다. 원래 세계와 이 세계를 오가던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방 한쪽에서 허브의 좋은 향기가 풍겨오고, 창밖에서는 부드러운 바람소리가 난다. 눈부시게 밝은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큰 달……. 이 세계의 달은 저렇게 큰 걸까……. 지면에 추락할 것 같아…….
이윽고 나는 잠에 빠졌다.
무르: 아아…… 드디어 만났는데. 벌써 헤어지다니 섭섭해. 안녕, 아름다운 너…….
샤일록: 무르. '거대한 재앙' 을 향해 그리운 듯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 겁니다.
무르: 샤일록.
샤일록: 이번의 흉사는 모두 당신 탓이 아닌가요? '거대한 재앙'을 사랑한 이단의 마법사 무르.
무르: …….
샤일록: '거대한 재앙' 을 너무 생각해서 당신의 영혼은 산산조각이 났어. 그래도 아직 질리지 않고 달을 사랑하고 있지.
무르: 그야 좋아하는 걸! 반짝반짝한게.
샤일록: ……그것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흉사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당신이 너무나 애타게 타오르기 때문에, 저 달은 예년보다 강한 힘으로 이 세계에 다가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당신을 만나러 온거라면. 당신이 이 세계를 떠나면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는 사실을 다른 마법사들에게 털어놓으면 당신을 처형하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무르: 같은 말을 많이 쓰네. 할지도 모릅니다 라는 말을 좋아해?
샤일록: 비꼬는 건가요?
무르: 히니쿠? 아침으로 먹는 거야?
샤일록: 길고양이 같은 당신도 싫지는 않지만 예전의 당신이 그립군요. 위대한 철학자 무르. 그 생각은 누구보다도 새롭고 누구보다도 오래된 지식을 알고 있었다. 질투심마저 들 정도로 총명하고 고결했어.
무르: 그것보다도 밤하늘을 올려 봐! 저기, 예쁘지?
샤일록: 저 달을 생각하는 건 그만두세요.
무르: 아아, 아름다워…….
샤일록: 그렇게 하면 부서진 영혼이 돌아올지도 모르죠. 제발, 세기의 학자여. 달의 나라로 끌려가지 말아줘.
무르: 사랑스럽고 무서운 나의 재앙. 다음에 또 봐. 사랑하고 있어, 영원히.
샤일록: ……후후. 설득 같은 건 소용이 없겠네요.
무르: 무리도 좋아해!
샤일록: 말솜씨가 좋은 것만 변하지 않아. 얄미운 무르.
무르: 아하하하!
샤일록: ……내일부터 어떻게 될까요. 잃어버린 동료들 대신, 어떤 마법사들이 찾아오는 걸까…….
'魔法使いの約束 > 메인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장 [마법관에 불을 질러라!] (0) | 2021.09.06 |
---|---|
5장 [달에게 선택받은 문장] (0) | 2021.09.06 |
4장 [마법사가 있는 세계] (0) | 2021.09.06 |
3장 [거대한 재앙] (0) | 2021.09.05 |
1장 [당신과 친구가 된다면] (0) | 2021.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