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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法使いの約束/2021 이벤트 스토리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 ~남쪽&동쪽~] 6화~10화

6화

 

평소 온화하고 협조적인 남쪽 마법사들의 충돌은 차가운 긴장을 불러왔다. 그만큼 서로에게 양보할 수 없는 마음이 있는 건지도 몰라. 모르겠어요, 하고 피가로를 밀친 미틸처럼.

(……미틸, 괜찮으려나.)

가만히 문 쪽을 바라본다. 슬프게 나간 그는,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

……죄송해요. 저, 미틸들의 상태를 보고 올게요.

네로: 그러면 나도 같이 갈게.

고마워요, 네로.

피가로들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우리는 미틸들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미틸은 주저앉아 있었다. 루틸이 다가서는 가운데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네고 있다.

미틸: 저, 이기적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여기가 없어져버린다니…….

시노: 이기적인게 아니야. 미틸의 장래 일터의 이야기다. 네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없어지면 곤란하잖아.

히스클리프: 그렇지……. 나 같아도, 갑자기 블랑셰의 성을 없애버리겠다고 하면 비록 나에게 결정권이 없더라도 놀라고 상처받을거야.

시노: 그런 일 하게 둘까보냐. 나으리의 상대라고 해도 목숨을 바꿔 항의하겠어.

히스클리프: 바로 목숨과 바꾸지 마! 그냥 비유적인 얘기야. 하지만, 지금의 미틸은 그런 기분을 안고 있어.

미틸: …….

저기…….

루틸: 현자님, 와주셨군요.

히스클리프: 네로도.

시노: 다른 녀석들은?

네로: 아——……. 아직 안에서 의논하고 있어.

미틸, 조금은 진정 되었나요……?

나를 보며 미틸은 조그맣게 이마를 긁었다. 울었던건지 울음을 참은건지 예쁜 초록색 눈동자가 지금은 붉게 젖어 있다. 그 어깨를 루틸이 부드럽게 안고 있엇다. 늘 명랑하던 형제는, 슬픈 듯 속눈썹을 덮고 같은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

미틸: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어요. 진료소를 포기한다는 말밖에 듣지 못해서. 혹시 피가로 선생님이 저에게 해준 말씀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옳은 말씀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역시 싫어요.

미틸은 코를 훌쩍거렸다.

미틸: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고,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장소를 없애는 방법을 제일 먼저 택할 줄은 몰랐어. 가능성이 1개라도 있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봤으면 좋겠는데. 저는 그 장소를……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를 지키고 싶어……. 피가로 선생님이 그걸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미틸…….

시노 / 히스클리프: .…….

루틸: 미틸, 형도 같은 마음이야. 저 자리는 울고 웃었던 추억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미틸: ……형님.

루틸에게 어깨를 안기며 미틸은 쓸쓸한 듯 무릎을 꼭 껴안았다. 피가로를 대신하듯 네로는 미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네로: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만큼 피가로도 여기 사는 모두를 지키고 싶다는 건가 봐. 그래서 어려운거겠지.

네로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람이 약하게 불어 호수 위로 잔물결이 스친다. 남쪽 나라는 자연이 험해 개척이 어렵다고 알려진 땅이다. 이 마을도 이렇게 생활이 정리되기까지에는 많은 고생이 있었을 것이다.

(……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진료소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문득 작은 화단이 있음을 깨달았다. 꽃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꽃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아기자기한 플레이트들이 즐비하다.

히스클리프: 현자님? ……아아, 저런 곳에 화단이 있었네요.

지금 알아챘어요. 꽃은 없는 것 같지만…….

미틸: 저건 옛날에 저희끼리 만든 거예요.

그런가요?

루틸: 네. 레노 씨의 도움을 받아서 흙을 나르고, 씨를 심고.

구름 사이로 빛이 빛치듯 미틸과 루틸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미틸: 물이 모자랐는지, 흙이 안 맞았던건지. 꽃은 금방 시들어졌지만…… 피가로 선생님께서 또 나중에 키워보자고 화단은 그 상태로 남겨주신 거예요.

시노: 헤에.

히스클리프: 그래서 플레이트도 그래도 남아 있는거였구나.

루틸: 저건 미틸이 쓴 거에요. 글씨를 막 외운 참이라 자기가 쓰겠다고 의욕이 넘쳐서.

네로: 아하하. 그렇게 어렸을 적에 만들었던 거구나.

미틸: 저, 어렸을 때부터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에 많이 신세를 졌거든요. 열이 내리지 않을 때나, 컨디션이 안정되지 않을 때는 여러 번 잔 적도 있었고요.

진료소에 입원한 적이 있었나요?

미틸: 네. 가끔이지만요.

루틸: 집에서 금방 치료가 안 돼서, 피가로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며 잠시 묵고 있었어요.

미틸: 하지만 힘들었던 것뿐만이 아니라, 즐거웠던 추억들도 잔뜩 있어요! 여행놀이도 하고, 형님이랑 같이 진료소에서 잠도 잤다던가.

루틸: 어렸을 때 많이 했었지. 숙식하는 날은 모두 함께 밥을 만들고, 밤에는 반드시 간을 맛보고……. 도깨비 역의 피카구치 선생님이 너무 겁을 줘서 미틸을 울린 적도 있었지.

