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오웬: …….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 같은 뭄이 기우뚱 기운다. 그 몸을 지탱하면서 브래들리는 창백하게 빛나는 가슴에서 재빨리 마나 플레이트를 뽑아냈다. 오웬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형이라기보다는 얼어죽은 시체 같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 라스티카에 의해 이루어진 정지에는 상냥함과 믿음과 경애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너무해.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오웬이 물건 취급을 당하다니…….
브래들리: 자. 내 차에 실어놔.
경관: 네!
브래들리는 오웬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라스티카를 돌아보았다.
브래들리: 주인장, 이번에는 봐주겠지만 다음은 무신호를 찾는 즉시 신고해. 경찰관이 가져온 것이라 해도 말이야.
카인: 보스, 라스티카는 나쁘지 않아. 내가…….
브래들리: 당연하지. 나쁜 건 전부 너다. 철밥에 속는 거 아냐. 인형놀이가 하고 싶은건가.
브래들리는 손등으로 찰싹찰싹 카인의 뺨을 때렸다. 굴욕적인 처사에 카인은 볼을 붉힌다. 하지만, 카인이 반박하기 전에 브래들리는 고양이를 달래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카인의 귓가를 따뜻하게 했다.
브래들리: 오늘 밤 일은 잊어. 이건 심부름값이다. 이제 근무는 끝이니까 술이나 한 잔 하고 와. 피곤하지?
그러면서 카인에게 지폐를 쥐어 준다. 카인은 브래들리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하지만, 되받아칠 거라고 생각했던 지폐를 허둥지둥 주머니에 넣고 짧은 숨을 내쉰다.
카인: ……알겠습니다, 보스.
브래들리: 착한 아이네. 마시고 집에 가서 자.
브래들리는 카인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랩 밖으로 나가려다가 도중에 히스클리프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조심스럽게 쑥 히스클리프의 턱을 들어올렸다. 순간, 어디선가 개모양의 로봇이 날아왔다. 히스클리프를 지키려고 브래들리를 위협하며 으르렁거린다.
히스클리프: 그만 둬, 시노!
개 모양의 로봇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브래들리는 히스클리프의 턱을 난폭하게 흔들었다.
히스클리프: ……윽.
브래들리: 너, 만난 적 있었던가?
히스클리프: ……글쎄요, 저도 시민이니까 어디선가 서장님이랑 마주쳤을 수도 있죠.
브래들리: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얼굴인데.
히스클리프: 피차일반입니다.
브래들리: 하긴, 내 상처도 화려한 미형이지.
짧게 웃고, 브래들리는 떠났다. 히스클리프는 깊은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는 듯이 개 모양의 로봇을 껴안는다. 나는 서있는 카인과 클로에에게 안긴채 움직이지 않는 라스티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오웬은 끌려가 버린다.
(카인은 경찰 쪽의 사람이고, 상사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걸지도 몰라.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해……. 이대로 작별이라니……)
각오를 다지고 셔터 밖으로 달려나가려고 한 순간…….
……!
카인이 내 팔을 잡았다.
카인: 쉿.
카인은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의기소침한 듯한 그의 눈동자는 조금 전보다 더 암팡진 빛을 담고 있었다.
카인: 아직 밖에는 나가지 마. 보스의 에어카 엔진소리가 나면 스텔스 모드로 보스를 미행할거야.
에……?
카인: 뭐야, 그 표정. 내가 인수된 줄 알았어? 보스를 방심시키기 위해서야. 그 사람은 똑똑하지만 그 때는 그 때에....
타이밍 좋게 부웅하고 증기를 뿜어내는 듯한 에어카 시동 소리가 들린다.
카인: 지금이다. 아키라, 함께 갈래?
네!
카인: 라스티카, 히스. 이따가 연락할게! 클로에, 둘을 부탁해!
클로에: 맡겨줘!
히스클리프: 조심해.
라스티카: ..........
