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레녹스: 응급처치에는 익숙해 두는 편이 좋아. 만일의 경우나 우리가 손을 댈 수 없을 때 미틸에게 맡길 수 있도록.
미틸: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알겠습니다. 제가 하게 해주세요!
피가로: 부탁할게. 축 늘어지고 힘들어하는 그를 구해줘. 일단 숨쉬기가 편해지도록 주문을 외워봐.
미틸: 네……!
미틸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미틸: '오르토니크 세아르시스피르쳬!'
미틸이 긴장한 듯 주문을 외우자 옅은 빛이 잎사귀의 정령을 감싼다. 이윽고 잎의 정령은 슬슬 일어났다. 이어서 뚝뚝 울기 시작한다.
미틸: 어라!? 혹시 어디가 아픈건가요?
정령은 슬며시 미틸을 올려다보며 옆으로 떨어져 있던 가느다란 가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나무에 무언가를 써간다.
레녹스: 문자……?
미틸: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억의 조각을 가져가 숨겨버렸어.'
레녹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니야. 루카에게도 소중한 것…….'
피가로: '빨리 루카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숨겼다는 것이 들키면 미움받을지도 몰라…….'
미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고민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렸어.'
잎새의 정령은 미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로: 역시……. 너, 헤르바의 정령이 아니구나.
미틸: 에, 그런가요!?
피가로: 헤르바의 정령이라면 이렇게까지 글자를 조종할 수 없어. 그림책 속 세상이라 하더라도 정령의 성질을 본뜬다면 이치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레녹스: 그러나 이 세계에 그려져 있는 것은 루카가 실제로 본 이상한 생물들이죠. 어째서 정령이 문자를 쓰는 건지…….
피가로: 모든 것이 본 그대로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녀에게도 예술가다운 독창성이 있겠지. 이 생물도 모티브는 헤르바라고 해도 루카의 창작성이 강하게 나오고 있을지도 몰라. 예를 들어 무의식적으로 소망이나 꿈을 반영하거나 비슷한 무언가를 붙이거나 해서 말이야.
미틸: 비슷한 무언가…….
그때, 잎새의 정령의 발 밑으로 녹색 진주가 데굴데굴 굴렀다. 황급히 주우려고 몸을 굽힌 사이 어디에 숨겨뒀는지 정령의 손아귀에서 너덜너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다. 그것은 귀여운 포장지에 싸인 캔디였다.
피가로: 아아, 괜찮아?
레녹스: 정말로 잘 떨어뜨리는구나. 나도 줍는 걸 도와줄게.
정령의 호박색 눈동자가 마법사들을 올려다본다. 그것은 어딘가 투명하고 깨끗한 석양빛을 띠고 있었다.
미틸: 이 아이……. 약간 아슬란 씨와 닮은 것 같아.
피가로: 아슬란? 그도 이렇게 덜렁대나?
미틸: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레녹스: 그러고 보니 미틸은 그를 몇 번 만났었지.
미틸: 네. 전시회장에서 몇 번 인사를 드렸었어요. 눈동자의 색과 분위기가 왠지 닮은 것 같아서…….
피가로: ……아아, 그렇구나.
피가로는 그 진주를 집어들더니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피가로: 네가 이걸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알았어.
레녹스: 숨겨버렸다는 것은 소중하게 여겨서겠지.
피가로: 자, 너의 분실물이야.
피가로는 녹색 진주를 잎의 정령에게 돌려주었다.
피가로: 이렇게 많은 소중한 것들을 밖에 내놓기 힘들었겠지. 몸도 마음도 피폐했을 거야. 그래도 너는 소중한 것을 밖으로 꺼냈어. 그건 어째서지?
정령은 고개를 숙인 채였다. 레녹스가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묻는다.
레녹스: 더 소중한 것을 손에 넣어버렸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그 소중한 것을 떨어뜨릴 수는 없어. 그래서 이 구멍 속을 정리한거고.
레녹스: ……루카의 기억의 조각을 지켜준 거구나. 대신 감사의 말을 하게 해줘. 고마워.
가만히 듣고 있던 잎새의 정령은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을 닦은 작은 손이 있었다.
미틸: 이제 울지 말아주세요. 저희들은…… 당신이 소중한 친구에게 이 기억의 조각을 돌려주고 싶어요.
미틸의 흐린 눈망울을 한참 응시한 뒤 잎새의 정령은 초록빛 진주를 내민다.
미틸: ……괜찮나요?
고개를 끄덕인 잎새의 정령에게서 미틸은 녹색 진주를 소중히 받았다.
피가로: 고마워.
레녹스: 미틸, 잘했어.
미틸: 에헤헤. 네!
피가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미틸의 손 안에 있는 녹색 진주를 살짝 집어 올린다. 그러자 녹색의 진주는 옅게 빛나고 빛이 튀었다.
수도원을 뛰쳐나와 숲에서 인간에게 쫓긴 뒤 루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방황하는 그녀를 데리고 간 청년이 있었던 것이다. 햇빛 이비치는 숲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는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옷차림이 단정한 그녀가 손을 내미는 끝에는 잎새의 정령의 모습이 있었다.
루카: 루카……. 이게 내 이름이야. 록시는 이렇게. 테디는 분명히 이렇게 쓰는거지…….
루카는 새 펜과 종이 뭉치를 들고 어색하게 글씨를 쓰고 있었다. 나뭇잎의 정령은 흥미로운 듯 그것을 ㅇ들여다보며 루카 씨의 손에 재롱을 부리고 있다.
루카: 그 사람이 문자를 알려줬어. 그림에 이야기를 붙여서 그림책을 그려보지 않겠냐면서. 테디도 글을 쓸 수 있다면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 ……아아, 루카. 여기 있었구나.
루카: ……!
거기에 덤불을 헤치고 새로운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빛이 비칠 것 같은 밝은 금색 머리칼이 낮아지른 숲에 비쳐진다. 지금보다 조금 젊은 아슬란의 모습이다.
아슬란: 거기에 친구가 있니?
루카: ……응…….
아슬란: 그렇구나! 미안해.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맛있는 사탕을 선물로 사와서 너를 찾고 있었거든. 하나 먹지 않으래? 우유랑 꿀맛이 나서…… 우왓!?
