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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法使いの約束/2024 이벤트 스토리

[낙백의 피에 철의 진의를] 1화~5화

사람을 유혹해 피를 빨아먹는다는 고대의 마물. ……그렇다면 봉인하지. 이 진의를 걸고. 시험에 대한 보상으로 시노와 마법사들이 방문한 곳은 명웅의 거리. 그곳에서 발생한, 목에 기묘한 상처를 남기는 연속 사건…….

 

날카롭고, 힘차고, 영혼을 거두는 형태의 칼날이 번뜩였다. 미래의 영웅의 이름을 새기듯이.


1화 

 

어느 날 밤. 나는 잃어버린 펜을 찾으러 도서실을 방문했다.

 

(어라, 불이 켜져있네. 시간도 늦었는데 아직 누군가가 있나…….)

 

살짝 들여다보니 어깨 언저리에 떠있떤사쿠 쨩도 나와 똑같은 몸짓을 했다.

 

시노 / 미틸 / 아서: 쿨……. 쿨…….

 

숨소리를 내는 사람은 시노, 아서, 미틸이었다. 이들 곁에는 펜과 노트, 여러 권의 책이 펼쳐져 있다. 

 

미틸: 으음……. 정말이지, 피가로 선생님도 참.

 

아서: 오즈 님……. 포토푀에 들어갈 당근은 별모양이 좋아요…….

 

시노: 흐흥. 보고 있으라고, 파우스트…….

 

(후후, 꿈을 꾸고 있나? 하지만 이대로는 감기에 걸릴지도…….)

 

시노: 으음…….

 

미틸: 후아암…….

 

아서: ……어라. 현자님?

 

아, 다행이다! 마침 깨울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이런 시간까지 다같이 공부하고 있었나요?

 

시노: 아아. 내일 수업에 시험이 있어서, 마지막 벼락치기를 했어.

 

미틸: 시노 씨가 파우스트 씨 몰래 좋은 점수를 받아서 놀라게 하고 싶다고 해서요. 저도 시험이 가까워서 같이 복습하고 있었어요.

 

아서: 두 사람이 밤에 스터디 그룹을 한다고 해서 저도 같이 참여했습니다. 서로 문제를 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잠들어 버린 것 같네요.

 

임무도 있는데 시험 공부까지……. 모두 열심히 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시노: 뭐 그렇지. 전까지는 좌학따위 귀찮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야. 죽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시노가 눈앞에 있던 책을 넘긴다. 예전의 나라면 그가 책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하 수로와 인조 마법사. 그가 어떤 사투를 헤쳐왔는지 알고 있으니까.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시노가 피식 웃었다.

 

시노: 현자, 이것 좀 봐.

 

우왓!? 뭔가요, 이거.

 

시노가 가리킨 페이지에 그려져 있던 것은 무서운 삽화였다. 거미줄 같은 가느다란 실에 연결되어 중심에는 붉은 거대한 덩어리. 그 주위에는 늘어진 실타래에 얽힌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이건, 붉은 고치인가요……?

 

아서: 네. 예로부터 전해지는 마법 생물의 일종입니다. 사람이 늘어나면서 거처에서 쫓겨나 지금은 거의 수가 남아 있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미틸: 내일 테스트는 위험한 마법 생물의 생태가 주제라고 해요. 시노 씨는 이것의 특징이 딱이겠네요.

 

시노: 아아. 이 녀석은 꿀처럼 달콤한 향기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인간을 끌어당겨. 그리고 실처럼 가느다란 촉수를 뻗어 다가간 녀석의 피를 빨아먹지.

 

피를……. 고치 안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인간의 피를 양분으로 자라는 건가요?

 

아서: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나 둥지를 틀고 고치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 과정에서 제거되어 버리기 때문에 실제로 태어난 모습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미틸: 왠지 섬뜩하죠. 피를 빨아먹는 마물도 마물이지만, 모습도 형체도 모른다니.

 

도시전설적인 무서움이네요……. 정체도 모르는 만큼 섬뜩하다고나 할까.

 

시노: 걱정할 필요 없어. 크기만 한 덩어리 쯤은 내가 없애줄게.

 

현자 / 아서 / 미틸: 멋있어……!

 

시노: 흐흥, 그렇지. 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복습해둘까.

 

아서: 아아. 나도 어울릴게.

 

미틸: 저도!

 

여러분, 아직도 의욕이 넘치네요! 그러면 저, 공부의 간식으로 홍차와 단 것이라도 가지고 올까요.

 

시노: 눈치가 빠르네. 한숨 자기도 했고, 잘 될 것 같아. 내일 시험이 기대되는걸.

 

 

 

 

 

그리고 며칠 후.

 

시노, 다시 한 번 지난번 테스트 수고했어요!

 

아서: 대단한 성과였어! 지금까지 제일이었을 거야.

 

시노: 뭐, 그렇지. 좌학 같은 거 실제로 해보니 별거 아니었어. 

 

파우스트: 한 번 잘 했다고 거드름 피우지 마라. 뭐, 확실히 보기 드문 고득점이었지만.

 

사크리피키움: ……!

 

사쿠 쨩도 칭찬하는 걸까? 같이 도와주기도 했으니까요.

 

시노: 저 녀석이 알만한 공적이라면 더더욱이야. 파우스트를 끌어내서 보상 정도는 받아야지.

 

파우스트: 뭐, 열심히 한 건 사실이니까. 이 근처에 레몬파이가 명물인 가게가 있었나?

 

아서의 추천이었죠.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차분하고 분위기도 좋네요.

 

아서: 명웅의 거리는 역사가 있는 거리니까요. 이전에 몰래 방문했을 때 들른 과자점의 레몬파이가 일품이었기 때문에, 꼭 시노에게도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시노: 마님의 것에는 못 미치겠지만. 먹고 비교정도는 해줄 수 있어. 미틸 것도 사가야지. 그 녀석은 오늘이 시험이라고 했고…….

 

화이트: 모두들! 기다리게 했구먼.

 

오즈: …….

 

화이트, 오즈.

 

아서: 다녀오셨어요. 하트 모양 츄러스는 구매하셨나요?

 

화이트: 바로 샀네! 그만 신경이 쓰여 옆길로 빠져버렸구먼. 그렇지, 오즈.

 

오즈: 나는 짐을 들었을 뿐이다.

 

화이트: 매정한 소리 하지 말게나. 가끔은 새로운 거리를 함께 산책하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여기서 새로운 과자를 사고 마법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북쪽의 마법사들을 감시하고 있는 스노우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예정이지?

 

오즈: 금시초문이다만?

 

파우스트: 틀림없이 오즈는 아서가 권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서: 아니, 확실히 내가 초대했어. 역사가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도 많기 때문에 오즈 님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최근에는 임무도 계속되고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셨으면 합니다.

 

오즈: ……너야말로 공무가 계속되고 있지. 볼일을 보고 나면 오늘은 일찍 쉬어라.

