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레녹스: 그런데 그 사람이 다쳐버려서. 피가로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진찰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피가로: 물론. 내일이라도 보러 가자.
레녹스: 감사합니다. 저도 내일 다시 가서 공방의 복구 작업을 도와주려고요.
루틸: 그렇다면 저도 도와드릴게요. 제자 분도 소중한 공방이 망가져서 계속 불안하셨을 테니까요.
레녹스: 고맙지만, 거리를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겠어? 루틸은 관광차 온거지?
루틸: 오늘 하루 잔뜩 관광 했으니까 괜찮아요! 레노 씨의 친구 분의 공방도 보고 싶고요.
미틸: 저도 도와드릴게요!
시노: 나도 도와줄게. 하루 만에 원래대로 돌려주자고.
젊은 마법사들이 잇달아 도와주려고 한다. 그 모습에 피가로가 느긋하게 미소 짓는다.
피가로: 그러면 내일은 리암의 공방에 가서 다 같이 복구를 도와줄까. 빗자루로 날아가면 눈에 띄니까 공방까지는 걸어가자. 오늘 밤은 푹 쉬도록 해.
젊은 마법사들이 잠든 후, 나와 레녹스는 피가로와 파우스트에게 오늘 일을 다시 보고했다.
파우스트: ……역시, 이단은 돌이 되어 있었군.
역시라니……. 파우스트는 알고 있었나요?
파우스트: 왠지 모르게. 잘 되면 최후의 때에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피가로: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제자도 있고 공방도 가지고 좋은 최후였나보네.
레녹스: 네. 이단은 리암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분명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어째서 마법의 봉인을 한 방울 남겨두고 간 걸까요.
피가로: 인간은 열 수 없는 문……. 즉, 리암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안에 있는 거겠지. 그래서 레노는 방을 열지 않았지?
레녹스: …….
레녹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녹스: ……임종 때 이단의 인간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단이 과거에 인간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장장이 마법사의 소문이 있었던 것도. 저 문 안에 있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원한의 흔적일지도 몰라.
레녹스가 그 문을 열지 않은 이유를 나는 이제서야 이해했다. 이단 씨를 스승이라 부르며 웃었떤 리암 씨의 소박한 표정이 떠오른다.
(이단 씨가 인간을 원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리암 씨는 모르는 것 같았어…….)
만약 내가 믿고 있는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과거에 나 같은 사람을 진심으로 싫어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과의 추억을 지금까지와 같은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을까. 사실은 나도 미움을 받지 않았는지, 나와 보내는 시간은 고통이 아니었을지 의심하고 말 것이다.
피가로: ……글쎄. 확실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과거가 덧씌워지는 것은 괴로워. 하지만 바뀌지 않을 수도 있어. 성인군자의 꿈이 더러워진다고 해서 다정한 추억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야.
파우스트: …….
파우스트가 순간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가 말한 것은 피가로의 발언에 대한 찬성이었을까, 아니면 반발이었을까. 그 역시 저주꾼으로 살아온 것을 자신을 그리워하던 레녹스에게 알려졌다. 파우스트가 말없이 일어나 레녹스를 바라본다.
파우스트: ……레녹스. 문을 여는 것도 열지 않는 것도 마음대로 하면 돼. 만약 네가 열 수 없다면…… 그때는 내가 봉인하겠다. 이단이 문 안에 봉한 것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도록.
레녹스: 파우스트 님…….
레녹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파우스트는 재빨리 우리에게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파우스트……. 쫓아가지 않는 편이…… 에에…….
피가로: 놔두자. 조금 바깥 공기를 마실 시간이 지금은 제일 필요할 테니까.
레녹스: ……파우스트 님께는 전해드리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요.
피가로: 그렇지 않아. 파우스트에게는 힘든 화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파우스트는 모르는 것으로 얻는 행복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타입이겠지.
레녹스: ……그렇네요…….
피가로: 뭐, 그래도 나도 파우스트에게 동의해. 문을 여는 것도 열지 않는 것도 레노 네 마음대로 하면 돼.
피가로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내던지는 듯한 표현과는 달리 목소리는 온화하고 친근적이다.
