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논하듯이 파우스트가 말을 걸면, 조슈아는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파우스트: 최근 몇백 년의 '거대한 재앙' 에는 희생이 일어날 만큼 강한 힘은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달이 너무 가까이 와서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었나? 그렇다 치더라도 의아한데.
하지만 테오는 어머니가 살해당했다고 했죠……?
히스클리프: 과거에 확인되지 않은 큰 사고가 있었던 걸까요?
네로: 그러고보니 조슈아. 이 집에서 뭐 신경 쓰이는 거 없어?
조슈아: 신경 쓰이는 거?
네로: 묘한 소문이 있는 방이 있다던가, 수상한 하인이 있다던가 말이야.
조슈아: 으응…… 들어본 적 없어.
그런가요…….
무르: 쾅쾅! 실례합―니다!
클로에: 우왓, 무르! 노크하면서 들어가면 안되잖아?
라스티카: 여어, 여러분. 역시 이 방이 맞았던 것 같네.
샤일록: 안녕하세요, 도련님. 처음 뵙겠습니다.
조슈아: 누, 누구? 뭔가 굉장히 기운 넘치는 사람들…….
샤일록: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쪽 일은 대충 끝났어요.
그걸 듣고 우리는 눈빛을 보냈다.
네로: ……장소를 옮길까.
그렇네요. 그럼 조슈아, 실례하겠습니다. 푹 쉬세요.
히스클리프: 조슈아, 서운해 보였어요.
파우스트: 손님은 드물테니까. 하지만 이 많은 인원수로는 역시 몸에 해로워. 그리고 아이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도 아니니까.
시노: 저택 조사는 어땠어. 뭔가 알아냈나?
라스티카: 네. 저택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알려주셨어요.
클로에: 다들 남편분이 입막음을 시킨 것 같아서 처음에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어.
네로: 헤에. 마법으로 하인들의 입을 열게 한거야?
무르: 마법은 안 썼어. 우리가 부탁하니까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면서 얘기 해줬어!
파우스트: 무슨 방법을 쓴거냐…….
샤일록: 그거는 이제, 여러가지로.
(든든하다……)
샤일록: 지난번의 액재 내습 이후, 저택 안에서 불행이나 불운해지고 하인들이 계속 아프다고 해요. 분명 안뜰에 서 있는 저 탑이 원인일 거라고 하인들은 겁에 질려 있는 눈치였습니다.
네로: 확실히 이상한 탑이 있었지.
샤일록: 옛날부터 그 오래된 작은 탑은 귀신이 사는 곳이라며, 구역질이 난대요.
귀신……?
라스티카: 네. 발을 들여놓으면 귀신의 저주를 받아 죽고 만다던가.
무르: 그런 소문이 있는 장소는 드물지 않아. 하지만, 이 탑은 실제로 희생자를 내고 있어. 시험 삼아 탑에 들어간 하인이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 모양이야!
네로: 어이어이…… 저택 안에 꽤 위험한 것이 세워져 있군.
시노: 죽은 사람까지 나왔다면 불길하잖아. 왜 안 부수는거지?
클로에: 부술 사람이 없대. 하긴, 들어가기만 하면 죽는 탑 같은 건 아무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겠지.
샤일록: 그것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아직도 저런다고 해요. 그야말로 사연이 있는 저주받은 탑이네요. 저택 주인이 저기에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것 같은데…….
어젯밤, 빗자루 위에서 본 광경이 생각난다. 뭔가 불안해지는 섬뜩한 탑이었다.
무르: 저기, 탑 조사하러 갈래? 물론 갈거지?
파우스트: 아아. 정말로 귀신이 정착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히스클리프: 귀신이 사는 저주받은 탑? 정원 쪽은 싫은 느낌이 들었는데…….
시노: 걱정하지 마, 히스. 저주도 유령도 내가 이 낫으로 후려갈겨줄게.
파우스트: 방심하지 마.