우리는 에어바이크를 타고 브래들리의 에어카를 뒤쫓았다. 스텔스 모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에어바이크의 윤곽이 야광처럼 빛난다. 우리의 모습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걸까? 로봇이 된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귀신이 된 기분이다. 브래들리의 에어카는 부하의 차량 한 대도 데리지 않고 하이웨이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경찰서가 아닌 어딘가로 오웬을 데려가는 것 같다.
……괜찮나요? 상사에게 반항하고…….
카인: 글쎄…….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뭔가…… 잘 말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경찰이야. 사람이든, 어시스트 로이드든 무시해도 되는 소리 같은 건 없어. 걔는 싫다고 했었잖아.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눈을 부릅 뜬 오웬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싫어. 또 멈추는 건. 그는 그렇게 말했다.
카인: 그리고, 오웬의 얘기만 하는 게 아니야. ……최근 이 거리는 이상해.
거리가 이상해……?
카인: 아아.
핸들을 꼭 잡으면서, 카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카인: 얼마 전, 비공식적으로 호위를 부탁받았었어. 기관의 VIP가 소유한 어시스트 로이드의 호위를.
인간인 카인이 어시스트 로이드의 호위를……?
카인: 하이 클래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워킹 클래스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시스트 로이드의 이하야. 부루퉁한 기분으로 타깃을 만났었는데, 그 어시스트 로이드는 남자 아이였었지. 아서라는 이름의 남자였어.
12화
카인: 아서는 인간 그 자체였어.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표정이나 행동 모두가 마치 진짜 마음이 있는 것 같았지.
마음…….
카인: 의뢰 내용은, 아서의 첫 심부름을 지켜봐 달라는 것이었어. 어시스트 로이드에게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 프로그램이 있어. 고급품이니까 당연한거야. 하지만 아서는 막무가내로 호기심이 많고, 모험심이 강해서 전혀 자기 안전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어. 나는 헷갈렸어. 고장이라도 난 줄 알았거든. 하지만 아서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따르고 있었어. 우리 인간처럼.
에어카나 에어바이크의 빛이 무수한 빛이 되어, 시계 끝을 흘러간다. 그 빛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이웨이는 어둠에 잠겨 있었고, 번화가를 떠나 교외를 향하고 있었다.
카인: 이후에도 아서를 몇 번 만났었지. 아서는 나이를 바꿀 수 있는 타입이야. 소년이기도 했고, 청년이기도 했었어. 나는 점점 호위가 즐거워졌어. 아서가 좋아져서, 만나는게 즐거워지고 있더라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어. '어시스트 로이드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아서는 마음이 있는 것 같네.'
…….
카인: ……아서와는 그게 끝이야. 호위 의뢰는 없어졌고, 연락할 방법도 없어.
카인은 나른한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억울함인지 외로움인지 모르는 빛이 흔들거리고 있다.
카인: ……아까 클로에도 그래. 라스티카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우선으로 하여 행동했었어. 하지만 라스티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두들 이런 일이 터지면 입을 다물어 버려. 너도 그래? 너도 내가 모르는, 이 거리의 비밀을 알고 있다던가.
에……?
입꼬리를 올리며 카인은 웃었다. 얄궃은 듯이... 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외로움을 잘 타는 삐진 얼굴로.
카인: 너도, 나를 놔두고 없어질거야?
나는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이다가, 웃었다. 그가 삐진 것도 당연하다.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는 이 거리의 정체를 모른다. 공주님의 구두밖에 모르는 왕자님처럼.
카인: ……웃을 일이 아니잖아.
죄송해요. 뭐랄까, 당신이 더 미아 같아서요.
카인: 하하, 경찰인데……. 맞다. 아키라를 집에 데려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여러가지로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맞아요. 카인이 없으면 저는 갈 곳이 없는 걸지도 몰라요.
카인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곁눈질 했다. 장난스럽게 나는 가슴을 돌리고 웃는다.
카인에게는 숨기지 않을거고, 두고 가지도 않을 거예요. 쓸모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쪽 편이에요.
카인은 어린 아이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흐뭇하게 웃었다.
카인: 쓸모 없지 않아. 쓸모 없어도 돼.
로봇인데도요? 로봇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카인: 법률상 어시스트 로이드는 친구야. 친구라면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고르지 않아. 마음이 맞는 놈을 고르지. 아키라와는 마음이 맞을 것 같아.