순간 나무뿌리에 걸려 아슬란이 푹 빠졌다. 그러는 사이 손에 든 사탕 꾸러미가 허공을 날리며 투둑투둑 쏟아진다.
아슬란: 아…….
루카: ……후후.
멍하니 흩어진 캔디를 바라보는 그를 보며 루카가 미소 짓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입가를 가렸다. 하지만 쭈그리고 앉아 시선을 맞춘 아슬란이 수줍게 사탕을 내미는 것을 보고 다시 미소지었다. 그가 떠난 뒤 두 개 받은 사탕을 전령에게 건네며 루카가 중얼거린다.
루카: ……아슬란은 이상한 사람이야. 나를 괴롭히지 않아. 예쁜 그림을 보여주고, 다음에는 동네 아주머니한테도 데려다 준대.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아는 사람…….
루카: 그리고…… 아슬란이랑 테디는 조금 비슷해. 조심스러운데 가끔 덜렁거려. 눈빛도 똑같지. 그날에 봤던 석양 같은 부드럽고 예쁜 색……. 내가 좋아하는 색.
내 손바닥에 마법사들이 찾아온 오색 진주가 모였다.
이것이 루카 씨의 기억의 조각……!
시노: 드디어 다 모인건가!
네. 분홍색 진주를 포함해서 총 6개예요!
빗자루에 올라 계속 뻗어나가는 담쟁이 덩굴을 상공으로 유도하며 견제하고 있는 시노와 아서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조각을 손에 넣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환영이 흘러들어왔다.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에게도. 그건 루카 씨와 환수들의 추억이다. 따뜻하고 애틋한 기억이 담긴 조각들을 소중하게 움켜쥔다.
무르: 현자님!
거기에 정신을 잃은 아슬란 씨를 빗자루에 싣고 있던 무르가 깡충깡충 뛰며 이쪽으로 온다. 빗자루에 발을 걸고 거꾸로 매달려 아슬란 씨를 내 옆에 눕혔다.
아아, 잡았……!
무르: 아슬란, 패스! 저쪽에서 날뛰던 이상한 잎새들이 전부 얌전해졌어. 이쪽도 차분해졌나? 계속 쫓아다녔더니 피곤해졌나봐.
미스라: 하아, 끝이 없네.
내 옆에서 아서들이 다 거두지 못한 담쟁이 덩굴을 치던 미스라가 수정구슬을 들여다본다.
미스라: 어떻게 하나요. 공간의 문으로 모두를 회수할까요?
무르: 손재주가 빨라서 좋네! 그런데 그걸 하면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아? 공간 이동은 상위 마법이고, 미스라는 가뜩이나 마력이 강하니까. 얼마나 이 세계에 간섭하게 될지 모르겠어!
미스라: 별로 그 정도는 상관없지 않나요? 무너지면 무너지는 거고, 공간의 문을 통과하면 되는 거니까요.
무르: 아하하. 전부 모일 때까지 늦지 않으면 좋겠는데!
잠깐만 기다려봐요. 게다가 우선은 기억의 조각을 루카 씨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모인 기억의 조각들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우뚝 솟은 꽃 고치로 달려갔다.
루틸: 현자님……. 다행이다. 무사히 모였군요!
루카 씨를 뒤덮은 꽃의 성장을 마법으로 막아내던 루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루틸: 부탁드려요! 빨리 루카에게 조각을…….
네!
루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조각들을 루카 씨에게 건네려고 할 때…… 갑자기 꽃들이 저항하듯 꿈틀거리더니 먹먹한 기세로 그녀를 덮기 시작한다.
……!?
아서: 현자님!
빗자루를 탄 아서에게 재빨리 손이 끌려 내 몸이 허공에 뜬다.
22화
루틸: 갑자기 꽃의 성장이 빨라졌어……! 안돼. 마법이 따라잡을 수 없어…….
루틸!
루틸을 뿌리치듯 뻗어나온 담쟁이 덩굴을 시노가 걷어내고, 그 틈에 미스라가 루틸을 안고 뛰어내린다. 모두가 무르와 아슬란 씨에게 차례차례 눈길을 건넨다. 그 등 뒤로 뻗은 담쟁이 덩굴과 꽃잎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인근의 샘물은 높게 물결친다. 화원에도 깊은 균열이 갈라지듯 달려간다.
아서: 세계의 변용이 진행되고 있어……. 더 이상 오래 유지 못할 것 같아.
미스라: 그런데 저 우글거리는 거, 징그러운 식물이네요.
시노: 마치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달라붙어. 잡히면 집요해.
무르: 모처럼 모였는데 기억의 조각을 루카로 되돌리는게 그렇게 싫은건가.
그런…….
루틸: 식물들만 그런 게 아니야. 이 세계 전체가 무언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은…….
아서: 윽, 땅의 균열이 여기까지……! 일단 떠나자. 아슬란은 내가!
그러면 그동안 기억의 조각은 제가 지킬게요! 그러니까 빨리 루카 씨에게…….
루틸: 네. 현자님, 같이 가주시겠나요?
물론이에요!
아서: 그럼 엄호하겠습니다. 둘 다 부디 조심하기를!
미스라: 확실히 빗자루는 당신이 가장 빠르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일대를 불태울 거예요.
무르: 덩굴들을 농락하는 달리기라면 아까 너무 많이 해서 득의양양한 걸. 맡겨둬!
시노: 우리가 길을 만들지. 쳐, 루틸!
루틸: 감사합니다 그럼 현자님, 꽉 잡아주세요!
그렇게 말하자 루틸은 빠른 속도로 덩굴과 담쟁이 덩굴 사이로 날아간다. 수정 구슬과 조각들을 안고 나는 루틸의 등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겹겹이 덮치는 덩굴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숨 돌릴 틈도 없는 속도로 피하면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루틸: ……!
순간, 빗자루가 크게 선회했다. 뒤쫓는 덩굴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힘차게 뻗어나온다. 고개를 돌리는 루틸의 뺨을 끝이 살짝 스쳤다. 그의 하얀 피부에 지그시 붉은 선이 달린다.
