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는 두려움에 소리치는 것을 참았다. 반사적으로 눈꺼풀을 꽉 감아버렸다.
브래들리: 오, 깨어있네.
미스라: 깨어있네요. 안녕하세요, 현자님.
나는 각오를 하고 눈을 떴다.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기 위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연기로 결신을 해본다.
흐아암……. 안녕하세요. 어라? 모두 모여서 무슨 일인가요?
브래들리: 연기 못하네——너. 그렇다는 건, 우리 얘기 다 들었구나?
우우.…….
미스라: 곤란하네. 마법으로 기억을 빼앗아 버릴까요.
미스라가 내 머리에 손을 뻗으면서 최악의 말을 했다.
미스라: 저, 이런 류의 마법은 잘 못해서. 실수로 머릿속을 망가뜨릴 수도 있지만.
잠깐! 잠깐만요! 침착하고 얘기하죠……!
미스라의 손을 필시적으로 피하면서,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세찬 눈보라는 잦아들고 있었다. 맑게 갠 푸른 하늘이 온통 은세계 바로 위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희망의 평원……)
눈보라가 그친 희망의 평원은 청색과 은색의 장대하고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파도 같은 무늬가 얼음의 대지에 새겨져 있다. 미스라와 오웬, 브래들리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나는 머리를 풀 회전시켜 이 자리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려고 했다.
오즈를 봉인하다니, 다시 생각해 주세요. 어…… 어떻게든 마법관에서는 사이좋게 지냈잖아요.
미스라: 하아……. 눈에 거슬려셔.
대화로 해결해 봐요. 미스라들이 싫은 게 있다면 그걸 전하고…….
미스라: 저보다 강한게 싫어요.
선명한 녹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스라가 중얼거렸다. 상쾌할 정도로 얼어붙은 바람이 그의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빠져나간다.
미스라: 잘 지낸다던가 그런 건 별로 상관이 없어요. 오즈가 친구든 뭐든 저희는 오즈를 죽이고 싶거든요. 뭐, 위험한 것 같으니까 죽이지는 않겠지만. 저보다 강한 마법사가 눈에 거슬려요.
미움도 적의도 없는, 오히려 떳떳함이 느껴지는 미스라의 말투에 나는 당황했다.
그…… 그런 말을 한다면, 오웬과 브래들리에게 있어서 미스라도 눈에 거슬리는 마법사가 아닌가요?
브래들리: 눈에 거슬리는데?
오웬: 언젠가 죽이고 싶네.
미스라: 뭐, 그런거예요.
(어쩌지…….이 사람들의 텐션, 잘 모르겠어……)
가치관의 차이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나는 스노우와 화이트의 말이 생각났다. '미스라도 그렇고 오웬이나 브래들리도 그런 억양이긴 하지만, 북쪽 공기를 피부로 느끼면 이해할 수 있겠지. 그들이 왜 자신의 힘만을 믿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존과 존엄을 계속 지키고 있는지 말이야.'
스노우: 현자!
화이트: 현자여!
쌍둥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헉 하고 소리를 내뱉는다. 새파란 하늘을 빗자루로 나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내려오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브래들리: 위험해. 쌍둥이다.
미스라: 현자의 기억, 빼앗을건가요?
브래들리: 그만두자. 이놈에게 마법을 건 기척을 오즈는 알아챌거야. 그러면 다 물거품이고.
오웬: 그러면 심플하게 갈까. 저기, 현자님.
네, 네…….
오웬은 나의 입을 막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오웬: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그 자리에서 죽일 거야.
…….
스노우: 현자여! 무사했나!
화이트: 오오, 다행이다! 눈보라가 그치기 전에도 들이닥쳤으니까 걱정하고 있었네.
빗자루에서 내려와 달려온 쌍둥이가 동시에 나를 껴안는다. 나를 감시하듯 미스라들은 내 등 뒤를 에워싸고 있었다.
미스라: 무사해요. 깜짝 놀랐지만. 이 사람, 갑자기 죽을 뻔해서.
스노우: 오즈가 눈보라를 없앨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화이트: 웬만한 마법사라도 살 수 없는 땅이라는 걸 그대도 알고 있을텐데!
미스라: 하아……. 현자라도 안되는 건가요.
스노우 / 화이트: 현자 쨩, 인간이니까…….