 

아서: 네!

 

화이트: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시노: …….

 

시노.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나요?

 

문득 보니 시노가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서있었다. 가게 안에는 섬세한 장식이 달린 필기구와 색유리가 박힌 램프, 식기 등이 늘어서 있다. 시노는 선반 한쪽에 손을 뻗어 책 표지를 빗댔다.

 

시노: 버나드의 영웅전설.

 

버나드. 이 책의 제목인가요? 전기같은 건가?

 

파우스트: 거리에 전해지는 영웅전설이군. 중앙의 역사서에도 기재가 되어있었어.

 

아서: 아아. 버나드는 전란의 시대에 일대를 다스린 명장의 이름이야. 그의 웅자를 기려 그 활약이 거리의 이름의 유래도 되고 있는 것 같아.

 

시노: 공이 책이 되어 지금도 이름을 남기는 영웅……. 파우스트는 만난 적이 있나?

 

파우스트: 없네. 그가 활약한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다.

 

시노: 흐응…….

 

책을 손에 쥔 시노가 다시 한 번 표지의 글자를 눈으로 쫓으며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겼다. 커다란 붉은 눈동자에는 호기와심과 동경이 배어있었다.

 

파우스트: ……좋아. 내가 살 테니 읽도록 해.

 

시노: 그래도 돼?

 

파우스트: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습관이니까. 이참에 버릇을 들여서…….

 

???: 잠깐 잠깐~!

 

오즈: …….

 

모자를 쓴 소년: ……!

 

골목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힘차게 오즈를 들이받는다. 순간, 길에 동전이 뿔뿔이 흩어졌다.

 

오즈: …….

 

모자를 쓴 소년: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돈 줍는 거, 도와드릴게요.

 

모자를 쓴 소년: 아뇨, 스스로 주울 수 있어요 ……!

 

겁먹은 얼굴로 오즈를 올려다본 뒤 허겁지겁 쪼그리고 있는 소년은 시노와 아서의 또래 같았다. 칙칙한 붉은 머리를 모자에 눌러 넣고, 조약돌 바닥에 손을 뻗는다.

 

무르: 어라? 현자님이다!

 

샤일록: 이런. 모두들 모여 계시군요.

 

어라!? 둘 다.

 

화이트: 뭔가. 그대들도 이 거리에 와있었나.

 

무르: 응! 지금 그 아이와 술래잡기 중! 내 지갑을 가져갔어!

 

현자 / 아서: 에에!?

 

모자를 쓴 소년: 아, 아니, 이건…….

 

시노: 너, 소매치기인가?

 

움찔하며 어깨를 흔드는 소년의 손목을 시노가 잡는다. 그리고 재빨리 뒷짐을 졌다.

 

모자를 쓴 소년: ……!

 

무르: 아, 시노가 잡아버렸어!

 

시노: 아쉬웠네. 손을 대는 상대는 잘 고르는게 좋아.

 

파우스트: 시노, 너무 거칠게 하지 마.

 

시노: 아아, 알고 있어.

 

샤일록: 근사하네요. 정말 멋진 솜씨예요.

 

시노: 고맙네. 너희들도 이 거리에 볼일이 있었나?

 

샤일록: 술을 사고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방문하러. 오래된 거리에는 차분한 은신처가 많으니까요. 그와는 뜻밖의 만남을 만났지만.

 

화이트: 그런 것 같구먼. 하지만 그대들이 순순히 지갑을 도둑맞지는 않을 텐데. 마법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은가. 애처로운 마음을 너무 가지고 놀지 말게나.

 

에……?

 

무르: 하지만 그 아이가 내가 깜빡하고 떨어뜨린 지갑을 주워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거든! 내용물을 들여다보고 주위를 둘러다보면서 요동치는 표정, 거동, 시선……. 모든 형태로 나타나는 마음의 흔들림을 멈추게 하다니, 아깝잖아?

 

파우스트: 그러면 일부러 훔치게 한 건가?

 

무르: 으응? 품에 넣으려고 해서 말을 걸었더니 놀라면서 도망쳐 버렸어. 술래잡기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냥 쫓아갔어!

 

샤일록: 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가만히 관찰하더군요. 일찌감치 말리지 않은 저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무르 대신 사과드리죠.

 

아뇨, 그건 그렇고 왜 도둑질 같은 것을…….

 

붙잡힌 소년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저항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자의 그림자에서 들여다보는 깊은 회색 눈동자가 아서의 모습을 포착하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모자를 쓴 소년: 당신은…….


2화

 

지나가던 남자: 어이, 너.

 

느닷없이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가던 것 같은 남성이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자를 쓴 소년: 숙부님…….

 

지나가던 남자: 아직도 이 거리에 있었나? 그렇게 더러운 상태로 땅을 기어다니기나 하고 ……. 네가 그렇게 굴고 있는 것이야말로 버나드 가문의 불명예라고 생각하지 않나?

 

시노: 버나드……?

 

모자를 쓴 소년: …….

 

지나가던 남자: 무엇을 고집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나는 이제 감당할 수 없어…….

 

어이없다는 듯 내뱉고 떠나는 남자를 곁눈질하며 아서가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아서: ……괜찮아?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모자를 쓴 소년: 아…….

 

소년은 다시 아서를 쳐다보았다. 확인하듯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자를 쓴 소년: 저기…… 당신은 혹시, 그랑벨 왕가의…….

 

아.

 

아서: 이런.

 

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댔다. 소년은 갑자기 작은 소리가 되었다.

 

모자를 쓴 소년: 그, 그렇구나. 거리에서는, 그다지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좋죠…….

 

화이트: 눈치가 빠른 아이구먼. 왕도에 가까운 거리라고는 하지만 그대 같은 아이까지 아서의 얼굴을 알고 있다니. 좀처럼 숨쉬기 어려운 것 같은데.

 

시노: 어이. 아까 버나드라고 했잖아.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이름이다. 너, 영웅의 후예인가?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묻는 시노의 목소리는 매우 순수했다. 하지만 곧은 눈빛에서 도망치듯 그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모자를 쓴 소년: 네. 이 거리에 버나드의 성을 가진 것은 우리 뿐이니까…….

 

아서: 그렇구나. 네가……. 버나드는 중앙 건국 전부터 이어져온 명가의 이름이야.

 

파우스트: 그 출신이라면 얼굴을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모자를 쓴 소년: ……훌륭한 것은 이름 뿐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지금의 저는 맞지 않아요. 변변치 못한 걸지도 모르죠.

 

소년은 작게 중얼거린 후, 등을 돌리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서에게 진지한 눈망울을 보낸다.

 

모자를 쓴 소년: 언젠가 이 나라를 짊어질 위대한 분이시여. 당신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분에게 무례한 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분실물을 주웠을 뿐이었어요. 어딘가에 신고할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천박함에 동요했습니다. 무심코 도망친 것은, 마가 끼었기 때문임이 틀림없어요. 빵을 살 돈이 부족해서…….

