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보름달이 뜬 밤에 이끌려
오늘 밤은 바람이 많이 부네……. 그래서인지 고양이가 여기저기서 울고 있어. 고양이 캔을 싸게 살 수 있었으니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 댁에 들르자. 쿠로와 하나코는 참치고, 다마는 사사미, 토라는 연어 꼬리, 할아버지에게는 시니어용. 근처니까 가끔 신세를 지고 있지만, 어느 고양이도 개성적이고 귀엽지.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말했었나. 바람이 많이 불면 고양이가 떠든다. 밝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무슨 신기한 일이 생긴다고.
와아……. 대단해. 큰 보름달……. 평소보다도 빛도 눈부신 것 같아. 이만큼이나 밝고 크면 휴대폰 카메라로도 예쁘게 나올 것 같은데. 초점을 맞추고……. 됐다.
큰 달을 사진에 담고, 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했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불러서 열린 문에 올라탄다.
달, 예쁘게 찍혔네. 이따가 고양이 캔 가져갈 때 할머니에게도 보여줘야지.
……어라? 뭔가 이상한데?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느 엘리베이터의 인테리어가 다르다. 덜컹덜컹 울리는 소리도 낯설다.
무슨 일이지……. 맨션, 공사같은거 했었던가…….
무르: 여어.
……!?
나는 눈을 의심했다. 모자가 허공에 뜨고, 심지어 말을 건다.
무르: 어서 오세요, 현자님. 엘리베이터의 행선지는 제가 안내해 드리죠. 저는 서쪽 마법사 무르. 행선지는 '거대한 재앙' 에 의해 부서져 버린 세계.
무르: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랑스러운 현자님.
우왓……!?
모자 밑에 예의 바른 신사가 나타난다. 이쪽의 놀라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무르: 앞으로 현자님을 조금 귀찮을 일에 말려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귀찮은 일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연애 사태, 명예로운 전쟁, 가족, 친구, 보복, 은혜……. 이번에는 그중에서 가장 귀찮은 문제! 세계 구제. 당신이 그 일을 도와 주었으면 합니다.
……뭐……. 뭐야, 이거……. 꿈을 꾸고 있는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무르라고 자칭한 청년이 피식 웃었다.
무르: 거의 다 왔습니다. 세상도 저도 상당히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당신은 분명 저에게 실망하실 거에요. 그래도 너와 친구가 된다면, 나는 정말로 기뻐. 총명한 현자님. 당신과 만날 때를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계는 상관없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은 귀찮으니까요.
무르: 그저……. 이 세계의 진실을, 당신이 알아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앗…….
무르의 모습이 사라지자 엘리베이터가 정지했다. 천천히, 문이 열린다…….
???: 현자님……!
에…….
병사: 현자님이 오셨다! 마법사들이 소환에 성공했어!
병사: 현자님 만세!
병사: 만세!
에!? 뭔가요, 이거!?
드러몬드: 자자, 이쪽으로 현자님. 잘 오셨습니다. 저는 중앙 나라의 마법관리 대신, 드러몬드라고 합니다.
콕로빈: 저는 중앙 나라의 서기관 콕로빈 입니다.
드러몬드: 자, 현자님! 마법사 녀석들이 여기로 오기 전에 중앙의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에!? 에, 그러니까 기다려주세요. 모두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몰래 카메라? 신형 VR 체험?
드러몬드: 현자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자님은 '거대한 재앙' 과 싸워 세계를 구해주시죠.
싸워서 세계를 구한다!? 그런 게임인가. 저희 맨션이 타이업 한건가요? 어디선가 카메라가 돌고 있는 건가……. 곤란한데요, 그런 거…….
드러몬드: 걱정 마세요! 위험한 건 없습니다! 싸우는 건 마법사들이니까요!
마법사?
드러몬드: 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뭐, 고양이처럼 말을 듣지 않는 무리입니다. 어쩐지 옛날부터 이계에서 온 현자의 말밖에 안 듣거든요.