피가로: 열어서 후회할 수도 있고, 열지 않아도 분명 후회할 거야.
레녹스: …….
피가로: 레노가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우리는 레노의 힘이 될테니까.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파우스트도 너를 걱정하고 있어. 걱정하는 법이 조금 서투르지만.
레녹스: 네.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그런 분이시니까요.
레녹스는 미소지었다. 그 표정에 평소의 평온함이 돌아온 것 같아 내 가슴에도 안도가 번진다.
저에게도 힘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우선 내일 복구 작업, 모두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레녹스: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의 밤샘은 금물이라며 피가로에게 촉구받아 우리는 내일을 대비해 각자의 잠자리에 잠이 들었다.
레녹스: ……?
레녹스: (여기는 어디지……. 왜 나는 이런 곳에…….)
이단: 어이, 레녹스.
레녹스: ……. 그 목소리는, 이단……?
이단: 뭘 멍 때리고 있어. 네 메이스 정비, 끝났으니까 가져왔다고.
레녹스: ……아아, 그랬었지. 고마워, 이단.
이단: 정신 차려. 이번 작전은 네가 필요해.
레녹스: (작전? ……맞아. 나는 혁명군의 일원으로서 지금부터 적지에 올라탄다. 처음으로 모두를 이끌고……. 모두의 생명과 이상을 등에 업고.)
이단: 왜 그래. 무서운 건가?
레녹스: 아니…….
이단: …….
레녹스: ……아니, 미안해.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지. 나는 파우스트 님처럼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그릇이 안 돼. 모두가 원하는 말조차 줄 수 없어…….
레녹스: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어 영광이야. 하지만, 걸었던 기대에 상응하는 작용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이단: 하하하. 그야 뭐, 이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을 놈은 없지. 자신감을 가져, 레녹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남자야. 내가 말하는 거니까 틀림없어.
레녹스: 이단…….
이단: 그리고, 너에게는 내가 정비한 이 메이스가 붙어 있다. 자,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 이 녀석이 너나 동료들을 지켜줄 거야.
레녹스: ……꿈인가……. 그리운 꿈을 꿨네.
레녹스: (하늘이 어두워. 이 날씨에는 아이들이 도와주러 가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레녹스: (……리암은 무사할까. 큰 부상을 입었고, 공방도 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상태는…….)
레녹스: ……일단 상황을 보고 올까. 모두에게는 편지를 써두자.
7화
파우스트: 레녹스가 혼자서 이단의 공방으로 향했다고?
네. 방에 들어가 보니…….
루틸: 이 편지가 있었어요.
우리가 눈을 뜨자 밖에는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바람도 세고 이따금씩 창문이 흔들린다. 아마 레녹스는 우리를 깨우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에 혼자 떠났을 것이다.
피가로: 내가 상황을 보러 다녀올테니 모두는 아침이나 먹으면서 느긋하게 있어. 이 날씨기도 하고,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아.
파우스트: 나도 갈게. 네로, 미안하지만 현자와 아이들을 부탁한다.
시노: 하? 우리는 집이나 보고 있으라는 건가?
미틸: 맞아요. 저희도 같이 갈게요! 이런 날씨이기 때문에 더욱 협력해서 공방을 고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레노 씨의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
미틸: 레노 씨가 이단 씨의 이야기를 했을 때, 굉장히 상냥하고 온화한 눈을 하고 있었어요. 어제 돌아가셨다고 알려줬을때도,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슬퍼보여서…….
미틸은 간절한 눈으로 호소했다. 고개를 돌린 피가로 앞에서 루틸도 미틸에게 다가선다.
루틸: 저도 미틸에게 찬성이에요. 리암 씨의 부상 상태도 걱정이고요. 게다가 지금은 레노 씨의 곁에 있고 싶어요. 저라면 슬플 때 미틸이나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정말 좋아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니까.
히스클리프: 그렇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레녹스의 힘이 되고 싶어.
네로: 데리고 가도 괜찮지 않을까. 두고 가봤자 이 녀석들, 뒤따라올 수도 있어. 나 혼자서는 못 말리고.
피가로: ……그렇네. 그러면 다 같이 갈까. 파우스트도 괜찮지.