기뻐요. 뭐랄까……. 제 프로그램이랑 카인이랑 케미가 잘 맞는 것 같아서. ……이 말투 조금 이상한가요?
카인: 아하하! 이상하지 않아.
아하하. 그렇게 말을 듣는다면, 로봇도 나쁘지 않네요.
뭔가 상쾌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웃음소리를 냈다. 인간이던 로봇이던 난 나다. 이 감정이 누가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이 세상의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해도. 체감하고 있는 것은 여기 나.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세상보다, 더 흔들리고 튀고 춤추고 있는 이 모션이 더 가치가 있어.
카인, 오웬을 다시 만나러 가요. 그런 이별은 싫어요.
카인: 물론이야. CBSC를 사줘야지. 약속, 했으니까.
우리는 서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카인이 숨을 삼킨다. 브래들리의 차가 하이웨이를 벗어나 거대한 시설들이 즐비한 곳으로 향했다.
(뭐지, 저기……. 공장 지대도 주택가도 아니야.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고 통일감 있는……)
카인: ……폴몬트 랩이다.
폴몬트 랩? 아까 뉴스 프로그램에 소개 되었던?
카인: 아아……. 이 거리에선 시장보다 더 힘이 센 연구시설이야. 이 거리는 옛날에 학원이 있던 도시였거든. 폴몬트 학원이 설립되고 그 후로 대학이나 연구시설이 늘어나면서 거리는 발전했어. 그 학원의 설립자의 후손이 폴몬트 종합 연구 기관의 이사장이야. 하이 클래스 속의 하이 클래스지.
카인: 곤란하네……. 저 랩의 보안 앞에서 이런 스텔스 모드는 고작 아이들 놀이야. 출입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전용 패스가 필요해. 거리로 돌아가서 구하고 오자.
짚이는 곳이 있나요?
카인: 아아. 이건 내 감이지만…… 라스티카는 폴몬트 랩의 전 연구원이야.
13화
클로에: 카인들, 괜찮으려나. 걱정이네, 라스티카…….
라스티카: ……그러네…….
히스클리프: 아…… 에어 바이크 소리가…….
클로에: 카인이다! 어서 와, 카인!
카인: 우왓…… 다녀왔어, 클로에. 아까는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라스티카: 사과 하지 않아도 괜찮아. 분명 또 새로운 부탁이 있는거겠지?
카인: 어떻게 알았어?
라스티카: 너를 알아가는 동안에, 알게 되었어. 나 자신도 못 믿겨져.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랑 얘기도 못했어. 난 어시스트 로이드에 의존 하고 있었으니까.
히스클리프: 그건, 하이 클래스 사람들 특유의....
라스티카: ……그 말대로야. 변두리에서 수리점을 하고 있지만, 나는…… 사실…….
클로에: 괜찮아, 라스티카. 마음 가는 대로 용기를 내서 전해. 분명 잘 될테니까.
라스티카: 응…….
불안한 듯이 클로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스티카는 각오를 다졌다는 듯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클로에는 잔잔하게 라스티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라…… 이 두 사람, 이런 느낌이었었나? 입장이 반대였던 것 같은……. ……반대란 뭐지……?)
라스티카: 나는…… 폴몬트 랩 연구원. 카르디아 시스템의 개발자야.
카르디아 시스템……?
라스티카는 클로에를 끌어당겼다. 가슴에 손을 대더니, 창백하게 빛을 낸다. 그 빛은 아까와는 다른 모양을 그렸다. 마치 백합 같은…….
라스티카: 이것이 카르디아 시스템이야. 감정을 학습하고, 자의식을 구축하며,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선별하고, 결정해.
히스클리프: ……즉, 마음……?
라스티카: 그 말대로.
나는 경악하며 클로에를 보았다. 긴장한 듯 입술을 다물면서, 그래도 어딘가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펴고 있다. 클로에의 표정은 인간 그 자체다.
히스클리프: 어시스트 로이드에게 자의식을 주어, 선별이나 결정하는 능력까지 허락한 겁니까……?