미틸: 그야 엄청 무서웠다고요! 찬장을 열었더니 피가로 선생님의 생목이 떠있어서…….

히스클리프: 그, 그건 무섭네.

네로: 기합이 너무 세잖아.

루틸: 그때의 피가로 선생님, 엄청 당황하셨지. 미안해, 귀신이 아니야 라며 미틸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필사적으로 사과하면서.

미틸: 레노 씨도 위로해주려고 웃어주셨지만 그 얼굴이 무서워서 더 울어버렸어요.

아하하, 상상이 가요. 레녹스도 같이 했었군요.

미틸: 네! 양치기 일이 없을 때에 몇 번 숙박 모임에 참석해주셨어요.

미틸과 루틸은 진료소에서의 추억을 잔뜩 이야기 해주었다. 두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들뜬 표정을 보면 눅나 알 수 있었다. 소중한 누군가과 울거나 웃거나, 응석을 부리거나. 뒤돌아보면 모두 빛으로 가득 찬, 분명 보물같은 시간이었다.

미틸: 아직도 말이 부족할 정도로 여기에는 많은 추억이 있어요. 저희에게는 둘도 없는 정말 소중한 곳이거든요.

피가로: 그런 일도 있었지. 그립네.

미틸: 피가로 선생님!

루틸: 어느 사이에…….


7화

 

미틸의 옆에 피가로가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레녹스와 파우스트의 모습도 보였다.

피가로: 미틸을 울렸을 때에는 정말 당황했었지. 루틸은 겁이 나면 무서운 만큼 기뻐하는 아이였으니까, 정도를 잘 몰라서. 눈알을 열 개 붙인 탈 같은 것도 준비했었는데 안 하길 잘했어.

레녹스: 그 외에도 천장에 피눈물을 흘리려고 준비했었죠.

루틸 / 미틸: 에, 그랬었나요? 그런거…….

미틸: 무서워!

루틸: 재밌을 것 같아!

피가로: 아하하.

네로: 의견이 보기 좋게 갈렸네.

히스클리프: 역시 피의 비는 자극이 강한 것 같지…….

피가로: 그때는 재미를 좀 보려고 의욕이 나서.

파우스트: 의욕이 너무 났잖아. 아이를 앓아 눕힐 생각이었나.

피가로: 다음부턴 자제했어. 모처럼의 숙박회는 즐거워야하니까. 기억나? 숙식 때 다 같이 만들었던 스튜.

미틸: 물론 기억해요! 형님이 좋아하는 모든 걸 냄비에 넣어 버려서…….

레녹스: 야채랑 사탕이 같이 들어가 있어서, 개성 있는 맛이었지.

루틸: 게다가 너무 크게 잘라버려서 식재료가 제대로 익지도 않고…….

피가로: 먹을 때마다 모두의 입에서 꾸르륵 꾸르륵, 딱딱한 소리가 울렸어.

남쪽의 마법사들이 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들다운 평소와 같은 광경이었다. 따뜻하고 명랑해서 가슴이 철렁거린다. 오래오래, 이런 시간이 이어졌으면 좋겠어.

미틸: ……저, 옛날처럼 다 같이 묵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화단에서 꽃을 가꾸고 싶어요. 그리운 추억으로만 간직할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피가로: ……그렇네.

피가로의 눈이 부드러워진다.

피가로: 고마워, 둘 다. 여기가 소중한 곳이라고 해줘서. 진료소를 없애는 건 일단 보류야. 일단 파우스트가 말했던 방법을 시도해보자.

미틸: ……피가로 선생님!

루틸: 정말인가요!?

피가로: 단, 기한은 하루 뿐. 그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그 기한 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매개로 이변을 멈출거야. ……레노도, 그걸로 됐지?

레녹스: 충분합니다.

루틸: 다행이야……. 다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가로 선생님!

네로: 잘됐네, 미틸.

미틸: 네!

히스클리프: 그런데, 파우스트 선생님꼐서 말씀하신 방법이란 어떤 건가요?

파우스트: 과거에 산의 늪과 함께 지하 깊숙이 묻힌 마법사가 있다. 그 남은 사념을 흥기시키고 있는 주물을 찾아 사기를 물리친다, 같은 것이지.

미틸: 산의 늪과 마법사의 주물……?

루틸: 그런 것이 여기에 묻혀 있다는 건가요?

레녹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이 아니라 더 먼 곳이라는 얘기야. 그 마법사의 주물이 저주를 불러와 산의 늪과 함께 이변을 일으킨 것 같아.

시노: 귀찮은 얘기네. 누구야, 그 마법사 묻은 거.

피가로: 글쎄, 옛날 이야기니까.

네로: 뭐 어쨌든. 땅속을 파내서 주물을 발견하면 어떻게든 될 수 있다는 거잖아.

루틸: 그런 거라면, 기합을 넣어서 지하를 마구 파내죠!

미틸: 네! 저, 반드시 찾고 말겠어요……!

히스클리프: 모두 같이 찾으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네요. 힘내죠!

시노: 우리들이 협조하는 거니까. 주물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파내서 찾는 정도야 여유로워.

파우스트: 당연하지.

피가로: ……후후.

레녹스: 그렇네요.

