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로이드: 칭찬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붉은 달리아와 노란 달리아는 아내가 특히 좋아하거든요. 실은, 제가 처음으로 카렌에게 준 꽃이 붉은 달리아라서…….
로이드 씨가 말하길 카렌 씨는 집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진 태어날 때부터의 허수아비. 결혼 당일까지 거의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달리아와 음악가 라스티카를 좋아한다는 것 뿐. 마법사를 좋아한다고 공언하니 괴짜 아가씨라고 사교계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부터 가족이 될 상대다. 로이드 씨는 어떻게든 카렌 씨가 기뻐해주길 원해서 거리나 저택을 만개의 달리아로 장식해 카렌 씨를 맞이했다.
젊었을 적의 카렌: 대단해. 거리가 달리아로 가득! 얼마나 멋진 전망인지……!
젊었을 적의 로이드: 다행이다……. 마음에 드셨나요? 당신이 좋아하는 꽃이라는 말을 듣고 저택의 사람들과 주민들에게 손을 빌려가며 달리아로 가득 꾸몄습니다.
젊었을 적의 카렌: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달리아를?
젊었을 적의 로이드: 네. 모르는 땅에 혼자 오는 것은 불안할테죠. 조금이라도 편안해졌으면 하고…….
젊었을 적의 카렌: …….
젊었을 적의 로이드: 그래서……. 으음, 엣헴.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카렌. 당신을 반려자로 맞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괜찮다면 이것을…….
젊었을 적의 카렌: 어머, 새빨간 달리아 꽃다발……. 이것도 당신이 골라준 거야?
젊었을 적의 로이드: 네, 네……. 꽃집에서 이게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서.
젊었을 적의 카렌: ……후훗. 당신의 얼굴, 이 달리아와 같은 색이네.
젊었을 적의 로이드: 뭣……! 죄송합니다. 결혼 전에 볼품없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젊었을 적의 카렌: 볼품없다니 그런! 나에게는 그 새빨간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보였어.
젊었을 적의 로이드: 에…….
젊었을 적의 카렌: ……사실은 말이야, 상대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오늘까지 계속 불안했거든. 하지만 그런 걱정, 당신 덕분에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어!
젊었을 적의 로이드: 카렌…….
젊었을 적의 카렌: 나야말로 미안해. 당신이야말로 분명 불안했겠지? '마법사 음악가를 좋아한다고 공언하는 이상한 아가씨' 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젊었을 적의 로이드: ……확실히,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신을 만나보고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그것이 마법사든 달리아처럼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남자든…….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 마음에 솔직하게 멋지다고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젊었을 적의 카렌: ……로이드……. 아아……. 내 짝이 당신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따뜻하게 맞이해줘서 고마워. 거리의 달리아도, 꽃다발도, 매우 기뻐. 오랫동안 잘 부탁해, 로이드!
로이드: 그때의 그녀의 웃는 얼굴은 손에 쥔 달리아보다 훨씬 눈부셔서, 저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서부터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저희는 진정한 부부가 되었죠.
스노우: 히유~! 로맨틱~!
카인: 정략결혼이 연애결혼이 된 셈인가. 꽤 하네.
로이드 씨의 성실함이 카렌 씨에게 전해졌군요.
피가로: 역시 정성이 효과가 있구나. 무욕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스노우: 피가로 쨩의 감상, 조금 불순해.
히스클리프: 멋진 이야기네……. 붉은 달리아는 두 분을 연결시킨 소중한 추억이군요. 또 하나의 노란 달리아에도 무언가 추억이 있나요?
로이드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병을 들고 온 졔이다 씨에게 눈길을 돌렸다.
로이드: 노란 달리아는 저희 부부와 졔이다를 만나게 해준 꽃입니다.
로이드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리운 듯 말을 꺼낸다. 그 이야기는 두 사람이 결혼하고 몇 년 후……. 행차하던 길모퉁이에서 한 소녀가 말을 걸면서 시작됐다.
꽃 파는 소녀: 귀족님, 꽃은 필요 없으신가요?
로이드: (……꽤 마른 아이네. 찬바람이 부는데 이렇게 얇은 원피스로…….)
카렌: 춥지. 이 스톨을 써줘. 어깨에 걸쳐줄게.
꽃 파는 소녀: 에……. 저기, 이거…….
카렌: 아아……. 잘 어울리네. 너의 예쁜 초록색 눈동자에 딱이야.
꽃 파는 소녀: 하, 하지만……. 저 따위가 이런 고급 스톨을 받을 수는 ….
카렌: 나보다 잘 어울려서 너에게 가고 싶다고 스톨이 그렇게 말했어. 스톨을 위해서라도 받아주지 않을래?
꽃 파는 소녀: ……귀족님……. ……감사, 합니다…….
카렌: 나야말로! 스톨을 받아줘서 고마워. 좋아, 모처럼 두 손이 비었으니 꽃을 받을까. 아가씨, 추천 좀 해줄래?
꽃 파는 소녀: ……! 네, 네! 으음…… 이 노란 달리아를 받아주세요. 햇님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당신에게 딱이에요…….
카렌: 어머, 기쁘다! 소중히 장식할게.
로이드: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네. 그 꽃을 팔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꽃 파는 소녀: 꽃은 필요 없나요? 꽃은……. ……아, 그때의…….