병사: 드러몬드 님! 보고가…….
드러몬드: 뭐!? 마법사들이!? 큰일이다. 그 녀석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서 현자를 구슬려……. 에헴! 현자님과 친해져야지! 현자님, 중앙 나라의 성으로 서둘러 갑시다!
기다려 주세요! 전혀 의미를 모르겠어요!
협박하듯 주위에 둘러싸여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 RPG 같은 건 잘 안해서 좋은 리액션 못해요! 데리고 갈거라면 다른 분을…….
드러몬드: 힘을 써서라도 데리고 간다! 너희들!
……!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순간, 군사들이 칼을 뽑아들었다.
콕로빈: 드러몬드 님, 너무 심한게…….
드러몬드: 시끄러워! 나쁜 건 마법사들이다!
은빛 검이 뒤숭숭하게 다가온다. 칼날의 반짝임에 나는 파랗게 질렸다.
(위험해! 이 사람들, 조금 이상해!)
그때, 창 너머 하늘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빗자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나는 두 청년들이.
(하늘을 날고 있어……!? 뭐, 뭐야 이거……. 창밖도 가상 영상…….?)
어딘가에 있는 장치를 찾으려고 눈을 집중시켰을 때……. 그들이 창문으로 내 눈앞에 사뿐히 내렸다. 진짜 바람을 일으키면서.
(에……?)
요술처럼 순식간에 빗자루를 치우고, 그들이 내 양쪽에 선다.
카인: 네 말이 맞네, 히스. 설마 마법 관리 성 놈들이 현자를 차지하러 오다니.
히스클리프: 말했잖아. ……인간들은 우리를 믿지 않아.
나는 놀라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키 큰, 대담무쌍한 청년이 나를 돌아본다. 그 눈동자는 좌우 색이 달랐다.
카인: 당신이 새로운 현자님인가?
에……?
카인: 나는 중앙 나라의 마법사 카인. 너를 지키는 기사이기도 해. 너의 이름은?
아……. 아키라예요…….
무심코 이름을 대답하자 카인이라는 청년은 입꼬리를 들어 웃음을 지었다.
카인: 아키라 님, 잘 부탁해. 일단 이 녀석들을 어떻게든 할까.
그렇게 겁 없이 웃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는다. 다른 군사들의 검과는 헌격한 장식와 깔끔한 칼날의 훌륭한 검이었다.
(이…… 이 검, 진짜……?)
내가 긴장을 느끼자 군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고 있었다.
병사: 카, 카인 기사단장……. 카인 기사단장이다……!
드러몬드: 에에잇, 카인 전 기사단장이다! 이제 너희들의 지휘관이 아니야! 카인! 대신인 나에게 칼을 겨누다니, 반역죄로 처벌하겠다!
카인: 나도 노인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우리의 현자님에게 이상한 짓을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미안하지만 봐주지는 않아.
드러몬드: ……윽.
카인: 어이어이, 망설이지 마. 적의 기백에 먹히지 말라고 가르쳤잖아? 마음을 잡고 대해. 상대가 나여도 말이야. ——자, 덤벼.
2화 손을 떼는 자
드러몬드: 카인, 몇 번을 말해야 아는건가! 여기 있는 병사는 네 부하가 아니야! 구령은 내가 내린다!
카인: 섬세하네…….
드러몬드: 네가 대충대충인거다! 그래서 기사단장 자리에서 쫓겨난 거지!
카인: 알았어, 알았어! 뭐든 좋으니까 빨리 해 줘. 자, 각하.
드러몬드: 커흠……. 모두, 덤벼라……!
병사: 우오오오……!
와아 하고 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카인을 향해 달려든다. 갑작스러운 난투에 당황하면서, 카인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작정 덮쳐오는 군사들의 검을 가볍게 피하며 여유롭게 때려눕혀 간다.
(대단해……. 멋있어…….)
그때, 누군가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팔을 잡아당겼다. 싸늘하고 차가운 손가락이다.
히스클리프: …….
에…….