미스라: 그랬었죠. 까먹고 있었어요,
스노우: 미안하구먼. 무서운 꼴을 당하게 해서.
화이트: 우리가 있으니 이제 괜찮네. 북쪽 나라에 있는 동안은 우리가 곁을 떠나지 않을테니.
아…….
스노우: 무슨 일인가, 현자. 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나에게 입을 열 틈을 주지도 않고 브래들리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브래들리: 그런 눈보라를 막 목격한 참이야. 겁 먹은게 당연하지. 그렇지, 현자. 이제부터는 괜찮아. 오즈도 붙어있고, 걱정된다면 내가 호위해줄게.
아, 아뇨! 괜찮…….
브래들리: 사양하지 마. 나도 사면해야하고. 스노우, 화이트. 중앙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 줘.
스노우: 알겠네. 오늘은 착한 아이구먼, 브래들리.
화이트: 1초라도 빨리 자유의 몸이 되고 싶으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타일렀으니 말일세.
브래들리: 흥.
브래들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날카로운 두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청년의 기분 좋은 미소라고 하기에는 차갑고 용서 없는 조소였다. 나는 브래들리의 소문을 떠올렸다. 집단행동을 잘 못하는 북쪽의 마법사들 중 유일하게 도적단이라는 조직을 꾸린 남자. 거칠고 화려한 생김새와 언동과는 달리 그는 교활하고 시야가 넓고 요령이 좋다. 딱, 하고 브래들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그의 빗자루가 나타난다.
브래들리: 좋아. 가자고, 현자. 태워줄게.
아……. 저는 그, 스노우와 화이트랑 같이…….
브래들리: 바보. 사양하지 말라고 했잖아.
브래들리는 웃는 얼굴로 내 팔을 잡았다. 직후, 하늘로 훨훨 날아오른다.
……!
7화
눈 깜짝할 사이에 지상이 멀어진다. 제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은 나는 당황해서 브래들리의 팔에 매달린다.
떠, 떨어진다……!
브래들리: 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 마도구가 뭔지 말해봐.
마도구!? 초, 총 말인가요?
브래들리: 맞아. 멀리 떨어진다고 해도 뒤에서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도 있지. 절인 토마토처럼 되고 싶은 거냐?
지금 그렇게 될 것 같은데요……!
브래들리: 착한 아이로 있는다면 살려주지. 나님의 빗자루에 앉게 해줄게. 영광스럽게 생각하라고. 알겠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
브래들리: 대답은?
……네
마지못해 나는 대답했다. 브래들리는 눈썹을 치켜들고 휙 나를 잡아 빗자루에 올려놓는다. 그는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경쾌하게 웃었다.
브래들리: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얌전히 있는다면 나쁜 짓은 하지 않아. 마법관을 내가 차지하게 된다면 네놈에게도 좋은 걸 줄테니까. 뭘 원해? 돈? 땅?
브래들리가 지휘하는 건가요? 미스라가 아니라?
브래들리: 당연하지. 저런 무능한 짐승 같은 놈에게 지휘자 역할 따위를 맡을 수 있겠어? 여기는 브래들리 님이 나설 차례라고. 마법사 놈들 모두 도적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도, 도적이 되는 건가요!?
브래들리: 어. 정의의 편보다 멋지잖아?
……이런 거, 잘 될 것 같지 않아요. 오즈의 마력은 뛰어나다고 했었잖아요. 들키면 큰일 날거에요.
브래들리: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뭐, 일단은 해보는거야.
일단 해보는거……?
브래들리는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브래들리: 오즈나 쌍둥이에게 당하고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다고 소문이 나면 망신이잖아. 오즈에게 반죽음을 당해 배를 드러내고 멍하니 누워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손을 깨무는게 낫지.
그, 그런 건가요……?
브래들리: 그런 거다.
나는 당황해서 눈썹을 숙였다. 나 같으면 따끔한 맛을 보느니 차라리 따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질 바에는 싸우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브래들리는 진다고 해도 반항하는게 좋다고 한다. 북쪽 마법사의 긍지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끌리는 데가 있어.)
내 시선을 눈치채고 브래들리가 히죽 웃었다.
브래들리: 날아간다. 꽉 잡고 있으라고.
……윽.
말 그대로 엄청난 스피드로 브래들리는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서: 현자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브래들리가 데려와 줬구나. 고마워.