시노 뿐만이 아니라 파우스트의 믿음직한 답변에 모두 웃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곧 산의 늪이 묻혀 있던 터로 향했다. 목적지는 의외로 멀어서 이동에만 약 반나절을 소비해 버렸다.

피가로: 산의 늪이 묻혀 있는 곳은 이곳 아래야.

도착한 곳은 바위산 중턱쯤. 녹음이 적고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파우스트: 이제 유예가 없어. 곧 착수할 거다.

레녹스: 목표물은 꽤 깊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아. 모두, 이 밑을 마법으로 파 줘.

루틸 / 히스클리프: 네!

피가로: 이 근처라면, 잠시 파고 있는 사이에 지반이 느슨해져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 거기라면 반드시 단번에 파낼 수 있어. 레녹스라면 알아볼 수 있겠지. 찾으면 신호 좀 주지 않을래. 붕괴될 위험이 있으니까 애들은 피신시키고.

레녹스: 알겠습니다.

그것은 피가로가 제안한 절차였다. 여기에 오기 전에 어른들이 짠 작전은 이렇다. 주물을 찾기 위해 땅속 깊이 구덩이를 파려면 피가로가 마법을 쓰는 것이 가장 손쉽다. 하지만, 피가로는 젊은 마법사들에게 강한 마력을 가진 것을 숨기고 있다. 들키지 않게 마법을 써야 해. 숨어서 마법을 사용하며 의심받지 않는 타이밍에 지반의 느슨한 곳이 발견됐다고 말한다. 그것을 신호로 아이들을 이동시키고, 그 틈에 피가로가 강한 마법을 쓸 예정이다.

피가로: 우리는 이쪽에서 작업할게. 파우스트, 레녹스, 네로. 같이 해줄 수 있으려나.

레녹스: 네.

파우스트: 레녹스의 뒤에 서면 돼. 네로는 그쪽으로.

네로: 알겠어.

피가로: 미안하네, 동쪽의 섬세한 요리사 마법사인 너에게 이런 걸 돕게 해서.

네로: 아니아니……. 남쪽의 가냘프고 상냥한 마법사의 부탁은 나도 거절할 수 없으니까.

피가로: 현자님은 파낸 곳에 그럴싸한 게 없나 봐줄래?

알겠어요.

피가로: 미안해, 휘말리게 해서.

조금은 미안한 듯한 울림에 되돌아 본다. 진료소를 남기는 수고를 들이기 위한 이것은 거래다. 미틸들의 진료소를 구하고 싶은 욕망과, 피가로의 형제들 앞에서는 남쪽 마법사인 피가로이고 싶은 욕망. 그 어느 쪽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약간의 무리가 필요했다.

미틸: 좋아. 형님, 하죠!

루틸: 응! 가자!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쳬!'

루틸: '오르토니크 세토마오졔!'

히스클리프: 시노, 우리들도.

시노: 아아.

히스클리프: '레이세바이브러프 스노스'

시노: '맛차 스디파스'

기합을 넣은 젊은 마법사들이 저마다 주문을 외운다. 그러다보니 크고 작은 구멍들이 우글우글 땅에 생기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그 뒤를 잇는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니드'

네로: '아도노디스 오므니스'

피가로: '폿시데오'



주문을 외울 때 마다 포크레인으로 건져낸 것처럼 구멍은 점점 크고 깊어지면서, 지하로 땅바닥이 파여간다. 마법이라고는 하지만 지층을 거슬러 올라가 바위가 섞인 흙을 파내는 일은 꾸준하고 끈기 있는 작업이다. 마법사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구덩이를 계속 파고 있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이 근처에서는…….

피가로: 아직이야. 조금 더.

(아직 피가로의 마법이 자연스럽게 보일 타이밍이 아닐지도 몰라. 어린 마법사들을 위해서라도 레녹스들은 빨리 작업을 끝내고 싶겠지만……)

피가로의 힘을 빌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사정을 아는 세 사람은 말문을 열기 어려울 것이다.

히스클리프: ……안 보이네요.

그렇네요. 지금 이 상태에서는 그럴 듯한 건…….

시노: 꽤 많이 팠는데. 정말로 여기에 있는 거 맞아?

미틸: 아직 부족하다는 걸까요……. 얼마나 깊게 파묻혀 있는 걸까요……..

구멍으로 올려다보는 하늘이 멀어져도 산의 늪과 함께 만들어진 주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피가로의 말처럼 산의 늪이 잠들어있는 곳은 쉽게 파낼 수 없는 깊은 곳 같다.

피가로: 모두 상태는 괜찮아? 조금 정도 휴식을 취어야지.

미틸: 아직 멀쩡해요! 그것보다 피가로 선생님은 괜찮으신가요?

피가로: 에?

루틸: 아까 아이의 치료도 해주시고, 많이 피곤하시죠?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 하지만 나도 열심히 해야지.

몇 번이나 피가로가 쉬자고 말해도 그들은 고개를 흔들며 구멍을 팠다. 마법사들의 주문이 여러 개 들리고 남쪽 마법사인 피가로의 주문도 작게 포개져 갔다.


8화

 


목표물을 찾지 못한 채 시시각각 시간은 지나고…… 이윽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히스클리프: 이제 힘이 없어졌어…….