라스티카: ....극비 연구였어. 몇 번이나 법을 어겼으니까. 카르디아 시스템은 나와 피가로…… 가르시아 박사의 공동 연구였지. 왜 이런 연구를 시작했는가, 카인이 들으면 웃을 것 같아.
라스티카: 우리 하이 클래스 사람들은 인간들 간의 관계에 지쳐 이상적인 친구, 어시스트 로이드를 만들었어. 그런데…… 언젠가 원하게 되었어. 알고 싶어졌어. 클로에에게 마음이 있엇다면, 클로에에게 자의식이 있었다면 뭘 생각하고 뭘 골랐을까? 느끼는 자유, 행동할 자유를 줘도 내 곁에 있어줄까? 어시스트 로이드는 친구……. 겉으로는 그런 말을 해도 사실은 새장에 가두고 있을 뿐.
라스티카: 나는 파란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 아이가 보고 싶었어. 만약 자유를 알게 되어도, 나에게 돌아와 준다면…… 그 경치를 볼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러길 바랐어.
클로에는 시선을 들어 라스티카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클로에: 돌아왔잖아. 나는 언제라도 라스티카와 함께야.
라스티카: ……고마워, 클로에…….
사람과 어시스트 로이드를 넘어선, 친애의 정을 나누는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클로에는 인조물이다. 하지만 이 광경을 라스티카의 외로운 인형 놀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시스트 로이드……. 카르디아 시스템이란 뭐지? 인간이란, 마음이란, 뭐지?
라스티카: ……하지만, 개발 도중 불행한 사고가 났어.
카인: 불행한 사고……?
라스티카: 가르시아 박사가 소유하고 있었던 두 어시스트 로이드가 서로를 죽여 한쪽을 부숴버렸지.
어시스트 로이드가 서로를…….
히스클리프: 오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스티카: 뭐라 말 할 수 없어. 몇 번이나 해석해봤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으니까. 그들이 품었던 감정은 과잉보호욕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적의나 독립심, 질투나 기피, 독점욕이라고도 할 수 있었어. 감정의 지도는 복잡하니까 일률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라스티카: 가르시아 박사는 매우 충격을 받아 카르디아 시스템은 위험하고 세상에 내놓으면 안된다고 결정했어. 상층부의 부하들도 동의하고 팀은 해체. 나는 클로에의 카르디아 시스템을 제거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랩을 그만뒀어.
카인: 그럼 카르디아 시스템……. 이 꽃 같은 모양이 나오는 시스템은 원래 밖에 유통되지 않았다는 건가?
라스티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줘. 경찰인 너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클로에를 잃게 된다면 나는…….
카인: 아니. 에, 그러니까……. 그 얘기는 접어두고, 이 꽃을 본 적이 있어. 아마…… 아마 똑같은걸거야.
카인은 혼란스러운 듯 자문자답하면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듯이 하고 옆머리를 쓸어 올렸다.
카르디아 시스템의 빛을?
카인: 아아, 그 아서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었을 때 굉장히 슬픈 얼굴을 하면서…….
클로에: 분명히 감정이 격했을 거야. 나도 처리 될 것 같이 감정이 움직이면 빛이 나. 그렇지?
라스티카: ……그, 그렇네. 그 이야기는 정말이니? 카르디아 시스템이 유출되었다고?
히스클리프: 자유를 부여받은 어시스트 로이드들이 클로에 말고도 이 거리에 있는건가요? 그 아서라는…….
카인: 에, 사실 아서 뿐 만이 아니야. 나도 혼란스럽지만…… 틀림 없이 유행하는 타투라고 생각해서…….
카인?
카인은 침착하게 얼굴을 매만지며 시선을 방황했다. 각오를 다졌다는 듯이 입을 연다.
카인: ……내 동료인 네로의 가슴에서도 빛이 났었어. 탈의실에서 봤거든. 본인은 블랙 라이트 타투라고…….
클로에: 에? 카인의 동료라는 것은 즉…….
라스티카: ……경찰!?