저 무서운 탑에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역시 긴장하게 된다. 그때, 침대에서 배웅해 준 조슈아의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저기, 파우스트. 이 저택 전체가 저주받고 있다고 했었죠. 혹시 조슈아의 몸이 안 좋은 건 그 저주 때문일까요?
파우스트: ……그것도 당연히 작용하고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조슈아 자신의 강한 원망이야.
강한 원망? 그건…….
파우스트: 너도 봤었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조슈아의 표정을. 그는 '거대한 재앙' 을 몹시 증오하고 있어. 인간인 조슈아가 뭔가를 저주해 봤자 별 영향은 없어. ……하지만 이 저택에 가득 차 있다. 저주가 그의 감정에 호응해서 모여드는 것 같아. 상대가 저 달이라는 것도 뭔가 관계가 있는 걸지도 몰라.
파우스트: 저주는 거울 같은 것이다. 저주하는 대상을 그르치면 그것은 자신에게 되돌아와.
그럼 조슈아는 '거대한 재앙' 을 저주하는 힘을 스스로 받고 있다는 뜻인가요?
파우스트: 아마도. 그 병약한 몸으로 더 이상 '거대한 재앙' 에 앙심을 품는다면…… 쇠약해져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올려다본 탑이 하늘 위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칙칙한 벽돌은 어딘지 차갑고, 사람을 거부하는 기색이 있다. 주위가 아름다운 화원인 만큼 버려진 듯한 탑은 더욱 이상하게 보였다.
파우스트: 들어가지.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가면 축축한 어둠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 안에는, 벽을 따라 계단이 계속 되어 있는 것 외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 조사를 겸하여 오래된 벽돌로 만든 그것을 끝없이 올라간다.
샤일록: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네요.
네로: 아아. 지금까지는 그냥 탑이야.
파우스트: …….
히스클리프: 현자님,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아요. 늦게 올라가서 죄송합니다…….
시노: 이 정도로 계단에서 주저앉으면 어떡해. 이번에 같이 러닝 연습이나 할까?
윽…… 그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이럴 때 엘리베이터에게 고마움이 느껴지네……)
7화
라스티카: 꼭대기에 도착한 것 같네.
계단을 다 올라간 곳에 낡아빠진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도 안 열린다.
잠겨있는 것 같네요.
네로: 어디, 보여줘봐.
네로: ……좋아. 이걸로 들어갈 수 있겠지.
클로에: 우와, 대단해……. 눈 깜짝할 사이에 열렸어!
시노: 헤에. 도적같네.
네로: 사람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마. 요리사는 손재주가 있는 법이라고. 됐으니까 들어가자.
히스클리프: 여긴…….
라스티카: 누군가가 살고 있었나?
문 안쪽에 있던 것은 아담한 방이었다. 방에 놓인 침대나 의자, 책상, 유리잔……. 누군가의 삶을 볼 수 있는 생생한 생활감이 감돌고 있다.
샤일록: 탑에 살았던 것은 귀신이 아닌 것 같네요.
무르: 인간도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에?
클로에: 어떻게 알아?
무르: 이거의 기억을 들여다봤거든.
무르는 목각 인형 같은 것을 흔들어 보였다.
파우스트: 이건…… 주술 도구군.
라스티카: 무르, 무엇을 본거니?
무르: 지금 우리 처럼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 마법사였네.
히스클리프: 마법사…….
시노: 테오인가.
이 저택에 관련된 마법사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하나밖에 없다. 아무래도 테오가 이 탑에서 자고 일어났던 것 같다.
시노: 이렇게 가까이서 살고 있었구나.
샤일록: 무르, 함부로 건드리면 안돼요. 그 인형은 어디서 가져온건가요?
무르: 저기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무르가 가리킨 방의 모서리에는 천을 쓴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다. 파우스트는 조심스럽게 나무 상자로 다가가더니 그 천을 벗겼다.
파우스트: ……과연. 역시 나의 동업자였던 것 같군.
정체 모를 인형, 수수께끼의 식물, 거울……. 나무상자 속에는 파우스트가 마법 도구 가게에서 사들인 듯한 물건들이 수두룩 들어 있었다. 아마도 전부 주술 도구겠지.
