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퍼레이드 뒤에는
콕로빈: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이야~. 성황이었네요! 돌이라도 던져질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렬한 환영에 저도 안심했습니다!
시노: 정직한 녀석.
콕로빈: 에헤헤. 파티장은 저쪽입니다! 여러분, 부디 즐겨주세요!
시노: 알았어. 저쪽 방은? 저 석상은?
히스클리프: 시노, 얼쩡거리지 마.
시노: 블랑셰의 성보다 넓어.
히스클리프: 그야 중앙 나라의 국왕 폐하가 사는 곳이니까. 변경의 성과는 비교가 안 되지.
시노: 블랑셰의 성이 더 좋아. 숲과 호수에 둘러싸여 아름다워. 나으리와 마님이 원하신다면 내가 블랑셰 성을 크게 만들어줄게.
히스클리프: 아버지도 어머님도 조용한 삶을 원하고 계셔. 엉뚱한 걸 원치 않아.
시노: 나는 바치고 싶어. 이 세계에 있는 엄청난 것들 전부를. 히스에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너에게는 민폐였던 것 같지만.
히스클리프: ……민폐가 되는 건 아니야. 항상 고마웠어. 시노는 무뚝뚝하지만 상냥하니까. 열이 나서 자리에 누웠을 때도, 과외 선생님한테 혼이 나서 침울할 때도, 숲속의 꽃이랑 다람쥐를 보여주러 왔었잖아. 지금도 동생 같다고 생각했어.
시노: 동생? 동생은 너잖아?
히스클리프: 하? 어떻게 봐도 너가 동생이잖아.
시노: 아니, 내가 돌봐주고 있어. 네가 동생이야.
히스클리프: 끈질기네. 시노야말로…….
중앙 나라의 귀공자: 히스클리프? 동쪽 블랑셰 가의 히스클리프 아니야?
히스클리프: 아…….
중앙 나라의 귀공자: 기억 안 나? 아리스토크라시 아카데미 학술고사장에서 만났었는데. 제일 우수한 성적이었고 미형이어서 인상에 남았었어. 너, 현자님의 마법사였구나.
히스클리프: ……아아.
중앙 나라의 귀공자: 대단해! 타고난 영웅이네, 부러워. 괜찮다면 나중에 부모님께 소개……
히스클리프: 그만둬.
중앙 나라의 귀공자: ……아……. 미안……. 너무 들떠버렸나…….
히스클리프: ……아니……. 별로 티내고 싶지 않아. 미안하지만…….
시노: 어째서지. 갔다 오면 되잖아. 잔뜩 칭찬 받고 오면 되고.
히스클리프: 시노, 너와는 관계 없…….
시노: 현자의 마법사가 된 것도, 마님과 나으리의 똑똑함도, 마님에게 물려받은 미모도 자랑하면 돼. 너는 내 자랑스러운 주인인데, 네가 너 자신을 부끄러워하면 내가 바보같잖아.
히스클리프: ……시끄럽네. 시노는 몰라.
시노: ……그래. 그러면 평생 내려와 있어.
히스클리프: …….
시노: …….
시노, 어디로 가나요? 파티 회장은 반대 방향…….
시노: 돌아갈래.
아아, 돌아…… 에!? 고, 곤란해요! 기다려 주세요!
벌써 없어……. 어디로 간건가요!?
2화 시노의 마음
시노: …….
……있다……! 기다려, 시노……!
시노: 우왓……! 현자인가. 왜 덤벼들었어?
하늘을 날면 쫓아갈 수 없으니까……. 어째서인가요, 갑자기 돌아가다뇨.
시노: ……히스랑 싸웠어.
히스랑? 어째서 싸웠나요?
시노: 히스가 부끄러워하니까. 히스가 본인을 부끄러워하면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왜…….
시노: ……왜 듣고싶어하지? 이것도 현자의 일인가?
일은 아니지만……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된 저에게 히스는 친절했으니까. 그런 그와 친한 시노가 왜 그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시노도 입은 험하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서…….
시노: …….
