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러나 라스티카는 미소를 지으며 신사적으로 그 손가락을 풀었다.
라스티카: 고마워. 하지만 저에게는 사랑하는 신부가 있어서. 답례는 이 밀크티 드롭만으로.
밀크티색 머리를 아름답게 바람에 휘날리며 라스티카는 우아하게 왼쪽 눈을 감는다. 기품 넘치는 모습과 귀여운 몸짓의 융합에 무심코 눈길을 빼앗겼다.
여, 역시 라스티카! 이것이 귀공자의 스마트한 대응…….
클로에: 왠지 두근두근거렸어! 게다가 밀크티 드롭이라니,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시노: 초대장에 써져있던 레시피 재료네. 이 녀석들을 도와주면 돌체의 재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건가.
미스라 / 오웬: 하……?
피가로: 귀찮아하지 마. 대접을 받겠다고 한 건 오웬이잖아. 게다가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는 저 민트색 아이에게 말을 걸어볼까.
파우스트: 쪼그리고 앉아서 다리를 보고 있네. 다친 걸지도 몰라.
네로: 나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료가 필요하다고 하니.
웅크린 그녀 앞으로 피가로와 파우스트, 네로가 다가간다. 허리를 굽혀 숙이는 귀부인에게 시선을 맞추듯 겉옷자락을 털어놓은 피가로가 쭈그리고 앉는다.
피가로: 안녕하세요, 민트색 여성분. 뭔가 곤란한 일이라도?
민트초코의 귀부인: ……아파, 아파. 다리, 아파.
파우스트: 그는 의사다. 손을 떼고 보여줄 수 있을까?
피가로: 응, 정말 고마워. 아아…… 금이 갔네. 나, 초콜릿 환자 치료한 적은 없어서. 그녀를 녹여도 괜찮을 것 같아?
파우스트: 부분적으로라면……?
네로: 복구하는 것보다 녹여서 굳히는 게 좋아. 사람이 그러면 안 될 것 같지만, 이 녀석의 몸은 초콜릿이고.
피가로: 뭐, 그것도 그런가. '폿시데오'
손을 치켜들고 피가로가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옅은 빛과 함께 금이 간 부분이 걸쭉하게 녹아내렸다.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귀부인의 발목은 흠집 하나 없는 초콜릿으로 돌아간다.
피가로: 좋아, 이걸로 이제 괜찮아.
파우스트: 깨끗이 나았네. 그건 그렇고, 흐름상 피가로에게 맡겼지만 여기는 요리사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았나.
네로: 아니, 나는 요리에 마법은 안 쓰고 사람 모양으로 움직이는 걸 녹이면 문가 긴장되니까. 게다가, 아마…….
민트초코의 귀부인: …….
민트초코 귀부인은 반갑게 피가로를 올려다보며 민트색의 둥근 결정을 내밀었다.
피가로: 이게 네가 주는 재료? 고맙게 받을게.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피가로의 긴 손가락이 민트색 드롭을 받는다. 귀부인은 그런 피가로를 바라보며 쭈그리고 앉았다.
피가로: 이런.
그 어깨를 부드럽게 받치고 벌떡 일어선 피가로는 근처 나무에 그녀의 등을 기대게 했다. 그리고 스마트하게 몸을 뗀다.
피가로: 아직 휘청거리려나. 괜찮아. 곧 통증도 사라질 거니까. 모처럼 예쁘게 만들어졌는데, 또 빠지면 아까우니까. 당분간은 얌전히 있도록.
부드러운 미소는 따뜻하고 상냥하며 의레적이었다. 그것은 환자를 배웅하는 의사의 얼굴이다.
피가로: 나도 단 건 싫어하지는 않아. 하지만 너무 단 것은 조금 그러려나. 부디 몸조심 하기를.
방금 받은 블루 민트색 드롭에 달콤하게 입술을 대고 피가로는 한쪽 눈을 감았다.
네로: ……맞아. 아까 그 아가씨를 보고 이렇게 전개될 줄 알았어.
부인들, 도와준 상대에 대해서 조금 반하기 쉬운 것 같네요…….
시노: 나는 알아. 이런 걸 '나쁜 아저씨' 라고 하는 거지. 전의 현자에게 배웠다고 히스가 말했었어.
미스라: 근데 녹여도 되잖아요. 그러면 일일이 이야기 같은 거 듣지 않아도 되고. 저 빨간 것도 그렇게 해요.
미스라의 손 끝에 있는 것은 붉은 색 초콜릿의 귀부인이었다. 모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보고 오웬이 하얗게 웃었다.
오웬: 꼴사납네. 모양만 예쁜 인형이라도 어차피 이 녀석들은 못 만든 초콜릿이야.
오, 오웬!
오웬이 마지막 귀부인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오웬: '쿠아레 모리토'
그리고 걸려 있는 모자를 향해 망설임 없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크고 아름다운 모자가 걸쭉한 초콜릿이 되어 녹아내린다.
레드초코의 귀부인: ……!
오웬: 불쌍한 너를 누가 도와줄 줄 알았어? 안됐네. 나는 다른 애들처럼 착하지 않아. 달콤한 초콜릿에게 분수를 알려줄게.
어조는 상냥하고 느긋하지만 칼날처럼 날카롭게 들린다. 냉소를 머금은 오웬에게 왠지 귀부인은 기쁜 듯이 황홀해했다.
오웬: 자, 나한테 줄 게 있잖아. 얼른 꺼내. 그게 아니라면 너도 저 모자처럼 내 마법에 걸쭉하게 녹여져서 그냥 초콜릿이 되고 싶어?
레드초코의 귀부인: …….
네로: 어, 고개를 끄덕였어.
미스라: 말이 빠르네요. 제 말이 맞잖아요.
고개를 숙이는 듯 오웬을 바라보며 그녀는 윤기 있고 투명한 둥근 구슬을 내밀었다. 간판에 그 이름이 떠오른다.
파우스트: '블러디 드롭'. ……홍혈당인가.
이게…….
저주받은 보석처럼 아른다운 결정. 이름 그래도 피를 굳힌 듯한 진홍색이다.