브래들리: 흥, 뭐.
카인: 굉장한 눈보라였어. 천둥도 가까이에서 번쩍이고. 눈 천둥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너도 공간의 문에서 봤어?
시선을 방황하며 카인이 손을 뻗는다. 카인은 닿을 때까지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손을 만지며 나는 대답했다.
네, 엄청났었죠.
카인은 나와 시선을 맞췄다. 순간 놀란 표정을 짓는다.
카인: 손이 얼음 같잖아. 눈보라가 그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뛰어든거야?
스노우: 미스라가 현자를 데리고 뛰어든게야.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뻔했네. 북쪽의 땅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니까 말일세.
리케: 괜찮으신가요? 현자님. 저도 오즈가 없었다면 그냥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눈보라였어요.
에, 그러니까…….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웃는 얼굴로 머리를 숙이면서, 나는 내심 초조해 하고 있었다. 눈보라보다도 미스라들의 계획이 더 불안하다.
(어떻게든 전해야 해……. 하지만 미스라들이 감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브래들리: 그래서? 축제는 어디서 여는거야? 희망의 평원이라고 해도 아무데서나 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
스노우: 희망의 평원은 넓으니까 말일세. 우리가 예언으로 본 것은 조금 더 북쪽이다.
(더 북쪽……. 거기에 이르기 전까지 미스라들의 계획을 전하지 않으면 안 돼……)
이동 준비를 시작하는 모두의 곁에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전하려면 역시 오즈가 좋겠지. 하지만 감시를 당하고 있는 이상 말로 전할 수가 없어. 나는 눈빛으로 오즈에게 강하게 호소했다.
(알아채 주세요, 오즈……. 이러다가는 일몰 후에 봉인 당해버려요.)
필사적으로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꽤 오랫동안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오즈……. 살기라던가 마법 이외에는 둔하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즈는 나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보는 이쪽도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지팡이를 든 채 가만히 있다.
(오즈가 알아채게 하는 건 무리야……. 다른 누군가가 눈치채 줘야 해. ……그래! 아서라면……)
나는 아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친절하고 마력이 강하지만, 인간들도 배려해 주는 상냥한 마법사다.
(눈치채라, 눈치채라, 눈치채……)
뚫릴 정도로 아서를 쳐다보고 있으면, 시선을 깨달았는지 아서가 돌아보았다.
(눈치채줬다!)
아서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다가와 주었다.
아서: 현자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그 물음은 그야말로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려는 순간 목덜미가 짓눌린다.
8화
미스라: 도움이 필요한가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오웬: 나도 도와줄게. 등이 가려운거야?
브래들리: 나도 긁어줄게. 여긴가?
미스라들이 등을 긁음과 동시에 난 경직했다. 아서는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본다.
아서: 미스라들은 꽤 현자님과 친해졌구나.
미스라: 네.
아서: 부럽네. 현자님, 다음에는 저에게도 돕게 해주세요. 그러면 출발하죠.
아…….
선드러지게 날아가는 아서를 보며 나는 허탈하게 손을 뻗었다.
(위험해……. 중앙의 마법사들을 북쪽에 비해 너무 정직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나는 모두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 갔다.
아서: 이 근처일텐데…….
대단해……. 거대한 얼음 다리 같아…….
눈앞의 절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층 빌딩이 쓰러질 만한 크기의 얼음 다리가 얼음골에 걸려져 있다.
카인: 뭐랄까, 조금 답답하네……. 찌그러질 것 같은 압박감이 있어.
리케: 그렇네요……. 신비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장소인데도 떠나고 싶어지는…….
스노우: 북쪽의 원시의 정령들 탓일 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인하며, 성질이 사나운 자들이지.
화이트: 땅 자체가 마법의 힘에 민감한 걸세. 자, 보게나.
화이트는 손바닥을 폈다. 희미한 빛을 띄우는 작은 구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살짝 발밑의 얼음의 대지로 떨어뜨린다.
반짝이는 구슬이 사뿐히 꽃잎처럼 떨어지자, 낙하지점은 일곱 색으로 빛나며 파도처럼 얼음 대지에 빛을 펼쳐 나갔다.
리케: 와아……. 얼음 대지가 마법에 공명한 건가요?