 

모자를 쓴 소년: 저는 원하시는 대로 심판을 받겠습니다. 그것이 비록 극형이라도.

 

극형이라니, 그런…….

 

화이트: 그렇게까지는 가지 않을 걸세. 그렇지, 아서.

 

화이트의 시선을 받고 아서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운 몸짓으로 소년 앞에 무릎을 꿇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아서: 벌을 옳기 위한 것. 단지 힘든 벌만 준다고 해도 너와 내가 힘들어질 뿐이야. 게다가 오즈 님은 상냥한 분이시고, 부딪혔을 뿐이니 화를 내지는 않으셨어. 무르도 지갑을 주운 너와 놀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아.

 

무르: 맞아! 잠깐 놀고 싶었을 뿐이야!

 

샤일록: 죄송합니다. 제멋대로인 길고양이라서요.

 

오즈: 아이들은 무턱대고 뛰어다니기 마련이다.

 

아서: 모두도 이렇게 말하고 있어. 게다가 너에게는 진심어린 악의도 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지갑만 돌려주면 돼. 어떨까, 무르.

 

무르: 좋아~!

 

모자를 쓴 소년: ……감사합니다! 당연히 돌려드릴게요!

 

무르: 와아~! 고마워!

 

시노가 구속을 풀자 소년은 일어섰다.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무르에게 지갑을 건네 주었더니, 꾸르륵…… 하고 김빠진 소리가 났다. 그는 황급히 얇은 배를 눌렀다.

 

파우스트: 너, 배가 고픈건가?

 

시노: 남의 지갑에 손을 댈 정도니까. 먹고 사는 것도 겨우 하는 느낌이지.

 

모자를 쓴 소년: 아니, 그게…….

 

멋쩍은 듯 팔을 괴는 소년은 닳은 옷을 입고 있었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숨겼다. 길게 뻗은 앞머리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눈가에는 희미하게 다크서클도 있었다.

 

(시노의 말대로, 조금 상황에 곤란을 겪고 있는 걸까…….)

 

샤일록: '인비벨'

 

그 옆에서 샤일록이 주문을 외웠다. 옅은 빛의 알갱이를 걸치고 나타난 보따리를 소년에게 내밀었다.

 

모자를 쓴 소년: 지금 건 마법……? 당신도 혹시 마법사?

 

샤일록: 네. 사실은 말이죠. 괜찮으시다면 이걸 받아주세요. 조금 뿐이지만, 가게에서 남은 치즈와 말린 과일을 포장했거든요.

 

모자를 쓴 소년: 에, 에……?

 

화이트: 흠. 츄러스 말고 과자도 사길 잘했구먼. 몇 개만 잘 포장해서 나눠주자. 오즈.

 

오즈: 그러고 보니 너의 짐은 내가 들고 있었나……. 이 비스켓을.

 

아서: 그러면 저는 이걸. 출출할 때마다 먹고 있었던 견과류야.

 

저도! 주머니에 들어있던 사탕을.

 

무르: 나도 줄게~! 아까 사서 한 입 베어먹은 샌드위치!

 

눈이 휘둥그레지는 소년의 손바닥에 차례차례 음식이 쌓여져가 뭉글뭉글 산을 만든다.

 

모자를 쓴 소년: 괜찮나요? 이렇게나 받아버려서 …….

 

시노: 받을 건 받아놔. 운이 좋았네.

 

파우스트: 아이가 곤란해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나쁜 짓은 하지 말고.

 

품에서 꺼낸 육포 꾸러미를 산에 곁들이며 파우스트가 말했다. 굳어 있던 소년의 얼굴에 살짝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모자를 쓴 소년: ……네.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하지만 이내 망설이는 듯 시선이 방황했다.

 

모자를 쓴 소년: 저기, 제가 할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거리에 놀러오신 거라면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요새 뒤숭숭해서.

 

시노: ……무슨 일이 있었나?

 

모자를 쓴 소년: 이 근처에 연쇄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 범인의 얼굴은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어. 그런데 다들 목 근처에 이상한 상처를 입고 있고. 마치, 뭔가에 물린 듯한…….

 

무르: 연쇄적인 말도 안되는 사건?

 

아서: 그건 조금 걱정인걸. 자경단 수색도 소용이 없었나?

 

이렇게 평온해 보이는 거리인데, 그럴 수가…….

 

모자를 쓴 소년: 응……. 다행히 사망자가 나올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런데 그런 건 조금 소름끼치잖아? 당신들은 상냥하고, 더 이상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볼일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는 편이 좋아.

 

아서: …….

 

모자를 쓴 소년: 그러면…… 나는 이만. 부디 조심해.

 

시노: 어이, 너…….

 

뻗은 시노의 손을 스치고 소년은 몸을 빼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골목으로 달려간다.

 

시노: 저 녀석…… 피 냄새가 났어.

 

에……?

 

화이트: 부상이라도 당한 걸지도 모르겠군. 정도는 다르지만 어느 나라에나 저런 아이는 있는 법이지.

 

무르: 그건 그렇고,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별로 없었지? 꽤 예의도 바르고!

 

샤일록: 그는 명문가 출신일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요즘 들어 갑자기 곤궁해지고 방황하는 그런 일들이.

 

아서: 이 거리에서는 불온한 사건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고. 그의 몸에도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파우스트: ……

 

아서는 걱정스럽게 소년을 배웅한다. 파우스트 또한 소년의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나는 시노, 아서, 미틸과 함께 초콜릿 타르트를 먹고 있었다.

 

미틸: 이 초코 타르트, 너무 맛있네요! 저에게도 선물을 사다주셔서 감사해요.

 

기뻐해줘서 다행이다! 미틸도 오늘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어요.

 

시노: 나도 너도 열심히 한 보상이다. 사실 레몬파이를 선물로 할 생각이었는데.

 

아서: 품절이어서 사지 못했지. 가게의 권유로 이걸 골랐는데, 이것도 맛있네.

 

그렇네요! 레몬파이는 조만간 한 번 더 사러 가요.

 

방과 후에 친구와 디저트를 먹는 듯한 평온한 시간. 각자 편안한 모습으로 타르트를 볼에 가득 넣고 대화의 꽃을 피우는 가운데, 시노는 조금 전부터 어떤 책을 탐독하고 있었다.

 

시노. 그 책은 오늘 파우스트가 사준 거죠? 어떤 내용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 세계의 영웅 이야기, 저도 흥미가 있어서.

 

시노: 좋아. 이 책에는 400년 이상 전의 일이 자세히 적혀져 있어. 전란의 세상에서 그림자 영웅으로 불렸던 버나드 가문 당주의 활약이.

 

미틸: 그림자의 영웅……! 멋진 울림이네요. 그런데 왜 '그림자' 죠? 영웅이라고 할 정도면,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사람이 아닌지…….