오웬: 헤에.
달빛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선명하지만 빛의 정도에 따라 이따금 희미하게 빛나는 그것을 보면서 오웬을 향한 초대장의 수신인명을 떠올린다. 홍혈색 눈동자의 마법사.
(그만큼 오웬의 눈동자 색이 인상적이었던 거겠지……. 이만큼이나 홍혈수를 심는 사람이니까 이 나무나 홍혈당에 뭔가 있는 걸지도.)
라스티카: 후후, 아직 공방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 정원만으로 만족할 것 같네. 고마워, 오웬.
오웬: 하? 왜 나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야.
라스티카: 이런 멋진 체험을 할 수 있는 건 네 덕분이야. 멋진 초대장을 받아준 너와 그리고 너를 초대해준 닥터 돌체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오웬: …….
라스티카의 미소에 오웬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색의 눈동자가 약간 가늘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헀지만, 그 속뜻은 알 수 없다.
(오웬……?)
피가로: 여기까지 꽤 걸어왔지만 닥터 돌체는 안 보이네.
라스티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공방 안에서 오웬을 환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오웬: ……정말, 너희들은 경사스러워.
문득 낮은 목소리가 귀를 쓰다듬었다. 간판과 함께 선두를 걷는 오웬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일침한다. 계속되던 수다가 멈추고 근처에 있던 홍혈수에서 수액이 떨어졌다.
오웬: 그 녀석이 나를 환영하고 대접 준비를 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닥터 돌체 같은 녀석은 이제 없어.
에……?
오웬: 왜냐하면 내가 죽였으니까.
오웬의 고백에 모두의 발걸음이 딱 멈춘다.
어느새 숲을 빠져나간 것 같다. 큰 저택의 중후한 문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 실례합니다…….
문을 열자 연구실 같은 방이 펼쳐져 있었다. 책상 위에 잡다하게 진열된 시험관이나 플라스크를 닮은 용기들……. 안쪽 선반에는 형형색색의 수상쩍은 작은 병들이 깔려있고 낯선 장치들이 여럿 늘어서 있었다.
파우스트: 이것이 닥터 돌체의 연구실…….
어, 어두컴컴하고 섬뜩한 곳이네요. 왠지 한기가…….
라스티카: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어서 들어와 버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좋았을까?
네로: 아아, 낌새가 나. 어디선가 보고 있네.
네로의 말에 움찔하며 등골이 일렁거렸다. 이름도 목적도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둘러앉는 듯한 독특한 기색이 가득한 기묘한 저택 어딘가에서.
(아까까지 평범하게 즐겼는데, 갑자기 불안해졌어…….)
피가로: 오웬, 아까의 이야기는 진짜야? 네가 닥터 돌체를 죽였다는 거.
오웬: 진짜야. 그런 거 거짓말해서 뭐해. 그리고 흔한 이야기잖아, 북쪽의 마법사가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피가로 선생님.
마른 목소리로 오웬이 웃는다. 고요해진 공방에 그 목소리가 반항을 이르키며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도 우리를 비웃는 것처럼.
7화
시노: 너,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본인이 아닌 걸 알면서 여기까지 왜 온 거야.
클로에: 누가 닥터인 척 초대장을 보냈다는 거지. 오웬은 그게 누군지 알아?
오웬: 대충. 너희도 곧 알게 될 거야.
미스라: 귀찮아졌는데요……. 끌어내도 되나요? 닥터 돌체든 뭐든 좋으니까 대충 수다를 떨고 길들이면 되는거죠.
오웬: 그러고 싶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너는 감당할 수 없을 걸?
미스라: 하?
그때,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보니까 작업대 위에 큰 접시가 올려져 있다. 거기에 초콜릿 글씨가 새겨져 가는 것이 보였다.
피가로: ……'정원 산책은 즐거우셨나요? 오늘의 메인은 특별한 돌체. 부디, 궁극의 레시피를 즐겨주시길.'
라스티카: 이런.
라스티카의 손에서 조금 전 초콜릿 귀부인에게서 받은 밀크티 드롭이 살짝 떠오른다.
피가로: '밀크티 드롭 조각, 코카트리스 알, 빙글빙글 젬…….'
초콜릿의 글씨가 계속 늘어난다. 다른 식재료들도 뒤를 이어 수상한 기구들이 잔뜩 달린 장치와 유리 용기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공방이 움직인다……. 접시에 적혀 있는 것이 초대장의 레시피인거죠.
시노: 그럼 지금 만들어진 것이 돌체인가? 여기까지 길었네.
미스라: 대접이라더니 손님들한테 식재료를 모으게 한 건가요?
파우스트: 일부러 시킨 거라면 의미가 있는 거겠지. 식재료를 손에 쥐게 함으로써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던가.
라스티카: 닥터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오웬에게 보내는 메세지인가. 체험 놀이 같아서 저는 즐거웠지만요.
고소한 냄새와 불온한 조리음을 내며 반죽이나 소스, 크림이 작업대와 장치 위를 어지럽게 오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웬이 근처 선반에 기댔다.
오웬: ……백 년 정도 전인가. 꿈의 숲에 두 명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쏠렸다. 긴 다리를 꼬고 홍혈당을 손가락으로 놀리며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낮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오웬: 한 명은 빈사였고, 다른 한 명은 쇠약했지. 나는 상냥해서 그런 두 사람에게 붉은 결정을 두 개 건네줬어. 달콤하게 녹는 매혹의 알갱이. 대신 한쪽은 죽음의 맹독이 들어있지.
……붉고 달콤한 결정……. 혹시 홍혈당인가요?
내가 묻자 오웬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얇은 입술을 벌린다.
오웬: 약해진 몸에 단맛은 최고의 진수성찬. 쇠약하기만 한 거라면 살아날지도 몰라. 하지만 어느 쪽에 독이 든 건지 모르니까 분명 후회할 거야. 몸을 안쪽에서 갉아먹고 피를 토하면서 아아, 이런 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였어 라며.
라스티카: 어째서 그런 짓을…….