파우스트: ……알았다. 그렇다면 다 같이 뭉쳐 움직이는 것이 안전해.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무언가가 투명한 막이 몸 주위에 쳐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우스트: 비를 피하는 마법이다. 잠시 걷는데 다치지 않도록. 출발하지.
드디어 비와 바람이 그칠 무렵, 우리는 이단의 공방에 도착했다.
히스클리프: 이건…….
시노: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하네.
나는 주위의 참상을 둘러보며 숨을 삼켰다. 어제 리암 씨가 애써 수리한 벽도, 수리할 필요가 없었던 부분도 강풍을 맞아 무너져 버렸다.
레녹스, 리암 씨! 어디에 있나요!?
루틸: 레노 씨! 어디인가요!
레녹스: 루틸, 여기야.
레녹스!
황급히 목소리가 들린 나무 그늘로 달려가니, 거기에는 리암 씨도 있었다. 레녹스에게 안긴 상태로 누워있다.
……! 리암 씨, 괜찮나요?
리암: 아아, 나는 괜찮아. 벽이 넘어져서 찌그러질 뻔한 것을 레녹스가 구해줬어. ……하지만 공방이 비와 바람으로 점점 무너져서…….
리암 씨는 잔해투성이 공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레녹스: 전부 부서진 건 아니야. 벽이 몇 개 무너졌을 뿐이다.
리암: 하지만 대부분이 잔해로 막혀버렸어. 어제 안내한 스승의 방의 복도도. 방 자체는 무사한 것 같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해. 모처럼 와줬는데 미안해.
레녹스: 그런 건 상관 없어. 네가 무사한 것이 제일이야.
레녹스의 전신은 비에 젖어 있었다. 비를 피하는 마법도 리암 씨를 도왔던 거겠지.
레녹스: 우선 네 부상을 치료하고 이단이 아끼던 이 공방을 고치자.
미틸: 레노 씨 뿐만이 아니에요! 저희도 같이 도와드릴게요.
리암: 너희들은…….
루틸: 레노 씨의 친구예요. 레노 씨의 친구 분의 제자가 곤란하다고 하셔서 도와주러 왔어요. 다 같이 힘을 합치면, 가게도 분명 금방 고쳐질 거예요.
시노: 레녹스의 정의로 이 만큼의 마법사가 도와주는 거야. 네 행운에 감사해.
젊은 마법사들이 모여 리암에게 차례대로 격려의 말을 건넨다. 눈물을 글썽이던 리암 씨의 얼굴이 활짝 빛났다. 코를 훌쩍이며 마법사들에게 힘차게 고개를 숙인다.
리암: 고마워.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게 해줘.
미틸: 은혜라니…….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리암: 아니야. 그러면 내 기분이 안 풀려. 단련 때문에 곤란하다면 나를 기억해 줘. 아무리 엉뚱한 작품이라도, 귀찮은 정비라도 내가 꼭 맡을게.
네로: 정말로? 그러면 주방의 칼도 갈아야겠다.
히스클리프: 네로…….
리암: 아아, 맡겨줘!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리암을 진찰해 주시겠나요?
피가로: 물론. 리암, 이리 와. 이래보여도 나는 의사니까 안심해. 루틸, 치료 좀 도와줄래?
루틸: 네!
피가로: 현자님, 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줄 수 있을까? 일단 진흙부터 씻어내야 해.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건물 수리는 우리가 맡지. 일단 잔해 이동부터 시작하자. 이쪽이다. 따라와.
시노: 맡겨줘. 전보다 더 큰 공방으로 해줄게.
히스클리프: 그건 수리가 아니라 개조잖아.
네로: 하하. 뭐, 수리도 개조도 적당히. 상처 하나에도 마음이 가는 건물일 테고.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장소에 붙어 작업에 착수했다. 피가로의 지시 아래 나와 루틸은 리암 씨의 치료를 돕고 있었다.
피가로: 여기 뼈,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네. 상처가 낫기 전에 많이 움직였구나.
리암: 어쩔 수 없어서……. 나을 수 있을까?
피가로: 응. 그런데 좀 거친 치료가 될 거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쪽은 보지 않는 편이 좋겠어.