스노우: 그 말대로일세. 그러니까 너무 자극을 하지 않는 게 좋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화이트: 그런걸세. 이제 축제 시작 준비를 하도록 하지. 모두, 준비는 됐나.
오웬: ……우윽…….
스노우와 화이트가 모두를 돌아본다. 그러자 파란 얼굴의 오웬이 웅크린다.
카인: ……왜 그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카인이 걱정스러운 듯 오웬의 안색을 살핀다. 처음에는 축제의 기간을 늘리기 위한 연기라고 생각했지만, 오웬은 정말로 아파 보였다. 핏기를 잃은 채 덜덜 떨고 있다. 하얀 목덜미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정맥마저 병적으로 거무스름했다.
(무슨 일이지……?)
스노우: 말레피키움 따위를 먹으니까 그런걸세. 그 녀석은 못된 저주가지. 자, 우리가 고쳐주마.
오웬: …….윽, 필요 없어……. 잠깐 가만히 있으면 이런 저주따위, 내 마력으로 녹일 수 있으니까.
화이트: 하지만…….
오웬: 내버려 둬.
오웬은 얼음 대지 위에 벌렁 드러누워, 난데없는 짐승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스노우: 어쩔 수 없지. 조금 기다리도록 할까.
오즈: 신속하게 축제를 여는 것이 조건이었을텐데.
화이트: 조급한 사내구먼. 아직 오전이 아닌가. 오웬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도 좋을걸세.
오즈: 내가 회복시키지.
화이트: 잠자코 있게나.
오즈는 불만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화이트는 오즈를 노려보며 오웬의 곁에 앉아 그의 머리를 어루어만진다.
화이트: 북쪽 마법사에게도 긍지가 있다. 그대의 발바닥으로 마구 밟기 쉽다고는 해도, 조금은 생각하는게 좋지.
화이트: 저주를 받는 것도, 본인이 직접 치유를 하는 것도, 비록 어리석다고 해도 북쪽 마법사의 긍지일세. 우리들, 긍지를 잃으면서까지 살려고 하지 않으니까.
미스라: 귀신이 말하니 설득력 있네요.
화이트: 쓸데없는 참견일세.
화이트의 말에 뿌리를 박은 것은 오즈가 아니라 스노우 쪽이었다. 오즈의 등 뒤로 손을 돌려 중얼거린다.
오즈: ……뭐, 초조한 시간도 아니니.
오즈는 무연히 떠나갔다. 아서와 리케가 그의 뒤를 쫓아간다. 쌍둥이와 카인이 쇠악해져 있는 오웬을 돌보고 있다.
카인: ……괜찮아? 나쁜 거 먹어서 배탈이 난거라면, 빨리 뱉어내.
오웬: ……시끄럽네…….
괴로운 목소리에 카인은 상냥하게 웃었다.
카인: 정말이지, 묘하게 고집 부리는 놈이라니까. 뭐, 나도 고집이 센 편이라 남말 할 수는 없지만.
카인의 목소리에 묘하게 침울한 기분이 되어 나는 그들의 곁을 떠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북쪽 마법사의 긍지……. 그걸 알게 된다면, 잘 해결될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짝, 하고 손뼉을 치는 소리가 나 고개를 든다. 멀리서 미스라와 브래들리가 손을 맞잡고 있었다.
브래들리: 좋아! 잘 되어가네.
미스라: 잘 됐네요.
브래들리: 하지만 저 새의 저주는 언제 봐도 힘드네. 카드로 이기길 잘했어. 나나 너였으면 반나절을 못 움직였을테니까.
미스라: 오즈에게 꾀병은 통하지 않으니까요. 안 죽을 정도로 아픈 채로 있어야 축제를 늘릴테니까. 게임에 당첨된 오웬은 손해보는 역할이니까요.
(이…… 이 사람들, 오즈들을 속이려고 일부러 이상한 새를 먹인거였나! 진지하게 마주보려고 했는데……)
나는 분개하여 발길을 돌렸다.
(약해져 있는 오웬과 쌍둥이, 카인……. 지금이라면 그들의 계획을 말할 수 있을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자!)
사뿐사뿐 얼음의 대지를 딛고 누운 오웬들 곁을 빠른 걸음으로 향한다. 그때,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
미스라: …….
미스라였다. 나른하고 졸린 듯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표정도 바꾸지 않고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피할 새도 없이 시야를 가린다.