히스클리프: 아……. 동쪽 나라의 마법사 히스클리프입니다. 따라와 주세요.
히스클리프라고 밝힌 소년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TV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예쁜 소년이었다. 정교한 세공으로 만들어진 미술품 같아. 내 시선에서 도망치듯 히스클리프는 고개를 숙였다.
히스클리프: 이쪽으로.
난장판이 된 자리에서 도망치듯 히스클리프를 따라 어두컴컴한 계단으로 향한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우리 맨션에 나선형 계단 같은 건 없어.
아……. 저기, 질문해도 되나요?
계단 중간 쯤에서 히스클리프가 어깨 너머로 돌아본다. 선명한 눈동자는 마치 값비싼 보석과도 같다. 그러다가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히스클리프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윗층에서 싸우고 있는 카인도 피로가 심해 보인다.
……괜찮나요? 안색이 많이 안 좋아요…….
갑자기 히스클리프가 비틀거린다. 나는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이마를 누르며 히스클리프는 괴로운 듯 어깨로 숨을 쉬었다.
히스클리프: ……죄송합니다……. 이제 거의 마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마력……?
히스클리프: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을 막 끝낸 참이라……. 카인도, 한계…….
병사: 놓치지 마! 잡아라!
……윽.
계단 위에서 군사들이 쫓아온다. 히스클리프는 내 손을 끌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병사: 협공이다! 이 정도면 도망치지 못하겠지!
히스클리프: ……괜찮아요, 현자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안색이…….
히스클리프는 가슴 앞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희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어느새 손바닥 안에는 회중시계가 쥐어져 있었다.
(뭐, 뭐야!? 지금 거..............)
회중시계를 움켜쥐고, 히스클리프가 조용히 눈꺼풀을 감는다.
히스클리프: '레이세바이브러프 스노스'
다음 순간——, 군사들은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뭔……!?
히스클리프: ……윽.
괘, 괜찮나요!?
어지러운 듯 히스클리프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는 필사적으로 일어났다.
히스클리프: ……괜찮습니다……. 서두르죠. 마법은 금방 풀러버려. 서두르지 않으면, 파우스트 선생님이…….
히스클리프를 부축하면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필사성은 몰래카메라의 연극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군사들의 칼의 날카로움도, 피로를 숨기며 싸우는 카인의 진지함도.
카인: 히스, 무사해!?
히스클리프: ……괜찮아!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샤일록: 오늘 밤의 바람은 피부에 달라붙는군요. 마치 후탈한 정인의 손가락과 같은…….
샤일록: 중앙의 탑이 보이기 시작했네요. 카인과 히스클리프는 무사할까요. 자, 한눈 팔지 말아주세요. 두고 갈거에요. 무르.
무르: 지금 갈게!
히스클리프: 현자님, 이쪽으로.
네…….
인형처럼 굳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영문을 모른 채 히스클리프의 뒤를 따라간다. 조금만 더 가면 계단 아래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을 때, 움찔하고 군사의 손가락이 흔들렸다.
히스클리프: ……윽, 마법이 풀린다…….
직후, 군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 ……현자를 잡아라! 어라? 없어? 어디로 간거야!?
병사: 바보! 네 뒤다!
병사: 어느 사이에!? 놓칠까 보냐……!
움직이기 시작한 군사들이 우리를 에워싼다.
3화 매서운 눈초리
그때, 창문에서 이상한 향기의 하얀 연기가 흘러 나왔다. 와인 같은 아찔하고 달콤한 향이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조금 전에는 아무도 없었던 창가에 청년이 걸터앉아 있었다. 상냥한 듯이 미소 지으면서, 어딘가 요염한 색기를 풍기고 있다. 입가에 문 긴 파이프 때문일지도 모른다.
샤일록: 안녕하세요.
히스클리프: 샤일록!
샤일록: 안 되는 사람. 카인과 둘이서 엉뚱한 짓을 하고……. 하늘을 나는 것도 겨우 아니었나요.