테오도 저주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로: 이만큼의 많은 양의 주술 도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저주꾼 밖에 없어. 그렇지, 선생.
파우스트: 아아. 그리고 어렴풋하지만 탑 안에 주술의 기미가 남아있어.
시노: 그러면…… 저주는 테오의 짓인가?
히스클리프: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어. 조슈아는 테오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클로에: 저기, 모두 봐줘. 이거…… 일기 아니야?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것은 열린 상태의 노트. 빛바랜 종이에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파우스트: ……테오의 수기 같군.
뭐라고 써져있는거지…….
히스클리프: 조금 읽어볼게요.
글자를 못 읽는 나를 위해, 히스클리프가 읽어준다.
히스클리프: "오늘 밤도 잘 보인다. 얄미운 그 달이……. 어린 나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은 원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원망만이 이런 나를 살리고 있다."
히스클리프: "또, 탑에 들어오려고 한 인간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산 지 수십 년, 몇 번 저주해 죽여도 어리석음은 끝이 없다."
히스클리프: "오늘은 이 저택의 주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탑에서 나가라고 했다. 그 이상 말도 안되는 말을 한다면 저택에 사는 인간을 모두 저주로 죽이겠다고 협박했더니 금세 얌전해졌다.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내친김에 이 탑에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면 훨씬 살기 편해지겠지."
수기에는 '거대한 재앙' 에 대한 미움이, 끊기지 않고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가슴이 뛸 만한 그런 밝은 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저주꾼을 생업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미움을 건드리고, 달밤을 올려다보고는 자신의 증오를 확인한다.... 그런 나날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히스클리프: "저 집의 아이는 아무래도 몸이 약한 것 같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잠들어 있다. 불쌍한 아이다. 오래 잠들어 있던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히스클리프: "드디어 그 애를 만나러 가고 말았다. 왜 나는 이름까지 알려주었을까. 그가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읽고 있는 히스클리프의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히스클리프: "조슈아는 나를 친구라고 해준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계속 옆에 있어주고 싶다. 아아, 나도 인간이었으면 좋았을텐데."
히스클리프: "조슈아도 엄마도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
히스클리프: "나만 혼자, 마법사로 태어나버렸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조용히 멈췄다.
히스클리프: ……여기서 끝났어요.
모두 입을 다물었다. 좁은 방에 정적이 가득하다.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테오' 의, 살아 있는 감정이 우리에게 세게 말을 걸어왔으니까.
시노: 테오에게 있어서 조슈아도 친구였어……. 단 하나 뿐인.
탑에 있는 하나의 작은 창문. 거기서 내려다보는 형태로 저택이 보였다. 조슈아의 방 창문에서 보였던 밤의 경치가 생각난다. 둘 다 묘하게 외로워서 어느 쪽의 경치도, 가깝고도 먼 친구로 이어졌다.
(단 하나 뿐인……)
테오와 조슈아는 서로를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였다. 비록 나이와 입장이 달라도, 계속 함께하지 못해도, 마법사와 인간이어도.
샤일록: ……실례. 한 가지 신경 쓰였습니다만, 테오의 어머니는 인간이었군요. 그것도 오래 누워 계셨다고…….
클로에: 응……. 그게 어쨌는데?
샤일록: 혹시 그 어머니는 원래부터 오래 살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네로: ……즉, 뭐야. 시한부였다는 건가?
파우스트: 충분히 가능성은 있군. 과거의 '거대한 재앙' 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죽은 사람이 나오는 것은 역시 부자연스러워.
그럼 테오의 어머니가 재앙에 살해당했다는 것은…….
라스티카가 얼굴을 슬프게 흐렸다.
라스티카: 우연히도 액재의 내습과 숨을 거둔 날이 겹친 거겠죠. 어렸을 때 죽은거라면 어려서부터 우연이라는 것을 모르고 달이 죽였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시노: 어렸을 때라면 그럴지도 몰라. 그런데 자라면서 깨닫지 않을까? '거대한 재앙' 은 원수가 아니라고.