시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기보다는 내 정체를 더듬는 듯한 강한 눈동자였다. 다가가도 될지, 모르는 척 지나쳐도 될지 결정하려는 도둑고양이 같아. 그리고 그런 도둑고양이는 일단 다가가려고 마음먹으면 결코 겁내지 않는다.
시노: 나는 고아야. 가족의 얼굴은 몰라. 마법을 부릴 수 있었으니까 먹고 살기는 힘들지 않았어. 꺼림칙하다는 말을 알기 전에 꺼림칙해 하는 것도 익숙해졌어. 간단해. 동료를 원하지 않으면 돼. 어디에 있든 여기는 자기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 이 마음은 상처받지 않아.
말 그대로 상처받은 기색 없이 시노는 당당하게 신상 이야기를 했다. 그런 시노의 목소리가 갑자기 부드러워진다.
시노: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운좋게 블랑셰 가에 고용되었어. 블랑셰 가는 천국이었다. 나으리도, 마님도, 히스도 착하고, 사이가 좋고. 이상적인 가족이었어. 직접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어. 하지만 어느 날, 나에게 마님이 직접 찾아왔어. 히스를 데리고.
시노: 시노, 마법사라면서요? 히스클리프도 그래. 그러니 앞으로 히스랑 잘 지내줘, 라고.
시노: …….
그렇게 말하자 가슴이 벅차버린 듯 시노는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노의 감정이 격하게 움직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울 정도로 순수한 무언가가 시노의 호흡을 힘들게 하고 있다.
시노: ……히스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마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때…… 처음으로 여기가 내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법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사라서 마님께서 말을 걸어주셨어. 히스 도련님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기뻤어……. 히스도 기뻐해줬어. 나는 이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히스는 달라.
다르다니…….
시노: 마법사라는 걸 숨기고 싶어해. 마님이나 나으리께 좋지 않은 소문이 나니까…….
…….
시노: 쓸데없는 말을 하는 패거리는 어디에나 있어. 신경 쓰지 않으면 돼. 그렇게 말해도 히스는 못 해. 나에게는 자랑이 됐지만, 그 녀석한테는 마법사로 있는 것이 부끄러운 거야. 귀족 도련님이고, 여러 가지 있겠지. ……어쩔 수 없지만…… 걔가 아래를 향할 때마다 나를 가리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부끄럽다는 말을 듣는 것 같아.
시노: 그러니까 현자, 나는 영웅이 되고 싶어. 엄청난 마법사가 되어서 큰 성을 가지고 싶어. 모두가 첫눈에 동경할 만한 것을. 그걸 들고 히스의 친구라고 자칭할거야. 그렇게 하면 걔도 부끄러워하지 않겠지?
……시노…….
3화 전별 인사
무지개를 졸라대는 아이처럼 시노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네요……. '거대한 재앙' 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어, 시노의 큰 성을 세우도록 해요.
시노: 세울 수 있어? 정말로?
노력할게요. 좋은 현자가 되어 활약해서, 제 부탁을 들어줄 수 있도록. 하지만 큰 성을 가지지 않더라도, 시노는 히스의 자랑인 친구라고 생각해요.
시노: ………….
시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눈물을 참는 것처럼 기가 센 눈동자가 흔들리고 이다. 입꼬리를 올리며 시노는 웃었다.
시노: 재치 있는 대사다.
고마워요……. 파티는 어떻게 할건가요?
시노: 참가할게. 맛있는 파이가 있다고 들었어. 마님의 파이가 더 맛있겠지만.
파이를 좋아하나요?
시노: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야.
히스클리프: 시노!
시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히스클리프가 있었다. 검연쩍은 듯이 목 뒤쪽을 긁고 있다.
히스클리프: ……파티가 시작될거야. 현자님도.
지금 갈게요.
히스클리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요?
시노: 히스의 뒷담.
히스클리프: 에!?
시노: 거짓말이야. 가자.
웃으며 시노가 히스의 손을 끌고 간다. 히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덩달아 웃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잘 지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밤 파티에서도, 사람과 마법사가 사이좋게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소소하겠지만, 내 나름대로.)