루틸……! 뺨에 상처가……. 피가 나요!
루틸: 괜찮아! 조금 스쳤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 꽃들은 저희에게 정말로 상처를 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니까!
여러 개의 담쟁이 덩굴을 피하고 드디어 루카 씨의 모습을 포착했다. 뒤쪽에서 쫓아오는 담쟁이 덩굴을 아서들이 눌러주고 있다.
루틸: 최대한 가까이 가겠습니다. 같이 조각을 루카에게 돌려줘요!
알겠습니다!
내가 여섯 개의 진주를 움켜쥔 그때, 루카 씨의 가슴팍에 빛나는 것이 보였다.
주황색의…… 진주?
내 몸을 지탱하는 루틸에게도 같은 것이 보였던 것 같다.
루틸: 현자님! 저 주황색 진주에 조각들을……!
루틸의 신호에 맞춰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여섯 개의 진주를 루카 씨의 가슴팍의 주황색 진주에 포개려고 했을 때, 마치 거절하듯이 주황색의 진주가 옅게 빛나고 빛이 튀었다…….
루카: 얘들아…….! 어디 갔어? 제발 답 좀 해줘! 테디! 키스! 올리버! 샹크, 마르도…….
사랑스러운 친구의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는 그녀의 곁에는 이상한 생물들이 붙어 있었다. 펜을 안고 조심스럽게 루카의 손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며 춤추기도 하며 작은 천둥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을 보여주기도 하고 짹쨱! 하는 색다른 울음소리를 내며 그녀의 눈길을 끌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루카의 눈은 그것을 비추지 않는다. 모습도 목소리도 전부.
루카: 나를 두고, 모두들 어디로 가버린 거야…….
그녀의 어깨에 록시가 나타난다.
루카: ……저기, 록시. 너만은 계속 내 곁에 있어줘. 내 옆에 있어줘. 사라지지 말아줘. 너만은, 부디……. 부탁해…….
흘러들어온 기억이 사라져 간다.
지금 건…….
클로에: 우리에게도 보였어……. 루카의 기억?
브래들리: 게다가 천둥 치는 녀석도 있었어.
레녹스: 잎새의 정령의 모습도 있었어.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히스클리프: 지금의 그녀에게는, 이제……?
오즈: …….
루틸과 나는 경계하면서 루카 씨의 근처로 내려갔다. 상공에서는 다 자란 덩굴이 갈 곳을 잃은 듯 꿈틀거리고 있다.
루카 씨…….
호소해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에 남은 여섯 조각을 꾹꾹 쥐자 그것들이 서로 스치는 마른 소리가 났다.
아서: 현자님. 기억의 조각은…….
조금 늦게 내려온 아서들이 꽃 고치에 싸인 루카 씨를 바라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손바닥의 마법진에서 록시가 힘차게 뛰어나왔다.
록시!
잠들어 있는 루카 씨의 곁을 빙글빙글 날아다닌다.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록시는 루카 씨의 뺨에 기대거나 움직이지 않는 손에 멈추어 펄럭펄럭 날개를 움직인다. 마치 일어나라고 속삭이듯이.
……저기, 록시. 어째서 루카는 깨어나지 않는 거야?
오웬: 그 녀석이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
수정 구슬에서 들린 것은 오웬의 목소리였다. 오웬의 목소리에 반응한 록시는 수정 구슬 주위를 둥둥 날아다닌다.
오웬: 그 아가씨는 눈을 뜨고 싶어 하지 않아. 그림책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던 건 그 녀석 자신이니까. 그렇지, 록시.
록시는 루카 씨의 가슴에 내려앉아 조용히 날개를 접더니 뺨을 비벼댔다. 희미하게 들리던 방울 같은 소리가 높이 울린다. 그 소리가 왠지 우는 소리로도 들려 가슴이 살짝 조여온다.
오웬: 아까의 기억, 너희들한테도 보였지? 그 녀석에게는 이제 이 그림책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은 세계는 보이지 않아. 안 보이는 거야. 특별한 힘이 그 녀석을 버렸으니까.
스노우: ……역시 특수한 감성은 시한부라는 것이군.
화이트: 영원히 보이는 세계가 아니었다고……. 심신의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 딸에게는 가혹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르네.
오웬: 지금 눈에 보이는 건 그 록시라는 녀석 뿐이야. 뭐, 그것도 시간 문제겠지만.
그 말을 들은 록시는 다시 날개를 폈다. 반응도 보이지 않는 루카 씨의 주위를 몇 번이고 날아다니는 록시. 희미한 방울 소리에서 필사적인 것이 전해져 온다.
오웬: 그래서? 너희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그 여자를 깨우자는 거야?
그건…….
(루카 씨 본인이 그림책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동안 흘러들어온 기억을 보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이 세계와 신기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살아올 수 있었다고.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어 당연한 것처럼 붙어 온 아름다운 세계.
(루카 씨가 그리는 그림책은 그녀의 마음의 근거를 형태로 한 둘도 없는 것이야. 하지만…… 만약, 지금 보이고 있는 세계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이 그림책을 완성할 때까지가 그것들과 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비록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고는 해도 이 꿈같은 공간에 마음을 바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마음의 근거는 이상한 세계 뿐인걸까. 그림책 밖의, 우리가 보는 세계에도 그녀의 마음이 끌리는 것은…….)
문득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전시회장에 오는 길에 본 경치.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볂놔하는 붉은색 하늘의 농도와 기분 좋은 바람에 왠지 울고 싶어졌다. 잊고 싶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떤, 그 경치.
……너무 예뻤어요.
루틸: ……현자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제대로 정리가 안됐는데 내 입에서 말이 쏟아진다. 얼굴을 마주한 루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분명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었는데, 잊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생각한 것이 있어요. 그만큼 흔하고 소중한 것들이 이 세계에는 잔뜩 있으니까…….
시노: 어이……. 무슨 뜻이야.
시노의 목소리도, 주변의 당혹감도 전해졌지만 쏟아지는 말은 멈추지 않았다.