샤일록: 사랑은 장님이라고는 하지만 증오 또한 마찬가지. 그것에 눈이 가려지면 진실을 비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히스클리프: 테오는 그렇게 계속 어둠에서 살아왔구나…….
그때, 뭔가 눈치챘다는 듯이 파우스트가 노트를 들어올렸다.
파우스트: 모두, 움직이지 마.
8화
파우스트가 바라본 곳 바닥 모서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부적이 포개져 있었다.
파우스트: 이 부적은 강한 매개의 힘을 억누르는것 인가보군. 이것 때문에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지만, 주술을 펼친 흔적이 있어.
무르: 갑자기 나쁜 낌새가 더해졌네! 주술의 매개로 사용된 것은, 이거구나.
무르: '에아뉴 랑블!'
주문을 외운 뒤 손을 뻗은 무르가 부적 밑에 있던 작은 돌을 슬쩍 집어 올렸다.
파우스트: 어이……! 수호의 마법을 걸었다지만 함부로 건드리면 위험해.
무르: 나중에 정화할테니까 괜찮아!
그, 그거. 뭔가요?
무르: 달의 조각이야!
클로에: 달의 조각?
히스클리프: 어째서 그런게…….
파우스트: 보통 이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것은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 저주하는 상대의 일부다. 하지만 달의 조각을 사용했다는 것은…….
네로: 아아. 놈이 의식을 치르면서까지 저주한 상대는 십중팔구 '거대한 재앙' 이겠지. 조슈아가 말했었잖아. 화재에서 구조된 후 잠시동안 기절헀었다고. 그 사이에 테오는 여기서 저주를 걸었던거야. 돌아가신 어머니와 죽을 뻔한 친구의 복수였겠지.
무르: 하지만 테오의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았어.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달은 하늘에 군림하고 있는걸!
파우스트는 테오가 남긴 주술의 흔적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파우스트: 주술이 실패한건가. 애당초 달을 저주하는 일 따위 불가능했었던건지, 혹은 '거대한 재앙' 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던건지……. 어쨌든 테오는 돌이 되었어. 저주의 대가를 스스로 치르게 된거야.
자기 자신의 저주로 인해 망가져버린 테오. ―저주는 거울과도 같다. 그렇게 말하던 파우스트의 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시노: '거대한 재앙' 의 저주는 테오가 씌여지고 끝난거잖아. 그럼 저택은 왜 아직도 저주받고 있는건데?
깜짝 놀란 듯이, 파우스트는 눈을 흘깃한다.
파우스트: ……테오의 돌이다.
에?
파우스트: 주문을 받아 들인 마나석을 방치하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것이 되어버려. 틀림없어. 저택에 가득 찬 불온한 기색은 죽어서 부서진 테오의 마나석이야.
샤일록: 마나석……. 과연. 저주의 원인은 그것이군요.
클로에: 그럼 빨리 찾지 않으면……!
히스클리프: 장소를 안다면 조슈아일거야. 내가 물어보러…….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시노: 나도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
네로: 시노, 기다려!
네로가 말리기도 전에 시노는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시노?!
라스티카: 현자님, 위험합니다. 부디 이쪽으로.
안뜰의 정원을 향해 곧장 걸어간 시노는 마도구인 큰 낫을 집어들었다.
시노: ……정체는 너인가.
시노가 바라보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 검은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먼발치에서도 확실히 느껴져. 저건 아주 '좋지 않은 것' 이다.
시노: ……뭐야?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꽃발을 지나간다. 잠시, 사람의 그림자의 윤곽이 아련해진다. 연기가 나부끼듯, 엄청난 수의 벌레가 날아오르듯, 검은 것이 주위에 펼쳐졌다. 순식간에 푸른 하늘이 사라진다. 마치 밤처럼 어둡다. 저택 주변이 암막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 갑자기 밤으로……?
네로: 아니야……. 틀려. 밤이 아니야.