드러몬드: ……이상으로, '거대한 재앙' 과 싸울 사명을 짊어진 용사들……. 현자님과 마법관의 마법사님들에게 저, 마법관리대신으로부터 환영사를 받겠습니다. 여러분, 우렁찬 박수를!
클로에: 와아, 대단해……. 치장한 사람들이 많아. 예쁜 과자들이 잔뜩…….
라스티카: 그런 구석에서 들여다보지 말고 이리 와, 클로에.
클로에: 하지만 정말 안 혼날까? 우린 마법사야. 전에 어디의 축제에 갔을 때도…….
아서: 마법사가 주역인 파티야.
클로에: 아서 왕자님…….
아서: 아서면 돼. 클로에, 예쁜 로브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오늘 밤은 즐겁게 보내고 가줘.
클로에: ……고마워, 아서……. ……아아, 꿈만 같아……. 라스티카, 저쪽 보러 가자! 아! 저쪽도!
라스티카: 아하하, 좋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서 왕자.
아서: 이쪽이야말로.
클로에: 빨리, 빨리!
라스티카: 기다려, 잡아당기지 말아줘.
아서: 하하……. 모두 주저하지 말고 즐겁게 있다가 가줘. 마법사는 사람이랑, 사람은 마법사랑 천천히 수다를 떨면 돼. 오늘 밤은 사람과 마법사의 기념 미팅…….
아, 아서! 미팅이라는 단어는 이 자리에서 조금……!
아서: 그런가?
아서: 기념할 만한 만남을 축하하는 잔치니까. 그럼, 건배!
4화 파티의 시작
무르: 건배!
샤일록: 건배. 작년보다는 좋은 삼폐인이네요.
무르: 그건 좋은 거야?
샤일록: 엄청.
중앙 나라의 학자: 오오! 당신은 혹시 고명한 철학자 무르가 아닙니까?
무르: 냐앙!
중앙 나라의 학자: ……!?
샤일록: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냥 도둑고양이입니다.
네로: 역시 왕성의 식사…… 좋은 밀이네. 그놈이 있었다면 잔뜩 먹었으려나.
파우스트: 그놈?
네로: …….
파우스트: 비밀주의군.
네로: ……당신에게 듣고싶지 않아.
네로: 어이, 어디에 가는 거야.
파우스트: 쉴거다. 병후를 빌미로.
네로: 그렇게 말하면서, 파티가 싫은게 본심이잖아?
파우스트: 이 성이 싫어서가 본심이다.
네로: ……?
중앙 나라의 귀부인: 엄청나게 좋은 춤……. 마법사 중에 이렇게 신사적인 분이 계셨다니…….
라스티카: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귀부인.
중앙 나라의 귀부인: 부인은 계시니?
라스티카: 지금 찾고 있습니다. 찾으면 제 새장에 영원히 가두어 버리려고.
중앙 나라의 귀부인: 어머, 농담까지 정열적이고 멋있어…….
라스티카: 농담이 아니에요. 시험 삼아 당신도 새장에 들어가보겠나요?
클로에: 라스티카! 어디갔나 했더니. 자, 저쪽으로 가자!
라스티카: ……실례, 부인. 나중에 만나도록 하죠.
클로에: 라스티카는 정말, 여자에게는 어리광부리니까.
라스티카: 클로에는 아직 여자가 서투르니?
클로에: 조금은…….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걸 알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착해서 좋아! 내 옷이 예쁘다고 칭찬해줬어!
라스티카: 다행이네.
루틸: 시끌벅적해서 즐겁네요. 제 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요.
레녹스: 루틸의 학교 파티도 멋있었어.
루틸: 감사합니다. 아, 저 모자 귀엽다! 학교에 있는 천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레녹스: 클로에에게 만드는 법을 물어보자.
루틸: 네, 그럴게요!
카인: 왜 그래, 리케. 모처럼의 파티인데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리케: 카인은 들떠있군요……. 목 언저리에 립스틱이…….