오웬: 그런 건 당연하잖아. 오락이야. 두 사람이 사이좋게 죽을지, 운에 걸고 혼자만 살아남을지……. 차가워지는 몸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추잡한 갈등이라니, 최고의 쇼지?
목을 죄며 오웬이 웃는다. 회색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그 틈으로 일그러진 다른 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것이 어둑어둑한 실내와 어울려 섬뜩해 보인다.
시노: 알고는 있었지만, 변함없이 악취미인 녀석이군…….
미스라: 꿈의 숲에서 소문난 이 사람,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파우스트: 그런데 백 년 전인가.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혹시…….
오웬: 맞아. 빈사의 남자는 닥터 돌체라고 자칭했어.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는데. 비극이든 희극이든 애증극이든 심심풀이가 된다면 뭐든 좋았어. ……뭐,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지만.
의아하게 말하던 오웬이 거기서 한숨을 쉬었다.
오웬: 그 녀석, 내가 건네준 홍혈당을 먹지도 상대방에게 주지도 않고 계속 움켜쥔 채로 있었다고. 제멋대로 말하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신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비, 빈사인데?
오웬: 그래. 오히려 죽어가는 자신에게 흥분했어. '나를 죽이는 것은 악의에 찬 수수께끼. 그리고 사랑!' 이라던가 뭔가……. 토해낸 피에 빠져들면서 재잘재잘 지껄이고 있었지.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홍혈당을 불쑥 허공에 띄워 오웬이 치켜세우는 듯한 몸짓을 곁들인다.
오웬: '이 감미로운 독에 순순하여 위대한 내 인생은 화려하게 막을 내리려고 하고 있다. 인생은 끝까지 파란의 연속이야! 휘유~! 최고!' ……같은 느낌으로.
피가로: 아아…….
오웬: 그래서 내가 끝장을 내줬어. 중얼중얼거릴 만큼 괜찮아졌으니까.
그, 그런…….
피가로: 뭐……. 북쪽 나라에서는 흔히 있는 이야기네. 자신보다 약한 것에는 약자는 당해낼 수 없어. 특히 꿈의 숲이란 죽음이 가까운 사람들이 찾는 무덤 같은 곳이다. 그도 수명이 가까웠던걸까.
오웬: 경위 따위는 관심 없지만 서쪽 마법사이라는 건 알았어. 돌이 되어 부서지는 순간까지 웃었고.
미스라: 싫네……. 북쪽 뿐만이 아니라 그런 걸 보면 우와 하게 되죠. 그런데 죽이지 않으면 입을 다물지 않고 움직이는게 화가 난다고나 할까.
네로: 그런 벌레 말하듯이…….
그때 오웬이 허공에 띄운 홍혈당이 부쩍 높게 춤을 추었다.
라스티카: '마지막으로, 붉은 조각을 하나…….' 아아, 드디어 돌체 만들기도 마무리에 가까워졌나보네.
시노: 아아. 내가 가지고 있던 젬도 가져갔어.
클로에: 도대체 어떤 돌체가 완성되는 걸까…….
의심과 의아, 그리고 약간의 기대를 담은 눈빛이 날아오른 홍혈당에 쏟아진다. 선명한 붉은색이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번쩍 빛나는 것을 보고 파우스트는 턱에 손을 얹었다.
파우스트: 그런데 꿈의 숲을 찾은 닥터는 2인조라고 했었지. 꿈의 숲에 빈사의 남자를 혼자 옮길 수 있었을 정도다. 함께 있었던 것은 마법사였나?
오웬: 맞아. 많이 쇠약해졌지만. 그 녀석의 돌을 먹은 거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은거 아니야? 나한테 과자를 보내는 건 아마도 그녀석이겠지. 맨날 독이 들어간 걸 보내니까.
클로에: 에!? 그냥 먹었던 것 같은데 괜찮아?
오웬: 그 정도의 독은 마력으로 녹이니까 문제없어.
네로: 그것보다, 그거 실컷 원망하고 있는 거 아냐?
피가로: 백 년째 독이 든 과자를 받았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 이번 초대도 복수를 부러왔다면 우호적으로 보인 것은 페이크였나.
……에?
라스티카: 현자님, 무슨 일이신가요?
공중에 뜬 홍혈당에 눈을 기울인다. 염염한 붉은색을 두르는 것에 어딘가 위화감이 있었다.
저 홍혈당, 뭔가 색이 이상하지 않나요? 오웬이 손에 넣었을 때보다 탁하다고나 할까, 무늬가…….
확실히 조금 전까지 투명했던 것이 서서히 떠오른다.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반점이었다.
파우스트: 저것은 독이 든……!
네로: 점점 거무스름해지잖아!? 상당히 강한 독 같은데…….
오웬: ……하하.
그걸 본 오웬이 웃는다.
오웬: 보란 듯이 눈앞에서 독을 주입하다니 배짱 하나 좋잖아. 자, 이걸로 만족해?
빗자루도 없이 둥둥 떠올라 허공에 있는 홍혈당을 잡는다. 그리고 주저 없이 장치 안으로 집어넣었다.
현자 / 클로에: 아…….!
장치에서 연기가 오른다. 매혹적인 달콤한 향기가 온 방안에 퍼졌다. 그리고…… 접시 위에 홀연히 나타난 것은 가넷처럼 윤기있게 빛난 아름다운 진홍색 쇼콜라였다.
???: 후후……. 됐어, 됐어. 최고의 돌체가……!
미스라: 아아…… 드디어 나왔네요. 우릴 지켜보던 놈이.
달그락 달그락 구두창을 울리는 소리가 다가온다. 아지라이처럼 흔들리면서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형태가 되어 갔다.
???: 어서오세요, 여러분. 닥터 돌체의 과자 공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나이 어린 여자아이였다. 외관 나이는 아마 클로에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릴지도 모른다. 프릴과 레이스를 넉넉히 사용한 기장의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하얀 피부에 윤기나는 초콜릿빛 머리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예쁘다……. 피부도 도자기 같고, 인형 같아…….)
오웬: 여어, 죽다 살아난 놈. 살아있었구나.