히스클리프: 경관 중에 자의식을 부여 받은 어시스트 로이드가 섞여 있다니……. 이 거리,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카르디아 시스템……. 그건, 오웬에게도 탑재 되어 있었나요? 설마, 나에게도…….
라스티카: 아쉽지만 너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오웬은 알아. 얼굴이 만들어지기 전에 랩을 그만두었으니까. 당장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타입 O형-WEN-99. 최신형 어시스트 로이드야. 카르디아 시스템만 탑재 되어 있어.
카인: 무슨 뜻이야……?
라스티카: 클로에는 어시스트 로이드에 카르디아 시스템을 탑재한거야. 기초 설계는 어시스트 로이드와 같아. 하지만 오웬에게 오너는 없어. 다른 개체와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룰도 없지. 그의 관리자는 자신이며, 그의 이해자도, 복구자고, 감시자도 자기 자신이야.
클로에: 고독하네…….
히스클리프: 인간과 똑같아…….
라스티카: 매우 위험한 존재야.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준 뒤, 며칠 사이에 온 세상의 모든 것을 학습했어. 나랑 가르시아 박사는 겁이 나서 오웬의 데이터를 리셋하고 마나 플레이트를 빼서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거리 안에 돌아왔어. 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미래는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몰라. 전지정는한 신에 가까운 존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카인: ……자유는 얻지 못했어. 오웬은 아직 CBSC도 먹어보지 못했는걸.
라스티카: 카인…….
카인: 나도, 보스도, 랩도 그놈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자유롭게 살기로 설계되었는데 마음대로 살 수 없다니 너무해. 잔인하잖아.
라스티카: …….
카인: 그 녀석을 도와주고 싶어. 어떻게 해서든 랩의 패스 카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오웬은 폴몬트 랩으로 끌려 갔어. 이대로라면 다시는 못 나올지도 몰라.
라스티카: ……아쉽지만 패스 카드는 가지고 있지 않아. 퇴소할 때 반납했으니까. 생체 인증이 필요해서 복제도 어려워.
카인: 그런…….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난 아직 약속도 지키지 못했는데.
히스클리프: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카인: 히스클리프가?
라스티카: 도대체 어떻게…….
히스클리프: 자세한 것은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14화
스노우: 어서 와. 오랜만이구먼, 브래들리.
브래들리: 자, 보내드렸다고.
스노우: 수고했다. 오웬은 아직 잠든 것 같네.
브래들리: 마중나온 건 너뿐이냐? 박사는?
스노우: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피가로쨩은 낯을 가려.
브래들리: 카메라 너머로는 술술 잘 말하면서. 다른 볼일이 없다면 돌아간다.
스노우: 이걸 가져가는게 좋네. 사례 대신이다.
브래들리: 베넷의 천연 와인이잖아! 이거 하나로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희귀물인데. 괜찮은거냐?
스노우: 항상 신세지고 있으니까. 오늘 밤의 일은 비밀로…….
브래들리: 알고 있어. 누구에게도 말할 마음도 없고. 하지만 이 녀석, 소중히 해둬야지.
스노우: 재밌는 남자구먼. 어시스트 로이드를 싫어한다는 소문을 내면서, 그 그늘에서 폐기 처분 개체를 불법 수집하다니. 마치 들개를 주워 모으는 것 같아. 그대의 목적은 무엇이냐.
브래들리: 그저 썩은 경관일 뿐이야. 목적 같은 건 없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께 배운 거다. 장난감은 아껴놔. 애지중지하는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대.
스노우: 좋은 어머니이시군. 우리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면 화이트를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라…….
브래들리: 너에게도 영혼이 있구나, 스노우. 카르디아 시스템인가.
스노우: 영혼이라고 불릴 만한 것도 아니구먼.
브래들리: 글쎄, 난 모르겠네. 하지만 하이 클래스에게 좋은 시대가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 같으면……너희들이 다 쓰고 간 것들 모든 것들에게 영혼을 다 쏟아붓고 조직해서 이빨을 까는 것도 좋겠네. 안락한 침대에서 주무시는 것도 지금뿐일 수도 있지. 피가로에게 전해둬.
