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서가 마음을 앓은 왕비님에게 버림 받은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서: 어째서 어머님은 마음이 아프셨지? 어째서 나는 축복받지 못한거지?
사제장 체리오: ……그것은…….
아서: 이런 일은 그만두자. 나는 더 이상 나 같은 아이나 어머니 같은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아. 우리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거야. 같은 문제에 함께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들어주지 않겠나.
사제장 체리오: ………보검 칼레토브루프는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역시 아서도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내는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속에서, 쓰윽 자그마한 그림자가 일어난다. 리케였다.
리케: 저도 발언해도 괜찮을까요?
아서: ……아아, 물론이다.
리케: 현자의 마법사 리케입니다. 신의 사도로서 신도를 이끌어 왔습니다. 당신들은……
당당하고 장엄한 눈빛으로 리케가 쏘아붙였다.
리케: 마음이 썩었습니다.
성의 사람: 뭐…….
장내가 술렁거렸다. 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카인은 약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리케: 하지만 안심해 주세요. 당신들이 어리석고 더럽혀져 있어도, 제가 바른 곳으로 이끌어 드릴테니.
사제장 체리오: 무례한! 성직자인 나를 향해 더럽혀졌다고!?
리케: 네.
사제장 체리오: 네, 가 아니야! 나쁜 마법사 같으니……! 우리들을 동요시켜 보검을 훔칠 작정이군!?
리케: 무슨……. 제가 나쁜 마법사라고요!? 너무해! 용서 못해요!
아서: 리, 리케. 진정해.
리케: 당신 같은 짓궃은 사람에게 구원은 오지 않는다구요!?
사제장 체리오: 들었나, 모두들! 마법사가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나를 저주했다!
리케: 저주하지 않았어요! 루틸에게 배웠어요! 말에는 축복과 저주가 있고…….
사제장 체리오: 마법사는 언제나 말 한마디로 우리를 저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법사에게 보검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아서: 체리오도 진정해! 우리 나라의 성직자라면 사람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말은 그만 둬.
체리오 씨는 불만스러운 듯 입을 다물었다. 리케는 분한 듯 눈물을 참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다. 숨을 내쉬며 아서가 말했다.
아서: ……휴식하기로 하자. 이어서는 오후부터 하기로 하지.
리케: ……훌쩍……. 죄송합니다, 아서 님……. 저 때문에 회의를 망쳐서…….
아서의 가슴에 매달려 리케는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서가 미소 짓는다.
아서: 리케의 탓이 아니야.
리케: 그렇죠……. 마음이 썩고 못난 그 노인 때문에…….
카인: 나도 화가 났어…….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아버려서 죄송합니다.
아서: 화내는 게 당연해. 소중한 사람이 욕을 먹으면 누구나 상처받아.
눈물을 글썽이며 리케는 아서를 올려다보았다.
리케: 아서 님은 어째서 화를 내지 않는 건가요? 왜 당황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서: 전의 현자님께 배운 것이 있어.
리케: 전의 현자님……?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맑은 푸른 눈동자로 성실한 미소를 짓는다.
아서: 최애의 포교를 하려면 매너가 중요하다고.
(전 현자님…………)
리케: 최애란……?
아서: 경애하는 소중한 사람들이야. 나에게 있어서는 마법서에 있는 동료나 현자님이 그래. 최애의 장점을 모르는 자들에게 너는 어리석다, 틀렸다고 말해도, 나도 내 최애도 미움을 살 뿐이야.
리케: 제가 옳은 말을 했다고 해도요……?
아서는 미소를 지으며 리케의 머리를 살며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서: 나는 이 성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내가 마법사라고 겁을 먹어서 너무 슬펐고 외로웠어. 하지만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짓궃고 차가운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의 상냥한 사람들이었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마법사를 조심해야겠다고 믿고 있던거야. 마법사를 조심하라고 그들에게 가르친 것은…… 그것 또한 그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누군가의 선의 말이지.
아서: 아무도 나쁘지 않아. 어떤 실수에도 사랑은 있고, 어떤 올바름에도 폭력은 있어. 소중한 사람이 알려준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다가갈 수 없어. 그래서 귀를 기울이는 거야. 말에 상처받아서, 괴로워서 잠을 못 이루는 밤도 있어. 하지만 소중한 사람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어떤 힘든 시간도 이겨낼 수 있어.