히스클리프: 하지만, 파우스트 선생님이…….
샤일록: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저희에게 맡기세요.
창백해진 히스클리프의 뺨을 어루어만지며, 청년은 히스클리프의 어깨 너머로 내게 미소 짓는다.
샤일록: 처음 뵙겠습니다, 현자님. 저는 서쪽 나라의 마법사 샤일록.
…….마법사…….
동요하는 나에게 샤일록은 방긋 웃었다. 윤기나는 몸짓으로 파이프를 입에 문다.
병사: 마, 마법사가 또 늘었다!
병사: 기죽지 마!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에서, 힘을 다 써버렸을 터……!
샤일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우, 하며 파이프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하얀 연기가 푹푹 풍기며 포도주 같은 달콤한 향기를 방 안으로 퍼뜨린다. 군사들은 술에 취한 듯 갑자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병사: 후후……. 어라라……? 뭔가 즐거워졌어…….
병사: 헤헤……. 따뜻해 보이는 침대다……. 이제 자야지…….
순식간에 군사들은 기분 좋은 표정으 지으며 벌렁벌렁 바닥에 쓰러져 간다. 높이 다리를 다시 꼬고, 샤일록은 파이프에서 입을 뗀다.
샤일록: 좋은 꿈을.
그때, 계단 위에서부터 카인이 달려왔다.
카인: 샤일록, 살았어!
샤일록: 다음에 한 턱 쏘세요.
카인: 한 턱이 아니라 하룻밤이나 어울려줄게. 현자님, 가시죠.
카인이 손을 뻗어도 나는 금방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을 잡아도 좋을지 망설인다.
(가시죠, 라니. 어디로? 이 사람들 뭐야? 여긴 어디고?)
떠오른 나의 불안을 놓치지 않고, 카인이 걸음을 멈춘다. 그는 지친 기색 없이 상냥하게 영조하였다.
카인: 아아……. 미안해. 현자님은 이계에서 왔으니 아무것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따라오라고 하면 무서울거야. ……에, 그러니까…….
샤일록: 카인. 이 세계나 현자의 역할에 대해서 전부 설명할 틈은 없어요.
카인: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를 데려가는 것은 기사가 할 짓이 아니야.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다음, 똑바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카인: 아키라, 단순한 설명을 할게. 우리는 너의 힘이 필요해. 당신의 힘을 빌려주었으면 해. 왜냐고 하면, 우리들이 졌기 때문이야. 해마다 쉽게 이기던 승부에서 패배해버렸어. 방심할 틈도 없었어. 수염 영감들은 우리가 일을 적당히 했다고 생각해 화를 내고 있지.
카인: 하지만 그렇지 않아. 왠지 모르게 우리는 져서 동료를 반이나 잃었어. 더 이상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 당신의 힘을 빌려주었으면 해. 물론 그건 우리의 제멋대로인 요청이야. 이 세계는 당신의 세계가 아니고, 너도 하고 싶은 일이 있겠지. 넌 거절할 권리가 있고, 그건 아무도 탓하지 못해.
카인: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이 필요해. 네가 같이 와서 도와준다면, 뭐든지 할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의 용기와 성의를 보여줄게. 이 몸으로 갚을 수 있는 만큼의 감사와 예를 표할게. 이 맹세에는 형체가 없지만, 제발 부탁이야.
카인: 우리들을 믿고, 우리에게 힘을 빌려줄 수는 없겠나.
4화 누구를 위해
카인이 말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진지함과 성실함은 말과 눈빛에서 힘차게 전달된다. 꿈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만은 진짜 같았다. 그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다면 카메라 저편에서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힘을 빌려준다는 건, 뭘 하면 되나요?
히스클리프: 선생님을……. 파우스트 선생님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파우스트 선생님……?
카인: 우리들의 동료야. 죽어가고 있어. 너가 있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죽어가고 있다니, 어째서…….
샤일록: 동료를 감싸주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은, 제가 신세를 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도 죽었을 거에요…….