샤일록: 네. 저것은 전부 악의입니다. 부풀어오른 그의 저주가 일으키고 있는 것이겠지요.
꽃밭은 완전히 어둠에 싸여져 있다. 사람의 형체를 되찾은 검은 그림자가 바람을 받은 깃발처럼 흔들흔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고 긴 팔을 뻗어 시노에게 덤벼든다.
시노: 나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아. 지금 바로 편하게 해주지.
시노는 그것을 맞받아 치며 정면으로 큰 낫을 내치려고 했다.
시노: '맛차 스디파……'
파우스트: 시노, 도망쳐! 직접 만지면 저주를 받게 될거야!
시노: !
시노는 큰 낫을 든 채 반사적으로 바로 옆으로 날았다.
시노: ……이 녀석.
밋밋하고 검은 얼굴에 입만 둥둥 떠 있다. 히죽, 하고 기분 나쁘게 일그러졌다.
무르: 웃었다!
클로에: 뭐야 저게……? 저주는 움직이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거야?!
파우스트: 아니. 이렇게 실체화하는 일은 거의 없어.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막강한 힘을 얻었겠지. 이제 테오의 의식은 남아있지 않아. 증오의 나락의 끝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먹이로 삼겠지.
라스티카: 그는 돌이 되어도 아직 편히 자지 못한거구나.
샤일록: 이제는 그 본인이 악몽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저택 전체가 저주에 휘말릴거에요.
히스클리프: 당장 시노를 엄호하러 가지 않으면……!
그 때, 누군가 저택에서 나와 꽃밭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온다.
아…….
나타난 건 조슈아였다. 자기가 묻은 테오의 묘소를 찾아온 것이겠지. 밤같이 어두운 경치에 당황한 뒤 저주의 그림자를 보고 멍하니 서있었다. 분명 조슈아에게는 그 실루엣이 그리운 친구로 보였을 것이다.
조슈아: ……테오……?
시노: 너! 이쪽으로 와!
조슈아: 에?
순식간에 빗자루로 올라간 시노는 조슈아를 안고 날아갔다.
히스클리프: 선생님. 저희들도 빨리!
파우스트: 아아. 이제부터는 저주꾼의 일이다. 모두 도와줘.
9화
마법사들은 빗자루에 올라가 일제히 탑에서 뛰쳐나왔다. 파우스트는 나를 뒤에 태우고 그들에게 차례로 지시를 내린다.
파우스트: 네로. 저놈의 주의를 끌어서 잘 이끌어내줘.
네로: 접수다.
파우스트: 무르, 라스티카 두 사람은 정화의 마법진을 부탁해.
무르 / 라스티카: 알겠어.
파우스트: 그리고, 샤일록.
샤일록: 무엇이든지.
파우스트: 너는 젊은 마법사들과 함께 저택의 인간을 지켜라. 히스클리프, 클로에. 그의 지시에 따르도록.
히스클리프 / 클로에: 네!
지시에 따른 마법사들은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샤일록: 저는 정면으로 가릴 테니 클로에, 당신은 저택의 오른쪽을. 히스클리프는 왼쪽을 대주세요. 저에게 맞춰서 결계를 쳐주세요. 네, 그렇게요.
응.
히스클리프: 알겠습니다.
샤일록: 그럼 갑니다. 집중해서…… '인비벨'
클로에: '스이스피시보 보이팅고크!'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브러프 스노스!'
세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저택 위에 투명한 지붕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전체를 돔처럼 뒤덮었다.
히스클리프: 좋아, 결계는 완성됐어. 나머지는 선생님들이 잘해주면…….
조슈아: 저기, 저건 테오 맞지? 돌아온거지?
시노: ……붙잡고 있어.
장미떼가 파랗게 질리면서 사납게 흔들린다. 꽃밭을 뚫듯이 저주의 그림자는 조슈아를 태운 시노를 쫓아간다. 그의 뒤로, 네로가 빗자루로 다가간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쏘아붙인 공격마법은 그림자 등에 닿을락 말락 하는 위치에서 터치며 휙 하고 꽃잎이 흩날린다. 그림자의 걸음이 표적을 바꾼 것처럼 그림자는 곧 등 뒤의 네로에게로 돌아섰다.