로이드: ……! 어떻게 된 거니, 그 얼굴. 이렇게나 부어서……. 누군가에게 맞은 거야?
꽃 파는 소녀: ……이 스톨을 팔릴 뻔했어요. 하지만 제가 매달려서 놓지 않았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화를 내서…….
로이드: 그런, 어째서……. 맞을 바에야 스톨 따위는…….
꽃 파는 소녀: 그렇게 뭔가를 받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소중히 하고 싶어서…….
로이드: ……너의 이름은?
꽃 파는 소녀: ……졔이다.
로이드: 졔이다. 우리 집에서 일하지 않겠니? 일은 조금씩 천천히 배워가면 돼. 아내도 분명 너를 환영할 거야.
라스티카: 과연……. 그런 경위로 그녀를 사용인으로 맞이한 것이군요.
로이드: 네. 자식을 얻지 못한 저희에게 졔이다는 딸같은 아이입니다. 그때 그 아이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서빙을 하는 졔이다 씨를 바라보며 로이드 씨는 절실하게 말했다. 그 눈빛은 아버지처럼 가깝고도 따뜻하다.
오즈: …….
'……나으리와 마님은 저의 은인입니다.' 나는 로이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졔이다 씨를 떠올렸다. 졔이다 씨에게 있어서 로이드 씨와 카렌 씨는 그냥 고용주가 아니야. 그건 분명 이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히스클리프: ……윽.
갑자기 식기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버즈고어가 접시째 음식을 내던진 것이다.
무르: 호쾌한 테이블 매너네!
스노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나?
네로: 야채 젤리 모듬이라. 부인이 좋아했다고 졔이다가 말했던 거네.
졔이다: …….
내팽겨쳐진 접시의 파편과 요리를 졔이다 씨가 묵묵히 정리한다. 로이드 씨는 낙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로이드: 하아, 오늘도 안됐구나……. 그렇게 좋아했던 요리인데…….
무르: 아하하, 그것도 못 본 척하는구나.
무르: 눈동자 색이 똑같다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몇 번이나 '다른 것' 에 눈을 돌려왔어?
카인: 어, 어이……!
히스클리프: 무르……!
돌을 맞은 듯 로이드 씨의 움직임과 표정이 일순간 멈춘다.
로이드: 하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재밌는 말을 하시는 분이다. 다른 것이고 뭐고, 그녀는 카렌입니다. 저의 사랑하는 아내죠.……
로이드: 그래. 단 한 사람의, 나의 아내.
자신에게 타이르듯 로이드 씨는 반복한다. 웃는 얼굴은 조금 마르고, 목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대답 없는 문을 두드리듯 미덥지 않았다.
만찬도 끝나고 서서히 밤의 장막이 내려온다. 우리는 내일의 축제를 앞두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라스티카를 찾던 나는 사랑방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
라스티카, 침실 준비가 되었다고 해요.
라스티카: 아아, 현자님. 감사합니다.
라스티카는 혼자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건…….
라스티카: 현자님께서 맡겨주신 서쪽 나라의 현자의 서입니다. 루키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라도 잊기 전에 오늘의 일을 기록해 두려고요.
그렇군요. 루키노에게 부탁을 받았었죠.
라스티카: 네. 오늘 하루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누락이 있어서는 안되니까요.
라스티카는 현자의 서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펜을 놓는다. 읽을 수는 없지만 지면에는 흐르는 듯 아름다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7화
라스티카: 확인을 위해 쓴 부분을 다시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현자님도 함께 들어주시겠나요?
그럼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자의 서에 적힌 글을 라스티카가 천천히 읽어내려간다.
라스티카: '……정오가 지나 르메르 가를 찾은 우리는 당주인 로이드 씨에게 환대를 받고…….'
그의 아름다운 말로 점철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빗댄 오늘의 사건은 기묘하고 슬픈 노래처럼 들린다. 시적이고 미려한 울림. 하지만 필요한 정보가 마법처럼 스스럼없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런 말을 고르는 글재주와 품격 있는 지성을 느꼈다.
라스티카: '중석을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졔이다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 괴물은 카렌이 아니라고. 그녀의 시체는 자신이 발견했다고. 그 말대로 고요한 숲 한 구석의 달리아 꽃다발 아래에서 말이 없는 모습의 카렌이 나타났다…….'
그때, 라스티카는 문득 무언가를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라스티카: ……그녀는, 괴물로 모습이 변한 것이 아니었군요……. …….
라스티카?
아주 잠깐 라스티카의 눈빛이 멀어진다. 하지만 이내 그 검푸른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라스티카: 이런, 실례. 조금 멍해진 것 같군요. 으음, 뭘하고 있었더라……. 아아, 그렇지. 그 두 사람에 대해서도 적어두지 않으면…….
라스티카는 안쪽으로 이어지는 방에 눈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보냈다.
(……저건……. 로이드 씨와 버즈고어……?)
로이드: ……저기, 너는 카렌이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나의 소중한 너지……?
로이드 씨는 매달리듯 버즈고어를 껴안고 있었다. 버즈고어는 그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흉포함의 한 조각도 없이, 자애롭게.
……에?