 

아서: 그랑벨 왕조 이전의 중앙의 나라는 전란의 세상에서도 가장 가혹한 시대였으니까. 건국을 둘러싸고 알렉 님이 이끌었던 혁명군이 나타나기 전까지 곳곳에서 전쟁이 되풀이되어 세상은 혼란스러웠어. 당시 번드 가문의 당주는 그 중 건투한 명장이야.

 

파우스트: ……영웅에게는 앞도 그림자도 없어.

 

파우스트.

 

어느 틈에 왔는지 담화실 입구에는 파우스트의 모습이 있었다. 시노가 가진 책을 눈에 담고 우리가 앉는 소파의 등을 만지며 말을 꺼냈다.

 

파우스트: 그 시절 중앙의 나라는 질서도 없는 무법지대였다. 의심이 든 인간이나 마법사가 싸우고, 여러 가지 소문이 난무하는 가운데 혼란을 틈타 나쁜 것들이 방치될 정도로 말이지. 그 중에서도 그 거리 일대에 뿌리내린 것은, 지극히 흉악한 부류였다. 나도 사람들에게 듣고 소문을 들었을 뿐이지만, 그 이름…….

 

시노: 바르시. 사람의 피를 먹는 옛 마법생물이다. 이 책에 적혀 있었어. 시험에도 나왔고.

 

그거 혹시, 전에 시노가 삽화를 보여주었던……?

 

시노: 아아. 붉은 고치 같은 섬뜩한 녀석이다.


3화

 

파우스트: 현자도 알고 있었나. 시노도 복습을 잘 한 것 같군. 바르시는 당시 그 거리 일대를 에워싸듯 뿌리를 내리고 섬멸시킬 기세였다. 그것을 막아낸 것이, 당시의 버나드 가의 당주다.

 

미틸: 그러면 그 사람은 마법사인가요?

 

시노: 아니, 인간이야.

 

현자 / 미틸: 에!?

 

인간도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시노: 글쎄. 그런데 이 책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어.

 

아서: 내가 아는 역사책도 마찬가지야. 어쩌면 마법사의 협력이나 다른 인과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책에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어.

 

파우스트: 역사의 모든 것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야. 혼돈의 시대라면 더더욱. 인간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 정령이 좋아하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 주위에 모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정도야. 흉악한 마법 생물에 맞서다니, 도저히 인간만으로 할 수 없어.

 

과연……. 오래 전해지고 있는 사이에 이야기가 바뀌어버린 걸까요.

 

시노: 뭐, 흔한 이야기잖아. 사실 타도까지는 아니고 그럭저럭 봉인한 걸수도 있지. 그 봉인에 사용된 것이 바로 이거야.

 

시노가 내민 책의 페이지를 뒤적인다. 엄숙한 제단에 날개를 편 듯한 모양의 커다란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는 삽화가 보였다.

 

미틸: 멋있다……. 중후하고 위엄있는 디자인이네요.

 

여기에 바르시가 봉인되어 있는 건가요?

 

시노: 아아. 진의의 훈장이다. 중심에 바르시를 가둔 보석이 있어. 여러 겹의 결계와 봉인술이 걸려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지. 대대로 버나드 가의 당주에게 수호의 의무가 인게되는 것 같아.

 

동경하는 존재를 말하는 아이처럼 시노는 조용히 목소리를 높였다. 붉은 눈동자에 기대를 더해 등 쪽에 선 파우스트를 바라본다.

 

시노: 저기, 파우스트. 그 녀석에게 부탁하면 진짜를 볼 수 있을까?

 

파우스트: 그 녀석이라니……. 네가 잡은 그 소년 말인가?

 

미틸: 그 사람이란, 무르 씨의 지갑을 훔친……? 나쁜 짓을 한 사람이에요. 일부러 만나러 갈 상대는 아닌 것 같아요.

 

시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미틸: 어째서죠?

 

시노: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때가 있어. 나도 마찬가지였고.

 

미틸이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시노의 등줄기는 쭉 뻗어있고 눈동자는 맑았다. 당당한 모습에 홀로 살아온 자부심이 보였다.

 

시노: 진흙을 먹으며 살아온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나는 이제 그 시절의 내가 아니니까. 버나드 가문이 물려받은 훈장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고 싶어. 내가 언젠가 가슴에 장식하는 것은, 조금 더 멋진 녀석으로 하고 싶으니까.

 

미틸: 시노 씨. 저…….

 

시노: 사과할 생각이라면 듣지 않을게. 나와 너는 살아온 방식이 다를 뿐이야.

 

그것은 내뱉는 듯한 말이었지만, 가벼운 말을 하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소년들을 감싸는 공기가 조금씩 부드러워져 간다. 그 속에서 한 소년이 떠올랐다.

 

현자 / 아서: 그 소년에 대해서…….

 

현자 / 아서: 아.

 

죄송해요. 겹쳐버려서. 아서도 그 아이에 대한 것이?

 

아서: 네. 그가 이야기했던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마음에 걸려서요.

 

파우스트: 거리의 사건이었던가? 몇 건인가 연쇄로 일어나고 있다고 했던.

 

아서: 아아. 어쩐지…… 그의 말투를 보아 그는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시노: ……? 그 녀석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건가?

 

아서: 의심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그는 더 이상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니 거리에 너무 오래 있지 말라고 했어. 역사가 있는 양가의 출신이라면 거리의 치안을 염려한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피해를 보고 있는 측으로서는 조금 걸리는 표현이야.

 

확실히.

 

미틸: ……애초에 왜 그 사람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요? 유서 깊은 집안의 태생이라면 저택도 있을 것이고, 거리의 사람에게 존경받고 있을 텐데…….

 

샤일록: 명가의 몰락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시들지 않는 꽃이 없듯이, 영광도 영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르: 샤일록이 말하니까 설득력이 있네!

 

샤일록! 그리고 무르도.

 

시노: 너희들, 훌쩍 나타나는 거 좋아하네.

 

샤일록: 후후.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식후 디저트를 즐기시는 중이라면 마침 잘됐군요. 추가로 차 한 잔 드시지 않겠나요?

 

무르: 마시고 싶어! 한참을 거꾸로 있어서 목이 말라버렸어.

 

샤일록: 반쯤 빙글빙글 돌아서 머리를 천장으로 돌려보는 건 어떨까요? 피가 오르고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무르, 당신은 차를 나눠주는 쪽이에요. 낮에 있었던 소란에 대해 사과하러 온 거니까요.

 

무르: 그랬었지! 즐겁게 나눠주고 즐겁게 마시자!

 

무르가 손가락을 흔들자 둥둥 떠오른 컵에 차가 따라진다.

 

파우스트: 울적한 것만은 아니잖아, 샤일록. 너도 그 소년을 신경쓰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샤일록: 이런, 시야가 넓으시군요. 베넷 가문도 느슨하게 몰락한 집안 중 하나였지만…… 그 소년의 경우, 상황이 상당히 안 좋아보였으니까요.