아서: 모두가 정말 좋으니까. 모두를 좋아해주기 위해서.
아서의 웃는 얼굴에 나는 가슴이 서서히 따뜻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사람들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 슬픈 말이 던져지는 일이 없도록.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돌리기란 마법으로도 어렵다. 하지만, 다가서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심술궃고 매정해 보이던 이 세계도 조금씩 변해갈지도…….
7화
오후의 회의는 할 수 없었다. 무례한 마법사와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체리오 씨가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귀족: 아서 전하……. 저는 전하를 지지합니다. 보검 칼레토브루프는 성에 안치해야 합니다.
아서: 고마워……! 내 편을 들어주다니 매우 든든해.
귀족: ……지금까지 남의 눈이 무서워서 털어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만…… 제 첫 손자는 마법사로 태어났습니다. 천사 같은 귀여운 그 아이가, 축복받아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로 변해갈 수 있을까요?
아서: 변할 수 있어. 반드시.
카인: 맞아. 마법사도 기사가 될 수 있는 나라로.
리케: 그러기 위해 신의 사도로서 노력하겠습니다.
중앙의 마법사들은 희망에 찬 웃음을 주고 받았다.
카인: 자 그럼, 다시 시작이군. 마법서로 돌아가 대책을 생각하자. 아서도 오늘밤은 자고 갈 수 있겠지.
아서: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낮에 회의 시간이 있었던 만큼 다른 일을 못해서.
카인: 그러다가는 몸이 상해. ……에…… 오즈도, 그, 걱정했어.
아서: 카인은 거짓말을 못해. 얼굴에 드러나 있어.
카인: …………말은 안 했지만 분명 걱정은 하고 있을 거야. 무엇보다 내가 걱정인걸.
리케: 아서 님, 리케도 걱정이에요.
아서: 보검 칼레토브루프를 성에 안치했다가 일단락되면 쉴게. 그때는 둘도 같이 놀아줘.
리케: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아서: 아아.
카인: 아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리케: 그렇네요……. 한 번도 중앙 나라의 마법사가 모여서 밥을 먹지 않았으니까요……. 부엌에서 좋은 냄새가 나…… 오늘 저녁밥은 뭘까요……. 배고파……. 아서 님…….
정보가 뒤죽박죽이 됐네요, 리케…….
리케: 그랬었죠……. 보검 칼레토브루프를 생각하지 않으면…….
파우스트: 보검 칼레토브루프?
고개를 들자 파우스트가 있었다. 끌려가는 죄수처럼 시노와 히스에게 양팔이 붙잡혀있다.
무, 무슨 일인가요……?
시노: 계속 틀어박혀 있으니까 가끔은 같이 식사하자고 불렀어.
히스클리프: 현자님은 오늘 그랑벨 성에 가셨죠. 성의 상태는 어땠나요?
리케: 저희의 기념 메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더러워진 사람들이 보검 칼레토브루프를 주지 않아서……. 하지만 최애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대꾸할 수 없었어요…….
히스클리프: 잘 모르겠지만 큰일이었구나…….
시노: 기념 메달은 멋있네. 꼭 갖고 싶어.
카인: 하지만 이 상태로라면 기념 메달 얘기도 깨지겠는걸. 모처럼 시제품도 나왔는데…….
시노: 하? 웃기지마.
파우스트: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사실은…….
아서: ……좋아. 이제 반쯤 됐어. 아침까지는 서류를 다 흝어볼 수 있을 것 같에. ……벌써 일몰이야……. 현자님들, 뭐하고 계실까…….
아서: ……우왓…….
오즈: …….
아서: 오즈 님…….
오즈: 중앙 나라의 왕자여. 죽어가던 너를 주웠을 무렵, 내가 예고한 것을 기억하나.
아서: 에……?
오즈: 어른이 될 때까지 너를 키워 돌로 만들어 먹겠다고 했다.
아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즈: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두려워하지 않지.
아서: 저는 한 번 죽은 몸이기에…… 오즈 님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의 날들은 없습니다. 어린 저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 되어 오즈 님께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오즈: ……너는 정직하고 상냥하다. 그래서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정직하고 선량한 자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직하고 선량한 자는 드물다. 겁이 많고 교활하고 비겁하고 제멋대로인 자가 남도 같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 그것이 이 세상이다. 불신이 만연된 세상에서, 너는 배신을 당할 것이다.