네로: ……히스, 잠시만 내려와 있어. 여긴 내가 계속할 테니까.

히스클리프: 네로. 하지만…….

파우스트: 네로의 말 대로야. 빗자루에서 날기 위한 마력은 남겨둬. 시노는 괜찮나?

시노: 아아, 아직 할 수 있어.

인간이 육체노동으로 피로를 느끼듯이 마법사도 마법을 계속 쓰면 소모된다. 피가로에게 야무지게 대답하던 마법사들도 쉴새없이 구덩이를 파내더니 역시 지쳐 있었다.

미틸: ……하아, 하아…….

레녹스: 미틸, 괜찮은가. 좀 쉬는 게 어때.

미틸: 괜찮, 아요……. 그것보다 빨리 찾지 않으면…….

시노: 마력이 거의 안 남았어. 네 몫은 내가 해줄게.

루틸: 여기는 형님에게 맡겨줘.

레녹스: ……모두 무리하지 마. 내가 대신할게. 교대로 휴식을…….

(그만큼 마법을 썼다면 아마 상당히 피곤할텐데……)

그만하자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지하에 묻혀 있는 주물을 향해 마법사들은 열심히 구덩이를 파고 있다. 앞으로도 저 자리에 피가로의 진료소가 남아있기 위해.

피가로: ……곤란한걸.

한숨 소리가 나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들이 서로 격려하며 구멍을 파고 있는 모습을 피가로가 바라보고 있다.

피가로: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둘이 뭘 가져와서……. 아아, 꽃의 씨앗이었던가. 화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지. 하지만 진료소의 땅에는 맞지 않는 종류였거든. 나는 말렸어. 시들어 버릴거라고. 하지만 둘은 그때도 화단을 만들자고 했어. 그 아이들이 놀러 오지 않는 동안에도 화단에 꽃이 피어있으면, 내가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

둘의 마음은 나도 알 것 같았다. 내가 한 일을 이 사람이 좋아했으면 좋겠어. 내가 없을 때 조금은 외롭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옆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듯한 피가로의 행동은 가끔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진료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중요한 장소가 사라지면 피가로가 외롭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 그렇기에 더욱, 모두는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어른들도 그 마음을 받아줬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외롭다고 그가 생각하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피가로: ……아니나 다를까, 꽃은 시들어 버렸어. 그 아이들도 아쉬워했었지. 나도 실망시켜서 아쉬웠어. 나는 오래 살고, 솔직히 꽃이 있고 없고 해서 외로움을 타는 일은 없어. 놓치지 아까운 것도 적어.

 

피가로: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가 대신해서 나의 무언가를 아껴주는 것은…… 조금 기쁘려나.

피가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흙이 달라졌어요. 슬슬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얘기를 나누고 있던 우리의 등에 레녹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가로가 고개를 돌려 이마를 만진다. 그것은 신호다. 네로와 파우스트도 안심한 듯한 얼굴로 눈을 맞춘다.

시노: 좋아. 여기는 우리끼리 파고 들어간다.

레녹스: 알겠습니다. 모두는 일단 저쪽으로.

네로: ……나도 할게.

루틸: 저도 도와드릴게요.

네로: 너희들도 많이 무리했잖아. 일단 앉아서 쉬어. 이곳은 어른들이 멋있게 활약하는 곳이야. 마력의 페이스 배분도 기술이고, 여기는 연상이 멋져보이는 곳이니까.

루틸: 네로 씨…….

시노: 네로, 멋있네.

히스클리프: 응, 멋있어.

 

네로: 너무 띄우지 말라고. 부끄러워지잖아…….

 

네로: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계속 팠으면 역시 힘들었겠지. 너희들, 힘냈구나.

네로의 치하에 모두 사양하는 듯 얼굴을 마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아이들을 대피시켰던 레녹스가 돌아오자 어른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굴착한 땅을 건드렸다.

피가로: 그러면 시작할게.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도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

네로: 도와준다는 건? 당신이 활약할 때 아니었나?

피가로: 그건 그렇지만, 더 이상 모두의 걱정 끼치고 싶지 않고. 그냥 한꺼번에 치워버리고 싶어서.

파우스트: 물론 상관없어. 빨리 아이들을 안심시켜주지. 피가로, 유도해줘.

피가로: 알았어. 그러면 나부터…….

피가로: '폿시데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드'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네로: '아도노디스 오므니스'

마법사들: ……에!?

엘리베이터가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면 동그랗게 잘린 하늘이 저 멀리 보인다. 지금 한 순간에 구멍이 엄청난 깊이까지 뚫린 것 같아.

시노: ……뭐야, 지금 거.

미틸: 4인분의 마력으로 이렇게까지 되는 건가요……?

네로: 어이어이……. 모두 너무 힘낸 거 아니야?

파우스트: 너야말로 거의 전력이었잖아. ……너무 힘이 들어갔어. 아이들은 무사한가?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안 들키게 한다고 하셨으면서…….

피가로: 미안미안. 빼먹은 걸 만회하고 싶어서. 고마워, 모두. 덕분에 살았어.