소중한 것이나 소중한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곁에서 없어진다고 느낀다면…… 너무 무섭고 슬퍼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분명 방에 틀어박혀 버리겠죠. 이불 속에 숨어서 가만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것 같아요. 몇 시간이나……. 아니, 어쩌면 며칠이나.
하지만 언젠가 그 이불에서 나와서 커튼을 칠 거예요. 그건 분명 우연한 때일 거예요. 배고파서 그럴 수도 있고, 그냥 변덕으로 그럴 수도 있고. 창문 너머에는…… 푸른 하늘이 있으려나. 어쩌면 보름달일 수도 있어요.
23화
루틸: ……어쩌면 달이 없는 밤이라고 해도 별만 예쁘게 보일 수도 있어요. 누이 내리고 있어도, 잔뜩 내리는 비도, 퐁풍우가 몰아치는 해질녘도 좋아요.
……네.
루틸의 눈빛에 등을 떠밀리듯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커튼을 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경치예요.
분명 지리멸렬한 이야기였는데 그 누구도 나의 말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루카 씨.
도자기 같은 루카 씨의 하얀 뺨에 록시의 무지개빛 비늘 가루가 비쳐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에 그려온 세계와는 별개로 루카 씨의 마음을 강하게 간지럽힐 만한 경치나 사건은 없었나요? 만약 이대로 그림책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면, 이제그런 경치나 사건과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려요. 그것은 조금 아깝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무심코 뻗은 나의 손가락 끝이 루카 씨의 뺨에 닿았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담쟁이 덩굴이 물결치듯 움직였고, 꽃 고치가 루카 씨를 단숨에 삼키려고 했다.
루틸: 현자님……!
나를 감싸며 자세를 흐트러뜨린 루틸에게 담쟁이 덩굴이 덤벼든다.
미스라: '아르시무'
그때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미스라의 마법이 날아갔다. 순간 공기가 팽팽해진다. 긴장감이 등줄기를 뚫고, 이어서 큰 땅 울림이 났다.
……!?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세계가 흔들리고 기울어지며 땅이 갈라진다. 마법사들은 순간 빗자루에 올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도 루틸의 등에 매달린다.
미스라: 루틸. 다친 곳은 없나요?
루틸: 네, 네. 하지만 미스라 씨의 마법…….!
미스라: 이제 상관없어요. 저 여자가 자살하든 저랑은 관계 없으니까요. 저에게 있어서는 그 여자보다 당신이 더 소중해서.
루틸: 하지만…….
미스라: 살기를 포기하는 녀석은 어차피 죽어요. 긍지를 갖지 않고 얼빠진 채 지내봤자 아무 보람도 없잖아요. 산 송장 같은 거예요. 저라면 그런 건 싫다고요.
무르: 긍지를 가질 계기가 아직 없는 것 뿐이라면?
미스라: 하……?
약간 지적인 색을 얹은 발랄한 목소리가 드높게 전달됐다. 빗자루에 걸친 무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눈동자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르: 욕심 없이 팽팽하게 계속 사는 건 나도 무리! 하지만 난 사랑하는 상대가 있어. 저 하늘에 뜨는 달 말이야. 그 덕분에 영혼도 부서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몇 번이라도 그 달에 가까워지고 싶어. 몇 번이나 뿔뿔이 흩어지더라도 그럴 거야. 달을 사랑하지 않는 내 인생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
샤일록: …….
루틸: ……루카에게 이 세계는 태어나서부터 꼭 함께해 온 보물이에요. 그것을 잃어버린 것은 분명 제 상상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애틋하고……. 괴로운 현실이겠죠.
루틸: 하지만…… 저는 루카가 어릴 때부터 그녀가 아직 모르는 세계를 체험하는 기쁨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미스라 씨가 말하는 살기 위한 긍지나, 무르 씨에게 있어서 달이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루틸…….
애틋하게 눈썹을 기댄 루틸이 가슴 앞에서 두 손을 잡는다. 새파랗게 질린 어린 풀빛 눈동자가 생각나는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루틸: 게다가…… 잊을 수 없어요. 제가 만든 슈가를 먹고 기뻐하는 루카의 웃는 얼굴이. 무르 씨가 내린 슈가의 비를 올려다보는 얼굴도, 매우 반짝반짝 빛나서…….
루틸: ……루카의 기억의 조각 중에는 아슬란 씨의 모습도 있엇어요.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만지고 흥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조각에 갇혀있다는 것은, 이상한 친구들과 보낸 시간만큼이나 둘도 없는 추억이라는 거죠?
미스라: …….
시노: 들어, 루카!
뻗어나오는 덩굴을 낫으로 힘껏 찢자 시노는 루카 씨를 향해 외쳤다.
시노: 나도 거처에서 쫓겨난 몸이다! 변변치 않는 현실보다 자신에게 편리한 좁은 세계가 안심되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나는 그곳을 나와 방황하여 유일무이한 존재를 만날 수 있었어. 나의 인생을 바꾼 만남이야. 그 녀석을 만나고 나서 세상에 색이 물든 것처럼 모든 것이 변해갔어.
시노: 너도 나처럼 새로운 가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보장은 없지만…… 여기서 틀어박힌다면 그런 기회는 평생 오지 않겠지. 네가 눈을 돌리지 않으면 현실도 너에게 신경쓰지 않아. 과감히 생각할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엉키는 덩굴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그랟래도 시노는 겁먹지 않고 계속 찢는다. 시노가 찢은 담쟁이 덩굴의 사이로 루카 씨의 곁에 나온 것은 아서였다.
아서: 루카 캐럴! 훌륭한 예술가를 만나서 나는 기뻐. 나는 내가 태어난 아름다운 세상이 정말 좋아. 너를 통해 아직 보지 못한 경치를 알게 되어 더욱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깊어졌어. 나는 알고 싶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아직 모르는, 아직 본 적이 없는, 평상시라면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세계를 가르쳐 주었으면 해.
아서: 설령 언젠가 잃어버려도…… 너의 경험은 너만의 것. 이 세계를 본 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전해지는 것은 분명 있어. 게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의 추억은 분명 쉽게 퇴색되지는 않을 거야.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도. 그때 네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나에게 좀 더 가르쳐주지 않을래?