아서: …….
오즈: ……하지만, 너 같은 자에게 구원받는 자도 있다.
아서: 오즈 님…….
오즈: 너를 돌로 만들어 잡아먹겠다고 했다. 그 예정을 바꿀 생각은 없다. 너는 나의 것이다. 나중에 돌로 만들어 먹을 때까지.
아서: ……네.
오즈: 내 것이 되어야 할 돌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본의가 아니다. 마음이 피폐해지면 마력은 깎인다. 언젠가 내 돌이 되겠지만 가치를 지키기 위해 너를 데려가겠다. 거역하지 말고 나를 따라라.
아서: 하지만……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오즈: '복스노크'
아서: ……!? 부, 불태워 버린 건가요!? 중요한 서류인데……!
오즈: 나를 따르면 재로부터 되돌려주지. 아서, 네로에게 들었다. 오늘 밤은 스튜다.
아서: 스튜는 좋아합니다.
오즈: 그렇다면 데려가겠다. 괜찮겠지.
아서: 알겠습니다. 저기, 왜 정색을 할 때마다 무서운 척을 하시는 거죠?
오즈: ……이것이 본래의 나다.
8화
아서: 현자님! 모두들!
리케: 아서 님! 저희와 같이 식사하실 수 있게 된건가요?
아서: 아아! 오즈 님이 마중 나와 주셨어.
오즈: …….
카인: 꽤 하잖아, 오즈! 아서,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봤지?
아서: 그런 의미를 두고 오랫동안 말을 걸어주셨어. 오늘 밤은 스튜라고?
네로: 아아. 시간에 맞춰서 잘 왔네, 왕자 씨.
오즈: 나의 협박보다도 저녁 메뉴에 마음이 움직이더군.
네로: 오, 오. 그건 즉……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노려보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서: 또 으름장을 놓으시고. ……와아, 대단해! 맛있어 보여! 네로, 고마워! 드디어 모두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잘 먹겠습니다!
카인: 그렇네! 잘 먹겠습니다!
리케: 후후…… 네로의 식사를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니, 왠지 꿈만 같은 기분이에요.
오즈: …….
나란히 식사를 하는 중앙 마법사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터졌다. 가까이 있던 동쪽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노가 아서 옆에 걸터앉아 몸을 내민다.
시노: 아서. 보검 칼레토브루프와 기념 메달 얘기를 들었어. 도와줄게.
아서: 시노…….
시노: 나는 내 메달이 꼭 필요해. 히스 것도 사고 싶어. 파우스트나 네로도 하는 김에.
네로: 하는 김이냐.
아서: 기념 메달은 멋있지.
시노: 멋있어.
리케: 멋있었어요! 아, 근데 미틸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할 수 있을 때 깜짝 놀래키고 싶어요.
네로: 기념 메달은 놔두고…… 이야기는 현자 씨들에게 들었어. 나에게 한 가지 방안이 있는데, 들어볼래? 정의감 강한 중앙의 마법사는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리케: 어떤 방법인가요?
네로: 성당에 몰래 들어가서 보검 칼레토브루프를 훔치는 거야.
파우스트 / 리케 / 카인: 훔쳐!?
네로: 당신까지 놀라지 마, 저주꾼. 도둑질이나 저주나 다를 게 없잖아.
파우스트: 그……그런건가? 아니, 도둑질은 법에 어긋나잖아.
네로: 그냥 들어. 보통이면 법에 어긋나지. 하지만 여기에는 권력자가 있다구. 왕자 씨가 살아있는 법전이잖아. 말투를 바꾸면 돼. 도둑질이 아니라 특수 임무야.
카인: 특수 임무……. 밀정이라던가 스파이 같은 거구나.
네로: 그렇지? 그럴싸해졌지?
아서: 하지만 그래서는 성 파우스트 성당의 사제장과는 신뢰를 쌓을 수 없어.
파우스트: ……신뢰를 쌓기 전에 보검 칼레토브루프가 매개체가 되어 도시가 멸망할거야. 마법사와 인간은 신뢰를 쌓을 수 없어. 포기하고 권력을 행사하는게 어때.
아서: …….