죽어가는 동료……. 머릿속으로 반복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붉게 물들어가는 히스클리프의 눈에 그의 슬픔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히스클리프: ……윽, 부탁드려요……. 부디, 선생님을 구해주세요…….
심호흡을 하고, 난 대답했다.
알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팟하고 히스클리프의 얼굴에 안도와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웃는 아이였구나, 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미소였다.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현자님…….
드러몬드: 기다려! 마법사 녀석들! 현자는 내주지 않을 거다……!
그때, 수염 아저씨와 연약해 보이는 청년이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야단치듯 큰 소리로 외쳤다.
드러몬드: 현자님! 속으면 안됩니다! 마법사는 거짓말쟁이에요! 망설임 없이 사람을 속이고, 이상한 힘으로 마음을 조종합니다! 마법사를 믿어서는 안 돼요!
나는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카인은 눈썹을 찌푸리고, 히스클리프는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다. 샤일록만이 웃고 있었다. 고개를 기울고, 파이프를 흔들면서.
샤일록: 저희들이 정직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거짓말을 한 것이 되겠군요. 당신이 말하는 거짓말쟁이와 똑같이.
드러몬드: 나는 나라를 위해 섬기고 있는 몸이다! 불성실한 너희들과는 달라!
샤일록: 입 다무세요, 드러몬드 님. 당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지만, 사실은 저희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말에서 전해지는 것은 당신이 저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뿐. 당신은 저희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저희가 거짓말을 하면 안심할 것입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저희가 거짓말쟁이라고 믿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진실과 거짓말에 의미가 있나요?
드러몬드: …….에잇, 무슨 영문인지 모를 말을! 현자님! 어쨌든, 그 녀석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현자님은 저희들의 말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아저씨는 말을 들으라고만 하고 있다. 카인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을 위해서라며 나에게 제발 부탁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카인들을 돌아보았다.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을 따라갈게요.
5화 시작 신호
카인: 정말로!?
히스클리프: 괜찮나요!?
샤일록: 둘 다, 놀라지 마세요. 모처럼 현자님이 믿어주셨는데.
쓴웃음을 짓는 샤일록을 따라 뒤늦게 카인과 히스클리프도 미소를 지었다.
카인: 기뻐서 그래. 초면인 사람인데, 마법사를 믿어주다니.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현자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거에요!
드러몬드: 무…….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아시겠나요, 마법사라는 것은 성악하고, 거만하고, 제멋대로에…….
히스클리프: 그 이상 한마디라도 해봐. 거만한 마법사가 널 저주할 테니까.
드러몬드: ……윽.
히스클리프: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은 바로 그 성악하고 거만한 마법사다. 너희 같은 놈들을 지키기 위해서 선생님도 동료들도 쓰러졌잖아!
드러몬드: 그……. 그건…….
콕로빈: 마, 말이 심했어요. 대신.
드러몬드: 너까지 말하지 마! 이렇게 된 이상, 힘을 써서라도 너희들을 잡아주마!
샤일록: 헤에, 어떻게? 모두들 꿈 속인데요.
드러몬드: 후후……. 바보 녀석! 밖에는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지쳐버린 너희들은 상대도 안 돼! 그것도 마법 과학 무기를 장비한 대군…….
무르: '에아뉴 랑블!'
……!?
갑자기 아저씨가 사라졌다. 사라지더니 아저씨가 서 있던 자리에 아저씨의 옷을 입은 쥐 한 마리가 있다.
드러몬드: 츄츄——!
쥐의 멱살을 잡고, 창문으로 들어온 한 청년이 히죽 웃었다.
무르: 냐옹, 먹어버린다.
나는 놀라서 숨을 삼켰다. 나타난 인물이 아까 엘리베이터에 있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샤일록: 어디에 있었나요, 무르.
무르: 달과 이별을 하고 왔어!
카인: 달에게? 여전히 특이하네.
나는 당황했다. 얼굴도 이름도 같지만 아까 그 신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아까는 지적인 신사였는데, 지금은 장난 스러운 도둑 고양이 같아.