아서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담쟁이 덩굴으 번쩍 걷어차고 무르가 얼굴을 내민다.
무르: 나도 너와 너의 친구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네가 보고 그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것저것, 전 계 학술서나 문헌에도 기재가 없는 것들이 가득해. 즉, 너 자신은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한 학술서라는 것! 그러니까 말이야,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밖에 나가서 다시 이 세계를 볼 방법을 찾는 건 어때? 안 보이는 건 아쉽지만, 그걸로 끝내기는 더 아쉬워.
무르: 나라면 몇 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탐구할 거야!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이대로 죽는 것보다 목숨을 걸 가치가 있어. 모처럼 오래 사는 마법사로 태어났으니까!
마법사들의 말을 듣고 덩굴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 같았다. 뭔가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아슬란: ……루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하지만, 심지가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서의 빗자루에 안겨 있던 아슬란 씨가 눈을 뜬 것 같다. 아슬란 씨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루카 씨를 감싸는 것들이 얌전해져 간다. 아서는 덩굴을 피하며 루카 씨의 곁에 내려앉아 아슬란 씨를 내려놓았다. 아서의 부축을 받은 아슬란 씨는 비틀거리며 루카 씨에게 다가가 자장가를 부르듯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아슬란: ……꿈을 꿨어. 내가 모르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걸, 네가 알려준 날의 꿈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에 대해 사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너의 온화한 미소를. 소중한 친구들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건…… 눈치채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무서웠지. 소중한 걸 잃어가는 것 같아서.
잠든 루카 씨의 머리를 아슬란 씨가 살짝 쓰다듬자 긴 속눈썹이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아슬란: 하지만 루카. 그들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야. 너의 옆에서 지켜봐 주고 있어. ……그렇지?
록시가 빙글빙글 선화하며 루카의 가슴팍에 내려앉는다. 칙칙해진 세계 속에서 무지개빛 비늘가루가 선명하게 흩날린다.
루틸: 부탁이야 루카. 기억의 조각을 받아줘. 지금은 무엇보다 둘도 없는 이 세계나 이상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루카는 분명 그림책 밖의 세계에서도 사랑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현실은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많은 아름다운 경치와 소중한 사람들과의 유대감이 있으니까.
나는 루틸과 함께 여섯 개의 진주를 잠자는 루카 씨에게 내밀었다.
루틸: 이 소중한 조각은 너의 용감한 친구들이 소중하게 지켜주고 있었어. 그래서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거야. 저기, 루카. 나도 그림책을 그리는 게 꿈이야. 현자의 마법사를 그린 따뜻하고 멋진 그림책. 그래서 나도 너의 친구가 되고 싶어. 너의 세계를, 너의 자신을, 나도 지키고 싶으니까.
저도……. 루카 씨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여러 가지를 듣고 여러 가지를 알고 싶어요. 루카 씨가 봐온 세계와는 또 다른……. 하지만 마음이 떨려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경치를 함께 찾지 않겠나요? 해질녘 하늘이라던가,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이라던가, 떠들썩한 아침 식사라던가…….
무르: 너, 별은 좋아해? 미개의 천문대 망원경으로 별을 보여줄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소개할게. 일렁이는 별의 바다는 아침이면 사라지지만 해가 지면 다시 만날 수 있어. 며칠이라도 빠져들고 싶어질 정도로!
아서: 북쪽 나라의 은의 세계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워. 그 한숨이 하얗게 물드는 것도 재미있어. 언 호수는 미끄러져 놀 수 있고, 구멍을 뚫어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어. 그 즐거움을 너도 알아줬으면 해.
시노: 깊은 숲에 비치는 햇빛은 언제나 아름답지. 데리고 가서 보여줄 수도 있어.
루틸: 티코 호수로 같이 가자! 가공하면 신기한 물감이 되는 조개가 있거든.
미스라: ……왜 순서대로 말하는 그런 흐름인가요. 뭐,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한 번 나가서 역시 싫으면 거기서 다시 돌이 되면 돼요. 나머지는……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함께 시체라도 운반하겠나요?
그때 내 손 안의 여섯 조각이 빛나기 시작했다. 불쑥 떠오른 그것들은 루카 씨의 가슴팍에 끌리듯 모여 하나가 된다. 눈부신 빛 속에서 루카 씨는 조용히 눈을 떴다. 핏기 없는 입이 희미하게 움직인다.
루카: 달콤하고, 반짝반짝 빛났던 그 비…….
루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24화
무르: 오케이!
무르는 반갑게 날아다니자 함박웃음으로 대답했다.
무르: '에아뉴 랑블!'
루카: ……반짝반짝. 예쁘다…….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루카 씨에게 무르가 불쑥 얼굴을 들이댄다.
무르: 여기에도 반짝반짝한거 발견.
루카: ……에?
무르: 너의 눈동자. 아쉽지만 너는 볼 수가 없네. 이렇게나 예쁜데. 그런데 나는 알고 있어. 이 세계를 비추는 너의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리는 것.
무르가 장난스럽게 웃자 루카 씨도 피식 웃었다. 루카 씨를 감싸는 꽃의 고치가 서서히 풀리면서 색채가 퍼져나간다. 빛바랜 세계가 순식간에 물들어 갔고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의 빛이 세계를 감쌌다.
빛이 사라지자 그림책의 세계는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다. 싸여 있던 꽃에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루카 씨를 루틸이 받아들인다. 루틸의 팔 안의 루카 씨는 혈색을 되찾고 있었다. 볼과 입술이 은은한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루틸: 루카. 힘냈네……!
아슬란: 아아……. 무사해서 다행이다. 정말로……!
목소리를 떨던 아슬란 씨가 휘청휘청 루카 씨에게 달려간다. 다리를 기대면서도 안심한 듯 얼굴에 웃음을 짓는 그가 허리를 굽혀 루카 씨에게 시선을 맞춘다. 손끝을 떨며 루카 씨의 머리를 살짝 쓰따듬으려 할 때,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가로: 아, 있다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레녹스: 현자님도. 모두도.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무르: 모두가 돌아왔다! 어서 와!
클로에 / 라스티카: 다녀왔습니다!