카인: 보검을 훔쳐내지 않더라도 일단 조사를 하러 가는 게 어때? 미심쩍은 그림자가 서성이고 있다는데.
시노: 그 녀석들이 노바 같은 수수께끼의 마법사의 앞잡이라면 큰일이야.
아서: ……그렇네…….
아서는 생각에 잠긴 끝에 중앙의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아서: 조사 뿐이라면…… 나도 보검과 성당의 상태를 보고 싶어.
네로: 정해졌네. 그럼 식사 먼저 하자. 나중에 우리도 작전 회의에 참여할게.
아서: 아…… 기다려줘. 마지막 하나만. 파우스트.
파우스트: ……뭐야.
아서: 당신은 성스러운 마법사 파우스트와 같은 이름이다. 사람을 잘못 봤다고는 하지만, 만약 당신이 파우스트 님이라면…… 알렉 님과는 우호관계는 전승대로가 아닌 것 처럼 느껴져.
파우스트: …….
아서: 보검 칼레토브루프가 있는 성 파우스트 성당에 침입하는 일을, 당신에게 도움을 받아도 되는걸까?
파우스트: 상관없어. 사람 잘못 본거니까.
파우스트는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기묘한 상처 때문에 꿈이 쏟아져 나오는 일만 없었다면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서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가 그리워 보였다.
파우스트: 보검 캍레토브루프는 알렉이라는 자가 손에 쥐기 전부터 용자의 검이라 불리는 불가사의한 검이었다. 옛날에 누군가에게 그렇게 들었어. 저 검이 매개가 되는 일이 있다면 금지된 마법도 성립될 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게 나아, 아서.
아서: ……알았어. 협조해 줘서 고마워.
성당에 잠입하기 위한 의상을 입고 우리는 성 파우스트 성당을 찾아갔다. 변방의 땅 위에 자리잡은 큰 건물은 동네에 있는 성이나 저택과 달리, 역사와 품격이 느껴졌다. 중앙 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아껴왔음을 알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말없이 성당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시노가 묻는다.
시노: 너와 같은 이름의 성당이다. 와본 적 있어?
파우스트: 아니.
파우스트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로: 내가 먼저 숨어들어가서 형세를 살핀 다음에 너희들을 부르러 올게. 준비된 대로 대기해줘.
카인: 정면 돌파가 아니라 잠입 같은건 처음인걸!
아서: 뭐랄까 두근두근거리네.
리케: 도둑이 된 것 같아요.
중앙의 젊은 마법사들은 첫 경험에 당황하면서도 어딘가 설레이는 것처럼 보였다. 모험심이 강한 그들다웠다. 그들의 인내심도 좋지만 모험에 도전하는 그들이 제일 좋다. 제일 살아있는 것 같아서.
카인: 지붕으로 숨어들까?
아서: 마루 밑은 어때?
리케: 동료들끼리의 신호를 정하지 않겠나요?
오즈: …….
네로: 쉬잇…… 목소리가 커. 정말이지, 신났네 신났어. 내가 안내한다고 했잖아.
네로: 그럼, 다녀올게.
리케: 네! 네로, 조심해요.
리케의 웃는 얼굴의 배웅을 받으며 네로는 홀가분하게 담을 뛰어넘어 사라져갔다. 그의 등을 배웅하던 파우스트가 숨을 돌리고 나서 오즈를 바라본다.
파우스트: 참견할 기색이 없는 것 같은데, 이대로 네로에게 맡겨도 되는 건가, 오즈.
오즈: 어째서 묻는거지.
파우스트: 당신이 가장 강한 마법사다.
오즈: '거대한 재앙' 의 저주가 있다. 지금의 나는 강한 마법은 사용할 수 없어. 밤 동안에는 도움이 안 돼.
오즈의 목소리는 밤에 잠겼다. 고개를 숙인 그의 표정은 긴 머리에 가려져 잘 모르겠다. 마왕이라고 불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쓸모없다고 자칭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러자 카인이 손을 들어 선뜻 오즈의 등을 쳤다. 오즈와 파우스트가 제정신을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동시에 젊은 전직 기사단장을 응시한다. 카인은 상큼하게 웃으며 매력적인 몸짓으로 한쪽 눈을 감아보았다.
카인: 침울해 하지마. 인생,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지.