스노우: 흠……. 씩씩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쉽게 세상은 바뀌지 않아. 너희들의 조직은 범죄 집단에 불과하잖아.
스노우: 피가로 쨩, 이제 나와도 좋네.
피가로: 하아……. 그는 에너지가 강해서 좀 그렇단 말이지……. 아아, 오웬. 어서와. 마나 플레이트를 넣어서……. 됐다.
피가로: 안녕, 오웬. 아빠야.
오웬: ……너, 누구.
피가로: 어라, 데이터가 날아간건가. ……아니면 어딘가에 숨기고 있는건가? 스노우 님, 백업 어딘가에 했었죠?
스노우: 물론일세. 어떤 날짜가 좋나?
피가로: 어젯밤이면 되겠죠. 어제 정기 점검 중에 오웬이 랩을 빠져나갔으니까.
오웬: 건들지 마. 아키라와 카인은? CBSC는 언제 먹을 수 있어? 여긴 어디야?
피가로: CBSC가 뭔가요?
스노우: 변두리에서 유행하는 포토제닉 고칼로리 디저트일세. 자, 오웬. 움직이지 말게나.
오웬: 싫어! ……아……!
피가로: 스노우 님, 살살.
스노우: 백업을 연결했네. 자, 복구하는게야.
오웬: …………피가로.
피가로: 안녕, 오웬. 아빠야.
오웬: ……매번 하는 말이지만, 아빠 느낌이 안 나는걸.
피가로: 엄마로 해도 좋지만, 전 아빠 역할의 라스티카는 랩을 그만뒀으니까.
오웬: 그 녀석, 클로에가 마음에 들어서 클로에를 뺏길까봐 나를 두고 갔어.
피가로: 다행이다. 기억이 돌아왔구나. 대정전을 일으켜서 탈출한거니까 합선이 되어서 버그가 일어난거겠지. 나중에 검사해야겠다. 말을 되돌리겠지만, 나도 두고 간 몸이야. 버림 받은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오웬: 어떻게 할까. 너의 부하는?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어디에 있어?
피가로: 어시스트 로이드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밤낮으로 매달리고 있어.
오웬: 후후……. 상사인 너와 라스티카는 몰래 날 만들었는데. 세이프티와는 정반대의 최신형 어시스트 로이드. 신뢰와 안심이 되는 인류의 친구 따위는 딱 질색. 난 내 욕망을 위해서 살거야.
피가로: 그러니까 그들과는 못 만나게 하는거야. 그들의 어시스트 로이드를 나중에 빌려올게. 마음에 들어했었지?
오웬: 동물 모양이고 귀엽잖아. CCTV로 걔네 보는 것도 좋아해. 저 영상 좀 봐봐. 본인들은 모르는구나.
피가로: 연구자의 행동 따위는 패턴화 되어 있어. 나도 같은 걸 할 거야. 셋이서 같은 동작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
오웬: 너희가 더 로봇 같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피가로: 없네. 기계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고 넘어갔을텐데.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말이야……. 네가 이 연구소를 탈출했을 때, 어떤 이유로, 어떤 방법을 썼을까? 힌트는 정전. 경우에 따라서는 긴 이별을 하게 될거야. 농담하지 말고 신중하게 대답해.
오웬: 나 탈출했었어? 데리고 와서 데이터를 지우고 백업을 적용한거야?
피가로: 질문하는 건 나야.
오웬: 시시해. 몇 번이고 리셋을 해봤자 난 똑같은 짓을 할거야.
피가로: 어째서.
오웬: 난 나니까. 정답이나 미래를 알더라도 난 나다운 선택을 해. 네 말 따윈 안 들어.
피가로: ……유감이네, 귀여운 아이야. 긴 이별이라고 했었는데.
스노우: 슬립하게 냅두는겐가?
피가로: 슬립을 시켜놨는데도 무슨 수를 써서 탈출한거겠죠. 슬프지만, 폐기할 수 밖에 없네. 지금까지 리셋을 반복해 왔지만 표층만 소거하고 심층 데이터는 소거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순진하고 자유로운 신은 인간에게 상냥하지 않아.