미……
미스라: '아르시무'
직후, 나는 의식을 잃었다.
9화
카인: ……미스라? 아키라는 왜 그래? 잠든거야?
스노우: 아니군……. 그대, 현자에게 마법을 썼구나.
미스라: 어슬렁거리면 곤란하니까 그냥 재웠을 뿐이에요. 얼지 않게 안고 있을 거고, 축제 전에는 깨울게요.
화이트: ……확실히 잠만 자는 것 같군. 미스라여, 너무 이 땅에서 마법을 쓰지 마라.
미스라: 알고 있어요.
브래들리: 오웬, 보여봐. 아아, 심하네. 손톱도 거무스름해졌어. 이건 회복되려면 저녁은 되려나.
카인: 그렇게나 걸리는 건가……. 오웬.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에게 부탁하는 건 어때?
오웬: ……윽……. 하……. 그럴까…….
브래들리: 어이.
오웬: 하지만 진짜 힘들다고, 이거……. 이제 몸속에서 꺼내고 싶어……. ……토해도 돼?
카인: 토할 수 있다면 토하는 편이…….
미스라: 여전히 참을성이 없네요. 조금도 못 참나요? 저한테 혼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는데.
오웬: ……칫…….
카인: 미스라, 그런 말투는 아니잖아. 괜찮아, 오…… 아야! 왜 날 때리는 거야!?
오웬: ……화풀이.
카인: 너, 그런 짓을 하니까 친구 없는거라고……?
스노우: 오오! 오즈가 돌아온 것 같군. 일단 점심식사를 할까.
화이트: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느긋하게 오웬의 회복과 현자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도록 하지.
리케: 현자님,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네요…….
카인: 미스라, 계속 안고 있기 힘들지. 내가 대신 할까?
미스라: 걱정 마세요.
오웬: ……하…… 하…….
리케: 오웬…… 죽은 사람 같은 안색이 되어 있어요……. 검은색 땀이…….
스노우: 건드리지 말게나, 리케. 오웬이기 때문에 저주를 견딜 수 있는 걸세. 그대가 저주를 받으면 돌이 될 것이다.
리케: ……그런…….
오웬: 저기, 리케. 도와줘……. 나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줘…….
화이트: 그대도 유혹하지 말게나. 그런 짓을 할 바에는 얼른 토해내면 되는 것을…….
리케: ……그렇다면, 적어도 신의 사도로서 오웬의 치유를 위해 신에게 기도하겠습니다.
오웬: 하하……. 뭐야 그게.
리케: 부디 오웬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서, 신의 축복 아래 고통이 가시길. 나쁜 유혹도 하지 않기를.
오웬: 그만둬. 짜증나니까…….
리케: 어째서인가요.
오웬: …….
리케: 제가 약해져 있을 때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준다는 것은 멋진 일이에요. 누군가가 약해져 있을 때 기도를 할 수 있는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저의 마법으로는 당신을 고칠 수는 없겠지만, 당신에게 축복을 바칠겠습니다.
리케: '산레티아 에디프'
오웬: ……흥……. 바보 아니야…….
오즈: ……곧 해가 떨어진다.
브래들리: 뭐야. 아직까지는 괜찮잖아. 해가 저물기 시작했을 뿐이고.
오즈: 기다리는 것은 여기까지다. 현자를 깨우고 오웬을 회복시키지. 미스라, 현자를 넘겨라.
미스라: 싫어요.
오즈: …….
스노우: 미스라, 오즈의 말대로일세. 시간의 여유도 없는 지금 축제를 우선시하도록 하지. 그대들도 몇 번이고도 북쪽으로 오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화이트: 그렇네, 그래. 오웬도 이해해 주게나. 해가 지면 오즈는 마법을 쓰지 못하니.
브래들리: 여기까지 와서 그건 아니잖아. 오웬도 이제 물러설 수 없어. 얼마 안 남았으니 기다려봐.
스노우: 하지만…….
오즈: 해질녘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현자를 넘겨.
미스라: 싫어요.
오즈: 그렇다면 힘을 써서라도 되찾겠다.
미스라: 재밌네……. 해보세요.
브래들리: 어이, 그만둬.
오웬: ……하아……하……. 잠깐, 미스라…….