오즈: …….
파우스트: 너…… 너의 몇 배 더 살아있는 남자에게 어드바이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카인: 몇천 년을 살아도 밤에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잖아. 오늘 밤의 당신은 병기가 아니야. 약간 신참 기사 같은 거지. 괜찮아. 난 신인 교육을 잘했거든. 우리 같이 헤쳐나가자.
카인이 한 손을 오즈의 앞으로 내민다. 오즈는 미심쩍은 듯 눈썹을 찡그렸다.
오즈: 무슨 속셈이지. 지금은 내 모습이 보일 터.
카인: 무슨 속셈이냐고? 무정한 소리 하지 마. 알면서. ……자!
오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체념한 듯 카인과 손뼉을 친다.
카인: 좋아! 가자!
카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아서와 리케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다.
아서: 오즈 님은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옆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요!
리케: 함께 힘내죠, 오즈! 저희라면 분명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요!
오즈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위험한 임무의 전이라고 하는데 오늘 밤 뭔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새로운 영웅들의 이야기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아서와 카인, 리케들이 진지하게 작전을 짜면서 순진한 얼굴로 웃는다.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오즈가 파우스트에게 귀띔했다.
오즈: ……파우스트.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서를 부탁한다.
파우스트: ……기억해두지.
잠시 후 네로가 돌아왔다. 그가 찾아준 침입로에서 짠 자리로 향한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성당 북쪽으로, 중앙의 마법사들은 남쪽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중앙의 마법사와 함께였다.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발을 들여놓는다. 성당 안은 조용했고, 긴장감은 고조됐다. 순찰자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덜컥 심장이 뛰었다. 목소리를 낮추면서 아서가 내 손을 잡아당긴다.
아서: ……현자님, 이쪽으로.
그때,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 ……아……님…….
처음에는 카인이 아서를 부른 줄 알았다. 목소리가 비슷했던 것은 아니지만, 친애를 품은 듯한 울림이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뭔가를 기대하고 신뢰하며, 상대에게 달려드는 듯한 애정의 목소리.
???: ……아……님…….
아서에게도 들린 것 같았다. 입을 다물고 귀를 주의 깊게 기울이고 있다. 그때…… 로브를 쓴 사람의 그림자가 홀연히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열에 들뜬 듯한 환희의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의 몸을 뚫고 나간다.
???: ……알렉 님……!
9화
히스클리프: ……밤의 성당은 왠지 무섭네…….
시노: ……어이, 지금 뭐가…….
히스클리프: 에……?
시노: 와!
히스클리프: 꺄악……! 바보바보! 목소리 나와버렸잖아!
시노: 아하하, 그 표정.
히스클리프: ……윽, 이 녀석…….
네로: 저기 도련님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응?
히스클리프: 그, 그만해. 네로까지…….
???: ……아……님…….
히스클리프: …………!
???: ……알렉 님……!
파우스트: …………너희들…….
카인: 뭐야, 이 녀석들……!? 노바라는 마법사의 졸개인가!?
오즈: ……아니, 사령이다. 하지만…….
카인: 하지만, 뭐야!?
오즈: 모두 마법사의 사령이다. 보검을 찾아 헤매고 있어.
카인: 보검을!? 무엇을 위해!?
사제: 누구냐!? 거기서 뭘 하고 있어!?
……성당의 사람이……!
리케: ……아서 님. 여기는 제가. 먼저 보검을 확보해 주세요.
아서: 하지만…….
리케: 괜찮아요! 빨리! 여기는 저에게 맡겨…….
사제: 속임수인가……!? 어린애인 척해도 용서하지 않겠다! 정체를 파헤져 모두 함께 성불시켜버리겠어!
리케: ……저와 카인에게 맡겨주세요!
카인: 알았어! 같이 있어줄게! 오즈, 아서 님과 현자님을 부탁해!
오즈: 아아.
아서: 가죠, 현자님!
사제: ……윽, 이 자들을 혼내주고 저 자들을 쫓아가야겠어! 이 인원이 있으면 지지 않아!
사제: 알겠습니다!
카인: 그렇게 쉽게 갈 수 있을까. 나도 성직자에게 손을 들고 싶지는 않아. 말없이 비켜주면 고마울텐데.
사제: 뭐라고……!? 이 남자, 어디서 본 적이…….