네 사람은 서로 웃으면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 조금의 피로도 보였다. 피가로는 물론 모두 강한 마력을 사용한 것 같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계속 신경쓰였던 거겠지. 땅울림 같은 진동이 가라앉자 앞두고 있던 어린 마법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미틸: 피가로 선생님! 지금 건…….

피가로: 미틸, 모두도 다친 곳은 없어? 꽤 완만한 지층이라 단번에 무너진 것 같아. 눈치챈 레녹스의 공적이네.

히스클리프: 그런건가요……?

루틸: 레노 씨, 대단해요!

시노: 꽤 하잖아.

레녹스: ……아니. 모두가 여기까지 힘내준 덕분이야.

미틸: 하지만 이렇게 깊게 파내도 마법사의 주물은 나오지 않았네요…….

파우스트: 기색은 가까워지고 있어. 이대로 파들어가면 아마 다다를 수 있을 거야.

네로: 즉, 보물찾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건가.

루틸: 모두 계속 일하고 있는데, 휴식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히스클리프: 맞다, 시노. 지금이야말로 그걸 쓸 때가 아닐까?

시노: 그거? ……아아, 그렇지. 모두, 마셔. 내가 만든 피로가 풀리는 약이야.

레녹스: 고마워.

 

루틸 / 미틸 / 히스클리프: ……써!

피, 피가로의 차보다 써……!

파우스트: 약초를 얼마나 넣은거야……?

시노: 어때, 꽤 들어갔지.

네로: 뭐, 그 뭐냐. 일단 졸음은 싹 날아간 것 같네.

미틸: 에헤헤…… 덕분에 조금 힘이 났어요. 아직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녹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파내자.

힘내자. 오——!

루틸: ——!








미틸: ……양이 꽤 계속 울고 있지 않나요?

구덩이를 계속 파고 있는 중에 레녹스의 양이 갑자기 삐삐 울기 시작했다.

레녹스: 정말이네. 뭔가에 겁을 먹고 있는 듯한…….

미틸: 뭔가 느껴지는 걸까요.

미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미틸: 어라? 뭘까요. 저기에 뭔가…….

저기?

미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 벽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상한 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미틸: ……혹시, 저것이 마법사의 주물?

미틸은 파내려고 마법을 써서 주변의 흙을 치우려고 했다. 순간 주물은 불길한 빛을 발하며 벽 속에서 튀어 나왔다.

……!

네로: 아무래도 맞았나 본데!

파우스트: 아아, 저주의 본체다……!

레녹스: 선생님, 저건…….

피가로: 거무스름한 구리의 작은 상자……. 피술자의 이빨과 손톱을 떼어서 집어넣은 악취미 주물이야. 돌로 만든 마법사의 마도구겠지.

작은 상자는 공중으로 떠올라 주위에 거무튀튀한 안개를 흩뿌렸다. 번쩍번쩍하고 사악하게 빛나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호응하듯이 발밑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히스클리프 / 루틸: ……윽!

지면에 균열이 샌긴다. 그 사이로 진흙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작은 구리 상자와 같은 색을 한 그것은 사람의 손처럼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며 우리 쪽을 향해 왔다.

시노: 어이, 뭐야 이거. 우릴 노리고 있다고!

피가로: 산의 늪이야. 저주와 동화되고 있어.

네로: 서있기만 해도 덮쳐 와. 일단 뛰어서 도망쳐!

히스클리프: 현자님, 제 빗자루에!

네!

일제히 빗자루로 날아가려던 그때, 산의 늪의 덩어리가 미틸을 덮쳤다.

미틸: 와앗!

레녹스: 미틸!

망설임 없이 레녹스가 손을 뻗어 미틸을 껴안으며 상공으로 날아간다.

루틸: 레노 씨!

레녹스, 어깨가……!

날아갈 때 산의 일부를 맞았는지 어깨가 타들어가고 있다.

미틸: …… 괜찮으신가요!?

레녹스: 아아, 걱정할 필요 없어. 네로와 마찬가지로 나도 조금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미틸: 레노 씨…….


9화

 

균열에서 흘러나온 산은 멈추지 않고 주변을 갉아먹어 땅 자체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삼켜진 바위나 돌이 얼음처럼 쉽게 녹아내리는 모습은 위에서 보기에도 섬뜩하다.

피가로: 위험하네. 기세를 몰아 지상으로 탈출하려고 하고 있어. 얼른 원흉인 마도구를 없애버리자.

파우스트: 그러고 싶지만 산의 늪이 방해 돼. 마도구를 지키듯 둘러싸고 올거야.

피가로: 막무가내로 봉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네. 조금 얌전하게 해볼까.

파우스트는 뒤로 날고 있는 네로와 레녹스를 돌아보았다.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 산의 늪을 억제할 수 있겠나? 잠깐이면 돼. 레노는 치유가 필요하다면…….

레녹스: 아뇨, 문제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정도 상처라도 안정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어요.

파우스트: ……그랬었지. 미안해.

네로: 요리사에게는 짐이 무거운 일이네. 뭐, 하긴 할거지만.

미틸: 저기……! 레노 씨 대신 저에게 맡겨주시면 안될까요!?

미틸이 피가로 옆으로 뛰어든다.

미틸: 물론 저는 역부족인 걸 알지만, 저를 감싸는 바람에 레노 씨가 다쳤어요. 그러니까…….