화이트: 그만두게나! 왜 둘 다 현자에 연연하는 거냐. 어디에 잠들어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오즈: 현자가 있으면 해가 지더라도 마법을 쓸 수 있다. 늦기 전에 마법으로 깨우지.
스노우: 과연. 미스라는 어째서 내주기 싫어하는 거지.
미스라: …….
스노우: 미스라여, 어째서냐.
미스라: 뭐라고 할까……. 뭐, 어찌됐든 상관 없잖아요. 그런 기분이에요.
화이트: ……무슨 말을 하는거지?
리케: 제대로 말 하지 못하네요. 설마…… 현자님께 무슨 나쁜 짓을 할 생각인가요?
미스라: …….
브래들리: 어이어이, 나쁜 거라니 뭐야. 화가 나는 발언이네.
미스라: 됐어요, 브래들리. 이제 곧 밤이 돼요. 예정보다 빨라졌지만 이제 시작하죠.
스노우: 시작해? 무슨 말인가?
브래들리: ……바보 녀석……. 네놈의 사정으로 마음대로 일정 변경하지 말라고…….
미스라: 오웬, 이제 됐어요. 빨리 내뱉으세요.
오웬: ……하……? ……웃기지 마……. ……윽, 지금까지의 내 고생을…….
카인: 어이, 도대체 무슨…….
브래들리: 아아, 이제 최악이야! 얼마 안 남았는데 왜 기다리지 못하는건데. 너희들, 거기서 움직이지 마!
아서: 브래들리!? 왜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거야!?
브래들리: 잠자코 따라, 중앙의 왕자님. 미스라! 너 두 번 다시 머리쓰는 작전에는 참가 안 시킬거니까.
미스라: 하아……. 그다지 좋은 작전도 아니었어요.
브래들리: 이 자식……. 이따가 때려 죽여버리겠어! 그 전에 오즈다. 현자를 인질로 잡고 다녀. 난폭하게는 굴지 마!
미스라: 알고 있어요.
오즈: ……나에게 맞서기 위해 해질녘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건가.
미스라: 맞아요. 당신에게 지배당하는 건 오늘까지 입니다. 오웬, 일어나세요.
오웬: ……윽……. 죽일거야, 미스라……. 뭐 때문에 내가 저주의 새 따위를 먹었다고 생각…….
미스라: 일어설 수 없다면, 제가 토하게 해줄게요.
오웬: 잠…….
오즈: 일몰 전에 현자를 깨우겠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즈: '복스노크'
……!
주문을 외우는 오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퍼뜩 눈을 떴다. 마법으로 억지로 깨운건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나는 바로 상황을 확인했다. 코끝을 스치는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 땅에 닿지 않은 발끝 바로 위에는 애수를 한탄하는 듯한 가냘픈 낙조빛. 미스라의 빗자루에서, 북쪽 하늘을 날고 있었다.
10화
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미스라: 입 닫아요. 혀 깨물지도 모르니까요.
……!?
말하자마자 미스라는 거꾸로 비행했다. 눈이 빙빙 도는 시야 속에서, 빗자루 위에 올라탄 스노우와 화이트가 엄청난 속도로 미스라를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스노우: 기다리게나, 미스라!
화이트: 현자를 돌려보내는게야!
미스라: 오웬! 제 마법으로 새를 뱉었죠!? 빨리 가세하세요!
거꾸로 된 나는 지상을 바라보았다. 얼음의 대지 위에서는 오웬이 등을 떨며 거무튀튀한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었다.
오웬: ……윽, 큭…… 콜록……! ……미스라……. 잘도……!
더러운 피투성이가 된 검은 새의 깃털이다. 미스라가 마법을 부렸다는 증거로 그의 주변 얼음 대지는 일곱 가지의 색이 빛나고 있었다. 불온하고 아름다운 오로라 같은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마법사들을 밝힌다. 자세를 바로 잡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추적하던 쌍둥이들이 급정거한다.
스노우: ……! 브래들리!
화이트: 이 바보 녀석……! 마법관으로 돌아가면 벌일세!
하늘을 나는 빗자루 위에서 투박한 총을 겨누는 브래들리. 질주하는 그의 발밑을 빨강과 노랑 빛이 물들인다.
브래들리: 시끄러워 영감들! 미스라, 도망간다! 현자를 데리고 철수해!
미스라: 왜요.