사제장 체리오: 가만히 있어라.
사제: 사제장님……!
카인: ……체리오 사제장…….
사제장 체리오: 너희들…… 그랑벨 성에서 만났었지. 전 기사단장과 교단에서 자란 마법사군. 성당에 잠입하다니, 이 무슨……!
리케: 확실히 저희가 한 짓은 옳지 못한 짓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저희를 몰아붙인 것은…… 당신의 죄입니다! 체리오 사제장!
사제장 체리오: 뭐…….
리케: 하지만, 용서합니다!
사제장 체리오: …………!?
리케: 저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신의 사도이기 때문에, 당신도 성 파우스트 성당의 사제장이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저희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카인: ……대단한 이치네…….
사제장 체리오: 궤…… 궤변을 토하지 마라!
리케: 궤변은 어느 쪽인가요!? 성스러운 마법사 파우스트 님은 남을 위해 헌신을 다한 마법사. 저희도 같은 사람을 돕는 마법사입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자애를 모르는 건 당신의 눈이 아욕에 젖어있기 때문. 보검 칼레트브루프를 가진 성 파우스트 성당이라는 명예에 눈이 멀어서 그런 게 아닙니까!
사제장 체리오: ……바…… 바보같은……! 나는 보검과 성당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리케: 그 결과, 망령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난무하고 있어! 어리석고 명예를 고집하며 남을 믿는 마음을 가지 못한 탓에 망령에게 보검을 빼앗기려 하고 있습니다!
사제장 체리오: ……나……나는…….
리케: 하지만, 용서합니다.
사제장 체리오: ………….
리케: 체리오 사제장, 명예에 보물의 유무는 관계 없습니다. 마음의 본연의 자세가 전부일 뿐…….
리케: 당신과 보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망령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아서 님께 보검을 맡기세요. 그렇지 않으면 대참사를 일으킨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겁니다.
사제장 체리오: ………….
나와 아서, 오즈는 함께 보검 칼레트브루프가 놓여 있는 본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달리는 동안에도 날아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앞질러 간다.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어딘가를 한마음으로 향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에게서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전해졌다.
얼마 안 남았어. 얼마 안 남았어. 이 사람을 따라가면. 마법사로 태어난 나도 보답받을거야. 새 시대가 올거야.
오즈: ……'거대한 재앙' 의 영향으로 건국시대 마법사들의 사념이 실체화되고 있는 것 같군.
마법사들의 사념……?
아서: 현자님! 이쪽이 본당입니다!
파우스트: '사티르크나도 무르크리도'
우리가 당도하니 검은 그림자에 둘러싸인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중이었다. 오른팔에는 장검이 들려져 있다. 오랜 역사와 신비스러운 위엄을 발하는 칼집에 꽃힌 칼이었다. 눈을 내리깐 파우스트가 검은 그림자들을 향해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파우스트: ……이제 없어. 여기에.
그 순간,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검은 그림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당신과 있으면, 당신이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미래를 가르는 불가사의의 검이 있다면 저희는 보답 받을 수 있습니까? 당신을 믿어도 됩니까?
히스클리프: ……뭐야, 이 목소리…….
시노: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조심해!
네로: 파우스트, 보검을 놔!
그때, 조용한 목소리로 아서가 고했다.
아서: 세계는 바뀔 수 있어.
파우스트가 눈을 부릅뜬다. 검은 그림자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아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람도 마법사도 손을 잡으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은 반드시 올거야. 너희들이 싸워준 덕분에 지금의 미래가 있어. 고마워.
검은 그림자들이 아서를 돌아본다. 차층 그 그림자는 뚜렷한 형상을 나타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우스트가 조용히 다가가 보검을 아서에게 넘긴다.
파우스트: ……보검을 약하게 해서, 주문을.
아서: 알았어.
아서는 보검을 내걸었다. 신기한 빛을 뿜어내며 보검이 반짝이고 있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눈부신 빛 속에서, 천천히 검은 사람의 그림자들은 투명해져 사라져 갔다.
10화
파우스트는 말없이 사라져가는 검은 그림자와 보검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등을 돌리면서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는 무언가를 억지로 끊으려고 하듯이.
파우스트: ……이런이런. 소란스러운 보검이군.