노엘: 죽다 살아난 놈이 아니라 노엘이야.
방울소리 같은 귀여운 목소리로 말하며 노엘이라고 자칭한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의가 보이지 않는 매력적인 미소는 오웬이 짓는 것과 조금 닮아 보였다.
라스티카: 이런, 예쁜 마법사 아가씨. 네가 오웬을 초대했니?
피가로: 닥터와 같은 과학자인가. 제자……처럼은 보이지 않네. 그의 애인인가?
노엘: 네. 노엘이 오웬을 불렀어. 계속,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파우스트: 길 안의 장치는 네가? 안내인 간판이나 초콜릿 귀부인도.
네로: 정원의 과자 손질도 네가 하는 건가? 그런 광활한 숲을 혼자서 하는 건 꽤 힘들 것 같은데.
노엘: 후후, 맞아 맞아. 전부 노엘이 한 대접…….
8화
저, 저기…….
말을 던져도 그녀는 애매한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 커다란 눈동자는 오로지 오웬을 바라볼 뿐이었다.
노엘: 보고 싶었어, 오웬……. 닥터가 돌이 됐을 때 이후니까 백 년 만이려나. 그날의 일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어. 노엘의 소중한 닥터를 죽인 네가 얼마나 이 가슴에 새겨졌다고 생각해?
높낮이를 억누른 듯한 격앙된 목소리를 떨며 그녀가 말했다. 그 끈적끈적하고 강한 시선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따가운 긴장감이 퍼지는 가운데 오웬이 코웃음을 쳤다.
오웬: 몰라. 오랫동안 나한테 독을 계속 보낸 놈의 얼굴을 일부러 이렇게 보러 온 거야. 여기저기 숲을 걷게 하고, 그때의 너희들보다 시시한 재롱이나 보여주면서. 설마 이런 얌전한 과자 하나로 대접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그러면서 오웬은 방금 완성된 진홍색 쇼콜라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보여주듯 혀를 내민다.
시노: 아, 어이!
눈앞에서 독이 든 그것을 그는 홀짝 입에 머금고 말았다.
오웬: ……흠. 그냥 그래.
라스티카: 괜찮니? 그 홍혈당, 시커멓던데…….
배탈이 나거나 하지 않나요!? 아니, 그럴 때가 아니지. 확실히 피를 토하거나…….
미스라: 아무렇지도 않겠죠. 오웬은 입맛이 이상하니까.
피가로: 너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클로에: 부, 북쪽의 마법사는 위까지 강하구나…….
태연하게 입 주위를 핥는 모습은 도저히 맹독을 먹은 것 같지 않았다. 노엘 씨가 숨을 작게 쉰다.
노엘: 소중한 돌체를 한 입에 먹어버리다니 버릇없는 사람. 게다가…… 백 년 동안 과자를 계속 줬지만 독이 든 과자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군요. 그래도 괜찮아. 모처럼 여기까지 와줬는걸. 나쁜 추억이 생기게 하지는 않아…….
그녀는 자신의 몸을 두 팔로 껴안았다. 매력적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눈짓으로 말한다.
노엘: 그날……. 꿈의 숲에서 당신은 닥터를 돌로 만들었어. 무자비하게, 차갑고 담담하게. 그때부터 노엘은 그 감미로운 자극에 사로잡혀버린거야.
흰 볼이 장미빛으로 물들고 어미가 올라간다. 달콤하게 매달리듯이 그녀가 말했다.
노엘: 저기, 오웬. 제발 노엘을 죽여줘.
마법사들: 하……?
유난히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황홀한 표정으로 노엘 씨가 말한다. 모두는 다소 혼란스러운 듯 노엘 씨에게 의문을 던졌다.
파우스트: 너는 닥터를 죽인 오웬을 원망하며 독이 든 과자를 보낸 것이 아니었나?
그래서 복수를 하기 위해 여기로 부른 게…….
노엘: 설마. 말했잖아. 노엘은 오웬에게 죽고 싶어.
상기된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노엘 씨는 오웬에게 한결같은 시선을 보낸다. 그 모습은 매우 헌신적으로 보였다. 결코 손이 닿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단지 이쪽을 봐주었으면 하고 초조해 하고 있는 것처럼.
(노엘 씨는 오웬의 열렬한 팬 같은 느낌인 건가…….)
노엘: 물론 죽이는 방법은 당신에게 맡길게. 교수든 자살이든 독살이든 때려죽이든. 네가 죽여준다면 노엘은 얼마나 행복할까. 있잖아, 그러니까 부탁해……!
오웬: 싫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오웬이 내뱉었다. 즐겁게 좌우로 몸을 흔들던 노엘 씨도 딱 움직임을 멈춘다.
피가로: 가차없네.
시노: 아니, 비교적 멀쩡한 대답이었어.
미스라: 이래서 서쪽의 마법사는…….
오웬: 뭘 우물쭈물하고 있어. 손님을 접대해야지? 과자든 뭐든 준비해서 내 비위를 맞춰봐. 그 악취미 나는 간판처럼 말이야.
노엘: ……으.
작업대에 등을 맡기고 짓궃게 눈동자를 일그러뜨리는 오웬에게 노엘 씨가 조금 비뚤어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은 듯 미소를 짓는다.
노엘: ……그렇지. 당신을 위해 봉사를 해야지.
살짝 목소리 톤을 낮추어 그녀는 예쁜 색의 입술을 연다.
노엘: 저기……. 북쪽의 마법사란 살의를 내뿜을수록 죽이고 싶어지는 거지. 그렇다면 독을 담는 것보다 더 죽이고 싶어지는 일을 하는 건 어때?
……에?
순간 연구소의 공기가 변했다. 유리 용기에 담긴 정체불명의 액체가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시노: 뭐야……?
라스티카: 현자님, 제 뒤로.
아까 과자가 만들어졌을 때와는 모습이 다르다. 수상하고 독한 빛깔의 연기가 퍼져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노엘: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이 좋아하는 달콤한 과자로 대접해줄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저리는 감각을 알았을 때부터…… 계속, 계속 준비했어. 언젠가 당신이 이 저택을 방문하는 날을 위해!