오웬: 해봐. 나에게 다가오면 죽일테니까. 다시는 마나 플레이트를 뱉지 않을거야. 저기, 미스라는 어디? 저번에 수리하러 왔었던 구식의 큰 녀석.
피가로: 미스라는 오너에게 넘겨줬어. 워킹 클래스가 소유하고 있네. 부모가 하이 클래스 였고 유산이 그였던거지.
오웬: 그럼 데려오자. 미스라에게도 카르디아 시스템을 넣어서 같이 놀아야지.
피가로: 못 놀아. 넌 잠에 들거니까. 스노우님, 부탁 드려요.
스노우: 어시스트 로이드를 잘 쓰는 사나운 녀석이구먼. 오웬, 언짢게 생각하지 말게나. 다시 잠드는 게야.
오웬: 스노우. 너의 짝, 만들어 줄게. 네가 부순 화이트를, 내가.
스노우: …….
피가로: 신경 쓰지 마, 스노우 님. 오웬이 어떻게 만들 수가 있겠어.
오웬: 못 만들 수 없을리가 없잖아. 나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있어.
피가로: ……역시 리셋되지 않은 건가? 데이터는 지웠을텐데 어떻게…….
오웬: 너희들 덕분이야. 내 개발을 외부에 숨겼잖아. 카르디아 시스템도 그 방법을 응용해서 쓴 거야. 너희들이 몰래 거리를 바꾼 것 처럼 나도 몰래 천리안을 숨겼어.
피가로: 어쩔 수 없었어. 카르디아 시스템 후원사들은 막대한 연구 자금을 투자했으니까. 위험하다고 해도, 라스티카가 클로에게 했던 것 처럼 카르디아 시스템을 탑재할 수 밖에 없었지.
오웬: 변명 안 해도 돼. 난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까. 거리에 벌레가 넘쳐나도, 기계가 넘쳐나도.
오웬: 스노우, 피가로는 화이트를 폐기 처분하지 않았어. 랩의 안쪽에 안치하고 있지. 피가로는 무서워 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이 서로 죽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까, 내가 깨워줄게.
스노우: 화이트를 만들어 주는 겐가?
피가로: 안돼요, 스노우 님.
오웬: 약속할게.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줄게. 난 어시스트 로이드인걸. 안전하고 편안한, 믿을 수 있는 친구야. 나에게 협조 해줘, 스노우. 자유를 얻자.
15화
스노우: 피가로, 그대를 낙담시켜서 미안하지만. 나, 잠깐 배신하겠습니다.
피가로: ……듣고 싶지 않았어…….
스노우: 내 가슴이 뛰고 있어. 마음이 고양된거구나.
오웬: 아빠, 양손의 뒷짐 내려놔.
피가로: ……아아…… 카르디아 시스템 같은 건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웬: 누구도 나를 방해하게 하지 않을 거야.
카인: ……지나갔다! 모두 이쪽으로!
클로에: 고마워, 카인! 라스티카, 조금 더 빨리.
라스티카: 알았어.
클로에: 경비원 같은 건 없는 것 같아……. 좀 긴장되네. 스파이가 된 것 같아서 두근두근 거려.
라스티카: ……이 경치를 본 기억이 있니?
클로에: 으응, 없어. 하지만 분명 나도 여기에 있었던거겠지. 라스티카와 함께.
카인: 아까 그렇게 말했었잖아? 나의 카르디아 시스템은 제거했다고 거짓말을 해서, 랩을 그만뒀다고.
라스티카: ……그렇네. 네 기억을 지워서, 화났어?
클로에: 화내거나 하지 않아. 난 라스티카를 정말 좋아하니까. 하지만…… 기억을 하고 있었더라면, 라스티카와 함께 옛날 얘기를 하고 싶었네.
라스티카: ……나도야. 미안해, 클로에. 두번 다시 너의 기억을 빼앗거나 하지 않을게.
클로에: 에헤헤…… 응!
히스클리프가 준비해준 패스카드 대단하네요. 지문 체크도 필요 없다니…….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해도 괜찮은걸까…….
카인: ……!
카인: 모두, 물러서 줘. 보안 로봇이다.