짐승처럼 날뛰던 모습과의 차이에 나는 놀라고 당황했다. 이런 건 마치 진짜 같다. 로이드 씨가 원하는 사랑에 그녀가 화답하는 것 같다. 혼란과 들여다보는 듯한 죄책감 때문에 나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뗐다.
라스티카: ……그에게 진실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떨, 까요.
마음이 망설여져서 입을 다물었다. '지금 당신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한 원인을 만든 그냥 괴물이다.' 그렇게 전해버리면 로이드 씨는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잠들게 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면서 그 마음은 깨져버리지 않을까. 게다가 비밀을 지키면서 그의 마음을 지켜온 졔이다 씨의 마음은 어떻게 되어버리는 걸까.
(……하지만, 이대로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카렌 씨는 사랑하는 반려자에게 상조도 받지 못하고 숲 속에서 잠에 빠졌다. 졔이다 씨도 입을 다문 채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로이드 씨도 버즈고어를 죽이면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눈앞에서 빼앗기는 것이 된다. 어느 쪽이 옿은지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나는 로이드 씨와 그를 지켜보는 라스티카의 조용한 옆모습을 보았다.
(……아아, 그렇구나. 계속 이런 기분이었구나……. 졔이다 씨도……. 클로에도…….)
하아……. 라스티카와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 ……어라? 클로에?
클로에: 아……. 조금 걱정이 돼서. 라스티카, 괜찮았어?
아, 그를 화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죄송해요. 신경쓰게 해서…….
클로에: 그게 아니야. 신부 이야기를 한 거지……? 흐트러지거나 하지 않았어……?
흐트러지다……?
클로에: 현자님께는 말해두는 편이 좋으려나…….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무엇을…….
클로에: ……라스티카의 신부, 아마 벌써 돌아가셨을 거야. 라스티카가 찾는 것은…… 맺어지지 못한 추억의 신부야.
클로에: 사실을 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사실을 알게 된다면……. 라스티카가 없어질 것 같아서. 무서워서 말을 할 수 없어…….
그날 클로에의 고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전하기 두렵고 가만히 있으면 힘들어진다.
카인: 드디어 돌아왔네. 해가 지기 전에 스노우를 마법관으로 돌려보내서 다행이다.
오즈: 좋지 않다. 화이트의 푸념 따위에 어울리지 말았어야 했어. 나의 마법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카인: 자자, 오늘 하루 북쪽 녀석들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고. 그리고 내 빗자루도 꽤나 승차감이 좋았지?
라스티카: 여어, 어서 와. 무사히 스노우 님을 마법관으로 보내드리고 왔니?
카인: 아아, 시간에 잘 맞췄어. 하지만 돌아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려서…….
상당히 시큰둥한 안색을 하고 있었는지 나를 보고 카인이 얼굴을 바꿨다.
카인: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나는 다시 안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변함없이 버즈고어와 로이드 씨는 금슬 좋은 부부처럼 붙어있다. 그 모습을 보고 오즈와 카인은 살짝 눈을 부릅떴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로이드 씨의 신변의 안전과 돌아가신 카렌 씨를 위해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것을 보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려서…….
오즈: ……저 남자는 저 남자 나름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고 하는 운명에 항거하려고 했을 테지. 아내는 버즈고어라는 괴물로 모습을 바꿨다. 그런 거짓된 이야기를 자신 안의 진실로 만들어서.
아내를 잃은 남자와 아내가 된 괴물. 기묘하게 다가서는 두 그림자를 오즈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비웃음도 업신여김도 없다.
오즈: 인간이 괴물로 탈바꿈했다면 저주나 마법의 소행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 자는 우리를 향해 한 번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라는 하지 않았어. 자신 안의 진실을 마음속 깊이 깨닫고 있으면서도 계속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겠지. 그만큼 그에게 반려자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의 상실을, 저 남자의 마음이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담담하고 조용한 말투인데 상처를 덧입히듯 애처롭게 울렸다.
카인: ……하지만, 이대로라면 카렌이 구원받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의 옆을 괴물이 차지하고 자신의 죽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숲 속에서 잠만 자야 한다니……. 졔이다도 카렌의 무덤 앞에서 홀로 꽃을 올리며 부부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게 될 거야. ……하지만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어. 어느 마음도 완벽하게 구하는 것은.
카인은 한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양지를 외면하듯 대담한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카인: 만약 내가 로이드라면 소중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게 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한심하다고 생각할 거야. 왜 좀 더 빨리 알아보지 못했을까라며. ……하지만 내가 졔이다라면 주군의 마음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자신이 상처를 입어도 더러움을 감추려고 맹세했겠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도 졔이다는 고통스러워 할 거야. 로이드도 그래.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하고 싶지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할 수 없다.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바랄수록 등을 맞대고 있다.
(……어떻게 해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의 어깨에 부드러운 온기가 스쳤다.
라스티카: 제가 진실을……. 상실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에……?
라스티카: 카인도 말했듯이 지금 이대로라면 카렌 공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조의를 받지 못한 채 홀로 땅 속에서 계속 잠을 자게 됩니다. 졔이다의 마음도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진실을 계속 숨겨도, 버즈고어를 죽인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은 분명 부서지고 말아.
라스티카: 그리고 버즈고어도 버즈고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 로이드 공을 죽일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백성들의 불만도 폭발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르메르가에 얽힌 모든 것이 파멸로 이어지겠죠.