히스클리프: 얘기는 나중에. 모두, 서둘러!
무르: 알았어!
드러몬드: 츄——! 츄——!
무르가 쥐를 내던진다. 콕로빈이 황급히 캐치한다.
콕로빈: 저기, 대신은……!?
샤일록: 반나절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와요.
무르: 현자님, 나는 서쪽의 마법사 무르야! 현자님은 날아본 적 있어?
날아……!? 에……!?
무르: 그러면 나랑 가자! 이리 와!
와앗……!?
카인: 이봐, 무르!
무르: '에아뉴 랑블!'
이상한 말을 무르가 내뱉자——, 무르의 수중에 어디선가 빗자루가 나타났다. 무르는 빗자루를 한 손에 들고, 내 손을 끈 채 달려간다. 그리고 그대로 근처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
두둥실 몸이 공중에 뜬다. 그리고 힘차게 낙하했다.
6화 꽃조각의 물결
와아아아아아앗……!
밤의 찬바람이 쌩쌩 불어온다. 나는 높은 탑에서 곤두박칠 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내 눈앞에, 똑같이 거뚜로 된 미소의 무르가 나타났다.
무르: 저기저기, 죽을 거라고 생각해? 그거 두근두근거려? 설레?
카인: 무르! 적당히 해! 현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할거야!?
무르: 어떻게 해?
카인: 나한테 묻지 마!
무르: 알았다니까! 현자님, 날 잡아!
무르의 팔을 잡자, 무르는 재주 있게 빗자루의 대를 넘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바람을 가르며 밤하늘을 날아간다. 주뼛주뼛 내려다본 세계는 본 적도 없는 숲과 성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 어디……!?
무르: 뭐 잃어버렸어? 주머니 속은 확인했어?
이, 일본. 도쿄는 어딘가요!?
무르: 글쎄, 어디서 새로운 걸 찾으면 되지 않아? 간다——!
카인: 무르! 너무 달리지 마! 현자님을 모시고 있다고!
무르의 몸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새처럼 날아간다. 뒤를 돌아보니 도쿄 타워와 비슷한 타워가 캄캄한 세계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뛰어내린 것이다.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공포와 고양감에 가슴의 고동이 빨라진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 마법사다.
(설마, 진짜 마법사……!?)
카인: ……! 조심해! '꽃조각의 물결' 이다!
히스클리프: 밤하늘의 일면에, 높은 파도같은 꽃잎의 무리가……. 이것이 세계를 수복할 때 나타나는 '꽃조각의 물결'!? 이거, 피하는 편이 좋은거야……!?
무르: 파고들자! 만져보고 싶지, 현자님!
만질 수 있는건가요!?
카인: 잠깐잠깐잠깐!
샤일록: 무르.
무르: 괜찮아! 자! 손을 뻗어!
……아…….
눈앞에 밀려오는 무지개처럼 일곱 가지 색으로 빛나는 꽃잎의 물결에 두근거리며 손을 뻗었다. 가볍게 손끝에 닿는 순간, 반짝반짝 부서져 마법의 가루처럼 흩어져 간다.
……!
히스클리프: 예쁘다…….
샤일록: 모두들, 무사한가요?
카인: 아아, 굉장한 광경이네…….
무르: 아하하! 자, 만지길 잘했지? 인생은 여행이야! 다시 만날 수 없는 멋진 것들이 넘쳐.
은하에 안겨 춤추듯 무수한 빛을 걸치고, 그들은 웃음소리를 울린다. 목적지를 향해 하늘을 날아갔다.
'魔法使いの約束 > 메인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장 [마법관에 불을 질러라!] (0) | 2021.09.06 |
---|---|
5장 [달에게 선택받은 문장] (0) | 2021.09.06 |
4장 [마법사가 있는 세계] (0) | 2021.09.06 |
3장 [거대한 재앙] (0) | 2021.09.05 |
2장 [현자의 서] (0) | 202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