카인: 아냐아냐. 이건 취한 귀부인이 먼저 왔을 뿐이야.
리케: 정말로……?
카인: 당연하지. 난 절도를 지켜. 기사니까.
리케: 하아…….
카인: 너는? 왜 그래?
리케: 아까 퍼레이드 때, 교단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서……. 저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카인: 그런 일을 신경 쓰고 있었나. 교단은 잊어버리고 파티를 즐겨. 자, 과자도 있어.
리케: 뭔가요, 이거……. 과일에 진흙이…….
카인: 진흙이 아니야. 초코다. 오렌지에 초코가 뿌려진거야. 맛있으니까 먹어봐.
리케: ……. 이 진흙, 맛있어……!
카인: 진흙이 아니라니까.
5화 피가로의 권유
즐거운 파티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스노우: 그렇지, 그렇지.
화이트: 우리들도 즐기고 있다네.
피가로: 현자님은? 즐기고 있어?
아, 네. 하지만 이런 자리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서…….
피가로: 헤에, 귀엽네. 즐거움이 부족하다면, 나랑 춤출까?
에?
장난스럽게 웃는 피가로에게 나는 주춤했다. 피가로는 어딘지 신기한 사람이었다. 남쪽의 마법사들은 모두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었지만 그는 유연하고 묘한 박력이 있다. 스노우나 화이트, 아서와 파우스트와도 아는 사이 같았다. 그런데 숨기려고 하고 있어. 상냥하지만 정체 모를 사람. 지금도 미소를 머금은 잔잔한 눈동자에 싸늘하고 차가운 빛이 깃든다. 한발짝 구두끝을 가까이 대는 그에게, 나는 기압당하고 있었다.
피가로: 사양하지 마. 네가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개든, 액재 그 자체라고 해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부둥켜안듯이 춤출거야. 그리고 잠시 정열적인 꿈을 나눈다……. 어때? 멋있지 않아?
피가로: 자, 부디 손을.
우아하게 내민 손바닥에 나는 긴장했다. 피가로의 유혹적인 말이나 나를 해치지 않으려는 미소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 손을 잡아버리면 통째로 삼켜져버릴 것 같은 신기함이 있다.
아……. 아뇨, 저는 괜찮아요…….
피가로: 어째서.
아하하……. 춤을 춰본 적이 없어서. 다른 분들과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피가로: 네가 좋은데.
……왜…….
피가로: 너를 농락하고 싶으니까.
기죽지 않고 피가로가 웃었다.
피가로: 마법사를 묶는 현자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려면 사랑에 빠뜨리는게 제일 빠르잖아.
에……?
피가로: 사랑은 신뢰하지 않는 상대, 미운 상대에게조차 마음을 맡겨버리는 행위니까. 그걸 권유하는거야. ……어때? 나랑 춤추지 않을래?
귀를 의심할 정도로 심한 대사도, 어지러울 정도로 부드러운 달콤한 음성으로 속삭인다. 나는 놀라서 피가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우습게 보지도 않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동자로 나에게 미소를 짓는다.
이건 마법사의 농담인가요……?
피가로: 글쎄, 시험해 보는게 어때. 내가 너를 상처 입히는 남자인가, 꿀보다 더 달콤한 남자인가, 독인가, 약인가……. 네 손으로 확인해 봐.
바다보다 더 깊은 눈이 아이를 달래듯 나를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내밀었다. 그때…….
6화 웅성거리는 회장
미틸: 피가로 선생님!
……….
피가로: 여어, 미틸. 무슨 일이야?
미틸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까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피가로가 싹싹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미틸을 돌아본다.
미틸: 멋대로 어디에 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피가로 선생님이 과음하지 않도록 제가 감시하고 있으니까.
피가로: 그랬었지. 미안, 미안.
미틸: 숨어서 한 잔 마셨나요?
피가로: 그런 버릇없는 짓은 안 해. 현자님이랑 얘기했을 뿐이야. 그렇지, 현자님?