검을 치켜드는 아서의 뒷모습을 리케와 체리오 씨도 지켜보고 있었다. 숨을 삼키며 광경을 주시하고 있다. 아서가 검을 거두자 체리오 씨가 앞으로 나서 아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놀란 얼굴로 아서가 그를 바라본다.
아서: 사제장…….
사제장 체리오: 면목 없습니다, 아서 전하. 전하의 조언을 듣지 않는 바람에 보검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제 무례함은 사죄해서 용서받을 일이 못됩니다만, 보검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 이 소년의 말처럼 저는 보검보다 보검을 지키는 명예를 우선시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힘없이 등을 떠는 그를 아서는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서: 당신이 있었기에 수십 년 동안 보검은 지켜졌어. 고마워.
사제장 체리오: 아서 전하…….
아서: 보검 칼레트브루프를 그랑벨 성으로 옮겨도 괜찮을까?
사제장 체리오: 물론입니다……. 부디, 전하의 뜻대로.
아서는 무릎을 꿇고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체리오 씨의 등을 어루어만졌다. 눈썹을 수그리고 친근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체리오 씨의 손자 같았다.
아서: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멀리 가버리는 것은 쓸쓸할 거야. 미안하네, 옆에 두게 하지 못해서.
사제장 체리오: 전하…….
아서: 소중히 맡을게. 보검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너의 조언을 받고 싶어.
체리오 씨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돈다. 전에 아서가 했던 말이 이런 거였어.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 상대의 소중한 것을 이해하는 것, 상대방이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 상대를 소홀히 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져 귀를 기울여 다가가는 것으로 이어가지는 끈이 있을테니까. 그렇게 해서 연결된 것이겠지. 마왕이라고 불린 고독한 오즈와도.
카인: 아서! 해결돼서 다행이네!
리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아서 님!
아서: 모두의 덕분이야. 카인도 리케도 고마워. 파우스트나 동쪽의 마법사들도!
시노: 기념 메달은 나올 수 있나?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역시 대단하세요!
떠들썩하게 모이는 마법사들을 오즈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눈치챈 리케가 오즈의 곁으로 달려가 그를 꾸짖듯 올려다본다.
리케: 오즈. 아무것도 이루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었잖아요.
오즈: …….
말을 찾는듯 오즈가 입을 다문다. 그러자 리케는 천사 같은 웃는 얼굴로 오즈의 팔을 끌었다.
리케: 제가 바른 길로 이끌어드릴게요.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리케는 억지로 오즈의 팔을 끌어 모두가 있는 곳으로 끌어갔다. 그것은 밝은 등불을 헤매지 않고 비추어 나아가는, 리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서가 눈을 깜빡이며 오즈를 올려다 본다. 카인이 놀리듯이 오즈의 등을 밀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살며시 어색하게. 오즈가 아서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고 작은 미소를 짓는다.
오즈: 잘했다.
아서는 행복하게 웃었다. 그 광경을 보고 체리오 씨도 오즈나 북쪽의 마법사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었을 것이다.
체리오 씨의 도움으로 며칠 후 현자의 마법사들은 정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검 칼레트브루프는 그랑벨 성에 안치되었다. 선택받은 자만이 뽑을 수 있게 마법을 걸은 듯하다. 여간해서는 도둑맞지 않을 것이다. 기념 메달도 무사히 발행되어 지금은 중앙 성의 인기 선물이다. 중앙의 마법사들도 자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리케는 밥을 좋아하니 재밌는 식탁이 될 것 같다.
모두가 친해진 것도, 리케가 열심히 해준 덕분이지…….
리케: 현자님! 현자님, 들어주세요!
그때, 리케의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사랑스러운 눈썹을 치켜올리며 리케가 화를 내고 있다.
리케: 카인이 제 초코를 먹었어요. 안 먹는게 아니라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둔건데!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어요! 행실을 바로잡도록 현자님께서도 말씀해 주세요! ……왜 웃고 계시나요?
후후……. 아뇨, 아서와 오즈는 뭐라고?
리케: 아서 님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고. 근데 두 번째에요! 오즈는 뭔가 소근소근 말했어요!
아하하.
리케: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아껴둔 건데! 맛있는 건 아껴먹고 싶잖아요? 정말이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용서해 줄거예요.
리케: 저는 관대한 신의 사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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