미틸: 아…… 형님. 볼에 상처가 났어요! 괜찮으신가요?
루틸: 응.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미틸도 기억의 조각을 찾아줘서 고마워. 뭔가 조금 달라졌는데? 성숙해진 분위기가 나. 분명 미틸도 힘낸 거겠지!
미틸: 에헤헤……. 네!
카인: 이쪽은 괜찮았나?
시노: 아아, 어떻게든.
아서: 모두가 용감하게 도전해준 덕분이야.
스노우: 정말 잘했네. 현자도, 그대들도.
화이트: 기억의 조각을 무사히 확보한 우리도 말이지.
리케: 루카가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경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고요.
미틸: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루카 씨. 저희를 기억하시나요?
리케와 미틸에게 얼굴이 들여다봐진 루카 씨는 눈을 깜빡거렸다. 시끌벅적한 공기에 휩싸여 조금 당황한 모양이다.
오즈: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즈의 말에 루카 씨의 눈은 놀라움으로 물든다.
오즈: 네가 포기하고 이 세계가 모두 붕괴한다면, 여기에 너를 남겨두고 내가 모두를 데리고 나갔겠지. 잘 견뎠군.
루카: ……응.
루카 씨는 안도와 긴장이 뒤섞인 듯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 깨끗한 세상으로 돌아와서 다행이야! 이걸로 한시름 놓았네.
라스티카: 이 세계를 그린 것은 너? 신기하고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음악이 멈추지 않네. 나는 여러가지 음악을 연주해 봤지만, 이렇게나 내가 모르는 멋진 음악을 이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워요, 작은 아가씨. 부디 저와 한 곡 춰주시지 않겠나요?
루카: ……으음…….
라스티카는 활짝 웃으며 루카 씨에게 내민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돌려놓았다.
라스티카: 라고, 권유하고 싶은 참이지만……. 그건 다음에 하도록 할까.
샤일록: 네. 감동의 재회를 방해하는 것은 촌스러우니까요.
그러자 샤일록은 아슬란 씨를 향해 한쪽 눈을 감았다.
샤일록: 자유로운 마법사들은 신경쓰지 마시길. 자, 당신들의 시간입니다.
공기가 천천히 풀리면서 루카 씨는 슬그머니 아슬란 씨를 향해 돌아섰다. 격식을 차린 분위기가 조금 민망한지 고개를 숙인 채 몇 걸음 다가와 가슴 부근에서 손을 잡는다. 그리고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눈망울로 아슬란 씨를 올려다봤다. 눈이 맞는 순간, 한숨을 내쉬듯 서로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다.
루카: …….
아슬란: ……루카. 머리는 아직도 멍한 거니? 어디 아픈 곳은?
아슬란 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루카 씨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도 마찬가지로. 이에 호응하듯 루카 씨의 어깨가 떨린다.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듯이. 루카 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슬란: ……에!? 잠깐, 루카. 괘, 괜찮아?
아슬란 씨의 가슴에 매달린 루카 씨는 큰 소리로 흐느꼈다. 아슬란 씨는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대고 있다. 그 모습은 왠지 매우 사랑스러워서 미소를 짓게 된다.
잠에서 깨 아슬란 씨를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혼자서 잠을 잔 채였으니까.
아슬란: ……그런가요? 그랬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렇게 마음껏 울어주는 것은 처음이고……. ……하하, 왠지 조금 기쁘네.
아슬란 씨는 루카 씨의 등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수줍어했다.
루카: ……나도, 기뻐…….
아슬란: ……!
소년같은 미소를 지으며 아슬란 씨가 웃는다. 그리고 루카 씨의 긴 머리를 약간 투박한 큰 손으로 쓰다듬었다. 호박색 눈 가장자리에 살짝 웃음 주름을 얹고.
클로에: 여기에는 우리밖에 없고……. 잔뜩 울면 개운해질 거야.
샤일록: 마음대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일종의 쾌락이니까요.
지켜보는 마법사들의 눈빛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가슴 속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루카 씨가 울음을 그칠 무렵 마법사들은 모두 돌아와 있었다.
미스라: 아, 드디어 왔네. 늦었네요.
브래들리: 오, 이쪽도 해결되었네. 우리의 활약 덕분이다.
오웬: 내 덕이잖아. 누가 조각을 회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미스라: 돌아오자마자 얼빠진 소리 하지 마세요. 제 덕분이에요.
파우스트: 여기로 돌아오는 도중에 한 번 크게 세계가 흔들렸지만…… 어떻게든 버텨낸 것 같군.
네로: 아아. 드디어 북쪽 마법사의 누군가가 날뛰기 시작한 줄 알고 초조해졌어.
미스라: 흐흥, 그렇죠.
시노: 땅을 박살낸 놈이 신나게 말하지 마.
히스클리프: 아하하……. 시노도 모두 큰 부상이 없어서 다행이야. 루틸의 볼 상처도 피가로 선생님이 낫게 해주셨고.
루틸: 네, 정말로요! 루카는 어때? 진정됐어?
고개를 끄덕인 루카 씨의 어깨에 록시가 멈칫했다. 부드러운 방울 소리가 루카 씨를 감싼다.
아슬란: 록시는 너를 걱정하고 있었어.
루카: ……! 이 아이가 보여……?
아슬란: 아아. 록시가 안내해줘서 우리는 여기에 올 수 있었어. 루카의 소중한 친구를 만나서 너무 기뻐.
루카: 그렇구나……. 여기는 그림책 속. 내가 만든 세계니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모두에게 보이는 거야.
루카 씨는 작은 어깨를 움츠렸다. 가슴 가득히 퍼지는 따뜻한 마음을 안고 있는 것처럼. 작은 입이 천천히 열리고 루카 씨는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루카: 나의 '처음' 은 모두와 함께 배웠어.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준 것은 이상한 아이들 뿐이었으니까……. 첫 친구. 첫 두근두근. 첫 번재 읽기 쓰기. 안심하고 잠드는 것도, 다가서는 따뜻함도……. 전부 '처음' 이었어.
낱낱이 말을 고르면서 회자되어 간다. 루카 씨가 그리는 그림책처럼 섬세하고 설탕과자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울려퍼졌다.