레녹스: 미틸…….

루틸: 저도 돕게 해주세요. 저와 미틸이 레노 씨의 몫까지 할게요. 둘이서 힘을 합치면, 분명히 오랫동안 억제할 수 있을 거에요.

네로: ……아니, 안 돼.

짧은 수순 뒤, 피가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네로가 먼저 고개를 흔들었다. 그로서는 두물게 단정짓는 말에 모두가 네로를 돌아본다.

미틸: 네, 네로 씨…….

네로: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물러서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산의 늪을 억제하면서 너희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양치기군이 다친 거 봤잖아. 너희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피가로가 진료소를 없애자고 한 거야.

루틸 / 미틸: …….

레녹스: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예전 거처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진료소를 생각하지 않는 피가로의 태도에는 나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합리성의 저울 한쪽에는 모두의 안전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제가 후회를 머금고 빗자루를 움켜쥔다. 피가로가 그것을 털어버리듯 밝고 상냥한 목소리를 던졌다.

피가로: 지금은 달라.

피가로: 모두가 남기려고 해 준 진료소를 나 자신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건 미틸이나 루틸, 레녹스가 날 말려준 덕분이야. 추억이 담긴 진료소는 남기고 모두 함께 협력해 산의 늪을 다시 봉인한다. 레노의 부상은 나중에 내가 고쳐줄게.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너희들이 제안해 준거야.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 그렇지, 현자님.

피가로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표정은 어딘가 맑게 개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리에서 보답받은 것 같은 기쁜 마음이 복받쳐서, 나도 웃으며 대답을 했다.

……! 부탁해요, 피가로.

파우스트: 좋아. 그러면 루틸과 미틸은 뒤쪽으로.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현자를 보호해라.

히스클리프: 네.

시노: 가자, 미틸.

미틸: ……. 레노 씨, 피가로 선생님. 조심해요!

루틸: 모두,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형제를 재촉하면서, 시노와 히스클리프의 빗자루가 산의 늪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멍을 떠나 상승한다. 손을 들어 배웅한 피가로가 남은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피가로: 그러면 시작해볼까. 레녹스, 네로.

피가로의 눈짓으로 두 사람이 마도구를 꺼낸다.

네로: 간다.

레녹스: 아아.

네로: '아도노디스 오므니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두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투명한 막으로 땅 전체가 덮였다. 강하게 짓눌러 뿜어져 나왔단 산의 늪이 중심을 잃는다.

시노: 좋아!

히스클리프: 산의 늪이 막혔어……!

직후, 검은 안애게 싸인 작은 상자가 격렬하게 빛난다. 짓눌린 땅이 항거하듯 흔들리기 시작한다.

레녹스: ……!

네로: …………!

두 사람이 동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어떻게든 억제하고 있지만, 산의 늪의 저항은 꽤 격렬한 것 같다.

네로: ……이걸로 힘은 다 쓰겠네. 그쪽은 팔로우 못 해줘.

피가로: 내가 주물 주변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게. 정화는 그쪽의 팔로우에게 맡기지.

파우스트: 뭐가 팔로우냐.

피가로: 신뢰하고 있어.

피가로: '폿시데오'

주물을 에워싸던 검은 안개가 날리듯 금세 사라진다. 사기를 벗긴 마도구는 허공에 뜬 채 떨더니 괴로운 듯 헐떡거렸다. 간격을 두지 않고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드'

그러자, 하얀 사슬 같은 것이 나타나 마도구를 휘감았다. 쇠사슬은 마도구를 꽉꽉 조여 비명이 더욱 커진다. 원성의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며 피가로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피가로: 돌이 된 뒤에 이렇게 집착만 남아있다니, 네가 부럽네. 뭔가를 생각하고, 아끼고, 포기하고, 나쁘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나는 앞으로도 만날 수 있는 걸까.

파우스트: 뭘 투덜대고 있어. 마무리다. 그쪽도 역할을 해.

피가로: 알고 있어.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피가로: '폿시데오'

튕기는 듯한 빛 속에 돌이 부서졌다. 동시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바람이 밑에서 불어 올라온다.

……윽…….

잠깐 보이는 것은, 오브를 손에 들고 미친 듯한 바람의 중심에 떠오르는 피가로의 모습.

……?

다음 순간에는 산의 늪도, 불길한 마도구도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라…….

미틸: 구멍이 없어지고 있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바위산 풍경이 눈 아래 펼쳐져 있었다.

루틸: 이건…….

시노: 잘 모르겠지만, 잘 된건가.

파우스트: 아아, 끝났어.

피가로: 이제 괜찮아. 마도구는 정화되었고, 산의 늪은 다시 한 번 땅바닥으로 돌아가게 했어.

히스클리프: 다행이다…….

네로: 이런이런, 한시름 놓았네.

미틸: ……저기, 피가로 선생님. 아까 그 마법, 피가로 선생님이 하신 건가요?

루틸: 뭐랄까, 어마어마한 걸 본 것 같았는데…….

피가로: ……그럴 리가! 파우스트에게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은 거야. 그래야만 주물과 산의 늪을 동시에 봉할 수 있었거든.

파우스트: ……그렇…… …….

루틸: 뭐야, 그랬었군요. 파우스트 씨가 손을 빌려주신 거였네요.