네로: ……어이쿠!
네로는 몸을 돌려, 덤벼드는 그림자를 사뿐하게 피한다.
네로: 나를 상대해 줄 마음이 생겼어? 그럼, 이쪽이라고.
네로가 유혹하듯 날아가버리자 그림자는 그를 뒤쫓았다. 덤벼드는 그림자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네로는 민첩한 동작으로 유도해간다. 이끌리는대로, 그림자가 화원에서 한 발짝 나오는 순간.
라스티카: '아모레스토 뷔엣세'
무르: '에아뉴 랑블'
갑자기 그림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것의 발밑에는 마법진이 빛나고 있다. 무르와 라스티카가 설치한 정화의 마법진이다. 마법진이 희미하게 빛남과 동시에 그림자의 발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림자는 그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단해……)
구령도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보여준 연계는 생생하고 익숙한 연주자들의 연주 같았다.
히스클리프: 미리 상의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움직이다니…….
클로에: 멋있어…….
파우스트: 때가 되었군. 현자, 내 뒤에 숨어 있어.
빗자루에서 내린 파우스트는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마법진의 중심에서는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사람 모양의 그림자가 발버둥치고 있다. 마도구인 거울을 꺼내 천천히 자세를 취한다.
조슈아: 기다려!
비통한 목소리가 화원을 울린다. 매달리는 듯한 조슈아의 시선이 파우스트에 집중되어 있다.
조슈아: 어째서 테오를 아프게하는거야? 더 이상 상처주지 말아줘! 테오는 친구야……. 단 하나 뿐인, 나의 소중한……!
시노: ……조슈아.
시노는 튀어나갈 것 같은 조슈아를 잡으며 붙잡는다. 조슈아는 계속해서 외쳤다.
조슈아: 부탁해. 테오를 구해……!
파우스트: '사티루크나토 무르크리드'
파우스트는 서슴없이 주문을 외웠다. 그 순간, 정화의 마법진의 빛이 한층 더해진다. 마나석까지 산산이 부서져 조각은 땅에 떨어지지도 않고 증발하듯 보송보송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위를 덮었던 어둠은 걷히고 밝고 푸른 하늘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조슈아: ……테오? 그런, 거짓말이야…….
조슈아: 어째서, 왜……. 어째서 테오를 죽인거야…….
조슈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에는 절망이 드러나있다. 이윽고 그 표정은 서서히 다른 것으로 변화해 간다. 얄미운 달을 쳐다보고 있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조슈아: 절대 용서 못해……. 너 같은 건 정말 싫어……!
파우스트: ……돌아가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파우스트는 조슈아에게서 돌아섰다. 탐스럽게 피어나는 장미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흔들리고 있다. 이별의 말도 없이 우리는 저택을 나왔다.
10화
클로에: ……어째서 그 때, 파우스트는 조슈아에게 말하지 않았던걸까. 이미 그것은 테오가 아니었다는 것도, 그 저택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샤일록: ……조슈아의 원망을 자신을 향하게 함으로써 달에 대한 증오를 악화시킨 것이겠지요.
클로에: 달에 대한 증오를 악화시켜……?
샤일록: '거대한 재앙' 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그의 몸은 한계였습니다. 살아나려면 증오를 버릴 수 밖에 없지만 달을 밤마다 떠요.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봐도 밤마다 원수와 눈이 마주치면 잊혀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달을 향한 조슈아의 증오를 자기가 맡기로 한 것이겠죠.
라스티카: 그것 뿐 만이 아냐. 그는 분명 소중한 친구가 좋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조슈아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내가 미움을 받아도 그들의 우정을 지키는 걸 선택한다. 너무 서투르고, 너무 상냥한 사람이네.