드높이는 노엘 씨의 목소리에 호응하듯 여기저기 진열된 용기에서 신기한 액체가 쏟아져 나온다. 그것이 부글부글 부풀어 올라…….
네로: 에에……!?
파우스트: 피해. 이리로 온다!
샘솟듯이 나타난 것은 스폰지 같기도 하고, 초콜릿 같기도 한 크림 덩어리 같은 신기한 생물. 부풀어오르는 팔을 뻗어 촉수처럼 파도를 치며 이쪽을 향해 휘둘렀다.
클로에: 미스라, 위험해……!
미스라: '아르시무'
팔짱을 낀 채 미스라가 주문을 외운다. 그의 눈앞까지 다가온 팔이 움직임을 멈추고, 다음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튕겨져 나갔다. 방안에 크림 잔해가 흩어진다.
뭐…… 뭔가요 이거! 과자 괴물!?
노엘: 후후, 과자 골렘이야! 이 아이는 닥터가 노엘에게 남긴 보물. 닥터가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신 너를 지킬 수 있도록 노엘이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과자로 만들어 준 인형…….
노엘 씨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방 곳곳에서 약품에서 거품이 나는 소리가 난다. 미스라가 튕겨낸 크림들도 다시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노엘: 연구 도중에 닥터는 돌이 되어버렸지만, 그걸 노엘이 이어받아 완성한 거야. 모든 아이들은 노엘의 말을 듣는 아이들. 월등히 달콤한 매혹의 독으로 그 몸을 감싸주지……. 무심코 목숨을 잃을 정도로.
몸집이 큰 골렘을 양쪽에 낀 노엘 씨가 우리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흠칫 오웬을 가리켰다.
노엘: 자, 나의 귀여운 인형들. 사랑하는 오웬과 그 친구들을 대접해 주세요!
시노: 하? 우리도?
미스라: 상관없지 않나요?
항의할 사이도 없이 골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뻗은 팔에서 컬러풀한 액체 상태의 초콜릿을 떨어뜨리면서 이쪽으로 쉐도한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빙글빙글 허공을 날며 시노가 큰 낫으로 그것들을 갈랐다. 하염없이 태어나는 골렘을 보며 혀를 차고 날에 묻은 크림을 털어낸다.
시노: 자꾸 태어나네. 저 여자도 과자 괴물들도 엉망진창이야……!
시노, 뒤에서 와요! 아아아, 나도 포위당했다……!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내가 비명을 지르기 전, 라스티카가 우아하게 마도구인 새장을 내걸었다.
라스티카: 현자님, 괜찮으신가요? 저희 주위에 결계를 쳤으니 부디 안심해 주세요.
클로에: 으, 응!
가, 감사합니다!
피가로: 하지만…… 이건 과격한 발명품이네. 계속 증식해서 끝이 없어. 그리고 알록달록 초콜릿이 흩어진 데가 산이을 뿌린 것처럼 녹아 있어. 저걸 만지면 최소 화상일 거야.
미스라: 오웬! 저는 과자에 빠지는 취미는 없는데요. 저 녀석을 죽이는 건 간단하잖아요. 원하고 있는데 그냥 해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오웬: 흥……. '쿠레 메미니'
얇은 입술이 아무렇게나 주문을 던진다. 골렘들이 일제히 형체를 잃고 걸쭉해졌다. 이어서 시원한 얼굴로 노엘 씨를 바라본다.
오웬: 저 남자를 죽인 건 내 뜻이 아니야. 그걸 계기로 네가 이렇게 따라다니는 것도 말이야. 게다가…… 나는 그때 너희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었어. 그러니까 왜 그 남자가 죽을 뻔했던 건지도 알아.
오웬: 네가 그 녀석한테 독을 넣었지?
에……?
노엘: ……후후.
혼돈 속에서 웃는 노엘 씨는 마치 소녀처럼 순진해 보였다. 직후, 그녀의 등 뒤 가마솥에서 형형색색의 초콜릿 물결이 쏟아져 나온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마법사들이 응전하고 고렘이 계속 태어나는 혼돈 속에서 그녀가 말한다.
노엘: 맞아……. 닥터가 목숨을 잃은 건 노엘이 만든 독이 든 쇼콜라 때문.
9화
노엘: 닥터는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이대로 죽는 것을 깨닫고 수명을 다하다니 딱하잖아. 지적이고 비범하고 천재이며 미남인 나의 죽음은 더욱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해야 한다고……!'
노엘: 그래서 어느 날, 검은 반점이 뜬 홍혈당을 발견했을 때 운명을 느낀 거야.
그녀의 어미가 올라가는 것에 순응하듯 과자 괴물들이 실내를 기어다닌다. 늘어선 선반을 엉망으로 부수면서 작은 병들이 철썩철썩 부서지고……. 컬러풀한 초콜릿이 바닥, 벽, 작업대를 녹여 주변은 참상으로 변해간다.
노엘: 이거으로 닥터에게 보답할 수 있어. 연인처럼, 신님처럼, 남매처럼, 자신을 사랑해 준 소중한 사람에게.
그래서 그 홍혈당을 닥터에게……?
노엘: 응.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손을 댈 수 있다니 더없이 드라마틱한 일이잖아? 닥터도 좋아해줐어. '그래야 나의 노엘. 이 대천재를 홀린 공주다!' 라고.
클로에: 뭐, 뭐. 본인이 좋아했다면 된 걸까……?
시노: 안 좋잖아. 너도 역시 서쪽의 마법사구나.
라스티카: 그래도 너무 멋진 이야기야. 한결같이 열정적이고……. 네가 주는 모든 것이 기쁨으로 변할 정도로 닥터는 너를 사랑했던 거구나.
노엘 씨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표정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따뜻한 추억을 되새기는 듯했다.
노엘: 응……. 그가 과자 만들기를 시작한 것도 노에를 위해. 극악 디저트 시리즈도 그 중 하나야. 단 것을 좋아하는 노엘을 위해, 지금까지의 연구를 전부 내팽겨치고…….