루틸: 괜찮아요, 리암 씨. 피가로 선생님은 남쪽 나라에서 제일 가는 의사니까요.
루틸: 팔을 고치는 동안 저와 수다를 떨죠! 이단 씨는 어떤 분이셨나요?
리암: 그렇지. 스승은…….
루틸의 밝은 수다에 리암 씨의 불안감도 뒤섞인 듯했다. 그 사이 피가로가 재빨리 치료를 진행한다. 익숙한 만큼 훌륭한 연계였다. 그 바로 옆에서는 차근차근 공방의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쳬!' ……파우스트 씨, 레노 씨! 여기서 물이 새고 있어요!
레녹스: 잘 찾았네. 우선 마법으로 막고 거기 양동이로 물을 퍼내줘.
파우스트: 물을 퍼내면 토대가 안정 돼. 레녹스, 접착용 소재는 아직 필요한가?
레녹스: 그렇네요 …….미틸이 찾아준 곳도 막으려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파우스트: 알았어. 히스클리프, 그 작업은 일단 시노에게 맡기고 너는 접착용 소재를 만들어줘.
히스클리프: 알겠습니다.
미틸: 영차…….
진흙투성이가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미틸은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무거운 양동이를 들면서.
(미틸은 부지런하네 …….남쪽 나라에 있을 때도 이런 식으로 자진해서 누군가를 돕고 있었겠지.)
히스클리프: 미틸, 괜찮아? 나도 조금 들까?
미틸: 익숙하니까 괜찮아요! 저, 꽤 힘 세거든요. 히스클리프 씨도 힘낸다면 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날씬하고.
히스클리프: 정말로? 대단하네, 미틸. 나는 미틸을 안는 것도 자신 없을지도.
시노: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미틸도 히스도 안을 수 있어.
히스클리프: 또 의기양양해지기는…….
8화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시노: '맛차 스디파스'
무거운 잔해를 이동시키는 것은 주로 레녹스와 시노의 몫이었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네로가 마법으로 벽을 다듬으면 히스클리프가 돌 입자로 만든 용제로 틈을 정성껏 메워 나간다. 각자의 지질에 맞는 일을 정확하게 배정하는 것은 파우스트였다. 자신도 마법으로 도와주면서 지시를 내린다.
파우스트: 치료 중 미안하군. 리암, 계단은 저 위치가 맞나? 난간 일부분이 비어있던데.
리암: 맞아. 다락방 창고에 이어져 있어.
파우스트: 지붕이 떨어진 충격으로 공방의 서쪽이 기울은 건가. 원래 지반이 느슨했던 걸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이단이라면 어떠한 대책을 하고 있었을 거야. 원래의 토대를 살려 보수하도록 하지.
파우스트: 레노, 파손되기 전의 토대가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 알아봐 줘.
레녹스: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시노! 우리는 지붕을 마법으로 들어올린다.
집단 행동의 마음가짐 따위는 모르는 나에게도 파우스트의 지휘의 선명함은 알 수 있었다. 공방이 착실히 살아나고 있다. 마법에 따라 퍼즐처럼 잔해가 조합해 벽과 기둥과 문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상쾌할 정도다. 붕대를 감고 있는 피가로가 약간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나도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의 침묵이나, 엎드린 시선, 방을 떠난 등이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지시를 내리는 그 모습은 늠름해 보였다. 망설임도 통증도 보이지 않고, 등을 편 채.
작업이 일단락 되고 우리는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네로가 일부러 숙소로 돌아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다 같이 먹는다.
미틸: 이 브로콜리랑 치즈 샌드위치, 너무 맛있어요!
시노: 새우랑 양파도 맛있어. 하나 더 먹어도 되나?
네로: 하하, 먹고 싶은 대로 먹어. 재료만큼 잔뜩 만들어 왔으니까. 자, 현자 씨도 하나 더.
괜찮나요? 잘 먹겠습니다!
피가로의 치료도 끝났고, 리암 씨는 네로의 샌드위치를 입에 옮기며 감회 깊은 듯 공방을 바라보고 있다.
피가로: 저 입구 근처, 아까까지만 해도 잔해 더미였는데. 역시 파우스트 지휘관이네.