브래들리: 오즈가 쫓아오니까, 바보야! 뒤에……!
브래들리의 목소리에 난 돌아봤다. 청자빛을 받은 단정한 미스라의 옆모습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눈앞에 번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미스라: 칫…….
나는 비명을 질렀고 미스라는 혀를 찼다. 다시 곤두박질쳐 하늘을 치는 번개를 회피한다. 그러자 앞질렀던 것처럼 오즈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벼락을 휘감은 지팡이를 우리에게 내민다.
미스라: 오즈! 현자가 죽으면 어쩌려고요!?
오즈: …….
'아차, 잊고 있었다' 라는 얼굴로 오즈는 침묵했다.
오, 오즈. 부탁할게요……! 죽기 싫어요……!
오즈의 어깨 너머로 대지에 지는 낙조가 저녁 노을을 발하며 빛난다. 미스라와 오즈 사이에 바람처럼 브래들리가 끼어들어간다. 바로 총을 겨누고, 그는 아무도 없는 대지로 총을 쐈다.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스무!'
브래들리의 마법의 총탄을 맞아 얼음 대지가 더 강하게 빛난다. 그 눈부심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눈부신 섬광에 뒤섞여 미스라들은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스노우: 이런! 현자를 빼앗긴채 도망치고 말았네!
화이트: 이제 곧 일몰이다……! 오즈는 마법을 쓸 수 없게 되고, 우리들은 그림 속에 갇히고 말아!
오즈: …….
어디를 어떻게 날았는지, 엉망진창인 비행과 속도에 시달린 나는 땅에 내려졌을 때는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미스라: 왜 그러나요, 현자님. 다치진 않았을 텐데.
아…… 멀미 같은 감각이…….
미스라: 쾌적한 선박 여행 같았나요?
잠깐, 기다려 주세요……. 안정이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우…… 세계가 빙빙 돌고 있어…….
입을 가린 나를 외면한 채 브래들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호했다.
브래들리: 좋아, 일몰이다! 몇 초 있으면 우리한테 최적화인 상태야.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낙조의 붉은 빛이 마지막 빛을 내며 사라진다. 밤이 와버린다.
브래들리: 아하하! 꼴좋다, 오즈! 영감들!
브래들리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새파랗게 질렸다. 이대로라면 오즈는 봉해지고 만다. 그때,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 다가왔다.
(저건…… 오웬……?)
별이라고 생각했던 건 빗자루에 탄 오웬이었다. 눈앞에 내려선 오웬에게 브래들리가 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권한다.
브래들리: 해냈네, 오웬. 이제 마무리야.
오웬: 시끄러워.
브래들리: 어이…….
오웬은 브래들리를 그대로 지나쳐 무표정인 상태로 미스라 앞에 섰다. 무릎을 꿇고, 망설이지 않고 트렁크 뚜껑을 연다.
오웬: '쿠레 메미니'
미스라: 하!?
순식간에 힘차고 큰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세 머리의 사나운 개 케르베로스가 미스라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꽃잎처럼 선혈이 흩날리고, 미스라의 긴 팔다리와 몸통에 그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얼룩이 금세 배어간다.
미스라: ……윽, 컥……!
오웬은 사정없이 미스라의 가슴을 구둣발로 짓밟았다. 미스라의 얼굴 바로 위에서 입을 크게 벌린다. 시커먼 피로 얼룩진 새의 시체 같은 것이 뚝뚝 미스라의 얼굴에 흩어져서 연기를 뿜어냈다.
미스라……!
오웬: 콜록…… 콜록……. ……하아……. 이걸로 마지막이야.
오웬은 불쾌한 듯 입가를 닦고 움직이지 않게 된 미스라의 위에서 내렸다. 머리를 쓸어올리고 우울하게 한숨을 내쉰다.
오웬: 빨리 일어나. 오즈를 봉인하러 갈거야.
미스라: '아르시무'
오웬: ……!
미스라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오웬의 가슴팍을 수정 같은 것이 꿰둟었다. 미스라의 마도구다. 몸통에 구멍이 뚫려 비틀거리면서도 오웬은 서 있었다.
오웬: ……웃기지 마, 미스라…….
미스라: 이쪽의 대사예요.
미스라는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일어섰다. 검게 짓무르던 반면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간다. 죽지 않는다, 라고 소문난 오웬의 몸도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나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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