클로에: 테오는 조슈아뿐만이 아니라 테오도 지켜준거구나……. 두 사람은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왠지 안타까워. 파우스트만이 상처를 받고 손해 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라스티카: 다음에 파우스트를 초대해서 다과회를 열까? 아직 그를 위해서 곡을 선보이지도 않았고.
무르: 나도 춤 아직 안 췄어! 모두 같이 파우스트를 대접하자!
클로에: ……응!
샤일록: 후후. 그건 그렇고 달을 저주하다 죽은 마법사라니……. 당신과는 반대군요, 무르.
무르: 그런가? 똑같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몇백 년이고 몇천 년이고 사랑하면 그건 분명 저주나 다름없어.
샤일록: 그렇다면 당신도 언젠가 돌이 될건가요? 증오에 몸을 바친 테오처럼.
무르: 글쎄, 어떠려나!
네로: 가끔은 밖에서 이렇게 한 잔 하는 것도 좋네.
파우스트: ……오늘은 유난히 안주가 많지 않나?
네로: 아니 뭐, 위로회라고 할까 서로 수고했다는 의미로.
파우스트: 위로받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골칫거리에 말려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고맙게 받지.
네로: ……당신은 저주상에 적합하지 않지.
파우스트: 하?
네로: 거짓말이야. 째려보지 말라니까. 자, 마시자고. 오늘은 좋은 게 있어.
파우스트: ……이 와인.
네로: 동쪽 나라에서 난 포도주야. 서쪽 마법사들이 줬어.
네로: 그럼 건배.
파우스트: 건배.
시노: 찾았다. 이런 곳에 있었던건가.
히스클리프: 아. 둘이서 저녁 반주를 하고 있었군요. 방해해서 죄송해요.
네로: 누군가 했더니 너희들인가. 무슨 일이야?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을 찾고 있었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시노: 오늘 파우스트도 네로도 멋있었어. 나도 저렇게 멋지게 싸우고 싶어. 내일부터 실기 훈련을 더 많이 해줘.
파우스트: 싫은데.
시노: 어째서?!
파우스트: 일단 기초부터다. 좌학도 중요하다는 것을 합동훈련에서 막 배웠을텐데.
시노: 둘 다 하면 돼. 얼마든지 어울려 주겠어.
히스클리프: 선생님, 억지를 부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부탁드려요.
네로: 자자, 모처럼 온거니까 조금 가져가라구.
히스클리프: 괜찮아? 둘이서 즐기고 있었던건데.
파우스트: 신경 안 써. 오늘의 위로회 같은 거니까.
시노: 아싸.
네로: 그러고보니 합동훈련 때 줬던 숙제, 둘 다 끝냈어?
히스클리프: 응, 끝냈어.
시노: 끝냈…….
네로: 안 끝냈구나.
히스클리프: 시노, 너 곧 끝낸다고 하지 않았어?
시노: 오늘 밤. 오늘 밤에 끝낼거야.
파우스트: ……이런이런. 갑자기 시끌벅적한 밤이 됐네.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 누명이든 원망을 사던, 미움을 사던, 너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 오늘 밤도 분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 소리가 난다 했더니 동쪽 마법사들이었구나.
창문을 통해 즐거운 안뜰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네 사람 모두 아늑하게 쉬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웃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예쁜 꽃이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즐거워 보이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달이 빛나는 밤이다. 달빛을 받은 은은한 밤은 동쪽의 마법사들과 많이 닮았다. 외로움이나 상처가 찔끔찔끔 울지 않도록 배려의 커튼과 정적의 지붕으로 숨을 곳을 만들어준다. 간지러울 정도로 어설프고, 애달플 정도로 착하다. 그런 그들이 나는 정말 좋다.
무르: 똑똑! 현자님, 숨바꼭질 하자! 달이 예쁜 밤에 틀어박혀 있는 건 아깝다구!
아하하, 그렇네요. 갈까요!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아프거나 아끼거나. 우리는 살 뿐이고 뭔가에 마음을 기울인다. 비록 그것이, 축복받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어도.
분명 사람의 수만큼, 생각이 향하는 곳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달밤이 사랑받고 미움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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