아키라 / 오즈 / 카인: …….
라스티카: 이대로 비밀을 지키는 것과 진실을 밝히는 것. 저는 계속 저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자를 택했다. 사실 로이드 공을 슬프게 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아름다운 결말을 그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의 세계는 좀처럼 행복한 그림책처럼 되지는 않네요.
라스티카…….
라스티카: ……하지만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400년 이상이나 살아왔으면서 그 방법을 최근에 알게 된 초보자입니다만…… 그만큼 그의 슬픔에 더 힘을 보탤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제가 그에게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렇게 부드럽고 가늘어진 눈동자는 무언가를 떠올린 것 같았다. 클로에가 만든 의상을 차려입고 거처를 바로잡은 라스티카는 오즈를, 카인을,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8화
라스티카: 졔이다에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것은 접니다. 그때 저는 이 이야기를 연주하는 악단의 지휘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막이 오를 때까지 남겨진 시간은 적습니다만……. 성공도 실패도, 모든 책임을 지고 무대에 서보도록 하죠.
새벽. 드디어 축제 당일. 마법관에서 돌아온 스노우가 모인 곳에서 나는 마법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피가로: 라스티카가?
네.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아서……. 카렌 씨를 기쁘게 하는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다고 오늘 아침 저택을 떠나기 전에 로이드 씨에게 제안했어요. 오즈와 카인은 그걸 돕기 위해 먼저 광장으로 향했고요.
히스클리프: 버즈고어를 죽이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요? 로이드 씨와 졔이다, 어느 쪽의 마음도 제대로 구원받을 수 있는…….
네로: 걱정하지 말자. 신랑 씨가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 괜찮을 거야.
무르: 환상도 꿈도 깰 때가 가장 잔인하지. 로이드는 견딜 수 있을까? 지금까지 카렌이라고 믿었던 상대가 가짜였다는 현실에.
스노우: 글쎄. 그것만은 시도해봐야 알 수 있겠군. ……그러나 버즈고어의 존재는 로이드에게 있어서 모종의 구원이었을지도 모르네.
스노우: 사랑의 상실 앞에서는 그것이 거짓이든 진짜이든, 곁에 있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이지.
달리아가 가득 떠오르는 물터를 스노우가 들여다보았다. 그 틈 사이로 보이는 수면에는 그의 반쪽이 이쪽을 들여다보듯 똑같은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피가로: ……그렇게까지 마음을 할애해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뭐, 본인은 좋아도 남겨진 졔이다나 주민들은 곤란하겠지만…….
스노우: 뭐야, 피가로 쨩.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피가로: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을 뿐이라.
이윽고 연주가 예정된 정오가 되어가고 있었다. 광장에는 이미 라스티카가 쳄발로와 함께 대기하고 있다. 옆에는 오즈와 카인도 있었다.
무르: 아, 로이드들이 온 것 같아.
로이드 씨와 버즈고어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자 웅성거림이 물결치듯 광장으로 내달렸다.
앞치마 차림의 여성: 히익 ……! 역시 데리고 왔어.
삭발한 남자: 이런 사람이 많은 곳에서 괴물이 날뛰면 어떻게 할 거야!?
끌려온 버즈고어는 현재 얌전하다. 다만 체모에서 들여다보는 푸른 눈이 하늘하늘 불안정하게 주위를 맴돌고 있어 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라스티카: 결혼 기념일 축하드립니다. 로이드 르메르 님, 카렌 르메르 님.
로이드: 감사합니다. 저도 카렌도 이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연주 뿐만이 아니라 서프라이즈도 준비해 주셨다고.
라스티카: 네……. 오늘만의 특별한 서프라이즈죠.
라스티카가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쿠 쨩을 껴안는 팔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라스티카: 로이드 님은 어젯밤 만찬에서 식사와 함께 매우 멋진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때 들었던 부부의 소중한 에피소드를 추억이 깊은 달리아에 담아 저희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두 분의 만남부터.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싸늘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연주를 시작하는 지휘자답게 라스티카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 신호로 오즈가 한 발짝 버즈고어에게 다가간다.
오즈는 붉은 달리아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여성에게 선물을 건네듯 두 손으로 그것을 버즈고어에게 내민다.
오즈: '꽃집에서 이게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로이드: ……!
로이드 씨는 눈을 크게 떴다. 오즈가 꽃다발과 함께 내민 것은 카렌 씨에게 처음으로 달리아를 선물했을 때 로이드 씨의 대사다. 부부를 이어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의 말. 버즈고어는 건네받은 달리아를 손끝으로 따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그러면서 로이드 씨는 약간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로이드: 카렌, 그때의 일이야. 내가 너를 처음 만났던…….
버즈고어는 금방 흥미를 잃은 듯 꽃다발을 움켜쥐었다.
히스클리프: 아…….
로이드: ……카렌……?
버즈고어의 행동을 로이드 씨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다는 듯이 버즈고어의 얼굴을 몇 번이고 돌아본다.
로이드: ……잊어버린거니? 붉은 달리아도, 나의 말도. 봐…….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버즈고어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꽃을 휙 집어던졌다.
스노우 / 피가로: …….
라스티카: ……그럼, 계속해서. 부부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보물과의 만남을.
라스티카가 다시 악단에 지시를 내리듯 왼손을 들었다.