되새기듯 가슴 앞에서 손을 잡고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골렘의 움직임이 약간 느려진다. 그 틈을 보듯 피가로는 부드럽게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피가로: '폿시데오'
손바닥을 가볍게 쥐듯이 주문을 외운다. 순간, 주위의 골렘들이 한순간에 튕겨 나갔다. 노엘 씨의 뒤에 가마솥과 여기저기 흩어진 고렘의 잔해는 아직 꿈틀거렸지만 추격이 오기 전에도 피가로가 그녀에게 던졌다.
파우스트: 하지만 어째서 둘은 꿈의 숲에? 너도 많이 쇠약해졌다고 들었는데.
노엘: ……독의 배합이 약해서 닥터는 좀처럼 죽을 수 없었어. 그래서 노엘의 마력을 모두 써서 북쪽 나라까지 빗자루를 날린 거야. 북쪽 나라에 있는 꿈의 숲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감미로운 꿈을 보여준다고 하잖아. 하지만 숲의 독에 노엘까지 침범당해서…….
오웬: 하하……. 자기가 손에 넣으려고 했으면서 제멋대로네. 그 남자의 바람을 이루고 싶다면 심장이든 뭐든 한 번 찌르고 편하게 보내주지 그랬어.
노엘: ……그렇지. 그것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노엘의 응석이었어. 결국 닥터는 당신에게 죽고 말았지만…… 그때 알고 말았어. 닥터에게 보답하고 싶었던 마음에 거짓말은 없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던 거야. 사실은…… 계속 죽음에 대한 흥미가 있었어.
노엘: 하지만 닥터에게 독을 담아도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도 그랬을 거야. 왜냐하면 노엘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고 싶었어.
노엘 씨의 눈동자가 오웬을 사로잡는다. 그 시선은 걸쭉한 꿀처럼 달콤했다. 그녀의 등 뒤와 방 곳곳에서 거품이 피어나는 소리가 다시 점차 커져간다.
노엘: 고마워, 오웬. 노엘에게 이 감정을 알려줘서. 진심으로 사랑해.
노엘: 그러니까 이렇게도 당신을 방해하는 나쁜 아이인 노엘을 죽여줘……!
아……!
노엘 씨가 두 팔을 벌리자 신호를 기라뎠다는 듯이 흩어진 골렘의 잔해가 다시 모양을 이룬다. 가마솥에서 쏟아지는 초콜릿과 온갖 약병에서 나오는 새로운 개체들과 함께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오웬: 잡것들을 산더미처럼 준비해도 변하지 않아. '쿠레 메미니'
오웬이 주문을 외우자 골렘들이 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공중에서 다시 하나가 되고, 부풀어 오르는 팔을 이쪽으로 뻗는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마도구 거울을 꺼내 그것을 재빨리 피하면서 파우스트가 고함 친다.
파우스트: 미스라! 골렘의 술을 해제하는 방법은 알고 있나?
미스라: 아는데, 이거 더 이상 술이 아니에요. 마법진을 다시 써서 마법과 매개체와 묘한 약을 섞고……. 상당히 엉망진창이라고요. 대원은 아마 여자 뒤의 솥. 거기에 꿈틀거리는 핵을 파괴하는게 좋을 거예요.
피가로: 그게 제일 빠르겠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단번에 끝내자. 파우스트, 미스라를 보좌해줘.
파우스트: 알겠어. 미스라는 핵을, 나는 다른 매개체를 잠재운다. 방 곳곳에 있는 술에 반응하는 약품을 억제한다면…….
노엘: 하게 두지 않아!
또 초콜릿의 물결이……!
미스라: '아르시무'
노엘: 아……!?
미스라가 주문을 외우자 노엘 씨가 무너져 내렸다. 큰 눈을 부릅뜨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구속된 듯 미스라를 올려다본다.
미스라: 조금만 거기서 얌전히 계세요. 이 저택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는 없거든요. 과자를 가져갈 예정이고 당신을 회유할 예정이라서……. 일단 먼저 역학관계만 알려놓을게요.
피가로: 미스라, 잘했어. 그러면 너희에 이어서 우리는 밖에 나와 있는 골렘을 없애자. 핵과 매개로 탄생한 골렘……. 모든 사슬을 끊으면 증식과 탄생도 멈추겠지. 라스티카는 현자님을 부탁해. 다른 애들은 조금 도와줄래?
시노 / 클로에: 물론!
네로: 아아.
라스티카: 알겠습니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너의 인형들은 과자로 돌려보낼 거야. 네가 오웬을 생각하는 마음은 매우 멋지지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걸쭉하게 만들게 둘 수는 없어.
덤벼드는 골렘을 피하면서 마법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오웬도 언짢은 몸짓으로 골렘을 털어내며 평소처럼 말한다.
오웬: 과자는 달기만 하면 돼. 성가시다니 당치도 않아.
노엘: ……윽.
미스라가 빗자루도 없이 떠올랐다. 꿈틀거리는 가마솥 위에서 하품을 하며 주문을 외운다.
미스라: '아르시무'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미스라에 이어 파우스트가 마도구를 내걸었다. 게다가 다른 마법사들도 이어진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클로에: '스위스피시보 보이팅고크!'
피가로: '폿시데오'
모두의 마법에 따라 솥 안의 내용물이 크게 물결쳤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몸통 부분에 금이 간다. 다음 순간, 크게 빛이 났다.
……!
라스티카에게 어깨를 기댄 채 그 광경에 눈에 휘둥그레진다. 방 안의 약병이 부서지고, 밖으로 나와 있던 골렘들도 마치 초알이라도 맞은 것처럼 격렬하게 튕겨 나가 흩어졌다. 불가사의한 공방에 눈에 띄게 달콤하고 컬러풀한 과자의 비가 내린다. 그 속에서 오웬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노엘: 오웬…….
다가서는 그에게 매달리듯 노엘 씨는 환희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오웬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그녀가 아니다. 그녀 곁에서 그녀를 지키듯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모양을 이루려는 마지막 남은 작은 골렘 몇 구다.