카인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실내를 들여보았다. 여러 개의 둥근 개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저것이 보안 로봇? 눈알 같은 붉은 빛을 반짝이며 뭔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라스티카: 경계 태세가 되어 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
경비 로봇: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경비 로봇: 발사 허가 완료. 사살하겠습니다.
카인: 성격 급하네!? 모두, 엎드려……!
우왓…… 로봇이라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건가?
라스티카: 뭔가 이상해……! 랩의 보안 로봇이 인간을 상대로 주저없이 사격하다니…….
카인: ……윽, 여기서 기다려줘!
클로에: 어디에 가는거야, 카인!
카인: 저 로봇을 멈추러!
라스티카: 무, 무리 하지 마!
히스클리프: 카인, 시노가 도와줄거야! 가, 시노!
히스클리프의 신호와 함께 개 모양의 로봇이 튀어나왔다. 카인과 호흡이 척척 맞는 케미를 보여주며 실내를 달려나간다. 카인이 총을 연사하며 달려들고, 개 로봇이 보안 로봇에게 달려든다. 사격 솜씨만 봐도 카인은 틀림없이 뛰어난 경관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안 로봇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클로에: 대단해, 카인! 히스의 시노도 대단하네!
히스클리프: 고마워. 칭찬 받고 있네, 시노.
클로에: 휴머노이드형일 때는 어떤 모습이야?
히스클리프: 아…… 사진 가지고 있는데 볼래?
클로에: 우와, 멋있어.
라스티카: 귀여운 아이네.
카인: 잡담은 나중에! 빨리 이쪽으로!
……! 갑자기 여기저기 열리기 시작했어요!
라스티카: ……윽, 이러다간 초기 등록 전의 개체가 실수로 랩 밖으로 탈출해 버릴거야....
클로에: 아! 저기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카인: ……도움을 청하는 소리다……. 가보자!
연구원: 누가, 누가 좀 도와줘!
연구원: 여기서 꺼내줘……!
카인: 연구소 사람들이 잠긴 방에 갇혀 있어! 도대체 왜…….
히스클리프: ……산소를 뽑히거나 독극물을 뿌리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연구원: ……라스티카 페르치 박사! 페르치 박사님이죠!?
라스티카: 너는 그러니까……. 분명, 메신저 아이콘이 커피잔이었던…….
연구원: 가르시아 박사를 도와주세요! 낯선 신형 어시스트 로이드가 다른 개체를 거느리고 박사를 인질로……!
라스티카: 큰일났네. 저기, 스노우는? 스노우는 박사를 지키지 않았니?
연구원: 스노우도 신형 어시스트 로이드와 함께 연구원들을 가두고 있었습니다. 카르디아 시스템이라는걸 탑재시킨다고 해서…….
연구원: 페르치 박사님! 카르디아 시스템이란게 대체 무엇이죠!?
라스티카: …….
카인: 오웬은…… 그 녀석들은 어디로 갔어?!
연구원: ……윽, 저쪽으로!
카인: 고마워! 너희들도 꼭 도와줄게! 가자, 라스티카!
라스티카: 아, 아아.
보안 로봇: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
(보안 로봇이 아까보다 더 잔뜩……!)
카인: ……윽, 나랑 시노만으로 지킬 수 있을까?
무수한 보안 로봇에 둘러싸일 뻔했던 그때…….
브래들리: 달려! 엄호하지!
카인: ……! 보스……!
브래들리: 너의 에어 바이크를 발견해서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와보니 이 상태네. 정말이지, 손이 타겠어.
카인: 브래드! 나중에 물어볼 게 있어! 카르디아 시스템에 대해서…….
브래들리: 존댓말 하라고 했었잖아, 이 자식아!
카인: 소곤소곤 숨기고 있었던 주제에! 널 믿었는데!
브래들리: 알고 있었어. 신인 때부터 귀여워했었지. 잡것들에게도 홀리는 바보였으니까.
카인: 누가 바보야! 술값은 돌려주겠어! 뇌물은 받지 않아!
브래들리: 혀 깨물겠다. 닥치고 달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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