왼쪽에 서있었던 카인이 걸어나온다. 오즈와 마찬가지로 노란 달리아 꽃다발을 버즈고어에게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카인: ……'햇님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당신에게 딱' 이야.
어린 졔이다 씨가 카렌 씨에게 건넨 말이다. 두 사람과 졔이다 씨를 만나게 해준 추억의 달리아가 그날과 똑같이 카인의 손에서 건네진다. 그러나 버즈고어는 그것도 휴지조각처럼 취급했다. 흐물흐물 꽃다발을 양손으로 무참히 으깨버린다.
로이드: ……카렌……!
졔이다: …….
노란 달리아는 살랑살랑 발밑으로 흩어진다. 졔이다 씨는 슬픈 듯 눈을 내리깔았다.
로이드: 어째서……. 카렌, 어째서야……? 이것은 우리의 소중한 추억인데……. 너도 자주 말했었잖아……? 붉은 달리아는 우리를, 노란 달리아는 우리와 졔이다를 연결해 준 거라고…….
로이드 씨는 상처를 받은 채 당황해했다. 버즈고어에게 매달리는 말을 건네며 흩어진 붉은색과 노란색 달리아를 긁어모으기도 했다. 그때, 쳄발로가 가볍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스노우: ……라스티카의 연주가 시작된 것 같군.
음색에 도움을 청하듯 로이드 씨는 고개를 들었다.
로이드: 아아, 카렌……. 네가 좋아하는 곡이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했었잖아. 지금도 그렇지?
로이드: 카렌. 저기, 카렌……. ……너는, 정말로 카렌이지……?
버즈고어는 구아아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두 손을 휘둘러 광장에 장식된 달리아의 화분을 깨뜨린다.
네로 / 사크리피키움: ……!
긴 머리의 여성: 꺄악!
심약해 보이는 남성: 역시 날뛰기 시작했어……! 우릴 죽일 생각이야!
버즈고어의 행동에 광장은 발칵 뒤집혔다. 어른들은 전율하고 아이는 울기 시작하며 그 목소리가 짜증이 났는지 버즈고어는 더욱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한다.
로이드: ……아……. 영민들이…… 두려워하고 있어……. 카렌! 더 이상 날뛰면 안돼……! 영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다니, 본래의 너라면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았어. 저기, 카렌……. 그렇지……?
로이드: ……!
라스티카: ……오즈 님.
오즈: '복스노크'
떠들썩한 소란을 뚫고 들려온 것은 늠름하고 냉정한 라스티카의 목소리와 힘찬 오즈의 주문. 다음 순간, 희미하게 빛나는 벽이 나타나 광장 중앙에 있는 버즈고어와 라스티카들을 돔처럼 에워싼다. 사람들을 진정시키려고 그 벽 바깥에 있는 주민들을 향해 카인이 말을 걸었다.
카인: 모두들, 제발 물러서 있어줘. 이 벽에서 버즈고어는 절대 나갈 수 없어.
빨간 머리의 소년: 미, 믿을까 보냐! 영주가 우리를 저 괴물에게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잖아!?
카인: 그런 짓은 하지 않아. 그 사람은…… 잠깐 꿈을 꿨을 뿐이야.
보이지 않는 벽에 버즈고어가 던진 달리아의 화분이 무딪힌다. 부서지는 난폭한 소리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곱슬머리의 여성: ……저 녀석, 이쪽을 보고 있어!
주근깨의 청년: 이게! 저쪽으로 가, 괴물 녀석……!
로이드: …….
분명 지금까지의 축제는 많은 달리아에 둘러싸인 화목한 부부를 사람들이 축복하고 웃는 얼굴로 넘쳤을 것이다. 지금 누구의 얼굴에도 미소는 없다. 광장에 소용돌이치는 것은 괴물이 몰고 온 비명과 아이의 울음소리와 공포다.
로이드: ……아, 아아……. 아니야……. 저건……. 저것은 카렌이 아니야…….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야……!
외치는 듯한, 한탄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로이드 씨는 자신의 한 말에 질려 악연히 서있다.
로이드: 저것이 그냥 괴물이라면……. 내 아내는……. 카렌은…….
로이드 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저 숲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9화
라스티카: ……슬픈 일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 무섭고 불안할지도 몰라.
어느새 연주를 멈춘 라스티카는 로이드 씨에게 다가갔다.
라스티카: 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도, 졔이다도, 카렌 공 대신에 당신을 안아준 그 아이도 있어. 부디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눈물이 멈출 때까지 곁에 있을테니. 몇 번이라도 당신의 눈물을 닦아드리죠.
보물상자에서 소중히 나눠주듯 정성스럽게 하나씩 마음의 뚜껑을 열며 라스티카는 말을 거듭했다. 세상의 어떤 악기가 연주하는 소리보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거기에 등을 떠밀려 로이드 씨는 천천히 오열을 흘리며…… 자신이 꿈에서 꺠어난 것을 깨달았다.
로이드: ……그런가……. 카렌은……. 아내는…… 그 사고로…… 죽어버린 거군요…….
라스티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티카: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로이드: ……. …….
무너져 내리듯 로이드 씨는 통곡했다. 그 옆에서 라스티카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그의 등에 다정하게 손을 얹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어. 이렇게 전하듯이.