 

샤일록이 하늘에 손을 대자 두둥실 고급스러운 색감의 접시가 나타났다. 그 위에 컬러풀한 사브레가 툭툭 튀며 겹쳐진다. 그것을 테이블에 올리면서 그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샤일록: 삶이 변화하는 것에도 보통 그에 대응할 만한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죠. 모든 것을 잃고 생활이 어려워졌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

 

무르: 게다가 너희들의 이야기가 들렸어! 그의 집이 봉해 놓은 것은 바르시라며? 그건 지극히 고등한 마법 생물이야. 상대하려면 강한 기개가 필요하지.

 

시노: 기개라니?

 

파우스트: 즉, 기합이다. 무엇을 하든지 필요한 일이지.

 

아서 / 미틸: 기합.

 

가, 갑자기 근성론이 되네요.

 

파우스트: 이치에 맞아. 본인이야말로 나쁜 것에 굴하지 않는 정의의 사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강한 신념……. 올바른 절차와 진정한 진의에 따라 그 몸과 마음으로 바르시와 대치할 수 있어.

 

시노: 좋다, 그거. 다시 말해줘. 나도 따라하고 싶어.

 

파우스트: 진지하게 들어. 믿음 없이 놈들에게 먹잇감이 된다면 몸도 마음도 빼앗길 거다. 그렇게 되면 똑같이 바르시처럼 피를 먹는 괴물이 되지.

 

에…….

 

섬뜩한 말에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내 옆에서 허공에 드러누워있는 무르가 검지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무르: 바르시는 달콤한 향기와 신기한 소리로 인간을 유인해 피를 빨아먹는 것이 특징이야. 그때, 놈들의 채액이 몸에 들어가면 흡혈 충동이 생겨.

 

사람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건가요?

 

무르: 맞아! 지극히 비정상적인 충동이고, 다른 사람의 피 따위 먹고 있으면 제정신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야. 그리고 정신을 잃은 인간을 끌어당겨 고치에 넣고 피를 빨아먹어. 바르시는 그렇게 해서 비대해지는 거야.

 

미틸: 더 기분 나빠졌어…….

 

시노: 무서운 이야기군. 엉뚱한 괴물이야.

 

아서: 희소한 마법 생물이라고는 해도, 사람의 생활을 위협해 사람을 바꿔버리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지…….

 

(인간이 아닌 무언가에 흡혈되어 자신도 같은 괴물이 된다. 바르시는, 마치 흡혈귀 전설 같아…….)

 

샤일록: 저도 조금 역사책을 보았습니다만, 버나드 가문의 당주가 해낸 공적이 영광을 받은 것은 그것이 유래입니다. 상대는 그렇지 않아도 흉악한 마법 생물……. 현대까지 이어지는 봉인이라면 상당하죠.

 

무르: 하지만 어떤 기술이라고 해도 영원하지 않아.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 버나드 가문에 전해지는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시노: 비법이라니. 예를 들어?

 

무르: 글쎄! 하지만 그 거리, 조금 걸리는게 많았어. 바르시의 일도, 거리의 사건도, 내 지갑의 내용물이 증가했던 것도.

 

전원: 에?

 

무르: 그 아이에게 돌려받은 내 지갑, 내용물이 조금 늘어있었어. 길에 떨어뜨렸을 때 그 아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돈과 내 것이 섞인걸까?

 

큰일이야……. 그렇다면 갚으러 가야 해요.

 

샤일록: 그도 곤란해 하고 있을 테니까요.

 

시노: 딱 좋아. 레몬파이도 사러 가고 싶었고. 그 녀석을 찾아가서 훈장도 받아야지. 궁금하면 겸사겸사 봉인 확인이라도 하면 돼.

 

아서: 나도 같이 갈게. 그의 일은 물론이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무르: 와이! 이번엔 다같이 외출이다!

 

미틸: 아, 저기…….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시노: 뭐야. 미틸도 레몬파이가 궁금한 건가?

 

미틸: 그것도 있지만…… 여러분이 말한 소년은 시노 씨의 말대로 그냥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거죠? 사정을 모른채 단정짓고 말았지만…… 만약 곤란한 일이 있고, 힘이 될 수 있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시노: ……그렇네. 그러면 너도 와.

 

미틸: 네!

 

아서: 현자님. 괜찮을까요?

 

물론이에요! 가능한 한 빠른게 좋겠죠. 으음…….

 

파우스트: 기다려, 너희들.

 

시노: 뭐야.

 

파우스트: 그 거리와 그의 저택을 방문할 생각이라면 준비가 필요해. 조금 시간을 주지 않겠나?


4화

 

케이크 가게 점원: 여기 특제 레몬파이입니다! 조심해서 챙겨주세요.

 

시노: 온 힘을 다해 조심할게.

 

드디어 샀네요, 시노!

 

무르: 새콤하고 좋은 냄새!

 

미틸: 갓 구워서 맛있을 것 같아……!

 

파우스트: 그 소년에게 줄 간단한 선물이니까 아직 손대지는 마.

 

시노: 안심해. 넉넉하게 샀으니까 몇 개 집어도 문제없을 거야.

 

아서: 오즈 님도 하나 드시겠나요? 단맛이 덜해서 어른들에게도 인기래요!

 

오즈: 나는 됐다. 네가 먹어라.

 

화이트: 호호호.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니까 간단한 선물이 있어야지.

 

샤일록: 네. 갓 구운 파이로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길 바라는군요. 이런, 현자님. 짐을 들어드릴게요.

 

샤일록은 나를 향해 요염하게 미소지었다. 그가 입는 의상의 분위기도 맞물려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감사합니다. 파우스트와 클로에가 준비해준 의상, 굉장히 멋있네요 …….

 

무르: 이 거리를 방문하기에 적합한 의상이긴 하지. 조금 과장이지만!

 

파우스트: 뭐가 과장이야. 그 고장의 정령이 좋아할 만한 의상을 입는 것은 급할 때에도 도움이 돼. 바르시가 잠든 이 땅에 맞춘 장식을 의뢰했다. 마무리에 가호의 마법도 걸고.

 

화이트: 준비성이 좋구먼.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이 담은 것이 아닌가? 봉인의 기술을 확인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해도 액막이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샤일록: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클로에의 아이디어가 번뜩였거든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티브나 풍성한 프릴은 그의 제안입니다. 저희 디자이너는 멋있죠?

 

파우스트: 아아. 역시 프로다.

 

무르: 그런데 오즈랑 화이트도 또 왔구나?

 

오즈: 아침에 아서가 의상을 들고 방으로 데리러 왔다.

 

아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다시 함께해주셨어. 리케의 전언도 있었으니까.

 

파우스트: 리케의 전언?

 

오즈: 이 동네의 과자를 한 번 더 사와달라고. 특히 레몬 쿠키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군.