피가로가 익살스럽게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망연자실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미틸: 정말이지, 올해는 과음 안 한다고 새해 다짐을 세운 건 피가로 선생님이니까요.
피가로: 알고 있다니까. 미틸을 걱정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
미틸: 절대로요! 정말이지, 내가 안 보면 선생님은 안 된다니까. 다른 나라 마법사들에게 업신여김 당하지 않도록 남쪽 나라의 좋은 점을 보여주세요.
피가로: 아하하……. 선생님, 그런 건 잘 못할지도.
미틸: 힘내주세요!
미덥지 못한 아버지처럼 피가로가 미틸에게 이끌려 갔다. 조금 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동요하는 내 옆에서 똑같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스노우: 무섭…….
화이트: 깬다…….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미안하네, 현자여. 피가로에게 악의는 없다.
화이트: 근성이 나빠서…….
어…… 어떤 사람인가요…….
계속해서 물어보려 할 때, 갑자기 회장이 술렁거렸다.
중앙 나라 사람: 왕제 전하다!
중앙 나라 사람: 빈센트 왕제 전하께서 오셨다!
아서: ……숙부님…….
훌륭한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자 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으로 다가와서 카인이 귓가에 몰래 속삭인다.
카인: 국왕 폐하의 동생분이셔. 빈센트 왕제 전하. 아서 전하의 숙부뻘인 사람이야. 나에겐 안 보이지만, 너에게는 보이지?
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계시는 분이 있어요. 아마 그분이라고…….
카인: 국왕 폐하는 병이 잦으셔서, 아서 왕자가 돌아올 때까지는 저 분이 정무를 도맡고 계셨어. 냉철한 합리주의자로, 재능 있는 자에게는 관용적이지만 낙오자와 무능한 자에게는 극히 엄격해. 마법이란 애매모호한 것보다는 확실히 제어할 수 잇는 마법 과학의 힘을 선호하고 있지.
마법 과학?
샤일록: 서쪽 나라에서 태어난 미의식의 조각도 없는 잿빛의 기술입니다.
어느새 샤일록이 옆에 있었다. 파이프를 흔들면서 보기 드물게 불쾌한 듯 눈썹을 치켜올리고 있다.
7화 마법 과학의 힘
샤일록: 마나석을 원동력으로 해서 과학 도구로 마법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러면 인간도 마법을 쓸 수 있나요?
샤일록: 네. 아무 희생도 치르지 않고.
차가운 한숨처럼 샤일록은 파이프 연기를 내뿜었다.
샤일록: 몸도 마음도 쓰지 않고 쾌적함만 만들어내다니, 도대체 거기에 무슨 쾌락이 있는 걸까요. 저는 어떤 욕망도 사랑하지만, 너무 멋없고 게으르며 상상력이 부족해.
카인: 당신의 사고방식은 재미있네. 인간이 마법을 부리는게 싫은 것이 아니라, 미의식적으로 싫은 건가.
샤일록: 저는 술집 주인이니까요.
눈을 가늘게 뜨며 샤일록은 미소 지었다. 아이를 다래듯 나와 카인을 시선으로 더듬는다.
샤일록: 미주는 유혹합니다. 미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온갖 쾌락에는 뱀 같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그 유혹은 강력한 마법처럼 사람의 마음을 휘감죠. 그래서 절도라는 것이 아름다운 법. 어떤 미녀의 유혹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성직자의 고뇌처럼, 쾌락 앞의 이성이 가장 관능적이죠?
카인: ……동의 여부는 별도로 하고……. 네가 말을 시작하면 왕궁의 큰 방이 밤의 라운지 분위기가 되어버리네…….
샤일록: 절도도 이성도 내려놓은 쾌락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갈등이 없는 것에는 깊이가 없다. 깊이가 없는 것은 싱겁다. 마법 과학은 싸구려 술처럼 많은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겠지만…… 어차피 이 세계가 경험한 적 없는 최악의 숙취를 일으키게 할 거예요.
???: …….