파우스트: 묘한 직함을 붙이지 마. 그들이 열심히 한 성과다.
리암: 너희들한테는 너무 고마워. 이렇게 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입구에서 스승이 나올 것 같아.
레녹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이단에게 길러졌다고 했지.
레녹스가 묻자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암: 맞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의지할 친척도 없던 나를, 스승이 제자로 받아줬어. 날카로운 분위기라 솔직히 무서웠지 …….같이 살다 보면 조금씩 부드러워져서. 조금 서투른 데도 있지만, 끈기 있고 잘 돌보는 사람이었지.
레녹스: ……그렇지. 내가 아는 이단도 그런 사람이었어.
레녹스가 살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리암 씨가 조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된다.
리암: 그러고 보니 무기 손질을 배웠을 때, '너는 내 동생을 조금 닮았다' 라는 말을 들었어.
레녹스: 동생?
리암: 아아. 외형도 성격도 다르지만, 고집이 세서 한 번 말을 꺼내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점이 똑같다고. 그때 똑같이 동생과 닮은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고. '벌써 오래 못 봤는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라면서.
리암: 어쩌면, 그 친구라는 것은 너를 말하는 거였을지도 몰라.
레녹스: …….
안경 너머 눈동자가 흔들린다. 큰 손이 주먹을 불끈 쥔다.
리암: 너는 옛날의 스승을 알지. 저기, 옛날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었어? 스승이 나에게 숨겼던 과거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가 어떻든, 나와 함께 살았던 스승이 서투르고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레녹스: ……아아, 네 말이 맞아. 가게 수리가 끝나면 다시 한 번 그 문으로 안내해 주지 않을래. 이번에야말로 그 방을 열자.
리암: 아아, 알았어.
시노: 어이, 이제 안 먹을 거면 그쪽의 샌드위치도 줘. 계속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리암: 으음, 너는 확실히 시노 씨였나? 우리 스승이 마법으로 봉인했던 방을 레녹스 씨에게 열어달라고 했어.
시노: 흥, 나를 닮은 스승의 비밀스러운 방인가. 뭐가 들어있을까.
리암: 너를 닮은……?
고개를 돌리는 리암에게 모두가 웃었고 레녹스가 웃었다. 이어서 피가로와 파우스트도.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간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마법사들의 협력으로 공방은 몰라보게 복원되었다. 잔해는 모두 제거되었고, 입구도 드나들기 쉽게 정돈되어 있다.
리암: 굉장해……! 설마 하루만에 여기까지 고쳐줄 줄은…….
파우스트: 고치는 김에 수호의 마법을 걸어놨어. 적어도 지붕이 떨어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미틸: 부서져 가던 금상과 화로도 저희가 고쳐놨어요. 부엌이랑 복도도!
리암: 고마워! 이렇게 깔끔하게 수리를 받다니, 오늘부터라도 당장 대장간 일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리암 씨, 엄청 기뻐 보이네.)
젊은 마법사들도 모두 반가운 그 미소에 자랑스럽게 웃어 넘기고 있었다.
리암: 이러면 스승의 방에도 갈 수 있겠어. 안내할게, 레녹스 씨.
레녹스: 고마워, 리암.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파우스트 님. 그리고 현자님도. 괜찮으시다면 이단의 방까지 따라와 주시겠나요?
물론이에요.
파우스트: 아아, 가자.
피가로: 모두들, 미안하지만 우리는 잠시 자리를 비울게. 너희들은 숙소로 돌아갈래?
루틸: 아뇨, 밖에서 기다릴게요! 저희는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하고 오세요.
9화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단의 방 앞으로 왔다.
파우스트: 레녹스의 말대로 조금이지만 마력이 느껴져. 봉인을 풀어봤자 해는 없을 것 같지만 조심하는게 좋아.
레녹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녹스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다. 그러자 피가로가 그 등을 툭 쳤다.
피가로: 괜찮아. 우리가 있어.
나는 조금 놀랐다. 사교적이고 말도 잘하는 피가로라면 이럴 때 말을 더 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짧고 심플한 말에 레녹스의 표정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파우스트: ……만일 무언가를 풀어버린다고 해도, 내가 이 손으로 정리하겠다. 레녹스, 네가 원하는대로 해.