오웬: '쿠아레 모리토'
골렘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그냥 과자로 돌아간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노엘 씨를 곁눈질하며 오웬은 차갑게 눈동자를 일그러뜨렸다.
오웬: 너, 진짜 미쳤구나.
벽이나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스폰지 같은 초콜릿, 크림 같은 과자들. 닥터 돌체의 공방은 흩어진 골렘의 잔해로 엉망이었다. 접시 위에 흩어져 있던 맹독 초콜릿을 오웬이 손가락으로 떠서 핥는다.
오웬: 겍. 하나도 안 달아.
미스라: 여기 올 때까지 꽤 먹었는데 역시 움직이니 배가 고프네요. 현자님도 먹을 건가요? 꽤 좋아요. 골렘 촉수.
아직 움직이고 있어……. 죄송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그 모습을 노엘 씨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미스라의 마법은 풀린 듯 하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깜빡인다. 이윽고 초콜릿빛 눈동자가 일그러지면서 주르르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노엘: 우, 우우~~~~.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살의를 받게 되면 죽이고 싶어지잖아! 짜증나는 녀석도 죽이고 싶잖아!? 닥터 때는 바로 죽여줬는데 왜 노엘은 안돼!?
오웬: 넌 재미없으니까.
노엘: 와아~~~!!!
피가로: 용서가 없네, 진짜.
짜증난 듯 흐느껴 울면서 삐걱거리는 목소리로 노엘 씨가 호소한다.
노엘: 백 년 동안 계속 당신을 위해 과자를 만들고, 몇 번이나 편지가 태워지고 찢겨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선물하고……. 당신과의 추억의 홍혈수를 마당에 잔뜩 심어 독이 든 결정을 찾을 때마다 당신의 과자에 섞었어.
노엘: 당신의 마음을 끌고 싶어서, 매일매일 당신을 생각하면서……. 이제서야 노엘을 찾아와 줬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죽여줄 거야~~!!
귀여운 얼굴을 찡그리고 우는 노엘 씨에게 손이 닿지 않는 동경하느 사람에게 애타는 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녀의 바람은 일방통행의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뜨겁게 빛나는 사랑임에 틀림없었다.
10화
(오웬에게 독을 넣거나 죽이려 하는 것은 둘째치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구나, 그녀는.)
오웬: 정말 울적한 놈이네.
쿵하고 구두소리를 울리며 오웬이 노엘 씨 앞에 선다.
오웬: 네 말대로 너를 죽이는 건 쉬워. 그런데 죽고 싶은 사람을 죽이면 뭐가 즐거우?
색이 다른 두 눈이 맑은 빛을 머금는다.
오웬: 그때랑 똑같아. 내가 그 녀석을 죽였을 때 너의 장미빛 뺨에 구역질이 났어. 죽여주지 않을 거야. 너의 소망은 죽어도 이루어지지 않아.
네온처럼 차갑게 켜지는 방 안의 불빛을 등에 업고 오웬이 딱 잘라 말했다. 노엘 씨가 입술을 꾹 깨문다. 초콜릿색 누동자가 흔들면서 오웬을 올려다본다.
오웬: 그래도 죽고 싶으면 저 녀석한테 부탁하는 건 어때? 나보다 말이 빨라.
미스라: 좋아요. 배가 고프니까 목이나 빠르게 날려드릴까요.
골렘의 파편을 깨물며 미스라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노엘 씨는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흔든다.
노엘: ……오웬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왜냐하면 노엘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주고 싶은 걸. 노엘에게 죽은 닥터처럼…….
시노: 그러면 오웬은 포기해야겠네.
골렘의 잔해를 피해 시노가 노엘 씨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엄지손가락으로 오웬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시노: 애초에 이 녀석의 어디가 좋은 거야. 심술궂고 삐뚤어지고 싫은 소리만 하는데. 사람을 가지고 노는 녀석이다. 그만 두는 편이 너를 위한다고 생각해.
미스라: 아하하, 말 잘하네.
오웬: 어이, 뭘 웃고 있어.
노엘: 그런……. 절대로 싫어! 랄까 무리야! 당신도 '요즘 추우니까 젤라또는 포기하고 케이크를 좋아해볼까' 라고 취향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잖아!?
파우스트: 뭐…… 그렇지. 취향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네로: 나라면 케이크를 만들겠지만……. 이렇게까지 당하고도 타협할 수 없는 건 대답하네.
피가로: 그렇긴 해도, 어디선가 타협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기온은 조만간 올라가겠지만 오웬은 백 년이 지나도 변심할 것 같지도 않고.
노엘: 하지만…… 노엘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오웬 말고 좋아하는 거라니. 닥터는 돌이 되어버렸고…….
노엘 씨는 완전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내가 할 말을 찾고 있는데 그 옆으로 라스티카가 다가섰다.
라스티카: 그러면 닥터가 남긴 것은? 이 공방이나 연구, 과자는 좋아하지 않니?
노엘: 에……?
라스티카의 질문에 노엘 씨의 긴 속눈썹이 눈을 깜빡였다.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라스티카가 웃음을 건넨다.
라스티카: 예를 들면 나는 내 신부를 계속 찾고 있어.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의 운명이야. 하지만 나는 매일 챔발로를 연주하고 그림을 바라보고 클로에와 즐거운 다과회를 해.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것은 신부 찾기에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젠가 나와 그녀가 재회하는 날은 올 거야.
클로에: ……맞아. 가끔은 들러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잠깐 쉬는 것도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마법사는 오래 사니까. 좋아하는 걸 잔뜩 해야 아깝지 않아!
라스티카: 너도 그렇게 기다려 보는 건 어떨까? 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운명의 순간을.
라스티카와 클로에의 말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듯 눈동자를 숙였다. 어느새 계속 쏟아지던 눈물이 그쳤다.
노엘: 그런 거……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닥터의 공방에 남은 것도, 연구를 인계받은 것도 오웬에게 죽으려고 했던 일이니까. 하지만…… 노엘은 그걸 좋아했던 걸까?