샤일록의 말소리가 들렸는지 누군가가 그를 힐끗 노려보고 있다. 샤일록은 개의치 않아했다. 그러던 중 아서가 빈센트 씨에게 다가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아서: 빈센트 숙부님. 잘 오셨습니다.
빈센트: 예년처럼 번화해서 다행이군. '거대한 재앙' 을 물리치지 못하고 많은 희생이 나왔다는데.
아서: 그것은…….
빈센트: 알고 있다. 축하하는 자리니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가하도록 하지.
아서: ……네…….
아서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빈센트 씨 대신 그의 대각선 뒤에 선 청년이 입을 연다. 샤일록을 노려본 사람이다.
니콜라스: 마법 과학성 소속의 특수 부대, 마법과학병단 단장 니콜라스라고 합니다.
아서: 알고 있다. 전 기사단의 대장이었고, 서쪽 나라에서 마법 과학 기술을 습득해 몇 달 전에 돌아온 거였지.
니콜라스: 알아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저희 마법 과학 병단이 있다면 앞으로 현자의 마법사 같은 건 필요 없겠죠.
니콜라스 씨의 말에 파티장이 술렁거렸다. 마법사들 중 몇 명이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린다.
시노: 하잖아, 저 자식.
히스클리프: 그만 둬, 시노.
카인: 니콜라스 대장……. 나한테 져서 기사단을 그만둔 주제에, 마법 과학을 손에 들고 우쭐대다니.
샤일록: 싸구려 술에 취한 자의 호언장담은 흔히 있는 일이죠.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서와 니콜라스 씨를 바라보았다.
아서: ……무슨 뜻이야, 니콜라스.
8화 차가운 목소리
니콜라스: 아서 전하나 기사 카인, 블랑셰의 귀공자를 제외하면 마법사들은 불량배들의 모임. '거대한 재앙' 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빈센트 님의 말씀대로, 훗날 엄밀한 조사를 거쳐서 이번 참상의 원인 조사는 필요할 것입니다. 즉, '거대한 재앙' 의 위협이 올라간 것인가, 현자의 마법사의 태만이 책임인가.
아서: 태만이라니……. 말이 지나쳐, 니콜라스. 희생된 건 그들의 동료들이다.
니콜라스: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서 전하.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동료가 어떻게 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한패에서 갈라졌을 지도 모르죠.
아서: 바보같은……. '거대한 재앙' 과의 싸움 전에 그들이 동료와 서로 죽였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니콜라스: 부정할 것은 없습니다. '거대한 재앙' 과 현자의 마법사의 싸움은 비밀에 숨겨져 있습니다. 지난번 싸움에 참가했던 마법사들은 영웅이자 많은 피해를 입힌 전범이기도 하죠.
니콜라스 씨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법사들의 동료가 사라진 것은 그들이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샤일록이 팔짱을 끼면서 눈썹을 치켜들고 불쑥 말했다.
샤일록: ……파우스트가 자리를 비우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무르: 그렇네! 저주 당했을지도!
카인: 아서 님이 없었다면 나도 때렸을 거야.
스노우: 동쪽의 마법사도 서쪽의 마법사도 중앙의 마법사도 무섭군…….
화이트: 정말일세. 온후한 건 우리 북쪽의 마법사 정도…….
히스클리프: 북쪽의 마법사가 어디가 온후한가요. 온후한 마법사는 남쪽이죠. 루틸 씨라던가…….
그 순간, 남쪽의 마법사 루틸이 니콜라스 씨의 앞으로 다가갔다.
루틸: 그건 무슨 뜻인가요!?
히스클리프: …….
샤일록: 온후한 마법사는 없었군요.
무르: 그렇네! 동서남북 중앙 호전적이네!
카인: 동생 쪽은 기가 센 것 같았는데, 형 쪽도 상당하네.
스노우: 대마녀 치렛타의 아들이니까 말일세.
화이트: 치렛타도 핏기 많은 여자였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구먼.
니콜라스: 무례한 놈. 이름을 대거라.