루카: 그림책을 그릴 때마다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깨닫고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어. ……지금은 더 이상 록시 이외의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이 그림책을 완성시켜 버리면 록시와도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게 싫어서…….
아슬란: 루카……. 네가 무엇에 겁을 먹고 있는지는 알았어. 나는 그것을 그림책을 전시하는 것으로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구나. 너는 친구를 잃는 불안과 싸우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몰아붙이고 말았어.
루카: ……그것 뿐만이 아니야.
아슬란: 에?
루카: 보이던 세상을 잃으면 지금까지처럼 그림책을 그릴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당신과도 …….
루카 씨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입에 담기가 두려운 것이다. 입에 담자마자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그녀를 겁쟁이로 만든다.
오즈: 말로 하고 싶지 않다면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기있는 자는 너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아서: 오즈 님…….
오즈는 따뜻한 바람에 긴 머리를 빗고 주변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본다.
오즈: 여기는 마치 달걀 속이다. 너를 감싸며 지키고 있었겠지. 하지만 달걀은 저절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내버려두면 죽어. 비가 오든, 폭풍이 오든, 눈보라가 오든, 계속 데우는 자가 있어야만 달걀 속에 있을 수 있다.
루카: …….
루카의 큰 눈망울이 아슬란을 사로잡는다. 아슬란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란: ……괜찮아, 루카.
아슬란은 루카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깊은 곳에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아슬란: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하지만 그것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야. 나의 이기심이야. 내가 계속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네가 밖에 나가고 싶어할 때까지. 왜냐하면…… 내가 모르는 세계를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다른 것도 아닌 너 자신이니까.
아슬란: 나와 함께 있어줄래? 내가 모르는 세계를 가르쳐준 너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 너와의 만남은, 나의 세계의 보물이니까.
루카: …….
아슬란: 못 그려도 돼. 그리고 싶지 않아도 돼. 그러면…… 여행이라도 가자.
아슬란 씨는 그렇게 말하고 지켜보는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에는 신뢰와 존경의 빛이 담겨 있다.
아슬란: 그들이 알려준 경치를 함께 보러 가는 것은 어떨까?
시노: 아아, 좋아. 셔우드 숲의 가장 높은 나무에서 보는 전망은 최고니까. 숲 속을 내가 안내해줄게.
히스클리프: 그때는 꼭 블랑셰 성에도 방문해줘. 재미있고 훌륭한 것을 많이 만들고 있는 공방이 있거든.
25화
미틸: 남쪽 나라에는 티코 호수 이외에도 절경이 많이 있어요.
피가로: 남쪽은 미개척 토지가 많지만 그만큼 고산이나 황야가 웅장하니까.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투박한 자연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서: 각국의 절경 투어를 하는 건 어때?
카인: 좋네. 내가 추천하는 장소도 안내할게. 전망 좋은 곳에, 옷가게에 신발가게, 밥가게, 선물가게. 꽤 수가 많을 것 같지만…….
리케: 즐거울 것 같아…….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저도 제가 모르는 경치를 많이 보고 싶어서.
라스티카: 그러면 나는 연주가로 동행할까. 경치에 맞는 음악을 연주할게.
클로에: 라스티카의 연주를 들으면서 절경을 보다니! 사치~!
네로: 그렇게 하면 결국…….
브래들리: 그리고 싶어져서 근질근질해지겠지. 너의 성미란 녀석이잖아.
루카: ……!
그림! 이라는 표정에 단번에 시선이 쏠린다. 루카 씨는 얼굴을 붉혔다.
레녹스: 그리고 싶어지고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앞으로 몇 번이고 그걸 반복할 수 있어. 우리 마법사는 오래 사니까.
파우스트: 우리가 사는 것은 바쁘게 지내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신이 아찔해지는 시간이다.
무르: 그것이 마법사야!
루카: …….
루카 씨는 조금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도 달라.)
그래도, 그래서 좋은 것 같다.
(루카 씨가 이상한 세계와 접촉한 것처럼, 나와 아슬란 씨도 마법사의 세계와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어.)
그것은 조금 특별하고, 조금 멋진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유달리 큰 방울 소리가 울렸다. 올려다보니 허공에 날아오른 록시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고 있다. 톡톡 튀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기억의 조각을 지키던 다섯 마리의 환수였다. 친구둘에게 둘러싸인 루카 씨의 손에는 붓과 물감이 들려 있었다.
아슬란: 자, 루카. 마지막 장이야.
루카: ……응.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주위에 다섯 마리의 친구들과 록시가 모였다. 양지에 살랑이는 꽃처럼 웃는 루카 씨가 붓을 하늘에 댄다. 그걸 신호로 춤추듯이, 노래하듯이 그녀가 쥐고 있는 붓에서 선명한 세계가 탄생한다. 루카 씨가 연주한 물감을 동그란 새가 쫓아 날아간다.
카인: 오! 새가 날개짓을 할 때마다 나무에 열매가 맺혀가!
리케: 와아! 신기한 모양의 과일이 가득해요. 싱싱하고 맛있을 것 같아요……!
루카 씨의 붓이 호수의 수면을 어루어만지자 작은 돌고래가 그것을 들어올렸다. 물가의 꽃나무에 단비가 퍼붓는다.
히스클리프: 빗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여. 저건…….
네로: 저 녀석의 보물인가?
파우스트: 아아. 낯익은 것들 뿐이다. 비를 맞은 꽃들의 빛이 더해가고 있어.
클로에: 비가 튀는 소리에 실려 꼬리를 물면서 춤을 추고 있어!
라스티카: 이 얼마나 즐거운 연주회인지. 여기서는 심벌즈가 있으면 좋겠네…….
라스티카가 올려다보면 큰 도마뱀이 하늘을 날고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라스티카: 훌륭해! 힘세고 호쾌한 소리다. 이렇게 마음이 뛰는 음악은 만나기 힘들어.
천둥소리의 여운 속에 왕도마뱀의 등에 올라탄 루카 씨가 하늘 가득 알사탕빛 구름을 그리기 시작했다.