 

저번에 줬던 선물, 엄청 좋아해줬으니까요. 하나 더 먹고 싶었던 걸까.

 

아서: 그것도 있습니다만…… 카인을 위해 아껴둔 몫을 북쪽의 마법사들이 먹어버린 것 같아서.

 

아아아…….

 

시노: 또 그 녀석들인가. 어른인 주제에 너무 식탐을 부리잖아.

 

파우스트: 아이의 과자까지 가로채다니.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식사량이 부족한 건가……?

 

화이트: 아니, 그냥 폭군일 뿐일세. 우리 스노우를 위해 산 하트 모양의 츄러스도 녀석들의 배에 들어갔구먼. 녀석들, 마치 굶주린 짐승이지.

 

미틸: 스노우 님, 엄청 화내셨죠. '화이트가 준 사랑의 선물을 잘도!' 라면서…….

 

화이트: 호호호, 그렇게 화내주는 것도 기쁘긴 하지만. 다시 이 거리를 찾아 오려고 했는데 딱 좋은 우연이었네. 볼일을 보고 나면 갓 만든 츄러스를 다시 사가지고 가야지.

 

아서: 네. 우선은 그 소년을 만나러 가죠.

 

 

 

 

 

 

 

일단 거리의 사람이 가르쳐 준대로 와봤지만…….

 

아서: 좌우에 탑을 거느린 석조의 집……. 여기가 틀림없는 것 같네요.

 

그 관은, 큰 거리의 막다른 곳에 우뚝 솟아 있었다. 정면과 창가에는 섬세한 조각이 장식되어 있고 뾰족한 지붕에는 둥글게 깎은 돌기와가 늘어서 있다.

 

미틸: 큰 저택이네요! 여기 올 때까지 본 어떤 집보다 훌륭해요.

 

화이트: 아아. 예전의 문화가 느껴지는 곳이군. 꽤 나의 취향일세.

 

파우스트: 그런가? 창문은 흐리고 앞마당은 잡초투성이인데…….

 

샤일록: 장려한 폐허 같은 멋이지요. 이건 이거대로 맛이 있지만요.

 

무르: 여기서 숨바꼭질 하면 재밌겠다! 큰 호러하우스 같아!

 

오즈: 사람이 있는 기색은 없지만…….

 

시노: 여기서 불러봐도 안 들리려나. 일단 담을 한 번 뛰어넘어볼까.

 

모자를 쓴 소년: 저, 저기…….

 

거기에 쭈뼛쭈뼛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그곳에 있던 사람은 며칠 전 만난 소년이었다.

 

모자를 쓴 소년: 여러분, 얼마 전 만난 분들이죠.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아서: 아아, 너를 찾고 있었어! 저번에 충고까지 해줬는데 미안해.

 

모자를 쓴 소년: 아, 아서 왕자님까지……!? 죄송합니다. 선뜻 말을 걸어버리다니!

 

아서: 괜찮으니 고개를 들어줘. 지금은 왕자가 아니라 현자의 마법사로서 이곳을 찾아온 거야.

 

모자를 쓴 소년: 현자의 마법사……. 저번에 마법을 보여주셔서 설마 했지만…… 여러분들이, 그?

 

샤일록: 네. 이분이 현자님. 우리는 그 마법사입니다.

 

현자인 아키라입니다. 여럿이 몰려와서 죄송해요.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모자를 쓴 소년: 저에게……?

 

아서: 그 후, 거리의 치안은 어땠지? 연쇄 사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네 신변에도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치켜세우는 아서에게 소년은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가는 팔다리는 여전하고, 숙인 눈가에 떠오르는 다크써클도 얼마 전보다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모자를 쓴 소년: 저는 괜찮습니다만, 오늘 아침도 한 명 피해를 입은 것 같아요. 세 번째 거리의 꽃집 아들이. 굉장히 상냥한 사람인데, 심하게 다쳐서…….

 

아서: 그렇구나……. 마음이 쉬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는 거지. 부디 정신을 꽉 잡고 있어줘.

 

모자를 쓴 소년: 네……. 감사합니다. 혹시……. 현자의 마법사님이 오셨다는 것은, 그 사건을 조사해 주시는 건가요?

 

무르: 그건 아직 검토 중!

 

모자를 쓴 소년: 그……. 그렇군요…….

 

무르: 나는 너에게 돈을 갚으러 왔어. 저번에 너무 많이 가져가서. 아마 네 것일 거라고 생각해.

 

모자를 쓴 소년: 그런! 일부러 여기까지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께는 폐를 끼쳤는데.

 

시노: 나는 너를 만나는 것이 목적이야. 진의의 훈장을 보여줘.

 

모자를 쓴 소년: 에……?

 

무르에게 동전을 받으면서 소년은 큰 눈을 떴다. 붉은 빛이 도는 속눈썹이 눈을 깜빡이고, 그늘에 빛이 비치는 것처럼 반짝였다.

 

모자를 쓴 소년: 훈장에 대해서 알고 있어?

 

시노: 책에서 읽었어. 버나드의 영웅전설. 네 조상의 전기잖아. 보여주면, 이거 나눠줄 수도 있어.

 

모자를 쓴 소년: 이 꾸러미는……. 큰길 모퉁이에 있는 가게의 레몬파이!

 

시노: 아아. 갓 구운 거야. 먹고 싶지?

 

모자를 쓴 소년: 응……. 하지만 그것이 있는 장소에 사람을 부르는 건 조금…….

 

파우스트: 역시 관의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는 건가.

 

파우스트의 물음에 소년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를 쓴 소년: 네……. 하지만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되어있어요. 엄중하게 봉했으니까.

 

시노: 어떻게 안되나? 레몬파이, 두 개 먹어도 돼.

 

모자를 쓴 소년: 그건 기쁘지만…….

 

아서: 그렇다면 파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래? 네 조상의 전설과 버나드 가문에 대해서.

 

미틸: 시노 씨가 책의 내용을 알려줬어요. 조상님은 위업을 이루신 대단한 분이시죠?

 

400년이나 계속되는 명가의 자제를 그렇게 잘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이 세게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겠나요?

 

모자를 쓴 소년: ……그런 거라면, 조금 들렀다 가시지 않겠나요?

 

시노: 아싸.

 

모자를 쓴 소년: 아, 그런데 지금 정면으로 못 들어가는구나. 후문으로 가줄래?

 

무르: 어째서? 여기, 너희 집 아니야?

 

모자를 쓴 소년: 그렇긴 한데, 사정이 있어서……. 이쪽으로 와. 안내할게.

 

 

 

 

 

 

대단해……. 밖에서 봤을 때도 훌륭했는데, 내부는 더 분위기가 있네요!

 

시노: 꽤 취미가 좋은 집이네. 블랑셰 성이 더 대단하지만.

 

3층까지 치솟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법사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쏟아냈다. 위엄과 품위를 유지하는 방 벽가에 늘어선 선반 안에는 고서와 오래된 도구들이 가득하다.