미틸: 피가로 선생님은 대단한 마법사인건가 하고 생각해 버렸어요.

피가로: 아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피가로 선생님은 그저 상냥한 의사 선생님인 마법사니까. 그렇지, 레노.

레녹스: 그렇네요. 하지만 선생님 덕분에 이변은 수습되었습니다.

미틸: 이제 이것으로 진료소를 없애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피가로: 응. 지금까지처럼 그 자리에서 진료소를 계속할 수 있어. 너희들 덕분이야. 고마워.

 

미틸 / 루틸: 아싸!

빗자루 위가 아니었다면 미틸과 루틸은 분명 펄쩍 뛰며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손뼉을 치고 성공을 축하했다. 그 쾌활한 소리에 섞여 시노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시노: ……배고파.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훗.

루틸: 아하하!

네로: 확실히, 계속 아무것도 안 먹었었지.

미틸: 듣고 나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피가로: 좋아, 굶어 죽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자.

산 너머로 바람이 불어와 기분 좋은 피로감을 쓰다듬어 간다. 황혼을 쫓아가듯 마법사들은 그 장소를 떠났다.











진료소로 돌아온 후, 이변이 해결된 것을 축하하며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옹기종기 모인 진료소의 테이블에는 솜씨를 발휘해 준 네로의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줄지어 나온다.

미틸 / 루틸: 와, 맛있어 보여!

레녹스: 진수성찬이네.

네로, 고마워요.

네로: 밥을 굶고 일했으니 배고프지. 간편한 거밖에 없지만, 잔뜩 먹어 줘.

시노: 더 줘.

네로: 빠르잖아!?

시노: 오늘 하루종일 배고픈 채로 있었으니까. 접시에 담는 것보다 빠르게 내 입에 담았으면 좋겠어.

파우스트: 새냐……?

히스클리프: 갑자기 입에 넣으면 데이잖아.

피가로: 하하, 젊은이의 위장은 믿음직하네.

남쪽의 마법사도 동쪽의 마법사도 이변을 해결했다는 안도감에 싸여 파티는 훈훈한 분위기였다. 크기도 모양도 맞지 않는 조각난 잔을 들고 다들 스스럼없이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미틸: 형님, 이거 기억나세요? 선생님이 챙겨두신거에요.

루틸: 어라, 그립네!

시노: 뭐야?


10화

 

히스클리프: 아, 스케치북이네.

루틸: 응. 우리가 어렸을 때 여기서 자주 그림을 그렸었거든.

미틸: 여러 가지를 둘이서 그렸었어요. 산이라던가, 호수라던가. 물고기, 나비, 물론 피가로 선생님이나 레노 씨의 그림도.

시노: 헤에, 물고기가 이건가?

루틸: 아니! 그건 피가로 선생님을 그린거야.

히스클리프: 에? 그러면 이건? 피가로 선생님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루틸: 그건 꽃이 춤을 추고 있는 그림!

시노 / 히스클리프: ……?

미틸: 형님은 본 걸 그대로 그리지 않거든요. 마음에 드는 대로 그림을 그리니까 조금 개성이 없어지지만…… 어떻게 아는지 피가로 선생님이나 레노 씨는 가끔 맞추세요.

시노: 그런거였나. 특이하네.

미틸: 아하하, 오래 같이 있다 보면 알지도 모르겠네.

피가로: 약은 발랐고 치유의 마법도 걸어놨으니 문제 없겠지. 통증은 이제 안 느껴져?

레녹스: 네. 감사합니다.

피가로: 그 산은 강력해.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고통스러웠겠지.

레녹스: 그래서 더욱 다행이었습니다. 미틸이 그걸 받지 않아서.

피가로: 아아, 감사하고 있어. ……오늘은 레노의 고집 덕분에 살았어. 저 아이들도 울리지 않고 끝났고.

레녹스: 저야말로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평생 후회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의 심려를 헤아리지 못하고 행동을 해서 죄송합니다.

피가로: 그만해. 또 비슷한 일이 있을 때는 오늘처럼 나쁘게 타일러줘. 앞으로도 싸워나가자. 될 수 있는 한 하트풀로.

……괜찮아 보이네요.

파우스트: 아아.

네로: 그래보이네.

레녹스의 부상과 둘의 화해. 양쪽이 궁금했던 우리들은 서로 눈짓을 하며 안심했다. 네로도 파우스트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과실주를 쭉 들이마신다. 동쪽의 마법사는 근심이 많고 마음씨가 착하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서포트를 와주셔서 정말 살았어요.

파우스트: 뭐, 마침 일손이 비어 있었으니까.

네로: 어떻게든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야. 병석에서 일어난 미틸도 괜찮았던 것 같고. 아…… 그러고보니 분위기 안 좋을 때 선생님만 두고 나와서 미안했어.

파우스트: 정말이지…… 갑자기 남겨진 내 입장도 생각하라고.

(확실히 미안한 짓을 했을지도……)

피가로: 누가 뭐라고?

네로: 우왓.

파우스트: 갑자기 등 뒤에 서지 마.

피가로, 레녹스. 치료 수고하셨어요. 괜찮다면 여기 앉으세요.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그러면 사양 않고 현자님 옆에 앉을까나. 그래서,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에, 에…… 그러니까…… 동쪽의 마법사가 따라와 줘서 다행이다——라고……..