레녹스: ……네. 감사합니다.
레녹스: 그러면 봉인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레녹스가 문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그가 주문을 외우자 문이 희미하게 빛났다. 이윽고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무거운 입구가 열린다.
레녹스: ……이건…….
방에 들어서자 먼지 냄새와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무더기로 진열된 무기들이었다. 도끼, 창, 검, 크로스보우 등 종류도 방대하다. 그리 넓은 방이 아닌데도 빼곡히 들어차 있다.
피가로: 엄청난 양이네. 일 때문에 맡긴 무기를 두고 있었나.
리암: 아니……. 내가 아는 한, 스승은 무기에 관한 일은 전부 거절헀어. 나한테 그럴 자격이 없다면서…….
레녹스: 그렇다면, 여기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는 대체…….
레녹스가 작업 책상에 손을 뻗었다.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희끗희끗한 봉투를 집어든다.
레녹스: 이단의 편지……? 마법으로 봉해져 있어…….
피가로: 틀림없이 너의 앞으로 온 것이겠지. 우리는 밖에 나가 있을까?
레녹스: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여기에 계셔주세요.
레녹스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봉투를 집어들고 편지를 꺼냈다. 힐끗 글을 읽지 못하는 나에게 눈을 주고 나서 소리내어 읽어준다.
레녹스: '레녹스. 이걸 읽고 있다는 건 내가 어젯밤 보낸 편지는 잘 받았겠지. 갑자기 그런 걸 보내서 미안하다. 나에게는 더 이상 긴 편지를 보낼 만한 마력이 남아있지 않아. 그래서 여기에 두고 편지를 남겨둘게.'
레녹스: '어쩌면 소문으로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혁명군을 떠난 후 오랫동안 대장장의 일로 맡아온 인간의 무기를…… ……저주했다.'
리암: 에…….
리암 씨가 숨을 삼켰다. 레녹스도 약간 숨을 몰아쉬었지만 조용히 편지를 계속 읽는다. 편지에 의하면 이단 씨는 여러 거리를 전전하며 주인을 상처 주는 저주를 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끝에 대장장이들이 모이는 거리로 흘러갔따. 이 나라에서 수완가 하면 이 거리. 솜씨가 있는 대장장이는 보통 이 거리에 산다. 수백 년 대장장이의 연찬을 쌓은 이단 씨는 실력이 있음에도 거리에 살지 않는 '이유' 로 행선지에서 의아해하고 있었다.
레녹스: '이 거리에는 되도록 오래 살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대장장이 마법사의 소문을 속일 수단이 필요했어. 그럴 때, 몸이 불편한 아이의 인수자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의 자식을 제자로 삼을 생각을 한 것은 그때였지.'
레녹스: '인간의 제자를 키우고 있는 장인이 인간의 무기에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리암: …….
레녹스: '……리암, 이라고 하는 이름에 인연을 느낀 것도 있어. 레녹스는 알겠지만, 군에 들어가기 전 죽은 동생과 같은 이름이니까.'
하지만 리암 씨는 이단 씨의 속셈을 모르고 순진하게 이단 씨를 믿고 따랐다.
레녹스: '특별한 손재주는 없지만 성실하고 열심히하고 기죽지 않는 아이였다. 동생 리암과는 별로 닮지 않았지만…… 한 번 말을 꺼내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점만은 많이 닮았어. 레녹스와 똑같이.'
이윽고 리암 씨는 동생 리암 씨가 죽은 나이를 따라잡았다.
레녹스: '그 생일을 축하했을 때, 스승이 나를 받아줘서 다행이야라며 그 아이는 웃었어. 나는 마법을 쓰니까 인간 스승이 분명 공부가 됐을 거라고 해도 고집을 부리면서.'
레녹스: '그때 후회했다. 나는 운한으로 인해 이 아이에게 하면 안 될 짓을 해버렸다고.'
이단 씨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담담한 말 속에 아플 정도의 후회와 죄책감이 배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녹스: '속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주를 내린 무기를 찾아 모아 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주는 강했다. 정화할 때마다 쏟아지는 저주에 이단 씨는 서서히 쇠약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곧 돌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단 씨는 펜을 들었다. 편지를 읽어내는 레녹스가 그 마지막 부분을 보고 깊이 숨을 쉰다.