 

무르: 넓어! 오래된 책과 도구들이 가득!

 

샤일록: 무르. 다른 사람의 저택이니까 예의 있게 행동하세요.

 

모자를 쓴 소년: 아하하, 괜찮아. 모처럼 와준 거니까 마음껏 보고 가주세요. 전부 대대로 우리 당주들이 모은 책이나 마술에 사용하는 도구야. 팔면 돈이 되겠지만, 추억이 있기 대문에 좀처럼 놓을 수 없어서…….

 

미틸: 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것은, 그냥 장식품이 아니죠……?

 

아서: 촛대에 동물의 뼈, 구리 장식물과 향목도……. 전부 주술에 사용하는 도구인가?

 

오즈: 매개에 적합한 해묵은 것이다. 마법 도구도 몇 개 섞여 있어.

 

파우스트: 이 선반도 온통 마법이나 주술 전문서군. 인간의 몸이면서 이 정도의 장서를 배우고 있는 거라면 상당한 지식량이다. 게다가 여기 쌓여 있는 책은 적서……. 아니, 네가 쓴 건가?

 

모자를 쓴 소년: 응. 나, 책 읽으면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거든. 이만큼 있으니까 독학하려면 아직도 걸릴 것 같지만.

 

화이트: 이건 상상 이상이구먼……. 마치 마법사의 관일세.

 

모자를 쓴 소년: 의자는 많으니까 적당히 앉아줘. 접시도 가져왔는데, 레몬파이 꺼내도 될까?

 

미틸: 그럼요! 도와드릴게요.

 

모자를 쓴 소년: 와아……. 아직도 따뜻해. 게다가 좋은 냄새…….

 

그렇죠! 꾸러미를 열면 더욱 고소하고 꿀 같은 향기가…….

 

그 때, 아주 잠깐 위화감을 느꼈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기와 함께 머리 안쪽에 울리는 듯한 이명 같은 소리가 들린 듯했다.

 

미틸: 꿀……? 슈가버터 향이 더 세지 않나요?

 

어라, 진짜다. 착각이었나…….

 

(이명도 착각인 걸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고…….)


5화

 

모자를 쓴 소년: 기쁘다. 나, 사실은 애플파이를 좋아하지만 이 가게의 레몬파이를 먹어보고 싶었어.

 

시노: ……뭐라고?

 

모자를 쓴 소년: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파이는 애플파이잖아? 달짝지근하게 끓여진 사과가 가득 차있어서 바삭바삭한 파이와 물렁한 사과의 궁합이 최고인 걸.

 

시노: 모르네, 너. 제일 최고인 건 레몬파이잖아?

 

모자를 쓴 소년: 에에, 그래? 가끔 너무 신 게 있어서 나는 잘 먹지 못 해.

 

시노: 그게 좋은 거잖아. 특히 블랑셰의 마님께서 만드시는 레몬파이는 세계 최고야. 처음 먹었을 때 이렇게 맛있는게 있구나, 하고 놀랐을 정도로. 그러니까 세계 최고지.

 

모자를 쓴 소년: ……아하하, 그렇구나. 나도 엄마의 애플파이를 처음 먹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어.

 

리카르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말하지 않았네. 나는 리카르도. 잘 부탁해.

 

시노: 시노다.

 

리카르도: 시노. 아…… 파이만 먹으면 목이 마르겠지만 미안해. 차가 낡아서, 내놓을 만한 차가 없거든…….

 

샤일록: 그런 거라면 저에게 맡겨주세요.

 

샤일록이 손가락을 올리자 어디선가 티세트가 나왔다. 티포트가 허공을 날면서 빈 잔에 차례차례로 따뜻한 차를 쏟는다.

 

리카르도: 대단해! 식기가 차례를 기다리고 물도 끓고 있어…….

 

무르: 찻잎도 마법의 찻잎이야. 뭉게구름이나 무지개맛이 날지도!

 

샤일록: 리필할 때마다 맛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자신의 혀로 확인해 주세요.

 

리카르도: 와아……! 처음에는 무슨 맛이 날까?

 

소년은 몸을 내밀면서 반짝반짝 눈을 빛낸다. 그 모습은 나이에 맞는 소년다워서, 매우 미소가 나올 만한 광경이었지만…….

 

(차도 낡았다고 했고, 가구도 희미하게 먼지가 가득해…….)

 

저기…… 실례되는 말을 묻는 거라면 죄송해요. 굉장히 훌륭한 집이지만, 혹시 지금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건가요?

 

리카르도: 아…… 네. 이 집에 드나드는 건 지금은 나 뿐이니까.

 

파우스트: 이 넓은 저택에 너만? 가족은 없나.

 

리카르도: 없는 건 아니지만…….

 

리카로드 씨의 앞에 김이 나는 찻잔이 내려왔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형형색색의 그것이 허공을 날아 모두의 품으로 옮겨진다.

 

아서: 리카르도만 괜찮다면 들려줬으면 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하고 싶은 속도로. 물론 억지로라고는 하지 않아.

 

아서의 말은 편안하고 소소했다. 사양하기 일쑤였떤 리카르도 씨는 한 번 망설이는 듯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르: 너희 집은 지금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이 거리의 영주 정도 되지 않았나?

 

리카르도: 옛날에는. 지금은 이 근처와 지방에 어느 정도 토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야. 가족끼리 살기에는 충분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도와주던 자선 사업 단체와 연락이 끊겨버렸어. 사기당한 거야. 아버지가상냥한 사람인 것을 알고, 남아 있던 토지도 전부 가지고 가서…….  

 

샤일록: 그건 딱하군요……. 이렇게 큰 저택이라면 유지비도 들 테죠. 구가의 의무도 있을 테고요.

 

화이트: 그대의 몸 하나가 일하러 나간다고 해도 돈을 구하는 것은 힘들겠지. 젊은데 고생하는구먼.

 

리카르도: 아니…… 힘든 것은 어머니 쪽이에요.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상황에 마음을 졸여서……. 그 다음에는 숙부님이 재산 관리인이 됐는데, 그 사람은이 집의 역사나 역할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혹시, 얼마 전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그 사람인가요……? 숙부님이라고 했었죠.

 

시노: 왜 관심이 없지? 그 녀석도 이 집의 피를 잇는 거잖아.

 

리카르도: ……숙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광은 옛날 이야기라고. 이제 버나드 가문의 이름에 연연하지 마라. 이 집을 잊고 같이 살자고. 하지만…… 강정한 나에게 정이 떨어져서 몇 달 전에 이 저택을 팔려고 내놓은 거야.

 

무르: 그러면 여기는 빈집이라는 것?

 

리카르도: 맞아. 드나드는 것도 안 되는 건 알아. 하지만 구매자가 결정될 때까지는 괜찮다는 생각이들어서.