로이드: 아아……. 아아아아아아……!
몸속에서 밀려오는 슬픔이 그의 뺨을 적시고 여러 개 떨어져 나간다. 정돈된 은회색 머리는 마음씨를 드러내듯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졔이다: ……나으리…….
오즈: …….
카인: …….
버즈고어는 여전히 광장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많은 사람의 눈과 비명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벽 너머의 주민들에게 몇 번이고 내리치고 있다. 로이드 씨는 흐느적거리는 얼굴을 들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로이드: ……저 아이는 카렌이 아닙니다. 그냥 괴물이죠. 모두의 안전을 생각하면…… 살려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로이드 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로이드: 하지만……. 이 몇 달…… 제 마음을 채워준 것은 그 아이의 존재였습니다.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저택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조용히 껴안고 위로해준 적도 있습니다…….
라스티카는 속눈썹을 내리깔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티카: 네. 네…….
나쁜 꿈이 계속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으르렁거리는 괴물에 모두가 겁을 먹고 있다.
로이드: ……아아…….
깊은 실망을 안은 채 로이드 씨는 고개를 떨군다. 얼굴을 가리고 용서를 구걸하듯 그는 내뱉었다.
로이드: ……죽이고 싶지 않아. 카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그런 무서운 괴물이라도……. 살아줬으면 해……!
어젯밤 버즈고어는 로이드 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가 모를 뿐, 저런 밤은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 접촉도 그저 괴물의 변덕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는 세계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 이 벽, 정말로 부서지지 않는 거죠!? 괴물이 계속 때리고 있어요……!
빨간 옷을 입은 아이: 엄마, 무서워……!
흰 셔츠의 청년: ……이제 적당히 좀 해! 저 녀석을 죽여!
안경을 쓴 남자: 마, 맞아! 그런 것이 영지 안에 있으면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어!
벽에 보호받고 있다고 해도 가까이서 날뛰는 괴물의 위협은 안심을 주지 못했다. 영민들의 인내는 한도에 이르고 광장을 감싸고 있떤 공포는 강한 적의가 되어 전염되어 간다.
영민: 죽여라!
영민: 괴물을 죽여라!
피가로: ……위험하네. 살기가 엄청나.
스노우: 이러다가는 영민들이 무기를 들고 나올지도 모르네.
지켜보는 마법사들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저마다 경계를 높이고 있다. 죽이라는 소리가 난무하고 살벌한 가운데, 라스티카는 손수건을 꺼내 주저앉는 로이드 씨의 눈물을 닦았다.
라스티카: ……나머지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라스티카는 일어서서 목청을 돋우고 낭랑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러 마음을 끌듯이 버즈고어에게 다가간다.
라스티카: 착하지. 자, 이리 와.
노랫소리에 고개를 돌린 버즈고어는 라스티카에게 눈길을 주고 포효했다. 날뛰던 흥분 그대로 네 다리를 튕겨 맹렬히 덤벼든다. 라스티카는 마도구를 꺼내들었다. 괴물을 노리듯 똑바로 팔을 뻗는다.
히스클리프: ……라스티카……!
……!
버즈고어의 발톱과 라스티카의 몸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비엣셰'
눈을 뜬 끝에는…… 팔랑팔랑 춤추는 흰 달리아의 꽃잎들. 라스티카가 들고있는 새장 안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있다.
라스티카: ……괜찮아. 너는 죽이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상냥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아주 조금 애틋했다. 마치 이루지 못한 언젠가의 소원에 전부 아물지 못한 옛날의 상흔을 살짝 건드리는 것처럼. 광장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빨간 머리의 소년: 에…….
문신을 한 사나이: 괴물이, 사라졌어……?
라스티카: 안심해 주세요. 보다시피 괴물이 이 거리에서 날뛰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겁니다. 슬픔에 사로잡혀 있던 로이드 르메르 씨의 마음도 풀려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위협할 것은 없습니다.
무대 배우처럼 크게 손을 벌리고 라스티카는 드높게 선언했다.
문신을 한 사나이: ……해냈다! 괴물이 사라졌어!
몸집이 큰 남자: 영주님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건가……?
아이를 안은 여자: 맞아! 아까도 괴물을 무서워하는 우리를 걱정해 주셨어!
모자를 쓴 여성: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주님도 분명 여러가지로 힘들었던 거야. 그렇게 눈믈을 흘리고 흐트러져서…….
흰 수염의 남성: 아무튼 좋았어! 이걸로 이제 안심이다……!
영민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쁨에 젖었다. 불만과 불신으로 가득 찼을 이 거리에 로이드 씨를 탓할 사람도 의심할 사람도 이제 없다. 눈앞에서 펼쳐진 우아한 귀공자의 영웅담. 그 주역의 안심하세요라는 말은 어떤 마법보다 힘을 가지고 있다.
(혹시, 라스티카는 하룻밤만에 여기까지 생각한 건가……?)
영민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라스티카들을 기리고 광장에는 감사의 말이 모인다.
영민: 라스티카 님, 감사합니다!
영민: 역시 현자의 마법사다! 우리를 구해주셨어!
불안으로부터의 해방감과 괴물 퇴치를 본 고양으로 칭찬의 소리는 열을 가하면서 사람들을 뒤덮는다. 이윽고 광장은 큰 환호성에 휩싸여 갔다.