레녹스: ……'마지막으로, 레녹스에게 전하고 싶어. 만약 네가 아직도 그날에 사로잡혀 방황하고 있다……. 너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네가 행복하기를.'
편지를 다 읽자 레녹스가 고개를 들어 천천히 실내를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무기들은 모두 이단 씨가 저주를 내린 것들. 그리고 그 목숨을 대가로 저주를 정화한 것들.
피가로: ……그는 스스로의 저주에 스스로 결말을 지은 거였구나.
파우스트: 아아. 비록 고통이 따르더라도, 자신의 수명을 깎는다 하더라도. 이단에게 꼭 해내야 할 일이었겠지.
파우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레녹스의 시선이 하나하나 무기를 더듬는다.
레녹스: ……책임감이 강한 이단답습니다.
레녹스는 중얼거리며 작게 웃었다. 길고 불안한 여정 끝에 드디어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리암: …….
레녹스: ……리암.
말을 걸자 리암 씨는 정신을 차린 듯 레녹스 쪽을 돌아보았다.
리암: 아아, 괜찮아. 스승이 인간을 저주하고 있었고, 나를 데려온 것도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그래도 옛날의 스승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리암: 여기 있는 무기는 내가 맡을게. 스승으로부터 공방을 이어받은 제자로서.
리암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레녹스: ……리암.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나에게 나이프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 않을래?
리암: 상관없지만, 어떤 검을 만들게?
레녹스: 가능하면 부적용으로. 이단의 무덤에 올리고 싶어.
레녹스: ……옛날에 이단이 정비해준 무기가 나와 동료들을 몇 번이나 지켜주었어. 그 답례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지……. 이단이 마지막에 찾은 안식의 땅에 언제까지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며.
10화
리암: 이곳에 축복을……. 물론, 기꺼이 도와줄게.
레녹스: 고마워. 든든하네, 리암.
리암: 고맙다고 해야 하는 쪽은 나야. 스승을 아끼는 사람에게 나이프 만드는 법을 알려주게 되다니. 무덤 속 스승이 비웃지 않도록 기합을 내서 만들어야지.
피가로: 우리도 도와줄게. 밖에서 기다려주는 애들에게도 말을 걸어볼까.
이렇게 해서 우리는 부적용 나이프 만들기에 착수하게 되었다.
레녹스: ……됐다.
리암 씨에게 배운지 몇 시간. 밖에서 기다려주던 마법사들의 손도 빌리면서 마침내 레녹스의 나이프가 완성됐다. 공방에 살짝 비치는 빛이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칼날 끝에 반짝반짝 반사되고 있다.
리암: 멋진 나이프네. 도저히 처음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완성품이야.
레녹스: 너와 모두가 도와준 덕분이야.
레녹스는 나이프를 겨누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대담한 옆 얼굴에는 땀 한줄기와 싱그러운 미소가 서려 있었다.
미틸: 레노 씨가 만든 나이프, 정말 멋있어요! 친구 분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루틸: 네, 꼭! 바로 이단 씨에게 보여주러 가요.
레녹스: 그렇네. 해가 지기 전에 이단의 무덤에 올리자.
그리고 레녹스는 완성된 나이프를 들고 이단 씨의 묘소 앞에 섰다. 해는 기울고 부드러운 바람이 나이프와 함께 올려진 들꽃을 부드럽게 흔들고 있다.
레녹스: …….
파우스트와 피가로와 나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과 리암 씨는 자리를 비우고 가게 안에 들어가 있다.
레녹스: ……이단, 편히 잠들어. 이 나이프가 계속 녹슬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그러자 피가로와 파우스트도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피가로: '폿시데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이 레녹스들이 있는 근처를 비추고 있다. 이별을 고하는 미소처럼, 따뜻하게.
레녹스: ……그럼, 무사히 귀환한 것을 축하하며. 건배.
파우스트 / 피가로: 건배.
레녹스: 이러고 있으니 그리운 듯 아닌 듯 신기한 기분이 드네요.