레녹스: 확실히 그렇네요. 동쪽 마법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이변을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피가로: 뻣뻣하네——.

레녹스: 그런가요……?

네로: 뻣뻣해 뻣뻣해. 식전 연설이 아니니까.

피가로: 같은 현자의 마법사니까. 모두 고마워, 또 잘 부탁해! 정도로 괜찮지 않아?

파우스트: 그것도 어떨까 싶은데…….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님과…… 모두의 소중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도와주셔서. 조금 의외였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파우스트 님도 피가로 님과 같은 생각을 하실 줄 알았거든요.

에? 그런가요?

파우스트: 확실히 나도 내 거처라면 매개로 담는 방법을 택했겠지.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누구의 말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어. 외부인이 참견할 만한 일이 아니야.

네로: 맞아맞아. 남쪽 마법사들끼리 정해줘서 살았어.

모두가 너스레를 떨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볼과 옷에 진흙을 묻히고, 땀에 묻은 머리도 그대로였지만 어깨에 힘이 풀리는 모습에서는 출발 전의 가시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조금 상상을 했다. 사람들과 섞여 개척에 도움을 주면서 이 풍경을 키워온 피가로의 모습을.

(……지키고 싶은 건, 분명 똑같았겠지.)

지금까지 피가로가 저렇게 남쪽 나라를 계속 지켜온걸까. 모두를 위해서, 조금씩 뭔가를 잘라내고. 그것이 때때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미틸: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피가로 / 레녹스: 응?

미틸: 형님의 옛날 스케치북을 보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이 그림이래요. 뭘 그렸는지 아시겠나요? 현자님도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미틸은 스케치북을 우리에게 보이게 내걸었다. 지면 중앙에 선명하고 참신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이건…….

네로: ……뭐야? 구부러진 야채……?

파우스트: 마법생물 아닌가?

피가로 / 레녹스: ……낮잠 자는 개?

루틸: 정답이에요!

시노 / 히스클리프: 진짜 맞췄다……!?

둘 다 잘도 알아봤네요!?

네로: 어떻게 안 거야?

레녹스: 옛날에 이 근처에 외출한 개와 미틸과 루틸이 자주 놀았던 것 같아서…….

피가로: 맞아맞아. 그리고 뭐, 감으로 맞췄으려나?

시노: 그러면 이것도 알아?

히스클리프: 이 그림도?

그대로 테이블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다 같이 그림 맞히기가 시작되었다. 그중 미틸의 스케치북과 추억거리도 진열되어 옛날이야기에 꽃이 핀다.

 

피가로: 현자님, 유리잔 비었어. 나랑 같은 주스라도 괜찮아?

네, 부탁드릴게요. ……어라? 피가로, 술이 아니네요.

피가로: 응. 오늘 밤은 안 취해도 될까 해서.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많은 목소리가 들썩이는 가운데 피가로는 계속 기뻐하는 것 같았다. 진료소가 지켜져서 안심하고 있는 것은 분명 미틸들 뿐만이 아니야. 그에게도 이곳은 날개를 쉬게 하는 큰 나뭇가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장소가 없어지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야…….)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고 즐거운 밤이 깊어져간다. 시노의 요청에 응한 네로가 식후 디저트를 오븐에서 내놓아, 파티는 아직 지금부터가 될 때.

네로: 자, 레몬파이 구워왔어. ……어라.

미틸 / 루틸: ………….

시노 / 히스클리프: …….

레몬파이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던 네 사람은 어느새 잠에 빠져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평화로운 숨소리를 내고 있다.

피가로: 결국 잠들었나.

레녹스: 오늘 하루의 피로가 풀린거겠죠.

파우스트: 한나절 가까이 구덩이를 팠어. 무리도 아니야.

무슨 꿈을 꾸고 있는걸까. 네 명의 자는 얼굴은 갓 태어난 것처럼 편안하다.

네로: 하지만 이 녀석들, 사이 좋네. 전부 똑같이 자고 있어.

아하하, 일어나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요.

파우스트: 왜 안 깨워졌냐고 분개하는 애는 있겠지.

피가로: 잠든 아이는 어쩔 수 없네. 더 놀고 싶었는데.

네로: 심지어 오늘 갓 구운 레몬파이도 못 먹었고.

레녹스: 미틸은 아쉬워할 거고, 시노는 분해하겠지.

숨소리 네 개가 음악처럼 들린다. 그것이 끊기지 않게 어른들은 신중하게 소리를 죽여 웃음을 터뜨린다.

또 하나, 새로운 추억이 생겼네요.

네로: 확실히 오늘의 일은 못 잊겠네.

파우스트: 이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 할때까지 지켜냈어.

레녹스: 네. 이곳은 이제, 저희 남쪽 마법사 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소중한 장소입니다.

피가로: ……응, 그렇네.

밤의 시간이 느긋하게 내일로 흘러간다. 언젠가 오늘을 웃으면서 돌아볼 날이 올지도 몰라. 그때는 나도 보물을 하나씩 보여주듯이 얘기하여 들려주고 싶다.

소중한 보물이, 소중한 누군가의 새로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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