영민: 라스티카 님 만세!
영민: 현자의 마법사 만세!
열광 속에 축제가 막을 내린 후. 로이드 씨와 졔이다 씨와 함께 카렌 씨가 잠든 무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졔이다: 나으리,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사실을 전하지도 않고 마님을 이런 장소에서 혼자……. 저는 저의 행복을 지키고 싶었으면서, 마님의 가족이나 마님을 생각하는 분들을 슬프게 하는 일을 해버렸어요…….
로이드: 사과하지 말아줘. 모든 것은 내가 카렌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 이야기를 꾸며낸 탓이니까. 나야말로 미안해. 너 한 명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해서……. 계속 말하지 못해서 괴로웠겠지.
축제의 소란과는 동떨어져 숲 속에는 고요함이 가로놓여 있다. 두 사람은 각자 무덤 앞에 꽃을 꽂았다. 웃듯이 활짝 핀, 붉은색과 노란색의 달리아 꽃다발.
로이드: ……카렌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해저에 가라앉은 것처럼 숨쉬기가 괴롭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구워지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
로이드 씨는 심장을 쥐듯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로이드: ……그래도, 어떻게든 이 다리로 제대로 서있어. 졔이다. 네가 갑작스러운 이별을 오랫동안 지켜준 덕분이야.
로이드 씨는 졔이다 씨를 쳐다보고는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로이드: 게다가 라스티카 님이나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이 조금씩, 천천히 상실을 가르쳐 주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나를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중얼거리며 그는 라스티카가 손에 들고 있는 새장으로 눈을 돌렸다. 시간을 새기는 달리아 무늬의 회중시계가 장식된 그 새장은 라스티카의 마도구와는 별개의 것이다.
졔이다: 그 회중시계가 정말 고쳐지다니……. 히스클리프 님, 감사합니다.
로이드: 저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내의 유품을 원래대로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0화
히스클리프: 아뇨, 그런. 우연히 이전에 같은 수리를 한 적이 있었을 뿐이고……. 그래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다. 부인의 추억의 물건이 앞으로도 두 분의 새로운 시간을 새겨주길 바라며.
시계 소리에 맞춰 새장 속의 새가 지저귀고 있다.
네로: 이렇게나 작게 귀여워져서는. 이제는 저택의 벽이라던가 바닥에 구멍이 생길 일도 없겠네.
스노우: 북쪽의 개구쟁이 꼬마들도 새로 만들어 버릴까. 어제도 마법관 지붕을 뚫은 것 같고.
(그 셋은 새가 되어도 강할 것 같은데…….)
카인: 확실히 이 모습이라면 버즈고어라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무르: 곁에 두려고 본래의 모습을 빼앗아 죽이다니, 시원한 에고네.
피가로: 다들, 거기까지 해둘까. 이 새를 어떻게 할지 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야.
스노우: 로이드여. 이 작은 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저택에서 기른다면 그대가 살아있는 동안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오즈에게 마법을 강화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만.
오즈: …….
라스티카: …….
로이드: ……이 아이는 외딴 곳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그곳에 보낼 때까지 며칠, 몇 개월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차도 인간도 접근할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에.
스노우: 호오. 아내의 대체품으로 있던 존재가 사라져도 그대는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건가.
로이드: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이 아이는 제가 멋대로 카렌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 카렌의 대체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제 마음에 뚫린 이 구멍이 메워지는 일은 평생 없을 것입니다.
로이드: ……하지만, 저에게는 졔이다가 있습니다. 이 아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공허한 구멍에 부드러운 온기가 깃들어요. 가능하다면 저도 이 아이의 마음에 뚫려버린 구멍에 온기를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카렌의 모습을 찾는 아침도, 카렌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낮도, 카렌의 온기를 만지고 싶어지는 밤도……. 조금씩, 둘이서 극복할 수 있다면…….
졔이다: 로이드 님…….
스노우: ……그런가.
로이드 씨의 말에 스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스노우: 그러면 우리의 마지막 일은 결정됐구먼. 그렇지, 오즈 쨩!
오즈: ……같은 땅에 놓아주면 너희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 버즈고어와 같은 마물이 사는 외딴 땅……. 북쪽 나라까지 내 마법으로 데리고 가주지.
로이드: 그런……. 오즈 님,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로이드 씨의 곁에서 졔이다 씨 역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주인을 따라하기보다는 가족이 다가서는 몸짓으로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외롭고 슬프다고 서로 말할 수 있다. 카렌 씨가 없는 시간을, 분명 오랜 시간을 두면서 앞으로 기억해 나갈 것이다.
라스티카: …….
로이드 씨의 선택을 말없이 지켜보던 라스티카와 문득 눈이 마주쳤다. 축복의 빛으로 가득 찬 사파이어는 지평선에서 들여다보는 새벽빛을 보는 듯 눈부시게 가늘어지고 있었다. 축복과 기쁨, 약간의 근심의 빛을 얹으면서.
라스티카: 그러면 저도 마지막 일을 하도록 하죠.
손가락을 올린 라스티카의 앞에 쳄발로가 나타났다. 로이드 씨는 눈을 깜빡였다.
로이드: 하지만 연주는 이미 광장에서…….