피가로: 아아……. 옛날에는 이 조합으로만 마시는 일은 없었지. 연석은 있었지만.
파우스트: 나와 피가로가 마시는 일은 가끔 있었지만, 레녹스는 단둘이 마신다면 이단이 더 많지 않았었나.
레녹스: 술은 이단에게 배웠으니까요. 싸움이나 세계, 그 이상의 것도.
파우스트: 비유하기에는 어리지만…… 시노와 미틸과 닮았었지. 형제 같지만 형제가 아닌 분위기가.
피가로: 이단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지만 리암이 그렇게 좋아했다는 것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겠지. 치료할 때도 계속 이단과 공방 얘기를 했었어. 스승님을 한결같이 믿는 착한 아이였구나.
레녹스: 이단이 좋은 스승이었겠지요. 스승이 좋으면 제자도 좋아진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피가로: 그러면 나도 좋은 스승이었다는 건가.
파우스트: 하?
레녹스: 리암이나 그 공방……. 그가 마지막에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피가로: ……레녹스. 그 문을 열었을 때, 어땠어?
레녹스: ……그렇네요……. 잘 말할 수 없습니다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파우스트: ……그렇군.
레녹스: 네. 두 분께도 걱정을 끼쳐버렸네요. 계속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틸: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기 계셨군요.
미틸: 아, 피가로 선생님. 또 술 마시고 있어!
피가로: 아하하, 들켰네. 다 같이 모여서 무슨 일이야?
에, 그게…….
시노: 네로가 야식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 너희도 먹으러 와.
파우스트: 네로가?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네로: 아니, 그게……. 시험 삼아 새 칼로 이것저것 자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칼집이 잘 나서…….
파우스트: 그렇군. 자른 재료를 처리하기 위해 야식을 만들었더니 대량이 되어 버렸다고.
네로: 네…….
히스클리프: 아까 주방을 들여다봤는데 엄청 진수성찬이었어요. 우리 전원이 다 먹어도 안 없어질지도.
괜찮다면 여러분도 어떤가요? 셋이서만 저녁 반주를 하고 싶다면 물론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내가 권하자 피가로가 소탈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피가로: 나는 그쪽으로 합류할까. 둘은 어떻게 할래? 안주만 가져다 줄까?
파우스트: 레노에게 맞추지.
레녹스: 그렇다면 저희도 가겠습니다. 마침 취기가 기분 좋게 돌아온 참이었으니까요.
루틸: 그럼 여기서 파티하죠! 음식 날라올게요.
모두가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자 담화실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어른들은 새 술병을 열고 나와 젊은 마법사들은 주스를 따른다. 파티 안주는 맛있는 야식과 오늘의 추억.
레녹스: …….
문득 레녹스를 보니 그는 잔을 기울이며 마법사들을 잔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알아차리면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어준다.
레녹스: 오늘은 좋은 밤이네요. 조금 시끄럽고, 즐겁고, 뭔가 눈이 맑아져서. ……이런 평화로운 밤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레녹스의 시선 끝에는 젊은 마법사들로부터 요리 설명을 듣는 파우스트의 모습이 있었다. 모두에게 둘러싸여 있는 파우스트는 조금 난처한 표정이다. 하지만 즐거워 보이기도 한다.
레녹스: ……이단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누군가를 배려하고, 인간도 믿고. 그렇지만 그런 그가 모든 것을 저주할 정도로…… 혁명군의 마지막은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레녹스는 눈을 내리깔았다. 불꽃 같기도 하고, 피 같기도 한 눈동자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을 봐왔겠지.
레녹스: 그래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복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녹스: ……바라건대, 언젠가 파우스트 님도 자신의 행복을…….
레녹스의 낮은 목소리가 소소한 기도를 자아낸다. 그것은 구름 사이의 초승달처럼 덧없는 기도다.
(……하지만…….)
나는 상상했다. 언젠가 레녹스의 소원이 결실을 맺을 때를. 그건 어쩌면 오늘 밤처럼 조금 시끄럽고, 즐겁고, 눈이 맑아지는 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때 그 장소에는 레녹스가 있어주면 좋겠다.
석양을 받아 빛나는 부적용 나이프처럼, 그저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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