루틸: 남쪽의 마법사 루틸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쓸모없는 것은, 싸움에서 쓰러진 남쪽의 마법사들이나 살아남은 모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니콜라스: 그 말대로입니다. '거대한 재앙' 의 접근을 막지 못해 지금까지 없었던 재앙을 초래했다. 이걸 쓸모없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죠?
루틸: 그렇다면 '거대한 재앙' 과 싸우지도 않은 당신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당신이야말로 쓸모없는 그 이하가 아닙니까?
루틸의 말에 부드러웠던 니콜라스 씨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니콜라스: 무례한 마법사 같으니…….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거만한 태도가 허용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서: 기다려, 니콜라스! 지난 싸움에서 남쪽의 마법사는 전멸했다. 그중에는 이 자들의 아는 사람도 있었을 거야. 이런 잔치판에 걸맞지 않은 말을 한 사람은 너다. 너야말로 결례를 사과해야 해!
니콜라스: 아서 전하! 예로부터 왕가를 섬긴 무문 출신인 저보다도, 마법사들의 편을 드신다는 겁니까!
아서: 마법사의 편을 들지 않았어! 나는 공정하게…….
9화 찾아온 자
빈센트: 책망하지 마라, 니콜라스. 아서는 아직 어려. 마법사들에게 비위를 맞춰도 소용없다. 친어머니인 왕비에게 버림받은 한을 아직 다 버리지 못한 것이지.
아서: ……저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빈센트: 그런가. 역시 마법사군. 보통 사람이라면 부모에게 버림받으면 부모를 미워하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어.
아서: ……어째서 저희 말을 제대로 들어주시지 않는거죠!? 제가 하는 말도, 루틸이 드린 말씀도 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니콜라스: 피해자처럼 행동하는 건 삼가해 주셨으면 하군요. 당신들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공포에 빠뜨리는 건 '거대한 재앙' 이나 마법사나 마찬가지죠.
아서: 모두를 위해서 도움이 되려고 하고 있어! 나도, 여기 있는 자들도…….
니콜라스: 아서 전하는 그렇더라도, 다른 마법사들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전설의 마법사 오즈도, 북쪽의 마법사들도 여기에 모이지 않지 않았습니까. 놈들은 이 세상도, 고통받는 사람들도 어찌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할에서 도망쳐 희생을 만들었다. 저를 쓸모없다고 불렀던 남쪽의 마법사도 언젠가 도망가겠죠. 그전에 교육을 시켜놓지 않으면.
니콜라스: 데려가.
루틸: ……놔 주세요……!
아서: 그만 둬, 니콜라스……!
미틸: 형님……! 피가로 선생님, 어떡하죠…….
피가로: 곤란한걸……. 레녹스, 죽이지 마.
레녹스: 당신이 아니니까요.
스노우: 인간에게 손을 대면 안되네!
화이트: '거대한 재앙' 전에 사람과 서로 죽이게 되고 말거다!
그 순간…… 엄청난 천둥이 울렸다.
……!
맑게 갠 푸른 하늘에 눈 깜짝할 사이에 먹구름이 피어오른다. 바람도 없는데 실내의 불꽃이 꺼지면서 화려한 공연장은 으스스한 박간으로 변했다.
중앙 나라 사람: 우왓…….
중앙 나라 사람: 이, 이건 대체……!?
중앙 나라 사람: 설마……. '거대한 재앙' 이 다시…….
빈센트: ……바보 같은…….
달그락 달그락 창문이 흔들리고 불온한 공기에 사람들이 숨을 막는다. 예삿일이 아닌 듯 긴박한 정적이 감돌았다. 갑자기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 '아르시무'
중앙 나라 사람: ……!? 뭐, 뭐야……!?
중앙 나라 사람: 마법의 주문……!?
스노우: ……이 목소리는…….
화이트: 설마, 미스라……!?
미스라……!?
미스라라는 이름에 나는 현자의 서를 떠올렸다. '미스라, MAX 요주의. 외관과 존댓말에 속지 않는게 좋아. 짐승. 살해당할거야.'
직후…… 쿵! 하고 커다란 땅이 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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