라스티카: 아뇨, 이제부터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음악가 라스티카 페르치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 그것이 당신의 소원이죠?
라스티카는 미소를 지으며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달리아의 꽃이 활짝 피도록. 그들의 만남을 축복하기를. 화려하고 선명한 쳄발로의 음색이 숲에 있는 모든 것을 감싼다. 내 눈으로 본 로이드 씨들의 이야기는 이 음색처럼 밝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라스티카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그들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 감벽의 눈동자에 어떤 경치로 비쳤을까.
긴밤에 들여다본 현자의 서를 떠올리며, 그가 앞으로 써내려갈 아름다운 말들에 나는 살며시 생각했다.
루키노: ……후우. 겨우 도착했다……. 걷고, 마차를 타고, 또 걷고……. 역시 빗자루를 탈 때보다 훨씬 멀게 느껴져…….
메이슨: ……응? 당신, 루키노 씨 아닌가?
루키노: 메이슨 씨!
몸집이 큰 탄광부: 뭐야? 메이슨의 아는 사람……. 본 적이 있는 얼굴이네.
크레이그: 오오, 기자 도련님. 이 근처에는 드물게 예쁘고 품위있는 녀석이 있다고 생각했네.
루키노: 크레이그 씨!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메이슨: 당신, 이런 외진 마을에 또 취재하러 온 건가?
루키노: 네! 위기를 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앞으로의 일상을 완전히 찾는 것까지 취재해야 기자니까요. ……그리고, 이번 목적은 또 하나. 현자님과 현자의 마법사들을 위해서 이 마을의 여러분들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메이슨: 부탁하고 싶은 것?
크레이그: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의 은인이야. 굴 파기밖에 할 수 없는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협력하겠어.
단발의 탄광부: 크레이그 씨의 말이 맞아!
몸집이 큰 탄광부: 기자님, 우리도 협력할게!
루키노: 와아,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러면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여러분들이 서명을 해주셨으면 해요.
탄광부들: 서명……?
루키노: 네. 정확하게는 제가 가져온 이 용지…….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에 대한 감사장에 친필로 이름을 써주셨으면 해서.
메이슨: 별난 부탁이군. 우리 이름이 무슨 도움이 되나?
루키노: 네. 현자의 마법사 분들이 사람들을 도왔다는 증명을 위해. ……슬프지만 보도라는 것은 사실을 조작해 잘못된 정보를 세상에 퍼뜨리는 것도 가능해서요. 그래서 신문 기사만으로는 현자님들의 활동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여러 사람의 친필 서명이 있으면 그들이 저희 인간을 도와준 증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메이슨: 과연…….
루키노: 아, 물론 억지로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협력해도 된다라는 분만 적어주시면 충분해요.
크레이그: …….
메이슨: ……당신의 마음은 전해졌어. 나도 몸으로 이 탄광을 지켜준 레녹스 씨들을 믿어주지 않는 것은 싫어. 루키노 씨, 그 서명이라는 거 협력하게 해줘.
크레이그: 나도…… 라고 말하고 싶은 참이지만 글자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마을에서는 꽤 어려울지도 몰라.
장신의 탄광부: 나는 도시에서 태어난 할아버지에게 배웠으니까 조금은 읽고 쓸 수 있어.
단발의 탄광부: ……나, 쓸 수 없을지도…….
루키노: 괜찮아요. 이름을 알려주시면 제가 견본을 써드릴게요!
크레이그: 오, 그거 고맙네. 그러면 나도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아. 메이슨, 너도 루키노 씨에게 견본을 달라고 해.
메이슨: 아니, 나는 됐어. 루틸 씨가 가르쳐줘서 자신의 이름은 쓸 수 있게 됐거든.
크레이그: ……! 너, 어느 사이에…….
메이슨: 그 사람들이 돌아가기 전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3일에 한 번씩 모래 위에 글을 써서 연습했어.
크레이그: 그런가……. 모르는 사이에 또 훌륭해져 버려서…….
메이슨: 왓……. 아파라……. 너, 언제나 안는 힘이 강하다고……! 자, 모두들! 루키노 씨에게 배우면서 서명이라는 걸 시작하자.
탄광부들: 오오!
메이슨: 하지만 당신도 젊은데 대단하네. 이 서명 아이디어도 당신이 생각하고 움직여서 이렇게 실현시킨거지? 취재도 할 겸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곳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말이야.
루키노: 아하하, 감사합니다. 한 명의 기자로서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에게는 귀중한 취재를 하게 된 은혜가 있으니까요.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남은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거다! 라고 드는 생각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루키노: …….
메이슨: ……? 루키노 씨?
루키노: (……맞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더 열심히 해서 빨리 훌륭한 기자가 되어야 해. 나는…….)
질: 릴리아나 님, 실례하겠습니다.
릴리아나: ……질인가.
질: 당주가 괴물에게 반해 거친 태도를 보였던 르메르 가문입니다만, 아무래도 제정신을 되찾은 것 같아서 ……. 높아지던 영민들의 불안도 해소되어 저택을 떠났던 하인들도 조금씩 돌아왔다고 합니다.
릴리아나: ……알고 있다. 전부 보고 있었어.
릴리아나: 라스티카 님……. 액재와 관련된 이변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까지…….
릴리아나: ……중앙의 나라. 현자의 마법사. 뭐가 목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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