눈물로 씻긴 눈이 새것을 보듯 공방을 둘러본다. 닥터 돌체가 틀림없이 그녀만을 위해 만든 공방을. 그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마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뇌리를 스치는 것은 우리를 대접해 준 정원의 숲. 섬뜩하고 신기하고 맛있고 즐거웠던 그 길.
정원에서 대접해준 과자, 정말 맛있었어요. 다른 과자에는 없는 매력이 있어서 …….그건 분명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리고 그 골렘도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연구잖아요. 그것들이 전부 오웬을 위해서라고 해도……. 그걸 좋아하지 않으면 계속 마주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노엘: ……그렇, 구나.
노엘 씨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리고 오웬을 들여다본다.
노엘: ……저기, 오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오웬: 몰라. 네가 직접 생각해.
노엘: ……그러고 보니 당신, 전에 만났을 때와 눈동자 색이 다르지 않아? 홍혈색이 한 쪽으로만 되어있어.
오웬: 이제 와서? 무슨 색의 눈알을 끼우던 내 마음이잖아.
노엘: 그렇네……. 그쪽 색깔도 멋져. 꿀 같아서 맛있어 보여.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핥으며 무심한 대답을 하는 오웬은 노엘 씨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오웬이 신경 쓰이겠지. 그녀의 눈을 흔들리면서도 그를 계속 쫓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바꾼다던가, 늘린다던가, 간단하지는 않지……. 사랑의 문제고…….)
미스라: 특이한 사람이 다 있네요. 심심풀이도 할 겸 와봤는데 달달한 거에 너무 둘러싸여서 속이 쓰릴 것 같아요.
피가로: 뭐…….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오웬을 좋아해주는 쪽이 안전하려나.
피가로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는 문득 미소를 지었다.
피가로: 사랑이란 건 귀찮지. 말 그래도 독도 약도 되니까.
그리고 우리는 노엘 씨엑 많은 선물을 받고 공방을 떠났다. 모두 독이 든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푸짐한 과자는 우리에게 폐를 끼친 사과…… 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렇게 맛있는 과자를 준비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또 노엘을 만나러 와. 그리고 마음이 내키면 죽여줘!' 라는 오웬에게 보내는 메세지 같았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야…….)
클로에: 이것만 있으면 마법관에서 기다리는 모두에게 잔뜩 나눠줄 수 있겠네!
시노: 아아. 히스가 좋아할 만한 것도 잔뜩 넣어줬어. 견과류 마카롱에 휘낭시에……. 숲에 나있던 오란졔도 맛있어 보였는데 공방에는 없었네.
네로: 그래서 레시피를 받아왔지. 정성스럽게 재료까지 포함해서. 그 밖에도 몇 가지 나눠받았어. 구하기 힘든 재료가 많으니까 여러 번은 어렵지만, 다들 한 번 씩은 먹을 수 있을 거야.
공방 가는 길에서 먹었던 쿠키, 맛있었어요! 마법관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기쁘다.
라스티카: 미스라는 어땠어? 미틸들이 선물은 정해졌니?
미스라: 네, 그 눈알 과자는 별도로 치렛타가 자주 먹던 과자를 받아 왔어요. 치렛타는 가끔 '악마의 음식' 이라고 불렀지만.
악마……!?
클로에: 그거 괜찮아!? 미틸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피가로: 아아, 알았다. 초콜릿이지. 치렛타, 초콜릿을 좋아했으니까. 과식할 때마다 '살쪘어! 악마의 음식!' 이라면서 화냈었는데.
파우스트: 아아……. 그런 악마…….
라스티카: 닥터의 과자와 똑같은 레시피라면 분명 극악 쇼콜라일 거야.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거든. 맛은 물론 녹을 정도로 맛있고 보기에도 아름다워. 미틸들도 좋아할 거야.
그런 식으로 받은 선물 이야기로 모두 들떠 있는 가운데……. 오웬은 마법으로 주위에 띄운 기념품 상자를 열고 바로 과자를 먹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오웬을 위해 만들어졌을 과자들이 줄줄이 그의 혀에 삼켜진다.
(이 과자에는 독이 들어있지 않지만…….)
노엘 씨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오웬에게 독이 든 과자를 계속 선물할까.
……오웬. 만약 노엘 씨에게 또 독이 든 과자를 받게 되나면 어떻게 할 건가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먹을 건가요? 아니면 받지 않는다거나…….
오웬: 먹을 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오웬이 대답했다. 띄운 과자들 중 다음으로 씹을 것을 고르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오웬: 맛은 나쁘지 않았고, 저 정도의 독 같은 건 있어도 없어도 변하지 않아. 그리고 만약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몇 번이고 살아날 수 있고.
그건 그렇지만…….
오웬: 뭐야, 이상한 얼굴이나 하고.
그……. 오웬의 일에 제가 말하는 것도 이상할 수도 있지만 몸은 잘 챙겨달라고나 할까. 오웬이 튼튼한 건 알지만 가능하면 너무 죽지 않았으면 해서요.
속마음을 알리자 오웬이 코웃음을 쳤다. 달콤한 조소는 변덕스럽고, 존대하며, 그다운 매력이 있다.
오웬: 몇 백 년 걸린다고 해도 저 정도의 마법사한테 내가 살해당할 리가 없어. 뭐,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현자님께 독의 맛을 알려줄까.
독의 맛…… 이요?
오웬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 속눈썹을 완만하게 숙였다. 달콤하게 녹는 비밀을 나누듯 뼈까지 녹이는 독약에 끌어내듯 나에게 속삭인다.
오웬: 그 녀석이 나에게 준 과자를 특별히 나눠줄게.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정도로 달콤하고 행복한 죄의 맛. 그걸 너에게도 맛보게 해주는 거야.
회색 머리카락의 틈으로 가늘어진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오웬이 히죽 웃는다.
오웬: 설사 독으로 저려서 말을 못하게 되더라도 제대로 도움을 받아야지. 그렇지, 현자님.
그것은 분명 닥터 돌체의 극악 디저트 시리즈에도 필적한다.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될 것 같은 달콤한, 독이 있는 아름다운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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