브래들리: 오. 왠지 먹음직스러운 구름이네. 프라이드 치킨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오웬: 솜사탕처럼 달면 먹어줄 수도 있는데.
미스라: 물감 맛밖에 안나는거 아닌가요? 배탈이 날 거예요.
발 밑에서는 잎사귀의 정령이 두 손 가득 마블색 나무 열매를 안고 있었다.
미틸: 와아……! 나무 열매를 떨어뜨릴 때마다 선명한 웅덩이가 생겨나고 있어요!
피가로: 아아……. 예쁘네, 미틸. 그 웅덩이 좀 들여다봐.
레녹스: 웅덩이 속에 경치가 비치고……. 아름다운 숲이 쭉 이어져 있네요.
그것은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찰나의 감동이 가슴에 밀려온다.
아서: 아름다워……. 이것은 분명 다시 볼 수 없는 절경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죠, 오즈 님.
오즈: ……아아.
아서의 눈동자가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반짝이며 오즈를 올려다본다. 그가 사랑하는, 자신이 태어난 세계의 아직 보지 못한 광경들. 오즈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를 가리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서에게 매달리는 오즈를 비롯해 북쪽의 마법사들조차 자연스럽게 그녀의 붓 행선지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쉬운 그야말로 기적의 광경.
왠지 가슴이 벅차네요. 마치 마법의 쇼를 보는 것 같아.
루틸: 네. 언제까지나 보고 싶다고 바랄 정도로…….
브래들리: 뭐, 완성하면 끝이지만.
네로: 너에게는 정서라는 것도 없냐?
브래들리: 어떤 창작도, 대규모의 무대라도 끝은 있잖아.
네로: 뭐, 그건 그렇지만…….
파우스트: 완성은 반드시 끝이 아닐 거야. 형태가 있는 것은 계속 남는다. 물건으로서도 그렇지만, 기억에도.
레녹스: 네.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카인: 이 그림책도 우리가 지켰으니 곧 완성될 거야.
아서: 그리고,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리케: 시작된다……?
그림책을 읽는 저희 입장에서는 완성이 시작되니까요.
무르: 확실히! 완성되고 나서야 읽을 수 있어. 이 그림책의 세계가 시작되는 거야!
라스티카: 그러니 지금은 아직 서장이라는 거네. 막이 오르기 전의 전주곡.
샤일록: 네. 동트기 전의 한때처럼 아름답게 물드는 하늘을 고대하는 사치스러운 시간.
루틸: 분명…… 가장 행복한 때일 거예요.
화이트: 스노우.
스노우: 뭔가, 화이트. 희한하게 감상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군.
화이트: 이런 걸 보게 되면 이렇게 되지. 우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기묘한 것들에는 익숙해진 줄 알았지만…… 이것은 본래라면 볼 수 없는 경치. 그대가 나를 이어주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경치지. 내가 지금 여기서 그대 옆에서 손을 잡고, 함께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것도 그대 덕분일세.
스노우: ……호호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을. 나도 그대와 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네. 손을 놓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화이트: 막이 오를 준비는 된 것 같군.
루카 씨의 화필이 움직임을 멈췄다. 세계가 산성을 지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따. 루카 씨는 기도의 시를 읆듯 어떤 말을 했다. 무지개 빛깔의 글자가 하늘에 기록되어 간다. 그리고 눈부신 무지개 빛이 쏟아져 이 세상 전부를 감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전람회장이었다. 입고 있던 의상도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창문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햇빛의 각도를 보면 그림책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늘어서있던 신기한 덩굴과 담쟁이, 꽃과 생물의 모습 없이 열린 그림책은 환영만 떠오른다.
루틸: ……무사히 완성했구나.
루카 씨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빛으로 물든 은발이 크게 흔들린다.
루카: ……모두와 록시가 있었기 때문에 이 그림책을 완성시킬 수 있었어.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그리고…… 고마워.
루틸: 저 역시. 멋진 체험을 할 수 있어서 기뻤어!
아서: 무사히 내일 전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아슬란: 네! 다행이다, 루카.
루카: 응. 록시도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본 루카 씨의 표정이 문득 굳어진다.
루카: 록시? 저기, 록시…….
루카 씨……?
루틸: ……설마.
루카 씨의 커다란 눈동자가 당황해 망설이듯이 여기저기를 찾는다. 무지개색으로 푹신푹신한 소중한 친구를 찾기 위해서. 이윽고 루카 씨는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것을 꾹 참았다. 그 작은 어깨를 아슬란 씨가 살며시 끌어당긴다.
아슬란: 보이지 않아도, 분명 네 곁에 있을 거야.
루카: …….
그림책을 주워든 루카 씨는 눈을 감는다.
루카: ……응. 계속 곁에 있어줄 거야…….
루카 씨는 그림책을 그 작은 팔로 껴안았다. 그때, 무지개빛의 아름다운 비늘 가루가 그녀의 주위를 한 바퀴 돈 것처럼 보인 것은…… 분명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다음 날, 전시회 마지막 날. 클로에 특제의 의상을 입은 마법사들이 집합했다.
라스티카: 기쁘다, 클로에. 그림책에서 돌아왔을 때 원래 의상으로 돌아온 건 조금 쓸쓸했으니까.
클로에: 헤헤. 너무 멋진 옷이라서 잊을 수가 없어서 만들어버렸어. 역시 다들 너무 잘 어울려!
루틸: 어머, 현자님. 보세요, 저 대행렬!
루카 씨의 신작 그림책은 큰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네요!
아서: 네. 개최 기간 중 가장 붐빈다고 해요.
다행이다! 한때는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했지만……. 루카 씨가 자기 사진이나 세계와 마주하는 것을 선택해서 열심히 해줬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던 거죠. 게다가…… 루카 씨가 무사히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의 덕분이기도 해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스노우: 호호호. 그 말대로일세! 우리의 협력 덕분에 그림책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슬란으로부터 주최자에게 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화이트: 기간 중 경비로서의 협력도 확실히 끝났네. 우리의 평판은 확실하게 오르겠지.
스노우 / 화이트: 이예~이!
신나게 향한 양손에 반사적으로 하이파이브를 돌려주자 파칭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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