 

미틸: 그런……. 그러면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리카르도: 엄마는 내가 지방 친척에게 은거시켰어. 분명 그 사람은, 여기를 떠나는 편이 평온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시노: 너도 마찬가지잖아. 숙부나 어머니를 따라가면 적어도 지금 생활보다는 편했을 거야. 왜 굳이 살기 힘든 쪽을 선택하지?

 

리카르도: ……어째서일까. 여기에 있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만…… 나, 이 집을 좋아해. 어느 때나 자신에게도 명예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거든.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게다가…… 누구에게 팔리더라도 이곳은 나의 집이고, 책도 아직 읽고 싶고.

 

화이트: ……그렇군. 자기 욕심에 충실하고 씩씩한 아이일세.

 

리카르도: 하하, 그런가.

 

수줍게 웃는 리카르도 씨가 찻잔에 손을 뻗는다. 찡하고 목을 울리며 그는 뺨을 살짝 물들였다.

 

리카르도: 맛있어……. 사과와 시나몬 맛이야.

 

샤일록: 좋아하는 맛인가요?

 

리카르도: 응……. 그리운 맛이 나. 엄마가 만드는 애플파이 같은.

 

무르: 다행이다! 레몬파이도 빨리 안 먹으면 없어질 거야!

 

화이트: 그렇네. 그대에게 줄 선물로 산 것이니까.

 

파우스트: 한창 먹을 나이니까 몇 개 나눠놓고 하지. 사양하다가는 못 먹게 될 거다.

 

미틸: 아! 시노 씨, 벌써 3개나 먹었어.

 

시노: 우물우물. 빠른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오즈: 코에 가루 설탕이 묻어있다.

 

아하하, 정말이다. 코 끝에……. 시노. 냅킨 받으세요.

 

명랑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온화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아서가 리카로드 씨에게 향한다.

 

아서: 리카르도. 나는 자랑스러운 가문의 이름을 가진 몸이야. 이름에 책임을 느낄 수도 있어. 그러나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매진하고 있지. 나도 너와 같은 입장으로서 힘이 될 수 있을까?

 

리카르도: 그, 그런! 당신의 입장과 저를 같다고 생각하다니, 황송해요. 저는 아까 잘난 척을 해버렸습니다만…… 대단한 건 저의 조상이니까. 지금의 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입을 다물자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훌륭한 저태이기에 지금의 황폐함이 슬픈 것으로 생각되었다.

 

시노: ……있잖아. 진짜 영웅에게 물려받은 이름이랑 피가.

 

리카르도: 이름이라니, 직함이야. 실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시노처럼 신기한 힘이나 세계를 구하는 역할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시노: 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친절한 가족도, 큰 집도, 배불리 먹던 추억도, 원하는 만큼 읽을 수 있는 책도.

 

리카르도: ……시노…….

 

시노: 나는 어떤 것을 사용해 쓸고 남은 것으로부터 기어올라 살아남았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하지 마. 너도 쓸만한게 있을 테니까.

 

리카르도: ……미안해. 무신경한 말을 했네.

 

시노: 별로. 그래도 너는 운이 좋다고 생각해.

 

리카르도: 그렇지……. 나는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

 

시노: 아아. 똑바로 좀 행동해.

 

리카르도: 하하……. 그렇네. 왠지 기쁘다. 시노처럼 혼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엄마와 집 생각을 하느라 친구도 사귈 겨를이 없었고.

 

시노: 꾸짖는 거라면 언제든지 해줄게. 레몬파이를 다 먹을 때까지는 말이야.

 

리카르도: 그러면 벌써 끝나버렸네. 아쉽다. 적어도 한 잔 정도 더 차를 마시고 가지 않을래?

 

시노: 받도록 하지.

 

리카르도 씨가 동동 뜬 찻주전자에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시노가 코를 킁킁거렸다.

 

시노: ……너, 부상이라도 입은 건가? 저번에도 피 냄새가 났는데 오늘도 나.

 

리카르도: 에? 아, 아…….

 

리카르도 씨의 손이 벌벌 떨린다. 따르던 차가 튀어 접시를 적셨다. 순간 끼잉, 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두둥실 달콤한 향기가 풍긴다.

 

(윽, 또야……. 이명과 꿀의 향……. 이건, 확실히…….)

 

리카르도: 오늘 아침에 책을 넘기다가 손가락을 베였거든. 꽤 깊이 들어가 버렸으니까, 그것 때문이려나…….

 

오즈: 너…….

 

파우스트: 오즈.

 

뭔가 말을 꺼내려던 오즈를 파우스트가 말렸다. 이명과 달콤한 향기가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오래된 마법사들이 저마다 리카르도 씨를 바라보고 있다.

 

파우스트: 리카르도.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

 

리카르도: 네……. 뭔가요?

 

파우스트: 이 집이 봉인하고 있는 진의의 훈장 말인데, 대대로 당주에게 수호의 의무가 인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한 지금의 당주는 너겠지. 인계는 어떻게 됐지?

 

파우스트의 물음에 리카르도 씨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찻주전자를 책상에 놓고, 말해도 좋을지 망설이듯이 팔을 문지른다.

 

리카르도: 그렇구나……. 거기까지는 책에 적혀있지 않았구나. 당주가 영창과 함께 진의의 훈장에 피를 바치는 거야.

 

시노: 영창과 피를……?

 

리카르도: 봐, 그 녀석은 피를 찾는 괴물이잖아? 조상들도 봉인할 때 공물에 피를 바쳤다고 했어. 그러니까 당주가 된 사람은 정기적으로 제단에 피를 바칠 의무가 있는 거야.

 

한 번 말을 끊은 리카르도 씨가 바싹 붙은 입술을 빗댔다. 주술을 부리듯 이상한 말을 내뱉는다.

 

리카르도: '……그대, 피와 악몽의 주인이여. 피의 사슬에 딸린 포학의 송곳니여. 내 목소리를 듣고 굶주림을 거두어라. 내가 이 피로 선서한다. 너를 여기에 봉인하는 것을.'

 

리카르도: ……이게 영창이야. 그래야 봉인을 유지하고 훈장을 이어받는대.

 

화이트: 호오……. 그러면 그대는 봉인의 장소를 방문한 적이 있나?

 

리카르도: 아니……. 방 안에 들어간 적은 없어. 제단 바로 위에 연결된 방이 있어서 피를 바칠 때는 거기에 떨어뜨리거든. 그러니까, 그 장소에 가지 않아도 …….

 

무르: 정말로?

 

높은 책장을 뒤적이며 허공을 떠돌던 무르가 문득 리카르도 씨 앞에 내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무르: 휘청휘청 눈이 헤엄치고 있어. 내 지갑을 주워서 헤매고 있을 때처럼.

 

리카르도: ……저, 정말이야! 문 앞까지는, 아버지가 데려다준 적이 있고…….

 

파우스트: ……그런가.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가늠한 듯 파우스트가 잔을 놓았다.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를 바라본다.

 

파우스트: 자, 해질녘이 가까워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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